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실(이 글은 순수 창작품임)

나래

narrae 2013. 2. 18. 14:23

 

시침때기 힘들어 늘어난 분침

 

마음이라는 것이 

화살이 나로 향했던 것이 

꺾여 시침으로, 

시침으로는 시치미 떼기 힘드는 것이니

좀 더 긴 변명인 냥  

분침으로 늘어가다 보면 

그 사이 인물 하나의 얼굴이 새겨진 듯이

결국엔 내가 나를 보는 것의

시간을 못 벗어나듯이

자신이 자신을 못 벗어나는 각인성

 

 

영혼과 육체의 차이

 

九宮이란 

블랙홀에 빛이 늘어나는 것만큼의 폭인 것의 

좌우 봉원이라는 것이 된다

마치 그 늘어난 빛실로 엮은 영혼이 있어도 

이 우주 공간이면 다시 빛점으로 볼아가는

마치 내 몸만한 영혼도 

블랙홀 밖이면 세포만하게 돌아간 듯 

이는 마치 블랙홀이 씨아를 돌린 실이듯 

다시 볼랙홀 밖이면 씨눈을 쌈 솜이 되는 듯 

그 공기마져 쫄아 붙듯 붙으면 

원소 주기율마져 바닥을 보이면 원소성의 가루를 보이듯

만일 빛을 블랙홀이 실을 꼬듯이 당기는 것이면

얼마나 가늘어져야 명주실과 같이 질길 수 있을까

솔직히 명주실이란 것도 

그 실에 비하면 막대풍선만한 것이고 

수 천 년 묵은 나무기둥도 턱에 안 차는 것이 아니든가

우린 광섬유이니 

광의 영역 안이나 잡는 것이지 

밝을 잡았다 할 수 없는 것이니   

 

 

밤까는 기계

 

밤 까는 기계가 

지구의 공전이 태양송이를 까는 듯이 한다

나날의 날이 벼리다

보름을 돌리고서야

밤톨 하나가 하얗다

 

 

가재울 

 

가재가 울어도 바위 하나가 떨어진다 

바위가 떨어지기 전에 그 아래 천하수가 흐른다

그 울음 강에 다시 가재가 짝을 찾는다 

인공위성처럼...

삼 단 사 단 떨어지지 않도

붙어서 잘도 살아가는 인공위성처럼

제 울음의 여울 밑에는

태산과 같은 바위 하나의 그늘이다

 

 

설탕과 조청

 

우리가 왜 운동해야 하느냐 하면

몸은 하드 웨어이고

머리는 소프트웨어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난 동질감으로 묶는 것이

심신을 하나로 묶는 건강이라 할 것이다

즉 몸도 스프트 웨어란 것이다 

즉 몸도 스프트 위어적 독립성으로 하드웨어와의 집적도라는 것이다 

머리의 집중력은 오감의 오감의 집중력으로 가능한 것이듯 

몸도 몸만의 집중력으로 오감의 상쾌함을 우려내는 것인데 

이는 마치 두뇌는 쌀 열매로 만든 조청인 것이라면 

몸은 마치 사탕수수를 짜내어 설탕을 만들 수 있음과 같다

이는 역시 인생도 몸으로 고행을 맞봐야 

적어도 수족이라는 육친의 소중함과 고귀함을 알게 하는 것이다

 

 

거울 속의 샘물

 

金이 불에 녹는다 함은 

우리의 거울성이란 것도 다 녹이는 것이요 

우리의 마음이 반사적인 것이라면 

이도 다 녹는 것이라고 봐야함인데

이는 금의 장생지인 이무기에 다 녹는다는 것인데 

이 이무기가 화로 다 화할 수 있으면 

이로 중궁에 들면

빛이 중궁에 들어 실을 뽑음과 같은데

이 것이 손궁에서 중궁으로 드는 것보다 

형이상학이냐 형이하학이냐도 규명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감궁으로 빠져 인간계의 순리인 냥 4 주와 친근한냥 하는 것과       

건궁으로 빠져 모든 업경나 명경이 좀 더 고차원적에 두어지는 것이냐는

마치 감궁은 샘물을 마셔 든 인간의 태생을 말하는 것이고

건궁은 마시지 전의 거울이듯 본 것이냐 하는

천상계이냐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나래

 

야경의 도로를 붉은 선으로 나타내듯이

나무는

나래를 그렇게 선을 이은 기둥인 냥 날아가는 컷팅의 모습

그 사이에는

캈!

캇!

캇!

오! 해와 달의 캇 사이를 넘은 나래이듯

나무!

이는 새의 나래

有라 하기 전에 다음 칸의 無

한 컷팅인 떡잎일 뿐인 것의 재연출 

오! 어떤 사진 작가이기에

야경처럼 붙여 줄줄이 이어져 한 눈에 드는 것인가

눈의 착각이면 이승도 눈의 나라일 뿐인

그래서 그러한지 씨앗마다엔 눈만 붙어 떨어지는

곧 자신의 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이라는

 

 

꽃을 어떻게 무지개 병 안에서 끄집어 낼 수 있을싸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다보면 

병 속의 새를 입으로 꺼내지 않고도 

꺼내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는 꽃이 유리가 꽉 차 화석처럼 갇혀도 

나올 수 있는 시대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마치 모든 원소 주기율에 갇혀도 

하나의 주기율만의 리듬을 타면

다른 주기율에는 공명 현상을 일으키지 않고

여과되어 나올 수 있는 재주와 같은 것으로

둔갑성을 실현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즉 어둠에도 적외선이 있듯 

그 속에도 형상을 끄집어 낸 것이 있듯

현재의 과학은 상만 끄집어 낼 수 있으나

앞으로는 완전 실물을 적외선화하여 끄집어 낼 수 있는 

마치 가시광선인 무지개병을

손상없이 통과하듯 빠져 나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외선이 무지개 안에서

어떻게 꽃을 안고 통과하느냐의 과제인 것이다

결국엔 가시광선을 모르게 건넜느냐일 것이다 

들켰다면 그 것은 병을 깨고 건넌 것이기에

 

 

오! 곱창! 곱창! 곱창!

 

극장 속에 어둠이 짙어지면

가장 하얀 바탕의 스크린

마치 해저 물고기의 살갗을 자랑하는 듯

거기엔 카멜레온적인 것이 있는 것

곧 반사적 연출

살다보니

피부가 먼저였나

뼈가 먼저였나하는 것이 되었다

즉 스크린에 움직이는 것은 반사인 것이요

몸의 모노 드라마로 움직이는 물고기는

흡수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마치 스크린을 뒤집어 쓰면 

몸으로 행동이 일어나는 작동인 듯이 

오! 

막창(幕窓)! 

막창(幕窓)!

막창(幕窓)!

아니!

아니!

칠칠이 사십구 

팔팔이 육십사 

구구 팔십일 

오! 곱창! 

곱창!

곱창이로세  

      

 

꽃이 병 속을 통과하다

 

병 속의 꽃을 유일하게 끄집어 내는 것이 풀과 나무들

그 냥 빠져 나올질 못하니 

주는 듯 바르는 듯이 하고서 빠져 나오는 기막힌 통과의례 

모든 에너지조차 회절성을 만들어준다

그러니 찢어진 언청이 잎을 입으로 함초롬히 해준다

아니 이미 함초롬한 가지를 축여 다시 언청이 잎을 끌어 당긴다       

꽃은 절로 밖으로 나갔다 

잎과 입의 기기묘묘(奇奇妙妙)한 字形

 

 

수(受)에서 꽉 막혀버렸는데 상행식(想行識)은 소 귀에 경 읽기

 

우리가 과학적으로 논함에 色이라고 할 때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좀 더 마음적인 것이 되는데

이 受란 글 뜻 그대로 받는다 것으로 보면  

요즘 사람들 받길 좋아하니

공짜에다 빠른 소화력의 신속성을 요구하니

갈급증만 들어난다고 봐야할 것이라

이미 想에 미치기도 전에 몸치가 되어 품위만 내는 것이요

想에 가기도 전에 어망이 가득 차 

어찌 보면 부모 잘 만나고 조상 잘 만나면

그로 한 생 복 터졌다고 해도 이구동성이 달아붙는 것이요

뭐 한생 정도의 여유 못 부릴 경험도 아니고

또한 受도 잘 빠지고 想에 잘 빠져 

창조적이고 입지적인 창업에 성공했다고 할지라도 

생각만 앞서 나갔다고 해서

행위가 건전해 지는 것이 아니며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바탕으로서야 

늘 행위에 밀리게 되어 있는 것이니  

하물며 생각이 진리인 것이고 순수함을 갖추었다고 해도  

행위는 늘 이중적 잣대나 뜻과 다르게 반응을 한다는 것이니 

想이고 보면 

이 것은 행동으로 합일체를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내적 갈등의 미봉책에다 긴장의 연속이 되는 것이니

이미 行으로 왔을 때는 구석구석 아비규환의 세상에

그나마 침묻의 미덕에나 잘 붙으면

자기 보신의 알량한 지혜가 아니든가

識이란 즉 우리가 인식하는 識이란

과연 본래 淨水와 같은 識일 수 있느냐가 되는 것이고

受에서 인지한 것을

想과 行에서 다른 그림자가 난 것을

識이란 것에 바로 침전으로 드러나는 것일 수 있느냐인 것인데

그 것을 그나마 想과 行을 다 비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識은 어떻게 인식하게 하느냐일 것이다

受가 想에서 비쳐지는 것이

想과 行이 낳지 않는 소산의 결과의 識이 비쳐야 하는데

이는 受 이전의 識과 識 이후의 식일 뿐으로 봐서는

무수상행식(無受想行識)이 되는 것이요

이는 수상행식이 무수상행식의 자각에 침전이 되어야만

청정성을 갖춘 정화를 안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데든 수상행식은 통과해 한다면

결국 이러한 허물이라도 키워지며 가르침 받고 닦이기 바쁘게 

다시 가르치며 지워나가야할 의무성이라는 것이 채바퀴같이 도는,  

이로 세대 간의 번복성을 이루게 하는 것이라면

이는 대단한 초기 수퍼컴퓨터같다는 것이요

참으로 기계적 시스템이라고 봐야 할 것의

결국 산성화된 이온의 녹을 더 두껍게 해준 소산이라고 할까

그헐다고 털고 지운다고 본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음양의 이온으로 상쇄되어 증발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그 생생함만으로 산소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듯이

 

 

동서남북

 

