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실(이 글은 순수 창작품임)

깔떼기 인생 스마트 폰

narrae 2013. 9. 9. 01:38

풍수를 위한 혈의 논리

 

금정이라는 곳에서 산을 건져 올리니

이가 산의 본보기라고 하는데 

그리 시원찮다보니 수리를 하고 수리산이라 

그러고보니 

어찌 어깨겨눔의 본보기가 살아남인데  

대야미이니 밤인 듯이 하는데

밤을 깎은 듯이 알밤이라고 노는데  

은반의 요정이라 김연아가 아닌가

오! 수리산의 장인이 빗은 명품

반달같은 등에 더 아름답지

이 거 어데 알고보니 상록이지 아니한가

자꾸 한양으로 크져 나가니

나라의 중심에 우뚝 섰어도 모자라는 산

정말 수리산이 명작이지

이젠 고잔이라고

나루를 건너 사해를 넘나들게 하니

벌써 세계가 지초의 우애인 것이지

만방에 평화를 몰아 안산으로 쌓은 위로일세

오! 새로운 길상스러움이 샘처럼 솟지 아니한가

이 것이 바로 가는 길이라 

오작교가 빨랫줄처럼 걸린 하늘이라 

오이를 열어야 은하수를 여는 것

오이가 은하의 극치임에 모자람이 없으니

다 귀와 귀 사이의 천이통을 뚫은 우주의 근본 

당연히 월곳으로 꿸 천하에다  

소래가 한 소꾸리 넘치도록 할 것이느니

보게나 

금정에 물 한 모금 목을 적셔도 

오이도가 양 귀로 걸고

미소가 입 찢어지게 걸릴 바지랑대 같은 산

열차가 열을 올리지 않아도 

샘을 퍼나르니 

정말 수리산이 명산

반월이 대야를 아름답게 하지 않음이 머물 새가 있으랴

풍수란 기의 바톤이 좋아야 명당인 것이요 혈이라

 

 

커뮤니케이션의 또 다른 유형  

 

겨울날 매미가 울어대면 시꺼럽다고 할 것이고 

신경 날카로원진다고 할 것이다 

허나 여름날의 매미는 어찌 시끄러워도 

가시 뼈도 세우지 못하고 녹아나는 것

겨울엔 매미가 없어도

상고대는 죽은 가지 끝도 일으켜 세운다

미다스의 이발사처럼 

소리가 묻혀도 쳥량 함이라 쳥량리

저 수원의 물을 끌어올리듯 펌프질로 청량함이라 

이 소리도 아닙니다 

저 소리도 아닙니다 

청량리는 소리가 없어도 청량합니다 

얼마나 청럄하면 

금정이 소매를 걷고 퍼올려 오히려 오이의 귀를 열겠습니까

갈대의 노래 

미다스의 이발사가 땅 속에 묻은 

이 지하 청량리라는 것이 갈대입지요 

그댄 귀로 들을 말을 

손으로 갈대를 만지면 알아듣나이까 

이찌 같은 뜻으로 나왔는데 

원소 한 주기율이 다르듯 

서로 모르 듯이 알아들어야 하는 것인지 원

저 조조의 아들들

조비(曺丕)와 조식(曺湜) 간의 형제 싸움을 말린다고  

콩 푹푹 삼고 태우는 중에

어지간히 통역하다 일대를 매우는 꼴이니  

언어의 표현도 

눈빛의 표현도 

다 섬세하게 다 알아듣는다고 하나 

이미 눈과 귀가 같은 뜻임에도 

알아 듣게 번역하는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라지만 

어찌보면 다 하나인 것 

변역하다 일생 다 보내는

참으로 무모한 망각의 그림자놀음인 것이거늘  

또한 언어가 달라 번역을 해야한다?         

 

 

깔떼기 인생 스마트 폰

 

그래요

옆에 앉은 아가씨 스마트 폰에 정신이 없는데

슬쩍 봐도 훔쳐 보는 것이고

주위를 두루 살펴봐도 시선하나 없이 깨끗하니

나만 엿보는 것이요 

대단하지요 

세상에 완벽한게 없다지만 

99 프로라고 해도 믿을 만치 보이니

대단한 시선 집중입지요 뭐

얼굴은 하나같이 몰아서는 잘 봐 달라고 뜯어고친

방금 나온 듯이 눈에 힘주어가며  

이미 자기들 실세라고 은근히 힙주는 것이고 보면 

이젠 실세라고만 밀어붙어도 통하는 듯이 하지만 

그런데 말이죠 

天眼通 정도의 시각에서 끌어들일 수 있는 영역은 되는 것이죠 

말하자면 光速의 인식 내의 원소 주기율로 말이죠 

대단한 집중몰이인 듯이 말이죠 

진지함은 다 그 안에 다 있는 것이 

곁에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다 잘 났다고 해도

자기만 잘 난 듯이 착각하게 하기는 깜쪽같고

다 못 났다고 해도 자기만 못 난 듯이 몰아붙이기도 깜쪽 같고 

뭐 원소 3 주기율의 범위며는 깔때기같은

홀인원이나 삼키길 좋아할 듯 싶다가 

원소 2 주기율로 완전 線의 차원이 되는 것이죠 뭐   

빛이야 얼마나 다정하고 우애가 있는가

흡수율로서의 반은 자기가 먹고

반사율의 반은 임에에 주고

세상은 반사의 입체성과 공간에

흡수의 블랙홀과 같은 것

사는 게 3 차원이라지만

2 차원으로 말려들어가는 것이지

 

 

나팔꽃 연가 

 

왜 물꽃은 크게 피지 않고 퍼지는가요 

그 거야 듣기만 하는 입이니 그렇지요 

말은 나간 것이지만 또한 들어와도 말이지요 

3 차원으로 나가도 말이지만 

2 차원으로 들어 와도 말이지요 

누군가 그랬지요 

소리는 크게 들린다고 

그런데 소리는 보지 않더라도 

크다 작다 실물적 영향력을 갖고 있지요 

마찬가지이지요 

빛은 들리지 않아도 

확대와 축소는 허상이듯 보이지요 

 

 

광섬유적 실체 

 

현 시각의 입체적 차원을 원소 3 주기율이라고 할 때

이 것이 블랙홀에 들면 원소 2 주기율적 線으로 

늘어지듯 빨려든다는 것에서 

그럼 렌즈 속의 확대된 상이 

평면적 상으로의 회귀로의 루트가 그런 것이라면 

모든 천체는 점 하나에 드는

그물망의 입과

손 끝인 벼리로 이어지는 초점은 있다는 것이 된다

 

 

앞통수적으로 보는 것과 뒤통수적으로 보는 것

 

귀가 턱 선으로 돌아 원이라고 할 때 

이 것이 수륜이 되는데 

이 수륜 위에 금륜이 되면 

이 륜이라는 것의 정지와 같은

고체적 정지성의 유지력을 말하는 것으로  

즉 풍륜에서는 정지된 상의 水를 보는 것이고

이는 귀로 나타나는 것이고  

수륜에서는 정지된 상의 金을 보는 것이고

이는 곧 頭骨을 말하는 것이고 

이는 전동기를 멈추면 갈라진 정류자를 보이기에 

곧 두 개씩의 이목구비 있을 말하는 것이고

그 구심적 안 쪽이 코로 숨을 쉬니 풍륜이라

즉 공기에 물방울 하나가 귀인 것이요 수륜이요 

이 방울이 갈라지니 곧 顔骨이 되는 것이라 금륜이라 함이라  

 

 

휘트먼과 엘리어트

 

어느 누구의 기고에 

노벨상에  톨스토이와 휘트면 빠진 게 아쉬운 부분이고

엘리어트와 헤밍웨이는 과대 평가라는 말이 있지만

엘리어트의 평론집에 문명과 문화는 다르다는 논설이 있는데

요즘 대중 교통에 보면 스마트 폰에 치우치는 것을 보면

확실히 離虛中에 삼차원적 입체성으로 실을 뽑듯이 하는데

거꾸로 보면 꽤나 문명성이라고 입을 벌리니

인간이 인간이라 하나 문화인도 안 되는 듯이

왠지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왕따라도 시킬 냥으로

괘나 당당하다 하지만

아이고! 이 에너지를 연로로 부으면 

문명이고 때깔은 날려나

운전대만 잡았다 하면 욕은 당연한 듯 문화라는 것에 

그리어 차라리 문명이라고 하시지요 

쪽팔리지요 

문화는 아파치 보호구역과 같은 것이 더 잘 보이듯

그 정도 동정치가 되어야

그래도 문화라고 하더라도 쪽팔리지 않지요

엘리어트가 문명과 문화는 다르다고 했듯

적자생존이니 

문명이라고 문화는 그 거 몽고족 기념관에나 가야 볼려는지

확실한 정립엔 불안정하다 싶은 휘트먼 시인보다

각질적 틀같은 것으로는 노벨상감이 못 된다고 하기도 하고 

설사 그렇더라도

그런 면으로 심오해봐야 나열식과 다를 바 없는 것이지 

실제 독특한 감은 

차라리 휘트먼적 불안성이

신이 빙의되는 듯이 나온다고 해도 

과학성이란 것이 점진적이고 시대적인 것이니

쉬사리 논리정연함을 뒷받침하기 어려우니

지금으로 봐서는 좀 둔한 조립식 낱말과 같지만

오히려 그 추상성이 훨씬 도전적이라고 봐야할 것인데 

엘리어트처럼 확고해도 속살 맛은 형편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껍질도 논리적으로 키토산이듯 맛깔을 내는 것이니 

맛이 있어 맛깔이라기보다

좋다고 하니 맛깔일 뿐인 것

어차피 시인이어도 불투명성의 확대일 뿐이고 

평론이면서도 구체적일수록

그 범주의 딱딱함을 조밀하게 바라볼 정도에서 

질감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색다른 면은 아니기 때문인 것이 있다

 

 

괘가 꾀다

 

우린 우주를

수륜에 가까운 우주성에 살면 귀와 같은 쏠림의 시간적 행로로 사는 것이요

원소 주기율인 7까지에서 6 주기율인 가에 있는 것이고 

그래서 귀가 소리에 기울이는 듯이 하나 

그 쏠림이 나무같지 않는 민민한 이끼류 식물과 같은 파도와 같은

퍼짐성의 우주로 커 가는 시공에 사는 것이고 

금륜에 가까운 시공성의 우주며는 

원소 1 族的 금속성의 속성으로 고갱이처럼

알심에서 피는 듯이 하는 것에서 피어나듯이 향하는 시간에 살 수 있음이듯 

시간의 행진이 시공성을 달리함의 시스템을 알아야 

전상층의 과학적 접근의 가능성을 엿불 수 있는 것이고 보면 

이 허공성을 집약적으로 정리를 해보면 이목구비의 특성이 되는 것이고

그 공간성에 따라  코가 없어도 사는 것이 되는 것이다

즉 원소 5 주기율의 전신성이 시공계라면 

굳이 코가 없어도 살 수 있는 곳이 되는 진화를 말하는 것이다   

즉 말하자면 六神의 성정이나 소리가

그 바탕으로 해서 육근 상의 하나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마치 전부가 전신적으로 나인데

이목구비처럼 가지지 못해 거울을 보듯이 못함으로

무언가 하나를 잊은 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즉 마치 숨을 쉴 필요가 없기게 코가 없이 태어났는데 

코가 있는 시공계가 있는 줄을 모르고 

자신만의 정상으로 찾아 맞추는 것으로 

무지개적인 가시광선의 한도 안이는 것이나 

원소주기율적 한도 안라는 것이나 

이 것 또한 이 시공의 범주라는 마크와 같은 것인데   

다 그 안의 여러 현상이나 의미로 다각적으로 드러나니

그 얇은 폭에도 정말이지 六神의 爻보다

괘가 꾀를 부린 것처럼 취용성이 넓다는 것이 되니  

괘란 꾀와 같다

즉 다양한 포섭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요 

꾀를 잘 부린다는 것은

그 기미를 잘 파악한다는 것과 같음이라  

 

 

주기율의 영역은 왜 필요한가

 

이는 소리의 영역이 있어야 귀의 쓰임새요

빛의 영역이 있어야 눈의 쓰임새이듯

그 영역이 허공적인 듯이 해도 

마치 쫄이고 보니 귀의 신경망과 같은 것이고 

눈의 구조물로 드러나는 특색을 띠더라는 것이니 

이는 인간의 八識 中에서 말라식으로 

망각의 강을 건넌 듯이 하다가

다시 아뢰야식으로는 六根의 기능이 다시 회복됨과 같은 것인데 

六道란 것이

원소 주기율이 다른 듯이 시공성이 다른 것으로

마치 무지개의 색깔이 달라도

그 경계를 넘지 못 하는 듯이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소리의 성분성으로 성씨를 알아낼 수 있고 

이가 원소 4 주기율의 레빌의 시공성이라면

종합적 골격은

나무의 속성으로 유기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금속적 원소 한 알의 성분성으로 볼 수 있으면 

원소 2 주기율적 레벨에 해당되는 것이며

불의 영역이면 원소 3 주기율의 레벨의 성질에 묶은 

성씨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이도 임의적 취용에서이지 

절대적이면 사주학적으로 파악을 해야 하는 것으로

같은 날 같은 時에 태어나도 성이 같을 수 없음과 같다    

다만 어느 쪽으로든 성씨를 캘 수 있다는 것이다

빛이며는 색의 분멸로 성씨를 알 수 있는 패턴이 있고

마치 옹심이 머리를 내밀면 가지인 것과 같다  

그래서 소리의 영역으로 봐서 성씨의 영역을 알 수 있는 기문도 

점서적(占筮的)으로 성씨를 알아맞힐 수 있는 것이니

사주학적으로의 적용은 무리가 많다

즉 六根의 어느 한쪽인 시공성이 허공일 뿐인데  

하나의 몸인 것이 각기 다르게 이목구비처럼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지 

세포와 같은 전신성을 갖고 있다는 것과 같다 

이는 곧 각기 다른 주기율적으로 뭉치면 

소리의 특성 빛의 특성만으로 발달한 구심성의 인력에 사는 것이지만 

이 것 또한 외곽적이어야지만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이기에 

경계의 벽으로 층을 이루는 것으로 분별력의 망이 집약이 되는 것이나 

음악이나 무지개나 한 옥타를 넘지 못 하는 번복성이니 

곧 파고의 폭만큼의 차이일 뿐 

거대한 수평적 폭의 면모는 아닌 듯이 한다는 것이다

 

 

천복지재(天覆地載)와 기문둔갑(奇門遁甲)

 

四柱는 格局과 用神으로 풀지 않으면 사주라고 할 수 없듯이 

奇門도 格局이라고는 있는 것인데 

주역도 문장 자체야 평이한 것이지만 

그러기에 그 탁월성을 드러낼려면 평생을 공부해도 모자란다는 걸 보면

천기가 노출이 안된 것이 아니라

일생과의 잣대로

그만큼 노력과 헌신의 결과로 터득하게 만들어 놓은 것은

신이 아니고서야 가능하겠는가 할 정도로

정말이지 잘 녹지 않는 사탕과도 같이 하고서는

외면은 아닌 듯이 추호도 딱아세우는 것과 같다

주역이란

그 탁월성도 평범하게 밍숭밍숭하게 닫혀 있으려는 것과 같다

천복지재란 것이 확실히 와닿는 것이 

기문의 연국과 홍국을 말하는데 

烟局의 三奇와 六儀,

洪局의 地支 

보통 짤막하게 요식 정도야 天盤과 地盤으로 본다지만 

烟局으로 일으켜 사회와 환경이 노출된 그대로로 볼려면 

마치 땅에서 먼지가 일어나

구름으로 갔다가 다기 돌아옯만 같은 과정과 같이

그 환경적 흡인(吸引) 그대로 드러내는 것과 같은 것이면

洪局은 다시 대지로 그 누적성을 감춘 것 같다는 것에서 

地載와 같은 것인데

순환성이지만 시작과 끝도 없는 듯이 방대함이 있다는 것이고 

그 섬세성 또한 원소를 차고 나간다는 것이다

奇門은 운세를 따지는 것보다 그 환경성을 중시해야 하는데 

사주 명리학과 병행해야 하는 것이 되어야 평생 사주가 되는 것인데 

만일 사주 상으로 불운이나 烟局의 격이 좋은 것이면 

그 三奇나 六儀에 속한 자가 좋은 것이지 자신이 좋다고 볼 수 없음이다 

즉 자식의 奇儀가 좋으면 자식은 출중하게 잘 되어도 

자신이 운이 나쁘면

똥물을 퍼서라도 그 보람으로 살 수는 잆음과 같은 것이 되는 것이지 

자신이 잘 된다는 보장은 아닌 것이다

奇門은 奇儀로서 결졍력을 갖는 것이니 洪局이어도 마찬가지이다 

전에 설명한 바 있듯이 기의는 원소 주기율의 그대로의 우주요 

성정을 갖고 화합물 그 성질대로 결합하는 것이다 

甲이면 甲,

庚이면 庚 그대로의 주기율적 레벨의 환경을 갖고 있으며 

그 것이 자식이라면 자식은 그 레벨 상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연국(烟局)과 홍국(洪局)

