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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

narrae 2014. 4. 13. 14:20

부처님과 아라한은 그 차원을 감히 논할 수가 없습니다.

여래십호에서 응공이란 최고의 공양을 받아 마땅하신 분이라는 뜻이지,

그게 소승 아라한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아라한의 뜻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세속적인 안목에서 각각의 단계/수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문은 크게 네가지죠.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 이 네가지 성인을 성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벽지불이 있고, 보살이 있고, 부처가 있습니다.

아라한 < 벽지불 < 보살 < 부처

이러한 순서가 됩니다.

소승 아라한과 부처님은 비교 자체가 안됩니다.

여래 십호에서의 응공이란 마땅히 공양받을 만한 최상의 분이란 의미입니다.

부처님과 아라한과의 완전한 차이를 드러낸 것이 바로 18불공법입니다.

부처님은 심지어 아라한 뿐만 아니라, 벽지불/보살 조차도 근접할 수 없는 그 차이점이 바로 18불공!

불교를 배우면서도 부처님의 위상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부처라는 분을 그저 아라한이나 또는 그 수준 정도로 이해하는데, 그것은 완전한 오산입니다.

소승 아라한이 되는데는 빠르면 세번의 생으로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 즉 성불하기 위해서는 3아승지겁이란 세월이 걸립니다.

3아승지겁이 과연 몇년이나 될까요?

1겁이 4억 3천2백만년입니다.

대략 몇조년 정도쯤 되겠죠.

소승 아라한은 완전한 열반이 아니다라고 하죠.

아직 번뇌의 습기를 다 없애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과 아라한의 모습상에서 완벽하게 차이가 나는 이유입니다.

부처님과 아라한의 모습을 비교해보세요.

완전히 차이가 납니다.

부처님은 32상의 황금몸입니다.

그러나 아라한은 그렇지 못합니다.

또 신통력에서도 부처님은 한계가 없지만, 아라한은 과거 8만겁, 미래 8만겁 그 이상은 못봅니다.

번뇌는 없앴으나, 번뇌의 습기는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아라한이 되고도 법답지 못한 행동을 한 아라한들이 여럿 있다고 경전에는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어느 아라한은 성욕이 강했던 이유로 아라한을 성취하고도

이쁜 여자만 보면 여자 쪽으로 고개가 먼저 돌아갔고,

또 어떤 아라한은 항상 부귀한 자제 집안에 태어나서 항상 하대하는 습관 때문에

항하강의 신에게 욕을 한바, 그 항하강의 신이 부처님께 고자질한 사실까지도 있었죠.

또 어느 아라한은 전생에 원숭이였기 때문에 아라한이 되고서도

껑충껑충 뛰는 것을 좋아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습기까지도 완전히 없애셨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겁니다.

부처님과 아라한은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거죠.

그래서 부처님 당시의 모든 아라한이 모여서 과연 부처님의 경지가 어디까지인지 알아보려 해도

절대 감도 못잡는다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목련존자가 부처님의 설법소리가 어디까지 들리나를 살피러

외계 무한대 멀리까지 갔다는 기록이 아함경에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석가 부처님의 설법이 귀에 생생히 들렸다라고 하죠.

부처님과 아라한은 차원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