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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컴퓨터

narrae 2012. 11. 19. 00:31
haj4062 2012.11.18 09:30

항공기·자동차·미사일 개발첨병, 미·중·일 3파전속 한국만 뒷짐

 

 

미, 2012년까지 1초에 2경번 개발 목표, 중, 지난해 1위 ‘톈허 1A’로 실력 과시

 

 

 

최근 일본 과학자들이 일본 열도에 오랜만에 웃음을 선사했다. 지난 6월 20일(현지시각)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국제 수퍼컴퓨팅 학회(International Supercomputing Conference)’에서 후지쓰와 이화학연구소(RIKEN)가 공동으로 개발한 수퍼컴퓨터 ‘K’가 8.162페타플롭스(petaflops·1페타플롭스=초당 1000조번의 연산처리)의 연산처리 능력을 기록하며 세계 최고 수퍼컴퓨터 왕좌에 오른 것이다. 수퍼컴퓨터 K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일본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이자 이화학연구소 소장인 노요리 박사는 “수퍼컴퓨터 K는 일본 기술이 여전히 괜찮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며 뼈있는 말을 했다. 더욱이 수퍼컴퓨터 K가 뺏은 왕좌가 그동안 중국산 수퍼컴퓨터인 ‘톈허(天河) 1A’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라는 점에서 일본의 기쁨은 더 컸다.

 

수퍼컴퓨터 K는 당분간 세계 1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수퍼컴퓨터 K는 아직 성능 발휘를 100% 하지 않았다. 이번 기록도 수퍼컴퓨터 K가 80% 정도의 성능 발휘만으로 세운 것이다. 모든 부품 연결이 끝나는 내년 말이면 수퍼컴퓨터 K는 10페타플롭스의 연산처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즉 개발이 완료되는 수퍼컴퓨터 K는 1초에 1경(京=1만조)번 연산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일본 과학자들이 수퍼컴퓨터 ‘K(케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도 경의 일본 발음인 케이에서 나왔다.

 

수퍼컴퓨터 K 이전 왕좌를 지키던 ‘톈허 1A’는 작년 11월 2.57페타플롭스의 기록으로 세계 최고의 수퍼컴퓨터로 등극했다. 톈허의 등장은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중국이 작년에 일본을 제치고 GDP 세계 2위 국가로 부상했을 때만 해도 저임금을 바탕으로 세운 경제력으로 폄하할 수 있었지만 첨단 기술의 복합체인 수퍼컴퓨터에서 중국이 세계 최고의 자리를 꿰찼다는 사실에 미·일이 경악했다.

 

혹자는 톈허 1A의 중앙처리장치(CPU) 등이 중국산이 아니라는 이유로 톈허 1A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수퍼컴퓨터의 핵심 역량이 시판 중인 수만 개의 CPU를 관리하는 능력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톈허 1A를 개발한 중국의 기술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CPU 수만 개를 사서 연결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하나의 명령에 수만 개의 CPU가 일사불란하게 작동하도록 지휘 체계를 만드는 과정은 어렵고, 이것이 수퍼컴퓨터의 핵심 역량이다. 이들 CPU가 주고받는 천문학적 데이터가 병목현상 없이 원활하게 처리될 수 있어야 비로소 수퍼컴퓨터로 부를 수 있다. CPU는 훌륭하지만 수만 개가 서로 엉켜서 연결 안 하느니만 못하다면 수퍼컴퓨터의 자격이 없다.

 

중국 연구진은 톈허 1A에 들어있는 2만1000여개의 CPU를 무리 없이 운영하는 능력을 선보여 세계 최고의 수퍼컴퓨터를 세상에 내놓았다. 미국 역시 차세대 수퍼컴퓨터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미국은 2012년 말을 목표로 1초당 2경번 연산이 가능한 수퍼컴퓨터를 개발 중이다.

