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실(이 글은 순수 창작품임)

요체적 기민성의 요구에는

narrae 2013. 3. 8. 01:11

너와 나, 게와 개

 

ㄱ에 ㅣ가 밖을 가리켜 가인 것이고

안을 가리키면 거가 되는 것이라

여기에다 밖을 가르키는 가가 ㅣ에 막히면 개가 되어 문을 지키는 것이요

거가 ㅣ를 더하면 바다만 바라보며 가장자리만 돌아라고 게인 것이라

어쩌다 옆으로! 옆으로!인가

 

 

진리와 진실

 

티끌 하나가 있었다

그 것이 주기율 하나도 아니었을 때

원소 3 주기율까지는 거의 무색계와 같은 평화로움이었다

그러나 원소 4 주기율까지 가니 자꾸 무거워지더니 

급기야 폭발음이 일어났다

그러나 다른 것은 가라앉는 중에도 

빛은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다시 잡히고 달아나고, 

잡히고 달아나고, 

진실은 무엇이며 진리는 무엇인가 

5 주기율에서 4 주기율을 보니 

차가 달리고 로켙이 달린다

그러나 2 주기율에서 보니 

야광은 사라짐인데  

빛만 모두 선으로 남는다

이 것이 진실일 뿐이다

안 볼래도 보면 사진과 같구나

삼 주기율로 걸으니 

내가 지나는 것마다 빛일 뿐이나

저 4 주기율의 세계에서는 

천 년. 만 년 사이에 한 번 본 것일라나           

 

 

사물의 수상행식

 

우리기 靜線과 動線으로 나눌  때 

그 유지가 길어지는 것과 짧아지는 것은

파장의 길이와 비례하는 것과의 섬유성과

그 한계로서의 고착적 경계성으로서의 포개기

즉 火土가 화석같은 저장성과 분변성을 낳을 때

경계를 나누는 한계성과 그 점정적 깊이와

우리 눈을 떠났어도 동선적 길이 간의 차이만으로 

서로 모를 수 있는 인식의 한계로서의 

實을 空的으로 통과할 수 있는 것까지의 경계성  

즉 意도 분명 육체적 실체인 것이나

우린 그 생각을 모르고 통과할 수 있는 것 

무의식 또한  있으나

의식은 모르고 통과한 수 있는 것

그런데 범차원적으로는 서로

정신과 불질이 서로 트여 아는 듯한 일체성의  

서로 알아서 영향을 미치는 굴레 안의

그 견고성으로 분류하는 것이나 

오히려 물질적 무개의 짧은 번화같은 서로 간의 장애는 훤히 꿰뚫는, 

이 것은 이승의 물질계로서 인식의 틀로 엮을 수 있음이 

원소 주기율로서의 차등을 둘 수 있는 것에서 불 수 있음이듯   

이를 먼저  意에 두는 五行이라면

이는 곧 理性의 차원에서의 자극성이 되는 것이고 

감성적이라고 함이 身이라고 할 때

각각의 개체성 안의 色 中의 하나로서 할 때 

원소 주기율이

族은 같아도 주기율이 다른 것 만으로 

색이 다르다는 것으로 보는 경계같은 것

즉 眼만의 色이 아니라

六根 모두를 色이라 칭할 때의 색으로

주기율적으로 나뉜 것이 다시 육근인 이목구비라고 할 때

그 같은 오행이라도

또한 행뿐만 아니라 고정성이어도 수용하는 인지가 다르듯 

천상계의 시공성을 띠고 있다고 봐야하는 것이고 

이런 시공성이 물처럼 쫄았다고 할 때

남긴 성향이 원소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이 것이 다 빅뱅 안의 유기성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受想行識의 대조가 이뤄지는 것이기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 

곧 周易의 火水未濟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블랙홀과 섬유성

 

우리가 파장성이 없으면 섬유성도 없다고 할 때

즉 원심의 폭인 火가 있으면 

곧 그 것을 구심으로 끌어 당겨 실을 만들 듯이 한다는 볼랙홀

즉 이 수화의 관계가 고착성을 띠면 나무가 되는 것이다

즉 이 우주 속의 파장은 

이 우주가 수축과 확장을 번복하기에 

그 먼지와 같은 것은 것조차 

선과 점을 번복하듯 혼재하는 것이다

                  

 

경문(驚門)의 해(該)

 

奇門으로서의 驚門은

보통 술이나 담배같이 중독성이 될 때

끊어지면 금단 현상이 나타나 驚氣를 하든가

아니면 혼미성이 되더라도 경문인 것이 되고

지나친 에너지의 소모로 몸에 쥐나 나든다

탈진이 될 때 일어나는 현상도 경문이 되는 것이며

그래도 인(燐)이 박힌 것은 인(忍)과 함쎄 인(燐)인 듯이 

피로에 인이 산화(酸化)되어 인산(燐酸)이 넘쳐나도 

DNA의 연결 고리는 단단한 듯이 燐이 忍인 것   

우리가 星과 門과 기의(奇儀)를 天地人으로 할 때 

RNA를 짜는 데 있어 구성 요소에 있어서 접면과 

실 방구리와 같은 단백질의 연관성을 아는 것 

이는 충(蟲)의 크기나 균(菌)의 크기나 바이러스의 크기나 

그 동태(動態)의 접한 면같은 것이라고 봐야 함이 있다

 

 

門의 상세성

 

우리가 담배를 보아 

奇門에 있어 門을 상세하자면

開門은 받아들이는 수용 요소에의 접근이 있어야 하고 

休門은 온 몸으로 인이 박힌 전체성으로 볼 필요도 있는 것이

우리의 몸이 물이 차지하는 비중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해야 하고 

生門은 굳은 살이나 면역 체계를 말하나 

오히려 암처럼 생문으로 일어나 커지는 경우도 되는 것이 있고 보면 

六爻 上의 靑龍官처럼 굳이 酒色으로만 보아질 것도 아니다 

즉 死門이면 그 소멸성으로 병이 되는 것이지만 

생문이면 증식성으로 병이 되는 것이 될 수 있음이 있다

傷門은 단발성으로 상처를 주어가면서 약을 쓰는 경우인데

병이며는 그 병세가 급작스럽고 산발적인 것이다 

景門이면 세포 상호 간의 신호를 차단하면 좋은 것이고 

병이며는 빠른 전달 체계 때문에 약을 쓰지 못 한다는 경우다 

경문(驚門)은 면역력이 생겨서 먹히질 않는 것이 있고 

무엇보다 자연적 회복성이 먼저고 나서 약리(藥理)에 접근해야 함이 있다    

 

    

요체적 기민성의 요구에는

 

우리가 원소 5 주기율로서의 우주성을 힉스 입자라고 해두고

좀 더 외곽적 테두리라고 할 때

원소 6 주기율서의 우주성으로

원자 단위의 수소로서 이룬 바다라고 하자면 

은하수라고 하자면

그리고 씨앗을 뿌렸다고 하자 

그러면 각기 다른 원소 주기율의 팔로 싸 안는다고 하자

거기에는 원소 八族의 허리띠를 두른 임신선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과연 인간 세계의 북로구주가 지구 위로만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최대의 폭으로 보면 

블랙홀 너머에서의 낙원이 있다면 북로구주에 해당하는 것인가 

아니면 좀 더 넓은 폭의 욕색계인가 하는 것이 더 기민한 것이 된다고 할 것이다                

 

 

식품

 

보통 官爻가 衝破된 상태로 財爻가 되었으면 통조림이 된다

그리고 父爻가 金이면서 백호가 되면 도살이라 함이고 

거기에다 孫爻가 財爻로 化하면 푸줏간이 되는 것이다

庫가 動하면 냉장고나 창고 등 냉동식품인 것이며

合이 되었으면 유통기한이 있는 것이다

쇠(衰)나 절(絶)이 되면 그 안에서 상(傷)했다는 것이 된다

火가 進神이면 뎁혀서 먹어야 하는 것이고 

水가 退神이 되어 합이 되면 말려서 먹어야 한다

완전 말린 것이 아니라 노가리보다는 코다리 정도,

보통 金을 악보로 해서 水를 음율이라고 하니

木이 음이요 火가 音頂이 되고 土는 복사가 되고

저장이 되어 있는 곳이 되니

水의 退神은 안단테가 아니라 아다지오 정도 되는 것  

財가 水空이면 물을 부어야 하는 것이고 

일반적으로는 물건이 들지 않는 박스가 된다

財가 동하면서 官과 合이면 

음식에 세균이 있다든가 官災가 날 성분이 있는 것이고

함께 동하였다면 식중독이나 법에 저촉되는 식품이다

 

 

하나의 모니터와 7 개의 주파수

 

전에는 7 겹의 모니터와 하나의 주파수를 얘기했지만

오늘은 하나의 모니터와 일곱 개의 주파수로 보고져 한다 

즉 인간이 원소 7 주기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면이 있는 것이고

엄밀히 보자면 원소 4 주기율 정도인 것으로

7 주기율이면 거의 미생물의 차원이라고 봐야 함인데 

즉 그 작은만큼 미치는 독성이 강한 것은

나름의 장력으로 기준을 삼는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층의 주기율에 있는 것을

독성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소재를 보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력만큼의 컨트롤에 든 것이라고 봐야 함인데

이 것은 가벼운 주기율의 컨트롤을 넘어선 것이 된다는 것이다 

즉 무거운 주기율일수록 가벼운 주기율의 컨트롤 밖인 것으로 봐

비교하자면 인간계가 4 주기율이 되는 것이 되는 정도로서

인간의 육신이라면 4 주기율이 되는 것에서 

저장성의 최고의 무게를 살에 두는 것으로 한 것이니  

원소 8 族이 살집이요 피부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그럼 인간이 죽으면 원소 4 주기율이 벗겨지는 것이고 

원소 3 주기율 이상은 남는다는 것이 되는데 

이 것은 빛의 가루를 모래처럼 다듬은 차원이라고 할 수 있음이다

그러며는 과연 모니터의 체널을 3으로 돌린 것이라고 할 때

지각하는 능력은 인간일 때와 같다는 논리가 성립이 된다는 것이다

 

 

미세성의 안목의 차이

 

예전엔 財가 用神이면 거의 妻와 돈의 문제였지만          

요즘에는 옛날과 달라

財가 움직이면 고용 문제가 많다

世가 財空이면 자신의 보수 문제요

應이 財空이면 상대가 보수의 문제인데

한 쪽이 동하면 그로 일이 발생한 것이요

둘이 같이 동하면 다시 주저않는 형국이다

어차피 받는만큼 머슴이 되는 것이니까

財空이면 일한만큼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고

어제만 해도 직장에 관게된 官으로 풀던 일도

觀點을 다르게 봐야함도 있다는 것이고   

世應이 合인데 衝을 만났으면 한 쪽이 거둬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 合이란 것도 함정이 있다

이 것은 합의 된 것을 일방적으로 거둔다는 것도 되고 

남의 보증으로 한 쪽이 행사한다는 것이 된다 

즉 말뚝에 매둔 것이라면 말뚝이 뽑힌 채 달아난다는 것이고

풀어준 것이라면 고삐는 매단 채 풀어준 것이라는 것이다

즉 합의 관계도 그만큼 미세한 뉘앙스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효가 일진가 합이 되면 주저앉는 것인 되는데 

실제 일진이 兄爻였는데

자신은 상관이 없는데 동생이 집이 팔렸다는 것을 보면 

게약은 되어 넘기기로 했는데 아직은 동생 명의로 되어 있을 것이란 것이 된다

이 건 그리 어려운 경험이 아닌데 

동효와 변효의 스스로 이룬 合이란 것이 불분명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변효까지는 세월이 몇몇 해로 넘어가는 기운이니 

변효와의 합이  

이미 변효가 되어 주어앉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와

아직도 合으로 움직여 가는가 하는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혹자는 합이 되어 있으니 깨지는 날 성사가 된다는 것인데 

어떤 방향에서 성사되었는가는 불분명하다 

즉 만일 주저앉은 것이라면

깨지는 날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기준으로 성사를 봐야함이 있고

주저앉지 않고 움직이는 경우라면 오랜 후에야 멈추는 것이고 

그 멈춘 것이 다시 움직일려면 몇 해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이 것은 경험적으로 습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효의 내공에 대해서는 다른 케이스로 대비가 될려 해도 그리 흔하지 앉다 

野鶴 老人의 경우를 보자면 

그 해 태세(太歲)가 월공(月空)인 변효(變爻)에 들어 그 결과가 나오기 까지는 

동갑인 12 년 후의 그 달에 일이 발생했다는 것과 

卦象의 空亡으로 봐 出空하는 날 병이 나았는데

해분으로 봐 출공하는 해에는 사망했다는 것에서 

본괘와 변괘의 차이점에 있어 그 내공이 다름을 참조해야 함이 있는 것이 있다

 

 

 

지옥

 

성철 큰 스님의 지옥에서 부처님을 보았다는 말씀이 

꽤나 부처님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하는 것으로 이슈가 된 것에서 볼 때

그 분은 거짓말은 안 맞는 분이니 굳이 말을 돌릴 필요는 없다 

그 분은 불교를 매우 과학적이고 실사구실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노력하신 분이시니

그런 그 분의 性徹性으로 봐 그런 말이 나오고도 남을 만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옥이란 개념을 뚜렸이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우리가 지옥에서 부처를 보지 않으면 굳이 부처님 손바닥이랄 것도 없으며 

딴 세계의 존재인 것으로 

그런 존재감으로 인과나 권선징악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만의 기준으로 본다면  

인간은 태어나마자 환경적으로 지배를 받아 죄 아닌 죄를 짓는 것이다

즉 불가피성으로 해서

그 불가핑성에 합리화 되는 것으로 가장 적절성이 되는 것이다

어쩜 심판의 문제는

전혀 불가피성과의 연계고리는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무조건 믿어라는 것으로는 한계를 보이는 것이라면

이 건 강압이라는 것이 훤히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 된다

인간은 스스로 원죄가 있음을 안다 

즉 죄의식은 있게 마련인 것으로

그 연장선에서 신도 책임의식과 함께

죄의식에 깃들짐이 무엇인가를 이해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부처님 말씀처럼 마시지 말아야 할 샘물을 마셔서 인간이 되었다면 

그 벗어나는 길이 있음을 재시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여기에는 인간의 죄가 신도 함께 죄의식을 갖고

본능적으로 순수성으로서 일어남이 어떠한가를 밝혀야 하고    

그 독자성의 가치와 

또 다른 만족도와 즐거움을 전할 수 있어야 하는  

밑거름이 되도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성찰이 필요한 것이요

 남 탓하기 전에 자신을 탔하도록 하는 것에서도

충분이 영구적인 값어치가 된다는 것을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하고 악하다는 판단이 

인간의 이성 정도며는

고통의 경중보다는 수긍할 수 있느냐와 타당성 합리성에 더 기인하며 

희생 정도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큼  감수할 줄 아는 것이니 

또한 짐승도 그러한 저변은 있다는 것에서 

부처가 지옥에 있있다는 것은 

부처 손바닥은 지옥보다도 더 밑바닥에 있다는 것으로 나무랄 일은 아니다 

히틀러가 그렇게 사람을 도륙했는데도 지옥이 아니라는 것도 이상한 판에 

그럼 그 것이 지옥이라고 신이 없었다면 그 것 또한 신의 무능인 것이고 

별개의 사안이라 되는 것이라면 신은 이미 먼 것이니 

굳이 지옥만 논할 게 아니라 인간세도 논할 게 못 된다는 것이 된다 

즉 지옥에서 부처님을 보았다는 것은

가장 문명적인 발설인 것이고 

논란의 혼탁에 휩싸이더라도

과학적 양심의 근거로 전함이

중생을 위한 희생 정신의 차원으로 보아야 하며 

우리가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땅은 지옥인 것이고 그러면서 부활인 것이요 정화력인 것이요 

