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실(이 글은 순수 창작품임)

~에게

narrae 2010. 10. 1. 16:55

~에게

 

~ 形의 파도에

에로 에두르니

게가 별자리 주소 적는다고

옆으로의 스텝이라는구나   

 

 

런닝머신 자동 이채

 

바다 참 넓다

뱀장어마져 풍류객처럼 여유롭다

그런데 어찌 근육은 저렇게 못 말리는지

도리어 풀린 듯한 것이

저리 똘똘 뭉쳐지는 산소배출기 앞

런닝머신이 수족관 평수에서 변압기 노릇하며

저 전자 올챙이 근육을 이어 받는구나

 

 

뼛짜구

 

확실성의 추구로 시적 감각을 얻기는 힘들다

더욱이  미지적일수록 과학성의 부각으로 헛물이 되기 쉽고

또한 꿈깨는 일이기 때문이다

뭐 나도 좀 추상적인 것이고 감성적인 것으로 

구체적 논란성에 벗어나고 싶지만

그렇다고 사랑시에 치우친다고한들

사회적 논란이 가만히 있기나 한다든가

아마 길가던 개도 친구야! 할 것이다    

살다보니

나도 운신의 폭이란 것이 한발짝도 아니다 싶으니

과히 세상은 바람과 구름같은 발자국이구나 싶기도 하다

다만 내 어릴 때 

五里나 되는 국민학교를 들판을 가로질러 다닐 때

길이 하얀 것이 사람이나 마차가 달린 이력이지만

그래도 그 가장자리에 덤성덤성 보이는 것이 뼛짜구(질경이)였다

원체 거칠게 자라다보니 잎이 성하질 않을 뿐 아니라 

하얗게 얼룩마져 졌는데

옛날 구구단 욀 때 구구 뼛짜구라 했음이 기억이 생생한 중에

이제사 무언가 와닿는 것이

어찌 뼈에도 짜구가 나 하얗다고 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 풀은 난을 친 것이다

 

 

기분 엿같아도 할 수 없지

 

산다는 게 늘 어슬프니

애들 연필글 떼듯 똘망똘망

이 짓도 않으려니

저 글조차 뜬구름도 아니 맺혀 보이는구나

내 글이 앙다무니

저 글도 정기인 냥 설레발이 치는 것이 보이는

무슨 독존행 따로 있는 것이라고  

하나같이 바람치를 내 쉬나

내가 바람을 엿으로 꽁꽁 묶어 놓은 것에 꽈배기 춤  

그래도 좋으이

녹여 먹으려무나

녹여 먹으려무나

입씸도 좋네

 

 

저방심(底房心)과 위묘필(胃昴畢)

 

수평선을 心이라고 하는데

그 것은 하늘과 바다가 맞물린 사이라는 것이다

물은 스스로 自靜이어야 心이 된다

여기에 옹이적 뿌리는 내 놓아야 하는 것이니

뭉게구름은 옹이가 빠져도

底인 듯이 접붙은 자리인 듯 피어 오르고

房이 되기도 하는데

子午 間에 허리 쯤에서 심이라고 센타라인을 긋는다

위 끝 봉오리가 아니라  

늘 천지 간에 중심을 내어도  

다람쥐 도토리 숨긴 듯이  절대성을 상상케 하는 자리다

수편선의 물결과 같은 율동의 나무란 것이

이 손바닥 사이의 그림자가 나듯이 심이 물결치는 것이요

다 거풀에 불과하다도 하지만

그 걸 심으로 일어서는 것이 나무다

또한 이 자전(自轉)의 물레를 빌려 세움에  

나무를 인(仁)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물은 자정(自靜)에 심이 있지만

다만 손으로 잡게 할 수는 없다

마음결이지  

또한 나무는  굽은 심지가 아니라

곧게 깎아 그 위에 새김으로서  

자신의 굴절을 덜 수도 있다  

즉 건네주기 위한

지속시키기 위한 고정성의 굴절을 다듬어 

시간을 내적 심으로만 움켜 잡고

평형적 형상을 유지할 수 있는 영속성으로

인자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생 곡절 어질게만 살아도

판판한 심지와도 어울지 못하란 법도 없는 것이니

사람은 굽은 듯이 살아도

비석글에 판판한 낯짝일 수도 있어야 한다

본래 아침과 저녁을 경과성을 의미하는데

아침은 태양이 떠오르는 자리라 심이라고 하고

저녁은 기우는 자리라 胃라고 한다

즉 태양에너지는 자력적으로 심에 있는 것이지만

저녁이면 연료 탱크에 의지해야 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

그대여! 그댄 인간을 위해 얼마나 좋은 일을 했느냐의 畢이 있으니

홍익인간의 기본이 아니든가

이 것이 다 오장육부의 이야기인 것이니

이 또한 畢이 좋아야 좋은 위장을 만들 수 있고

저변을 잘 깔아야 심장이 좋아지는 것이니

아래라 나쁠 것 없고 위라 좋을 것도 없구나

 

 

닥! 닥!

 

모든 것이 지식과 경험 속에 있다할 것은 아니다

지혜에 있는 것이다

지혜란 종이 위의 것이 아니다

종이 자체의

또한 그 이전의 닥나무에서 왔다

죽비 소리 닥! 닥!

닥나무 심지 겉으로 더께를 끼운

껍질로 치듯 닥 닥

그 것이 그림자 놓일 종이판이라고

다 하얄 뿐인 것에서

같은 종이라도 사람마다 다른 종이라고

극구 말 또한 많아진 종교적일 수 밖에 없구나

 

 

니 나노

 

엄지 공주야

엄지 공주야

내 머리는 머릿칼의 나노머리

넌 내 솝톱 끝으로 나는 나노 바람으로

커튼을 치고 드러낸 공주

난 머릿결 날리는 나노의 산

아! 바람결에 심취하는 날

저 어린 것들이

잠자리채 들고 늘 자기길을 낚아 본다

 

 

식(識)과 혜(慧)

 

우리가 識을 많이 다루는 것을 보면

식도 무시를 못 하는 것인데

아는 것으로서의 식별이라는 뜻이리라

다만 龍으로서의 퇴화가 뱀이라면

용의 慧로 識이된 다리를

다시 識으로 풀며 돌아갔다는 것이고 보면

결국 慧는

현 환경 상의 적응으로 맞춘 인식에 있다는 것이 되는데

이 건 어찌 보면 긴 세월 간의 변화라 할지라도 

慧라기 보다 꾀일 것같은

즉 이 識을 넘었다고 해서 慧를 넘은 것이냐 하면

결국 龍으로 돌아 간 것인데

이 것을 단순하게 식과 혜 간의 설명이 아니라

모든 조화는 용에 모였다는 것과

구름같은 의식이

모래알같은 인식으로 뭉쳐졌다는 것과 같은

운동에너지적 차원이 아니라

위치 에너지적 차원으로도 구도를 잡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카멜레온의 푸른색이 푸른 색인 것에

푸른색 이전의 메카니즘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두고

푸른색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 원칙의 길이

더 훤하다는 듯이 할 수 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순간적이라 할지라도 

푸른색이 푸른색으로서의 접근으로 이룬 원칙의 문명을

등 빛깔의 조화만으로 잘 살펴준 듯이 상전처럼 누리면서

낮짝 두꺼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즉 주제적 위치도 안 잡고 

설명만 장광인 것으로 상피성에도 못 머물면서

밤낮 외양적으로 치우친 것으로

혜택인 냥 설칠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인 것이다

 

 

레이저 막대에 글쓰기

 

우리가 레이저 선에 글자를 새긴다면

설령 새겨진다 할지라도 우리 눈으로는 보이는 것이든가

그럼 그 것으로 보려면 슬로비디오화한 눈을 가지든가

아니면 두 개의 시공의 가지게 되는데

글자만 보이든가

막대를 쥘 수 있는 손을 가지든가

그보다는 빛보다 빠른 세포증식으로 들이는 몸이라면 쥘 수 있겠지

또한 그런 물건이라면 새겨넣을 수 있겠지

빛보다 빠르니 탈 리도 만무하고

우린 영혼을 허수아비보다도 가볍다고 여기지만

금강석처럼 단단한 것이 아닌가?

