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실(이 글은 순수 창작품임)

한냉, 온난 전선의 아이세도우

narrae 2012. 4. 16. 00:36

한냉, 온난 전선의 아이세도우

 

아이가 한냉전선 온난전선을 그린다

젊은 아가씨가 아이세도우를 백에 넣고 다닌다

이는 다 하늘에 눈썹을 그리기 위해서다

그 자리가 곧 눈을 뜨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긴 눈썹은 아름답다

비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눈물같기도 하기에 

 

 

대한민국 비는 빨대 비

 

본래 비를 선반 위의 그릇이라면

ㅜ를 붙여 부라 하여야 하는데

대한민국은 조상부터 챙기는 예범(禮範)이어서

ㅂ에 빨대 ㅣ로

위로 끌어올려 내려오는 것이라고 비

 

 

물에도 손톱이 있다

 

물에도 손톱이 있다 

애야 옷 벗어봐라 

내 이 잡아 줄께

이는 저요! 저요! 하지 않는단다

굳이 이요! 이요!는 더더욱 앉는단다

물에 손톱이 있단다

물가에 옷을 벗는 이유도

때를 입은 이를 보기 위함이다  

빛이 제 딴에는 깜쪽같이 서캐 알을 낳았다 하지만 

내 이 잡듯이 느긋이 잡아도

물은 눈부시도록 한 망태 씩 알을 터트린다

 

 

코란 

 

코란

고! 라는 화살표에

바람 線이 통과하는 것이라

고에 線이 하나 더이니 코!

재봉질 웃실은 그렇게 드는 것이라네 

아래 북실을 걸어 오기 위해서     

     

 

 

ㄴ과 ㅁ

 

밥도 설익으면 

노래가 모래와 같음이요 

알맹이 굵은 쌀도 

잘 휘저어 구성지면 

모래가 노래와 같음이라 

저 쌀 반 조각이면 

즉석밥도 빨리 되어나오겠네

 

 

지렁이의 천상계

 

묵은 거름더미에서 지렁이가 많은 이유

본래 거름의 어원은 걸음

거름은 멈춤이 스텝일 뿐이니

정류장이요 대합실과 같은 걸음 중

다 걸음에 건 것이 있는 것의

그래서 이 걸이

묵은 거름더미처럼 거품이 죽으면

거에 걸린 ㄹ이 土인 ㅇ에 스며들어

걸음이 거름으로 되었음에

그로부터 ㄹ인 지렁이가 스물스물 살아 움직이느니 

 

 

꽃잎 모자 젖힌 예쁜 얼굴

 

꽃잎 머리 젔히고 철사줄로 볼기 길 뺀

그래! 거기에야 살을 입혀 얼굴이었는지 모를

아! 이 <꽃>이란 字型과 닮은 꽃이여!

누리장 꽃이여!

사슴의 복기짝같이 초췌한 꽃이여!

살 없이 핏줄만같은 것으로

크로키는 다된 듯한

어쩜 꽃의 나라는 이렇게 얼굴이 되어 다니나보다

 

 

차들의 짝

 

혹시 차에도 영혼이 있는지 모르겠다

앰블런스

소방차

순찰차

어데서 숙성되어 자라다 왔는지

어쩜 인간은  천상계에 7 살배기로 태어난다더니

아마 저 차들도 7 살배기로 나온 매미인지도 모를  

어쩜 저 매미가 올해의 타임머신을 넘어

수 천 년 전에도 울고 있을

어쩜 오늘의 앰블런스를 그 쪽으로 실어다 놓은지도 모를

엉큼한 스타게이트인지 모르겠다  

어떠한 알맹이로 어떻게 복사되는 것이기에

그 운율조차 가지 가지 현장감 속으로... ...  

그리고  세상에 짝을 이뤄 남긴 채크 무늬를 지극히도 사랑스러워 한다지

 

 

바람의 눈을 보았다

 

바람의 눈을 보았다

넝쿨로 차질 즈음 발길을 차는 바람의 눈을 보았다

그 것이 넝쿨이 하얀 뿌리를 드러내고 

머리처럼 하예져 있었음을 알았을 때 

늙음이 무엇인가를 알았다 

원소 한 주기율을 뗄 때마다 

뿌리가 뽑히듯 하얗다는 것을 알았다 

바람이 제 살을 뜯어내며 세포의 눈을 달았을 때

눈은 뿌리를 머리칼로 넘김을 알았다

이미 땅의 머리가 아니라 바람의 머리임을 알았다

 

 

山龍은 磁氣場

 

무덤의 穴을 보았다 

主山과의 끝이 音頂의 시에 까지 이른 

무지개의 빨강에 이른 만큼 

팔 분의 일 박자도 아니요 사 분의 일 박자도 아니요

팔 분의 육 박자로 용은 휘어져 들어오는 것이다

하프의 척추처럼 지탱하는 산에

主山과의 방향이 갖는 音色으로 기본 음정으로 하는,

이미 현이 시에 맟춘 것이라면 내림 나 장조로 하는,

천둥의 눈을 보았다 

音의 눈을 보았다 

온 것도 없고 간 것도 없이 

현(絃)을 그렇게 튕기는 것이었다

 

 

이름값

 

方背이니

山이 한 쪽으로 받쳐주는 듯 길이 가게 하였고 

背方은 들바라기 마을 뒷산을 

아파트가 가려 정말 背方이 되었다 

內方이라 도시의 번화는 왜 이리 빙빙 둘러 조이는지

背方은 자기 이릅값하는 듯 도리어 어깨 졋히는데 

앞을 가린 아파트도 앞의 신도시에 배후라고 함께  졌혀 

배추 잎사귀 너부러진다 

참 굵직굵직하게 이름값하는 것을 보면 

오래 묵은 것이 원력도 한 껏 키웠나보다

 

 

사상(四象)과 핼륨

 

우리가 파도가 퍼지는 것을 

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나 

실제로는 움츠리는 감응적 동작일 수 있는 것이다 

이 것은 무슨 뜻이냐 

수소를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낼 때

핵분열 상으로 빛을 내는 것은 예리한 가시와 같지만 

융합상으로 빛을 내는 것은 고요의 차원을 넘어선 

빛을 내는 것이다 

즉 수소가 四象의 차원인 틀에 융화의 자세를 취할 때

즉 핼륨의 차원에 최대의 균형과 안정성을 구축할 때 

이 것이 수소가 내공(內功)을 드러내는 것으로서의 진공성(眞空性)과 같은 것으로

당겨가며 모래알 같은 자극에  빛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때

이 것은 빛의 접촉면의 제로성 

즉 빛의 속도는 저항없음에서의 제로성에 함께 물리기에 

촉발할 수 있는 것으로 水의 고요한 정화(淨化)와 맞물리는 것에서이며

핵 융합에서의 빛이란 것은 내부적으로 뒤집어 나오는 것과 같기에

마치 풍선이 쭈그러드는 것처럼 

마치 파도가 쭈그러지는 것처럼 율동을 하는 것이지

외적으로 펴는 작용과는 다르다는 것으로서

그 內心을 갖고 핼륨과 四象을 만든다고 봐야 함이라는 것이다

즉 핵분열로서 오는 빛은 원소 7 주기율 상으로 최고 무거운 쪽 

융합은 원소 1 주기율 상을 당연이 오게 되어 있는데 

다만 비유하자면 

일주기율적 알을 꺼내 먹을려면 

약간만 건드려도 갈라져 내용물이 쏟아지는 것이요 

7 부기율적 알을 꺼내 먹자면 

앞에도 깨고 뒤에도 깨어야 잘 나오는 형태와 같은 것이다

 

 

우주와 공망적 이해

 

보통 年이 空亡에 들면 태양이

어떤 결함의 문제에 들었다는 것이 되고

또한 변효(變爻)인 年의 공망에 들면

태양계의 결함에 의한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근병(近病)에는 약을 안 쓰고도 낫는다고 하지만

변효  공망을 年을 두고 나타날 수 있기에

이미 구병(舊病)의 형태를 띈 것으로

오늘의 현상과 별개로 보아야 함이 있다

고로 官이 공망인데

벼슬 시험에 합격하면 졸지에 사망하듯이

그 해분에 일이 일어나는 사이란 긴 것이기에

드러낼 수 있는 것으로서

또한 우리가 이 태양계의 어느 한 법칙을 모르고 흘러가다가 

그 해분에 발견하게 되는 것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官이 공망인데 그 사람의 질병이면 

원칙대로라면 질병이 일어나야 하는데 낫는다면 

분명 그 것은 항체적 의미가 하니라

그 질병으로 돌연변이되어 간 루트가 있으니

약학적 연구에 있어서는 놓쳐서는 안 되는 대목이다

아니면 남편 쪽 유전자에 거부반응이 없음이든가 

항체가 있음인든가 하는 것이다 

아니면 안에 보이지 않게 박혀 있던 질병이

겉으로 드러남에 치유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占은 点으로 서술 상의 어느 點인 듯 남길 정도는 되어야 한다

 

占은 點의 포인트가 강하다 

섬광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 것이 제대로 활용이 되려면 

논술적으로 곃험적으로 어떤 부분적 미궁에 접했을 때 

점적 기능을 해주어야 

논리적 흐름에 그 개연성을 발견하여 공유할 수 있다

어차피 인간에겐

학문적어야 서로 공감대로 합리를 이룰 수 있다

마냥 불립문자니 침묵이니 하다보면 

点은 섬광처럼 사라질 뿐이고

그 点的인 것으로 신비감만 長文이 있는 냥 거들먹거림다면야

최소한 이 占이란 것으로

낙인처럼 지진 듯 点의 자국이라도 남길려면 

최소한 유수한 서술성에 결함이 있는 식자를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

도사 소리를 듣든 귀신소리를 듣든

최소한 지성의 반열에서 무시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무지개 허리를 남긴 공룡뼈

 

우린 발바닥을 보라색 라인라고 한다

그리고 네 다리를 푸른색 라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배를 노란색 라인이라고 하며

등의 뼈를 붉은 색 라인이라고 한다

즉 핏줄의 선반이라는 것이다

공룡의 뼈! 그 시렁만 남긴,

 

 

 

말 등 위에 사람이 타니 배에 힘이 들어간다

소가 쟁기를 끄니 배에 힘이 들어간다

땅에 등을 대고 누우면

늘 배 위에는 배가 정박한 자국을 남긴다

아마 이 것이 바닷물처럼 물 흐르듯이 감당하는 듯이 해도 힘에 부치는가 보다

복근을 키우고 또 키운다

그런데 꼭 앞인 듯 싶은데 사람이 타면 뒤라고 背란다

마치 처진 배가 背인 것이니

말 탄 자에 위로 조아 올리는 것이라고 背란다  

그리고 쟁기만 달면 힘 주는 背라고 하니

앞이 배(背)라서 뒤가 힘쓰는 것이라 뒷 쟁기는 앞이라 한다  

이 이치가 명확하고 보면 

먼저 배(背)를 채우고 앞을 끄는 것이로구나   

 

 

 

따뜻한 엘리뇨

 

벗이라고

벗이라고

봄에 대고 외친다만

4 월인데도 벗꽃은 입을 열지 않는다

엘리뇨는 따뜻했다고 

누구보다 따뜻하다고 외치는데 

사월의 꽃들은 입을 열지 않는다

 

 

찔레꽃

 

참꽃을 참꽃으로 놓아두질 않음에

찔레꽃은 더 붉다

 

 

보리는 발톱 다 뭉그러진 발바닥이라네

 

본래 소 발톱은 요조숙녀처럼

날카롭고 예리한 것이었다네

하물며 발톱까지 

징처럼 박차를 가할 냥 송곳같다네

그런데 어머니면 그 것으로

그 것조차 남아나질 않으니

보리는 발톱과 발바닥이 다르게 

발톱 벗겨진 것이라네

아무리 보리가 까슬이어도

남은 건 소발닥으로 푸리라

어머니 미소같은,

오늘도 요구르트 마차를 끄시는 어머니 상

 

 

나야 산다는 게 안개에 <발등으로! 발등으로!>할 뿐인 것

 

자꾸 마음 탓하지 마라

끄질 겨를 없이 당기는 발등의 불이야

한 발짝 테두로 그어놓은 그 자리도 못 주저 않는 것

주저 주저도 없다

천지를 헤매고 다닌다 해도 떠난 바 없이 발 동동일 뿐이요

어찌 인간들은 下焦를 넘기나 한다든가

발등에 불이면 하초에 불일 겨를이 없다

어찌 저 안개같이 흔적이라는 것이 남음이 있겠는가

아침이면 종적이 없는 안개와 같은데

임들은 정말 신선같구려  

낮에는 운해를 보는 듯이 러브모텔은 궁궐과 같으니

세상 좋게 돌아간다 해본들 이상 없는데  

요순지세 아니라면 욕 먹지

그 걸 고이 다시 채우려 안달을 하는 보양길만 자랑거리가 되겠네 

언제 부터인가

안개가 발등으로 내려와 불난  바가 없으면서도

늘 발자국에 실린 자발심인 냥 착각하고 살 뿐인 것

 