호홉이란 이온 극복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산소가 원소성이라는 것에 앞서 

원소주기율의 족상의 이온성의 결합을 위한 것으로 

철분과의 중화로 인한

동서 간의 왕래성을 이루는 것으로 날개가 돋은 것이라 봐야 함인데

즉 族으로서 수직을 이루는 것에서 

동서로 할 수 있음의 팔 다리로 할 때 주기율이 됨과 같다 할 것으로 

이렇게 부풀리지 않으면 

어찌 구름같은 이온이라 할 수 있으리    

이는 원소 주기율과의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라 봐야 할 것으로 

주역의 상하괘를 하나로 잇는 것이라 봐야할 것이다

 

 

닭장춤을 보았으나 막장춤은 없네

 

그래도 예전의 닭장춤은 새벽의 벽에 튀듯

아침의  차가운 침이 떨어진 자리에도 

일출의 부상(扶桑)이 비치는 것 같았는데  

요즘엔 그림자가 왔다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뒷모습의 막장의 춤인 듯 어둡다  

누구의 춤이랄 것도 없는

에전에는 닭장춤이라는 것이 있어

그 때도 과거의 낭만보다는 다른 듯  신선했지만

지금은 더더욱 낭만을 끼고 있는

요즘엔 막장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어쩐지 귀족들부터 막장이니

천인들은 더 악다구니를 내라는 것인지

귀족도 이렇게 사는데 천민은 알아서 기라는 것인지

어찌보면 아예 끼일 자리도 없는 듯이 

도대체 인문성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아득함같은  

예술은 더더욱 헤프게 보았는지

등급제에 안 들면 국물도 없는 듯이

울부짓듯 고성의 턱걸이

어쩐지 제 막장도 남의 막장으로 넘겨주고 

페광의 어둠같은 것은 다 산골의 검버섯 먹은 듯

마음 또한 그렇게 휑한 인적만이 남은

가믐에 강 웅덩이에 물고기가 모인 듯 

가라 오라 하지 아니 하여도 오고 가게 하는 침묵들  

빛이라도 새는 냥이라면 나방처럼 몰려드는,

에전엔 닭장춤이라는 것은 튀는 것이 있었다만 

그리고 탄력이 있어 순수성만으로 털릴 것이 있었다만  

요즘에는 나왔다고 해도 나온 것 같지도 않고

털었다 해도 털린 것도 아닌

뭐 묻은 정도며는 묻었다고 하지

아에 배어 있질 않으면 명함도 못 내미는

그림자의 노래만같은 그늘이 짙다 

그 속엔 몸은 튀는 듯이 해도 소리는 자꾸 긁혀 나오는 듯이 하는

사랑이라고 하나 연가는 아련함만 짙은      

 

 

종이라는 어원 

 

볼펜으로 종이에 체킹을 했다 

그런데 멀쩡하던 종이가 마음을 일으켰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이 어데 있는 것인가를 물으니 

그 걸 알면 祖라고 했지 宗이라고 했겠느냐고 한다 

체크 무늬가 펜 촉의 흔적처럼 남은 것이비만 

이미 그 순간에 물방울이 고인 듯 

씨앗인 듯 얼려버렸다

맞아! 그런 빠르기가 아니면 얼지 않았을 

물처럼 풀렸을 씨앗이었을 

결국에 단단하게 굳어져 눈감은 것이냐고 보니 

눈 뜨고 죽은 것이 씨앗이다 

아직도 도 나고 또 나야 하니 

원소 주기율만큼이나 나고 또 날 것이란다 

어쩜 눈 감고 죽은 동물보다 더 조상이었는지도 모를 

 

 

맛의 어원

 

마음이란 들풀처럼 일어나는 것

잡초보다도 빽빽한 것  

맛이란 마음을 먹는 맛이 최고라는 것에서 맛이다 

즉 마음이 일어난 뒤굼치 일어선 듯 함이 마에 맛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인생에 최고의 맛은 마음을 먹는 맛일 것이니 

나같은 가난한 자에게는 먹을 마음조차없구나

 

 

우주 상수

 

우주 상수의 과제는

원소 8 족으로 함초롬한 것을

원소 주기율이 7 까지 보이고 8 族은 보이지 못함과 같은 것인데

이는 곧

乾은 초밀집 반사적인이나

坤이란 무반응적 흡수성이기에 그러한데

실제 족 상의 육안으로는 느끼는 것이나

주기율적 우주성으로는

힉스 입자가 木에 속하는 風임에 비한다면 

더욱 더 무반응적일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주와 12 神殺法

 

우리가 일반적 神殺法으로 본다면

劫煞은 빅뱅으로 보는 것으로 

災煞은 우주간의 충돌과 같은 것이고

天煞은 갤럭시 정도가 된다면

地煞은 태양과 행성이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殺法은 年柱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年煞을 기준으로 다시 12 신살을 연포할 수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인데

이는 매우 사물적 적용이 되는 것으로의

근시안적 상황의 변화를 보는 것보다는 훨씬

좀 더 차원적인 구성요소의 미지성마져 수용하는 것으로서의 

푸른 지구의 넘치는 바다

즉 도화지(桃花地)요 목욕지(沐浴地)인 것으로서의 구름 옷을 벗는 자리로서

이 年煞의 배속성이 훤씬 천기(天機)에 근접하는 것이라 봐야 함인데

최소한 빅뱅의 범주는 아우르는 것에서 봐야 함인 것으로는  

그래서 천체학적으로 생명의 유기성을 알아봐지는 것이 될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月煞을 지구를 두르는 띠 즉 관대(冠帶)를 의미하는 것이니 달이 된다 

이는 달이 자신의 공전을 자전과 같은 하나로 한다는 것인데

공전은 그 사이 空이 있는 것이나 자전은 空이 아닌 實인 것이니 

이를 같다고 하는 것이고 보면 

그 사이 시공은 달라도 같이 맞물려 있다는 연출이 

1 달이 10 大運과 같다는 개념이 성립이 되는 것이다

 

 

태어난 지구 다시 뱃 속에 집어 넣기

 

자전과 공전이 같은 데는 나름의 동질성을 이루는 법칙이 있다

즉 태양을 지구 내의 마그마라고 하면

지구의 궤도는 지각(地殼)이라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즉 자전적으로는 물체로 뭉쳐진 것이고  

공전적으로는 우주적 공간이 성립이되는 것에서 같다고 하는 것이다 

지구의 자전은 한 달이 30 일 정도로 한다 

이 것이 달이 입을 벌려 삼키면 이를 핵융합적으로 

8 族으로 접어 접어 삼키다 보면 4 번으로서 32가 되는데

이 것은 64 괘의 반이요 三爻가 합한 한 卦象가 되는 것이며

핼륨의 수소의 4 배 무게에 도달한 것 외에

소의 위장 4 개로 접힘과 같은 것에도 어긋남이 없는 것에서   

一見 왜 많은 숫자가 함축되었는데

가벼운 핼륨으로 할 수 있는가의 의문이 발생한다

이 것은 엄연한 시각 차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우리가 태양의 중력을 지구가 자전으로 감아 간다고 할 때

태양 쪽에서 보면 던 것으로 보이고

지구 쪽에서 보면 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무게만의 중력이기도 하지만

진공성으로서의 견인력도 상대적일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이는 결국 우주 상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계산법도 달라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어찌 되었던 핼륨처럼 캅셀을 이룬 것이 달의 공전이고 보면

일 년 365일을 다 빨아들인다고 해도

원소는 365를 넘지 못 한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달이 공전으로 원소성을 먼지 일르키듯이 일으키고

자전으로 웅축하여 바다의 조수를 끌었다 밀었다 하듯이 하면서

자신을 감싸게 하여 흰자 속의 노른자와 같이 완결편일 때

알을 낳듯이 한다는 것이다

 

 

힘의 논리라면

 

우리가 태양은 양성자이고

지구가 중성자

달이 전자라고 할 때

우리가 중성자에 상하지 않는 걸로 봐도

지구는 중성자라는 것도 되는데

어쩜 핵 속의 사계성이라는 것은

외양적 기후성에 흡수성의 질적 영향력이라기보다

좀 더 강한 4의 구성력이 있음이라는 이론에

힘이 실려야 함은 마땅한 것이다

 

 

마~! 삼 근

 

길목도리 잘 두른 천문대에

허블 망원경이 눈 부릅 뜨고 귀를 연 즉

우주에서 마! 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또 백 년 후에 우주에서 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또 백 년 후에 우주에서 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왜 이런 소리가 날까요 물으니  

300 년이라는 세월이 <마 삼 근!>이라는 사이 지나갔다

그러니 백 배속이면 일 년 안에 듣는 것이요 

천이백 배속이면 한 달만에

삼만 육천 배속이면 하루만에 

일각이면 십만 배속은 거뜬히 넘는 

오! 훤자의 위대함이여! 

보푸라기 하나에

허블망원경이 허벌나도 당달 봉사일 뿐이니    

 

 

자의성과 운명

 

왜 한 달이 10 년 대운과 같은 것인가 

이는 달의 자전력으로 태어난 지구에 

태양에의 공전력으로 돌아오는 길이 10 년이 된다는 것인데

말하자면 달의 공전인 몸뚱이 설탕이  

지구의 공전으로 솜사탕 된 것을 먹는데 10 년이라는 것이 된다 

이는 곧 원고 주기율은 달라도 

族의 영양분은 같다는 것과 일맥 상통하는 것으로  

마치 달의 그림자가 굴절식으로 반사되어 휘어 온다는 것이 된다 

만일 이러한 과정이라면 자의성은 충분히 든다는 것이 된다

 

 

흑과 백

 

빛의 삼원색은 팽찰적 열림의 극이나

색의 삼원색은 수촉적 밀집의 그림자이니

빛의 삼원색에는

<기왕이면 멜라닌 먹을 좀 주시지요

붓글씨를 쓰게요

북의 글씨를 좀 심게요>라고 하는 것이고

색의 삼원색에는

<기왕이면 그림자를 짓지 말아주시지요

앞이 가져지지 않습니까>하는 것이다

 

 

평등

 

결국 인간세에는 같다고 하더하도

전생은  각각 차원이 다른 것에서 모인 것이라고 봐야 함이고

내세로 가는 것도

거의 전생의 바탕에서 돌아가는 비중이 더 크다는 것이 된다

이러한 원리에서 인간들이 평등하다는 것은

그 어떠한 차이의 혼재에서보다 위대한 것이라고 봐야 함인데

인간은 스스로 생의 단막으로만 결론을 재려 하니  

너무 알팍하게 인간의 평등을 생각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우물과 수소

 