 

홍국은 혹성적 내장이기 때문에 

坎水에서 坤土로

즉 바다에서 육지로 진화한 듯이 順布가 되지만

水에서 침전물이 金인 것이나 

震雷가 전기를 띠어 나가고져 함에 輪이 일어나는 것으로

륜이 일어나니 자연 침점물도 뜨는 것이라 

金輪이 되는 것이라 함니다 

이는 원심으로 보면 껍질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가장 큰 공간성의 내구성이 火屬인 껍질이고 

이 것이 잘게 부셔지면 坤인 모래가 되는 것인데

이 것이 다시 뭉쳐지면 6인  乾宮으로 나오니 금륜에 해당됨이다  

이 것이 곧

그 부력적 굴레 밖의 진공성으로 坤인 것이 되는 것인데 

이 것이 九宮의 中宮이 되는 것이고 

이는 또한 지구의 지표에서, 

즉 원심적 표피성에서일어나는 파도와 같은 문양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水가 일어나 분수대같음이

나무로서도 슬로우비디오와 같은 있는 것이요 

수양버들처럼 축 늘어지듯이 떨어지는 것이니

그래서 5가 中宮이고 배꼽 부위가 5인 것으로 

洪局은 地支的 오행을 찾기 전에 괘상의 성질을 먼저 찾아 먹는데 

이는 곧 오장육부적 내장성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유기 화합물이 발생을 하면 天干的 요소가 일어나는 것이니

결국 이 소재성으로 해서

烟局은 두뇌의 생각의 영역에 미치는 원소성의 내역을

흰구름처럼 모이게 하는 것이다

 

 

맹신(孟神)은 天地人 중에 人에 속한다

 

본래 間方이 地人이고 

正方이 天이 되는데

즉 묘진사(卯辰巳)이면 

卯가 天이고 辰이 地이고 巳가 人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孟神을 늘 앞세우니 

시작의 초점이 맹점(盲點)인 것이 있는데 

즉 버드나무처럼 곧에 나아가는 기운이 卯이고

辰은 濕地인데

그 잔여의 木氣가 울창하게 나는 것이 풀인 것이다

거기에서 바다에서 뭍으로 나옴이 뱀인 것이요

육지동물의 발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맹신이 천지인 중에 인간에 위주한다는 것이 된다

우듬지만 남은 마지막 부분의 에너적 씨앗이 

클라이막스적으로 피는 것이 풀꽃인 것이다

 

 

무지개 반 쪽 그 두 쪽이 합하여

 

대나무는 제 마디 위에서 피어야 한다 

대나무는 가지를 치고 

삼대를 울리는 화음을 낸다 

부모님과 나와 자식,

어쩜 이 삼대 이상은 슬픈 무게였는지 모른다 

안으로 삼키다 겨우 꽃을 피우는 것이 대나무이지 않는가 

반으로 짜개면 보라색 안 무지개처럼 

대나무는 어느 시공의 해 마디를 죽순 키우듯 하려고 

이 시공으로 옴겨 오는 것인지 

어디엔가 참 빠른 시공이 있는가 보다 

그러니 속까지 비워 이승의 것도 아닌 듯이 

빠른 기억처럼 대나무는 사람을 부른 것이야 

어쩜 어덴가 해를 묵은 한이 굵은가 하니 

싹둑 잘라 대금을 내어 울게 하니 

그리어 대나무가 사람을 부른 것이여!

무지개 자외선 안의 빈 대통처럼

 

 

인류의 유산(遺産)

 

곧은 것은 빠른 것이다 

본래 민민한 것이다 

오바가 되는가 싶더니 오빠가 되는 것이고 

오빠가 탈색이 되면 오바가 되는 것이고 

빠른 것도 권태기가 오면 바른 것으로 남는 것이고

그리어 레어저는 죽어도 레어저여

바가 될려면 그래도

옆으로 처지지 않고 쭉 선 대궁어야제! 

이 시 이 정도면 

<남자한테는 참 좋다고 하던 시라던데>하는 말을 없을려나

 

 

서울 쥐 시골 쥐 

 

요즘 많이 공평해진 사회가 아닌가?

한 때는

쥐!

쥐! 

어지간히도 손가락질 하더니만 

그래도 서울 쥐는 명품 쥐 

시골 쥐가 수도권에 과반이나 되는감 

도리어 노리개감 하나 만들어준 꼴이지

서울쥐는 차원이 다르지 

쥐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서울 명품 쥐인데  더 나은 쥐 나와보라고해! 

이 식이지 별 수 있는 감  

명품 맛에 입으로만 나불거렸지 뭘 했는감?

다 하겠다 하겠다 흉내만 내었지 

소수 영웅주의야

세월이 지나면 어데 붙은 것인지 모를 것

또 끼리끼리 달라 붙게 되어 있는 것

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적을 내손으로 만들어가면서 휘게 만드는 재주야 느긋하지

이 것이 균을 죽일 듯이 하지만  

살살 달래 그만한 예방약이 어데 있음이든가

그런데 말이여! 

우두머리라고 시켰더니만 

쥐 주제에 서울쥐 시골쥐가 뭐가 다른가 하니

다 잡아 먹으보면 그 맛이지 그 맛이지 하고보니 

이 건 말이여 완전 고양이 새끼를 키운 거여!

가뜩이나 건질건질하던 참에 

서울 쥐 완전 명품 사구려 된 것이여! 

언제 시골쥐 귀하게 대졉했는감 

허나 시골쥐조차 같은 쥐 취급한다고 일어서는데

물러가라 고양이야 하는데

그 쥐가 그 쥐인 것이 꼴갑을 하는 것이지 별 수 있는 감?

구호는 다들 좋으니 좋은 만큼 순수하면 얼마나 좋을까만

속내는 다르지 않는감?

 

 

 

달이 날을 싸는 것을 순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태어난 해로서 띠로 한다

즉 한 굴레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10 일이 한 순인데

세 번을 싸니 밤 세 톨과 같다  

10 년이 한 순이 되는 이치가 대운인 것이다

이 대운의 우주로 삼천대천이면

한 달과 같이 채움으로  

인간 세계의 영혼으로 조성을 이룬 것이라 봐야 함이다   

사주에 년월일시가 있다는 것은 

면저 년으로서 조상의 인연줄이 있어야 하는데 

마치 그 원소가 되려면 먼저 그 주기율에 허락을 받아야함과 같다

한 주기율이 8 족이 다 포함된 것이니까

그러니 일이 한 해로서 조상의 굴레로 확대된 것

마치 현미경 속에서 학자의 눈으로 확대되어 살아지는 것이

일이 해의 배율로서 거뭐쥔 것이라면 

여기에 자연 순으로 묶음 그대로 10이 된다는 것이 된다 

어쩜 렌즈를 그대로만 비추고 있어도 

그대로 살아가질 수 있다는 것이 된다

 

 

戊와 己

 

이 戊라는 것에 왜 창 戈 字가 들어가는가하면 

물이 깊으면 서슬이 무섭게 끼기 마련인데 

그 깊이를 담은 그릇이 戊인 것이고 

ㄹ는 그대로 빗물에도 흘러간 자국이 ㄹ인 것이다

 

 

戊癸 合火

 

우주의 최대의 확장 폭이 戊癸 合火인 것인데

실제 계가 원소성의 최미립인 수소인 것이고 

무가 최무중력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우주의 끝을 말하는 것이니 자연 

점 상태인 계가 찢어지듯 필 수 밖에 없으니 火인 것이고 

나무에 초종적으로 피는 것이 꽃이고 나머지가 열리는 것이 된다

 

 

甲己 合土

 

갑기 화토는 

전기와 전자가 입자성으로 영글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건이 암흑 입자와 건지로 되어 있는 원소성의 효가 있는 것과 같다 

우주가 무한 퍼져 나가는 것같아도 

진송이 쫙 펴졌다가 다시 불꽃을 곷 피듯 토하고 

다시 접어 다시 펴는 것이 씨앗인 것이다

그런데 이 갑 전기가 기 토의 입자에 합하면 입자성이 커진다는 의미이다

 

 

丁壬 合木 

 

본래 임수와 병화는 어울릴 수 없이 찢어지는 것인데 

이는 바닷가에 사막이라도 물이 서로  호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제 정화 정도이면 온상 제배도 가능하다는 것이니 자연 

식물의 온도에 적정치가 되는 눈금과 같음의 나무인 것이다 

즉 온도계의 눈금인 물이 빛이 꼬리 내린 것만큼 오른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무계 합화는 광선적 눈금이라는 것이니 

빛은 우주에 나무와 같은 키애 눈금이라는 것이 된다 

 

 

丙辛 合水

 

물은 그림자를 나타낸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거울이다 

빛이 서리를 녹이나 

용광로가 쇠를 녹이나 마찬가지이다

모든 유기물은 물에서 나온다 

물은 핵이 있다 

이 핵을 둘러싼  것이 火이고 

또한 눈인 것에 동자인 것이 水인 것이다 

해빙을 말하나 

이 水가 극을 하면 지구 온난화의 후휴증이다 

 

 

乙庚 合金

 

乙은 풀인데 왜 새 乙이라 했을까

본래 乙은 巽風卦의 꿩을 의미한다

실제 乙은 씨앗이 종점 가까이 왔다는 의미이고

그 승화하기까지 새로 태어났다는 것과 같은데

좀 더 온상으로 재배함이 庚인 것인데

庚은 접붙이는 것

고구마 줄기처럼 잘라서 심는 것

운명의 죽이에 숙명성같은 것  

인간이 태어나면 탯줄을 자르는 것 등이

다 庚의 字形처럼 우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乙은 庚에서 풀려나면 새다

저 길 가의 바구니에 실리듯 나는 꽃인 것이다

이 외에 합의 묘미는 열거할 것이 많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巫癸合火는 우주가 팽창이라고 하지만

또한 흡수율과 같은 것이고

丁壬化木은 나무 정도의 흡수이면서 또한 팽창이 넘치면

꽃이 피는 것이고

그 꽃도 일체 다른 시공 상에는 정적인 것이었는데

흑막에 가려진 것인데

나무와의 인연이기에 피어나는 것 등이다

어쩜 戊癸 合化로 무한대로 가다가

잠시 나무로 머뭄과 같음이 인간과 같다는 것이다

보통 乙庚합을 배꼽에 탯줄을 붙여준 여분 

즉 열매 쪽으로 붙은 부분의 하나라는 것이고 

보통 金을 造花라 하든가 결단성의 결과인 것인데 

乙이 庚에 합이 되었으면 이미 꺽꽃이된 병 속의 꽃이라는 것이 된다     

癸수는 戊土인 호박 넝쿨에 붙은 경우는 마른다는 성질로서 

戊癸 합은 호박의 꼭지와 같이 단단함을 말하는 것이다 

 

 

화합물에 있어서 성분 떨어지기  

 

왜 六爻에는 化物를 취급하지 않을까 

이는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즉 卯戌 合火라면

이미 나타난 주체가 火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火로 위시해서 설명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그 불이 되기 위하여는 두 개의 합으로

즉 산소와 탄소의 합이듯 하는 것에

어느 한 원소성의 결여로 보는 경우인 것이

이합(離合)의 원점에서 보았을 때

매우 기본적 상태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중력의 문제

 

전기가 金을 띠고 인력이 되는데 

이는 전기가 木이 되고 

火를 바탕으로 土가 굳었을 때

보푸라기같은 것은 

곧 정전기의 일탈성으로 생물성과 같다면 

이벌레(서캐}란 이승의 멘탈이 되는 표준과 같은 것이다 

즉 木이 거푸집 굳은 데도 물만 있으면 자라나는 것과 같다 

재물이나 

물질의 바탕이 戊에 속하니 

지구의 중력도 땅인 것이니 戊土로 할 수 있으나 

이는 火와 土로서 金을 띄워 올리기에 鑛勿이 됨과  같은 것이지 

重力은 도리어 나무의 핵심적 부분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인체와 우주의 직접성

 

우리가 심장으로 金인 肺를 녹여 그 물발울이 腎臟이라고 할 때

그 물방울이 신장의 기능성으로 된 것이라 할 때

얼음과 같은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이 肺인 것이고

불과 같음을 유지 하기 위하여 심장인 것이고

물과 같은 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신장의 기눙이 자연 갖추어지는

섭리적 메카니즘의 구조를 파악한다는 것은

인문학 뿐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큰 발자취가 될 것이다

 

 

干合의 정체성

 

甲은 근육인 것인데 

살은 己土가 되는 것이고 

둘이 합하면 살이 지는 이치가 甲己化土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戊土는 산맥이요 등뼈라고 할 수 있는데 

단단란 어깨와 같이 팔을 별렸다고 할 때 

癸인 원자 한 알에서 양자적 꽃을 피워올릴 수 있음에 

이를 먼저 붙여놓은 것이 심장이요

丁은 小腸인 것인데 壬水가 빼면 융털이 나고 

肝이 중재역을 맡는 것이고

甲이 극을 당하면 신경 손상이나 근육 파열이고 

호르몬이나 당뇨등 병증일 수 있는 것이다 

乙庚은 철분이 넘치거나 아니면 부족일 수 있다

庚이 극을 당하면 백혈구가 적어지는 것이며

菌類가 번식을 하는 것이다

 

 

알로하가 알로에?

 

오늘은 참 이상하게 알로에같은 삶을 본다 

청포도가 반값이라고 적혔으니 

기왕에 들린 대형마트 사꾸려만 보는데 

시지 않을 것같아 먹어볼까 하나 샀다 

그런데 사고보니 헐찍한 두유에다 

컵 라면에 썪어먹을 두부 한 모에 커피 하나 샀다 싶은데

 가격이 두 배나 준 것같다 

왠지 정가를 주고 산 것같다 

그렇다고 몇 천 원어치 사고 바꾸자니 그렇고 

그냥 들고 나온다 

벤치에 앉아서는 마시고 보니 영 맛이 이상하다

790 일 알로에라고 큼지막하게도 쓰였으니

2 년도 넘을 것같은 알로에라고 

170일 이라고 쓰진 청포도는 어데 간 것이여?

날짜까지 큼지막하게 장수 자랑한다 싶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 거여? 

참으로 내 품위 내 입으로 넣는 데도 괜히 비싸다하는 거여?

인생은 이렇게도 앓으며 가는가 뷔여!

난 어지간히 오래 살려는가 뷔여 해도

위안이 윈안도 되지 않는 마당에

한 몇 달 치 적혀있는 날짜라고 샀더니 

완전 신선처럼 살아라고 선인장이 아니가 뷔여

쓴 웃음조차 안 나와도 어쩔 거여 

그리어! 내게 알로하! 하지뭐

그러고 보니 정말 알로아같은 기분이 든 것인가 뷔여

느닺없음 같음이 생생한 기쁨이 될 수 있듯 

점사 하나에도 기적같은 깨달음의 기쁨을 주듯  

삶이란 죽었던 사람이 살았는 것처럼 반갑기도 한 것이 있는가 뷔여!

