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주안점을 위한

금나무, 은나무가 되려면

narrae 2012. 4. 8. 12:11

 

금나무, 은나무가 되려면

 

보통 우리가 나무라 하면 원소 4와 5 주기율에 해당하는

진뢰(震雷)와 손풍(巽風)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원소 주기율이 진행할수록 그 원자량이 많아져 

전이 금속으로 침하되면서 결국 원소 7 주기율까지로 내려 앉는다

그런데 금나무 은나무가 있다함은

어른인 우리에게도 동화와 같은 이야기일 뿐이고

누구 하나 뚜렸하게 과학적으로 설명을 해 주질 못 하는 것은 

이 금속성이란 것이 

뜨거운 용광로가 아니면 유연성을 발하지 못 하기 때문인데

이 비밀은 삼계(三界)와 원소주기율의 상호 관계를 알면 

간단히  풀어 나올만한 것으로서

그럴려면 먼저 이 금속의 기본성부터 다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즉 금속성이란 가장 무거운 것이지만 

원소 1과 2 주기율인 것으로

3 주기율인 火보다 가벼운 것이라는 것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이 것은 인간의 신체로 보면

신경계의 두뇌적 차원의 보다 더 가벼운 실체라는 것이다

즉 생각의 차원이며

이를 몸으로 할 수 있음이 마음의 차원인 것으로 나무라 할 있음이니 

즉 마음이면 한 나무가 되어

금나무를 만들고 은나무를 만드는 것인데 

이 것이 곧 원소 4 주기율이면 전이금속을 동여맬 수 있음을 뜻하며 

이러한 차원의 시공이면

과히 마음이면 금으로 궁궐을 짓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인간이 감로수를 마시고

원소 6 주기율로 해서 7 주기율로 떨어짐에

모든 생물과 사물이 흙 土의 무게로 갖추어 갔기 때문에

이미 마음은 마음이고 몸은 몸인 것

곧 몸은 갇혀지고 마음은 눈이 난 상태가 된 것으로서  

지성이면 감천은 되게 열려있기는 하다는 뜻이 되어버렸다

본래 천상계는 이미 원소 5 주기율을 넘기 전에 

금속성의 앙금으로 행위에 채워넣을 수 있음인 것이나 

인간세계에는 마치 들어갈 때 홀쭉이가

나올 때는 뚱뚱이가 되어 나오질 못하는 마음 뿐인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有情과 無情

 

有情과 無情의 관계는

주기율과 족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배분되느냐의 과제가 되는데

주기율이 사물적으로 눌어붙은 일차적 차원이라면

또한 수리적 차원이라면 여기서 이적(理的) 차원인 것이나

우리가 情이라는 것이 마음 心이 어디에 붙는가의 설정이 되고

푸를 靑이 情이라는 것은

이미 계란 흰자일 때부터라고 한다면

노른자인 無情을 다 삼키고 나온 것에서의

땅과 대기권이

육체적으로 완전히 조성된 합치의 탄생이라는 것

정(精)이라고 했는가?

이미 精이 있기 전에 情이 있었다네

精은 창공 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든가 

 

 

하루 종일 어두워도 時는 詩의 알뜰이 된다네

 

하루 종일 어두워도 時는 時는 詩的 알뜰

이만한 알뜰이 세상 천지 어데 있음이든가

詩가 짧다고 장류의 글이여! 얕보지 마라

하루가 암담하다 보면

한 달도 공중에서 퍼담아 채울 뿐

허공 중의 일

뜬 달이어도 달마중도 없는 세월들

그렇게 무심한 듯 산다 해도

태양은 해자(垓子)가 城을 지키듯 해인 것이니

하늘조차 오존이 뚫리지 않으려 안간힘임을

보라! 아직 우리는 청명한 하늘

다 편협적 이기심만으론 공멸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하며 

하루가 문이 닫힌 듯 해도

時에는 문이 열림이 있듯

時는 네온처럼 알차다

빛은 곡식처럼 뜬물을 내듯 

발전기는 맷돌을 잘 돌리고 있을 

아! 詩는 分이 되어도 時인 것

한 行만 기억되어도 망령됨이 없는 것 

사탕은 쪼개어 팔아도 사탕은 사탕인,

아! 지혜가 총총히 밝으리로다 

秒에서 벼가 크는구나

秒에서 벼가 크는구나

 

 

못의 어원  

 

보통 우리가 용을 나무의 용트림을 말하며

물의 용솟음도 말하는 것으로

이 인간세에는 좌 청용 우 백호가 되지만

천상계에선 좌 청용 우 금시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소 2 주기율인 못이 물이 차면

마치 금이간 구슬을 떼운 것처럼  되는데

결국 용이 이 못의 주인이 되어 무한 선계(禪界)에 들면

금시조도 떼우는데 들 수 밖에 없으니

아뇩달 못에는 금시조도 침범을 하지 못 하는 것으로서

못을 못이라고 반문적으로 돌이켜 보게 하는 것으로

즉 못물이 다 얼어버리면 못이 박힌 형상인데

이를 물로서 풀어 유연하게 한 것이나

결국 못의 결정체를 되찾아 가야함과 같으니

마치 회전체에 웅크린 전기가

다시 정류자에 모여 아무 전도성이 없는 심으로서 

무심, 무상세계의 일로(一路)로서 무상천에 다달음과 같은 것   

결국 1에서 2로 갈라진 것

다시 1로 아물려 가는 길목에 아뇩달 못이 있는 것이며

이 수소 원자 속의 우주를 차고 달리는 자가 전륜성왕인 것이요

또한 갈라져 나온 것이 전륜성왕인 것이다

 

 

탈(脫) 원소(原素)의 주역적(周易的) 감지(感知)

 

水의 변효(變爻)가 空亡이면 탈수(脫水)

木의 변호가 공망이면 탈산소(脫酸素)

의 변효가 공망이면 탈황(脫)

황(璜) 字에 申酉가 공망이면 

화합물에서 추출한 독립적 염색체

旺 字에 巳나 午가 공망이면 王朝 末

황(煌) 字에 공망이면 皇朝 末 

보통 澤宮에 5爻 공망이면 탈산소

木인 공망이 動하여 土가 되면 탄소강(炭素鋼)

空爻가 발동하면 空만의 발동인가

공을 뺀 발동인가

木이 進神이면 오존(03)이 되는 이치

退神이면 산화방지제

 

 

부부같다는 것 

 

초가 타나 남은 자국을 보면 

심지가 검은 것을 보게 되는데 

이 것이 水의 色으로서 기본이 된다는 것이다 

무지개의 자외선의 안 쪽이 검은 것 같고

적외선의 바깥이 흰색인 것 같기도 한 것으로 

이 것은 어느 쪽으로든 쪼아붙여 봐야 아는 것이고

그렇게 새는 쪼아붙이라고

불의 의미로 탄 자국까지 남기는 것인지 

자신의 늘어진 사이를 쪼아 붙이는 것이 부리라고 불의 늘임字인 것 

어쩐지 입인 澤과는 다른 관상학적 離火

우리가 우주를 어떻게 상상하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마치 각기 다른 원을 한 손아귀에 쥔 형태라고 볼 때

모든 원이 제일 큰 원으로 밀어내졌을 때 하나의 원이 되는 것으로

그 전에는 마치 초심에 붙은 불과 같다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坎水가 다하면 離火되고 

離火가 다 하면 坎水가 되는 것과 유옇을 남기는 것으로

참 신기한 것은 입으로 씹는 자는 포우(包乳)로 심고

부리로  씹는 자는 알로 심는다는 것이다

이 눈뭉치 두 개 얹어놓은 눈사람같은 게 

머리와 몸이 서로 닮아 호응준다는 게 정말 부부같다는 것이다

 

 

占은 순간 접촉하는 부위가 어데인가가 진미(眞味)인 것이다

 

근대의 한 철학자는 이미 철학이 과학을 다스리지 못하는 시대라

늙은이처럼 퇴물 취급받는 꼴이 되어 있다는 표현을 썼지만

동양은 결코 철학이 과학에 뒤지며 살게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동양철학은 인문 뿐 아니라

과학이나 물리 또한 동떨어지게 취급하지 않은 밀접성으로 다뤄왔기 때문이다

즉 과학적 철학성으로 따지면 서양보다 더 과학적이라는 것인데

오죽하면 음양 오행을 철학이라고 하였겠는가 이다

다만 서양 사람들은 그런 취약점 때문이었는지 

더 치밀하게 접근하는 것으로 더 좋은 세부사항을 확보으며

동양은 인문과 마음가짐에 동질성을 갖는 바라

 뚜렷하면서도 단순성에 있기도 하기 때문인데   

 천기인 냥 쉽게 드러내 놓지 않고 얼머부려야 할 감수성을 갖게 하는 것으로서

명약관화하지만 뜬 구름 잡은 듯이 신비감에 올려 놓게 되는 것으로

특히 단순하게 써먹으면서도 인연법으로 잘 맞는 사람은 더더욱 그러한

폐쇄적인 매력감에 젖는 타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 것은 곧 임상성과 논리작 사고의 퇴보를 가져 왔으며 

불입문자는 더더욱 날개를 달아주는 효과로서 

요즘의 서양 학문에 꿀먹은 벙어리 노릇이나 잘 하는 꼴이다

특히 역학에도 설정성이 중요한데 

이 설정성도 즉발로 써먹는 길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데 

오히려 예리함을 둔하게 하기 때문이다

분명하고 세밀함에서 나쁠 것이 없지만 

그 설정에서 발견하는 것보다 

절대적 부동성으로 취용해야 복잡성을 더는 것에서

그리고 또한 그 설정이 자연성이나 원칙

그리고 일반적 경험과 인식으로 채워져야 

절대적을 맞아들어가는 이치는 없는 것으로 

무엇이든 바르든 어긋나든 다시 만나는 인과에 의해

깨닫는 것이니 부동의 틀로서 넣어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어긋나게 그리고 다양하게 접근을 해도 

소 뒷발에 치이듯 깨달을 수 있는 것으로 

마치 우리가 외국어를 모를면 모르는 것이 듯이 하나 

우연히 외국인을 알아 알게 되든가 

가서 알게 되든가 하는 것인데 

다만 우리가 아는 근접성에는 멀다는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곧 우리가 갖는 선견력이라는 것은

어데서 어떤 부위에서 어긋났느냐가 중요하지 

그 것이 맞다 아니 맞다가 중요한 것은 매우 편린적이라는 것이다

그 것이 더 절대적으로 맞아들어가는 것도 아니요 

또한 효용성이 났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한글의 매력과 원소 주기율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주역의 爻象으로 일어나는 표현의 식별이라면

이것을 원소 각각의 냄새와 맛이라면 

밑에 있는 받침의 자음은 한 주기율의

아랫 주기율인 원소성으로 한다는 것과 같다

일례로 왜 일상 편하게 발음되는 <습니다>를

굳이 <읍니다>로 사용해야하느냐는 

나름의 기능적 법칙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인데

이는 ㅇ이란 10을 나타내며 한 주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 윗 주기율을 업고

아랫주기율의 ㅂ인 원소성으로 받친다는 것이다

즉 앞 받침의 <있>의 쌍 시엇은

이미 아랫주기율 上에 얹혀 <습>이라는 것이 되는 것이니

뜻은 ㅇ이요 소리는 ㅅ인 것을 동시에 취용함으로서

윗주기율 상의 원소라는 것을 업었다는 것이다

곧 이 겹치는 부분이 ㅇ인 토성인 10이고 ㅅ인 금성인 4인데 

도합 14가 되는 것으로

이 것을 수학적으로 푸는 방식으로 역류적으로 행하면 

이 10을 그대로 두고 다시 4로 돌아가 있는 상태와 같다는 것으로

앞뒤 어느 쪽으로 행하든 마땅한 응용 범위가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앞 받침의 ㅅ이 이미 다음 글의 머리를 사용했기에

비엇다고 나중의 글자가 ㅇ인 것도 되는 것이고

또한 수학적으로는 10 단위를 올린 것이 ㅅ에 있으니

ㅅ이 4이니 뒷 글자 ㅇ에 10을 부여해 올리고

앞 글자 받침 ㅅ은 그대로 더해진 것으로 봐도 된다 것이다

이는 곧 한글을 부호로서 셈법을 나타낼 수 있음이 크다는 것이다

그럼 이 습이라는 글자가

앞 0의 10에 4를 빼서 습인가

10에 4를 더하여 10인가

그냥 빈 10에 4를 채움인가를 분명히 하여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를 알아야

