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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佛頂 如來密因 修證了義 諸菩薩萬行 首楞嚴經
제1권
《序分》二 1 證信序 1) 說法時處
如是我聞이라 一時佛在室羅筏城祇桓精舍하사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이 실라벌성(室羅筏城)의
기원정사(祇桓精舍)에서
2) 法會聽衆 ⑴ 常隨衆 ① 總標
與大比丘衆의 千二百五十人俱하시니
대비구 1250인과 함께 하셨다.
② 嘆德
皆是無漏大阿羅漢이라 佛子住持하야 善超諸有하며 能於國土
成就威儀하야 從佛轉輪호대 妙堪遺囑하며 嚴淨毘尼弘範三界
하고 應身無量度脫衆生하되 拔濟未來越諸塵界니라
그들은 모두 번뇌가 소멸[無漏]한 대아라한(大阿羅漢)들이었기
에 부처님의 제자로 머물러 모든 욕망의 세계에서 잘 초월하였고
능히 여러 국토에서 위의(威儀)를 성취하여 부처님을 따라 법륜
(法輪)을 굴리었다. 또한 이들은 미묘하여 다 유촉(遺囑)을 감내
할 만하며 계율[毗尼]를 엄정(嚴淨)하게 지니어 삼계에 모범이
되고, 응신(應身)이 무량하여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며, 미
래 중생의 번뇌까지도 다 소멸하여 가지가지 고통의 세계에서 벗
어나게 하는 훌륭한 수행자들이었다.
③ 列名
其名曰 大智舍利佛과 摩詞目犍連과 摩詞拘絺羅와 富褸那彌
多羅尼子와 須菩提와 優波尼沙陀等而爲上首니라
그 이름은 대지사리불과 마하목건련과 마하구치라와 부루나미
다라니자와 수보리와 우파니샤타 등이 우두머리가 되었다.
⑵ 來集衆 ① 聲聞衆
復有無量 辟支無學幷其初心이 同來佛所하니 屬諸比丘休夏自
恣라 十方菩薩諮決心疑코자 欽奉慈嚴將求密議러라
또 수많은 벽지불과 무학(無學,아라한)과 초심자들이 부처님의
처소에 모였으니 마침 그 날은 모든 비구들이 여름 안거(安居)를
마치고 자자(自恣)를 하는 날이었으며 사방의 보살들도 이날을
기하여 의심스러웠던 것을 묻고 해결하려고 부처님을 공경히 받
들며 비밀한 뜻을 알려고 하였다.
卽時如來가 敷座宴安하사 爲諸會中하야 宣示深奧하시니 法筵
聽衆得未曾有하고 迦陵仙音徧十方界하며
그 때 여래께서 자리를 펴고 편안히 앉으시어 모인 대중들에게 심
오한 이치를 펴 보이시니 법회[法筳]에 참석했던 청중들은 일찍이
없었던 일[未曾有]을 얻었고, 가릉빈가[伽陵]의 묘한 음성은 시방
세계에 두루하였다.
② 菩薩衆
恒沙菩薩來聚道場하니 文殊師利而爲上首러라
또 항하(갠지스강)의 모래수와 같은 수많은 보살들도 이 도량
[道場]에 참여하였으니 그 가운데에는 문수사리보살이 우두머리
가 되었다.
2 發起序 1) 佛卦王命
時波斯匿王爲其父王하야 違日營齊코자 請佛宮掖自迎如來하고
廣設珍羞無上妙味하며 兼復親迎諸大菩薩더라
때에 파사익왕이 그 부왕을 위하여 제삿날[諱日]에 재(齋)를 지내려고
부처님을 궁전 안으로 청하여 직접 여래를 영접하고 가지가지 진수성찬과
최상의 음식을 차렸으며, 아울러 여러 대보살들도 친히 맞아들이었다.
2) 聖衆分應
城中復有長者居士하야 同時飯僧코저 佇佛來應어늘 佛勅文殊호되
分領菩薩及阿羅漢하야 應諸齋主러라
성 안에는 다시 장자(長子)와 거사(居士)들도 있었는데 그들도 승보(僧寶)에
공양을 올리려고 부처님이 오시어 응하여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부처님
은 문수보살에게 ‘보살과 아라한을 나누어서 여러 재주(齋主)들의 원(願)에 응하도
록 하라’고 명령하시었다.
3) 阿難獨異
唯有阿難先受別請하고 遠遊未還타가 不遑僧次러니 旣無上座及阿闍梨하고
途中獨歸하니 其日無供이라 卽時阿難執持應器하고 於所遊城次第循乞호되
心中初求最後檀越하야 以爲齋主호되 無問淨穢와 刹利尊姓及旃陀羅하고
方行等慈不擇微賤하니 發意圓成一切衆生의 無量功德이라
다만 아난은 미리 별청(別請)을 받고 멀리 나가 돌아오지 못하여 대중이 함께하는
승차청(僧次請)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 때 아난은 상좌(上座)와 아사리(阿闍梨)
도 없이 혼자 돌아와 공양이 없었으므로 곧 바로 응량기(應量器)를 들고 항상 다니
던 성 안으로 걸식을 나갔던 것이다. 이 때 ‘되도록 최후단월(最後檀越)을 구하여
재주(齋主)를 삼되, 깨끗하고 더러운 찰제리(刹帝利)나 전다라(旃陀羅) 등을 묻지
않고 평등하게 자비를 행하여 아무리 미천한 자라도 가리지 않겠다’고 생각하였으
니 그 뜻은 일체중생에게 무량한 공덕을 원만히 성취시키고자 한 것이다.
阿難已知如來世尊이 訶須菩提及大迦葉은 爲阿羅漢호대 心不均平하며
欽仰如來開闡無遮하야 度諸疑謗할새 經彼城隍徐步郭門하야
嚴整威儀肅恭齋法일러라
또 아난은 이미 ‘여래께서 수보리와 대가섭은 아라한이 되었으면서도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다고 꾸중하시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래는 열린 마음
으로 걸림이 없으셔서 어떤 의심이나 비방에서도 벗어나셨다는 것’을 공경하고
우러러 사모하였기 때문에 성과 해자를 지나 천천히 성 안으로 들어가 위의를
엄정히 하고, 엄숙하고도 공경히 걸식의 법을 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4) 示遇惡緣
爾時阿難因乞食次에 經歷婬室타가 遭大幻術摩登伽女한대 以娑毘迦羅先
梵天呪로 攝入婬席婬躬撫摩하야 將毁戒體하니
그 때 아난이 걸식하던 차제(次第)에 음실(陰室)을 지나다가 환술을 잘 하는
마등가족의 여인[摩登伽女]을 만났다. 그녀는 사비가라(娑毗迦羅) 선범천
(先梵天)의 주문으로 아난을 음석(淫席)으로 이끌어 몸으로 만지고 비비면서
장차 아난의 계체(戒體)를 무너뜨리려 하였다.
5) 佛慈垂救
如來知彼婬術所加하고 齋畢旋歸하신대 王及大臣長者居士가 俱來隨佛願聞
法要니라
여래께서 아난이 마등가녀의 음술(淫術)에 붙들린 줄을 아시고 공양[齋]를 마치
자 바로 정사(精舍)에 돌아오시니 왕과 대신 그리고 장자와 거사들도 모두 부처님
을 따라 정사까지 와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게 되었다.
于時世尊 頂放百寶無畏光明시니 光中出生千葉寶蓮이라 有佛化身이 結跏趺
坐하사 宣設神呪어늘 勅文殊師利하야 將呪往護하시니 惡呪燒滅하고 提奬阿難
及摩登伽하야 歸來佛所더라
그때 세존께서는 정수리로부터 백 가지 보배의 모든 두려움을 없애주는 광명을 놓
으시니 광명 가운데 천 개의 연꽃이 피어나고, 꽃잎마다 그 속에 부처님의 화신이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앉으시어 신비한 주문[楞嚴呪]를 설하시었다.
그리고 부처님이 문수사리보살에게 ‘이 주문을 가지고 가서 아난을 구해오라’고
명령하시니 이리하여 악주(惡呪)가 소멸하고, 문수보살은 아난과 마등가녀를 데리
고 부처님 앞으로 돌아왔다.
6) 阿難反省
阿難見佛하고 頂禮悲泣하야 恨無始來一向多聞하고 未全道力이라하고
아난이 부처님을 뵈옵고 이마를 부처님의 발에 대어 슬피 울면서 ‘시작이 없는 옛
날부터 한결같이 다문(多聞)만 했지 도력(道力)을 온전하게 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한탄하였다.
7) 因求今法
殷勤啓請十方如來 得成菩提의 妙奢摩他 三摩 禪那 最初方便터라
그리고 시방의 여래께서 깨달음을 이루시었던 그 묘하고도 근원적인 사마타
(奢摩他)와 삼마(三摩) 그리고 선나(禪那)의 바른 수행방법[最初方便]에 대
해서 간절하게 여쭙고 청하였다.
8) 時衆樂聞
於時復有恒沙菩薩及諸十方의 大阿羅漢辟支佛等이 俱願樂聞코저 退坐黙然
하야 承愛聖旨하라
그 때 다시 항하(恒河)의 모래수 와 같이 많은 보살과 시방의 훌륭한 아라한
(阿羅漢)과 벽지불(辟支佛) 등도 함께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려고 자리를 정하고
물러나 앉아 묵묵히 성인(聖人)의 뜻을 기다리고 있었다.
正宗分》〈見道分〉
1. 決擇眞妄以爲密因 1) 明心見失眞沈妄 ⑴ 顯大要因愛染起
佛告阿難汝我同氣라 情均天倫하니 當初發心하야 於我法中見何勝相이완대
頓捨世間深重恩愛오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시었다. “너와 나는 사촌[同氣]이지만 우리의 정리로
보면 친형제[天倫]와 같다. 네가 처음 발심하였을 때 나의 법 가운데에서 무슨
수승한 모습을 보았기에 그렇게도 갑자기 속세[世間]의 그 깊고 무거운 사랑과
은혜를 모두 버릴 수 있었더냐?”
阿難白佛我見如來三十二相이 勝妙殊絶하야 形體映徹호미 猶如瑠璃하고
常自思惟호대 此相非是欲愛所生이니 何以故欲氣麤濁腥臊交遘하고 膿血
雜亂하야 不能發生勝淨妙明紫金光聚와 是以渴仰投佛剃落이니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여래의 삼십이상(三十二相)이 수승하고 절묘
하며, 그 몸의 비치고 사무침이 마치 유리와 같음을 보고 항상 ‘이러한 수승한 모
습은 욕애(欲愛)로 인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욕애의 기운은 추하고 탁
하며 비릿한 것으로, 고름과 피가 섞여 있어서 한없이 깨끗하고 묘하게 밝은[勝
淨妙明] 자금색의 광명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렇게 생각한
까닭으로 목마르게 부처님을 우러러 사모하고 끝내는 부처님 앞에 출가하게 되
었습니다.”
佛言善哉阿難이여 汝等當知하라 一切衆生無始以來生死相續은 皆由不知常
住眞心性淨明體하고 用諸妄想이니 此想不眞故有輪轉이니라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착하구나. 아난이여! 너희들은 응당 ‘일체 중생이 시작
없는 옛날부터 나고 죽음을 계속하는 것은 다 항상한 참마음[常住眞心]의 청정
하고 밝은 그 본성의 체[性淨明體]를 알지 못하고, 가지가지 망상(妄想)을 사용
하는 까닭이니 이 망상이 본래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생사에 윤회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⑵ 明徒妄因于心目 ① 徵顯妄本
汝今欲硏無上菩提하야 眞發明性인댄 應當直心酬我所問하라 十方如來同一
道故로出離生死호대 皆以直心이니 心言直故如是乃至 終始地位히 中間永無
諸委曲相이니라
그대가 이제 위없는 깨달음을 참구하여 그 진성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응당 순수
한 마음[直心]으로 내가 묻는 것에 대답하라. 시방의 여래께서 한결같이 동일한
방법[一道]으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셨으니 모두가 이 순수한 마음이었다.
마음과 말이 곧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중간에도 전혀 구부러진 모습은 없었
느니라.”
阿難我今問汝리라 當汝發心緣於如來三十二相인댄 將何所見이며 誰爲愛樂
고 阿難白佛言世尊如是愛樂用我心目이니다 由目觀見如來勝相하고 心生愛樂
하야 故我發心願捨生死이니다
아난아! 내가 지금 너에게 묻는다. “너의 발심이 ‘여래의 삼십이상을 말미암았다’
고 했는데 무엇으로 보고 무엇으로 사랑하고 좋아하였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어! 제가 이와 같이 부처님을 사랑하고 좋
아하였던 것은 저의 마음과 눈이었습니다. 눈으로 여래의 수승한 모습을 보고 마음
으로 좋아하였기 때문에 저는 발심하여 생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 破 ㈀ 引事辯定
佛告阿難하사대 汝今現生如來講堂하야 觀祇陀林하니 今何所在오 世尊此
大重閣淸淨講堂은 在給孤園하고 今祇陀林實在堂外니이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여래가 설법하는 강당에 앉아서
지타림(祇陀林)을 보았을 것이니 그 지타림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세존이시어! 층층 누각[大重閣]의 청정한 강당은 급고독원(給孤獨園) 안에
있고, 지타림은 강당 밖에 있습니다.
阿難汝今堂中에 先何所見고 世尊我在堂中하야 先見如來하고 次觀大衆하며
如是外望하야 方矚林園이니다
“아난아! 네가 지금 이 강당 안에서 먼저 무엇을 보게 되느냐?”
“세존이시어! 저는 지금 이 강당 안에서 먼저 여래를 보고, 다음에 대중을 보며
이와 같이 밖으로 바라보면 마침내 지타림과 급고독원을 보게 됩니다.”
阿難汝矚林園인댄 因何有見고 世尊此大講堂이 戶牖開豁할새 故我在堂하야
得遠瞻見하노이다
“아난아! 네가 지타림과 급고독원을 보았다면 무엇으로 인하여 보게 되느냐?”
“세존이시어! 이 대강당의 문과 창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에 제가 강당에 앉아
서 멀리 볼 수가 있습니다.”
㈁正破非內 ㉠ 發令諦聽
爾時世尊在大衆中하야 舒金色臂하사 摩阿難頂하시고 告示阿難及大衆하사대
有三摩提하니 名大佛頂首楞嚴王이라 具足萬行하야 十方如來一文楚出하는
妙莊嚴路이니 汝今諦聽하라 阿難頂禮하고 伏受慈旨하라
그 때 부처님은 대중 가운데에서 금빛의 팔을 펴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고,
아난과 여러 대중에게 말씀하시었다.
“여기에 삼마제(三摩提)가 있으니 이름이 대불정수능엄왕(大佛頂首楞嚴王)
이다. 만행을 구족하였고, 시방의 여래가 오직 이 하나의 문을 통해서 생사를
벗어나게 되나니 이것이 묘장엄로(妙莊嚴路)이다. 너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아난이 이마를 부처님 발에 대고 엎드리며 부처님의 자비하신 뜻을 받들고자
하였다.
㉡ 躡前推破
佛告阿難 如汝所言하라 身在講堂하고 戶牖開豁할새 遠矚林園하니 亦有衆生
在此堂中하야 不見如來하고 見堂外者아 阿難答言호되 世尊在堂 不見如來하
고 能見林泉함은 無有是處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말한 바와 같이 ‘몸은 강당에 있고, 활짝
열린 문과 창으로 멀리 지타림과 급고독원을 본다’했으니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강당 안에 있으면서 여래는 보지 않고 강당 밖의 것만 볼 수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어! 이 강당 안에 있으면서 여래는 보지 않고 숲
과 샘만을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阿難汝亦如是하야 汝之心靈이 一切明了이니와 若汝現前所明了心이 實在
身內인댄 爾時先合了知內身어늘 頗有衆生先見身中하고 後觀外物가
“아난아! 너 또한 그와 같아서 너의 신령스런 마음이 일체를 밝게 알거니와 만약
눈앞에 명료하게 아는 그 마음이 정말 몸 안에 있다면 그 때 응당 먼저 몸 안을 알
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중생이 먼저 몸속을 보고, 나중에 밖의 것을 보는 이
가 있더냐?
縱不能見 心肝脾胃라도 爪生髮長과 筋轉脈搖함은 誠合明了어늘 如何不知오
必不內知호대 云何知外리요
비록 손톱이 생기고 머리털이 자라며 근육이 움직이고 맥박이 뛰는 것은 알지 못
한다 하더라도 오장(五臟)과 육부(六腑)를 반드시 먼저 밝게 알아야 할 것이거늘
어찌 하여 알지 못하는가? 이와 같이 안을 알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밖의 것만 잘
아느냐?
是故應知하라 汝言覺了能知之心이 住在身內함은 無有是處니라
그러므로 네가 말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속에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在外 ㉮ 徵
阿難稽首而白佛言호대 我聞如來如是法音하고 悟知我心實居身外이니다
所以者何譬如燈光然於室中하면 是燈必能先照室內하고 從其室門後及庭
際인달하야 一切衆生不見身中하고 獨見身外호미 亦如燈光居在室外하야
不能照室하니 是義必明하야 將無所惑하야 同佛了義하니 得無妄耶잇가
아난이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여래의 이와 같은 법음
(法音)을 듣고, 이제 저의 마음이 몸 밖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마치
방 안에서 등불을 밝히었을 때, 이 등이 반드시 먼저 방안을 비추고, 문을 통하
여 나중에 뜰에 이르게 되는 것처럼, 일체 중생이 몸 안은 보지 못하면서 유독
몸 밖의 것만 보는 것은 마치 등불의 광명이 집 밖에 있어서 안을 비추지 못하
는 것과 같습니다. 이 뜻이 반드시 분명하여 미혹됨이 없고, 부처님의 참다운
뜻과 같아서 잘못됨이 없는지요?”
㉯ 破 ㉠ 引喩辯定
佛告阿難是諸比丘가 適來從我하야 室羅筏城循乞摶食하고 歸祗陀林한대
我已宿齋어니와 汝觀比丘컨대 一人食時諸人飽不아 阿難答言不也世尊이
시여 何以故是諸比丘誰阿羅漢이나 軀命不同어늘 云何一人能今衆飽리요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 모인 여러 비구들이 지금 나를 따라
실라벌성(室羅筏城)에서 차례차례 음식을 얻어 지타림에 돌아왔다. 그런데
나는 이미 공양[齋]을 마쳤거니와 너희 비구들을 보아라. 한 사람이 음식을
먹었을 때 많은 사람의 배가 불러지더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
니다. 세존이시어! 왜냐하면 이 모든 비구들이 비록 아라한들이라고 하나 몸
과 목숨이 각각 다르거늘, 어떻게 한 사람이 음식을 먹었을 때 여러 사람의
배가 불러질 수 있겠습니까?”
㉡ 正破非外
佛告阿難 若汝覺了之心이 實在身外인댄 身心相外하야 自不相干이라
卽心所知를 身不能覺하니 覺在身際에 心不能知하리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너의 깨닫고 알고 보는 마음이 정말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이 서로 달라[相外] 관계가 없을 것이다. 즉 마음이 아는
것을 몸이 깨닫지 못하고, 깨달음이 몸에 있을 때 마음은 알지 못할 것이다.
我今示汝兜羅綿手하니 汝眼見時心分別不아 阿難答言如是世尊이시여佛告
阿難하사대 若相知者인댄 云何在外리요
내가 지금 너에게 도라면(兜羅綿)같은 손을 보였으니 너의 눈이 볼 때에 너의
마음도 따라 분별하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어!” 부처님이 아난에게 다시 말씀
하셨다. “만약 그와 같이 서로 아는 것이라면 어떻게 밖에 있다고 할 수 있겠느
냐?
是故應知하라 汝言覺了能知之心이 住在身外함은 無有是處니라
그러므로 네가 말한 ‘깨닫고 아는 마음이 몸밖에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
는 일이다.”
㈐ 潛根 ㉮ 徵
阿難白佛言世尊如佛所言하사 不見內故로 不居身外하고 身心相知하야
不相離故로 不在身外하니 我今思惟호대 知在一處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안을 보지 못하니 ‘몸안에 있다’고도 할 수 없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알아서
서로 여의지 아니하니 ‘몸밖에 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지금 생각해
보니 마음이 어느 한 곳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佛言處今何在오 阿難言此了知心이 旣不知內코도 而能見外하니 如我思忖
컨대 潛伏根裡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 곳이 어디냐?”
아난이 말하였다.“이렇게 밝게 아는 마음이 이미 안을 알지 못하면서도 밖에
것을 잘 보니 제 생각 같아서는 눈[根] 밑에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猶如有人이 取瑠璃椀하야 合其兩眼인댄 誰有物合이나 而不留礙인달하야
彼根隨見하야 髓卽分別하니 然覺了能知之心이 不見內者는 爲在根故요
分明矚外호대 無障礙者는 潛根內故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유리로 된 주발을 취하여 두 눈에 붙인다면 비록 다른 물건
을 눈에다 합하였으나 전혀 장애됨이 없는 것 처럼, 눈이 보는대로 마음이 따라
곧 분별[隨卽分別]합니다. 그러니 저의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안을 보지 못
하는 것은 눈[根]에 있기 때문이요, 분명하게 밖의 것을 보는데 장애가 없는 것
도 역시 눈 밑[根內]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 破
佛告阿難 如汝所言하야 潛根內者호미 猶如瑠璃인댄 彼人當以瑠璃籠眼이라
當見山河함에 見瑠璃不아 如是世尊이시여 是人當以瑠璃籠眼할새 實見瑠璃
니다 佛告阿難 汝心若同瑠璃合者인댄 當見山河에 何不見고 若見眼者인댄
眼卽同境하야 不得成隨라며 若不能見인댄 云何說言此了知心이 潛在根內如
瑠璃合이리요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말한 바와 같이 눈 밑에 숨어 있는 것이
마치 유리를 댄 것과 같다면 그 사람이 유리로 눈을 덮었으니 응당 산과 강을 볼
때에 먼저 유리를 보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어! 이 사람이 응당 유리로
눈을 덮었기 때문에 먼저 유리를 보겠습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마음이 눈 밑에 있는 것이 만약 유리를 댄
것과 같다면 응당 산하(山河)를 볼 때에 어찌하여 먼저 눈을 보지 못하느냐? 만약
눈을 본다면 눈이 곧 경계가 되어버렸으니 그대가 앞에서 말한 ‘눈이 보는 대로
마음이 따라 곧 분별 한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고, 만약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알고
보는 마음이 눈 밑에 숨어 있어 마치 유리를 댄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느냐?
是故應知 如言覺了能知之心이 潛伏根裡호미 如瑠璃合無有是處니라
그러므로 네가 말 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눈 밑에 숨어 있어 마치 유리를 댄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藏暗 ㉮ 徵
阿難白佛言호대 世尊我今又作如是思惟호니다 是衆生身이 腑藏在中하고 竅血居
外하니 有藏則暗하고 有竅則明이라 今我對佛하야 開眼見明함은 名爲見外요 閉
眼見暗은 名爲根內이니 是義云何닛고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어! 저는 지금 또 이와 같이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들 모든 중생들의 몸이 누구나 장부(臟腑)는 몸속에 있고, 눈 코 귀 등 구멍[竅]은
밖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장부에 있으면 어둡게 보이고, 눈이나 코 등에 있으면 밝
게 압니다. 제가 지금 부처님과 마주 하였으니 ‘눈을 뜨고 밝은 것을 보는 것으로 밖을
본다[外對]하고, 눈을 감고 어두운 것을 보는 것으로 안을 본다[內對]’고 주장하고 싶
은데 이 뜻이 어떻겠습니까?”
㉯ 破 ㈀ 約外見
佛告阿難하사대 汝當閉眼하야 見暗之時에 此暗境界爲與眼對아 爲不眼對가 若與
根對暗在眼前인댄 云何成內이며 若成內者인댄 居暗室中에 無日月燈함에 此室暗
中이 皆汝焦腑이며 若不對者인댄 云何成見이리요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응당 눈을 감고 어두운 것을 볼 때에 이것으로
‘뱃속을 본다’하니 그 어두운 경계(境界,뱃속)가 눈앞에[對] 있더냐, 눈앞에 없더냐?
만약 눈과 상대하여 어두움이 눈앞에 있다면 어떻게 안을 보았다고 말 할 수 있겠느
냐? 만약 억지로 눈앞에 어두움을 보는 것으로 안[뱃속]을 보는 것이라 한다면 어두
운 방[暗室]에 앉아 해와 달 그리고 등불이 없어 눈앞이 온통 어두울 때, 이 방과 집이
그대로 너의 초부(焦腑,뱃속)라 해야 할 것이다. 또 만약 어두운 경계가 눈앞에 없다
면[不對] 어떻게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 若內對
若離外見하고 內對所成이라 合眼見暗으로 名爲身中인댄 開眼見明함에 何不見面
고 若不見面인댄 內對不成이니라
눈은 밖을 향하여 보는 것인데 만약 밖으로 보는 것을 떠나 안을 향하여 뱃속을 보는
것[內對]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눈을 감고 어두운 것을 보는 것으로써 ‘몸 안을 본다’고
한다면 이제 눈을 뜨고 밝은 것을 볼 때에 어찌하여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느냐?
만약 눈을 뜨고 밝은 것을 볼 때에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눈을 감고 어두운 것을 볼 때
에 안을 본다는 논리는 세울 수 없는 것이다.
㈂ 從破
見面若成인댄 此了知心與眼根이 乃在虛空어늘 何成在內리오 若在虛空하면 自非
汝體이니 今見汝面亦是汝身이라 汝眼已知라도 身合非覺어늘 必汝執言호대 神眼
兩覺하면 應有二知하야 卽汝一身應成兩佛하리라
또 설사 너의 얼굴을 본다 해도 그렇다면 너의 아는 마음과 눈이 허공에 있는 격이거늘
어떻게 안에 있다 하겠느냐? 만약 마음과 눈이 몸을 떠나 허공에 있다면 저절로 너의 몸
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기어이 이를 너의 몸이라 한다면) 응당 지금 여래가 너의 얼
굴을 보는 것도 역시 너의 몸이라 해야 할 것이다.
(또 눈과 마음이 너의 몸을 떠나 있으므로) 너의 눈과 마음은 이미 알고 보더라도 몸은
응당 알지 못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반드시 네가 고집하여 ‘몸도 알고 눈도 알아 둘
다 깨달음이 있다’고 한다면 응당 두 개의 앎이 있는 것이 되어 너의 한 몸에 두 부처를
이루는 모순에 빠질 것이다.
是故應知 汝言見暗으로 名見內者無有是處니라
그러므로 네가 말한 ‘어두움을 보는 것으로 안을 본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隨合 ㉮ 徵
阿難言我常聞佛開示四衆호대 由心生故種種法生하고 由法生故種種心生하시니
我今思惟호대 卽思惟體實我心性이라 隨所合處心卽隨有하니 亦非內外中間三處
니라
아난이 말하였다. “저는 항상 부처님께서 사부대중에게 열어 보여주시기를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가지가지 법(法)이 생기고, 법이 있기 때문에 가지가지 마음이 생긴
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의 사유 그 자체가 참으로 우리의 심성(心性)이므로, 합하는
곳을 따라 마음도 있는 것이지, 안이나 밖에 혹은 중간에 마음이 따로 있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
㉯ 破 ㈀ 牒前起難
佛告阿難汝今說言호대 由法生故種種心生호대 隨所合處하야 心隨有者라하니 是
心無體卽無所合이요 若無有體而能合者인댄 則十九界因七塵合이니 是義不然하
니라 若有體者인댄 如汝以手自挃其體에 汝所知心爲復內出가 爲從外入가 若復
內出인댄 還見身中이요 若從外來先合見面이니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말하기를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가지
가지 법(法)이 생기고, 법이 있기 때문에 가지가지 마음이 생긴다’고 하면서 ‘합하는
곳을 따라 마음도 있다’고 하니 그 사유하는 마음에 자체[體]가 없다면 곧 합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만약 억지로 체는 없지만 합할 수 있다고 하면 십구계(十九界)가 칠진
(七塵)으로 인하여 이루어진다는 말과 같을 것이니 그 뜻이 옳지 않다.
만약 자체가 있다면 네가 손으로 몸의 어느 부분을 찌를 때, 너의 아는 바 마음이 안
에서 나오느냐, 밖에서 나오느냐? 만약 안에서 나온다면 먼저 몸속을 보아야 할 것이
요, 만약 밖에서 들어온다면 들어올 때 먼저 얼굴을 보아야 할 것이다.”
阿難言見是其眼이요 心知非眼이니 爲見非義니이다
아난이 말하였다. “보는 것은 눈이요, 마음은 알기만 하는 것이니 반드시 보아야 한다
고 하심은 옳지 않습니다.”
佛言若眼能見이면 汝在室中하야 門能見不아 則諸已死도 尙有眼存할새 應皆見物
이며 若見物者云何名死리요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만약 눈이 능히 본다면 네가 방 안에 있을 때에 문이 능히 보느
냐? 또 이미 죽은 사람도 그 시체가 아직 식기 전에 눈이 있으니 응당 볼 수 있어야 하
며, 만약 본다면 어떻게 죽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 詳辯隨合
阿難又汝覺了能知之心이 若必有體인댄 爲復一體아 爲有多體아 今在汝身하야
爲復徧體아
아난아! 너의 느끼고 알고 하는 마음이 반드시 체(體)가 있다면 그 체가 하나냐, 여럿
이냐? 지금 너의 몸에 있어서 온 몸에 두루한 것이냐, 두루하지 않는 것이냐?
若一體者인댄 卽汝以手로 挃一支時에 四支應覺할새 若咸覺者인댄 挃應無在로
若挃有所인댄 則汝一體가 自不能成하리라
만약 하나의 체라면 네가 손으로 한쪽 팔을 찌를 때에 사지(四肢)가 응당 모두 아픔
을 깨달아야 할 것이며, 만약 한 곳을 찔렀는데 사지가 다 깨달아 아프다면 찌르는 곳
[所在]이 응당 따로 없어야 할 것이요, 사지가 다 깨달아 아픈데도 만약 ‘찌르는 곳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너의 하나의 체[一體]라는 말은 저절로 성립되지 못할 것이다.