 

미·일·중이 수퍼컴퓨터 개발에 몰두하는 이유는 단지 국가 간의 자존심 대결 때문만은 아니다. 수퍼컴퓨터의 활용도를 알기 위해서는 과학·공학이 가진 특징을 살펴봐야 한다. 통상 일반인들은 과학자가 연필과 종이만으로도 자연현상을 명확히 풀어내는 것으로 오해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하늘 높이 던진 공이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추론하는 것도 진공 상태에서 바람이 불지 않고 중력도 일정하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전제해야 연필과 종이만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만일 시시각각 변하는 바람, 공기저항 등을 고려한다면 공의 낙하지점을 이론만 갖고 구할 수 없다. 이때 이론적 한계를 도와주는 존재가 컴퓨터이다. 여러 변수를 고려해 순간적으로 변하는 공의 위치나 속도를 컴퓨터의 도움으로 추적하면서 최종 낙하 지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공이 만일 수백㎞ 장거리 비행을 한다면 체공 시간 동안 지구의 자전, 비행 중 중력 변화 등도 고려해야 한다.

 

인간의 한계를 돕는 컴퓨터의 성능에 따라 공의 낙하 지점과 시각을 얼마 만에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컴퓨터가 인간의 지적 한계를 채워주는 것이다. 현대 기술은 인간의 지적 능력과 컴퓨터 연산 능력의 총합이라고 볼 수 있다. 강대국들이 수퍼컴퓨터 개발에 몰두하는 이유이다.

 

수퍼컴퓨터가 기여하는 바는 바람을 가르는 공의 비행 궤적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수천㎞를 날아가는 공의 궤적을 파악하는 수퍼컴퓨터의 능력은 항공기 동체 설계에 그대로 적용된다. 바람과 공의 마찰력을 따지는 것이나,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려는 유선형 항공기 동체 설계나 비슷한 주제이다.

 

수퍼컴퓨터로 바람과 마찰이 적은 유선형 항공기 동체를 항공사에 제공한다면 항공사 입장에서는 막대한 연료 절약으로 나타난다. 당연히 이런 항공기를 제작하는 회사의 매출은 쑥쑥 크기 마련이다. 이런 차원에서 항공기 제작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수퍼컴퓨터를 구매한다.

 

자동차와 바람의 저항 관계, 타이어와 바람, 땅의 마찰 관계도 비슷한 문제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이미 지난 2003년 수퍼컴퓨터를 구매해 자동차 설계에 활용하고 있다. 인간의 제한된 능력을 보완하는 수퍼컴퓨터의 활약상은 빅뱅 같은 우주 기원 연구, 일기 예보 등으로 확장된다.

 

 

또한 수퍼컴퓨터는 원자력 연구, 플라스마(이온이 고농도로 집적된 상태, 새로운 에너지 개발에 쓰인다), 미사일 연구 등에도 활용된다. 앞서 설명한 공과 바람의 관계를 군사적으로 접근한 사례가 바로 유도미사일이다. 수천㎞ 떨어진 목표지점을 향해 날아가는 유도미사일은 시시각각 바람, 중력, 공기 마찰 등을 고려하면서 비행 궤적을 스스로 수정하며 진행한다. 컴퓨터가 유도미사일의 비행을 실시간으로 도와주기에 적중률이 높은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오폭으로 인한 부작용만 커질 것이다.

 

에너지·국방 분야에서 수퍼컴퓨터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사실상 수퍼컴퓨터는 전략 물자로 취급된다. 중국이 독자 수퍼컴퓨터를 개발하고 이런 중국을 미·일이 예의주시하면서 수퍼컴퓨터 선두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제한된 자원을 전략적으로 투입해야 한다는 선택과 집중의 논리로 인해 수퍼컴퓨터 개발을 1990년대 초반 이후 중단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행정전산망용 수퍼컴퓨터인 ‘타이컴 1·2’를 개발한 상태였다. 하지만 선진국의 전유물로 떠오른 초고성능 수퍼컴퓨터를 우리가 독자 개발하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정부가 판단해 추가 개발을 중단했다. 대신 수퍼컴퓨터를 외국에서 많이 들여왔다. 현재 연산능력으로 세계 30위권에 드는 수퍼컴퓨터 중 우리나라는 기상청이 운영하는 ‘해온’(20위), ‘해담’(21),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타키온 2’(26위) 등 세 대의 수퍼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도 수퍼컴퓨터를 독자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과학계를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수퍼컴퓨터가 지닌 군사·안보적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지난 5월 말 수퍼컴퓨터 개발 지원을 골자로 한 ‘국가 초(超)고성능 컴퓨터 활용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이 법안에는 국가수퍼컴퓨팅위원회를 신설해 여기서 5년마다 기본 계획을 세우고 점검하도록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