10이 완전히 0이 되는 인연을 구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맛도 느끼는 것이니

수학적 매력의 인문도 극대화 되어 있는 것으로서 가치가 탁월하며

이 걸 보더라도

구구단도 공식이  있어야 셈이 빠르듯 

우리가 어떤 법식적 구조를 이해하며 활용해야 할 때

언어도 예외일 수 없는 것으로 

구구단 외우기 어렵다고 곱셈법을 버리자고는 못 하듯

늘상 사용하는 우리로서야 <습니다>로 한다지만 

외국인이 한글의 깊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의 이해의 폭에 대해서는

너무 우리 자신을 모르고 

참 무식하게도 무자비하게 버리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된다

 

 

물길을 갈라서 가는 전륜성왕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바다는 더더욱 가르지 못할 것이 아닌가

바다는 바가 있는 것인가

우리가 언어의 흐름 상을 잠시 멈추어 단절하게 하고

다시 이어가게 하는 것이 이<~ 바>라는 것이다

즉 바다도 이 바의 뜻이 있으면 갈라지는 면이 있어야 한다

이 것이 새삼 부처님이 말씀하신

<전륜성왕이 지나가면 바다가 갈라진다>는 것이 와닿는다는 것이다  

 

 

소리로서 원소를 찾는 법

 

ㅂ이란 水聲인데

이 것을 원소 6 주기율인 水로 취용하는 것

그리고 爻인 亥와 子인 水로 취용하는 것 등이 있다

 

 

우리가 물 속을 바라봤을 때

 

여러분 원소 2 주기율을 현악 4 중주라고 생각하십이오 

원소 이 주기율은 깨진 그릇과 같다고 합니다 

본래 현악의 금속성은 날카로운 것인데 

네 개가 어울린다는 것은 

그리 고분고분 조십스럽게 작곡하지 않으면 매우 상처를 남기는 듯이 합니다만 

아름다우면 눈물의 상처가 되지요

이 것이 거친 공간을 채우는 채워 넣어야 하는 것으로 

이렇듯 수소가 핼륨으로 사 중주가 됬을 때

우리의 두뇌도 마찬가지 외부적으로 거칠게 고뇌를 한답니다  

이 것은 내적 아름다움의 극치인 사중주를 말들었답니다

우리가 물 속을 바라 봤을 때 

이미 수소에서 빠져 나온 듯 

바이올린과 비올라와 첼로의 몸매는 비너스의 탄생인 듯 아름다웠습니다   

 

 

원소 주기율로 바코드의 선을 찾는 법

 

만일 원소주기율로 바코드의 어느 한 선을 찾을 수 있다면

세상의 어떤 미진수(微塵數)도 못 찾을 게 없다는 것이 되는데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모든 파장의 길고 짧음이

바코드의 막대 끝의 차이점을 말하는 것이라면

원소 주기율은 그 두터움을 말 하는 바

곧 현재 사용하는 물품의 선을 긋는 바코드는

무제한적이지만  

원소 주기율 상의 바코드는 굵기와 길이를 제한적으로 해서 

곱할 수 있는 것으로 원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전(轉)을 두게 되는데

바코드가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에  미치는 것이라면

원소 주기율은 불가설불가설전(不可說不可說轉)이 되는 것이요

수소가 바코드 내의 일이라면

원소주기율은 수소 밖의 일이 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수소 밖을 핼륨이라고 하면

원소 6 주기율로서의 감수괘(坎水卦) 밖인

원소 7주기율인 간산괘(艮山卦)으로 취용할 수 있음과 같다

현재에 사용하는 상품의 바코드는 막대의 굵기로 말하는 것이듯이

나무의 성장성과 닮은 원소 4 주기율의 형상을 띤 것이라면

마치 원소성이라는 것이

나무가 굵어감에 따라 공간이 커지듯이 채워짐에

각기 다르게 성향을 가질 수 있음을 뜻하며

이는 곧 바다와 같은 것이기에

이 것은 나무가 잘리면

바다 파도의 바 코드는 살아 있음의 6 주기율적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바코드와 불가설불가설전(不可說不可說轉)의 의미 볼 때

왜 부처님께서 그렇게 이해가 밝지 않는 인간들에게

끝없는 數를 장광하게 설명했을까 하는 것은

지금에 와서 바코드가 한 눈에 들어옴으로서

결코 크지 않음을 알게 하는 것으로서 

사람의 혓바닥만 하더라고 모래 알의 수 백 분의 일이라도 

느낄 수 있는 섬세함에 놀라움일 수 있듯

바다를 들이켜도 다 안다는 것을 실삼할 수 있는 것으로

실제 과학성을 통해 드러낼 수 있음을 친근하게 알 수 있음이다

즉 무지개도 순간에 보이는 바코드지만 

그래도 가장 지속성이 긴 색의 바코드인 것이요 

나이테도 좀 더 수명이 짧지만 고정형 바코드는 되는 것이요 

물은 파도가 나이테지만 이미 잡을 수 없는 유동성에 있다

즉 이 水에서 <바> 라는 정지형은 아니라는 것으로

<~ 바>가 다했다고 <바다>가 됨이 어원(語源)인 것 같은 감칠맛같기도 한데

다만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바다인 것이기에 

수소 원자 하나의 단위에서

두께든 개별성이든 원자 번호 수만큼의 굵기로

원소주기율의 레벨을 확인하는 것이 될 수 있음이요  

주기율적 배분으로 族을 매김해 

어느 주기율의 개체든 상호 화합성을 나타내는 것을 찾을 수 있음인데   

인연마다에 모여 팝콘이 튀듯이 하는 것이라는 것이니

우리가 언어의 표현상으로 <~ 바> 라는 것은 

순간 머문 상채(狀態)이라는 것으로서 空的 받침을 의식케하는 것이다

 

 

空을 빼는 공사상(空思想)

 

왜 우린 8만 4천이라고 하는가

이는 동양 수리학 상

이1,0000이라는 것이

0이 4 개인 것으로 행성 궤도로  할 때

이 것을 1 주기율의 핼륨과의 폭이요 

1을 구심적으로 일으키는 만물의 성격에 의한 것이고

8이라 함은 8 주기율까지 취용함 을 뜻한다고 봄이다

여기서 줄어드는 범주가 겁의 시간을 환산하는 것으로

즉 원소 주기율의 원소가 하나 없어지는 시간이 100 년이요

이 것이 주기율적 단층의 살인 것이니 한 살이 됨이다 

이 한 살의 수명이 인간의 백 살과 같은 것이라면

백 년마다 닮은 꼴의 진행성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백을 기준으로 十을 더하면

十 위에 삐침을 더하여 千이 됨인데

이 것이 곧 삼천대천의 몸통으로 진행형이라는 것이 된다

이는 곧 백을 기준으로 원소 주기율을 제하다 보면 한 겁이 되는 것이니

마치 1,0000의 0이 다 사라지고 1이 하나 남는 것과 같고

그러고 보면 원소 1과 2 주기율은 金으로서 白인 것이요

이 위에 一을 그어 백이다

즉 이렇게 백 배율(百 倍率)로 운행(運行)을 논함이 사주 팔자(四柱 八字)인 것이고

이 것을 다시 십 배율로 하면 증겁(增劫)이 되는 것인데

이 것은 달이 大劫에 닿은 것과 같은 것이다

이 것은 달을 기준으로 하는 증겁의 유형이라고 봐야 함인데

즉 인간은 달이 주기율로 싸인 껍질로는

겁살(겁살)에 닿는 기간이 백 세라고 봄으로 

이는 곧 인간 백 세는 달이 겁살에 닿은 千을 말함이다

그리고 불설(佛說)에 있어서의 小劫은

인간 수명 10 세(歲)에 닿는 시간을 말하기도 하고

거기다 다시 팔만 사천 세까지 되는 증겁을 더한 것이라고도 하나

무엇보다 인간 十 歲는 劫으로 1,000을 나타냄인데

즉 이 것이 더 이상 줄어들 수 없는 小千이기에 소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大千 겁에 닿느냐 소천 겁에 닿느냐도 매우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 것은 원소가 팽창하였다고 다시 수축된 폭을 말하는 것으로

電子가 陽性子에 가까워지나 충돌하지 않음과 같음에 있다

 

 

劫空의 유효성

 

우리의 운명이 風水와 밀접하게 있다고 하더라도 

天命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음이 되는 것은 

이 劫殺의 다른 시공적 영향력에 있기 때문인데

우리의 시각에서 질량불변의 법칙보다

劫空的 차원에서 질량불변의 법칙이 더 유용하다는 것이다

 

 

乾金의 사회학적 논리

 

理와 氣에서

數의 단위는 理이지만

통화 팽창을 氣라고 볼 때

우리가 화폐(紙幣)를 木이니 火이니 하기 전에

金으로 먼저 취용함에는

數理 이상의 것이 아닌 것으로

즉 돈은 數理의 단위이지

물질적 중요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기에

마치 통화란 톱니의 부피성과 같은 것이기에 

눈금과 같은 것으로 DNA의 레일과 같이

맞잡고 나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乾이라 함은

곧 통치적 전반성의 굴레라고 봐야 함인데

이는 동전이 무채색이든 아니든

그 채색이 아닌 수리(數理)로만 나아간다는 것인데

그 중요성은 개체에 따라 줄고 느는 것을 합하는 것이 아니라

일율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가치를 말함에

한자(漢字)의 획수(劃數)도 부수에 따라 따르는 것이지

변(邊)의 줄임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邊을 줄인 것을 사용하면

결국 원소 주기율도 

같은 원소로서의 수량이어도 늘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것을 방지함 또한 주기율의 벽이요 껍질의 차원이라는 것도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린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이는 곧 우리가 원소 上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한한 변화를 구가하는 감각과 인식이라는 것에도 

개체의 동일성으로서 수리 상의 진행에 의한 영역적 확보와 함께

그 내적 허실을 다시 드러냄으로서

그 원소의 화학적 변화로 매울 수 있는 시스템이 연출되는 것으로

즉 되가 두 개면 두 개인 것을 아는 것이지

반 되와 반 되가 합하여 한 되가 된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과 같이

확장과 외연에 따르는 것이지만 이 것은 虛를 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虛를 수용하되 그 너무 과해버리면 그 본질을 상실하여

그 저장성마져 흩어져 버리기 때문에 주기율적 반복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걸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닷가에 살기 때문에 바닷 속을 모른다

그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것은 바로 풍선이 밀어주면 된다

이 것이 離虛中을 文明이라 함이라

乾金이 아무이 무개를 잡고 눌러 앉아도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즉 원소라는 것도 하나의 원자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집단체인 것이며

실제 원소가 핵심이 아니라 화학성의 구성력이 더 핵심일 수 있는데

왜냐하면 원자 하나 內의 意中이 여러 원소적 집합을 내세워 보조케 함으로서

화학적 루트가 설정되어 가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원소주기율은 光子와 暗黑子의 공연장

 

乾金의 흰 색은 

하나의 수리적 스텝이

또 다른 時공과의 혼합을 막기 위한 스텝의 외형성이

굳이 內的인 것을 다 일치 시키지 않는 스텝이 된다는 것으로 

즉 총체성을 가진 채 올 수 있는 원자적 단위를 말함이며

이 乾金이라는 자체가 가장 꽉 찬 극적 조밀성을 갖고 있음에서

그 虛를 보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 흰 색인 기본적 합성체가 

그 공간성으로 해서

다시 色을 낼 수 있는 기억의 시스템이 또한 원자 포자라면

이 것이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인 것으로

이를 펼치는 전개가 원소주기율적 공연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7 주기율까지면

음양 오행이 다 되는 기본적인 지수화풍(地水火風)을 형성하리라는 것이다

 

 

포태법(胞胎法)과 연기(緣起)를 함깨 묶을 경우의 화합성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6입(六入), 촉(觸),

