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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란

narrae 2012. 3. 24. 07:02

 

불교명상수련원(마하수련원)벽공 씀.
http://mahazen.org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은 어떤 것일까.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글이 길어서 끝까지 일기도 힘들 것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한번 읽어 보십시오.
아래 글이 길다고 해도 깊고 깊은 팔만대장경의 바다에서 보면 아주 짧고 간단한 설명 글에 지나지 않는 글이며, 대충 알기 쉽게 하고자 억지로 열거한 것에 불과합니다.
부처님께서 직접 말 씀 하신 내용 외에도 지고의 깨달음을 얻은 조사들이 진리의 법과 우주 질서를 설명한 해설서인 논서까지 합하면 그 분량이 너무 광대해서 여기저기 짜집기로 설명한다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주의. 아래의 설명 내용은 아주 극히 중요한 일부분의 뼈대만 설명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특히 아래에 설명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중생들이 업력으로 느껴지는 세계를 설명한 것이라서 여기에 나오는 세월과 시간과 공간들은 결정적으로, 이렇다. 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란걸 이해야야 합니다.
업력으로 느껴지는 세상들은 언제나 변하며 실상의 모습이 뜬구름과 같고 이슬과 같아서 그렇습니다.
너와 나, 근본 우주 성품은 영원불멸이며 시간도 공간도 정해짐이 없고, 거리도 역시 정해짐이 없고, 과거현재미래도 마찬가지고 차원도 수많은 차원이 뒤섞여서 위치가 정해짐이 없으며, 본성이 늘지도 줄지도 않고, 시작도 끝도 없는 상태여서, 진공묘유라고 하기도 하고, 공이라 칭하기도하고, 법이라 칭하기도 하며, 해인삼매라 하기도 합니다.
이런 바탕에서 전개되는 중생계의 모습을 아래에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도 거리도 공간도 결정된 모습들이 아니라고 이해하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한량없고 무량한 세계의 변하가 가득한게 중생계의 모습이지만, 모두가 한 찰라의 일념속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관은 그 중 대표적인 말씀이 있으니 (공)空이라는 공사상입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성립되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며 12연기법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사상의 중심에는 영원한 대자대비가 있습니다.
그 어떤 극악한 대 악인도 영원히 대 방편으로 구제 할지언정, 버리거나 벌을 주는 법이 없습니다. 이 부분이 또한 일반 종교와 다른 절대적인 차이점입니다.
믿으면 사랑하고 불신하면 벌을 주는 개념자체가 없습니다. 수 만권의 대장경 어디에 찾아봐도 미워하고 벌을 주는 내용이 나오질 않습니다.)


성주괴공은 우주가 성, 주, 괴, 공의 순서로 생성되고 파괴되면서 변화를 영원히 거듭한다는 것이며, 12 연기법의 법칙대로 차래로 변화가 일어나면서 변천을 거듭하고 윤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광대한 삼천대천세계가 존재하며, 신과,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중생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산과 바다, 들과 불과 물까지 그런 일체 중생이 지은바 업대로 깨닫고 해탈하기 전까지는 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윤회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세계는 차원마다 모두가 시간과 공간이 다르고 차원이 다른 관계로 볼 수 있는 세계도 있지만 볼 수도 접할 수도 없는 세계도 있고, 수명도 다르고 모습도 다르며 하루를 느끼는 시간 개념도 각기 다르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세계가 같이 혼재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의 특이한 가르침이 무엇인가.
일체 세상의 근본 모습은 절대성이 없고 본질이 공해서 시작도 끝도 없으며 시간과 공간도 실 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대 무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본질은 비어 있다고 공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
(공이란 말은 비어서 없다는 뜻이 아니며, 시작과 끝이 없으며, 절대성이 없으며, 어떤 결정적인 모양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이라고 한다.
또 생도 사에도 걸림이 없고 생도 멸도 없는 초월한 실재이기 때문에 공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왜, 이런 우주는 절대 무상의 성질을 가지며 그 본질은 무엇인지, 그와 같은 경계가 왜, 성립되며, 그런 바탕에서 어떻게 그렇게 번다한 세상이 벌어지며 윤회를 하고 또 수많은 생명들이 창조되고 진화하는지? 그리고 태어나고 불행하고 행복함이 어떤 과정 속에 이 루어지는 지를 12연기법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대한 움직임을 성주괴공 (成住壞空)으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이 글이 좀 길어지겠지만 최대한 줄여서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불교에서는 광대한 세계를 두고 삼천대천세계라고 합니다.
그런대 이 삼천대천세계는 우리들의 육안으로 관찰되는 우주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모든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세계가 모두 포함이 됩니다.
또 과거와 현재 미래의 세계까지 포함이 됩니다.
또 인간이 접하고 볼 수 있는 세계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차원의 세계까지 포함 해서 삼천대천세계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요사이 과학이 발달하고 우주가 광대하다고 말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한 것입니 다.

그 밖에도 중생계를 두고 말하는 삼천대천세계와는 달리 극락세계처럼 여러 불국 정토는 윤회를 하지 않는 세계다. 해서 별도로 분류합니다.
(일반적으로 32차원으로 이루어진 천상계와 불국정토인 극락세계를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데 엄연히 불교경전에서 말하는 천상계와 극락 세계는 근본 구성 부터가 다르다.
극락세계를 말씀하시는 경전은, 무량수경, 아미타경 관무량수경 등이 있다.
다른 경전의 곳곳에 극락세계에 대한 언급이 무려 200여 곳에 나온다.
그 외에도 수 많은 고승들의 해설서에 극락세계의 모습과 그 곳에 나는 인연이 무엇인지 나와 있으며, 그리고 극락세계에 태어난 사람들 의 영험담들이 무수히 기록으로 전해 온다.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등에 경전에 극락세계 모습이 세세히 묘사된다.
극락세계에 많은 불국토 중에서도 인간계와 가장 가까웁 고 비슷한 곳이라는 곳이다.
극락세계는 아미타불의 48원과 위신력으로 겁립 되어서 그 곳에 한번 나기만 하면 영원히 다시 죽어서 다른 곳에 윤회를 하지 않고, 결국 깨닫고 성불해서 윤회를 벗어난다는 세계다.
극락세계는 천상세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극히 화려장엄하고 안락한 곳이라고 해서 극락세계라고 칭한다.
비유하기를 극락세계의 성중들의 모습은 천상의 천인들과 비교를 해서 왕과 거지와 같이 비교되며 복력도 그러하며, 수명은 무량하며, 천상은 각자 지은 바 선업으로 가는 곳이지만, 극락세계는 아미타불께 귀의하고 가르침을 받아서 반드시 깨닫고 성불하고 말겠다는 굳은 원력으로 나기를 염원하면 아미타불과 극락세계 성중들이 맞이하면서 날 수가 있다고 한다.
때문에 죄업이 깊은 사람도 깊은 참회를 하고 크게 원력을 세우면 날 수가 있다고 설명한다.)

삼천대천세계를 이루는 최소의 작은 단위로는 육도 중생계가 있습니다.

1. 천상계. 33천의 차원이 있습.
2. 아수라계, 4주처가 있습.
3. 인간계. (남섬부주 북구로주 서구다니주 동발제주. 4대 주가 있고 인간계 중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계는 남섬부주라고 한다.)
4. 축생계. 각종 동물들의 세계이며,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고 접할 수 없는 동물계도 포합이 됩니다.
5. 아귀계.
6. 지옥계. 18대 지옥과 500 소 지옥.

도합해서 육도중생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우주와 또 다른 차원의 우주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런 육도 중생계를 1세계라고 하고 이런 세상이 1000개 모인 것을 두고 소천세계라고 합니다.
소천세계가 또 다시 천개 모인 것을 중천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중천세계가 다시 천개 모인 것을 두고 대천세계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천세계가 한량없으니, 삼천대천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삼천대천세계는 무량미진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인간계도 무량미진수가 존재하고 천상계도 무량미진수가 존재하고 또 다른 세계도 무량미진수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광대함을 인간의 샘 법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불가설전불가설이라는 숫자를 사용하고 무량수라는 단위를 사용하며, 항하사 나유타 이런 숫자를 사용합니다.
(숫자의 개념은 저 아래 글에 숫자 단위가 나와 있으니 참고로 할 것)
억, 조, 이런 단위로는 나타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과 세월의 단위도 찰라지간과 같은 작은 단위로부터 무량수까지 사용을 합니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이 무량한 세월을 두고 거듭 반복된다는 것이지요.


성, 주, 괴, 공을 설명하겠습니다.

‘성’이란 이루어짐을 말하는 대 우주가 중생의 업력에 의해서 처음에는 풍륜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성겁은 20중겁의 세월 동안 이루어진 다고 설명합니다. 풍륜이란 바람바퀴지요.
요즘 과학자들이 말하는 가스로 이루어진 천체라고 해도 설명이 가할 것입니다.

그리고 점차 물로 이루어진 수륜 물바퀴도 나타나고, 끝에 가서 금륜, 바위와 흙으로 이루어진 그런 우주가 성립된다고 합니다. 마지막 에 가서 거기에 중생이 거하게 되며, 유정들이 거하는 주겁이 시작됩니다.

