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실(이 글은 순수 창작품임)

까치담배

narrae 2011. 6. 3. 16:30

까치담배

 

난 그저 까치 담배는

개피를 사투리로 쓰는 말이기보다

가지를 까치로

된소리로 형용한 것이기도 하다 싶었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갈 곳 없는

우산 말아 쥔 중 늙은이가 담배를 끼운

손가락 사이가 정말 까치입처럼 크게 보인다

차라리 엿장수 가위같이 턱이 헐거워진

장돌뱅이이듯

세상은 넓게 보고 조금 늦추면 되는 듯 싶어도

그렇게 자유롭지도 못할 

꼭꼭 문

또한 스스로 앙칼지다 싶음에 서러워해야함을 꾹꾹 누른 듯

까치조차 입을 닫은 듯

자신의 말조차 자르고

심지불을 조용히 당기는

결국 한 모금 더 당기는 것으로

눈치가 보이는 듯 다시 길을 떠나는

 

 

여자가 턱 밑에 수염이 없는 이유

 

단전이란

배꼽으로부터 물려받은 혀밭이라는 교두보가 될 것이다

우리가 먹어야 하고 말이어야 함이 입 안의 일이지만

굳이 언어적 감각이라면 

배꼽이 혀를 내두른 감각이 단전이라는 것이다   

화두(話頭) 중의 판치생모(板齒生毛)란 말에도 

입을 열면 털 한 묶음 빠진다는 의미요 

여자는 말이 많아 턱으로 스밀 겨를이 없다는 것인데

이 언어의 오행성이라는 것이

그만한 섬세성으로 자라 뱃 속으로 듦에

언어적 성질만으로 영양분이 축적된 감각이

음식물로 통해 해석되는 범주가 단전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질을 삼키면 물질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색감마져 다 잃히게 되는 초극적 센스가

우리의 마찰적 인식보다는 더 잠재된 자율성에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섭리 

 

첫째 인간의 섭리를 말하자면 

저 土星의 궤도로 오려 붙인 것을 멍석이라고 할 때

木星은 나무 한 그루 껍질 난 것이다 

그리고 小行星은 속살인 피부요 또한 세포라면 

火星은 채온이요 혈기가 있다 

문제는 金星과 水星인 것이다 

즉 태양인 남쪽이 되다보니 늘 들끓는다

그래서 지구인 土로서 안정시키고

물이 있게 하고

머리인 金性으로 앉힘으로서 생각을 갖게 함이라 

 

 

영육(靈肉)의 眞理

 

본래 허공은 남북이 없음이라 

그럼 어찌하여 남북이 있음인가

즉 恒星의 빛은

한 요소를 끌어 당겨 늘리는 힘이 있는데

이 건 어떤 파장적 길이도 휘게 하기도 하지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한다

이 건은 線이라는 차원을

입체적 차원으로 불어넣는 기능인데

이렇게 되면

원소가 파열되어 그 기능성을 상실하기에

결국 복사력으로 증식하게 되는데

이 것이 결정적으로 안착일 될 때

土라고 하는 것으로

모래알처럼 쌓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걸 정리하자면

水는 조용할 때는 소자인 것인데

火로서 완전히 팽창하면

金으로서의 경직성에 봉착하게 되어 있는데

이 때 천지인의 三才가 되도록 복사를 하는 것으로서

비유하자면

아침을 나로해

아침밥은 천공(天供)인 채 그대로 남고

人은 점심(点心)으로 먹게 두고

地는 저녁으로 먹게

분열하여 흩어지게 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인간의 잠이란 것이 피로를 풀기 위함이라지만

그리 육신과 거의 상관 없는 영혼의 피로도에 의한 것이니

하물며 짐승마져도 소프트 웨어적 과부하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은 소프트웨어적 미완을 훨씬 벗기고도

도리어 하드웨어적 본질로 고등적 영혼을 맞는지 모른다

 

 

감뿔에 왕관 난다

 

뿔이란 것이 녹용과이긴 하니

늘 감크기만하게 엉덩이에 붙어 방울만 한 것

직립에는 펑퍼짐히 앉기도 불편한 것

그래도 감만하게

낫다 터졌다

낫다 터졌다

땡땡하게 안 터지지만 결국 미골이 아플 것

인간에겐 꼬리가 없어서 그런지

개꼬리는 못 되도 

엉덩이에 뿔이야 나는 것

본래 머리 뿔이 둘이 싸울 수 있으나 

잘 나가지도 못 하는 것 뭔 뒤로 잘 밀리는지  

엉덩이로서도 못 나겠느냐고 난다만

 

 

가슴이나 열어 잡으시려우

 

학승(學僧)이야 배꼽에 기운 떨어지기나 헸으리

열 학승 한 땡초 못 감당한다고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거늘

요즘 학승들이란 것이

배꼽티 입고 어지간히 배꼽 자랑이라지만

배꼽을 입으며 살아가는 둔치

꼬리야 개똥밭 구르듯 산다지만 

허리는 머리뿔로만 가늘어지니 

인간으로 태어나

제 짐진 바의 보람을 모르고 다 산 듯이 하려니   

어쩌시려우 

가슴이나 열어 잡으시려우  

무엇이 무엇을 잡는단 말이우

 

 

양파에게 물어봐?

 

우리가 보통 독한 술을 먹거나 

독한 약을 먹어 필름이 끊기는 사례가 있는데 

마치 꾀병같이 자기 집은 귀신같이 찾아온다든가 

자주 가던 길을 잘 찾아가기도 하는데 

이 건 거짓말은 아닌 것이다

다만 스스로의 생각을 못 하기 때문에

자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 몸을 끌고도

이러한 의식 밖의 행위를 하는데 있어 

다만 그 선에 다달으면 

자각이 없으니 현실적 감정과는 무관할 뿐 아니라 

육체와 정신이 함께 실성한 사람이기 때문에

굳이 잡히질 않는 상태인 것인데

그런데 인간이 몸을 두고 떠나면 어떻게 될까

즉 자신은 죽은 줄 모르고 

정확하게 코스를 따라 살아가고 있으나 

이승의 깨달음이 없다면   

그로 해맑아지는 것일까

또한 이승으로 유도된다면

도리어 술 취한 듯이 몽롱한 상태여야 정상적인 코스가 되는 것인데

이 건 망각과 같다

마치 죽은 식물이 거름향을 피우듯 술찌거지 냄새를 풍기다

물기에 살아나는 것과 같은데

그 선을 넘어 복귀할 수 없는 몸일 때

거울의 바닥 코스같은 길로 잡고 나오는 대목과 같은데

여기서 여러 차원을 생각해 봐야하는 분기점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가 극도의 향락에 취해 놀다

눈 꿈깨고 보니

어느 들판 웅덩이에 개구리 떼들이 엉겨붙어 놀더란 것인데

여기서 부터 마음로부터 일으키는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개구리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가 이다

이를 두고 일파 만파여서 그런가 해야 하나

양파(洋波)에게 물어보라고 해야 하나

 

 

무의식계

 

우리에게 보통 자율신경과 함께 떠나는 것이

오장육부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건 의식 밖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이고

즉 오장육부가 발이 달려 다니고 싶다고 해도 

달고 다닐 수 있음인데 

아마 대뇌피질이 발달하지 않은 다음에야 

매우 자의식이 발달하지 않은 윤회를 보게 될 수 있고

오히려 대뇌피질로서의 자각은 무의식을 떠나보냈을 때

오히려 회절이 생기는 듯 허공의 감을 이어 받을 것인데

그렇다고 인간의 채색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이니

또 다시 무의식계를 잡고 태어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따놓은 당상

 

우리가 과학적으로도 깎은 손톱에 영혼이 있듯 파장이 있다고 했다

이 건 중요한 대목이다 

우리가 산삼 뿌리를 캐도 미세한 부분까지 다치지 않게 하듯

우리의 오장 육부 중에 하나라도 탐욕에 병들면 

결국 윤회의 근거를 남기게 되어 있는데 

인간들은 절대 조상을 무시하지 말 것이며 자손을 엄중히 해야 할 것이다

부처가 될 것인가?

방에 육친을 모아 놓고 보노니 부모와 자신은 하늘색인데

처자식은 대지의 색일세 뭐 윤회는 따놓은 당상일세

 

 

가상 

 

우리가 가상적으로 

조용한 호수 위에 나무 그림자가 잠겨 있음을 

대뇌피질이라고 할 때 

저 나무는 자신이 그림자임을 모른 채 

물 속에 사는 고기들만 의식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이 것이 뉴런 속에 움직인 고기였다면 

오장은 물감통과 같았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돈오점수(敦悟漸修) 

 

우리가 꼭 돈오점수를 

두텁게 깨닫고 점진적으로 닦는다는 의미보다 

깨달음은 두텁게

닦음은 점진적으로 인데 

즉 돈오란 그 자리를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니 

화두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요

점수란 기회일 때마다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글을 쓰다보면 중복됨이다 싶을 때가 많은데 

그 이유는 역시 돈오한 자가 점입가경이지 

이해가 어렵다는 자에 마냥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이 자격증에 쩔쩔?