수(受 ),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인 순서로 보자면

우리가 포(胞)에서 無明을 쌀 경우 精子라고 할 때

태(胎)에서는 정자가 주인공인 胎로서가 아니라 子宮이 주인으로서의 行이 맞는 것이고

양(養)은 결국 胎中의 아이의 태교를 듣는 것과 같고

生이 名色이니  나자마자 이름은 붙여지는 것이고

沐浴은 넘쳐나는 형상 사물적 대상이 드는 것이라 六入인 것이며

대(帶)는 묶음 즉 단위적 촉수가 됨이요

관(冠)은 나무가 순이 돋는 만큼 수용하며 빨아들임이 있다

왕(旺)은 결국 진시황과 같은 불노장생의 집착을 낳으며

사랑이 넘쳐나는 애(愛)의 바탕이 되는 것이며

늘 비면 차는 끝 없는 욕구의 샘물이 된다

쇠(衰)는 결국 동방으로 기어코 보내어 불로초를 구해 오게 할 것이며

변(病)이 들어서야 존재의 유무에 확실히 선 자가 됨이라

후회는 늘 그 입구에서야 철드는 것이 인간이  아니든가

사(死)는 곧 생의 상대적의 벽을 실감하게 하는 것으로

묘(墓)는 결국 무덤에서까지 남은 미련의 노사(老死)를 보게되는 것이다

 

 

신살법(神殺法)과 연기(緣起)의 화학적 성격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6입(六入), 촉(觸),

수(受 ),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란 것에

無明은 이미 겁살적(劫殺的) 時空의 차이에서 부터 있는 것이다

災殺은 행하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범주의 범위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天殺은 곧 識이요 乾天이 두뇌를 말하는 것으로

이미 대기권적으로 받아들여 눈사람의 윗머리를 만든 것같은 것

地殺은 결국 육질화와 물질화서 드러내는 것과 같음이니

年殺은 6入이 되는 것으로

이것은 運行과 같고 流성과 같고

주위 행성을 끌어들여 六識을 갖추게 함과 같다

月殺은 觸인데 지구라는 머리에 달의 안테나가 달린 것으로

망신살(亡身殺)은 다 자신이 수용하는 욕심에서 비롯됨이다

장성살(將星殺)은 결국 숫사자가 오줌으로 경계를 표시함이요

반안살(攀安殺)은 확실이 취해 여러 암사자를 취했다고 느긋하다

역마살(驛馬殺)은 왠지 늙으면 떠나야 한다는 것

홀로 남겨졌다는 것

바람같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

육해(六害殺)은 생노병사를 참 늦게 깨닫는 것이 인간이니

젊음도 다 한 때의 것

간과 같음에도 점점 멀게도 느껴지게 되는 것

화개살(華蓋殺)이니 죽어서도 비석은 호화스럽게

문상객은 집안이 꽉 차도록

미래는 황금 뚜껑이 열려 있는 듯이 맞물고서는

몸은 썩어 문드러지라도 찬란했음을 굳이 두텁게는 하고 싶은지

살아서도 속에 든 것보다 얼굴 보이기나 더 좋아한 것 

죽어서의 욕심인들 얼굴광  아니면 벼슬광 재물광이 다르지도 않을 것

자신이 남에게 남긴 것보다

자산에 남긴 재물과 명예광이나 번듯이 자랑하고픈 자화자찬의

어쩐지 전단지 얼굴이나 커다랗게 보았을까

어차피 무상한 것이 아니더냐며 모래늪같음이 

자기 피알의 과장성에 더 잘 맞아드는 적성의 시대라고

본래 과장성이란 형식은 얻으나 情과 은근한 믿음은 경직되는 법

그래서 남 잘난 것도 과장성으로 보이는지 

먼저 깨부수고 봐야하고 잘난 꼴은 더더욱 못 봐주는

참 무상하게 하는 작태라도 때광 좀 냈다는 비웃음같은 것

 

 

음악의 조율과 원소주기율적 바코드

 

우리가 기타 줄을 조율한다고 볼 때

한 마디 내에서 같은 음을 내게 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렇게 내도록 선의 굵기를 조정할 수 있다

이렇게 맞춘 선으로 줄을 조정한 바코드면 

최소한 4 주기율적 바란스는 맞춘 바코드는 되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줄의 팽창력으로 음계를 조절할 수 있는데

줄 하나를 갖고

한 옥타브 높은 주기율의 음의 동족을 나열 수 있음의 선을 구가하는 것이니

이는 곧 소리의 선이 파열됨과 같으니 이미 소리로서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

이는 곧 소리의 영역을 저두절미하고 불로 화한 것으로 하고

이미 가까리 닿아도 데이는만큼 되는 것이니 결국 나무의 마디로

다시 꽃의 주류로 열리게 함이나

즉 소리의 무한 옥타브를 낼 수 없음에 꽃으로 함이요

얼음이나 물을 또한 드거운 용괄로에 늘 머물게 할 수 없음과 같다

이것이 곧 3 주기율적 조정력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고

이것은 3 주기율적으로 확장 팽창하여 다루는 영역인 것이다

그리고 소리의 영역으로 손가락이 짚은 영역으로 눈으로 하는 것이니

원소 2 주기율은

모든 것이 떠났다고 해도

간 것도 온 것도 없는 한자리로 해 수용하는 점위가 있는 법이면

이를 작걱적 대위법처럼 수용하는 것으로 직렬과 병렬을 수용하는 것으로 봄이니

이 것은 일시적 그 부분의 병행선을 보는 전깃줄의 가고 온 범주와 같이 한다

여러 가닥을 꼬아서 나오게 해도 다 이 두 줄의 영위로 하는 것이니 

이 주기율에 인간 생명과 관계되는 원소가 되는 것은 

전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감수성의 요람이기 때문이다  

기타를 마음의 눈이라고 할 때

즉 그 통의 배부위의 구멍을 통과하는 감수성이라는 것이 

결국 기타가 소리를 먹음에 채식성과 같은 감수성이요

그 코드의 길이에 따라 색깔이 다른 것을 먹으니 

여러 음색의 비타민 결핍이 없도록 먹는 것이요

타악의 음색은 원소 4 주기율이요 

취주악의 음색은 원소 5 주기율인 것이니  

 

 

ㅠ를 위한 ㅜ

 

우울한 날 

그래도 우울을 울이라고 불러줄 때 

마치 불러주어 꽃이 되듯 

예술적 한 가닥을 더하면 율이되는 것

아! 영문 Y 자는 두 갈래를 한 갈래로 한다는 것이니

이와 우를 이의 막대를 우의 옆에 가지런히 하여 유인 것으로 

두물머리라 한다는 것이니

역설성의 I와 YOU라는 것도 있어

마치 i인 나가

당신인 you를 느낗 수 있는 것도

i 위의 점이 두 개인 형태인 것이요

우리라는 OUR라는 것 중에 뒷끝 R을 빼고

I에 선을 하나 더 붙여 칭하는 것이라고 YOU라는 것이니

 

 

우린 용궁의 인간인가

 

水란 귀에서는 균형 감각을 가지며

코나 혀가 물이 축여져 있지 않으면 감각을 모르듯

I이라는 하나의 줄이 되는 주기의

원소 6 주기율에서 온 인간이기에

다 원소주기율인 6의 I에 생명감을 찾으며

YOU로 살아가고 있음의 역설설도 짚게 하는 것의

이 것은 우리의 몸이

水素 하나의 內에서 감각을 취용한다는 것이요

원소 6 주기율의 통관(通關)으로 해야

원소 7 주기율이 통한다는 것도 된다

 

 

年은 午에서 나온다

 

年은 午에서 나온다 

子는 북극의 頂點 

午는 星團의 꽃 

꽃술을 주고 안 주고는 성단이 할 일 

돌고 돌려 봐도 

꽃은 피고 꽃은 지는 것일 뿐

 

 

타는 소리, 타지는 소리

 

태양은 千에서 빛나니 년(秊)이요

일에서 십, 백 에서 콤마를 찍으니 千이로다 

즉 넘겨야 함이로다

音頂도 세 옥타브를 넘으면 찢어지듯 

타지는 소리가 불이로다

아! 사계절이여!

禾 字 아래 子 字로구나

이 벼의 종자라는 것

원자 아씨의 씨라는 것에는 

네 개 씩 뭉친 것이 있다오 

이 것이 나오는 첫 바탕 

1 이라는 숫자 

1이라는 주기율의 핼륨의 네 조각 맟추기

 

 

위대한 과학성의 언어

 

한문에는 뜻을 변(邊)으로 하고 소리를 중심으로 한다

즉 영향력을 소리에 두기 때문인데

소리를 듣고서 목변(木邊)이라는 인식은 뇌파적 영향력인 것이고

이는 또한 意요 理라고 하는 것으로 정신적이면서 다른 차원을 나타낸다

그에 비해 소리는 氣의 차원으로서 물리적으로 강한 면모를 나타낸 것이기에

우리의 한글도 마찬가지로 오행의 성격은 그대로 취용함으로서

이런 과학성을 놓치지 않았음을 알게 하였다는데서 조상에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하나의 예로 篁<황>이라는 소리를 보자면 ㅎ은 土星인 것이니

이 土의 기운이 위의 竹의 뜻이 든 것보다

육성적으로 더 강하다는 것이며

다만 뜻으로 마음에 두고 다잡을 때는 竹의 기운을 더 강하게 보기도 하나

이 것은 정신적 차원이고 영혼적 차원으로 통하는 것이니 

우리가 빛을 삼켜 대화가 되는 유기성의 커뮤니게이션이라면

변(邊)이 중심이 되고 중심인 소리가 邊이 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정도의 분리가 되고 경계가 있어 서로 다른 차원에서 번역이 되는 것이라면

수소의 원자 1 내에서의 대화와 독해력이

원소가 주기율 상으로 재 정비된 시공으로 다시 번역이 됨으로서

우리의 행위에 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것과 같음을 나타낸다는 것이며

그럼 우리의 한글은 소리만으로 치우쳤기에 동떨어진 것인가 하면

절대 그런 좋은 것을 무시할 우리의 조상님들이 아닌 것이니

예를 들어 <나무>라고 할 때 ㄴ은 화성(火聲)이며

그 뜻은 木에 해당하는 것이니 

만일에 寅卯가 공망이 되면 

겨울에 불 땔 나무가 없다는 풀이가 된다는 것이다

 

 

전륜(轉輪)이라는 어감(語感)이 닿는 동질감

 

영어로는 정류자와 브러시를 하나같이 브러시라고 하는데

아마 어쩌면 정류자는 바를 의미하고 

브러시를 러시로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서로 달리 보지 않고 하나로 보자고 해서

바러시가 브러시가 되었을 수도

여기에는 전극을 교환하기 위해서 

완도 앞바다처럼 갈라져 지나는 것인데 

이 것은 원소 1 주기율에서 2 주기율로 갈라지는 기점이요

<바>가 다한 상태로 水의 1로 붙은 형상을  

다시 바인 상태로 갈라 멈춰서게 한 묘미같은 것

 

 

말과 정류자(整流子)

 

창자는 감각이 없다고 한다

정류자가 틘 곳에도 부전도체라 한다

즉 코일을 감은 부전도체(不傳導體)라고 한다

그리고 이 회전체로서의 코일 자체를 음식으로 봄이고

둘러 싼 자석을 소화된 음식이라고 봄인데

허나 이 것이 입이 틘 단계의 배인 것으로  

입이 틘 것이나 

정류자가 틘 것이나 배는 차는 것이요

뇌 신경은 키우기 마련인 것을

여기서 원소 3 주기율적 성찰을 통해

원소 4 주기율에서야 말씀이 되는 것이니

 

 

영혼의 무게

 

우리가 영혼이 영원할  수 있음은 

중력의 자기장적 에너지로 배를 채울 수 있음인데

이 것이 나름의 형체를 이룰 수 있으니

이 무게를 알려면 이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고

태양과 성단의 중력을 벗어나서야 나오는 것일 것이다

또한 각 원소마다의 성질이라는 것은

다른 시공의 함축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할 것이라는 것이다

 

 

남녀의 탄생

 

부처님 말씀 중에 제일 기막힌 구절은

天人이 감로수를 마신 일로 인하여 인간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것을 최대 공약수든 최소 공배수든

미분이든 적분이든 접근해 보아도

결국 원자1을 水로 함에 근거함으로 나오는 것과 같으니

그 후로 남녀로 구분되었다 함은

원자 이 전의 양성자와 전자에서 구분됨이 아니라

원소 주기율 상에서 비롯됨이라고 봐야함이다

 