주겁은 인간의 나이로 팔만사천세부터 시작을 해서 100년마다 한 살씩 줄어서 수명이 10세에 이르는 기간과, 또 다시 수명이 늘어나서 팔만4천세가 되는 세 월을 말합니다. 그렇게 19번을 되풀이하고 20번 째에 이르는 동안 안정되게 유지되는 세월을 주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기간을 논하기 어려운 게 팔만사천이란 용어는 아주 긴 세월을 말할 때 상징적으로 쓰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꼭 인간의 나이가 팔만사천세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예로 인간의 수명이 가장 길 때가 인간계가 처음 생기기 시작할 때인데, 화재 이후에 인간계가 성립될 때는 광음천 이상의 천인들이 수 명이 다 해서 인간계에 화생하며, 수재 이후에는 변정천 이상의 천인들이 화생하며, 풍재 이후에 생성이 될 때는 광과천 이상의 천인들이 수명이 다해서 화생하기 때문에 그 여력이 남아서 수명과 복력이 한량없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인간이 육신을 가지기 전이어서 천인의 복력과 같다는 것이지요. 그 후로 육신이 생기고서, 그때 출현하신 부처님들 비바시불이나 시기불 같은 분들의 수명을 수 억 세로 표현합니다. 마땅히 다른 인간들의 수명도 그때는 수 억세라고 하지요.
그러니 팔만사천세에서 100년에 1살씩 줄어서 10살이 되는 1소겁이 얼마나 긴 세월인지 쉽게 예단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냥 팔만사천세가 순수한 인간의 나이라면 계산이 쉽게 나오겠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불교에서 잘 사용하는 팔만사천이란 용어는 그냥 팔만사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한 예로 불교 대장경은 그 뜻과 내용이 광대무변 하다는 뜻으로 팔만사천경이라고 곧잘 하거든요.

주겁이 끝날 쯤에 괴겁이 시작됩니다.
화재, 수재, 풍재가 차래로 나타나면서 20중겁의 세월에 걸쳐서 파괴되어 간다는 것이 괴겁입니다.
괴겁이 끝나면 모두 소멸되고 공의 상태로 다시 20중겁을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우주가 80중겁에 걸쳐서 성 주 괴 공이 이루어진다고 설명을 합니다.
20 중겁이 1대겁이 되지요. 성주괴공의 전 기간은 4대겁이 되는 것입니다.
약간 다르게 설명하는 론서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 말한 성주괴공의 4대겁의 기간은 인간계와 천상의 일부인 욕계천에 해당되는 기간이며, 더 위의 세계는 시간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차원마다 성주괴공의 생멸하는 기간이 모두 달라지는 것입니다.
천상계 광과천 이상은 인간계와 욕계천 일부가 소멸되는 성주괴공의 전 기간을 1중겁으로 잡기 때문에 광과천 이상의 세계는 성주괴공 기 간 자체가 욕계천의 성주괴공의 기간과는 상상할 수 없는 큰 세월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곧 인간이 바라보는 우주와 각 다른 차원의 우 주의 시공이 모두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성겁의 세월이 지나면 다시 주겁의 세월이 흐르면서 비로소 우주가 정상적으로 존재하며, 그 주겁도 또한 20중겁 기간 존재한다고 합니다.

주겁이 가고 다시 괴겁이 다가오면 20중겁 동안 서서히 세상이 파괴가 된다는 것입니다.
괴겁이 되면 모든 세상이 차래로 소멸되는 대 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인간계, 아수라계, 천상계, 순으로 모두 소멸된다고 합니다.
소멸도 두 가지가 있는데, 모두가 깨달음을 얻어서 소멸이 되는 경우와 대 삼재가 발생하면서 소멸되는 과정이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대삼재란 화재, 수재, 풍재를 말합니다. 삼재는 한꺼번에 오는 것이 아니고 처음에 화재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때는 태양이 7개까지 나타나면서 바다도 끓고 땅도 녹으면서 소멸된다고 합니
다. 천상의 광음천 이하는 모두 소멸되고 다른 천상은 화재에는 온전하다고 하지요.

다시 오랜 세월이 흐르고 인간계가 생겨나 존재하다가 그 다음에 오는 삼재는 수재가 된다고 합니다. 수재는 하늘로부터 무수한 뜨거운 잿물 비가 내리면서 땅 덩어리는 모두 녹아 버린다고 합니다.
그 때는 천상의 변정천 이하는 모두 없어진다고 하지요.

그리고 또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다시 인간계가 생성이 되고 그 다음에 오는 삼재는 풍재라고 합니다.
이 때는 모든 세상이 강한 바람으로 가루가 되어서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고 합니다. 이때는 광과천 이하는 모두 소멸이 되어 버린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태양이 7개까지 어떻게 나타날까. 경전의 말씀은 그 시절 중생들 업력에 의해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억지로 여기서 과학자들의 말을 인용해서 다른 설명을 붙여 본다면, 지금의 태양이 더욱 확장하고 초신성이 되어서 폭발할 수도 있을 것 이며, 목성과 같이 무게가 부족해서 태양이 되지 못한 혹성이 기나긴 세월 속에 더욱 몸이 커지면서 태양으로 변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천체는 인력이 강하면 끌어 들여서 몸을 더 크게 불린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또 태양계가 머나먼 우주를 여행하는 과정 중에서 다른 성단과 합쳐질 수도 있어서 태양이 더 늘어 날 수도 있겠지요. 과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태양계처럼 태양이 하나인 곳도 있지만 여러 개의 태양을 보유한 성단도 많다고 하니까요. 또 태양계가 우주여행을 여행하는 과정에 고도로 뜨거운 물질들이 존재하는 공간을 여행한다면 수재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고 우주 폭풍 우를 만나서 바람으로 파괴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관찰을 하니 우주 블랙홀 중에는 거대한 자기폭풍을 발생해서 다른 천체가 파괴되기도 한다고 하니까요. 위의 이야기는 내가 이야기 삼아서 억지로 붙여보는 소리입니다.

위와 같이 괴겁의 진행으로 완전히 소멸되고 나면 20중겁 동안은 존재하지 않는 공겁이 지속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또다시 성겁이 찾아 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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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12 연기법에 대해서 설명을 할 까합니다.

12 연기법이란? 12가지 요소가 서로 인과 관계를 이루어 가면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6입(六入), 촉(觸), 수(受 ),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일체 중생들은 모두 12 연기법으로 윤회를 하면서 생사유전을 거듭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생이란 인간뿐만 아니라 천인, 아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중생까지 포함이 되며, 물, 바람, 바위와 같이 모든 물질들을 통 털 어서 모두 중생이라고 합니다.
중생계라도 천인, 아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중생들같이 활동력이 분명한 중생은 유정으로 분류를 하고 그 나머지는 무정으로 분류를 합니다.
무정은 바람 물 불 산, 바다, 행성들, 천상 지옥과 같은 바탕체 자체를 무정으로 분류합니다.

흔히 일반종교에서 말하는 신이나 귀신 등은 어디에 해당이 되는가?
천상계 32 천의 천인들이 바로 일반 종교에서 말하는 천상계이며 신 들입니다. (32천은 32차원으로 해석 해도 됩니다. 모두 환경이 다르고 수명도 다르고 시간 개념도 다르며 복력도 다르고 생긴 모습도 다르 며, 물질 구성도 차원마다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천상의 어떤 차원이라도 모두 윤회하고 성주괴공으로 일정한 세월이 지나면 모두 파괴되는 세상이므로, 당연히 거기에 나는 천인들 도 모두 지은바 대로 다시 목숨을 마치고 다른 곳에 나야 되는 윤회하는 몸인 것입니다.

당연히 불교에서는 어떤 신이라도 세상을 창조한 자로 보지도 않고 대자유를 얻은 몸으로 보지도 않으며, 위대한 힘을 가진 자로 보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신은 애경하고 존중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다만 선업을 쌓은 선한 중생이며 돌고 도는 윤회하는 중생이라고 볼 뿐입니 다. 오직 대 적멸을 깨닫고 대자유를 얻은 깨달은 자만이 애경과 존중의 대상이며, 일체중생을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교경전에는 곳곳에 다른 세계의 천인들이 부처님을 애경하고 받들고 배움을 청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부처님 의 가르침을 받고 깨달음에 이른 제자들에게 지극히 애경하고 존중하며 해탈의 가르침을 받는 천인들의 모습이 경전마다 나오지 않는 곳 이 없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이나 깨달은 제자들이 중생을 제도함에 있어서 그 영역이 인간 뿐만이 아니고 축생과 아귀, 그리고 지옥 중생, 또 천인에 이 르기까지 끝이 없으며 그런 과정들이 세밀하게 경전마다 가득하게 등장합니다.

중생계를 다시 더 확장을 해 본다면 사람들이 만들어 쓰는 모든 도구들도 중생계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기계든 컴퓨터든 예외가 없게 되겠지요. 기계나 컴퓨터도 모두 여러 가지 물질들과 노력과 지혜가 결합하고 합성되며 모이고 흩어지면서 창조되고 진화되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역시 탄생과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윤회를 합니다.

