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조의 몸뚱이는 제 붉은 머리로 빠져 나갔다
돌산 자갈밭인들 어떠리
지(枝)네라고
지(枝)네라고
지네로도 머리에 봄꽃을 본 듯 붉을
아! 나아감마다 노 젓는 물결의 다리
저 낙조의 긴 몸뚱이의 전진
지네발
기어코 석양은 머리에 얹은
밤의 적막에 닫혀도
낙조의 몸뚱이는 제 붉은 머리로 빠져 나가는
노고지리는 풀잎이 떡잎일 때 날개를 퍼덕였느니
가지가
가지라 하나
풀도 빳빳함이 제격인 듯이
그 중에도 가지라고 하니
앞뒤 안 재고 제 크기만 자랑이니
나무도 제 굵기에 앞서
아! 꽃이 나팔을 열었으니
잎은 음정 구멍을 내야겠을
피리 구멍으로 제 속살의 음정을 뱉음에
봄꽃이 나팔을 열 때부터
음조의 날개를 타고 나오는 잎새
어쩐지 늙어 뼈마디에 바람이 숭숭 분다더니
바람 대신에 크는
계절을 넘어서도
목에 넘어가지 않는 불멸의 음정같이
목이 길어진 만큼의 녹용같음을 터트리는
결국 떡잎으로 완성도인 것을
다시 과일이라는 날 日字를 받아
겨우 한 몸을 이룰 때
다시 날개를 다는 기회라는 것으로
아! 새는 그 새 알을 깨고 날아갔는가
노고지리는 하늘 높은 곳에서 소리만 드릴 뿐
손도 여러 손가락의 가위 입으로 톱이느니
손톱이 큰다
그래!
어쩜 우리의 손은
심연에서 밀려오는 손질로 톱인 것
저 호수에 모래톱은
물결의 거품을 가라앉히며 톱이듯
한 손가락으로는 톱이 될 수 없는
여러 손가락의 가위 벌린 입
마치 게가 한 폭으로 가늠하는 듯
늘 제단과 부딪치는 가위를 든 듯
허나 앞으로는 베지 않고
옆으로나 톱날을 켜는
안개꽃은 온 걸음같지 않음에
아! 푸르디푸른 신록이여!
안개꽃 입술보다 못하다 한들
아침에 말려올라감에
어떻게 다 안다고 논할 수 있으리
잔물결같은 잔듸에 일어섰다 가듯이
아득히 먼
저 우주적 만남이나 작은 곰자리처럼 모인 듯이
입을 연 듯 만 듯
허나 이슬 총총한 뽀송함을 알겠을
人文과 人門
우리가 일반적 학문에는 人文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동양철학 상으로는 人門이라고 많이 쓴다
왜냐하면 人文 즉
자신의 말이 곧 인간으로서 하는 것이라는 것
그 것으로 남의 말을 차용해도 인간의 내용이라는 것
다만 人門이라고 하였음은
인간이 즉 門이라는 발상인데
이는 곧 몸에 있어 세포의 문과 같다고 봐야 함인데
주역에서 여섯 개의 爻에서 떼어지면
그 단사(彖辭)의 像에 어느 경혈의 위치에서 발동하는가와 같은데
즉 비유하자면 4 개의 수소로 헬륨의 사물로 융합되기 전에
3과 3의 양등분으로 융합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인데
이 것은 周易의 상하괘를 이룬 모양새를 말함인데
이는 즉 4로서 헬륨이 이뤄진 포장 이전의 삼 까지로 머문 것은
재차 3을 이루어 상하 쾌를 이룬 막대 자석을 형성함과 같은 것인데
이는 헬륨 이상의 물적 구성과는
다른 차원의 힘의 발란스 갖춤과 같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돌아오는 것은 유구무언이다
모든 법칙은 깊이 따질 수 있는 것에
길고도 긴 것이지만
그렇게 물리기게
인간에게 돌아 오는 것은 유구무언이다
일례로
왜 남에게 베풀기만 했는데
악으로 돌아온 것이냐에
그 건 베풀었다는 량보다
동화되었다는 질량의 법칙에서 보는 것인데
우리가 아무리 상대보다 몇 배의 고생을 했더라도
현재의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인생은 유구 무언이라고 철저히 할 수 있을 때
그 자는 끝까지 가본 자다
그 때서야 제 행위의 가치가 어떻게 지고 오는가를 본 자다
선악이 없다는 개념
선악이 있다는 개념
없다는 개념으로 보면
인과의 작용으로 다 제하고 본다 할지라도
그로 끝나지 않음에는
약자보다는 강자의 인과적 합리가 나으니
약자는 그대로 억울하고
있다는 개념으로 보면
방관과 어리석음의 반영에 있기도 한 것이다
ㅇ을 넘으면 두 겹이 이는
나무가 5로 가면 옻인 된다
뱃길을 도라고 할 때
배에 세우는 것은 돛이다
바다를 다라고 할 때
배에 올리는 것은 닻이다
마음이라면 닦는 음을 찾아야
마음이 귀를 기울이면
닦는 음이 난다는 것
독수리의 눈으로 보면
도망가는 토끼의 걸음이야
시계의 눈금차와 같은 각도로
시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지만
굳이 독수리가 잡아 먹는 것에 기울지 않고
물어다 옮겨 놓는다고 할지라도
토끼의 운명은 시각의 눈금이라고
얘기 되기에 이를 것이다
또한 경험많은 토끼는
이미 나가면 그 시계의 눈 밖일 수 없다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참 치졸하느니
면벽해 죽어버리고 말지 가봐야 몇 발짝
그러다 보니 도리어 가는 길이 보이는 판이니
이 건 독수리의 눈보다 훨씬 먼 곳에서
더 가까운 듯이 당겨보니
어쩐지 조 앞의 것을 피했다고 했더니
저 멀리도 있었던 것이 보고 기다렸다니
時刻 속에 視覺이 그러하다 하는구나
새가 집을 바꾸듯 새집은
새집과 헌집의 차이 나는 거리는 얼마인가
삶이 뭔가에
알 하나 툭 던져 놓고
인간을 사이에 두고 날아 오르는 아지랑이같아도
새이듯 새겨들을 집이듯
헌집은
바다로 다 헐어 놓고 보니
달과 별이 심어질 자리는 많아
다시 꿈을 꾸는 자리일 것같은
아집
우리의 일상은 헌신의 집이라
늘 돌아가는 것이니
헌집이 되어도 때광만큼이나
윤기를 머금고 그 바다로 빠진 듯이 떠난
장판 때인들 집이 아니리
집 없는 유랑객인들
전생의 광나루에
그 헌집을 지나치게 부둥키다 보아
걸음만 남은 중에도 아집이 된
다 전생의 헌집 새집 만들어 챙겨가고
검은 됫마루 벽 너머에도
그 집인 듯 묶아가며 사는 아집인지도
수리(數理)로서의 결정체
1水은 수소 한 알의 시발점
2 火는 두 개가 부딪치면 불이 난다 것
3木은 천지 간에는 나무가 있으면
태풍의 눈처럼 문이 나는 것이요
4 金은 수소적 알맹이가 네 개 모이면
그 때부터 금속적 집합체를 ?이요
5 토면 여러 모양의 결정체로 보임이 있다는 것이다
동질감에도
소림사의 무술 파워나
대한민국 절의 돈 파워나
기본적으로 힘이 있어어야 한다는 논리이나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나지 않았듯
그 맑음과 혼탁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이다
머리가 접혀 폐라는 도장집이 되는 형태
우리에게 목이라 함은
목젓에서 날은 새가
혀의 점에 앉았다 떠오르는 것인데
본래 머리가 물 속으로 꺾인 듯이 함에
폐인 것이다
즉 머리는 폐가 고개를 든 것이다
위장인 땅에 목에서 다시 꺾인 하늘인 폐인 것인데
마치 지편선에 대지와 하늘이 합께 옮과 같다
다만 이 것을 수평선 위라고 볼 때는
폐를 수령선 위의 하늘이라는 것도 되는데
이 또한 고개를 든 머리 쪽이 있다는 것이리라
안과 밖
밥같은 안(眼)과
바로서 밥이 되지 않은 밖과
왜 안쪽을 눈 안으로 하였는가는
밥 한 알에도 눈이 있어
홍채가 밭의 토양이 듯 받는데
바가 밥으로 들면 안과요
바가 꺼풀 낀 까스러기로 닫으면
바의 ㄲ을 붙여 밖이지 않은가
날금
왜 시각이라 함이요
일각이라 하지 않음인가?