이 것이 땅이 아닌 법칙적으로만 보더라도 

원소 주기율의 끝인 7의 중력성만 하더라도 땅과 같은 것이요 

또한 족으로서의 8도 땅으로 함에 

주기율 상의 독성 즉 지옥의 성격이 족 상으로는 매우 순화된 

마치 조상으로부터의 진화가 씨족 부족을 이룸으로서의 순화된 것으로

원소 8 족이 마치 화살과 같은 주기율의 살이

인간의 피부살처럼 순화된 것으로서의 기능성이듯 

품성으로 어울릴 수 있는 것에서의,

이러한 조상과 이어진 부드러운 진화의 가치는 

우리가 누구에게나 부처라고 할 수 있는 근저가 되는 것에서 

이 거친 우주보다는 이 대지의 어머니 품에 응석받이같은 삶에서

우리가 부처가 많다는 것은 세포의 복사성

즉 살갖의 복사성만치 많다는 것이니 

살갖 하나가 털 하나의 지옥을 맡았기로

어찌 부처가 지옥에만 있는 모습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주적 관졈에서의 象의 머뭄이라는 것은 

무한 복사에 의한 머뭄과 같은 것에서 

부처가 어데 있다 없다는 관점은 매우 편협된 시각이라는 것이다   

다만 감당하기 힘든 부조화나 불균형의 짐이 가장 큰 눈 앞의 문제인데도

가장 듣기 혐오스럽도록 거북스럽게 하는 말 또한 그대가 부처라는 말이니

이는 넌 이미 부처인데 왜 내게 묻는가 

왜 부탁하는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궁극적으로는 선악이 없는 것이지만 

선악은 또한 있는 것이니 짓기 나름이요 또한 지우기 나름이라는 엄연함의 것이니

 

 

도란

 

우리가 어떤 조건 하에서 이루거나 깨달아야 한다면

이 건 매우 편협되고 가능성이 없는 것에의 요구인지도 모른다

즉 공간이란 것도 정적인 것이 아니라 진행형인 것으로

무엇이든 올려놓으면

이미 이 것은 오선의 어느 한 음정의 위치에 있음과 같음이고

원소의 한 주기율의 정점에 있다는 것과 같음인데

우리가 도라는 것을 요구함에 있어 도라는 것을 잡으면  

이미 한 음정과 같은 사이클로서의 한 옥타브적 정점에 있다는 것이 된다

이 건 가장 일반적 인식의 공유이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뿐이니

진작 우리의 도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른 옥타브의 의식계를 우리의 인식계로 올려놓는 것으로서

空에 의한 피막을 발견하는 것과 같음이다

 

 

감지덕지

 

감이 석양과 함께 기울어도 

끝끝내 익지 않은들 후회와 여한이 없는 것은 

익숙한  삶이란 이생에만 금 그을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감은 싸늘히 서리에 덮인 채로 허공 중에 추억처럼 매달려도

끝내 붉지도 물컹거리도 않는 것이 있다

젊고 푸른 것들이

녹지도 않고 땡글땡글함으로 감내해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겨울 끝의 회한에 눈시울 붉어가며 주는 것이다

 

 

두더지 감

 

감은 역시 감의 도를 닦는가보다

겨 무더기에서 나오면

두더지 모성처럼 뼈도 없는 듯이 무른

감은 살아봤는 듯

어쩜 교감했을 텔레파시인 듯

어쩜 언 땅 밑으로의 행로를 위한

어쩜 따뜻한 열기보다

좀 더 얼어붙도록 쿨한 기운이 더 아쉬웠는지도 모를

 

 

공즉시색 2

 

하트 자국이야 

엉덩이 일어나면 드러나는 것이고 

서면 엉덩이 하트를 비우고 왔다고

두 발을 모은 자국엔 陰刻의 빈 하트요 

앉으면 다시 엉덩이 하트인 것이 기본인 것이고

본래 양반다리 치면 空 하트인 것 

결가부좌로 바싹 당겨 밀어붙이면 

엉덩이살 야무진 하트가 되는 것이고

 

 

구미호

 

가로등 하나가 켜진다 

그림자가 하나가 묵상에서 고요를 빚는다 

가로등 하나가 켜진다 

그림자 두 개가 드리워진다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로등 하나가 켜진다 

그림자 세 개가 드리워진다

...

갑자기 그림자가 싫어진다 

한 마디를 하면 아홉 손 가락이 입을 연다

가로등이 손가락질한다 

꼬리가 아홉 개가 달린 놈이라고 

자신들은 지조 있게 맡은 바 대로 사는데

 

 

무리와 무리수(無理數)

 

무리가 무리수임만 순수히 뺄 줄 알면

어찌 혼자 해탈 득도한 것보다 그 도가 작다고 할 것인가 

무리가 남은 것으로 해서 피상적일 수 있는 것 

깊어지기에는 한계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이미 말을 않더라도 정서 상으로 밀접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는 터요

그래도 하향 평준화여도 평등성으로서의 가치라고 

갈대가 위로 뻗은 탑과 기둥과 같은 것을 다 꺾고 

오직 대지에는 평등으로 단단하게 엉겼다고 대지를 대변하는 것에서

우리가 대중성이란 것에서 

어린 순에서부터 부푸는 만큼의 유행성이 강한 바 

이는 매우 외양적 공통점에 먼저 침착하는 바 

먼저 거품이고 나서 실속의 것에는

결국 폼생폼사가 주류를 이루게 되어있음에 있음은 

나무의 균형성과 같음이다 

물에는 뜨고 세월에는 뜨는 것이나 대지에는 균형을 잡아가는 

그래도 모성의 건저로 균형을 잡아간다고 봐야할  것이나 

실제는 갈대 뿌리가 얹혀 삽 자루도 안 들어가는 것이 된 것의 

이미 땅은 격리된 소통성의 부재요

오직 넘치는 강에 산다는 풍요로 천후에만 감사하면 되는 

굳이 황무지를  찾지 않아도 되는 듯이

그러한 생명력이 어데로 내버려두어도 살아가는 자생력이듯이 

어차피 신이든 인간이든

달달 뽁여가면 갈수록 면역이 되어 힘에의 의지가 최고인 듯이

어차피 인생이란

낙오자를 제하고 그렇게 남는 것에서 배려의 차원도 있는 것이니까

언제나 문제가 발생하면 이미 늘 본질적인 문제에 먼저 직면하고서는 

외면하거나 포기를 하는 것에서 가장 쉬운 듯하면서 어려운 것의

이는 본질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노력을 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하면서

이미 선행은 닫혀 있건만

후생들은 늘 선각자라면서 그 위치는 고수하고 있는 것에서

이 건 무능이 아니면 해이해져 있음이고 안락에 굳은살이 박힌 것이지

앞서 실천해야 할 자들이 도리어 다 아는 냥

관망하는 것만으로 큰 덕을 베푸는 냥으로

고작 초월적으로 보인다는 것이  

현실적 안목에 치우친 자들에게 마냥 此岸에다 彼岸까지 푹 담근 듯 

제 복 끌어 당연히 먹는 냥 거드름 피움이 좋게 보일 리야 없느니

     

 

 

다른 것은 삼시 세 판이라지만

듯은 한 번 더 듯이 하면 분명 뜻이 있는 것이요 

뜻으로 받아 들이지 않더라도 

듯보다는 뜻에 붙은 것임의 듯은 뜻의 반쪽

점은 뜻에 있기 전에 듯에 먼저일 때 잘 맞으니 

아무래도 의식계 넘어서인가보다

 

 

 

어느 덧같음에 입덧이 있다 

내 지나온 길이,

길이 사라진 냥 

어느 것인 냥 모름같음에도 

분명 입덧과 같음으로 온다 

대지는 먀냥 순둥이에다 미련둥이같이

가리면 다 가려주는 것같지만

그 반석은 고결하게 깐다

 

 

덫 

 

더에는 덫도 있지만 

덧이 뱉어내는 것을 교묘하게 숨김을 말한다

인간이 아무리 책략에다 술수가 뛰이나다 할지라도

여자의 입덧에 얹혀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드 웨어와 소프트 웨어

 

내가 아는 도인 한 분은 

어떻게 그렇게 상대를 꿰 뚫느냐고 물었을 때 

그 분은 

미친 듯이 산 속에만 박혀 있을 때 

그냥 작은 생명체의 움직임 하나에도 유심히 뜷지게 바라보면 

그 살아가는 법칙이

세상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것에서

그 것을 유심히 깨달으면 그 것 또한 반응을 한다는 것에서 

모든 만남에는 인연적 반응이 있게 마련이라 

굳이 내가 아닌 잎새라도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즉 잎새 하나만 유심히 보는 데도

저 자가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이 건 마치 徹로서 닦으나 空으로서 닦으나

그 깨닫는 바가 하나에 몰려 있다는 데 유념해야 함이 있다

이는 곧 무엇이든 의심만 할 것이 아니라 

무언이든 지도처럼 깔 수 있는 도라면 

무엇이 들어와도 그 길로 통하는 것을 본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모든 사물이 하드 웨어로서는 같은 것이라고 하더라고 

소프트 웨어는 천양지차인 것으로 인연이 되어 만난다는 것이다

 

 

영혼이라는 개념 

 

보통 영혼의 세계를 안다는 자들은 

거의 세 가지로 나뉘어 흩어진다고 하는데 

즉 땅에는 넋으로서 사라지고

하나는 남는 魄이요

하나는 천상으로 간다고 하는 魂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靈이라는 실체가 어떻게 짜여진 것인가 하는 것인데 

철판처럼 미끈한 것인가 

아니면 인간처럼 DNA로 짜여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RNA로 세포를 구성할 때

삼층을 이룬 농도의 단백질을 구분한 것으로 짜여진다는 것은

원심분리기로 마치 혈액을 혈청과 침전액으로 구분하듯 

세 단계로 분리하여 그 투명성을 달리한 것으로 나눠서 짜여진다는 것을 볼 때 

이미 영혼과 넋의 차이가 함께

영혼과 넋이 RNA에서부터 짜여질 때 

이 세 가지가 각기 다른 쪽에서 짜여 듦과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즉 단백질이란 이 세 가지의 靈體로서 분류되어 짜여져 온다는 것이 된다 

그러면 곧 단백질 자체가 靈과 분리할 수 없음이 되고

세포의 구성이 되는 모든 물질이 이미 영혼과 넋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단백질은 단백질일 뿐이라는 것이고 보면

靈 자체는 靈일 뿐이라는 것이 된다

즉 아무 것도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된다

어쩜 기능 상으로는 기계적이리 뿐이라는 것이 된다

그러기에 서로 독립적으로 떨어져 나가도

테이프처럼 독자적 기억을 갖는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만일 그 이 전에 서로 조합적인 구성을 갖는 것이라면 

이미 떨어지기 전에 마모되든가 부조리한 것이 많아짐에 

오히려 그 기억성에는 불합리가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영혼이라는 것도

단백질과 같은 단순함에서 단백질로서 짜여지는 것이면

이 것도 영혼의 짜임새와 같다고 할 것이다

살다보면 혼과 백 간에도 갈등이 있고 

넋과 혼백 간에도 갈등이 늘 있다 

옛 시조에도 넋이라도 있고 없고 하듯이

넋은 육체적 생명력에 집착하는 편이고 

그 靈體도 탁도가 있는 편이며 

魂은 투명 유리와 같은 것이며

매우 天心으로 결연한 바가 강하기 때문에

실제 혼이 그렇게 시조를 읊어버리면넋은 피눈물이 나는 것이다

이는 넋은 육체적 고통의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찢어지는 심정은 육체적으로

이미 RNA가 작동할 때 단백질에서 결연함이 나온다고 봐야 함인데

즉 말하자면 혈청처럼 맑은 곳에 살아본 上層은 

침전된 넋이라도 있고 없고 간에 혼으로만 가겠다는 고집이면

실제 하나로 이룬 몸인데 한 쪽이 그렇게 하겠다면 

한 몸이어도 피눈물이 나는 넋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렇게 볼 수 있는 것도

영체를 본 경험이 있어야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난 시인(時人)

 

그댄 연인(年人)이요 

그댄 월인(月人)이요 

그댄 일인(日人)이요

난 시인(時人)일 뿐이니

하루살이보다도 시에 바둥대는 時人

하루 무덤에도 눈거풀인 냥 떴는 듯이

누군들 時를 끼지 않음이 있으랴만

주시하는 것보다 감긴 것이 많음에서인지

그렇듯 묵상인 것에

오히려 寺가 日 배고 마는 듯

일을 낳고 마는 듯이 할 때

그댄 詩인

입 口에 말씀이 퍼져 나가는 말씀 言 字

본래 말씀엔 塔身이 하나 물린 듯한 입의 

입 口에 여울이 퍼져나가는 듯이 함의 말씀 言 字

굳이 言의 옥개석(屋蓋石)에

다시 입 口인 탑신을 얹을 필요 없이

寺가 日을 까니 時刻의 부리가 쪼으는

寺에 日이 깨어나오는 소리의 울림에

소리가 탑처럼 조용히 쌓여가는 詩

 

 

五陰과 周易

 

우리가 五陰인 色受想行識을 보자면

과연 부처님 말씀을 개략적 설명체로 볼 것인가

또한 그 것을 설법체라 보면

그 말씀의 이치 자체로

사물의 법칙 그대로 드러나는 것인가 하는 것에서 볼 때

우리가 周易이라는 것을 마음에서 일으켜 따라감에 있어

기본수 50으로 하는 것은

이 색수상행식이 함유하는 50 개의 요소를

그대로의 바탕으로 일으킨다고 봐야 함인데   

즉 50 개의 시초(蓍草)로서 유추해 내는 것으로

이 50 개 중에 어느 하나라도 진심을 잡아주면 

64 개의 괘상이 일어난다는 것이 된다 

즉 이 오음이 각각 10 개씩 50 개로서 괘를 내는 절차를 보면 

결국 색수상행식의 과정 중의

띠끌의 모임으로 이루어지는 윤곽이 된다고 봐야할 것이다

 

 

九宮圖에 있어 粒子의 導出 

 

우리가 일반적으로 연구하는 입자의 형태나 흐름을 파악할 때는 

九宮의 中宮을 기준으로 방향성을 보는 奇門으로 한다 

어차피 이 것이 말씀의 第 一 句로 함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는 乾金을 물질로 하고 火를 입자가속기(粒子加速機)로 할 수 있는데

입자가 土요 中宮性임에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빛 안에서의 인식이기 때문에

中宮으로서의 방향성을 方角인 火로서의 인식으로 다 알았다 할 수 없음에서다

그래서 奇門은 火인 입자가속기를 초월한다

또한 회절성이란 목국에 해당하고

그 것을 다시 분석하여 에너지를 발견한 힉스입자라도 木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것이 中宮에 들면 힉스입자의 방향성을 보게 되는데