若多體者인댄 則成多人이니 何體爲汝아 若徧體者인댄 同前所挃이요
만약 다체(多體)라면 다인(多人)을 이룰 것이니 어느 것으로 자기를 삼을 것인가?
만약 체(體)가 온 몸에 두루 퍼져 있다면 앞에서와 같이 찌르는 곳은 하나일지라도
아프기는 응당 사지(四肢)가 다 아파야 할 것이다.
若不徧者인댄 當汝觸頭亦觸其足하면 頭有所覺足應無知어늘 今汝不然하니
만약 체가 온 몸에 두루한 것이 아니라면 머리가 부딪치고 또한 발도 다쳤을 때에
머리는 아파도 발은 몰라야 하거늘, 지금 우리는 그렇지 아니하니
是故應知隨所合處하야 心則隨有함은 無有是處니라
그러므로 네가 말 한 ‘합하는 곳을 따라 마음도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다.”
㈓ 中問 ㉮ 徵
阿難白佛言호대 世尊我亦 聞佛與文殊等諸法王子와 談實相時에 世尊亦言
하사대 心不在內하며 亦不在外니다 如我思惟함에 內無所見하고 外不相知하니
內無知故로 在內不成하고 身心相知하니 在外非義라 今相知故로 復內無見하니
當在中間이니다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 문수 등 여러 법왕자와 함께 실상(實相)을
말씀하실 때에 ‘마음은 안에도 있지 않고 또한 밖에도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볼 때에 ‘몸속에 있다’고 하자니 안을 보지 못하고, ‘밖에 있다’고
하자니 서로 알지 못해야 하는데 지금 서로 잘 압니다.
안으로 아는 바가 없으므로 ‘안에 있다’고 할 수도 없고, 몸과 마음이 서로 잘 아니
‘밖에 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서로 잘 알고 있으면서 안으로는 보지 못하니
아마도 근진(根塵)의 중간에 있는 것 같습니다.”
㉯ 破 ㈀ 辯定中位
佛言汝言中間하니 中必不迷하야 非無所在리라 今汝推中하니 中何爲在오 爲復
在處아 爲當在身가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근진(根塵)의 중간이다’고 하니 중간이라고 하더라도
그 장소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네가 지금 너에게 묻는다. 그 중간이라 하는 것이 어
디를 가리키느냐? 처소(處所)가 따로 있느냐? 몸[身]에 있느냐?
若在身者인댄 在邊非中이요 在中同內니라
몸에 있다고 할 때, 갓[邊]이면 중간이 아닐 것이요, 중간에 있다면 이는 결국 앞에
서 말한 안에 있는 것[內在]과 같을 것이다.
若在處者인댄 爲有所表아 爲無所表아 無表同無하고 表則無定하니라 何以故오
如人以表로 表爲中時에 東看則西요 南觀成北인달하야 表體旣混하고 心應雜亂
하리라
만약 그 중간(中間)이라 하는 것이 바깥에 따로 있다면 그 지점이 뚜렷이 있어 표시
할 수가 있느냐, 표시할 수가 없느냐? 표시할 수가 없다면 아주 없는 것이요, 표시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어디라고 고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표시하여 중간을 삼았다 하더라도 보는 바에 따라서 동
(東)에서 보면 서(西)요, 남(南)에서 보면 북(北)을 이루는 것과 같으리니 표시 자
체가 혼란스럽고 마음도 응당 어지러울 것이다.”
阿難言我所說中은 非此二種하니 如世尊言하사대 眼色爲緣하야 生於眼識인달
하여 眼有分別하고 色塵無知어든 識生其中하니 則爲心在니다
아난이 말하였다. “제가 말씀드린 중간은 ‘몸 바깥에 있느냐, 몸 안에 있느냐’의 두
가지 뜻이 아니고, 부처님께서 ‘눈과 대상[色]이 인연이 되어서 안식(眼識)을 생한
다’고 하심과 같이 눈은 분별이 있고 색진(色塵)은 앎이 없으니 식(識)은 그[根塵]
중간에서 생기는 것이요, 바로 그곳이 마음이 있는 곳이라 여겨집니다.”
㈁ 正破非中
佛言汝心若在根塵之中인댄 此之心體가 爲復兼二아 爲不兼二아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마음이 근(根)과 진(塵)의 중간에 있다면 그 마음이
둘을 겸했느냐, 겸하지 아니했느냐?
若兼二者인댄 物體雜亂하리니 物非體知일새 成敵兩立어늘 云何爲中이리요
만약 마음이 근진(根塵)의 중간에 있어 이 둘을 겸했다면 사물과 마음이 서로 섞여
어지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사물은 마음과 같이 앎이 없어서 서로 적을 이루어 양립
할 것이니 어느 곳에 중(中)을 세우겠느냐?
兼二不成인댄 非知不知라 卽無體性이니 中何爲相이리요
만약 둘을 겸하지 아니했다면 지(知)도 부지(不知)도 아니어서 체성(體性) 그 자체
가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중간이 어떤 것이다’고 주장 할 수
있겠느냐?
是故應知 當在中間호미 無有是處니라
그러므로 네가 말 한 ‘마음이 근진의 중간에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無着 ㉮ 徵
阿難白佛言世尊我昔 見佛與大目連須菩提 富樓那舍利弗 四大弟子로 共轉法
輪하야 常言覺知分別心性이 旣不在內하고 亦不在外하며 不在中間하여 俱無
所在라하니 一切無著名之爲心이라 則我無著으로 名爲心不잇가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어! 저는 예전에 부처님께서 대목건련과
수보리와 부루나와 사리불 등 사대제자와 함께 법륜을 굴리실 때에 항상 ‘알고 분
별하는 심성(心性)이 이미 안에도 있지 않고, 또한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아니하여 어디에도 있는 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는 일
체에 집착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삼으신 것이니 저의 집착함이 없는 이것으로
마음을 삼으면 어떻겠습니까?”
㉯ 破
佛告阿難하사대 汝言覺知分別心性이 俱無在者라하니 世間虛空에 水陸飛行
하는 諸所物象名爲一切와 汝不在者는 爲在爲無아 無則同於龜毛兔角어늘 云
何不著이며 有不著者는 不可名爲니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알고 분별하는 심성(心性)이 어디에도 있
는 바가 없다’고 말하니 세간과 허공 가운데 물에 있거나 육지에 있거나 날아다니
는 등, 모든 물상(物象)을 온갖 것[一切]이라 부른다.
네가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대상이 있는데 다만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대상이 없는데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대상이 없는데도 집착 운운(云云) 하는 것은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은데 어떻게 집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며, ‘대상이 있다’고 분별하면서 ‘집착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이미 집착한 것이니 ‘집착이 없다’고 부를 수 없다.
無相則無요 非無則相이라 相有則在이니 云何無著이리요
대상이 없으면 아주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아니라면 곧 대상이 있는 것이니 대상이 있는 줄 알았다면 곧 마음이 있는 것이다. 어찌 집착이 없다[無着]고 할 수 있겠느냐?
是故應知 一切無著名覺知心이라함은 無有是處니라
그러므로 네가 말한 ‘일체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마음이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 正決擇 眞心眞見 ⑴ 擇眞心 ① 阿難哀請
爾時阿難在大衆中이라가 卽從座起偏袒右肩하고 右膝着地合掌恭敬하야 而白佛言호대 我是如來最小之弟로 蒙佛慈愛하사 誰今出家猶恃憍憐하야 所以多聞未得無漏할새 不能折伏娑毘羅呪하고 爲彼所轉하야 溺於淫舍호니 當由不知眞際所詣니이다
그때 아난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쪽 무릎을 땅에 대어 합장하고 공경히 예(禮)를 표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여래의 가장 어린 동생으로, 부처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입어 비록 지금에 출가하였으나 오히려 어여삐 여기심만 믿고 다문(多聞)만 좋아하여 아직도 번뇌의 소멸[無漏]를 얻지 못했기에 사비가라(娑毗迦羅)의 주문을 절복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에 홀리어 음사(淫舍)에 빠졌으니 참다운 진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唯願世尊大慈哀愍하사 開示我等에 奢摩他路하사 令諸闡提隳彌戾車하소서 作是語已五體投地하사 及諸大衆으로 傾渴翹佇하야 欽聞示誨하더라
원컨대 세존께서는 대자비로 불쌍히 여기시어 저희들에게 사마타(奢摩他)의 길을 열어 보이시고, 저희들의 어리석은 자[闡提]들이 추악한 소견[彌戾車]을 깨뜨릴 수 있게 해 주소서!”
이 말을 마치고 오체투지(五體投地)하고, 여러 대중과 더불어 정성을 다해 목말라 하면서 공경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하였다.
② 世尊答示 ㊀ 光瑞開發
爾時世尊從其面門으로 放種種光하니 其光晃耀如百千日하며 普佛世界六種震動하고 如是十方微塵國土一時開現커늘 佛之威神이 令諸世界合成一界라 其世界中所有一切諸大菩薩이 皆住本國合掌承聽하니라
그 때 세존께서 면문(面門)으로부터 가지가지 광명을 놓으시니 그 빛이 찬란하여 마치 백천의 해와 같았으며 모든 부처님의 세계가 육종으로 진동하고 이와 같이 시방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국토가 일시에 다 나타났으며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여러 세계를 합하여 하나의 세계로 합쳐졌다.
이리하여 그 세계에 있는 모든 보살들이 다 본국에 머물면서 합장하고 받들어 공경하며 듣고 있었다.
㊁ 總示所迷
佛告阿難하사대 一切衆生從無始來로 種種顚倒하야 業種自然如惡叉聚라 諸修行人이 不能得成無上菩提하고 乃至別成聲聞緣覺하며 及成外道와 諸天魔王眷屬함은 皆由不知二種根本하고 錯亂修習이니 猶如煮沙하야 欲成嘉饌인달하야 縱經塵劫이라도 終不能得하리라 云何二種고 阿難一者無始生死根本이니 則汝今者에 與諸衆生으로 用攀緣心하야 爲自性者요 二者無始菩提涅槃의 元淸淨體이니 則汝今者에 識情元明이 能生諸緣어든 緣所遺者라 由諸衆生이 遺此本明일새 雖終日行하야도 而不自覺하야 枉入諸趣하니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일체의 중생들이 시작이 없는 옛날부터 가지가지로 전도(顚倒)되어 업의 종자[業種]가 모여 있는 것이 마치 덩어리[惡叉聚]와 같다.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이 최상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더 나아가 달리 성문이나 연각 및 외도나 여러 천마(天馬) 그리고 마구니의 권속이 되는 것은 모두 이 두 가지 근본[二種根本]을 알지 못하고 어지럽게 살아온 까닭이다.
이는 마치 모래를 삶아 좋은 음식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서 비록 티끌 수와 같은 수많은 세월이 지나간다 하더라도 마침내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이 그 두 가지 근본이냐? 아난아! 첫째는 시작이 없는 옛날부터의 태어나고 죽는 생사의 근본이니 즉 너와 지금의 여러 중생들의 대상에 끌려가는 마음[攀緣心]으로 자성을 삼는 까닭이요, 둘째는 시작이 없는 옛날부터 깨달음이며 열반인 원래로 청정한 자체이니 지금 너의 식정(識情)의 원래로 밝은 성품이 가지가지 반연(攀緣)하는 마음을 내었거늘, 이러한 반연된 것을 도리어 자기의 마음으로 잘못 알아 진성(眞性)을 유실한 까닭이다.
모든 중생들이 이러한 본래로 밝은 진성을 유실했기 때문에 비록 종일토록 사용[行]하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그릇 미혹의 세계[諸趣]에 들어가는 것이다.
㊂ 正與決擇 ㈎ 擧拳發問
阿難汝今欲知奢摩他路하야 願出生死라하니 今復問汝하고 卽時如來가 擧金色臂하사 屈五輪指하시고 語阿難하사대 汝今見不아 阿難言見이니다
“아난아! 네가 지금 ‘사마타(奢摩他)의 길을 알아 생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하니 내가 지금 너에게 다시 물으리라”하시고, 그 때 여래께서 금빛의 팔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구부려서 아난에게 보이시며 물으셨다. “너는 지금 보았느냐?” 아난이 말하기를 “보았습니다.”
佛言汝何所見고 阿難言我見如來擧臂屈指하사 爲光明拳하야 耀我心目이니다 佛言汝將誰見고 阿難言我與大衆은 同將眼見이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저는 여래께서 팔을 들고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光明拳]을 만들어 저의 마음과 눈[心目]에 비추임을 보았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럼 무엇을 가지고 보았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저와 대중은 모두 눈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佛告阿難汝今答我호대 如來屈指爲光明拳하야 耀汝心目하니 汝目可見이니와 以何爲心當我拳耀오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나에게 ‘여래가 손가락을 구부려 광명권을 만들어 너의 마음과 눈에 비춘다’고 대답했는데 너의 눈은 가히 본다고 할 수 있거니와 너는 무엇으로 마음을 삼기에 나의 광명권이 비추임을 아느냐?”
㈏ 循妄以答
阿難言如來現今에 徵心所在일새 而我以心推窮尋逐이니 卽能推者我將爲心호리다
아난이 말하였다. “여래께서 지금 마음의 소재를 물으시니 제가 마음으로 추궁하고 헤아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추측하고 헤아리는 것을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 蒙叱驚愕
佛言咄阿難아 此非汝心이라 阿難矍然避座合掌起立白佛호대 此非我心인댄 當名何等이닛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돌(咄, 아니다) 아난아! 그것은 너의 마음이 아니다!” 아난이 깜짝 놀라[矍然] 자리를 고쳐 앉았다가 합장하고 일어나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것이 저의 마음이 아니라면 응당 무엇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 斥示非眞
佛告阿難하사대 此是前塵虛妄相想이라 惑汝眞性이니 由汝無始至于今生히 認賊爲子失汝元常할새 故受輪轉이니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다 눈 앞의 대상[前塵]에 의해 생겨난 허망한 망상이기에 다만 너의 진성(眞性)을 미혹하게 할 뿐이다.
네가 시작이 없는 옛날로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도적을 오인하여 아들을 삼고, 너의 원래로 항상한 것을 잃어버렸기에 그러므로 윤회를 받게 되느니라.”
㈒ 阿難罔措
阿難白佛言호대 世尊我佛寵弟라 心愛佛故令我出家호니 我心何獨供養如來리잇고 乃至徧歷恒沙國土하야 承事諸佛及善知識하며 發大勇猛하야 行諸一切難行法事皆用此心이며 縱令謗法永退善根하야도 逆因此心이니 若此發明不是心者인댄 我乃無心同諸土木하야 離此覺知更無所有리니 云何如來說非我心이잇고 我實驚怖兼此大衆無不疑惑하니 唯垂大悲開示未悟하소서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어! 저는 부처님의 사랑하는 동생으로, 저의 이 마음이 부처님을 사랑했기에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음이 어찌 유독 여래만을 공양했겠습니까? 더 나아가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국토를 두루 다니면서 여러 부처님과 선지식을 받들어 섬기며, 대용맹심을 발하여 일체의 어려운 수행을 행하는 것도 또한 이 마음입니다.
비록 법(法)을 비방하고 선근(善根)에서 영원히 물러난다 하더라도 또한 이 마음입니다. 만약 이것을 가리켜 마음이 아니라고 하신다면 저는 곧 마음이 없어서 저 들판의 흙이나 나무와 같을 것이며, 이렇게 알고 분별하는 것을 떠나서는 다시 마음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이를 ‘마음이 아니다’라고 하십니까? 저는 정말 놀랍고 두려우며, 아울러 여기 모인 대중들도 의아해 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원컨대 대자비를 드리우시어 아직 깨닫지 못한 저희들의 안목을 열어 주소서!”
㈓ 示有眞心
爾時世尊開示阿難及諸大衆하사 欲令心入無生法忍코자 於獅子座摩阿難頂而告之言하사대 如來常說호대 諸法所生唯心所現이며 一切因果世界微塵이 因心成體라호니 阿難若諸世界一切所有와 其中乃至草葉縷結이라도 詰其根元인댄 咸有體性이며 縱令虛空이라도 亦有名貌어든 何況淸淨妙淨明心은 性一切心어늘 而自無體리요
그때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깨우쳐서 그들의 마음이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들게 하려고 사자좌(獅子座)에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면서 말씀하셨다.
“여래는 항상 ‘모든 법(法)의 생기는 것이 오직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일체의 인과(因果)와 세계의 가지가지 현상이 다 마음으로 인하여 뼈대[體]를 이룬다’고 했다. 아난아! 만약 모든 세계의 가지가지 존재와 그 가운데 더 나아가 풀잎이나 실오라기 하나라도 그 근원을 찾아보면 다 체성(體性)이 있으며, 비록 허공일지라도 이름과 모양이 있는데 하물며 청정(淸淨)하고 묘정(妙淨)하며 밝은 참마음은 일체 마음의 본성이거늘, 어찌 스스로의 그 체(體)가 없겠느냐?”
㈔ 辯斥妄執
若汝執悋分別覺觀의 所了知性하야 必爲心者인댄 此心卽應離諸一切色香未觸의 諸塵事業코도 別有全性하리라
네가 만약 분별하고 각관(覺觀)하여 아는 성품을 고집하여 굳이 참마음이라고 한다면 이 마음이 응당 일체의 색향미촉(色香味觸) 등 가지가지 경계[諸塵事業]를 떠나서도 따로 온전한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
如汝今者承聽我法함도 此則因聲하야 而有分別이니 縱滅一切見聞覺知하고 內守幽閑도 猶爲法塵分別影事니라
네가 지금 나의 법을 듣는 것도 소리로 인하여 분별이 있으니 비록 일체의 견문각지(見聞覺知)를 소멸하고 안으로 고요함을 느끼더라도 그것이 사실은 법진(法塵)을 분별하는 허망한 그림자[分別影事]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我非勅汝하야 執爲非心이니 但汝於心에 微細揣摩하라 若離前塵하고 有分別性인댄 卽眞汝心어니와 若分別性離塵無體인댄 斯則前塵分別影事니라 塵非常住일새 若變滅時에 此心則同龜毛兔角하야 則汝法身이 同於斷滅어늘 其詰修證無生法忍하리요
내가 지금 너에게 너의 생각하는 것을 마음이 아니라고 억지로 우기려는 것이 아니다. 너는 한번 온 마음으로 내가 하는 말을 깊이 헤아려 보아라. 만약 앞의 대상[前塵]을 떠나서도 따로 분별하는 체성(體性)이 있다면 그 때는 그것을 진실한 너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분별하는 성품이 밖의 대상[塵]을 여의고 따로 그 체(體)가 없다면 그 마음은 곧 앞의 대상을 분별했던 하나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네가 지금 대상을 분별하여 아는 성품을 고집하여 참마음이라 하는데) 눈앞의 대상은 항상한 것이 아니기에 그것이 변하여 사라질 때 그 분별했던 그림자 마음은 마치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곧 너의 참마음[法身]도 아주 없어진다는 말이 되나니 누가 깨달음[無生法忍]을 닦고 성취하겠느냐?”
㈕ 阿難自失
卽時阿難 與諸大衆으로 黙然自失하니라
그 때 아난이 여러 대중과 함께 묵연히 무엇을 잃어버린 듯 부처님만 바라보고 있었다.
㈖ 詰成妄誤
佛告阿難世間一切諸修學人이 現前雖成九次第定코도 不得漏塵하야 成阿羅漢함은 皆由執此生死妄想하야 誤爲眞實이니 是故汝今雖得多聞이나 不成聖果니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의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이 눈 앞에서 비록 구차제정(九次第定)을 이루고도 번뇌가 없는 아라한이 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생사의 망상을 집착하여 그릇 진실을 삼기 때문이며, 네가 지금 비록 다문(多聞)은 했으나 성과(聖果)를 이루지 못했던 것도 그 까닭이다.”
⑵ 擇眞見 ① 阿難哀請 ㊀ 感慨前失
卽時阿難已重復悲淚하사 五體投地長跪合掌하고 而白佛言自我從佛發心出家하야 恃佛威神하고 常自思惟호대 無勞我修하야도 將謂如來惠我三昧라하고 不知身心本不相代하고 失我本心이니 雖身出家心不入道호미 譬如窮子捨父逃逝이니다
그때 아난이 이 말을 듣고 거듭 슬피 울면서 온 몸을 땅에 던져 장궤합장(長詭合掌)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부처님을 따라 발심하여 출가한 이래로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만 믿고 항상 ‘제가 애써 닦지 아니하여도 여래께서 삼매(三昧)를 얻게 해주실 것이다’고 생각했지, 몸과 마음이 본래 서로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여 그만 저의 본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비록 몸은 출가하였으나 마음이 아직 도(道)에 들지 못한 것이 마치 헐벗은 아들[窮子]이 아버지를 피하여 도망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今日乃知雖有多聞하야도 若不修與不聞等호미 如人說食終不能飽하니다
금일에야 비로소 비록 다문(多聞)했다 하더라도 만약 수행하지 아니하면 듣지 아니한 것과 같은 것이 마치 어떤 사람이 음식을 말하는 것으로는 마침내 배부를 수 없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㊁ 重請開示
世尊我等今者에 二障所纏은 良由不知寂常心性이니 唯願如來哀愍窮露하사 發妙明心하야 開我道眼하소서
세존이시어! 저희들이 지금 두 가지 장애에 얽매이게 된 것은 참으로 고요하고 항상한 심성(心性)을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원하옵니다. 여래께서는 헐벗은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묘명(妙明)한 마음을 드러내 저희들의 도안(道眼)을 열어주소서!”
② 世尊答示 ㊀ 光瑞開發
卽時如來 從胸卍字하사 涌出晃昱有百千色이라 十方微塵普佛世界에 一時周徧하야 遍灌十方所有寶刹의 諸如來頂이라가 旋至阿難及諸大衆하고
그때 여래께서 가슴의 만자(卍字)로부터 보배광명을 용출하시니 그 광명이 찬란하여 백천의 빛이 있고, 수많은 부처님의 세계에 일시에 두루하여 시방보찰(十方寶刹)의 모든 여래의 정수리에 비추었다가 돌아서 다시 아난과 여러 대중들에게 비추시었다.
㊁ 許從所請
故阿難言하사대 吾今爲汝하야 建大法幢하고 亦今十方一切衆生으로 獲妙微密性淨明心하야 得淸淨眼케호리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큰 법당을 세우고 또한 시방의 일체중생들에게 묘하고 미밀[妙微密]하며 청정하고 밝은 본성의 마음[性淨明心]을 얻게 하여 깨끗한 눈을 이루게 하리라.
㊂ 正與決擇 ㈎ 問答立義
阿難汝先答我호대 見光明拳이니 此拳光明因何所有며 云何成拳이며 汝將誰見고 阿難言由佛全體閻浮檀金이라 赩如寶山淸淨所生일새 故有光明이시니 我實眼觀하며 五輪指端을 屈握示人故有拳相이니다
아난아! 네가 앞에서 나에게 ‘빛나는 주먹을 보았다’고 대답했으니 그 주먹의 광명이 어떻게 해서 있으며, 어떻게 해서 주먹이 되었으며, 너는 무엇으로 보았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부처님의 몸은 전신이 염부단(閻浮檀)의 금(金)이기에 빛나기가 마치 보배의 산과 같고, 청정 속에서 생긴 것이기에 광명이 있습니다. 그 광명을 저희들은 정말 눈으로 보았으며, 다섯 손가락을 구부려 쥐어서 저희들에게 보이셨기에 주먹의 모양이 있게 된 것입니다.”
佛故阿難如來今日實言告汝호리라 諸有智者要以譬喩로 而得開悟니라 阿難譬如我拳이 若無我手하면 不成我拳이며 若無如眼이면 不成如見이라 以汝眼根으로 例我拳理컨댄 其義均不아 阿難言唯然世尊이시여 其無我眼이면 不成我見이니 例如來拳事義相類이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가 금일에 참으로 너에게 말하노라.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의 비유를 듣고 알게 될 것이다. 아난아! 예를 들어 나의 주먹은 손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것처럼, 너의 눈이 없다면 너의 본다는 것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치에서 너의 눈을 나의 주먹에 비교한다면 그 이치가 같겠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어! 만약 눈이 없으면 누구나 볼 수 없으니 저의 눈을 여래의 주먹에다 비교하면 그 이치가 서로 같겠습니다.”
㈏ 正擇眞見
佛故阿難 汝言相類라하나 是義不然이라 何以故如無手人은 拳畢境滅어니와 彼諸無眼者非見全無이니 所以者何 汝試於途에 詢問盲人호대 汝何所見고하면 彼諸盲人必來答汝호대 我今眼前唯見墨暗하고 更無他矚이리니 以是義觀컨대 前塵自暗이언정 見何虧損이리요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서로 같다고 말하였는데 그 뜻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만약 손이 없으면 주먹은 끝내 만들 수 없으나 눈이 없다고 하여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네가 한 번 저 길에 나아가 맹인들에게 ‘당신들은 무엇을 보느냐?’고 묻는다면 저 맹인들이 하나같이 너에게 ‘우리들은 지금 눈앞에 오직 어두움만 보이고, 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보더라도 눈앞의 대상[前塵]이 스스로 어두울지언정 보는 성품[見]이야 어찌 손상이 있겠느냐?”
阿難言諸盲眼前에 唯覩黑暗커니 云何成見이리요 佛告阿難 諸盲無眼하야 唯觀黑暗과 與有眼人이 處於暗室의 二黑有別가 爲無有別가 如是世尊이시여 此暗中人與彼群盲의 二黑校量컨대 曾無有異니이다
아난이 말하였다. “저 맹인들이 오직 어두운 것만 보는 것을 어떻게 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 맹인들이 눈이 멀어 오직 어두운 것을 보는 것과 눈이 밝은 사람이 깜깜한 암실에 있는 것과 이 두 가지 어두움이 서로 다르겠느냐, 다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어! 깜깜한 암실에 있는 사람이나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나 이 두 가지 어두움을 비교했을 때 조금도 다름이 없겠습니다.”
阿難若無眼人이 全見前黑이라가 忽得眼光하면 還於前塵에 見種種色을 名眼見者인댄 彼暗中人全見前黑이라가 忽獲燈光하면 亦於前塵에 見種種色을 應名燈見이니라
“아난아! 만약 눈이 어두운 맹인이 눈앞에 어두움만 보다가 어느 날 홀연히 눈을 뜨게 되어 눈앞에 가지가지 모양을 보게 되었을 때 이를 눈이 본다고 고집한다면 저 깜깜한 암실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다가 홀연히 등불이 들어와 눈앞에 모든 것을 보게 되었을 때 이를 등불이 본다고 해야 할 것이다.
若燈見者인댄 燈能有見이라 自不名燈이며 又則燈觀이니 何關汝事리오 是故當知이라 燈能顯色이언정 如是見者는 是眼非燈이며 眼能顯色이언정 如是見性是心非眼이니라
만약 등불이 보는 것이라면 등불이 이미 보는 성품이 있으니 보여 지는 등불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또 등불이 보는데 너하고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등불은 능히 모습[色]을 볼 수 있게 할지언정 이와 같이 보는 성품은 마음이지 눈이 아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阿難未諭
阿難雖復得聞是言하고 與諸大衆으로 口已黙然이나 心未開悟하야 猶冀如來慈音宣示하며 合掌淸心佇佛悲誨하니라
아난이 비록 이러한 말씀을 듣고 대중과 함께 입으로는 말이 없었으나 마음속으로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래께서 자비한 음성으로 다시 설명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맑은 마음으로 합장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 遺拂客塵 ㉮ 追問發起
爾時世尊 舒兜羅綿相光手하야 開五輪指하고 誨勅阿難及諸大衆하사대 我初成道하야 於毘園中에 爲阿若多五比丘等及汝四衆言호대 一切衆生이 不成菩提及阿羅漢은 皆由客塵煩惱所誤라호니 汝等當時因何開悟하야 今成聖果오
그 때 세존께서 도라면(兜羅綿) 같이 빛나고 그물 모양인 손을 들어 다섯손가락[五輪指]을 펴 보이시고, 아난과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 성도한 후 녹야원(鹿野園)에서 아야다(阿若多憍陳那) 등 다섯 비구와 너희들 사부대중에게 ‘일체의 중생들이 깨달음과 아라한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다 객진(客塵)의 번뇌 때문이다.’고 말했으니 너희들은 그 당시 무엇으로 인하여 깨닫고, 이제 성과(聖果)를 이루었느냐?”
㉯ 憍陳明義
時憍陳那起立白佛호대 我今長老於大衆에 獨得解名은 因悟客塵二字成果니다 世尊譬如行客이 投寄旅亭하야 或宿或食하며 食宿事畢하고 俶裝前途하야 不遑安住커든 若實主人인댄 自無攸往하니 如是思惟컨대 不住名客이요 住名主人이니 以不住者名爲客義이니다 又如新霽에 淸陽昇天하야 光入隙中하면 發明空中에 諸有塵相이니 塵質搖動하고 虛空寂然이라 如是思惟컨대 澄寂名空이요 搖動名塵이니 以搖動者名爲塵義하노이다 佛言如是니라
때에 교진여(憍陳那)가 일어나서 부처님께 사뢰어었다. “저는 지금 나이가 많지만 그래도 이 대중 가운데에서 유독 ‘알았다(解,阿若多)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손님[客]과 티끌[塵], 이 두 글자의 의미를 깨닫고 성과(聖果)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어! 마치 객지에 떠도는 방랑자가 여관[旅亭]에 의탁하여 숙식(宿食)하고 숙식이 끝나면 바로 행장을 정돈하여 여행길을 떠나기에 편안히 머물 겨를이 없지만 주인(主人)은 정말 나갈 필요가 없는 것처럼,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머물지 않은 것은 손님이요, 항상 머무는 것은 주인이니 머물지 않는 것으로 손님[客]의 뜻을 삼았습니다. 또 비가 개이고 하늘이 맑아져서 햇빛이 틈으로 들어오면 허공에 많은 티끌[塵]이 보이며, 이 때 티끌은 요동하고 허공은 고요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맑고 고요한 것은 허공(虛空)이요, 요동하는 것은 티끌이니 요동하는 것으로 티끌[塵]의 뜻을 삼았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와 같다.”