 

구두광 차광(車光)이면 다 젊은 혈기가 돌지

 

옛적의 에비군 개구리복이런 것이

아무리 점잔 빼는 자도 

입으면 그로 나이와 상관 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듯이

늙어도 구둣광에 힘이 들어가는   삶

차 때광에 힘이 들어갈 때는

인생이 마치 제복의 어느 위상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얼굴은 누리끼리 한물 간 듯이 해도

구둣광이라도 살아 있어야 사는 느낌이 난다네

사소한 것 같아도 큰 힘이라네

저 빌딩의 유리처럼 단세포를 닦는 냥

참으로 남자들이란 것이

남부럽지 않은 듯이 힘이난다

젊은 처녀를 보더라도 이 광 하나면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하네

이에 어머니에갠 크림이 언제나 동동구리무였지

광택이 제대로 먹히기야 했겠으리

언제나 검게 탄 얼굴에 동동 뜬 것이었으니

낡고 삭은 옛마루에 검게 낀 것

그 것마져 때광인 냥 추억을 문지르듯이 하면  

언제나 젊음인 듯

늙은이의 구두광에 잔별가지를 보는 듯 

애뜻한 그리움이 하늘나라를 가로질러 간다  

 

 

지구 자전(自轉)으로서의 종말

 

전에 소행성과의 충돌로서 지구 종말을 볼 수 있는 길을 설명하였지만

이 번에는 지구 자전축의 변화로 오는 역리(易理)를 설명하고져 한다

보통 우리가 日辰이 발동하면 오늘 하루의 문제

지구 自轉의 문제로 볼 수 있는데

日辰 財가 발동하여 空亡에 빠지면

오늘 돈이 들어온 경위가 있는 것이며

더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닌 것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어쨌던 일진이 공망에 들면

지구가 자전율의 감축에 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논리는 상세할 필요가 있는데

본래 일진이 공망이어야 하는데 

일진을 기준으로 하여 공망을 布局하기에

일진은 공망이 될 수 없음인데

이런 경우

일진은 그대로의 충만성으로 하고 시작하여

변효의 공망으로서 일진에 대입할 수 있다   

실제로는 變爻가 공망이면 달의 引力에 의한 

空化率인 것이 적확(的確)한 것으로 봄이지만

또한 이 자전율의 완전성을 다루는 것으로

우리가 공제에 대한 측정의 기준이 설정된다면

일진이 化하여 空이 되어도 지구 자전의 空化가 되는 것이다 볼 수 있다

또한 진,퇴신이 보인다면 

과거의 자전율과 미래의 자전율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도 알 수 있다 

또한 年이 발동하면

일식(日蝕)이나 흑점(黑点)의 작용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음인데

이 것을 년을 공간성으로 봄에 그러하다

만일 日辰이 이런 식으로 빠지는 것이라면

지구의 종말은 자전(自轉)으로 비롯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밀짚 모자

 

저 별마다 눈빛일 수 밖에 없는 것

저 별마다에는

북더기같은 운성(雲星)으로 모인다만

이도 다

허공을 당겨 지푸라기 허공관(虛空管)과 같으리니  

성단(星團)의 밀짚 모자를 쓰고도 눈을 내놓은 것

옷을 입고 선천적으로 낳을 수 있듯이 

어찌 모자인 것을 벗겨지지 않게 끈을 조은 듯

 

 

대칭성

 

대칭성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무지개와 지각과의 대칭성이다 

지각이 핵에서서부터 빨강 노랑 파랑으로 자리 잡는데 

무지개는 파랑 노랑 빨강으로 완전히 거울에 비친 

대칭성으로 떠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은 즉

핵에서 가장자리를 두를 수 있는 섬유적 파장을 늘려진 것으로 

구심과 원심을 하나로 한다는 것과 같다

 

 

호랑이와 토끼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 했던가

우리나라는 북반구의 중심으로 보면 동쪽 끝이기 때문에

진뢰(震雷)가 강한 편에 든다

만일 이런  상태가 계속 되었다면 

몽고족의 기질로서 한반도까지 기마에 능통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마의 기질을 죽인 것이 이 태백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 볼 일은 

몽고란 나라가 중국을 통치를 해도 바람과 같이 왔다 사라지는 것이다 

즉 문화란 것의 희박성 때문이었다는 것인데 

이 벼락같은 기질에다 

또한 일본이라는 木氣가 강한 나라를 등 뒤에 접하고 있기 때문에 

어쩜 전쟁은 내전 뿐 아니라 외전도 더 치뤄왔을지 모른다  

일찍이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우수하다 함은 

그래도 호랑이를 토끼로 만든 듯이 태백이 누른 것이 되기에

한반도로 옮겨오면서  

매우 사고력 있는 창조성의 기질을 발했다는 것도 된다

대국적 기질이니 소국적 기질이니 해도 

다 지혜로와야 하는데 있는 것이며 국운(國運)도 福이 있어야 함이다

 

 

보신(報身)과 화신(化身)

 

인간으로서 아쉬운 것은 

부처님은 報身과 化身을 빼도 眞身이 있음인데 

인간으로서야 보신이요 화신을 빼면 무엇이 남았으리 

오고 감이 없다고 하나 

보신도 온 정처요 화신도 온 정처다

씨앗을 떨구니 눈이 달렸음이라 

그래도 자리공의 희미해진 눈보다 

씨앗의 눈이 더 야멸찬 것이든가

우린 괄호로서 눈을 건지는 것인가 

괄호로서 눈을 채우는 것인가

그래도 몸에 눈알인 것이지

눈알만이면 용의 혀에나 다셔지는 것이 아니든가

이왕이면 맛깔나는 서술에 괄호로서 

함께 챙겨가야 할 눈맛이길,  

오직 세월의 무심에 거부하는 듯이 살아감만이 

더 알찬 자연성이든가

 

 

하드 웨어가 쌀이라면

 

우리가 지식을 하드웨어의 차원으로 할 때

직감성을 높이는 촉을 둠에 있고 

망연함에 영감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지만

지식도 하드웨어적 차원이면 매우 요긴한 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정신성의 하드웨어보다 

육체적인 하드웨어 자체가 소프트웨어를 능가하는 소프트 웨어라면

묘한 인연의 끈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까지 미치는 것이다

 

 

아라한과 우주  

 

우리가 아라한에 대해서 정의가 불분명한 게 있는데 있어 

무엇보다 부처님 말씀에 그림자 없는 나무는 어데서 찾을까요 하니

아라한에게 물어보란 대목이 있다는 것에 유념해 둘 필요가 있다 

즉 아라한이란 세속의 욕구가 남았으나 스스로 베어버린 그루터기와 같아

지평선상으로 드러나질 않으니 그림자 있을 수 있겠느냐의 논리와 같다

이 것은 곧 상대성으로 뻗칠 것이 있는데 상대성을 없앤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 것을 요즘의 물리학계로서 비교하자면 

반물질에 물질은 복령(茯笭)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으로 

이 것이 반물질과의 대칭성이기 때문에

물질이어도 그림자와 같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미 이 중생계가 그림자 없는 나무로 비유된 것으로서 손색이 없는 설법으로서

아라한은 이미 어둠에 있는 자이고 

우리는 아직 밝은 곳에 나와 있는 자라고 보는 선입관은 잘못된 것이라 봐야한다  

이 것은 서로가 만나지 않으면 그림자 없는 나무가 되는 것이고 

또한 그루터기도 옆으로 순이 나는 것도 있는 법이니 

이 쪽 붙은 순이나 저 쪽에 붙은 순이나 한 그루터기의 본성을 다 태우고 넘어가는 것이다

우주가 그루터기 나이만 돌리니 혹성이 꼭 복령이나 뿌리혹박테리아와 같은 것이니

다만 반물질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는 취지와 맞물리는 것이다   

 

 

 

방긋도 많이 꽂히면 꽃

 

방긋방긋도 많이 모이니 꽃과 같구나

방긋방긋도 편지함에 많이 꽂힌 듯하니 꽃이여!

닮은 듯 옴겨 붙여도 꽃과 같음이

아이들이 뛰어놀며 지르는 비명 소리는

실로 평상시에도 날카롭고 처절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부모의 마음에는 다   사랑스러운 것은

다 위험한 지경일 때 멀리서도 들을 수 있게

선청성을 갖고 태어난 것이기에 오히려 아름답게 들리는 것이요

아무리 고운 음성에 장엄한 품성을 이룬 홀에 울린다고 할지라도

세샹을 핍박하고 저들끼라 잘 난 냥 무게늘리는 것엔

도리어 치욕감만 갖게 하는 것이 또한

새 둥지가 아닌 음악 둥지로 맴맴 도는 것이니

 

 

완전 승화와 그림자

 

우리가 원소 7 주기율까지

그 주기율마다에 불이 있는데

이 불이 각기 차원이 다른 것이라면

육도중생(六道衆生)으로 어디에 태어나든

다시 잿가루가 된다고 할 지라도

다른 시공 간의 물성이어도 불로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과 같은데

불이란 육도에  남은 물질의 그림자를 비추는 것으로서

태우는 것 또한

그  주기율 공간의 그림자적 불로 태운다고 봐야할 것이다

즉 다른 시공에서 보면 

물 속에 비친 태양으로 조약돌을 녹인 것과 같다는 것이다  

욕계의 천상계만 하더라도

이 불탈 수 있는 허물을 의상으로 입고 나타날  수 있음인데

이 것을 원소 7 주기율까지의 불을 의상화한 것으로서

이는 곧 그 것이 영상적인 것이 되기에 피막성이 있음으로

의상이 됨과 같다는 이치와 동일하다

 

 

이불

 

인간은 南方 火地로 태어났으니

火인 불을 속으로 감싼 이불을 덮으며

잠꿈을 펼쳐나가는 것이느니

잠꿈을 밝게 못 깨우질 못 하면

혹한(黑寒)의 꿈을 밝게 깨워야 하리

즉 인간은 이불 속에 녹여가는 스스로 밝음이 있음이니

 

 

三界 밖의 영역

 

우리가 원소 2 주기율 상의 산소가 불이 탄다고 가정할 때

이 것은 원소 2 주기율의  시공계에서 비롯되는 불의 자극성이지

그 시공 밖에서는 빛이 아닌 에너지적 느낌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든가

아니면 반대로 주기율적 반복인지 번복인지 하는 것에는 熱일 뿐이나

그 것이 아닌 일렬 선상으로 폈을 때 빛이 드러나는 것이든가

오직 주기율의 각질이 두텁기에 충돌로서 튀어나오게 해야 한다는가

나무가 불이 붙는다는 것은 

나무가 번개의 자손이라 촉발라서인 것이요 

우라늄은 융기하는 土의 자식이라 느린 것이듯이

강력하게 촉발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요 

또한 원소 3 주기율 전채를 火라고 하더라도

이 火를 태울 수 있는 火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주기율 상의 物性도 형상만 탈 뿐이지 않는가 하는 것으로

또한 원소 6 주기율의 전반성을 水라고 함에

水에서의 熱이라는 것도 빛의 내적 현상을 보이는 것으로

이미 주기율로도 6 번이나 겹쳐져 있는 것으로서 

열의 위상에 있을 뿐으로 봐도 무방한 경계의 것이나    실제 빛의 반사가 주는 것은

이러한 내적 진행과는 달리 반사적 측면이 있는 것이기에

꼭 직류로 가

주기율의 끝머리로 혓다닥을 내밀어보는 것이 아니라

병렬선이 늘 세포의 눈처럼 무한 공간성이기에

마치 모근(毛根)이 빛의 반사처럼 심어진 뜻에서도

유전자가 다 옮겨진 듯도 하다는 것이다   

이 것을 깨달음의 첩경로로 있다 가정해 볼 수도 있음이다

다만  체적(體積) 속의 에너지는 주기율 상으로 포개진 것이기에 

실제 빛 에너지 속에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이 것은 원자 순서대로 일렬로 펼친다면 

이 에너지가 빛으로 보이지만 

이 것이 빛으로 보이려면

삼계를 다 펼쳐야 볼 수 있는 영역과 같다는 것이 된다

 

 

魚族과 치족 

 