어쩜 가볍기에 사물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무겁기에 통과하는 것이 아닌가?

허나 이 것 또한 더 가벼울 수 있지도 않겠는가

 

 

대증요법과 28 宿

 

보통 유성장(柳星張)이면 피로 회복제나 환각제

콜레스테롤 강하제 같은 것이고

정귀井鬼는 종기와 같은 것이지만

또한 이식된 기관과도 같은 것이고

자참紫參은 수술도구나 연장을 활용하는  것이고

익진(翼軫)은 부목을 대든가 하고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것이요

미기尾箕는 탕약을 부채질하는 것과 같아

약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보조제를 말하며

한 번은 걸러내는 것이 좋으며 많이 흔들수록 효과가 더 난다

각항角亢이면 영양제를 쓰거나

체온을 상승시켜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하고

평균보다는 상승된 수치를 유지 시켜야 하며

국부 마취를 하기도 하며

보톡스를 사용하는 성형과의 일이리라

저방심底房心이면 인공신장기같은 보조기를 설치해야 하고

실벽室壁이면 두문불출이라는 것이지만

병이라면 두터운 피막을 짓는다는 것이요

약이라면 캅셀의 유효성을 따진다  

여허위女虛危면 재검진을 받을 것이며

여장남과 같은 성형한 것같은 연극제의

들통 날듯한 위태함을 안고 있는 것이며

병이 별 것 아니라면 도리어 이상하다

위묘필胃昴畢이면 위장검사는 필히 할 필요가 있으며

완치된 병도 정밀검사를 할 필요가 있다

두우斗牛며는 저항력 간의 싸움이니

병이며는 항생제가 내성이 생긴 것이다

아마 지식상으로 28宿을 아는 자는 많아도

이런 범위로 활용하는 자는 보질 못 했다

건강과 몸보신이라면 눈에 불을 켜는 자들이

이런 영양가 있는 것이라면 구석진 글이겠으랴

어렵지 않게 글자의 뜻을 유심히 깨달으면 알 수 있는데

알고나면 시원해 보이고 별 것 아니어 보여도

지식과 지혜가 멀지도 않지만 등잔밑이 어두운 것과 같다

참으로 한심한 것은 우리의 한의학이다

독일 기계 하나가 경락을 발견하고 나니

그 때서야 구석박이 침술이 위대하다 떠들더니

아직도 그 정체성을 어데다 두고 있는지

참으로 제 지조를 모르고 사는 사람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명의가 못 되면 신의가 되라

그러면 귀신인들 병과에는 없으리라

어느 학문이 논리상에 신출귀몰이 있었더란 말인가

 

 

동서양의 의식에 보면

 

서양에서는 한 번 노우는 영원한 노우이다

허나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 노에 대해 예스면

노우인 것이다

그러니 영어는 원칙이 깊고 體에 중점적이지만

한글은 마당발에 따르고 用의 효율에 많이 부속된다

그러니 영원한 노우맨은

예스맨에 길들여지다 추락하기도 하고

또한 영원한 상전이 되기도 한다

즉 영어 상의 노우는 노에 대한 관점이니

언제든지 같은 위치

평등한 공유으로서의 자신의 지류를 내놓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말은

예스에는 노우

노우에는 예스라는

상대에 따라 각을 만드는 것이기에

사람의 심리에도 많이 견주는 바라

시쳇말로

때가 어느 때인데

내가 누구인데 내게 반항하는 거냐도 되기 쉽고

네가 시대를 아는가 하는 것에 휘둘리기 쉬운 것이다

 

 

 

고래 고래도

떡떡 붙으면 가래 가래 되는 떡

햇살은 못 잡아도

떡살은 잡으니 됐다

대지에서 부터의 덕살이라 먹으니

국수 너댓 그릇 먹고도

몇 자축에 엎어지는 것보다 실하네  

 

 

완행 열차! 참 털털한 놈이였지

 

울화통이 치미니

KTX처럼 미끈하지 못하구나

방긋 웃는 KTX

무슨 일이냐는 듯이 반질도 하지

어찌 입도 떨어지기 전에 잘도 빠지기만 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공짜 맛사지였다 싶기도 한

칙칙 폭폭

칙칙 폭폭 심호홉이다가  

덜커덩 덜커덩 터는 완행열차에서 졸리운 듯이  

누구도 모를레라 털털해지는 노루잠에서 눈 떠보는

난 어쩔 수 없는 삼등칸 체질

 

 

정담 속에

 

언어는 창포풀처럼 모였다 싶기도 하고

줄풀처럼 몽총이 모였다 싶기도 하고

고기가 두 마리 세 마리 모였다 또 다른 대화같은 듯이  

쓸쓸해 보이기만 하다

물결이 크게 먹었다 작게 먹었다 싶어도

한가함만 믿음이 있는 중에

세월은 흘러도 병풍 속 삽화만 사는 듯이

한 방울의

한 쏱 폭포였을 눈물을 떠난 듯이 애뜻함이 있다

 

 

적덕시공(積德施功) 유자손(有子孫)

 

삶이 물에 물 탄 듯이 좋아서도 되는 것이 아니요

작아도 맺음을 짓는 의지에 관건이 있음에 이 결실의 사회인 것이니

그대 야무진 눈매 속엔

무심해도 좋을 사랑에도

한생의 사랑 정도야  당찬 듯 야무짐이 있다

내 그대를 보노라면

저 볍씨 하나의 눈에도 그리 야물었을 알겠을

왜 積德施功에 자손이라 했음을 알겠구나

눈은 완결로서 싸야 눈인 것이지

물에서 난다고 눈은 아닌 것이니

 

 

점안(點眼)

 

이 아침에

별 쏟아지듯 반짝이는 호수에는

그래도 한 다리 위의 나무로 눈이 나는 것이요

개구리 뒷 다리로서의 눈이 되기 위하여

물 분자 하나에 올챙이 눈을 심는 것

이 것이 영혼의 주머니라면 터지고도 남을 듯이

우리 육신 또한 터지고도 남을 듯이

 

 

세상은 노우에서 예스까지로 한 원상(圓狀)이다  

 

노우에 노우는 노우인 것은 병렬식이다

즉 한 점에 난을 치는 것이다

허나 노우에 예스는 노우인 것은 

음과 양이 갈라진 브러시 안에 손잡아 끌어

그 뜻을 다 이뤄 놓고 떨궈야 하니  

연쇄적 사슬줄이 나며 얼레와 같이 감는 현상이다

세상만물은 저항성 제로에서도 이 연쇄적 복사판으로 해서

저항적 에너지를 누적한 형태로 살아간다

 

 

나무의 지주력

 

저 미주(美州)의 사막에서는

자리공이 늘 중앙을 비워가며 가장자리로 증식하는데

그 희긋희긋한 생명력에 관심을 두지만

비어보여도 그 중앙을 이겨 나감이 상승 기류와 같다  

이 건 상대적 에너지가 아니고

공(0)的 에너지라고 돌고돌 뿐이며

이 원상인 채 상승기류가

또한 거대한 고목 나무와 같은 섭렵이 일어난 듯이

인간!