날로 그은 금이기에
뼈다귀탕 잘 먹었으면 되었지 또 무슨
사랑도 모르는 놈이 사랑글 쓴다고
평상시엔 관심도 없는 듯이 하다가
좀 글이다 싶을 때마다 잘도 알아봐 쌍심지를 켜대니
그럼 그 잘난 사랑 당신들이나 잘 해 먹으라고
난 땅바닥이나 처다보며 개뼈다귀라도 핥아먹으마고
싱싱한 사물마져 향기라 하지 않고
건재로나마 뼈다귀인 냥 향이나 맡을까 하니
한 첩 한 첩
그래도 보약같기도 해 한 재인가 함에
그 것마져 푹푹 고아 진물을 다 빼먹고서
나더러 아직 탕 찌꺼기 덜 빠진 듯이 해대네
초점
가장 가까이 보려면
시분침이 있는 커다란 벽시계 눈이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멀리서 보자면
반달 눈이면 눈금이 다 차는 것이요
그리고 좀 더 멀리서 보자면
실눈만 뜬 듯 반의 반인 눈금만 차도
다 들어 오리니
아! 푸른 눈에 쌍거풀을 열고
검은 눈에 눈꼬리가 별미
줄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대화를 하든
글을 쓰든
일상적 위안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뭔 별난 계급이 있는 냥
같이 받들어 준다는 것에서의 수준이라는 것으로
대우받으려 함도 괜한 힘 빼는 것도 같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 오히려 그 힘을 덜고져 해도
아예 고개조차 처들지 말아라 하니
허나 스스로 소화해 뛰어 넘고져 해도
피눈물 나는 고행을 스스로 안은 꼴이 되지 않았는가
한 생으로 다 안고 갈 수 없어 수 십 번을 죽어 가는 길을
한 번도 안 죽고 가겠다고 하니
도리어 수 백 수 천 번을 밀림을 모르고 살려고 하니
번뇌는 도리어 커져만 가고 있구나
원죄라면
인간이 착하고 선한 이상으로 벌을 주어야 한다면
그 것은 자신의 종아리에 매를 대어야 하는 것이지
자식에게 매를 휘두르지는 못 하리라
어차피 업이 남아 더 최악이 될 수 있다 해도
착하고 선한 것보다 더 부추길 것은 또 무엇인가
부모
부자가 천국 가기가
낙타가 바늘 구멍을 나가기보다 힘들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이 세상에 다시 오기도
하늘에 별따기만큼 힘드는 것이니
저 黃鶴이 알을 낳으니
물 한 방울 샐 틈 없는,
희열 또한 넘침이나 눈물의 고단함
아!
알아
알아
알으려무나
모르겠다는 소리는 말아라
네 부모는 네 바라는 데로 만났느니
새끼줄
은하수라 했던가
빛은 제 진공성으로
물 위에 꽃처럼 떠 다니는지도
우주는 바람에 꽃이 흩날리는 것과 같고
주역의 삼백 팔십 사 효는
아직 원자량이 다 차질 않아 오케스트라임을 모른다
여덟 발자국으로 접고 접고
그리 접고 보니
ㄱ이 ㅋ으로 나고
ㄷ이 ㅌ으로 나고
ㅇ이 ㅎ으로 나고
한 주기 더 보태도
어찌 그리 한 씨족인지
8 坤地은 方이라 했는 바
어찌 그리 정갈하게 포갰는지
빛이 일으킨 바
꽃이 당겨 온 바
나선 형으로 당겨진 나무는
무엇으로 쓰고져 했음인지
원소적 요소와 행정적 구성력
우리가 民과 官과의 관계에서
Emery & Trist의
<조직환경 중 계층적 조직과 과학적관리론>에 비추어보면
①이 평온 무작위적 환경이란 것이니
즉 그 하나의 에너지로 보아 매우 유동성이 있는 것
물과 같이 흘러도 맑은 냇물과 같아 水로 함이요
②는 평온 집합적 환경이라는 것이니
마치 부엌 아궁이는 여러 연료를 섞어도
자연에서의 장작적 분리상의 경계 정도로 발상을 일으키는 곳
여기는 불이 합하듯 열기가 있는 곳이라 火의 적절성이요
③은 교란·반응적 환경이라 함에
문어발식이 일어나며
꺾꽂이를 해도 생명력을 가진 경우라 나무와 같은 성질을 띠고
④는 소용돌이의 장이라 함이니
이 것이 가장 제어하기 힘든 핵융합적 에너지를 붓는 것인데
그 균열성은 겉잡을 수 없게 되는 무게로 해서 金이라 함이라
⑤는 전문·과학적 환경을 말함인데
이 건 학술적 강당과 같이
논리적 수용을 하며 심는 논과 같은 것이라 土라고 하는 것이다
선천성과 후천성의 수리적 관계
인간으로서 후천적 마음의 數理를 이룸으로
육감의 성정을 띠게 한다면
이와 병행으로 선천성은 영혼이라고 할 때
이 사물적, 융합적인 수적 개체가 후천성으로 두어져
선천성의 영적 거울을 이루는 수리에 담겨 함께 하는 뜻이라면
하나이면서
그 각각의 이동성에도 서로 톱니가 맞물리지 않는다 라고 볼 때
즉 후천수 四가 원소이 足로서 金이요
그 것이 선천괘 수 7 즉 주기율 艮山에서 붕괴될 때
각각이 어떻게 권역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의 유추도 주목해야 하며
先天域의 四는 震雷인데
영적 성분의 천둥을 이루어도
거울로서의 깊이를 그릇으로 이룬
굳이 마음이라 칭할 수 있는 쪽이기에
천둥 후
금속적 알맹이가 무너지듯
자갈 흘러내리는 듯이 나는 소리란 것도
다 이 허공 또한 洞空의 벽이 무너지며 흘러내리는
물질성의 움직임이 담겨져 있음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한 몸에 세포들이 모양을 다 따르는 듯이
우리가 성격을 8진법까지 낸다고 할 때
9진법으로 손바닥으로 하고
십진법으로 우리의 가슴에 다달아
만물의 영장으로서 다룰 수 있게 함에
이 나름의 성립되는 논리로
5를 5진법 소산물로 오행의 생체로 친다면
이 것이 후천적 실용과 현존의 염두를 갖고
관성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면
6진법은
마치 허공에서 내려오는
두레박적 접근의 선천성이라고 할 수 있는 바라
이 것이 서로 함께 하는 것이라면
마치 전기와 전자 간으로 마주하며 채워지는 것인지
병행하며 가는 것인지도 규명되야 할 일인데
여기에는 12 달을 서로 양분해서
합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곧 태양과 달의 역할이 따로 있는 듯
두 개를 빼고 나면 남은
열 개의 양날개로 해서오진법적 오행으로 하는데
마치 사람이 태어난 그 때 그 자리로서 한 살로 치듯
원소 주기율에 허공으로 되는 9에서
접히는 것으로 해서 1로 할 때
우리가 셈법에서 열에 열 것이 아니고
그냥 바닥인 九인 門版
즉 10을 돔구장으로 한다면
9를 노천 구장으로 하듯이
