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실(이 글은 순수 창작품임)

그럼 붕알은 몇 주기율인가

narrae 2013. 6. 23. 16:32

 

겹과 겁

 

우리가 항성과 행성 간에는 겹으로 잘 에워싼 것이라면

이해가 쉽게 와닿는 것이나  

힉스입자 차원을 넘어서야 겁이 되는 것은 인식이 늦다

결국 겁으로 덮어 씌운 것이 겹이거니와 

이 것은 원소 주기율까지 궤적을 관통하는 동질성의 

여러 화학적 변화와 함께 마음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서로가 양방 간에는

같은 맥락일 수 있는 시스템의 전반성을 볼 수 있음인데

결국 마음 먹는 것도 화학적 변화에 따라 일으키는 것과

사회적 상황의 연출도 결국

그 시스템의 색다른 표현의 양상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육근의 근본 그릇

 

두뇌에도 육근의 신경이 부위별 통함이 있듯이

오장의 오근은 등뼈에 있다고 한다

즉 머리는 등글게 싸듯이 하는 방면으로 하면 

이는 팔 괘의 반으로 접은 듯이 하는 것이다

이로 등뼈인 1을 더하면 5인데 

이 5로 다시 오장의 신경 통로를 내줌이 

10을 접은 5로 통하는 오행의 발로라고 하는데 

즉 5라는 중심성으로 오기 전에 

즉 얼굴은 4까지로 할 때 

신체를 보태어 5라고 하는데 

막상 이 5를 취용하면

다시 배꼽을 구심점으로  방향을 배포하는데

즉 머리는 乾이요 

그리고 척추를 빌려 다 옮겨갈만하면 그로 坤이라고 하는 것으로

즉 배가 중심이 되니 

이 坤인 어미의 뱃 속에 들면 다시 중심이 된다는 것이 된다

즉 배가 접히면 4로 치는데 

접히지 않고 포개지지 않으면 5로 쳐야하는 것이고 

4가 陰金인 兌澤으로 함은 양금이 접힌 형태를 말함이 있다

이 이치는 척추로서 1을 더할 때 

배가 부르지 않으면 1로 쳐주지 않는 것이니 

얼굴만의 4로서 안개처럼 사라지듯이 하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 건 사상의 팔괘로의 진화와 

하나를 더 부풀게 오행의 대칭성으로 10으로 진화를 본 것이고        

그런데 얼굴의 안구를 예로 들면

허공계의 안통이랄만한 망이 응력된 듯 안구일 수 있음이

어차피 공이기에 구멍에 취용할 수 밖에 없는데

이 응결성같은 안구의 색계가 망막을 넘지 않은 안구까지의 영역이냐

망막을 넘어 시신경의 부위가 있는 두뇌까지로 하는 것이냐 인데

뇌세포까지 쳐야 색계로 한 것이고

만일 안구를 색계로 할 때 

망막은 오히려 주기율과 족의 범주와는 

훨씬 미립적인 칼슘만의 원소인 독립적 영역만으로 감싸 쥔 

즉 이목구비 

즉 이통이나 안통이 되는 허공의 응결체 

이 것을 항성이라고 할 때 

혹은 갤럭시라고 할 때 

혹성적 골격으로 항성적 우주를 감지하는 능력이 되는 것이든가 

갤럭시적 우주를 감지하는 능력의 응고가 된 것이듯 하는,

이는 마치 바다의 침전물이 망간괴가 되듯이 

이 대기 안의 침전물이 칼슘이듯이 핵심이 될 때 

이 것을 골격으로 우주를

안구나 귀의 달팽이관으로 그 집약성을 응결하는 것이라면  

그러면 망막은 안구와 떨져 있기에

火의 공이라고 해도

즉 원소 주기율 정도의 안구가 없어도

망막은 골격의 시스팀에 붙은 혹성의 감각인 그대로 살아있음과 같은 것인가 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고