㉰ 釋尊是相 ㈀ 依境示麤
卽時如來於大衆中에 屈五輪指하사 屈已復開하고 開已又屈하시어 謂阿難言하사대 汝今何見고 阿難言 我見如來百寶輪掌을 衆中開合이니다 佛告阿難汝見我手를 衆中開合인댄 爲是我手에 有開有合가 爲復汝見有開有合가 阿難言世尊寶手를 衆中開合하시니 我見如來의 手自開合이언정 非我見性에는 有開有合이니다 佛言誰動誰靜고 阿難言佛手不住요 而我見性은 尙無有靜커니 誰爲無住잇고 佛言如是니라
그 때 바로 여래께서는 여러 대중들 앞에 다섯 손가락을 구부려, 구부렸다가는 다시 펴시고, 폈다가는 다시 구부리시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무엇을 보았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저는 여래께서 가지가지 보배로운 법륜(法輪)의 무늬가 새겨진 손바닥을 대중 앞에서 ‘폈다, 쥐었다’하심을 보았습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나의 손이 대중 앞에서 폈다 쥐었다함을 보았다’하니 그때 나의 손이 ‘펴졌다 쥐어졌다’하였느냐, 아니면 너의 보는 성품[見]이 ‘펴졌다 쥐어졌다’하였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보배로운 손을 대중 앞에서 ‘폈다 쥐었다’하시니 저희들이 여래의 손이 ‘펴졌다 쥐어졌다’함을 보았을지언정 저희들의 보는 성품에는 ‘펴졌다 쥐어졌다’함이 없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무엇이 움직이고 무엇이 고요했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부처님의 손은 머물지 못했으나 저희들의 보는 성품이야 오히려 ‘고요해졌다’할 것도 없는데 무슨 ‘머물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와 같다.”
㈁ 卽身示細
如來於是從輪掌中飛一寶光在阿難右하니 卽時阿難廻首右盼하고 又放一光在阿難左하신대 阿難又則廻首左盼이라 佛告阿難汝頭今日에 何因搖動고 阿難言我見如來가 出妙寶光하사 來我左右일새 故左右觀에 頭自搖動이니다 阿難汝盼佛光하야 左右動頭인댄 爲汝動頭가 爲復見動가 世尊我頭自動이언정 而我見性은 尙無有止하니 誰爲搖動이잇고 佛言如是하니라
여래께서 법륜(法輪)의 무늬가 새겨진 손바닥으로부터 하나의 보배광명을 날려 아난의 오른 쪽에 비추시니 즉시 아난이 머리를 돌려 오른쪽으로 돌아보고, 다시 하나의 광명을 놓아 아난의 왼쪽에 비추시니 아난이 다시 머리를 돌려 왼쪽으로 돌아보았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머리가 지금 무엇 때문에 요동하였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저는 여래께서 묘하고 보배로운 광명을 놓아 저의 좌우에 보내셨기에 좌우로 이를 보느라 저의 머리가 요동했습니다.” “아난아! 네가 ‘여래의 광명을 보려고 좌우로 머리를 움직였다’하니 너의 머리가 움직였느냐, 너의 견(見)이 움직였느냐?”
“세존이시어! 저의 머리가 스스로 움직였을지언정 저의 보는 성품이야 ‘움직였다 그쳤다’할 것이 없는데 무슨 ‘요동하였느냐?’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건 그렇다.”
㉱ 結責警衆
於時如來普告大衆하사대 若復衆生以搖動者로 名之爲塵하고 以不住者로 名之爲客하니 汝觀阿難의 頭自動搖언정 見無所動이며 又汝觀我의 手自開合이언정 見無舒卷커늘 云何汝今以動爲身하고 以動爲境하야 從始洎終히 念念生滅遺失眞性하고 顚倒行事하며 性心失眞하고 認物爲已하야 輪迴是中自取流轉고
다시 여래께서는 널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중생들은 요동하는 것으로 티끌[塵]을 삼고, 머물지 않는 것으로 손님[客]을 삼아야 한다. 너희들은 아난의 머리가 스스로 요동하였을지언정 보는 성품[見]은 요동이 없었음을 보았으며, 또 나의 손이 ‘펴졌다 쥐어졌다’했을지언정 보는 성품[見]은 ‘펴졌다 쥐어졌다’함이 없었음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그대들은 지금도 요동하는 것으로 자기의 몸을 삼고 요동하는 것으로 경계를 삼아,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생각에 끌려 다니면서, 진성(眞性)을 유실하고 전도(顚倒)되어 살고 있느냐? 더구나 참 마음[性心]의 진실함을 잃고, 밖의 사물을 오인하여 자기를 삼아 그 가운데 윤회하면서 스스로 고통[流轉]을 취하고 있느냐?”
大佛頂 如來密因 修證了義 諸菩薩萬行 首楞嚴經 제2권
2 發明覺性 直使造悟 1) 經家敍意 爾時阿難及諸大衆이 聞佛示誨하고 身心泰然하야 念無始來失却本心하고 妄認緣塵의 分別影事타가 今日開悟호미 如失乳兒忽遇慈母라호대 合掌禮佛하고 願聞如來顯出身心眞妄虛實과 現前生滅與不生滅二發明性하니라 그 때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몸과 마음이 크게 편안하여 “시작이 없는 옛날부터 본심을 잃고 허망하게 대상에 끌려[攀緣] 다니면서 생겼다 없어지는 분별의 그림자[分別影事]로 참 마음을 삼았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니 마치 젖을 잃었던 아이가 문득 어머니를 만난 것과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모두 합장하여 부처님께 예(禮)를 올리고, 여래께서 몸과 마음의 진(眞)·망(妄)·허(虛)·실(實)과 눈앞의 허망한 것[生滅]과 영원한 것[不生滅]등, 두 가지 성품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혀 주시기를 발원하였다. 2) 問答發明 ⑴ 卽身變異 明不生滅 ① 匿王請問 時波斯匿王起立白佛호대 我昔未承諸佛誨敕에 見迦旃延과 毘羅胝子호니 咸言此身死後斷滅을 名爲涅槃이니다 我雖値佛今猶狐擬하니 云何發揮라야 證知此心不生滅地리잇고 今 此大衆諸有漏者는 咸皆願聞이니다 그 때 파사익왕이 일어서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제가 지난 날 아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을 때에 가전연(迦旃延)과 비라저자(毘羅胝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몸이 죽은 뒤에 아무 것도 없는 것[斷滅]을 열반이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비록 부처님을 뵙게 되었으나 아직도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어떻게 하여야 불생불멸(不生不滅)의 경지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 대중 가운데 아직 번뇌를 여의지 못한 유루(有漏)들은 모두 듣기를 원합니다.” ②佛與發明 ㊀問答辨幻 佛告大王 汝身現在하니 今復問汝호리라 汝此肉身爲同金剛하야 常主不朽아 爲復變壞아 世尊我今此身은 終歸變滅이니다 부처님이 왕에게 말씀하셨다. “왕의 몸이 눈앞에 있으므로 지금 왕에게 묻겠습니다. 왕의 육신이 금강(金剛)과 같아서 항상 머물러 무너지지 않으리라 여기십니까, 아니면 언젠가는 변하여 없어지리라고 여기십니까?” “세존이시어! 저의 이 육신은 언젠가는 변멸(變滅)하여 없어질 것입니다.” 佛言大王 汝未曾滅어늘 云何知滅고 世尊이시어 我此無常變壞之身이 雖未曾滅이나 我觀現前에 念念遷謝하며 新新不住호미 如火成灰하야 漸漸銷殞하야 殞亡不息이라 決知此身當從滅盡이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왕이 아직 죽지 않았는데 어떻게 죽을 것을 아십니까?” “세존이시어! 저의 이 무상하게 변하는 몸이 비록 아직은 죽은 것이 아니지만 저의 눈 앞에서 생각마다 변해가고 새록새록 달라져서 마치 나무가 불에 타서 재가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점점 늙어가고 있으니 언젠가는 이몸이 소멸한다는 것을 압니다.” 佛言如是大王이시어 汝今生齢已從衰老호니 顔貌何如童子之時리오 世尊我昔孩孺에는 膚腠潤澤하고 年至長成血氣充滿더니 而今頹齡迫於衰耄하니 形色枯悴情神昏迷하고 髮白面皺하야 逮將不久커니 如何見成此充盛之時닛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왕이시어! 왕은 지금 이미 늙었는데, 지금 그 얼굴 모습이 동자(童子)일 때와 비교하여 어떠합니까?” “세존이시어! 제가 옛날 어렸을 때에는 피부와 살결이 윤택하였고, 점점 성장함에 따라 혈기가 충만하더니 이제는 나이 먹고 늙어서 형색은 초췌하고 정신은 혼미하며 머리털은 희어지고 얼굴은 쭈그러져서 오래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한창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佛言大王汝之形容이 應不頓朽리라 王言世尊變化密移를 我誠不覺이나 寒暑遷流하야 漸至於此니다 何以故我年二十에 雖號年少나 顔貌已老初十歲時요 三十之年又衰二十이며 于今六十又過于二라 觀五十時컨대 宛然强壯이라 世尊我見密移가 雖此殂落이나 其問流易且限十年이니와 若復今我로 微細思惟하면 其變寧唯一紀二紀리요 實爲年變이며 豈唯年變亦兼月化며 何直月化兼又日遷이며 沉思諦觀컨대 刹那刹那念念之間不得停住일새 故知我身終從變滅이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왕이시어! 왕의 얼굴이 갑자기 늙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왕이 말하기를 “세존이시어! 변화가 은밀하게 옮겨가니 제가 참으로 깨닫지 못했습니다만 추위와 더위가 옮겨 흘러가 점차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나이 스무 살 때에는 비록 젊었다고는 하나 얼굴은 이미 열 살 때보다는 늙었고, 서른 살 때에는 또한 스무 살 때보다는 늙었고, 지금 예순에 또 둘을 더하고 보니 쉰 살 때가 훨씬 더 건강하였습니다. 세존이시어! 제가 이렇게 은밀히 변하여 가는 것을 보고, 비록 이렇게 쇠락하는 세월을 십 년씩 한정하여 말씀드렸으나 다시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 변하여 가는 것이 어찌 십 년 이십 년이겠습니까? 실은 해마다 변한 것이며,어찌 해마다 변한 것이겠습니까? 또한 달마다 변한 것이며, 어찌 달마다 변하였겠습니까?또한 날마다 변한 것이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찰나 찰나와 생각 생각에도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몸이 마침내 변하여 없어질 줄을 알게됩니다.”
㊁ 卽幻明眞
佛告大王汝見變化遷改不停하고 悟知汝滅인댄 亦於滅時에 汝知身中有不滅耶아
波斯匿王合掌白佛호대 我實不知소이다 佛言我今示汝의 不生滅性호리라 大王汝
年畿時에 見恒河水오 王言我生三歲에 慈母攜我하고 謁耆婆天할새 經過此流호니
爾時卽知是恒河水호이다 佛言大王如汝所說하야 二十之時衰於十歲하며 乃至六十
히 日月歲時念念遷變어니와 則汝三歲에 見此河時와 年六十二라도 亦無有異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왕이시어! ‘변하여 머물지 않는 것을 보고 필경 죽어 없어질
것임을 알게 된다’고 하였는데 죽어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성품[不生滅性]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파사익왕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참으로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
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왕에게 나고 죽음이 없는 영원한 성품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왕이시어! 왕의 나이 몇 살 때에 항하(恒河)의 물을 보았습니까?”
왕이 말하기를 “저의 나이 세 살 되던 해에 어머니께서 저를 데리고 기바천(耆婆天)
에 참배하러 갈 때, 그 강을 건너갔습니다. 그 때 항하임을 알았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왕이시어! 왕의 말과 같이 스무 살 때에는 열 살 때보다 늙었
고, 더 나아가서 예순이 되기까지 해마다 · 달마다 · 날마다 · 시간마다 · 생각 생각마다
변천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왕이 세 살 때에 이 항하를 보았을 때와 나이 열세
살 때에 이 항하를 보았을 때에 이르러 이 강물을 보는 것이 어떻게 다릅니까?” 왕이
말하기를 “세 살 때와 완전히 같아서 전혀 다름이 없으며, 더 나아가 지금 나이 예순
두 살이 되었으나 보는 것은 전혀 다름이 없습니다.”
佛言汝今自傷髮白面皺하나니 其面必定皺於童年어니와 則汝今時에 觀此恒河와
與昔童時에 觀河之見으로 有童耆不아 王言不也世尊이시여 佛言大王汝面雖皺나
而此見精性未曾皺니라 皺者爲變어니와 不皺非變이며 變者受滅어니와 彼不變者
元無生滅어늘 云何於中受汝生死라하야 而猶引彼末伽梨等의 都言此身死後全滅
아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왕이시어! 왕의 얼굴은 비록 쭈그러졌으나 보는 성품의 정미
로움[見精]은 일찍이 쭈그러진 적이 없었습니다. 쭈그러진 것은 변하는 것이요, 쭈그
러지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니기에 변하는 것은 원래 생멸이 없어 항상한 것입
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그 가운데에서 ‘생사(生死)를 받는다’고 하여 오히려 저 말가리
(末伽梨) 등이 말한 ‘이 몸이 죽고 나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에 집착하십니까?”
王聞是言하고 信知身後捨生趣生하야 與諸大衆으로 踊躍歡喜得未曾有니라
파사익왕이 그 말을 듣고는 참으로 이 몸이 죽은 뒤에 이 생을 버리고 다른 생에 태
어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여러 대중들과 함께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문(法門)
을 들었다고 뛸 듯이 기뻐하였다.
⑵ 依手正到 明無遺失 ① 阿難請問
阿難卽從座起하야 禮佛合掌長跪白佛호대 世尊若此見聞必不生滅인댄 云何世尊
名我等輩가 遺失眞性顚倒行事니잇고 願興慈悲洗我塵垢하소서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합장하여 예(禮)를 올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부
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만일 이렇게 보고 듣는 것[見聞]이 반드시 불생불멸
(不生不滅)이라면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저희들에게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뒤바뀐
행동을 하느냐’고 하셨습니까? 원컨대 자비하신 마음을 일으키시어 저희들의 찌든
때를 씻어 주소서!”
② 佛與開示 ㊀ 比類
卽時如來垂金色臂하사 輪手下指하시며 示阿難言汝今見我母陀羅手하니 爲正爲
倒아 阿難言世間衆生은 以此爲倒어니와 而我不知誰正誰倒니다
그 때 여래께서 금색의 팔을 드리우시어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켜 보이시고 아난
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나의 모다라수(母陁羅手)를 보았으리니 ‘바로’라 하겠
느냐, ‘거꾸로’라 하겠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거꾸로’라고
하지만 저는 무엇이 ‘바로’이고 무엇이 ‘거꾸로’인지 모르겠습니다.”
佛告阿難若世間人이 以此爲倒인댄 卽世間人將何爲正고 阿難言如來竪臂하사
兜羅綿手가 上指於空하면 則名爲正이니다 佛卽竪臂하사 告阿難言若此顚倒는
首尾相換어늘 諸世間人一倍膽視니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거꾸로’라 한다면
어떤 것을 ‘바로’라 하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팔을 세워 도라면
(兜羅綿) 같은 손이 위로 허공을 가리키면 ‘바로’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이 곧 팔을 세우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전도(顚倒)는 다만
팔의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이 한결같이 거듭거듭 우
러러 보고[一倍膽視] 있는 것이다.
則知汝身與諸如來의 淸淨法身을 比類發明인댄 如來之身名定徧知요 汝等之身
號性顚倒니라
이러한 점에서 너의 몸과 여러 부처님의 깨끗한 법신(法身)을 비교해서 설명한
다면 ‘여래의 몸은 정변지(正遍知)라 부르고, 너희들의 몸은 성전도(性顚倒)라 부
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㊁ 原迷
隨汝諦觀하라 汝身佛身稱顚倒者는 名字何處하야 號爲顚倒오 于時阿難與諸大
衆이 瞪瞢瞻佛하야 目精不瞬이니 不知身心顚倒所在러라
너는 이제 자세히 살펴보아라. 너의 몸을 부처님의 몸에 비교하여 성전도(性顚倒)
라 하는데 그렇게 불려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그 때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물끄러미[瞪瞢] 부처님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리지
않고 있었으니 몸과 마음이 전도하게 된 그 근원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佛興慈悲하사 哀愍阿難及諸大衆하야 發海潮音으로 遍告同會하사대 諸善男子我
當說言호대 色心諸緣及心所使와 諸所緣法이 唯心所現이니 汝身汝心이 皆是妙
明眞精妙心中所現物어늘 云何汝等이 遺失本妙圓妙明心의 寶明妙性하고 認悟
中迷오
부처님이 자비하신 마음으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해조음(海潮
音)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내가 늘 ‘대상[色]과 마음[心]과 마음의 모든 반연[諸緣]과 업[心
所事]과 가지가지 현상들[諸所緣法]이 오직 마음이 나타난 것이다’라고 말하였듯
이 너의 몸과 마음이 참으로 다 묘명(妙明)하고 진정(眞靜)한 묘심(妙心) 가운데
나타난 하나의 현상[物]이거늘, 너희들은 어찌하여 본묘(本妙)하고 원묘(圓妙)한
밝은 마음의 보명묘성(寶明妙性)을 잃어버리고, 이와 같은 깨달음 속에서 미혹을
자기 마음으로 오인하느냐?
晦昧爲空하고 空晦暗中結暗爲色하야 色離妄想하야 想相爲身거늘 聚緣內搖하고
趣外奔逸하야 昏擾擾相以爲心性이니 一迷爲心에 決定惑爲色身之內하야 不知
色身과 外泊山河와 虛空大地히 咸是妙明眞心中物하니 譬如澄淸百千大海棄之
하고 唯認一浮漚體하야 目爲全潮하야 窮盡瀛渤인달하야 汝等卽是中倍人이니
如我垂手로 等無差別하며 如來說爲可憐愍者니라
진여(眞如)에 어두운[無明] 까닭에 회매(晦昧)한 것이며, 이 회매로 인하여 꽉 막
히어 완공(頑空)이 되고, 이렇게 막히고 어두운 가운데[空晦暗中] 어두움이 맺히어
색(色)이 되고, 색이 망상과 섞여서 생각[想]과 형상[相]을 지닌 몸이 되었거늘,
대상에 끌려감[緣]을 쌓아 안으로 흔들리고 밖으로 치달려서 어둡고 번거로운[昏
擾擾] 모습으로 자기의 심성(心性)을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 번 미혹하여 마음이라 하고, 거기에 집착하여 이제는 이 마음이 색신(色
身)의 속에 있다고 착각하여 이 몸과 밖에 있는 산과 강 그리고 허공과 대지에 이르
기까지 이것이 다 묘하게 밝은 참마음[妙明眞心]에서 비추어진 하나의 현상[物]이
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맑고 청정한 백천의 큰 바다는 버리
고, 오직 하나의 거품을 오인하여 그것으로 바다 전체라 하면서 바다를 다 알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까닭에 그대들을 미혹한 가운데 다시 배[倍]나 더 미혹한 사람이라 말하는
것이니 앞에서 내가 손을 드리워서 이야기했던 것과 다름이 없으며, 그래서 여래는
그대들을 ‘가엾은 사람이다’고 하는 것이다.”
⑶ 辨斥緣影 甄別混疑 ① 請問混疑
阿難承佛悲投深誨하고 垂泣叉手하야 而白佛言我雖承佛의 如是妙音하고 悟妙明
心이 元所圓滿常住心地이나 而我悟佛現說法音現以緣心이며 允所瞻仰徒獲此心
일새 未敢認爲本元心地하니 願佛哀愍宣示圓音하야 拔我疑根歸無上道하소서
아난이 부처님께서 자비로 구원해 주시는 깊은 가르침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합장하
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제가 비록 부처님의 이와 같은 묘음(妙音)을 듣고, 이 묘명
(妙明)한 마음이 본래 원만하게 항상 머무는 참마음[常住心地]이라는 것을 깨달았습
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음성을 깨달은 것도 현재의 이 반연(攀緣)
하는 마음이며, 간절하게 우러러 쳐다보는 것 또한 이 마음에서 얻어진 것이기에 이를
아직 감히 본 바탕의 마음[本元心地]이라고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가엾게 여기시고 원음(圓音)을 베풀어 저희들의 의심하는 뿌리
를 뽑아 최상의 도(道)에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② 佛與宣示 ㊀ 認緣失眞
佛告阿難하사대 汝等尙以緣心聽法하니 此法亦緣이라 非得法性이니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오히려 대상에 끌려가는 마음[緣心]으로
법을 듣고 있으니 이 법(法) 또한 분별의 대상[所緣]이 되어서 마침내 진실한 법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如人以手指月示人인댄 彼人因指하야 當應看月어늘 若復觀指하야 以爲月體인댄
此人豈唯亡失月輪이리요 亦亡其指이니라 何以故 以所摽指로 爲明月故이니 豈唯
亡指리요 亦復不識明之與暗이니라 何以故 卽以指體로 爲月明性하야 明暗二性無
所了故이니 汝亦如是하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켜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면 저 사람이 손가락을
통해 달을 보아야 할 터인데 만약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이 어찌
달만 잃어버린 것이리요! 또한 손가락도 잃어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손가락을 가지고 ‘밝은 달’을 삼았기 때문이며, 이것이 어찌 손가락만 잃
어버린 것이리요! 또한 명암(明暗)도 알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손가락으로 ‘밝은
달의 성품’을 삼았기 때문에 명암의 두 가지 성품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게 된 것
이니 너희들이 집착함도 그와 같다.
㊁ 辨緣無性
若以分別我說法音爲汝心者인댄 此心自應離分別音코도 有分別性이라 譬如有客
寄宿旅亭하야 暫止使去終不常住어니와 而掌亭人都無所去할새 名爲亭主이니 此
亦如是若眞汝心인댄 則無所去리니 云何離聲無分別性고
만약 내가 법을 설할 때에 그 음성을 분별하는 것으로 너의 참마음을 삼는다면 이
마음이 응당 음성을 여의고도 항상 분별하는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마치 어떤 나그네가 여관[旅亭]에 기숙하여 잠시 머물렀다가는 바로 떠나고 항상
머물지 못하지만 여관의 주인은 도무지 갈 곳이 없어 주인이라 하는 것처럼, 마음
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만약 참다운 너의 마음이라면 갈 곳이 없을 것인데 어찌 소리
를 여의었다고 해서 분별하는 마음의 그 본성까지 없어지겠느냐?
斯則豈唯聲分別心이리요 分別我客도 離諸色相이면 無分別性이니 如是乃至分別
都無하야 非色非空일새 狗舍離等昧爲冥諦니라
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어찌 음성을 분별하는 마음 뿐이리요! 그대가 여래의 얼굴을
분별하는 것도 모든 색상(色相)을 여의고는 그 분별하는 성품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더 나아가 육진(六塵) 등을 전혀 분별 할 수 없는 곳에 이르러서는 색(色)도 아
니고 공(空)도 아닐 것이니 저 구사리(拘舍離) 들이 어리석게도 이를 명제(冥諦)라
고 주장하는 것이다.
離諸法緣하야 無分別性인댄 則汝心性이 各有所還이니 云何爲主리요
이와 같이 모든 대상과의 인연을 떠나 거기에 분별했던 성품도 따라 없어진다면 그
러한 너의 심성(心性)은 각기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니 이를 어찌 주인이라고 하
겠느냐?”
⑷ 依八境示 見性無還 ① 阿難請問
阿難言若我心性은 各有所還하며 則如來說의 妙明元心은 云何無還이리잇고 唯
垂哀愍하사 爲我宣說하소서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제가 말씀드린 심성(心性)은 각기 ‘돌아갈 곳이 있다’고
하시면서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묘명한 근원의 마음[妙明元心]은 어찌하여 ‘돌아갈
곳이 없다’고 하십니까? 바라옵건대 부디 가엾게 여기시어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② 佛與宣示
佛告阿難하사대 且汝見我하는 見精明元은 此見離非妙精明心이니 如第二
月이요 非是月影이니 汝應諦聽하라 今當示汝無所還地호리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나를 볼 때에 그 보는 정기의 밝음[見精妙
明]이 비록 묘하게 정미로운 밝은 마음[妙精明心]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아는 마치 제이월(第二月)과 같고 물에 비친 달 그림자[月影]와는 같지 않다. 너는
응당히 자세히 들어라. 내가 마땅히 지금 너에게 돌아갈 곳이 없는 참 마음을 보여
주리라.
阿難此大講堂이 洞開東方하야 日輪升天則有明耀하고 中夜黑月에 雲霧晦
瞑則復昏暗하며 戶牖之隙則復見通하고 牆宇之間則復觀壅하고 分別之處
則復見緣하고 頑虛之中徧是空性이며 鬱挬之象則紆昏塵이요 澄霽斂氛又
觀淸淨하니
아난아! 이 대강당의 동쪽이 환하게 트여서 둥근 해가 떠오르면 곧 밝게 빛나고, 달
도 없는 한밤중에 구름과 안개마저 자욱하면 더욱 어두우며, 문틈으로는 다시 통함
을 보고, 담장을 대하여서는 막힘을 보며, 분별하는 곳에서는 반연(攀緣)함을 보고,
허공 속은 모두가 비었으며, 흙비의 현상은 티끌이 얽힌 것이고, 맑게 개어 안개가
걷히면 다시 맑음을 보게 될 것이다.
阿難汝咸看此諸變化相어니와 吾今各還本所因處호리라
아난아! 너는 이러한 여러 가지 변화하는 모양을 살펴보았거니와 내가 지금 각기 본
래의 인연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云何本因고 阿難此諸變化明還日輪하니 何以故無日不明할새 明因屬日是故
還日하니라 暗還黑月하고 通還戶牖하고 壅還牆宇하고 緣還分別하고 頑虛
還空하고 鬱挬還塵하고 淸明還霽하니 則諸世間一切所有不出斯類어니
와 汝見八種見精明性은 當慾誰還고
무엇을 ‘본래의 인연이 있는 곳’이라 하겠느냐? 아난아! 이러한 모든 변화 가운데 밝
은 것은 해로 돌려보낸다. 왜냐하면 해가 없으면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밝
은 것의 원인은 해에 속한 것이니 밝은 것은 해로 돌려보내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 데
로 돌려 보내고, 통하는 것은 문으로 보내고, 막힘은 담장으로 돌려보내고, 대상에 반
연하는 것은 분별로 보내고, 빈 것은 허공으로 보내고, 흙비는 티끌로 보내고, 청명은
개인 곳으로 돌려보낸다. 이와 같이 세상 모든 것들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
다. 그렇다면 네가 이 여덟 가지를 보는 견(見)의 정미롭고 밝은 성품[見精明性]은
어디로 돌려보내겠느냐!
何以故若還於明하면 則不明時無復見暗하리니 雖明暗等種種差別이나 見無差別하
나니
만약 보는 성품[見精明性]이 밝은 곳으로 돌아가 버린다면 밝지 아니할 때에는 어두
움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명암(明暗) 등은 비록 가지가지로 차별이 있다 하
더라도 그 보는 성품은 본래 차별이 없는 것이니
諸可還者는 自然非汝어니와 不汝還者는 非汝以誰리오
어느 곳이든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너의 진성(眞性)이 될 수 없거니와 너에게서 돌려
보낼 수 없는 것은 너의 진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則知汝心이 本妙明淨커늘 汝自迷悶하고 喪本受輪하야 於生死中에 常被漂溺하니
是故如來名可憐愍이니라
이와 같이 ‘너의 마음이 본래 오묘하고 밝고 깨끗한 것이었는데 네가 스스로 혼미하
여 근본을 잃고 윤회하면서 생사 속에서 항상 표류하였으며, 그러므로 여래가 가련하
다고 말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⑸ 卽諸物像 決擇眞性 ① 阿難躡問
阿難言我雖識此見性無還이나 云何得知是我眞性이리잇고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제가 비록 보는 성품[見性]은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나 어떻게 하여야 그것이 저의 진성(眞性)임을 사무쳐 알 수 있겠습니까?”
② 佛與決擇 ㊀ 泛敍見用
佛告阿難吾今問汝하노라 今汝未得無漏淸淨이나 承佛神力하야 見於初禪
得無障礙하며 而阿難律見閻浮提호대 如觀掌中菴摩羅果하며 諸菩薩等見百
千界하며 十方如來窮盡微塵淸淨國土無所不願어늘 衆生洞視不過分寸이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너에게 묻는다. 네가 아직 모든 번뇌를
여읜 깨끗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부처님의 신비한 힘을 입어 저 초선(初禪)
의 하늘을 보는 데에는 장애가 없고, 아나율(阿那律)은 염부제(閻浮提) 보기를 마
치 손바닥에 있는 암마라과(菴摩羅果)를 보듯 하며, 모든 보살들은 백천의 세계를
두루 보고, 시방의 여러 부처님은 한량없는 청정한 국토를 보지 못하는 곳이 없다.
그러나 중생들은 똑같이 진성(眞性)을 지녔으면서도 그 보는 것은 분촌(分寸)에
지나지 않는다.
㊁ 卽物決擇
阿難且吾與汝로 觀四天王의 所住宮殿할새 中間遍覽水陸空行하나니 雖
有昏明種種形像이나 無非前塵의 分別留礙이니 汝應於此에 分別自他하
라 今吾將汝하야 擇於見中하노니 誰是我體며 誰爲物像호리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와 함께 사천왕(四天王)이 거주하는 궁전을 보았고, 그 사
이에 물과 육지의 허공을 두루 보았다. 거기에는 비록 어둡고 맑은 갖가지 형상들
이 있으나 모두 대상[前塵]으로서 분별되고 장애됨이 없지 아니했으니 너는 응당
여기에서 나와 남을 분별해 보아라. 이제 내가 너를 위하여 보는 작용에서 어느
것이 우리들의 보는 성품의 체(體)이고, 어느 것이 허망한 물상(物像)인지를 가
려주리라.