우리 또한 한 몸으로 한 번이라는 것으로 해탈인 것이 아니든가

 

 

해탈과

 

난 인류의 지대한 가치 중에 하나를

서구의 종교개혁을 든다

그래서 직접적으로는 난감할 때가 많지만

어차피 사람으로 인연된 것이니

밝게 보아온 것만은 그대로 갖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정서상으로 구교와 많이 닮아 있지만

내겐 옛사랑과 많이 닮았다 싶지만

옛 사람이 아니 듯 거리감만 들게 한다

불교는 결국 해탈의 성취도이다  

난 사회적 해탈성도 중요하다고 보기에

서구의 종교 혁명을 해탈적 일부로 볼만한 가치는 된다고 본다

그러고 보면  

구교가 토속성과 맞물린다고 해도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다만 한국역사에 있어서의 해탈적 인연에는 앞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그 자체가 갖는 역사성의 깊이에서 

여러 가지보다 우듬지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는 것이다          

 

 

구성력

 

글이란 한 행 안에 탁월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장문에도 하나의 축조형을 느끼게도 한다

짧든 길든 그 구성도에  매력을 느끼는가 하면

아예 서술만이어도

뜻이 알차게 짜여서 좋다고 쓰기도 한다

낱말과 낱말 간에도

찰나의 비색을 그러낼 수 있는 듯이

숙어 폭에서도 수 천 길 단애를 깎은 듯이

절세의 장엄으로 섬득할 수 있듯이

우리가 한 행 상의 모임의 형태나

페이지 상의 모임의 형태나

보석 세공은 그대로 맛이 있는 법이요

건축상의 형태도 그대로 맛이 있어 보이니

폭이 넓을수록 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할 일을   

 

 

건강 약초 전문점

 

나무가 세상 공연을 공짜로 불 수 없다고

건강약초가게에는

나무들이 사람을 비롯하여 온갓 대용품을

벌거벗을 채 표본물인 냥 담겨져 있게 헌신한 것처럼

허상을 실팍하게 그나마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선지

공존의 댓가를 지불하듯

실물인 기를 덤뿍 움킨 것으로 가져가게  한다 

 

 

이해력

 

피카소 그림일수록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논단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그런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언제부터인지

그림도 한 사고의 전제하에 점철 되는 듯이

대상과 다르게

딱지가 끼며 일어나는 나무와 같이 

사물적 탄생을 불어 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만큼 

마치 메두사의 머리에 사는 뱀의 갈래를

어떻게 달리 다른 기하학적 구성을 갖추어 보느냐에 따라

용도와 기능이 있는 것이라면

실제 학문적 구성력으로 모양을 낼 수 있는 경지라면

피카소 그림 정도야

그림일 뿐이요 껍대기일 뿐의 흉내일 뿐이지 않은가

 

 

이하동문 꼬리표  

 

내가 글을 시작했을 때

될 수 있는 한 글을 화화적(繪畵的)으로 그러낼려고 노력했는데

그럴려면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니 한 주제에 다양한 양태를 그러낸 것이

또한 트집잡이에게는 

하나도 야물지 못하면서 욕심만 많아 싹쓸이로 후적거리기만 하는

못 먹는 밥에 재뿌리기 식으로

위기감으로 느끼기는 당연한 듯이 몰아세우기도 했지만 

난 그림이 주는 인상을 뛰어 넘을 수 있어야

그나마 문학의 궁핍성을 극복할 있다고 보았는데

어차피 날 보지 않는다 해도 더 나아질 것도 기대키 어렵거니와

단편적으로 아껴 먹는다고 우주성에 도움에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이러한 총체성을 자기 중심적으로 초월해야

다각성의 확보도 되는 것이니

무심코 지나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 뻣대는 것이 되어

네가 머리에 찬물 끼얹듯이 하니  

나도  네 머리 위에 상전이라고 드미는 것이라고  농락하는 자도 많다만

그보다는 서로가 다르다는 것만으로

수긍해 줄 수 없음 또한 얕지도 않은 것을

어차피 모두가 극복해야 될 것을

자연스럽게 정중하면 될 것을   

누구든 이 문제점으로는 함구력이 깊다보니

사람마다 싫어함이 각기 내숭이 다르니  

오히려 마치 원수가 된 냥에

무언가 다움이나 품이 없는 놈에게 인정해 주기도 그려니

차라리 무시해버리고 말아 떪떠름해져 있기도 하지만

이럴 때 종종

정치가들의 역사가 말해준다는 말을 되씹게 되는데

요즘 그 결과를 보자면   

세상사가 세월이 지나면 다 묻어지고 희석되어 버리고

속사정과는 왜곡되고 핵심을 벗어나 있어도

현실적으로 접근이 안 되는 데

무슨 세월이 접근이 되겠느냐 식의

설령 미래에 드러난다 할지라도

그 시대에 안 되는 것을 오늘의 시대의 것이 될 수 없듯이

오늘은 오늘인 것의   

오늘의 논제에 넣어도 같은 속성의 바란스에 있는 듯이

역사가 말해준다는 모호한 말처럼   

역사가 깨우쳐 주고 가르쳐 준다기보다

똑 같지 않느냐에

너라고 별 수 있느냐에

이하 동문인 냥

꼬리표 붙여 자신만만해져 가는 것에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曲도 가지가지 1

 

병 속에 갇힌 새가 벽은 무슨

눈길이라도 마주칠까 오금 저리게

길에서라도 만나면 넙죽 절하는 것이지

어찌 명문 나와 세상 시끄러우니

참 기막히게

안 나온 놈 골라 잡는 꼬락서니라니  

대도무문이 참  실감이로구나

옹벽이면 쥐구멍이 난리인 판에

담쟁이야

댬쟁이야

이 지경에 무슨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을 태워 붉디 붉더란 말인가

 

 

曲도 가지가지 2

 

담쟁이란 것으로

뱀이 제 독을 삼켜 기어오르니

이무기 승천처럼 보일 듯도 한다만

어데 그 곳이 몸 풀며 용을 낳을 곳이든가

또아리 틀고 날을 곳이 따로 있지

붉디 붉은 핏줄들

다 심장 하나에 돌아가는 일인 것을

누에가 왜 뼈가 없는가

왜 피를 피(皮)라고 했는가를

예전에 말한 바가 있거늘

 

 

안식(眼食)

 

홍채는 눈 밖을

도리어 해저 바닥이  깔아 들이킨 것이듯

눈이 이 세상을 바닥인 냥 들이키는 것이 아니든가  

 

 

눈꼽

 

가장 수학적인 단어가 눈꼽이다

곱에 곱이란 과히 와닿지 않는가

낮에는 눈꼽이라고 할 수 없지만

밥이면 전자계산기보다 빠르게 굴리며

곱곱이 텃치와 같다고

그 환산치 필름에다 바르면

눈꼽만치에도  인정머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키재기

 

사막이란 것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생명이란 것이 눈에 띌 수 없는 것이지만

설령 내가 백치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물 한 방울이 나무보다 더 놓이 올라감을

휘졌다 사라져도 나쁠 것이 없지야 않겠는가

 

 

자살과 과학적 뉘앙스

 

일각에선

자살을 이별로 보는 것이 아니고

합으로 보는 것이니

그 현상이 마치

목을 매면 나무로 화한 것이요

물에 빠지면 물로 화한 것인데

이는 탄소와 산소 만나 불을 따르는 이치와 같은 것이니

죽은 자의 령이 나무에 깃들음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리

 