이 것을 洪局이라 함은 큰 바다와 같다는 것이다

즉 빛으로 金인 입자를 충돌하여 발견을 하더라도

결국은 화로서 다 바닥을 드러내어 볼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

수면에 드러난 그림자의 자기 행위에 합리화되는 것이고

실로 水의 도도한 흐름은 건너지 못 했다는 것에서

煙局에 숯처럼 남았다고 水에 마루 광과 같다고 숯이 되는 것이다

즉 빛로서는 알지는 못해도 洪局인 奇門으로는 닿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洪局에도 네 개의 손가락

즉 年月日時의 宮으로 받치는 것에다 中宮인 엄지까지 합하여 펴보이는 것인데

어떠한 입자성도 이 손바닥에 동향을 보임으로서 인식의 틀을 갖게 한다는 것에서

天盤性과 地盤性을 합하여 열 손 가락 안이 되는 것이다

즉 년궁과 월궁이 世를 좋게 하면 선각자의 연구나 기반이 큰 도움을 주고

世宮이나 時宮에서 탁월하면 자신이 큰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보통 침과 뜸에서 귀와 발바닥 손바닥만으로 몸 전체의 열을 감지하듯

中宮만으로 혈의 반응을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손가락을 육갑이나 구궁도를 짚는 부분은

목국의 혈이 있는 중궁도에서 파생되는 부분인 것이고

그냥 손바닥의 혈은 土局의 중궁도에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水局은 양쪽 귀의 혈맥에 현상을 보이는 것이 되고

왜 신장(腎臟)을 콩팥이라고 했느냐는

생김새도 같거니와

콩나물이 콩머리를 먼저 내놓듯이

이 귀도 태어나서 15 세까지를 말하는 운세의 혈이기도 하니

대우주와 소우주의 시간과 공간성의 의미를 잘 파악함도 큰 자산이다 

즉 診脈 上으로 보지 않고

九宮圖로만 봐도 그 자의 病脈이 드러나는 곳을 짐작하다는 것이 된다

결국 煙局이라 함도 곧 연기요 회절성이라는 것인데

또한 덜 탄 입자성이라는 것이 되는 것으로

이는 火는 밝히는 것이요

또한 離인 것에서 접촉하는 공간을 맣하는 것으로 

즉 火로서 발견할 수 있는 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易도 潛龍에서 출발하고

六十甲子도 海中金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결국 火도 바다 밑까지 다 알기는 힘드는 것이다

즉 金生水가 된 암흑입자를 火가 다 근접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소와 염소의 기질

 

소 축(丑)은 연변(沿邊)이라 하는데

또한 계곡의 벽이라고도 한다

소는 동토만큼이나 고집이 센 동토이다

허나 염소는 산양을 의미한다

험한 산을 잘 타기에

오히려 노장 사상에 젓기보다

벼슬 계단을 좋아하는 것이고

다 같은 되새김이라고 하나

소는 좀 더 沿涯的인 보편성을 많이 따르고

염소는 되새김이면서 상층성과 꼭지점을 많이 되뇌인다

그리고 소는 28 수(宿)의 斗牛인 것이라

실용성과 현생의 의미가 되고

좀 더 넉넉해진 바탕의 호랑이 寅이면

그로 演出의 삶이라고 하는데

즉 그로 봄이라고 하는 것에서 연극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未인 염소는 井鬼라고 함인데

이 건 화석층과 고분층이 되기에 그러한 것이며

거기에는 맑게 정화됨도 있는 것이라 井이 되는데

이는 천상성보다 지상성의 보존이 강한 것이다

그리고 申이면 지축(地軸)을 말하는 유인원이 되는 것이라

인류의 태초성에 많이 매달리는 편이다

다만 염소도 소라는 것을 스스로 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로또 복인들

우주가 공으로 공으로 넓혀가도 그 것을 뚫는 것은 주역이요

실하다 실하다 해도 그 허망함이 물질이다

 

 

봄이면 산이 부스스하다

 

봄이면 산이 부스스하다 

뭐 풍성할 정도면 양털처럼 모아지기도 할 

왜 洋이 물 水 邊에 羊일까하는 것도

다 양털도 깎으면 양철로 가을인 듯이

이 것도 판치생모(版齒生毛)가 되듯이

본래 兌澤은 羊이요 미소의 양철인 것

털이 나면 洋인 것이니 

뭐 제 일 구로 입 다물리면 乾이 되는 玉이되겠을

그럼! 

대지는 무엇인들 품지 않았으리 

봄이면 벗꽃이 부스스 하다

나무가 잎을 딛기 전에 부스스하다 

왜 목련마져 그 깊고 두터움마져 깨어나와야 했는지 

보기 싫은 듯 돌아간 흔적은 유달리 검다만 

봄이면 소 등같이 일어나는 산이 또 분주케 한다

 

 

유념성

 

본래 신장은 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객체적일 때 잘 나타나는 것이고 

너무 자신적이고 주관적일 때는 

그 오행성을 물질적으로만 접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즉 재질이 무엇이며 어디에 속하든

먼저는 신장 투석기라도

金이나 兌澤으로서 먼저 간주한다는 것이다

즉 담는다는 기능의 것으로 먼저하는 것이

훨씬 주관적으로 맞아든다는 것이다허나 

손님을 맞는 점술사적인 면은 오히려 객관을 따름이 있다만 

먼저 그 패턴을 자신이 잘 유념하고 봄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庫나 澤은 담을 수 있으니

헌혈된 팩이 될 수 있음이고

財며는 링겔 정도는 되는 것이고

孫이면 자연적 기관의 이식이나 거부반응을 갖는 것 등이다

우리가 서울의 지하철 2 호선을 뜬다고 할 때

이를 하나의 원생세포로 한다면

이는 土盤으로서 갈라진 것며

수원은 水盤인 것으로 수소와 같은 것이다

이 사이에 서로 다름이듯 상반되는 것이다

또한 같은 것이라고 할 때

그 시공은 완전히 다를 수 있는 벽이 있음이라 할 것이다

어느 정도의 범주인가는

수소는 알카리성으로서 원소 1 族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보통 土라는 개념의 전형원소 8 족이라는 사이만큼의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라는 폭이 망원경의 렌즈만한 폭이라도 거대한 것이라면

이는 마치 몸은 하나의 큰 것이라고 하더라도

작은 세포마져 같은 것이라는 것과 맞먹는 폭과 같다는 것이니

이는 곧 우리가 때인 시간으로 살고 세포갈이처럼 사라지는 것이라고 해도

세포는 그 자리이듯 살아있음과 같이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린 때와 함께 사라졌을 뿐의,

또한 木이 空이면 酸의 분해도가 낮고

金이 공망이면 알칼리의 분해도가 낮다는 것이 되믐 것이고

 

 

進,退神과 화학 그리고 物性

 

보통의 土의 퇴신은 육질이 오므라드는 것이고

그 動하는 庫에 들면 분명 그 과정 중에 들어 갔던가 하는 것

즉 오징어나 북어가 마를 때 양념이 들어가서 포함되는 합인 것이 있고

마르고나서의 양념인 것이 있으며

만일 이러한 선상에다 다시 그 깊이를 보는 것이라면

水가 進神이면

염분의 첨가가 되는 것이고 염기성이나 알카리성을 많이 부여하는 것이고

木이 진신이면 비타민이나 호르몬의 활성도를 높이는 것에다 

강한 소화성의 산성화를 촉진 시키는 것이 되고    

물건을 잃어버볐다면 그 과정 중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父인 爻로 衝破되어 官을 내뱉는 것이라면

간혹은 집의 벽을 깨는데 시체가 나오는 수가 있으며  

보통 백호에 金이면 프레스 절단을 의미하는데

자칫 손발이 절단됨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또한 이 것이 生이라면

그 내용 중에 절단성이나 파괴성을 이끌어야 함의 참조가 있다

 

 

문명과 영혼 

 

요즘에는 이통(耳通)이니 안통(眼通)이니 하는 것이 

차나 통신이 앞당겨 주어 인간에 와닿게 하니

기술 문명을 최고로 치는 마당에는 

교육도 덩달아 치밀하기는 하지만 인문도 그렇게 따르는 것이니

우리가 타심통(他心通)이니 숙명통(宿命通)이니 하는 것도 

마냥 신비주의적으로만 드러낼 수 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동양철학의 면모도 죽은 듯이 하지만 

마냥 추상적이지 않으면 거들날 듯이 

오늘만 부둥킬 일도 아닌 것이

이는 논리적 전개가 부족한데서 이기도 하거니와

지식적인 한계만으로 접은 듯이 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은밀화된 부분적 한계만으로 살아가지는 것이기에 

전반적이지 못 함이 있는 것이니  

우리가 좀 더 접근겅 좋게

식물이 동물이 되어 표현하자면

식물까지 다시 옮겨 주는 것이 인문적 해석이요 

爻辭的 해석이라면 

식물에서 근원적으로 접근함이 爻神이라고 할 때의 

면목은 매우 물리학적 근원으로 풀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즉 이제는 宿命通도 

차나 휴대폰처럼

眼通이나 耳通이지 않으면 퇴락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에서 

더욱 명철하지 않으면 

결국 서양의 논리에 뒤지게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소 주기율과 인문성

 

文句에도

문 밖이 귀신이 들끓어대는 데는

너 혼자 편할 수는 없지 않는가 하듯이

솔직히 나도

인생도 만만찮은데 귀신까지야 먼 일이지요 하는 타입이라 그런지

뭐 우스게로 귀신이 많아야 천도도 돈 벌어먹고 살지요 하지만

내 스타일이 귀신 처리보다 귀신을 안 만들어야 하는 궁상이고 보니

다 細柳을 늘어뜨림에도 또한 낭화나 같음이 붙었다 떨어짐에 인생들이라  

나란 놈은 가만히 내벼려두면

지금이라도 내버려 두면 만개 태평할 놈이라 그런지

신도 내버려 두질 않음인지 이 고생이지만

간혹은 생각는 것이

아주 먼 적의 일이지만 

世와 應 사이에서 상대 측의 집 주변에서 鬼가 動하면 

집 주변의 불상사를 종종 보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분명 鬼가 움직이기는 움직였는데 상대와 상관이 없으니 

점괘가 그리 허황되자고 나오는 것이 아닌데 하면서도 그냥 넘겼는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후로 한 일 주일 후에 동네 어느 지하 셋방에서

여덟 겹이나 비니루로 싼 채 2 년이나 된 시체를 드러내고 보니

1 키로나 떨어져 있었는 데도 냄새가 났다는 이야기와

요즘같으면

원소 주기율로 다 싸고도 냄새가 날 것인가 하는 경계도 생각해 볼 것에

또한 다른 예로 보면

집과 퇴근길 사이에

누군가 떨어져 죽은 집이 무섭다는 것에도 발동한 것인데

그 무엇보다 한 例로는  

분명 다방 주인더러 남자를 조심하고 경계하라고 했는데

나중에 왠 손님이 강도로 돌변에 칼을 들이대는 것을

간신히 뒷 문으로 바져 나와 그로 모면했으니 참 용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또 점을 보니 예와같은 괘로 조심하라는 것이라

과거사로서 다시 드러내보이는다 싶어 확실함으로 점을 떼웠는가 했는데  

더 이상은 큰 것이 없는 듯이 나오는가보다 하고 안심이 되듯 넘겼는데

 

일 년 후에 가보니 

그 주인이 일 년 전 쯤에 괴한에 피습되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참으로 인력으로 안 되는 것이다 라는 것을 느낌에 

우리가 좀 더 넓게 보면 새옹지마와 같다 

점 이란 것이

내가 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점이 일상사를 찍는 것과 같음에 맞히라는 것이니

일일이 따라가다가는 같이 앓는 것 관두고 말지 해도 

걷는 발보다 점발이 족적과 같음이 있으니   

안 맞을 때 더 크게 벌어질 여지를 남김을 거의 봄이요

한 마디 더 하려면 변명과 악담과 같아 더 험해질 것이요 

번복되어 나오는 문구도 결코 소흘이 볼 일도 아니니

현재와 미래의 일을 과거사에 매달려 흐릴 일도 아닌 것이라

 

 

空界의 유기성과 自性

 

우리가 주역(周易)을 기하학적으로 보자면

上卦를 분침으로 하고 下卦를 시침으로 하면 

분침이 긴 것같이 몸도 긴 것이요

시침을 짧은 길같이 머리로 하느냐와 

그 반대로 

목 아래 몸을 시침으로 할 수 있음의 비중을 보는 것도 될 수 있음에

시와 분의 침이 달라도 하나인 것으로 해 

변효(變爻)를 그 그림자가 비치는 자리로 한다면

그 바닥의 일체성으로 들이게 하는 것이 되는 것으로서

이는 상대적인 것에 그 저변성마져 함께 참조해야 함과 같다는 것이다

이 것이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입체적 구형으로 나타낼 때의 구성력일 때

그 바닥을 반물적 시공계로 물리는 것으로 할 수 있느냐와

그냥 물린 그 평면 상의 

물질 끼리의  대칭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인 데 대해  

이러한 각각의 상대성인 것과 자성적인 것의 관계로 물린다고 할  때 

어느 쪽으로든 될 수 있는 것에서

상방되게 경계 또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에서

시각적 기하형은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것이 있으니

있다면 과연

종이의 앞뒷면과 같은 坎中連인 陽으로 접힌 벽과 같은 것이냐

아니면 떨어진 공간이 있어 離虛中인 것이냐의 

空界的 유동성의 분석이 나올 수 있느냐는 것으로도

서로 간에 반비례적인 것과 정비례적인 것으로도 다른 것이니

여기에는 

원소 族이 닽으나 주기율이 다른 것 

원소 주기율은 같으나 족이 다른 것으로 드러낼 수 있음과의 

상호성을 띠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있다

 

 

시간의 분류

 

인생의 궁극적인 싸움은 결국 

블랙홀에 빛이 실처럼 늘어나 빨려들어가는 듯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이 늘어나는 대로 빨려 드는 것이 있다면 

그 것이 시간이 지배하는 것이고 

7 주기율로서 역행해

빛은 원소 3 주기율에서 끝을 낼 수 있다함에 

어떤 시공이어도 3 주기율을 채워야

다음 주기율로서는 태양을 똑 같이 볼 수 있음이 있다는 것인데 

그럼 과연 원소 2 주기율은 그림자 있는 개념인가는 하는 것으로 

과연 빛을 초월하여 드러낼 수 있음인가 하는 것에서 

이 것이 생각의 영역인 두뇌의 것이라면 

마치 빅뱅인 원점에 가는 것에 있어 최종적인 것으로

생각을 굴레를 1 주기율이라고 할 째 

과연 수소 한 알의 원자로 

빛의 줄기처럼 끌어 들이는 홀로서의 힘으로서 

과연 끄는 시간의 정체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행성의 메카니즘

 