물고기는 비늘이 있어야 귀족에 든다는 것인데 

이 뜻은 물을 1로 함이 

대추 씨 하나를 王으로 함과 같다고 함의 기준에서이다

대추는 왜 대추(大追)인가 

그 하나를 크게 뒤쫓아 가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 1이라는 字形은 

양 쪽 陰에 중앙을 가로지는 線을 기준으로 하는 坎水라는 것이다 

허나 또한 이 선이 또아리 튼 点이면

또한 陰은 가장자리를 삥 둘러핀 형태를 이룬다는 것이니

속보다 겉이 무르다

이는 곧 새알과 반대되는 물고기 알의 성질이다  

그런데 물이 꽃 피우는 것은

빛이 반사되어 반짝임이 되는 빛의 꽃잎이라고 봐야함이니  때

그 순간이 찰나와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 대자연의 지혜는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물고기가 알을 흩뿌려 그 반짝이는 꽃을 단다 

아무리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것으로 결정난다고 하지만 

이미 빛이 H2O를 만나 결정을 소상하게 봄과 같다고 할 것이다 

즉 산소 나무를 만나 수소를 끌어 올림과 같은 것으로 

이는 곧 웜홀을 지나오게 했다는 것도 되고 

남두 六星이 북두 七星에게

사람으로 태어날 영혼을 부탁하러 가는 것과 같다고도   해야할 것이다

이 것으로 볼 때 

물이란 것이 全身으로 에너지를 모은 것이기도 하지만 

그 반사성은 세포와 같은 눈이 있음으로 

그 찬란함이 비늘과 같은 것으로 귀족이 됨과 같다 할 것이다

 

 

숨 한 번 쉬면 나무 한 그루 심는 것

 

숨 한 번 들이쉬면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이다 

숨 한 번 내쉬면 나무  한   그루를 뽑는 것

이 것은 산소가 폐에 심어졌다

다시 나오는 과정의 나무 한 그루의 생체와 같은 것으로

이는 원소 2 주기율 상의 산소 族에 있는 부위가 바로

관상학적으로는

山根 속의 콧구멍을 의미함이라고 설정할 필요도 있다는 것으로

한 나무 잘 고르면 천 년 만 년 피우고 질거나

원소주기율 상의 원소와 그 개체로서 특징을 규정지을 수는 있어도

그 것에도 수리학적 평등성의 어떠한 특성도 空化된 것으로 해서

오직 그 수량만큼의 표식만이 맛이나 빛으로 드러낼 수 있게 한 것으로서

그 것을 채우면 일률적 성향을 채울 수 있는 것이기에

自性은 수량만이 아니라 그 표식마져 있는 것이 되는 것으로서

그럼 H2를 두 눈으로

O를 눈 사이로 관통하는 코의 구멍이 있는 상근(山根)이라고 할 때

코란 것은 산소가 0로 통할 때 질소가 대기를 덮듯

구멍으로 통하는 산소 나무를 덮어주는 것으로서

더께처럼 일어나 그 살아있는 융기성을 일율적 선상으로 맞춘 것으로

폐에서 코까지로 해서 나무 한 그루로 잡을 때의 구성을 보게  하는 것이다

 

 

인고(忍苦)의 과학적 논리

 

우리가 인고로서 통하는 문을 관통했다는 것을

그럼 무엇이 인고했는가를  

좀 더 과학적으로 접근을 한다고 볼 때

먼저 이 육신(肉身)의 차원에서

단백질적 인고와 질병으로 해서 원자를 관통했다고 할 것이요

원자적 인고로 원자병으로 해서 양자를 관통했다는 것이요

양성자를 인고로 프라즈마까지 가본 선(禪)을 보았다는 것이다  

 

 

대대로 이음새라고 하나 연어같기는 하던가

 

연어! 

개어구에만 들어오면 이미 다 든 것이 듯 

우린 실제 연어(連語)는 이야기 하는 것일까 

어귀가 착각하게 한 것인가 

연어가 착각한 것일까

난 연어이지만 

연어라고 했을 땐 이미 개울물이 다르더라  

 

 

부처

 

우린 부처님의 분노와 눈물에 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난관도 인고로서 극복했기에 지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 중에도

부처가 될 수 있었음은

인내로서 모든 것을 열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에서

부처님이 굳이 고행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말씀과는

인간과 부처의 근본 자체 다른 데서 출발되었음을 의미하는데

부처님 입장으로서야 고행이든 고행이 아니든

두 가지인 것같아도 하나다

허나 인간에겐 분명 계정혜가 필요한 과정임을 주지할 때

생사고에 초연하지 않고는 이어가기 어려울만큼의 혹독함이기도 한 것이다  

萬 길이 통했다는 것이니

부처를 가볍게 보지 마라

영웅적 자존심일수록 자결이지 않는가

스스로의 분노와 고통에 의해서일 것이니

이도 다 부처님이 인고를 넘어 부처가 되셨다는 말씀이

한 쪽 결로만 가는 섬유질에 불과한 것이나

이 또한 功을 들여도 功이 없을 것 같아 

공허한 것으로 느껐을 땐 이미 벽인 것으로 해서

오히려 에우로뒤케가 혹시 이러한 현실이 꿈이 아닌가 해서

뒤돌아 본 순간에 돌이 된 듯이

그 신화와 같은 돌의 벽을 넘지 못했음과 같은 것으로

현생만으로 또한 스스로의 자존심이 있는 것이니

결국 영웅적 집결체로 자존심 끝에서 자결하고 마는 것이지

결코 그 자체의 고귀성으로 자존심을 엮은 것도 못 되는 것에서 

이를 두고 독사에 수 천 번을 물려 죽어도 깨닫지 못 함이 있다하니

이는 곧 인생이 고(苦)라는 개념을

너무 가볍게 본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가볍게 보면 가볍게 보는만큼 무거움으로 오는 것이기도 하기에

부처가 굳이 상대적으로 대꾸할 깃이 무엇이 있겠는가

어차피 개입되어봐야  상대적 반감도 늘어날 판에  

이미 인고로서 초월한 길을 버젓해 열어 놓았는데  있어

결국 동행하고 병행한 길을

우리 스스로 물러난 얽매임이라는 것에 

실도 엉키면 먼저 고요히 강하지 않게 접근해야 함이 기본이듯이 함에

유심히 관조하라는 것이며 

그 불퇴심을 욕한다고 해서 메아리조차 없기야 하겠는가

강하면 신경망에서 의식이 조이는 꼴이 되리니 

결국 메아리로 자존심을 건드려 스스로 멸망하고 마는 것이니

 

 

한글은 공학적 표현

 

숨이란 어데서 나오는 것일까

본래 이 목숨 수에 ㅜ이

아래 입 ㅁ에 재봉을 멈추지 않는 동안이라는 것

숨이라는 것이니

인간이 이렇게 작동하지 않으면 목숨이 없는 것이니

세상에 이만한 공학적 표현의 양식(略式)이 어데 있는 것이던가

 

 

의상을 입어라

 

원소 주기율과 기문둔갑(奇門遁甲)의 초신접기(超神接氣)를 보자면

우리가 원소 6 주기율과 7 주기율에 있는

악티늄족과 란탄족의 15 개를 한 절기로  할 때

이 것이 이승의 기운을 수용하는 틀을 입힌 전형원소(典型原素)라  할 수 있고 

이 것이 의상이 되는 것이라면

우리 몸 속에서의 탄소나 질소 산소등은 의상 쪽으로 가는 것으로서

이 두 족보다 의상으로 벗는 원심력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으로 

우리가 절기라는 것은 태양의 실을 뽑는 것과 같은 것이기에 

우리 몸이란 것이 

원소의 무게나 크기보다 주기율 상의 두께를 거두고 나면

전이원소(傳移原素)로서 남은 질(質)과 양(量)의 시공적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는 것

즉 원소 7 주기율과 6 주기율의 손바닥에 

이 奇門遁甲이라는 자전(自轉)의 푸른 구슬을 어떻게 다루는 것인가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원소 4와 5 주기율이 전형술(電型術)이 됨이니 

이 정도의 경지는 제우스의 큰 아들에게나 맞는 인간적 의식과 한 통속인 것이며 

제우스의 벼락같은 성질에 병신이 된 그 단련이 곧 벼락을 버티는 것으로서

전형술(電型術)로서 슬로우 비디오이듯 드러나는 것이라 하겠다

이에 비하면 원소 3 주기율은 화형술(火型術)이 되는 것인데

이는 光子的으로 다루는 것이라 도저히 속도 상으로로 미치기 힘드는 것으로서

이를 離는 佛的 의식 세계를 넘어야 가능한 인지라는 것으로 할 수 있으며

이 것은 떡잎의 과정에서 꽃으로 뿜어주어야 하는 과정으로

이를 가리켜 성철 스님도 지옥에서 불을 뿜는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고

이 것이 결국 원소 2 주기율의 브러시요

워낙 겁살적으로 빠르기에 無色界 정도에서나 헤아림이 될까 하는 것이다

 

 

원소의 칠보적(七寶的) 차원

 

왜 원소를 물질적 차원으로 보지 않고

공간적 개념으로 보는가

이는 그 성질이 만들어내는 팽창력과 에너지가

공간적 시공의 차이만큼이나 그 격렬성이 다른 바로

우리가 유순으로 따지는 것이나 겁살로 따지는 것이나

반감기가 엄청 차이점을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인데

우리가 원소 1 주기율로 하나의 응집력이라고 할 때

가장 가볍지만 또한 가장 느긋한 면이라는 것으로서

원소 주기율이 늘어날 때마다

그 원소는 더욱 조급증처럼 치닫는다는 것으로

이 것은 그 하나에 치중하기 위한 많이 저돌화되어 있는 시공과 같다는 것에서

그 하나로서의 균등성에 비추어 진행하는

평균율적 가감을 넘어서는 것은 아니라는 것으로 

즉 1 주기율이라는 것에서

그 것이 하나의 시공적 속도가 되어 평균률을 내는 것이 아니라

1이라는 것은 그대로인 것으로서

다른 주기율은

처지는 것만큼 채우기 위해

강렬하게 덤비는 형상과 같이 되어 있다는 것인데

즉 모든 시공은 원소 1 주기율의 일차적 응집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마며 소숫점으로 떨어졌으면

그 나뉜 점만큼 초를 다투어 녹여버리고

그 갈라진 공간을 깜쪽같이 붙이는 작동과 같은 것으로

아무리 원소 7 주기율이 촉박하게 움직여도

원소 1 주기율이면 가장 안정된 상태라는 것으로 돌아간 상태를 유지해 주는 듯이 

이는 각주기율마다의 전형원소 8족까지로 감싸며 포갠 상태를 

벗기듯 除하여 간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래 그림으로 보자면

 

 四

111

111

 11

 11

 一

 

여기서 1 발바닥 불을 경수소(輕水素)로 하고

다리를 중수소(重水素)로 하고

몸통과 팔을 (上重水素)로 하고

4부터는 네 개가 하나인 것으로 머리로 할 때

이 것이 곧 원소 1 주기율 상의 기본 단위라고 할 때 

이 걸 x 선으로 하고

8 족의 핼륨이

수소의 같은 1 族의 라인을  y 선이라고 하여

최하단 주기율 상의 7 까지 내려가 핼륨의 머리가 닿듯 

드러누운 것이라고 할 때

원소 3 주기율까지는 수소의 인력권으로 치고 

부화의 경계점이라 설정할 때

4 주기율부터는 핼륨에 속하는 것으로서의

네 다리가 있는 것으로 설정해 놓아보면

그 속에는 전이 원소가 부화됨을 볼 수 있게 되는데 

이는 곧 신경 계통을 열게 되는 것이고

또한 이러한 신경망이 오장을 잉태하는 순서와 같을  수도 있음인데

이 건 또한 금을 안착 시킨 금이기 때문에

다시 머리를 갖춘 복사품을 품은 형상과도 같은 것이다 

이 것이 마치 원소 1 주기율의 金을 확연히 내포하는 것이 되는 것이며

이 신경 계통을 넘어

호르몬적 영향력을 구사할 수 있는 내포성이 또한

란탄족과 악티늄족의 부화력까지 해서

오장(五臟)과 함께 배속되어 그 기능을 발하는 것으로서

위의 그림처럼 1 주기율 라인 上의 이 四라는 핼륨의 머리부분이

원소 4 주기율부터의 구체성 있는 개화와 같은 것으로 열어놓음과 같다는 것이다

즉 원소 1 주기율 상의 핼륨으로는 몽오리와 같은 것이지만

원소 4 주기율 상으로 펼칠 때는 핼륨적 두뇌의 작용이라는 것이

나무와 같이 열어 놓고 두뇌를 펼치는 형상이라는 것도 된다     

 

그리고 원소주기율의 도표와 같이 그대로

상하를 두어 그 기능을 보자면  

윗 그림과 같이 몸의 3단계까지는

원소 주기율의 7을 바닥으로 해서 逆行으로

원소 7 주기율에서 6 주기율 그리고 5 주기율로서

몸통을 다 이룬 것으로 하여

7은 발을 의미하고 6은 골반을 의미하고

5는 장풍(腸風)을 의미할 수 있는데  

이는 곧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바쁘다는 비유에 잠시 넣어두고 

나머지 4 주기율 부터는 신경계라 함인 것으로 

실제 진뇌(震雷)는 신경계열로서

 3,2,1 순의 주기율로 보아

3으로서 산소 소모량이 몰려 있는 것에다

얼굴이 거울인 2 주기율이 몰린 두뇌라고 해도 

별반 하자가 없음 또한 모호하게 하는 것이 있음이다

 