阿難極汝見源이라 從日月宮是物非汝며 至七金山周遍諦觀이라고 雖種種
光亦物非汝며 漸漸更觀이며 雲騰鳥飛風動塵起와 樹木山川草芥人畜이라
도 咸物非汝니라
아난아! 너는 보는 근원[見源]을 끝까지 추구해 보아라. 그러나 위로 해와 달에 이
르더라도 모두가 물상이지 너의 진성이 아니며, 아래로 칠금산(七金山)에 이르도록
두루두루 자세히 관찰하여 보더라도 비록 갖가지 빛이 있으나 그것도 역시 물상이
지 너의 진성이 아니며, 그밖에 다시 점점 관찰하여 구름이 뜨고 냇물과 풀 그리고
사람과 축생을 보더라도 다 물상(物像)이지 너의 진성(眞性)이 아니다.
㊂ 正示見性
阿難是諸近遠에 諸有物性이 雖復差殊나 同汝見精의 淸淨所矚이니 則諸
物類는 自有差別이니와 見性無殊이니 此精妙明이 誠汝見性이니라
아난아! 멀고 가까운 모든 사물의 성품이 비록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두가 너
의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으로 청정하게 보는 것이기에 여러 가지 물류(物類)
는 스스로 차별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보는 성품은 차별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정미
롭고 묘명한 것[精妙明]이 바로 너의 보는 성품[見性]이다.
㊃ 辨見非物
若見是物인댄 則汝亦可見吾之見하리라
만약 보는 성품[見]이 물질이라면 너는 응당 나의 보는 성품[見]을 보아야 할 것이
다.
若同見者로 名爲見吾인댄 吾不見時에 何不見吾不見之處오
만약 하나의 대상을 함께 보는 것으로 ‘나의 보는 성품[見]을 본다’고 한다면 내가
보지 않을 때 어찌하여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하느냐?
若見不見인댄 自然非彼不見之相이요
만약 네가 ‘나의 보지 않는 곳’을 보았다면 자연(自然) 그것은 ‘나의 보지 않는 모습'
이 아닐 것이다.
若不見吾不見之地인댄 自然非物이어니 云何非汝리오
만약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이는 저절로 물질(物質)이 아닌 것이니
이것이 너의 진성(眞性)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又則汝今의 見物之時에 汝旣見物인달하야 物亦見汝하리니 體性紛雜하야 則汝
與我와 幷諸世間이 不成安立하리라
(만약 보는 성품이 물질이라면 물질에도 보는 성품이 있어서) 네가 지금 물건을
보는 것처럼 물건도 너를 볼 것이니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의 체성(體性)이 어지
럽게 섞여서 너와 나 그리고 모든 세간[諸世間]의 가지가지 현상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다.
㊄ 牒顯結答
阿難若汝見時에 是汝非我이며 見性周徧인댄 非汝而誰리오 云何自疑 汝
之眞性을 性汝不眞하여 取我求實가
아난아! 만약 네가 나를 볼 때에 보는 것은 네가 보는 것이지 내가 아니다. 이와 같
이 너의 보는 성품[見性]이 두루하다면 항상하고 두루한 이것이 너의 진성(眞性)
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어찌하여 스스로 너의 진성을 ‘너에게 성품으로서 참되지
못한 것인 양’ 의심하고, 나를 취하여 진실(眞實)을 구하려고 하느냐?”
⑹ 明見眞體 本絶限量 ① 阿難躡問
阿難白佛言호대 世尊若此見性이 必我非餘인댄 我與如來로 觀四天王勝
藏寶殿코자 居日月宮하야는 此見周圍徧娑婆國이라가 退歸精舍祗見伽藍
하고 淸心戶堂但瞻簷廡이니다 世尊此見如是하야 其體本來周遍一界라가
今在室中하야는 唯滿一室하니 爲復牆宇來今斷絶이닛가 我今不知斯義所
在로소니 願垂弘慈爲我敷演하소서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만약 보는 성품이 참으로 나요 다른 것
이 아니라면 제가 여래와 함께 사천왕(四天王)의 수승한 보배의 궁전을 보고자
일월궁(日月宮)에 있을 때에는 보는 성품이 두루 원만해져서 사바세계에 골고루
퍼져 있다가 정사(精舍)에 돌아오면 오직 가람(伽藍)만 보이고, 마음을 맑히는
선당[禪堂,淸心戶堂]에서는 다만 처마만 보입니다.
세존이시어! 보는 성품이 이와 같아서 그 체(體)가 본래는 온 세계에 고루 퍼져
있다가 지금 방 안에 있을 때에는 오직 하나의 방에만 가득하게 됩니다. 그 때 보
는 성품은 큰 것이 축소되어 작아진 것입니까, 아니면 담과 지붕에 막히고 좁아져
서 끊어진 것입니까?
저희들은 지금 그 이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
서는 큰 자비를 베푸셔서 저희들을 위하여 깨우쳐 주소서!
② 佛與辯明 ㊀ 直示
佛告阿難一切世間大小內外와 諸所事業各屬前塵하니 不應說言호대 見
有舒縮이니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세간의 대소내외(大小內外) 모든 일들이
다 앞의 대상에 속하는 것이기에 (그 대상에는 멀고 가까운 차별이 있을지언정)
보는 성품에 ‘퍼지거나 줄어듬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譬如方器中見方空하니 吾復問汝하노라 此方器所見方空이 爲復定方가 爲不定
方가 若定方者인댄 別安圓器라도 空應不圓이며 在方器中하야도 應無方空이니
汝言不知斯義所在가 義性如是云何爲在리오
이것은 마치 모난 그릇 속에 보이는 모난 허공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니, 내가 다
시 너에게 묻는다. 이 모난 그릇 속에 보이는 모난 허공이 고정된 모난 것이냐, 아
니면 고정된 모난 것이 아니냐?
만약 고정된 모난 것이라면 따로 둥근 그릇 속에 두더라도 그 허공은 응당 둥글게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고, 만약 고정된 것이 아니라면 모난 그릇 속에 두더라도 모
난 허공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네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겠다’고 한 이치가 이와 같거늘, 어떻게
보는 성품이 퍼지거나 줄어든다고 할 수 있겠느냐?
阿難若復欲今人無方圓인댄 但除器方이언정 空體無方이니 不應說言更除
虛空의 方相所在니라
아난아! 만약 모나고 둥그름[方圓]이 없는 곳에 이르고자 한다면 그릇의 모난 것
만 없앨지언정 허공 그 자체는 모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응당 허공의 모난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말라.
㊁ 遺情
若如汝問인달하야 入室之時에 縮見今小인댄 仰觀日時에 汝豈挽見하야
齊於日面고 若築牆宇하야 能來見斷인댄 穿無績逆가 是義不然하니라
만약 그대가 질문했던 것처럼 방 안에 들어갔을 때에 보는 성품이 축소되어 작
아진 것이라면 해를 쳐다 볼 때에 너는 어떠한 방법으로 보는 성품을 늘려서 해
에 닿게 하였느냐?
만약 담과 지붕이 막혀서 견이 끊어진 것이라면 작은 구멍을 뚫었을 때에는 어
찌하여 이은 흔적이 없느냐? 이와 같이 보는 성품[見]에는 본래 펴지고 줄어듬
이 없는 것이다.
㊂ 結顯
一切衆生從無始來로 迷已爲物하야 失於本心하고 爲物所轉故로 於是中觀大
觀小거니와 若能轉物인댄 則同如來하야 卽心圓明하고 不動道場하야 於一毛
端에 遍能含受十方國土하리라
일체중생이 시작이 없는 옛날부터 자기를 미혹하고 경계[物]를 따라 본심을 잃
어버리고 경계에 끌려가는 바가 되었기에 그 가운데에서 크고 작은 것들을 보게
되거니와 만약 경계를 부릴 수 있다면 곧 여래와 같이 마음이 원만하게 밝아져서
도량에서 움직이지 아니하고도 한 개의 털끝 속에 시방의 국토를 받아들일 것이
다.”
⑺ 明見與緣 同一妙體 ① 阿難疑異
阿難白佛言호대 世尊若此見精이 必我妙性인댄 今此妙性이 現在我前이라
見必我眞인댄 我今身心은 復是何物이닛고 而今身心은 分別有實하나 彼見
無別하야 分辨我身이니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여래께서는 이와 같이 보는 성품의 정미로
움[見精]이 반드시 저의 묘한 성품[妙性]이라 하셨습니다.
지금 그 묘한 성품은 제 앞에 있고, 그것[見]이 반드시 저의 진심(眞心)이라면 지금
저의 몸과 마음은 다시 무엇입니까? 지금 이 몸과 마음은 분별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보는 성품은 분별이 없어 우리의 몸을 가리지 못합니다.
若實我心이라 今我今見인댄 見性實我요 而身非我로소니 何殊如來의 先所難言하
신物能見我로닛고 惟垂大慈開發未悟하소서
만일 보는 성품이 참으로 저의 마음이고 그것이 지금 저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그 보는 성품이 진정한 자아(自我)요 이 몸은 내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여래께서 먼저 ‘물건[物]이 능히 나를 보리라’고 힐난하여 말씀하신 것과 무
엇이 다르옵니까?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어 아직 깨닫지 못한 저희들을 깨우쳐
주소서!”
② 佛與和融 ㊀ 委曲辨示 ㈎ 通破前疑
佛告阿難今汝所言한 見在汝前이라호미 是義非實이라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네가 ‘보는 성품이 앞에 있다’고 말하였는데
그 말은 이치가 옳지 않다.
㈏ 責辨非實 ㉮ 辨物無是見
若實汝前하야 汝實見者인댄 則此見精旣有方所이니 非無指示하리라 且今與汝坐
祗陀林하야 遍觀林梁及與殿堂어니와 上至日月前對恒河하니 汝今於我獅子座에
前擧手指陳하라 是種種相이 陰者是林明者是日이요 礙者是壁通者是空이요 如是
乃至草樹纖毫히 大小雖殊이나 但可有形無不指著하리라
만약 참으로 보는 성품[見]이 네 앞에 있어서 네가 보는 것이라면 보는 성품의 정미
로움[見精]이 이미 장소가 있는 것이니 가리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너와 함께 지타림에 앉아서 두루 숲과 냇물과 전당(殿堂)을 보고 있는데, 위로
는 해와 달에 이르고 앞에는 항하(恒河)를 대하고 있다.
그대가 지금 나의 사자좌(獅子座) 앞에서 손을 들어 가리켜 보아라. 이 갖가지 모양
들이 그늘진 것은 숲이고, 밝은 것은 태양이며, 막힌 것은 벽이고, 통한 것은 허공이
다. 이와 같이 더 나아가 풀과 나무 그리고 실오라기와 터럭 끝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
은 것은 비록 다르지만 형상이 있는 것은 다 가리킬 수 있을 것이다.
若必有見現在汝前인댄 汝應以手確實指陳하라 何者是見고 阿難當知하라 若空
是見인댄 旣已成見이니 何者是空이며 若物是見旣已是見이니 何者爲物이리요
汝可微細히 拔剝萬象하야 析出精明淨妙見元하야 指陳示我호대 同彼諸物分明無
惑케하라
만약 보는 성품[見]이 분명히 네 앞에 있다면 너는 응당 손으로 확실하게 가리켜 보
아라! 어느 것이 그 보는 성품이냐?
아난아! 마땅히 알라. 만약 허공이 보는 성품이라면 허공이 이미 보는 성품이 되어
버렸는데 어떻게 허공이라 하겠느냐? 만약 물건이 보는 성품이라면 물건이 이미 보
는 성품을 이루었는데 어떻게 물건이라 하겠느냐?
너는 세밀하게 만상을 나누고 쪼개어서 정미롭고 깨끗하고 오묘한[精明淨妙] 보는
성품의 근원을 드러내어 나에게 가리켜 보여 저 모든 물류[物]의 모습과 같이 분명
하게 의혹이 없게 하라.”
阿難言我今於此重閣講堂에 遠泊恒河하며 上觀日月호대 擧手所指며 縱
目所觀에 指皆是物이라 無是見者니다 世尊如佛所說하야 況我有漏初學
聲聞어니와 乃至菩薩亦不能於萬物像前에 剖出精見하고 離一切物이라야
別有自性이니다 佛言如是如是하시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제가 지금 이 곳의 여러 층으로 된 강당에서 멀리는
항하에까지 이르고, 위로는 해와 달을 보거니와 손을 들어 가리키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들이 다 대상인 물질[物]이지 이것을 보는 성품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세존이시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아직 번뇌를 여의지 못한 유루(有
漏)의 초학성문(初學聲聞)이기에 그렇거니와 나아가 보살이라 하더라도 온갖 물상
(物像)에서 따로 정미로운 견[見精]을 쪼개어 낼 수는 없고, 일체의 물(物)을 여의
어야 견의 자성(自性)을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건 그렇다.”
㉯ 辨物無非見
佛復告阿難 如汝所言인달하야 無有精見하고 離一切物이라야 別有自性인댄
則汝所指한 是物之中에 無是見者라니
부처님이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네가 말한 바와 같이 ‘물상(物像)에서
따로 정미로운 견[精見]을 쪼개어 낼 수 없고, 일체의 물(物)을 여의여야 보는 성품의
자성(自性)을 볼 수 있다’고 한다면 네가 가리킨 저 물상에는 견(見)이 없다는 말이
된다.
今復告汝하노라 汝與如來로 坐祗陀林하야 更觀林苑과 乃至日月種種象殊
하니 必無見精受汝所指인댄 汝又發明하라 此諸物中에 何者非見고 阿難言
我實徧見此祗陀林호대 不知是中에 何者非見이니다 何以故 若樹非見인댄
云何見樹며 若樹卽見인댄 復云何樹닛고 如是乃至若空非見인댄 云何爲空
이며 若空卽見인댄 復云何空이닛고 我又思惟호니 是萬象中에 微細發明하면
無非見者니이다 佛言如是如是하시다
지금 다시 너에게 묻는다. 너와 여래가 지금 지타림에 앉아서 저 숲과 동산, 나아가
해와 달에 이르기까지 가지가지 형상이 서로 다름을 보았을 것이다. 그 가운데 반드
시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이 너의 가리킴을 받는 물(物)에 있지 않다면 너는
다시 이 모든 물상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견 아닌 견[非見]인지를 밝혀 보아라.”
아난이 대답하였다. “제가 사실 이 지타림을 두루 보았으나 이 가운데 어느 것이 견
아닌 견[非見]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나무가 견(見)이 아니라면 어떻게 나무를 보며, 나무가 만약 견(見)
이라면 어떻게 나무라 하겠습니까? 따라서 저는 다시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온갖
물상을 지혜롭고 미세하게 살펴볼 때에 그 가운데에 견(見) 아닌 것이 없겠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건 그렇다.”
㈏ 初學罔措
於是大衆의 非無學者는 聞佛此言하고 茫然不知是義終始이라 一時惶悚하야 失
其所守러라
그 때 대중 가운데에서 아직 무학(無學,아라한)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부처님의
이러한 말씀을 듣고도 아직 그 뜻의 처음과 끝[始終]을 알지 못한 채 어리둥절해
하면서 마치 간직하고 있던 물건을 잃어버린 듯이 하고 있었다.
㈐ 佛慈慰喩
如來知其魂慮變慴하고 心生憐愍하야 安慰阿難及諸大衆하사대 諸善男子야 無
上法王是眞實語에 如所如說하며 不誑不妄하여 非末伽梨四種不死라하는
嬌亂論議이니 汝諦思惟無忝哀慕하라
여래께서는 그들이 어리둥절해 한다는 것을 아시고 가엾은 마음을 내시어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위로하시려고 말씀을 계속하셨다.
“여러 선남자들이여! 한없이 훌륭한 법왕(法王)은 진실하게 말하고 다르지 않게
말하며 [如所如說, 不異語] 속이는 것도 아니고, 허망한 말도 아니어서 저 말가리
(末伽梨)들이 죽지 않는다[不死]고 하는 네 가지 혼란스러운 논리와는 결코 같지
않다. 너희들은 깊이 생각하여 부질없이 슬퍼하거나 고민하지 말라.”
㊁ 文殊請明
是時文殊師利法王子가 愍諸四衆在大衆中이라가 卽從座起頂禮佛族하고 合掌恭
敬以白佛言호대 世尊此諸大衆이 不悟如來發明二種精見色空의 是非是義니다
그 때 법왕자인 문수사리보살이 여러 사부대중을 가엾게 여겨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공손히 합장하며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여기 모인 여러 대중들은 여래께서 밝혀 주신 정미롭고 밝
은 보는 성품의 근원[精見]과 눈앞의 색공(色空)에 대한 시(是)도 비시(非是)의
두 가지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世尊若此前緣色空等象이 若是見者應有所指요 若非見者應無所矚커늘 而今不
知是義所歸일새 故有驚怖언정 非是疇昔善根輕尠이니 唯願如來大慈發明하소서
此諸物象與此見精이 元是何物이완대 於其中間無是非是니잇고
세존이시어! 만약 눈앞에 있는 색공 등의 대상이 견(見)이라면 응당 가리킬 수 있어
야 하고, 만약 비견(非見)이라면 응당 볼 수 없어야 하는데 지금 그렇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이 뜻의 근본을 알지 못하여 놀래고 두려워했을지언정 그렇다고 옛날보다
선근(善根)이 적어진 것은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저 모든 물상(物像)과 보는 성품의 정
미로움[見精]이 원래는 무슨 물건이기에 이 속에 ‘시(是)’와 ‘비시(非是)’를 말 할 수
는 없는 것입니까?”
㊂ 正示同體 ㈎ 正定所照
佛告文殊及諸大衆하사대 十方如來及大菩薩이 於其自住三摩地中에 見與見緣
幷所想相이 如虛空華하야 本無所有일새 此見及緣이 元是菩提의 妙精明體라
云何於中에 有是非是리요
부처님이 문수보살과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시방의 여래와 대보살들이
스스로 머무는 삼마지(三摩地)에는 견(見)과 견연(見緣)과 생각되는 모든 현상
[相]이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서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견과 견연이 그
대로 깨달음의 묘정명체(妙淨明體)이거늘, 어찌 그 가운데 ‘견[是]이다’ ‘견이
아니다[非是]’고 할 수 있겠느냐?
㈏ 顯無是非 ㉮ 喩明
文殊吾今問汝하노라 如汝文殊하야 更有文殊에 是文殊者아 爲無文殊아 如是
世尊이시어 我眞文殊와 無是文殊니이다
문수(文殊)야! 내가 지금 너에게 묻는다. 네가 지금 문수(文殊)인데 다시 이 문수
에게 시문수(是文殊,眞文殊)라 불러야 할 것이 있겠느냐, 시문수(是文殊)라 할 것
이 없겠느냐?”
문수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어! 제가 진실한 문수이므로 따로
시문수(是文殊)라 할 것이 없겠습니다.
何以故 若有是者인댄 則二文殊이니 然我今日非無文殊할새 於中實無是非二相
이니다
왜냐하면 만약 시문수가 있게 되면 곧 두 가지 문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금일에 문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시비(是非)의 두 모습이 ‘없다’는 것
입니다.”
㉯ 合顯
佛言此見妙明與諸空塵이 亦復如是하야 本是妙明無上菩提淨圓眞心어늘 妄爲
色空及與聞見호미 如第二月이라 誰爲是月이며 又誰非月이리요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보는 성품의 묘명[見妙明]과 가지가지 허공과
티끌 또한 그와 같아서 본래 그대로가 묘명(妙明)한 무상보리(無上菩提)의 깨끗
하고 원만한 진심(眞心)이거늘 이것이 허망하게 색공과 견문이 되는 것이 마치
눈을 눌러 제이월(第二月)을 보는 것과 같다. 이 가운데 무엇을 시월(是月)이라
하겠느냐?
文殊但一月眞이니 中間自無是月非月이니라
문수야! 다만 하나의 진실한 달[一眞月]이 있을 뿐, 그 가운데 어디에도 ‘시월
(是月)이다 비월(非月)이다’ 할 것은 없다.
㈐ 結告時衆
是以汝今에 觀見與塵하고 種種發明호대 名爲妄想이니 不能於中에 出是非是
어니와 由是精眞妙覺明性일새 故能令汝로 出持非指하리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까지 보는 견(見)과 물상[塵]을 통해 가지가지로 드러내 보였
지만 이것이 다 잘못된 생각이기에 그러므로 그 가운데 시(是)와 비시(非是)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다 진실하고 정미로우면서도 묘하게 깨어 있는 밝은 성품[妙覺
明性]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궁극에는 그대들에게 손가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지
않는 것[非指]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⑻ 辨明眞說 甄別疑濫 ① 阿難通難
阿難白佛言호대 世尊誠如法王所說覺緣이 徧十方界하야 湛然常住하고
性非生滅인댄 與先梵志인 娑毘迦羅의 所談冥諦及投灰等諸外道種의 說有
眞我가 遍滿十方으로 有何差別이닛고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참으로 법왕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
다. 깨달음의 인연[覺緣]이 시방세계에 가득히 맑고 고요하게 항상 머물러 있어서
그 성품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지난 날 선범지의 사비가라[先梵志娑毘
迦羅]가 말했던 명제(冥諦)와 고행[投灰]을 좋아하는 여러 외도들이 ‘진아(眞我)
가 시방세계에 가득하다’고 말한 것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② 問答質疑 ㊀ 疑同自然 ㈎ 疑
世尊亦曾於楞伽山에 爲大慈等하사 敷演斯義하사대 彼外道等이 常說自然하나
我說因緣非彼境界니이다
세존께서도 일찍이 능가회상(楞伽會上)에서 대혜보살(大慧菩薩) 등을 위하여 이
이치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저 외도들은 항상 자연(自然)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설하는 인연(因緣)은 저들이 말하는 것과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我今觀此인댄 覺性自然하야 非生非滅이며 遠離一切虛妄顚倒하니 似非因緣與彼
自然이니 云何開示하야 不入群邪하고 獲眞實心妙覺明性이리닛고
제가 지금 생각하여 볼 때에 부처님이 말씀하신 깨달음의 성품[覺性]은 진실한 자
연이기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멀리 일체의 허망과 전도(顚
倒)를 여의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인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래께서는 ‘외도들이 말하는 자연이 아니다’하시니 어떻게 이해[開示]하여
야만 저희들이 삿된 소견에 떨어지지 않고 진실한 마음의 묘하게 깨어있는 밝은 성
품[妙覺明性]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 釋
佛告阿難하사대 我今如是開示方便하야 眞實告汝어늘 汝猶未悟惑爲自然
가하니 阿難若必自然인댄 自須甄明有自然體하리니 汝且觀此하라 妙明見
中에 以何爲自오 此見爲復以明爲自아 以暗爲自아 以空爲自아 以塞爲
自아 阿難若明爲自인댄 應不見暗이오 若復以空爲自體者인댄 應不見塞
이며 如是乃至諸暗等相으로 以爲自者인댄 則於明時見性斷滅어니 云何
見明이리요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편을 열어 보여서 진
실하게 말하였는데도 너는 오히려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자연인가?’하고 의혹을
품고 있구나. 아난아! 만약 정말로 자연이라면 그 자연을 분명히 밝힐 수 있어서
자연의 체(體)가 따로 있어야 할 것이다.
너는 우선 이 묘하게 밝은[妙明] 보는 성품[見] 가운데에 무엇이 자연의 체가 되
는지 살펴보아라. 이러한 보는 성품이 밝음으로 자연의 체를 삼느냐, 어두움으로
자연의 체를 삼느냐, 아니면 비어 있는 것[空]으로 자연의 체를 삼느냐, 막히는
것으로 자연의 체를 삼느냐?
아난아! 만약 밝음으로 자연의 체를 삼는다면 응당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고,
만약 비어있는 것으로 자연의 체를 삼는다면 응당 막힌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더 나아가 어두움 등으로 자연의 체를 삼는다면 곧 밝을 때에는 보는
성품이 없게 될 것이니 어떻게 밝음을 볼 수 있겠느냐?”
㊁ 疑同因緣 ㈎ 疑
阿難言必此妙見이 性非自然인댄 我今發明是因緣生이나 心猶未明하야
諮詢如來하노니 是義云何이며 合因緣性이닛고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반드시 이 묘하게 밝은 보는 성품이 자연이 아니라면
저는 다시 이것이 ‘인연으로 해서 생긴 것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아직 분명하지 못하여 부처님께 묻습니다. 이 이치가 어떻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설하신 인연의 뜻에 맞겠습니까?”
㈏ 釋
佛言汝言因緣이라하나 吾復問汝호리라 汝今因見으로 見性現前하리니 此見爲
復因明有見가 因暗有見가 因空有見가 因塞有見가 阿難若因明有인댄 應不
見暗이며 如因暗有인댄 應不見明이라 如是乃至因空因塞도 同於明暗하
니 復次阿難아 此見又復緣明有見가 緣暗有見가 緣空有見가 緣塞有見
가 阿難若緣空有인댄 應不見塞이며 若緣塞有인댄 應不見空이라 如是乃
至緣明緣暗도 同於空塞하니라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인연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내가 다시 너에게 묻는
다. 네가 지금 보기 때문에 보는 성품[見性]이 앞에 있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렇다면 이 보는 성품이 밝음으로 인하여 있다고 생각하느냐, 어두움으로 인하여
있다고 생각하느냐, 허공으로 인하여 있다고 생각하느냐, 막힘으로 인하여 있다
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밝음으로 인하여 보게 된다면 응당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할 것이고,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밝은 것을 보지 못할 것이
다. 이와 같이 더 나아가 허공으로 인하여 보게 되거나 막힘으로 인하여 보게 되
는 것도 앞의 명암(明暗)과 같을 것이다. 다시 아난아! 이 보는 성품이 밝은 것
을 연(緣)하여 보게 되느냐, 어두운 것을 연하여 보게 되느냐, 허공을 연하여 보
게 되느냐, 막힘을 연하여 보게 되느냐? 아난아! 만약 허공을 연하여 보게 된다
면 막힌 것을 보지 못할 것이요, 만약 막힘을 연하여 보게 된다면 하공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더 나아가 밝음과 어두움도 트이고 막힘[空塞]의 비유
와 같을 것이다.
㊂ 疊拂直示
當知如是精覺妙明은 非因非緣이며 亦比自然이며 非不自然이니 無非不非하
며 無是非是하야 離一切相하고 卽一切法이어늘
그러므로 응당 이와 같은 깨달음의 묘명[精覺妙明]은 인(因)도 아니고 연(緣)
도 아니며 또한 자연(自然)도 아니고 자연 아님도 아니며 비(非)와 불비(不非)
도 없고 시(是)와 비시(非是)도 없어서 일체의 형상[一切相]을 여의고 일체의
존재[一切法]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汝今云何於中措心하야 以諸世間戱論名相으로 而得分別가 如以手掌으
로 撮摩虛空인달하야 祗益自勞언정 虛空云何隨汝執捉이리요
너는 지금 어찌하여 그 가운데 마음을 두어 속세의 부질없는 이름과 모양으로
분별을 일삼고 있느냐? 이는 마치 손바닥으로 허공을 잡으려는 것과 같아서 스
스로 수고로움만 더할 뿐 허공이 어떻게 너의 손에 잡히겠느냐?”
㊃ 引經再辯 ㈎ 引經問難
阿難白佛言호대 世尊必妙覺性이 非因非緣인댄 世尊云何常與比丘로
宣說見性具四種緣하니 所謂因空因明 因心因眼하시니 是義云何닛고
佛言 阿難아 我說世間의 諸因緣相이언정 非第一義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반드시 이 묘한 깨달음의 성품[覺性]
이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라면 세존께서는 어찌하여 항상 비구들에게
‘보는 성품이 작용을 하려면 네 가지 인연을 갖추어야 한다 말하자면 허공을
인으로 삼고, 밝음을 인으로 삼으며, 마음을 인으로 삼고, 눈을 인으로 삼는다’
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것은 내가 세간의 가지가지 인연의 모습[相]
을말한 것이지, 제일의제(第一義諦)를 말한 것은 아니다.
㈏ 委曲辯覈
阿難吾復問汝하노라 諸世間人說我能見하니 云何名見이며 云何不見고
阿難言世人因於日月燈光하야 見種種相名之爲見이오 若復無此三種光
明하면 則不能見이니라
아난아! 내가 다시 너에게 묻는다. 모든 세상 사람들은 ‘내가 본다’고 말하는데
어떤 것을 ‘본다’고 하고.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 하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상 사람들은 해나 달이나 등불의 빛으로 인하여
갖가지 모양을 보게 되면 이를 ‘본다’하고, 만약 이 세 가지 빛이 없으면 곧 ‘보
지 못한다’고 합니다.”
阿難若無明時에 名不見者인댄 應不見暗하리라 若必見暗인댄 此但無明
이리요
“아난아! 만약 빛이 없을 때에 ‘보지 못한다’고 하면 응당 어둠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다. 만약 어두움을 본다면 이는 다만 밝음[明]이 없을 뿐이거늘, 이를 어찌
보는 성품[見]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
阿難若在暗時에 不見明故로 今在明時不見暗相도 還名不見이니 如是
二相俱名不見이로다
아난아! 만약 어두울 때에 ‘밝은 것을 보지 못한다’하여 이것을 보지 못한다고하
면 지금 밝을 때에 ‘어두움을 보지 못하는 것’도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밝고 어두움의 두 가지 모양을 다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若復二相自相凌奪이언정 非汝見性於中暫無이니 如是則知二俱名見이언
정 云何不見이리요
이와 같이 두 가지 현상[二相]이 서로 빼앗음이 있을지언정 너의 보는 성품[見
性]은 그 가운데에서 잠시도 없어지지 않았다. 이와 같은 점에서 두 가지 현상을
모두 본다고 해야지, 어찌 보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 正明見體 ㉮ 明離緣
是故阿難汝今當知하라 見明之時에 見非是明이며 見暗之時에 見非是
暗이며 見空之時에도 見非是塞이며
그러므로 아난아! 네가 지금 밝은 것을 볼 때에도 보는 성품[見]은 밝음에서 온
것이 아니고, 어두운 것을 볼 때에도 보는 성품은 어두움에서 온 것이 아니며,
또한 허공을 볼 때에도 보는 성품은 허공에서 온 것이 아니고, 막힌 것을 볼 때에
도 보는 성품은 막힌 것에서 온 것이 아니다.