그 손바닥에서 逆順으로 셈하다보면
四에서 머물고 더 이상 나아가질 않는다
이 건 열두 달의 반으로 음양을 나눈 6으로
끝맺음을 봐야 하는
여섯번째 이르면 4에 머무는데
즉 4을 넘기기에는 다른 벽과 같다는 것이 있고
또한 陽의 極인 九에서 여섯 단계의 에너지를 소모해야
4인 陰의 極이라는 것에 다다른다는 것과 같다
참 이상한 것은 오행에 달 주기율이 합하여 6인 것인데
거기에 또 한 살을 더한 듯이 태양의 공전 주기를 더하면
7은 6의 밖
즉 태양계의 허공 중에 접힌다고 공휴일을 함과도 같다
이 건 마치 무지개를 수직으로 꿰는 겹의 수리 놓음과 같음인데
이는 그 공간 사이가
원소 1 주기율의 수소와 헬륨 간의 공간이라고 봐야 하는데
즉 1과 8 사이의
이 여섯 개의 징검다리는 건너는 것에 있다는 것과 같다
삼과 사
삶은 三이다
삼은 인물적인 포용성을 갖추고
어떻게 독립할 수 있는냐의 정한(情限)
死는 四다
원자학과 금석학적으로 풀어야 하는데
그 집합성을 극명하게 보여줌이다
그 자체로는 선악이 아니지만
분명 어떤 조직 상에 성깔을 보여주는
무슨 대기하는 사물함과 같은
왜 우리는 마음을 가슴에 있다고 하는가
왜 우리는 마음이 가슴에 있다고 하는가
불은 불을 끌어다 쓰고
물은 물을 끌어다 쓰고
나무는 나무를 끌어다 쓴다
이와 같이
마음도 마음을 끌어다 쓴다
물결 속에 불이 각기 흘러도
분명 물이 불을 가져 감이 있고
불은 물을 가져감이 있다
이는 마치 수리학적으로 보자면
불은 9진법으로 당겨감이 있고
물은 6진법으로 당겨감이 있어
제 스스로의 진법적 구조를 다 이루어도
하등의 서로가 의식이 없는,
다만 외견 상 함께 있을 뿐인 듯이 보인다는 이치이다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
바위는 그 모양이 어떤 자연성이든
바의 묶은 바가 뭉쳐진 생각
바의 위
명사형(名辭形)
위치 에너지
망부석보다 더 간절한 길의
저 해를 따라 가버린 사랑
우리의 사랑은 그믐에도 환한 사랑이었다
길은 오직 낙조길
저 완도의 기적과 같은 바닷길을
지네가 거죽 갑옷을 입고 속을 채우며 기어가는 길
바위가 몽돌을 낳을 때
몽돌은 물고기로 다 빠져 나간 영혼과 같은 것
뼈대 있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물과 같은 살을 발리고 나면
世世 화석총에 모인다고 한들
머리와 뼈는 낙조가 지나간 바다 라고 할
동사(動辭)기부스形
운동 에너지
사는 이치가 내 집 차버리고 마음 편한 집이 있든가
세상 사람들아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어데가 좋다 좋다 해도 내 집만큼 좋으리
아무지 주인이 인심이 좋아
구중 궁궐처럼 꾸미고 칙사 대접을 한다 한들
그 집이 초상집이면 어데 마음 편히 둘 수 있음이든가
손톱은 독립적 칩이다
손의 생명선이라는 것이
피차 간에 넘지 말라는 것에
들락날락 눈치보는 보붓상 같아도
물에 공기방울같이
밤에 꿈길같이 드나들어도 칼로 물 베기듯이
생명력을 강을 이룬 것이요
감정선 두뇌선이라한 들
이도 다 상하로 보면
잘 거두고 잘 억제할 수 있도록 한 끈같은,
아! 운명선, 태양선이여!
가물 때 고랑이라도 파야 하는 것이라고
말은 쉬운 듯 하나
넉넉할 때도 못 하던 것이
막상 어려울 때 남는 것이 시간이라
여유를 잡아 노력한다는 것이
살림살이는 그대로 둔다든가
두 끼를 한 끼로
노력은 두 배로 개척해야 하는 법칙을 이해해야 하는 인내로
차고 나감인 것일진데
겨우 하루 잘 넘기면 다행인 운발인 것에
극한에 더 극한을 이열치열해야 하는 것으로
잘 나갈 때보다야 굳이 나일 수 밖에 없는 것에
그저 한 가지끝의 나라는 것으로서의 저장성이나 제대로 야문지
손톱
칩
한생으로 연 응전의 순간에도 다시 끼울 것이요
사랑의 영원성에도 다시 끼울 것이니
근본성
그댄 드러난 선행을 많이 하였으니
그 행대로 복을 받으리라
허나 또한 깊은 저주를 버리지 못 했으니
그 뿌리와 함께 사라지리라
손톱! 결코 앞뒤로 무례치는 않으리라
파도가 손가락으로 모래밭에 집어 넣는다
빠져나올 때는 무십히 빠져 나오는 듯이 하지만
쏴~ 하고 씻기우는 맛은 결코 가슴이 없다고도 못할
심해의 정제
소가 언덕을 비벼대는 시원함과 같기도 하다
왠지 파도가 손가락을 뺄 때마다
따라오는 돌멩이
다시 오면 기다림인 냥 그 자리에서
따라 가는 듯이 따라 오는 듯이
화석이 묻혀진 자리 위
뼈까지 지우지 못한 삶
떡두꺼비 같은 미끈함으로 얼뚱한 눈
결국 파도는 돌멩이를 자식으로 삼았다
결국 파도는 돌멩이를 손톱으로 끼웠다
그리고 말했다
넌 내 운명의 마지막까지 이어 받을 것이라고
면경(面境)
불전(佛傳)에
천이통(天耳通)이 100이면 천안통(天眼通)은 50이라고 했는데
머리통을 하나라고 했을 때
그 갈라진 계곡일 때 못이라고 2澤이라 함인데
이는 고인 물에 비쳐짐에서가 아니라
틈 속의 갈라진 양면에서 비쳐져 심어진 것이
두 개씩으로 붙는 바라
막상 더 벌어져도 천안통은 너무 붙어 있어 50이요
천이통은 우주를 가로질러 꿰차기에 100이라 함이라
그래서 子인 水에서 亥인 水까지 통했음이 乾天이요
또한 수소 하나만으로 天通이 깃들음을 의미함이다
무정란과 유정란
열 손가락을 짝을 맞춰
오행의 손바닥인 것은 좋았는데
달이 열두 지지(地支)를 돌아야 하니
늘 두 개가 虛하다
그 허한 것을 어떻게 두었느냐 하면
子가 정충(精蟲)이면 축(丑)으로 합하여
한 겨울에 땅이 단단히 물의 윤기로 얼려
고환(睾丸)이 됨과 같은데
이는 제대로 머리가 되지 못한 동물적 차원의
형상을 띤 것이고
남자의 거름밭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이 것은 도리어 남자의 陽이
대지의 음을 빌려 도사리는 기운인 것과 같고
이에 비해 여자는 어떠한가
곧 오(午)는 태양
미(未)는 달인데
달은 불모지라 아닐 未라 하여 합의 의미는 없다
여자는 이 未를 내보내는 달거리와 함께 하는데
여긴 태양 午와 합한 붉은 노을을 쏟는다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지는 것은
子丑 合이면 어깨 아래가 발달한 딱정벌레 정도라는 것이요
午未 合이면 그렇게 수박덩이같은 머리라는 것인데
이것이 함께 붙은 우주적 구성체가 우리의 몸이라는 것이다