 

 

소강절을 뛰어 넘는 법

 

일례로

산소가 화학구조로 해결이 되는 실마리인데 모르는 오리무중이라면

마침 불을 보았을 때

卯나 戌 중에 衝을 만난 것이 확실할 때 

분명 탄소와 산소 중의 두 루트의 화합물로서 

卯와 戌을 산소와 탄소 중의 하나로 가칭할 수 있음이다 

그러면 탄소가 아니면 산소 중에 해결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니우연의 힌트가 영감을 수준을 뛰어 넘는 것이면 

神과의 교감의 길도 열리는 것으로

인간의 영감성을 뛰어넘는다고 할 것이다 

이는 그 자리가 化神에 있는 것이냐 

즉 丁壬 化木이면 木에 있는 주체의 질문이냐 

아니면 목인 震卦에 물린 것이면 卦의 木인 것이냐 

아니면 寅이나 卯로 合하면 두 木에 잡인 것이냐 하는 것인데 

이 세 가지는 어느 면목으로든 들 수 있는 것이다 

점이란 그대로 들으라고 한다고 마구잡이로 드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어느 한 쪽으로만 든다고 하면

그 뱡항에서이지 다른 방향에서도 접근은 열린 것이니

자연 여러 길을 나오기 마련이고

다만 어느 루트적인가는 많은 경헙과 인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즉 戊癸合火는 심장인 것인데

化神으로 火 정도는 몰라도 심장이라고 까지 규정지을 수 있느냐와

卯戌이 合으로 주저 앉으면 동맥경화증이라고 해야 함인데

이 걸 衝으로 소통을 할 수 있는 문제

그리고 木이 경락인데 침술로서 뚫는 문제

그런데 다른 卦象에 있는 六神으로 묶이게 된 경우

그 病所와는 다른 부위의 혈을 찔러야 낫는 요점 등

왜 동양철학을 힘주느냐

이는 어떤 화학적 구조물에도 그 정확하기가

DNA의 접합부까지 갈 수 있음이 있다는 것이다

 

 

요점

 

경락(經絡)을 잘 보면

어떤 활성이 合이 되어 묶일 때

유의해서 봐야 함은

어떤 순환의 정체에 있는가 인데

전에 말했듯이 

많이 물어야 제갈공명이라는 것은 

아무리 신이 들려 신통방통이라고 해도 

갑자기 무식이가 영어로 일어로 말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이다 

영어로 이야기하려면 영어를 배워야 설명을 할 것이듯 

화학을 예기하려면 화학을 알아야 화학을 예기하는 것이다

영어를 모르면서 영어를 번역한다 할 수 없듯 

화학을 모르고 화학적으로 설명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 글도 기초학 부분으로 치우치지 

전문성과 응용력에 크게 치우치지 않으려고 하지만

다들 제 전문성만 최고인 듯이 하니 

神命도 오죽이나 답답하면 이 무식이한테 들볶겠나

 

 

10 배율

 

庚에 다시十干이 있다고 하자

즉 庚 符頭에는 甲申 順 中의 10 干을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만지고 느끼는 인식은 庚 하나의 질감에 있는 것이지만

이 질감으로만 있는 중에도

안에서는 다른 변화를 가지는 것이

그 順 중의 納甲으로 변화를 격다가 10 배율적으로 늘어났을 때

즉 庚으로는 하루이지만

이미 그 안에 10 일이 있는 것이니 10 배로 늘어난 것으로

이 것이 시공적 차원이지 말란 법은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干인 원소성을 만나도 10 년의 시공을 만나는 것이다

즉 세포에서 인식하는 것이 사물적으로 化하여 

사물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10의 배율로 나타남과 같다는 것이다

 

 

지식이란 질문의 한 방식을 터득하는 것라고 봐야 하는데 

 

지식이란 질문의 한 방식을 터득하는 것라고 봐야 하는데 

아무나 지혜가 좋다고 하나

識門이 六根의 맛깔처럼 섬세하지 않는 다음에야

아뢰야 識에서 다시 그 식견을 가질 수 없을 뿐더러

즉 六識이란 질문의 門인 것인데 

그로 통하지 않고 질문이 있을 수 있으며 

맛으로서의 진취성 없이 무엇이든 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六根으로서의 맛의 분별은 곧 識의 입인 것이니 

이 걸 정화하지 못하면서 지식보다 무거운 무지로서 

입으로는 늘 지혜를 부르짓는 무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슬이 원자적 차원이라면 서슬은 양자적 차원이니 가볍게 보지 마라

 

서슬은 있으나 표현할 길은 너무 깊은 것이듯

우린 이슬 정도 맻을 때 아는 정도의

표현에 올갈 수 있을 정도의

그래서 이슬을 수소 하나의 시발점으로 할 때

주기율적으로는 표현적으로 나왔기에

사물이 六識의 인식에 잡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니

실제 이슬이 원자라면 서슬은 양자적 차원이라는 것이다

합은 이치를 하나 남김 없이 닦는 것과 같다 

子는 丑과 合하여 土인 것은 

물은 분수가 아닌 다음에야 물 위일 수 없고 

이는 곧 혹성의 地殼을 총칭해 중력이라고 봄이니 

그래서 동물 중에 최고급인 소로 하는 것이다 

역발상적으로 

子水의 뿌리는 亥水이고 

卯 木의 뿌리는 寅인 것인데 

이는 오히려 뿌리의 잔털이 기둥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거꾸로 기둥이 뿌리의 의미가 된 것이다 

子水는 丑土으로 잡았으나 

잔뿌리인 亥水는 못 거두었으니

자연 寅인 나무로서 끌어 들이는 것이고 

이 나무로서 끌어들일려니 

자연 씨앗이라는 것으로 펌프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땅밑으로 잠망을 하는 것이 씨앗이다 

막상 이렇게 수를 다 끌어들이고 보면 

남는 것은 도자기나 사기그릇과 같이 

불이 야무지게 토를 다잡으니 물에도 녹지 않을 정도로 

긴 세월을 요하는 것이니

그 세월에도 잔영인 것이 풀이요

풀은 죽지 않았다 녹지 않았다는 뜻이고

이 넓은 우주에 풀과 같음이 이슬이고 서리와 같으니

그 근원을 힉스입자 정도까지 대입을 할 필요가 있고

이는 물의 깊이로 봐야

이슬의 서슬적 깊이를 알 수 있듯이 하는 것이다

사막에 풀들이요 

가마터에 잔풀이요 

마당에 잔풀과 같음으로 늘 말라 있는 것이 묘술의 화이다 

매우 건조한 기후 조건과 같다 

辰이 楡를 끌어들이니 구름이 하늘을 덮고 조화를 부리는 것이요

巳申 合이 되니 비가 됨이다

 

 

얼굴과 괘상

 

입은 兌澤이니

澤上絶의 입인 것이나

아래도 絶이 되면 水가 되는 坎中連인 것으로

이는 곧 澤으로는 넘기는 길을 닫고

열어 넘기면 坎水라는 것이니

이 것은 제일 먼저 삼투압적 확대경인 것이고

햇빛이 투명 유리에 빠져 나가듯

모든 광합성으로서의 화합물이

그림자의 유기화된 형상이라는 것으로 해서

총체적으로 광합성의 빛이라는 개념으로 삼켜 넘기는 것이니

그래서 입을 兌인 동시에 坎이라 함이다

그리고 턱 부분으로만 보면

입은 이빨의 마찰로 震下連의 震雷인 것이 되는 것이고

얼굴의 아래 부분으로 진동을 하는 것이라 봄이다

그래소 반대로 巽下絶은

코끝인 아래 부분에서 출발해 위의 콧대와 이마

즉 두 陽을 타고 숨을 쉬에 되는 것이다

 

 

化神의 결과성보다 주체성의 시각성

 

寅亥 合木에 寅이 衝散이 되면

간 질환으로 腹水가 찬다

즉 亥가 木으로 흡수가 안 되니

자연 복수가 찰 수 밖에

卯戌合火는 수증기에 후첩지근해도

불은 탄다는 것인데

戌이 衝散이 되면

세포가 壞死하는 것인데

이는 심장이 순환을 못 시키니

관상동맥이 壞死하는 것이다

子丑 合土에 丑이 충파되면

胃下水가 되는 것이고

혈소판 감소와 같은 자반이 일어나며

아미노산의 결여로 신장이 당뇨의 부담을 많이 가지며

살이 늘어나지 않고 壞滅하는 것이다

辰酉合金에 辰이 衝破되면

건조성이 약하고 구름이 몰리질 않으며 

변비가 되는 것이다  

合이 되면 늙은이의 허리에 비가 올 징조를 느끼듯

싸늘한 감이 대지로 깔리는 것이며 

大腸에 용종이나 치질이 발생하기 쉽다  

巳申合水는 백혈구 적혈구의 합인데 

申이 충파되면 응고성이 약하고 빈혈인 것이고 

巳가 충파되면 칼슘과 헤모글로빈 등 부족으로 

혈액이 굳지 않는 혈우병일 수 있는 것이다 

즉 혈액이 水인 것인데 

巳申으로 돌아가면 굳은 돌에서 건조성으로 돌아가는데 

合하여 용해되면 피가 되는 것이니

오줌에 성분성의 약화가 있는 것이다

이는 원인의 시발점을 長生地이 아닌

水의 반대편인 墓絶인 시발점에서 보는 경우를 말함이다      

 

 

卦의 물성

 

물은 坎中連의 중력성 때문에 

坤三絶인 모래 알에 스며 중심을 이루는 것이나

실제 중력성은 金인 것이다 

즉 亥水까지 다 차면 乾이듯 콘크리트가 되는 것인데 

거푸집으로서의 벽으로 마르면 

즉 물의 배합이 亥인 것인데서 

巳가 衝하며 떠나며 증발을 하며 역마가 되면 

金의 장생지가 되어 乾三連이라는 콘크리트가 되는 것이다

辰酉의 合金은 

기후 상으로 구름이 모이는 것같고 

우주적으로는 성운이 모이는 것같은 

온갖 변화의 주체라 할 수 있고 

모든 화합물의 주체를 예기할 수 있는 단계인 것이다 

즉 지금은 酸이든가 鹽이든가 

즉 염화나 산화 등의 결론적 주체인 金이 되는 것이고 

염화나트륨이라고 할 때 

鹽化는 이미 辰으로서 화합이 된 것이고 

염화니 칼슘이니 하는 것은 이미 그에 비중이 된 

금속화와 원소의 중력성을 새로이 갖춤에서 金이 되는 것이고 

巳申 合水는 물의 표면장력 정도의 원심력이고 

寅亥合은 나무의 나이테적 원심인 것이고 

卯戌合은 거북의 등각과 같은 원심인 것이고 

속과 겉은 空과 實처럼 다른 것이다 

이 空이라는 것도 껍질이 있을 때의 비교적인 것이고 

껍질이 實을 채우면 空이 實이 되는 것이다

 

 

멀어지면 극은 스스로 산다

 

金이 불에 탄다는 것은 무르다는 

전극이 같은 것이면 서로 밀어내는 듯이 차는 것으로 

역마성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자연 금은 녹지를 않고 굳어지기 마련이니

상극이 있어서 멀어짐이 아니라 

멀어지기에 자연 상극이 서로 발생적으로 산다는 것이고

동서 간이라고 하지만 

실제 팽창과 축소 간에 내외로서 극적 전환인 것이니

세상이 확대경에 속한 것이라면

빅뱅 이전의 거울의 초점이 있다는 것이다

멀어질 때 상극이 쌓이지 않으면 

당길 때 극이 없음에 풀려나감인데 

멀어질 때 극으로 많이 치우치면 

당길 때 자연 힘차게 당겨져 가는 것이다

 

 

申時는 巳에 둥근 물방울이 되고  酉時는 굳은 자국인 된다

 

申이나 酉가 巳를 발길질을 해야 

같은 極끼리 밀어내어 도는 것인데

이는 金이 火에 녹는 것이 

金과 金 사이의 조밀성을 離虛中으로 넓힘으로서인데

이 것이 장생지라 함은 剋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멀어지며 밀어냄으로서 이완되어 지는 방향으로

스스로 이익이 되어간다는 것이기 때둔이다

즉 다른 것은 墓絶로서 밀어내는데 반해 

이 金은 장생으로 밀어냄에서 인데  

저녁 이전까지는 

이허중의 거푸집이 좋아

하늘도 그대로 둥근 상이라는 것이고 

포도주처럼 벌겋게 넘어가는 것이 酉時인 것이고

실제 둥근 풍선같은 것이 

자국처럼 찍히는 凹인 兌澤이 저녁이고 보면

실제 火의 팽창력 내에서는 둥글게 있지만 

巳를 밀어내는 酉金은 그 型이 굳어진다는 것으로

長生이 되는 것이다

인생은 원동기가 도는 기본적 설리에도 

자연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 할 것이다 

 

 

밥은 하얀 것이나 <먹자!>는 묵자(墨子)

 

먹자라는 어원은 확실히 인간은 그림자라는 것이여

어찌 그림자가 먹지를 않으면 묵자(墨子)라고 했겠으리

그리어 먹이 종이를 먹는 것이여

어쩜 하얀 포장지 재료와도 같은 쌀을 먹는 것이여 

아예 종이가 되지 않은 쌀을 먹으며 먹을 씌워도 기억을 한다니까요 

오히려 쌀의 종이의 기능성으로 먹자를 다 기억한니까요

먹자! 

먹자! 

묵자! 

묵자!

 

 

祖와 宗

 

宗이 무엇인가

祖의 동생이 宗이지 않는가

본래 祖란 아침과 같아 한 번 비치면 그로 다 가는 것이요

이는 빛의 자리공과 같은 것이고

宗은 너울이 드러나는 현재 피어 있는 원의 상태

즉 테두리러서 올라와 있는 파고의 상태인 것을 마루라고 함에

宗이 되는 것인데

즉 어느 한 파문이 너울과 상관 없이 한 파문만으로 된 것의 조에

祖가 없으니 동생이 이어 받음에

그 것은 현재의 너울의 파고의 마루에 있다는 것으로 宗인 것이니

빛의 광합성이 족보라는 것인데

즉 빛이 종이라면 그림자는 먹인 것이요

이 빛의 흡인력으로 광합성으로 키운 나무인 것이니

나무는 빛의 섬유성적 종이를

완전 물질적인 감각으로 빨아들이며 먹는 것

그러고 보니 무엇이 무엇을 먹는 것이여

 

 

鐘과 宗 

 

성분학 상 종(鐘)일 수 있음이나 

모양의 틀로서야 종(宗)이 맞지요 

본래 이 놈의 종내기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새끼라는 말보다 점잖게 하는 말이니 

종내기가 매우 부드럽지 않는감유?

이 종자는 고깔 머리에 보일 示인데 

이 示字란 것이 어떻게 보이는 것이냐 

안에서 좌우로 치는 붕알처럼 보이는 것이냐  

좌우 붕알에 마루처럼 서야 종내기인 것이냐인데

빛이 자외선 적외선을 치고 가도 한 바퀴 도는 것이냐

완전 레이저로 쭉쭉 뻗는 것이냐

 

 

墨子도 세퍼드 색 종이를 먹냐 똥개색 종이를 먹냐인가

 

역시 귀족은 세퍼드 종이였야 하는가 봐여 

종내기 밭이 종이인 것이고 

우리가 종인 울을 차고 나가면

종내기 밭을 차고 나가는 것

세파트는 똥도 안 누는 귀족 아닌감

위대한 철학자 묵자

세퍼드 색 종에 묵칠을 해야지

단색인 똥색에 필하면 무식해 보여

말이야 위대한 종족이니

세계를 주름 잡느니 해도

자긍심은 세퍼드여야 하는 것이여

얼룩얼룩 도대체 햇갈리는 종이이기는 한데

거기에 단색인 먹도 아리송

먹색 잘 먹인 놈만은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이지

똥개색 묵자놈은 완전 왕따여!

누구든 이설 달지 말어?

똥개 들통 날라 세퍼드로 뜯어고쳐야지?