 

창조는 곧 자성의 힘

 

부처님 말씀에 인간이 열 살로서 바닥을 치고

다시 八萬 四千 살로 간다고 하는 것은

이 10라는 숫자가

1이라는 시점과 0이라는 공간의 기본 단위로서

이 것인 모래시계의 구멍과 같은 것으로

이 것이 신체의 목 부위 

즉 나무란 것이 목부위만큼 드러냄과 같은 것으로  

수소의 공간적 개념을 하나로 해서 다시 나옴과 같은 것으로 하는

인간 성장의 나이와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함에  

이 사이로 정륜성왕이 통과하는 것에서 

우주도 바퀴를 굴리듯 콩고물을 뭍히는 듯이 하는 것이다

 

 

문화의 배려심

 

게타(偈陀)와 두타(頭陀)란 낱말이 있다

게타는 범어(梵語)의 음역(音驛)이고 두타는 뜻 그대로 해석한다

이 게타는 송가(頌歌)라는 뜻인데 즉 노래에 가사를 붙인 것으로

頌이라는 字를 범어적 차원에서 게(偈)라고 하는 것이다

허나 이 한자의 뜻은 매우 빠른 겁(劫)을 나타내는 것이으로

뜻 그대로여도 겁을 잡은 시공의 노래 가사인 것만은 맞다 

그리고 두타행은

부처 머리를 벤다 벤다 해도 결국 몸만 다 허물어지고 말더니  

머릿바위만 덱데구르르 굴러 골짝에 처박히더라는 것으로

이 것 또한 알알이 다 굴러 세월의 강에 묻힌 것같아도 

개어구까지 가 결국 일어나는 것이 삼각주

삼천대천을 읆으니 새들이 알을 낳고 먼 하늘을 나더라는 것이니

이 것이 서로 다른 듯이 만나도 꿈보다 해몽이든가 

서로 바탕이 좋게 수놓은 문화가 찬란하게 영구함을 보는 것이니   

소리가 무거운가 뜻이 무거운가 

음역(音譯)의 인연과 자의(字意)의 인연이 만난 것으로 

그 낯설다 하더라도 또한 어색하지 않게 

이렇 듯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문화의 배려인 것이다

 

 

요즘엔 마을은 없고 마실만 있다

 

요즘엔 마을이 없고 마실만 있다

예로부터 산수화엔 여지없이 마을이란 곳엔

乙字形의 길이 있었는데

예외도 있을 법한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들어서 있다

요즘엔 마을을 지나다보면 

길도 乙자가 아니 됨이요 

개울도 乙자가 아니 됨이요

오호! 통재라

깜쪽같이 투기심에만 바글바글

결과적으로 여유가 넘치면 더 비싸게 치는 失足과 같은 것을

아직 갑장(甲掌)끼리 살아보지 못한 한(恨)인 듯

오직 갑장만 모이는 것이라고 甲머리만 우뚝 선다

그러니 요즘은 마乙은 없고 마實만 있다

완전 빌딩에 갇힌 室 

마을의 풍경이란 전체의 시야를 함께 어울리는 것인데

이미 반석이 되는 서정은 없어진지 오래

빌딩의 뒷골목이나 되어주어도

완충지마져 되어 푸근하게만 할 뿐 

산과 들은 아우러져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길이 자꾸 터널을 지나가게만 한다

왜 꼭 이래야만 하는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허리 허전한 터에 

허리를 싸안지는 못 할 망정 꼭 앞에서 

성냥갑 노릇이나 되어 신경만 날카로운 황()이 발린 듯

 

 

타(陀)와 사(蛇)

 

陀나 蛇나 다리가 없다

어쩜 木은  키우지 않는, 

손발을 키우지 않는 험로와 같은, 

허물어짐같은,

그로서 갈라져 스스로 미끄러진,

미끌리게 하기엔 그져 그만인

바윗굴이란 것이 

저 능선 위에서는 足이 없는 자만 사는 것

곧 나무의 손톱과 발톱을 필요로 않는,

족달린 나무조차 근접케 하지 않는

껍질인 불의 알인 3 주기율에서 

타오르는 몸짓으로 자궁에 박힌 2 주기율로서의 몸짓

 

 

각기 특징이 있는 원소 주기율 상으로서의 분만

 

원소 3 주기율인 離火란 자체가 꽃이 듯 

꽃봉오리인 알로서 감싼 채 낳든가

2 주기율의 포유로 낳든가 

4 주기율로서의 나뭇가지에 꽃이 붙 것에 분만을 하든가

6 주기율의 물에는 별이 꽃이듯 반짝이는 대로 퍼트려진듯 알을 낳든가

7 주기율은 캉가루처럼 다시 배에 모종해 낳든가

모든 것이 음양 오행이 드러나는 대로 새끼도 낳는 법

무엇보다 물에 튀는 빛의 꽃에 따라 알을 틔는

아! 생명의 위대한 신기에 가까운 예술

 

 

중성미립자와 지장간(支藏干)

 

오늘은 과학계에서 세 개의 중성미립자의 상수를 다 밝혀냈다고 한다

그 함수관계를 보면 꼭 12 神의 지장간을 보는 것같다

즉 季神(辰戌丑未)의 지장간의 비율을 그렇게 따지는 것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매(二梅)여!

 

아! 어느 별나라의 꽃이든가 二梅여! 

꽃이 피기 전에 

봄이기 전에

너나 나나 겨울의 가릿대를 하나 떼어 바라보니

거울에 내가 分身

꼭 묵은 뿌리를 따라 쑥눈 이 쑥쑥 나듯

지하철 입구마다에 잎이 나는 듯

예술의 전당엔 그렇듯 이매가 핀다

겨울의 갈빗대 하나 없는 거울

 

 

병렬(倂列) 上의 육효(六爻)

 

우리가 육효 상으로 병렬 상태가 되었을 때

한 쪽이 動하면 그 쪽이   선두 주자이다 

그런데 衝이 되면 이 것이 선수 교체이고 

바톤 교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분실한 물건을 찾을 때는

그 시점을 집중해 보야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合이 되면 動한 선수로 마감이 되고

계속 이어 나가질 않는 현상이고 

공망인 상태에서 衝을 당하면 

두 가지 기록 중에 좋은 하나를 취할 수 있고 

한 사람은 실격이 되고 한 사람이 기록이 되는 것이든가

두 사람의 종합 점수라면 한 사람의 실수로 실격이 되는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의 실수로 함께 벌을 받아야 하는 형상이다

그리고 靜爻가 선두 주자이고 動爻가 다음 주자일 경우이다

 

 

네 개의 병렬(倂列) 上에 하나의 중성입자(中性粒子)

 

양성자 내에서는 내개 묶음의 3 개가 있는 입자의 구성이라고 하는데 

이 내 개라는 것은 

직렬 상의 구조 형태나 병렬 상으로의 구조라는 것으로 설정해 보면 

병렬 상으로 행한다 함은 인묘진이 한 라인의 출발선에 있다고 할 때

寅은 寅申巳亥로

卯는 卯酉子午로

辰은 辰戌丑未로 진행함이 있는데

그 중에 진술축미는 하나의 기운으로 중성자로 통칭이  되는데 

그  중성입자라는 것도 4 개의 성질을 부여됨이 있는 것이 

양자(量子)의 네 개의 구성 요소로 해서 새 개로 합이 될 때 하나의 門이 된다

이 것은 기문둔갑(奇門遁甲)의 기본 구성이다

 

 

척산(尺山)

 

우리가 핼륨의 원자 4 개의 구성은 진술축매(辰戌丑未)인 것으로 하며

산성에 속한다

그리고 알칼리성을 인신사해(寅申四亥), 

전이금속(傳移金屬)을 자오묘유(子午卯酉)로 하는 구성요소인 것을 

이 것을 무게로서 괄호를 만들 수 있음이 전형원소(典型原素)인데 

이 것이 무게로 처지다보면 원소의 族 上으로는 감당이 되나 

원소 주기율 上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 8 주기율이 없다 

즉 인식(認識) 상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세라는 것도 이 원소 7 주기율에  해당하니

중성입자적 접근의 

광물질을 채석하여 순도를 측정하는 차원의 곳이라는 것이다

 

 

대기권적 여과성

 

우리가 대기권을 무지개 색으로 본다면

성운층이 6 주기율이다 

그리고 로켙풍이 5 주기율 

오존층을 4 주기율로 하고 가시광선을 3 주기율로 하는데

즉 6주기율은 下焦의 세계인 것이라 

그의 음란성을 보면 6 주기율의 두께와 탈피성을 알 수 있으며

그 중에 또한 맑음을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5 주기율은 그 섬세성과 인내력으로 탈피성을 보는 것이며

4 주기율은 그 者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 탈피성을 안다 

말이 거친 자는 결코 4 주기율을 넘지 못 한다

결국 그 쪽으로 질이 많이 난 것으로 보아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동승신주(東勝身州) 태어난다고 봐야함이며

3 주기율은 예술성과 문명성인데

너무 사치스러우면 이 3 주기율을 벗어나지 못하니

남섬부주(南贍部州)를 좋아라 쫓아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2 주기율은  섭생의 탐욕을 발달 시킨 것이요 

1 주기율은 태생적 욕망으로 밀고져 하는 것이 있다

치세와 제정에 능하니

결국 그 속성의 맛을 못 잊으면 서쪽의 서우화주(西牛貨州))에 태어나는 것으로 

이 것은 결국 수뇌적 기능을 발달시킨 것이니 

각각 그 일탈성을 보이지 않으면 그리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 것이 일차적 여과품인데

그래도 6 주기율에 많은 복록을 준 것으로 보아 

그 쪽은 많이 즐기는 편이라고나 할까

거의 좌선(坐禪)으로 보는 것이며

즉 金을 海中金으로 찿을 수 있음에서 이며 

7 주기율은 흙에 묻힌 것이라 광부의 땀과 행색을 면치 못하니 

그 일탈성이 두타행이라 매우 힘들기 마련이다

 

 

단백질적 섬유성

 

대기권적 층을 원심분리적으로 실바구리로 감아

方으로 나뉘 놓은 것을 

이 인간세의 四州를 方으로 해 놓은 것을

다시 무지개적 회전층으로 두깨와 상관없이

하나의 点이냥 두텁게 하는 것으로 해서

단백질을 짜는 과정에서 유전형을 조합하는 것으로 

이 것이 중성입자의 상수를 가지는 논리와 다름 없는 것으로

어느 탄생이듯 따르게 되어 있는 끈이라는 것이 있음이니

 

 

내겐 무답이 해답이라는구나 

 

내게 너무 독 오른 저주를 퍼부어대지 마라

그러면 난들 부처라면 치가 떨리지 않겠는가

누가 잘 먹고 흥청망청 한다든가 

요즘이래도 밥구경이라야 김밥이나 응급결이요 

라면과 빵 몇조각이 전부 

라면도 기름기 때문에  하나 감당하기도 버거운데 

그래도 걷다보면 열기가 들뜨니 

그 것 자분하게 한다고 커피나 부어댄 종이컵만 수북하다

눈에는 진물이 나 늘 침침하고

입은 늘 수시로 타고 두통은 바람결처럼 왔다 사라지고

그래도 눈 하나 까딱 않는 게 부처요

도리어 나무랄 일 많은 것이 부처로구나

한 쪽으로 힘들다고 하면 도리어 반쪽으로 몰아세우니

혹 하나 떼려다 혹 하나 더 붙이는 꼴이니

그러고도 내겐 무답이 해답이라는구나 

한 마디면 그로 산통 다 깨지는 듯이 하는구나

그러니 내게 너무 독오른 저주를 퍼부지는 마라 

그러면 난들 부처라면 치가 떨리지 않겠는가

 

 

進神이 갖는 특성

 

食神이 進神이면 짐승이 늘어나는 현상인에

식신이 胎이면 짐승이 새끼를 밴 것이다 

식신이 生財면 짐승이 돈이 되는 형국이나

胎가 발동이면서 財를 生하면 

새끼를 낳아 돈을 만든 것이라고 봐야 함이다

식신이 진신이면 사람에겐 손자가 되는 것이다

 

 

원소 주기율 상의 이목구비의 두각성

 