 

뉘앙스 3

 

구(舊)와 신(新)은 鬼와 神이라면

그 뉘앙스는 얼마나 유추할 수 있을까

내게 있어서의 한 편은

舊가 없으면 鬼라 끄집어 내지 못 하니

神이라 할 수 있고

新 또한 없으면 神이 못 되어 鬼라 할 것이 아니 겠는가

우리의 잠재된 전체성에서의 균형에서는 무언가

매우 편협된 질문과 같고

모과열매같이

한쪽으로 찌부뚱한 것같기도 한 것인데  

그 뜻 상의 연결이나 소속감은 배제하더라도

한 쪽으로 찌분 듯한 완력의 끈들을

어떻게 끊어야 바로 잡히는 것인가 와도 맞물린 것을

정말 뜻 하나는 한 켜 덜어낼 수 있는 것이든가

이도 다 어떻한 질문상의 각도여도

그 논제상의 관문으로 독립될 수 있는 해답은 있는 것이니

켠켠이 나올 수 있는 것이지만   

또한  얹지 않을 수도 있음이 다 통과성의 마음에 있는 것이지

마음의 벽도 다 내 마음이 아니거늘 무슨 허수 장군에 바라리

 

 

기타 부기

 

옛노래에 기타 부기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구석박이 외로운 섬 같은 자치방에

덩그러니 놓인 적막 사이로

또 마음의 심줄을 끌어붙여봐야

더 허황짐에도

상처가 아님에도 기어코 현으로 울어야 하는

삶이 기타인 것에

또 누구의 주제인 냥

나의 주제인 냥

현발로 빗금친 간지놀음에 퉁퉁 붓는 듯

기타가 其他에 맞는 듯이

부기가 괄호 안이라 하니

도리어 알맹이가 되는 듯이

길 가다 종종 띄는 식당 음식에

어느 방송사에 나왔다는 부기와 같이

어쩌며는 광고가 껍질로 둘러싼

내용 상의 알맹이로 나왔다는 것이

그 껍질의 기타에 부기에 붙은 듯이 할말 하는

덤불처럼 불을 붙인 것

 

 

희한한 닮은 꼴

 

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미국의 한 소도시의 

고모집 구멍가게를 봐 주던 어린 소년이

눈깔 사탕이 잘 팔리질 않자 꾀를 내어

망치로 깨서 

오히려 비싸게 팔아도 날개 돋히듯 잘 팔렸다고 하는데

논리란 것이 본래 그러한 것이다

둥글다 싶어도

그 사탕 안에는 긍정과 부정이 함께 실려

결론을 낸 것이지만

둥글 둥글 좌우를 함께 안으며 결론이 난 것이지만

양족에 불평만 있는 채 싸맸을 뿐이라

사는 게 참 비싸게 친다 싶어 접근을 꺼리지만

망치로 깨어 놓고 보니

원만한 중에도 모가 있었다는 것이니  

한 쪽은 긍정적이어도 모

한 쪽은 부정적 모

모가 또렸이 드러나나

각 각 따로 편성해 놓고 보면

이해가 쉽게   

자연 비싸게 치어도 싼 느낌의 자리매김과 같은 듯 

인생은 힘 앞에 그렇게 쏠리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사상(四象)과 팔자(八字)

 

우리가 음양오행학적으로 사상의학을 취용하기는 하지만

그 것은 그 성정을 구분하기 위한 과녁판과 같은 것이지

사주와 같은 깊이를 갖춘 것은 아니다

이 것을 맹종하면 좌판 맞추기에 볼과 하다는 것이다

즉 사주상의 메카니즘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건 마치

육갑 짚는 자들이 팔자 중에 한 자만 갖고 맞추는 식과 같은데

그래도 그 것이 맞는 이유는 인연법으로 맞기 때문인데

세상 모든 일이 인연의 끈으로 맞아들기 때문에

이 인연의 힘에는

여덟 눈 중에 한 눈만 갖고도 다 불 수 있다는 것과 같다

그 자체로서  맞다기보다 눈이 맞듯 맞다는 것인데

꿈 깨고 보면 여덟 개가 뒤숭숭한데도

그 순간에는 다 하나같이 맞다는 것이다   

아무리 팔자가 오묘함을 갖춘 유기성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인연이 안 되는 자는

인연의 유기성의 한 자 놀음보다도 못하다는 것이니  

四象도 그러한 단편성으로 눈맞음에 불과하지

그 자체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미치는 효용은 아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주처럼 확인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사주를 제대로 알려면 10 년 공부는 기본적으로 하게 되어 있는데

일이 년 공부했다고 적용하는 자체가 무리임을 갖고 써먹는다 함도

매우 편벽된 지식을 써먹겠다는 것과 같다

 

 

퇴행성

 

퇴행성에는 두 가지 양상이 있는데

아무리 그 것이 좋아도 행동을 못 해 퇴행성이 있고

그 것이 행위상으로 사회상으로 최선적으로 누리는 데도

원칙을 못 벗어 붙잡아 두는 퇴행성이 있다

이 것이 서로 흉을 볼 때는

마치 힘 있는 자만이 복 있는 것으로 치부하기 쉽다

 

 

백두산

 

백두의 생각을 나도 잘 모르겠다

뭐 한국의 잘난 축이

중국의 잘난 축이

덩치가 크면 큰대로 치마폭 같고

작으면 작은 대로 순도 높은 素子 같고

이미 갈라 놓은 것

터지긴 터질 것같은데

하나로 묶기에는 또 갈등에 휘싸인 것같고

 

 

 

베틀의 입 언저리에서 부터

뱃길이 밀려 온다

북실의 올이 밀려온다

이랑 고랑 

씨줄을 타고 온다지만

두렁 아니어도 벼랑의 날을 못 넘어

한 페이지씩 묶이는 책이라고 하는 것으로

북이라는 것으로

바닷가엔 어지러이 난 발자국

허나 늘 파도는 가지런하게 편다  

 

 

 

치는 북이나

애들 손으로 종이배 지나듯 하는 베틀 북이나

다 한 여울에 퍼져 나오는 것이라고

베틀이나 

쇠가죽 두드리나

이리 다르나

저리 다르나  

그냥 한 북이 더 와닿는 배추알이라고

 

 

열무

 

작아도 작아도 무우에 속한다고

줄을 서서 열무

시장바닥에도

장지문 돌쩌귀 곁에도

어찌 저 것도 하얗지 않으면 덜 허무할련가

알타리 알 타고 왔다고

슳듯 왔다고 탱탱 굵은 총각무우

청이 적을수록 굵어도 허무의 종

정맥줄 잡고 크개 들이켜 자정커니  

열무라

도리어 녹야청청 머릿결만 전설귀신처럼 굵구나  

인간들이여! 사과도 껍질 채가 좋듯

하얀 것만 너무 써먹어도  칼슘이 부족커니     

 

 

북에 고인 인연발

 

그대여!