능청스러운 뒤태를 보자니
대꾸도 안 하고
상대하기도 싫다고 하면서
내 모래알들에 지나는 그대들은 무었인가
앞으로가나
뒤로 가나
언어가 정교해지는구나
그대인 바의 대지
내 모래밭에는
종아리만 하예도 좋았다
더 이상 걷어붙여
비키니를 얘기하자면
먹이 딸리는 얘기라고
허벅지가 검은 것은 당연
가도 가도 모를 허벅지
허나 그대 흰 살결에도
검버섯같은 이야기가 필 때
왠지 멍울처럼 돌았던 것같은 이해
갑자기 허연 꽃가루가
누른 액체가 된듯이
꿀벅지란 말이 나오기까지
굳이 그러지 않아도
그대 걷어붙인 바지에
종아리만 하예도 좋았다
우리가 희다는 것은
우리가 희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 앞에 바스러지고 싶다는 것이다
저 흰 구름도 설산도
다 무너져 내리는 형상
그 사이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번개의 꿈을 꾸고 또 꽃을 피우지만
그래도 우리가 희다는 것은
냉정하고 차가울 정도로
아직도 그대 앞에 바스러지지 않는
찰나의 석류알인 것이다
참꽃처럼 희석식
겨울날에도
노을과 다름 없이 철쭉꽃
윤회란 것에도
철죽이 붙은 듯이
누가 묻지 않았는데도
알콜 순도 100인 듯
잠시 스침만같은 데도
노을은 순간 비져든 틈같다가
검게 타고나 말을
그래도 참되다 함은
참꽃처럼 희석식
철이 철을 잡아 까맣게
노을처럼 태우지 말아야 할
장고도 못해 본 삶들
아! 하늘 아래 철쭉꽃은
계절이 돌아오듯
거기에 역사라고 화석마져 우려
색의 농도를 먹일 때
핏방울 찍어내듯 생명의 빛
지하를 머금은 굴림체로서 돌아오는가 하면
하늘 너머까지 이르렀다 온 듯 참꽃은
제 담백함으로
살다
살다
어쩜 많이도 비우라고도 했을 늙음
지지리도 오래 살았을 늙음에
어쩜 맹물같은 하늘에
빈 그대로 얹어 놓았다 온 정안수같이
어쩜 연분홍이어야 참됨이었듯 함께 핀
웃실의 역사와 아랫실의 역사를 함께 하게 하는 것
물비늘이 인다
물비늘이 인다
어떻게 함축하려 한 것일까
지상엔 상아로 하얗고
바다 속엔 거죽으로 하얗다
제지 공장같은 공업화된 학문
이도 다 닥나무 제 가죽으로 채운 것
종이와 함께
다시 바다에 풀린 같은 것에
제 몸뚱이로 다시 부활할 듯 다시 하얘질 때
어둠은 먹물처럼 더욱 진하여 질 수 밝에 없는
어쩜 우린 참 많이도 글 많았던
물비늘이 인다
같은 색이 모이면 진하니
진하다는 것은 수직적인 요동이 있다
같은 파장의 접수는
마치 수직 기둥을 높이는 눈금과 같기에
절로 뛰어야 하나보다
다만 끈끈하기에 파도와 같을 뿐의
허나 우리의 의식은 물결처럼 지나도
눈금 밖일 수 없음에도 자의식은 없듯
또한 시간이 아닌 듯
다만 다른 색이 만다면
배합성으로 퍼져나아감이 있는 의식의
우린 이것을 시간이라고 한다
뜻으로 전하는 것과 말로서 전하는 의미
우리에게 보통 우러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모든 인연은 나에게서 발현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天으로서의 사물로서의 진법
人으로서의 사물로서의 진법
地로서의 사물로서의 진법이
마치 빛이 이 세 가지를 다 투과해야
반사든 굴절이든 반응판이 있다는 것인데
이 법리를 가장 잘 활용한 내용이
土亭 이지함 선생님의 월영도(月影圖)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심리학적 궤도의 성정성적 수리
즉 현황
그리고 심령학적 궤도의 성정성적 수리
즉 시공
그리도 숙명적 더께의 성정적 수리
즉 계절을
마치 재봉틀에 바늘이 통과한 듯
하나의 모눈을 이야기할 수 있음과 같은 것이다
몽당웅덩이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흙탕물을 튀기기도 하지만
차라리 꾸지람에 나 죽었읍네 하고보면
상처인가 싶기도 하고
겸손이다 싶기도 하고
부지불식간이다 싶기도 한 것에
몽당웅덩이가 투명하게 사는 법인 듯
밑바탕이 되어 있음과 같고
또한 긴 연필을 끌어다 쓸 듯
고개를 들어보는 것과 같은
되레 필통이 갈길이 없다 함도 이상하구나
어언 간(語言 間)
붓이 자꾸 아래로 내려오는 것은 침묵인 것이다
그 침묵은 바다와 같아 고래배가 된다
침묵의 것이라로 삼켜간다
물줄기 분수라고 난을 피운다
우린 이 걸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語라 하는 것이니
나 吾라는 것이
배에서부터 더 이상 나아간 것도 없다
허나 또한 말을 달리고자 함에
말은 꽃망울에서 터져야 말인 것이라
성질 급한 것이 먼저 뛰어 오르는 법인가
바탕색이 하늘이라
젓이 살은가 하니
아! 목청이라고
나무는 길게 천둥가지를 벌려 놓고
말의 발다닥으로 불쑥 달리게 하는 言이라는 것
젓떨기가 문풍지 떨기처럼 처연해도
오선 상 이상은 아닌 색계
불어 장구해도
탑 기단의 층 이상도 아닌 듯
어쩜 얇은 그림자 필름을 떼고도 남는 듯이
퉁소
대나무도 세 마디만 되면
고요 속에도 퉁명하기도 하지
마디가 없었으면
이미 무지개처럼 엎어지고 남을 것이
먼저 땅으로 엎어지는 파랑은
자꾸 엎어지게 해 노랑이 꼿꼿이 서는
한 눈금 더 오른다는 것은
한 지붕 더 내려 앉는다는 것
나무가 섰음에
무지개로 넝쿨발이 되지 않는
그 단계적 예행 연습이
단숨의 나무로 뛰어넘어 간
나무가 나무로서만 제 조상을 아는 듯
지붕을 받쳐 든 기운을 아는 듯
우린 마디 마디
대나무가 나무가 되지 못한 숨을 쉬고 있다
아예 세 마디 퉁소로 DNA를 끌어낸다고나 할까
이만큼이나 퉁명스러움이 있다
역시 풀은 빳빳해야
세상사
동서가 아니어도
음양이 아니어도
암수캐 발정난 것보다야
한결 부드럽게 사는 것이
함께 붙어 있는 것이라고
꼿꼿한 것이
제 명함은 부들이라고
曲解되지 않고
꺾이지 않고
바로 설명되는 것이
이 一直 선상에도 정력이 좋아야 한다고
조루 심한 푸른 정충(精蟲)은
먼저 포물선을 그으며 땅으로 휘고
그래도 대궁의 궁리다가
늦게나마 누렇게 부러질 것 같으면
억새 줄기같이 남을 속내를 잡았을 때
꽃은 그 끝에서 쏟아내니
역시 풀은 빳빳함을 다했을 대
색은 그 精蟲을 다했음이라
왜 피아노는 반음의 이빨이 두드러졌는가
사랑! 그 것
심장이 두근반 세근반 아니면 사랑이 아니지
그 것 반음조라는 것이 슬픈 것이라서
애닯은 듯 기쁜 것이라서
