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배움
석가모니의 교설에서 신이나 우주의 원리와 같은 형 이상학적인 문제의 해명을 구하고자 함은 잘못이다.
만동자( 蔓童子, Malunkyaputta)라는 비구가 하루는 부처님을 찾아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던진 일이 있다.
"이 세계는 영원한가 무상한가.
끝이 있는가 없는가.
영혼과 육체는 하나인가 둘인가.
여래는 사후에 존속하는가 안하는가." <중아함 권 60. 전 유경>
다른 종교에서는 명확한 답변을 해주고 있는데 석가모니의 교설에는 그러한 해명이 없으므로 몹시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는 만일 끝까지 부처님께서 답변을 거절한다면 부처님 곁을 떠나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석가모니는 독 화살에 맞은 사람의 비유를 든 다음, 그런 문제는 "깨달음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고 깨우치고 계신다.
두번째 배움
무기설(無記說)
“이치에 맞지 않는 질문엔 답하지 않아”
인간사유 뛰어넘는 사변적 문제
신중하고 합리적인 태도로 응답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무기설(無記說)이라는 독특한 가르침이 있다.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고 옆으로 미루어 놓았다는 의미로, 사치기(捨置記)라고도 한다.
인간이 가지는 궁극적인 의문에 대해 부처님이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무기설은 무아설(無我說)과 더불어 부처님의 철학적인 사유와 통찰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으로, 부처님 가르침이 인간의 합리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전개된 것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나아가 인간 사유의 한계를 벗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 신중하면서도 합리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예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무기로써 대답한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14무기, 10난무기(難無記)다.
부처님이 무기로써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은 대표적인 질문은 〈중아함경〉 ‘전유경(箭喩經)’에 보이는 우주와 인간에 대한 문제다.
일반적으로 14무기로 표현되는 14가지 문제는 다음과 같다.
“(1)세계는
①상주(常住)인가
②무상(無常)인가
③ 상주이며 또 무상인가
④상주도 아니고 무상도 아닌가.
(2)세계는
⑤한계가 있는가
⑥한계가 없는가
⑦한계가 있거나 또는 한계가 없는가
⑧한계가 있지도 않고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닌가.
(3)영혼은 신체와
⑨같은가
⑩다른가.
(4)여래는 사후(死後)에
⑪존재하는가,
⑫존재하지 않는가
⑬ 존재하며 또 존재하지 않는가,
⑭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이 14가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것을 14무기라 하며, ③④와 ⑦⑧의 질문을 제외한 경우에는 10난무기라 한다.
14무기로 표현되는 질문은 우주와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을 보여준다.
먼저 (1)은 이 자연 세계가 영원히 존재하는지 아닌지의 문제로써 시간적인 영속성의 여부를 묻고 있다.
그리고 (2)는 이 세계가 한계가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 것으로, 공간적인 끝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3)은 영혼과 신체가 같은지 다른지의 문제로서, 인간의 정신적 본질과 신체의 구체적 관계를 묻고 있다.
(4)는 부처님의 사후 문제로서, 이것은 인간이 죽은 뒤 윤회(輪廻)를 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들은 모두 미묘하고 심오한 문제를 담고 있는 것으로 긍정과 부정의 단정적인 답변으로 그 의문을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다.
‘전유경’은 이 질문들이 “이치와 맞지 않고, 법(法)과 맞지 않으며, 범행(梵行)이 아니어서 지혜로 나아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 질문이 진리를 체득하는 데는 물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마치 독화살에 맞은 자가 화살을 빼내지 않고 독의 종류나 화살의 재료를 문제 삼아 논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는 14무기 같은 질문들이 인간의 구체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임을 지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해답을 제시했다.
부처님 당시 사람들은 물론 동서양의 종교가들 또한 다양하게 그 해답을 제시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의 대답은 과학적 지식과는 전혀 별개의 독단적인 대답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런 미묘한 문제에 대해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접근한 부처님의 태도는 특히 돋보인다.
부처님은 언제나 자신의 가르침이 인간의 사유로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임을 제자들 스스로 확인하도록 가르쳤다.
인간의 사유를 뛰어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조심하는 합리적인 자세를 취했다.