망막까지 안구와 같은 시스팀의 렬역으로 하면

결국 그 인식의 두뇌 신경까지 火로할 것인가 하는데

그럼 칼슘의 골격은 그 선에서 따로 볼 것인가 하는 것으로

왜 이런 분별이 필요하냐 하면 

이목구비가 골격의 空에 참으로서 色이라는 물질계를 나타내는데

이 六根이라는 색 중에 눈의 세계를 보자면

그 범주가 망막과의 경계인가

이보다 더 넓은 경지의 시신경인 두뇌에까지의 인지로 경계인가 하는 것이 되는데

다시 말하자면

그럼 안구가 항성적 우주라고 할 때

망막은 지구와 같은 혹성적 우주라고 하면 

그 침전물이 칼슘이라고 할 때 

그 칼슘으로 골격을 이루기에

그 골격으로서 두뇌를 앉히는 것으로 보면

이는 마치 시렁 위에 신주단자를 모신 것과 같이 되는 것이니

즉 두뇌는 망막의 시주단자가 되는 것이 된다

 

 

삼신 할망의 생사권

 

누군가 신 중에 제일 무서운 신이 어떤 신인가를 물음에

그래도 창조의 신인 삼신할망이 최고로 무섭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할망이라는 말이 최대의 자비적 모성에다

고향과 같은 토속성을 쥐니

약손처럼 향수와 같은 아늑한 모델 상으로 최고인 것인 것이나

페르세포네를 포기 않고 지옥까지 가는 데미테르와 같은 모성이야

어쩜 그만큼 독한 것이 있나 하는 것인데

왜 삼신 할망이라고 했는가를 따진다면 염라대왕보다 무서운 것이다

지옥도 마음에 있다고 한다

이 신이라는 것이 하나이면 지옥이라도 지옥임을 모른다

허나 셋이면 이승이든 저승이든 지옥은 있게 마련이다 

본래 사람이 신이요 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먼저 명시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마음에 들면 신이요 안 들면 귀신 취급이니 

무어라 하는 것은 차제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먼저 신을 세 부류로 나누어 있다고 할 때 

영적인 신과 혼의 신 즉 영의 신을 천상의 신 

혼신을 몸의 신

인간의 신이요 현재의 축적적 신이요 

무의식적이어도 신적 자주성이 있는 것이요 

육신이나 그 욕구를 체워야 함이 넋의 신이라고 할 때

이 세 신이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팔괘와 함께 모든 우주의 변화와 한 몸으로 한다는 것이다

즉 삼신이란 한 쾌를 이루어 생기 복덕으로 변화를 다하면 

팔괘를 다 거쳐와 사라진다는 것과 같은 동야철학적 이치로서 

삼신이라고 했는데 탄생은 모태의 은덕이니 할망을 받들음이 

최고의 인간성인 것읹도 모른다 

난 몰리학적이고 인문락적으로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는지 안다

난 두 신의 천상적 기운을 잘 받았으나 

한 神의 지옥적 허물을 못 벗은 것이 있어서이다 

즉 三神 중에 한 神이 엇박자를 느껴 고통스럽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내 태몽은 여러 분이 꾸셨다고 하시는데 

어머니는 산에서 밤 세 톨을 땅에서 캐어서 가져 왔다는 것이다 

결국 그 밤이 문제가 된 것이다 

밤이 아마 묻혀 있어도 지옥이 아닌 것이나 

나오고 보니그 흙을 다 털지 못한 경우가 되는 것이니

지옥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있다 

두 신이 도와주고져 해도 

참 이상한 것은 외곽적 天神이 도와주고져 해도 

몸신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 신은 육신의 초탈성을 갖기에 별로 무덤덤한데 

이  넋신은 지옥이 이런 지옥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소성괘 세 개의 효 중에 

두 개의 같은 효보다 하나인 효가 정기를 발하듯이

각각 이 삼신의 동질성과 호감도에 있는 두 神은 

없는 듯 관망만 하는 것이나 

그래도 괘상을 이루는 형태를 쥐어주어야 할 의무같은 것에서 

한 효의 외질성이 정기를 발하는 외향성을 보인다는 것이 되이니  

이는 곧 최고의 과학성을 관할하는 여성이 맡은 직분이라는 것으로

삼신 할망의 점지가 생사권으로서 무서웁도록 철저함이 있는 것이니 이니  

이는 곧 三 爻가 되어야 小成卦인 것에  

생기 복덕의 인생 변화를 다하여야

팔괘를 두루 다 섭렵하게 되어 있는데 

이 것을 초월해야

원소 주기율을 겹겹의 궤도를 다 섭렵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러한 구비 조건일 때에야 초탈의 입지가 되는 것이니 