어떤 물질이든지 죽거나 부셔진다고 결코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물질이던 정신이던 모이고 흩어지는 가운데 기운이 감돌고 파동 이 생기면서 그 자체를 '영'靈이라고 칭합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중생이며, 활동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결정적인 정해진 모습이란 없는 것이며 잠시 머물다가 흩어지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게 모습으로 합성이 되거나 변화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주변에 버려진 물건들도 언제까지나 쓰레기가 아닌 것 아닙니까.
우주의 원소들은 서로 짝을 찾아 모이기도 하고, 밀어 내기도 하면서, 합성하기도 하고, 변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물질로 진화하기도 하고 또 아주 새로운 물질과 경계를 창조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요즘 과학자들이 지구의 생명원인을 연구하는 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최초의 생명체 형성은 우주의 여러 원소들이 결합되고 열과 물과 합해지면서 변화를 거듭하면서 그렇게 생명체가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또 아무래도 물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합니다.
물론 생명체가 물에서만 살고 거기서만 시작이 되었다가 보다는 아마 보편적으로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다 보니 처음 물의 근원이 되는 바다는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의문에 이렇게 답을 합니다.

저 우주에 떠돌아다니는 어름덩어리와 물을 함유한 암석들이 지구에 낙하를 해서, 만들어 졌을 것이다. 말하기도 하고, 어떤 과학자는 생성되는 과정 중에 열과 증기로 바다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졌을 것이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눈덩이들이 낙하를 해서 수억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바다가 이루어 졌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실재로 태양계를 떠도는 암석들 중에는 물을 20%이상 함유한 암석들이 떠돌며, 얼음덩어리들이 떠돌고 지구상에 낙하를 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집채만한 눈 덩어리들이 지구에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눈 덩어리들은 공중에서 기화되고 비로 떨어지겠지요. 아무튼 그렇게 바다 수위가 계속 늘었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불교경전에는 바다는 허공에서 방석만한 진한 비가 내려서 만들어 졌다고 말합니다. 그
리고 최초의 인간들은 화생하며, 그때는 남녀 구분도 없었고 지금과 같은 육신도 없었다고 설명을 합니다. 그러다 점차 오랜 세월에 걸쳐서 욕심과 어리석음이 커지면서 점차 퇴보를 거듭해서 육신이 나타나고 남녀의 경계도 만들어 지고 사회도 생성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이런 모습이 끝없이 변천을 거듭해서 수명이 아주 길 때도 있고, 점차 작아져서 평균 수명이 겨우 10세를 넘기지 못하는 그야말로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는 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모습도 짐승과 같을 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키도 엄청나게 크고 지혜도 무량하고 수명도 한량없는 그런 시절도 있었다고 설명을 하지요.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최초 미생물들이 유성과 함께 우주에서 날라 오기도 하고, 암모니아, 그리고 열, 이런 여러 가지 가스들이 혼합되면 서 아주 미세한 생명이 탄생을 하고 그 생명들이 분열하고 합성을 거듭하면서 진화를 했다는 것이지요.
요즘 어느 과학자들 중에 연구실에서 그때의 환경을 만들고 초기 생명체가 만들어졌다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이런 설명들이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과 비슷합니다. 불교의 경전에서는 이 우주의 정말 가지가지 중생들의 생활 모습과 가지가지 세계들이 나옵니다.

아무튼 이런 과정들이 12연기법의 순서로 진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연기법의 원리가 정신이든 물질이든 구분 없이 모이고 흩어지면서 운명을 창조하고 변화되어 과정인 것입니다.

중생계를 창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반종교에서 말하는 신이 한 것인가. 인도에서는 이 세상을 자재천이 창조를 했다는 종교도 있고 이 세상을 대범천주가 창조했다고 주 장하는 종교도 있었고 도리천주 곧 중국에서 말하는 옥황상제가 창조했다는 종교도 있었으며 힌두교에서는 시바신이 사성계급으로 인간 을 창조하고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를 빼서 만들었다는 주장도 했지만 부처님께서는 모두 낱낱이 이유와 증거를 말하면서 모조리 부정 해 버리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중생계를 창조했는가?
중생계는 중생들 스스로 창조하고 진화하고 변화해 간다는 것입니다. 천상과 아수라 인간 축생 아 귀 지옥계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존재하는 세계도 아니며 있기도 하며 없기도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분노와 살심과 증오가 100% 완전하게 가득하다면 그것은 불이 되며 칼날이 되는 고로 불타는 지옥과 칼날을 이루고 그 살심과 증오가 되 돌아와서 무한한 고통을 끝없이 받는 것이 지옥을 만드는 것이며 그 분노가 소멸되는 기간동안 수명을 받는 것입니다.
미련과 애착과 욕심과 미움과 선한 마음이 골고루 비슷하다면 인간계에 몸을 받고, 꿈과 그림자와 같이 실재하는 인간계를 창조하는 것 이며, 선과 악에 집착하지 않고 맑고 깨끗하다면 천상을 이루고 천상락을 받으므로 모습이 선하고 밝고 거룩하며, 욕심이 치성하고 아둔 하며 어둡고 막히면 축생계를 이루며 축생의 고통을 받는 것이니, 곧 스스로 창조하고 변해가는 것입니다.

수많은 생각들은 반복되면서 습관이 되고 업이 되면서, 돌과 바위같이 굳어져서 깊이 아뢰야식에 기록되고 없어지지 않으니 그 결과에 따 라서 다른 몸을 받게 되고 변화해 가는 것입니다.
이미 굳어지고 깊어진 업은 일순간의 생각으로는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깊은 욕망의 끌림대로 새로운 몸을 받으니 어느 누가 심판하고 지옥으로 가라 천국으로 가라 해서 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이치는 일반적으로 아는 선과 악의 행위에 따라서 과보를 받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흐름의 이치 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생각하는 선과 악은 자의적인 해석이며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른 시각이라서 그런 선과 악의 기준에 의해서 변화가 오는 것은 아 닌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이 창조하고 자신의 업이 끌고 가며, 일체가 무상함을 깨달으면 지옥도 천상 업도 순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또 모든 중생들이 그와 같이 업이 소멸되어 버린다면 천상도 지옥도 일시에 소멸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세세한 것은 여기서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원론적인 설명만 이어가겠습니다. 글이 길어져서 읽어 보기도 혼란스럽겠습니다. 기왕 쓰는 것 그냥 쓰려고 합니다.

12 연기법의 맨 처음에 ‘무명’이란 용어가 나옵니다.
무명이란 밝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도 이루어지고 결정되지 않는 상태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대 왜, 무명이라고 하는 가?
깨달아서 영원히 휩쓸리지 않는 그런 모습이 아니고 언제든지 인연을 합성하고 집착하고 변화를 할 그런 씨앗을 품은 원초적인 어리석음이 있는 상태라서 무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곧 중생의 윤회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 바탕에서 ‘행’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행은 움직임이며 작용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가만히 못 있는 것입니다.

그 본질이 물질이든 정신이든 엉키고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식’이 가미되기 시작을 합니다.
‘식’은 일종의 인간으로 말하자면 처음 정신의식인대, 다른 류로 말하면, 어떤 파동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그것이 흙이든 나무든 간에, 작거나 크거나 간에 움직임과 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탄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다른 분야로 설명을 한다면 곧 자연스럽게 오랜 세월 만들어 졌든 갑작스럽게 인위적으로 이루어졌든 반드시 거기 수준에 걸 맞는 식이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명색’인데 모양 갖추어 지기 시작합니다.
명색은 보이거나 안보이거나 간에 어떤 모양세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차차 몸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육입 여섯 가지가 나타납니다. 여섯 가지는 안이비설신의 눈, 코, 입, 귀, 몸, 생각, 이런 것이지요.

불설포대경에는, 영이 뱃속에 들어온 후에 열 달 간에 걸쳐서 정신과 모든 신경계, 그리고 사지가 발달시켜 가는 과정을 일주일 간격으로 설명을 합니다.
그렇게 정신과 육신을 차츰 갖추면서 뱃속에서부터 의식하고 느끼고 정신과 육신을 차례로 발달시킨다는 것이지요 .
그리고 태어날 때는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이의 머리카락 눈썹과 얼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충들이 산다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모든 중생은 모두가 각기 조금씩 다르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모습이 갖추어집니다.
그렇게 다시 섭취하고 배출하며 느끼고 변화를 하는 것이지요.