 

동국대 나와서 총무원장되느니 

차라리 안 나오고서

저 스웨덴 한림원이 다 내 상좌로구나

                         

 

한 거풀의 一인 광택 

 

잠도 옻칠 먹이면 참이 되는 것인가

참을 옻칠 벗기면 잠이 되는 것인가

꿈은 옻에 있는가 잠에 있는가

 

 

언어의 질감과 색감 

 

색이란 대패 밥과 같은 것이다 

언어의 火聲은 대패밥이 길며

긴 것일수록 얇고 부드럽다  

土聲은 중간치이며 

木聲은 가장 짧은데 

그 소리 단막 속에도 위이브가 있어

마치 짧은 것이 빨리 식은 듯 날카로움이 있다 

이 색감을 물질감으로 드러내면 

불은 긴 것이라

거울의 제일 겉에서 길게 노는 빛 때문에

어둠은 가려진다 

그래서 제 일 위 어깨인 수평 라인에 심장이요

불로서 이루는 것은 사방 비추는 것이요 관통력이다 

이 것이 한쪽으로 꺾이면서 긁어가는 것이 목이며 

그렇듯 동쪽에 해 뜰 때 출혈이 되어 맺히는 바와 같고 

가장 짧아지는데

이는 肝이 나뭇가지처럼 섬세해져 분셕력을 내 놓는다는 것이다 

즉 생각의 섬세성이라기 보다 행위의 손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빛의 시간보다 소리의 시간 속이 가장 짧다 

그래서 소리의 시공이나 빛의 시공은 층이 달라도 

한 벨트 라인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간에 胃가 있어 황색이 있게 되는데

이의 작용에 확실히 구심이 되게 하는 것

즉 접착력이라는 것인데

본래 火인 꽃은 나무보다 짧은 것이니

붉은 파장이 길다는 것에 부합되지 않은 것같으나

나무도 토질로서 세우니 붉은 색의 파장이

짧은 파랑색에 머리를 내밀 수 있게 한 것으로

이미 이렇게 신장까지 가려면 이미 어둡다는

즉 검은 색이라는 것이다 

이 건 마치 흑색은 앙금성을 갖게 되는데

아코디언이 압축이 된 듯이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흑백의 공간성보다 

칼라가 띄는 공간이 오히려 허공성이라고 봐야 하는데

즉 물이 물질이되 색이지 않을 때

이르 무색계라고 한다면 바로 그 자리에 색의 공간이기 때문에

물질적이지만 무색계인 것이 또한 물이지 않나 하는 것에

이는 서로 간에 환원이 쉬운 것이요

부피 상으로 늘면 흰색이요

줄면 검은 색 계열일 때의 서로 양극에는   

사람의 눈은 흰동자인 것만으로

그 삼원적 멀티성의 기반으로

검은 동자나 푸른 동자로

깊이 몰아 실날을 칠 수 있다는 것도 된다

  

 

의미의 과학성

 

팽창력은 압축력과 함수관계인데 

이을 방향성이라 한다 

그래서 모든 방향성은 그 자리라는 의미인데 

이 것이 진뢰(震雷)와 손풍(巽風)은 같다는 것이다

즉 삼원색의 뭉치를 천둥과 번개로 깨지 않으면 

공간이 섬유질임을 알지 못하고 

우린 그 부분을 肝으로 차용하고 

어느 정도 병들어도 감각을 모르듯이 살고 

그래도 나물같은 바람만 부드럽게 호흡으로 삼키는 

그리고 좀 더 세분화된 가루는 검은색으로 앙금이 된

 

 

눈의 본질성

 

우리의 시각 상으로 보는

가시광선이라는 것 자체가 무색계로서 보는 것같음에  

눈의 녹으면 물이 되는 것과 같은 이슬로서 비추는 것같은데 

어떻하든 얼음이 빛같이 버블이 되는 한 흰색이 되는 것과 같고

이 것이 물이 흰색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물도 어느 정도 미세성이 되면 흰색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와 같다 

그러면 지상의 모든 색은 어둠의 무게 있어

빛에 물처럼 처진 그림자를 내지만

이 흰색의 천상성과 합하면

더욱 밝아지며 지상성을 끌어올리는 힘이 있는데

이렇기에 수 많은 천상세계가 열림이라 한다 

이를 두고 그림자가 없다라는 것인데

마치 검은 빛도 밝다는 뜻과 같은데 

이 것은 흰색이 만들어짐이 아니라 

희게 걸려 있다함에 기인한 지혜를 말하기에 그러한데 

이를 최고조로 함이 일초직입여래지와 같고 

반물질과 물질의 단박에 연소됨과 같음이라 하겠다

그리고 水宮과 金宮을 원소성이라 하고

木과 火를 파장성이라고 하는데 

土는 半身體 半意味와 같다

즉 풀과 빛이 물에 둥둥 떠다니고 천방지축 날 뛰어도 

그 고유성의 자리를 매김해 줄 수 있는 것이 토라는 것이다 

이 것이 곧 곡기가 안 떨어지는 한 삶의 자리는 매김된다는 것이다

 

 

탄닌산  

 

그대의 시는 가만히 보니 

성분 상으로보면 확실이 많을 뿐 아니라 

그 화학적 구조도 치밀성은 많은데 

어쩐지 탄닌산이 많았어야 원

뭐 옛시절 

배고픈 시절

참 신기한 것은

그 중에서 더더욱 아껴 먹는 것이 배였으니

소금물 자린고비 정도는 되다면 넣어 먹어볼까 

왠지 인정머리 없는 감 같아서

차라리 공학박사가 되어 기계나 다루면 

물건 하나는 튼실하겠건만은

 

 

그 놈이 그 놈 

 

세상 크게 보라고 망원경을 사주었더니 

도리어 인생은 우물일 뿐이라고 하고 

세상 작게 보라고 현미경을 사 주었더니

인생은 별보다 무한하다고 하는데 

결국 둘이 만나고 보니 그 놈이 그 놈

번개가 치니 바람이 달려가는데

갑자기 장님이 된 바라  

눈이란 놈을 찾아가는데

터진 풍선같은 조각인 물을 입으로 불궈

꽈리 눈을 뜨게 하는데 

눈이 수 천 개라도 달리 볼 게 없구나

 

 

영혼의 고농도

 

삼투압 식으로 보아도

영혼에서 다시 영혼 쪽으로 기우는 감성의 본질이란 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지만

이 것은 이성적 문제가 아니라 감성적 문제의

이승 쪽으로 굽은 발상이 아닌가 하는데

죽으면 다 흩어진다는 개념과

영혼은 念 上의 문제이고

이승은 念 上의 문제와는 다른

생명력과 같은 감촉의 인식의 관계로

느낌 상의 정립으로 하기 쉬운 말인데 

우리의 감성 또한 삼투압적으로 보자면

어차피 투과가 있는 벽이라면

무색이어도 감성이 더 민감한 것이라면

우린 음악을 듣는 길의 과정을 통해 감동하지만

한 편 다른 감수성을 지닌 영혼으로서 

저 안개를 들이켜도 다 알아들을 수 있고

연기처럼 춤을 출 수 있다면

이를 파장적 몸의 실체라 함이라 할 때

이 건

물의 색과 무색의 끈이 아울러도 한 방울의 물인 것  

즉 무색계의 파장성까지 따를 수 있다면

이는 이보다 더 고감도의 질적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나야 애꾸눈이 아니든가

 

백 시간을 비워둔 듯이 해도

한 시간이 백 사람이요

백 사람이 없는 듯해도

한 사람이 백 시간인 것을

이를 가로 정렬 세로 정렬이라 함인지 

마치 원소 주기율에

族은 순서별로 잘도 걸어 놨지  

발 내린 수렴청정 품위도 잃지 않으시지   

 

 

틈새라는 것에의 도전 정신

 

어찌 보면 틈새라는 것에는 정신이 없는 것인지

내겐 가슴이 끓느니

한두 끼 굶으며 창자가 녹는 것이 나은 것인지

화 난다고 애간장까지 녹을 정도도 있구나 싶을 때는

몸을 비우며 사는 힘겨움이

오히려 약발같이 유용하게 쓰일 때도 있구나 하고보니

애초에 인과를 기본적으로 믿는 자가

어떤 결과든 수긍해야 하는 것으로서는

이성적으로 냉철히 길어질 수 있어도

감성적인 것에는 씨앗부터 잘 다스리게 되어 있지만

아예 내 삶이 삶의 흥분에 드는 삶이긴 하냐는 듯이

무관하게 살아간다 싶어도

어찌 늙어감이 그런가 

보면 볼수록 인간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만 느니

어쩐지 인간 본성 착한 것을 너무 악용하는 것같고

신들의 세계마져 동요가 이는 것같고

 

 

색종이 붙이기

 

어쩜 무지개 세상 내려와 살기란 게

본래 삼원색을 하늘에 둔 흰색이라고 할 때

그대로 내려오게 할려면

먼저 꽃이 활활 타도록 불을 붙인다

그리고 土인 아교를 녹여 붙인다  

그리고 채식만 해도 먹고 살게

무성한 풀을 준다

그리고 잠도 좀 자게 한다

그러다 다시 하얗다 싶으면

그대로 건져 올리면 흰색의 개량종

 