결국 자살은 썩은 양파와 같을 수가 있음이니 

낮고 가벼운 주기율의 츠급반 정도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인데 

또 현신점의 주기율에 와서는 다시 자살말라는 보장이 없이 

탄력성이 좋은 우주의 법칙이다 보니

그 번복이 얼마나 강할지는 알 수가 없음과 같다

이 이치는 삼가 경외감을 갖고 되새겨볼 일이다

 

 

관상의 원소주기율적 성정

 

머리는 한결같은 빗질로 넘어가게 하는 원소 1  주기율이요

얼굴은 양쪽 두 개 씩이라고 2 주기율이요

거기에 허공의 구멍이 더하여져 원소 3 주기율인 것이요

그래서 이 허공이 응결되어 있으니 이통이니 안통이니 하는 곳이 되고

원소 4 주기율은 목이요

사지의 중심과도 같고

사지에 목을 더하면 원소 5 주기율이요

꼬리를 달면 원소 6 주기율적 육면체요

7 주기율이면 붕알이 되는가

아님 발바닥만인가 하는 것이 있다

즉 오줌보까지는 원소 6 주기율로 하는데 

그 밑에 부력처럼 뜬 것이나

수면에 짐긴 듯이 함이 붕알인지

이 것도 물 밑으로 달리는 흙소인 것인데 

그 무게가 다른 부위보다 무겁게 달렸다는 것도 되고 

그리고 이런 저장성이어야 복사와 유전형을 낳는다는 것도 된다   

 

 

그럼 붕알은 원소 몇 주기율인가

 

원소 7 주기율이 붕알에 해당 되어야 마땅하고 

원소 8 주기율이 모태적인 것이 되느냐보다 

주기율로서 기능은 붕알이 없는 것이니

그 궤도적 시공성의 族으로서만이 8까지 나오는데

즉 族 上으로만 8 族인 붕알이 된다는 것이고

7 주기율은 붕알이 아닌

발바닥으로 하는 것으로 마치는 것이라 봐야 함이고 

이 주기율  안에서의 단절성은

부목과 같이 한다는 것에서 그 상태의종결점으로

산같은 받침으로 끝이라는 것도 된다 

그런데  이 7이 오행을 기준점으로 2와 대칭이 되는 것은 

4 끝으로 접어 8과 대징이 되는 것과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즉 괘상의 접힌 부분과 

오행의 접힌 부분은 다른 듯이 하나 

즉 5를 채워  접는다는 것은

마치 4 끝에 난 그림자적 바탕에 행위적 영상물이 첨가된 것과 같으니 

즉 그림자적 무대에서 다시 출발하는 뜻이 되고 

이는 곧 허공성으로는 4로 접히는 접히는 진법이나

지구에 얹힌 중력의 힘을 더하면 5 로 접은 진법이 된다는 것이다 

즉 이 시공과의 상대성과 저들 끼리의 상대성은 

그 대칭성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되고  

무엇보다 원소 3 주기율이 광속이라고 할 때 

원소 주기율은 소리의 속도라고 할 때 

결국 소리 속에도 빛의 여울은 낸다는 것이 되고

자기장이나 회절을 내는 것이니

이 것 모두가 그림자적 회절성의 기하굽수적 진행으로서 

일관성으로 머물 수 없는 깃이기에 

이 회절성의 원반을 딛고 사울을 의식하는 경우는 

4에서 5로 온 것에서 행위의 발단이라는 것이 되는데 

그 차이가 괘상이라는 그림자적 영역의 4가 되면

우주적 허공으로는 받침이 없으니 4인 것이고 

이 것이 마음의 발상점이라 할 때        

行이라는 출발점을 찍고 가는 점이 5 인 것으로 

우리의 행위와 마음의 메카니즘을 얼추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괘상은 허공적으로 1과 5가 대칭이 되어 접히지만

오행은 구심점이 있는 점을 하나 더 두고 1과 6이 대칭점이 되는데

여기서도 괘상의 대칭은 서로가 다하여 넘기는 극이 다한 극이지만

오행의 대칭은 같은 神에 음양만 달리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데 이 것이 관상학적으로 중요한 것인데 