우리가 태양은 火로 하느냐 水로 하느냐는 명명백백히 

火極水요 水極火가 된 것 안에 있다는 것인데

참으로 신비한 것은 심비디움 꽃이라고 해야 하나

수소의 핵융합 자체가 수소인 것이니

태양이 火인 동시에 水라고 해야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태양은 水고

저 명왕성 너머의 핸리해성과 같은 것은 곳에는

도리어 火라고 해야 함이 있고

좀 더 안으로 좁혀 보자면

木星과 火星 사이의 소행성 띠의 안을 火라고 할 수 있음이고

이 것을 지피우면

그 사이가 되어 대기권과 같음이 힉스입자라고 할 때

木星이 이 火星(본래 火란 거죽이 등껍질이나 껍질이 단단한 열매를 등을 말하는 것으로 離虛中이라고 함)

즉 太陽이 坎中連으로 중앙이 되어 水가 탈 때 도리어 火星의 외벽인 小行星으로 봐

이 소행성 안 쪽의 모든 행성은 火宮으로 하고 꽃이라 할 때

밖의 木星은 힉스 입자로 할 수 있음인데

이는 곧 풀 줄기가 되는 것이 되고 土星이 땅이 되는 형국인 것이다

 

 

발상의 전환 2

 

우리가 無間을 官이라고 하고

어떤 굴레를 父라고 할 때

이 父란 옷을 의미하고 차나 집을 의미하는데

이는 여러 시공계를 나타낼 수 있음이고

이에 따라 입었다 아니 입었다는 설명이 되는 것으로

태어날 수 있음도 있다는 것이 되고

兄爻는 거기에 맨몸뚱이와 같다는 것이니

이도 잘 음미하면 부처님 말씀의 천상계도

주역으로 대입할 수 있음이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天時로 볼 때 父를 비라고 하는데

즉 바람의 살에 구름의 옷을 입었다는 것이고

맑은 물에 더껑이가 끼었다는 것이고

그 사이로서 父가 되었다는 것이니

이 것이 단단해져 계란 껍질과 같아지면

결국 눈이 나는 胎는 흰자 밖에서 눈이 난다는 것이 되고

이 것은 계란껍질과 같은 거품으로 사라지는 것인데

다만 단단한 알맹이처럼 보인다는 것이 될 수도 있음이다

곧 오존층이나 전리층, 성운층 등

이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어떤 옷이 될 때

꼭 성운층의 비 뿐이라고 할 필요도 없는 것으로서

다른 성분의 대류하는 관계도 알 수 있음이라는 것이다

 

 

用神

 

우리가 사람을 기다리는 경우는 그 用神을 위주로 해서 보지만

자신의 일은 그 용신이 여러 갈래가 되는 수가 많다

즉 世의 爻神만으로 점찍기에는 범위가 넓은 것이 있다

같은 父라도 집이 움직이는 것과 차가 움직이는 것이 다른데

누군가 열차로 올 것인가 버스로 올 것인가 알려면

여러가지로서 하나를 집는 것이 중요하지

하나로서 여러 가지를 알려는 것은 무리다

즉 어떠한 것이 나오더라도 그 특성과 차이를 잘 파악하라는 것이다

당장에라도 爻가 財化父가 되는가

父化財가 되면 이 것이 이미 과거에 표를 끊어 놓은 것인가

앞으로 끊어 올 것인가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재가 공망이면 카드 기계나 사람이 금액을 기억하지 못 하든가

입력이 안 되든가 하는 것이되고

父가 공망이면 기계가 고장이라 현금을 계산하는 조치도 있으니

그 동향도 엄밀히 보아야함이 있고

상대의 財가 퇴신이면 할인이고 그로 왕상하면

그래도 남는 장사로서 생색인 것이고

간혹은 유통기한이 지난 것일 수 있든가 물색이 갔다는 것도 된다

진신이면 덤이 되는 상품이 되나 

父가 진신이면 노선이 길어지고 확장이나 연장을 말하는데

이 것도 시간과 공간성을 잘 유념해 봐야 한다

 

 

九宮圖와 奇門

 

보통 우리가 객체적으로 볼 때는 어느 쪽 하나의 궁으로 보지만

육효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정밀히 볼 때는

구궁도의 중앙 힘 자체로서 분석을 하게 되어 있는 데

물론 주역의 지화명리의 효사처럼

어대로 들어 획추하고 어데로 나온다는 문구처럼 

軍師로서 써먹거나

아니면 의학 상으로 수술을 한 자국을 남기거나 하는데 

이러한 도표는 구궁도로 하면 

토정 이지함 선생님의 월영도에 잘 나타나 있는 것으로서 

누군 그 중에 내방자의 성씨 알아 맞히는 것만 배워서 

고작 그 것만 써 먹는 데도 귀신이라는 소릴 듣고 손님을 끈다지만

이 건 실로 야구 선수가 한 쪽 팔이 길 듯이

점이란 것도 단순하면서 요체적인 것이 더 잘 먹히다 보니

알아맞히는 것도 일방적으로 닦는 것이 더 예리할 수 있음인데

그런 데다 없어도 무언가 있는 듯이 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이 역학인지라

 한 열 개 정도로 해서 네 집 어디에 무엇이 어떻게 생겨 먹었단 것만으로도

곁에서 늘 보는 사람이야

상 그 것만 반복이어도 손님을 끓게 한다기도 하지만

무엇이든 한 쪽을 닦아야 신과의 믿음이 상통하기 쉽다는 것이기도 하니 

신이나 사람이나 서로 편하기도 하다는 것도 있다  

실제 구궁도는

神醫에 닿는 의학의 지평을 내놓을 수 있는 합리적 논리도 될 수 있는데

그 접근조차 않는 것은 단순히 天機니 뭐니 해도

그렇게 접근하는 내공을 들이는 자를 보기 쉽지 않거니와 

학벌이니 지식이니 하면서도

논리조차 접근한 게 없는 것을 보면 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인 것이다

실제 奇門은 지리에 능통하다는 것인데

이는 기문의 중궁을 지구의 중심으로 하고

六壬을 그 테두리에 사는 인간으로 해서 그런지

기문은 구심의 역량이고

인문은 원심의 역량으로 돌린다는 것이 있음에

지구를 중심으로

주기율적 차원에서 인공 위성과 지상 인간의 궤도성도 분류가 되어야 함이 있고

28 수(宿)가 천상의 별이라고 하나

六壬은 地殼에 내재된 표피성과 같이 九宮에 관여 됨이 있는 것이다 

보통 天盤星과 地盤星은 

간단히 보자면 눈을 두 개 뭉쳐 머리와 몸으로 하는 것으로 보면 되는데

이 것은 사람으로 보면

몸의 어데 부분에 어떤 특징이 있으며 아프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 자체를 구궁도로서 보는 것이냐 

구궁도의 한 쪽 방향으로서 인간으로 보느냐의 파악이 곁들여야 하는데 

이 걸 다 수습해야 달인이 되는 것이다

 

 

미생전 본래면목

 

나도 이제 때날 때가 되었제 

중이 무슨 생사가 있나 

늙어 부귀영화도 다 허망한 것이고 

다 내 몸 하나 좋다는 것이 아니겠나 

고생도 고생이 아닌 판에 호사가 호사될 일도 아닌 것  

다 물 건너간 이야기제 

벌써 베토벤이 떠났을 나이이니 

나도 살만큼 산 듯하니

도리어 마음이 홀가분 하기는 한데

보화존자나 마조 선사처럼 떠날 도가 못 되어도 상관 없으나

자꾸 어머니가 밟히네 

그래도 명색이 중이 되었으면 어머니 업은 내가 지기로 했는데

 

 

왼발 오른발

 

생명력이란 무엇일까 

왼 발이 막혀 딛질 못 하고 

오른 쪽 발이 막혀 딛질 못 하는 것이기도 하니 

그나마 가운데 다리라도 나가지 안으면

의욕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니

그러면 자발심이 없어지는 것이니

다 나고 죽는 문이기도 하는 것이라

초월하기까지는

그 길로 안 서면 무슨 진도가 있는가

 

 

피카소적 기하학

 

우리가 목을 중심으로

머리의 좌우 뇌와 아래 팔은 X 형 유전자가 되고

남자는

가운데 다리 하나로 Y 유전자가 되는데

여자는 사타구니 사이로  애를 낳든가 해도 X인 것이니

남자는 XY요 여자는 XX가 되는 것이라

이 유전자를 구궁도로 분석해보자면

巽宮과 坤宮을 양팔로 함이 있고

乾宮과 艮宮을 양다리로 함이 있는데

그래도 다리로 길게 힘을 강하게 줄 수 있어야

두뇌적 집게의 X 형이 된다는 것이다

본래 엄밀히 하자면

巽과 坤은 손톱과 손바닥으로 접히는 것이고

살과 켜 사이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또한 팔의 저장성이며서

이두박근적 유여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乾과 艮는 머리와 발바닥이 맞닿게 접히는 부분이기도 하니

건은 좀 더 알찬 결과물이고

山은 坤의 저장보다 다리에 많은 비축성을 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이 팔과 다리 사이에

허리나 관절은 운동이 일어나고 오무림이 있어나는 것이라 震과 兌가 되는 것이며

여기는 살이 많이 붙어 좋을 게 없다는 것도 된다

이 외에 나름대로 시공적 차원을 접을 수 있는 개재는 많다

무엇보다 한 가지로 대입된다고 강조하지 마라

서로의 상호성에 따라

어떠한 차원으로 접히느냐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벽이나 경계를 어떠한 상호성으로 넘어가는가를 볼 수 있음이다

 

 

접근성

 

그러니 坤艮이나 生門과 死門은 피부살의 관찰로 드러나는 병리학을 보는 것이며

그 두터움을 보는 것이 있다

그리고 巽과 乾은 風을 맞는 것이니 새는 공간을 살펴야 하는 것이고

또한 보이지 않더라고 싸고 있는 막이 있음도 살펴야 하는 것이고

死門이어도 生이 되면 묵은 살도 에너지가 되어 준다는 것이고

生門이어도 剋을 하면 도리어 살이 쪄서 막힌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포갈이에는 늘 生과 死가 쉼 없음을 알아야 한다

즉 생이 좋으면 생함에서 찾아야 하고

사가 사가 생하면 사라지는 길을 잘 파악하면 발견이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 된다

생문이 극하면 회충일 수 있고

이는 같은 생명체로서 다르게 빼야 하는 것이 있고  

杜門이 극하면 이라고 할 수 있음인데

자꾸 입으면 많아지는 것이 된다    

乾은 그 것을 총괄하여 봐

유전성이든가 

마치 대기에도 층이 있듯이 규정이 될 때의 굴레를 말하는 것으로의 접근이 있는 것이다

즉 風을 맞더라도 乾이 막으면 출혈이 멈춘다는 것이 있이 있고

다를 병이더라도

乾이 생하면

자체 저항력이 발생할 수 있음의 굴레를 살펴야 하고

좀 더 체계적인 지식을 따르는게 낫고 

巽이 생하면 강호나 민간 요법을 따르는 게 좋으며

傷門은 시간이 지나면 안 되는 것이 있고

驚門은

오래 묵은 것일수록 낫다만

그 중독성으로 인이 박혀 정상성과 거부반응이 있을 수 있다

開門, 休門, 生門이 좋다고 하나 

開門이 剋하면 기존의 지식이나 관념을 깨야 하는 것이고

관료적인 병폐가 있는 것이고  

生門이 극하면 내 몸과 같아서 못 떨구는 것이 되는 것이고

死門이 生하면 毒도 藥이 되는 것이다

休門이 극하면 순환이 잘 되고 늘어지는 판에 일이 벌어짐을 유념해야 한다

 

 

약리(藥理)의 유추

 

만일에 두 개의 같은 爻가 剋을 받는 중에

하나가 動하여 生을 받으면 

특히 兄爻가 父로 化하면 같은 몸이니 같이 파괴되어 손상되는 방식을 취하나 

하나는 적응력을 돋우는 길이 있어 사용되는 약이 되는 것이고  

특히 같은 父가 官으로  化하면 같이 한 옷인 상태에서 소독하는 결과로서 가능하고 

財가 같은 것으로 動하여 剋이 되면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살충이 되는 것이 된다

이는 즉 같이 병행해도 하나를 떨굴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되는 것이고

같이 재가 공망인 채로  상대가 극이 되면 밥을 굵고 약을 먹어야 한다

또한 實이 空으로 化하면 그 것을 없애든가

즉 父며는 포장을 벗기든가 털을 깎든가 하는 것으로  

아니면 먹은 듯 착각하게 하든가

굶게 함으로서 사라지게 하는 방식을 취한다

충으로 가능한 것이면서 균으로 접근할 수 있느냐 

균은 가능하니 바이러스로 접근할 수 있느냐와 

바이러스를 균적 메카니즘으로 열 수 있는가 하는 것도 

결국은 원소 하나의 수소와 

원소주기율적 배치도를 잘 파악하면 접근할 수도 있음을 나타낸다

결국 독감을 정복하려면 바이러스를 넘어야 하듯이 

신출귀몰도 그 선을 넘는 차원이  기문둔갑인 것이다

 

 

엄밀성과 면밀성

 

인간이 마음에서 일으키듯 

시간도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이 있다

있다 

그러니 奇門이나 六壬도 통하는 것이다 

그럼 시간이라는 것도 

그들만으로 잇는 연쇄성이냐

또 그 외에서 드는 간극성(間隙性)이냐 하는 것은 있다

보통 제갈공명이 八卦圖를 써먹을 때 

이 걸 기문둔갑이라고 해야 함인데 

이 時家奇門을 펼치면

최소한 공격할 때의 접근법과 나올 때의 방향을 보아야 하며 

하물며 실수를 했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하는가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즉 宮으로 접근하는 법과 

그 中宮圖로서 활용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리(數理)의 양파적 굴레

 

본래 生으로서의 경계는 

五行으로 하는 바 오오 이십오가 맞는 것이고 

고생이어도 그래도 살겠다고 발버둥이면 

육육이 삼십육이라 

무술에도 36 계나 되는 출행랑이 있을까 할 정도니  

즉 공격보다 도망의 수가 많은 것은 

칠칠이 사십구와 같이 死의 세계가 되면

사십구제처럼 범위가 넓어지는 세계로 확장된다는 것과 같다

이렇게 4 차원적 시공계가 되다보면 

자연 전반적 법칙으로 더 넓게 수용하고 있는 것이 

팔팔이 육사인 것의 周易을 기본하는 바탕성으로 

이미 모든 사물의 속성이 다 된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이 것이 다시 마음으로 집합하는 것이 구구 팔십일이 되는 것이다

이를 십십으로 하면 百이 되는데 

이는 이 百 字가

아래 구십구를 白으로 하고 다시 하나로 한다는 것이니

즉 一과 같이 한다는 것으로 

이는 마치 원소 주기율을 다 합해서 百이라고 하더라도

백이 차면 다시 수소(水素) 한 알의 원자 단위로 한다는 것이니 

즉 百인 주기율을 一인 수소로 할 때 

모든 원자량의 단위는

마치 원자 한 알 속의 양자학적 구조로 파악한다는 것이 되고

이는 마치 세균적 정복은 되었으나 미진한 것을 

바이러스나 게놈적으로 접근을 한다는 것이 된다

 

 

수리적 치밀성

 

우리가 보통 오오 이십오로서 生의 영역으로 하고

반물질적인 대칭이라 오십이 될 때 

그럼 이 두 개를 합한 영역은 어떤 것일까

좀 더 수리적인 치밀성을 강조하자면 

周易의 시초(蓍草)를 50으로 하고

하나를 빼서 기준을 잡음에 49가 되는 데서 

三으로 나누니

삼삼은 구라 다시 下卦가 되고

원의 半 쪽이 되고

이는 결국 九宮圖도 반에 있어 넘긴다는 것이고

육육이 삼십육은 한 바퀴도는 온 각이 되는 것이라

또한 칠칠이 사십구인 것이니

결국 반물질적 대칭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것이 

칠칠이 사십구제가 된다는 것이 되니 

거울적 인과을 그대로 담은 채 활용이 가능한 것이 된다는 것이고 

아뢰야 식의 굴레까지 접근한 벽이 될 수 있음이 있다는 것인데 

그러니 자연 팔팔이 육십사는 여유와 자의가 생겨날 수 있음을 

수리학적 기하성을 이룰 수 있음을 뜻한다

즉 칠칠이 사십구 안에 육육이 삼십육의 분각이 있는 것에다 그로 성분성이 있으며  

또한 그 안에 오오 이십오가 되면 사물적으로 드러남에 원소라고 할만한 것으로

이승의 인지 능력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할 때   

이는 곧 어떠한 공간성을 수리적이며 점적인 원소성으로 집결시킬 수 있는

하나의 코스를 볼 수 있음이 된다

그리고 삼은 삶이요 육체라고 할 때 

사사 십육은 영혼이라고 함으로서

함께 오오 이십오인 사물 안에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같은 수를 곱해야 하는가?