원소주기율의 악티늄 족은 곧 코에 해당하는 신경선인데

물론 그 族 內에서의 부여야 어떻든

코는 천상계가 원소주기율 7까지로 무거워질 때

붉거져 나오는 것으로서

이 시공 간에서의 인물이어야 코가 높아졌다 낮아졌다는 하는 것으로 

미세먼지가 침투하는 루트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는 것이니

이 것은 나름의 六毒에 대한 진화의 방어벽과 같은 형태를 이룬 것으로

土生金의 거부감을 갖지 못하는 루트로 통과하는 심각성이 될 수 있음이다

그리고 란탄 족은 귀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 쪽으로 발달시키는 특성을 가진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도 삼천 위에 삼천이 있듯 

우리의  관상이라는 것도 오행 속에 오행이 있는 것으로

안이비설신 속에 또 분별의 오행이 있는 것인데 

의식까지 합하여 주역의 육효와 맞물리는 것으로

우리가 얼굴을 거울이라고 할 때 

빛으로 눈으로 몰리고 냄새는 코로 몰리고 

맛은 입으로 몰리는데 이는 얼굴이라는 면이 

꼭 빛의 그림자만 내비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원소 2 주기율인 영역이라면

육부를 중심으로 오장을 끼는 오행은 7 주기율에 있는 것이다

즉 배를 곤토라고 하지만 

음식은 산이 붕괴되는 듯이 하는 것이니 

이 것이 건곤의 내외적 주관을 말하는 것이다

즉 원소 2 주기율은 건의 택화에서 이뤄진 작용이고

7 지기율은 자발성이 없는 8 주기율의 7 주기율로서 

끌어올림에 그 존재감을 알 수 있는 그런 차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육안으로 천상계를 다 볼 수 있다함은 

얼굴에도 육십갑자를 돌고 나면 

다시 원심의 테두리로 돌아 운행을 하는데

약간의 처진 무게를 먹으로 삼아 

인간의 주름띠를 따라 둥글게 그리는 것과 같다

즉 육십 겁을 두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 된다  

 

 

받침과 추진력

 

정적(靜的)인 속성이 강하게 체증(滯症)을 가지면

자연 행위적으로 움직임에 해방감을 갖게 하는 것으로

병(病)과 약(藥)의 관계를 항상 떨구질 않음으로서

그 과정을 습득하는 실행력의 육체적 곡절이라는 것은

산(酸)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

행위가 酸으로서 미치는 영향을 볼 때

행위를 오래 끌어낼 수 있음이

酸의 소화력을 더디게 하고

행위로서 풀지 않으면 제증과 같이 느끼게 되어 있는

본능과 같은 것으로 하는

어쩜 상대적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것으로서

이는 장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팽창성은 줄면서 자기가 퍼지듯 하는 확장성과

마치 인산확대술같은 것

이 것이 사고의 정적이라는 것으로

動的인 상황에도 철분이나 미네럴이

자연적으로 신경계를 차분하게 하는 것으로서

이 것이 부족하면 심리적 불안정을 갖다 줄 수 요건이 된다는 것

곧 팽창되어 가면서 더욱 더 안정성을 갖추어

생각의 능력과 두뇌적 활동에 너무 신경을 건드리는 자각이나

부단한 행위의 유발의 자제가 본능적으로 다른다고 봐야할

즉 원심에서 내적으로 접근하는 법과

구심에서 외적 실함으로 접금하는 것

그 요소를 생성함으로서의

매우 정적인 집중력으로 극복되어야 할 것과의 상호 대칭성을 띠며

균형을 맞춰 나가는 것이다

즉 시소가 원소 2 주기율이라면

이 것이 선상의 사이를 의미하면 선의 차원일 때

본다와 보았다의 의미는 입체적 차원의

눈의 렌즈와 망각의 구성으로 열리는 3 주기율과 같다는 것이다

 

 

왜 靈만이 아닌 영혼(靈魂)인 것이며 또 혼백(魂魄)인 것인가

 

왜 靈만이 아닌 靈魂인 것이며 또 魂魄인 것인가

이는 곧 영,혼,백(靈,魂,魄)인 三段으로 된 6爻에

호괘(互卦)가 되어 영혼 쪽으로 뵝는 것도 같고

혼백 쪽으로 보이는 것도 같은데

다만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 다뤄도 설명은 되어진다는 것이다

魂이한 玄이 다되지 못한 회색같은 상태라고 봄인데

두뇌 뿐만 아니라 오장(五臟)에도 그 기억의 소재가 됨이 있고

六親의 天上性도 있으니

자연 魄이란 얼굴 택인 것으로서 

모든 이목구비가 스스로 적자적(適者的) 성장을 한 것으로, 

중심을 끄는 것이라 매우 원심적인 것으로서 해서

흩어지며 강가에 모래처럼 쌓였을 때의 

전위원소만의 배열에 8 族에 해당하는 것과 같다

곧 모래가 흰 만큼 魄도 흰 것이요 

그림자가 있는 것만큼 정기를 끌어 모을 때 

그 사이 회색이 아닌 칼라로 창조되듯 일어나는 것으로서

흑백에서 칼라로 수화기제(水火旣濟)에서 일어난다

 

 물을 가르고 오는  전륜성왕

 

도리천과 인간세계가

천상 하루 사이로 들끓을려면 

년주(年珠)를 百으로 꿴 영주(念珠)를 던져 넣은 것으로 

이 百의 염주적 눈금으로 물로 한다

이 것을 전륜성왕적 프라즈마 상태라 함인데

마음의 미동만으로도 밀고 밀림이 있다  

이 안의 힘으로는 물을 물리질 못하는 것이지만 

이 밖의 힘이면 물을 물릴 수 있다

또한 -274 도이면 사물의 기본 0도라고 하는데 

이 것을 원소 6 주기율 상으로서

얼음이 결정체가 된 눈금의 단위만큼

물질적 결정을 이룸과 같은 것으로 7 주기율적으로 

원소적 성향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음이다 

즉 水가 金으로서의

도면적 고정형일 때 눈이 심어진 듯이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모든 원소를 이룬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눈이 숨쉬는 것은 코가 아니라 눈인 것이다

 

나무의 꽃별은 물의 꽃별보다 오래 간다

금의 꽃은 스스로 늘여준 공간이 꽃이다

즉 눈이 숨쉬는 것은 코가 아니라 눈인 것이다

곧 물이 얼음이 되면 0 이라는 눈을 넘으니

이미 자기장적 응축의 눈을 가진다는 것으로

얼음에 바람이 든 것은

마치 공기방울도 둥글듯 눈이 되는 것이다

즉 공기는 기의 눈이지만 

눈은 영의 눈을 갖는다는 것과 같다 

 

 

심장이 피우는 꽃, 그 우주의 신비

 

허공에도 房과 室이 있는 듯

심장도 房과 室을 기본으로 하는,

서로 교환 상간에 보였다 아니 보였다 하는 듯이

빛이란 것은 사라졌다 나타나기도 하는 것

두 시공의 손바닥 뒤집기 같은 것

反物質은 室에서 다했는지 房에서 다했는지

불이 스타게이틑 열였는데

앞은 실이고 뒤는 방이더라

그 사이 귀신은 타 죽을까 못 드나드는 것인지

전극이 한 번 튈 때마다 꽃은 절로 피는 것이 심장

봉오리 맺고 피어나는 것

역설적으로 모래시계적 문이라면

오늘 하루가 맞물리며 짜는 것은

저 도리천을 劫束으로 말아 뽑아낸 시를 

ㄹ로 길게 빼 바느질 하는 것  

 

 

나무는 심장인 북으로 나이테를 만든다

 

왜 북쪽을 북이라고 했을까

어쩜 위치 상으로 가장 북채의 힘을 많이 받는 것이

북쪽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남쪽이 갗이 울리고

그리고 터지고 갈라지니 정류자에 몰리니

퍼지는 물결을 한쪽으로 몰아 선을 이루니

그렇게 나무는 시게의 눈금처럼 서 었을 때 

눈금의 벽으로 초침을 맞는 것  

벼가 당도 했으니 되질을 하라는 것같이

한 터울 굵어지는 벽으로 쌓이는 禾

少年가 크네

少女가 크네 

화변(禾邊)에 少여! 

풀 한포기 같은 똥배도 부드러운 것

위로 솟으니 나무

해마다 늘려진 시공을 머금고 크는 나무

 

 

金의 주조적 차원의 용해같이 크는 나무

 

震雷가 木이 되는 것은 물이 얼음이 되는 것과 같고

巽風은 넝쿨이 되는 것과 같지만

모든 것은 金의 눈금으로 우겨넣은  것을

그 설계대로 펴지는 원소와 같은 것

 

 

水盡火와 火盡水

 

火는 水를 다듬으며

완전 연소된 확장의 영역이 天上界란 것이니

水에 시공이 있다함은

水素에 시공이 있다함인데

 

 

時間差의 空界

 

원소주기율 상의 눈금이라는 것은

그 눈금마다에 다른 성격이을 매김할 수 있는 범주라는 것이 

오차 없는 눈금 상의 위치로서 달라지는 유형이라는 것이

그 더해진 눈금의 수리만큼 성격을 이루는 것이면

그 이유는 전의 숫자의 량이 받쳐진 것에서

시공적으로 사라지는 것에서

점첨된 지금의 숫자로만 봄을 말하는 것과

만일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면 

밑에서 점첨적으로 받쳐진 곳에 머뭄에서 드러내는 것  

그리고 같은 량이 나는 구멍인 것에도

다른 질량이나 성향이 능동성을 갖고

인식적 차원으로 들어선 것

그리고 여긴 같은 눈금이나

같은 눈금 사이임에도 다른 폭을 가질 수 있는 기능으로

출구를 열어 놓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겨울 사이로 天女가 아이를 밴다

 

雷는 木인 것이니

이 것도 0의 기점으로 두드러지는 특성이라는 것은

가을에 그 뻗음이 멈췄다가 

봄에 다시 새순이 남을 이미 다하고

다시 옴의 경우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니

한 층이 얼면

다시 윗 층이 쌓이듯

층이 구만 리  

그 사이 女가 아이를 낳는구나

 

 

제로섬의 법칙

 

산은 되돌아감에 제 모습을 찾는 것 

산을 뽑으면 못을 뽑음만 같다

산이 부러져 못인 것 

아! 마차여! 못의 화살표를 타니 산이로구나

 

 

칠보(七寶)와 인간의 수명, 원소 주기율과 얼굴 

 

인간의 운명이 행하는 도표를 보자면 

먼저 이모구비를 그리고 나중에 얼굴 테두리는 그리는데 

이 것이 보석이 이라고 

한 라인을 그을 운행 때마다 10 년과 같은 보석 하나

동그라미를 그리려다 무심코 이목구비부터 먼저 갔는 듯

10 년마다 한 주기율 70 년이 되니 동그라미를 끝으로 그린다

막상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고 보니 방초는 간곳이 없고

다 무너진 담벼락같이 머리는 벗겨지고 눈만 낀 바위산

우라늄! 