㉯ 明離相
四義成就로 汝復應知하라 見見之時에 見非是見이니라
또한 명암공색(明暗空塞)의 이 네 가지 이치를 통해서 너는 응당 보는 것을 볼
때에 그 보는 성품은 시견(是見)도 비견(非見)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結責勉進
見猶離離見하야 見不能及커니 云何復說因緣自然及和合相이리요 汝等聲
聞狹劣無識하야 不能通達淸淨實相이기에 吾今誨汝하노니 當善思惟하야
無得疲怠菩提路하라
보는 성품은 이와 같이 능견(能見)과 소견(所見)을 여의어서 망견(妄見)으로는
능히 미칠 수 없는데, 어떻게 다시 이 보는 성품을 ‘인연이다 자연이다 화합의 현
상이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 성문(聲聞)들이 용렬하고 무식하여 아직 청정한 실상을 통달하지 못하였
기에 내가 지금 너희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한다. 응당 잘 듣고 사유하여 미묘한
깨달음의 길에서 물러나지 말라.”
⑼ 廣明眚妄 重開慧目 ① 阿難牒請
阿難白佛言호대 世尊如佛世尊이 爲我等輩하사 宣說因緣及與自然과 諸
和合相과 如不和合하시나 心猶未開어늘 而今更聞見見非見하고 重增迷悶
하노니 伏願弘慈하사 施大慈目하야 開示我等覺心明淨하소서 作是語已悲
淚頂禮하야 承愛聖旨하라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여래께서는 오직 저희들을 위하여 인연과
자연과 여러 화합상(化合相)과 불화합상(不化合相)을 설명하여 주셨으나 저희들은
아직 마음이 열리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다시 ‘보는 것을 보는 것은 망견(妄見)이 아니다’고 하심을 듣고, 오히려 더욱
의혹이 깊어졌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큰 자비로써 지혜의 눈을 베푸시어 저희들
의 깨닫는 마음이 밝고 깨끗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난이 말을 마치고 슬피 울면서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성인의 가르침을
받들어 듣고자 하였다.
② 佛與開示通 ㊀ 愍衆勅聽
爾時世尊憐愍阿難及諸大衆하야 將欲敷演大陀羅尼와 諸三摩提妙修行路하사
告阿難言汝雖强記但益多聞이요 於奢摩他微密觀照心猶未了하니 汝今諦聽
吾今爲汝分別開示하고 亦今將來諸有漏者로 獲菩提果니라
그 때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대다라니(大陀羅尼)와
가지가지 삼마제(三摩提)의 오묘한 수행의 방법을 펴 보이시려고 아난에게 말씀
하시었다.
“네가 비록 기억은 많이 했으나 다문(多聞)만 하고, 저 사마타(奢摩他)에서 은밀
[微密]히 관조함에 있어서는 마음이 아직 요달하지 못하였으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내가 너를 위하여 이를 분별하여 드러내 보이고 또한 번뇌를 끊지 못한
[有漏] 미래의 중생들까지도 깨달음의 열매를 맺게 하리라.
㊁ 辨妄開示 ㈎ 總標妄本
阿難一切衆生이 輪廻世間호미 由二顚倒의 分別見妄으로 當處發生하야
當業輪轉하나니 云何二見一者衆生別業妄見이요 二者衆生同分妄見이라
아난아! 일체의 중생들이 세상에서 윤회하는 것은 두 가지 전도[二顚倒]된 분별
망상(分別見妄) 때문이며, 이와 같이 망견(妄見)을 일으킨 자리[當處]에서 업을
발생하고 그 업에 따라 윤회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 두 가지 잘못된 견해[妄見]인
가? 첫째는 중생의 별업망견(別業妄見)이요, 둘째는 중생의 동분망견(同分妄見)
이다.
㈏ 別釋妄狀 ㉮ 喩別業 ㉠ 擧喩
云何名爲別業妄見고 阿難如世間人이 目有赤眚하면 夜見燈光호대 別有
圓影하야 五色重疊하나니
무엇을 별업망견(別業妄見)이라 하느냐? 아난아! 세상 사람들이 눈에 적생(赤眚)
이 생기면 밤에 등불을 볼 때에 또 다른 둥근 그림자[圓影]가 생겨서 오색(五色)이
중첩(重疊)됨을 보게 될 것이다.
㉡ 明妄 Ⓐ 卽燈見明妄
於意云何此夜燈明所現圓光이 爲是燈色가 爲當見色가 阿難此若燈色인댄
則非眚人何不同見하고 而此圓影唯眚之觀고 若是見色인댄 見已成色어늘
則彼眚人見圓影者는 名爲何等고
어떻게 생각하느냐? 밤에 등불을 켰을 때에 따라 나타나는 둥근 그림자[圓光]가
등불에서 나온 빛이냐, 눈[見]에서 나온 빛이냐? 아난아! 이것이 만약 등불에서 나
온 빛이라면 눈병이 없는 사람은 어찌하여 그와 같은 현상을 보지 못하고, 이러한
둥근 그림자를 오직 눈병이 있는 사람만이 보느냐?
만약 저 둥근 그림자가 눈[見]에서 나온 빛이라면 누구나 눈[見]이 둥근 그림자
[色]를 이룰 것인데 그 둥근 그림자[圓影]를 눈병난 사람만이 보는 것은 무슨 까
닭이냐?
Ⓑ 離燈見明妄
復此阿難若此圓影이 離燈別有인댄 則合傍觀屛帳几筵에 有圓影出이요
離見別有인댄 應非眼矚이어니 云何眚人目見圓影가
다시 아난아! 만약 둥근 그림자[圓影]가 등(燈)하고 관계없이 있는 것이라면
응당 곁에 있는 병풍·휘장·책장·자리 등을 볼 때에도 둥근 그림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 만약 눈[見]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라면 눈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어찌
하여 눈병이 걸린 사람에게만 둥근 그림자가 보이느냐?
㉢ 結顯妄源
是故應知하라 色實在燈이어든 見病爲影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둥근 그림자[色]는 등(燈)의 광명 그 자체인데, 다만 눈[見]이
병들었기 때문에 흐려져서 둥근 그림자[圓影]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了妄無體
影見俱眚이면 見眚非病이니 終不應言是燈是見이며 於是中有非燈非見이니 如第
二月이 泌體非影이라 何以故第二之觀은 捏所成故니 諸有智者는 不應說言호대
此捏根元이 是形非形이며 離見非見하니라
둥근 그림자와 눈의 피로가 모두 적생(赤眚)일지언정 적생임을 보는 것은 병이 아
니다. 그러므로 적생으로 인하여 보이는 둥근 그림자가 ‘등(燈)에서 나온 것이다, 눈
[見]에서 나온 것이다’고 한다거나 ‘등하고는 관계가 없다, 눈하고는 관계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이는 마치 제이월(第二月)이 달 자체도 아니요, 그렇다고 달그림자
[月影, 水中月]도 아닌 것과 같다. 왜냐하면 제이월을 보는 것은 눈을 눌러서 생긴
것이기에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눈[根元]을 눌러서 생긴 제이월이 ‘달[月影]
이다 달이 아니다’ 한다거나 ‘볼 수 있다[見] 볼 수 없다[非見]를 여의었다’고도 말하
지 않는다.
此亦如是目眚所成커늘 今欲名誰是見고하며 何況分別非燈非見이리요
이것도 그와 같아서 눈이 흐려져서 둥근 그림자[圓影]가 이루어졌는데 지금 무엇을
가지고 ‘등(燈)의 탓이다, 눈[見]의 탓이다’고 한다거나 ‘등의 탓이 아니다, 눈의 탓이
아니다’고 분별할 수 있겠느냐?
㈁ 喩同分 ㉠ 廣擧
云何名爲同分妄見고 阿難此閻浮提에 除大海水하고 中間平陸有三千洲하
니 正中大洲를 東西括量하면 大國凡有二千三百하고 其餘小洲는 在諸海
中호대 其間或有三兩百國하며 或一或二로 至于三十四十五十하니라
어떤 것을 동분망견(同分妄見)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염부제(閻浮提) 가운데 큰 바다의 물을 제하고 그 사이에 육지가 삼천 개
가 있다. 그리고 한 복판에 있는 가장 큰 대륙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헤아려
보면 그 안에 큰 나라가 이천 삼백 개가 있고, 그 밖에도 바다에는 작은 섬들이 무
수히 많은데 그 중에는 하나의 섬에 혹 삼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고, 혹은 한 두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며, 더 나아가 삼십 · 사십 · 오십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한다.
㉡ 局喩
阿難若復此中에 有一小洲호대 祗有兩國이어든 唯一國人同感惡緣할새 則
彼小洲의 當土衆生은 覩諸一切不詳境界호대 或見二日하고 或見兩月하며
其中乃至暈適珮玦와 彗孛飛流와 負耳虹蜺히 種種惡相을 但此國見하고
彼國衆生은 本所不見亦復不聞하니라
아난아! 그 가운데 하나의 작은 섬에 두 개의 나라가 있는데 그 중에 한 나라 사람
만이 좋지 못한 인연을 함께 만나게 되어 거기에 사는 모든 중생들이 일체의 상서롭
지 못한 경계를 보게 되었으니 말하자면 두 개의 해를 보기도 하고, 혹은 두 개의 달
을 보기도 하며, 그 가운데에 더 나아가 달무리 · 햇무리 · 해의 귀걸이 · 혜성 · 유성 ·
해무지개에 이르기까지 가지가지 좋지 못한 모습을 오직 업(業)이 같은 그 나라 사
람들만 볼 뿐, 같은 섬인데도 저쪽 나라 중생들은 업이 다르고 복이 달라서 보지도
듣지도 못 하는 것이다.
㉯ 法合 ㈀ 合別業 ㉠ 標告
阿難吾今爲汝하야 以此二事進退合明호리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이 두 가지 일에 대해서 앞뒤로 비유를 들어가면서
결론지어 밝혀 주리라.
㉡ 牒喩
阿難如彼衆生別業妄見으로 矚燈光中所現圓影이 雖現以境하나 終彼見
者目眚所成이니 眚卽見勞非色所造어니와 然見眚者終無見咎하니라
아난아! 저 중생들이 별업망견으로 등불 주위에 나타난 둥근 그림자를 보게 되는
데 이것이 비록 흡사 있는 것[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보이는 둥근 그림자
는 눈이 병듦[赤眚]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이러한 적생은 눈이 피로함으로
생긴 허상이지 색(色)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적생임을 보면
마침내 보는 성품[見]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 正合
例汝今日에 以目觀見山河國土及諸衆生인댄 皆是無始見病所成이라 見與見緣이
似現前境이나 元我覺明으로 見所緣眚이니 覺見卽眚어니와 本覺明心覺緣非眚이
니라
예를 들어 네가 지금 눈으로 산과 강 그리고 국토와 여러 중생들을 보는데 다 이것
이 시작이 없는 과거부터 보는 성품[見]이 병듦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견(見)과 견연(見緣)이 흡사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이것이 원래 나
의 깨어 있는 밝은 성품[覺明]이 소연(所緣)의 경계를 보아 눈에 적생이 낀 것이다.
그러므로 분별심[覺]으로 보면 눈에 적생이 끼지만 본래 깨어 있는 밝은 마음[本覺
明心]으로 대상에 반연(攀緣)하는 마음을 돌이켜 깨닫는 것은 적생이 아니다.
㉣ 牒答
覺所覺眚어니와 覺見眚中이라 此實見見이니 云何復名覺聞知見이리요
말하자면 경계[所覺]를 분별[覺]하는 것은 적생이지만 각을 돌이키는 것은 적생
이 아니다. 이는 정말 보는 것을 돌이켜 보는 것[見見]인데, 어찌하여 이를 ‘경계에
집착하여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것이다’ 할 수 있겠느냐?
㉤ 結告
是故汝今에見我及汝와 幷諸世間十類衆生한대 皆卽見眚이요 非見眚者니 彼見
精眞性非眚者일새 故不名見이니라
그러므로 그대가 지금 나와 그리고 모든 세간의 열 가지 중생을 보는데 이는 모두
보는 성품[見]에 적생이 낀 것이지, 보는 성품[見] 그 자체에 적생이 있는 것은 아
니다. 또 이와 같이 보는 성품의 정묘하고 진실함[見精眞性] 속에는 본래 적생이
없기 때문에 이를 보는 성품의 진실함[見]이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 合同分 ㉠ 牒喩
阿難如彼衆生의 同分妄見으로 例彼妄見의 別業一人컨대 一病目人은 同
彼一國하고 彼見圓影인 眚妄所生은 此衆同分으로 所見不祥인 同見業中
에 瘴惡所起하나니 俱是無始見妄所生이니라
아난아! 저 중생의 동분망견(同分妄見)을 다시 저 별업망견(別業妄見)의 한 사람
에게 비교할 때에 한 삶의 눈에 병이 난 것은 작은 섬의 한 나라에서 보는 장악(瘴
惡)과 같고, 그가 보는 둥근 그림자[圓影]인 적생의 허망은 이 곳 중동분(衆同分)
으로 보는 바 상서롭지 못한 경계인 동업(同業) 가운데 장악(瘴惡)으로 생긴 것과
같다.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성품이 잘못되어 생긴 것이다.
㉡ 正合
例閻浮提三千洲中과 兼四大海와 娑婆世界와 幷洎十方諸有漏t國과 及諸衆生
하건대 同是覺明의 無漏妙心의 見聞覺知하야 虛妄病緣으로 和合妄生하고 和合
妄死니라
염부제의 삼천 주와 네 가지 큰 바다와 사바세계와 그리고 시방의 여러 번뇌가 많
은 나라[有漏國]와 모든 중생들을 예로 든다면 이 모두가 본래부터 깨어 있어 번뇌
가 없는 묘한 마음[覺明無漏妙心]이 견문각지의 허망한 인연[病緣]과 화합하여 부
질없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다.
㊂ 擧要結答
若能遠離諸和合緣과 及不和合하면 則復滅除諸生死因하고 圓滿菩提의 不生滅
性하야 淸淨本心의 本覺常住리라
만약 모든 화합(和合)의 연(緣)과 불화합(不和合)의 연에서 멀리 벗어나면 곧 생
사의 가지가지 인(因)을 소멸하고, 나고 죽지 아니하는 깨달음의 성품을 원만하게
이루어 청정한 본심인 본래의 깨어 있는 마음[本覺]에 항상 머무르게 될 것이다.
③ 再淨餘塵 ㊀ 牒疑
阿難汝雖先悟 本覺妙明이 性非因緣이며 非自然性이니 而猶未明如是覺
元이 非和合性이며 及不和合이로다
아난아! 네가 비록 본래로 깨어 있어 묘하게 밝은[本覺妙明] 참성품이 인연도 아
니고 자연도 아니라는 것은 이해하였으나, 아직 이와 같은 깨달음[覺]의 근원이
화합(和合)으로 생긴 것도 아니고 불화합(不和合)으로 생긴 것도 아님을 알지 못
하는구나!
㊁ 辯淨 ㈎ 擧妄情
阿難吾今復以前塵問汝호리라 汝今猶以一切世間妄想和合의 諸因緣性으
로 而自疑惑하야 證菩提心和合起者로다
아난아! 내가 지금 다시 앞에 있는 대상을 가지고 너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도 일
체 세간에서 망상으로 화합하는 가지가지 인연의 성품을 알지 못한 까닭에 깨어
있는 마음도 ‘화합으로 생기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구나!
㈏ 正與辯 ㉮ 辯非和 ㈀ 總問
則汝今者妙淨見精이 爲與明和爲與闇和인가 爲與通和爲與塞和인가
너의 말대로 화합이라면 지금의 이 묘하게 맑은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妙淨見精]
이 밝음과 섞여서[和] 된 것이냐, 어두움과 섞여서 된 것이냐, 막힘과 섞여서 된
것이냐?
㈁ 別辯
若明和者인댄 且汝觀明에 當明現前하리니 何處雜見고 見相可辯어니와
雜何形象고
만약 밝음과 섞여서 된 것이라면 네가 밝은 것을 볼 때에 응당 밝음이 앞에 나타
날 것이니 어느 곳에서 보는 성품[見]이 섞여 있더냐? 보는 성품과 밝음의 현상은
가릴 수 있을 것이니 섞였다면 어떠한 모습이냐?
㈂ 反辯
若非見者인댄 云何見明이며 若卽見者인댄 云何見見이리요
만약 밝음이 견(見)이 아니라면 어떻게 밝음을 보며, 만약 (밝음이 견과 섞여서)
견이 되었다면 어떻게 견(見)이 견(見)을 볼 수 있겠느냐?
必見圓滿인댄 何處和明이며 若明圓滿인댄 不合見和니라
만약 반드시 견이 가득하다면 어느 곳에 밝음[明]이 섞일[和] 수 있으며, 만약 밝
음이 가득하다면 견 또한 거기에 섞일 수 없을 것이다.
㈃ 結成
見必異明이니 雜則失彼性明名字하리니 雜失明性인댄 和明非義니라
견(見)은 반드시 밝음[明]과는 다른 것이니 서로 섞이게 되면 그 밝은 성품[性明
名字]을 잃을 것이요, 섞여서 밝음의 묘정(妙淨)한 성품을 잃게 된다면 밝음과 섞
이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것이다.
㈄ 例明
彼暗與通及諸群塞如是하니라
이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힌 것에 대해서도 모두 이와 같다.
㉯ 辯非合 ㈀ 總問
復次阿難又汝今者에 妙淨見精은 爲與明合인가 爲與明合인가 爲與通合인가 爲
與塞合인가
다시 아난아! 너의 지금 묘정(妙淨)한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이 밝음과 더불어
합(合)해진 것이냐, 어두움과 더불어 합해진 것이냐, 막힘과 더불어 합해진 것이냐?
㈁ 別辯
若明合者인댄 至於暗時하야 明相已滅하고 此見卽不與諸暗合이어니 云何見暗이리
요
만약 보는 성품이 밝음과 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면 어두울 때에는 밝은 모습은 이미
사라졌고, 보는 성품이 어두움과는 합하지 않았을 것인데 어찌하여 어두움을 보느냐?
㈂ 反辯
若見暗時에 不與暗合인댄 與明合者함도 應非見明인댄 卽不見明인댄 云何明合이며
了明非暗가
만약 어두움을 볼 때에 어두움과 합하지 아니하고 어두움을 본다면 밝음과 합하게 되
었을 때도 응당 밝음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밝음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밝음과 합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또 밝음
은 어두움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느냐?
㈃ 例明
彼暗與通及諸群塞 亦復如是하니라
이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가지가지 막힘에 대해서도 이와 같다.”
㉰ 辯非非和 ㈀ 起疑
阿難白佛言호대 世尊如我思惟컨대 此妙覺元이 與諸緣塵과 及心念慮로
非和合耶니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저의 생각 같아서는, 이 묘정(妙精)한 깨
달음의 근원이 저 모든 경계[緣塵]와 마음[心]과 생각[念慮]으로 더불어 화합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 正辯 ㉠ 總問
佛言汝今又言호대 覺非和合이라하니 吾復問汝호리라 此妙見精이 非和合
者인댄 爲非明和아 爲非暗和아 爲非通和아 爲非塞和아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다시 ‘묘각(妙覺)은 화합이 아니다’고 하니 내가
다시 너에게 묻는다. 이 오묘한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妙見精]이 섞여 합한 것[和合]
이 아니라면 밝음과 섞인 것[和]이 아니냐, 어둠과 섞인 것이 아니냐, 통함과 섞인 것
이 아니냐, 막힘과 섞인 것이 아니냐?”
㉡ 別辯
若非明和인댄 則見與明이 必有邊畔하리니 汝且諦觀하라 何處是明이며 何
處是見고 在見在明에 自何爲畔고
만약 밝음과 섞인 것이 아니라면 보는 성품[見]과 밝음[明]에 반드시 경계선이 있어
야 할 것이다. 너는 자세히 보아라. 어디까지가 명(明)이며 어디까지가 견(見)이냐?
견이 있고 명이 있다면 어디에서부터 경계를 삼아야 하느냐?
㉢ 反辯
阿難若明際中 必無見者인댄 則不相及이라 自不知其明相所在리니 畔云何
成이리요
아난아! 만약 밝게 보일 때 너의 말대로 비화합(非化合)이어서 거기에 반드시 보는
성품[見]이 섞일 수 없다면 견(見)과 명(明)이 서로 미칠 수 없을 것이요, 이와 같이
명상(明相)의 소재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경계[畔]를 세울 수 있겠느냐?
㉣ 例明
彼暗與通及諸群塞 亦復如是하니라
이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에 대해서도 이와 같다.
㉱ 辯非非合 ㈀ 總問
又妙見精非和合者인댄 爲非明合가 爲非暗合가 爲非通合가 爲非塞合가
다시 이 묘정(妙淨)한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이 비화합(非和合)이라면 밝음과
합(合)한 것이 아니냐, 어두움과 합한 것이 아니냐, 통함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막힘과
합한 것이 아니냐?
㈁ 別辯
若非明合인댄 則見與明性相乖角호미 如耳與明이 了不相觸하야 見且不知
明相所在커늘 云何甄明合非合理리요
만약 밝음과 합(合)이 아니라면 견(見)과 명(明)의 성품이 서로 이그러지는 것이
마치 듣는 것과 밝음이 서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보더라도 명상(明相)
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합(合)과 비합(非合)의 이치를 밝게 분별할 수 있
겠느냐?
㈂ 例明
彼暗與通及諸群塞 亦復如是하니라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막힘에 대해서도 이와 같다.
⑽ 卽諸根塵 現如來藏 ① 括前總顯
阿難汝猶未明一切浮塵인 諸幻化相이 當處出生하야 隨處滅盡하나니 幻
妄稱相이니라 其性眞爲妙覺明體니 如是乃至五陰六入과 後十二處하야
至十八界의 因緣和合하야 虛妄有生하며 因緣別離하야 虛妄名滅이어늘
殊不能知生滅去來가 本如來藏常住妙明不動周圓한 妙眞如性하고 性眞
常中에 求於去來速悟生死인댄 了無所得이니라
아난아! 너는 아직도 가지가지로 들뜨고 장애하는 모든 허망한 것들이 그 자리
[當處]에서 출생하고 곳에 따라[隨處] 소멸하는 인연이기에 이러한 환망(幻妄)
을 생겼다 없어지는 허망한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성품은 참으로 불생불멸
(不生不滅)하면서도 묘하게 깨어 있는 밝은 것[妙覺明體]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이와 같이 더 나아가 오음·육입·십이처·십팔계가 다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하게
생기고, 인연이 흩어지면 허망하게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이 생멸거래가 그대로 본래 여래장(如來藏)의 항상 머물러 묘하
게 밝고[常住妙明] 어디에도 흔들림이 없이 두루 원만[不動周圓]한 묘진여성
(妙眞如性)임을 알지 못하고, 성품이 진실하고 항상한 그 자리에서 거래(去來)·
미오(迷吾)·생사(生死)를 구하려하니 마침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② 隨事別明 ㊀ 卽五陰明 ㈎ 總徵
阿難云何五陰이 本如來藏妙眞如性고
아난아! 어찌하여 오음이 본래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이겠느냐?
㈏ 別明 ㉮ 色陰 ㈀ 依眞起妄
阿難譬如有人이 以淸淨目觀晴明空에 唯一晴虛逈無所有라가 其人無故
히 不動目晴瞪以發勞하면 則於虛空別見狂華라가 復有一切狂亂非相인달
하니 色陰當知亦復如是하니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청정한 눈으로 맑게 개인 허공을 볼 때에 오직 맑은 허
공만 보일 뿐, 멀리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가 그 사람이 까닭 없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오래도록 똑바로 쳐다봄[業相]으로 인하여 눈이 피로하게 되면[轉
相] 점점 더 어지러워 뿌연 모습이 되는 것처럼 색음(色陰)의 모습도 그와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 辯妄無實
阿難是諸狂華가 非從空來에 非從目出이니 如是阿難아 若空來者인댄 旣
從空來라 還從空人이며 若有出入인댄 卽非虛空이요 空若非空하면 自不容
其華相起滅호미 如阿難體에 不容阿難하리라
아난아! 이 모든 헛보이는 광화(狂華)가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눈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허공에서 나왔으니 다시
허공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며, 만약 허공에 출입이 있다면 곧 허공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허공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허공에서 광화가 생긴다고 말할 수 없
는 것이 마치 아난의 몸에 다른 아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若目出者인댄 旣從目出할새 還從目入이며 卽此花性이 從目出故로 當合有見이요
若有見者인댄 去旣花空할새 旅合見眼이라 若無見者인댄 出其翳空할새 旋當翳眼이
며 又見花時에 目應無翳어늘 云何晴空을 號淸明眼고
만약 그 광화가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눈에서 나왔기 때문에 다시 눈으로 들어가
야 할 것이다. 또 광화의 성품이 눈에서 나왔기 때문에 응당 다른 것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고, 만약 볼 수 있다면 나갈 때에 이미 허공의 꽃을 보았으니 돌아올 때에는 응당
눈을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광화가 눈에서 나왔는데) 보는 성품[見]이 없다면 나갈 때에 이미 허공을 가리웠
으므로 돌아올 때에는 응당 눈을 가리워야 할 것이다.
또 허공의 광화를 볼 때에 (눈에서 이미 광화가 나갔으므로) 눈은 응당 가리움이 없(는
청정한 눈이)거늘, 어찌하여 (광화를 볼 때에 그 눈을 가리워진 눈이라 하고, 오히려 허
공에 광화가 없으면 그 광화가 눈으로 돌아왔을 것이므로, 그 눈은 오히려 가리워진 눈
이요 청정한 눈이 아닐 것인데 허공에 광화가 없어) 맑은 허공일 때 이를 청명한 눈[淸
明眼]이라 부르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色陰虛妄하야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색음의 모습이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受陰 ㈀ 依眞起妄
阿難譬如有人이 手足宴安하며 百骸調適하야 忽如忘生하야 性無達順이라가
其人無故히 以二手中에서 妄生澀滑冷熱諸相인달하니 受陰當知하라 亦復如
是하니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손발이 편안하고 모든 뼈마디가 적절히 조화되어 있으면
문득 아무 생각이 없어 성품에 어긋나고 순함이 없다가 그 사람이 까닭 없이 두 손바
닥을 허공에서 서로 비비면 (손이 피로하여) 두 손바닥에서 허망하게 껄끄럽거나 미
끄럽거나 차거나 뜨거운 여러 가지 현상이 생기듯이 수음(受陰)의 모습도 응당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 辯妄無實
阿難是諸幻觸이 不從空來하며 不從掌出하니 如是阿難아 若空來者인댄 旣
能觸掌이어늘 何不觸身고 不應虛空이 還擇來觸이니라 若從掌出인댄 應非
待合이니라
아난아! 이 모든 허환의 느낌[幻觸]이 허공에서 온 것도 아니며, 손바닥에서 나온 것
도 아니다. 이와 같이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나왔다면 이미 손바닥에 접촉하였는데
어찌하여 몸에는 접촉하지 못하느냐? 응당 허공이 선택하여 접촉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 허환의 느낌[幻觸]이 손바닥에서 나왔다면 반드시 손바닥이 합(合)함을 기
다려서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又掌出故로 合則掌知인댄 離卽觸入이니 臂腕骨髓가 應亦覺知入時蹤跡이요 必有
覺心이 知出知入인댄 自由一物이 身中往來이니 何待合知코자 要名爲觸이리요
또 허환의 느낌이 손바닥에서 나와 합할 때에 손바닥이 느낀다면 뗄 때에는 그러한
느낌[觸]이 손바닥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팔과 손목과 뼈에 응당 어떤 느낌이 있
어야 할 것이다.
정말 느끼는 마음이 있어서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안다면 스스로 어떤 물건이 있어서
몸속을 오고 가고 마음이 이를 느끼는데 어찌 손바닥이 합해져서 알아야만 느낌[觸]
이 있다고 하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受陰虛妄하야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수음의 모습이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
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想陰 ㈀ 依眞起妄
阿難譬如有人이 談說酢梅口中水出하고 思蹋懸崖足心酸澀하나니 相陰當
知亦復如是니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신 매실을 말하면 입안에서 침이 생기고, 까마득한 벼랑
에 서 있는 것을 상상하면 발바닥이 저려오는 것처럼 상음(想陰)의 현상도 이와 같
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辯妄無實
阿難如是酢說이 不從梅生하며 非從口入하나니 如是阿難아 若梅生者인댄
梅合自談어늘 何待人說이며 若從口入인댄 自合口聞어늘 何須待耳리요 若
獨耳聞인댄 此水何不耳中而出이리요
아난아! 이러한 ‘시다’는 말은 매실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입에서 생긴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아난아! 만약 매실에서 생긴 것이라면 매실이 반드시 스스로 말을 해야
할 것인데 어찌 사람이 말하기를 기다리겠느냐?
만약 입에서 나왔다면 입으로 들[聞]어야 할 것인데 어찌 남의 말을 귀로 듣고서야
‘시다’는 현상이 생기느냐? 또 이와 같이 오직 귀로 들어야만 침이 나오는데 이 침이
어찌 귀에서는 나오지 않느냐?
想蹋懸崖도 與說相類하니라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앞에서 설하는 것과 서로 같다.
㈂ 了妄卽眞
是故當知想陰虛妄하야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상음의 모습이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
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行陰 ㈀ 依眞起妄
阿難譬如暴流가 波浪相續하야 前際後際不相踰越하나니 行陰當知하라 亦
復如是하니라
아난아! 마치 사납게 흐르는 물결이 앞과 뒤를 어기지 않고 서로 연속되어 흐르는
것처럼 행음(行陰)의 현상도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辯妄無實
阿難如是流性이 不因空生이며 不因水有며 亦非水性이며 非離空水니라
如是阿難아 若因空生인댄 則諸十方無盡虛空이 成無盡流하야 世界自然
俱受淪溺하리며 若因水有인댄 則此暴流는 性應非水니 有所有相이 今應
現在니라 若卽水性인댄 則澄淸時에는 應非水體라 若離空水이나 空非有
外며 水外無流하니
아난아! 이와 같이 사납게 흐르는 성품[瀑流性,行陰]이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니
고 물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또한 물 그 자체도 아니고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곧 시방의 모든 허공이 끝없는
흐름을 이룰 것이니 세계가 자연 모두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만약 사납게 흐르는 성품[瀑流性]이 물에서 나왔다면 이 폭류성은 응당 물 그 자
체와는 다를 것이기에 본래 있었던 물[有]과 있어야 할 [所有] 폭류의 모습[相]
이 지금 서로 따로 드러나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폭류성이 그대로 물이라면 폭류
가 고요한 때에는 응당 물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폭류성이 ‘허공이나
물을 떠나 따로 있다’고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허공은 밖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물
밖에 따로 물의 흐름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了妄卽眞
是故當知行陰虛妄하야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행음의 모습이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識陰 ㈀ 依眞起妄
阿難譬如有人이 取頻伽甁하야 塞其兩孔滿中擎空하야 千里遠行하야 用餉他
國인달하니 識陰當知하라 亦復如是하니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빈가병(頻伽甁)의 두 구멍을 막고, 그 가운데에 허공을
가득히 채워 멀리 천리나 되는 다른 나라에 가서 사용하려 하는 것처럼 식음(識陰)
의 현상도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辯妄無實
阿難如是虛空이 非彼方來며 非此方入이니라
아난아! 그러나 허공 그 자체는 저쪽에서 온 것도 아니며, 이쪽에서 들어간 것도
아니다.