 

 

바람이 입을 열면 

 

바람이 문을 열면

소 한 마리 지나는 정도가

巽下節의 입으로 땅을 훑는 태풍의 눈을 말함이요

이 입이 닫히면 乾卦인 것이니

쥐 한 마리 지나는 틈과 같다는 것에서

子丑이 合이 되어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이다

보통 重天乾 卦에 初爻 발동이면

潛龍은 勿用이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 잠기는 정도냐 하면

巽風의 입이 거인이라면 丑이 되는데

子인 쥐만한 것은

소만한 입으로 빨려들어 잠기게 되어 있다는 것이니

이 水라는 것은 은하수로서 잠기는 형상이다

즉 토네이도가 하늘로 은하수에 잠기게 하는 것인데  

소가 빨려드는 바람이라면

쥐만한 것으로는 잠긴다는 것이다

이는 곧 본괘가 변괘에 잠긴다는 것이다

근대 물리학적 주역의 해석으로는 

건은 렌즈요 중력성이요  

최초로 이는 것은 유기성이고 벌레라는 것이고 

파장성이라는 것이고 말로서는 부드런 이야기라는 것이나 

다 巽이 乾에 잠긴 것 

즉 우리가 이야기하는 우주의 바람이라는 것도 

빅뱅 이 전의 바람에 있다는 것인데 

이를 역발상적으로 보자면 

빅뱅이 원소 4 주기율이고 우주풍이 원소 5 주기율인데 

4 주기율의 뒤가 되는 것이다

이를 거꾸로 볼 수 있는 것은  

곧 꽃이 먼저인 것인데 나중에 피는 것이듯 

피는 것이라기보다 드러나는 형상인 것인데

실제 九宮圖는 역행적으로 中宮이 빅뱅이고 

巽이 우주 풍이고

震이 씨앗을 틔는 것이고 톡발성이고

坤에 심어지는 것이 중궁에 심어짐과 같은 것인데

이는 奇門은 地理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地殼 이상을 논하지 않는데서

곧 重天乾 卦에 初爻 발동의 子丑 合에 다 포함이 된다는 것으로 

이는 곧 384 爻 중에 初爻가 지구를 의미한다는 것이 된다

즉 神의 시각으로 보는 사바세계란 潛龍과 같다는 것이 된다

 

 

관상학적 얼굴의 卦象 

 

絶이란 두 개로 떨어진 상의 陰爻이라 絶로 표현을 하고 

連인란 붙은 것이라 陽爻이라고 하는 것인데 

얼굴의 모양을 보면 卦象의 間爻를 보는 것같은 것이다 

즉 그림자가 맻혔다 사라지는 것같다는 것이다 

즉 巽下節이란 태풍의 눈이 땅을 훓듯 하니 

콧 구멍 두 개의 絶에다 코와 이마가 連이 되는데 

이는 마치 회오리가 위에서 사방으로 퍼짐과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震下連이란 이빨이 부딛히는 陽이라는 것인데 

이는 광대뼈와 눈의 절 아래에 있는 것이라 함이다 

澤上絶은 눈으로 말한다 함이고 눈으로 빨아들임을 말하는 것이니 

입으로의 말보다 우선이며 

원소 주기율로서도 상급에 속하는 것인데 

눈은 絶인 것에다 코와 입을 포함헤  澤上絶이 되는 것이고 

물에 비친 그림자는 눈에 비친 그림자와 다르다는 것은 

눈은 그릇의 양 옆에 비치는 태양과 같은 것이고 

물에 비치는 상이라는 것은 눈이 하나여도 비친다는 것이 있다 

눈썹은 계곡의 꼭대기를 말하니 絶이 되는 것이고 

이마의 주름은 하나로 그어지니 山인 분지가 艮 되는 것인데 

이마가 連이 되면 

자연 눈도 絶이요 광대뼈도 絶이어서 艮上連이 되는 것이고

離許中은 이마인 連과 눈 絶과 입 連으로서 드러나는 것이고 

강열하고 역동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坎中連은

코를 중심으로 몰이 넘쳐다 줄었다 하는 바란스가 있는데 

눈이 節이요 코가 連이요 목구멍과 기관지가 갈라져 節인 것이다

그럼 건과 곤은 어데 있는 것인가 

이는 中宮이 乾인 동시에 坤인 것인데 그 바탕성과 배후성이라고 봄인데 

뒤통수에도 머리를 양갈래로 땋았으면 곤인 여자인 것이고 모인 것이고 

그리고 또한 夫의 뜻을 따라서 乾인 하나의 머리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머리를 원자 한 알의 의미이기는 하나 

두 개의 수소가 결합된 것이기에 분자로 하는 것이고 

이 원자가 분자로

이는 곧 분자로 봐 양두엽이 잠재된 것으로 봄에  

이는 마치 

시계의 초침과 같은 원소들이 분각으로 몰리는 것이 인생사라는 것이다

본래 秒가 벼 禾가 추수가 되어 묶음이 分인 것이니

그리고 寺에 올려지는 공양이 時라

그 광배에서는

이를 드시고 흔쾌히 햇살을 뿌려주시는 햇 쌍이라 함이라 

이는 곧 지구의 자전 축이요 하루라고 함이라 

그러니 지구의 자전에는 뒤통수적 밤이 있는 것인데 

그런데 달은 나눠 먹자 

나눠 묵자(墨子)고 하니

어찌 벼 禾를 너만 먹으라 했나 

아예 상징성으로 머리칼을 양 갈래로 땋았는데

그런데 달은 말이여! 

발은 잘 먹고 살찐 것만 뽑아가는 것은 아니지

백비(白賁)라도 걸어갈 수 있는 놈 

말이라도 텅 비운  말을 탈 수 있는 사람을 뽑지

 

 

자율신경계적 렌즈

 

우리가 자율 신경계를 보자면 

머리가 빅뱅의 전도 아니요 후도 아니라고 할 때 

목으로부터 빅뱅이 시작이 되는데 

척추가 33 마디이듯 

천상 층 33 증이 되는데 

이는 척추 수만큼이나 웨이브가 일어나니 

이 33 층도 북극으로 빠지듯 미추로 빠진다는 것이다 

즉 요도와 방광인 

이는 곧 목으로 피어서 심장인 꽃으로 피어서 

꽃가루인 내장기관을 비롯해서 

대장인 한 굴레의 열매를 짓다가 

결국 뭉크러져 한다는 것이 된다 

곧 이것이 씨앗인 머리를 보존하며 움직일 수 있는 적합성의 말하는 것이며 

이는 교감신경이 33의 천상층을 다 지나간다는 것이 되고 

부교감신경은 왜 두뇌에만 있는 것인가 

이는 곧 부교감신경은 빅뱅이 아니기 때문인 것으로 

본래 폭발이라는 것은 진뇌를 의미하고 

팔괘가 접힘 주분을 펴는 형상과 같으니 

목에서부터 소리가 나는 부위로 부터 빅뱅을 전제로 할 때 

즉 교감신경은 빅뱅이요 

부교감신경은 빅뱅이 아니라는 것으로 

영혼이 각각 파견적 부위가 된다는 것이 된다

우리가 종을 33 번 치는데 

이는 종을 한 번을 쳐도 웨이브가 33 너울이면 

척추를 하나 지난 감동이라는 것인데 

이는 마치 앞선 회절이 작은 회절을 품음에라 

결국 낳고보니 또 회절이 회절을 낳음이라  

 

 

등은 산신령스러운 것이다

 

즉 산을 허리라고 할 때 

그리고 그 관할이 산신령님이라고 할 때 

그 역할은 자율신경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 영혼성이나 혼백성이 테레파시적으로 

척추의 자율신경에 미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척추 마디마다의 자율성 

즉 심장이라면 

흉추의 첫번째 부터 네 마디가 관련이 됨이니   

여기에 관련된 산맥의 신령스러움이 있다는 것이 된다 

 

 

워낙 돋음발이 대쪽이라

 

대나무는 스스로 신경 자체일 뿐이라는 것이다 

굳이 살을 붙이지 않아도

그래도 흙은 약간 빌렸다고 해도 할 수 없고 

워낙 우후죽순이듯 돋음발이니까 

천중이 콩 볶은 듯이 해도

흙이라고 붙어 내로라 하는 것이 대나무이니 

게절인들 달래고 두드려 팬들 말을 듣겠는가 이다

대나무는 겨울빨로 겁준다고 해도 죽지 않는 거여

 

 

합하면 무거워야 하나 색은  반대일 수 있다

 

무엇이든 합하면 무거워야 원칙인데 

이 흰색이라는 것은 삼원색이 합하는 것인데도 

도리어 가벼지니 어떻게 된 일인가

이는 무우가 바람 들면 흰색이요

얼음도 바람이 들면 흰색이 되는데 

색깔은 더 선명하지 않는가 

이는 곧 색이 물질계라고 하면 

가벼워지고 거푸집이 더 크게 늘어나 허공이 더 커지면 

색깔은 흰색인 합의 색이 되는 것이니 

이는 가벼워지는 방향의 부피가 커진 물질의 무게를 갖춘다는 것이니

이는 곧 허상인 거울의 상이 허상이라고 해도 

거울을 좀 먹듯이 병행하는 것 이기에

반대급부적 무게를 느낀다는 것이 된다

즉 렌즈 속의 확대된 상이 확대 될수록  더 가벼운 상으로 달리는 것인데

우리는 삼원색적 합으로 무게를 더하듯이 느낀다는 것이다 

또한 그 것이 물질계가 되어 있다는 것이 된다

 

 

坤과 세포

 

우리가 5인 숫자를 산이라 하고 척추라고 할 때 

그 척추 마디 마디마다 자율적일 수 있는 것은 

원소8 족처럼 거의 무갑각적이면 

외부적으로 무반응적이니 당연히 집약하여 분리할 수 있음인데 

분리될 수 있기에  집약을 더욱 강하게 함인 것이고 

그래도 수리적 출발은

아무리 붙여도 독립적으로 개체일 수 있을 때 수리인 것이니                        

이 것이 곤이기에 세포적이어도 온전함이란 것을 작아도 갖추니

곤인 것이 되는 것이 된다

그럼 이 세포 하나에

腹部란 얼마나 큰 것인가

지구만하게 크다는 것이 되고

이 세포로 다 메워도

실로 배를 메운 줄 모르고

자기가 배를 다 메우고 돌아보니

자신이 배인 줄 아는 듯이

온전함이 자신인 줄 알지만

깨진 독이 자신임을 모르는 것과 같다

 

 

램프의 거인은 곧 가장 긴 파장의 적색선인 뱀

 

뱀이 왜 긴가를 아시나요

뱀은 색의 파장 중에 가장 긴 적색 파장으로

램프에 들었다 나오니 자연 그렇타우

우리가 무지개 띠를 항아리의 두께라고 할 때

푸른 색에서 초벌이 되어

누른 색에서 개금을 먹이고 마지막으로

화로서 굽는 것인데 말이쥬

문명이란 뱀의 지혜처럼 굽는 것이쥬

즉 적외선으로 완전 나와야 시선 하나에 잡힌

명품 도자기라는 것인데유  

뱀은 巳인 것이고

뙤리를 튼 것이 酉인 것인데

실제 유까지 가 식혀야

옹기 하나 빠지는 걸작이지유 뭐

어찌 되었든 자외선 안에서

적외선 밖으로 나와야 새가 병 속을 나오는 것이 아님감유

뭐 인생은 식초 먹인 달걀 껍질과 같이 유연한 것이지도 모르지유

가만히 보면 적색 파장의 그뭉 망일 때 가장 빈틈이라는 것이니

이 때 직외선 밖으로 나가라는 것과 같지유 뭐

굽긴 자는 남고 익은 자는 남는 듯이

실재 그 것이 인생의 그림자로 맺힌 듯한 그림과 같은 것이니

그 그림에 맺힌 자는 그 그림으로 굽긴 생으로 남고

물 식초 먹은  듯이 강한 자극으로서라도 나갈려면

굽기지 말고 나가라고 무지개 밖인 것인지도 모르지요  

토끼 키만한 파장이 푸른 색의 파장이면

뱀 길이 만큼 늘어난 파장이 붉은색이니

즉 램프 밖의 거인이 뱀이라면

램프 안의 거인이 적색전이라는 것이라

이는 생각이 긴 만큼 문명이 된 것이고

이무기적 초탈의 논증의 길이가 길다는 것이니

그런데 이무기가 이무기인 것이면

아라한인 것이고

한 발 물러서서도 발이 날 수 있음이 용이라 부처라 함이니

즉 빛은 사라지면 보이질 않는다

어둠 속의 빛은 저 혼자의 자유자재이니 것이지만

빛으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라

즉 아무리 도가 높아도

광섬유적 DNA로 엮어 실상으로 펴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고

스크린의 인물과도 통할 수 있으려면

풀이 녹듯

빛인 주사선이 줄어드는 길로 함께 줄어들 수 있으냐인 것인데

즉 무대 안의 인물 즉 화상 안의 진행형이 화상 밖의 인물과의 대화

이 것이 병 속의 새를  끄집어 내는 본질성이 있다는 것이라   

 

 

남섬부주라는 물리적 합리성

 

즉 우리가 스크린 상의 인물에게

관객으로서 서로 대화할 수 있을 려면

관중과 스크린의 인물들이 필름에서 만나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필름 속으로 만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곧 긴 장마에 풀과 곡식이 녹아버리듯 사라지는 것인데

이는 빛 즉 빛의 속도 안의 인식으로 다 피어 있는 의지와 같은 것인데

어둠으로 녹아 사라짐은 그 광섬유적 거푸집이 허물어진다는 것이니

즉 그림자적인 것이 물체적으로 일어남이 빛의 섬유로 일어남이니

이가 곧 광합성적으로 일어남이지

빛이 없으면 허물어진다는 것이 되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이고 저승으로 가는 것이니

사물이 살아 있는 것이

광섬유적으로 이루어져 있음에 남섬부주라고 하게 되는 것이니

이는 이론 물리학적으로 남섬이 정확하다는 것이 된다

 

 

말이나 염소나

 

누군 뱀이 발이 있었는데 퇴화되었다는 것인데

마치 고래가 육지 포유동물있다가 바다로 돌아가니

포유성은 그대로라는 것이 듯이

뱀은 바위 굴에 기대어 산다

이는 곧 붉은 색은 적외선으로 기대어 산다는 것이고

적외선 굴에 나오는 것이 뱀이다

그래도 가시광선의 울타리가 인간의 온기라면

무지개 세상도 자외선으로 임신을 하여

노란색 대지 위로 진화한다 다음 식초를 태워 굽기든가

식초를 안고 적외선으로 나가든가

어찌 보면 산성화란

카멜로온의 피부 벽화 그림만 쏙 빼어

적외선 밖으로 가져 가려는 것과 같지요

즉 벽화인 채로 남으려는 욕구와 벽화인 채로 떠나려는,   

 

 

파장의 길이만큼 링으로 두를 때

 

새를 끄집어 내는 것은

적외선적 새가 자외선적 새를 나올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이는 곧 적색 파장의 링의 몸이

푸른 색 파장으로 엮은 링에 들 수 있느냐와

나울 수 있느냐인 것인데

 

 

날개가 아닌 초월의 도

 

말은 빛이 나타났다 사라짐과 같은 종적을 말함이고

잘 나가면 페갓소스인 것이고

못 나가면 이카로스의 날개가 되는 것인데

이무기가 종적 없는 도

즉 떠나면 다시 윤회하지 않는 도

마치 빛이 사라지면 보이지 않 듯 나타나지 않는 도

그래도 고래가 바다로 돌아가듯

부처님도 네 다리의 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돌아서도 다시 돌아 볼 수 있는 자비의 미소가 되는 것이니

그리고 이카로스의 날개가 떨어지면 염소인 것이니

즉 페갓수스인 말이 떨어지면 염소가 된다는 것이 되고

썩어도 준치라고 원숭이는 왠 나무를 날 듯이 잘 타냐

 

 

 

水의 極은 火이고

金의 極은 土인 것인데

木의 極은 木인 것이니

이는 震木이 다하면 巽木이 되는 것이다

이런데 이 것은 材質이 다른 듯이 보이지

그 형태와 성정은 같다

즉  바위가 모래로 됨이 乾坤의 관계고

풀이 녹으면 재처럼 사라지는 것인 水火의 관계인 것이고

잎이 다하면 다시 뿌리로 감이고

기둥 줄기가 다하여 잎새가 됨이니

모래 알이나 잎사귀나 풍선의 극점이나

다 같은 성질과 형상을 띤 것이 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 상의 개념성

 

시간이란 動線의 개념인 것이다

즉 흐르지 않는 것은 시간일 수 없다

즉 靜이라는 공간 개념의

動이라는 線을  시간이라고 함이다

우린 靜과 動 사이의 의식으로 판단을 하는 것인데

靜이 없고 動만 있으면

그 어느 것도 설정성이 될 것이 없음이고 정물적인 것이 없어진다

병행적으로 달려도 정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이 세상은 火의 세상인 남섬부주인 것이라

그래서 水라면 스스로 정적일 수 있으면  볼 수 있다?