쉽게 설명하자면 구심과 원심의 관계는 마치 

무지개가 공중에서 보면 둥글다고 할 때 

중심에서 두 선이 반지름으로서 따로 간다고 할지라도  

양쪽 선은 같은 길이에서 같은 색의 태두리에 닿음과 같은 것이다

즉 동쪽이든 서쪽이든 같이 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 안의 굴레에서 다스려지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이 것이 타원형일 수 있고 길이가 다르다고 하더라고

하나의 힙으로 작용하는 것로 봐야 하는 것이다

 

 

병리로서의 접근

 

우리가 같은 것으로서의 약을 보자면

財가 병이면

음식을 같이 섭취함으로서의 한 몸이기에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차별로서 약을 써야 함이 있고

孫으로서 같은 데다 忌神이면  

병이면도 같은 항체가 생겨서부터인데 

그 로서 차이를 두어  약을 써야함이 있는 것이고  

官이 孫으로 되면 세균에 항체를 만들어 주든가 하여 낫는다

즉 몸이 스스로 항체를 맏들게 하여 낫는다는 것이다

兄이면서 같은 병이면 자꾸 유행성이 되는 경우가 되며 

사회성으로서 악화되는 것이니 사람과의 근접을 막는 것이 좋다  

父면서 같은 병이면

연구로는 유전성이 될 수 있음이 있다는 것으로 접근해야 하며  

그 집결처를 알아야 하는 것이 있고

피막을 짓는 데서 어려움을 만나고

병이 집을 짓든가

아니면 종족만의 고유성만으로 일어날 수 있음이 있고

약이면 게놈적 유전형을 함유함이 있다고 봐야한다     

官이면서 병이면 병 그 자체로 집중해야 한다

 

상극으로의 약을 보자면 

官이 孫의 극을 받으면 병을 들어내지 못 하고 

그대로 멈추게 하는 것이 최선책으로 

본래 官을 근심이라고 하니 극(剋)하면 났는다고 하나 

官도 회두극을 받으면 

병 자체가 전신이기 때문에 병을 죽이면 몸도 함께 간다는 것도 된다

즉 한 몸인데 따로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있다     

財가 극을 받으면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이니 

藥을 먹어 효과를 봐도 이러한 폐단이 될 것이요 

孫이 극을 받으면

病의 다른 파생으로 인하여 약이 한계에 도달함이고 

兄이 극을 받으면 

아직 임상이 인간에 미치지 못 함의 병일 수 있다

즉 아직 일반화되지 않는 것이 되고

孫은 생을 받으면 짐승에게는 약효가 있으나

兄이 생을 받지 못 하면 인간에 효과까지는 못 했다 것이고 

또한 일반적으로서의 점으로는 

孫이 生을 받으나 財가 父를 극하면 

藥은 있으나 돈이 없어서 포기하는 경우의 수도 되며 

아니면 병을 낫기 위해 집을 팔아야 하는 경우가 된다 

어런 경우 극이 약하면

도리어 하우스 푸어가 되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官이 兄을 극하면 병으로 떠나는 사람이 생기고 

직업으로 해서 사람이 떠나는 것이고

食神이 官을 극하면 병자가 떠난다

財가 父를 극하면 유전적 관성(慣性)을 뺀 약이 나온다

즉 거부반응을 없애 치유가 된다는 것이고

그러나 官을 생하면스 그러하면 면역이 결핍되는 병이 생긴다

兄이 財를 극하면 식단을 달리 짜야 하고 상극성이 있다

 

요즘에는 의학이 발달하다 보니

유전자 조작도 가능하고 보니

먼저 孫이 空亡이고 休囚며는 자식을 못 낳는 경우도 되는데

生이면 착상이 되는 것이고

이를 合으로 당겨가는 爻가 있으면 대리모가 될 수도 있다

父化官은 유전적 결함이 있다고 할 때

이 官을 떨구고 착상시켜도 드러남이 있다는 것이다

 

 

기준성

 

우리가 진주알 하나를 보자면 

알을 兄인 몸으로 기준으로 하자면

먼저 이 모래알을 밀어내기 위한 진주 조개에게는 惡材인 것이다

즉 그러면 모래알인 진주가 형이며는 진주의 살갖은 관이 되는 것이고 

우리의 일반성은

그 반대로 진주알을 관으로 보고 살갖을 명으로 보는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그러면 먼저 기준을 삼지 마라고 말할 자 누군인가

결국은 둘 다 맞는 것이 아닌가 

만일 기준을 잡지 않고 그 반대성마져 수용을 했더라면 

아마 이러한 진리는 수 천 년 전에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미친 놈이라고 들을 일이지만 

도인이야 다른 쪽으로 확신을 보일 일은 많으니 무슨 걱정인가

즉 우리가 화학적으로도 원소만으로 포인트를 잡을 것이 아니라 

주기율까지 싸잡아 함께 통과되었다면

헐씬 문명적이지 않았나 하는 것도 있는 것이다

다시 괘상으로 돌아와서 보자면     

官을 기준으로 면역이 된 것이라면

兄은 버리고 官의 목적으로 관리 되어야 하는 필요성의 가치가 되어 있음을 간주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財인 기준으로 하자면 孫이 生하면 돈이 되게 하는 가치인 것이요  

孫으로 기준으로 하자면 자연 발생적이라는 강조가 되는 것이 강하고

父를 기준으로 하면

인위적이라고 해야함의 악세사리적 품격을 위주로 걸친 것이라 볼 수 있음이다

 

또한 이 진주 알 자체를 기준으로 바람이라고 한다면

이 兄을 낳은 조재 살은 부모이라는 객관성으로 볼 수 있음이나      

뭐! 조 것이라고 했다간

조개로 낳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고   

고 것이라고 했다간

고개를 타 넘게 하는 인연이 될지는 모르지만

財生官이면

직분 상으로 지켜감이

財인 고기를 위하여 악세사리적 가치인 父를 버리는 격이 있는 것이고

이는 곧 진주조개 양식은 버리고 식용 조개 양식으로 변환했다는 뜻이 된다  

孫이면 가루로 약을 만드는 것으로 사용되든가 하는 용도인 것이고 

공망이면 효과가 없는 것이다  

財이면 육체적 우주는 살이 되는 가치이나 

일반적 사회의 우주로는 돈의 가치가 된다

 

 

변효(變爻)의 해(解)

 

또한 動爻는 상극이나 변효(變爻)가 같아질 경우 

食神으로 같아지면 같은 항체가 생겨난다는 것이고

생을 받고 왕상하면 효과가 있으며 

극을 받으면서 그렇게 되면 낭패가 되는 것이다 

만일 財로 변해 같으면 

나중에는 같이 음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는데 

이 化하는 것은

그 성분의 혼합적 화학성으로 변하여 가느냐와

부분적으로 두어지는 것이냐와 같은 뉘앙스가 있는 것이며

변효 자체 성분만의 대응성이 명확해 질 수 있느냐가 있는 것이다

 

 

空亡의 解와 日辰

 

공망의 해라는 것을 보면 이렇다 

六衝이면 일반적으로 번복되고 재발한 개연성을 갖는 것인데 

應이 空亡이며 상대를 건너지 못 했다는 것이 있다 

실제 應인 子가 공망인 시간에 

집에 거의 다달아 신호등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다

이 일은 사고는 크게 났는데

크게 다치지 않아 병원에서 주사 한 방으로 돌아온 예인데

처음에 응이 공망이기에 약화된 충격이라고 봤는데 

그 것은 衝과는 거리가 있고 

空이 아니어도 별로 상관이 없다고 봐야할 것인데

만일에 應의 뒤에도 효가 있는 여분이라면 그래도 지나쳐 판단할 수 있으나

初爻가 되기에 되돌아 와서 가야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있는데 

보통 應이 공망이어도 경과는 되기 마련인 것이니        

보통 應이 房이나 집 앞이 되면 

좀 더 세부 사항으로 분별해야 함이 있는데

경과하지 않았다는 것은  

교통 사고로 병원에 갔다온 예와

소송 사건으로 연기된 채로 보류된 것이라 봐야 함을 본 것인데

아직 통과가 안 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크게 튕겨 나온다는 것이 되는 것인데 

世가  死로 갈 수 있음인데 應에서 生으로 튕겨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近病에는 도리어 合이면 위급하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衝은 낫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 보면 應空은 빈다기보다

그 시간대에 집으로 가야할 것은 가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데

이 것이 더 확답이 딜 것이라 할 것이다 

應期란 그리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문서를 보는 경우는 父인 것이나 

꼭 世에 있다고 내 문서이고 應에 있다고 應의 문서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다만 거기에 있는 문서일 뿐이지 않는가 하는 것도 있으니

世文이 合이어 성사됨은 내 문서가 상대에게 응했다는 것이고 

應文이 合이 되어도

마치 세의 압력이나 벽에 밀려 

상대가 보류 중인 내 문서를 應했다는 것도 되는 것이니 

다만 성사는 되었다는 것이 되는 것이나 

내 창작이나 신기술이 이유 없이 應에 있으면 기분 나쁜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내가 애를 먹고 피땀 흘리며 쓴 글이라도  

내 것인 냥 내색도 하나 안 비치고

마치 대꾸성 글을 썼으면서도 아무 상대도 없었는 냥

앞뒤로 다른 얼굴을 하고서는, 

자신만의 공간성으로 자기 것인 냥 탈바꿈하고서는,

자신의 창작품인 냥 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의 농간질에 있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衝에는 合이 결과를 내놓을 정도로 직접성이 있지만 

合이 될 때 과연 그 것이 연기(連期)되는 것인가 

해결되는 것인가는 그 정황을 파악해야 함이 있는 것이다

또한 4 爻는 동구가 되는 것이고 門이요 壁이라고 할 것인데

문 속에 문이 있는 경우와

문이 두 개 있는 경우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도 주지해 두어야 함이 있고

남의 터를 지나든가 하는 것에서 안으로 든 집이 될 수 있으며

동구며는

孫이면 어린이 집이 있든가 

父이면 노인정

마을 회관이면 官이 있는 것이고 

兄이면 정자가 있던가 하는 깃이고 

또한 일반 집일 수 있음이 있다

또한 動合이나 正合에 따라 문이 잠겼고 열렸음을 알 수 있음이고    

應이 房이 되어 집의 앞이 되면

남의 방이나 거실이나 마루를 지나야 하는 것이 있음이 있다

또한 두 개의 같은 爻가 空亡일 때 

世와의 거리에 따라 멀고 가까움을 나타낼 수 있음인데 

먼 것을 버리고 가까운 것을 취하면

마치 뚱뚱해던 허리 벨트가 

많이 줄어든 현상을 보이는 것과 같고

空亡이면 마치 밸트의 구멍을 보이는 것과 같으며 

로켙이 훨씬 생각보다 접근했다는 것이 된다는 것도 되는데 

다만 初爻와 거리감과 世爻와의 거리감을 잘 설정해야 한다

즉 땅은 初爻이기 때문이다     

 

 

실효성

 

풀을 예로 들자면

아무리 좋은 풀이라도 잡초가 되면 官인 것이 되는 것이고

굳이 그 物性만을 보는 것도 어리석음이라고 할 것이나

이는 둘 다 중요하게 핵심인 채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니 

그 가리키는 바를 잘 파악해야 한다  

또한 보통 日辰이 用爻의 退神이 되면 물러난다는 것보다 

물러난 사람과 함께 들어온 사람과의 兩手겹장이 되는 것이다

 

 

文과 武

 

육수(六獸)의 영향력은 어떤 것일까

야학 노인의 글에는 현무 父가 생을 받아

도둑을 잡아서 벼슬을 한 것이 되는 것을 보면

그 길흉의 유형을 볼만한 것인데

현무에 財生官도

도둑을 잡아서 포상이 된 것과 같은 것으로 보면 

보통 靑龍文은 새로운 집으로 하는 데다 

여러 즣은 뜻으로 보이기는 하나

병이어도 잘 먹고 잘 놀다 속병이 난 것이라지만

그로 손가락질 받는 형국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리라

剋이 되면 옷 잘 지어놓고 너무 오래 질기면

자주 팔아 먹을 수 없으니 욕을 먹는 것과 같고 

집 장사도 더뎌져 못해 먹을 노릇과 같고  

孫이 그러하다면 즉방약이 도리어 욕을 먹는 골이요

財가 그렇다면

제품을 빨리 新舊의 폭을 좁히며 순화ㅏ이 빨라야 하는데

달달 복지 않고 서야 갈이가 잘 되지 않으니

밤낮 유행이라는 것으로 사람 병신 만들기 일쑤인 것이지

대중의 힘이니 뭐니 해도   

성장 속도의 대단한 엄밀성이야 귀신도 곡할 노릇이 아닌가

다 인간이나 물건이나 쓸모에 따라 볶이기는 마찬가지인 것이지  

다 속 듯이

속이 듯이 하는 

대놓고 말 않는 내숭판일 뿐이니  

靑龍文은 좋은 문장이나 

白虎文은 칼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같은 文이어도 아지랑이와 고드름과 같은 것이다 

글이라고 너무 가볍게 보지마라 

한 순간에 달리 보일 뿐이다

 

 

에게!

 

에둘러 게에 붙이니

온 끝에 ~에게 

간 끝에 ~에게 

게는 무얼 그리 부지런히 산 중에 파고 들기 좋았는지

운해는 게의 파고든 자리만 티끌을 일으킨 듯 

신선계조차 혀 하나 만듯이 고요한 것을 

굳이 산조차 잎새를 다둔 듯이 한다 

도시의 안개는 고양이 발자국처럼 왔지 

개 아니라고 안 개라고 하지만 

왠지 짓어댄 듯이

흘러나온 듯이

그래도 아닌 개라고 ㅏ를 안으로 접어 게라고

제 살 제가 파고드는 듯

 

 

누구의 살인가

 

본래 저 유성의 꼬리가 제대로 박히면 

버드 나무가 되는 것이지 

본래 꽃이란 위로 펴야 하는 것이니 

꽃이란

온 몸에 버섯꽃이 피는 열병과 같은 것이지

그래!