저 우주도 나름대로 안이비설신의가 있고 나무도 돌도 다른 형태겠지만 스스로 여러 가지 원소들을 받아들이고 합성을 하면서 모습을 갖 추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안이비설신의를 바탕으로 또 부딪침이 생깁니다. 촉’이지요.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활동이 이루어지면 다시 ‘수’가 나옵니다.
‘수’란 주변 환경을 받아들이고 감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가 나타납니다.
‘애’란? 좋아하고 집착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취’가 나옵니다.
‘취’란? 가지려고 하고, 이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멀리하고 버리는 걸 ‘취’라고 합니다.
취’가 나오면서 투쟁도 하고 선도 악도 행하게 되는 동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제 ‘유’가 진행됩니다.
유’는 어떤 형태로든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려고 고달프게 애를 써가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자는 계속 부자가 되려고 하듯이, 모든 중생은 형상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적응하려고 애를 쓰는 과정에서 또 변화가 옵니다. 그
런 과정이 연속되는 걸 생’이라고 합니다. 살아가는 일체의 모습을 생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 생을 살다보면 다시 ‘노사’ 곧 늙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절대 무상의 공을 설명하겠습니다.(자성청정 부증불감, 불생불멸)

공’이란 일체중생의 근본이요. 삼천대천세계와 일체 종교와 일체 사상과 만법의 근본입니다.
생과 멸 속에있는 모든 형상의 시작이면서 끝자리입니다.
(진정으로 이 도리를 바로 깨닫고 알고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도리를 모르고 종교를 믿는다면 모두가 그 종교의 노예가 될 것이고, 이 도리를 모르고 운명을 논한다면 운명의 노예가 된다. 이 도리를 모르고 전리를 논한다면 진리라는 거짓의 노예가 된 다. 이 도리를 모르고 윤회와 과보를 논한다면 도리어 천상과 지옥의 과보에 걸릴 것이다. 이 도리를 모르고 행복과 불행을 논한다면, 저 바다에 파도가 없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글자 그대로 없고 빈 것이라는 뜻 보다는. 있다 없다. 자체를 떠난 자리를 공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모습도 본래 절대성이 없으며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늘여서 설명을 하자면, 남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생성도 파괴도 없는 근본 모습을 공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실로 실재하지 않는 모든 중생계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환영과 같고 꿈과 같다고 비유를 하기도 합니다.
물질도 정신도 사상도 눈에 보이는 모든 원소들도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모습은 없다는 것입니다. 실재로 정말 존재하고 고정이 되어 있다면 진화는 물론 창조도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돌은 영원히 돌일 뿐 돌이 다른 모습으로 변하지도 않을 것이며 악하고 선함도 모두 그대로라. 어떤 변화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성질이 공하기 때문에 변화도 있는 것이며 또 그렇게 있는 듯 보인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그 모든 성질이 공성이기 때문에 변화가 가능한 것입니다. 공은 시간도 공간도 초월하며 그렇다고 떠나지도 않습니다.
결코 있는가. 없는가. 하는 시각으로는 이해할 도리가 없는 자리입니다.
공의 도리는 이해와 헤아림의 경지가 아니어서 일반적인 사량 분별로 판단을 하려고 하면 마치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말 장난 같은 기분도 들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디서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가 하는 시각으로도 이해 불가능인 것입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서 ‘공’인 것입니다.
곧 우주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위에 언급한 성주괴공과 삼천대천세계도 중생도 부처도 극락도 천상도 모두 그 성질이 ‘공’인 것입니다.
물론 윤회도 초월하면 습관과 운명도 초월된 자리입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믿음이 있습니다. 부처님과 옛 조사들 말씀은 하나 버릴 것이 없이 소중하고 절실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뿌리가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향한 길잡이 중에 길잡이가 부처님께서 선언하신, '일체중생이 나와 다름이 없이 불성이 있다는 선언입니다.
오로지 불교에만 있는 용어입니다. 세상에 가르침과 종교도 많지만 일체 중생이 주인이며 근본이며 창조주이며, 모두의 근본 본질이 너나 할 것없이 부족하지 않고 동등하다 는 일체중생이 불성이 있다는 말씀은 너무도 중요한 말씀이십니다.
실재로 사람마다 특성도 있고 능력도 익힌 바가 달라서 차이가 나지만 모두 비슷한 능력을 근본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심지어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그렇습니다.
사람만 특별한게 아니고 동물들도 그와 같은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익히고 배운 환경과 노력의 차이로 업이 달라서 잠시 나타나는 모양만 다른 것입니다. 동물도 생각하고 학습하며 인간과 다름없는 능력을 본질적으로 구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성이있다함을 근거로 수련에 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스스로 위대한 지혜가 숨겨져 있고 근본으로 밝고 깨끗한 마아반야가 있다는 것 을 믿어야 합니다.
위대한 지혜인 마하반야는 자성청정에서 나옵니다. 마하반야는 세간의 지식과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생과 사를 넘고 윤회와 업을 넘어서 원천근본의 영원불멸의 참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위대한 지혜라고 한 것입니다.

그 마하반야는 자성청정을 근본으로 합니다.
불상 앞에 기도를 하고 여러 경전의 말씀을 깊이 믿고 받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성에 입각한 자성 청정을 믿지 않는다면 그야 말로 잎사 귀와 줄기만 있고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스스로 근본 모습이 물들지 않고 깨끗하다는 것이 자성청정입니다.
지난 날 악업을 짓고 나쁜 업을 지었으며, 반대로 좋은 행업으로 복을 가득 지었든 간에 근본 모습은 청정한 것입니다. 자성청정을 믿지 않고, 만약 과거의 악업으로 복이 없다. 죄가 많다. 후회스러운 일이 많다. 이런 따위를 믿고 개선하려고 한다면 결코 악 업은 사라지지 않으며 도리여 물들고 탁해지면서 복은 더 멀리 달아나 버립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자성청정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반야심경에 간결하게 나오는 일체가 공하고 오온이 공하다는 내용이 그런 내용들입니다.

자성은 불생불멸입니다.
수 천 번, 만 번, 태어나고 죽지만 스스로 원천의 본래 모습은 한결같이 생사가 없으며 불멸인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새로 생기고 멸하기를 성주괴공으로 거듭되지만 본처는 생하거나 멸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굳게 믿는다면 생과 사에 대한 공포가 없어질 것입니다. 반야심경의 무유공포가 그런 내용입니다.

자성은 부증 불감입니다.
늘거나 줄지 않습니다. 없어지거나 더 해지지도 않는 항상 여여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믿음이 강하다면 손해를 보아도 걱정을 하거나, 노여워하거나, 후회스럽지 않을 것이며, 이익을 좀 보아도 길길이 날뛰 거나 빠져들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부증불감을 믿지 않는다면 항상 생활에 근심 걱정이 떠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재물을 많이 모으고 권력이 높아져도 역시 끊임없이 걱정이 됩니다. 혹시 무너질까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심은 깊은 의식 속에 잘 하려고 하는 마음과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편안함이 혹시라도 위협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때문에 수련을 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잘 하려는 의식도 버리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버려야 하며, 편안함을 좋아하고 시끄러움을 싫 어하는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아예 그런 마음이 아주 없어야 수련에 힘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여여함이니, 시끄럽든 실패하든 다 좋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그 믿음을 굳건히 하고서 묭맹스럽게 정진하고 실재로 확인하면 됩니다.
한시도 믿음을 놓으면 흔들립니다.
그 믿음이 강하고 커지면 비록 아직 확인을 못 했어도 바로 나갑니다.

자성은 불침입니다.
어떤 대상도 침범하지 못합니다. 신도 귀신도 넘보지 못하는 자리며 어리석음과 지혜도 넘보지 못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헛되이 신을 믿고 귀신을 믿으며, 그렇다고 무작정 부정하고 혹은 멀리하고 그렇게 할 일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길과 흉이 번갈아 들어도 걱정할 필요도 없고 길흉을 논하고 따져 볼 일도 없는 것입니다. 자성이 불침임을 굳게 믿는다면 헛된 것이 절대 넘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 잠시 언급한 내용들은 불자라면 대충 누구나 다 압니다.
역시 많은 수행자들도 압니다. 그렇지만 뼈 속 깊이 믿고 의지하면서 수련을 하는 사람은 거의가 없습니다.
그냥 생각으로 알고만 있는 것입니다. 비록 오랜 세월 수행을 했다고 해도, 또 깊은 경지가 나왔다고 해도, 자성불침을 믿지 않으면, 수시로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어떤 경계를 얻었다 손 쳐도 잘 못 되기 쉬운 것입니다.
반면에 위의 상태를 확인하지 못했어도 굳게 믿기만 한다면, 설령 수련을 개을리 한다고 해도 오히려 흔들리지 않게 되고 바로 가는 사람 인 것입니다.
자칫 주의할 것은 냉정하거나 오만방자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냉정하고 오만방자하다면 자성청정을 바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에서의 대처는, 남이 압박을 가해 오고 욕을 하나, 손가락질을 하나, 칭찬을 늘어 놓으나 황상 똑같아야 하며, "나는 상관이 없다. 하 면 되고, 마음 깊이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 칭찬 듣기를 바라는 마음 자체가 아예 없다고 스스로 정의하면 됩니다.
또 주변이 시끄럽거나 조용하거나, 괴로운 일이 있거나 즐거운 일이 있거나 간에 모두가 똑 같으며 다 좋다고 여깁니다.
아예 조용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고 스스로 여깁니다.
또 손해가 나고 이익이 나도 여여 하며 모두가 좋다고 여깁니다. 아예 이익 나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스스로 여깁니다. 마치 우주적인 배짱으로 생과 사를 뛰어넘는 심정으로 임해야 합니다.
촛불은 바람이 조금 불어도 꺼질까 걱정이 되고, 혹시라도 다 타 버릴 까,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그래서 늘 걱정이 되지 않겠어요. 다 타기 전에 자꾸 초를 모아야 합니다.
그러나 태양은 바람이 분다고 걱정할 일도 없고 다 타서 없어질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느나 줄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촛불이 되는 것도 태양이 되는 것도 자기 마음 먹기 나름이란 걸 아십시오.)

공은 이정도로만 설명을 할 까합니다.