 

손바닥

 

잎새란 것도 평등한 듯 판판한

또한 색소가 색의 파장에 문지기한다

이렇듯 단순함인들 어떠리

부처님 손바닥

 

 

올챙이

 

六은 치마를 형상하며

큰 大字로 누운 뜻이기도 하며

陰은 아래로 감기는 올챙이라고 6

九는 十으로 발딱 서기 전에

풀이 죽은 형상이며

陽은 위로 감기는 올챙이라고 9

 

 

영적 과살

 

우리에게 두 개의 의식세계를 공유한다면

과연 이 두 개는 무엇을 각각 추구하는 것인가

솔직히 의식계의 의식이란

다 먹고 살기 위한 집중력일 뿐이요

잠시 맛자락에 매달려 어지간히도 깊은 음미를 나타내나

실제 배에 들어온 분석의 것은

무의식적 의식으로 열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어차피 인생의 맛이 혀끝에 매단 듯이 맛이 어쩌니 해도

무의식적으로 이루는 사물적 영역으로 쌓인 요소들이 

색계를 벗어난 성분으로 이루어진 만으로도 

육체의 계열은 아닌 듯이 싶은 것이나   

어떤 감각이 미치든

완전한 순도로서의 온 몸으로 알아 느낄 수 있는

마치 물질만이 갖는 둔감성을

소화 단계를 빌려 섬세히 걸러내듯

또한 육신 자체가 경계막을 갖고 있는  

즉 감성이 제 순도로

물적 가루의 영역이 영혼인 듯이 펼쳐 암금화된 질감으로

感이 物化이나 마치 경유가 휘발유로 정제된 듯

채친 듯이 이루어 놓은

마치 감성이 소멸의 완벽성으로 갖춘 듯이 있는

그래서 커뮤니네이션은 빛으로 엮어가지만

이 물체란 쪽의 시야에서는 소멸로서 나아가니 

형태를 이루었다 할 수 없는 영역의   

그런데 실제 일반적 육감이어도 

뜨겁다는 느낌

차감다는 느낌

어두움같은

공포같은 것도 띄는 

다 타버린 것에서의 이해가 물려 있는 空界 이 전에

질감이 있는 듯이 하는

 

 

oh! right now

 

우리가 먼저 침묵의 무게와 말의 무게를 생각해 볼 때

가장 적절히 떠올리는 일이 있는데

한 날 어느 누가 미래를 잘 본다고 하니 

한 사람이 주먹을 불쑥 내밀며 

이 주먹이 왼쪽으로 갈 것인가

오른쪽으로 갈 것인가를 불현듯 묻는다

이러한 면면에는 

옛 중국의 삼국지를 떠오르게 하는 것인데 

촉나라가 패망할 즈음 

위나라 등애(鄧艾)라는 장수가 

도저히 넘지 못할 험산준령을 넘어

촉나라 성도로 향해 갈 때 

그 지나던 길목에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그 비문에는

어느 해 어느 누가 이 길을 지나리라는

해석이 나오는 문구를 발견하였다

그 글을 제갈공명이 남겼다는 얘길 듣고는

그 장수가 무릎을 치며

왜 진작에 이런 스승을 못 만났더란 말인가 하고

한탄을 했다고 하는데

결국 그도 강유의 책략에 휘말려 모함에 희생이 되었는데

왜 이 행적이 떠오르는가 하면

이 주먹을 불쑥 내민 피새에게 종이 쪽지를 하나 넘겨 주고 갔는데 

그 쪽지 내용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곧장 오른쪽 주먹을 불쑥 내밀리라"  

 

 

좀 더 다른 차원의 벽

 

우리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축의 겨울과 여름으로 기우는 패턴의 기문둔갑(奇門遁甲)과

나이테처럼 나오게 행성이 돌아가는 육임(六壬)에서 보면 

색다른 우주를 드러내 놓을 수 있는데

우리가 길을 가다 교차로를 만나면 

정면에 가로 놓인 정지선과 같다고 느끼게 되는데 

본래 수(數)는 八을 넘어 九까지 가면

이미 둥근 바탕에 침까지 나온  압핀같이 되는데

열 十이면 이미 벽에 꽃힌 형태와 같다

그런데 구는 팔방에 구심점까지 두어 홀을 만들기 때문에

대칭적 순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보통 우회적 순환같이 반환점을 인식하며

굽어 드는 것은  불과 물의 순환이나

바람과 번개의 순환은 안다고 할지라도

좀 더 십자처럼 꽃혀서 압핀인 것에는

매우 시공적 단절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가 가느냐 마음이 가느냐 

 

저 스칸디나비아 반도란 것이 내 거시기 아니든가 

한 번 해저류에 담기면 만 년은 거뜬 

소나무가 북회귀선에 밀려도 

태평양 바닥에 그림자가 그럭저럭 

저 스칸디나비아 반도란 것이 내 거시기 아니든가 

여러 처첩 두고 놈팽이가 된다한들 사자후가 아닌가

 

 

구상

 

우리가 구상을 달리해 

벽에 꽂힌 압핀을 측면 상으로 바라볼 때 

압핀의 침과 시선은 십자가 되는데 

만일에 이 시선과 함깨 펼쳐진 벽지가 

물 위의 그림자 두께와 같은 것으로 펼쳐지는 것이라면

이러한 비단폭이 훨씬 마음 쪽에 가깝다면 

압핀의 머리와 같은 회전체는 

마치 얼레의 측면과 같이 있고 

우리의 의식은 흐름은 마치 실과 같이 

두툼하게 샇여 올랐지 않았나 하기도 하는,

즉 기둥 나무에 새로운 가지가 나든가 

옹이가 박힐 때

그 나이테의 회전력을 독립적으로 빼낼 때의

혜성을 감아도 저 우주 밖의 것일 수 밖에 없는

 

 

인생이란 걸 도리어 버릴 수 없는 것이

 

인생은 그루터기 나이테로만 취급받고

영혼은 한 그루로 취급을 받고 

어찌 그리도 주름살은 멀쩡한지

날 때 그 나이

누가 알련가 뿌리만 많이 컷지

새순조차 안 나면 미쳐 죽을 것이 

 

 

나무! 나란 것이 없구나

 

나무는 늘 그 자리로서 타지만 

연기는 빛을 모르고

빛은 연기를 모른다 

애초 나무에서 몰랐듯 

인간이 연기의 모션은 일으켜도 

빛의 모션은 일으키지 못 하듯 

연기는 내 몸둥이요

이미 빛은 세포의 눈이라

서로가 서로를 몰라도 하나에 매달린 듯  

시공조차 따로 인식함을 어이 알련가 

 

 

색소의 눈

 

씨앗에 눈이 있다함은 

색소에 눈이 있다함과 같은 것이니

색소에도 골수가 있음에

마치 눈이 숨쉬듯이 하는구나

 

 

콩과 빅뱅의 빛

 

우리가 빅뱅이 일어났을 때의

최초의 빛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이는 화석적 가치를 지닌 것이니

소중히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이 것 또한 삼국지의

조조의 자식인 조비와 조식의 간의

콩 삶는 대목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

이 건 마치 원자로 폭발에 있어

빛과 연기가 나왔는데

연기는 다 같은 연기인데

빛은 색소와 작당을 하여 태우려 한다는

의미와 상응한다는 듯이 하는 것으로

색이기 전에 연기를 한 번 생각해 달라는 것으로

빛을 알면

연기가 뭉치는 의지마져 알지 않겠느냐인 것이니

삶은 삶기듯이 굳어가며 알아 가는 길에 있음이요

죽음은 물 밖에서

죽처럼 풀리듯 타는 불과 같은 길에 있음이니

 

 

자손

 

눈 아래 두덩을 와잠(臥蠶)이라 하는 것으로

자식궁이라 한다

왜 눈 아래인가의 맥락은

모든 씨앗의 눈은 

단단한 껍질로 쌀 수 있는 방어력이 있다

결국 이를 離虛中이라고 하는데 

지혜를 밝히는 발판이기도 하다

눈이란 제 하나로 이룰 수는 없다

天地가 人을 내 세울 때 눈이라고 하는 것이요

또한 부모 없이 자식이 있을 수 없다는 루트임을 말하는데

그로 문으로 할 때 눈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란  내가 지혜롭게 세상을 헤쳐가는 동안 

와잠은

내리 사랑에 꿈이 두터운 쪽이라고 한 것이다

 

 

구름이 하야니 눈 또한 하얗구나

 

우리가 한 쪽 눈을 반물질이라 하고 

한 쪽 눈을 물질이라고 할 때

합하여 사라지는 곳이 인당(人堂)이라면

그로 바람마져 말려 올라간다고 코를 내밀 때

숨마져 차곡차곡 쌓아야 하는 템포에

눈이란 것 그저 물발울과 같은 것이다 

즉 수소 한 방울과 같다는 것이다 

이 것이 희다는 것은

겨울에 내린 눈처럼 쌓이는

팽창한 뒷모습이 있다는 것인데

우리가 양물질 사이의 폭발적 순간이

일상적 물질의 연소되는 속도를 감지하는 신경선이라면

우리의 두뇌는 무엇이라 할 것인다

그럼 이렇게 말하게 되리라

구름을 뿌리니 눈이 쌓임이니

두뇌가 하야니 눈동자 또한 하얗다고

 