세상 모든 위안도 함께 하는 것이라서
우린 주사위놀이에 던져진 순간보다야 길게 왔다
주사위를 던진다는 것은
나무 한 그루를 키운 것과 같은데
주역의 澤山咸卦는
발끝에서 머리끝까지의 감응이 여섯 단계지만
이를 반으로 접어 색깔론으로 보자면
파랑색은 팔다리로서의 감응이요
노랑색은 배로서의 감응이요
붉은 색은 심장으로서의 감응이라
이는 곧 바람이 심장의 꽃으로 붉으려면
핏줄이 풀줄기로 일어나야 함이라
만화식
돌을 던져 잣나무에 맞으면
탁! 하고 물수제비 이는 문양을 속에
글을 넣는 만화의 글 테두리
탁!이라는 글을 한 돌멩이인 냥
동그라미 치고도 넣을 수 있음에
나무 기둥에 번개가 일 듯이 보이기도 하는,
다만 나란 놈이 던지고 보면
잣나무에는 맞지 않고 땅바닥에 떨어져도
둔탁하게 탁!이어도
탁!은 땅바닥에서 일어나는 것일 뿐인,
오히려 저 땅바닥의 물수제비가
아래 위로 뻗으면 잣나무일 뿐의
그냥 자! 하고 건네주면 자일 뿐인 것
던져
땅으로 미친 것은 뿌리요 위로는 가지일
순간 둥근 방울의 일어난 모양이란 것이
나무일 뿐인 것
꽤나 줄기의 교태로 자라는 놈이듯 할 뿐의,
이에
모든 것에는 여울의 울타리가 조여옴이 있으니
어딘가로 해서 압축이 일어나는,
과연 이를 두고 무엇이라 함인가
그저 자일 뿐인 것을 쐐기 박아 잣나무일 뿐이 것
달팽이
주기율이란 면경의 규소알같은 조직성을 말하는데
이 건 마치 피부의 경락이 오장에 연결되어 있음과 같이 한다
그런데 거울은 像을 소화지만
엄밀히 따지면 주기율과 族은 행위를 응집화 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건 마치 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무게가 너무 실리면
서로 간에 번갈아감이 있어도
늘 그 속성을 쇄신 못 하는 것과 같이
가라앉는 측면과 같이 응고되듯
요소화된 물성을 띤 유기성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음과도 같다
즉 거울로서 비추어 이렇니 저렇니 하는 것보다
매우 대우주적 행위와 소우주적 물적 기관의 축적이
자연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달팽이란 달이 도는 팽이인 것이다
즉 인간이 아집이 아니라 조직적 집단이라는 것으로도
달팽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오장 육부란 것이
결코 개인적 성향으로만 우주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옛 고승의 일화에
그 國師가 죽음에 다달았을 때
그 연유가 전생에 마당을 쓸다가 돌멩이를 걷어 던졌는데
그 돌멩이에 두꺼비가 맞아 죽어
그 현생이 지금의 황제와 만나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런 화이트홀적 인연몰이나
두꺼비가 된 블랙혹적 인연몰이나
다 달팽이적 회오리와 같은 바니
인간들아!
그대들의 후생적 달팽이는 착착
원소주기율적 말초에 오장으로 경락을 달았구나
무게
사람마다 그 분야에 무게를 갖추어 출세를 하기마련인데
특히 목소리도 중요한 바라
그 하나만의 복성을 띄든가
압도감을 갖든가 하는 것으로
굳이 음악적 보조키가 아니더라도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기도 하는 것인데
이 건 마치 목청 하나에도
땅 속 깊숙한 금맥을 울리는 듯이 함과 같다고나 할까
또한 그 것으로 더 큰 사회적 지배력을 가지려는 자가 많으니
그래도 얼굴보다야 내면적 힘으로 여겨지기도 하나
이 바람같이 몰려다니는 귀라는 것이
명산 절경에 우루루 사람이 많이 몰리는 것에 비하면
탄광 막장에 사람이 몰리는 것과는 한도가 있다는 것이니
이 역시 사람에게도 바람을 모는 데는 관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오히려 비경인 냥
금이 나는 탄광이라도 모서리에 기웃거리게 하면 모를까
서로 함께 하기에는 모양새가 이상한 것이다
아전인수격으로 보자면
중국이 아전인수격으로 보자면
그 생김새가 낙타가 앉아 있는 모양인데
이 한반도가 어찌 턱수염이 되었는지
자르지는 못 하고 스다듬어야 할 것이다
팔자! 그 것 억지도 아니다
우리가 일상 하는 말로 팔자는 못 바꾼다는 하지만
어찌보면 억지로 팔자로 몰아 넣은 것도 못 된다
즉 팔자는 밥상이다
다섯 가지 영양분이 듬뿍 든 밥상이다
문제는 편식이다
분명 편식으로 기울어진 밥상인 것이다
그리고 식탁에 의자 다섯 개를 놓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앉으라고 한 것이다
그 다섯 가지 의자에는
네가 베푼 것을 선택하겠느냐
네게 베푼 것을 선택하겠느냐
아니면 네가 지배한 것을 선택하겠느냐
네가 지배 받은 것을 선택하겠느냐
아니면 서로 친했던 벗을 선택하겠느냐
네가 네 자신을 선택할 수 있도
상대적인 것을 네 것으로 선택할 수 있다
다만 무엇이든
네가 기울인 바대로 비중을 둔 것이다
네 원한을 더 선택해도 좋고
상대의 원한을 네가 선택해도 좋다
허나 그 식탁에 올려진 음식은 달라질 수 없다
왜? 어차피 그대의 수확물이기에
무엇을 선택하든 발란스가 깨지면 소멸하리라
왜 풍성한 식탁을 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콩나물 모자
콩나물 정도에 모자를 벗긴다는 것은
마음을 일으킨다는 차원보다
마음을 본다는 차원으로 나무가 자람과 같기에
굳이 마음에 비추어 본다면 나무는 무인 것이다
즉 우리가 그 것을 그린대로 보아
같이 나아가게 하는 인식은 못 되기 때문이다
순간의 콩!보다
순간의 보자기를 씌운 다는 것
그래야 그 굴레 상의 대증을 본다는 것의 의미는
마치 땀구멍을 두되
그 통과성으로 다 보겠다는 기회인 것인데
이 것으로 왜 마음을 먹는다로 표현했느냐의 이유인 것으로
마음은 어떠한 결과든
그 경계를 함축할 수 있어야 함에 있어서
콩나물도 머리에 모자를 쓴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반디를 위한
비올라를 두고
비올라 로 하면
저 구름도 물컹물컹하다
가는 현마져 다 녹이고 내려올라나
아! 첼로, 바이올린
그래!