끝으로 말씀드리자면, 우리의 삶은 굴레와 운명과 환경 속에 지배를 받고 존재하는 듯 하지만 모두가 창조주이며 진화의 주체들인 것입니 다. 그래서 노력하면 하는 대로 그에 따른 과보가 있고 지은바 대로 받는다는 과보설이 존재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결코 어떤 신적인 절대자가 좌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 만큼 강해지고 지혜와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본래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물인 것입니다.
그 결과가 때로는 참혹하기도 하고 바람직하지 않기도 했었겠지만 모든 것이 양면성이 있는 관계로 그렇다고 봐야 하겠지요.

지은대로 그 속에서 변화하고 윤회를 하고 있는 건 분명한 것입니다.
만약에 서양이 중세 이후에 계속 운명론에 안주를 하고 환경 그대로 살고 있었다면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세계에 영향을 미쳤겠습니까?
그와는 반면에 뉴기니아의 토착민들이 아직도 그 옛날 조상들이 살아온 모습대로 사는 것은 그냥 동물처럼 환경의 열매만 따 먹고 살아서 그렇습니다.

예전에 치아가 곪아서 아플 때는 정말 좋은 방법이 없었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이를 빼 버리는 게 좋은 치료방법이었습니다.
너무 아프니까, 안 뺄 수가 없었든 것이지요.
오죽하면 옛 말에 이가 충실하면 오복 중의 하나라고 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이가 아파서 때굴때굴 구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아프다면 치과에 가서 치료를 하면 되니까요.
그게 신이 준 능력이며 운명의 소치인가요. 다 연구하고 발전시킨 결과물 아닌가요. 결과 물이 바로 인과인 것입니다.



불교의 우주관 1)

삼천대천세계란?
저 아래 글에 설명한 세계를 통털어서 곧 하나의(1세계) 육도세계라고 하며, 이런 육도세계가 1000개 모인 것을 소천세계라고 하고 소천세계가 다시 1000개 모인 것을 중천세계라고 하고, 중천세계가 또 다시 1000개 모인 것을 대천세계라고 하며, 대천세계가 수 없이 모인 것을 삼천대천세계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불국토란?
위에 말한 중생계의 삼천대천세계 외에, 그 밖에 다시 세계를 논하니, 극락세계, 다보세계, 청유리광세계, 등 불국토를 따로 말합니다.
불국토는 삼천대천세게안의 중생계에 소속되는 천상계와는 엄연이 구별하며,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이룩한 영원히 멸하지 않고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 해탈된 국토를 말합니다.이 역시 경전에는 수 많은 세계들이 등장합니다.

육도세계?
일체 우주 중생계를 통 털어서, 모든 세상을 일컬어서 삼천대천세계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삼천대천세계를 이루는 작은 단위의 구성인 육도 세계를 설명 하겠습니다.

세계의 기원 세계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함경 가운데 ,<세기경(世記經)>, <기세경(起世經)>, <기세인본경(起世因本經)> 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모든 중생들의 업력(業力)에 의해 허공에 바람이 일어 풍륜(風輪)이 생기게 됩니다.
다시 중생들의 업력에 의해 풍륜 위에 구름이 일어나 수륜(水輪)이 생기고 또 다시 중생들의 업력에 의해 금륜(金輪)이 생깁니다.
금륜 위 에 산(山)이 솟아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는데 이를 기세간(器世間)이라 합니다.
여기까지 1소겁(小劫)의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2)

유정(有情)의 출현

기세간이 형성되면 여기에 중생이 나타나는데 이를 유정세간(有情世間)이라 하며 각 중생은 자기의 업에 따라 태어나게 됩니다.
중생은 욕심의 정도에 따라서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로 나뉘어지는데 욕계는 욕심으로 꽉 차있는 세계이며, 색계는 욕심은 없어졌으나 형색이 남아있는 세계며, 무색계는 형색은 없어졌으나 미세한 분별 심은 남아 있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태어나는 방법 에 따라 사생(四生) 즉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火生)으로 나누어집니다. 3) 삼계(三界) (1) 욕계(欲界) : 욕계에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육욕천(사천왕,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이 있습니다.
욕계의 중생들은 삼독 에 찌들려, 욕심이 꽉 차서 괴로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① 지옥(地獄) : 중생이 고통스럽게 사는 세계를 말하며, 8대 지옥, 10대지옥 등 으로 나누게 됩니다.

② 아귀(餓鬼): 아귀란 '배고픈 귀신' 이란 뜻이며 배는 태산처럼 큰데 목구멍 은 바늘구멍처럼 작아 비록 음식이 있다 해도 먹지를 못해 항상 배고픔을 면치 못하고 굶주리는 세계를 말합니다.

③ 축생(畜生): 벌레나 날짐승, 물고기 따위를 말하는 것인데, 무려 34억 종류가 있으며 이들은 공중, 물, 육지의 세 곳에 각기 나누어 살 고 있다고 합니다.

④ 아수라(阿修羅) : 줄여서 수라라고도 하는데,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인식 되며 항상 증오와 질투심을 가지고 있어서 33천과 싸 우는 것 을 본업으로 한다 고 합니다. 야단스러운 곳이나 처참하게 된 곳을 비유하여 아수라장 같다고 하 는데 이는 곧 아수라로부터 나온 말입니다. 아수라장은 아수라들이 제석천왕과 싸우는 장소를 말합니다.

⑤ 인간(人間) : 인간이란 바로 우리와 같은 사람을 뜻합니다. 최초의 인간에 관하 여는 장아함경중 소연경(所緣經), 세기경 본연품, 중아 함경 범지품 등에서 보이 며 내용도 같습니다.
그 대강을 살피면 다음과 같습니다. 최초의 인간은 색계 제2선천중 제2천인 광음천(光音天=)에서 복이 다하고 수명이 다한 天人이 내려 왔다고 합니다.
즉 불교의 경전에 의하면 인간은 天人이 이 세상에 化生한 것 입니다. 이 天人은 몸이 스스로 광명을 발하고 말 할 때 입으로부터 맑은 빛 을 내어 그 빛이 말이 되어서 의사를 소통한다고 하며, 신통력이 있어서 자유로 날아 다녔다고 합니다.

또한 음식은 생각만으로 포만감을 느꼈다고 하며 서로 들 중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 땅에서 샘이 솟아났는데 이를 감천(甘泉)이라 했는데, 天人들은 호기심에서 먹어보고 달고 맛이 있자 감 천을 먹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자 몸이 거칠어지고 살이 찌게 되어 자연 天人 의 아름답고 미묘한 형색을 잃었으며 몸에서 나는 광명도 줄어들고 날아다니는 힘도 잃어서 땅을 걸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감천을 많이 먹은 사람은 적게 먹은 사람보다 몸이 더 거칠어지고 추해지기 시작하자 서 로 시기하고 미 워하여 투쟁심을 일으키는 사이에 감천은 사라지고 지미(地味)가 자연 생기게 되었고, 천인들은 이 지미를 먹고 살다가 많 이 먹은 사람은 또 몸이 거칠어지 고 추해지기 시작했으며 덜한 천인들과 서로 시기, 질투, 투쟁하게 되자 지미는 자연 사라지고 지비(地肥)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지비를 주식으로 하 다가 또 많이 먹은 사람은 적게 먹은 사람보다 더 추해지고 서로간에 반목, 투 쟁하게 되자 지비는 사라지고 파라(婆羅)가 나오게 되었으며 파라도 같은 과정 을 거쳐 없어지게 되자 자연경미(自然粳米)가 생겨났는데 이것은 쌀 종류의 모 양으로 아 침에 베면 저녁에 나고 저녁에 베면 아침에 돋아났으며 간이 맞고 거 칠은 겨도 없어서 먹을만 했다합니다.
중생들은 자연경미를 먹으면 서부터 차차 형색이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어떤 중생은 남자의 형상이 되고 어 떤 중생은 여자의 형상이 되 어 서로가 호기심으로 쳐다보고 살피는 동안에 애 착심을 갖게 되어 성욕이 생겨 더욱 친근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부부가 생기고 복과 수 명이 다한 중생이 이 세간에 올 때 어머니의 태중에 드니 이것이 여러 경전에서 보이는 이 세상 최초의 인간에 관한 기록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불교의 경전에서는 인간은 색계 제2선천중 제2천인 광음 천의 천인(天人)이 화생(化生)했다는 점인데 이 는 중생의 본성은 원래 청정하고 동요가 없지만 미혹하여 번뇌를 일으키고 마음이 동요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중생들의 차별경계가 생기 게 되는 것이고, 또한 광음천 중생이 번뇌를 일으키 자 더 이상 광음천의 생활을 하지 못하고 이 땅에 화생하게 되었으며 이들도 번뇌를 일으키고 음식을 탐하게 되자 점점 거친 음식을 먹게 되었으며 급기야 는 자연경미를 먹게 되면서부터는 남녀상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점 입니다.

따라서 중생들이 경계에 빠져들어 감각의 욕망을 만족시키고 또 대립을 일삼을 때 중생들의 생활상은 점차 타락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점을 돌 이켜 생각해 볼 때 최초의 인간 설에 관한 경전의 말씀을 되새겨 보면 보다 강 한 자극과 욕망을 추구하는 현대의 물 질문명이 결코 인류에게 더 나은 삶의 상 태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곳은 다음과 같은 사주의 구별이 있다고 합니 다.