푸른 멍 하나에도

망울져 오름이 무엇인지 아는가

나무 하나에 만났구나

꽃이 뜸질을 한다

 

 

구름은 철 모르듯이

 

달도 여유요

해도 여유요

저 별마져 그 자리라하고선

구름마져 철 모르듯이 하는

어찌 겁살로 짠 것이 있어

섹스는 숨가쁘게 마중인가

 

 

자살은 당신 주인공에 대리급도 못 되는 것이다

 

자살하지 마라

자살은 그대가 그대에게 회장인 것이

대리급도 못 되는 수준인 것이다  

고통스럽고 보잘것 없어도

생명력의 가치 때문에 주검을 대신하는 것이다

만일 자살한다면

그댄 죽어도 그대의 생은 대리 자도 못 붙이리라

존재가 그대 영혼의 주인공에 대리급도 못 되더란 말인가

자살하지 마라

그래야 그림자 없는 나무도 쫓아가보는 것이다

 

 

혜성의 꼬리에 지느러미로 마감할 수 았다면

 

혜성의 꼬리에 지느러미로 마감할 수 있다면

존재가 거기라고 할 때

존재는 고기에 있는 것이리라

피가 심장을 돌아나가듯

 

 

아연 괴(塊) 하나같아도 삶이란 것이

 

누렇게 세월 먹은 것들보다 더 먹은 골판지 깔고

팔방 각 세울 수 있는 것은 다 세우고 당아 놓은

인연의 포장같은,

빗물에 후줄그레 죽은 것으로 손길 닿는 노파에

와이셔츠 칼라에 섰다 구겨지고 섰다 구겨지고

천상에 눈꽃이 섰다면 지상에는 골판지가 선 괴(塊)

초상집 상주의 누른 삼베 옷이 젖어든다

 

 

야 부리

 

야!

야!

너!

너!

입으로 푸는 것보다

몸으로 푸는 것이 좋았던 야 부리

요 것 하나 곧았기에

공장은 공장이요

기계는 기계가 됐거늘   

요 것 하나에도 못 들면서도

고지식한 것에만 피통터지게 들었다고  

입만 살아도 독을 뿜지  

이런 힘든 인생이어도 땀끝의 시원함을 모르고

마음만 잘 쓰면 절로 몸으로 풀려 나갈 것을  

추함만 따로 있는 냥 하니 혹 하나 더 다는 꼴이지

산전수전 야로구나

야야야 망치로도  후들거려 봤을 때 입도 순했구나

기계가 입이 없다고 입 없이 막말 쳐바른 놈이 귀족은 무슨,  

헌데 어찌 입에 산 것들은 센타가 없어           

     

 

야 : 철이 강하기 때문에

센타나 기준선을 맞추기 위해서 가에 고정물을 만들어

그 틈새로 망치로 야를 쳐 넣어 휜 폭을 좁히는 삼각뿔

 

 

늘 매였다 싶은데 나들이 삶

 

살다보니 웃는 얼굴에 침맞을까 봐

웃은 사진도 짱박아 놓기도 하고  

시가 시같다 싶을 때 욕 더 먹을까 봐

시가 시같다싶지 않아 편해진지도 오래됐다 싶다

애와 노인네는 거둔대로 간다더니

난 애도 노인도 아니건만 따라갔다가 또 온다

 

 

천둥은 썰물적 꽃

 

저 허공 중에도

파편 놀음이 있고

자갈 놀음이 있고

난 천둥 벼락이 치면

태산에 바위가 굴러내려 오며

자갈 지르는 것이라고는

계곡 밑 산막의 부엌을 치고 들었을 때야 알았지

석공의 정같음을

파도가 몽돌들을 붙들어 놓았다

소롯이 손빼는 데도

벼락에 흩어진 길로 다시 모이는 듯이

천둥도 썰물기로 자르르 하다

바다 하나에 뭉쳐진 소리와 같은 듯

허공도 천둥같은 자에게 걸리면

막걸리듯 들어오는 모임과 같음을

밀물과 썰물의 이중의 자락을 느끼는 듯

 

 

꿈도 아니요 꿈 밖의 일도 아니요 꿈과의 일이니

 

꿈도 아니요 꿈 밖의 일도 아니요 꿈과의 일이니

반백에 멀미날 것도 없이

그냥 소탈한 미소야 절로 나게 되어 있는 것도

인간이라 무엇에든 되는 대로하려 해도 안 되는 것

다 남의 인생인 냥 꿈꾸며 살래도 안 되는구나

 

 

가르쳐야 인간이기도 하니

 

신이란

인간을 가르쳐야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한 데서

제 면목을 갖추는 것이라

가르침 없고 절로된 인류는 아니라는 것이리라

 

 

우리 것만이라 해도 행운일 수도 있지만

 

사주학이란

한국의 아침이 한국의 아침으로

미국의 아침을 미국의 아침으로 잡듯이

북반구의 여름이나

남반구의 겨을은 다른 것이요

막대 자석의 양끝으로 쇳가루가 모이듯이

적도를 기준으로 반대로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음양으로 모아두었다가

대운의 순행 역행으로 모뎀을 젼환 시킨 것인지

아니며 그대로 상반성을 취용해

대운도 그로해서 순행과 역행이 달라질 수 있는지

이를 해결해야 사주학도 세계화가 된 것이리라

 

 

호환성

 

왜 양파 껍질이 필요한가

이런 것이 있다

한 점 상에

그 겹질만큼의 시공이 존재해야

그 층에서 만날 걸

이 층에도 만날 수 았는 것이다

그래서 징조가 실제상으로 모이고

실제가 징조상으로 모이고

대우주가 소우주에서 만나고

소우주가 대우주에서 만나고

시간이 점이면 시에서 여울진 배추 잎사귀같음이요

한해가 점이면 점으로 여울이 있기에

양파껍질 속 다른 시공이어도

그 주기 안에 만나는 것을

무에서 번진 듯해도 무가 아니니

양파 테두리가 허무라 해도 씨앗은 다 일구고 마는구나

 

 

용트림 행차에 나팔수

 

산다는 게 꼭

나팔 입에 풍선 키스해 놓은 듯이

하늘이 용트림하고져 함이

용이 들려니

봄 아지랑이가 나팔 들고 오르기 바쁘다

헌데 나무에 걸어 놓은 나팔은 벌써 불어 대고

불어도 불어도 제 때일 것 같더니

닫아 풍선집으로 드니 내년을 기약한다

특히 나팔꽃 카뗀짜는 가늘고도 길구나

 

 

 

장사 중에 옷장사가 이문을 제일 많이 남긴다는데

그러나 옷이 그보다 뻥튀기이니

꼭 비싸게 치기나 하든가

사람이 손해보는 짓거리는 안 하니

거기를 찾으니 고기를 찾고

고기를 찾으니 거기를 찾는데

절밥 제대로 챙기면 고기랄 것도 없고

그러니 안 보는 듯 해도 구석구석 처다보고

하물며 신호등만 위반해도

무심한 듯 해도 챙겨질 건 챙겨지는 것인데        

평상심이 도라고는 하지만

평범심에서 손해가 아니라

존경심에서 손해본 것 같으니

더 저질적으로 싸잡기 마련인 것이  

악다구니만 늘려간다고  탓할 것도 못 되니

법의라는 것

그리 호락호락한다든가

나도 인간이니 하다간

수의 중에 그런 수의가 없으며

죄수라도 그런 죄수가 없으리니

다만 진정으로 비운 자에게만 옹호신이 될 것이니

옷에 가짜냐

법에 가짜냐는

다 제물에 벗을 자 벗게 되고 입을 자 입는법

이 허물이든

이 날개이든

처절하게 입지 못 하고 감각을 모른다면  

다음 생이야

법거랑도 못 하고 말 것인데 무슨 걱정을

 

 

개가 불성이 있는가에 앞서 무엇이 개인가

 