 

렌즈 살집적 안목

 

어떤 변화의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가가 중요한 대목에서는,

그리고 인생의 사회적 지식과 물리학적 지식으로 논변할 집중력에는

체력이 뒷받침된 영양 섭취의 상승력과 맞물리는 것으로 하는 바가

지식의 방대함에 매우 저력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에도

체력과 상관 없는 지식이라는 차원도 있는 것이니

그 것은 단순성으로만 취급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굳이 체력적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운동보다 버티는 에너지적 차원이기도 한데  

섭생만이 갖는 에너지로

다 영감적 추진력이 될 수 없음 또한 주지해야 할 것이다

즉 체력을 필요로 하는 지식은

늘 스스로의 벽을 두텁게 하는 육질을 체우고

스스로 이기는 과정과 같다고 봄이요

선적(禪的) 지식이라는 것은

하나의 허황성을 극복하고 난 뒤의 고요함 같은 것으로

미미한 것마져 잡을 수 있는 것이라

나름의 사고를 발하는 의식을 깨우는 바탕성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이다  

천상계가 너무 靜的인 안위인 것으로 해서 

거기에 안주해 변화를 구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면

도한 그로 초탈을 하지 못 하는 것이라면

그 초탈성은 결국 하근계에 있다는 것으로서

탁성을 수용하면 되지만 인과가 혼란스러울 수 있으며 

그 하근의(下根儀)를 입은 채 초탈해야 하는 것이라면

고량진미라도

지식의 눈을 부릅 뜰 수 있는 체력적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라면

젊은이의 식욕만큼 불어넣을 수 있어 

배움 또한 왕성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즉 렌즈의 크기와 두께가 입자의 세분성을 비레한다는 논리와

인간의 체력이 결국 미립자까지 발견한 것이 아니냐와 같은 것으로

진전성의 보일 수 있는 것이지만

애초에 無的이고 空的 상태의 입자성을 논한 禪的 지혜안(智慧眼)과는

세속적 욕망의 틀로 혼미해지며

나태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靈的으로 좀 더 투명하게 자신을 본다고 하더라도

욕망의 상태도 뚜렸한  

꼭 투명한 렌즈의 살집으로 집중한 삼겹살 맛과 같다는 것이다 

 

 

ㄴ과 ㅁ의 유기성

 

먼저 우리가 사용하는 명사형과 형용사형에서

형용사적 발걸음은 ㄴ

명사적으로 굳힐 때는 ㅁ

이 ㅁ은 모양대로 중앙에 점만 찍으면 중심이 되는 것인데

이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모서리를 중심으로 귀퉁이로서 각을 낼 때

이 4 개의 귀퉁이가 각각 구심을 가진 것으로 핼륨이 되어진 것과 같다면

우리가 소리로서 ㅁ이라는 것은 입 구라는 형태가 아니라

ㅇ이라는 소리는 벽을 삥 둘러 울리며 나는 소리이고

ㅁ이라는 것은 소리가 돌지 못하고 박히는 형태이기 때문에

닫히는 형상으로 봄인에

이는 곧 공간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선을 따라 본다고 함이 맞다

다만 받침으로 사용할 때는 공간적 모양을 띤 다는 것도 된다

수소 4 개가 ㅁ의 구성력으로 융합되어 있다고 볼 때

이 것이 수소적 함묵에 핼륨의 4 개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원소 1 주기율의 상태로서 명사성을 띤다는 것이고

ㄴ은 그대로 원소 2 주기율의 상태 즉 ㄴ이 두 개인 ㄴㄴ이 되는 것이다

 

 

언어의 한글적 차원

 

이 <칡>이라는 字型을 보자면

칡에는 ㄹ과 ㄱ이 박혀 있는 모양이다

ㄹ이 ㄱ에 박혀 있는 형상이니

ㄱ은 또한 벼랑이요 절벽이어도 잘 부리내려 크는 바라

어릴 적에 칡을 캘 때는 비탈 산에서 많이 캤고

또 캐기도 쉬운 것이었지만

읽을 때의 발음처럼

<칠기다>라고 술어형이 될 때는

받침의 ㄹ은 건드리지 않고 ㄱ만 캐내어

이를 기로 하는 발음 上으로 올리는 것이니

분명 이 기 자는 ㅇ인 다른 주기율에 올린 원소성과 같은 것이나

그 族 上의 성깔은 같은 것으로

받침에 있는 것이나 평형 상에 있는 것이나 하나같이 한다는 것이다

다음 자의 ㅇ을 한 주기율의 원으로 할 때

이 ㅇ인 주기율을 빼고 한 族 上으로 함다는 것과 같다

 

 

표현의 미래형과 현재진행형과 미래형

 

표현의 미래형이 강줄기같은 취용의

<~한>인 ㄴ의 받침으로서의 과거형

그리고 <~할>이라는 ㄹ 받침의 형으로 가는 것은

받침에 ㄹ은 미래적으로 흐르다 과거형인 ㅁ이면 닫히는 것으로

실제 바다가 한 몸으로 <믐!> <믐!>하는 것과 같다

과거형으로서 하나로서 <갔음>이라고 할 때

새 발자국 ㅆ에 음을 붙여진 형태

즉 으와 ㅁ으로 마지막으로 다문 형태라 것이다

곧 다문 형태의 初音이 ㅁ이라는 것이다

 

 

전이 원소와 란탄족과 악티늄족

 

이 節氣的 6과 7 주기율보다 먼저 4와 5 주기율의

傳移金屬 10 個라는 것은 이는 곧 철에 드러나기 이 전의

受胎性과 같이 이룬 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먼저 運行을 낳고 들어서는 것이냐

아니면 4와 5를 운행으로 해서 

란탄족과 악티늄족을 들어서게 한 것인가의 분변이 요구되는 사항이 된다   

 

  

이열치열이면 이열치열을 뺀 다른 점은?

 

화학적으로 칼륨이 나트륨을 밀어낸다고 할 때

이 것은 같은 족이면서 이열치열적 방식에 속하는 것 같기도 한데

여기는 주기율적 차이점이 무한히 내재되어 있음도 되는 것이다

이 것은 꼭 반대되는 성향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병행 하는 것으로서 좀 더 진한 쏘시개같기도 한 것이고

어쩜 장의 연동운동과 화화물은 같은 것이라는 것이듯

마치 섬유질이 장을 청소하는 듯이 하는 차이만큼의

원소 주기율의 벽이 있지않나 하는 것도 있는 것이다

나트륨은 원소 3 주기율인 이화(離火)에 속하는 것이라 강렬하다

그런데 칼륨은 재와 같다고 하나

재보다는 숯에 가깝다고 봐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원소 4 주기율은 진목(震木)이기 때문이다

즉 훨씬 안정감이 있다는 것이다

震이 무슨 안정감이냐고 하지만 상대젹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숫자의 형태와 얼굴

 

내가 실은 컴퓨터가 서툴러 그림을 그려 놓지 못하지만

본래 이 얼굴 四型 속에 다섯 五 자가 들어가면 이목구비가 되는 것이요

실제 그 아래 입 口까지로 해 나 吾가 되었을 때

완전한 얼굴의 나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인중을 비롯한 수염을 단 형태가 六型이요

턱이 七

다시 눈썹까지 붙여 八이요

귀밑 머리를 넘겨 九이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 붙이다보니 六부터는 터럭이 붙는다는 것이다

 

 

늙으니 명경유수도 업경유수와 같구나

 

나도 한 편으로 참 무지하게 살았는가 싶다

나도 이제 쇠약하고 쓸모가 없어지는 늙은이가 되어서 그런지

세상 참 두려운 것이구나 싶다

어쩜 나만 모르고 산 것이 이 늙은이인가 싶기도 하다  

그대야 명경대 속에 명경유수처럼 산다고 하나

나야 업경대 속에 업경유수처럼 사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너무 집요하게 새겨들려 하지 마라

결국 새겨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니

 

 

공망의 實

 

우리가 염기 서열을 다 발견했는데 있어 공망이라면

분명 다른 패턴에 와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무언가 실제적 기둥에 삭정이일 수 있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쩜 좀 더 영생법이 있는 것인지도 모를...

물론 世가 공망이면 胃나 腸이 절제되었던가 하는 것으로

실제 이러한 공망이 衝을 받으면 절제하지 않고 치유의 길이 있게 된다

 

 

양기(陽氣)

 

건(乾)은 陽이나 진뇌(震雷)처럼 돌기하는 陽은 아니다 

그래서 원소 1 주기율이면 원형(圓型)을 이루는 陽의 기운되

돌출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본래 원소 4 주기율부터 돌기라고 봄이요 

우리가 감로수를 마시고 원소 3 주기율까지는 왔다고 할 때 

다시 채식성으로 원소 4와 5 주기율로 왔다고 볼 때

이 때부터 음과 양이 뚜렸해졌다 볼 수 있음이요

전이를 금속성 안에 드러내는 것이

금속성 아니면 밖으로 드러남과 같다고 봄이고

또한 팔 다리로서 행위를 낳는 이차성(二次性)이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육식성(肉食性)으로 원소 6과 7 주기율로 와졌다고 봄이면

왠지 방사능의 반감기가 영구적으로 긴 지옥과 혼재됨을 봄과도 같다

 

 

이온과 공망의 법칙

 

우리가 황(黃)이 음이온  두 개를 가지고 있다 할 때

이 것은 易上으로도 공망으로 취용할 수 있다

일례로 오래 된 병에

황 쪽에서 공망이 드러나는 것이면

황의 이온성이 그 병을 막아주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만일 이 황이 이온 합이 되어 메워버리면

그로 사망한다는 논리가 성립이 된다

이 건 지금 원소의 이온을 넘는 공간의 역동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화학적 루트 속의 루트를 말하는 것이 되니

마치 길을 보았으되

그 길을 걷는 인간의 창자를 본 것만큼의 정밀성에 와 있다는 것이다  

즉 화학적 연결 고리가 그 길이라 해도

초탈한 범주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방금 난 병이라고 할 때는 

도리어 황의 음이온으로 인하여 난 병인데

이온 합으로 치환 시켜주면 낫는 뜻이 됨이다

그리고 하나의 약리적 과정이라면

먼저 이온 합의 염기화로 출발하여

다른 화합을 이루는 과정에서 독립적 추출물 낼 수 있는 것이며

이는 곧 합처봉충(合處逢衝)으로 얻어내는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고

유도체와 화합물이였다가 홀로 남겨지는 것이다

즉 이런 式으로 발견이 된다는 것이요

게다가 應方 空을 衝하면

이 과정에서 의외의 다른 원소를 발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것은 꼭 물질의 성분 뿐 아니라

공간성도 이런 식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바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원소 5 주기율까지는 원자의 차원

6 주기율부터 단백질적 차원이라고 할 떼

다 7 주기율적 육부(六腑)를 둘 수 있음과 같다

이는 곧 물은 100 도 씨에 끓는 것인데

이 것이 곧 생사 간의 강과 같은 것이라

아지랑이가 그 경계를 넘어 춤을 추나

그 건 원소 6 주기율의 단백질적 차원은

백 도를 넘으면 돌처럼 굳어지는 것으로

아지랑이가 5 주기율의 바람적 원자와 같이 논다고 

같이 놀았다간 목을 죄는 것이 굳어지리라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백 도를 넘으면 불에 타 재가 되는데

이 것이 곧 불인 이화가 감수로 돌아가는 것인데

재란 과히 알맹이가 집히는 정도인가 할 정도로

소숫점 조차도 무지개 문만큼 큰 냥 넘어갈 수 있는 길목이니

이 것이 결국 원소 5 주기율의 바람통에

원소 6 주기율인 水에서 나와

저 수소(水素)의 水로 넘어갈 수 있는 몸이니

그 공간적 차이는 엄청난 것으로서  

우리가 수소와 원소 6 주기율이 같은 것으로,

수소에 원소 6 주기율이 범우주적으로 확장된 의미에 있는 것이라면

이 것은 단백질적 차원의 6 주기율은 닫히고

수소 內에 있다는 개념의 유기체로 영혼성을 띤다고 볼 때

이를 원소 5 주기율이 바람의 차원으로 북더기처럼 풀어놓는 상태라면

어쩜 水素라는 감로수(甘露水)를 

원소 6 주기율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성(自省)하게 함으로서

얽힌 실타래를 제차 확인하고 풀어보라는

북더기적 공간을 열어 놓은 수 있음이 원소 5 주기율이라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인생 낙관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뜻은