如是阿難아 若彼方來인댄 則本甁中에 於本甁地에는 應少虛空이며 若此
方入인댄 開空倒甁에 應見空出하리라
아난아! 만약 허공이 저쪽에서 온 것이라면 본래 병 가운데에 이미 허공을 담아
가지고 갔으므로, 본래의 병이 있던 곳에는 허공이 조금 줄어져야 할 것이다. 만약
병 속으로 들어갔다면 구멍을 열고 병을 기울일 때에 허공이 나오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了妄卽眞
是故當知識陰虛妄하야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식음의 모습이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大佛頂 如來密因 修證了義 諸菩薩萬行 首楞嚴經 제3권
㊁ 卽六入 明如來藏 ㈎ 總徵
復次阿難아 云何六入이 本如來藏妙眞如性고
아난아! 어찌하여 육입(六入)이 본래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이겠느냐?
㈏ 別明 ㉮ 眼入 ㈀ 依眞起妄
阿難卽彼目晴의 瞪發勞者어니와 兼目與勞가 同是菩提의 瞪發勞相이니라
아난아!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오래도록 똑바로 바라보아[瞪] 눈이 피로[勞]해
지면 안입(眼入,보는)의 현상이 생기는데, 이러한 눈과 피로가 다 깨달음[菩提]이
밝음을 고집[瞪]하여 그로 인한 미혹[勞,피로]으로 생긴 현상이니라.
㈁ 辯妄無實
因于明暗二種妄塵으로 發見居中吸此塵象하니 名爲見性어니와 此見離彼
明暗二塵코는 畢竟無體하니라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보는 것[見]이 생겨서 그 가운데
가지가지 경계[塵像]를 흡입하니 이것을 보는 성품[見性]이라 하지만 이러한 보
는 성품이 저 명암(明暗)의 두 가지 경계를 여의고는 필경 그 실체가 없을 것이다.
如是阿難當知是見非明暗來하고 非於根出이며 不於空生이니라
이와 같이 아난아! 응당 이 보는 성품(見)은 명암(明暗)에서 온 것도 아니고, 안
근(眼根)에서 온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허공[우연]에서 생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何以故若從明來인댄 暗卽隨滅이니 應非見暗이요 若從暗來인댄 明卽隨滅이니
應無見明하리라
왜냐하면 보는 성품이 만약 밝음에서 왔다면 어두워질 때에는 곧 따라 없어질 것
이니 마땅히 어두움을 보지 못해야 할 것이요, 만약 어두움에서 왔다면 밝아질 때
에 곧 따라 없어질 것이니 마땅히 밝음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다.
若從根生인댄 必無明暗이니 如是見精本無自性이요 若於空出인댄 前矚塵象이
니 歸當見根이며 又空自觀이니 何關汝入이리요
만약 보는 성품이 눈에서만 생겼다면 명암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니 이와 같
이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 그 자체를 세울 수 없을 것이요, 만약 허공에서만
나왔다면 눈앞에서 사물의 형상을 보았기에 돌아갈 때에는 응당 눈을 보아야할 것
이며 또 허공이 스스로 보는데, 너의 안입(眼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眼入虛妄하여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보는 안입(眼入)의 현상이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耳入 ㈀ 依眞起妄
阿難譬如有人이 以兩手指急塞其耳하면 耳根勞故頭中作聲어니와 兼耳
與勞가 同是菩提瞪發勞相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두 손가락으로 갑자기 귀를 막으면 귀[耳根]
가 피로[勞]해진 까닭에 머리 속에서 소리가 들리게 되는데 이러한 귀와 피로가
다 깨달음[菩提]이 밝음을 고집[瞪]하여 그로 인한 미혹[勞,피로]으로 생긴 현상
이니라.
㈁ 辯妄無實
因于動靜二種妄塵으로 發聞居中吸此塵象하니 名聽聞性어니와 此聞離彼
動靜二塵코는 畢竟無體니라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들음[聞]이 생겨서 그 가운데 대
상[塵象]을 흡입하기에, 이를 듣는 성품[聽聞性]이라 부르지만 이 듣는 성품이 동
정(動靜)의 두 가지 경계를 떠나서는 필경 그 실체가 없다.
如是阿難當知 是聞非動靜來며 非於根出이며 不於空生이라 何以故오 若
從靜來인댄 動卽隨滅이나 應非聞動이요 若從動來인댄 靜卽隨滅이니 應無
覺精이요 若從根生인댄 必無動靜하리니 如是聞體本無自性이요 若於空出
인댄 有聞成性이니 卽非虛空이며 又空自聞커니 何關汝入이리요
이와 같이 아난아! 그대는 응당 듣는 성품이 동정(動靜)에서 온 것도 아니며, 귀
(根)에서 온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고요함으로부터 왔다면 움직일 때에는 곧 따라 없어질 것이니 응당 움직임을 듣지
못해야 할 것이요, 만약 움직임에서 왔다면 고요해질 때에는 곧 따라 없어질 것이
니 응당 고요함을 듣지 못해야 할 것이다. 만약 듣는 성품이 귀(根)에서 생긴다면
동정(動靜)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이니 이와 같이 듣는 것[聞體]이 본래로 자성
(自性)이 없을 것이다. 만약 허공에서 나왔다면 허공에 듣는 작용이 있어 그것으로
성품을 이루었으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며, 또 허공이 스스로 들음이 있는데, 너의
이입(耳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耳入虛妄하야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듣는 이입(耳入)의 현상이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鼻入 ㈀ 依眞起妄
阿難譬如有人이 急畜其鼻하여 畜久成勞하면 則於鼻中有冷觸하고 因觸
分別通塞虛實하며 如是乃至諸香臭氣어니와 兼鼻與勞가 同是菩提瞪發勞
相이니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코를 급히 들이키고 들이키기를 오래하면 피로[勞]가
생겨 코[根]에서 차가움[冷觸]을 맡게 되고, 그 차가움을 맡음으로 인하여 트임과
막힘과 허(虛)와 실(實)을 분별하며, 이와 같이 더 나아가 모든 향기와 구린내에
이르기까지 비입(鼻入)의 현상이 있게 되는데, 이러한 코와 피로가 다 깨달음이
밝음을 고집[瞪]하여 그로 인한 미혹[勞,피로]으로 생긴 현상이니라.
㈁ 辯妄無實
因于通塞二種妄塵으로 發聞居中吸此塵象하니 名齅聞性어니와 此聞離彼
通塞二塵코는 畢竟無體니라 當知是聞이 非通塞來이며 非於根出이며 不
於空生이니라 何以故若從通來인댄 塞自隨滅이니 云何知塞하며 如因塞有인댄
通卽無聞이니 云何發明香臭等觸이리요 若從根生인댄 必無通塞이니 如是聞
機가 本無自性이요 若從空出인댄 是聞自當廻齅汝鼻이며 空自有聞커니
何關汝入이리요
트이고 막히는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맡음[聞]을 발하여 그 가운데에서
대상을 흡입하니 맡는 성품[齅聞性]이라 부르지만 이 맡는 성품이 저 트이고 막히
는 두 가지 경계를 여의고는 필경 실체가 없는 것이다.
아난아! 응당 이 맡는 성품이 트이고 막힘에서 온 것도 아니고, 코[根]에서 온 것
도 아니며,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맡는 성품이 만약 트인 데서 왔다면 막힐 때에는 곧 트임을 따라 없어질
것이니 어떻게 막힘을 알며, 만약 통함으로 인하여 있다면 트인다면 곧 맡을 수 없
을 것이니 어떻게 향기와 취기 등의 감촉을 분별하겠느냐?
만약 맡는 성품이 코 자체에서 생긴다면 트이거나 막히거나 전혀 관계가 없을 것
이니 이와 같이 맡는다는 것[聞機]이 본래로 자성(自性)이 없을 것이다.
만약 맡는 성품이 허공에서 왔다면 응당 돌이켜 너의 코를 맡을 수 있어야 할 것이
요, 허공이 스스로 맡거니 너의 비입(鼻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鼻入虛妄하야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맡는 비입(鼻入)의 현상이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舌入 ㈀ 依眞起妄
阿難譬如有人이 以舌舐吻하며 熟舐令勞에 其人若病하면 則有苦味하고
無病之人이면 微有甛觸인달하야 由甛與苦로 顯此舌根하고 不動之時에는
淡性常在어니와 兼舌與勞가 同是菩提瞪發勞相이니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혀로 입술을 핥아 오래되면 피로[勞]가 생기는데, 그
사람이 만약 병(病)이 있으면 쓴맛을 느끼게 되고, 병이 없으면 약간의 단맛을 느
끼는 것처럼 이러한 달고 쓴 것[甛苦] 때문에 저 설근(舌根)이 드러나게 되고, 핥
지 아니할 때에는 담담함[淡性]이 항상 따르게 되는데, 이러한 혀와 피로가 다 깨
달음이 밝음을 고집하여 그로 인한 미혹[勞,피로]으로 생긴 현상이니라.
㈁ 辯妄無實
由甛苦淡二種妄塵으로 發知居中吸此塵象하니 名知味性이니와 此知味性
이 離彼甛苦及淡二塵코는 畢竟無體니라 如是阿難當知 如是嘗苦淡知가
非甛苦來며 非因淡有이며 不於根出이며 不於空性이니라 何以故 若甛苦
來인댄 淡卽知滅이니 云何知淡하며 若從淡出인댄 甛卽知亡이니 復云何
知甛苦二相이리요 若從苦生인댄 必無甛淡及與苦塵이니 斯知味根이 本
無自性하리라 若於空出인댄 虛空自味일새 非汝口知이며 又空自知커니
何關汝入이리요
이러한 달고 쓴 것[甛苦]과 담담함[淡]의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앎이 생
겨서 그 가운데 대상을 흡입하니 이를 맛을 아는 성품[知味性]이라 부르지만 이러
한 맛을 아는 성품이 저 달고 쓰고 그리고 담담함의 두 가지 경계를 여의고는 필경
실체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응당 이와 같이 달고 쓰고 담담함을 맛보아 아는 성품이 달고
쓴 것에서 온 것도 아니고, 담담함으로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혀[根]에서
나온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허공에서 생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만약 허공에서 나왔다면 허공이 스스로 맛보기 때문에 응당 너의 입[口]은 알지
못해야 할 것이며, 또 허공 스스로가 아는데 너의 설입(舌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
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舌入虛妄하야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이 맛보는 설입(舌入)의 현상이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
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身入 ㈀ 依眞起妄
阿難譬如有人이 以一冷手로 觸於熱手함에 若冷熱多하면 熱者從冷하고
若熱功勝하면 冷者成熱인달하야 如是以此合覺之觸으로 顯於離知어니와
涉勢若成함은 因于勞觸이니 兼身與勞가 同是菩提瞪發勞相이니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찬 손으로 따뜻한 손을 잡았을 때[觸]에 만약 찬 기운
이 많으면 따뜻한 손이 차가와질 것이고, 따뜻한 기운이 많으면 찬 손이 따뜻해지
는 것처럼, 이와 같이 손 그 자체에는 분별이 없으나 합하여 느끼는 감촉 때문에
차고 더움의 다름과 합하고 떨어짐의 앎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서로 섭렵(涉獵)
하는 세력이 이루어지는 것은 다 피로한 감촉 때문이요, 더 나아가서는 몸과 피로
가 다 깨달음이 밝음을 고집[瞪]하여 그로 인한 미혹[勞,피로]으로 생긴 현상이
니라.
㈁ 辯妄無實
因于離合二種妄塵으로 發覺居中吸此塵象하니 名知覺性어니와 此知覺
體가 離彼離合의 違順二塵畢竟無體니라 如是阿難當知是覺非離合來며
非違順有이며 不於根出이며 又非空性이니라 何以故若合時來인댄 離當
已滅이니 云何覺離리요 違順二相亦復如是니라 若從根出인댄 必無離合
違順四相이니 卽汝身知元無自性이요 必於空出인댄 空自知覺커니 何關
汝入이리요
여의고 합하는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분별이 생겨서 그 가운데 대상을
흡입하니 이것을 아는 성품[知覺性]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아는 성품의 실
체가, 여의고 합하는 것과 어기고 따르는 두 가지 허망한 경계를 떠나서는 필경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이러한 아는 성품[知覺性]이 여의고 합하는 곳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어기고 따르는 것으로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이 아는 성품이 합할 때에 온 것이라면 떨어질 때에는 곧 합을 따
라 없어질 것이니 어떻게 떨어짐을 알며, 어기고 따르는 두 가지 경계도 마찬 가
지이니라.
만약 아는 성품[知覺性]이 몸에서 생긴다면 반드시 떨어지고 합하고 어기고 따
르는[離合違順] 네 가지 경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이니 너의 몸이 아는 것은
원래 로 자성이 없을 것이다.
만약 허공에서 나왔다면 허공이 스스로 아는데 너의 신입(身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身入虛妄하야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느끼는 신입(身入)의 현상이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意入 ㈀ 依眞起妄
阿難譬如有人이 勞捲卽眠하고 睡熟便寢하여 覽塵所億하고 失億爲忘
하나니 是其顚倒의 生住異滅이라 吸習中歸하여 不相踰越하니 稱意知根
어니와 兼意與勞가 同是菩提瞪發勞相이니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피곤하면 자고, 잠을 다 자고는 문득 깨어서 견계를 보
고는 기억이 사라지면 망각하게 되는데, 이것이 의입(意入)의 전도(顚倒)된 생주
이멸(生住異滅)의 모습이다.
이와 같이 전에 익혔던 추억 등 고정관념[法塵]을 기억하여 그 가운데 돌고 돌아
서로 차례를 어기지 아니하니 이것을 뜻으로 아는 근[意知根]이라 칭하는데, 이러
한 의지근(意知根)과 피로[勞]가 다 깨달음이 밝음을 고집[瞪]하여 그로 인한 미
혹[勞,피로]으로 생긴 현상이니라.
㈁ 辯妄無實
因于生滅二種妄塵으로 集知居中吸攝內塵호대 見聞逆流流不及地하니
名覺知性어니와 此覺知性이 離意無體니라
생하고 멸하는 두 가지 허망한 경계 속에서 아는 것을 모아 그 가운데 의식 속의
일[內塵]을 집착하는 가운데 보고 들었던 것을 거슬러 아는 것[逆流覺知]이니 이
것을 아는 성품[覺知性]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는 성품이 깨어나
고 잠드는 생멸의 두 가지 경계를 떠나서는 필경 그 실체가 없다.
如是阿難當知하라 如是覺知之根이 非寤寐來며 非生滅有며 不於根出이
며 亦非空生이니 何以故苦從寤來인댄 寐卽隨滅하리니 將何爲寐며 必生
時有인댄 滅卽同無하리니 令誰受滅이며 若從滅有인댄 生卽滅無하리니 誰
知生者리요 若從根出인댄 寤寐二相隨身開合이라 離斯二體하면 此覺知
者가 同於空花하야 畢竟無性하리라 若從空性인댄 自是空知어니 何關汝
入이리요
이와 같이 아난아! 응당 이러한 아는 근성[覺知之根]이 깨어나고 잠드는 것에서
온 것도 아니고, 생멸로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의근[根]에서 나온 것도 아니요,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아는 근성[覺知之根]이 깨어 있음에서 온 것이라면 잠을 잘 때는
곧 따라 없어질 것이니 누가 잠자는 것이 되느냐?
만약 반드시 생길 때에 있는 것이라면 멸할 때에는 곧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니 누
가 멸을 받겠느냐? 만약 멸로부터 있는 것이라면 생길 때에는 곧 멸하녀 없을 것
이니 누가 생긴 줄을 알겠느냐?
만약 의근[根]에서 나온 것이라면 깨어나고 잠드는 두 가지 모습은 본래 몸의 개
합(開合)을 따르는 것이기에 깨어나고 잠드는 두 가지를 여의고는 아는 근성[覺
知之根]이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서 필경 체성이 없을 것이다.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허공 스스로가 아는 것인데, 너의 의입(意入)과 무슨 상
관이 있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意入虛妄하야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아는 의입(意入)의 현상이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㊂ 卽十二處 顯如來藏 ㈎ 總徵
復次阿難아 云何十二處가 如來藏妙眞如性고
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십이처(十二處)가 본래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
이겠느냐?
㈏ 別明 ㉮ 眼色處 ㈀ 擧相問處
阿難汝且觀此 祗陀樹林及諸泉池리니 於意云何오 此等爲是色生眼
見가 眼生色相가
아난아! 너는 우선 이 지타림과 그리고 여러 샘과 못[泉池]을 보았을 것이니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밖의 경계[色]가 보는 작용[眼見]을 내었느냐? 눈[眼
根]이 경계[色]의 차별상을 내었느냐?
㈁ 辯處無實 ㉠ 依眼辯
阿難若復眼根이 生色相者인댄 見空非色應銷이요 銷卽顯發이 一切
都無하라 色相旣無거늘 誰明空質이리요 空亦如是하니라
아난아! 만약 눈이 앞에 보이는 모든 색상(色相)을 내었다면 지금 허공에 색
상이 없으니 색의 성품이 응당 소멸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멸했다면 나타
났던 모든 것이 없을 것이니 색상이 이미 없는데 어떻게 허공의 형질(形質)을
밝힐 수 있겠느냐? 허공도 마찬가지이다.
㉡ 依境辯
若復色塵이 生眼見者인댄 觀空非色이니 見卽銷亡이요 亡卽都無리니
誰明空色이리요
만약 다시 밖의 경계[色塵]가 보는 것[眼見]을 생기게 한다면 지금 허공을
볼 때에 색(色)이 없으므로 보는 것[見]이 소멸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미
소멸했다면 전혀 볼 수 없을 것이니 어떻게 허공의 형색(形色)을 밝힐 수 있
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見與空色이 俱無處所하고 卽色與見二處虛妄하여 本
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보는 눈[見]과 보여지는 대상[色]과 허공이 모두 처소가 없
어 색(色)과 눈[見]의 이 두 곳이 다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耳聲處 ㈀ 擧相問處
阿難아 汝更聽此祗陀園中에 食辨擊鼓하고 衆集撞鐘하여 鐘鼓音聲
이 前後相續하리니 於意云何오 此等爲是聲來耳邊가 耳往聲處가
아난아! 너는 다시 이 지타원(祗陀園)에서 음식이 마련되면 북을 치고 대중
이 모이면 종을 쳐서 북소리와 종소리가 계속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어떻
게 생각하느냐? 이러한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 소리가 귓가에로 온 것이냐,
귀가 소리 있는 곳으로 간 것이냐?
㈁ 辯處無實 ㉠ 依根辯
阿難若復此聲이 來於耳邊인댄 如我乞食室羅筏城함에 在祗陀樹하야
는 卽無有我인달하야 此聲必來阿難耳處인댄 目連迦葉은 應不俱聞어
늘 何況其中에 一千二百五十沙門이 一聞鐘聲하고 同來食處아
아난아! 만약 이러한 소리가 귓가에로 와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내가 실라벌
성에서 걸식할 때에 지타림에는 내가 없는 것처럼 이 소리가 반드시 아난의
귓가에로 갔다면 목련과 가섭은 응당 함께 듣지 못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
찌하여 그 가운데 1250의 사문(沙門)들이 일시에 종소리를 듣고 모두 식당으
로 모이게 되느냐?
㉡ 依境辯
若復汝耳가 往彼聲邊인댄 如我歸住 祗陀樹中함에 在室羅城하야는
卽無有我인달하야 汝聞鼓聲에 其耳其往擊鼓之處리니 鐘聲齊出하야
도 應不俱聞어늘 何況其中에 象馬牛羊種種音聲가
만약 너의 귀가 소리 나는 곳으로 가서 듣는 것이라면 네가 지타림에 들었을
때에는 실라벌성에 자아(自我)가 없는 것처럼 네가 북소리를 들을 때에는 그
귀가 이미 북을 치는 곳으로 갔으니 여기에서 종소리가 계속 이어져 나더라
도 응당 이를 듣지 못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가운데 종소리는 말
할 것도 없고 코끼리·말·소·양들의 가지가지 음향까지도 다 듣게 되느냐?
若無往來하면 亦復如是이니라
만약 귀와 소리가 왕래하는 것이 아니라면 들음도 없어야 할 것이다.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聽與音聲이 俱無處所하고 卽聽與聲二處虛妄하여 本
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듣는 것[聽]과 음성이 모두 처소가 없고, 듣는 것[聽]과 소리
[聲]의 두 곳[二處]이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
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鼻香處 ㈀ 擧相問處
阿難아 汝又齅此爐中旃壇하라 此香若復然於一銖라도 室羅筏城四十里
內에 同時聞氣하리니 於意云何 此香爲復生旃壇木가 生於汝鼻아 爲生
於空가
아난아! 너는 다시 이 향로 가운데에 전단향 냄새를 맡아 보아라! 만약 이 향을
한 개만 태워도 실라벌성 40리 안에서는 모두 동시에 그 향기를 맡게 될 것이다.
네 생각에 어떠하냐? 이 향기가 전단목에서 생긴 것이냐, 너의 코에서 생긴 것이
냐, 허공에서 생긴 것이냐?
㈁ 辯處無實 ㉠ 依根辯
阿難若復此香生於汝鼻인댄 稱鼻所生이라 當從鼻出이요 鼻出旃壇이니
云何鼻中에 有旃壇氣리요 稱汝聞香인댄 當於鼻入커늘 鼻中出香說聞
非義니라
아난아! 만약 이 향기가 너의 코에서 생겼다면 코에서 나온 것이라 말했듯이 응
당 코로부터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코가 전단(栴檀)이 아니니 어떻게 코에
전단의 향기가 있겠느냐? 만약 코에서 향기가 나와 네가 이 향기를 맡는다고 하
면 응당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거늘, 콧속에서 나오는 향기를맡는다
고 하는 것은 그 뜻이 옳지 않다.
㉡ 依境辯
若生於空인댄 空 性常恒이니 香應常在어늘 何藉爐中에 爇此古木이리요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허공의 성품은 항상한 것이기에 향기도 응당 있어
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향로에다 고목을 태워야만 향기가 있느냐?
若生於木인댄 卽此香質因爇成烟하니 若鼻得聞에 合蒙烟氣어늘 其烟騰空하
여 未及遙遠한대 四十里內云何已聞가
만약 향나무에서 생긴다면 이 향기의 본질이 태움으로 인하여 연기가 되었으니
만약 코로 냄새를 맡을 때에 응당 연기가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연기
가 공증으로 올라가 멀리 퍼지지도 않았는데 어찌하여 40리 안에서 벌써 그 냄
새를 맡게 되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香鼻與聞이 俱無處所하고 卽齅與香二處虛妄하여 本非
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이 향기와 코와 맡는 것[聞]이 모두 처소가 없고, 맡는 것과 향
기의 두 곳이 다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
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舌味處 ㈀ 擧相問處]
阿難汝當二時에 衆中持鉢하야 其間惑遇酥酪醍醐하면 名爲上味니라 於
意云何오 此味爲復生於空中가 生於舌中가 爲生食中가
아난아! 네가 항상 두 때에 대중 가운데에서 발우(鉢盂)를 들고 걸식을 하는데,
그 사이에 혹 소락제호(酥酪醍醐)를 만나면 이를 최고의 맛이라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맛이 허공에서 생긴 것이냐, 혀에서 생긴 것이냐, 음식에서 생긴
것이냐?
㈁ 辯處無實 ㉠ 依根辯
阿難若復此味가 生於汝舌한댄 在汝口中하여 秪有一舌한대 其舌爾時에 已
成酥味하니 遇黑石蜜이라도 應不推移리라 若不變移인댄 不名知味하고 若變
移者인댄 舌非多體이니 云何多味를 一舌之味리요
아난아! 만약 이 맛이 너의 혀에서 생겼다면 너의 입 속에는 다만 혀가 하나뿐
인데 그 혀가 그때에 이미 소락제호(酥酪醍醐)의 맛을 이루었으니 단단한 엿을
만나더라도 응당 그 맛이 달라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만약 달라지지 않는다면
맛을 안다고 할 수 없고, 만약 달라진다면 혀는 여러 개의 몸이 아닌데 어떻게
여러 가지 맛을 한 개의 혀로 알 수 있겠느냐?
㉡ 依境辯
若生於食인댄 食非爲識한대 云何自知리요 又食自知인댄 卽同他食이니 何
預於汝완대 名味之知리요
만약 음식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음식은 분별하는 인식[識]이 있지 아니한데 어
떻게 스스로 알겠느냐? 또 음식이 스스로 안다면 곧 다른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은
데, 너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맛을 안다고 하겠느냐?
若生於空인댄 汝噉虛空하라 當作何味오 心其虛空이 若作鹹味인댄 旣鹹汝舌
일새 亦鹹汝面이요 卽此界人同於海魚하며 卽常受鹹일새 了不知淡이로다 若
不識淡인댄 亦不覺鹹이며 必無所知인댄 云何名味리요
만약 허공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네가 허공을 씹어 보아라. 무슨 맛이 있더냐? 허
공이 만약 짠맛을 짓는다면 이미 너의 혀를 짜게 하였으므로 또한 너의 얼굴도 짜
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곧 이 세계의 사람들은 모두 바다 속의 고기와 같을
것이며, 이미 항상 짠 것 만을 수용했기에 담담한 것은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담
담함을 알지 못한다면 또한 짠 것도 깨닫지 못할 것이며, 반드시 아는 바가 없다
면 어떻게 맛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舌味與嘗이 俱無處所하고 卽嘗與味二俱虛妄하여 本非
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혀와 맛과 맛보는 것[嘗]이 모두 처소가 없고, 맛보는 것[嘗]과
맛[味]의 두 곳이 다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身觸處 ㈀ 擧相問處
阿難汝常晨朝에 以手摩頭하리니 於意云何 此摩所知할새 誰爲能觸고 能爲
在手아 爲復在頭아
아난아! 너는 항상 새벽마다 손으로 머리를 만질 것이다. 그때 너의 생각이 어떠했느
냐? 만져서 느낌이 있을 때에 무엇이 감촉을 생기게 하느냐? 촉을 생기게 하는 것이
손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머리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 辯處無實 ㉠ 依手辯
若在於手인댄 頭卽無知어늘 云何成觸가
만약 감촉을 생기게 하는 것이 손에 있다면 머리는 앎[觸知]이 없어야 하는데, 어찌
하여 머리에서도 앎이 이루어지느냐?
㉡ 依頭辯
若在於頭인댄 手卽無用어늘 云何名觸가
만약 촉을 생기게 하는 것이 머리에 있다면 손은 곧 아는 작용이 없어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손에 ‘느껴 아는 것이 있다’고 이름하느냐?
若各各有인댄 卽汝阿難에 應有二身이요 若頭汝手가 一觸所生인댄 卽手與
가 當爲一體리니 若一體者인댄 觸卽無成이요 若二體者인댄 觸誰爲在아
在能非所하고 在所非能이니 不應虛空이 與汝成觸이리라
만약 감촉을 생기게 하는 것이 머리와 손에 있다면 너 아난에게 응당 두 몸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머리와 손이 하나의 감촉으로 생긴다면 곧 손과 머리가 응당 한
몸이 되어야 할 것이니 만약 한 몸[一體]이라면 느낌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촉(觸)은 하나인데 몸이 둘[二體]이라면 촉이 몸에 있다는 말이냐? 능촉(能觸)
에 있다면 소촉(所觸)에는 없을 것이고, 소촉에 있다면 능촉에는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응당 허공이 너로 더불어 촉처(觸處,느낌)를 느끼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覺觸與身이 俱無處所하고 卽身與觸二處虛妄하여 本非因緣
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이 느끼는 것[覺觸]과 몸[身]이 모두 처소가 없고, 몸과 촉의 두 곳이
다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依法處 ㈀ 擧相問處
阿難汝常意中에 所緣善惡無記三性으로 生成法則하니 此法爲復卽心所生
가 爲當離心하고 別有方所아
아난아! 너의 항상한 의근(意根) 가운데 대상에 반연[所緣]하는 선(善)과 악(惡)과
무기(無記)의 세 가지 성품으로 법칙(法則)을 이루었으니 이 법칙이 마음에서 생긴
이냐, 마음을 여의고 따로 장소가 있어 거기에서 나온 것이냐,
㈁ 辯處無實 ㉠ 依根辯
阿難若卽心者인댄 法則非塵일새 非心所緣어늘 云何成處리요
아난아! 만약 법칙(法則)이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면 법칙은 곧 경계[塵]로서의 의미
를 잃게 되어 마음의 반연할 바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 어떻게 의법처(意法處)가 이
어지겠느냐?
㉡ 依境辯
若離於心하고 別有方所인댄 卽法自性이 爲知非知아 知卽名心어늘 異汝非
하며 同他心量이거늘 卽汝卽心인댄 云何汝心更二於汝리요 若非知者인댄
此塵旣非色聲香味와 離合冷煖及虛空相하리니 當於色空에 都無表示하고
不應人間의 更有空外이며 心非所緣어니 處從誰立이리요
만약 법칙(法則)이 마음을 여의고 따로 처소가 있다면 그 법칙의 자성에 앎이 있느
냐, 앎이 없느냐?