우리가 자연이라는 것에 있어서

우리가 인위적이라는 것도

신적 창조를 벗어난

아니 차라리 신적 창조물이 아니라면

그 자체로 자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본능에서

일이년이 지나도 생얼 안 보여 주는 감각 또한

자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토속적 자연과는 거리가 멀 수 있는 것은

토양적 자연미에서의 비교가 아니라

어찌 보면

신적 창조의 우월성에서 토속미가 자연미라는 것일 것이다

 

 

무가 어찌 무가 아닌가

 

산다는 것이

소소하게 이 것 안 보는 無인 것에

어차피 저 것에 쏟아져 부딪치는 것을

무심인들 마음이 아니겠는가   

내가 저 쪽에 무심이면

이 쪽에 쏟아지고

이 쪽에 무심이면 저 쪽에 쏟아지는 것인데

세상사 어느 한 無心으로 해서

어느 한 족으로 쏟아내니

이렇게 번거로이 사사로이 부딪침도

한 쪽 무에서 비롯됨을 어떻 하리

 

 

페널티 킥

 

최선이 안 통하면 최악이 되는 것이지

무슨 차선이 있더란 말인가

 

 

 

전환점이라는 것이

굳이 입지 않아도

굳이 인간이지 않아도

거친 대자연에도  

굳이 신의 낙원이라면

인간이 털 옷을 입은 것이

도리어 전환점이 되어

저 흰곰의 털옷을 입은 채 태어나는

피동성으로서야

곰인들 낙원이 되지 말란 법도 없이 살 수 있는

우린 무색계에도 자연이라는

일말의 거친 흔적을 지나기에

어쩜 옷을 입은 채 태어나는 

무언가 능동적 시점은 갖춘 것이듯 함이 아니든가

 

 

현생 뿐이겠으랴

 

강물이 수염이 스다듬기듯이

더께살이가 살을 끼운 호랑이 가죽

현생 뿐이겠으랴

 

 

진본

 

내가 내 자신을 보지 못 한다

그림자 없는 나무의 진본

오래 오래 사시구려

돌에 땀이 나나 아니 나나 바람 몸

돌을 빼놓고 다 삼켰는데

돌의 이야기가 되어벼렸구나

 

 

뜻과 體

 

체와 용 간에

형식미와 내용미을 갖췃지만

질감의 발단이라는 것이

뜻과 체의 흡수률로서 통하는 것으로

現과 沒이 있게 되는 

우리에게 뜻의 그림자는 없고

體의 그림자가 따로 있다면

우리가 뜻한 바로 움직였는데

누구도 뜻을 보지 못 한 채

體만 얼핏 보았다면

이 체의 응결체로

무엇이 단절성이냐를 찾아야 할 것이다

 

 

노래도 나무의 꽃일 뿐

 

문풍지가 운다

세상사 음악이어서 슬프다

고요 또한 종류석 끝에서 뚝 떨어진 놈보다 야무니

봄아지랑이 나무 끝에 붉은 것이 꽃이요

그대 노래 끝이 꽃이요

가을 고요 끝이 만산의 홍엽이요

누워도 다시 일어나려 않으니

이를 보아 극락이 있음을 알겠구나

 

 

음악홀살집이 과일살집 

 

그대여!

이 홀이 통실통실하걸랑

그 때부터 성좌라 하려무나

저 운명의 4악장으로 최대한 외쳤다 싶음에도

날카롭지 않게

찟어지지 않게

통실통실 살찐

거북이 등처럼 투박하게 단단해도

퉁퉁 불구면 족발처럼 불는 

그러니 태반되지 않고 쉽게 떨어지는 풋감일지언정

저 둥근 홀이 땡홀이다가

우리의 감성처럼 익듯 하기에

우린 음악의 영원성을 떨구질 못 하리  

통실통실함으로 살이 안 받치더라고

굳은 살이라도 받친 듯이

운명의 노크에 어지간히 두드려 맞았다 할지라도

결국 찢어질 듯 함도 텁텁함에 여과된 듯이

무딘 맛을 품고 외쳐대는

음악홀 살집이 과일의 살집이 되는 

 

 

바다의 풍수

 

지금까지 글도 꽤나 썼다싶은데

어찌 바다는 못된 송아지였는지

한번씩 밀어갈 때마다

방파제는 왜 송곳끝을 버느냐 하고

깊은 협곡은 왜 시비를 거느냐고 야단이고

만(灣)은 큰 자루같은 포용성을 무시하며

혼자 욕심이 많게 넘치느냐고 비아냥이니

내 비록 그림자에 조차 안 중에 없어도

연변은 생긴 대로 바다꼴이라고

바다는 남말을 그렇게 한다

 

 

아! 아라한이여! 自明이로구나

 

그림자 없는 나무는?

아라한에게 물어보라

나무는 어둠에서는 보지를 못 하는데

잡히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니 

도저히 안에서는 모르겠을

아! 심해의 생물은 어찌 그리 하얀가

아라한이 自明이요 부처는 自明燈이라

 

 

존재성

 

생각이란

머리에 맺힌 영혼이라고

도토리는

수 십 억 년 더디어도 

제 의미를 따라 얼굴만 내놓았고

도토리로 사람을 만들 수 있어도

묵으로 사람을 많듦을 모르니

마음을 과학으로부터 알아지는 것도 아닌 것을

빛을 침묵으로 찾아 먹는 것에

꼭 묵에 빛이면 찾아 먹는 것이든가

 

 

난 스티븐 호킹 박사보다 훨씬 과학적인 사람이다

 

난 스티븐 호킹보다 훨씬 과학적인 사람이다

어찌 신도 못 미치는 과학을 과학적이라 할 수 있는가

과학으로서야 당연히 신을 못 보지만

신을 보는 것 또한 과학적이다

 

 

찰색에도 바다를 넘은 듯

 

살다보면

나이도 기웃기웃 한다고 여겨 지기도 하는데

사람이란 그 나이에 맞게 머물기 마련인데

꼭 그렇지 않게 

마치 바닷가 물거미가 들었다 벗겨지듯

젊은 색시같다가

또 어느 샌가 파삭 늙은이같은

도저히 나이가 없고 기웃기웃거리기만 하는 듯

오스카 와일드도

떠나고 나서 제 미학에 더 도취되었겠을  

 

 

경지

 

누군가

결혼을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결홀을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이로 비추어 볼 때 법의도 입어보고 파계하는 것이

안 입어 보고 파계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는데

매를 맞더라도 한 번 입어보고 제대로 맞아보란 것이다

자신을 다구치는 것이

애들이 다구치는 것보다 더 막연해 질 수 있는 것인지

한 번 입어봐도 천수천안 실감하리니

구석구석 눈이 천 개요

구석구석 팔이 천 개이니

자신이 해탈지인인지 죄수인지를

굳이 누가 말이지 않아도 알게 하리니

가을날!