 

눈썹

 

본래 눈썹이란

눈에는 섭리요

두 개의 섭리를 대칭하기도 한다는 것인데  

이마로 봐서는 섶인 것인 것으로

이마는 둥근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 이유는 모든 구심력에는

자기장이 등근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좀 모난 형태일 수는 있으나

그를 기준으로 할 때

세월이란 것이 습곡을 만들고 

단층도 생기는 바이니 

물이 고이고 눈도 되는 바이긴 하니 

눈썹이 눈을 보호한다기보다 

단애에 떨어지지 말라고 울타리를 쳐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은 바다에서 진화를 했다면 

인간은 이 진화 이전에 별당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 건 화성 땅 위에도 영혼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얼굴은 球型의 침식에도 

코가 둥근 바탕을 이마 쪽과 함께 둥글게 잡아주는 것이라 

마치 침식되지 않은 태초의 상태에서 기준되는 것으로 

그 것을 산이라고 하는 것으로 명맥을 두어

사고력의 예리함 나올 수 있게 함과 같다 할 것이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내적 氣의 바란스라고 봐야 하며

어차피 뭍으로의 진화는 눈빛 호수에서 

와잠(臥蠶)으로 오른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와잠은 밀물일 때는 검고 

썰물일 때는 모래색인데

달거리를 몰고 다니는 여자라는 것 때문에 

늘 간만의 차이를 모는 바라

여자도 같이 끼는 것을 보면  

아마도 합작품이긴 한데 

마치 남자가 무등을 태우면

달을 잡고 결정적으로 내려 올 수 있는 것은 여자인 것으로  

지구 축이 휩쓸리는 것도 본다

아니면 달을 훔쳐 숨겨놓고는 내숭을 떨었든가

아마 그랬다면 태초의 코믹 사건이 될 것이다  

인간의 의식세계는 분명 지구의 생명체와는 달라도 있다 

그런데 이 뭍인 경계만 드러나도 

은하수에서 밖으로 깨어 있는 의식이 

물질화된 물의 뭍으로 다시 밖인 냥 발현하여 

다시 인간 중심을 낳을 수 있다 함이 人中인 것이다

즉 이 거대한 지구 땅덩어리 하나를 

세포적으로 복사해낼 수 있음이 인간적 차원이라는 것이다

 

 

모양이 없는 것이니 모양에 집착하지 마라 

 

왜 乾은 둥글다 하고 

坤을 모양이라 하고 方이라 하느냐 하면

투명한 유기체도 고체화되면 여러 모양이 남과 동시에 

시간과 공간을 따로 존립시키듯이 의식을 매단다는 것인데  

우리가 형상이 형상화 되어도

각기 다른 시야에 드러나는 연쇄성에 있다면 

모양에 집중해도 될 것이다 

허나 어떤 理的 흐름이 형상화 되어도 

그 理的 흐름의

우회적인(그 것이 시간 상이든 공간 상이든)  것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 하다면

그 순간의 형상으로 만났다 사라지는 것으로 인연이라 함인데

그 것의 시공 상으로 우린 만났음에 인연 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그 건 헛개비같은 그 상이 주인공이지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즉 우리가 산에서 만났든 찻집에서 만났든 

그 것과 상관 없음을 알 때 자등명(自燈明)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며 

형상에 매달린다 함은 

方은 사라져도 理가 남음을 모르고 

허공적 단절성에 쉽게 수긍함으로서 또 方을 쫓는다 데 있다

총론하자면 

인생은 수소 하나면 다 쫓아 가는 것을 

온갓 원소들의 성정성에 휩싸면 방향성을 낳는다는 것이다 

보통 한 주기율 안에 한 방향성이 나오는 곳에

다시 坤으로 가기까지의 성향을 덧씌우며  나타나는 것이다

 

 

밤은 달의 가시가 나니 밤이라 함이라

 

왜 알밤을 저녁 너머의 밤이라고 했을까

그 건 밤에 이루는 달 때문인데

보름달일 때 가장 가시가 왕성한 알톨인 것이다

밤은 태양 가시가 아니라 달의 가시가 나니 밤인 것이다

후두둑 떨어진다 속빈 별처럼

후둑후둑 떨어진다 달차며 익은 것처럼

이미 대지의 황무지처럼 누렇게 익은

한 달이 열 달을 채워 익은 것처럼 길을 가니

어느 듯 한 해도 십 년을 익은 냥 애드벌룬의 삶 

 

 

鷄鳴 千 里

 

서산이 붉으니

봄날의 닭벼슬에 걸렸네

꼭이요

꼭이요

무엇이 그리 간졀했던가

아직도 저녁 술 반병만한 생 주저리에 

속 타는 심정이나 익고 말았을

아! 길은 낙양 천 리

우수수 붉게도 꽃잎은 떨어지겠건만  

벼슬은 일어섰고

날은 새고

 

 

기간송정학두홍(幾看松亭鶴頭紅)

 

소나무가 붉네

소나무가 붉네

불타네

불타네

불타듯 붉네

나뭇꾼이 어리석어 생깨비를 태운들

만년깨비 잘도 타는 종자

기간송정학두홍일세

 

 

가까워 단꿈

 

감이 꼬리를 칠 줄 모르니 

주먹만한 꼬리도 저 별인 냥할 때는

속 없는 냥 뚝뚝 떨어지네

별 헛꿈인 냥 떨어지네

그래!

그래도 로켙이 달나라 가는 길부터여야지

지구가 하루 하루 얼레길

무슨 만화경인지

감나무가 주먹만한 꼬리에 붉어진다

 

 

小乘과 大乘 

 

소승은 스님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것은 외길로 가는 자에겐 매우 공감이 가는 말이다 

즉 명문대가 곧 해탈의 길이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왔지만

요즘에는 용날일 없으니 

얼마나 소승이 고급스러운 학문이였나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뭐 부처님 모시는 학당이야 그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자칫 지식이 지성을 까먹는 행태와 같을 수 있다

일례를 들자면 인간이 비참해 지는 것도

다 전생의 과업까지 볼 수 있는 차원이라면

눈꼽만큼도 돌아볼 인정도 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현재 또한 업을 짓는 것이기에 선업을 쌓으라는 것인데 

만일에 중이 중으로 윤회의 고단수만 따른다면 

결국 그 발판만으로 됐지 

오히려 돌아보는 것은 곁눈질이 된 것인데

어차피 떠나는 순간 자유로울 수 있어도 

어느 무엇에서도 잡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대승에서는 보살행을 중요시 하는데 

모든 주안점은 현재에 있다는 것이다

즉 인연은 그 번복형으로 닦을 수 있는데 

닦을 수 있는 것을 외면하고

이미 다 닦았다는 것과 같을 수 있음이

소승이 유념해야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즉 윤회의 틀에 더 두텁게 걸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즉 돈오했으니 먼지만 끼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돈오에도 점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라한이 천적일 수 있는 자가 있는데 

온갖 좋은 잡동사니는 다 챙기면서 

서로가 좋은 게 좋다면서 다 통했다고 하는 자에게는 

본래 아라한은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진 다음에는 그 꼴을 못 보리니

이에 또한 대승이 유념해야 할 것이

우리가 불국토라 함에는 이미 인간세계에는 없는 것이며 

아라한국토라고 해야 할 것인데 

아무리 소승이 부지하기 힘들고 만진창이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대승의 뿌리가 아니라고 할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이 걸 부정하면 세상과의 인연을 부정하는 것인데 

무슨 보살행이 걸려 있다고 할 것인가

 

 

두 개의 영역

 

어차피 지구의 축은 동쪽으로 향해 돌기에 

여는 폭으로 무지개 폭이 있는 가시 상(可視 上)에 있는 것이요

정오까지를 말함이요

그 선 너머에는 유리와 같다는 것인데 

유리가 있어야 어둠의 폭으로

색의 그림자를 짤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삼원색의 흰색과 무지개 색의 검은 색이

흑백 중에 다시 칼라로 드러낼 수 있음에

그림자라는 것을 짜는 베틀과 같은 기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파장이란 에너지의 함축과 같다 

뜨거운 남쪽으로 갈수록 파장도 늘어나는 것이요 

새벽이면 파장이 짧은 것이라고 하는데 

백색과 흑색은 원소성이라고 해서 

스스로가 닫은 형태가 되니 빛이 아니면 

드러내질 못하는 성질인 바 

왜 유리에는 그림자가 비치고 

어둠만으로는 그림자 비치지 않느냐는 

단순히 복사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

원소성 그대로 머물러 주기에 가능한 것이다 

즉 파장성만으로 그림자를 잡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저녁이라는 경계에서 백색이란