우리가 파장의 높이가 접히는 부분이라는 것은 

파장이 다시 나가는 동안까지는 

무수히 많은 복사가 이뤄지는 단계에서 나아가진다는 것이니 

이것을 불망에서의 불망을 지움에 있어

그 원초성을 계속 띄어 올린다는 것이니 

즉 파장이 회절에 막혀도 그 파장성은 나아가며 퍼져도  

마치 물이 우물에 고이듯이 푼다는 것

즉 그 자리로서의 동질성을 발견하게 하는 것  

이 우물이 수소와 같음이라고 할 때 

우주 상으로 어느 단계 경계로서 일어나는 것으로 하느냐인 것이다

마치 우물에 돌이 하나 떨어짐에 일어나는 것이 같다는

 

 

하루의 색상적 구조 

 

아코디언을 보자면 

그 것을 펼침에 부채처럼 돌려 양쪽이 맞닿게 하는 것이라면

이 것이 곧 흑과 백이 맞닿음이요 맞붙은 것이라고 봐야 함인데

이를 乾白 다음의 坎黑을 나타내는 것으로

九宮으로보면 색의 흑백으로 나와 순행함을 보게 되는데  

즉 洪局은 坎으로 빠지고 煙局은 乾으로 빠짐이다 

坎은 자외선에 해당하는 것이 되고  

艮宮에서 보라색이 된다고 함인데

震宮이 푸른색이면 巽宮은 노랑색이고 離宮은 붉은색이 된다

그리고 坤은 적외선이 되고 

실제 모든 色을 함유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白色인 것이고 

그럼 이 것이 왜 白色인 乾으로 팽창으로 할 수 있으며

응축으로서의 乾 즉 重力으로서의 乾으로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가 원심적 견인력이 있다면 이를 坤으로 하지 않고

乾으로 해야 함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있다

이는 곧 중력이란 것이 밖을 당기는데 있어

안으로는 원심적으로 당기는 것이 없는가 하는 것이 발생한다

이는 곧 乾極坤 坤極乾이라는 것이

무중력이나 진공인 것이 

갑자기 중력과 물질화로 바로 비롯됨이 된다는 것으로

이는 곧

하루가 반물질적 상관관계가 있어 상쇄됨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구궁과 무지개색의 루트 

 

과연 무지개 색의 실을 뽑았을 때 

순전히 색의 파장만으로 실을 엮었을 때 

최소한 못 되어도 무지개 띠 정도로 붙임성이 있다고 할 때 

과연 巽의 노란색이 중궁으로 빠져 乾으로 갈 수 있느냐의 것과

離의 붉은 색이 중궁으로 빠져 坎宮으로 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있고

坎水가 수소적 개념이면 乾宮은 원소 주기율적 개념이 되는데 

즉 乾을 다 풀면 하나의 水素液이 다 모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음인데 

이렇게 乾宮的 빌딩을 지을 수 있음이 巽宮의 끈이기에 

DNA가 양쪽에 꼬이듯 중궁으로 든 것이라는 것이 된다

 

 

든 것인가 난 것인가

 

애벌레가 앞인가 

나비가 앞인가 

탄생이 앞인가 

해탈이 앞인가 

인간이 태어남이 앞인가 

나중의 해탈이 앞인가     

해탈은 든 것인가 난 것인가

 

 

꾼 것이냐 아니 꾼 것이냐

 

우리가 빙의가 빙의가 아니라 함은 

그 것이 꿈에서 봤다면 꿈인 것이나 

생에서 본다면 그 것은 빙의가 되는 것이고 

이 것이 실제 꾸어서 보는 것이냐 

아니 꾸어서 보는 것이냐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

즉 꿈을 꾸며 빙의로 가는 것이냐

꾸지 않아도 빙의가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결국 맨 정신에 빙의가 남에게 실리어 따르게 된다면

결국은 자신은 잠의 상태에서 간 것과 같다

그러니 결국 맨정신이 아니어도 

빙의는 꿈으로도 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꿈은 여러 색의 무지개판에 거기에 맞는 주파수에 맞게

반사되어 나오는 색깔의 층과 같음이 있는 것임에

그럼에 있어 사람만 빙의가 되고 짐승은 빙의가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 있다

짐승의 빙의도 실제 있을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인데

왜냐하면 동물이란 어떤 유기성보다 정밀한 민감성으로 갖는 것으로

그만한 센스망을 가지고 있기 쉽지 않다는 것이 되는데

이는 전자학적으로 고밀도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초정밀 기계를 만드는 것보다

이러한 초정밀성을 즉시 인지하여 다룰 수 있는 것이 되면

이는 짐승에 빙의함으로서 멀리도 갈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즉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인간 이상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마치 센스가 되기 위하여 한 쪽은 인간에 

한쪽은 신이 갖는 것과 같음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두 개의 영상이 하나의 칲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꿈의 막이 이승이요

이승의 막이 꿈이라면

어차피 두 개의 활용범위가 나온다면

이는 곧 한 쪽은 피사체이고 한 쪽은 인식체가 되어야

자각이라는 것이 일어나는 것이라면

꿈일 수 있어야 드러나는 것이 될 수 있음인데

또한 빙의로도 드러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의식세계의 본질과 센스의 커뮤니체이션

 

우린 먼저 피안과 차안의 사이에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의식 구축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이는 먼저 우리 몸의 우주에서 마지막으로 배출하는 신장(腎臟)을 기준으로해서 보자면  

이 의식적 차이의 벽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이며

그렇지 않고 이러한 차이를 어떤 벽으로 

공동체적으로 삼투압적 인지의 동질화가 이루어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영매로서 전할 수 있는 것에는 

훕수성의 통과처럼 전하여지는 것이냐 

반사성의 상으로서 두 개의 톱니처럼 돌다 

인지의 메카니즘적 공유가  되었을 때 전하여 지느냐 하는,

즉 아무리 영험한 신이기로 영어 신이 느닷없이 한국말로 전하지도 않거니와 

까막눈이 영문을 알아듣어 영문으로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니

이 것은 언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비유로서 표현으로 보자면 

언어도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이 공존해야 전하여지듯 

어떤 의사의 표현의 공유라는 것은

나름의 삼투압적 기능성에서 평평하게 채워져야  

인식적으로 공유한다는 것으로 전달받는다는 것이 되는 것이 됨이다

 

 

위장이 갖는 센스적 꿈의 원리

 

잠은 위장과 관계가 깊다 

즉 위장은 정적이길 원하고 정착이길 원한다 

허나 위장은 타의적이다

즉 위장은 자율 신경에 있지 않다 

즉 자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잠을 자는 것이다 

어쩜 가장 무덤과 가깝다

그 사이 두 개의 위장이 되새김질을 해준다 

이는 프로이트적 꿈 해석이 가능한 꿈을 꾸게 해준다

여기에 제 三의  胃인 천엽에 들면

腎臟의 삼투압적 기능처럼 념겨 주어야 하는데 

이는 胃의 土性이

母性처럼 능동적으로 넘져 주어야 하는 것이 되는 것으로서

서로 간에 대화같은 것이 있게 되는 것이니 

이는 꼭 비몽사몽 간에 대화를 한 것같고 

꿈이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 4 의 胃에 가면

꿈에서도 분명 길을 곧장 가는 것을 느끼며

전혀 낯 선 곳도 가게 되고 하는 것인데 

이 것이 꿈이 아닌 빙의로 볼 수 있는 기능성은

어떠한 인식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있다 

 

 

八와 入과 人

 

이 人字는 양쪽을 끌어 올려 三이라는 것이 된다 

이 사이에는 八字 꼭대기의 평면성이 있었다 

곧 저 피라미드의 산이 전해온 듯이 하다

긴 세월이었는지  

팔자 꼭대기의 백두산 천지같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天神과 熊女의 만남이 八字의 간격을 더 끌어 붙여 

入字가 되도록 입이 되는 것인데

이를 들었다고 함이요 人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들이고 보면 그로 끝이냐 하면 그 것도 아니니 

陽인 막대기 하나가 비져나옴이 있는 형태로 入이란 것이 된 것이다  

이 八字의 오른 쪽 반에 남은 돌출에 

또 하나의 삐침이 붙으면 다시 八字인 것이니

그로 꿰어 入이 되니 또한 그로 人이라

 

 

굳이 僧에 님이라 붙여 스님이라 했다고 억울해 할 필요야

 

僧이란 世俗같기도 非俗같기도 한 것이니

굳이 안다고 해도 다 알 리 만무요 

모른다고 무시할 것도 못 되는 것이니

싱숭맹숭에

굳이 님자 붙여 주었다고 억울해 할 필요야

 

 

판치생모(板齒生毛) 4 

 

그림자도 빛의 조각품인가 

차라리 몸을 던져 그림자를 먹으라

깨진 독이 그림자에 담구었으리 

태양이 아직도 물을 담아 받들었구나   

바다와 같이 넘치지도 않는 샘물

 

 

父情

 

거울은 유리에게 말한다 

자꾸 헛바람만 넣어 다니게 한다고 

이는 통이 크다는 것도 장독에는 통하는 것이지 

통 유리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유리는 아무리 커도 크다 않는다 

그저 공기와 같이 그렇게 있을 뿐이어도 

고마움을 모르는 것과 같다

이 양파껍질같은 우주

거울과 같이 장 담그는 맛이면 

하늘이라는 것을 볼 수 없이 막힌다 

아예 유리처럼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헛바람 든 것이면 

그리고 한 없는 깊이를 관통하다면

그 안에 모든 것은 닿는 것이라면 이를 父情이라 함이라 

여기에도 홈이 패여 담기는 것이 있다면 

이는 티눈적 육안을 남기는 것이요 

또한 맑은 물이 담겼다고 해도 티눈이라 할 것이다

 

 

도솔천의 사랑 행위와 팔괘

 

본래 乾을 투명체라고 하고 

兌澤을 흰색이라고 한다 

이는 곧 三陽의 上爻가 갈라지면 

마치 얼음에 바람이 든 듯이 희어지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즉 투명 乾이 兌로 화함으로서 희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 것은 매우 중요한 시발점이데 