떨어지는 열매마다 다 눈이다

 

 

과학 시간  1

 

木은 木인 것이야

풀이 풀인 것 정도로 

불로 쉽게 소진하니

산소 木 정도면

탄소 土를 부싯돌처럼 스파크하여도

바람처럼 춤을 추어가며 일으켜 세울 수 있지만  

이 또한  

木을 木이라고 해도 土가 강하면

장작을 패서도 土의 연기가 많아지는법

土가 강한 것이 나무둥치라   

타다 남아도 탄소라 숯을 말하는 것이니

모든 형상은 탄소로 형체의 윤곽이니

마치 모눈이 없으면 글도 없듯이

토가 없으면 내용이 든 사물이라 할 수 없는 것  

 

 

의상

 

밤송이 털이

바람 결 따르다

빛만큼이나 날카롭게 뿜어내야

도리어 밤은 밤톨로서 모인 듯

어느 누가 말했는가

이 것을 밤이라고 

밤이 점으로 엉겨 붙어가며 몰입된  밤이라고  

빛이 곧 의상

달은 참 부드러이 옷을 입은 것이니

해처럼 밤을 삼키지 않아

도리어 별들을 놓아 둔다

 

 

번데기는 떠나도 고치는 있다

 

달이 해를 삼켰으니 해달

달이 절을 삼켰으니 절달

차라리 달이 다리가 안 달렸어도

달이 다리가 달려 갔다면 도리어 맞을

달이 아무리 속 붉은 듯이 해도

불곰 털 자락으로 누우면 한벌의 옷

제 실속은 챙긴 듯   

저 달의 한 입으로 말해 보란 듯

도란 것  

공안이 1700인데 어찌 미생이 한 마디로 다할까

이도 다 털갈이 옷 한벌 짜듯이

말씀 언 변에 절이라고

시라고  

날실이야 날로 내리 뼏지만

씨실이라 얹어 꽉 물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씀의 구구절절이 있음이로다

 

 

퇴고성

 

퇴고란 자신의 글을

자신이 거듭 설명하는 것을 말하는데

다만 이면 상이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이다

그래서 자신의 글에 퇴고는 해도

부연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즉 퇴고에 대한 최선을 떨어드린 것이기 때문에

글의 극치를 손색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그래야 한다면

다른 사람이 덜어주어야 하는데

특히 난해하고 다각성을 가진 것일수록

그 필요성이 강조되는 바니

어허라!

저기 중이 아니어도 제 머리를 어이 깎을까나

 

 

바다

 

왜 큰 물통 하나를 바다라 하는가

말 끝머리 다로 해서

마침표 한 점 상으로 모이는 것이라고

바다라고 하는 것이다

 

 

경이적 손깍지

 

우리가 신을 긍정하는 것 또한 신기한 일이지만

신을 부정하는것 또한 신기한 일이다

 

 

내재성

 

빛이 왜 하얀가는

빛이 하얘서가 아니라

하얀 걸 비추어서 그렇다

허공은 빛나지 않는 하얀 밤톨인데

빛을 비추면

어둠은 벗겨지고 밤 속만 비치기에 하얗다

 

 

과학시간 2

 

불 속이어도

각각 그 科가 다르니

산소가 불을 태우면 木科에 속하고

원자로에서 원자가 부딪치면 金科에 속하고

수소가 태움은 水科에 속하는데

물은 자체는 타지 않으니 주변은 태울 리 만무하고

스스로 잘도 타는 

낮에는 잘 보이지 않고 밤이어야 잘 보이는 빛이지 않은가  

보라

불에도 천지를 끌어넣은 화상이지 않는가

이 것을 가장 유기성 있는 분해력이라고 하고

확장성이라고 하는 불이라는 것에서

火神의 구조형태를 이룬다는 것이다

 

 

과학시간 3

 

우리가 융합이나 

원소에서 분자로 화했을 때 이를 물이라고 하기에

水를 物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수에서 부터 물이라는 것인데

즉 정수의 기초 단위 1로 부터 시작할 때 

그 상징적 모형이

원자 하나의 수소 두개 식 모았다고

막대기 하나를 자른 듯 絶이라고 하고

陰을 의미하는데  

그애 비해 산소는 막대기 하나의 비중이라고 하여

그 중앙을 뭉쳐지는 인장력으로 해서  

분자를 이루기에 物이라고 하는 것을 이룸에

陽을 뜻한 바  

이 응집력으로 물체를 이룰 수 있음이

水神의 구조형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 시간 4

 

보통 팽창의 우듬지 부분의 앞머리를

火라고 하고

수축의 머리 부분을 水라고 하는데

그 사이의 통로를 쥔 것이 木이다

이 것을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이 土인데

그 것은 나름의 모태로 번식력은 좋은데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두뇌적 기능이라는 것이 얼레 역할을 하는데

이를 金이라 하고 열매라 한다

 

 

과학시간 5

 

우주가 급속히 수축하는 것은

火가 土가 되었기 때문인데

화는 극이어도 그 봉오리는 유지하며

토가 되면 무중력 상태 무교감 상태

상호력은 없어도 간극은 유지시켜 주는

이도 어느 한 축을 만나면 

물에 반죽이 되듯 급속도로 수축을 하는데  

이 건 마치 빛이 눈과 함께 까치발까지 세웠다가

발바닥에 부드득 밟히는 것과 같다

이 건 음의 극이기 때문인데

녹으면 水로 돌아가고

방정식이 날 정도로 밟으면

金屬이 되는 이론과 안목을 드러낸다 낸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이는 다 두뇌가 金에 속하기 때문이다

 

 

과학시간 6

 

우리가 水를 1로 하는 것은

원자 단위 1이 수소가 분자로 이룬 첫번 째가 수라는 것인데

이를 보면 水의 일이란

분자 뿐 아니라 원자와도 맞물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水를 신장(腎臟)이라고 하는데

즉 여과성을 말한다 즉 수의 응축력이 그냥 응축력이 아니라

여과성으로 응축한다는 의미이다

만일 은하수가 신장 기능이 있다면

즉 영혼을 걸러 올 수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신장에 성 호르몬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연구하다가 막힐 때

水가 空이 됐거나 剋을 당했으면

즉 여과성이나 수축성에 막혔거나 발상이 안됐다는 것인데

그 것이 차는 날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 것을 인간의 기계적 과학이나

공식적 과학으로 보면 대단한 영감인지 모르지만

주역(周易)으로 보면 그 때 떠오를 것이란 것이니

이 어찌 살아 있는 과학이 아니랴

얼굴 색도 달라지듯 살아 오르는 유기성인 것이다

 

 

과학시간  7

 

심장은 태양처럼 온몸을 비춘다

허나 신장은 블랙홀처럼 끌어 당긴다

거기엔 막연히 시공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삼투압이 있다

즉 천지인으로 사람을 만드는 곳이다

그래서 거시기 워랄까

길이 하나 더 있다고나 할까

 

 

과학시간 8

 

웜홀이란 간을 의미하는데

신장과 심장을 이어준다

그리고 이 시공으로 가는 시간은

극락세계와 같으리니

아예 신경줄처럼 짤 수 있으니

어데 간들 항상

미소 속의 그대로 맞춰 놓은 몸인 것이라

가지가지마다 꽃피지 않음이 없다

 

 

과학시간 9

 

우리가 理를 좀 더 실제화 시키는 예로

소리학적 보약이란 것을 들 수 있는데

언어 상의 칡字를 보자면

ㄱ字形의 벼랑에

ㄹ자형의 뿌리를 박고 사는 것인데

이 것이 글이 받침이 있어야 하는

아래에 둔 효용성의 묘미를 알게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또한 라르고라는 낱말을 취용해 볼 때

라르는 ㄹ이 위에  있으니 지상의 넝쿨과 같음이니

줄기로서 보약을 먹는 것과 같다

즉 우리가 마치 언어로 보약을 해 먹는 것이라면

이와 같은 성분성이라고 볼 때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말하는 것만으로 통하는 요소를 지닌다는 것으로

그 것이 흐르는 구름이 아니라

얼려버린 구름과자라 할지라도

그 뜻을 읽을 수 있는  

즉 말의 형태가 깃발이 펄럭이는 것처럼 살아 있는 것으로

사람은 음식을 먹 듯

이 것을 생식인 냥 뱃 속에 넣어 알아볼 수 있는 뜻이 되는데   

신은 이 것만으로 보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  

ㄹ이 혓바닥 줄기로 넘쳤든

혓바닥 뿌리로 얽혔든

입이 대용으로 웁직여 주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맛에 

 그 속에 내포한 뜻까지 음미할 줄 아는 것

신의 퓨전이라는 것이다  

 