그로 낭만이라고 즐기다 가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아주 무식한 촌놈이듯이 선은 또 그을 게 뭔지   

로겥은 거꾸로 피우며 달린다

그 불이 고도의 불인 냥 제 살로 파고 드는 듯이

뜸불과 같은 듯이

세포의 눈은 붉은 충혈의 눈이 되는 듯이

상대적 외변의 접촉에서 피는 듯이

하늘 끝을 가리키는 듯 해도

수양버들처럼 비이다 마는 듯이  

그러기에  

그래도 한 입으로 뱉는 만물의 연장처럼 날아야 하는 듯이? 

결국 뿌리가 불을 뱉듯이 해야  날으는 것이 듯이

어쩌다 불이 나무 뿌리가 되어서 가지고선

그러다 물이 되고 흙이 되면

원소 주기율 3,4,5,6,7까지 된다 하니

 

 

시침! 시치미 

 

조주가 손가락을 잘 세웠지 

자음에 ㅣ 하나면 족한 것을

차마 개놈라는 소리를 너무 들었음에 안타까웠는지 

一指을 안으로 돌려 게가 되어 게놈이 되게 하니 

그 우주만으로도 크니 상심마라 하는구나

개놈이라고 대대 손손 저주를 물려주는 듯이 해도

다 게놈에 박히는 것인데

지옥이라고 해도 눈 하나 까딱 않는 지옥이

참으로 뻔뻔하기도 하고 멀쩡하기만한 역사이지 않았던가       

       

 

자연과 인문

 

우리가 자연적으로 수소 한 알을 원자의 수리 단위로 할 때 

화학적으로는 주기율로 일곱 가지로 누적이 되는 깃이면서 

또한 洗漏가 되는 것이라면 

부처님의 방편을 한 번보자 

이 중아함경 칠품경에서 보면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어떤 사람은 항상 물 속에 누워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왔다가 다시 빠지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러 있고,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또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며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라야 저쪽 언덕에 이르는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를 언덕에 머무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나는 마땅히 다시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가지 물에 비유한 사람에 대해 말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과연 이 설법이 방편인가 자연인가 하는 것이 있다

말하자면 인연의 직접성은 그 깨닫기가 멀지 않는 것에 있고 

두루 걸쳐 올 것도 아니기 때문의 돈오점수가 있기 때문이다

즉 화학적 주기율의 울타리 안의 口라는 것에 

이런 인문적 최고의 향기를 내뿜는 것이 아닌가?

결국 靈과 肉이라는 것이 이렇게 완전 化하여 나오는 것이고

그 매체가 되는 것이 또한 周易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핼륨과 전륜성왕 

 

전륜성왕은 인간의 복을 받아, 

즉 인간의 네 개의 복을 받아 다스림이 있는데 

참으로 신묘함은

전륜성왕이 행차하면 물길이 갈라진다는 것인데 

어찌 보면 임자(妊者)의 양수(養水)를 갈라나오는 비유가 되는 것이나

이도 다 달과 관계가 있음이요

무엇보다 양자 물리학이 수소를 차고 나와 행할 시

네 개의 핼륨으로 호위하는 것이 기특하고 기막힌 일이 아닌가 

인간 팔만 사천 수명도

결코 헛된 복이 아님을 알게 하는

진보적 과학이라는 면목이 우주적 영역을 보게 하는지도...

 

 

장끼와 장기,  까투리와 가두리

 

부처님 도야 執과 滅이니 

사성(四聖)제가 된다지만 

僧이야 執에 머물어 長이 있으니 

인표업(人表業)의 눈이지 않는가

내대로 나왔다싶게   

이 것이 내 장기라고 고갤 내미는데

저 가두리는 또 무언고

오호라! 저 것이 수소와 핼륨의 사이인가

가두리란 것

까고 또 까봐야 까투리요

변강쇠가 장기라고 하나

콩밭에 숨어 꽁무니 잘 빼는 장끼로구나

 

 

열반의 콩고물

 

부활?

굳이 내가  받아들여야 하나?

과연 인간이 태어났을 때

그 환희와 경이

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

그 것은 어떤 종류의 것인가

그 것은 열반의 일종이 그러한 것인데

더 이상 말이 필요한가

부처란 死가 아니라 닫음과 같으니

그에도 열림이 천상계로 태어남이요 

인간이나 금수로 태어남에

어찌 짐승 새끼도 탄복스립지 않으리요

태어남이 열반이 묻어나오는 전율에 무슨 부활?

 

 

비유의 효율성

 

천안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기존의 정류장보다 거꾸로 앉았다

어쩌다보니 

배산임수가 아니고 배수임산이로구나 

굳이 입을 열어주었어야 했음인가

달은 돌아섰음이요

산이 내려와 반기는 것이로다

 

 

 

때라는 것 

수 억이 넘는 세포에서 만들어내는 때라는 것 

보기에는 한결같아보여도 각기 경락이 다르듯 

그 반응이 다르듯

몸의 때하는 것도 각기 다르게 나오는 게 아닌가?

그러니 시간의 때나 인간의 때나 

시간의 차원이나 인간의 차원이나 

시간이 빼는 점이나 

인간이 빼는 점이나

 

 

일단 로켙이라 해야 하나

 

누군 봄의 꽃이기에 슬프다고 했다 

누군 가을의 잎이기에 슬프다고 했다

누군 떨어지는 것에 색깔이 익은 것 

하나같이 기쁘다고 했다

어둠은 아직 익는 것이 남은 듯 

어둠인 막 속이어도 익음의 극치는 남은 듯  

일 단계일 뿐인 듯이

 

 

의식계로서의 그림자적 특성과 아닌 것

 

육근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그에 비롯되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그리고 화학의 원소 7 주기율성과 팔괘의 순서

육근을 이기는 법과 화학성을 이기는 법

이 것으로

물질과 인문의 궁극적 해탈도에 이르는 자성의 발견 등이다

즉 원소주기율을 나이테로 한다면 

4 주기율이 되는 것이고

火인 3 주기율로 제 자리의 空이 될려면

빨리 움직여야 함에 빛의 빠르기가 되는 것이라면

즉 卦의 離虛中만큼의 영역에서 제로성에 닿는 것이

빛의 빠르기라면 갈 길이 먼 것이 있는,

이는 이만한 空의 상태라고만 해도

원소 3 주기율에 접근한 듯의 구성력을 이루는 것에  

5주기율인 힉스입자를 넘은 것에다

번갯불에 콩도 재대로 살릴 틈도 없이 태워서 넘기는

문도 모를 문을 넘어 다달아야

겨우 마지막 짜임새로 굳어진 듯이 하는 원소 3 주기율에

그로 호도껍질처럼 단단하다고 해도

결국 원소 2 주기율이 남았다는 것이니

이를 무감각이듯 제외시키고도

감성적인 표현의 에너지가 남는다면

이는 빛을 넘어선 텔레파시적 차원이라는 것이 易經의 논리인 것이다

즉 물질이라고 정의 함이 원소 7 주기율로 함이요

혹성적 완성도의 자원이라면

그 것도 파장성이라고 함이 원소 6 주기율인 것으로 하고

즉 水인 우주의 힘을 띠기에 빛조차 파장성으로 늘어나는 우주가 됨이고 

원소 5 주기율은 원소 4 주기율의 문양을 내놓을 만치의 짝퉁같이 붙어

대칭을 내놓으며  움직이는 것

즉 원소 주기율이라는 개념은 

구심적으로 몰림에 

그로 흑막적이고 정적인 것이라는 것과 반대로  

외변에 막혀 있는 듯  

회절이 생기는 것의 원소 5 주기율과 같은 것이고

이는 곧 은하가 水인 6 주기율인 비중이라면

그 보다 더 가벼운 힉스 입자의 영역과 같은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大天的 차원에서 원소 주기율을 보면

주기율은 달라도 族은 같은 성정을 내놓는 것에서

어느 주기율의 시공계에  가더라도 상은 32 상이라는 것이 있고

그로 하나의 몸이라고 하면

다시 작은 우주에도 양자적(量子的) 우주가 주기율을 갖는다는 것이니 

이는 外로든 內로든 보일 수 있는 시각은 나는 것이니 

에너지가 다하지 않음에는 늘 구비되는 현상인 것이다

이 것이 뫼비우스의 띠라고 해도

자체로 漏나 滅이 되지 않는 한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火라는 것은 木氣的 에너지가 있으면

빛의 파장 또한 스물스물 하는 것이요

절로 두면 건조성만이 남고 형상을 못 세워도 남는 것이지만

마치 水의 끄터머리를 잡고 木으로 늘림이라고 할 것이다

즉 水가 크든 작든

그 것보다 水 자체가 움츠리는 힘을 잡아 당겨

木이 나왔다 싶으면 고개라도 내밀게 하는 것이니

그로 사람의 얼굴로 치면

火는 이마의 정수리까지는 올려 놓듯 피는 것이고

그로 그 아래로 덜 굳어 얼굴인 상태요

원소 2 주기율인 것이요

원만히 굳으면 꽃에 달린 열매이듯 머리라고 하는 것에서

원소 1 주기율이라 할 것이나

정수리라는 것은 수막(水膜)으로 치면 水素 한 알인 原子요

단단히 둘러싼 골격으로 보면

원자 내의 양자적 우주의 최대 범위가 돠는 것으로

火란 온 듯 간 듯

사이의 폭을 최고점으로 펴는 것이지만 

土로 새알처럼 만들어 돌돌 말리어 모래알처럼 남기길 바라는 것이라

심장인 火로 하여금 온몸의 세포을 열게 할 火

生土로 함이라 알알이가 됨이요 모래와 같음이라 하는 것이니

         

 

이진법적 수학성과 인문성

 

우리가 이진법으로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유용성을 보자면

그 수학성에 인문성으로 봐

 

부처님 말씀에

 

 

"어떤 것을 비구가 사람의 잘나고 못남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 하면, 비구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임을 아는 것이다. 만일 믿음이 있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도 또 두 종류가 있으니,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이 있고 자주 가서 비구를 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자주 가서 비구를 보지 않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에도 또 두 종류가 있다. 비구에게 예경(禮敬)하는 사람이 있고 비구에게 예경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만일 비구에게 예경하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비구에게 예경하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비구에게 예경하는 사람에도 또 두 종류가 있으니, 경(經)을 묻는 사람이 있고 경을 묻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경을 묻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경을 묻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경을 묻는 사람에도 또 두 종류가 있으니, 일심으로 경을 듣는 사람이 있고 일심으로 경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일심으로 경을 듣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일심으로 경을 듣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일심으로 경을 듣는 사람에도 또 두 종류가 있으니, 듣고서 법을 지니는 사람이 있고 듣고도 법을 지니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듣고서 법을 지니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듣고도 법을 지니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듣고서 법을 지니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법을 듣고서 뜻을 관하는 사람이 있고 법을 듣고도 뜻을 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법을 듣고서 뜻을 관하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법을 듣고도 뜻을 관하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법을 듣고 뜻을 관하는 사람에도 또 두 종류가 있으니, 법을 알고 뜻을 알며 법에 향하고 법에 머물며 법을 따르고 법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있고, 법도 모르고 뜻도 모르며 법에 향하지도 않고 법에 머물지도 않으며 법을 따르지도 않고 법대로 실천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법을 알고 뜻을 알며 법에 향하고 법에 머물며 법을 따르고 법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법도 모르고 뜻도 모르며 법에 향하지도 않고 법에 머물지도 않으며 법을 따르지도 않고 법대로 실천하지도 않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 하느니라.

이른바 법을 알고 뜻을 알며 법에 향하고 법에 머물며, 법을 따르고 법대로 실천하는 사람에도 또 두 종류가 있으니, 자기 자신을 요익(饒益)하게 하고 또 남도 요익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불쌍히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자기 자신도 요익하게 하지 않고 또 남도 요익하게 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지도 않고 세간을 불쌍히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지도 않으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만일 자기 자신도 요익하게 하고 남도 요익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불쌍히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면, 이 사람은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고 큰 사람이 되며 위[上]가 되고 최고가 되며 훌륭한 사람이 되고 존경받는 이 되며 미묘한 사람이 된다. 비유하면 소[牛]로 인해 젖[乳]이 있고 젖으로 인해 낙(酪)이 있으며 낙으로 인해 생소(生酥)가 있고 생소로 인해 숙소(熟酥)가 있으며 숙소로 인해 소정(酥精)이 있게 되는데, 소정은 그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 되며 큰 것이 되고 위가 되며 최고가 되고 훌륭한 것이 되며 높은 것이 되고 뛰어난 것이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람이 자기 자신도 요익하게 하고 또 남도 요익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란다면, 이 두 종류의 사람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고, 위에서 분별한 것과 같으며, 위에서 시설(施設)한 바와 같나니, 이것이 곧 첫째가 되며 큰 것이 되고 위가 되며 최고가 되고 훌륭한 것이 되며 존경 받는 사람이 되고 뛰어난 것이 되나니, 이것을 비구가 사람의 잘나고 못남을 아는 것이라 하느니라."

 

즉 이진법 안으로 다 수용할 수 있음이

원소 주기율을 族의 양극성으로 다 담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마치 DNA의 두 줄 라인만으로 다 채우고 남지 아니한가?