신중한 철학적 자세와 합리적인 사유태도를 보여주는 부처님의 무기설은 2500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세번째 배움
부처님의 입장
부처님이 취한 입장이랄까 문제의식이라는 점에서 늘 언급되는 14무기(十四無記) 또는 12사치기(十二捨置記)라고 불리우는 형이상학적 논의에 대한 해답거부이다.
여기서 '무기'라는 말은 어떤 문제에 대해 해설 또는 해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열 네가지 무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A) 세계는 ①상주이다 ②상주가 아니다 ③상주 또는 무상이다 ④상주도 무상도 아니다.
(B) 세계는 ⑤유변이다(공간적 한계가 있다) ⑥무변이다 ⑦유변 또는 무변이다 ⑧유변도 무변도 아니다.
(C) 신체와 영혼은 ⑨하나이다 ⑩별개이다
(D) 여래(인격적 완성자)는 사후에도 ⑪존재한다 ⑫존재하지 않는다. ⑬존재하거나 또는 존재하지 않는다 ⑭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열 네가지 문제는 한마디로 세계의 기원과 사후의 운명등 모두 일상적 경험의 범위를 넘어선 문제들이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그것들이 인생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해답을 거부하고 있다.
아함속의 《전유경(箭喩經)》에 따르면 제자 가운데 마룽가야 푸타라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는 이런 문제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늘 이상의 문제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이에 그 젊은 제자는 끝내 대답을 회피한다면 자신은 부처님을 스승으로 존경할 수 없으며 수행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때 부처님은 유명한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그를 깨우쳐 주었다.
"어떤 사람이 독화살에 찔렸다 하자.
즉각 의사가 왔는데 만일 화살에 맞은 사람이 '누가 이 화살을 쏘았는가.
그리고 그는 큰 사람인가 작은 사람인가. 피부는 검은가 흰가.
그가 사용한 화살은 어떤 것이며 활줄은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이것을 알기전에 치료해서는 안된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그런 것들을 알기 전에 죽어버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먼저 독화살을 뽑고 응급치료를 하는 일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계가 유한이든 무한이든 현실적 인생에는 생노병사가 있고 우비고뇌가 있다.
그것을 이 세상에서 어떻게 극복하느냐, 나는 그것만을 가르치는 것이다.
내가 그런 문제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 것은 그 답을 하는 일이 수행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답으로써 고뇌를 극복하고 정각과 열반으로 인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목적하는 바는 현실적으로 인간이 안고 있는 고뇌를 어떻게 하면 극복하느냐 하는 것에 있다.
때문에 고뇌의 현실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확인한 뒤, 그것을 끊고 고통이 없어진 열반의 실현을 위해 그에 필요한 수행을 하는 것이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의 전부이다.
따라서 그 밖의 것은 부처님이 대답해야 할 임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기본자세는 '독화살의 비유'에서 응급치료를 하는 의사에 비교될 수 있다.
의사가 병상을 보고 원인을 확인하고 그것을 제거해서 병자의 건강을 회복시키고자 약을 주어 치료하듯이 부처님은 인간고통을 치료해 주는 의사이다.
부처님을 '대의왕'이라 부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또 나중에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약사여래'는 의사로서의 기능을 상징하는 부처님이다.
네 가지의 대답방법 --------------------------------------------------------------
부처님이 열 네가지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 무기의 입장을 보인 것은 제자들의 질문을 받았을 때 취하는 네가지 태도 중의 하나이다.
이를 '사답'이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일향기(一向記)라는 것으로 단정적 대답이다.
예를 들면 '태어난 것은 모두 죽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반드시 죽는다'라고 단정해서 대답하는 것이다.
둘째는 분별기(分別記) 라는 것으로 조건에 따른 대답이다.
예를 들면 '죽은 자는 모두 윤회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번뇌 있는 자는 윤회하고 없는
자는 재생하지 않는다'라고 조건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다.
셋째는 반문기(反問記)로서 되물어서 대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은 월등한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무엇과 비교해서인 가'라고 다시 묻고 '하늘과 비교해서'라고 질문자가 말한다면 '열등하다'하고, '짐승보다'라고 한다면 '월등하다'라고 대답 하는 것이다.
넷째는 사치기(捨置記)로서 앞에서 예로 든 열네가지 질문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어느 것에도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논의 자체가 무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