 

인상파 언어

 

적시다에도

赤시다

달구운 쇠뿔에

찬물에 넣으니 신 듯

눈을 찌푸리는 형상인들 없으랴

 

 

숯윷옻닻낯

 

이 글자의 공통점은 속의 것을 드러낸다 것이다

ㅈ에 선을 하나 더 그은 듯 드러낸

숯은 눈 위에 눈썹 하나 그은 것이요

성 냥 하나 그은 것에 드러남이요

검은 판피층이라는 것이요   

윷은 나무를 반으로 그어 드러난 형태에

진액의 때광이 생겼다는 것이요

옻은 그대로 칠한 데서 선 하나 두꺼워진 것이다

닻은 해저발 안면인 것에

물살타귀에 혈이 솟은 것이요

오히려 물에 여드름 발이다  

낯은 늘 얼굴에 개기름 번지르르이니

이 모든 것이

단면 위로 무언가 발린 듯이 스며 나온 것이다

즉 저려 든 것에

에나멜질이 한층 더 드러난 형태르 보임이나

진액이 드러나 굳은 형태를 이룬 것이라는

한 층 덧난 층이 있다는 의미로

ㅈ에 -이 더 한 ㅊ인 것이다

 

 

우리가 언어 상으로 배너를 찾을 때

 

글을 산고라고 하는데

글만으로 산수요 천하인 것에

사람이 낳는 것으로 함축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단순하고 막연한 것이요

감성인지 감정인지에 따라 다른 의지를 심어도

매우 자연스러운 냥 할 수도 있는 것에서  

다만 글을 산수로 한 몸을 두는 데서

인간의 몸을 서로 상호성을 갖게 하는 데서

풍수마냥 어느 한 부위로서 안(案)을 만들어

짚은 바 대로  그 경락의 성향을 보자는 것인데

이 것은 肝界의 맥락이나

腎界의 맥락이 각기 달라도

마치 그 것이 사사로운 차이점이고

전체적 신경계라고 치부만 하고 접근만 하면

차이점은 무시해도 되는 것인지

우리가 공준이나 공안을

하나의 무덤처럼 안을 만들어 혈맥을 찾을 때

그 무덤이 세포 하나로

전체성의 핵을 갖출 수 도 있다고 보면  

그럼 그 것이 자식의 눈이라고 봐 

오장의 경락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에 따라

하나의 특정성인 지류에 닿는 것이지

아무리 두뇌와의 집적성으로 느끼니다고 할지라도

그 오장의 기능을 풀어주야 함이 있는 것이니

우리가 한 세포의 눈으로서 어떤 질병을 안고 오는가도 알게 되듯

우리가 한 문장이 몸이라고 볼 때

28 수(宿)로 봐

미기尾箕며는 술어가 있다는 것이므로

술어 상으로 찿으면 되는 것이요

풍수학적으로 꼬리 부분에 더 혈이 뭉쳐져 있다  

각항角亢이면 접두사에 있다

저방심低房心이면 밑줄 친 곳

동드라미 친 곳

유성장柳星張이면 별표가 있는 것이든가

실벽室壁이면 말 끼워 넣은 자리 괄호 안

동그라미 친 곳 등

정귀井鬼며는 分數가 있던가

퍼센트가 있고 분모 쪽이요  

자참紫參이면 부연되는 낱말이 있고

두우斗牛며는 따옴표가 있다

규루奎屢도 분수가 있다

분자 쪽이다

위묘필胃昴畢이면 마침표가 있는 자리

여허위女虛危이면 누군가에 유도된 자리

x 또는 y라는 假定 등

이처럼 몸이라도 이처럼 접근하면 좀 더 서술성이 깃든 몸이 되는 것이요

글이라도 몸처럼 혈을 만들 수 있는 바

이로 한 예를 든다면

어떤 한 문장이 어떤 경로를 밟았는가를 볼 때

실벽室壁이면 처음 문장에 말을 끼워 붙인 문장이라는 것이요

질서를 보는 것이라면 새치기를 한 것이라는 것인데

진작에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을 나로서도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실제 이러한 것은 천기에 깊고 자신만의 노하우에 속하는 것이라

이 지면상으로 올리는 것 또한 한 편으로 김이 새는 기분이만

이미 물질적으로 와 닿아야 깨닫는 철판같은 감수성에

과학이나 물리가 우세를 점하는 문명에 사는 것이니

이젠 이러한 섬세함으로 참조하지 않고서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분서갱유가 와도 더 막연하지 않나 싶기도 해서이다

 

 

성게

 

저 성게라는 것이

게가 옆으로 가 둥글게 원을 그리더니

똘똘말이별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빛이라고

빛 가시를 어지간히도 찌른다만

하얀 등까지만 흰 빛인 아라한이

자기도 등불이라고 꽤나 외쳐댄다만

같이 품어보면

나도 사람이라 그 가시가 돋는다만

그 빛이라고 노래한들

어두우면 어데도 보이는 것이 아니니  

밤길조차 두려웁게 휩싸이는 곳이 아니든가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중에서

 

木은 투박해도

천지 간에 工이 있으니

角이라 하지만 

또한 사개를 맞출 수 있음이라

金은 그저 울리기만 한다 하나

속이 저리도록 하는 것이라

그 속엔 헤아림이 있어 商이라 함인데

마치

분자가 울리면

원자를 헤아리는 감성이라는 것이다

 

 

빛을 이해하는 건 뼈가 부시듯 한 미소가에 있다

 

빛을 이해하는 건 다 내 뼈와 같을 때이다

푸른 옥도 갈면 희듯이

지천명이

고목 나무 좀부스러기처럼

가을 날씨처럼 삭막할 때

거리의 가로등이 외로움을 맞아도

빛으로 가셔야 시원한 듯이

싸늘한 얼음막대에서도 부시는 듯이

막대가 막대를 넘은 듯이

 

 

한 편 커기도 하고 한 편 작기도 한 것을

 

사랑이 좋으면 그로 행복하면 될 일이지요

굳이 혼자 사는 자의 만족에도 같이 쬐면 되는 것이지만

굳이 가져가려 한다면 벼룩의 간만한 데서이지요

 

 

에게해 확대경

 

몽돌이 우르르

천둥소리 찟어지듯 무너지면

물 속에서도 속 탄 놈이라고 검은 데

에게해에 가면

제 탄생에서 지금까지 들려오는 것을 보면  

에두른 살이 그렇게 타는 것이 아니라

태워도 태워도 비지살만 같은

하얀 살 위로 게가 지나간다

 

 

에이쿠머니나가 에게로 접힐 때

 

저 바다 한 복판에서

파도를 편다고 밀어내 올 때

에이쿠머니나가

백사장에 한갓 두른 것에 한 살갓하는 것에

에두른 게띠를 경계로 접히는가 하더니

그래도 나는 안으로 스며든다

어쩜 저 바다 아코디언에

무언가 나의 노랫 가사가 든 듯이

 

 

시도 구성적 백미라면

 

우리가 시를 보다보면

특히 초현실적 공간상의 배치라

장률(長律)을 갖추기 힘들다 하더라도

희곡을 능가할 정도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도 있는데

그 것은 시로서아 아니라

희곡으로서 완성도를 넓히면

마치 땅 속 개미집에서 개미탑이 나오듯

베케드의 작품같은 창출을

매우 신비감 있게  엿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