이는 이 사람 人字가 꼭 

진뢰의 갈라 양쪽 음효 두 개가 하나의 양으로 모여 내려칠 듯이

人字가 거꾸로 선 장도리와 같다고 할 것인데   

이는 震이 되는 것이기에 푸른색을 띤다는 것이 되고 

최종적으로 완전히 갈라지면 坤이 되는 노란색이 된다는 것이니 

이는 마치 양성자가 전자로 갔다가

다시 중성자로 돌아옴과 같은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아버지에 가까운 것이 소녀인 兌에 있다는 것인데

이는 乾三陽의 가장 상피적 변화에도 兌가 됨에 비쳐지는 것이고  

미소 속에 비쳐지는 

형언할 수 없는 순백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

도리어 애같은 노인의

陰化的 변화로 이루어짐의 현상이 이어짐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랑 행위의 욕구란 

이 兌澤이 희열의 욕구가 강하기 때문으로

이 희열이 희열로 낳고져 함에

子宮을 따라 사랑 행위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이 자리에 희열이 고무되어 춤추며 배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천상의 사랑 행위는

손으로만 접해도 관절 사이로 자식을 낳는가 

이는 그 이유가 澤인 子宮보다 

좀 더 깊이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이 震雷인 것이나 

불 붙으면 이내 폭발적이기 때문에 그러한데

이는 나무요 수족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이 兌澤보다 陽이 얋아진 것이기에 닿으면 쉽게 터지게 되어 있다 

즉 震雷는 아래가 陽이 하나요

위에 두 개는 陰으로 갈라져 깊은 자루가 되기 때문이다 

더더욱 기막힌 것을 말하자면 

만일에 천상계나 인간계가 하나의 바탕에서 나가지 않는다면 

굳이 어떻게든 품어서 내놓을 것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판치생모(板齒生毛) 5

 

그럼 과연 모래 알과 같이 기운이 사방으로 빠지는 데도

坤土로 자식을 낳을 수 있음인가 하는 것이 있는데 

실제 놀랄 일지만

이 털이라는 것이 자식과 같다는 것에서 판치생모가 성립이 된다는 것이다

土란 胃腸과 같이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즉 무감각적이지만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미 과학적으로도 털에 유전자가 있다는 설명과 같은 것이다 

이는 털이 죽어도 그 화석처럼 남은 것이라는 것에서 볼 수 있지만 

그 것이 아닌 실제 살아있는 출산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낳는 출산은 거대한 바위가 출산하는 것이라면 

세포가 낳는 출산은 모래알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 齒라는 것이 자궁의 희열을 말하는데

결국 세포도 자신의 희열로 자식을 낳는다는 것이 된다

 

 

그대 애인은 클라우디아 

 

그대 애인은 클라우디아 

그래서 그댄 눈물이 되어 주었는지도

어느 덧 누구를 위하려 종은 울리나 에 

기어코 들고 말았지

어쩜 그댄 소리처험 나왔는지도 

어쩜 욕탕에서 그대의 붕알을 본지도

大鍾은 그대가 떠난 듯 붕알이 없다네 

그래서 요령 붕알처럼 쫓아 온지도 

다시 大鐘이 울리면 눈물이 괴는

아! 가슴 저린 그대 애인은 클라우디아 

대지엔 어느 덧 누구를 위하려 종은 울리나

 

 

生氣 福德 

 

우리가 본괘상에 爻의 슌서대로 변화를 보자면 

제일 먼저 변화됨이 生氣라고 하는데

이는 또한 출생의 자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주의 근본을 乾坤이라고 할 때 

乾의 生氣는 兌인 것이고 

坤의 生氣는 艮인 것인데 

이는 곧 老陽이 少女로 化함이고 

老陰이 少男으로 化함에 유기성을 띠는 에너지가 되는 것이라 봐야 함이다

이는 곧 에너지의 소요성을 짐작하게 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면 우리가 나무의 점목같은 생기가 될려면 

어떤 시공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되는데

震宮의 색기는 離宮의 생기에서 나오는 것이라 봐야 함이다 

이 <생>이라는 字型이 사이를 굴러 뭉쳐온 듯이 하는 것인데 

이를 로봇 팔다리이듯 고정 시킨 것이 이 <색>이라는 字型인 것이다

마치 해양지기에 핼리콥터 안착지 같은,

그럼 離宮이라야 나무에서 가지가 뻗듯 아기를 낳는다는 것인데 

그러려면 먼저 이 빛이라는 차원의 에리어가 있야만 가능한 것이다

즉 우리가 지구에는 전리층이 있듯 

우주에 광리층이 있어야 그 차원의 안에서의 생태로 

사람같음도 나무처럼 낳을 슈 있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즉 離宮의 生氣가 震宮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무지개의 울이 확실이 경계의 벽을 이루어야 가능한 것이다

 

 

눈동자 

 

우리가 검은 눈동자 푸른 눈동자라는 것에는 

나름의 망막과의 괄호적 호환성이다 

우주의 가장 검은 부분은 블랙홀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는 다른 시각의 안목이 필요한 것이고 보면

인반적으로는 혹성의 뒤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혹성 덕분에 검은 극치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것에 지구알을 투과하는 영상의 감선이 있는 것이라면 

푸른 눈동자는 오히려 어둠에서 풀려지는 극미립자의  

지구알을 투과하는 영상을  마주한 감선이라고 볼 수도 있음인데 

이 것이 자외(紫外)와 적외(赤外)의 감선과 같은 것으로            

고갱이로 나오는 것에서와

겉잎으로 물드는 감각의 차이점과 같다고 봐야할 것이다

 

 

한글에 있어 겹음의 뉘앙스 

 

한글에 있어 겹음의 뉘앙스를 볼라치면

겨울에 거울올 보면 두께적 뉘앙스

거율은 맑았으나 겨율은 희멀건 것   

여름과 어름을 보면 씨와 과살의 뉘앙스

여름 세계의 어름 속의 뉘앙스

핵과 원주의 뉘앙스

유리와 우리를 보면  

우리가 두 개로서 합판이 되면 유리가 되는 것 

투명한 흐름이 두 개로 포개지면 유리로 되는,

아마 세 개로 포개지면 얼음과 같을

이러한 뉘앙스는 영어의 Y가 더해지는 것으로 

이 Y는 알파벹의 잠인 Z을 뺀 끝으로 

원소 주기율 상의 族의 끝인 8族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는 곧 한 주기율을 아우르는 坤土를 말함이고

십,백,천의 묶음으로 하나로 하는 것에서

청탁의 분리성보다는 밀도를 더 강하게 하는 것이 되는데

일례로 우~ 우~와 유~ 유~는

소리의 허공성과 물의 액체적 농도의 표현에 있는 것이기 때문으로

그 혼재성보다 밀도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즉 이 것으로 주기율 간의 밀도를 나타내는 영역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라면

ㄱ과 ㅋ, ㄷ과 ㅌ과 같은 겹음이 되는 것이라면

주기율은 달라도 族은 같은 것에 속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느 나라보다 성명학을 무시하지 않는 나라인가는

이러한 정확한 물리 화학적 성향의 에너지를 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받침의 탁월함

 

이 ㅌ자형은 이랑 고랑을 나타내는데

기타의 코드 선과 같음이다

즉 바가 이랑 고랑을 원하면 밭으로 받든다는 것이다

겨가 이랑 고랑을 원하면 곁이 받드는 것이요

벼도 이랑 고랑이길 원하면 볕이 됨이라  

파(破)가 이랑 고랑을 원하면 팥이 받드는 것이고

無가 이랑 고랑을 원하면 뭍이 받드는 것이고

馬가 이랑 고랑을 원하면 맡으로 받드는 것이다

 

 

나비가 책장을 넘긴다

 

나비가 책장을 넘기듯 날으는구나

마음이 무엇인가

일지관으로 날으는구나

선인 듯 하면서 이 또한 아닌 듯

점인 듯 하면서 이 또한 점이 아니니

한 마디라 들이는 만큼에는

코의 길이만큼 접었다 폈다

책장을 넘기는 듯

코의 앞을 끌어다 폐의 날개를 접은

 

 

잠자리

 

꿈은 날아야 하기에 잠에도 숨을 쉰다

잠자리가 잠자리라하여도

웅덩이 거울에 돌고 돌아도

깰 길 없이 춘곤만 더하는 곳에

어쩜 아지랑이 너울너울 춤을 추는 모자이크를 넘어

웅덩이는 엉덩이

엉덩이에서 잠자리를 깨는 인생

탄생은 잠자리의 꿈인 듯

어쩐지 인생사 이 사이의 그림같은

 

 

인간과 시간

 

人의 몸뚱이가 도리어 間

時의 몸뚱이가 도리어 間

간 맞는가 

간 맛다 

감중연(坎中連)

소금이 허중을 저려 海中金이 되는 것이 그러하니

새는 날으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날개를 접어 알이 된 실습으로 온 것

새의 날개인 것은 양쪽 인간이요 

양쪽 시간이라

 

 

방점 

 

참 쉽게도 방점을 찍는다고 하는구나 

모두들 방점의 고리에 걸린 듯 

도리어 낙하점을 모르겠을 

어찌 그리도 가난의 설움과 독기를 

혹성 탈출만큼이나 방점을 타고 날았건만 

오! 늙은이여! 