이 땅의 무게이면 더블이라고 더블베이스조차
다 딱정벌레과
저 해와 달의 머리를 붙이지 못 해도
어쩜 이 감동의 리듬결을
그들만의 어깨만으로 일어 날 수 있는 것
날개일 수 있는 것
개똥밭에 굴러도 반딧불이같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상식에 준하는 그릇이란
운이란 말도 실력 안에서의 수치이지
실력도 안 되는 것으로 어깃장을 놓지는 마라
그 건 운을 모독하는 것이요
인생의 그릇을 논할 자격이 없는 자다
그 건 스스로
애비를 버린 것이요 어미를 버린 짓이니
더 나은 세계가 있다고 꿈도 꾸지 마라
콩 박자
콩나물 대가리라고 하나
엄밀히 보자면 대가리라기보다는
머리 위로 두 손이 먼저 나온 합장 기도인 것이다
먼저 그 것이 벌려지면 떡잎이요
이에 다시 목이 나와야 머리인 것이니
여기서 부터는 가지가 난방(亂方)을 이루어 나갈 것이나
그냥 머리로서 온전하게 잔기운을 빼는 머리칼만 자란다
아직도 우리의 양두엽(兩頭葉)은 콩나물 대가리인 것이니
이 것이 떡잎이 될 때 피안에 날개가 되어 있을
이무기도 못 보았다
이무기도 못 되면서 도인 행세를 하자니
도리어 길이무기가 배만 크구나
오여름 장마에 벼가 녹듯 녹을 것이
꼰대 서 있는 양물은 되는 것이라고
주저 않을 듯 버티기는 하건마는
세우기는 날고기 비린내같은 것을 풍기는
어쩐지 인생 유머조차 다시물로 나오기 어렵겠구나
벼리
하루를 날이라 함에는
한 해를 벼리라 함과 같은데
벼리란 그물을 잡은 손끝을 말한다
그리고 돌아온다는 뜻
즉 乾金은 둥글다는 의미로서 돌아온다는 것
또한 갈아서 그 틈을 연 듯이 보자면
허공이 선 냥
하늘이 열린 듯이 보이게 되는 데
어쩜 보는 자의 눈틈 사이의 벼리라고 봐야 할
집중과 같은
다만 칼날의 벼리가 선 것이라
마치 누대(樓臺)에 거울이 선 것같기에
하늘이라 아니 하고 하루라 함이다
이 건 그물이 손끝으로 뽀쪽해지는 것이나
날을 갈아 뾰쪽해지는 것이나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는 철분냄새가 난다는 것인데
본래 金을 정의라 함에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칼이란 것이 행할 때는
서슬을 퍼렇게 세우고 행하게 되어 있는 것이어서
한 번 행한 것에는 서슬이 눈감지 않는 한 일으키는 것이기에
아무리 선악의 관계로 용도를 설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것이 정의가 아닐 때는
마치 시계 붕알처럼 서로를 오가며 칠 뿐이라는 것이다
즉 현생에는 내가 억울하고
다음 생에는 상대가 억울하고
이런 번복형을 지켜보면서 서슬이 눈감을 때까지
날을 사용한 섭리를 다한다는 것이다
떠벌이
임들께서 나더러 허공떠벌이라고 하나
굳이 의식의 합리성으로 치중했어도 헛된 것이라면
존재의 탐구심마저
허망하게 하는 것이 될까 싶기도 하고...
다만 신의 섭리마져 허공성으로만 매단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교감할 수 있는 기능성을 공유함이 있어야 함이 아니던가
과학자는 그 솔직함으로 존경을 받는다
서구적 학문을 보면
과학성의 철저함으로 신를 부정해도
또한 종교가 그 과학적 우월성을 앞세운다는 것
아이러니칼한 양면성을 갖는 것이나
결국 서로 간에 깊은 상처를 내면서도
병행하는 패턴일 수 밖에 없는 것에는
막상 그렇게 되고 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꼴이 된
그 매우 억지인 면에 까지 변명의 여지를 가져도
상쇄할 논거도 없는 듯이
늘 살아 있는 듯한 미완을 확실하게 해 두고
그 명료성의 바탕으로도
학문적 우위를 내비추는 논리가 방대함으로
상대적 엄두를 압박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그 것으로 동양적 철학을 넘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니
설령 동양철학을 알아간다고 하더라도
엄폐하기 급급한 지경으로 묻히는
사개가 맞지 않는 셩격을 띠는 것이라
차라리 그 엄밀성과 짝짝쿵이 맞아도
은근히 서로 치받혀 주어가며 상생도 좋은 바이기는 하니
구렁이 담 넘어가듯
천기라서 그러니 저러니 변명도 되기도 하고
무난한 편이 된 것에 함께 묻어 두고 살아감에도
이 것 또한 도사림일 뿐 융화라고 할 수 없는 기질성으로 인하여
본래의 과학이란 것이
그 절대적 한계성마져 세월이 지나면 변할 수 있음에도
분명한 것만큼 솔직함이기에 방대한 자유를 얻은 것이기에
널리 사모케 하는 연인의 가슴만큼이나
순결성의 복은 터진 듯이
동반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는 것임에도
우리의 과학자나 수학자란 분들이
그 주어진 맑은 시야마져 스스로 에둘러
너무 추상적 개념으로 옷걸이를 거는 것에 치우쳐
학문적 도출과는 길이 다른 것에 길이 나와
그로 품위마져 생색인 냥 내고 봐야 하니
사회적 혼탁에 여우같이 현혹하기 바쁜
은연 중
제 본분에 폐륜아 같아 보일 수 밖에 없어 안타까울 뿐인 것
복도 진실된 평화로움에 복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꼭 다과(多寡)에 무게를 둘 필요가 없다
多해도 부실한 것보다야
적어도 진실된 가치가
그 영원성의 안도감을 갖춘 것이니
나중이라도
내심 그 가치를 둘러싸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숙명의 틀
우리에게 숙명이라는 것이
그 것이 일방적 루트이기에 가능하리라 여기게 되지만
본래는 사통팔달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무엇에든 DNA라는 라인이 있지만
우리가 숙명성이라고 이어가는 것은
알맹이가 일방성 없이 다 열어둔 곳에
임의적으로 방향성을 맞춰 이어 가기에
숙명이라는 것도 된다는 것이다
곧 알맹이의 접속성에
RNA적 사다리를 놓아 간다는 것인데
만일 일방통행이면
인생의 무늬가 발생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음양이란
음양이란
콩!에 콩인 것에
느낌표 하나에
마치 막대자석 쇳가루 붙은 듯
아령과 같은 것으로
이를 양이라 함이요
이 것을 모래로 감쌀 수 있음에
또한 음이라 함이라
즉 양은 그 마음을 다하는 것이요
음은 그 환경과 조건을 다함이라
산은 산 물은 물 5
딴죽걸이?
그냥 철쭉이로세
참꽃이 참이다 싶음에
산의 이마가 벗겨지 듯이
서리를 파고 든 것에
설산을 타고 내려 오듯
언제나 그 봉오리인 냥 살을
닭의 破字풀이
본래 닭은
닥나무 매질과 같이 풀리는 것인데
닥나무는 채칙이기도 하고 종이이기도 하니
이 것으로 담아야 구름 좋은 석양으로 풀리는 것으로
다시 지상으로 스며들어
다가 따가 되도록 뭉칠 때
닥인 나무가 딱이 정해진 벌레
딱정벌레!