과장 되어도 어찌 보면 터무니없이 과장된 듯이 여겨져도

이 배꼽이라는 의미를 잘 음미해보면 이보다 더 적절함도 없다

즉 배꼽이란 인간이 태어났을 때의 인정서인 것으로서 

도장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보다 더 큰 落款이 어데 있으리

그댄 낙관적(樂觀的)으로 사는가 

난 낙관적(落款的)으로 산다네

즉 인간 도리의 틀을 물리게 한 사인(sign)이라는 것이니

그러나 살다보니

누워 있고 앉아 있어서의 배꼽으로서의 셈을 하다보면 

늘 배가 차지 않는 배 딸리는 셈만 나온다  

가만히 있으면 배가 더 고프고 꼬로록 거리는 것이니

차라리 그냥 서 있는 그 자리만으로서의 부지가 힘겨운 판이라도 

바리 바리 발바리 인생길이라도 좋다할 긍정에도

주저앉고 싶은 거기서 또 내놓으라는 것이 인생이고 보니

무엇이 참다움인가를 되씹어보게 하는 지경인 것에

길이 런닝머신이어도 길을 내놓아라는 것이다

좋게 보면 부자들 런닝머신 돌려가며 사업하는데

난 지구 돌려가며 우주를 낳지 말란 법이 없지 않는가 하지만 

그러니 道가 착 붙은 인생이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언제나 인간은 자신으로 돌아오게 하지 런닝머신으로 돌아가게 않으며

내가 지구를 돌린다고 해도 지구에 돌아가게 않는다

그러니 도를 뱉는 자가 도에 눕질 못하니 얼마나 고된 삶이겠는가

눈 뿐만 아니라 마음 돌릴 틈이 없이

정말 집중하지 않으면 혼수상태에 빠질 것같은,

그러니 더더욱 길 위의 날이어야 하는,

무언가 급조할 수 있는 최적절의 집합점과 같은 시간과 공간이니

어쩜 안도감에서인지 차간에서 쓰는 글이 제일 느긋한 것같다

어데든 머물고 누울 수 있다면  

이미 그로부터 계산과 타산이 맞춰 드는 것도 샘과 같음에  

최소한 내 정서나 될까 해 인터넷에 들어가봐야

저주나 발릴 뿐이고

하루 지새야 하는 비용을 들어야 하는 것 

거기다 내일 움직여야 하는 거마비 등을 제하면

늘 한 끼거리 두 끼거리만 오락가락 하는 판에 

그 것도 밥 한 끼는 엄두도 못 내고

그나마 천 원짜리 햄버그라도 한 끼꺼리로 입에 넣을라 치면

고기 먹는 것조차 거북살스러운 인간이 되다보니

방귀도 배에 무언가 들어야 밀리는 순서라는 것도

배를 비워보고 알기나 하는 것인지

끼니라는 것도

안 먹으면 계속 안 먹어야 도리어 편한데

불규칙은 위장 뿐 아니라 심장에 굉장이 부담을 준다

이 때는 잠시 몸을 편하게 해주어야 하는데

커피의 각성으로 마구잡이로 걸으니

이젠 무엇보다

속이 비다보면 몸에 어데라도 접히기만 해도 쥐가 난다는 것이다

실제 속이 비면 온 몸이 쥐가 도사리고 있어

차간에 앉는 데도 약간만 눌렸다 싶어도 쥐가 나니

전신이란 것이 쥐 경보에 곤두서기도 하는 것이라

특히 발가락에 쥐가 날 때나 허리에 쥐가 날 때

그 통증이 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과연 전신마비라는 통증이 이런 것인가 할 때는

과히 인간이란 자신이 앓아보지 않고는

그 사정을 모르는 것이구나를 실감하다보면

나도 남의 병에 무심하고 혹독했던 인과가 맺힌 것인가 싶기도 한데

사실 버스를 타도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악을 쓰는 지경이 많아도

그래도 서서 가는 것이 복장 편하다고 느끼면서 가는 것이

배꼽 줄인 손잡이라도 붙든 것이 다행이듯  큰 체면치레하는 것으로

뭐 그리 낙관적(樂觀的)이지는 못하지만 

인생 낙관(落款)이란 것으로 사는 것은 되는구나 싶은,

배만 까스가 차

배꼽이여! 너만 커 허생허감(虛生虛感)하게만 하는구나 싶은데

해가 뉘엿뉘엿 기울 즈음

그래도 빈 속엔 물 한 모금이 뜬 氣를 누를 수 있던 것도

언제부터인가 맹물만 마져도 

현기증이 돌아 한참이나 가는 것을 보면

때론 예사일이 아니구나 하며 또 마시고보는...

눈이 침침하니 다시 눈빛이라도 돌아올까 쉬는 차에

한  운수(雲水) 비구니가 차에서 내리자 나를 보더니

서슴없이 다가온다

오늘 하루 노가다 한나절 일당 정도는 만들었다고 하는데

난 얼마나 만들었나를 묻는다

난 벌기도 싫어 한 푼도 안 하고 있다고 하니

그래도 열심히 공덕을 쌓아주어야 하지 않느냐 한다

그래서 난 공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하니

인연되는 한 사람이라도 열심이 치성을 드려주면 공이지 않느냐며

언성이 높아간다

그래도 난 나도 이제 나를 모르겠다고 설레발이를 친다

난 본래 상대적으로 정립이 되는 가치는 크게 부여 않는 스타일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도

날 좋아하면 나도 좋아하는 것이고

날 싫어하면 나도 싫어하는 것이

그나마 남은 청결심 같기도 한 것같아 나도 가뿐할 것같은데

세상사 인연이 바닥인 것에

뭘 너저분할 필요가 있느냐 싶어 이렇게 있으니

나만 더 평화롭다 싶다가도

세상에 연연해 하기엔 도리어 나도 인간이니

인연 아니면 나도 내 성질대로 떠나고 싶다고 하니

그래도 남을 위해 공을 들여 주어야 한다고는 하는데

나야  이 자리인 것만의 더 이상도 없을 뿐더러

본다 해봐야

갈수록 날 보는 것도 싫고 

자주 보는 것도 싫다고 하니

나도 나 보기 싫어하는 자 보기 싫은데

굳이 보아야 함이 역겨워 이렇게 죽치고 앉아 있는 게 편하다고 하니

그래도 열심이 살아야지 않느냐며 화를 내며 눈물을 글썽인다 

내 딴에는 굳이 운수(雲水)일 필요가 있겠느냐며 

강단(强斷) 있게 말한다는 것이 상대를 저렇게 마음 아프게 했는가 싶은 게 

떠나보네고 나서 갑자기 나도 자책감이 드는 것이

어찌 나만 이유같음이 있던가

저렇게 여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내고도 한참 멍하니 

나도 참 나 밖에 몰라 저 가슴을 아프게 했나 싶은 게

자꾸 찡하니 아려옴을 느낀다

 

 

성령각(聖靈閣)

 

불가에서는 聖靈이라는 말은 잘 사용 않는 것인데

그 것은 너무 그 신에 대해 고답적으로 받들어질 수 있는 것어서인데

다만 神을 청(請)하는 데 있어 성령으로 대함은 불가(佛家)에서는 山神을 위주로 한다

즉 시방 법게 지령지셩 산왕 대신(十方 法界 至靈至聖 山王 大神)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山神을 지령지셩이라고 함에는

거의 고덕승(高德僧)도 부처통이라기 보다 산신통이니

다 그런 차원의 단계로 든 영혼을 성령(聖靈)이라고 하는 바

다만 이러한 원력에 대해 소원을 비는 데 있어

자기 욕심과 많이 물리는 바가 있어

그렇게 성령으로 받들기엔 괴리감같은 것이 생기기에

그 부담감을 없애며 대할 수 있는 것이

이도 다 인간의 편의 상의 취용인 것으로 성령보다는 山神이 더 요긴하게 와닿는 것이거니와

자연과 토속성이 자연스러운 정서로서는

스스로 독립적이고 로컬적이어서 좋은 느낌인 것이기는 한 것이지만

이미 佛法이 있고 그에 대한 성스러움의 단위가 있는 한

철학성과 인간 고뇌를 넘는

성인적 인내를 거쳐야 하는 기본성이 확립이 된 데 있어서는

산신으로서 아니라

성령으로서 본 자리에 있었어야 하는 것이나 그렇지 못 했음이 있다

佛家에서도 성령의 단계를 說하고 있으니

완전히 없는 개념의 것은 아니고

부처님 外에 다른 성스러움을 얘기 한다는 것이

너무 신성시 되어 버릴 수 있어니와

부처님의 평등 사상에도 매우 편협적일 수 있음의 부분이라

이렇게 산신을 낮추어 봄으로서

스스로의 본면목을

스스로 얕잡는 형태로 산신통을 취급하기도 하는 것으로

뭐 좋게 말 해

시방 법계 지령지셩인 산왕 대신이 겸손해 하는 차원에서

성령이라기보다 산신으로 스스로를 낮추어

부처님을 향한 정진의 자세와 같다고나 할까

그러니 마냥 탐애(耽愛)와 기복(祈福)만으로 

욕구가 넘치는 바가 성스럽기엔 부담이 되는 것이기게 

그저 토속적 맛의 산신이라는 것으로 

또한 대지의 우두머리형이 산이기에 상용되는 것이나

이젠 지성적 고매함으로 올려 놓아야 

좀 더 문명화된 시대에 동참이라 할 것이니 

이젠  성스러움으로 밑받침으로 될 수 있음으로서 

마냥 소원이나 들어주는 쌈지 노릇 뿐 아니라

좀 더 중생의 귀감이 된 것으로  성령각(聖靈閣)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 주기율적 피막같은

 

저 TV 주파수가 밀어낸 윤기는 몆 주기율의 막일까

송출이 꺼진 모니터엔 느닷없는 눈발의 허공

태양 풍을 타고 드는 듯

그래! 눈이 오롯이 내릴려면

송출 신경계의 몸에라도 담궈야

윤기를 먹은 모니터 안에서 눈이 내리듯

영상에 내리듯

어쩜 그 그물방에 걸리어 떨어지는 것이 눈이듯

하늘의 눈은

TV의 눈발이 시공의 벽을 넘어 하늘하늘 내리는 듯

우리가 원소 4 주기율이 천둥과 같고

나무의 섬유질과 같아도

대패길이 잘 난 듯   모니터에 개기름이 오른 듯

맨드래이 하고선 얹을 수 있게 함의,

이도 다 원자 내의 시공성의 응집력에 의한 것으로서

거칠은 전파마져 피막을 덮을 수 있는 물질적 차원인 듯 

본래 원소 주기율이란 원자 이후의 주도권이 아니라

원자 이전의 주도권으로 그물을 쳤다 할 수 있음이니월급 4 백만이어도

우유를 끊어야 하는 속 사정의 생활적 측면이라는 것도

다 윤기 좋은 TV가 중계맥이 끊긴 듯 거칠게 몰아붙이는 듯

피부도 우유 광택은 접어야 하는,  

하얀 눈발과 같이 갑자기 한 체널이 지~! 지~! 지~!

바람새듯 새며 날라간 듯이 하는 데도 모를 듯이 잠을 자야하는, 

과연 우린 무엇이 같은 우주로 호홉하는 것일까

 

 

동네

 

동아

동아

동이며 네! 라고 하자구나

둥아!

둥아!

좀 컸다 싶다가

누구더러

네가~!

네가~!라고 눈치보일 일 있다면

차라리 나를 동여 매 <네>라 했다 함이

정답에 가깝다고 하는데

시냇물은

<내>라고 하고 간다

<내>라고 하고 간다  

 

 

대박! 대박!엔 소박이눈만 내린다네

 

대박!

대박!

그림이 아니어도 커리커처를 보는 듯 훤히 들어오는,

거기다 간판은 더욱 부릅뜬 듯이

허나 눈빛은 자꾸 움츠려 들기만하는,

아! 

소박!

소박!