과연 이 논리가 맞을까?

왜냐하면 火에 대한 水는 다 같이 움직임의 세계이나

정과 동을 구분 지을 만치 되는 폭이 있어서 인데

즉 삼투압적 센스가 있는 것인데 이 것이 나무이다

즉 수처럼 정적이면서 가지처럼 율동을 끌어 올릴 수 있다

즉 水生木 木生火 중간에 센스적 독립성이  있으면

이 작용만으로

卦로는 坎中連의 삼투압적 작용과 같은 것인데

즉 이는 한 나무든

모래 시계든

중간에 센스가 따로 역할을 한다면

물인 삼투압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투압은 坎中連인 水의 본능적 기능이다

여기에 비해 표변 장력이라는 것은 陰的인 진공성의 흡인력과 같은 것이고

그래서 물은 모이면 다 붙어 떨어지질 못 하는 것이다

이는 三陽인 乾天의 중력에는 비집을 틈을 안 주는 중에도

개별적으로 수량적으로 샇을 수 있음이다

그래서 한 개체의 무한 수량이 水인 것이고

이를 양 쪽으로 떡잎을 벌릴 수 있음이 震雷에 巽風인 것이다

이 것이 2 라는 개념의 양극을 말함이고

이 양극이라는 나무 기둥과 잎새의 관계라는 것인데

이미 빅뱅까지 갔을 때는

우린 1과 8인 대칭의 건곤에서

2와 7인 대칭인 艮兌인 산골짝에 살면서

3과 6이 대칭인 坎離를 부리며

4와 5의 대칭인 震巽에서

입술과 이빨이 乾坤

주둥이와 벌린 입의 艮兌

구멍으로 삼키는 것과 혀에 올려 뱉는 것의 坎離

더 깊이 한 정으로 보니 목젓과 숨길이지 않는가

이러한 작용이 원자학 상으로 드러나면

이는 양자학적으로 들어가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신호와 같다

즉 삼투압적 평등성은 크기와 상관 없는 정밀성의 적용일 수 있음에서다 

이에 비해 離虛中은 양쪽이 陽이니

양쪽으로 당기니 

중간에 진공성을 넓힘으로 불은 클수록 속이 빈다

이 것이 끄지지 않으려면 각질을 두껍게 함이다

火는 터지면 土가 되는데

화는 순간도 꺼질새라 터지는 것은 볼 수 있으나

그 터진 잔해인 토는 볼 수 없다

즉 우리가 토는 볼 수 있으나 火生土는 볼 수 없다

화는 사라지는 빠르기의 극치가

나무 정도의 인식의 판에 잠시 붙일 수 있는 접착력과 같은 뿐이다

이는 실제적 모습이라기 보다

인식인 나무에 나무 정도에 머물다 보이는 형상인 것이니

그 보다 잘은

즉 빛의 파장보다도 잘은 모래알과 같은 밭을 볼 수는 없는 것이고

매우 확장판과 같은 것이다

현재 우리 시야에 있는 흙은

원소 주기율과 분자적으로 한참 돌아서 나온 것이라 봐야함이다

아인쉬타인이 우주는 천 자락을 굴러가는 것과 같을 수 있다고 하듯이

이 천 자락이 곧 坤土인 것이니

우리가 원소 주기율 상으로는 坤土를 볼 수 있으나

양자물리학적으로는 보이는 개념이 아니니

꼭 원자 族으로는 8 族에 보여도

원자 주기율 상으로는

7 주기율까지만으로 밖에 드러낼 수 없음과 같은데

즉 7 艮山처럼 돌출이 되어야만 감지를 하는 것으로

이는 離虛中의 각질이 터지는 불의

다 터지지 않아 艮土로 몰린 

불의 스로우 비디오와 같은 멈춤의 상과 같은데

이 것이 원소 7 주기율적 무게라는 것이고

이는 터지는 불의 덜 터진 껍질과 같은 것인데

도리어 무겁고 불안한 것이라 마치 어긋난 형태의

잔여물과 같은데서 핵폭판의 만드는 우랴늄의 계얼이 된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시신이 더 무거움을 느끼듯

무게란 흐름의 분담인 것이지

그 흐름의 분담이 사라지면 더 무겁게 느꺼진다는 것이고

시체 이후는 사라지는 것이니

원소 7 주기율 이상은 원소를 잡기 힙듦이 있다는 것이 된다

보통 산을 생기라고 하는 것이고 신통한 약이나

장수의 비법같은 것이 숨져져 있는 듯이 하는데

그래도 영생이라는 坤의 가장 본질에 가깝게 붙어 있는 것이

의외로 허물어지는 간산에 있다는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그 이상은 모르는 차원이 坤인 원소 8 주기율적 차원이 되는 것이다

이는 乾坤은  卦는 하늘과 땅이어도

납갑이 甲乙 木을 각각 半으로 취하고

壬癸 水가 半인 것으로 취용하는

결국 水로 돌라감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사물은 水를 1 로 함이고

원소의 1 도 水素로 함이 기본이다

 

 

금맥 부처님

 

우리가 의식의 폭이라는 것이

木生火인 정도의 

남섬부주라는 곳에 설기 (洩氣)가 됨으로서

水를 끌어들여 센서인 것이니

실제 물리학적으로 도전을 할려면

북로구주로 감이

가장 핵에 가까운 시발점에 있음이라고 할 것이고

土가 火를 끌어 들여 金으로 감이니

부처님 상은 늘 금맥이어도 모자람은 없다

그러니 부처님은 욕심이 아니어도 황금인 것이나

인간은 따르고 따르고져 해도

그나마 똥이라도 누래서 한생 보석처럼 사는 것이 아닌감?

 

 

시공의 정제론

 

아침의 도를 저녁에 만난다는 것이

누군 아침의 도는 관음증이고

저녁의 도는 실물이니 사랑의 도라고 하는데

그래서 마음의 간음도 간음이라는 논리가 되는데

이 것은 마음보다 과학적 무심성(無心性)에서는 들어맞는다 해도

그리 인문학적인가하는 것이고

꼭 철학성이 과학적 無心의 본위여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있다

즉 심리성을 좀 더 냉철한 이성으로 잡고 보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극중의 인물과 서로의 시공성을 병행하며

같은 속도의 차를 옮겨 탈 수 있음과 같은 디지털이 발달되어도

공중 급유식과 같을 정도로 해서 기름처럼 혼합이 되어도

혼합인 듯이 서로 대화가 되는 듯이 할 수 있느냐와

자신의 영역만으로 다른 시공을 뺄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존재라면

충분히 내 마음에따라 사물적으로 따르는 것도 되는 것이 있다지만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 이상 자신은 운명과 숙명성이며

아무리 운명이

시공성의 동시성으로 폭을 넒혀도 마음이 만들어감은 아닌 것이다

즉 아침의 도가 필름이라고 할 때

저녁에 만나도 필름의 상인가 하는 것이고  

오히려 저녁에 그 실물성으로 만나도 化像이라는 것이

실제 아침의 화상임에도 실물적으로 화상이 되어 었다는 것에

즉 시간의 연쇄적 화인 것은 동일이라고 하더라도

진공성만의 순수 이동일 때는 化라고 해도

보이지 않은 無인 시간의 진공성의 化인 것

즉 이었다는 것이 그대로 복사되듯 이어 받는 것이라면

空도 空으로 이어 밭음의 공간이

시간으로 흐름의 마디마다  변화되어 달라져도

空인 그대로 인 것에 있는 실체성을 견준다면  

시간은 空으로 이어 받아 空인 것으로 化라고 해도

그 공에서 공으로 흐름의 시간성에는  

그 한 마디 시간 속에 또한 시간의 창조인 냥 파고 들 수 있음이

인간의 창조성보다 시공성의 창조로 물질적 테두리를 갖는 것인데

이렇듯  

色의 갈래를 띠는 것으로 시간이 파고는 미립화에도 연관성이 있을 수 있음이고

상대성 없이 독자적으로 물체를 이루어도 마찬가지일 수 있음인데  

빛에다 무지개 갈래여도 섬유성라고 할 때 색도 곧 물체가 되는 것이니

이 물체성으로 化하여 움직이는 것은

空이 空으로 化하여 온 것과 병행선인 것인가  하는 것과

출발선부터 뱅행되어 온 것인가 하는 것이 있다

DNA도 空의 시공적 라인과 色의 시공적 라인이 두 개로 병행을 해야

번복적이어도 인식의 동일성으로 갖게 됨과 같은 것이고  

띠나 원이나 같은 것이라는 것이고

일직선으로 가나 원으로 도는 것이나 같은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이미 상이나 시공이 함께 획대되어 화하여 온 것이 맺인 것이고

그로 화한 시공에 물상인 것이댜

즉 아침의 상이 저녁의 물체로 맞져질 질도가 화상인 것이다

즉 아침의 미녀를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나

저녁에 같이 잠자리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사이 얼마나 절제와 도덕적 인간성이 내재된 것인가는

또 다른 면모을 갖추다는 것이 정제론이다

그러면 좀 더 영혼이 밝은 차원인가?

 

 

무지개의 위대한 통일성

 

비가 온 후에 무지개가 피는 것은

물방울의 마술과 같은 것인데

물방울이 프리즘 효과를 내어 색을 다양하게 낸나는 것

그 다양한 혼재의 무량대수의 수가

정확에 눈의 프리즘적 대피질성으로 모을 수 있다는 것과

두뇌의 피질성으로 모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수 많은 인간과의 스치는 인연에도

공기 속의 물방울과 같아도 다 프리즘적 색깔을 방울마다 띨 수 있듯이

그 보이지 않음에도 무지개는 같은 띠로 모을 수 있을 수 있듯이

수 많은 스침 속에서도 다 일곱 색을 지나면

흡수율이 돠는 가시광선이 듯

원소 주기율로도 다 흡수됨과 같은 것이니

어찌 마음 하나에 듦이 없으리     

다 그 특색적 가시광선으로 모으면

프리즘적 흡수의 한계를 보임과 같이 원소 7 주기율까지로서 끝맺음과 같은 것이니

원소 주기율의 한계성이란 무지개의 한계성과 음계(音階)의 한게성으로 볼 때

원소 주기율적 한계성 또한

수소와 헬륨 간의 융합하는 과정에서의 무적 한계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유전공학과 창조론

 

인류가 어떻게 심어진 것인가

아니면 좀 더 심도 있게 심어진 판에

여울적으로 확장된 궤도적 원심에서의

지각성(地殼性)으로  파종적 종자

이 것으로 인류의 창조적 시원(始源)으로 본다면

유전공학적으로도 그 시발성은 같은 것이다

한 파종에 있어서

오천 년 전에 파종이 된 것이 증식된 것이나

만 년 전에 파종이 되어 증식된 것이나

무엇보다 그 가능성을 보아야 하는 것이고

즉 유전공학적 확신이

종교적으로도 어떻게 창조가 되었든

창조론은 뒷받침해준다는 것에서는 

오히려 과학적으로 거리를 둔 듯이 하면서도 과학적 리드쉽으로

우쭐할 수 있는 이중적 위선을 보일 수 있음은 있다

이는 곧 火星에 인류의 발자취라도 찾아

인류의 기원을 백만 년 너머로 본다고 할지라도

태양게 너머의 시발점으로 본다고 할지라도

결국 우주가 수소 한 알 내의 전자의 궤도로 볼 때의 시공성과

한 알 밖의 인류적 이승으로서  따로 볼 수 있는 시공성을 띨 수 있다면

이는 곧 수소 너머 더 미립자적 나노급으로 심어져서 나오는 중에

분자적 차원의 시공성으로 온

즉 우리의 시각적 시공성에 옴만같은 것으로서

다른 형태를 띄더라도 같은 시공성을 띤 맥락을 쥔

즉 처음 시발점과의 공유인 것인데

다만 처음의 시발점에도 빛 속에 색이 내재된 듯으로 봐

공이 아닌 형태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됨에    

즉 空이 없으면 化라고 할 수 없는 인식이 하나라 할 수 있는 바탕성

즉 변화된 형태여도 백지적 바탕이어야 하는 것

그런데 백지 속에서 시공성이 있어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 변화성으로 모르는 개념

그래야만 두 시공성의 유기성을 찾는 법    

변화로 옴겨지지 않은 듯이

상호 물리질 않은 듯이 化라 할 수 없는 개념으로서

복사적 서술성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를 神이 심었다고 할 수 없는 궁극점  

즉 능동성을 보일 수 있다고 할 때는

천제 우주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선가적(禪家的) 접근이 훨씬 깊은 샘이 된다는 것으로

오히려 종교적 창조성이 더 강열해질 수 있음이 있다는 것이 있다

 

 

우주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이 있듯이

떡 먹은 김에 제사 받은 것으로 함과 같음이니

뭐 인간이여!

천상계 제사도 받는다고 합지요 뭐

한 입의 살이 되는 인연도 바쳐진 냥 고명할 이유도 있지요

어쩜 천상보다는 탁계이니   

인간의 탐욕이 무색에서 도자기처럼 구어짐과 같다

어차피 천상계도 화재가 나고 수재도 나니

급하다 보니 독되는 물도 마실 수 있음이니

 

 

성주괴공(成週壞空)

 

우리가 대겁이든 소겁이든

그 하나가 렌즈 한 알이라고 할 때

서방 안락찰 金局인 것이고 玉局인 것인데

모든 확대된 상의 거리에는 

성주괴공이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무엇이 상으로 들어 왔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

허나 상은 빛에서 접히는 문제지

빛이 원소 3 주기율이라면 2 주기율만 되어도

옥인 렌즈일 뿐이라는 것

즉 우리의 육근이 생겨나는 번복성에서와 같다

독은 모일수록 독이 세지는 것이요

물은 모일수록 희석이 되는 듯이

다 중생의 악업이 커지면 화재로 몰리는 것이요 

수재로 몰리는 것이니

유정들도 무정들도 다 행업으로 이루어 지리라고 했느니

 

 

겁의 속도와 그 속도만큼의 확산과 인력(引力)

 

소겁을 팔만사천 년의 확대상이라고 할 때

실제 10 년의 렌즈인 실체로 들어설려면  

즉 태풍의 영역을 태풍의 눈으로 집약이 되는

축소형이라고 할 때 집약되는 거리와 같음이 되는데

즉 겁이란

평면 상을 제로로 할 때

확대상을 제로로 끄는 것과 같음을 나타내는데

이는 마음 닦기에 달렸다는 것으로

어찌 인간이라는 것만으로 초탈이 되는가는 의구심에서 

렌즈의 두께와 같음에 달렸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겁이여도 인간의 운행과 사물의 운행과는 10 년의 간격이 있다

즉 사물이 그 수명을 다해도

인간의 수명은 10 년 이하로는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곧 천상계의 신이 인간계에 내려온 간극이라는 것이 있음이다

무언가 살아도 다른 시공성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 된다

이 10 년이 12 연기에 맞물리면 120 개월이 되는 것인데

이는 곧 연기의 소멸이 달에 걸렸음을 나타내는 본보기와 같음이다

이는 성적인 희열을 달에 걸었음으로 여자인 것인데

이와 함께 열반도 깨달아야 함이 바로 가까이 있는 것이라는 된다

즉 저 먼 태양이니 우주이니 하느니보다

바로 금륜의 테두리라는 것이니

금륜인 거울로 바로 들어라는 것이 되는 것이다

즉 상이란 늘고 줄어도

실제의 렌즈로 바싹 당겨지지 않은 채 뜬 물체일 뿐인 것이니

마음만으로 스스로 명암을 드러낼 수 있음과 같지는 않다

 

 

녹양 

 

녹음이라는 것이 숲 그늘이 우거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늘 국물 쪽 다 빼 먹고 남은 것이 양이라 하나

푸르름이 남아 녹양이 아니든가

모래 알과 같은 프라스틱 재료 흙과 같은 노란 색인 것

이 것 풀 죽이라고 빼어나 녹인 것 그림자 지으니 녹음이 아니든가

이무기가 넝쿨같거늘

허허! 굳은 소나무처럼 제식 훈련을 시킨 듯 완전 진 빼고 보니

그래도 저 거 이무기 아닌가  

녹양인 것이여!