만약 법칙의 자성에 앎이 있다면 마음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너의 마음을 떠나 따로
로 있으니 너와는 다르고, 그렇다고 앎이 있으니 경계라고도 할 수 없다. 이는 마치
타인의 마음과 같은데 이를 굳이 ‘너의 마음이다’고 한다면 마음이 곧 두 개가 되나니
어떻게 너의 마음이 다시 너에게 둘이 있을 수 있겠느냐?
만약 따로 있는데 앎이 없다면 이러한 법진(法塵)은 이미 물질[色]이나 소리[聲] 향
[香] 맛[味] 그리고 떨어지고[離] 합(合)하며 차고[冷] 따뜻함[煖]과 허공(虛空)
의 현상이 아닌데 어떻게 어느 곳에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지금 색(色)이나 허공 등으로 도무지 표시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응당 사람이 생각
할 수 없는 ‘허공 밖에 있다’할 수도 없는 것이며, 결국 앎이 없다면 있는 것이 아니어
서 마음이 이미 대상을 반연(攀緣)할 수 없을 것인데, 의법처(依法處)가 어떻게 성립
되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法則與心俱無處所하고 卽意與法二處虛妄하야 本非因緣非
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법칙과 마음이 모두 처소가 없고, 마음과 법의 이 두 가지가 허망하
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㊃ 卽十八界 明如來藏 ㈎ 總徵
復此阿難아 云何十八界가 本如來藏妙眞如性고
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이 십팔계(十八界)가 본래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이겠
느냐?
㈏ 別明 ㉮ 眼色界 ㈀ 擧相問界
阿難如汝所明으로 眼色爲緣하야 生於眼識하니 此識爲復因眼所生이라 以
眼爲界아 因色所生이라 以色爲界아
아난아! 밝힌 것처럼 눈[眼]과 대상[色]이 연(緣)이 되어 안식(眼識)이 생기는 것
이라면 이 식(識)이 눈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눈으로써 계(界)를 삼아야 하느
냐, 색(色)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색으로써 계를 삼아야 하느냐?
㈁ 辯界無實 ㉠ 依根辯
阿難若因眼生인댄 旣無色空하면 無可分別이어니 縱有汝識인들 欲將何用
汝見又非靑黃赤白이라 無所表示이니 從何立界리요
아난아! 만약 이 안식(眼識)이 눈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이미 색도 허공도 없
을 것이니 너의 식(識)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너의 보는 눈[見]은 볼
수 있는 청황적백(靑黃赤白)이 아니어서 표시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계(界)를 세
울 수 있겠느냐?
㉡ 依境辯
若因色生인댄 空無色時에 汝識應滅하리니 云何識知是虛空性이며 若色變
에 汝亦識其色相遷變인댄 汝識不遷커늘 界從何立리요
만약 색(色)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허공에 색이 없어졌을 때에 너의 의식[識]
도 응당 멸할 것이니 어떻게 허공의 성품을 알겠느냐? 만약 색이 변할 때에 네가 또
한 그 색상(色相)의 변함을 안다면 너의 식(識)은 ‘홀로 변하지 않는 것’이 되는데,
너의 안색계(眼色界)가 무엇을 의지하여 성립되겠느냐?
縱變卽變이니 界上自無이요 不變卽恒이니 旣從色生應不識知虛空所在니
(만약 색(色)이 변할 때에) 너의 식(識)도 따라서 변한다면 변하여 없어진 것이니
안색계(眼色界)의 현상은 저절로 없을 것이요, 불변이라면 곧 항상한 것이니 이미
색에 의지하여 생겼기에 응당 색에만 항상하고 허공의 소재는 알지 못할 것이다.
㉢ 根境合辯
若兼二種하여 眼色其生인댄 合卽中離요 離卽兩合이라 體性雜亂어니 云何
成界리요
만약 두 가지를 겸해서 눈[眼]과 색(色)이 공동으로 안색계(眼色界)를 낸다면 합하
였으니 가운데가 있어 나누어질 것이고, 서로 나뉘어 진다면 둘이 합하여진 것이므
로 어느 쪽을 근거로 해야 할 지 그 체성(體性)이 혼잡할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계
가 성립되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眼色爲緣하여 生眼識界어니와 三處都無하여 則眼與色及色
界三이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안(眼)과 색(色)이 연(緣)이 되어 허망한 안식계(眼識界)를 내거니
와 삼처(三處)가 모두 따로 없고, 안과 색 그리고 안색계의 이 세 가지가 그대로 본
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耳聲界 ㈀ 擧相問界
阿難又汝所明으로 耳聲爲緣하야 生於耳識하니 此識爲復因耳所生이라 以
耳爲界아 因聲所生이라 以聲爲界아
아난아! 또 네가 밝힌 것처럼 귀와 소리가 연(緣)이 되어서 이식(耳識)이 생기는
것이라면 이러한 식이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귀로써 계(界)를 삼아야 하느냐,
소리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소리로써 계를 삼아야 하느냐?
㈁ 辯界無實 ㉠ 依根辯
阿難若因耳生인댄 動靜二相旣不現前하면 根不成知하고 必無所知인댄 知
尙無成어늘 識何形貌리요 若取耳聞이나 無動靜故聞無所成이니 云何耳形
雜色觸塵함을 名爲識界아 卽耳識界가 復從誰立이리요
아난아! 만약 귀로 인하여 이식(耳識)이 생긴다면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 상이
앞에 나타나지 아니했을 때에 귀[根]는 알지 못할 것이다. 반드시 알지 못한다면 안
다는 것도 오히려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이식(耳識)에 무슨 모양을 말하겠느냐? 귀
의 들음[耳聞]을 취하여 이식(耳識)을 말하려고 하나 ‘귀의 들음’이라 할 것도 없는
것인데, 어떻게 부진근(浮塵根)인 귀살[耳形]이 색(色)에 섞여서 대상에 부딪힌 것
을 식계(識界)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만약 이것을 식계라고 한다면) 이식계(耳識
界)가 무엇으로부터 성립된 것이냐?
㉡ 依境辯
若生於聲인댄 識因聲有일새 卽不關聞이요 無聞卽亡聲相所在하며 識從聲
하고 許聲因聞하야 而有聲相인댄 聞應聞識이요 不聞非界니라
만약 이식(耳識)이 소리에서 생긴다면 이식(耳識)이 소리를 의지하여 있기 때문에
듣는 것[聞]과는 서로 관계가 없을 것이고, 듣는 것과 상관이 없다면 소리의 소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또 ‘이식이 소리에서 나오고, 그 소리는 듣는 것으로 인하여 그 소리의 현상이 있다’
하면 들을 때에 응당 식(識)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듣지 못한다면 계(界)
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聞卽同聲하야 識已被聞하니 誰知聞識이리요 若無知音인댄 終如草木이요
만약 식(識)을 듣는다면 식은 곧 소리와 같을 것이며, 식(識)이 이미 들렸으니 다시
누가 식(識)의 들음을 아느냐? 만약 앎이 없다면 소리에서 나왔다는 그 식(識)은 마
침내 초목과 같을 것이다.
㉢ 根境合辯
不應聲聞雜成中界하니 界無中位하면 則內外相이 復從何成하리요
그렇다고 응당 소리[聲]와 듣는 것[聞根]이 섞이어서 그 가운데 이식계(耳識界)가
이루어졌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중위(中位)의 계(界)를 이미 세울 수
없는데, 안[根]과 밖[塵]의 모습을 어떻게 성립시킬 수 있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耳聲爲緣生耳識界어니와 三處都無하여 則耳與聲及聲界三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귀와 소리가 연(緣)이 되어 허망한 이식계(耳識界)를 내거니와 삼
처(三處)가 모두 따로 없고, 귀와 소리 그리고 이성계(耳聲界) 이 셋이 그대로 인연
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鼻香界 ㈀ 擧相問界
阿難又汝所明으로 鼻香爲緣하야 生於鼻識하니 此識爲復因鼻所生이라 以
鼻爲界아 因香所生이라 以香爲界아
아난아! 또 네가 밝힌 것처럼 코와 향기가 연(緣)이 되어서 비식(鼻識)이 생긴다면
이러한 식(識)이 다시 코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코로써 계(界)를 삼아야 하느냐,
향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향으로써 계를 삼아야 하느냐?
㈁ 辯界無實 ㉠ 依根辯
阿難若因鼻生인댄 則汝心中에 以何爲鼻오 爲取肉形貌爪之相家가 爲取
齅知 動搖之性가
아난아! 만약 코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네 생각에 무엇을 ‘코’라 하겠느냐? 얼굴
한복판에 오뚝 튀어나온 육형(肉形,살덩어리)으로 된 한 쌍의 손톱모양[浮根塵]을
취하여 코라고 하겠느냐, 맡아 분별하는 성품[勝義根]을 취하여 코라고 하겠느냐?
若取肉形인댄 肉質乃身이오 身之卽觸이니 名身非鼻오 名觸卽塵이라 鼻尙無名
커니 云何立界리요
만약 살덩어리를 취하여 코를 삼는다면 살덩어리는 곧 몸이고 몸이 아는 것은 촉
(觸)이니 몸이라고 하면 비근(鼻根)이 아니고 촉이라고 하면 곧 몸의 대상이다. 결
국 살덩어리[肉形]로 코를 삼는다면 비근(鼻根)도 오히려 세울 수 없는데 어떻게
계(界)가 비근(鼻根)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겠느냐?
若取齅知인댄 又汝心中以何爲知오 以肉爲知인댄 則肉之知는 元觸非鼻며
以空爲知인댄 肉應非覺이러니 如是則應虛空是汝로 汝身非知일새 今日
阿難이 應無所在니라
만약 맡아 아는 것을 취한다면 우선 너의 마음에 무엇으로 앎을 삼느냐? 육형(肉
形)을 가지고 앎을 삼고자 하나 육형(肉形)이 아는 것은 원래로 촉(觸)이지 코가
아니다. 허공이 안다면 허공 스스로가 아는 것이라서 너의 육형(肉形)은 응당 깨
닫지 못할 것이니 그렇다면 이는 허공이 곧 너이고, 너의 몸은 앎이 없기에 오늘의
아난은 응당 존재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 依境辯
以香爲知인댄 知自屬香커니 何預於汝리요 若香臭氣가 必生汝鼻인댄 則
彼香臭二種流氣가 不生伊蘭及栴檀木하리니 二物不來어든 汝自齅鼻하라 爲
香爲臭아
만약 향기(香氣)가 안다면 아는 자체가 향기에 속해 있는데 너와 무슨 상관이 있
겠느냐? 만약 향기(香氣)와 취기(臭氣)가 반드시 너의 코에서 생긴다면 저 향기와
취기의 두 가지 냄새가 이란(伊蘭,악취나무)과 전단(栴檀,향나무)에서 나오는 것
이 아닐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없는 상황에서 너 스스로 너의 코를 맡아 보아라! 향
기가 맡아지느냐, 취기가 맡아지느냐?
㉢ 根境合辯
臭則非香이며 香應非臭거늘 若香臭二가 俱能聞者인댄 則汝一人이 應有
兩鼻라 對我問道호매 有二阿難하리니 誰爲汝體오
취기(臭氣)는 곧 향기(香氣)가 아니고 향기는 응당 취기가 아닌데, 만약 향기와
취기의 두 가지를 다 맡을 수 있다면 너 한 사람에게 응당 두 개의 코가 있는 것이
요, 또 나에게 도(道)를 물을 때에도 두 아난이 있는 것이니 어느 것으로 너의 몸
을 삼겠느냐?
若鼻是一인댄 香臭無二어늘 臭旣爲香하고 香復成臭하여 二性不有리니
界從誰立하리요
향기와 취기가 다 코에서 나온다는 입장에서 만약 코가 하나라면 향기와 취기의
둘을 다 맡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맡는다고 하면 취기가 이미 향기가
되고 향기가 다시 취기를 이루어 두 가지 성품이 구분이 되지 않을 것인데, 계(界)
가 어떻게 성립이 되겠느냐?
若因香生인댄 識因香有이니 如眼有見호미 不能觀眼하야 因香有故로 應
不知香하리라 知則非生이오 不知非識이리라
만약 향기로 인하여 비식(鼻識)이 생긴다면 이러한 식(識)이 향기로 인하여 있는
것이니 마치 눈이 다른 것을 보면서도 눈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것처럼 향기로 인
하여 있는 것이므로 응당 향기를 알지 못해야 할 것이다. 만약 안다면 비식(鼻識)
이 향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알지 못한다면 식(識)도 아닌 것이다.
香非知有면 香界不成하고 識不知香하면 因界則非從香建立이며
향기에 앎이 있지 않다면 향계(香界)가 성립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비식(鼻識)이
향기를 알지 못하니 그러므로 비식계(鼻識界)가 향기로부터 건립된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旣無中間하면 不成內外리니 彼諸聞性도 畢竟虛妄하리라
이미 식계(識界,中間)가 성립되지 못한다면 내외(內外)도 세울 수 없을 것이니 저
모든 맡는 성품도 필경 허망일 것이다.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鼻香爲緣하야 生鼻識界거니와 三處都無하여 則鼻與香及香
界三이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코[鼻根]와 향기가 연(緣)이 되어 허망한 비식계(鼻識界)를 내거
니와 삼처(三處)가 모두 따로 없고, 코와 향기 그리고 비향계(鼻香界) 이 셋이 그
대로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舌味界 ㈀ 擧相問界
阿難又汝所明으로 舌味爲緣하야 生於舌識하니 此識爲復因舌所生이라
以舌爲界아 因味所生이라 以味爲界아
아난아! 또 네가 밝힌 것처럼 혀와 맛이 연(緣)이 되어서 설식(舌識)이 생기는 것
이니 이러한 식(識)이 혀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혀로써 계(界)를 삼아야 하느냐,
맛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맛으로써 계를 삼아야 하느냐?
㈁ 辯界無實 ㉠ 依根辯
阿難若因舌生인댄 則諸世間甘蔗烏梅와 黃連石鹽과 細辛薑桂가 都無有
味하니 汝自嘗舌하라 爲甛爲苦아
아난아! 만약 맛을 아는 것[舌識]이 혀에서 생긴다면 세간의 감자와 오매와 황연
과 소금과 세신과 생강과 계피는 모두 맛이 없어야 할 것이다. 너는 스스로 너의 혀
를 맛보아라.
달더냐, 쓰더냐?
若舌性苦인댄 誰來嘗舌고 舌不自嘗이어나 孰能知覺이리요 舌性非苦인댄 味自
不生이어니 云何立界리요
만약 혀의 성품이 쓰다면 누가 와서 혀를 맛보았겠는가? 혀가 스스로 맛보지는 못
했을 것이니 무엇이 알고 느꼈겠느냐? 혀의 성질이 본래 쓴 것이 아니라 담담하다
면 맛 자체가 생길 수 없을 것인데, 어떻게 계(界)를 세울 수 있겠느냐?
㉡ 依境辯
若因味生인댄 識自爲味이니 同於舌根이 應不自嘗인달하야 云何識知是味
非味리요
만약 설식(舌識)이 맛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는 설식이 스스로 맛이 된 것이다. 혀
[舌根]가 스스로 맛보지 못하는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아서 어떻게 설식이 맛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겠느냐?
又一切味非一物生이라 味旣多生인댄 識應多體요 識體若一하고 體必味生인댄
鹹淡甘辛과 和合俱生의 諸變異相이 同爲一味하야 應無分別이니 分別旣無하면
則不名識어늘 云何復名舌味識界리요 不應虛空이 生汝心識이니라
또 가지가지의 맛이 한 물건에서 생기지 아니했듯이 맛이 이미 이와 같이 여러 가
지에서 생겼다면 그에 따른 식(識)도 응당 여러 개의 몸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식(識)의 체(體)가 하나이고, 그 체는 반드시 맛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짜고 담담하
고 달고 매운 맛과 화합(和合)으로 이루어진 것과 본래부터 갖추어진 것[俱生]과
가지가지 변하고 달라진[變異] 모습이 다 한 맛이 되어 전혀 분별할 수 없을 것이
요, 이와 같이 이미 분별이 없으면 식(識)이라 부를 수 없는데, 어떻게 다시 설미식
계(舌味識界)라 부를 수 있겠느냐? 그렇다고 허공에서 너의 심식(心識)이 생겼다
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 根境合辯
舌味和合인댄 卽於是中元無自性이니 云何界性하리요
혀와 맛이 화합하여 맛봄이 생겼다면 이 가운데 어디에도 원래의 자성을 세울 수
없을 것인데, 어떻게 계(界)가 생기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舌味爲緣하야 生舌識界거니와 三處都無하여 則舌與味及舌
界三이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혀와 맛이 연(緣)이 되어 허망한 설식계(舌識界)를 내거니와 삼처
(三處)가 모두 따로 없고, 혀와 맛 그리고 설미계(舌味界)의 셋이 그대로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身觸界 ㈀ 擧相問界
阿難又汝所明인 身觸爲緣하야 生於身識어니와 此識爲復因識所生이라 以
身爲界아 因觸所生이라 以觸爲界아
아난아! 또 네가 밝힌 것처럼 몸과 촉이 연(緣)이 되어서 신식(身識)이 생기거니와
이러한 인식이 다시 몸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몸으로써 계(界)를 삼아야 하느
냐, 촉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촉으로써 계를 삼아야 하느냐?
㈁ 辯界無實 ㉠ 依根辯
阿難若因身生인댄 必無合離二覺觀緣하리니 身何所識하리요
아난아! 신식(身識)이 몸[身根]에서 나온다면 반드시 합리(合離)의 두 가지 분별
[覺觀緣]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리니 몸이 무엇을 안다고 하겠느냐?
㉡ 依境辯
若因觸生인댄 必無汝身하리니 誰有非身하야 知合離者리요
만약 신식(身識)이 촉에서 생긴다면 반드시 너의 몸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인데,
어느 곳에 너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몸[非身]이 있어 합하고 떨어짐[合離]을 안다고
하겠느냐?
㉢ 根境合辯
阿難物不觸知오 身知有觸이니 知身卽觸이요 知觸卽身이라 知觸非身이요
卽身非觸이니 身觸二相元無所處하야 合身卽爲 身自體性하고 離身卽是
虛空等相하야 內外不成하리요 中不復立인댄 內外性空이니 卽汝識生한들
從誰立界리요
아난아! (만약 몸과 촉이 합하여 신식이 생긴다고 할 때) 사물[物]은 접촉[觸]이
되더라도 알지 못하고, 몸이라야 촉(觸)을 아나니 몸을 아는 것이 곧 촉이요, 촉을
아는 것이 몸이다. 그러나 아는 것[知]이 촉이라면 몸이라 할 수 없고, 아는 것[知]
이 몸이라면 촉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몸과 촉의 이 두 가지 모습이 원래 처소가 없기에 촉이 몸에 합하면 바로
몸 자체의 성품이 되고, 촉이 몸을 떠나면 허공과 같은 모습이 되어서 내외(內外)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데, 중간[身識]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중간이 성립되지 못
한다면 내외의 성품도 공(空)한 것인데, 너의 식(識)이 생긴들 무엇을 의지하여 계
(界)를 세우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身觸爲緣하야 生身識界거니와 三處都無하여 則身與觸及身
界三이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몸과 촉이 연(緣)이 되어 허망한 신식계(身識界)를 내거니와 삼처
(三處)가 모두 따로 없고, 몸과 촉 그리고 신촉계(身觸界) 이 셋이 그대로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意法界 ㈀ 擧相問界
阿難又汝所明인 意法爲緣하야 生於意識어니와 此識爲復因意所生이라 以
意爲界아 因法所生이라 以法爲界아
아난아! 또 네가 밝힌 것처럼 의지[意]와 추억 등 고정관념[法]이 연(緣)이 되어서
의식(意識)이 생기는데, 이 식(識)이 다시 의지[意]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니 의(意)
로써 계(界)를 산아야 하느냐, 법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니 법으로써 계를 삼아야
하느냐?
㈁ 辯界無實 ㉠ 依根辯
阿難若因意生인댄 於汝意中必有所思하야 發明汝意하나니 若無前法하면
意無所生하리라 離緣無形하니 識將何用이리요
아난아! 만약 의근(意根)에서 의식(意識)이 생긴다면 너의 의근 가운데 반드시
생각하는 것이 따로 있어서 너의 의식을 나타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앞에 법진(法塵)이 없다면 의근은 생길 수 없으며, 의근은 법진에 반연하는
것을 여의고는 그 모습이 있을 수 없는데, 의식[識]이 어떻게 작용할 수 있겠느냐?
又汝識心이 與諸思量兼了別性으로 爲同爲異아 同意卽意이니 應無所識
하리라 若無所識하면 云何意生이리요 若有所識인댄 云何識意이요 唯同與
異二性無性어니 界云何立이리요
또 너의 (의식이 의근에서 생긴다고 할 때) 그 식심(識心)이 가지가지로 사랑하고
분별하여 아는 성품으로 더불어 같은가, 다른가?
만약 같다면 결국 의근(意根)일 뿐인데 어떻게 의근 혼자서 식(識)을 내었다고 하
겠느냐? 다르다고 하면 곧 같지 아니한 것이니 응당 식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만약 식이 없다면 어떻게 의근이 식을 출생시켰다고 하겠느냐?
그래도 만약 식이 있다고 하면 (의근과 의식이 서로 다른 것인데) 어떻게 의식을
낸 의근이라 할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이 ‘같다’와 ‘다르다’의 두 가지 성품을 세울 수
없는데, 어떻게 계(界)를 세울 수 있겠느냐?
㉡ 依境辯
若因法生인댄 世間諸法不離五塵하니 汝觀色法及諸聲法과 香法味法과
及與觸法하라 相狀分明하야 以對五根이언정 非意所攝이니라 汝識決定於
法性인댄 汝今諦觀하라 法法何狀고 若離色空과 動靜通塞과 合離生滅하
고 越此諸相하야는 終無所得하니라 生卽色空諸法等生하고 滅卽色空諸法
等滅하니라
만약 법진(法塵)에서 의식(意識)이 나온다고 하면 세간의 모든 법이 다섯 가지 대
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너는 색법(色法)과 성법(聲法)과 향법(香法)과 미법
(味法)과 촉법(觸法)을 살펴보아라! 모양이 분명하여 오근(五根,眼耳鼻舌身)에 상
대될지언정 의근(意根)의 간섭을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너의 의식(意識)이 결정코 법진(法塵)에서 생긴 것이라면 너는 지금 자세히 보아
라! 의근에 상대되는 그 법진이라는 법이 무슨 모양이더냐? 만약 색공(色空,色)과
동정(動靜,聲)과 통색(通塞,香)과 합리(合離,觸)와 생멸(生滅,味) 등 이 모든 현상
을 떠나서는 마침내 법진 그 자체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법진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생긴다 하더라도 색공 등 가지가지 법이 생기고, 멸한다 하더라
도 색공 등의 가지가지 법이 멸하기 때문이다.
㉢ 根境合辯
所因旣無인댄 因生有識에 作何形相이며 相狀不有거늘 界云何生하리요
인(因)으로서의 의근(意根)과 법진(法塵)에 이미 스스로의 형상이 없다면 그로
인하여 생긴 의식(意識)에 무슨 형상이 있으며 형상이 있지 않다면 계(界)가 어떻
게 생기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意法爲緣하야 生意識界거니와 三處都無하여 則意與法及意
界三이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의지[意]와 추억 등 고정관념[法]이 연(緣)이 되어서 허망한 의식
계(意識界)를 내거니와 삼처(三處)가 모두 따로 없고, 의(意)의 법(法) 그리고 의법
계(意法界)의 셋이 그대로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
임을 알아야 한다.
⑾ 廣擧七大 圓示藏性 ① 阿難發起
阿難白佛言호대 世尊如來常說 和合因緣하사대 一切世間種種變化가 皆因四大
和合發明이니 云何如來因緣自然의 二俱排檳닛고 我今不知斯義所屬하니 唯垂
哀愍하사와 開示衆生에 中道了義無戱論法하소서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여래께서 항상 화합(和合)과 인연(因緣)
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일체 세간의 가지가지 변화하는 것이 모두 사대(四大)의
화합으로 인하여 드러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다시 (五陰·
六入·十八界 등을) 인연과 자연 이 두 가지가 다 아니라고 배척하십니까? 저희들이
지금 이 이치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오직 불쌍히 여기시사 중생들에게 중도요의(中
道了義)인 희론이 없는 법을 보여 주옵소서!”
② 世尊 垂答 ㊀ 愍告
爾時世尊告阿難言하사대 汝先厭離 聲聞緣覺諸小乘法하야 發心勤求 無
上菩提할새 故我今時에 爲汝開示第一義諦어늘 如何復將世間戱論 妄想
因緣하야 而自纏繞아 汝雖多聞하나 如說藥人이 眞藥現前호대 不能分別
일새 如來說爲眞可哀愍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앞에서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소승법(小乘法)을 싫어하고, 발심하여 부지런히 최상의 깨달음을 구하기에 내가
지금 너에게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열어 보였는데도, 어찌하여 다시 세간의 희론
인 망상인연(妄想因緣)에 스스로 얽매이느냐?
네가 비록 많이 들었다고는 하나 마치 약(藥)을 말하는 사람이 좋은 약이 앞에
있는데도 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여래는 너를 참으로 가련하다
고 하는 것이다.
㊁ 許答
汝今諦聽하라 吾當爲汝하야 分別開示하며 亦令當來修大乘者로 通達實
相하리라 阿難黙然하야 承佛聖旨하니라
너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내 응당 너를 위하여 분별하고 개시(開示)하며, 또 앞
으로 대승법(大乘法)을 닦으려는 자에게 실상을 통달하게 하리라.” 아난이 부처님
의 훌륭한 가르침을 듣고자 잠자코 있었다.
㊂ 正答 ㈎ 總答
阿難如汝所言하야 四大和合하여 發明世間種種變化니와 阿難若彼大性이
體非和合인댄 則不能與諸大雜和호미 猶如虛空이 不和諸色이요 若和合
者인댄 同於變化하야 始終相成하야 生滅相續하고 生死死生하야 生生死
死가 如旋火輪하야 未有休息하리라
아난아! 네가 항상 ‘사대(四大)가 화합하여 세간의 가지가지 변화를 일으킨다’고
말하였다. 아난아! 만약 저 대성(大性)의 체(體)가 화합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모든 원소와 섞일 수 없는 것이 마치 허공이 모든 물질과 화합할 수 없는 것과 같
을 것이다.
만약 화합이라면 변하는 것과 같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생멸이 상속하여 태어났
다가는 죽고, 죽었다가는 다시 태어나며, 이렇게 태어나고 죽는 것이 마치 화륜
(火輪)을 돌려서 멈추지 못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阿難如水成冰라가 冰還成水인달하니
아난아! 이는 마치 ‘물이 얼음이 되었다가 얼음이 다시 물이 되는 것’과 같을 것
이다.
㈏ 別答 ㉮ 地大 ㈀ 標本
汝觀地性하라 麤爲大地하고 細爲微塵어니와 至鄰虛塵하면 析彼極微한 色邊
際相하야 七分所成이니 更析隣虛하면 卽實空性이니라
네가 흙의 성품[地性]을 살펴보아라. 거친 것은 대지(大地)라 하고, 미세한 것은 티
끌[微塵]이라 하지만, 인허진(隣虛塵)에 이르렀다는 것은 저 극미(極微)인 색변제상
(色邊際相)을 칠분(七分)으로 쪼개서 이루어진 것이고, 다시 이 인허진(隣虛塵)을
쪼갠다면 그대로 허공이 될 것이다.
㈁ 辯明
阿難若此鄰虛를 析成虛空인댄 當知虛空生出色相이로다
아난아! 만약 ‘인허진(隣虛塵)을 쪼개어 허공을 이루었다’고 한다면 응당 ‘허공이
모여서 색상(色相)이 된 것이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汝今問言호대 由和合故로 出生世間諸變化相하니 汝且觀此하라 一鄰虛塵은 用
幾虛空하야 和合易有인가 不應鄰虛가 合成鄰虛니라 又鄰虛塵이 析入空者인댄
用幾色相하야 合成虛空가
네가 지금 질문하여 말하기를 ‘화합으로 인하여 세간의 모든 현상들이 생겨난다’고
했으니 네가 우선 살펴보아라. 여기에 하나의 인허진(隣虛塵)은 몇 개의 허공을 화
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냐? 응당 인허진(隣虛塵,色相)을 쪼개 모아야만 대허공(大虛
空)을 이루겠느냐?
若色合時에는 合色非空이며 若空合時에는 合空非色이니 色猶可析이어니와 空
云何合하리요
만약 색(色,隣虛塵)이 합해졌을 때에 색이 합해진 것이지 허공이 합해진 것이 아니
고, ‘또 허공이 합해졌을 때에 허공이 합해진 것이지 색이 합해진 것이 아니다. 색은
그래도 쪼개고 합한다고 할 수 있지만 허공을 어떻게 쪼개고 합하고 할 수 있겠느냐?
㈂ 結顯
汝元不和로다 如來藏中性色眞空과 性空眞色이 淸淨本然하며 周遍法界
하야 隨衆生心應所知量하야
너는 원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색(色)인 진공(眞空)과 성품이 공(空)인 진색(眞
色)이 청정본연(淸淨本然)하고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심(衆生心)을 따르고 소지량
(所知量)에 응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循業發現커늘 世間無知하야 惑爲因緣及自然性하나니 皆是識心의 分別計
度이요 但有言說이언만 都無實義니라
흙이라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 다 업에 따라 나타난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무지하여
이것을 ‘인연의 성품이니 자연의 성품이니’하고 미혹하는 것이다. 이는 다 식심(識心)
으로 분별하고 계탁한 것이니 다만 언설(言說)이 있을지언정 도무지 실다운 뜻이 없
다.
㉯ 火大 ㈀ 標本
阿難火性無我하야 寄於諸緣하나니 汝觀城中未食之家하라 欲炊爨時에 手
執陽燧하야 日前求火리라
아난아! 불의 성품이 본래 실체가 없고[無我] 다만 여러 가지 연(緣)에 의탁한 것
뿐이다. 너는 실라벌성(室羅筏城)의 아직 식사를 하지 못한 집에서 밥을 지으려고
불을 피우고자 할 때에 손에 화경[陽燧]을 들고 태양 앞에서 불을 구하는 것을 보
았을 것이다.