즉 그렇게만 긴 동물이어도 인간보다 높은 지능이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요

왜 유클립트 空準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하는 대목의 봉착과 같음이요 

결국에는 원동기에도 양쪽 브러시의 정류자에 몰리는 해결점이 있어야 하는 것이요

우주도 결국 두 라인 만나냐 하는 궁극성은 있는 것이다

이 건은 물체적인 형상이라기보다

좀 더 논증적으로 하나로 들어야 하는,

즉 公案 中의의 話頭인

第 一 句와 같은 명제에 봉착한 표제에 와 있는 것과 같음이다

 

 

차원의 형상화와 숨은 그림찾기 

 

보통 물리학계에서는 이미 10 차원의 세계를 규명한다고 하는데 

이 것이 어떤 한 면모 상으로 드러낼 수 있느냐가 있고 

드러내면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기는 아닌가 하는 것이 있다

다만 이론을 형상화할 수 있는냐와 그 형상화를 좀 더 

인물 상에 다 넣을 수 있느냐가 있는데 

어떤 형식으로든 갖추어 넣울 수는 있어도 

그 본성으로서의 相貌의 형태는 아직은 요원한 것이지않나 하는 것이 있다 

결국 相이나 六根이나 함께 결정이 나야 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드러내는 데는 상호성이 있음으로서

근접은 그리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은 아니나 

육근을 각기 따로 놓고 그 하나의 개체에다 육근을 다시 심으라는 식으로

종식(種植)이 되는 것이라 봐야 하는 것에서

이목구비가 느끼는 특성을 그대로 하나의 특성으로 옮기라는 것 

즉 소리는 耳에 있으나 빛의 眼으로 드러내라는 것은

임의적으로는 만들어 낼 수 있으나 

자연적으로 같은 속성으로 드러낼 수는 있는 아니라는 것이니

아직은 그 접근성이 멀다는 것으로

그래서 나도 그렇게 같도록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 접근성은 가장 정론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고 본다  

그러니 먼저 형상보다 논리를 찾아보아 인체의 예로 보자면

같은 火여도  심장이 마그마와 같은 것이라면 

목의 혀는 나무에 핀 것이라고 봐야하는데

일반적으로 꽃은 펴는 것이라지만

배추도 묶으면 한 뭉치고 내버려두면 너브러지듯이 

혀도 그런 것이려니 해도 

별어지는 이빨 사이를 兌澤인 원소 2 주기율로 하면

그 것을 닫고 

이목구비를 닫은 것을 원소 1 주기율이라고 하여

통채로 원소 1 주기율이라 할 수 있음이라  

이는 다 입이 입을 연만큼에서 원소 2 주기율이 되는 것에서 

이목구비도 짝의 거리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도 있다

즉 혀가 목 위에 붙었으니 나무의 꽃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것보다는 혀를 아물린 채 닫으면 

머리인 씨의 눈이 되어 火를 띠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의 모형에 여러 가지 숨은 그림이 나오듯이

혀가 木의 花인 동시에 씨의 花가 되는 듯이 하는데 

그래도 머리는 껍질이 단단하다고 火로 하는 것이 아니라 

乾金으로 하는 것이라 이빨을 아물린 것으로 

내외를 전반적으로 하나로 취급하는 것에서 

머리 통 속에서의 혀인 눈이듯 씨눈으로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식물이 동물과 반대로 서는 것으로 보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논리가 되는 것으로 

물리학에서 11 차원까지 발견한 것을 보면 

마치 우리가 12 地支를 갖고 얼굴을 그릴 수 있듯이

相과 함께 性도 그릴 날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상성(商聲)과 치성(致聲)

 

商聲과 致聲의 차이는 

치성은 공간적 범위를 넓게 사용하는 

空鳴이 넓은 공간에서 일어난다는 것이고 

상성은 같은 부피의 공간성이어도 

치성처럼 공간의 자유로운 폭을 휘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겹이 아닌 여러 겹으로 꽉 찬 것에서의 

그 장애를 스치는 중에

그 벽이 과중할수록 

공간성이 더욱 좁게나올수록 상성이 된다는 것이니  

이허중은 공간성의 매력이라고 할 것이고 

중건천은 꽉 채워 조밀할수록 내는 매력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소주기율 차이의 수용하는 폭의 성격 

 

동양 철학은 

이목구비가 각기 다르게 느껴도 

오행으로는 하나같이 보는 것이 

결국엔 원소 주기율이 천상계를 벗기는 만큼이나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것이라는 것이다 

즉 眼으로서 푸른 색은 

舌로서는 酸맛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耳로서는 角音이 든 것이니 

결국 이 것은 원소 주기율은 달라도 

族으로는 같은 성질을 갖는 데 있어 

六根의 차이의 폭을 갖고 있느냐의 검증이 되는 것이고

오직 원소 7 주기율만으로 갖는

이승적 특성으로만 볼 것인가 하는 것이 있다

 

 

인문적 인과성과 이온적 접근성

 

周易의 음양 오행이 원소적 화학으로 접근하는 데는 

나름대로 사개를 맞추어야 하는데 

먼저 卦의 坎水가 원소 6 주기율에 적확히 드는 것인가 하는 것 

또한 水爻만으로도 적확한가 하는 것이 되어야 

이온의 변화에 따른 어떠한 증상에도 

정확히 인문적 인연의 과보가

어떻게 물질적으로 엮어가는 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어떻게든 주기율 상으로 접근을 했다고 할 때

그 內의 원소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우리가 공망을 이온 상으로 사용을 할 때 

가설적으로

한 원소가 하나의 천상계와 맞먹는 개성적 맛을 나타낼 때 

그 것이 그 시공만의 이목구비의 하나로 

각기 다른 시공적 의식의 특성을 갖는 것으로 하면 

주기율적 차이를 들 수 있음이 되는 것인데  

총체적으로 혼합해 하나의 원소적 성향으로 규정을 한다면

하나의 원소가 일괄적인 인식의 이목구비적 감각을 갖는 것에서 

다시 이목구비적으로 분류하는 것에서

그 自性을 드러낼 수 있는가와 맞먹는 것이 되는 것이다

즉 이것이 性情的인 것이나 

결국 형상화와 동일하다는 것에서 찾을 

관문적 효율성의 모양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丹田인 궁음(宮音)과 혀인 치음(致音)의 조화

 

丹田인 궁음(宮音)과 혀인 치음(致音)의 조화에는

보통 뱃 속 音이면서 굳이 子音을 굴리지 않은 0인 상태

즉 空인 상태에도 깃든 것이라는 공간적 소속이라고 봐야함이네

보통 촛불을 火라함에 離虛中이라고 함은 

이 불은 나무처럼 춤을 추면서도 이러한 空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

즉 있는 것은 그대로 있는 듯이 내놓는 것이라 

火生土가 되는 것이고 

이를 逆順으로 순환하면

혀를 거쳐 뱃 속에 들임이 火生土가 되는 것이다

 

 

천당과 지옥 

 

天金이 딱 하나 결정적인 것이 있는데 

이 것은 천상으로 보내느냐 

지옥으로 보내느냐

음식은 삼키면 삼킬수록 胃로 잘라 보내고 

숨은 마시면 마실수록 허파로 잘라 보내는데

목을 두었다는 것은 반반으로 잘라 보내는 것이 있다

인간 참

 어느 쪽인든 같이 잘 붙어산다면 

음식은 삼킬 때마다 기관지가 비켜주는 것의 길목이니 

이 사이란 것에는 두 길을 갈라서 보게 하였구나

앞을 보면 원소 2 주기율인 澤金인 허파요

뒤돌아보면 前 주기울이 땅이 되는 위장이라  

8 族에서 土가 된 바탕에서 한 살도 못 지났구나

 

 

흙이 티끌을 내놓아도

 

초롱! 

초롱!

초롱불!

차라리 금강초롱이고  말지

태양은 가만히 있건만

밤낮 태양을 외친다는 것이

태양 그대로이면 되었지 

뭘 그리 덧칠하고 싶은 건지  

태양에 가려 

낮달보다도 더 못한 것이 

태양은 끌었다고 달처럼 내미는데

차라리 그림자면 그림자이고 말고 

육체이면 육체이고 

인간이면 인간이고 말지

이미 태양인 것을 

김선달 대동강 풀아먹 듯이 

마치 공짜 주듯이 선심에다

주인에게 고맙게 생각하라?

언제적부터 주인이었나 

강은 유수하고 

세월도 말이 없거늘 

굳이 자신의 것이라고 팔아 먹겠다는 것이니

어찌! 

초롱불을 당겨 먹고 살아도 

금초롱 은초롱은 밝게 핌이나 알지      

흙이 티끌에서 내놓아도 

금강초롱 

금강초롱 

태양을 지나쳐도 별처럼 가고 있을 것

달도 안 되면서 

왠 태양을 낮달처럼 외쳐대는지  

진정한 밤이란

먼저 태양을 벗기듯 송이를 벗기고

또한 갈색 거죽인 밤 하늘을 벗기고

그리고 하얗게 내놓는 것

났다 

났다 

열매여! 

차라리 원소 3 주기율인 태양인 밤송이를 까면  

원소  1 주기율일 알톨이 밤에서 나오는 것

왠 태양을 낮달처럼 외쳐대는지

 

 

 

 

젓 빠는 듯이

 

원소 7 주기율은 혹성이다

원소 6 주기유은 은하수

원소 3 주기율은 태양

원소 4 주기율은 지속하게 하는 동력

원소 5  주기율은 태양풍이 스미는 힉스입자 

원소 6 주기율이면 이 우주를 정복하것 

7 주기율이면 혹성을 정복하는 것

즉 젓 빠는 듯이

우리가 태양을 화인 3 주기율로 할 때

그 주위를 도는 나이테는 원소 4 주기율인 것이고

좀 더 외적으로 명왕성을 넘는 것을 원소 5 주기율로 하고

우주 전체를 원소 6 주기율인 은하수로 한다

그러니 혹성이 단순히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인력이 궤도로 핥게 하여

나이테로 빨 듯이 혹성을 빠는 것이다

 

 

뭐! 사타구니같아도

 

그댄 어떻게 태어났는가 

불이 물에 떨어지니 너무 짧아 

나무를 타고 내려왔다네

그래서 인생은 나무의 사타구니에 힘을 주게 하니

좀 둔한 것인지도 모를 

좀 더 양 팔 끝으로 안아  희열인 것에...  

그래도 익숙하다보니

그렇게  사는 삶도 좋아보일만큼의 

어쩜 그 사이에 실려 사는 것인지도  

 

 

 

 다  튀는 방울같은

 

 

 

차라리 보이지 않는 티끌도

나무의 손 끝에서 한 번 튀면

손바닥만하게 튀는 것이라

그래!

그렇게 자리 다 깔아 놓아도

정체가 다 드러나지 않았다?

에너지가 무거운 것은

꽃으로 크게 펴 놓아도

다시 뭉터기로 열매를 낸 채로

또 포개고 기다린다는 것

뒤로 열매가 다 드러나기까지

우주의 솔직성이란

꽃으로 편 뒤에는

못 편 열매가 마져 오지요 하는 에너지의 축성에 있는 것

이미 씨의 손끝에 닮아 튕긴 마음에서 나와야 하는 빛

그래! 그렇게 꽃까지는 펴준

그래서 튕긴 꽃에도 다 펴지 못 해

남은 것은 열매로 쌓이듯

그 것은 마찰에서 나온 음이기에 마음인 것

이는 다 빛이 씨앗의 팔과의 마찰에서 꽃이 되어

마음이 되는 것에서 나무가 큰다는 것의

그 것은 씨앗이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설 자리도 없음에도 넉넉한 듯 튕겨도

꽃이 펴는 넓이여도 남는 것에서

또 포개어 기다리듯 뭉치로 나오는 열매

엄지 공주에 튕겨나옴이듯 마음인 것

겨울도 울이라 치는 씨에서

나무가 아무리 뛰어난 감수성이어도,

이승으로서야

나무가 손끝으로 여리게 내놓은 민감성은

대지의 임신이나 별방 다를 게 없는,

 

 

수소와 원소주기율적으로 이룬 우주성

 

빛방울 하나가 터져 빛인 것

꽃방울 하나가 터져 꽃인 것

이도 다 물방울 하나가 터져 분수와 같음이요

물방울 하나가 터져 빛방울이라

서로가 그 끝에 다달아 그렇게 갖추어지니

水極火요

火極水라눈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望에 울이 생겨 망울일 때 눈이라

즉 봄이 가지가지마다 보려고 望을 내놓지 않으면

어찌 망울이 맻히리요 

눈도 의지가 없는 곳에서 눈이 나지 않았을 것이니

눈도 망울만큼이나 맺히려는 의지가 붙은 것이니

망이있 어야 울타리도 치니 망울이라

 

 

차라리 웃음을 보태 허수아비나 될까  

 

ㅇ은 어수록함이니 불분명함이로구나

차라리 ㅇ에 뚜껑을 더해 ㅎ으로 

허수록함에 웃음을 보태 허수아비가 되어라

 

 

소리의 물리학적 특성

 

色에 六根을 포함한 하나로

목 아래 배와 가슴으로 할 때 

이만으로 내는 것을 궁성(宮聲)이라 하는 것에서 

나머지 목 위의 밖으로 내는 소리는 

受想行識的 조화로서 낼 수 있다 할 수 있는데 

이는 뱃 속을 宮으로 하고 

원소 한 주기율의 테두리로 하는 원(圓)으로 할 수 있음레 

이를 다 0인 것으로

내실이 있는 소숫점 안의 것이라고 명제가 될 수 있음이니 

무엇이든 포함되지 않는 것은 없다

즉 宮이라면 동공(洞空)을 나타내는데

그럴려면 離虛中인 火가 되어야 하는데

왜 土가 宮聲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동물의 거죽이

북 가죽처럼 최대의 공명이 되는 자루가 되기에 그러한데

그래서 생사마져도

어느 천상계이든 지하이든  

북쪽에 하나로 몰리듯,

잡힌듯  

중심이 아니어도 몰리듯이 하는데  

마치 부처님이 북쪽에 머리를 둚과 같이

그 중심적으로 몰려 있음에   

북이 북쪽에 있다는 것이어도

그 중심성은 중앙과 같이 하다는 것에서 

마치 각기 크기가 다른 굴러세를 한 손에 다 잡은 듯이 한다는 

무게와 중심성일 것이라는 것과 같다 

또한 이 원이 대칭 되어 양쪽이 되게 하면

이 걸 싼 하나의 원에는 반지름 폭의 지름이 되는 것으로  

결국 모든 최대의 테두리가

두 개의 대칭성에서는 중앙이요

한 쪽으로 보아도 한 손에 쥐듯 몰린다는 것이 있으니

결국 북의 중앙을 치나

우주의 중앙을 친 것이나 

변을 치나 동일시하는 게 있지만

그래도 소리로는 羽聲인 것이고 宮聲은 土로 기본형으로 한다 

우리가 인체를 화학적 루트로 본다면

혀인 火가 致音을 주관하는데 

火生土가 되려면 혀 내에서 보일 수 있는 

虛中의 氣 

즉 宮聲을 내놓 수 없기에 

빛은 사라진다고 해도

에너지적인 木氣에는 살아 있어 남는 형태를 보이지만  

土的인 것으로는 물이 모래에 스며들 듯 사라진다는 것으로

결국 모래알로 까지 다 흡수가 된다는 것이다

즉 土는 그런 파장성이 아닌 것이라 

느낌의 전달성마져 주지 않는 精氣로 숨겨듦과 같아

이를 원소 8족으로 함에

역상으로는 8 곤지를 이움에 완전히 주기율의 한 벽

즉 울타리가 될 수 있음에

임신한 배처럼

주기율 안의 임신으로 

주기율 밖으로 성향을 넘김과 같아

꼭 아이만 갖고 유전형을 다 알 수 없 듯이 하나  

즉 궁성은 원소 주기율적 껍데기라고 봐야 함이고 

도한 배에서 우러나옴을 말하고 

商音은 원소의 최대의 밀집성으로 더 뚜렸하고

꼭 톰이 좁아지는 만큼이나 나니

이빨 사이에서 잘 나타나는 것이며 

角音은 木音이라 

기막히게 목에 가시 걸린 듯 뱉을 때 

칵! 