녹양이 뻗어 짠 옷인 것에 문명의 염색이 아닌가  

의류 타운이라고 잘도 모였네 

녹음 그늘물 쪽쪽 빼고 

쭐거지만은 바래진 섬유질인 陽이라고 

어지간히 음에 결벽이었는가 뷔어 

녹양에 줄서기라는 것이 섬유질 쭉쭉인 것이니 

이 것인 문명이라는 옷인 거여 

이무기가 날려다 제물로 엮이는 문명이라 것으로 

그리어 인류란 참으로 때깔 나는 것이지 

이무기가 쫄고 있다 싶어도 

어찌 물결만 결인가 불도 결이라고 엮은 게 

이무기 죽은 연골같은 것이 참 질기기도 하지

녹음 그늘 쪽 뺀 녹양이 가는 것이여 

그늘 없는 광선 줄기인 듯이 해도 

그늘 물감을 낀 듯한 그 것도 바싹 말린 듯

문명을 입는다는 것

옷이 명품이면 때깔 나는 것이지

그 것 빼면

왕따에서도 풀릴 마음 한 켠이 없으리

말하지 않아도 귀족 놀음이고 명풍 게임 아닌감여

입으로야 개쌍욕이 늘어나든 말든

돈만 있으면 명품은 무엇이든 낀다고 하니

입으로만 삼국지를 살으라면

칼날보다 날카로운 욕지거리는 사방에 풍운이 일어난 듯이

쟁쟁하지 않는가 뷔여

요즘은 입으로는 삼국지를 사는 난세보다 더했으면 했지 덜한 감여 

그 것 보기 싫고 듣기 삻으면 더 깊고 은밀히 숨어 없는 듯 즐겨야 하는데 말이여

돈 없고서는 그 것도 다 난장판에나 내놓고 여드름 짜듯이 하지 않는가 뷔여

어지간히도 저항력 좋은 혈통이라 여드름 빼는 듯이 하는 것이여

  

 

이제 남은  추억은 몽땅 연필로 조차 끼워야 하는가

 

난 모나미 볼펜 껍질 버려진 세월의 각질에

몽땅 연필 끼우듯 추억의 사이를 

회심이 짙어지는 사이에 끼우 듯 살다 가리다 

희미하게 짧아진

못난 인생이었다는 역사 속의 빈궁들

세월이 으때어 먹고서도 모를세라 하는 

그래! 그 남은 흔적만 같은 공원의 벤치에 멍한 

무색기가 넘치는 석고같이 칼칼한 눈매만 남은

유정이 유정같지 않는 인간세로 버려질 표상

그래! 어쩜 내가 몽땅연필 

볼펜 껍질처럼 떨어진 풍속의 게 속살같은 맛도 없어진 채 

살없는 펜이 된지 얼마인 것이여! 

살이라고 붙여 보니

어릴 때의 한 겨울날 그 헛간 켠 양지 맛도 안 되는 것을

그래도 동에 어울릴 때가 동무였지 

동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선후배 간에서 무슨 동무가 있으리

다 그 때에서야 같은 물 먹고 동무인 것이었지  

그나마 마음 맡길 친구라도 있으면 친구 정도는 되는 것이지 

실로 동리의 선배는 바람막이였고 존중의 대상이었기도 했지만

아! 난 이이스프리로 돌아갈 섬은 마을도 없느니 

그저 몽당 연필이나 빈 세월에 끼우면 잡힐 정도에 

그리어 마져 끌적이다 가는 아련한 향수인가 뷔여!

 

 

회룡

 

동두에서 의정이 나니 금강에 산이 고결하구나 

도를 넘는 산이 있어 도통인가 하니 

용이 돌아서는 곳이 있다 

용은 용으로 돌아감이라

서울!

어쩜 그 용혼조차  콩나물 시루같은 발뻗기

동쪽 머리에서 물주기

용은 議政에 回龍까지 머리를 박았다

다 의정에 심어진 삶

나무들이 다 용비늘이다가  개천 뿌리를 키운다

기억한다는 것은 돌아선다는 것

회상의 꾸러미같은 발아심  

한 자루같은

어떻게 던져질 것인가

그져 광선의 蟲狀과 같이

달의 시선과 같이

달이 눈을 붙여준다

干滿으로 일렁이는 생애  

 

 

한 덩이 무게

 

불과 나무가 그 성질이 엄연히 구분하나 

그 법칙은 같아 

그 변화의 맥락은 같이 하는 것이 꼭 

주기율은 달라 다 그 성질이 각각이나 

족으로 같은 변화로 넘어감은 같은 것이듯 

바다가 아무리 커도 

씨앗 하나 나무 한 그루 키움만 같은 

비늘 우산 같이 하늘을 덮은 나무 한 그루와 같은 것이니 

복령이나 바다가 같은 족이나 

주기율은 달라 물과 나무일 뿐인 것

하늘을 안고 강을 지나 바다로 가 천리를 안다고 해도 

나무 하나의 복령을 아는 맘같으리요 

이니면 매미가 맴맴 기어 나왔겠슈 

 

 

염소 입을 막아라 

 

염소의 입을 막아라 

그렇게 않으면 완전 미다스의 이발사가 되는 것이여

이는 어는 한 구석에 땅을 열어 심는 게 아니란께유

완전 내킬 때마다 싶는데유 

염소가 왜 매~! 매~! 하는지 아시유?

매미가 될까 벼랑 위로 내 몰아붙이는데도 

미다스의 이발사는 갈대를 쏱아 냈지만

저 염소는 매미를 쏱아내고 마는데 말이쥬

골짜기로 몰아도 대지의 들판은 연하디 연하니  

그래서 염소의 입을 막고 보아도

소의 입을 막아라고 재갈을 물리는 판이니   

본래 저 소도 무~! 라고 우는 게 아니라 

메~! 라고 우는 것인데 염소가 따라 번역하는 것이라니까유 

본래 매미는 소의 이가 붙어 진화한 것인데 

매미가 소 등에 진드기처럼 붙은 것이니  

다 坤土인 소의 살에서 나오는 이와 같은 것이란 께유

 

 

이문동 

 

里인데도 門이어야 하는 이유 

그냥 흘러 보낼 수도 잆음에 굳이 門이라

바다를 지고 이고 지나는 행렬

바다인 복령을 캐 먹고 간다

이문이 너만 복령을 먹었냐

여기도 복령이다 리가 문을 내놓는다

이문은 인생사 복령같은 삶이라는구나  

인연이라 

기억이 색달라 피우는 나무 

복령이 굵은 바다 

나무에 주렁저렁 매달아 햇살마냥 뿌리가 좋은 것 빼면 

복령처럼 몰린 바다

 

 

연어와 장어 그 귀납과 연역의 이야기

 

미다스의 이발사보다 갈대같지 않는 말씀

장어가 복령을 캐 먹고 

오목눈이 된 구석에 알을 낳고 

강태공 머리맡에 누워 지나온 길을 낚든지 말든지 

솔바람, 칼바람이 싫어 떠난 연어 

그래도 칼 바람은 지나고

솔바람은 기려야 할듯이 온 것같은

무엇인 거여 무덤을 찾은 것이여?

연어는 소나무는 없다고 한다 

이미 그루터기 

달의 공전에 겨우 뿌리에 맺힌 바다를 맴돌다 

마치 껍질가에 한 눈이 날까 오는 것과 같은 

간혹 퐁당 여울에 그루터기나 회상하며 

어점 한 그루의 나무에나 피워 올려 줄 수 있는 것이 

물의 족보인지 모를... 

 

 

녹천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이야기

 

녹도 빛과 함께 피는 것이라고

얼마나 빳빳하기에 쬐는 것마다

빳빳이 서는 나무와 풀들

다 불 덕도 보자고 굴뚝이  힘이 들었지

아무리 처진 넝쿨도 긴 가믐에 도리어 굴뚝처럽

직설적인 격의를 무너뜨리면 안 되는 도

어릴 때부터

뚝!

뚝! 이라고 가르침은 예에 모자람은 없으라는

그래요!

굴뚝이 없으면 옆집이 당장 맵지요

다 매운 걸 주면 맵게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뭐  

목이 뻣뻣하고

굴뚝 몽툭해진 것 

대나무가 마디 마디 이어가는 것 

뭉툭뭉툭 꿀꺽꿀꺽 

인생도 이러한 목이 아니면 

어찌 한 몸뚱이 붙이고 살았을까 

녹이 수의 고향으로 돌아감이 녹천이 늘 스다듬으며

달래며 가는

결국 물의 고향인 바다로 가는

장어가 

빛의 파장만으로도 미다스의 이발사 입에서 나온 갈대이듯

어찌 그리도 근력이 좋은 장어가 됨인가

그리어 하늘의 뿌리가 뭉쳐진 복령이 바다여 

바다로 돌아가리라 하니 

여기에 연역법으로 돌아 나오는 연어 

이문에 이문을 달고 마는 것이지

 

 

도자기처럼 초벌로 굽힐 인연을 입는 것   

 

그래도 다 그 옷에 옻이지 않는가 

그런 것이여! 

삼원색은 합하여 무색이듯이 

옻나무에 하얀 서리가 낌을 아느니 

옷도 도 닦으라고 하나 

옷이면 광채나는 것인데 옻 광은 글쎄?

이 거 완전 벌거벗은 임금님 노릇이지 

옷을 벗고 옻으로만 입고 걸으라? 

그런데 말이여

옻 탄 듯이 형색이 그러면 다 도망갈 터인데도

墨子의 일필휘지가 옻이 되니 말이여 

옻처럼 먹고 옻처럼 입고 해탈좌 

인간! 먹자로 墨子된 것

다 먹은 것만큼 일시에 산화되어야 하는 것이니  

제대로 풀어 영생법을 스스로 취득하게 해야하니 

옷 때깔보다 옻으로 투명하기

벌거벗은 임금님 흉내나 내고 갈 일은 아니지

옻으로 옷 한 벌 만들어야 한 벌 空을 입는 것

옷 때깔보다 옻으로 투명하기같은 것

그리어 도자기처럼 초벌로 굽힐 인연을 입는 것이지

 

 

최종적 서리

 

노천막 서리야 

밀 서리 

감자 서리 

그 맛이야 훔쳐 먹는 맛이 아니어도 

다 형언이 안 되는 맛이지만

이 원두막 서리라고

이 것도 꼭 里도 門이라고 하듯

보쌈할까 지키듯이 한다만 

지나는 차창 가의 안이나 밖이나 

다 노천 서리 맛이야 

스치는 인연에도 미묘함이 있다만 

어찌 里門도 안 되는 정감으로

광역을 넘어선 달처럼 띄웠다고

스마트폰 문이라고 하는 데서야 

노천막 서리도 不法같을 판이니

선녀 옷 감추어 

완전 천상에서 발동을 하지 않는 다음에야 서리라 할 수 없지만 

우린 이 감수성의 자연성은 서로 바라보는 시선조차 맛이 가벼렸지만

꼭 원두막만 서리 맛인 냥

참 무미건조한 결과적으로 보면 껍질만 덤뿍 쌓이는 게와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껍질 맛이 게장 맛이라 했던가

누가 게장 맛이 썩는 맛이라고 했던가

그런 영화 한 편 보고 맛이 더 난다고 하는 것이겠지

 

 

 

이 놈의 해독제가 마춤이어야 한다니

어느 뱀에 물렸느냐에 따라

어찌 해결책이 한 알이면 되는 것도 아니라 하니

참으로 독도 풀기 어렵네

이 놈의 경상도 독이라고는 한방부르스같은  독인데

완전 독사한테 물린 것이여?

그러고 보니 충청도 독은 유혈목이 독인가 뷔여

영 독이 없는 줄 알았잖아유

그런데 말이쥬 더 깊숙한 곳에 독이 있으니

구렁이 담 너머가듯 유~!, 유~! 길게 빼다 마는 것이 아니쥬

그런데 토정 이지함 선생님의 八道 卦象을 보면

전라도는 巽風이요

경상도는 坎水라고 하고

충청도는 震雷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전라도 독이 가장 연한디

백제 독이 그렇다는거여

본래 이 태풍이 독을 짓고 오려면 

백 물 줄기는 넘어야 오는 것이고 보면

百濟도 맞고 巽風도 맞는 것인데

평야다 보니 골 바람은 없는 것인데

坎水처럼 묽은 독을 지을려니 영 안 맞지유

이 坎水란 蓬星이라는 것인데

엉큼하기도 하거니와 속이 깊은 굴인 것인데

그래서 어느 임금님이든 봉성(蓬星)이면

저 변방에 보내 버려야 속이 시원하지

아니면 언제 한방부러스인 줄 모른다고 하는 것이고

이 충청도 독이란 것은

陰이 두 개에 陽이 하나 발길질해도 천둥 소리는 되니

충신은 많이 난다고는 한다만

그런데 말이여

이 천둥이라는 것이 은근설쩍도 없이

그저 아무 속내도 없는 듯이 하다 

제 죽을 맛이면 속을 내놓을

미련곰탱이같아도 화나면 무섭지 않는감

그런데 서울 독은 어떤감

이 건 말이여 완전 외제 독이여

이 거 완전히 미국산 방울뱀 독을 갖고

글로벌 독이라고 참 독중에 최고라고 

이 거 완전히 뱀  이빨 독짓는 늙은이 다 된 거여

그런데 이 것도 다 그 쪽 로컬 독인 것이지

인도에는 코브라 독을 지어도  글러벌 독은 아닌 것이여

그러니 말이여

독은 각가지라도 한 알이면 되어야 되는데 말이여

이 거 완전히 천지신명님께서 제대로 물려야 한 알약이 나올련가

 

 

인간의 중심이라... ...

 

인중이라

인생 제대로 살려면 뚜껑이나 제대로 열린 무대라야지

이 거 원

어찌 열린 것이 열린 것이여 닫힌 것이여

닫힌지 열린지 모를 코 

이 것이 내 코

본래 옛말에 귀 잘 난 거지는 있어도

코 잘 난 거지는 없다고 하는데

어차피 홀쭉한 얼굴이어도

코로 몰아주는 것을 보면

적자생존이란 것도 관상학적 전체성으로 보면 공평한 것인데

다 귀가 턱선으로 해서 원심력으로 끌며 귓볼이 좋고 턱이 좋으면 

그만큼 긍정적인 여유가 있어 거지여도 수긍성이 빠르고 

코로 몰려 협소한 얼굴은

길이조차 길다해도 여성적이며 논리성이 강한 쪽으로 몰리니 

양 두엽의 활동성이 코로 두터움과 같은 것인데 

확실히 핵심적 집요함에서 성과를 거두는 재물이 쌓이는 것이고 보면  

또한 거지여도 집단 수용성으로 몰린 거지가 되는 것이든가 

도시적 집약성의 거지를 많이 배출하는 법이다만

그런데 이 거 원

財多身弱이라 여자 땜에 장부의 칼이 녹쓰는 것이라지만

그렇다고 일어서 보기나 했는감

이빨이 없고 보니 완전 人中을 덮고보는 코

사이가 벌어지는 듯이 하나 도리어 더 접히는 판일세

뚜껑을 열고 보니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는 것이 人中이 아닌감

그런데 이 거 어데 뚜껑을 연 인생을 산 거여 닫고 산 거여

오히려 지나치게 해서 닫은 것은 무었인가 물을 판이네  

 

 

지구 관상

 

우린 코가 비틀어도록 먹든가 마시든가 하는 비유를 쓴다 

관상처럼 귀와 턱선으로 넓은 얼굴로 싸움 판인 것이 있고

코로만 밀어준 강한 구심점을 이룬

일명 변강쇠형의 스타일이란 것으로 싸움이 있는데

실제 얼굴을 턱선으로두른 매력의 땅에 싸움이라는 것과

코만 잘 난 싸움이라는 것에서는

즉 대지의 기운 전체로 틀을 맞춰 사는 것이 관상적 바탕인 것인데

신념이나 종교적 이념으로 싸우는 것은

코가 양쪽 콧구멍으로 싸우는 것인데

이 건 대지의 판보다 정신적 지주의 空한 것을 갖고 싸우게 되어 있는데

잘 난 것 끼리 싸우는데

원만해서 다 못 난 놈이니 형제가 아니니 하면서

관상학적으도 얼굴 전체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코의 살림살이가 넉넉해 졌다고

완전 그 것이 하나인 냥 하고 개현이철(改弦易轍)이라고 

인생의 뚜겅으로나 상대성을 찾을 일이지

그 콧대 고상하다고 콧구멍끼리 싸우는데

그래도 코가 비틀어 지도록 잘 먹고 잘 산다고 하니  

배고픈 대지인 안면 쪽으로야 취급을 하는가

한 콧대족에 구멍끼리 싸운다는데

싸워도 그 콧대 밖인 사람은 헝제가 아니라는데

자꾸 콧구멍만 후비는 꼴인데 깔끔은 무슨...