머리가 작다고 하나 소중한 순(筍)이 되는 것
바위에 조차 비바람으로 채칙질을 한 기운
구름으로 둥둥 뜰
종이의 재료마냥 풀고져 함에
벼슬길 구불구불 오른 것은
푸른 스무랭이가 붉은 꿈트랭이로 컸을 때
이미 부적(符籍)처럼 다 탄 노을과 같은 것
빨강
저 빨강이라는 것이
푸른 컵에 빨대가 더 나왔다
물이 강을 건너간다
물이 빨 강을 건너간다
이미 저 빨대를 지났을 때
속은 빈 것이었다
컵도 빈 것이었다
노랑
파랑은 구비가 있고
노랑은 노출이 있구나
호수가 이슬로서의 노출
수 많은 나무와 수풀들의 꽃으로서
꽃가루로 앉힌 것
저 황혼으로
넓은 지평선으로 얼레 감길 때
바람이 말이 되지 못하고 지난 듯
天馬 地馬로 붙어 말이고져 하리니
그래서 어쩜
현생은 파랑(波郞)이 사는 곳
저녁 너머는 노랑(老郞)이 사는 곳
이도 다 땅이 안식이였음에라
검은 물결은 끝끝내
생이라는 물결에
강이라는 건널목으로 만들어 고랑(苦郞)을 내는 곳
세상에서 가잘 빠른 것
가가가가 가가가도 느리구나
나나나나 나나나도 느리구나
각간갇갈 감갑갓도 느리구나
나나다라마바사가 빠르구나
받침이 없으니 로켙풍처럼 빠르구나
무중력에 나 혼자 간다고 빠른 것은 아니구나
相生이된 비단폭으로 물들여 감이 빠름이로구나
축지법은 현생의 두께로는 어려우느니
건망증
삶이
비가 와도 비가 그리운 시절이 되었는가
비가 자주 온다 싶어도
왠지 가슴까지는 거리가 먼
무슨 건망증에 멍한 시간이었듯 갈증만 같은
빗방울에 숲이 일어나는
자분자분 저려가는 자취를 갈망하기도 어렵운 것같은,
애들이 등을 지근지근 밟아야 시원한
온몸의 열기와도 같은 것으로
늙은이에 참 이상도 하리만치 날개같은 가벼움
팔
팔이란
저 쪽에서 보아 하나 더 내비친 다리에
피안의 다리를 팔아 붙여 준 것이라고 팔
난소도 부장품이라고 붙이니 폐라
조금은 민폐가 있고
그 사이 정자(精子)는 우주를 섭렵해야 한다고
붕알 두 개로 심장의 방을 만들어 돌아오게 하니
아! 천상 다리였음이로다
이리 팔아 팔로 살아가게 하였음이니
대륙같은 이름 섬같은 이름
일본의 분재는 제 이름같은 전경을 이룬 듯
함초롬히 정물같은 동사, 형사같은 풍월
명사 몇 개 곁들이 운치의 조화를 보고져 함에
우리의 결코 만주별판의 기질이나
중원의 여유로는 식성이 다 차질 않는,
역시 일본은 사람마져 人으로 잘 보아야 한다는
조경성이 있으나
대륙인은 人間을 잘 밝혀야 한다는 것이듯
이름도 그렇게 틈바구니가 일어난다
종말론
우리가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랬으면 오직 좋겠느냐 싶은 것이
우리에게 내일이 종말이 오고
몇 년 후에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그 것이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끝없는 종말론에 시달려 왔다는 것만으로 부족해서인지
또 종말론의 꿰맞추기에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 건 늑대에 소년만 잡아 먹히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에게도 큰 피해를 준다
한 때 밀레니엄 종말이 온다고 할 때
역이나 터미널에 피켙을 들고 시위를 할 때
그 심판이라는 것의 외침에는
정말 멀쩡한 사람마져 두려움을 갖게 하였는데
무엇보다 염려스러웠던 것은
설령 종말이 아니었더라도
그런 현상에 힘을 실어두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세몰이로 심판자인 냥 설쳤을까 생각하면
이러한 이면에는
은근히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자도 있을 것이고
이단으로 지목될 자는
어지간히 시달릴 분기점과 같은 것이라
한 편으로는 모골이 송연한 것이기도 한 기세였는데
이러한 일은 신의 계시라고 해도 맞지가 않듯
또한 신의 의지가 아니어도 자신들의 기회와 맞딱드리면
신의 자비보다
더 무차별적 맹목성을 드러내 보이는 단면으로 뻔뻔한지라
정말로 일 프로의 소 발 뒷축에 물릴 기적을 가지고
백 프로의 권능을 빙자한 실세를 앞 세우고져 혈안이니
저리도 무리를 이룰 수가 있구나 하는 것에서 아연질색일 뿐인 바의
이런한 문제 있어
인간이 세월에 단순히 순응하는 바에 망각하는 것이기도 하나
혹시 누군가 남모르게 수천 년이나 사는 외계인이라면 모를까
일점 맞기도 하고 일점 어긋나기도 한 것으로
굳이 맞춘다고 해도 다 헛것일 뿐인 것을
사투리
난 예전에는 사투리다 싶은 것은 배제했으나
요즘은 사투리를 그대로 쓰는 편인데
그 것은 언어 자체가 그 적당성에서 묻어나오는 것이기기에
다른 대용이 더 미흡하다는 것과
또 글이란
은유와 비유를 공공연히 드러내어 별미를 더하는 바에
칭찬 못 해 안달하면서도
훨씬 진국인 사투리를 도리어 외면한다는 것도
진면목을 놓치는 바라
또한 순수 우리말이라는 것이 사투리인 성싶고
사투리인 성 싵은 것이 표준말이라고 하니
그 기준도 모호할 뿐 아니라
어찌 보면 경기도 사투리도 타지방 사투리와 다를 바 없는 것을
표준이라는 기준으로 내외하기도 그렇기도 하니
차라리 다양한 수용이 낫지
오히려 핵의 눈과 같이 난 것을
무슨 사투리가 자투리인 냥
외변적이라고 돌아 세우는 것도 좋지 않는 것이거니 와
더구나 지방색이라는
역사적 편견으로 볼려는 것은 더더욱 몰지각한 것이니
意와 理
音이란 7 음계(音階)
이를 그대로 셈이면 작대기 7 개를 그릴 수 있으나
이 七이라는 二 劃만으로
7로 할 수 있다함에 意를 둘 수 있음인데
이 것을 理的으로 수용할 때
氣는 같다고 해 둘 수 있는데
이 二 劃으로도 7로 할 수 있음이
氣 또한 7로 함이니 理氣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이 가정(假定)
즉 임의성으로 둘 수 있음에 또한 理의 안목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럼 이러한 집중력은 어떤 氣인가 하는 것도 있다
감자
감자는 전신이 눈인 바로
씨감자가 아니면
평생 넘어감이 눈감듯
감자!
감자!
눈 감자!
조금도 질기지 않는
하박하박한 고마움같은 것
감자는 다 눈감을 수 있음에
귀천(貴賤)을 짓지 못할
흉허물을 덮어쓰고서도
분별은 사라진 채 피워 올리는
물 위에 그림자도 없으니 삶 또한 없구나
생사를 묻는가?
문턱 넘어 저승인데
굳이 재 볼 길도 막연하구나
물 위에 그림자가 있으니
주검도 없음이요
대명천지에 일갈인들
물 위에 그림자도 없어
삶 또한 없는 것이로구나
고구마(高丘馬)
고구마란 것이 말 발자국처럼 일어서는 것
말이 등선을 따라 걷듯 심어진 뜻과 같이
임의 발자국에 물이 고여 피워 올리듯
손바닥만 같아도 발길을 뿌리 내리듯이 하는
비의 전경
비는
단단하다고는 하는
아스팔트 위에 잔정스럽고
꽉 차 들어오는 대지는
꿀 먹은 벙어리이듯 촉촉해져버린
그렇듯 말이 씨가 되듯
싹이 되듯 순이 되듯
ㄱ 字 하나라도 동그라미 치고
아로 벌린 하나여도
꼭 빼다박은 듯이
풀과 나무는 어느 구석에서든
표현을 다 이루었다 싶은 것으로
아! 스며드는,
밥상 또한 언어처럼 올려진 채 따뜻히 대우고
자기은밀 편
우리가 심령학적 믿음을 둔다는 것은
그 것이 믿음이 가지지 않으니
취사선택의 까탈스러움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중에
또 한 편에서는
절대적인 믿음이 심겨진 돈오와 같은 것이 있어
그 것을 입증을 하려고 혼신을 다하는 과정도 있는 것이나
또한 너무 예언적으로만 치우치다 보면
그 것이 마무리 신묘하게 잘 맞춘다고 하더라도
그 것이 운빨과 맞먹는 인연의 고리란 것에 있음을 알 때
오히려 그 이점이나마 챙기려는 욕심만 뱃살이 끼는 것이라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기도 한다는 것이니
결국 기회적 부가가치에 치중하여 극대화하는데