그대가 보아온 로컬은 찾았는가 

칸츄리는 찾았는가 

닭마져 꼬꼬 꼭꼭 했건만 토종조차 아니로구나

 

 

맨드라미 유(酉)

 

맨드라미는 腸 止血에 좋다고 한다 

小腸은 火에 속하니 두텁게 헤서 좋고 

腸이란 土에 속하니 받펴주어 좋은 것이니 

속 훤히 보지 못하고 내출혈성으로 감감해질 때

반풍수만  되어도 어림잡아 먹어볼만하게 

참으로 급할수록 확대경 속처럼 크게 비춘 듯

神도 참 부처님 귓볼같은 넉넉함보다도 넘치지  

넙데데하게 넘쳐나도록 붉으니 

오! 계관(鷄冠)이라 함이 아니든가 

일출의 붉은 빛은 혈기의 충천(沖天)

일몰의 노을은 출혈성 

피가 제 뱃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벼슬로 주렁주렁 담았다 

다리미질 길에 물을 뿜듯 

새벽 닭 소리는 노을을 뿜는 소리

오! 밤 새 소쩍새는 그렇게 퍼담았나보다

腸도 미끈미끈 

쇠도 반들반들

피를 돋우어 더욱 맨들맨들

이름도 기막히게 맨드라미

이열치열의 가장 병행적 요구로 살이 되는,

위급함에

경광등(警光燈)이 맨드라미 꽃을 키우는 것을 

그대로 삼키라는 

가장 붉은 채로 들이킨 것에서의 지혈(止血)이라는

눈이 침침할 때 더욱 크게 보아라고  

몸으로 직접 그토록 진하디 진하게 말하는 

 

 

공명의 동조성

 

공명 현상과 도플갱어에서

주파수가 같은 것에서

마찰적 열기가 부푸는 냥 뒤집어버리는 현상이듯

결집이 되어 꼬이는 현상이듯

양 날개를 맞댄 몸이 되는 것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의 에너지

질량을 넘어선 열량 그 자체일 뿐인 듯이 

구름같이 조용하다가도 뭉게지는 듯이  

우리가 도플갱어처럼 만나면

물 위의 그림자 막이 살찐 것에 있는 듯

이는 내외와 상관 없이 

오징어 육포가 다시 통오징어 되는 듯

이는 오직 자신의 라인만으로 허공적으로   

매우 상대적으로 티끌과 같이 일어나는 것 

이 건 애벌레처럼 일어나야 하는 것에서

앙 쪽 간의 날개를 버려야 하는

마치 여왕벌이 날개가 소용 없는 듯

물질과 반물질을 버린 듯

부분적 집합체가 붙은 육포가 부푼 듯

아니면 결합의 거부반응으로 양 날개가 뒤집히는 듯

 

 

쇠비름과 맨드라미

 

쇠비름과 맨드라미는

매우 거름물이 밴 땅에 잘 자란다

거름물이라지만 

대지의 피부엔 오염물과 같다  

그래서 쇠비름은 대지에 뜸을 뜨는 것과 같다

연기도 안 나게 더 맑은 듯이 벌겋게 달구는,

그래도 강 다리가 물 밑에 발 담구는 것에 불과한 것 

진짜 본론은 오물 속의 지렁이

좀 곰삭았다 싶으면 아예 온 몸으로 뜸 뜨기

대지는 제 살갗으로 돌아가는,

오! 이런 아지랑이 뜸발같은 자연의 일상사  

이 줄 하나 잡아도

소문 내어 한 소씩 한다는 우쭐

진정 볕이 아니어도 별처럼 살아 있는 것

별이 피듯 

저 성운이 피듯  

이 모두가 자율적 뜸이라는 것에서 이니

 

 

판치생모 6

 

본래 구슬이 패여 물이 고였어도 둥글 수는 있는 것이었으니

이를 가리켜 원소 1 주기율이 되었다

그럼데 그 물을 들이키고 말았으니

이상하게 무지개 두께만한 흠에도

무지개 털이 났다

어느 덧 원소 2 주기율처럼 속을 채웠다

허나 그 것은 구슬에 빠져나온 털이라 바람과 같은 것

그래서 마신 것만큼에 물고기가 산다

다시 바람처럼  관통하고 구슬이 되어 가는 듯이 

우린 들이키는 

망막이 구슬의 입맛에 유회되어 빠져 나가듯 

눈이 망막을 떠난 것이듯 

렌즈의 두께로 마음의 시공을 열면 

그 두께만으로 마음벽이듯 커졌다 작아졌다

인간이여! 그대들은  바람을 헤치고 나간다고 할 때 

신은 렌즈의 확충성으로 관통한다

 

 

얼굴의 주기율적 관상학

 

원소 1 주기율은 지구

그래서 나자마자 한살인 것을

땅을 떠나지 못 했다는 것   

원소 2 주기율은 양 두엽과 해골 

원소 3 주기율은 눈알

원소 4 주기율은 턱 

원소 5 주기율은 풀무질인 코

원소 6  주기율은 입 

원소 7 주기율은 관골

 

 

오장과 육부인 집게 손잡이와 용구(龍龜) 

 

본래 소화기인 腸은 용의 몸통

그런데 얼굴이 입으로 빠진 것이 아닌

코가 龍의 얼굴이 됨에  법령이 수염이라 할

인생 팔자 주름이 촉수을 키운 듯 함에  

사방을 빙글 두른 오장(五臟)은 거북의 몸통으로

본래 코로 내민 얼굴이어야 하나

코가 아닌 입으로 해서 주둥이만 나오는 거북의 몸체

얼굴이 바뀐 듯이 하면서 집게처럼 X字 形으로 조으기

이미 코와 입은 이렇 듯 龍龜가 함깨 사는 것 

그런데 용구가 완전한 것이 아니어서 

아직은 단단히 집게 머리 양두엽으로 단단히 집어야 하는 것이라고 

그만 거북의 입은 용의 뱃 속으로 달고 

용의 입인 코는 거북의 부레에 달았다 

그리고 들이키고 먹을 때마다 목에서 교환을 하는 

자신에 오만하지 말고 함께 용맹정진한라는

오! 숨이 하늘을 들이키는 용코의 수염 법령이여!  

땅은 노른자 

하늘은 흰자 

이 것을 먹고 깨쳤다고 비용(鼻龍)이라 함이다 

눈이 망막에 빠지니 

하늘이 허파에 빠졌다 

숨이 하늘을 들이킨다

볍령은 용의 촉수

태어나선 법령이 없다

허나 떠날 때 용의 촉수가 남에

인생살이가 잠용과 같은 것

때가 되어 재생되는 날

그대는 진정 날을 수 있는 것인가

팔자수염을 날리며 날 수 있음이던가

 

 

6은 生이요 7은 死라

 

본래 요일이란 6인 生에 

7을 걸러가라는 것에서 空인 것이다

즉 7은 死인 것이다 

그래서 칠칠이 사십구의 영역이 나오는 것이고 

팔팔이 육십사가 되면

이미 영계(靈界)를 관통하는 우주인 것이다

6이 생이라 함은 

6은 坎中連으로 이 連을 陽이라 함에

결국 球心이 되는 것이니 

육육이 삼십육은 분도기의 원형을 말하는 것으로 

360 도의 기본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생명체가 바다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우리가 지구 상으로는 토가 중심이나 

물리적 중심은 水로서 일어난다는 것에서 

뭍으로 나온 水는  

곧 아날로그 시계의 원주 안을 못 벗어난다는 것이고 

이 것이 얼굴이듯이 산다는 것이고 

7이 원심력이 되는 것은 7은 艮上連으로 

양이 위에 있으니 

모든 것이이 위로 향하는 것이며 

위계의 질서를 말하는 것이며

해바라기적 바라기에다  

하달 되는 배속을 말하는 것으로 

하달되어 속하면 그로 변하지 않는 영역이 되기에 

止라고 하는 것이니 

우주가 이런 식으로 구성체를 자연적으로 이루러져 간다는 것이 된다  

이 것이 이러한 방향의 성격을 띠면

원소주기율적으로도 6 주기율이나 7 주기율이 되는 것으로 

그 성분을 나타낸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루어짐이란

 

우리가 최종적 궁극이 인간이라고 할 때

인간의 궁극성은 허수아비라는 것이다

즉 우주가 인간이라면

다만 우주는 실제적 몸이라면

인간은 허수아비라는 것이다

이 것이 물질계가 된다는 것으로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이지

마음 먹기에 따라서 우주가 뒤집어지게?

다만 DNA인 지푸라기를 보면 결코

허수아비조차 안 된 것이라 볼 수 없지

최소한 엄밀히 보면

렌즈의 확대폭은 다 이룬 것으로 봐야 하는

 

 

인식의 세포적 분열

 

나무가 크는 속도는 

대나무가 크는 속도를 알아보지 못 한다

허나 큰 나무는 커 오는 대나무를 본다 

이는 즉 나무의 심지는 대나무의

마디를 알아보지 못 한다 

또한 대나무의 속 빈 것은

그 마리로만 나무를 알아보지 못 한다

이 것이 정신의 일차적 세포분열일 것이다

 

 

화사한 달로서의 희열

 

하늘이 푸른 것은 

아무리 누른 개구리 먹개구리여도

올챙이여서 푸른 것이다 

달이 비치면

달이 피치면 이 올챙이가 사투를 벌이며 

전리층 

오존층을 차고 나가느라 여념이 없다 

 

 

까도 붉고 닥쳐도 붉고

 

새벽이 까를 여니 겨녁이 닭이로세

닭은 까닭일 수 밖에 없다 

모든 색이 어둠에 가려질 수 없기에 

모든 색의 시작은 

닭에 담기는 것이고 

이에 저장되었다가 다시 아침에 뱉어야 한다 

그냥 놓아두면 쥐가 다 훔쳐가기 때문이다 

이 것이 닭 벼슬이 붉음이요 

또한 한계의 새벽에 우는 것이니 

이 것이 인간이 인간을 다스리는 한계의 

헌신인  것이요 절제인 것의 벼슬인 것이니

 

 

理의 乾이요 里의 坤이라

 

乾의 義요 意라면 

水는 理요 

木은 위로는 복사성이요 층이요 마디인 것이요

옆으로는 도로인 것요 

火는 유휴지 공한지인 것이요 

土는 里인 것이니 

乾의 玉에서 理을 뻔쳐 里가 되면 

완전 세포가 분리된 것

 

 

역설성

 

광합성이란

광자가 전자를 들이켜 전기로 만드는 작용과 같은 것으로

마치 팥죽을 먹으니 새알이 나오더라는 것과 같다  

즉 전기가 전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자를 광자와 함께 에너지를 피우는 것이다 

이 것이 광합성과 같은 것이라면 

이는 곧 세포를 짜는 듯 火生土가 되는 것으로

土的 肉質이 됨으로서

투명성을 벗어난 것이라 할 것이다

이를 보면 거북이가 육지로 나와 다시 바다로 가는 것은

이러한 경계를 차고 나가는 것과 같다      

 

 

인생은 고목 숲의 연극적 흉내

 

광자가 전자를 들이킴이 

이승적 차원의 들이킴이라는 것이다

이는 광자만으로 사는 영역이 있다는 것인데 

전자적 물을 들이킴으로서

나무로서의 흉내 밖에는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지구의 백지 한 장의 차이

 

진정한 차원의 백지 앞뒷 면의 차이

달은 광자의 입

지구의 그림자는 태양의 샘인 전자

허공의 볕도

볕이 되고 밭이 되는 사이

그냥 허공이다 싶은 것이

먹이 고인 듯이 보일 뿐이다

인간의 먹빛 눈동자도 

이 먹물의 눈동자는 아니다

이 먹물의 눈동자는 

해저 동물의 촉수처럼 관통하는 인지의 시력이 있는 것이다

 