이미 삼원색이 올려진 것으로

이미 종합 침전물인 흑색의 모래알같음의 원소로 

환원 되어 드러나는 것이지 

꼭 빛이 반사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함이다 

 

 

기특한 효도

 

우리가 동서양의 학문적 특색을 볼 때

마치 병신자식이 효도한다는 듯이 기특한 것인데

서양 사람이 동양철학을 했다면

센스가 그렇게 빠르지 않을 것이요 

동양사람이 서양 논리학을 따라갔다가는 

조급증이 나서 못 살아  

장점이 장점이어서 아니라

나름의 취약점을 장점으로 했음에 태생적인 것같은 바라  

서양은 서쪽으로 향하는 기를 받음에

본래 自轉 上으로는 동서가 순환되는 바이나 

그 속에서도 서쪽이 축적성으로 남는 것과 같음에 

마치 중천일 때 그물이 확 펴진 것이라면 

이미 오후일 때 고기가 걸려

한 망태로 처지는 것이 金의 성질로 부여한 무게라 

마치 꽃받침에 열매가 부풀리듯이 한다는 것인데  

특히 문명 간의 교류가 실크로드를 따라 금은으로 바꿔오듯

학문 또한 차분함을 지닌 것을 가져 올 수 것이 서쪽이라는 것이니

이에 상대적으로 동으로 향함에는

동적인 활성화를 맞음이 또한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은 좀 더 정적이기 위해서 

살코기인 土를 많이 먹어 金의 받침이 든든하게 되게 하고

동양은 좀 더 동적이기 위해서 채식을 많이 하는 체질이 되어  

이 위에 좀 더 큰 바란스를 주기 위해서 

동적인 것에는 

정적인 정신세계로 좀 더 구체화 시킨 것을 주었고 

정적인 것에는 

좀 더 물질적으로 확신을 많이 같게 하는 편으로

활성화를 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대서양이 육지이고

아시아 땅이 없었다면

미국이 서쪽이 되어 유럽형이 되고

유럽이 동쪽이 되어 아시아 형이 되는 것인데

그 것은 인간이 교류하는 활성도에 의한 것이요

지구의 자전과 함수관계로 일어나는 것이다

 

 

중중모리 

 

그래도 이빨이 없어도 잇몸으로 버틸만 했고 

몇 십 년만의 추위에 쫓겨나도

피로조차 멀게져버린 것 같았어도

그래도 중모리였을 때는 

좀 심하다 싶으면 느슨하게 풀어주기도 했었는데    

이젠 비바람에 쫓겨 나올 때는 나도 대책이 안 선다

중아 

중아

중중모리로 가니 

숨이 목구멍까지 차고 오르는구나

이젠 숨돌릴 틈조차 없구나

중아

중아

중중모리로 다그치는구나

중아

중아

가슴 따갑도록 중중모리로 가는구나

그렇기로

이 놈아

중 제 몸 낮춰 님 자를 빼기로서니

네 놈에게마져 중일까

내 아무리 보잘 것 없기로 

X도 안 줬는데 화냥년 소릴 들을 정도일까  

 

 

굽어보는 그림자같은

 

존재란 내 무덤과 같은 향기

내가 이 세상에 깨어 있는 것은 

무덤 속에 먼지 한 알에 열려 있는 것 

세상의 이런 꿈 

도리어 꿈 밖의 세상과 통하기도 쉽다마는 

무덤인 줄 빨리 아는 자만이 무덤 밖을 나갈 것이요 

모르는 자는 그 무덤이 두터워질 것이니

마치 비만도 초기에는 불편함을 알아도 

나중에는 살빼는 불편함에 

녹은 왜 그리 빨리 쓰는가 싶으리니 

 

 

토와 터

 

토는 바닥에 있는 것

터는 옆 볼짝에 있는 것

토라면 모를까

터라면 거두어 줄만 하오이다

 

 

十大弟子

 

하나의 모습으로 열 가지를 부릴 수 있으면

어찌 두 손바닥의 일이라 하지 않으리

부처님 제자의 모습이 한 가지만 아니라지만

그 열 개 중 하나의 도리를 다하기도 힘드는구나

 

 

말과 글

 

난 몇 마디 말을 해도

글일 뿐이었지만

그댄 온갖 글을 쓰도 말일 뿐이니

그댄 어데까지 왔나

앵무새 가슴에 와 있는구나

나?

나야 그 자리에 일필휘지 따라 내린 듯

구비 좋은 글이지

 

 

인생은 뿐으로 나눠 먹기

 

인간이 평등하니 뭐니 해도

너 뿐이라는 소릴 들어야

두 분이라는 존대를 받고 살지

허리멍텅했다간

어데 분이라 말을 찾아 먹기나 한다든가

 

 

태초까지 갈 수 있는 타임머신 반물질

 

우리가 태초까지 갈 수 있는 방식은

마치 터진 풍선을 뒤집어 불어 작은 풍선을 만들 듯

폭발력으로 떨어진 반물질을

뒤집어 다시 부는 풍선과 같다면

오히려 빅뱅이 말려드는 형상과 같지 않으랴

불길도 역으로 타들어가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건 물질의 기억성과

빛의 기억성의 함수관계를 찾으면 되는데

이 건 빛과 물질은 같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건 우리의 두뇌가 아니어도

심장만으로 기억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발겸함과 같을 것이다   

시간은 빛으로 가는 길만의 유추보다는 

열에너지로 가는 길목도 밟을 수 있다면

광자학과 공간성보다는

분자역학적 시간의 모형이 더 실체적 접근이 된다는 것인데

빛은 길이와 견줘진 시간이지만

분자공학적 시간이란 매우 평면적이고 입체적으로서

시간이 단순히 선인 것 뿐 아니라

모양을 유추해 내 듯 위치 상으로 잡아 접근하며 

색깔로 유추해 내듯 접근하며 

또한 행위마져 유추해내며 접근할 때

그 것이 한 점상으로 점하는 것이 아니라

이로서 시간적 의지를 끝까지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임의적 의지보다

시간적의 의지로 나가는 결과물로 어떻게 태초와 접근하느냐인 것인데

방향성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잃고 사는 듯 하다

아무리 복잡하게 얽혀도 사물은 때가 있는 것이니

너무 손쉬운 말로 인간은 만물의 연장이라거나

인간의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니 하는 것과는 

매우 과학적 사실성의 인지에 접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이 초탈하고져 

추상성과 형이상학을 극복하는데 있어 

선입관적 저항성을 없애는데 중요하기 때문이며

타임머신적 루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反物質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 것은 빛의 측면에서이지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측면으로 함께 가고 있다면

이 것은 훨씬 분자 공학적 차원으로 시간을 맨다는 것인데

이 건 우리에게 매우 우회적이고 이미 형상화된 

결정체로 드러내기 때문에 시간적이라고 할 수 없는 듯이 보이나 

어쩜 모든 사물은 시간은 빅뱅과의 역류성으로 가는지도 모르는

즉 반물질적으로 소멸되는 회귀성

즉 이 사물이 빅뱅의 불이 부풀린 형상이기 때문에

불이 제 그림자를 만나 사라질 때

사물이 사라지는 형상이 불인 것이다

실제는 빅뱅의 이 전의 회궈성이라면    

마치 시간은 빛과 겁으로 다루는 것이라 여기지만

실제는 매우 유기화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지  

마치 그림자를 시공적 차원으로 찾듯이 해  

그 도판으로 짜맞추기로 한다는 것은 한계를 드러내는 것으로

빛이 아닌 열 에너지로

시간을 이룬 바탕을 딸가야 하지 않나 하는

물질은 물질로 보이는 것에도

물질이란 것을 배제하고 

불만 남았기에 물질로 보인다고 할 때  

불이 불로 돌아가면 물질이 사라진다고 할 때   

불이 불로서의 영혼이요

또한 영혼의 회귀성과 같음인데

불에 물질이 타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불이 불로서 사라짐에 반물질이라는 것이다

이 건 불은 불로서 사라짐이요 

물은 물로서 사라짐이라 하는 것인데

이 건 사물은 불로서의 부각이기 때문에

음양이 만나면 불에 타서 사라진다기 보다

불이 온 길을 돌아갔다고 함이 맞다

그 물질을 이루는 성정도 함께 갔다는 것이 된다  

이에 비하며 감수(坎水)가 다하면 이화(離火)가 되고 

坤土가 다하면 乾金이 됨은 변주곡 형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굳이 원자력 上의 초스피드하게 미끈한 시간이 아니라

분자적 촉매로 일으키는 완성도가

빛보다 더 독자성으로 시간성을 갖는 것이 있지 않나  하는

이 것을 완전히 떼어 분리됐을 때는

마치 빅뱅의 폭발력만큼이나

다시 역회전 되어

공이 공이 아니 듯 진공 상태가 되어 

다시 되감기이 듯 빨아들이는 것이 

마치 폭발적으로 사라지는 듯이 보이는

어쩜 빅뱅의 파편적으로 잠재된 되돌이가 

이용할 에너지가 되는   

순식간에 산 하나를 움직여 갈 흡인력이 있는

에너지적 소출이지 않나 하는 것으로

훨씬 생시와 같을 수도 있다 

즉 빅뱅의 역류성이 반물질이라면 

이를 남섬부주라 할만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럼 우린 현재의 존재만으로 태초까지 가는 타임머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반물질과 수리학 

