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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반 고흐 위대한 유산

narrae 2015. 1. 2. 15:05

1853에 태어나  1890년에 세상을 떠난 반고흐의 생애를 조명한 영화이다.

테오의 아들이며 조카인 빈센트 빌렘 반 고흐는 철도 엔지니어로 일하다 은퇴했으며,

평생 삼촌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지 못했다. 삼촌 때문에 아버지 테오가

일찍 죽었다고 생각하며 정작 돈이 되지도 않으면서 그의 많은 유작들을 관리하는데 힘이 들어

그는 작품들을 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빌렘의 아내는 남편의 그런 태도를 경계하며 남편이

마음을 돌이키도록 애를 써 생전 고흐가 살았던 자취를 따라가다가 뜻을 결정하여,  1973년  

네델란드 정부에서 고흐의 뮤지엄을 만들고 그의 작품들을 그 곳에 전시하여 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하게 되었다. 


아트 딜러에서 일하던 고흐는 성격이 강직하여 그 곳에서 짤리자 부친처럼 목사가 되기위해

신학을 하고 광산촌에서 전도사로 일하였다. 그러나 너무 열심히 일한다는 이유로 다시 

이직을 권유받아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주위의 권고로 화가가 될 것을 결심하였다.

매춘부 시엔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테오와 그녀가 심한 생활고에 다시 그 일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집으로 돌아왔으나 가족들이 그가 장남임을 감추고 친척으로 말한 것에 충격을 받는다.

부모조차 그를 실패자로 낙인 찍고 열정어리고 획기적인 그의 대화를 묵살한다. 그는 

광산과 농촌에서 심한 노동을 하고서야 간신히 연명하는 광부들과 농부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그려나간다. 그러나 그의 강인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그림은 화단에서 철저히 외면당한다.

그가 애착을 가지고 그린  감자를 먹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혹평을 당하였다. 사람들은

그 하층민들의 생활의 비참함과 그래도 살아버티려는 어떤 강한 생명력이 처절하게 번쩍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기득 예술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비난하였다.


파리에서 테오와 살던 그는 테오가 요한나와 결혼하고 싶어하자 아를로 떠나고, 그 곳에서

호감을 가지고있던 고갱과 함께 살며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고갱과도 불화가 생기고

고갱은 테오가 널 떼어놓기위해 자신을 이 곳에 보냈다는 말을 하며 고흐 곁을 떠났다.

고갱과의 불화 중 자신의 귀를 자르기도한, 간질의 증상이 있다는 고흐는 스스로 생레미드 

프로방스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그 기간에도 많은 그림을 그렸다.  오브르에서 거주하던 그 시절 

평론가 알버트는 고흐의 천재성에 대하여 언급을 한다.  그는 아들에서 노란과 파란색들을 많이 

사용하며 전의 무채색 화풍에서 많은 색들을 사용하는 그림들을 그렸다.  

그날도 들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마을의 악동들이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고흐를 정신병자라고 

야유하며 총으로 위협한다. 화를 내며 그들에게 맞서 옥신각신하다가 발사된 총알에 가슴을 

맞는다.  의사와 테오가 가슴에 박힌 총알을 빼내면 살 것이라고 호소하나, 

고흐는 끝내 거절하고 죽음을 택한다.


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며 카페에 그의 그림을 전시해도 하나도 팔지못하자 그는 카페 여주인에게

치킨 한 조각을 사정하는 처지가 되고 여주인은 그의 그림들을 벼룩시장에서 처분하여도  경비를

다 못구했다고 화를 낸다. 고루한 기득권의 화풍을 비판하고 새 길을 개척하는 그가 기득권자들의

비위를 안 맞추고 그들의 마음에 들지않았다는 이유로 그가 걸어야했던 길은 너무 척박하고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의 인생의  척박함과 고난들이 고흐의 독자적인 예술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혹자들은 말하지만 정작 본인의 고통의 심도를 어찌 다 이해 수 있을까. 


대중들의 시선의 부당함과 엄격함과 서로 편승하는 모습이 안타갑다. 부모조차도 한번 생긴 

인상과 판단을 절대 바꾸지않고 고흐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 시선들이 가진 고집스런

편견이 한 인간을 어떤 코너로 까지 몰고가는지 알 수 있다. 주홍글씨에서 간음녀 헤스터를

처단하라고 아우성치던 마을 사람들이나, 전날에는 예수를 맞이하기위해 종려나무를 흔들고

호산나를 외치면서  윗옷을 깔아 환호하던 군중들이 그 다음날에는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치는 그 군중들의  심리.  주위 사람들의 조소와  빈곤과 배고픔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땅 밑으로 하염없이 추락하는 것을 버티기위해 그의 독자적인 예술풍은 더욱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나갔으나 마을 악동들의 이방인 예술가에 대한 총상은 그의 

존재감의 의지를 마지막으로 칼질해버렸다. 그의 죽음을 놓고 타살이라고도 하고 자살이라고도

하지만 영화로 보면 반은 타살이며 반은 자살이나 결국은 타살이라고 생각이 된다.

총알을 빼지않겠다는 그의 주장은 자살로 볼 수도 있으나 총알을 빼고 살고 싶지않을 만큼

스스로의 목숨을 포기할 만큼의 어두운 구석으로 그를 몰아넣은 그때의 여론이나 환경은

한 사람이 목숨을 포기하게하는 힘은 타살의 힘이라고도 생각된다.  자신의 존재감의 상실이나 

자신의 존재감이 더렵혀지는 그런 종류의 고통에 시달림이 그를 더욱 그림에 매진하게 하여 37세에 

사망하기까지 2000여점 이상의 그림을 남기게 했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살아생전에 붉은

포도밭이라는 그림을 싯가 천불 정도의 가격에 판매한 것이 단지 한 점뿐이었다고 한다.


그가 이 땅에 남긴 위대한 유산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지만 목숨을 가진 한 인간이 겪었던 

인생의 고통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아득해진다.



이 사진들은 인터넷 안에서 디카로 찍어서 올린 것입니다.




출처 : 나의 살던 고향
글쓴이 : 고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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