이 것은 원소 2 주기율인 얼굴의 대칭성을

마치 눈이면 눈이 두 개이듯이

같은 것에서 좌우로서 음양을 한다는 것이 있고 

이는 3 주기율의 허공적 구멍으로 채우는 영결같은 것 

그래서 이통이니 안통이니 다 수렴하는 것이 이 이목구비인 것인데 

이는 범 우주적 허공의 응결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먼저 화학적 요소로 인체의 우주를 접하고 나서면 

인체의 우주와 영혼과의 메카니즘은 괘상이 해결해 주기에는 넉넉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양 쪽 문이 트이면 급진적으로 발젼한다는 것이다 

이 것은 인간의 수명이 천 년 만 년이나 폭발적이듯이 

이는 더욱 상상을 초월한 神적 우주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재연성의 부화란 어떤 것인가

 

두, 세 살 되어보이는 아이가 

걸음을 겨우 바르게 걷는 것같으나

발음은 옹아리급으로 

딴에는 또렸히 힘주어 노래를 부르나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모자 간에 밤 길을 걸으며 집으로 가는 것 같은데

그런데 꼭 집으로 간다기보다 

어미가 아이를 집으로 바래다 주는 것같다

그 뒷 모습을 바라보다보면 

밤이든 낮이든 허공의 모습조차 

꽈리를 튼 것처럼 숨결을 쫓아는 듯이  

무엇이든 불에 타면 사라지는 것에도 

그 자리로서 다시 나아가지는 결인 듯이  

그 없어짐 속에서도 

필름을 거꾸로 돌리듯

솔직히 껍질이 알맹이를 낳는데 

다 낡은 몽땅빗자루조차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싶은데 

꼭 봉오리처럼 피다보면 

나무야 죽었다 깨어나도 역류성 재연은 못 하는,

허나 불은 죽었다 깨어나는 것이니 

공에 왔다 공으로 가는 것이니 족적이 아니든가

꼭 생명력이 없는 듯한 껍질에서 탯줄이 나  

알맹이를 채우는 것이 알이 아니든가

꼭 알맹이가 껍질을 깨었을 때

고향을 떠남과 같은 것

즉 불이 껍질로 싸듯 삼킨 모든 소멸들이 

거꾸로 불이 속을 뱉듯이 부화하는 재연과 같은 것    

  

 

유클립트 공준의 핵심력 

 

四柱롼 조화의 버팀목이라고 하지만

일방 통행을 위한 조화라는 것이다

즉 조화적 요구성에 따라주는 것에는

최고의 양극성을 드러내어 메우는 루트로

시간의 의식력이 생긴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조화라고 하면서 

한 가지 일만 권태롭거나 씬물이 나도록  해야하는 것

이 것을 보아도 

사주는 용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사주는 용신과 격국이다 

즉 용신만 잘 보충하면 일방통행이 되어도 상관이 없으며 

또한 일방통행이기에

전신적 주조물의 조화가 몸으로 형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어차피 운명이 숙명이라는 부각성일 뿐 다른 케이스는 아닌 것이다

인생은 염격히 보면 전문가를 양산하는 일방통로인 것이다

즉 어느 누가 생산직에 있다면 

그 자리를 한사코 지켜 주어야하는 직이 있고 

쉴새 없이 다녀야 하는 직업도 있기 마련인데 

굳이 조화만이 살 길이라면 오늘과 내일의 일은 교대해야 맞다 

허나 끝까지 눌러붙어 자기까지 이겨야 명인이 되는 것이고 보면 

차라리 돌에다 글을 새기듯 인생길을 파는 것이니 

그러니 결국 사주란 돌 하나 새기는 중의 석재와 같을 뿐인데

결국 몸을 그렇게 다루지 않으면 생도 끝이난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신은 신이고