그 고약해도 경험의 점철이면 쓰임도

늙은이의 대머리에 있어 빛나지만 자리지만 

가발과 모식으로 처음의 그리려든 그림으로서 

허물어지지 않아야 햘 원소 7 주기율의 자리

그래도 다 여기까지로 해 칠보라 

보석도 다 마음의 보석이 아니든가

 

 

시간과 씨와 씨아

 

우리가 어떤 경계로서 실을 뺄 때 

물고기 알처럼 고갱이 상으로 솟 듯 나오는 것도 있는 것이요 

새알의 태눈처럼 껍질인 변두리에서 안으로 쪼으는 것도 있는 것이요 

원소 2 주기율을 입이라고 할 때 입 口인 것이요

원소 3 주기율을 감는 눈이라고 할 때 날 日인 것이요

즉 빛은 떳다 감았다 하는 찰라적 거풀이 있기에 눈감기는 것이요

그러니 심장의 실과 벽과 같은 것이요 

시공의 벽에서 서로 티가 되는 것을 닦는 것이요

그럼 오늘 하루로서 눈으로 할 때 

이미 저 도리천은 설탕이 솜사탕이 된 것이니

다시 시를 분으로 열어 초에  심어 경작함이 어디메뇨

고로 하루면 도리천을 실로 뽑아 수를 놓음이 수평과 같으니 

기왕이며 유정천을 넘어 불국토를 심어 그 바탕이 되게 함이 어떠할지

이를 도리천적 차원으로 보자면     

우리는 천상의 천 년 묵은 이무기보다

이승의 이무기가 훨씬 나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지상의 천 년 호홉을 맞추려면 

얼마나 빠른 심장이 뛰어야 하는가를 

최소한 도리천만 하더라도 

심장이 일 초에 100 번을 뛴다고 하더라도

겨우 인간게와 한 차원 달리 올려 놓은 것으로서

실을 뽑아 올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뭐 이승이 좀 씨아노릇을 한다고나 할까

 

 

동서남북의 기하학적 형태 

 

소리가 울리면 

소리의 나무는 북쪽의 물을 들이키고 

남쪽에서 남인 듯이 꽂을 피운다

그런데 이 양끝이 막대가 아닌 

말발굽형으로 휜 자석과 같음이 인간이다

왜 그 것을 아는가 

이목구비, 팔, 다리가 다 두 개임을 보고 안다

DNA가 그러함으로 알며

대,소변을 한 자리로 모아놓음을 보고 안다

 

 

칠보(七寶)

 

전에도 보인 바 있는

 

 四

111

111

 11

 11

 一

아래는 몸인 3과 위의 머리인 4와 합하여 7 

이를 七寶라 함이라

 

 

북을 치면

 

북을 치면 안 보여도 아는 것이 있다

친 쪽 반대편에는 똥이 나온다는 것이요 

이 것 나온 것 본 자는 부처일 것이요 

소리가 뭉쳐져 나오는 것은 욕,색계(欲,色界)

고요함 속에서 탁을 보았다 無色界 

 

 

절박감이란 무엇일까

 

포도주 한 잔에도 성스러운 피의 헌신

그 절박감을 기리며 마시는 것이듯

우린 과연 고기를

마치 오지에 떨어져

인육을 먹는 듯이 절박감으로 먹는 것이든가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인간은 술 한 잔을 들이킬 여유는 되는 것에서

짐승보다 나은 차원에서 감사할 일이고  

고기는 이미 인간과 인과가 없는 다른 차원이어서?

 

 

추녀는 고개 처들고

 

이유 많은 까치

등과 배가 밤낮 

뒤척였음인가 

처마 밑엔 고드름

처마 밑엔 빗방울

그래도 당최 오리무중  

추녀는 <?>에 내밀어 고개 처들고

까?

까? 

 

 

저 못 웅덩이 못을 빼달라는 것일까

 

부모란 것이 비가 올 것같으면 허리가 도지는 것이 있는 것이든가 

개구리도 벌써 한 마리가 먼저 우는 듯이 하면 떼가 퍼져나간다

한 마리가 웅덩에 불쑥 뛰어들면 떼지어 뛰어드는 걸 보니

내가 무심결에 또 지났나보다

사는 게 비와 같아 나이먹을수록 눈물은 왜 그리 많아지는지

조금만 슬픈 드라마를 봐도 눈물이 줄줄 수도 꼭지 같고

개그라고 봐도 희죽 따라 잘 웃는 걸보면 

참으로 사는 게 이렇게 가벼운 것인가 싶기도 하고 

이젠 나도 애가 다 되었는가 싶기도 하는 것

울음도 울음 뿐인 것 같고 

웃음도 웃음의 뿐인 것같고

아무 생각이 없다 

그런데 꼭 웃음도 울음도 아니다 싶건만

비가 올 듯이 하면 울어대기 시그널이

또 내가 지나는 길인가   

왠 걸 개구리가 무더기로 뛰어들어 한 웅덩이다 

저 웅덩이 못을 빼달라는 것일까 

작은 못이라도 파도를 파도라고 해야 하고 

정안수는 정안수라고 해야 고요히 생각도 미치는 것에 

난 그만 입을 다문다 

못을 깨고 보면 

저 개구리도 입을 다문

다 한 때의 무더기로 던진 돌팔매질의 돌이였음을,

돌에도 마음이 실려 입이 열린 것이니 

업이란 것이 갑자기 탈바꿈되는 것도 아닌 것이니

다 관성의 법칙에서 정화되는 것이니 못조차 맑은 것 

원소 주기율의 알맹이 하나 1 건천(乾天)에서

2 태택(兌澤)으로 이미 입이 열려 그런 걸

역시 입은 입으로 몰리니 웅덩이 입이로다 

그 것이 절대 아니라고! 그럼 엉덩이 입인가

 

 

!과 ?

 

이 한 방울의 의미는

배가 불렀던 의미는

!

이 한 자국의 의미는

두 개일 때의 의미는      

 

 

긍정의 힘 

 

긍정의 힘이란 것은 

그래도 상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그 자리가 그 자리가 되는 것이고 

자신이 자신이 되는 것이다 

만일 너무 부정적이면 결국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 

상대의 전철을 밟게 되는 수순과 같은 것이 된다 

즉 어차피 눈앞의 인연이 수순이지 않겠는가

우리가 적대적이라는 것도 어떤 상황이 적대적이라는 것보다 

품성자체가 직접적인든 간접적이든 형성 되어 있는 것으로 적대적이어서

적대적으로 모는 경우를 많이는 보는 것이라 

그렇게 부정적인 것이 좋아보이지도 않는 것을

굳이 좋아할 어리석음을 못 버릴 이유야 없지 않은가

 

 

추녀

 

처마는 남자의 그늘 

치마는 여자의 그늘 

처마를 살짝 열어 보고 

눈썹 치켜보는 그녀 

고드름이 벙긋이 터지는 봄 

땅도 몰라라 

하늘도 몰라라

지난 가을의

 

 

풍경

 

추녀의 눈끝에

물고기가 선명하게 지난다

水宮에 사는

물방울과  같은 살결

만지기도 어려운

만지면 그대로 적시듯

다 스며들고 말아도

한 방울 어데 없어지지도 않은 번짐

추녀의 눈에

물고기도 눈이 그렇게 영글어 지난다

사는 곳간을 두어야겠고

장작개비도 쌓여야겠고

태초가 지나간다

미생전본래면목(未生前本來面目)이 지나간다

 

 

관상에 있어서의 물리학적 인연

 

예를 들면

일본이 원전 사고가 났을 때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이마 꼭대기에 찰색이 되게 함이 있을 것인 바

이 건 상학적으로 天中의 위라는 것이나

역마성의 주변성으로 볼 수 있는 것에서도

인위적 판단의 성향이나

인체병리학적 작용을 떠나

물리학적 차원의 인연이 되는 고리를

원소적으로 매김해 찾아볼 수 있음과 같다

 

 

접시 사라다가 되어도 할 수 없지

 

그렇게 설명이 되었는데도 모른다?

무슨 젖먹이 이유식하는 듯이

입에 자근자근 씹어 넣어주어야 하나

두 주자 중에

정효(靜爻)가 衝이면 분명 대기자 명단에 있다

동료(動爻)가 衝이어야 선발이었다가 교체된다

이 것이 空亡이면 권리의 부여

財이면 체력 저하의 문제

父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

즉 팀웤의 문제로 인해서

官이면 경고누적의 문제로

兄이면 함께 골고루 활용하는 범위에서

孫이면 간혹 경기장에 금수(禽獸)가 뛰어들어 중단됨이요

선수의 개인적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굳이 누구라 물을 이유도 없거니와

경쟁의 문제라면 이미 當落이 결정된 것이 아니든가

이것은 천기(天機)다

허나 왜 노출시키는가

이젠 주역과 동양철학의 진수를

확연히 해 둘 필요성에 의해서 인데

이젠  人事만이 전부가 못 되기 때문이다

물질과 과학적 이론에

좀 더 영적(靈的)인 구체화의 접근성이 긴요해서 인데

인문적 유정성(有情性) 뿐만 아니

물리적 무정성(無情性)마져 드러낼 수 있어야 함이다

즉 차원 높게 발견할 기틀을 놓아야 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학문이든 무엇이든 좋은 인연이면 훌륭한 인물이 됨이니

 

 

마음의 집

 

붉기도 해라 붉은 처마 한 폭

푸르기도 해라 푸른 처마 한 폭

검기도 해라 검은 처마 한 폭

마음 아래 방

부엌엔 억수로 많은 배불뚝

억의 ㄱ을 반으로 갈라 ㅋ

뭐 한 오천만이어도 좋은 인구

주걱으로 푼다 긁는다

내 님은 얼굴이 옥과 같아

숲의 향기를 베어 문듯

잎새만 살랑 스치인 듯 지난다

 

 

ㅇ의 손바닥

 

본래 0은 하드 디스크라는 것이요

ㄹ은 소프트 웨어

하드 디스크는 맨들할 뿐인 듯이 하지만

도톨도톨이 심어진 요철 있는 소프트웨어

도톨<이> 字의 0이 빨아들여 도토<리>

ㄹ이 손오공처럼 잘 나도

허나 0의 손바닥

 

 

마음의 무게

 

낱말의 토괴(土塊)와 수연성(水軟性)

누군 내게 土塊的 모가 났다고

어지간히도 부드럼을 떤다만

입방아도 어지간하니

없는 모괴(模塊)도 더 섬세가 난다만

그들은 스스로 水血性을 응괴(凝塊)로 몰아가니

경색(硬塞)이 될까 두려운 것이 아니든가

 

 

물방울 다이아몬드보다도 고귀하고 숭고한

 

두 귀 합해 14 년

아! 고구려 적 연인의 동거울 조각 맞추기이든가

하트가 되었다

이젠 사랑을 알 나이

그 사이의 공간으로서의 사회를 품는다

지학(志學) 

아! 7의 火가 붉었구나

두 개가 합하면 물방울 하나 

사랑을 알 나이 

물방울 다아아몬드보다도 고귀하고 엄숙한,

귀! 

그 듣는 것만으로 소중한

그래! 말할 나이가 아닌 

지학을 소중히 담을 그릇을 만드는 시간

이 물음표의 배를 채워

한 발울 씩 물을 수 있는 養水를 자신의 배로 채우는 시간

귀!

이 물음표의 한방울을 위하여

     

 

귀 

 

귀라는 것은 양 쪽을 합해 두 귀라고는 않는다네 

이미 이 귀라는 字型이

기도의 祈를

ㄱ 아래 ㄱ이  합해 구型 되어 귀라는 것이니

 

 

우린 초승달의 테두리를 돌았어도 둥글게 지났다고 할 뿐

 

우린 시계가 돌아간다고 한다 

허나 돌아가는 것은 없고

한 줄일 뿐이다

한 번으로 배불룩한 언덕인 면으로 간 듯 하더니 

다시 홀쭉 패인 면으로 가는

우린 줄 하나에 그런 형상을 드러내는 겉면을 따라 갔을 뿐 

엄밀히 보자면 돈 것은 아닌 것

그저 길을 지나다가

골짝으로 지나다가 다시 턱으로 지나다가 할 뿐      

우린 초승달의 테두리를 돌았어도 둥글게 지났다고 할 뿐

또한 줄이라고 하나 줄 또한 아니 것 

즉 공에 태두리를 보는 것

그렇다고 내가 공을 채운 것이 아니라

空이 그렇게 부풀어 두꺼웠다 가늘었다 했을 뿐의

돈 것은 時가 아니라고

새는 흰자 밖에서 눈이 나고  

돈 것은 月이 아니라고 또 月을 차고 나오는 것

 

 

지신(地神)도 욕심이 많으면 용암(鎔岩)도 남아나지 않을

 

아! 7인 午의 씨앗인 성단(星團)