내 누이 소박맞은 것만 같이

홀도 텅 비고

가슴도 텅비고

거리의 불빛은 더욱 침침하여져만 간다

아! 누이는 참 손이 컸지

집에서 찐살 한 웅큼씩만 가져가게 하는 데도

자기 손에 제일 크다고 직접 담아주던 인정덩어리

허나 소박맞고 오는 날 천상 여자임을 알아봤지 

그 후로 눈이 내리는 날이면

왠지 가슴을 움켜 쥐는 듯이 

소박이 가슴같은 누님의 눈이 내린다는 것 알았다네

소박이눈이 내린다는 것을 알았다네

 

 

그럼 무엇이 남는가

 

눈이 내리면

싸래기 눈이 내리면

그저 쌀싸래기로만 보이는 요즘

그래서 내리는 눈마다 쌀 퍼담아 주듯

모든 사람들에 넉넉한 복이 되었으면 하는,

아! 그러한 풍족이었으면

다만 그럼 무엇이 남는가

모르지

나만 모르는 것인지

다만 내가 배고픈 날

<요즈음 먹고 사는 걱정하는 사람이 어데 있어요

어떻게든 즐기며 사는가 이죠>

 

 

맥문동

 

맥문동아

맥문동아

난 네가 동네 이름인 줄 알았네

그러고 보니

맥(脈)이 펴는 문(門)에 동(洞)이 있음이든가

란탄이 거인족인 줄로만  알았지

수소란(水素蘭)의 배꼽인 줄 몰랐네

 

 

존재감이란  것이

 

삶의 느낌이 무엇인가를 묻는가

고라니 한 마리가 내려왔다

다시 고라니 한 마리로 돌아가는 것같구나그럼 너무 허무한 것이 아닌가

무엇이 그리 허무하단 말인가

늙어서의 애가 된 것같은

전이 원소가 다 빠진 듯할 뿐인 것에

전형원소만 갖고 떠나는 것이 듯이

 

 

눈도 얼음이 낳을 나이의 꽃이로구나

 

가을 서리꽃에 봄꽃을 저리 밟고 가느니

봄 벗꽃에 가을 서리꽃을 저려 밟고 가느니

하얗게 乾天에 낀 서리는 坎水를 낳는 꽃이요

푸르게 震雷에 낀 離火는 날로 푸르러구나

꽃이 먼저 되돌아갈 것이요 열매는 나중에 돌아가리니

열매가 땅바닥에만 닿아도 이미 돌아간 거리인 것을

 

 

풀꽃

 

동지(冬至)가 푸는 길에 팥을 던진다

그 사이 땅은 다잡히는 것이라

봄이면 죽풀이 일어난다

죽풀이 일어난다 풀꽃이 일어난다

하지가 야무는 길에

풀을 뿜는다 풀을 뿜는다

팥이 열린다 팥이 열린다

 

 

팥의 탄생

 

파가 반음이라 조용히 살핀다 해도

간 곳이 묘연하구나

ㅌ에 한 이랑 줄?

오선 줄의 센타 라인?

어떠하든 한 음정 눈의 깊이인 팥

 

 

ㅂ에 담긴 비

 

ㅂ에 담긴 비

ㅅ으로 빗질을 하는 빗

ㅅ이 비치는 것엔

사진 컷으로 보니 방울방울

아! 그래! 허공이 뿌리는 씨앗

ㅅ이 땅에 묻혔다고 ㅈ

빚!

살다보니 그림자 지은 빚이든가

비가 ㅈ과 함께 빚에 있으니 

아! 어느 누군들 빚이 아니고서야

주어도 주어도 모자라는 부모 마음일까

진작에 나무의 씨 바탕일까 하는 것에

一 線 아래 씨앗들이 나무처럼 일어냐야 할 것 

스스로에 놀라 일어나는 빛

 

 

三月의 분(粉) 가루에는

 

삼월의 분가루로는

제대로 먹히질 않는 대지의 살결

그래도 민낯이어도 더 참신한 참꽃

그래도 철쭉같았을 땐

젊은 나이에 수레를 끌어도 붉었던 얼굴

하얗게 팔등에 얼룩이 끼는 노파의 봄에도

젊은 날의 새순과 같은 팔이 나 참꽃이 피는,

 

 

空亡的 액자(額子)와 山水的 화폭(畵幅)

 

우리가 方을

방향성이 갖는 일률성의 성격이라던가

색상이라는 것이

결국 전체적으로 봐

비교적인 것에서 

그 색상의 부위를 띨 수 밖에 없는 것으로

유기성의 한계를 그을 수 있는 것으로

어디에 있던

그 방향이면 방향성이 같다는 것이 매김되는 것에서

줄기세포도 그 부위적으로 함에

풍수 지리로서의 水口도 줄기세포라 할 수 있음인데

空亡을 衝하면 줄기 세포가 거푸집에 다 찬 듯이

이 대자연의 산수화로 차 있음과 같은 그림이지 않은가 하는 것

 

 

수경 재배(水耕 栽培)

 

수경 재배에는 흙이 없다

그래서 나무는 흙 없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본래 나무는 빛이 흡수 되는 부분으로 뿌리로 하고

빛이 반사되는 것으로 줄기로 했다

어느 쪽으로 가든 드러내놓고 보면 다 흰 것이다

어둠 속에서 살갖은 유난히 흴 뿐더러

나무는 걷은 어두어도 속은 별천지다

흡수와 반사가 따로 놀 수 없는 것이라

그 것이 에초에 땅에 박은 뿌리이기 전에

천상계의 족보인 냥 살아 있는 것이다

흡수로 가는 쪽엔 다른 셰계인 냥 물고기 알을 낳고

반사로 가는 쪽엔 고치처럼 집 짓는가 싶더니

머무르는 바를 안다

그러다보니 빛이란 것 중에도 이 쪽도 아니 가고

저 쪽도 아니가는 것이 있는가 싶은게

어쩐지 물고기 알이다 싶은 것을 꽃망울로 터뜨리는 것같은,

 

 

선율의 코드와 전이원소적 차원

 

본래 사물의 현상에는

원소 4 주기율부터 소리의 영역으로 하는 바

빛의 파장보다는 길고도 또한 곡직(曲直)으로 강하게 움직이는 바

이를 전이원소적 감성으로 두드리는 노크와 같아

곧 원소의 성향이 음역적 노크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5 주기율과 함께 전이원소적 바람이 이는 것이라 봐야 함이 있고

이에 란탄족과 악티늄족까지 더한 선율은

원소 6 쥑율과 7 주기율이다 

즉 원소 4 주기율에서는 소리의 영역이

한 음표마다에 10 개씩 되는 전이원소의 

기타의 줄과 같다는 것이요

5 주기율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며 

이 것은 音의 도와 레에 해당되는 음역을 구성짓는 것이라고 할 때

파에서 부터 반음을 더하여 1.5 배라는 것이니 

곧 란탄족과 악티늄족은 15 개의 구성요소로 한다는 것이다

즉 도와 레를 알칼리성으로서 1과 2族으로 하고

3 족인 미에서부터 파까지 합하여 周易의 下卦로 하면 

솔라시는 또한 上卦가 되는 것으로 한다는 것으로

파는 결국 그 중간에 걸음을 늦춘 템포와 같이 한다 봄이면

다시 젠 걸음으로 가는 듯이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易卦의 六爻가 다 발동하는 것과는 다르게 

下卦만으로 순환하며 세운(歲運)이 돌아가는

토정비결의 취용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오장(五臟)과 핵가족

 

우리가 소우주와 대우주라고 할 떼

오장육부(五臟六腑)는 소우주

六親은 대우주라고 할 때

이 것 고착적인 형상을 말함이 아니라서

五行이라고 못 박아 두는 것인데

무엇보다 핵가족이라고 해서

오장육부조차 한 쪽으로 몰아 살 수 없을 알아야 한다

쌍둥이가 텔레파시가 통하듯

육친 간에도 엄연히 그 내항형(內藏型)이 깊은 것이며

특히 할아버지 형제

아버지 형제

내 형제

남편과 처의 형제 등은 밀접한 것으로서 

아버지와 처(처)를 하나의 계열로 묶을 수 있음이 사주(四柱)인데  

先後의 관계

그래서 시간은 가도 생의 영향력은 늘 그 자리로 맴도는

그림자 짓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아버지 계통의 약력(略歷)을 보자면

妻 계통의 인연과 비슷하게 상쇄됨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수화상제(水火相濟)

 

귀는 水素와 같아

天輪과 地輪이 人輪을 감싼 형태에서

때어 나온 것이 고갱이 나듯 편 얼굴이라

이는 곧 물고기 한 알에서 나옴과 같이 했다 함의

水宮인 것이요

눈은 이와 반대로 원소 주기율처럼 활짝 폈다고

天地의 중심적 눈알 언저리에 人輪이 낀 것과 같이 하는 것으로

즉 귀가 자신의 탄생이라면

눈은 자신이 낳을 탄생의 자리를 보는 것이며

이는 곧 자신은 물고기로 나왔고

자식은 새로 날아 오름이라

흰자와 노른자의 꿈이란

노른자가 눈의 홍채의 대지로 쓸릴 때

검고 푸른 하늘을 늘 잠기게 하는 것이 었음에

이 것이 곧 꿈이 낳는

자식이 있는 와잠에 영혼성으로 밀어붙이는  언저리같은 것

 

 

허공성으로서 미립자를 관철하는 것

 

보통 복음(伏吟)을 윤달로 볼 수 있음이고

空亡의 최소 点의 단위가 윤년(閏年)을 볼 수 있음이니

거의 1200 분의 1에 해당하는 空이라 봐야 함이다

아무리 두뇌가 명석하고 총명함이 그지 없다고 하더라도

천기에 관계된 것만큼은 그리 용이 하지 않는 것이

그만큼 경험이나 지식이 나열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폐쇄성을 다 아는 냥 통과할 수 있는 기반이 없고서야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으로

특히 과정 수료로 석, 박사를 이루는 경우로 비교됨에서야

한층 돋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천기이니

먼저 우리가 대상을 추론함에 있어 

맞느니 아니 맞느니의 경계 상에 머물다 말 것이 

또한 석학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알면 쉬운 것이지만 

무엇보다 천기도 알면 쉬운 패턴이지만 

그 쉬운 것만으로 가볍게 보아 넘기려 한다면 

마치 응용학적 눈치가 빠르다고 기초과학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주역만 하더라도 그렇다 

오히려 박식하고 영민하다고 하는 학자들도 맞니 아니 맞니에 맴돈다

어쩜 그 것이 박사도 병신되는 부분이 있어야

세상은 한 편 편하기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듯이

천기란 것이 오히려 아무리 잘난 자도

침묵으로 몰아넣어 안성맞춤으로 잘도 유지하는 듯도 함에

너무 유유자적할 만큼 도리어 안도감을 갖게 하는 것이지만

그 경계에서는 노는 자는 

알아 병신 육갑떠는 것도 되지만 

그 것 알 필요 없다고 석박(碩博)을 떠는 것도 

육갑떠는 자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자로 

이 것은 천기 쪽에서 보는 시각인 것이고

세상사로 보면

다 제 어리석음에 빙빙 엮여 돌아갈 뿐인 중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周易이 맞아들어가는 범주는 넓다

어떤 행위로 맞아들어가든가

물체나 형상으로 맞아들어가든가

시간(時間) 上으로 맞아들어가든가

문제가 자신의 어떤 기준으로 맞춰들어갔을 때

너무도 상반되고 엉뚱하다시피 대답이 나올 때는

거의가 안 맞다고 포기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똑똑하다고 하는 자가 더하다 

더욱이 변명이라는 것이 

참으로 위대한 선각자 나셨나 싶은 터에  

만인의 수준이 그러한데 혼자 잘 나서 무얼하느냐 이다

물론 그 인내가 상상을 초월함을  참고하더라고

결코 쉽게 나아가지질 않음이 무게를 더할 수 있음을 애써 외면함에

점점 더 먼 발자국은 꿈도 못 꾼 것이 되고마는 것이라

그러니 神이라는 자체를 아주 우습게 여길 수 밖에 없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표준형에 인연을 맞추어 맞히다 보니

다 자신이 잘난 듯이 하지 神에 대한 경외감이 없다는 것이다

즉 어떤 대상이나 물질에 접근하는데

어떤 행위적 결과만 내놓는다면 그 직접성으로 맞추기 어려울 수가 있다

허나 神은 영험함이 있음을 주지하다보면

그 행위적 작태를 1차적으로 하고

2차적으로 접근해야 함의 틀을 만들지 못 함에 근거함이 있는 것으로

즉 그만큼 논리적 전개가 단절됨에 있는 천기성의 함구와 같아서인데

꼭 행태만의 차이 뿐 아니라

일례로 윤달을 보자면 똑같은 달이 하나 더 있다는 것에서는

복음(伏吟)에서 윤달을 발견할 수 있음이고

또한 年이 변효(變爻)로서 空亡이면 윤달이나 윤년일 수 있음인데

占이란 것도 대상에의 접근이라는 것이

여러 갈래로 나타나게 되어 있음에 유의하여 살필 줄 알아야지

어떤 법칙이 있으니 거기에 맞아야 한다는 것으로는

의사로서는 명의(名醫)가 됨이요

역학사(易學士)로서는 명사(名士)가 될 수 있음이나

오히려 神의 경지와는 벽을 쌓고 이뤄 나가는,

마치 제 메아리를 제가 알아서 수습한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사고의 다른 차원적 흡수성

 

우리가 대지를 그림자적 思考의 원천지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이 坤宮에 未와 申이 있기 때문으로