사람은 사람

영혼은 영혼

과학은 과학이라는 분야를 뚜렸히 함으로서

그마나 따로 떼어 놓으니 숨통이 트일 듯이 하는 것에 

이 것 또한 인류사에 약은 수단이 하나 더 생긴 것에 불과하다

사주는 가장 취약적 부위를 용신이라고 하니

이를 채우는 운수로 메워는 조화럭을 말하는 것인데

그러니 수로가 굵은 선으로 가는 것이냐

태양이 굵은 선으로 가느냐와 같은데

이는 결국 하나의 점상으로 보면서의 핵심적 원소성에서 

외각성을 채우며서 살아가는 것이냐 

이미 평원과 같은 것인데

어떻게 골을 잘 내어 통하게 하느냐와 같은 것으로

이는 고갱이적 외향성이냐 

아니면 파도가 외향적이만

벽이 있기 마련인 것에는 내향성이듯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냐가 있다

이 것이 전적 궤도와 위곽적 궤도의 병행선으로 말하는 것이고 

주기율 간의 병행성을 말하게 되는데 

이러한 병행성은 꼭 철도 레일처럼만 실체가 아니라 

무지개색만큼 병행성이 나온다는 것에서 무지개도 띠가 되는 것이다 

이 것은 색이 물질이라는 개념으로 부각을 시키면 

수는 수로요 토는 산의 맥이요 도로요 목은 가로수요 화는 가로등이라고 할 때 

결국 선적인 것이 아닌 면적이든 입체적이든 

디로 하든 점으로 하든 서로의 특성이 멀리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그래서 두 레일의 병행선에 침목같은 가교가 DNA의 구조라는 것은 

우리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길다는 의미는 

유클립트 공준이 만나지 않음에 비롯됨을 시발점으로 한다는데 있다   

이는 다 유클립트 공준의 두 끝이 만나지 않는 것에서 

그 특성을 무지개 띠만큼은 드러낼 수 있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 형상처럼 섬유질 질긴  쫄가지가 있고 난 다음에 

상호 화학성과 기하학성을 이루는데거 무엇이든 이 띠 안에 

시작과 끝을 흘림없이 수용하는 것이니 

그 성정과 형태는 다 알 수 없어도 벗어난 것은 없는 것이니 

자연 침식이나 융기가 하나의 영향하에 있는 것이니 

자연의 균형과 인체의 균형이 같다고 할 때 

무심코 일삼는 자연의 훼손도

결국 자신의 오장육부적 균형성이 함께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 된다

솔직히 모망가봐야 전리층 안이라는 것이요 

이 자기장이란 것이

두 줄기 유클립트 철사를 둥그렇게 뭉쳤다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어울과 여울, 겨울과 거울

 