태양은 곧 7

두 태양이 융합을 일으키니

하나 사이로 양 7

경혈(經穴)을 일으킨다

알리니 

서서히 더깨의 자리로 돌아가면 

저 붉은 태양이 용암처럼 흐르리라는 것을

본래 혈이란 용암이 넘치기 전의 

마그마가 지날 자리 

地神이 욕심이 많으면 용암도 남아나지 않을 것

이 것이 정수리에 모여 동그라미를 그리니 

원소 1 주기율이요 

현무암 곰보 얼굴이다 이 것도 짝을 이루니 

원소 주기율 2인 澤에 이목구비라 

다시 3 주기율인  30 대인 눈엔 불꽃이 일고 

40 주기율엔 관골이 솟고

어쩜 폼 제일 잘 나 

인생 무대 배우임조차 잊은 듯이 

가일층일수록 난지 더 모를 광대빨 

5 주기율엔 이상하다

바람이 사디(四肢)를 트는 몸인 土에서 나오는, 

고목에 생가지와 같이 나오는 말들, 이야기들 

이 바람이 볼의 주름을 밀어낸다 

곧  물주름인 것인 것 

왜 볼이라고 했을 인연도 있음일까

수소 하나의 볼로 한다는 것은 아닐까 

이 것이 빙긋이 쪼개면 다시 2 주기율인 澤같은,

3 주기율인 혀가 말머리같이 하면 

4 주기율인 턱이 강하고도 단단하게 함과 같은 

이는 한 주기율의 선상으로 있는 것이라

주기율로 볼 것이 아니라

6 주기율인 水의 族象으로 봄이 타당함의

70 세 이후부터는 다시 정수리까지 올라가 본다 

과연 수미산을 넘을 수 있을지

산은 거칠고 산사태처럼 허물어 지는 것에

이 7까지로 해 7인 恒星의 火

다시 坎水로 돌아가는 水素 하나의 법칙

다시 山을 만들고 山을 녹인다

 

 

왜 <묻다>가 현재진행형이면 <물음>이라는 字에 <ㄹ>인 받침인 것인가 

 

물이 물음이라면

불은 대답과 같은 것이냐 

그 것은 아니다 

불은 물음이 더 뿔난 불음일 뿐이다

물이란 것도

묻다의 ㄷ에

ㄱ 자를 올려 놓고 순서대로 하는 것 

마치 수소인 ㄷ에 

원소 주기율은 올려 놓고 수학적으로 가는 것 

한글은 ㄱ,ㄴ ,ㄷ ,ㄹ로 가는 것  

 

 

 

한글 순서대로의 행위 

 

ㄱ은 고목의 입 천정을 장작 패듯 나오게 하는 것이다 

불이 ㄴ은 나오는 듯이 나는 듯이

ㄷ은 ㄴ에 더 살이 돋아 붙은 듯이 

ㄹ은 ㄷ으로 알을 배고서도은

더욱 더 꼬리를 치는 불길과 같이 하는

그러다 호수가 물에 번져 가니 

파도가 물고 물리어 감에

꼭 둥글게만 찬다든가 네모나게도 찬 소리라 ㅁ 

거기에 더 불고 불어 일으킨 파도도 ㅁ에 ㅂ 

이에 물이 불이요 불이 물이 되도록 다하리니

물과 불이 다하면 스치는 소리가 스스스할 뿐이라 ㅅ

파도 소리가 쏴! 쏴! 골짝이 감쌈이 쌈소리라고,

모래 소리는 사각사각 부비는 소리가 그러하니 

소리인지 소리가 아닌지 땅은 하박하박할 뿐이라 ㅎ

 

 

허파 속엔 반음이 있다네

 

허파 속엔 반음이 있다네 

온 발자국을 가다 

반음으로 귀기울이는 파가 있다네 

이 찰라에도 브러시가 열리는 듯 

잎새 흘들리는 골짝 마져 싹 비우는 듯 

그윽함이 있다네 

생명은 북처럼 심장이 뛰는 것 

가슴이 벅찰 땐 같이 뛰어 주어야 하는 것 

분노에도 함께 뛰어며 스스로 풀어가는 것 

단풍은 미에 아름답고 파에 그윽함 법

삶은 심장처럼 내몰리기도 하고 

허파처럼 내몰리기도 하는 것 

 

 

왜 파에 반음이여야 했는가 

 

본래 땅바닥부터 1로 해 3까지의 어깨 선과 

턱이 반음 나온 상태에서 四象을 두기 때문에 

합하여 한 몸인 칠보인 것이 

애가 태반에 동그런 구슬이듯 한 형상으로 

상하로 함에 눈사람과 같은 인체의 기본 소리

또한 얼굴 兌金이 後天數로 四이 것 

이 것을 목이 있는 모래시계마냥 

대칭성이 또한 兌金인 폐(肺)가 됨이라

 

 

차가움의 일면이 단풍을 일찍 보게 한다

 

왜 이 폐라는 글자가 市인가 

이는 곧 풀이 없다는 것이요 

유리요 철이요 콘크리트와 같다는 것이요 

매운 구석이 있다 

그리고 심장은 늘 불탄다 

즉 가슴은 도시의 형상이요

도시의 전형이니 市이다

결국 원소 4주기율 이하를 먹는

채식과 육식을 곁들이는 섭생이지만

나중에 원소 3 주기율이 2 주기율을 억제해 

우리의 몸도 도시형이 되어 장수를 하리라는 것인데

그래도 섭행은 그대로라는 것에 신기함이 더 남는다  

즉 가슴의 심장의 불길에 쇠붙이가 든 것이다

용광로인 것이다

둥글게

네온은 저녁 노을이 차고 들어온 듯이

계절이 무심하다 싶을 땐 

봄과 가을이 없이 여름이고 겨울이듯이

도시가 저녁 불길부터 단풍인 것은

불길이 조급해서라기보다 

어둠이 조급하고 찬 바람이 조급해서이니

밤깊은 사랑의 뒤끝에는 차가움과 비정함이 

늘 그 자리인 것이 되더라 

 

 

원소 1 주기율

 

머리란 금과 같기에 

무의식과 의식 냉정하게 따오기 마련이며

사고의 혼탁을 싫어하는 것으로 맑은 기본인 것

즉 1 주기율과 2 주기율에서 따옴이라

본래 건금이란 그 기의 상황이 어떻든

둥글다고 하나 형태를 구심점있게 유지하는 것에 있음이다

이 것은 2 주기율인 파편이 된 金을 용해해

1 주기율인 이슬같은 금을 만든다

이 것이 액체이든 고체이든 기체이든 중요함이 아니라

그 둥글게 하나라는 것에 역점이 있는데

그 형체를 초월한 것이어야 1이 됨과 같은 것이다

이 것이 불꽃의 거푸집을 밀어내고 다시 채워 들다보니

별빛 하나의 단위로 쏟아진다

 

 

관살(官殺) 묘미(妙美)

 

六爻에 있어서의 官殺이라는 것이

자신을 제지하고 통제하기에 관살이라 하는 것으로

반환점적으로 마주하는 시점인 것이요

역설적인 것이요 반증적인 것을 말하기에 

질병이 되는 것이기도 한다는 것으로

운동경기만 하더라도

官空이 發動하여 제지를 받으면

헐리우드 액션으로 경고를 받는 것이며

일상적으로

그 것이 財로 化하여 財가 衝을 맞으면

꾀병으로 보험금이 삭제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父가 空亡인데 官으로 化하면

문서를 꼼꼼이 챙겨야 한다

특히 도둑이나 사기꾼이

관행적으로 생략이 된 코스에 들어 훔치고 달아나니

결국 책임은 그 관문을 지키는 자가 져야한다

그리고 사람을 지목해야 한다면 분명 시험을 치르지 않고

서류 상으로 패스하지 않은 자의 소행이다

 

 

공망의 발동

 

보통 공망이 발동하면

그 공망이 차는 날 응기가 되면 좋지만

그렇게 나타내는 것이 아닐 경우가 많다

공망일 경우 應期가 

동효를 먼저 잡느냐 공망을 먼저 잡느냐를 확실히 해야

응기도 알차지는 법이다

그리고 공망이면 먼저 자신의 부실을 한 번 점검해야 한다

약속을 했다면 약속 시간의 착각이든가

수치라면 분명 착오가 있다

진신이 공망이라면 한 치가 어긋나면 천 리가 어긋난다

그러니 자신이 나아가는 길을 택해서는 안 되며

또한 자신이 가야 할 곳에서 오게 해서도 안된다

줄이나 전열 상의 부실을 찾아봐야 함이다

 

 

이승에서의 탄생과 天上에서의 탄생

 

우리가 이승의 運行의 面的인 단위는

10 곱하기 10의 100으로 함인데

즉 열 달의 임신으로 하나의 點으로 할 때

다시 해로 10 년으로 깔아 1 차원으로 한다

그리고 다시 10을 곱해 100으로 함으로 

2 차원적 인생수판(人生繡版)을 놓았다는 것이요 

그리고 원소들의 우주는 7의  임신으로 낳는데

그를 그대로 적용하면

칠칠이 사십구의 주기율的 7까지의 線으로 1 차원적 수와

팔팔이 육십사의 8 족까으로서의 평면성을 남기는 것과

하니면 혼용으로서 족과 주기율을 곱해

칠칠이 사십구로서 족 상으로 하나가 남는 것으로 

옷으로 한다는 것으로 생리적이요 생체학적일 수 있음인데

이를 원소주기율 상의 시공적 임신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칠칠이 사십구는 맨몸일 때의 2  차원인 것이요

거기에 8 족의 위치를 갖고 의상으로 할 수 있으니

이는 곧 낳자마자 7 살이 된 상태라는 것이요

나무의 관절처럼 낳는 것에서

나이테를 파로처럼  껍질 쪽으로 몰아

무지개 차원의 의상이 되어진 그 것으로서의 탄생으로서 할 때의

7의 기본성과 달리

입은 상태의 문명적 차원에서의 옷과 학문의 사회적 범위로 볼 때는 

8을 하나의 점으로 하며 팔팔이 육십사 됨으로서

8의 1차원적 선(線)으로 다시 8로 2 차원적으로 한다

이로서 文理와 思考의 영역을 입혀 일어나는 시공이 열려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렇게 역괘(易卦) 상(象)으로 낳는 것이

天上界와 이승이 함깨하는 의식이 입혀진 듯이 하는 것

먼저 3 차원적 입체성을 상상할 수 있겠으나

수리(數理) 上의 전개를 보면

아직 층(層)이라는 성격의 면적으로서

繡를 놓아가는 진행성으로 보는 것으로 더 합당하다고 봐야할 것이다

즉 칠칠이 사십구는 맨몸인 영혼의 차원으로 할 때

팔팔이 육십사는 시공의 기본 차원

그리고 구구 팔심일을 땅의 차원 혹성의 차원으로 할 때

십과 십의 백은 인간의 탄생과 맞물린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공망(空亡)의 정수(精髓)

 

우리가 주역이라는 학문이

天上線과 동일 선상으로 가는 것이냐

따로 병행해 가는 것이냐가

DNA의 RNA로의 변환일 때 

한 줄을 취용하는 것에서 징검다리로서 양 발을 떼는 것이냐인데 

이 것은 알려면 공망을 잘 관찰해야 햔다

즉 공망을 천상성의 다른 차원으로,

공망 아닌 것은 이승적 차원으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공망을 천상성과 이승성으로 함께 보느냐에 따라

그 일체성과 병행성을 볼 수 있는데

왜 이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냐 하면

DNA가 공망적 분리가 될 때

RNA적 작용의 변화를 분석할 판단의 기준을 세움에 있어서는 중요한 부분인 것으로

空亡의 진수(眞髓)라 할 것이다

이 것은 결국

우리 몸에서 단백질 합성이 일어날 때 이미

그 화학적 구성의 변화를 보고도

그 인과(因果)의 업연(業緣)을 알 수 있음의 차원인 것이다

 

 

동정론(動靜論)

 

같은 爻가 한 쪽이 動할 때는 動靜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

만일  동효가 衝을 당한 데

달리기 선수나 말이 이런 卦를 얻으면

부정 출발로  실격을 당하는 수가 있다

그리고 動爻가 충산(衝散)이 되면

먼저 휘슬을 분 심판의 판정이 번복되는 수가 있다

그리고 두 개의 같은 爻 중에

한 쪽이 퇴신(退神)이 되어 자신을 극하면

필름을 재생하여 다시 판독하게 되어 지게 된다

나의 이러한 섬세한 유산은 누구든 일상적 환경 뿐 아니라

병리학적 관찰이나 약리학적 탐구에 있어 금옥과 같이 쓰여져야 할 것이다

 

 

병리학

 

보통 재(財)가 관공(官空)으로 빠지면

남자가 혼수를 못마땅하게 여기든가

아니면 아에 관심이 없든가 하는 것인데

질병으로 보면

자신의 몸을 이룰 수 있는 영양분의 통로를 차단하고 있다

이 통과성을 정복해야 치유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즉 병자체가 커나가면서 약리적 관찰이 되어야 하는데

스스로 성장이 멈추든가 순식간성 때문에 발견이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당연(當然)이라는 말

 

본래 당연이라는 말은 앞 의도에 상대성인 것으로

즉 응당(應當)으로서 나타나야 하는 것을 말함인데

이 應 쪽이 空亡이면서 衝되면

맞은 편의 사람이 충원(充員)되어야 하거나 물건이 준비가 되어야

이 쪽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기미인 것이다

즉 주제를 내놓으면

객이나 손님이 없으면 취소가 될 수 있는 취지를 담고 있는데 

충원이 됨으로서 공연이  됨과 같다고 할 수 있다

應이 空이면 이미 커트 라인을 벗어났을 수 있으며

자신은 규정껏 잘 했으나

기록이 되지 않았던가 시선이 빼았겼던가 증명이 안 될 경우이다

혼자만 쑈를 한 것이기에 再出發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며

상대방의 귀책 사유에 의한다고 보는 것이다

 

 

개가 불성이 있느냐의 요체

 

우리가 三界를 알고져 하면

먼저 空亡을 잘 두루치기 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걸 잘 관찰하면

그 神이 지금 어느 天上界에 있는가를 손바닥 보듯이 볼 수 있다

우린 왜 개가 불성이 있느냐를 따지느냐?