은밀하기도 하다는 것이니
이도 다 장인적 과정의 전달 키가 없다는 것에서 이다
부자
누군가 혈기는 왕성하다싶은데
술이 만취해 가지고선
비틀비틀 쓰러질 듯 말 듯 곤두서더니
느닷없이 날 붙잡고선
어떻게 살면 고통 없이 잘 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나도 술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고
혀도 꼬부라진다고 하며 빠져 나가려하나
기어코 붙잡아대며 그런 말이 어데 있느냐고
그래도 중생을 위하여 있지 않느냐고 우겨대는데
자신의 관상이나 봐 달라고 졸라대시까지 한다
참 난감한 바라
지금까지 공부를 해도 한발짝도 모르겠다고 하고
냉정히 뿌리치고 나오는데
뒤통수에다 대고 욕스런 흉을 보니
그래서 나도 엣다 모르겠다
속으로
그래! 이놈아!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 먹어라
바늘 구멍에 이 난다
바늘 구멍에 이 난다
뒤집힌 듯 그대론 듯
입 속에서 볼과진 꽈리 풍선
창창한 고기압의 날씨
얼음판 중에도 미풍과 같이 낼개짓해 준
연인는
한 볼떼기
한 볼떼기
똬리 눈밭에 눈사람
남실 넘실
나도 나라함에 드러 남이요
너도 너라함에 넘어 감이라
누구(累口)도 안으로 꽈리 트니
놋(櫓)길이요 놈이라
아! 입에 들어오는 입맛이 예술이 아니든가
목구멍부터 연동 운동 노 젓고보나니
팔 다리가 덩달아
노세(櫓勢) 노세(櫓勢) 젊어서 노세
이 세상 하직할 때까지 젏게나 노세
배꼽다
인생 아니꼽다 해도
나 아닌 사이에 배꼽구나
누가 창자가 배라고 하더냐
이 또한 마음줄이 질기구나
창자가 물결이 이니
창해가 푸르름이로다
배는 배로 꼽았으니 바다 위
아니꼬와도
삼겹 사겹 따로 올려진 싸리
그래도 물결이 갈빗살같음이 좋은
모래 위의 정박도 그러함이 좋을
굳이 부두 모를 생애여도
오막살이 같은
인간은 닻의 자손이다
어느 외계적 창조주가
배인 채 멀리 떠나 보낸 것
먼저 머리보다
포켙의 닻에 일러
먼저 내려 뿌리를 내리라고
심장인 닻
이젠 다스릴 수 있다 싶게 울타리 쳤걸랑
다시 네 자신을 복사에
그 이룬 자리에 대기하라고
붕알
붕알
저 시계 붕알마져
제 가슴을 못 떠나 왔다갔다 해도
닻바늘
인간은 역사적 길이의 순도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어느 한 쪽의 우위성으로
영혼을 대변하기는 실패작이다
영혼은 영혼일 뿐
그 단순성에나마 순수할 때
그나마 인류가 성스러움과 맞딱드린다는 것이다
팔자의 뿌리
우리가 팔자를 하루로서 기준으로 나를 하는 것은
무중력 상태에서 비교해
지구의 인력으로 연줄 삼아 풀어가는 것인데 있어
우리가 허공 상에서
미미한 움직임의 의지적 에너지와는 불가항력적으로
마치 물에 전기가 터질 듯 번지는 파급성이 있듯
이 引力의 응집력에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무지개는 무지개일 뿐인 것에 비해
몸은 몸인 채로 둔 채로
그림자의 섭리를 행하듯 그러가는
카멜레온의 몸 빛깔처럼 드러내는 것에
다시 무지개의 속성으로 탐구하자면
우주의 무중력 상태에서 시야를 가져야 함에 있어
그로 미적분적 추출이 가능함을 시사해 줄 수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니
그로 팔자가 바뀔 수 있다는
기반조성의 여건이 된다는 것으로 봐야함이 있다
전제
우리가 언젠가 외계인을 만난다면
먼저 피해야 함이 좋은데
그 것은 화학적 微分의
미분적분적 관계가 살이 있음에
그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인데
즉 우리의 영혼과 육체의 중간 쯤 되는 개체라고 할 때
마치 무속인이 강신하는 과정에서의
일치하는 순도보다는 떨어지기에
부스러기가 많이 나는 것과 같다고 봐야 함에
외계인이 그러한 안목을 갖고 있다면
우리의 地神이나 山神이 개입해야 할지 모를
매체일 수도 있다는 전제도 깔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지구인보다 외계인으로 봐서
더 혀를 내두를 맹목성은 줄여야 함이요
또한 외계인이라는 것이
우리의 영혼과 더 가까웠던 안주함이 있던가 하는 것도
유념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천기와 원소
우리의 후천수(後天數)의 개념은
손가락 다섯 개에서 포개 듯
다섯에서 접힘으로 해서
5을 넘은 숫자는원소 주기율의 1族이 7族과 이온 합이 되어 끌고
두 번째 族이 여섯 번째 族과 이온 합 되어 밀착하는데
이런 이온적 합은 命理學 上의 六合의 원리와 같다
즉 5로 접은 것은
6族係의 산소로 두 개의 음이온으로
모든 걸 쌍으로 만들게 되어 있는 데 있어 2族과 合하고
6으로 접는 것이라고 볼 때
한 개의 음이온인 7族으로 ㅣ族과 합이라고 할 때
외눈 밖에 박을 수 없다는 형태로서의 파생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건 아마 다른 시공에는 버젓이 자연스레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마치 열두 짐승의 장단점을 합하여
다른 기능의 설질을 만들어냄과 같기 오행 간지와 같음이라
우리가 산소가 없이 살 수 없는 생명체인 것은
이 두 개씩 달린 이목구비가 이온적 루트를 타고 내적으로 합할 때
그 경락이 오장으로 기능이 화해 있음과 같다는 것으로
또한 六爻 상하쾌의 양면에
간괘(間卦)의 효력을 발하게 하는 공간성을 드러내는 것과 같기도 하다
일탈
물고기의 부레와
인간의 폐
그리고 동물의 두뇌
이 세 가지 것의 공통점은
산소를 먹지 않으면 괴사한다는 것인데
이 것은 金克木이라고
금은 목인 산소를 먹어야 산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와 못 살 듯
이는 원소 주기율 상의 산소가 있는 자리를
유심히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거기엔 거북이가 지상으로 나오듯
인간의 뇌가 영적 차원의 심폐로서
걸어 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쭈글렁 긴 수염 향(鄕)
이 향 자(鄕 字)라는 것이
이 郞 字의 머리 땋은 듯한 얼굴 모양에
쭈글렁 긴 수염의 아버지가 계신 곳이라고
故鄕이라 함의
삶이란
삶이란
그래도 살이 붙어야 삶이지
삶이란
그래도 삼까지는 되어야 삶이니
삶이란 나로 門이 됨이라
마음으로 뒷 머릿결이 난다
만물의 변화하는 구성력
先天易으로 7을 山이라고 하는데
최고의 분기점에서 무너지기 쉽다는 것인데
이 건 원소주기율의 7 에 해당 되기도 한 것이며
또한 산성화(酸性化)된 곳이기도 하다
이건 씨줄을 의미하며
날줄 또한 비슷한 것이나
그 무겁고 가벼움의 순서가 많이 다르다
즉 주기율 7까지 가면
아무리 틈새가 없는 성벽을 지었더라고
나무가 뿌리를 넣어 자라듯이 뒤엎을 것이듯
그렇게 山이 될만한 요소를 이룬데 기인한 것으로
마치 의자왕의 꿈 속에 중천의 달처럼 떴으나
다 바위로 돌로 모래로
8인 坤土로 향하는 베품과도 같아
위상(緯上)에는 8 주기율이 없어도 그리 둔 바가 된다 것이고
또한 경상(經上)의 族으로는
族의 6 산소에서나 7의 염소에서 부식 시키고
염화 시키는 것으로
그냥 사라짐의 의미보다 소금 알맹이처럼 거둬
8인 요소의 土가 된다는 의미인데
마치 화로에 부지깽이 놀음을 하는 산소이다가 재가 되어도
그 저림같음이 알맹이라는 구성체로 모인다는 것인데
여덟 族이란 것도
易學 卦上의 6爻처럼 허리띠가 남과도 같다는 것인다
'나의 작품실(이 글은 순수 창작품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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