이 未에는 성숙(星宿)의 정귀(井鬼)가 있고

申에는 자참(紫參)이 있기 때문이다

또   未는 羊이요 申은 원숭이이니

소는 벼랑길을 내려오려면 얼어붙는다

할 수 없이 겁 많은 1 월의 여신이어도 나의 어머니,

이를 마주하는 염소는

벼랑을 잘도 타고 내리며 그 황무지를 벗어나는 것을

井鬼도 紫參이 솜사탕틀처럼 돌돌 말아 올리게 할 때

대지의 그림자적 사고인 井鬼는 申의 磁石붙이처럼 되어

저 은하수에 얼마나 녹았음음인지

어쩜 저리도 눈빛 총총한 곳으로 다 따라갔을까 

 

 

윷놀이

 

도에도 밝은 발걸음이니 어둠을 짓지 마라

개라도 개판에는 밀리면 안 되는 것이라고

개~! 개~! 하지 말라

그래봐야 단순무식에 니전투구이지 않는가

그보다 인생은 한층 걸쭉한 것

걸팡지게 한 술 뜰 수 있어야

그래도 제 입맛에 제대로 돌린 진미를 말 한다 할 것이니

노는 것도 걸지게 한 번 놀아보는 것이요

너무 가라앉지는 말아야 할 것이니

옷은 옻까지 가 윤기 나는 옷인 것이요

숫은 숯까지 가 이상하리만치 검다

윷에는 진이 있고 드래짐이 있고

앉은뱅이 소가 있고 

인간만이 등 깔고 눕는다

이 것이 윷이든가

모에는 말이 장애물을 넘은 것이 있다

지구 반 바퀴가 있다

지구가 한 모퉁이이다

모로 가도 서울이요

모로 당겨도 한 바퀴이다

 

 

환골탈태(換骨奪胎)

 

원소 1 주기율 상의 수소(水素)라는 것은

원소 6 주기율의 압축성이라고 할 때

핼륨은 두개골과 같은 것이라 봐야 함의

아! 원효의 해골바가지 물 한 그릇

그 누구의 물도 아닌  것이

원소 1 주기율도 물레처럼 돌리는 바라

도는 것을 보지 못 했음에도 환골탈태인 것을

이 것이 대평원이라 함에 드러나는 것

구멍마다 살아 있는 감각의 자기장적 울타리

그 융기와 침식성마져

이목구비와 다를 바 없이 원소 2 주기율인 것

아! 판치생모인가

배에 융털이 나니

입으로 나물이 썰어 썰어 들고

벌린 입은 두 짝이 아니며는 다물지 못 하는 것이니

어찌 짝이 없는 이목구비일 수 있으리

 

 

자연의 섭리는 혼백을 넘는 것같구나

 

해가 西山에 지지 않는 법이 없으니

그리도 저주를 무덤으로 넘길 냥이면

그에 응당하는 결과야 당연히 내주는 것이니 

노을이 붉구나

아! 澤宮의 입술은 붉구나

아! 지구 한 바퀴 신백(申白)이여!

太白은 하얗게 눈이 쌓인 뇌백(腦白)이라 하겠구나 

 

 

난 수학을 잘 모르지만 아래와 같은 공식이 있다고 한다 

 

"'3차 이상의 제곱수를 같은 차수의 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Zn≠Xn+Yn).’(n=1, 2인 경우는 성립)"

 

즉 이 3이란  숫자의 개념에 흥미를 갖게 하는데

우리가 먼저 마음으로 염두하는 것이 3이라고 했을 때

이 3이 되는 스텝으로 고르게 넘어오는 것이 있는가 에

우리가 무게나 크기가 다른 개체여도 세 개면 3일 수 있는 것과

이 3이라는 이미지에는 易象으로는 火요

後天數로는 木이요

天地人으로서는 人에 속하는 것이며

핼륨이 수소 4 개의 질량이라고 하지만

스텝 上으로 2인 것이니 2로 받아들이면

스텝의 3인 리튬은 자연 원소 2 주기율부터인 것으로 해서 

위의 공식이 성립되는 성질을 한 자루 씩 갖는가 하는 것으로

土亭 이지함 선생님의 월영도(月影圖)에서는

행위로 풀었던 것이나 

다시 물형(物形)으로 당긴 것이나

수리(數理)는 같은 것으로 취용하는 것과 같이 

물질의 어떤 상태보다

마음의 균등성에

수리(數理)가 메일 수 있는 근거는 찾을 수 있는가 하는 것과

위와 같은 공식이 성립이 되기에

원소 주기율도 주기율 상으로 뭉쳐질 수 밖에 없는 것과

어떻하든 이 것 또한 십진법에서 끌어 당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개체적 독립성으로서 합쳐지지 않는 개체로서의

십진법의 매듭에 연결된 것이 된다면

이는 곧 천상계와 맞물린 초우주적 차원에서

전이원소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수학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비는 아직은 울만한가요

 

비가 울면 비운다

빈다

새소리 제 부리같이 뾰족해도

어찌 어미 새만 듣기 좋다던가

굴리기만  해도

천상의 낙원이 따로 없이 하는 것을

울음으로 운다는 것인지

차라리 눈물 한 방울이면

나무 뿌리라도 더 자라겠지만 

대명천지에도 모랫바람만 지나다말을 날들

눈 비비는 사이

눈물조차 말라 씻기우기는 하는 것인지  

그 사이 비는 넉넉잡아 울만은 한 것인지

 

 

몇 바퀴만에 왔느냐

 

눈이 부리부리 새부리

<몇 바퀴만에 왔느냐?>

눈이 부리부리 새부리

<몇바퀴만에 왔느냐?>

부리 부리 뒤에 숨은 눈

어찌 호르라기보다 알차게 굴리더란 말인가

<호르라기 바퀴!>

<호르라기 바퀴!> 

소리가 천상처럼 구르니

눈빛 또한 신선궁처럼 지긋함이 있구나

 

 

염색체의 돌기

 

염색체 내의 염기성의 돌기가 짧아짐으로서

인간 수명이 주는 형상은

무지개 색의 적외선에서 부터

빨강 색으로 해서 줄어드는 것으로서

이는 파장이 가장 긴 적색에서 부터 줄어드는 것인 바

결국 염색체의 돌기가 赤- 黃- 靑- 紫外線이 되는 순서대로

파장이 짧아지는 것과 같은 것으로

즉 전자와 광자라는 의미는 물질적 개별적 독립성이라기보다

행위적 차원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아무리 色이 흩어져 산만해 있다 해도

정확하게 무지개 띠로서 수습이 된다는 것으로서 해서

이를 천공적(穿孔的) 잣대의 단층으로서

염색체의 돌기와 동질의 것이라고 볼 때

이 것이 마모되어 가는 과정이  

결국 자외선의 내적 허공으로 닿는 것으로 종명(終命)이라고 할 때

왜 자외선에 드는 것인가는

보라색이란 것이 적색과의 사이에서 나는 것인 것만큼

이 자외적 공간이라는 것은  

이미 다른 한 단계 낮은 옥타브적 음색의

적외선적 선상과 맞물린 것으로서

서로 다른 옥타브 선상의 자외선과 적외선이 

동일 선상임을 색으로 드러냄과 같은 것으로서

이로 염색체의 한 옥타브 상의 색을 다함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겉보리면

속보리도 있음인가

봄도 겉푸르름이 있으면

가을엔 속푸르름이 있는 것이니

저 무지개 층 火山이 둥글게 지구를 다 덮은 듯한 빨강

그래! 폭으로 間이라고 하느니

띠를 두르니 江이고 남을 것이라 빨간보다는 빨강일

아! 가을이니 오히려 누른 대지가

불길이 고개를 숙인 듯 도리어 평화와 안식의 

꿀젖은 듯 보배적 충만에 대지가 순금처럼

이빨로 깨물어봐도 자국 패이도록 물릴 듯이 

황금의 침착성과 같은 연성의  평온감 

저 빨강에서 노랑,

거기에다 언제나 인생의 찬 서리같음을 이겨나가며 

애초 시작부터 녹여 왔음에 그와 함께 저며든 듯

가을은 벌판만으로

바람의 발조차 꿀에 붙어 떼어저지 않듯 숨죽여진 적막이듯  

겨울의 나무는 속이 푸르러되 파랑으로 짧아지리니

 

 

인식의 교차성

 

水란 것이

어느 틈새든 사이를 채워 모양일 수 있어도

자신의 모양이 아닌 듯이 하지만

자기 중심을 가짐이 水라고 할 때

그 본성을 변치 않음이 水요

그 흐르는 것으로 길의 연출이 있음이 木으로 하는 바

어쩜 길의 판토마임적 행위

즉 자기 전형을 만들어 감을 목이라고 할 때

우리가 電子 하나만으로 볼 때

쇠는 쇠일 뿐 전기를 가하지 않을 때는

전자도 쇠일 뿐인 것으로서 정적(靜的)으로 함에 金으로 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회전력이 생겨 돌아갈 때는

그 사이에는 양쪽에 장단을 맞추어 밀고 당김이 있는 것이니

이가 원소 2 주기율적 입을 의미하는 것에

법령이 둥그렇게 감싸는 것이 마치 자기장이 패이는 것으로서 

자기장에도 볼륨살이 오르다 보면 볼우물도 패이는 것이듯이  

심장의 순환에 채워 넣음이 있어야

그 걸 중심으로 나무 한 그루가 방향성 있게 서게 됨인데

이 것이 肝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신체란 이렇듯 원소 주기율적 점층력이 생기는 것으로

이 것이 단층적으로 억눌린 것이

수직적으로 일어날 때의 양상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태을(太乙),  육임(六壬), 기문(奇門)

 

기문둔갑(奇門遁甲)은 감수(坎水)를 출발선으로 1로 함에

이는 周易의 6인 감수에 해당하는 것이니

원소 주기율 6에서 7 주기율로 넘어가는 것이니

이는 坎水 1에서 坤地인 2로 넘어감에

이로 지리(地理)에 관여된 무게를 갖는 것이라고 봐야함인데

란탄족과 악티늄족으로서

풍수학적 穴의 기능이 묻혀 있는 에너지적 차원이라 할 것이다 

이에 앞서 원소 4 주기율과 5 주기율로 人門으로 함으로서

四柱學的 근저(根底)를 이룸이 있는 것이고 육임(六壬)을 말하는 것으로

전이원소적 우주 간의 맥락을 같이 하는 오장육부적(五臟六腑的) 차원인 것이다

또한 이에 앞서 원소 주기율 2와 3은 천문에 속하는 太乙을 둔 뜻으로

이에 준(準)해 영혼은 전형원소적(典型原素的)이지않나 하는 것이다 

 

 

이 한 마리와 인간의 인연과 같은

 

우리가 은하수라 함에는

우주가 수소로 꽉 찬 것으로 하여 水라고 하는 것이요

이 이상을 틈으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볼 때

핼륨 4 개로 서캐 피같은 양자를 터트려 광자를 내는 것과

그 한 방울이 자란 듯 한 짚단 속

그 불길일 때 피같은 광자를 내는 것으로 

木은 電子的 차원으로

나이테로 묶음을 만들 수 있는 굴레를 만들다

이무기 똬리같은

코일을 감는 것으로 좋아하다 용되는 것을 좋아하는 듯

이는 곧 전깃줄이 넝쿨이라면 전등은 꽃인 것으로

즉 火에 속한다 할 것이며

광자적 차원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인 것으로

실제 우리가 물상(物象)으로 木이라 함이

인위적이어도 電線이 제일 긴 木인 것이요

전파의 섬유화가 목이요

불의 섬유화가 꽃인 것인데

섬유화 자체는 木宮이기에 그러함이라

 

 

병행 선상이기에 의식계 밖인 동일 세계

 

木이 진뇌적(震雷的) 차원에서 가장 활달함에

주기율적 궤도 상의 속도감은 다르지만

똑 같은 동질적 순도로서 나무가 큰다고 봄으로서

그 바탕적 에너지는 무엇이며

원소 1 주기율적 차원에서의 雷란

원자 내에서의 전하(電荷)를 말하는 것이요

번개가 나는 차원은 원소 3 주기율이며

원소 1과2 주기율은 빛을 능가하는

텔레파시적이면 겁살적의 의미를 담는 것이기에

원소 3 주기율 상으로서의 나무가 큰다는 의식은

닿다마자 소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 할 수가 없는 것이고 

이 의식이 설래도

나무와 雷를 의미하는 4 주기율을 넘어

속도 차이로 개체성이 드러날 때에야 가능한 것이니

원소 5주기율에 가서야 가능하기도 한 것이다 

즉 나무가 원소 4 주기율이면

4 주기율로서는 병행선상이기 때문에 의식할 수 없는 감각이고

나무가 전도체가 아닌 것은

전도체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완전한 병행선이기 때문에

內的 전도성을 따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이지

전도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것으로서 

나무자체의 백 프로의 흡수성으로 인한

내장성을 갖출 수 없음이 있을 수 있다 것에서

우리가 인간세계 사주(四州)가 있어도

서로 느끼지 못 하고 따로 살 수 있는 패턴이 될 수 있음도

이러할 수 있음에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으로

우리의 육신의 신경계라는 것도 

그 4 주기율적 선을 벗어난

5 주기율에서 4주기율을 의식하게 되는 것으로 살아질 수 있다는 뜻도 되는 것으로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즉 無여도 병행 선상이 있는 것으로 있다가 有가 될 수 있음도 있다는 것이다