㉮ 남염부주(南閻浮州) : 염부주라 한 것은 수풀과 과일이 풍부한 염부나무가 번성 한 나라라는 뜻입니다. 염부나무는 인도에 널리 분포 된 나무이며, 불교의 발생 지가 인도이기 때문에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염부나무를 들어 그 이름을 만들은 것 같습니다 .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도 합니다.

㉯동승신주(東勝身洲) : 수미산이 동쪽에 있는 대주(大洲)로써 이곳의 사람들은 몸 (身)의 형상이 매우 훌륭(勝)하므로 승신주라고 합니 다. ㉰서우화주(西牛貨洲) : 수미산의 서쪽에 있는 대주(大洲)입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 들은 소(牛)가 많으므로 시장에서 금전(貨)과 같이 쓰 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북구로주(北俱盧洲) : 구로주는 번역하여 승처(勝處)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중 생, 처소, 재물 등이 사주 중에서 제일 수승하기 때문 이라고 합니다. 이상이 사 주(四洲)인데 이중에서 제일 수승한 곳은 북구로주이고, 우리가 사는 곳은 남섬 부주라고 합니다.

⑥ 육욕천(六欲天) : 육도(六道)로 보면 천(天)에 속하나 아직까지 욕심을 떠나지 못 한 세계이므로 삼계로 나눌 때는 욕계에 넣게 됩니 다.

㉮사왕천(四王天) : 사대천왕이 있어 사주를 수호하며 그 권속들과 살고 있다고 합 니다. 사대천왕이란, 동주를 주로 수호하는 지국천왕, 남주를 주로 수호하는 증장천왕, 서주를 주로 수호하는 광목천왕, 북주를 주로 수호하는 다문천왕의 넷을 말하며, 인간의 50년이 이 하늘 의 하루 낮, 하룻밤이며, 천수(天壽)는 5백 살이 며[5백 살은 곧 인간의 9만 살임.]이곳에도 남녀의 구별은 있어 혼인하는 일이 있다고 하 는데 몸과 몸을 가까이 하여 기운으로써 음양을 이루며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1-2세와 같고 키는 반 유순이라고 합니다.
큰 절에 가면 입구에 천 왕문(天王門 )이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사대천왕을 모신 곳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밖에서 오는 삿된 마귀를 방어하는 뜻에서 세워져 있는 것 입니다.

㉯도리천(利天): 33천이라고도 합니다. 이 도리천을 33천이라고도 하는 이유는 중 앙에 도리천의 왕인 제석천왕이 있는 선견성(희견성이 라고도 함)을 중심으로 하 여 사방에 각기 8성씩 32성이 있어 도합 33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처음 태어났 을 때는 인간의 2-3세 같고 인간 의 백년이 이 하늘의 하루이며 수명은 천 살 임 자연히 화현하여 천 (天)에 앉는다고 합니다. 이곳의 왕인 제석천왕은 사 천왕과 삼십 이천 을 통솔하면서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이들을 보호 하고 아수 라의 군대를 정벌한다고 합니다.
일찍이 부처님께서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위해 석 달 동안 올라가 설법하고 내려오셨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도 하는 하늘 이며, 육욕천 중에서 사왕천과 도리천의 둘은 수미 산을 의지해 있기 때문에 지 거천(地居天)이라고 하는데 사왕천은 중턱에, 도리천은 정상에 있다고 합니다.

㉰야마천(夜摩天) : 사왕천과 도리천이 지거천(地居天)임에 반하여 야마천부터는 공중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공거천(空居天)이라고 합 니다.
이곳에서는 때에 따 라 오욕락을 받는다고 합니다. 도리천 보다 수승한 하늘로, 남녀가 음양을 이룰 때에는 서로 가까이만 해도 되 며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3-4세와 같고 인 간의 이백년이 하루이며 수명은 이천살 입니다.

㉱도솔천(兜率天) : 지족천(知足天), 희족천(喜足天), 묘족천(妙足天)이라고 번역하 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자기가 받는 오욕락에 스스로 만족한 마음을 내어 안 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선 남녀가 서로 손을 잡는 것으로도 음양을 이룬 다고 하는데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 간의 4-5세와 같다고 합니다. 수명은 사천살 이며 몸에는 광명이 있는데, 염마천의 것보다 훌륭함 그리고 이곳엔 내원(內院) 과 외원(外院)이 있는데 외원은 천인들의 욕락처가 되고,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 토로써 미륵보살은 이곳에 있으면서 남염부주에 하강하여 성불할 때 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도솔천내 원궁에서 호명보살로서 천인들을 교화하고 계셨 다고 합니다.

㉲화락천(化樂天) : 오욕의 경계를 스스로 변화하여 즐기기 때문에 화락천이라고 합니다. 남녀가 바라다보고 있으면 음양을 이룬다고 하 며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5-6세와 같고 인간의 팔백년이 하루이며 수명은 팔천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 이 하늘은 남의 즐거운 일들을 자유롭게 자기의 락으 로 삼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합니다.
이곳에선 잠시 바 라만 보아도 음양을 이룬 다고 하며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6-7세와 같고 인간 천육백년이 하루 이며 수명은 만 육천세. 욕계는 이 타 화자재천에서 끝나게 됩니다. 경에 의하면 남녀의 구별이 있는 것도 혼인하는 일이 있는 것도 여기 까지라고 합니다.
이 이상의 하늘엔 남 녀의 구별도 없다고 하니 혼인하는 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2)색계(色界): 색계란 모든 탐욕은 여의였으나, 아직 완전히 정신적인 것은 되지 못한 중간의 세계로 욕계의 상층에 있으며 욕계보다 수승한 물질로 구 성되어 있 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초선천, 이선천, 삼선천, 사선천의 사천이 있어 색계 사 천이라 하며 이를 세분하여 색계 십팔천이라 하 기도 합니다.
이 색계의 사선천 은 사선정을 닦아서 선정의 차제에 의해 나는 하늘입니다.

①초선천 : 궁전은 순전히 황금이고, 몸은 흰 은빛[색계는 다 그렇습니다.]이며, 옷은 금빛 옷입니다. 선(禪)을 행하여 욕심을 여의며, 화 광삼매(火光三昧)를 닦아 익히기 때문에 몸에서는 해와 달보다 뛰어난 묘한 광명이 빛납니다.
남자도 아 니고 여자도 아니며, 선열(禪悅) 로써 밥을 삼으며, 수명은 1겁(劫)이며 혹은 그 보다 덜 사는 이도 더 사는 이도 있고 키는 1유순 이상..범중천, 범보천, 대범천

②이선천 : 선미[禪味]로써 밥을 삼으며, 수명은 2겁이며 그보다 덜 사는 이도 더 사는 이도 있음. 소광천, 무량광천, 광음천
주)
계속 다른 세계가 연달아 죽 이어지지만 게시판 용량과다로 나머지 세계는 잘라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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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명상수련원(마하수련원)벽공,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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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불교경전에 언급되는 작고 큰 부피를 말하는 숫자 들입니다.

극유진(隙有塵)…문틈에 햇빛에 비치는 작은 티끌 크기.

우모진(牛毛塵)…소의 터럭 끝에 맺히는 아주 작은 티끌 크기.

양모진(羊毛塵)…양의 터럭 끝에 맺히는 작은 티끌 크기.

토모진(兎毛塵)…토끼의 터럭 끝에 맺히는 아주 작은 티끌 크기.

수 진(水 塵)…물을 통과하는 작은 티끌 크기. (분자에 해당)┘

금 진(金 塵)…쇠를 통과하는 작은 티끌 크기. (여기는 현대과학으로 볼 때 원자 전자에 해당된다. 중생계를 구성하는 육도세계 중 천상 욕 계까지에 해당됨)

미 진(微 塵)…의식 속의 작은 티끌 크기. (여기는 소립자에 해당이 되고 육도 세계로는 색계에 해당됨)

극미진(極微塵)…의식으로 감지가 안되는 작은 티끌 크기(물질의 개념을 통과 해 버린 단계. 무색계에 해당됨)┘

인허진(隣虛塵)…물질도 정신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상태의 크기.

진 공(眞 空) 일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크기.(적멸)

아래는 인도의 십진법으로 풀이하는 숫자들입니다.
그러나 불교경전에서 풀이하는 숫자식은 식은 아래와 같은 10진법이 아니고 항하사 곱하기 항하사는 나유타. 이런 식으로 제곱 증가합니다.

찰나지간이란 말은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눈 깜짝 하는 시간이 찰라입니다.
그 보다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허공, 청정이 있네요.
허공은 너무 극히 짧은 시간이라서 감지가 안되는 시간을 말하며, 청정은 시간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짧은 시간이라고 말을 붙일 수가 없는 단위이며 헤아릴 수가 없는 숫자입니다.
따라서 숫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큰 숫자인 무량대수와 한 몸통이 되어 버리는 숫자인 것입니다.
곧 무량대수와 청정은 하나의 고리로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이 되는 것입니다.