 

 

堂은 黨임에 검은 먹태가

黨을 堂으로 겹겹으로 포개면  

먹태가 물 밑 땅에서 낀다 

이 것도 가중치라고

땅이라는 것으로서

먹태가 살 밖으로 엉겨진다

이 밑이라는 것에도

ㅌ의 밭만 남을 때 

에에 붙여 테가 있음의

 

 

관행과 관념

 

어찌 불법만이 다 감당할 수 있음이든가 

세간법에도 관행법 관념법이란 것도 만들어서 

음성화된 것을 양성화함이 

그나마 호랑이 같은 법조차 여우에게 넘어가지 않기를 

얼마나 이타적이고 글로벌적인가를 

국제사법적으로 인류애답게  이르는 첩경인으로 

어 것이 천명에나 있을 법이라고 

신분이 천상급이 될 길도 무지하기 그지 없는 바에 

어찌 하늘법이라도 끼인 냥은  쉬운지

미꾸라지같이 개천에 놀게 하기는 깊은 연유가 있는 냥  

인물은 개천을 떠난지 오래라 해도  

여우가 개천으로 실눈 떠봄과 같은,

이 또한 법계로 할 수 없음에 인간의 한계를 느낀다는 것

관행법이 있으면 통념법도 있어야 하는 것이니

관습보다는 통념이 앞서야 하는 것이 상식이 되는 것이고

굳이 특별하다는 몇 개 부여해 주고 독선이니 뭐니  

말 장난하기 좋은 것이라면

통념(通念) 밖의 통령(統領)이면 좋을까

통념 안의 통령은 어이 할꼬

 

 

호르몬 그 근성 있는 예술  

 

서양 건축물을 보다보면 

무슨 아트홀인가 하면 종교적 시설물인 경우가 있고

그러므로서 일제히 창조력이 몰리는 것같기도 하는 것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건축이라는 것은

불립문자와 같이 드러나지 않는 채

주변과의 조화로 명맥을 이은 채

문양의 섬세성이나 일갈성이 내포된 의미력에 실린

꼭 외적 다방성의 자유로움으로 대화를 유연하게 한다기보다

한 마디에 손 소식 함다는 기풍이 나와야 하는

틀은 틀이다 하는 것에서 끝장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에서

우리가 방적 예술과 원만성의 예술을 알게 하는데

이 원만성의 예술이란 얼굴처럼 둥근 것에다

입을 열어 한 쏱 뚜껑을 알게 하는 것과 같고

이에 비해 방적 예술이란 것은

팔다리처럼 날개처럼 귀를 펼침을 말함이니

이는 하나의 몸으로서 다양한 몸짓

즉 판토마임이나 춤을 뜻하며

이는 건이 사탕과 같은 것이라면 곤은 주벅밥과 같은 것에서

건은 그림자를 비춤에 안으로 새겨 음각을 이루게 하는

조각비법과 같이 마냥 각도 없이 녹이는 것같아도

각대로 형태를 이룸을 말하니

이는 곧 남자도 늙으면 여성호르몬에 녹듯

건이 태로 음화되어감에서요

곤은 둥근 것이나 실제 남성호르몬으로 간산이 됨에

산의 뿔처럼 모서리가 남에 방이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쉼표의 매력

 

쉼표의 영역을 보면

만일에 북북서라고 할 때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에서

 북, 북, 서이면

북쪽으로 북쪽이다가 서쪽으로 꺾는 것이요

북, 북서이면 

북으로 반쯤으로 가다 서북쪽으로 꺾는 것이요 

북북.서이면 북쪽에 닿았다 서쪽으로 넘는 것이다 

이 것이 쉼표의 돌아가는 매력이다 할 것이니 

이러한 분별력은 매우 유익한 것으로

괘의 복음(複吟)이라는 것이 되면

중첩성의 상태 즉 결과에 닿았읋 때

아직 출발이 아니었을 때의 정황을 말하는 것이요

콤마 이전의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만일에 북북,서에서 동태를 실핀다면

악살이 끼면 

북쪽에서 방향을 트는 순간 사고를 당하는 것이고

반음(反吟)에서 악살이 끼면 회항 중에 사고를 당하니

북북,남과같은 것이 된다

그 방향으로 찍은 자리의 스텝과 같은 것으로  

말 한 마디가 무의식 간이나 

그 특성의 적소를 명확히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뜻이 있는 자리에 어떤 자극이 있을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모든 양질의 해답은 질문의 수준에 달린 것과 같으니  

선각자란 곧 질문을 뛰어 넘을 수 박에 없는 

끝 없는 질문의 화두인 것이다 

논리학이란 것도 결국엔 

질문의 수순을 높이는 데서 곁코 둥한히 할 수 없음을 뜻한다

 

 

덫과 덧

 

그댄 스스로 덫을 놓는데

난 덧 난다

그대 천진스런 소녀의 웃음을 입가리개 씌우고는 

태연한 냥 시선을 모으고져 한다면  

난 덧난다

그대가 말끔히 잊어

말똥이 굴러도 자즈러지는 소녀로 돌아간 것이면

난 소년의 순진함으로

그 위에서 돌아가라고 팻말을 붙이네

 

 

잠재력과 노출성의 함수

 

빛의 파장이 길다는 것은

노출성 때문인가 세기때문인가

즉 나무는 푸른 색

불은 붉은 색인데

이는 불은 나무보다 세기에 나무껍질을 박차고 나옴에서 인가

아니면 나무가 빛보다 누적성이기에 강한 것이나

불이 노출됨으로서 솔직성으로서의 강인하게 비춰지는가 하는 것이 있다

 

 

제갈 공명과 사마 중달의 차이

 

셋이 가면 하나가 줄 것이요 

하나가 가면 둘이 될 것이라를 문구를 두고 

제갈 공명과 사무 중달의 차이점을 보이자면

이는 세 부대가 작전에 임할 가능성이 있는데 

세 부대가 함께 움직이면

분명 한 부대는 전멸할 가능성이 있는 것인데

차리리 중과부적이라도 한 부대가 가도 

수확이 배가 된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 것을 본 것이 아니라

앞에 산이 있어 산을 넘어가는 정탐꾼을 보내야 하는데 

마침 세 사람이 물망에 올라 있었다는 것이다 

즉 하나는 그 산을 세 번이나 넘어가 봤다고 하고 

한 사람은 한 번 

한 사람은 초행길이나 산을 잘 타는 사람이라

어차피 한 사람을 보내기로 이미 작정했던 바이니  

세 사람이 가서 좋지 않을 것이야 새삼스러운 것이고  

당연히 경험이 많은 자를 보낼 것이다  

이 것이 곧 사마 중달의 안목인 것이고 

남부럽잖을 식견이라 할 것인데

그 정탐병은 돌아오지 않을 가능이 많다 

말하자면 제갈공명은 처음 가는 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이 것이 공간적 선택일 것이냐 시간적 선택일 것이냐가 되는 것이다 

즉 행위자의 위주로 판단한 것은 시각적 움직임의 판단을 한 것이고 

오히려 시간적 함수가 하나의 구조를 이룰 때는 공간성의 정체로 보는 것이니

아무리 범사에 능해도 

그 상황에서 드러내고져 함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니 

외부적으로 면밀해야 면밀하게 맞물린다는 것이 되는 것으로   

점이란 맞다싶을 때 가장 잘 속는다

즉 한 사람은 그 산을 세 번이나 넘어 봤다고 하고 

한 사람은 초행길인데

또 한 사람은 한 번 가기는 했으나 오래 됐다는 것인데

당연히 경험많은 자를 정탐하게 하게 하였는데 

결국엔 실패하고 만 것이 되었다면 

이 정도에서 한계를 느끼면

망연히 공명의 탁월함만 넘보게 되고 

그렇다고 이빨만 갈 수도 없는 것이니 

결국 신명에나 아쉬움을 토하는 것이나 

이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깨달은 데서 비롯됨이지

신조를 상대로 원망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즉 제갈공명이면 두 번째인 자를 보냈을 것이라는 것이고 보면       

과연 이 軍師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사마 줄달이 제갈 공명보다 일찍 결론적인 것으로 닫혔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제갈 공명은 어떤 선입견의 지혜라기 보다 

횡재적 비법을 터득하기보다   

여러 가능성을 지식적으로나 경험적으로든 열어놓았다는 차이일 것이다

즉 사마 중달 정도로는 

그 세 사람의 얘기를 들었을 때 이내 감을 잡았어야 하는 것인데 

결국 흘러 보냈다는 것과 

이렇게 흘러보면 일이 발생해도 그 원인조차 알지 못한 채

괘의 실하지 못 했음으로 결론내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즉 한 한계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넘는 범주라는 것이 있이 있는 것이다

이렇듯 대 지략가들도 그 꼭지점에서 차이가 나듯이 

하물며 문외한이야 

여우같은 눈치급에나 지혜라고 하는 세상에 

손톱이나 들어가던 것이든가 

절로 부평초같음을 실감하고 가야하는 것이

다 허뭉맹랑하게만 보일 뿐이니

어찌 그 안목을 탓할 수 있으리

 

 

소리의 영양분

 

우리가 母音이 中宮이라고 할 때

八卦는 피부라고 함인데

中宮의 天盤과 地盤을 子音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洪局을 母音의 모양

子音을 奇儀라고 할 수 있음이다

즉 中宮이 발성을 연 순간을 말하는 것이고

그리고 다시 세포가 그 영양분을 받아 먹는다는 것이니

中宮이 身命의 자리를 생하면 좋듯이 

이름이 그 四柱의 用神을 보충해주어야 함에 있어

매우 임상학적 기틀로서 설명이 되고 있음이다

 

 

화투와 포크의 비밀  

 