이런 정신적 지주가 다 코에 몰린 것으로

이 코가 5 土인 재물성인 것인데

이는 외적으로 배분하는 폭발성과 같은 것으로

제 코가 비틀어지도록 쌓는 데만 더 힘쓰다보니

세계 인구가 먹을 양식이 남아돌아도 변방에 갈 게 없음이라

즉 코에 재물을 쌓아도

귀로 넓혀 원만하게 돌아가는 상이 쉽게 되지 않음과 같다

 

 

모래 한 알 위

 

깨알같은 글씨도 대범함은 있어야 함이라

사평(砂萍) 곁에는 논현(論賢)이 있는 법

그 것 자잘한 것이라고 사평을 버리고

그대는 무엇으로 발자국이 남는가

다 개똥도 약으로 쓸려면 없다듯이

다 사사로이 일일이 거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끝머리에 발을 내미는 것이 사구(沙丘)라

그 것이 사평의 이야기이니

이도 다 석고에다 자국으로 남기는 것도 마찬가지이느니

다 원소 알의 사평에 

주기율이 엮은 발자국이라는 것이지

다 밟고 가도

밟고 감을 모르게 하여 건느게 함이

이를 최고의 도량이라 함이니

사평이 논현을 곁에 낌이니

그대여! 사뿐이 맨발의 발자국과 같이 남을

모래 속삭이는 인생이기를  

이 무일푼이 오늘도 갈 길이 없는데

굳이 또 눈을 뜨라는 것이니

하루가 죽었는데 時라도 눈을 떠라고 하니

뭐 눈 뜨면 하루살이라도 몰려드는 감?

그래도 그 것이 詩이어도 또한 寺이기도 해와 같은 時이겠지

그러니 하루의 알마져 죽어도

시의 눈이라도 떠야 한다는 것이니 

하루살이인들 죽을 수 없음과 같이

時의 등불에라도 몰려 죽는 것이니 

時는 눈알 잘 굴리면 日을 품음만 같다는 것이니

무슨 아쉬움일들 있으리 

그래도 정처없음인데 발품인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 

생각 없이 걷다보면

어느 새 천 근을 진 발걸음과 같이 걷기질 않는다

이미 이럴 땐 몸이 속을 못 느껴도

팔엔 무슨 얼음물에 손을 담근 듯 터질 것 같은 고통과 같음에 

이럴 때 물이라도 마셔 구석구석 메우다보면

어느 구석엔가 따근거리는 것을 보면 

모세혈관이 많이 터진 느낌마져 든다

그래도 눈 뜨고 걸어야 이 밤을 넘기니 

또 어떻게 허허실실 넘어가는 데는

나도 참 내게는 이리도 너그러울까 싶다

왠지 오늘은 궁여지책이라는 것이 쫌 따끔한데 

굳이 또 이 길을 가야하나 싶게 가는데 

그 길이라는 것이 

누른 누각에 결국에 오을 것이라는 것인데 

그런데 너무 눌러 앉으면 젊은이에게 낭패를 당하니 

적당하니 물러나라고 하는데 

내 체질이 뒸끝이 안 좋으면 시작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궁하면 통하는 느림보여서 그런지 늘 궁상맞게 몰린다

그래도 오늘의 괘사는 그 수확이 남다르다

이 것도 미주알 고주알 얘기 삼는 것도 내 체질이 아닌데

이 것도 이제 보면 나도 참 많이 늙었다는 것이다

뭐 누른 누각에 오른다고 하니 결실을 보겠다 싶었는데도

다만 젊은이에게 쫒겨날 벼슬이라는 것인데

참 기묘하기도 하지  

요즘엔 배추 잎사귀는 구경하기도 힘든데

그런데 말이여 누른 오천 원 짜리 두 개는 건졌잖아여?

그런데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이여!

결국 기어코 한 집에서

젊은이들이 모였는 건 좋은데

뭐라고 해대며 비웃음이 길가에 떠들썩하도록 들리는 게 아닌가벼

늙으면 서럽다는 것은

결국 나도

나의 삶을 내가 감당하는 만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이다니

늘 걸치고 다니는 배낭도 내가 부치니 

묵직묵직한 돌멩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듯이

그냥 망태 무게와 같은 비웃음 소리도 이제는 바위와 같이 느껴지나 뷔여  

그 정도 무게야 털어내는

원숭이 주둥이같은 것도 갖고 다니지 않는가 마는

화를 내고 안 내고 보다 

몸에서 열기가 채고 도지는 판에 

잠시 생각해보는 것도 진절리칠 때가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놈의 부처란 것이 꼭 필요할 때는 감감 무소식이다가

사기칠만 할 때는 참 쉽게도 오르내린다니까요

완전 공경은 싸잡아 맨 부처라고 해도 별 수 없는 것이지 않는가마는

남은 건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가장 선명한 도일 뿐이니  

이 게 누구 이야기냐고요?

내가 그렇다니까유

그저 일반적 몸인가 할 때는 

그저 걸망에 걸맞는가 싶을 짐이였는데

요즘엔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발가락이 터져 피가 맺힐 정도로 적응럭이 약하다 보니

이젠 뒤통수에 비웃는 소리도 참 무겁게 느껴진다니까유

뭐 그렇다고 치라도 잘 응기며는 얼마나 좋을까마는

정갱이가 혈소판 부족으로 자반이 꺼멓게 딱지 붙은 지가 십 년이 넘으니  

예전에는 팔매질 손에 잡히는 돌멩이 정도인가 하였더니

이젠 바위를 굴리는 듯이 무겁에 느껴진다니까유

도리어 막다른 골짝이다 싶으니

아예 바위 굴린다 큰 소리치는 것같다니까유

뭐 그렇게 큰소리 치고 싶으면

대대손손 아예 쇳덩이에다

소인배 깔아뭉개버린 글이라도 새겨서나 물려주어야겠는지 

어차피 저런 자들이야  

내 죽으면 뒤에서 더 박수나 칠 건 뻔한 수작들인데

저네들 저주의 효과가 어떠냐고 동네방네 외칠 텐데  

뭐 나도 친일이니 종북이니 하는 것처럼

독선이니 해대며 개발리다 가는 것이지 별 수 있는감유

뭐 이 중놈에게도 유전무죄 무전 유죄인 갑지유

아예 대놓고 까발려 버린다는데 누가 감히 역정을 들겠시유

나도 질리는 판에 누군들 질리려 하겠시우

다 개 끗발인 것이쥬

부귀영화인들 한 하늘 아래 살길 바라겠시유?

다 개털들인 것이쥬 뭐    

그러니 이빨을 부득부득 갈며 부처도 베고 조사도 벤다니까유

뭐 통곡을 하다시피 산다고 비유도 잘 하며 놀리기야 잘 하지만  

실제 그렇지유 남자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유

통곡의 해도 내가 하는 것이지 저네들이 하는 감유

죽어도 내가 죽는 것이지 저들이 죽는다 하는 감유

다 제 살면 남은 죽어야 한다는 명제를 깔고 사는 것이쥬 뭐

뭐 퓨시킨도 참으라고 하지만

신사의 결투는 참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니 결투에서 죽는 감유

실제 신사적인 것이야 좀 깎이고 비열하면 어떻시유

이 막다른 인생들은 말이유 그 자존심이란 게 더욱 간절한 것이쥬

신사의 결투보다도 더 간절함인지 모르지유

허나 인생은 무엇이걈유

완전 신사의 자존심은 참으며 안 되고

차마 벼룩이 간같은 자존심마져 짓밣히는 것은 못 참아서 그렇지유?

항우가 사면초가에서 결국 제 목을 잘랐다지만

다 마음의 간음도 간음인 판에 그 것도 자살이 이닌감유?

어데 사면초가 아니고 자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감유

그런데도 항우는 일세의 호걸이고

사면초가라고 같은 초가인가

자살은 죄악이라... 그 것도 참 웃기잖아유

뒤에서 비웃음이나 사는 거

나로서야 웃을까유 울까유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니까유

상대를 외면 안 하는 듯

웃으라면 웃고 울라면 울고 하지요 뭐

뭐 아예 무시한 듯이 하면 더 바락바락하니

그럴 바엔  

이 참에 벼락치기 부자가 한 번  되어 볼까유?

 

 

미아리 고개란 무우는 될 수 없으니 뱉으라

 

미아라 하면 뒷 말이 있어야지

언덕이 아니고 태산이라든가

아니면 평야라는가

왠 걸 바람인 든 무우?

대답이 없는 듯이 하니 무인 것이지

왠 점쟁이집이 이리 많은 것이여

그래도 공으로 숨을 쉬 것이라 그런지

용하다는 것도 바람같네

미아리 노랫 소리는 어떻고

무라고 흘러보내기엔 바람든 무우되는 겨

그래서 무는 못 되고 울어서 넘어야지

은근히 곡절이 아니라고 미아라 하고선

참 많은 사연이 모이네

 

 

차라리 양(楊)이라고

 

그래요 산호초로 굳은 빛깔 좋은 산보다

지렁이처럼 땅에 스민 빗줄기와 같은 삶이길

비는 지렁이로 일어난다

가는 실핏줄을 안고저

그래도 실가닥은 희망을 꿈들대는 냥

붉었다고

붉었다고

젊음을 토하기는 했으나

산호처럼 머물지 않는

陽이라고 하는 산호처럼

언덕 부(阜)를 끼었다기보다

차라리 양(楊)이라고

수양버들처럼 빗어 내리는 머릿칼같았던 자태  

산호같은 陽이라기 보다

굳은 빛줄기조차

그래요

차라리 빗줄기인 냥 수양버들같음이 陽이라고 할

어쩜 楊이 더 陽다움의 것으로

어쩜 수양버들로 다 끌어올리지 못한 잔뿌리 같음이

어쩜 낙엽인 냥 지렁이였을

우린 흙이 살았다는 것으로

산호같은 허물을 머리칼처럼 빗는 듯

빗방울 하나는 지렁이가 길게 늘어진 것으로

다시 수양버들을 타고 바람을 부르는 노래

 

 

애기가 얘기같은 한 묶음이다 사라지는 것이지  

 

야가

야가

너도 아니요 나도 아니지

이야기인 약자가 야그인 것이니

이야기만으로 야그인 것이니

이야기가 야그라 해도

바람결처럼 일었다가 사라질 것이듯

뭐 야가 야가

야그들이다 사라지는 것이니

야 라는 것을

쇠망치로 박아 넣는다고 해도

날카로운 송곳이라고 해도

그냥 야그처럼 숙성하다 가면

인생 제대로 익은 듯이

세월의 사이가 자꾸 허하다 보니

더 짧아보이는 법     

애라는 것이

야그들이란 것이다 사라지는 것이지

아기들이 크면 얘기 되는 것이니

그 것 뭐 바람무더기같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지

애벌레 같이 애라는 것이

얘기 같이 끼고

얘기인 냥 좀 길게 빼는 것이지만

정말 야그는 있는 것인가?

그냥 노랫소리마냥 해도  

그래요 그렇게라도 쫄가지는 있는 것이든가?

다  사라지면 그 뿐

손가락질 안 받으면 다행이지 않는가?

 

 

인공 위성아! 이 지구 관상 잘 보아두려무나

 

저 창동이라는 것이 얼굴인데 말이여

거기에 갈대 머리가 피는 것이 노원이잖아유

머리칼이 신경조차 없는 것같아도

갈대의 노래를 쓸어감이 손바닥이 아닌감유

그래서 그런지 자기 머리 위에 머리라고

또 자기가 선 것이 상계 위에 당고개가 아닌감유

즉 내 인생은 나의 것 고개도 내가 돌리는 것

당연한 것이 아닌감유

즉 내가 내 머리 위여서 당사자의 고개라 당고개인데

겁 없이 당고개에서 부당한 자가 고개를 돌리려면

정말 사당이 노하지요  

천 부당 만 부당이 아닌감유

그래도 기억인 倉이 洞을 기리어 쌓이는 것을

끌어올린 것이라니까유

실로 머리칼은 갈대의 노리를 부르는 것이쥬

無明?

그래도 밝으려 하지 않는가 봐유

소 귀에 경읽기?

아니쥬

우 귀 방학이요

좌 귀 녹천에 월계라고 하지요 뭐 

그래도 창고라고 해도 지식의 창고는 되지유

즉 얼굴에 이어폰을 낀 듯 달이 월계로 돌아 들고

방학이 세상 밖이라 느긋한데

학처럼 소리 없이 앉아도

세포의 수처럼 알아듣든 것이

소리로서의 분별보다 더 심세함도 있음의

아니 어떠면 이 것은 창고 倉이 아니라

아래 위 날 일자인 昌字가 아닌가?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각박할 수는 없지유

인공위성아!

그래도 마냥 인상 찡그리며 살 수는 없는 것이지

네 탄생 이 전에 늘 있었던 달님은 늘 웃어보였을

우리 순심이 마음같이 늘 웃음을 띈 것에서 아니더냐

중생이야 결국 나이들수록 울었다 웃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야 늘 웃으시니

난들 화가 난 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아볼 수도 없듯이

달님도 늘상 웃고 있지 않았더냐

꿈처럼 웃음이 엮은 창고가 창동이라는 것이니

그 길목엔 상문이라

숨도 쉬고

음식도 넘기고

수유의 자국은 세포마다를 다 돌아오는 자국을 순환이라

미타국이 되려면

천지인을 몰아 옮인데

미아인지 아미인지 서로 아닌 듯 맞는 듯

색인 듯 공인 듯 하는데

성실한 믿음이 돈독한 바위가 아니면

헷갈리고 골이 흔들려서 집착이나 하겠시유?

그래요 비몽사몽도 관문에 정신 차리게 하지요

아직도 미아인지 아미인지 아리송

그렇다 아니다 참 아리송

인생 한 막은 성을 벗어난 듯이 한 소하고 끝인 듯한데

또 성심을  다하라 크게 배우는 판에

수유엔 세포마다 다 밟은 자취를 갖고 있다고 혈소판인 판에

그리어 긴가 민가 하니

그래도 혈소판은 긴가민가 아니니

뭐 세포 하나 더 굽고 십으면 더 굽고 오는 수유리라

미아여도 천지인면 한 디스크는 굽기는 법이여

한양이 성곽일려면 혜화를 빼 놓을 수 없지

인생은 연극 한 무대에 한 더껑이 걷어 내지 못하면

제 알맹이를 순수하게 못 보지

인생을 연극이라고 해놓고 무대를 떠나지 못 한

허물이니 하면서도 떼어내지 못하는 생채기인 것이지

인간이여!