참고: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숫자들

청정(淸淨) 허공(虛空) 육덕(六德) 10-19 찰나(刹那) 10-18 탄지(彈指) 10-17 순식(瞬息) 10-16 수유(須臾) 10-15 준순(逡巡) 10-14 모호(模湖) 10-13 막(漠) 10-12 묘(渺) 10-11 애(埃) 10-1 0 진(塵) 10-9 사(沙) 10-8 섬(纖) 10-7 미(微) 10-6 홀(忽) 10-5 사(絲) 10-4 = 0.0001 모(毛) 10-3 = 0.001 리(厘) 10-2 = 0.01 분(分) 10-1 = 0.1 일(一) 100 = 1 십(十) 101 = 10 백 (百) 102 = 100 천(千) 103 = 1000 만(萬) 104 = 10,000 억(億) 108 = 100,000,000 조(兆) 1012 경(京) 1016 해(垓) 1020 시(枾) 1024 양(穰) 1028 구(溝) 1032 간(澗) 1036 정(正) 1040 재(載) 1044 극(極) 1048

***항하사(恒河沙) (갠지스강의 모래 숫자와 같은 숫자) 여기서 부터는 불교에서 쓰는 극의 다음 숫자 단위.

***아승지(阿僧祗) (항하사 곱하기 항하사가 아승기)

***나유타(那由他)( 아승기 곱하기 아승기가 나유타)

***불가사의(不可思議) (나유타 곱하기 나유타가 불가사의) ***무량대수(無量大數)(숫자의 한계를 영원히 넘어서 숫자로 나타날 수가 없는 세계)

다시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숫자가 겁이란 숫자가 있습니다.
겁은 천녀가 아주 가벼운 날개 옷으로 일년에 한번씩 스쳐서 40리 바위가 다 닮아 없어지는 시간을 말한다고 합니다.

항하사 겁은, 항하사* 겁.
아승기 겁은, 아승기 * 겁 .
나유타 겁은, 역시 나유타 * 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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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다른 분이 정리 한내용을 퍼온 글인데요. 10진법이 아닌 불교경전에 나오는 숫자 식입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아승기품(阿僧祇品)에 ‘낙차’부터 ‘불가설불가설전’까지 124개의 수가 나와 있으니, 마지막의 ‘불가설불가설전’은 무려 1037218383881977644441306597687849648128에 달하는 거대한 수이다.

124개의 수의 이름과 이를 지수(指數)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낙차(洛叉) = 105 구지(俱?) = 107 아유다(阿庾多) = 1014 나유타(那由他) = 1028 빈바라(頻波羅) = 1056 긍갈라(矜?羅) = 10112 아가라(阿伽羅) = 10224 최승(最勝) = 10448 마바라(摩婆羅) = 10896 아바라(阿婆羅) = 101792 다바라(多婆羅) = 103584 계분(界分) = 107168 보마(普摩) = 1014336 녜1)마(?摩) = 1028672 아바검(阿婆鈐) = 1057344 미가바(彌伽婆) = 10114688 비라가(毘?伽) = 10229376 비가바(毘伽婆) = 10458752 승갈라마(僧?邏摩) = 10917504 비살라(毘薩羅) = 101835008 비섬바(毘贍婆) = 103670016 비성가(毘盛伽) = 107340032 비소타(毘素陀) = 1014680064 비바하(毘婆訶) = 1029360128 비박저(毘薄底) = 1058720256 비카2)담(毘?擔) = 10117440512 칭량(稱量) = 10234881024 일지(一持) = 10469762048 이로(異路) = 10939524096 전도(顚倒) = 101879048192 삼말야(三末耶) = 103758096384 비도라(毘睹羅) = 107516192768 해바라(奚婆羅) = 1015032385536 사찰(伺察) = 1030064771072 주광(周廣) = 1060129542144 고출(高出) = 10120259084288 최묘(最妙) = 10240518168576 니라바(泥羅婆) = 10481036337152 하리바(訶理婆) = 10962072674304 일동(一動) = 101924145348608 하리포(訶理蒲) = 103848290697216 하리삼(訶理三) = 107696581394432 해로가(奚魯伽) = 1015393162788864 달라보타(達?步陀) = 1030786325577728 하로나(訶魯那) = 1061572651155456 마로타(摩魯陀) = 10123145302310912 참모타(懺慕陀) = 10246290604621824 예라타(??陀) = 10492581209243648 마로마(摩魯摩) = 10985162418487296 조복(調伏) = 101970324836974592 이교만(離?慢) = 103940649673949184 부동(不動) = 107881299347898368 극량(極量) = 1015762598695796736 아마달라(阿??羅) = 1031525197391593472 발마달라(勃??羅) = 1063050394783186944 가마달라(伽??羅) = 10126100789566373888 나마달라(那??羅) = 10252201579132747776 해마달라(奚??羅) = 10504403158265495552 비마달라(???羅) = 1010088063165300991104 발라마달라(鉢羅??羅) = 102017612633061982208 시바마달라 (尸婆??羅) = 104035225266123964416 예라(?羅) = 108070450532247928832 폐라(?羅) = 1016140901064495857664 체라(諦羅) = 1032281802128991715328 게라(偈羅) = 1064563604257983430656 솔보라(?步羅) = 10129127208515966861312 니라(泥羅) = 10258254417031933722624 계라(計羅) = 10516508834063867445248 세라(細羅) = 101033017668127734890496 비라(?羅) = 102066035336255469780992 미라(謎羅) = 104132070672510939561984 사라다(娑??) = 108264141345021879123968 미로타(謎魯陀) = 1016528282690043758247936 계로타(契魯陀) = 1033056565380087516495872 마도라(摩睹羅) = 1066113130760175032991744 사모라(娑母羅) = 10132226261520350065983488 아야사(阿野娑) = 10264452523040700131966976 가마라(迦?羅) = 10528905046081400263933952 마가바(摩伽婆) = 101057810092162800527867904 아달라(阿?羅) = 102115620184325601055735808 혜로야(醯魯耶) = 104231240368651202111471616 폐로바(?魯婆) = 1084624480737302404222943232 갈라파(?羅波) = 1016924961474604808445886464 하바바(訶婆婆) = 1033849922949209616891772928 비바라(毘婆羅) = 1067699845898419233783545856 나바라(那婆羅) = 10135399691796838467567091712 마라라(摩?羅) = 10270799383593676935134183424 사바라(娑婆羅) = 10541598767187353870268366848 미라보(迷?普) = 101083197534574707740536733696 자마라(者?羅) = 102166395068749415481073467392 타마라(馱?羅) = 104332790137498830962146934784 발라마타(鉢??陀) = 108665580274997661924293869568 비가마(毘迦摩) = 1017331160549995323848587739136 오파발다(烏波跋多) = 1034662321099990647697175478272 연설(演說) = 1069324642199981295394350956544 무진(無盡) = 10138649284399962590788701913088 출생(出生) = 10277298568799925181577403826176 무아(無我) = 10554597137599850363154807652352 아반다(阿畔多) = 1011091942751997007263096153044704 청련화(靑蓮華) = 102218388550399401452619230609408 발두마(鉢頭摩) = 1044436777100798802905238461218816 승기(僧祇) = 108873554201597605810476922437632 취(趣) = 1017747108403195211620953844875264 지(至) = 1035494216806390423241907689750528 아승기(阿僧祇) = 10709884336127808464483815379501056 아승기전(阿僧祇轉) = 10141976867225561692967630759002112 무량(無量) = 10283953734451123385935261518004224 무량전(無量轉) = 10567907468902246771870523036008448 무변(無邊) = 1011358149378044935437441046072016896 무변전(無邊轉) = 102271629875608987087482092144033792 무등(無等) = 104543259751217974174964184288067584 무등전(無等轉) = 109086519502435948349928368576135168 불가수(不可數) = 1018173039004871896699856737152270336 불가수전(不可數轉3)) = 1036346078009743793399713474304540672 불가칭(不可稱) = 1072692156019487586799426948609081344 불가칭전(不可稱轉) = 101453844312038975173598853897218162688 불가사(不可思) = 10290768624077950347197707794436325376 불가사전(不可思轉) = 10581537248155900694395415588872650752 불가량(不可量) = 101163074496311801388790831177745301504 불가량전(不可量轉) = 102326148992623602777581662355490603008 불가설(不可說) = 104652297985247205555163324710981206016 불가설전(不可說轉) = 109304595970494411110326649421962412032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 = 1018609191940988822220653298843924824064 불가설불가설전(不可說不可說轉) = 1037218383881977644441306597687849648128 주: 1)

이상 마침.