화투와 포크의 공통점은

네 개를 12 월로 연결 되게 했다는 것이고

포크는 그 위에 하나 더 있는 13으로 킹이게 했다는 것이나 

또한 이는 에이스를 0인 동시에 1로 함과 같으니 

나자 마자 한 살로 함에 실제 1은 2가 되는 것이나 

그렇게 되다보면 13 까지가 되는 것이다  

이 포크의 특성은 에이스 네 개를 육신으로 하면 

인신사해나 진술축미등의 같은 부분성의 집함과 같은 것인데 

이는 곧 맹신은 강제적어도 유전자적 결합을 말하는 것이고 

중신은 나무의 접목처럼 줄기세포의 접목이라고 봐야함이 있고 

계신은 어떻게 반복 시킬 수 있는가의 복사지가 되는 것이다

이 것을 마치 복록의 줄기인 냥 키워가는 듯이 하는 것이고 

이는 곧 원으로 보면 반지름의 눈금을 채워나감과 같은 것이고

화투는 알곡에서 네 단위로해서 빈 껍질이 되어 소진되면 

다음 눈금으로 넘어가는 것이니

시계의 눈금이 넘어가는 동태를 띠는 것으로

이 인신사해적 광물질을 겉으로  드러냄이 

계절도 없이 올릴 수 있음이요 키울 수 있음과 같음이니

이는 계절적으로 드러낼 수 있음이라는 것이 되는데 

그래서 진술축미 토를 계라고 하는 것으로 

게절이란 것도 이 계의 토에서 돌려가며

안의 인신사해를 끄집어냄과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천지인의 근원

 

우리가 왜 3과 4를 비중 있게 다루느냐 하면

해와 달의 중력성과 맞물리기 때문인데

이 것을 달로 치면 四八이 三十二인 것으로

즉 이 八이라는 것으로 八卦를 이루면

한 달 내에 4 개가 든다는 것인데

이를 12 달과 맞물리기 위하여는 3을 곱해야 하는데

결국은 이 12 라는 것을 날로 둘 것이 아니라

해의 굴레 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이든 

차고 나가는 것이든 

아니면 절로 남는 것이든  

해마나 11 日이 남으니

이를 三 年으로 해서 윤달이 완성될 때

사계절을 세 번으로서 열두 달을 넣은 것으로

이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윤달의 자투리를 이렇게 활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

우리가 三 日을 三才라고 하는데

이는 곧 한 해 11 일은 天으로 하고

한해 11 일은 地로 하고 

한 해 11 일을 人으로 함에 

하나의 윤달이 완성됨이라는 것이다 

즉 윤달이 天地人의 합체라는 것이 되는 것이고 

이 것을 해의 궤도가 아니라 

일의 궤도로는 3일 말하는 것으로

이 것으로 기문둔갑으로는 門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12 시간이 있는 것이고   

또한 24 절기로 나누어 24 시간으로 하는 것이다

 

 

백조에 까닭을 물은 즉 닭이 된

 

새가 닭발인 것 

호수가 달을 품기 때문

달도 닭발로 땅바닥을 긁으면 

이 자국에도 물이 고이는 것 

호수를 이루는 것 

달은 닭발이니 물이어도 뭍을 긁는 것

맨땅에 들음과 같음에 이미 물이 차는 것 

물이 나는 것만큼이나 털이 나는 것

이로 진화한 닭은 

발금만으로 손금만한 진화성 

땅을 그 그 열정은 벼슬을 보면 알 것이니 

과히 화통과 같이 팠으리니 

연한 덤불이 바위를 가르듯 

발톱이 무뎌져도 기어코 팠으리니 

오! 湖池를 이룸에 눈이 됨이 

먼저 눈알인 닭이 호수를 만들었으니 

달이 조수의 발톱을 세워 밀물처럼 밀려왔다 

갈고리 걸고 미끌려 간 듯

오! 風鷄가 호수에 드니 

알을 놓아 달 그림자

이무기 또아리 둥지에 알을 까는 백조로구나  

달빛 머금고 머금은 진화의 날개까지 노란

 

 

旣濟가 未濟라  

 

다는 끝을 말함이 아니다

즉 다가 기제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는 모두라는 것이다

즉 끝이어도 전체에 닿은 것이기에 이를 미제라함이다

그래서 마침표 전의 다로 끝남은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다가 바를 받치면 받음이라는 뜻이 된다 

즉 이 바소쿠리를 ㄷ이 받들어 받는다는 뜻이다

 

 

소똥 우주와 개똥 철학

 

소똥에 그 등불이 무어냐고 하니

소똥을 말려 구워도 냄비를 끓인다고 하는 것 

속이 벌겋게 달을 때 

귀염둥이 애교둥이 아니어도 역시 소 다운 등블

개똥에 그 등불이 무어냐 고 하니 

개똥밭에 굴러도 생이 좋다는 등명불 

분명 자성에서 일으키는 것이이라고

반드시라고

반드시라고 반딧불

소똥은 과학의 용광로

개똥은 인문의 등불

개는 작을수록 귀염이

그 등불의 부래살이

개똥밭에도 은공

개똥벌레야 

개똥벌레야

소똥굴이는

별을 헤는 천문학으로 길을 간단다 

굳이 몇 번 굴렀다는 적확성으로만 따지지는 않는단다 

별인 신공위성(神工衛星)을 아는 것이란다

 

 

인체의 소우주적 단면 

 

우리가 인체를 소우주적 단면으로 볼 때 

소화기 계통 

즉 腸係에 있는범주로서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위장이 토성이고 

목성이 십이지장이고 

화성이 소장이고

단전이 지구인 것인데 

대장이 금성이고 

맹장이 수성과 같다고 봐야할 것인데

마치 王星인 머리의 입에서 

조각 난 행성이 들었을 때

그런 소화기적 인력으로 줄을 타고 내려온다고 

창자도 궤도 벽에도 자전에 쏠리는 듯  

좌우로 꾸불꾸불 

본래 우주의 팽창이란 離虛中의 작용

심장의 공간 넓히기

즉 별똥별처럼 든 것은 음식인 것이요 

소화 중에 있는 것은 혹성인 것이다 

즉 소화기만으로 태양계가 되는 것이다

이 것이 한 주기율 상의 벽인 土인 것이요 

腸係요 원소 8 族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것을 離虛中으로 최대 팽창으로 늘리면 

끝도 결국은 바깥 궤도의 피부성으로 축적이 됨인데 

이 것이 굳어지면 土가 되는 것이니 

이 우주 밖이 원소 주기율같은 시루가 있는 것이고 

그 밖에 또 떡이 깔려 있다는 것이 되는데 

이렇게 다름에 있어도 의식과 인식의 동질성을 갖는 것은 

마치 주기율은 달라도

族은 같은 성질을 갖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우주의 전신으로 思考한다는 것은 

저 명왕성 너머에서부터 들어오는

콩알 한 알같은 희소성만으로 충분함과 같다 

그런데 실제 이렇게 배열한 것은 

토성은 모자 쓴 머리와 같음이고 

목성을 인후의 갑상선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실제 이 두 가지는 머물기 어려운 허공성이라는 것이고 

그러고 보면 토성에서 부터 입이라는 것이고 

이는 곧 토성이니 위장의 첫머리라는 것에서인데 

이 위에 天王星은 天主를 말함이고 

그 위에 海王星은 無色界를 말함이고 

그 위에 明王星은 自燈明을 말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채식과 육식

 

인간은 육식을 하게 되어 있는데 

사막과 동토 가에 있는 염소와 소를 제외한 

육식게열은 육식을 해야 평안함을 느낀다 

그 것은 원소 주기율인 8이 차야 안정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데 

이 8 주기율이 土인 살을 의미하기 때문에

체질적으로 급히 조달하고 포만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육식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土性인 살과 木性인 근육이 아우러지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인데

이 것이 木星과 土星이 한 주기 돌면

팔 둘레와 같고 다리 둘레 몸 둘레가 되는 것이다 

즉 행성의 주기성이 몸읠 둘레와 같은 것으로 살을 찌운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막과 冬土의 의미는 무엇이며 

과연 오아시스는 있었던 것이든가 하는 것인데 

이 것이 수소와 핼륨의 사이

즉 하나의 위장과 네 개의 위장 사이를 드러내게 되는데 

결국 이 물을 마심으로서 

즉 수소를 마심으로서

네 개의 위장으로 채식과의 가교를 놓은 것인 출발점으로 해서

인간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인간 수명 팔만 년을 위한 조건 

 

인간의 수명을 어떻게 연장하느냐는 

먼저 風水害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나무의 수명처럼 

어떻게 씨앗 하나를 먹고

만 년을 넘을 수 있으냐를 깨달아야 한다 

즉 씨앗이 나무로 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자신의 씨앗을 삼켜 만 년을 어떻게 사느냐와 같은 것이다 

이는 곧 인간이 알약 하나면 일년을 느끈히 살아 남을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이 것이 불가능한 것인가 

인간이 자신의 씨앗을 삼키며 크는 것이 백 년 정도이다

그러니까 달을 삼킨다는 것은 태어난다는 것과 같은데 

이 것이 한 달이 십 년 大運이면 

이는 백이십 배의 효율성이 함축되는 것인데

결국 그러니까

우리가 어머니 뱃 속에거 열 개의 씨앗을 먹었으니

즉 열 달을 보냈으니

100 년의 태두리에 있는 인간이 일 년에 다 압축시킨 것으로

결국 이 열 알을 삼킴으로서(역설적으로는 태어남으로서)

100 년이게  되는

결국 해의 부피가 달의 중심으로 저장성이 되게 하여

해가 다시 꺼내어 소진되는 것이 인생이라면

마치 병아리가 알에서 난자를 다 먹고 나오는 기간이 그러하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이렇듯 해가 달을 잡아 압축성 저장이 되게 하듯 

먼저 이러한 굴레적 확장성을 넓힘에는

당연히 선행을 닦아야 가능한 외연임을 

이미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고 

다만 우리의 섭생으로서의 영생도 분명

자연도 함께 영생의 톱니로 맞물려야 한다는 것인데 

무엇보다 우리가 공간적으로 비료를 만들 듯 

그 성분성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부작용이 병행하는 것이기에 한계를 보일 것이니

다만 벼나 밀같은 것이 

나무의 초월적 시공과 맞물릴 수 있는 배아로 접목할 수 있음을 안다면

인간도 충분히 나무와 같은 수명을 살 수 있을 것이란 이론은 나오는 것이다

 

 

官과 財

 

전지는 전기를 보존하는 것이다 

즉 地로서 보존한다는 것인데 

아눈 木의 庫인 未를 의미하는 것이며

미에는 28 宿 중에 정과 귀가 되는데 

이 것이 다 電池도 됨이고 정전기도 됨과 같다 할 것이다

보통 합과 충으로서 이온의 합과 별을 뜻하는데 

복음은 개체성으로서 중복적으로 무한 축적성을 말함이고 

반음은 알알이 뻘어져 나옴을 말함이다 

또한 오행 상으로는 극하는 것이 소화관이요

극 당하는 것이 내재성이 된다

 