 

우리가 물질이 됨은 이런 것이다

수소가 반물질로 다 타는 것이 10이라는 숫자라 할 때 

이 10라는 과정을 다 통과해야 다 소멸하는 것이니 

이에 다 타지 못하면 수껑이 되는 것이라 봐야 함인데 

그 수소의 흔적은 남아 검다  

그래서 수껑은 검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그 탄 눈금의 수치가 다르다는 데서 3일 수도 있고 5일 수도 있는데

각각 다른 성향을 사물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수껑인 바다에서 온갖 유기물이 나오는 데서

이 검은 수껑이

빛의 파장이라는 벌레인 종합체라 볼 것이면  

이 것이 빛에 따라 그림자처럼 살아나는 것이다

 

 

마음은 어느 정도의 속도를 극복하는 것일까 

 

마음은 어느 정도의 속도를 이겨나갈 수  있을까 

대강 설정하기로 

양성자 쿼크 下卦와 중성자 쿼크 上卦라고 할 때

전기로 움직이든 전자로 움직이든

잡을 수 있는 속도라고는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쿼크가 四象으로 전이 하는 내용이

맹신(孟神) 중신(仲神) 계신(季神)으로

12 支神으로 할 때

소우주와 대우주의 확장판이듯 맞물게 하는 것으로

나오지 않나 하는 것이다

 

 

고치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것은 

누에 고치의 실이 고차원적 줄자임을 말하는 것으로 

단순히 시간을 땅콩껍질처럼 할 수 없는 것이 

고치는 선적(線的) 차원의 시간을 짠 것이 있다는 데 있다

결국 인간은 입체적이나 면으로 들어가도

시간적 개념이 없는 것과 같다는 데 있음인데

누에 고치는 

누적되어 얽힌 것 같음에도 

실을 빼어 충분히 고도의 치수를 내놓는다는 데서 

시간적 표시 의사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線的 인식과 막대적 시간 인식이 곧 빛의 시간인 것에 

그 선을 끌고 유기 화학적으로 쥐고 있음과 

타래로 뺌으로서 마디 마디 숫자적 개념을 놓치 않는,

그래서 단박인데도 불가사의한 숫자도 뱉을 수 있는 말씀 

우린 분자 이상의 어떠한 졀정체

혹은 순간에 인연된 접촉물까지 

시간적 척도에 줄자라도 대자는 것이 있음이니  

어찌보면 맹목적인 접근이라고 해도 

씨앗 하나를 심어보면 나무를 아는 듯이 

우리가 분자적 사물적 측면의 시간을 알면 

곧 바로 빛과 그 발원의 종자를 알기가

저 허공적 시공의 벽을 넘기보다 훨씬 섬세하다는 것이며  

가장 쉬운 루트라는 것을,

우린 생활 상으로 그런 식의 접근으로 지혜롭게 발견한다고 하나 

실제 근원적으로는 토대조차 없이 모른다는 것이다

 

 

은둔성같은 것

 

에전에는 망태에 

천 원짜리 얼마 들었겠지 해도 

배춧잎이 드문 띄기도 했는데 

요즘엔

우와! 배춧잎이다! 하곤 

웬 걸

뒤져도 뒤져도

?

어데 흘려버렸나?

거꾸로 툭툭 털어보아도 

?

허허허 

이 놈아! 도 잘 닦았구나

 

 

三과 四

 

4를 너무 싫어하지 마라

4는 싼다는 것이다

즉 4는 3을 싼다는 것이다

삶을 싼다는 것이다

그리고 5는

주검을 넘은 自性을 봐야 

참된 깨달을 悟가 됨이라

 

 

체크 무늬

 

버스 정류장에 잠시 사이

초딩이 될까말까한 여식애가 어미와 함께 내린다

그리고 다시 다른 차를 기다리나보다 하는 중

난 애써 눈길을 피해 허공만 바라보는데  

녀석도 힐긋 보는 듯이 아닌 듯이

애써 눈길을 피하는 듯이 허공만 바라보더니

엄마! 여기서 보니까 비가 꼭 눈같이내린다 그지!

그지!

얘 차 왔다 빨리 타!

마치 이 한 순간이라는 것이 체크무늬가 나는 것에

시 발걸음도 아닌 길에 시운(詩韻)부터 뗀다

 

 

땅의 메아리 

 

누군가 야외음악당에 메아리를 지고 온다 

언젠가 흘러갔을 음정이 발이 달려 메아리를 지고 온다 

온음표 

그냥 자신이 동그라미라 했다

지고 온다

반음표 

그는 끝까지 원숭이라 했다

지고 온다

음표가 음표를 낳는다고 장비를 지고 온다

인생은 다 자기는 자기라고 

다 자기 하나 심어진 대로 간다고 하지만 

팔분음표일 때 하늘 끝에서 열리는 것

바람이 가는 대로 쭈삣 키라도 크면

그래도 바람결에는 팔분음표는 되야 

어데라도 가는 듯이

그래도 지구도 돌고 달도 도니

또 메아리의 품을 알기에

또한 어데 떨어져도 무뎌 에미 속 많이 썩일 까봐

그래던 데도  

굳이 바람이 안 가고 깃발이 가는 놈이라 우기는 놈은

돌아온다

감자의 사분음표

고구마의 사분음표

제 몸을 나눈 눈으로 돌아온다

 

 

의식의 순서

 

우리가 영어의 문법 상이나

한문의 문법상은

주어 술어 목적어로 天人地라고 한다

그러나 한글을

주어 목적어 술어이기 때문에

天地人라고 한다

그래서 후자가 훨씬 정교하게 

여유로울 수  밖에 없고

훨씬 자유롭게 하는 것이지만

다만 언어 상으로 그렇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운명의 틀

 

누군가 왜 운행은 10 년씩 가느냐고 한다

그야 뿌린 대로 거두기 위함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달은 모태에서 나오기 때문에

일, 십, 백으로 기하급수적인 시공을 타기에

어차피 뿌린 대로 거두려면

십 년씩 쫒아가게 되어 있음 또한 모성이라

 

 

체크 무늬 2

 

내가 내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체크 무늬가 날 때 돌아보는 것이다

後天數는 10이 土라고 한다

또한 100을 토라고 한다 

즉 10 단위로 체크 무늬라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수를 나열 할 때 

12345~ 등 이런 식으로 나열하지만 

이 걸 한 묶음으로 십만 팔천이라고 할 때는

띄어 쓰기를 해야 하듯이 

원소 주기율을 포갠 것인데

先天易으로는 8인 坤土를 끝으로 접는다는 것이니 

이 건 마치 양 쪽에 엄지손가락 없는 듯이 

자연에 박힌 그대로이지 않나 하는 것을 

엄지로 세워 사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한 끗 차

 

우리가 8과 10 사이에는 얼마만한 생각을 넣을 수 있을까

어느 누가 지구를 동여맨 끈을 얼마나 늧추면

사람 하나 빠져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실험을 했다고 하는데 

이런 것이다 

이 지구 한 단을 동일 때 바싹 조인 것을 8로해 쌓는 것을

그래도 산 하나 키는 서는 것으로 빠져나가게 함에 

10으로 동인 것으로 쌓는 것이라고 보면 간단하다 

즉 土星은 八인데

지구만큼 폐차장의 차처럼 우그져트려 사람 손에 잡힌 것이 

10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섭리는 8을 넘을 수 없는 것이기에 

반으로 접어 음양으로 순환하게 함이니 

이 또한 원소주기율 8을 못 넘은 이치와 동일하다

 

 

뇌(腦)

 

이 삼(蔘)이란 글자는 

참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참(參)이란 공청을 말하는 바라 

둥근 홀에 참여하는 머리를 말한다

그래도 심볼 삼이라면

쾌나 천지신명께서 머리는 조아리지 않았겠나 하는,

그 정도야 기본인 고로

산삼은 인간에게 산을 이야기 한다

즉 인간 잘 나봐야 인삼일 뿐이라고

그래도 적막하게 사는 것같아도

장고 끝의 뇌에서 나오는 장뇌라고

또한 이 것을 거꾸로 보면

이 參이란 여럿이 모여 중론이 일기 마련이라는 것이요

산에서 캤다고 하면 진짠지 가짠지

오래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장뇌일 수 일 수 있으니

다 마음 격으로 잡는 것이니

어느 쪽으로 간들 제 길로 가는 것이니

다만 저것인들 사람의 손이 가지 않았겠나 싶어도

천 년 묵은 것은 사람인가 신령인가 하는 것도 있는 것이니

더 이상인들 사람이 알아볼 수 있으리

더 이하인들 짐승이 알아볼 수 있으리

다 그렇게 알아 볼 수 있게

天地人의 조화인 삼(參)을 참(參)이라 해

획수 하나 바꾸지 않은 것을

 

 

자각

 

우리가 물 속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어느 날 문득 다리가 여덟 개 달린 괴물을 보았다 해도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은