 

 

승만경의 치명적인 아라한능멸과 유가사지론의 정당한 반론

 

 

승만경은 유명한 대승경전으로 불제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승만경의 앞부분은 이야기이고, 뒷부분은 논서로 대승논사가 창작불보살 캐릭터로 승만을 내세워 논사의 말을 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만경을 대승논사의 법문집으로 바르게 알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유가사지론은 대승의 유명한 논장중의 하나로 미륵보살이 설했다고 하는 신화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역시 세친과 무착을 이은 유식계열 논사가 자신들이 할 말을 미륵보살을 내세워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대승경전을 석가모니부처님의 불설이라든가, 또는 불보살의 설법이라고 그대로 믿어버리고, 대승논사들이 창작불보살을 내세워 자신들의 부파적이익을 위해 이론투쟁을 벌인것임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허물이 많은 대승논사의 견해로 부처님정법을 공격하는 일을 하거나, 또는 이 대승논사의 견해와 저 대승논사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음으로 인해 불제자들에게 괴로움을 안겨줍니다. 왜 대승논사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음이 불제자들의 괴로움이 되겠습니까? 바로 창작불보살을 앞세운 대승논사의 견해를 불보살의 설법으로 알고 신심을 앞세워 믿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 올리는 승만경과 유가사지론의 글은 정반대의 견해를 담고 있습니다. 두 개를 다 무오류의 불설로 받아들이면 괴로움을 초래합니다. 두 개를 대승논사의 논서로 읽을 때 우리는 어떤 논이 부처님법에 좀더 근접한 가를 이해할수 있을 것입니다.

 

 

 

승만경을 쓴 대승논사, 아라한은 업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주장하다.

 

......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은 두려움을 갖습니다. 또한 아라한과 벽지불에게는 업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有餘], 윤회, 재생으로 이어지는 성질[生法]이 다하지 않았으므로 태어남이 있으며 업의 잔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괴로움[苦]을 알며,

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괴로움의 원인[集]을 끊으며,

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며[滅],

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닦는 것이니,

이를 불완전한 열반을 얻을 뿐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열반을 얻는다 함은 열반의 세계를 향하는 것이라 이름합니다.”

 

 

 

 

유가사지론 - 아라한은 기필코 물러남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리라.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五一 권

 

...

만약 온갖 번뇌를 끊고 아라한이 되었으면서도 그 온갖 물드는 법의 종자를 아직 영원히 없애지 못하였다면 어찌하여 마음이 잘 해탈한 아라한의 과위로서 모든샘〔漏〕을 영원히 다하였다고 이름하게 되겠는가. 만약 이미 영원히 없앴다고 하면, 서로 계속되는 가운데서 영원히 온갖 더러운 법의 종자조차도 없고, 오히려 바르지않은 생각〔不正思惟〕을 일으키지도 않겠거든, 하물며 모든 번뇌이겠는가. 그러므로, 벗어난 세간의 도로 말미암아 번뇌를 끊은 이는 기필코 물러남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리라.

...

 

 

유가사지론 - 아라한의 4가지 고요함이 있다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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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아라한의 고요함을 시설하여 별여 세웠느냐 하면, 네 가지의 고요함〔寂靜〕으로 말미암아 유여의지를 시설하여 벌여 세웠다. 첫째는 괴로움〔苦〕이 고요함으로 말미암아서요, 둘째는 번뇌(煩惱)가 고요함으로 말미암아서요, 세째는 유정을 손해하거나 괴롭히지 않는〔不損惱有情〕고요함으로 말미암아서요, 네째는 평등함〔捨〕이 고요함으로 말미암아서이다.

 

어떻게 괴로움이 고요하느냐 하면, 아라한(阿羅漢) 비구가 모든 샘〔漏〕을 영원히 다하여 장차 오는 세상에 있을 바 후생 몸의 뭇 괴로움들을 모두 다 영원히 끊은 뒤에 두루 앎〔遍知〕을 얻는 것은, 마치 타알라〔*二五〕나무〔多羅樹〕의 뿌리를 절단하면 그 줄기가 다시는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나니, 장차 오는 세상에서 나지 않음의 법〔不生法〕을 얻는 까닭에 이것을 괴로움이 고요함이라 한다.

 

어떻게 번뇌가 고요하느냐 하면, 아라한 비구는 탐냄이 영원히 끊어지고 성냄이 영원히 끊어지고 어리석음이 영원히 끊어지고 온갖 번뇌가 모두 다 영원히 끊어져서 마침내 나지 않음의 법을 얻는 까닭에 이것을 번뇌가 고요함이라 한다.

 

무엇이 유정들을 손해하거나 괴롭히지 않는 고요함이냐 하면, 아라한 비구는 탐냄이 영원히 끊어지고 성냄이 영원히 끊어지고 어리석음이 영원히 끊어지고 온갖 번뇌를 모두 다 영원히 끊어서 모든 악행을 짓지 않고 모든 선행을 닦아 익히나니, 이것을 유정들을 손해하거나 괴롭히지 않는 고요함이라 한다.

 

어떻게 평등함이 고요하느냐 하면, 아라한 비구는 모든 샘이 영원히 다한지라 여섯 가지 항주〔六恒住〕에서 언제나 끊임 없이 편안히 머무른다. (一) 눈으로 빛깔을보면서도 기뻐하거나 근심하지 아니하고 위의 평등함〔捨〕에 편안히 머무르며 바른 기억으로 바르게 앎이요, 이와같이 (二)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도, (三) 코로 냄새를맡으면서도, (四) 혀로 맛을 보면서도, (五) 몸으로 닿임을 깨달으면서도, (六) 뜻으로 법(法)을 알면서도 기뻐하거나 근심하지 아니하고 위의 평등함에 편안히 머무르며 바른 기억으로 바르게 앎이니, 이것을 평등함이 고요하다고 한다. 바로 이와 같은 네 가지 고요함에 의하여 유여의지는 가장 지극하게 고요하고 가장 지극하게맑고 시원함이라 하나니, 이것을 고요함을 시설하여 벌여 놓음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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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제자들은 승만보살과 미륵보살의 설법을 둘 다 수지봉행해야 하는가?

 

 

 

위에서 인용한 승만경과 유가사지론의 말은 서로 다르다.

 

승만경은 아라한은 “두려움을 갖고”, “업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有餘], 윤회, 재생으로 이어지는 성질[生法]이 다하지 않았으므로 태어남이 있으며 업의 잔재가 있습니다.”라고 한다. 실로 승만경을 쓴 대승논사는 아라한에 대한 부처님의 원음인 니까야와 아함의 부처님의 설법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유가사지론은 “만약 온갖 번뇌를 끊고 아라한이 되었으면서도 그 온갖 물드는 법의 종자를 아직 영원히 없애지 못하였다면 어찌하여 마음이 잘 해탈한 아라한의 과위로서 모든샘〔漏〕을 영원히 다하였다고 이름하게 되겠는가.”라고 하여 아라한이 두려움과 같은 번뇌를 제하지 못했다면 어찌 아라한이라고 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아라한은 윤회 재생으로 이어지는 성질이 끊어졌으므로 괴로움의 고요함이 아라한의 성질이라고 말한다. “장차 오는 세상에서 나지 않음의 법〔不生法〕을 얻는 까닭에 이것을 괴로움이 고요함이라 한다.” 승만경에서 말하는 것 같은 두려움(?)이라는 번뇌도 영원히 끊어졌음을 번뇌의 고요함이라고 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온갖 번뇌가 모두 다 영원히 끊어져서 마침내 나지 않음의 법을 얻는 까닭에 이것을 번뇌가 고요함이라 한다.”

 

 

승만경도 불설이고, 유가사지론도 불설일까?

여인성불의 전형을 보인 창작불보살인 승만의 설법이 옳은가?

유가사지론을 설했다는 미륵보살의 설법이 옳은가?

 

불제자는 이것이 모두 불설이므로 수지봉행해야 할까?

아라한은 업의 잔재가 남아있으므로 다시 윤회할수 있다라는 승만보살의 말과

아라한은 업의 잔재가 다했으므로 윤회에서 벗어났다는 미륵보살의 말을

어떻게 함께 수지봉행할수 있을까?

 

대승경전이 부처님직설이며, 아함경은 가장 근기 낮은 자들을 위한 소승법문이라고

가르치고 배우던 시절에 이런 경우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은

부처의 법은 대기설법이라는 것이다.

모순된 듯이 보이면서도 대기설법에 따라 설한 것이므로 그렇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우리들은 이제 부처님원음 근본불교 초기불교에 근거하여

대승경전은 비석가모니불설이며, 수많은 소설적 픽션으로 창작된 것이며, 뼈대는 대승논사의 주장을 담은 논서임을 알고 꿰뚫어본다.

 

그러므로 이러한 논서를 읽을 때 우리들은

창작불보살이나, 성불스토리, 불국토같은 대승논사들이 설정한 픽션에 미혹되지 말고,

그것을 논서로 바르게 읽고, 부처님법에 맞는가, 왜곡한 것은 없는가, 버려야 할 치명적인 맹독을 담은 주장은 아닌가라고 바르게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승만경을 쓴 대승논사의 아라한에 대한 왜곡은 잘못된 것이며,

유가사지론을 쓴 대승논사가 아라한에 대하여 말한 저 부분의 논서는 바른 것임을

바르게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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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입니다.

 

승만경도 불설 유가사지론도 불설입니까?

승만보살의 말을 믿어야 하나요 미륵보살의 말을 믿어야 하나요?

둘다 수지봉행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어떤 대승불자가 승만경을 읽고 아라한은 업의 잔재가 남아 윤회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대승불자가 유가사지론의 미륵보살 설법을 듣고 승만경의 주장은 바르지 않다고 합니다.

둘이 논쟁합니다.

이 원인은 무엇입니까?

불설때문입니까? 창작불보살을 앞세운 대승논사의 이론을 불설로 맹신하기 때문입니까?

 

이러한 것에서 벗어나

바른 견해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