보통 천상이라면 살기 좋고

時空이 광활하고

특히나 자각도 물리지 않는 듯 

염두에 조차 둘 비교급도 안 되는데

왜 인간에게 佛性의 가치를 강조함으로 해서

天上性과의 엄청난 차이로 도리어 떫떠름하게 하는가는,

그 모순성과 현실 탈피성을 실질적으로 맞추질 않는가 는,

결국 입으로는 천상에 매달고

일신의 안위는 별개로 현실적으로 챙기고보는

그래도 명분이기도 하고 단순하게 통털어야 하기에

형식성을 꽤나 믿음의 족보성으로 그늘에 있어야 하는,

믿음이란 것도 태생적 믿음이 강한 것이라지

일향성이 좋다고 그 인간자체에 믿음이 구족되는 것도 아닌 터에

時空이 다른 것으로만의 객관성만으로도 

천지 간에 크게 신뢰가 축적되는 개연성이 미약하다는 것으로

말과 행동이 이중적으로 행해지는 작태가 아니면

경직된 압받감을 갖게 하는 것으로

이는 곧 일 년이 하루도 안  되는 것과 무슨 대화가 되는 것이겠으며

굳이 의식에도 미칠 수 있는 것이냐 인 것으로  

인간이 죽으면

이미 시공 상으로 별개인데 무슨 연계로 엉키겠느냐의

새로운 판도는 어덯게든 복합성이요

희석성이기도 하지 않느냐의 결론이 나기도 하는 것으로서

인과(因果) 또한 다른 시공으로 따로 떨어져도

계속 나아가는 연쇄성에서 부여되는 것이지

되돌아 보는 차원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것이 된다

그러고 보면 인과의 적시성과도 먼 것이 되는 것이다

이리 저리 두루뭉시루 독기처럼 품어내어 새로운 시공이다 보면  

표현이 다른 듯이 많이 변질되는 혼합체로 되어 나타낼 뿐으로 

상대적인 것이 상대적인 것으로 돌아가지 않는

시스템의 구조로 되어 있지 않느냐 가 되는 것으로서

이 것을 확실한 경험적 인지를 못 하는 다음에야

아무리 인간의 믿음이 돈독하다고 해도

어느 정도 인내의 한게성에

자신의 관념성에서만 돈독해진 편차를 낳은 것을 볼 뿐이다 

결국 법칙보다 신의 관대와 아량성에 의지를 하게 되는것이 되어버린

특히 구성원의 입지에 맞춘 변명일 뿐

상황에 따라 말이 바뀐 듯이 쏟을 뿐이다

결국 죄의식도 자신의 신만은 더 서로 이해가 된 듯이 하며

그 것마져 차별성을 낳아 스스로를 마비 시키는 꼴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시로 돌아오는 것은 사회적 법칙에 의한 공유와 평등성에

신의 차원이란 불현듯 자의식에 속하는 것이니 

그리 익숙하게 응험이 된 것도 아닌 것으로서 행할 뿐인 것을 

오히려 神의 관여라면 神조차 벼락 맞을 일을

신의 침묵에 그나마 살판 나는 중량감으로 휘두르는 것이

결국 타인으로서는 그 무게판이니 바라볼 뿐이나

심정이야 그 무게에 스스로 깔려 무너지길 바라는 것이  

신의 무게라고 있는 것이니 

서로들 함구할 수 있는 우회성을 만들다못해 잠식해가며 

그로 스스로 페쇄성이라 해도

어차피 인생 불공평에 한 쪽은 차라리 잘 챙긴 것이 지혜라는 듯이

다 사람들이 뒷간 갈 때와 나올 때 다른 듯이

안색을 바꾸면서도 뻔뻔하기만 한 것이다 

사는 것이 모자라는 쪽에서 이젠 좀 넉넉잡는가 하면 

得으로 기우는 것이 인생인 듯이,

변명인 듯이 줄을 잡아 기본이 됨에도

기본적 가치관에 매달려 사는 듯이

또한 함께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듯이

굳이 산이 아니라 해도

굳이 산이 든든해야 안정감인 권력의 속성과 맞물린

어차피 작은 산을 넘어야 큰 산인 듯이

결국 이러한 구조를 탈피하지 못 하니

수미산은 허물어질 줄 모르고

三界를 衆生계라고도 하는 것이니

인간의 마음에 물린 인간세라는 것이나

시공을 입고 벗고 하는 대도사(大道師)의 우주나

결국 하나로 물리는 법칙의   

사회적 유대는 항상 이상향의 깨끗함은 병행하는 것으로

겸양을 미덕을 늘 앞세우는 것으로

누구든 그 표본에들면 쌍수를 드는 것으로

그러고는 차별성이 좀 더 있어야 함에 악행도 필요악인 듯이,

애초에 차원이 귀족이였음을

결국 양반을 돈으로 사듯이 사고서는 설칠 수 있는 판에다  

인간세계를 천상성의 독존적 가치와 함께 취할만큼

시공적으로 평등하다는 의식의 확신도 없거니와

유추할 구성력도 박약한 지경에

인간 세계는 천상계에 극히 미약하게 보인다는 것으로서야

오히려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만 미끼가 된다는 것이니

그 약자성(弱者性)을 건드려

같은 차원으로 추켜 올려 주겠다는데 누군들 마다하냐인 것도 되니

결국 인간적 유대, 인간적 판단의 기준으로 돈독해지면서

구호는 신앙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니

그 신선도에서 대머리가 좀 까진

저 풀도 나지 않는 고산의 아래는 그래도 풀이 우거진 야생이어도

산은 바위산 머리같아 신령하듯이

달은 중천에 있음이요

그래도 구름이 가리려 해도 아래 숲처럼 머물고만 마는 것이듯  

그러니 神을 앞세워 나쁜 짓을 해도 더 철면피로만 두껍게 하는 것이니

인간 스스로의 미약성에 대한 변명이 농후해지며 비애를 실감하는만큼

사면적(赦免的) 공감대도 함께 부응하게 하는 것으로

이러한 것은 사개 틀리는 관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다짐하듯

이유보다 취약점으로 감당하게 되는 결과의 동반자로서

더욱 다져져야 함의 강조같이

자조보다는 차라리 타인을 조소할 수 있는 쪽으로 힘이 쏠려도 수 있는 판에

험 하나 없을 수 있는가의 막무가내인 판에

그래도 신통력 계통의 내막이란 것에는

이러한 시공적 격리를 긴장감이 있게 끌어 집중력을 갖게 하는,

그로 우주는 도는 것이요

그로 심장에 몰리는 것으로서 

뇌리적 생각보다

감정적인 축적성이 또한

어느 구석으로서 폭발함을 감당하기 힘들게 하는 듯이

신체와 우주가 하나의 집중력을 보이는 것으로서

어느 시공이든 연줄처럼 당기게 되어 있음을 평등으로 하는,

하나의 타임머신이라기 보다

한 머신 안에 여러 타임이 함께 얼레에 매인 것같은,

실제 그러하기에 천상과 차원이 다른 인간계여도 평등권이 있으며 

이 차원에서 짐승까지도 평등권에 드는 佛性이 있다함의,

함께 작용될 수 있는 시공의 초월성의 공유적 성질을 갖춘 것으로서

비록 천상계에 새발의 피여도,

그 수수 만 년이란 것으로 나눠 한 발자국 나도록 만들려 해도

아득하 벌어졌다 싶은 것이어도 

결국 하루 속 안에 있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증험(證驗)에 있다 봐야함이다

 

 

<너가 몇 겁을 살아야 부처가 될 수 있음이다> 로 말할 수 있는 차원 

 

각기 다른 시공을 하나로 해 평등하다면

과연 인과의 공동분모는 무엇으로 엮을 수 있는가를 실감하자면

이가 곧 원소 주기율 상의 원소가 갖는 특성을 갖추게 하여

상호 연계성을 끄집어 내는 작용이 곧

화학적 작용을 나타낸다는 것이라 봐야함이다

이는 원소 하나가 한 우주의 차원을 대표하는 정수를 말하는 것으로

그 미세함의 소숫점의 차원이 어느 정도냐가

<너가 몇 겁을 살아야 부처가 될 수 있음이다> 로 말할 수 있는 차원이 되는 것으로  

한 우주의 극미립적 맛깔을 드러냄과 같은 것이다

 

 

유체 이탈이 아닌 시공의 초월의 가능성

 

과연 부처님이나 전륜성왕처럼 유체이탈이 아닌 시공의 초월은 가능한 것인가

그러면 과연 과학적으로 어떻게 구현이 되어야 하는가

그 것이 가능하게 되려면

먼저 부처님 말씀에 전륜 성왕이 나타날 떼 물을 가르고 온다는 것으로

이 것은 곧 양성자가 수소 원자를 가르고 나올 때 가능한 것으로 봐야 함이고

이는 곧 수소 원자가 암흑입자요 물의 입자라고 할 때 가능하다

즉 하나의 원자 단위로서의 수라는 것 안에

사계절을 품은 시공계를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을 때 가능한데

이 것을 과학적으로 실현이 가능한 그대로 말씀해 주신 것이다

즉 이 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암흑인자에서 색으로 나타낼 수 있음으로 해서

무지개적 배열의 원심으로 나와야   하는데

즉 자리공의 형태가 나와야 시공계와 합이 되는 것이니

즉 먼저 구심의 형태에서 고갱이처럼 열여 젔히며 나와야 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눈에 비치는 무지개란 이승을 말하는 것이며

아주 넓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것 같지만

이 것은 눈의 착각에 의해서 인데

이 것이 착각이 아니라 검은 눈동자나 푸른 눈동자나

이 하나의 암흑입자를 차고 나오는

벽의 일곱 겹의 구멍이 그렇게 둥근 것으로서

반원은 도리어 착각이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유체이탈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물을 가로지르는 전륜성왕이 훨씬 과학적으로 접근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름 그대로

입자 가속기를 돌리며 오시는 전륜성왕이 되는 것으로

마치 수퍼컴퓨터같은 입자가속기를

손톱만한 칲으로 돌리며 오는 전륜성왕이라는  것이다

굳이 돌린다기보다 전자가 돌아가는 그대로의 바퀴로

가감 없이 원자를 나올 수 있음인데이는 곧 이온을 따라 바퀴를 갈아가며

각 원소의 시공을 자유자재로 날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화학적 접목만 하더라도 각 시공의 접촉과 같은 것으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이 것이 눈에 점만한 구멍을 저 무지개 문처럼 확 열어졌힌 채 나온다는 것이니

눈 먹통 하나며는 천하에 글을 다 써대며 다니는 볼펜과 같다는 것이 된다

곧 우리가 각기 태어난 저 달이 눈거풀을 뜨면

눈동자가 하나의 점이라고 할 때

무지개가 이 공간을 배가시킨 벽으로 감싼 세계를 누리고 있는 바  

이 얼마나 부처님 말씀이 방편적 비유가 아니라 이론물리학에 해당되는 것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