㈁ 辯明
阿難名和合者인댄 如我與汝와 一千二百五十比丘가 今爲一衆이니 衆雖
爲一하나 詰其根本인댄 各各有身하며 皆有所生氏族名字하니 如舍利弗은
婆羅門種이오 優樓頻螺는 迦葉波種이오 乃至阿難은 瞿曇種姓이라
아난아! 이 때 불[火]이 생기는 것이 화합이라면 이는 마치 내가 너희들1250人의
비구들과 화합하여 하나의 대중이 된 것과 같을 것이다. 대중이라는 의미에서는 비
록 하나이나 그 근본을 따져보면 각기 몸이 있어서 모두 태어난 씨족과 그 이름이
따로 있는 것이다. 마치 사리불(舍利弗)은 바라문(婆羅門) 종족이고, 우루빌라(優
樓頻螺)는 가섭파(迦葉波) 종족이며, 더 나아가 아난은 구담종성(瞿曇種姓)인 것
과 같다.
阿難若此火性이 因和合有인댄 彼手集鏡하고 於日求火함에 此火爲從 鏡中而出
가 爲從艾出가 爲於日來아 阿難若日來者인댄 自能燒汝 手中之艾이니 來處林
木이 皆應受焚이며 若鏡中出인댄 自能於鏡出하야 然於艾거늘 鏡何不鎔고
또 아난아! 이 불[火]의 성품이 화합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사람이 손에 화
경을 들고 태양 앞에서 불을 구할 때에 이 불은 거울 속에서 나오는 것이냐, 쑥에서
나오는 것이냐, 태양에서 온 것이냐?
아난아! 만약 태양에서 불이 나온다면 태양 스스로 너의 손에 쑥을 태우기에 오는
길에 숲과 나무가 모두 불에 타야 할 것이다. 만약 거울에서 나온다면 불이 스스로
거울에서 나와 쑥을 태우는데, 거울은 어찌하여 녹지 않느냐?
紆汝手執하야 尙無熱相커니 云何融泮이리요 若生於艾인댄 何藉日鏡과 光明相
接하야 然後火生하리요
너의 손이 거울을 잡고 있는데도 전혀 뜨거운 형상이 없는데, 어떻게 거울이 녹을
수 있겠느냐? 만약 쑥에서 생긴 것이라면 어찌하여 태양과 거울과 햇볕이 서로 닿은
후라야 불이 생기느냐?
汝又諦觀하라 鏡因手執하고 日從天來하고 艾本地生이니 火從何方하야 遊歷於
此오 日鏡相遠하야 非和非合이며 不應火光이 無從自有니라
너는 다시 자세히 보아라. 거울은 손에 들려 있고, 햇빛은 하늘에서 오며, 본래 쑥
은 땅에서 생기는 것인데 불은 어느 곳으로부터 여기에 온 것이냐? 해와 거울은 서
로 거리가 멀어서 화합할 수 없는데, 그렇다고 응당 불이 나온 곳이 없이 스스로 있
는 것은 아닐 것이다.
㈂ 結顯
汝猶不知로다 如來藏中에는 性火眞空과 性空眞火가 淸淨本然하며 周遍
法界하야 隨衆生心所知量하나니
너는 오히려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불[火]인 진공(眞空)과 성품이 공(空)인 진화
(眞火)가 청정본연(淸淨本然)하고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심(衆生心)을 따르고 소
지량(所知量)에 응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阿難當知世人一處執鏡하면 一處火生하고 遍法界執하면 滿世界起하나니
起遍世間커니 寧有方所리오 循業發現하거늘 世間無知하야 惑爲因緣과
及自然性이니라 皆是識心의 分別計度이니 但有言說都無實義하니라
아난아! 너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한 곳에서 거울을 들면 한 곳
에서 불이 생기고, 법계에 두루하게 들면 세상에 가득히 불이 일어나서 온누리에
두루하게 되는 것이다.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이와 같이 불이라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 다 업에 따라 나타난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무지하여 이것을 ‘인연의
성품이니 자연의 성품이니’하고 미혹하는 것이다. 이는 다 식심(識心)으로 분별하
고 계탁한 것이기에 다만 언설(言說)이 있을지언정 도무지 실다운 뜻이 없다.
㉰ 水大 ㈀ 標本
阿難水性不定하야 流息無恒하니 如室羅城에 迦毗羅仙과 斫迦羅仙과 及
鉢頭摩와 訶薩多等 諸大幻師가 求太陰精하야 用和幻藥에 是諸師等이 於白月
晝에 手執方諸하야 承月中水하나니 此水爲復從珠中出가 空中自有아 爲從月來
아
아난아! 물의 성품이 일정하지 아니하여 흐르고 그침이 항상하지 않다. 저 실라벌
성에 가비라선(迦毘羅仙)과 삭가라선(斫迦羅仙)과 발두마(鉢頭摩)와 가살다(訶薩
多) 등 여러 대환사(大幻師)들이 달의 정기[太陰精]를 구하여 환술의 약을 만들려
고 할 때에 이 환술사(幻術師)들이 보름날[白月]의 한밤중에 손에 방저(方諸,구슬)
를 들고 달 속의 물을 받는다. 그런데 이 물이 방저에서 나온 것이냐, 허공에서 저절
로 생긴 것이냐, 달에서 온 것이냐?
㈁ 辯明
阿難若從月來인댄 尙能遠方에도 令珠出水하거니 所經林木이 皆應吐流로
다 流則何待方諸所出이며 不流明水非從月降이로다
아난아! 만약 달에서 온 것이라면 오히려 먼 곳인데도 구슬에서 물이 나오게 할 수
있었으니 그렇다면 지나가는 곳의 숲과 나무에서 모두 물이 흘러야 할 것이다.
만약 흐른다면 어찌 굳이 구슬[方諸]에서 물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겠느냐? 흐르지
않는다면 분명 물이 달에서 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若從珠出인댄 則此珠中常應流水어니 何待中宵承白月晝리요 若從空生인댄 空
性無邊할새 水當無際라 從因洎天皆同滔溺이니 云何復有水陸空行하리요
만약 구슬[方諸]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구슬[方諸]속에서 항상 물이 흘러야 하는
데, 어찌하여 한밤중의 백월(白月)의 달빛 받기를 기다려야만 하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허공의 성품이 본래 끝[邊]이 없으므로, 물도 응당 한계
가 없어서 인간으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다 모두 물에 잠길 것이니 어떻게 다시
물과 육지와 허공을 구별 할 수 있겠느냐?
汝更諦觀하라 月從天陟하고 珠因手執하며 承珠水盤本人敷設이니 水從何方하
야 流注於此오 月珠相違하야 非和非合이며 不應水精無從自有니라
너는 다시 자세히 보아라. 달은 하늘에 떠 있고, 구슬[方諸]은 손에 들려 있으며,
구슬의 물을 받는 쟁반은 본래 사람이 설치해 놓았는데, 물은 어디로부터 여기에
흘러온 것이냐? 달과 구슬은 거리가 서로 멀어서 화합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응당
물의 정기가 오는 곳이 없이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니다.
㈂ 結顯
汝尙不知로다 如來藏中에 性水眞空과 性空眞水가 淸淨本然하며 周遍法界하야
隨衆生心應所知量하나니 一處執珠하면 一處水出하고 遍法界執하면 滿法界生하
야 生滿世間커니 寧有方所리오 循業發現하거늘 世間無知하야 惑爲因緣及自然
性하나니 皆是識心分別計度이요 但有言說都無實義니라
너는 아직도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물[水]인 진공(眞空)과 성품이 공(空)인 진수
(眞水)가 청정본연(淸淨本然)하고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심(衆生心)을 따르고 소
지량(所知量)에 응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한 곳에서 구슬을 잡으면 한 곳에서 물이 흐르고, 두루 법계에서 잡으면 법계에 가
득히 생겨서 그것이 세상에 가득할 것이니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물이라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 다 업에 따라 나타나는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무지
하여 이것을 ‘인연의 성품이니 자연의 성품이니’하고 미혹하는 것이다. 이는 다 식
심(識心)으로 분별하고 계탁한 것이니 다만 언설(言說)이 있을지언정 도무지 실다
운 뜻이 없다.
㉱ 風大 ㈀ 標本
阿難風性無體하야 動靜不常하니 入於大乘할때에 僧伽梨角이 動及傍人
하면 則有微風이 拂彼人面하리니 此風爲復出袈裟角가 發於虛空가 生彼
人面가
아난아! 바람의 성품이 실체가 없어서 동정(動靜)에 항상하지 않다. 네가 항
상 옷깃을 여미고 대중에 들어갈 때에 가사[僧伽梨] 자락이 펄럭여서 곁에 있
던 사람에게 미치면 곧 미풍(微風)이 저 사람의 얼굴에 스칠 것이다. 이 바람
이 가사자락에서 나온 것이냐, 허공에서 나온 것이냐, 저 사람의 얼굴에서 생
긴 것이냐?
㈁ 辯明
阿難此風若復出袈裟角인댄 汝乃披風하니 其衣飛搖하야 應離汝體어니와 我
今說法에 會中垂衣하노니 汝看我衣하라 風何所在오 不應衣中有藏風地리라
아난아! 바람이 만약 가사자락에서 생긴 것이라면 너는 바람을 입었으므로
그 옷이 날리고 요동하여 응당 너의 몸에서 벗겨져 나가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 설법하고자 이 모임에서 옷을 드리웠으니 너는 나의 옷을 보아라. 바람
이 어디에 있느냐? 응당 옷 속에 바람을 숨겨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若生虛空인댄 汝衣不動에 何因無拂고 空性常住인댄 風應常生이며 若無風
時에는 虛空當滅리니 滅風可見어니와 滅空何狀고 若有生滅이면 不名虛空
이오 名爲虛空이면 云何風出이리요
만약 허공에서 바람이 생긴 것이라면 네 옷이 펄럭이지 아니하였을 때에 어
찌하여 바람이 일어나지 않느냐? 허공의 성품이 항상 머무는 것이라면 바람
도 항상 나와야 할 것이며, 만약 바람이 없을 때에는 응당 허공도 멸해야 할
것이다.
바람이 멸하는 것은 가히 볼 수 있지만 허공이 멸했다면 어떤 모양이겠느냐
? 만약 허공에 생멸이 있다면 허공이라고 이름하지 못할 것이며, 허공이라고
이름한다면 어떻게 바람이 나오겠느냐?
若風自生被拂之面인댄 從彼面生일새 當應拂汝어늘 自汝整衣에 云何到拂고
만약 바람이 저 사람의 얼굴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면 저 사람의 얼굴에
서 생기는 것이니 응당 너에게로 불어와야 할 것인데, 네가 옷을 여밀 때에
어찌 하여 바람이 거꾸로 부느냐?
汝審諦觀하라 整衣在汝하고 面屬彼人하며 虛空寂然不參流動어늘 風自唯方
하야 鼓動來此오 風空性隔하야 非和非合이요 不應風性無從自有니라
너는 자세히 살펴보아라. 옷을 여미는 것은 너에게 있고, 얼굴은 저 사람에게
속해 있으며, 허공은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거늘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느냐?
바람과 허공은 성품이 서로 달라서 통하지 아니하니 화합할 수 없을 것이며,
그렇다고 이 바람의 성품이 온 곳이 없이 저절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 結顯
汝宛不知로다 如來藏中性風眞空과 性空眞風이 淸淨本然周遍法界하야 隨衆
生心應所知量하니 阿難如汝一人이 微動服衣하면 有微風出인달하야 遍法界
拂하면 滿國土生하야 周遍世間커니 寧有方所리오 循業發現커늘 世間無知하야
惑爲因緣及自然性하니 皆是識心分別計度이요 但有言說都無實義니라
너는 아직도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바람[風]인 진공(眞空)과 성품이 공(空)인
진풍(眞風)이 청정본연(淸淨本然)하고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심(衆生心)을 따
르고 소지량(所知量)에 응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아난아! 만약 너 한 사람이 의복을 약간 펄럭이면 미풍(微風)이 나오는 것처
럼, 두루 법계에서 펄럭이면 국토에 가득히 바람이 생겨 세상에 두루할 것이니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바람이 생기는 것이 다 업에 따라 나타난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무지하여 이
것을 ‘인연의 성품이니 자연의 성품이니’하고 미혹하는 것이다. 이는 다 식
심(識心)으로 분별하고 계탁한 것이니 다만 언설(言說)이 있을지언정 도무지
실다운 뜻이 없다.
㉲ 空大 ㈀ 標本
阿難空性無形하야 因色顯發하나니 如室羅城이 去河遙處에 諸刹利種과 及婆羅
門과 毗舍首陀와 兼頗羅墮와 旃陀羅等이 新立安居하야 鑿井求水에 出土一尺
하면 於中則有一尺虛空하고 如是乃至出土一丈하면 中間還得一丈虛空하야 虛
空淺深이 隨出多少하나니 此空爲當因土所出가 因鑿所有아 無因自生가
아난아! 허공의 성품이 본래 형상이 없고, 색(色)으로 인하여 나타난 것이다.
이는 마치 실라벌성에서 강이 먼 곳에 사는 모든 찰제리(刹帝利,왕족)와 바라문
(婆羅門,사제)과 바이샤(毘舍,서민)와 수트라(首陀,노예)와 바라타(頗羅墮,귀족
)와 전다라(旃陀羅,천민) 등이 새로 안거하고자 우물을 파고 물을 구할 때에 흙
을 한 자쯤 파 내면 그 가운데 한 자의 허공이 생기고, 이와 같이 더 나아가 흙을
한 길쯤 파내면 다시 한 길의 허공이 생기게 되어 허공의 얕고 깊음이 파낸 흙의
다소(多少)를 따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 허공이 흙에서 나오느냐, 파냄으로 인하여 있느냐, 까닭도 없이 저
절로 생기느냐?
㈁ 辯明
阿難若復此空이 無因自生인댄 未鑿土前에는 何不無礙하야 唯見大地의 逈無
通達가 若因土出인댄 則土出時에 應見空入하리니 若先土出하고 無空入者인댄
云何虛空이 因土而出이리요 若無出入하면 則應空土가 元無異因이니 無異則因
이어늘 則土出時에 空何不出고
아난아! 만약 이 허공이 까닭도 없이 저절로 생긴 것이라면 아직 흙을 파내기
전에는 어찌하여 걸림이 많아 아득히 대지만 보이고, 멀리 통달하지 못하느냐?
만약 흙으로 인하여 나오는 것이라면 흙을 파낼 때 응당 허공이 들어감을 보아
야 할 것이다. 만약 흙이 먼저 나왔는데도 허공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허
공이 흙으로 인하여 생긴다고 하겠느냐?
만약 흙을 파내더라도 허공은 나오거나 들어가지 않는다면 흙과 허공은 원래로
인을 달리하지 않을 것[無異因]이며 흙과 허공이 인을 달리하지 않는다면 흙과
허공이 곧 그 체(體)가 같아서 나누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흙이 나올 때
에 허공도 같이 나와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허공은 나오지 않느냐?
若因鑿出卽鑿出空하니 應非出土하며 不因鑿出鑿自出土어늘 云何見空가
만약 파내는 것으로 인하여 허공이 생긴다면 파낼 때 허공이 나와야 하고, 흙이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다. 흙을 파냄으로 인하여 허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파서 흙이 나올 때에 어찌하여 허공을 보게 되느냐?
汝更審諦하야 諦審諦觀하라 鑿從人手하야 隨方運轉하고 土因地移거니와 如是
虛空이 因何所出이오 鑿空虛實이 不相爲用일새 非和非合이요 不應虛空이 無從
自出이니라
너는 다시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피고 관찰하라. 흙을 파내는 도구는 사람의 손
에 의해서 움직이고, 흙은 땅으로 인하여 옮겨지는데, 이와 같이 허공은 무엇으
로 인하여 나오느냐? 파냄과 허공 그라고 허와 실[鑿空虛實]이 서로 작용할 수
없기 때문에 화합이 될 수 없으며, 그렇다고 허공이 온 곳이 없이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니다.
㈂ 會通
若此虛空이 性圓周遍하야 本不動搖인댄 當知現前의 地水火風을 均名五大니
性眞圓融하야 皆如來藏이라 本無生滅이니라
만약 이 허공의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하여 본래 동요하지 않는 것이라면 응당
눈 앞의 지수화풍(地水火風)과 함께 나란히 오대(五大)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
냐하면 그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요 본래 생멸이 없기 때문
이다.
阿難汝心昏迷하야 不悟四大가 元如來藏하나니 當觀虛空하라 爲出爲入가 爲非
出入가
아난아! 너의 마음이 혼미하여 사대(四大)가 원래 여래장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 하는구나. 너는 응당 허공을 살펴보아라. 나오느냐? 들어가느냐?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않는 것이냐?
㈃ 結顯
汝全不知로다 如來藏中性覺眞空과 性空眞覺이 淸淨本然周遍法界하야
隨衆生心應所知量하나니 阿難如一井空하면 空生一井하야 十方虛空도
亦復如是하야 圓滿十方이어니 寧有方所리오 循業發現하거니 世間無知
하야 惑爲因緣及自然性하니 皆是識心分別計度이요 但有言說都無實義니라
네가 전혀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깨달음[性覺]인 진공(眞空)과 성품이 공(空)
인 진각(眞覺)이 청정본연(淸淨本然)하고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심(衆生心)을
따르고 소지량(所知量)에 응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아난아! 만약 하나의 우물을 파면 허공이 하나의 우물만큼 생기는 것처럼
시방의 허공도 그와 같아서 시방에 두루한 것인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허공이 생기는 것이 다 업에 따라 나타난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무지하여 이
것을 ‘인연의 성품이니 자연의 성품이니’하고 미혹하는 것이다. 이는 다 식심
(識心)으로 분별하고 계탁한 것이니 다만 언설(言說)이 있을지언정 도무지 실다
운 뜻이 없다.
㉳ 見大 ㈀ 標本
阿難見覺無知하야 因色空有하나니 如汝今者에 在袛陀林하야 朝明夕昏
하며 設居中宵하야도 白月則光하고 黑月便暗이요 則明暗等을 因見分析
하나니 此見爲復與明暗相幷太虛空으로 爲動一體아 爲非一體아 惑同非
同이며 惑異非異아
아난아! 보고 느끼는 것에 앎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색(色)과 공(色空) 등의
경계 때문에 앎이 있는 것이다. 네가 지금 지타림에 있을 때에 아침에는 환하
고 저녁에는 어두우며 설사 밤중이라도 보름달이 비출 때에는 환하고 그믐에
는 어두울 것이다.
이러한 명암(明暗) 등을 봄으로 인하여 분석(分析,앎)이 있게 되는데, 이 보
는 성품[見]이 다시 명암의 현상과 태허공(太虛空)으로 더불어 동일체(同一
體)이냐, 동일한 체가 아니냐? 아니면 혹은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며,
혹은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느냐?
㈁ 辯明
阿難此見若復與明與暗과 及與虛空으로 元一體者인댄 則明與暗은 二
體相亡하야 暗時無明하고 明時無暗이니라
아난아! 만약 이 보는 성품이 다시 명암(明暗)이나 허공과 함께 원래 한 덩
어리였다면 명암의 두 가지 체(體)가 서로 공격하여 어두울 때는 밝음이 없어
지고, 밝을 때에는 어두움이 없어질 것이다.
若與暗一인댄 明則見亡이요 必一於明인댄 暗時當滅이니 滅則云何 見明見
暗이리요 若明暗殊나 見無生滅어늘 一云何成이리요
만약 이 보는 성품이 어두움과 한덩어리라면 밝을 때에는 응당 보는 것이
없어질 것이고, 반드시 밝음과 한덩어리라면 어두울 때에는 응당 볼 수 없을
것이니 이와 같이 보는 성품이 소멸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밝음을 보고, 어두
움을 보겠느냐? 이와 같이 명암은 비록 달라지나 보는 성품은 원래로 생멸이
없거늘 하나의 몸[一體]이라는 말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若此見精與暗與明으로 非一體者인댄 汝離明暗及與虛空하고 分析見元하라
作何形相고 離明離暗하고 及離虛空이면 是見元同龜毛兎角하리니 明暗虛空
의 三事俱異인댄 從何立見이리요
만약 이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이 밝음과 어둠과 함께 하나의 몸[一體]
이 아니라면 너는 명암과 허공을 여의고 보는 성품의 근원을 분석해 보아라.
무슨 형상이더냐?
밝음과 어두움과 허공을 떠나서는 보는 성품이 원래로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을 것인데, 밝음과 어두움과 허공의 세 가지 일과 다르다면 무엇으로
보는 성품[見]을 세우겠는가?
明暗相背어늘 云何或同하며 離三元無커니 云何或異하며 分空分見컨댄 本無
邊畔커늘 云何非同이며 見暗見明으로 性非遷改어니 云何非異리오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어긋나는데, 어떻게 보는 성품이 이들과 같다고 할 수
있으며, 밝음과 어두움과 허공의 세 가지를 떠나서는 따로 보는 성품을 세울
수 없는데, 어떻게 또 보는 성품이 이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으며, 허공을 나
누고 보는 성품을 나누려고 해도 본래 한계가 없는데, 어떻게 같지 않다고 할
수 있으며, 어두움을 보기도 하고 밝음을 보기도 하지만, 보는 성품은 옮기고
바뀌는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명암과 보는 성품이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
느냐?
汝更細審하야 微細審詳하야 審諦審觀하라 明從太陽하고 暗隨黑月하고 通屬
虛空하고 壅歸大地어니와 如是見精이 因何所出고
너는 다시 자세하고 미세하게 살펴서 깊이 분별하고 유심히 관찰해 보아라.
밝음은 태양에서 오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데서 오며, 통한 것은 허공에 속하
고, 막힘은 대지로 돌아가는데, 이와 같이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은 어
디에서 나오느냐?
見覺空頑이라 非和非合이며 不應見精이 無從自出이니라
보는 성품은 깨달아 아는 것이 있고, 허공은 완고한 것이니 화합에서 나온 것
도 아니며, 그렇다고 응당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이 인연이 없이 스스로
나온 것도 아니다.
㈂ 會通
若見聞知性原周遍하야 本不動搖인댄 當知無邊한 不動虛空과 幷其動搖
하는 地水火風하야 均名六大니 性眞圓融하야 皆如來藏本無生滅하니라
만약 이와 같이 보고 듣고 아는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하여 본래 동요하지 않
는 것이라면 응당 저 끝없는 부동의 허공과 동요하는 지수화풍(地水火風)과
함께 나란히 육대(六大)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성품이 참되고 원
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요 본래 생멸이 없기 때문이다.
阿難汝性沈淪하야 不悟汝之見聞覺知가 本如來藏하니 汝當觀此見聞覺知
하라 爲生爲滅가 爲同爲異아 爲非生滅이요 爲非同異아
아난아! 너는 성품이 잠겨 있어서 너의 견문각지하는 것을 다시 돌이켜 관
찰하여 보아라. 이것이 생이더냐, 멸이더냐? 같더냐, 다르더냐? 생멸도 아
니고, 같고 다름도 아니더냐?
㈃ 結顯
汝曾不知로다 如來藏中性見覺明과 覺精明見이 淸淨本然周遍法界하야
隨衆生心應所知量하나니 如一見根이 見周法界인달하야 聽齅嘗觸과 覺
觸覺知도 妙德瑩然하야 周遍法界하고 圓滿十虛커니 寧有方所리오 循
業發現하거늘 世間無知하야 惑爲因緣及自然性하나니 皆是識心分別計度이
니 但有言說都無實義니라
너는 일찍이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보는 것[見]인 진공(眞空)의 각명(覺明)
과 성품이 공(空)인 깨달음[覺]의 묘정명견(妙精明見)이 청정본연(淸淨本然)
하고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심(衆生心)을 따르고 소지량(所知量)에 응하는 것
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이는 마치 하나의 견근(見根)의 보는 성품[見]이 법계에 두루하듯이 귀의
들음[聽]과 코의 맡음[嗅]과 혀의 맛봄[嘗觸]과 몸의 느낌[覺觸]과 뜻의
분별[覺知]도 그 묘덕(妙德)이 환하게 법계에 두루하여 시방의 허공에 가득
한데, 거기에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보고 깨닫는 것이 다 업에 따라 나타난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무지하여 이
것을 ‘인연의 성품이니 자연의 성품이니’하고 미혹하는 것이다. 이는 다
식심(識心)으로 분별하고 계탁한 것이니 다만 언설(言說)이 있을지언정 도무
지 실다운 뜻이 없다.
㉴ 識大 ㈀ 標本
阿難識性無源하야 因於六種根塵妄出하니라
아난아! 인식하는 성품[識性]이 따로 근원이 없고 다만 여섯 가지 근(根)
과 진(塵)에 의하여 허망하게 나오는 것이다.
汝今遍觀此會聖衆에 用目循歷하나니 其目周視호대 但如鏡中에 無別分析
커든 汝識於中次第標指호대 此是文殊며 此富樓那며 此目犍蓮이며 此須
菩提며 此舍利弗이니
네가 지금 두루 이 모임의 성스러운 대중을 살필 때에 눈으로 차례차례로
보게 되는데, 그 눈이 두루 보는 것이 마치 맑은 거울 속을 보는 것과 같아
서 달리 분별할 것이 없겠지만 너의 의식(意識)은 그 속에서 ‘이는 문수
(文殊)이고 이는 부루나이고 이는 목건련이고 이는 수보리이고 이는 사리
불이다’고 지목할 것이다.
此識了知爲生於見가 爲生於相가 爲生虛空가 爲無所因호대 突然而出가
이 식(識)의 분별해 아는 성품이 견근(見根)에서 생기느냐, 바깥 대상[塵
相]에서 생기느냐, 허공에서 생기느냐, 원인이 없이 돌연히 나온 것이냐?
㈁ 辯明
阿難若汝識性이 生於見中인댄 如無明暗及與色空하야 四種必無하면 元無
汝見하리니 見性尙無어니 從何發識이리요
아난아! 만약 너의 분별해 아는 성품[識性]이 보는 견근(見根)에서 생긴다
면 명(明) 암(暗) 공(空) 색(色)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고, 이러한 네 가
지가 반드시 없다면 원래로 너의 보는 성품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보는 성
품도 오히려 없는데, 어디에서 식(識)의 작용이 발생하겠느냐?
若汝識性이 生於相中인댄 不從見性이리니 旣不見明하고 亦不見暗하며 明
暗不矚인댄 旣無色空하리니 彼相尙無어니 識從何發하리요
만약 너의 분별해 아는 성품[識性]이 바깥 대상에서 생긴다면 보는 견근
(見根)과는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밝음도 보지 못하고 또한
어두움도 보지 못하며, 밝고 어두움에 속하지 않는다면 곧 색(色)과 공(空)
도 보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대상을 볼 수 없는데, 식(識)이 어떻게 발
생하겠느냐?
若生於空인댄 非相非見이니 非見無辯하야 自不能知明暗色空하며 非相滅
緣하야 見聞覺知도 無處安立하리라 處此二非인댄 空則同無하고 有非同物
하리니 縱發汝識한들 欲何分別이리요
만약 식(識)이 허공에서 생긴다면 대상과도 관계가 없고, 보는 견근(見根)
과도 관계가 없다. 이와 같이 보는 견근(見根)과 관계가 없다면 분별함도
없어서 자연 명암과 색공을 알지 못할 것이고, 대상과 관계가 없다면 반연
이 없어서 보고 듣고 깨달아 안다는 것이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대상과도 무관하고 보는 견근(見根)하고도 무관한데, 허공이
그대로 식(識)이라면 없는 것과 같고, 허공에 식(識)이 있다 하여도 뼈대
[體]를 세울 수 없어 밖의 사물과는 같지 않을 것이니 설사 너의 식(識)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느냐?
若無所因호대 突然而出인댄 何不日中에 別識明月가
만약 이 식(識)이 까닭 없이 돌연히 나온 것이라면 어찌하여 한낮에는 밝
은 달을 분별하지 못하느냐?
汝更細詳微細詳審하라 見託汝晴하고 相推前境하니 可狀成有하고 不相成
無어니와 如是識緣은 因何所出고 識動見澄이라 非和非合이며 聞聽覺知亦
復如是하니 不應識緣이 無從自出이니라
너는 다시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피고 관찰하라. 보는 견근(見根)은 너의
눈[眼睛]에 의탁하고, 대상은 앞의 경계를 가리키는 것이니 가히 설명[形
狀]할 수 있는 것은 다 온 곳이 있을 것이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다 온
곳이 없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다면 의식[識]의 반연[識緣]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
식(識)은 움직이는 것이고 보는 성품은 청정한 것이니 화합에서 나온 것
도 아니며, 견문각지(見聞覺知)도 이와 같다. 그렇다고 이 의식의 반연[識
緣]이 온 곳이 없이 스스로 있는 것도 아니다.
㈂ 會通
若此識心本無所從인댄 當知了別見聞覺知도 圓滿湛然하야 性非從所라
兼彼虛空과 地水火風으로 均名七大니 性眞圓融하야 皆如來藏이라 本無
生滅이니라
만약 이 식심(識心)이 본래로 온 곳이 없는 것이라면 응당 요별하여 견문
각지하는 것도 원만하고 담연하여 그 성품이 본래 온 곳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응당 저 허공이나 지수화풍과 함께 균등히 칠대(七大)라고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어서 본래
생멸이 없기 때문이다.
阿難汝心麤浮하야 不悟見聞發明了知가 本如來藏하나니 汝應觀此六
處識心하라 爲同爲異아 爲空爲有아 爲非同異아 爲非空有아
아난아! 너의 마음이 거칠고 들떠서 보고 듣고 드러내 아는 것이 그대로
본래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너는 응당 보고 듣고 알고 하는 이
육처(六處)의 식심(識心)이 저 근진(根塵)과 같은가, 다른가? 그 자체가
공(空)인가, 유(有)인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가? 공도 아니
고 유도 아닌가? 이를 잘 관찰해 보아라.
汝元不知로다 如來藏中에 性識明知와 覺明眞識이 妙覺湛然히 周遍法界
하야 含吐十虛이니 寧有方所리오 循業發現하거늘 世間無知하야 惑爲因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