그 자가 바닷가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 놈이 얼마나 든 것이 많아 먹통을 지느냐를

차후에 치더라도

인간의 대뇌피질이란 것이 바닷가와 같음으로

그 경계가 있음으로 해서 드러남을 앎에

그나마 거울을 보고 개처럼 짓지 않느니

 

 

사실주의와 현실주의

 

역사는 사실성을 엄격히 하는 것이라 

그 것을 기록하는 자로서의 상황은 배제됨을 철저히 한다

그러나 현실주의는 상황과 조건

환경 등 여러 복합성을 띤 채 참작된 행위를 한다

현실주의는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그 상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행문이나 논설문로서의 근거는

매우 사실성 있게 접근하지만

오히려 시적인 것은

글 내용이 초현실적이고 관념적이라 할지라도 

현상화로 드러난 것이 선명할수록 현실주의적 눈으로 

드러내는 찰라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즉 지나도 있는 것이 사실주의지만 

현실주의는

초현실적인 것도 현실에 진면케 해야 초현실주의 라는 것이다 

즉 인식의 접점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주의는 복잡미묘한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성을 헛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사진을 시간의 공간적 복사라고 하는데 

또한 공간의 시간적 복사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을 때

그 공간적 의미보다

그 찍어낸 만큼 시간의 각기 파생된 길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 수많은 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이 한 순간이  여러 우주적 시간에 걸쳐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보현보살님의 눈빛만 보아도

굳이 한 부처님만 만났겠느냐인 것이다

 

 

학문은 학문으로 접근하는 것이 존엄이다

 

우리에게 수학과 과학이 없다면

사진은 사진일 뿐이다

즉 수학과 과학이 있기 때문에

사진도 눈동자가 되는 것이며

시간도 없이 커는 놈이

시간을 너머 사는 길을 열어준다

이러한 탐구엔 임상과 설정이 무수히 오가며

무리와 과장이 따르기도 하지만  

논리는 논리로서 접근하는 것이면

논리로서 갈고 닦기도 하고

잘못하여 깎이기도 하고 흠집도 나기도 하지만

무지한 것보다 못하다면야

굳이 사람축에 드는 것이 깨달음이냐는 반문식이면

인생의 존엄은 무엇인가를 되씹게 하는 것이니

 

 

마음을 먹는다 함은

 

과연 우리가 해야겠다는 다짐이

자의일까 동요일까

우린 마음을 어떻게 먹는 것일까

우린 생각으로 결정하나 먹는 게 아니다

다만 생각하게 하는 것을 먹는다

즉 마음을 생각하게 함으로서 먹게 하는 것이다

 

 

꽃은 나무에 붙고 사람은 마음에 붙는다

 

우리가 소리를 본다는 것은 마음을 본다는 것이다

빛이 허공 중에 있듯 마음도 허공 중에 있다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허공 중의 마음과 사이클이 맞다는 것이다

빛이 제 발상을 기억하는 것이듯

소리도 제 발상을 기억하는 것이다

꽃이 오고져 하면 나무와 풀에 의지하듯

사람으로 오고져 하면 마음에 의지하느니

 

 

마음이 당겨온 것만 확실한 것

 

누군 마음에서 일으켰다 마음에 풀렸으니

섬이었다 다시 사라지고 또 섬이듯이

또한 고요한 바다이듯이

누군 마음을 일으켜도 간 것도 없고

다만 울룩불룩 돌이켜보변 산과 같은

어찌 평평함일까 하는

누군 마음을 일으켜도

지금껏 자란 나무 우듬지에서 보면

옆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분수대 물잎만 더 넓게 커 나가는 것의

다만 마음이 당겨온 것만이 확실한 것

 

 

선천수와 후천수

 

우리가 후천수(後天數)로 셀 때

1234~  순으로 하는 것으로서

이는 음양이 생기고 천지가 생김으로서의

조화를 이룰 때의 수적 나열이라는 것이요

10으로서 55씩 나누어 생태를 이루게 함이나

선천수(先天數)는 8까지는 전자수(電子數)을 말함이요

9에서부터는 원자핵까지 포함된 인력(引力)의 범주를 말하며

987~ 역순으로 하나씩 덜어내며 陰化하는 이치가 들어 있다 

 

 

한 점조차 눈을 감으니

 

공자님 말씀에도

사람마다 한 가지는 배울 점이 있는 스승이라고 했으나

나란 놈은 한 티끌조차 없어져야 한다고

입 떼는 것조차 한 점 허물일까 무시하기도 하더니

그런다고 하늘조차 가린 듯이 설쳐도

쓸고 쓴다고 원자 하나 쓸어지기나 하겠는가마는

나란 놈이 그래도 하늘을 받치는 글이 있으니

그나마 운신이라도 난 글이라고 득실대기는 한다만  

어데 그 살맛에도 고마움조차 알던가   

어쩌다 삽질을 하다보면

구데기 우글대는 곳을 건드리기도 한다만 

아직도 구데기는 하늘이 무너진 듯이 한다

 

 

神과 과학의 접근성

 

동양철학의 황극책수(皇極策數)에는

기문(奇門)에 귀문(鬼門)이 나는 길을 설명해 놓았는데

그 이치는 귀문이 지리적 방향성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매우 광역적이라 방향을 쫓아가는 형태인데

이를 과학적으로 들이켜 뱉을라치면

그 이치는 電子 속에 門이 있다는 설명이다

본래 神的 차원에서는 손가락 안에서 일으키는 일인데 

원소주기율 몇 번 몇 족에 鬼門이 열렸다는 것을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건 인간도 짚을 수 있는 과학적 접근성이 있는 것이다

 

 

처연하다

 

흰 두루미 한 마리가

도시의 개울가에 품새있게 내려앉는다

이 도시의 벽에 놀랍다는 생각에

다리걸에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허나 도대체가

시야에 잘 잡히지 않을 만큼 외소하고

목이 실처럼 가늘어

정말이지 철사로 역은 모형이 아니고서야

당최 나올 수 없는 것같은

새끼여서 그런가?

아니 날아 들 때는 정말 컷는데

새끼며는 도리어 토실할 텐데

그래도 품위일 수 있는 건 날개짓일 때 뿐인가

차라리 바위산 독수리가 낫지 않았을까 

부엌 쟁반 식기에나 늘 띌 듯이 멀리 달아나고져 않는

소나무가 식당 웨이터처럼 나르는 시공 속에

하얀 수염처럼 스다듬다

말 없이 떠날 향연에 머물다 잠시만의 외유같은

소리 한 점 없어도 하얗게 떠날 수 있어 좋은 길

물결도 하얗게 부서지며 옆구리가 시려간다

         

 

두 눈이 달려도 두 개의 시야를 걸지는  못 한다

 

하얗다는 것은 연 것도 닫은 것도 아닌듯

흩어질 구름같은

허나 붉은 태양에 녹아 부풀려 

사방에도 間이 생겨 팔방을 꽉 메운 

하얗다는 것 

땅이듯 땅으로 녹아 들어야 할 것이 

하늘이 듯 올라 

땅으로 내려도 들어도 어둠으로 가는 

백색의 흑색화

그대여! 

그러니 오후에는 낮잠을 깨지 마라 

그 길에는 공포의 고리가 있으니

 

 

언론의 자유?

 

무엇이 언론의 자유인가 

저네들은 자신들은 예수쟁이라고 욕들어 먹었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면서도 

멀건 대낮에 성경 끼고 꼭 앞뒤 좌석에 앉아서는

자식뻘보다도 한 참이나 아래인 것이

들릴 뚱 마는 둥 X 새끼 X새끼 온갓 욕을 다 퍼붓고

그러면 옆에 같이 앉은 아줌마는 말리기나 좀 하지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양쪽 사이에서 무안해 하면서도

예수 믿어 천국 가라고나 하지  

주변에 사람이 처다봐도 아랑곳하기나 하나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있나  

세상에 위 아래가 있나 때와 장소가 있나

멀쩡히 이야기하다 느닷없이 할렐루야

입이라도 떼면 잡아먹을 듯이 하고선   

이 것이 픽션에 불과한 것이더란 말인가    

 

 

개구리는 개굴개굴 개울은 개울개울

 

어덴가 개어귀에 귀가 열렸겠지만

개울도 조용히 울음을 묻어가지만

개울이 울음을 낚고 씻어가지만

개울이 지날 때마다 울에 울인 것

그래도 떠갈라지는 마음인 격이라

하늘까지 꽉 찬 울먹울먹

산천인들 울을 열고 말지 울을 열고 말지

개구리는 개굴개굴  

개울은 개울 개울

 

 

진화의 법칙

 

두 눈이 있다는 것은 산을 위한 것이요

외눈이라는 것은 땅을 위한 것이니

외눈이 두 눈으로 진화된 것이 아니라

두 팔이 두 눈이 된 것이다

즉 씨앗의 눈이 두 눈이 된 것이 아니라

떡잎이 두 눈이 된 것이다

그러니 천상은 외눈이어도 자연스러움이요

지상은 두 눈이어야 자연스러움인 바

손 바닥이어도 내 눈과 같이 들어오느니

 