 

 

개념의 적절성의 순도를 위하여

 

우리가 물상(物象)을 따로 두고

色을 따로 둘 것이 아니라

행위로서의 단계로서 物性과 色이 나타는 현상이라고 할 때

모든 원소성마져 파장적 효과로서

공간성마져 섭렵해야 하는 것으로 할 때

이 공간성이 그물과 같다고 할 때

주기율의 단계만큼이나 따로 나올 수 있는 것이기에

그 징험(徵驗)이 같지 않을 수 있는 범주가 있는 것으로

우리가 電子라는 것 자체로 水로 하고

자체적 이완성과 부결정형이어도

그 중심적 응결체로서 하나라 칭할 수 있는 단위에서

水的 안목이 된다는 것으로

이 것이 어차피 인식이라는 것이 상호성이 있어야 하기에

서로가 어떤 폭을 두고 통하느냐도 중요한 것이다

 

 

통하였느냐

 

우리가 그림자가 맺힌 층으로 칲이라고 할 때

다시 그것을 인식하는 패턴은 조망적 신경조직이라고 볼 때

이와 반대되는 되는 개념은

빛이 흡수되고 투과되는 과정에서의 자체적 센스를 말하는 것으로

이 빛을 개체성을 가진 것으로 차원적 배양이 된다면

혀라는 것으로서

마치 혀를 삼키면 그 기록물을 아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이 것이 고정형으로 박히면 피동형이 되어 맛보는 것으로

다시 다른 인식의 기관에 절차를 낳는 것으로

빛을 삼켜 전모를 알 수 있음은

개체가 따로 둠에서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나

한 몸에 두어 연결고리를 갖느냐의 차이일 뿐인 것으로서

곧 혀의 고정성은 자동형으로 나아가 닿는 것이 아니라

닿게 함으로서 알게 되는 것으로서

다만 빛만큼 자유스러운 센스는 아니지만 같다는 것이다

즉 빛이 칲이면

그 칲을 입에 함구하게 함으로서 옥살이를 시켜가며 부리는 것같이

우린 혀에 의지하는 것이나  

빛을 삼키면 바로 알 수 있음이

곧 뱀을 삼키면 빛의 기억성처럼 인지한다는 것과 같다 혀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빛을 巳인 火로 하는 것이며

혀를 또한 火로 함이고

혀를 사용하는 소리를 화성(火聲)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것도 복잡한 것 같아도

혀가 갖는 이질감의 감각은

극미입적으로 진주가 모래를 밀어내는 것보다 

훨씬 한 알 한 알 분별이 생기듯 세분성으로 볼 수 있음이며 

이는 곧 전반적 안목의 神通이 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우리의 육안으로 보는 칲이란 것은

水인 더께살에 낀 그림자에 火의 안목으로서 보는 것으로서

우리의 眼神經의 확보로서 알 수 있는 것으로 볼 때

이와 상반되는 개념이

천상계에서 빛을 삼킴으로서 알 수 있다는 것으로

재차 설명이 되는 바

이는 빛의 투과성이 빛 자체가 인식하는 기억성으로 지나

흡입되는 바로 바로 전달될 수 있음을 갖춘 것으로 

빛 자체가 전체적 센스를 갖고 이동이 된 것이 있다면

우린 빛을 삼키는 것만으로 인지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이 水의 개념이요

전체성의 개념이요

한 단위의 총체성의 개념이요

그래서 천안통(天眼通)이

천이통(天耳通)보다 반 밖에 되질 않는다는 결론이 나는 것이다

 

 

이온의  이삿짐 량(量)

 

우리가 염기화(鹽機化)를 나타낼 때

이온에 이사짐을 얼마나 실리어 있는가 하는 것으로

3 주기율 상으로 이온적  반응이 視신경계의 反向이 있는 것이라면

원자를 한 안구(眼球)라고 할 때

영상이 든 함유의 세계가 갖는 양적 처분 양상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또한 프라즈마 상태로 무중력화 되었을 때

극미립적으로 운무화(雲霧化)됨과

마치 지상에 구름이 여우 모양으로 나타났다 사라질 수 있는 양상의

폭발적 출연에의 해석으로서의

과연 이 대기권의 레즈 현상으로 즉석에 나타낼 수 있는가 하는 것

또한 陽性子와 비례하는 電子의 메세지는

하나로서의 불안정성으로 해서 짝을 이루게 하는 것으로

그에 따른 소산이 사회적 인연만큼 냄새와 색이 있는 것이다

 

 

열매는 시린 어미의 손 끝에서 어름 궁전을 접은 것

 

우리가 바람이 달리면

빛이 달아나 듯 달아나지 않는 이상

열은 뺒기는 것으로

지나가다 바람을 잡거던 물어보라

빛을 어떻게 하였느냐고

그러면 꽃을 피워 줄 것이다

그리고 또 물어보라

그 것이 전부인가를

그러면 얼음을 내놓을 것이다

그 사이 꽃은 얼어 떨어질 것이요

시린 어미의 손에서

어름 궁전을 그대로 내놓을 것이다

 

 

역상(易象)마다의 체상(體象)

 

우리가 水로서 액체 고체가 됨에는

물은 0 도 씨에서 기준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순간같음에 1로 함이 있다는 것으로

또한 火로서 액체 고체가 있다함은 

잿물로서의 유약으로 바르고

다시 고열점에서 고체화 시키는 것에 있어

그 고열점에서 1 도 씨로 함이 있다는 것이요

그러면 물질의 기본 도수 -274 도 씨가

水의 결빙성의 기준과는 다르기에

수소를 넘어 관여된 다른 허공계로 볼 수 있음으로

원자보다 더 미세한 공간성의 응결점으로 따라

흩어질 수 있는 극점을 말하는 바

이 경계 사이에도

이는 인간의 수명 10 세와 연관지을 수 있는

선천성의 기본형이 내재됨이라 봐야할 것이다

곧 水를 1로 하는 바가 그렇다는 것이며

1 도 씨에서 결빙과 증발을 한 라인 선상에서 일어남을 뜻하는 것으로

즉 하나의 원형인 0이라는 형상에 눈금을 둔 듯이 나타는 것이니

이 눈금적 눈으로 생명이 탄생하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는 원소 주기율과 족(族)의 x선과 y선으로 모눈종이를 펼친 듯

눈을 일으킨 것이라고 봐야 함인데

우리가 원고지의 눈을 볼 때 공백을 매우는 모판으로 여길 테지만

주기율과 족적 원고지 눈의 항목으로 보자면

냄새와 맛이 족보와 우주공간적 천상계의 궤도를 품은

유전형을 갖춘 것이라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숨쉬는 독

 

우린 원소 7 주기율을 언저리로 했을 때 

무지개 색깔에도  

언저리 빨강에서 초벌구이를 했다고 했을 때

일곱 번째가 빨강이 아니고

7 주기율은 주기율상으로는 연소성이 아닌 土이기에

일곱 번째인 토가 빨강을 들인 것으로 해서 굽는 것이라면

이로서 만일 원소 8 주기율이 있다면

이 7 주기율에 덮여진 유약이라고 봐야 함이요

8 주기율이 없을 수 있음이

곧 원소 1 주기율의 금속성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마그마를 타고 나온 것과 같기에

1 주기율적 성질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8일 수 없는 것과 같고 

이는 곧 피부의 에나멜질과 같다고 봐야 할 것으로

원소 1 주기율적 금속이

7 주기율의 지상에 드러나 입혀진 형상으로 봐야함이다

이 것이 숨쉬는 장독이라는 것이다

즉 물레는 木이라 함이요

도자기의 배를 만든 공간을 火라 함이요

구운 옹기는 土라고 함이요

거기에 발리어 굳은 것이 金이다

그리고 거기에 유약이 닦이듯 바래지는 水이라는 것이다

 

 

神과 行의 궁극성(窮極性)

 

우리가 물체를 神으로 함은

물체는 물체인 것으로 개체적 성항으로 보기 때문에

이런 體의 상태에서는 모든 독자성이 신적 자유만큼이나 부여되는 것이며 

가감이 있으면 더더욱 자연적일 수 없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인데

그 것은 그 것이다는 것이 되지 않을 때는

과학이나 수학이 한 보도 나아갈 수 없는 환영과 같을 뿐이다  

이에 비해 인간은 體보다 用에 있어 行이라는 것으로 더 주제하는 바는

神은 神일 수 있지만

인간이 인간일 수 없는 것 또한

行이라는 것이 늘 하나의 통일성으로 보려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넓다기보다 파편적 흔적같아 비애감을 갖게 한다

 

세계는 넓다고 성취욕만 부추길 뿐

神이 넓다는 것은 도리어 더욱 협소하게 할 뿐 아니라

절대적 방대함을 다 아는 듯

몇 조 몇 항까지 요모조목 다 든 것이라고

무슨 육법전서를 읊는 듯이

법은 아닌 듯이 하면서 요목조목 같아서야

책장 한 장

글 한 구절 

제대로 숨이라도 쉬게는 하던 것이든가 

더 위 없는 듯

모자람이 없으니 마냥 배려만이 있는 듯

입으로로야 보살이지만 

사는 것 보면 코끼리 다리 도듬듯 맞춰가는 것 같은,

부분성이 부분적인 것

늘 고요함을 강조하는 것에

모서리는 맞대며 그림자처럼 겹치는 것은 보여도

마냥 그림자극일 뿐이라고만 하는

그래도 하나인 것처럼 절묘한 조화라고 하나

빠질 때는 각기 빠져 나가고 없다  

 

 

조건성에 있어서의 주체와 객체

 

보통 우리가 조개를 火라고 하는 데는

그 것이 딱딱한 새 부리같은 껍질이라는 것과

혓바닥같은 불을 의미해서인데

모래 한 알의 우주가 진주(珍珠)인 것이니

이 것은 모래 한 알이 이룬 것인가

진주 혓바닥이 이룬 것인가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는 시각

 

진, 퇴신(進, 退신)의 空亡에 있어

년주(年柱)가 퇴신된 변효(變爻)로서의 공망일 때 

그 변효가 충(衝)이면

미래에 찍어둔 기준으로 해서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을 일으킬 수 있고

그리고 반환점에서의 관계가 일어남을 볼 수 있음인데

이는 곧 두 사람이 함께 뛰었을 때

누가 먼저 앞에 나가 반환점에서 돌아오는가를   

미리 드러내는 양상이라는 것이기도 하는 것이며 

또한 정효(靜爻)의 年支가 공망이면서 충(衝)되면

해가 되어도

올해가 윤년, 윤달임을 모르는 것을 깨우쳐주는 것과 같다

 

 

어감(語感)과 의(意)

 

과연 껍질은 겁의 질이 겹겹으로 쌓여 이뤄진 것일까

최소한 유순이라는 단위가 순일 경우에 해당되기는 하겠다

그리고 우리가 시공을 계산하는 것에는

한 겁의 시간을 우리의 인식 기준의 찰나에 궤어 차고 나갈 수 있다면

깎은 듯한 절벽도 겁살의 경계적 피부가 됨을 의미할 수 있다

즉 이미 각기 다른 시공성이 물질과 허공성만큼이나

그 경계를 닿을 수 있는 것이라고 봄이고

이렇게 되면 렌즈의 두께만큼에서

그 시공성의 범위가 달라지듯 보아지는 단층를 낳는다는 것인데

이미 우리는 그 낳은 물질만으로

우주를 크게 볼 수 있는 유리알이라는 것으로 인연됨이라 할 때 

이미 우리의 안구(眼球)라는 것만으로도 

천안통(天眼通)에  속하게 하는 심지를 박아둠과 같은 것이며

이와 반대로 한 겁으로서 시간적 범주로 이승을 본다면

이 우주가 입자적 관계를 의미하게 되는 것으로 한다고 봄이 있는 것으로

이는 귀처럼 무한히 열어두고

허공성 그대로 은하수의 평형심과 함께 하는 기능성으로 함에  

이는 곧 천이통(天耳通)에 통하는 속성을 갖춤에

양쪽에서 반지름으로서 중심에 듦이라 봐야할 것이다 

 

 

유순: 거리의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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