 

은하수의 섭리

 

우리가 

金보다 불이 강한 듯이 여겨지나 

엄연히 불은 陽이 두 개인 것으로서 

하나의 陰을 짝맞추는 욕구를 옹호하며 따라감에 

陰이라고 하는 것인데

결국 행위성보다 불 자체가 강한 陽氣이기 때문에 

강열함으로 자극하는 데서

여기에 비하면 金은 온도에 민감하게 젖어듦에 

그 자극이 빠를 수 있는 것이나 

그 것으로 불의 열기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이 된다

그러데 왜 태양이라 하는 것일까

이는 곧 금속성이 전기가 잘 통한다는 것과 

다른 것은 삼키면

창자처럼 내재성으로 향하여 소화액을 방출하듯  

안으로 표출함에 겉으로는 감각이 닫힐 수 있는데 

이 금속성이 태양은 그대로 태극적 양기를 뿜어낸다 봐야 함으로 

우리가 전기에 초전도적으로 충격을 받을 수 있음은 

전기의 힘보다 이 金이라는 極陽의 발산력이기 때문에 

그대로 전기조차 배가되듯 드러내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즉 震雷는 陽이 하나인 것이나 

乾金은 陽이 세 개이니

이 것을 電荷力 附荷力의 최대치라고 봐야 함이다

즉 坤地는 양피 물자루와 같은 막이가 될 수 있으나 

乾金은 최대한 밀착되는 중량으로 外로 발산되는 것이면서

들어온 陽을 통과 시키는 것이라 봐야 한다는 것이니 

그러니 은하가 水라고 함은 

이는 자신의 중심으로 땀을  배출함에 坎水가 되는 것이고  

결국 이렇게 우주에 늘려지고 배여듦에 水라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기를 전선 밖으로 배출하여 엽화(葉化)시킨 것이 乾金인 것이니

이러한 전기가 전자를 만나 낱낱이 엽화됨에 눈이 남이 세포와 같음이라

이 것이 우주의 힉스입자적 잎이라고 해야 것이니

 

 

손자병법적 투철성의 과학

 

셋이 가면 하나가 줄고 

하나가 가면 둘이 될 것이라는 것을 더 논하자면

임상학적으로 적용하자면 

우리가 하나의 시약을 실험할 때 

분자구조 셋으로 나누거나 

두 개의 이온성에 접합되는 과다의 상태나 

원자구조적  세가지 유형 등에서 

어떻게 활용도가 나오는지를 추정하는 것이 

영감을 힌트 상으로 올릴 첩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즉 세 개를 함꺼번에 붙여서 하나를 소진하게 하든가 

하나를 붙이고 둘 은 나오게 하는 것 

추출된 하나로만 주입하여 붙여서 나오는 것 

어떤 기한이나 양(量)이 정해진 코스라면

삼분의 이가 자장 적당하다는 것

전기 콘세트 구멍이 셋이 있다면 하나는 누전일 수 있다는

콘센트 하나의 라인이라면

그 사용품은 변압기나 증폭기에 이상이 있다는 것

코드가 세 개라면 하나의 코드에 이상이 있어 해결이 안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럿 있으나 

무엇이든 요행은 바라지 마라

이러한 가상성이나 도상 위에 실험해 본 자를 이길 수는 없다 

최소한 인간 역사의 문명적 우월성이란 것을 보면 알지 않는가

 

 

관상의 우주

 

우리가 눈으로 보아 화이트홀이라 함은 동공이 있기 때문이요

우리가 귀가 있어 들음을 블랙홀이라 함은 달팽이관이 있기 때문이고 

목소리를 웜홀이라 함은 부드러운 말이 있기 때문이니

귀가 듣고 눈으로 발산함이 화이트홀인 것이요

말이 온유한 것은 웜홀이 있기 때문이라

다 그 동로에서 안색이 됨이 우주요

구석구석 찰색이 됨이 갤럭시라 함이라

 

 

만두

 

만두로구나

오! 생때를 대신한 만두로구나

콩을 많이 먹으려무나

콩을 많이 먹으려무나

콩 일어난 사이

속 썩은 두부를 많이 먹으려무나

냄새  안 나는 방귀와 트림일지니

입엔 냄새 난다고 손가락질하고면

똥꿈 밑으로는 줄을 못 세워 안달이 소똥구리 인생

차라리 소 여물 방귀가 더 나을 것

오! 앞 들을 보니 뱀밭이요

뒷 골짝을 보니 호랑이로구나

오!  콩 머리가 뱀 머리

만두로구나

만두로구나

뱀을 대신한 만두로구나

콩을 많이 먹으려무나

콩을 많이 먹으려무나

 

 

매미

 

매미는 벽이다

한 옥타브적 벽이다

여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게 해도

이 벽음 사이에 맴도는 것이다

매미는

무지개 색이 되지 못한 흰색의 원음이다

그래서 구름도 애벌레처럼 주룸이 되는 것이 있다

이 것은 팽팽함의 정점으로 울이 각피 될 때

그 안에서 움직이는 벌레와 같은 색의 벌레

매미는 색과 소리에 있어서만은

거북이 등 껍질처럼 단단한다

거북이 팔다리의 오색적 유연성

마치 지구의 오존층인 냥 감싸듯 우는 맴이는

저 밖으로 팅겨도 마음인 것이요 

안으로 탱겨도마음인 것에  

안으로 이는 구름은 싸매고 땅 속으로 들었을  

 

 

정말 국수로서 수염 스다듬을 자인가

 

국수를 들면 국화(菊花)의 대 쪽이다

아지랑이가 꼿꼿하다

국자(國字)에 수염이다

젓가락에 얹은 네 어머니의 젓가슴

주룩주룩 

후룩후룩

국엔 국수(國壽)가 있다

밥은 

수제비는 

다 하늘에서 가라앉은 것 

국으로서 말아야 수(壽)가 命이 되는 것

어찌 국이라고 國에 입발린 것이  

어지간히 국맛 내는 데 눌어붙은 듯이 한다만  

망명뜨기같은 설 익은 작태들    

 

 

 

밀!

밀어라

밀!

밀어라

저 버들가에 권태로운 길손이여!

밀어라

밀어라

복 주머니 씨방 쓿은 듯

소복히 민은 가루에

보슬 보슬 내리는 비로

대지가 딱딱 들어붙 듯

딱 풀이 되는 듯 풀이 나도록

밀어라

펼쳐라

풀처럼 달아붙도록

결핍과 곤궁

거드름과 나태의 몽중한에도 끈끈한

 

 

리드미컬

 

그댄 늘 미소지었지

그 건 보는 이에게 큰 선물이었지

한참 후에야

그 웃음엔 모짜르트의 템포에 얹어 놓은

바쁜 일상의 리드미컬과 같은 것이었지

한 박자 늦춰져도

이내 그 것은 우수였음을 알

삶은 모짜르트 템포처럼 독촉받는 것

그래도 그댄 그 음악과 같았지

 

 

일상성이 보약이다

 

사주에 火가 많아 忌神인 사람은

맥주나 막걸리를 마시면 좋고

水가 많아 忌神인 사람은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시는 것이 좋다

어찌 사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든가

정 마셔야 한다면

전자며는 양주 테이블에 앉으면 낫고

후자며는 맥주 테이블에 앉으면 나은데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소소한 것 같으나

이 것이 절명 운일 때

이겨 나갈 수 있는 가장 질긴 면역력이라 할 것이니

이 것이 사소함인 것이라 할 것이나

장류의 파장엔 좀 더 견실하게 함이니

이 것이 운이 좋을 까지 이을 수 있는

자강 자연적 밑거름이 된다고 할 것이니

이는 화는 심장을 말하기에

수화 상극은 다른 유보다 명이 짧기 때문으로

일상 절제력의 습관에도 필요한 것이니

굳이 번거로워 병이 되겠다고는 말아야 할 것이다

 

 

내 울 깨게

 

오! 보리로구나

살어름을 밟아다오

서리를 밟아다고

오! 겨울을 밟아다오

내 울 깨게

아리랑

아리랑

보릿 고개 아리랑

가뭄에 눈물이라도 보채려

하늘이라도 감동시킬 일

아리랑

아리랑이여!

보릿고개 아리랑에 보일 듯 말 듯

 

 

세 마디의 대 마디이면 다 하나의 감동  

 

대화 속에서 감동이 일어나는 것

이 것은 음악과는 다르다고 하고선 말 것

이는 곧 논리와 대위에

서로 강동이 있다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주고 받음의 명확성에 때문에

딱딱한 감으로  

실제적 감동을 묻힐 수는 없다고 하겠지만

음악도 이렇게 대위로서 이끌어 나가도

경이적인 감수성을 느씰 수 있음도 있고 보면

대나무 세 마디 통이면

음게가 다 드는 대금의 몸이 듯

천지인의 인간이라는 것이

목젓을 달고 부르는 노래와 같으니

논리와 대위가 실제감을 부자연스럽게 하는 듯이 하지만

세 마디 형식의 소나타를 위시한

어느 쪽의 3인 것이라도

덩당아 덩달이가 되는 것이려니

 

 

동반

 

보통 兄爻가 官으로 化해 剋을 받으면

정상 세포가 병적으로 노출되든가

인식되도록 해야 하는 것인데

공망이 되면 항체가 표적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때 공망이 충되면  

공망은 세 개의 방향으로 실체를 드러내는데

하나는 충되는 오늘에 그 정체가 노출이 된다는 것으로

이로서 점사가 끝난 것이기에

이 때는 예후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 있고

만일 出空하는 날 정체가 드러나는 것이라면

그 즉시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오늘로서 체우면 정확히 일 주일 후에 다 찬다는 것으로 

이 것이 衝空의 실체인 것이다    

이러한 衝인 연후에 치료가 되는 케이스가 되는 것이니

만일 世와 같은 爻가 발동하여 回頭剋이 되면서 生을 받으면

病은 심해도 아직 命에는 근접이 안 되었다는 것이고

衝이면 근접하기 전에 치료가 된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退神으로서 극을 당하면

먼저 작은 규모로 줄이고 나서 결정적으로 약을 쓰야 하고

進神으로서 충을 당하면 병이 어느 정도 더 진행된 예후로서

과감하게 절제해야 하는 지경이 되는 수다  

우리가 病理學에서도 매우 세심한 절차가 있다면

易理學도 그만큼 세부성을 맞춰야 온당하다는 것이고

병행하는 기본 틀이 된다고 봐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