 

두 범주 사이에서는

 

부부란 과살 속에 씨앗인 냥 

출근길 퇴근길 한결 같은 것이 있었던 

그 과실은 튼튼하고 실했다 

그 과실로 자란 유전자는 

또 지나는 다람쥐가 탐이나 물어갔다 

누군 씨를 남자라 했고 

누군 씨를 여자라 했다

영악한 씨앗 

별은 영원해도 다람쥐는 짧다고 하는구나

 

 

과학과 집단의 성향

 

우리가 원소주기율의 여러 문 중에

귀문이라도 밝혀내면

먼저 그 집단의 성향을 화학적 해석에 의해

냄새나 색깔이나 전이를 알 수 있는데 

인간들이 그 표본처럼

모였다 흩어지는 현상을 알 수 있게 된다

다만 이것을

크게 과학적인 체계로 부여해 놓지는 않았지만

일본인이 만화 캐릭터로 대입시킨 발상은 높이 살만한 것이다  

또한 이렇게 까지 접근한다고 할지라도 

신의 의지를 안다는 것은 아직도 요원한 일이나

다만 자신의 생각이나 행위에 대해서는 

무책임해지지는 못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최소한 영혼에도 냄새가 난다는 것만은 드러날 테니

 

 

바람의 춤

 

구름이 간다 

숨돌려 세운 듯 구름이 간다 

빙산의 일각이듯 구름이 간다

숨보다 더 무거운 것의 꼬리표 

바람이 자면 그 허무표도 사라질 

눈조차 난 바도 없는

냉장고 윙윙 잘도 돌아가는데 

빨리 돌아라 빨리 돌아라 독촉장

다른 건 다 불길같이 쫓아가는데 

얼음은 쫓아가다 쫓아가다 

희멀건 동태 눈깔 하나 되다 

눈물부터 먼저 나고 눈이다

어느 가지에 눈이 나길 원하는지

보는 눈?

많지 

춤추는 눈?

나뭇가지조차 많아

눈으로 맞춤은 춤발이 아닌지

나무야 눈으로 한참이나 빠지는 춤으로 기다리는 것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을 너무 보았나?

보고져 하는 욕심은 새록새록 나고

춤이다 싶은 것

어쩐지 허리 춤부터 조이고 봐야하는 것  

원만하면 춤은 뿌리가 박히지 않아야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쉽지도 않음이라 하는데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자여! 깨달을지어다)

 

좀 더 세분화하고

좀 더 강조되고

좀 더 뚜렷해지고

강열하게 와닿아 좋은 것들

굳이 그 시에 힘주어 욕심낼 바도 없으니

굳이 구별할 일도 아닌 것

다만 한 차원 높이 딛고져

한 시공 선연해 지고져

머리 위에 둘 것이 아니라 

발판에 두고 얘기할 수 있느냐에 

얼마나 사리자를 찾은 것이었던가

공즉시색이요 색즉시공이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비벽루(秘碧樓)

 

古今이어서 좋은 산천

現今이어서 더욱 신선

그렇기로 말로서 풍광이 없을까

천마인 냥 한 필치로 허공을 번쩍 가를 때

盜佛이 절경을 풀어 놓았음을 

경개가 장엄하니

唐宋의 대가들이 비벽루에서 놀라리라

 

秘碧樓(푸른 옥바위에 浮彫처럼 잠겨 바라보는 곳)

 

 

언어 오행의 氣는 어느 정도 파급력이 있을까

 

우리의 언어가 저 푸른 하늘의 빛의 파장에

포함되어 움직인다고 할 때 

뇌를 움직이고 가슴을 움직인다고 할 때 

먼저 자기장이 움직이고 자연 속에 깃든다

드러면 자연이 그 형상을 감동받는 것인데 

그 상태로

인식이 부각하듯 사물은 생성된다고 봐야한다 

다만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모양은 모양 속에 있고 

흐름은 흐름 속에 있는 것어서 그런데

즉 글이란 

물보다는 고체화된 것같고 

불보다는 여유를 부린 것인데 

색이 빛인 요소같이

색 또한 빛의 순간에 의지하는 것이요  

글자는 흙의 요소로 드러냄이니

흙의 지워지지 않는 요소를 끼고 옴이라는 것이다

말은 소리의 요소로 옴인데

이는 관절의 활용과 같음의 표식으로 옴이라     

이 모두가 독자적 파장을 들어켜도 

다 알아들을 수 있음이 뱀의 혀와 같다는 것이다

 

 

화석총

 

우리가 빛의 순간일 때 희었던 것은 

언어처럼 살아 일어나는 굼뱅이 같음이 있고

털보푸라기 같이 일어 난시를 이룬 세상인 듯이 해도 

맑게 개면 그 무게처럼 앙금된  

어쩜 무지개는 화석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날이 생일

 

우리가 오고감이 없다고 할 때  

시간의 형태를 어떻게 잡아야 가장 효율적일까 

우리가 하루를 열고 하루로서 닫는다면 

이 것이 가장 효율적인 복사이며

가장 저변적 복사라는 것인데 

나날이라는 것으로 복사성이 된다는 것이다

우린 단절성 없는

무한 영속성으로 복사라고 할 수 없는 범주

즉 인식의 한계가 있는 것이기에

또 중복성을 포갠 것으로

분리 된 것을 나타낼 수는 없는 것기에

오히려 무한 길다는 것에는

황혼처럼 따르고 포물선이 있다는 것이 되는데

긴 시간이나 짧은 시간이나 단조로움이 표식일 뿐이다

이 것은 과거세도 없고 

미래세도 없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즉 단조로와도 길고 짧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 하루 날로 잘린 단절성은

늘 살아나오는 에너지에 복사성으로 날아간다는 것인데

이는 곧 나날이 생일이라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이 말은 곧

무한히 이어지는 시간적 의식이 아니라

하루 하루 원판적 무한 복사를 일으키며

달의 울타리에 걸리게 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은 이미 있었고 외계적 교량?

 

저 히말라야 어느 마을에는

자신들의 조상이 외계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奇門遁甲을

九天玄女가 전한 神書라고 하는데

이 책은 인문서에 가까운 듯이 하나

실상 과학서이기 때문에 

이것을 외계인이 가져다준 것이라면

秘書라고 해야하는 것이지만

다만 이 것이 동양에서 발전되었다면

그들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는 뜻도 되는 것이고 

우리들에게 있어 과학적 촉수로서의 신이란

의지와 반응을 보일 때

신도 살아 있다고 규정하는 것에 있어서

오히려 외계인적 문명으로 신이 아닌가?

어차피 과학은 시공에 자유자재라 보면

신적 차원만큼이나 격세지감이 있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신이 있고 없고 보다

신의 범주가 인격과 얼마나 별외로 잘 갖추었느냐와도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長語와 連語

 

長魚는 말한다

바다에 중심을 낳는 것이라고

連語는 말한다

이 介 字의 八門으로 몰아주면 다라고

장어가 못 박힌 곳으로 들어갈 때

수소는 이미 핵에서 펴저 주기를 긋고

연어는 바톤을 이어 받은 반환점이라고

그물의 눈만큼이나 기억 또한 눈이 나는 것들

 

 

선천역(先天易)

 

1. 乾天은 빅뱅

2. 兌澤은 물질과 반물질

3.離火는 폭발

빛의 제로화로 인한

허공과의 저항성이 없음으로 무한 확산

이는 곧 더껑이를 만들며

최극의 외벽에 닿았다고 봐야됨

즉 허공의 벽을 안으로 도배함을 드러냄

4. 震雷는 좀 무거운 性情으로 소리가 닿음

5. 巽風은 더 무거운 성정으로 폭풍이 임

6. 坎水는 점액화됨

7.艮山늠 들죽날쭉 안정감이 없음

8. 坤地는 가장 안정적임

 

 

세포

 

세포의 눈은

빛이 허공벽에 부딪혔을 때

허공을 차고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벽을 그으며 나아가기 때문에

그 사이 빛은 균열상(龜裂狀)의 구럭이 나는데

이 것은 평면 상의 구도로는 이해가 안 되고

좀 더 입체적 구성력이면 이해가 되는 것으로  

그 저항성에 거울처럼 잘린 단면으로 보면  

빛이 뻗어온 진액이 그림자처럼 드러남이 세포라

 

 

화신(火神)

 

뱀의 혀를 잘라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면

가히 가관일 것이다

박쥐조차 가는 길이 레이더에 잡힐 것이니

물에도 더께가 끼듯이

불에도 더께가 끼는 것이지만

火神이 열렬한 마왕같아도

무지개빛 세모시를 짜고 입고 다닌다면

허공 또한 누에고치만 뚝뚝 떨어지는 것이요

우박처럼 뚝뚝 떨어지는 것이라

겨울잠 색소 한 마리 깨어날 때

수증기 한 알에도 바다와 같은 것이지만

이 것 또한 此岸의 세계

번데기가 나비가 되었을 때

더 이상 팽창이 멈춘 다 큰 귀로의 반환점

이 것이 안으로 접은 그림자의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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