칵!이 角音인 것이니

각기 지칭의 특성이나 부위를 무시 못하는 것이 된다     

단전에서 궁음을 들어내어 주더라도 

宮聲에 은복된 채 나와 지는 것이 소리라고 할 때

그 소리의 색깔만으로 성품을 알 듯이

우린 그 것만으로 무언가 설명이 안 되는 채로

무언가 봉합된 채 다음 주기율에 드러낸 것이라는 것이고 보면

곧 애를 낳아놓고 보면  

선천적 숙명과 대칭적으로 똑같다는 것이 되는 것에서

어머니가 달라도 유전자를 대신해 임신을 할 수 있듯이

애를 갖고 母를 모를 수 있듯이  

주기율은 다 몰라도 

族은 유전적으로 똑같이 낳을 수 있음과 같은 것으로 

族上으로는

그 성질의 제품이 고스란이 전달되었다는 것이  된다

 

 

원소 주기율과 원소 주기율 사이의 시간성

 

 

원소 주기율 간에 전달성이

봉합된 채 전달되는 것과

개방되어 전달되는 과정 중에서

막이 되는 궤도의 성격으로서 그려냄이 무엇일까 하는, 

봉함의 전달은 가능해도 다른 길은,

마치 소리의 성격이고 영역의 색인 뿐인 것을

그 느낌으로 완전한 것이지  

굳이 가사로 일치시킨다고 같아지는 것인가 하는 것으로 

느낌은 같아도 

꼭 그 뜻으로만 해당될 수 없음과 같다 할 것이다 

즉 소리에 가사를 붙일 수는 있어도

소리를 논픽션처럼 그 것인 냥 풀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막상 풀려면

한 음정의 음색으로 다 포함되어

이미 알 것 다 알 것의 느낌을 

언어체로 굳이 설명하여 이해시켜려 풀어헤친다면

한 점이면 될 것을

종이 한 페이지로도 모자라는 시공적 차이로서 다 채워 넣어도

그 설명성만으로 느낌을 다 붙일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어쩜 기억의 연쇄성보다 더 먼 시공계의 차이에서

완전히 전달은 되는가 하는 의구심만 커진다는 것일 것이다

시공계 차이점으로 해서 전달될 때

원소의 특성은 族처럼 옮겨놓을 수 있으나

그 주기율적 포장질의 전달체의 특성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에서 모르듯 전한 것이기에 

속성은 그대로 보존해 와지는 것을   

굳이 열면 사라지든가 벼

변화된 채로 와진 접점에서 닿을 수 있는 것에서 

원소 주기율 간에도

무성의 벽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격도 매김되는 것이 있다고 봐야 함에도

그 정체를 알기란 먼 것이다

그러니 직접 벽 사이에 서로 개방되었다고

다 인식의 접근성이 직접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래도 뜻을 붙일 수 밖에 없는 것에서 

변역적으로 닿을 수 있도록 직접 대면하는 것보다

벽이어도  

차라리 느낌만으로 더 실질적으로 닿을 신호를 위한 여과벽이라면

느낌이란 그 순수성의 대화체를 위하여

벽이 그 필터 기능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과 같다

이 과정 중의 매체가 있어야 하는 필요성에는  

이는 영매가 아니면 주역이 대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있다

다만 뱃 속의 宮聲을 色으로 하고, 六根으로 하고

원소 주기율 각각의 바탕성으로 할 때

丹田과 같이

배와 같이

다음 주기울의 바탕성으로서 대지로 할 때  

다음 주기율의 상각치우가

원소처럼 활용될 성질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소리도 원소적 성격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고리는 되는 것이며

이렇게 실체를 벗기다보면  

결국엔 천상계 33 층도 벗겨져간다는 것도 된다

 

 

1 호선

 

점이면 서울역이요

펴며는 한쪽 끝의 의정부요

한 쪽 끝은 인천이라

그래 무한 우주라고 해도

그대 soul이걸랑

이 팽창의 잎새 중에도

긴공이라는 것에도  

은하가 무거워 

은하가 무거워

soul의점으로 당기는 중에도

의정부에서 서울로

인천에서 서울로  늘어져

뭐! 수소며는 서울일 뿐인 것

원소 주기율이면 1 호선

 

 

2 호선

 

오! 돌고 도는 

장류한 나의 시여! 

그 물성에도 숨을 쉬는 

숨구멍이듯이 

물 속에서도 공기 방울 이는 삶들

미역이 멱살 잡힌 듯

멱살에 잡히는 옷같은 바다 

미역엔

공기 방울 총총히 맺힌 듯, 

잡힌 듯이 쌓인

멱을 턴다 

멱을 턴다 

옷조차 잡혀야 멱을 턴다

이 것이 내가 너

너가 나인 채 잡혀야 신선할, 

그러나 고작 호수가 작아 냄새가 나는가 

해저의 아틀란티스와 같은 

조각난 도시와 같은 2 호선 시간들 

누구의 품에서 상쾌햘려나

 

 

과학으로서 영혼과의 접근성 

 

무엇보다 원소의 바탕성을 알기 위해서는 

화학적 접근이 필요한 것을

매우 물리학적으로 메카니즘을 이룩해 놓았다면

周易은 매우 인문학을 곁들이 철학성을 이루고 있기에 

易學을 그냥 동양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식의 축적성도 시간의 축적성과 함께 이루는 것로서의 과학에 

마냥 불립문자니 돈오점수로만 이해 시키기는

추상과 실재성이 먼 듯이 따로 놀 수 있음에

마냥 운둔형이나 심산인으로만 이미지를 남겨

개래도 낚일 복이면 낚이는 것이라도 꽤나 천명을 아는 듯이 젊을 빼도

세상이 周易이라는 우주에 

어느 정도 알면

육갑만 거들충이처럼 알아도 소 발에 치이는 것보다야

공밥은 아니 먹을 수 있는 자연복도 있는 것이니    

이도 다 보면 秘색도 없는 것로 秘機가 있는 듯이 행세는 하는 것이니

천기니 뭐니 해도 

다 일상적 평범에 내재된 것이니 

무엇이든 극한에 있는 듯 싶어도 

다 평등의 저변성이 그러한 것이며  

이러한 동양철학이라는 것을 불리문자에만 매단다면 

결국 문제를 내과적으로만 낫게하는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문명의 이익은

외과적으로 잘 굴리는 편한 쪽에서 누린다는 것의 이중성이 된다

그러니 물질적 화학의 요소에다

인문적으로 化하는 길의 周易을 접목 시킴에

좀 더 인과를 두려워할 줄 아는 성품의 구성력을 알게 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이 화학이 될려면 원소가 담긴 자루를 펴야하는데

이 것이 원소주기율이다 

그러니 먼저 이 주기율의 껍질을 이용해야 이식이 되듯이 

우리가 마냥 젓가락으로 유전자조작을 할 게 아니라 

영혼을 집는 젓가락도 내놓아야 하는 판국에 온 것이 된 것이다

그럴려면

먼저 色인 六瀆(眼耳鼻舌身意)이 원소의 주기율인 쌈으로서 

각기 달리 나타내는 영역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과

그  원소의 성질마다 주역의 오행으로 접근된 정의가 생기는 것이라면

이는 곧 영체가 공학을 앞서야 함에 심령공학이 될 것이다

어차피 철학이 과학의 모체가 되려면

이러한 구성력을 발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궁극적 요구 사항이 될 것임에

어차피 있는 것은 있는 것임에 무리가 가더라도 정립은 시켜주어야 한다

즉 신맛이나 푸른 색이나 같다고 할 때 

눈으로 보니 푸르고 

혀에 닿으니 시더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현대 과학은 신맛 뿐만 아닐 여러 색깔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 것이 자연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면

그렇게 자동되도록 하는 것은 

자동이게 한 조작인 것이냐는 議題가 있고

여러가지 色이 아니라 한 가지의 것으로 정의함이

오히려 사물의 방대함에 기여하는 한정치의 잣대로서의

규격성으로서의 루트는 어떠한가 하는 것이 되는데

결국 일관된 방향성의 닿은 거리나

 에너지의 함량적 표시가 되는 경계를 보여 준다는 데서

外의 다양성에 대한 內적 규격화의 성격을 드러내는데 중요한 것이고 

이러한 다양성이 주기율적 껍질이라면 

마치 원소 3 주기율 상의 眼 즉 色에 푸른 색이라면

소리자체는 원소 4 주기율인 것이고  

원소 6 주기율상으로 들어 줄 수 있음이 耳인 것으로

이는 6 주기율인 더 두껍고 복층적일 수 있어 

여러 각의 수용 것이고 보면 이해가 되는 것이고

또한 소리 內에서의 五行으로 보면

우리가 소리를 꺾어 형상화한 것이 木이라면

소리는 통 안의 모둠형으로 나는 것이요  

水는 유연성 찰짐이나 구성짐 

木은 소리의 흐름에 歌辭를 심어  꺾을 수 있는 것이고

그냥 경응악적으로도 음양오행을 느낌이 원소 6 주기

이는 28 宿의 卯方에 왜 心星이 있는가를 말해 주는 것으로

이는 수의 율동을 심정으로 심어 융동을 타고 크게 할 수 있음이라

이를 거대한 시공적 거리로 와닿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도

많은 구조성에 예술적으로 물리에 접근하게 하는 것이며

이는 다 원심성의 넓은 우주 공간이 딱딱한 껍질의 火이지만

인간의 心에만 와 닿아도 예술성이 깊다는 것과 같다

어떻게 원소 3 주기율에서 보이던 푸른색이

4 주기율로만 넘어가도 이미 눈으로는 보이질 않으나 

소리로는 角音으로 들어 나오는가 하는 것이다 

즉 이러햔 금단의 현상이 이승과 저승의 금단과 같은 것이라면 

충분히 周易은 접근을 한다는 것이다

즉 이 六根이라는 것이 각기 그 느끼는 方所는 다르나

음양오행적으로 같이 규정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니 

이는 곧 원소 주기율은 그 영역이 六根만큼이나 다르나 

族 上으로는 육독(六瀆)으로 같은 것이듯 정확히 드러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딱딱하기만 한데 무엇이 다른가

난 차가운 돌에 체온을 불어 넣지만

그대는 괜한 분별성으로 따뜻한 체온을 돌로 만든다네

 

 

ㅂ과 ㅍ 

 

집宇 집宙라 

우주가 집이지 않은가 

그냥 그렇게 붙어사는지도 

그냥 그렇게 불러도 

ㅂ과 ㅍ은 은하수인지도 

전부가 대궁이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우주가 땅 地라고 해도 그런가 할 뿐의 

그 것이 ㅂ만 박혀 있는지 

ㅂ을 ㅂ이 받쳐가면

ㅂ인 바의 밥을 먹는 것 

이 ㅂ을 자세피 보니 ㅍ

DNA

어쩜 DNA를 찾고 보니 

ㅂ인 ㅍ을 찾아갔는지도 

ㅍㅍㅍㅍㅍㅍㅍ

일일이 인이 박혀 한 줄 땜빵

 

 

두 라인

 

그래! 

난 空인 0이여!

그렇게 강둑 건너를 바라보니 ㅏ니 

아인 것이여

그리고 마주 서 있는 그대를 바라보니 

사랑이였음에 사랑 애인 것으로 아는 것이고 

고로 ㅏ에 세월의 강만 무심히 흐르니

ㅏ도 그렇게 ㅣ에 막혀 ㅐ인 장애 애인 것이 되고

ㅐ도 나인 0에 붙이니 애인 것이라

어쩐지 세월이라는 것 

때에 따라 H빔 되는 것이니 

어느 쪽이든 DNA는 흐르니 

가봐야 몸을 다 채우고 돌았음이라

 

 

어린 아이의 나라

 

어린 아이의 나라 

i라는 나라가 있었지 

그리고 그나마 

비행기 통채로 날으던 것이 지구에 곤두박질쳐

!가 되었지

버드나무 날개는 아직도 자맥질로 곤구박는 듯

느낌표 없느냐 i

!

동그라미에 붙어 저승이 아닌 ㅇ!승이라 할 뿐

 

 

억새 머리, 갈대 머리

 

꿈을 뒤집어 쓰면 곰인가 

꿈도 거죽이어서 좋은 것이지

가죽 뒤집어 쓰고 가는 거죽 

묻힌 그 털마져 마지막 거름인 듯

뒤집혀 싼 인생에도

하얗게 변하여 가는 듯이 뒤늦게 내놓는

억새 머리

갈대 머리

 

 

좀 더 높은 곳이 라는 것이 어데 있는 것인가

 

해저 동물이 길고 깊을수록 하얗다 

참 신비하게 하얗다 

별과 태양은 하얀 것 

그 중에서도 괜히 튀어 무지개 색

밤이 별처럼 튀어 봐야 은하수에 잠긴 밤인 것

밤! 

해저동물 

속 까지 까바야 하얀 정체 

원소 3 주기율 벗겨 봐야 원소 2 주기율 

 

 

거죽 羽音 

 

누가 그랳나 

물껍질이 波 字라고 

그 것은 입이 다 물어 물인 것에 

입숳은 열었다고 입술인 것의 거죽 

맞네 그려 皮音

 

 

모방인지 모형인지

 

피~! 라고 

김 빠지는 소리를 내지

콧방귀 흥! 보다는 훨씬 더 부드러운 것이요

좀 맥이 없는 것이지만 

그대 보다야 한층 진기가 있는 것이지 

그대의 글은 애초 날 때부터 석회질인 것

흔한 재질에 석고상같아도 유분수지

무정하고 삭막한 것이 칼칼하기만 할 뿐의 

당최 체온과 옷을 찾을 길 없거늘 

거기다 무슨 모방인지 모형인지 원

 

 

수화기제(水火旣濟)라 

 

저 길이 처진 것을 보니 

아질아질 아질길이라고 해야 하나 

꿈틀꿈틀 꿈틀길이라고 해야 하나 

수화기제라

길이 참 똘망똘망하게도 생겼으나 

숲을 이루어 보아

오솔오솔 춥네나게 오솔길이라

火로 다 뜯기어 나갈 길

도리어 가라 앉아 얼음 밑 물이듯 

그럼! 오솔오솔 오솔길 빠졌지 뭐 

길은 숲으로 가는 길이 아닌 숲이 나는 길

그런데 길은 더 명확해진 듯 빠지는 길 

밖에는 보면 어두움이 있어 간 것이요 

안이면 도리어 하얗게 살을 드러내놓는 길

 

 

眼火와 舌火 

 

眼火의 허중은 홍채에 윤기가 굳은살 된 것이고 

밖으로 드러낸 창문이요 

허공이 窓인 마당에 

입이야 열면 창인 것이요 

반대로 안으로의 홍채가 혀인 것이라 

눈에 세상을 보듯 胃腸이 세상을 보았다

허나 위는 땅 안이라 세상을 땅 안으로 보는 것

하늘도 땅으로 뭉치니 머리라

다 머리로서 보는 것  

모든 영양소의 눈은 머리로 머리로 가는 것

 

 

꽃이 송곳에서 펴는 이유

 

음양 오행의 대략적 구조의 접근은

번저 火는 원심의 極이요 

水는 구심의 극

그래고 곤은 개체화 할 수 있는 범위와 수리성

건은 그 하나 내의 구조성을 갖추는 것인데

즉 火는 껍질이 단단한 무감각에다 

무곡절적인 듯함은

에너지가 소진의 끝에 다달아 靜的인 상태를 말하며

불이 뜨겁고 날카로움은 아직 열이 木氣에 있기에 

굳은 듯이 더 예민함으로 나아감이지 

결코 불 자체가 강한 날카로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뿔소에게 왜 뿔이 그렇게 날카로우냐고 물으면

그 대답은  봄이 뿔을 말랑하게 해 주었기에 섬세했을 뿐 

火가 金으로 돌아가면 무딜 정도로 靜的일 뿐인데 

붐이 굳이 와서 닿으니 날카롭게 보일 뿐이지  

가을이 간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꼭 같은 봄이 냥의 몸인 냥 하는데 문제가 있음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쩜 가장 靜的인 최대의 우주성을  말하며 

이 것은 가루로 낼 수 있을 정도여야 토가는 되는 것이니 

이는 무엇을 말하여 주는가? 

이는 곧 왜 나무가 날카로움 송곳 끝에서 손 바닥을 펴듯이 하는가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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