한양을 턴 큰 도둑과 같이 하고선

한양을 털어내지 못 하면 어찌 무대 밖이라 하겠는가

인생이란 하잘 것 없어도

한성에 축돌과 같이 박힌 듯 이름자 하나는 새겨준 듯이 한다는데

그래서 필부여도 주제 넘게 나랏님 욕을 해도

한 생 권리인 냥은 큰소리 치고 간다네

그리어 한성 한 껏 보풀린 듯이 하다 사라지는 것인데

혜화에는 연극이 구석구석

연극이라고 참 혜량깊게 감싸주는 것인데유

그 혜화를 모르고 제 죽을날까지 스스로 털지 못할 회한은

일생을 연극처럼 넘기고 다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렵지유

혜화!

참 고맙기도 하고

어머니의 눈물같기도 하고

참으로 못 참을 악다구니도

여기서는 연극인 냥 넘겨 주어야지요

여긴 한성의 주인공인 냥 하는 것이고

누구나 주인인 것이니

하루살이 무대가 아니라

한생의 무대로 다잡지 않으면

다 죽음의 문 턱에서 한 막을 버리기 힘들지요

자신이 램프의 거인이라고 여기지 않는 이상

시간의 주전자에 부푼 가슴을 다 접기 힘들지요

허나 여기서

자비임을 모르고 혜화임을 모르는

또한 한성을 쥔 자임을 모르는 자는

정말 천은을 모르는 자요

겸허를 모르는 자임에 틀림 없을 알아야 겠지요

호방한 듯이 하면서 죽음의 문 턱에서

회한을 남기며 남의 손가락질을 받느니

차라리 생색같아 보여도

자기 초탈의 천상벙 시인이 훨씬 호걸인 것이니

혜화을 알 때

한 인생 한성처럼 버릴 수 있는 자가 진정 호걸이라 할 수 있지요

그 게 쉽지 않으니

바위처럼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돈암인 것이요

성실하고 게으름이 없어도 민가 민가인 것이니

미아리 고개에는 天地人이 다 긴가 민가

 

 

e는 e일 뿐 @라는 골뱅이는 아니다

 

동대문이라고 크게 소리 한 번 열려다

다시 말려든 것 같은 一口도 되지 못한 함구에는

충정로로 해서

안으로 밝은 명동인 것이 있어서니

다 현자의 웃음이 그리 밝음이지요

밖으로 비추는 것이라면 光이라고 함이 맞지요

명동이면 밝은 하얀 빛가루와 같은 것이죠

진주알은 흰 듯 검은 기를 갖고 있는데

이는 SOUL인 영혼인 존재가

E라는 불순물이 들어 SEOUL인 되고 보니

진주조개가 된 것인데

완전 모래가 출세한 것이쥬 뭐

그래서 서울은 영혼에는 덜 순수한 진주 조개라는 것인데

조개 빛을 먹었으니

누른 모래도 하얀 빛을 띤 것은 놀랄만 하지유

그런데 갑자기 E가 야광주라고 빛을 낸다고 하면 이상하지유

사람들이 하나 하나 씩 모여 빛을 모아주니

느닺없이 진주조개라고 하는데

본래 조개란 달의 궤도가 굳은 대합의 빛이지요

즉 원소 3 주기율인 이허중에 고인 응결체가

천안통이요 천이통요 얼굴의 두 구멍에 허공이 합해 삼이듯

조개도 그렇게 도를 열었지요

네가 허의 도를 어떻게 가로막은지 아느냐? 하는 것이죠 뭐

 

 

사랑이라는 애매모호한

 

牛舍도 사랑을 끼니 대접이라 하지만

舍도 郞이면 사랑이라

廊도 舍를 끼면 사랑이라

사당에

사는 물리학을 좀 나춰보면 그렇게 보일 것인가

사랑방도 있는 것인데

이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인 것인 것인데 짐승길로 되는 것인지

사는 짐승 몸집이지만

랑은 사람의 몸짓이 가는 랑인가 뷔여

이 당으로보면 인문학적 휴머니즘

한 두 명 본보기면 원만한 열 사람의 평범한도 오그러 든 듯 못 따르는

세월을 두고 두고 곰탕해 우려 먹는 것

이 사와 당이 서로 아닌 듯이 서로 붙어 사는 것이 사와 당인 것

그래요

사랑은 사랑방 손님보다 더 사랑 받아야지요

모르죠

사랑방처럼 선심좋은 사랑이란 것이 안방같을지

 

 

이수에 동작

 

흐르는 물 속에 똥무더기여도

건져내면 횡재수라면 대들 것이

이수에 누른 동작이어도

손에 물 담그기도 싫어 배부른 소리를 하지요

이수에 동작은 이분적이나

점 더 당겨 고으듯이 영결시키면  

이촌에 박물은 같은 것이지요

누른 배밭에도

이수에 동작이면

동작이 꿈을 깨지 않았듯

아예 박물로 비추는 시스템

이 것이 淑明으로 영혼을 비추는 시스팀  

맑고 넓게 봐야 영혼을 보는 것이니

세월이 감추는 촌인 냥하는 데는

박물이 세월의 땅에 금광을 만든 듯이 

경매는 노다지처럼 경쟁을 올리고

땅의 혜량이 만든 화석의 횡재같은

석유와 같은 감성의 질이듯

세월의 논을 쥔 촌에 

향교의 지붕에 치미가 오르듯

횡재같은 값이라는 理性의 질이듯    

우린 은하수에

날으는 새와 같은 것

이수에 갇히고 보면

동작에 꿈이 펴는 시공에 있지요

그러니 꿈어도

박물관은 꿈이 아니라고 하지요

다 삼각지의 도형이 박물관적 歷史觀과 같은 도형이지요

물질성의 육신이라고 해도

맑게 밝게 영혼이라고 해야할  

무언가 입각화의 요체로 추상성을 빗은

그 속에 영혼이라는 본질의 SEOUL이 있지요

총괄성은 다모이는 듯이 하는 곳에

동작과 박물의 노래를 영혼으로 날려 보내야지요

 

 

남태령! 그 광합섬의 섬유인 이승 세계의 육신

 

남태령이 남섬부주

경쟁이 경마라 함인지라

禪이 바위만큼에도

샘을 부추김을  어쩌리

경마에 열광으로 모인 열혈들 

망상이듯이 출세란 것이 있으니

참 복마전도 지 애비 아니랄까봐

경마에 공원이라

公 하나 보고 오니 대공원이라 펼치는데  

舍에 든 것인가 堂에 든 것인가

아니여!

당에 떨어지면 사에는 남은 흔적인 게 씨요?

뭐냐구요?

뭐 족보에는 못 올려도

호적에는 올렸으니 관사의 서류에는 있겠지요

그래서 떨어지면 蛇足요 걸리면 龍堂인가

그런데 그래도 기어코 하나인 果에 들었다는데 어쩔 거여

그래도 여전히 개천 머너인 듯이 하지

긴 장마에 벼에도 귀가 나듯

시에도 귀청이 있이 청사인 듯

실제 천이 알아듣는 것이 귀의 청이지요  

과히 그 정도 넓어야 청사인가

舍가 영 堂 껏발보다 높네

다 백성을 다스림에 인덕원이 아니었던가

고르게 잘 살게 하는 평촌

흐르는 불결조차 모범을 보이듯 졸졸

범계에 금정의 꿈이 익어간다

 

 

주역의 호괘와 주기율적 탁성

 

이 날 日이 두 개며는  昌이 되는데

겹친 상이면 눈 目字요

머리 그물 망이 되는데

역시 양미간 사이로 보는 눈이 먕처럼 촘촘한 것이지만

눈 目자는 실상은 코를 말하는데

어찌 코가 눈과 같더란 말인가

그야 간단한 논리지

눈치가 코치라

즉 원소 3 주기율이 겹쳐지는 눈이면

그 주기율 상의 눈치는 간 데 없고 

어떤 선이 얽힌 것보다

선이 지워진 공간에 점으로 일어난는 

마치 박자를 갖춘 듯이 일어나는 것으로  

냄새로 분별해야 하는 포말성과 같음이 되었다는 것과 같다

그 변환점을 모르면 어떻게 오갔음을 알으리요

 

 

호박 넝쿨이 통채? 어림도 없지

 

다 마음이 인연을 부르는 것이니

마음이 주인공이라기 보다

조건을 부르는 것이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보면

결론은 좀 늦춰진 타이밍에 있다는 여유는 된다

요즘 애들 앙증스럽게 귀여운 것도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이지

초등학교에만 들어가도

욕 한 번 뱉으면 소름이 돋을 정도니 세상은 각박해 졌지만

그 게 불가항력적인가?

그 건 동의할 수 없음은

인간 내면의 이중성이 불문율같은 눈치보기로 극성이니

너무 이기적인 데도 아부까지 넝쿨 채 들어오는 것이니

기고만장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것이고

호박을 장미로 바뀠더니만

이젠 마져 채우자고 보채는 것이 가시돋히기 아니든가

호박 넝쿨이 통채?

어림도 없지

 

 

삼세제불 실전조죄(三世諸佛 失錢遭罪)에다 고금조사 실전조죄(古今祖師 失錢遭罪)

 

본래 부처도 부처로 돌아가고 보니

노잣돈도 모르고 왔다는 이야기인데

오고 보니 몸뚱이는 잊어먹었더란 이야기와 같은데

죄 중에 이만한 씻을 수 없는 죄가 어데 있는감유

돈! 돈! 돈! 

아둥바둥해도 모자라는 판에

그 것도 있는 돈마져 잊어먹고

제 식구 굶어 죽는다고 얻어먹게 하는 것이니

이 몸뚱이라는 것이

돈 없이 얼마나 갈 수 있는 삶이 되겠시유

먹는 것 걱정 없다고 해도 배는 늘 포도청이니  

요즘에는 십 원이 모자라도 상습법으로 보는 판에

부모도 이런 부모 만나면 부모 취급도 말라고

은근히 취어짜는 세습 만드는 판에

그래서 성철 큰 스님께서도 부처도 지옥에서 본다고 하지 않았는감유

그래도 종정급이니 보처님도 보지요

저야 돌중급이니

그런데 말이죠

그래도 중은 중이라고 보여주긴 보여주데요

저는 부처는 못 보고 감방에 있는 조사는 봤다니까유

왜 깜방에서 보았느냐구유?

그 건 말이쥬

조세형이 小盜라고 했는데

자꾸 大盜라고 부추겨 결국 형량도 大로 받았으니

아니 명색이 祖師가 되어 가지고

무전 유죄 유전 무죄라고 외쳤으니

중생도 오는데 조사께서 오시지 않으면

어찌 세간법과 출세간법이 같으냐 하는 것이죠 뭐

전 그 때서야 알았지유

부처는 지옥에서 보고

조사는 감방에서 본다구유

너무 과장된 표현이 아니냐구유?

아니죠

죄는 죄라니까유

부모가 되어 땡전 한 푼 없는 도가 비애 중에 비애라니까유

그런데 말이쥬

최후의 동전 한 닙이 장례식장에 노잦돈이라더니까유

그 때에서야

결국 동전 한 닙 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 외쳐도

끝끝내 잊어먹고 갔구나 하는 것이죠 뭐

 

 

아버지와 어머니

 

아! 하고 앞에 느낌표 절벽 갇을 때 둘러보면

세상은 벗으로 사는 법을 알아야지요

그래서 아! 하고 파도 높쇠 한 컷 찍은가 하면

버지하고 아래로 살며시 낮추며 넘겨 주는 것이 아버지요

어? 하고 의심이 가슴 부푼 듯이 하니

늘 어머니는 말씀이 밥은 제 때 멱냐? 이지요

그래도 물음표가 물음표를 무는 인생이어도

젓을 먼저 내미는 것이 어머니지요

 

 

이어도 살지요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살지요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살지요

없는 듯이 살아라

그리어도 살지요

있는 듯이 살아라

그리어도 살지요

수미산 꼭대기 본 듯이 살아라

그리어도 살지요

뭐 꼴랑 있을려고

그리어도 살지요

파랑도라 팔랑팔랑

꿈같이 왔는가 살지요

 

 

앗따! 돛이 좃 됐네  

 

배에 달린 것이 닻과 돛인데

이 것이 가라앉아 잠기면 닻이요

발딱 서면 돛인 것이지요

수심에 잠겨도 평면적이라고

모음인 ㅏ인 것 달고 닻인 것이요  

흔들림 많은 인생이나 발딱서야하니 돛도 되겠지유

이 火音의 끼가 많아 녹이고 굴린 ㄷ이라는 것도

굳고 보면 金音인 ㅈ이라

그러니 돛이란 고상을 떨어도 사투리식 혀가 굳다 보면 좇이라

앗따! 돛이 좃 됐네

 

 

아버지 돛 올리지 마시유

 

아버지 돛 올리지 마시유

닻 내렸는데 돛 올리지 마슈

그런데 어찌 돛보다 닻이 좃같은 감유

닻에서 보면 돛이 이카로스의 날내와 같지유

아버지 닻 화살표 한 번 솼으면 그만이지

닻 거두지 마슈

아버지가 거둔다고 거둬지는감유

제가 아버지의 닻인데

다 그 자리에서 진주를 캐고 꿰는 것이 어머니잖아유

여기 북위 38도 이남인데유

더러워도 못 떠난다니까유

제가 아버지 닻이라니까유

태풍이 불면

그래도 솔베이지의 노래를 불러줄 곳이 여기라니까유

 

 

한 알이면 영혼의 무게와 같으면야

 

한 알 먹으면

수 만 년 사는 몸을 왜 못 만들까

영혼은 이미 그렇게 되어 있는데

왜 사람은 안 되는 것일까

이는 곧 원소 3 주기율인 시공계

즉 광속으로서만의 섬유성만으로 엮은 의식계이기 때문에

원소 2 주기율의 응축성에서 보면 물 위에 둥둥 뜬 배와 같다

즉 인간의 배도 그 배와 같다는 것으로

배는 차면 가라앉는다

즉 인간은 한 알의 약을 먹으면 가라 앉는다는 것이 된다

그러니 다 채우지도 못 하고 비우지도 못 하고

비웠다가 채웠다가

이 입이라는 것이 나 하나라고 하지만 인류가 배겨 나질 못한다

 

 

소재학(素材學)의 원류 비너스

 

비너스는 불멸인 크로노스 神의 거시기를 잘라 지중해에 버렸는데

그 자리에서 비너스가 피어 올랐다는 신화에서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중해가 거시니 맛을 보고 표현한 길이 비너스였는데

그런데 소재가 마탕치 않아

거시기를 그 소재인 채 化하게 하여 비너스를 빚은 것이라는 것이다

비너스는 神이다

그러니 지중해가 표현할 길이

희열의 극치가 地中의 흙으로는 못 빗는 것이니

결국 天肉을 되씹어 낸다는 것이 비너스인 것이다

그러니 늑대니

도둑놈이니

악마이니

나쁜 놈이니 질러대어도

결국 피는 것은 비너스였는데

크로소스는 나쁜 놈이어도 참 요상한 부활인 것이지

오! 사랑의 화신 비너스여!

사랑 빼면 시체인 것이지

크로노스의 죽은 거시기인 것이지 별 수 있는감

사랑!

사랑!

사랑이로구나

이성인든 감성이든

다 性에 달린 感과 理이지 않은가

感인 돛을 달 것인가

理인 닻을 내릴 것인가

물에 뜨면 다 남쪽일 수 밖에 없는 배

그 제로섬의 눈금이라는 것으로

 

 

오로라 공주

 

밤은 밤이 아니라고 백야가 핀다

밤이 밤이 아니라고 만년설이라

도리어 하얗게 알깐 재주는

어둠에서부터 하얀 밟자국이다  

공주님이 그렇게 내려 오셨나요?

오로라 공주님

오로라가 피는 데는 누구의 유혹인가요

눈 사람도 만들지 말아야겠지요

유배 온 것 같으니

소냐의 발길과 같으니

언 땅에도 봄은 멀지 않겠지요  

한 초상조차 세우면 굳을까 두렵지 않겠는지요  

화석같은 추억도

눈같은 얼음으로 맻혀 떠나야 하는지도 모를

그래서 눈은 차라리 맺히지 않고 녹게 만드나 봐요

한  순간을 영원처럼 묻게 하는 대지

그럼 어쩜 오로라 공주를 잊어버린지 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