그렇게 차를 많이 봤어도

오늘따라 겨우 주인 없는 차를 유심히 본다

유별나게 보이는 것은 뎅그러니 핸들 뿐이다만

무언가 기하작적 규칙성을 띤 기척같음을 느낀다

옆으로 돌리고 돌리고 할

허나 왠지 핸들만 남은 그 자리일 뿐이라는 흔적감

그 공적 궤도만 돌은 듯이

일생 옆으로 회오리인 냥 뱅글뱅글하다 사라진 흔적같이

완전 저렇게 남아 차가 갔느냐 

공이 갔느냐인데 

기하급수란 규칙성과 에너지와 번복성의 창줄력이 있는 것이고 

추상성이란 마음대로 그려도 사라지면 그 순간일 뿐이라는 개념인데 

일종의 추상성처럼 남은 흔적처럼 보는 듯이 한다만 

실제 남은 것은 기하학적 에너지가 있어

그대로 공간적 윤곽이 드러날 뿐과 같은

왠지 살은 먹어도 씨만 남은 듯이 해도 

씨껍질은 보았으나 또한 운전자와 앉아도 

과육을 먹는다고 뱅뱅 돌려가며 깎을 뿐과 같은 

어쩝 참 과피만 먹고도 앞을 주행한다는 것이 

하늘 나다고 해도 그 자리만 공전한 듯이 할 뿐의

이는 곧 한 바퀴 주기율의 족의 눈금과 같은 

천 리 

만 리 

뭐 그렇게 이 종족 저 종족 

다 자존심 놀음에 살다는 길에 목숨 거는 영광인 것이니 

족보 자랑이나 가는 것이고 

고작 빈 차만 남았는데 사람이 없듯 

그 총괄성이라할 철학성이라는 것만 자기 변명과

암묵적 이해와 강요   

만물의 연장이라고 하나

참오러서의 나라는 자아의 인간이라는 부분은 묘하게

마술 보재기 속보다도 더 엉큼하게 빠져 있는 자조성 

조금 질이 잘 나면 위트와 해학 정도 즐기는 것이 고작 

머리 잘 돌아가게 기름 잘 친 것

뭐 전생에 제상날 제 지방 위패를 쫓아가도 껍질일 뿐이듯 

더한 자기 껍질에 만토마임 눈 하나 제대로 난 것인지 

그렇게 껍질만 두꺼문 열매적 유전성인 냥 

산 자라는 것으로 다시 와 핸들을 잡아야 하는 것이고 

타야만 하는 것이나

왠지 이 쫄가지에 과즙처럼 붙어온 삶과 같은

그러나 인간은 늘 입 뿐이랴 의식조차 늘 

알맹이가 움직여 알맹이가 차는 듯이 한다 

행색은 다한다 

겨우 한 주기율 정도로 돌리고 돌리고 해도

꺼벅 죽여주는 대전 찍고 부산 찍는 재주인데

그래도 주기율 7 겹 정도는 함께 하는 듯이 

뭐 배 두께만큼이나 7 겹의 복인 냥도 하지만  

다이지 않아도

몇 겹은 낀 냥 목소리치다 가는 것이 아니든가

뭐 하늘나라 복 몇 겹은 타고난 듯이 하는 것이지 뭐      

간 것도 없고 온 것도 없는 인상이란 무엇일까

덩그러니 남은 핸들

겨울에 거울만 남은 것같기도

여울에 어울이 남은 것같기도

여울에 무챗개이나 흑과 백이 있음과같고

어울엔 무지개색이 드러나는

여울은 오후와 밤이요

어울은 아침과 낮이 아니든다

어울과 여울 거울과 겨울

이 것인 공과의 관계로만 입고 벗고 하는

 

 

시간 속의 시간적 섬유성

 

 그래요

세상이 제대로 변한 게 무언지

아마 현재로선

이런 소리만 안 듣도록하면 성공한 것이죠   

박정희같은 혁명가가 나와 박근혜같은 구닥다리를

정리하지 못한 것이 시대적 그림자가 그대로라는,

이 말을 듣지 않도록 분변력을 뚜렸히 해야할 것으로

혁명이란 그 시대의 뜨거운 감자인 것인 것인데

쥐지도 못할 자들이 식은 후의 오늘에서야 들먹인다는 것은

참 간사한 작태요 비겁한 작태이기도 하다

그렇고다고 오늘의 뜨거움으로 그 감자를 익힐 수는 없다

립싱크같은 불일 뿐으로 흉내는 잘 내요 불같은 냥

역사적 정의는 내릴 수 있지만

그 시대적 열정은 오늘의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도리와 원칙을 따지다 보면

이미 시간적으로 양단 간인 것을 굳이 같이 얹으려 한다면

이 또한 현대의 짐마져 가볍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무게를 더해

발도 떼지 못 하게 하는 수작인 것이다

 

 

쫄가지

 

쫄가지를 아는가

새끼를 아는가

판소리를 아는가

이 모든 것을 쫄가지라하는,

군대에서 쫑병들 목이 쉬어라 내뱉는 고함이

목이 쉬어 나올 때와 같이 질길 때와 같아

쫄가지의 어원이 되었는 모르지만

다만 한가지

어찌 그 날카로움을 다 뺀 중에 미끄러움이 있느냐인데

이도 새끼를 꾸어본 손이 아니 사람의 새끼는

그 새끼가 얼마나 거친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새끼를 능숙하게 꾸는 자를 보면

그냥 쫄가지이지만

지푸라지라 할 수 있지만

생의 이력이 고스란히 수중에 배인 듯이

명창의 득음과 같이 나올 수 있는 새끼를 보면 알 수 있음이다

 

 

자연성이란

 

불이 삼킨다는 것에

허공의 부화력을 한 번 짐작케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타 들었다는 것은

알 하나의 집적성과 같은 것이라면

비유 하자면 무덤은 반달이라면 허공은 온달과 같음을 나타낸다

몰라

어쩜 우린 알 수 없는 미지와 결혼한 온달장군인지 모른다

그럼 과연 동땅연필이 볼펜심으로 끼워 살다

불껍질로 안전 부화되어 사라진 부화라면

그 껍질의 재생성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는

마치 증류수가 탄생하듯 함은

환골탈태를 능가하는 이슬 방울이 맺힘과 같은 것에서

한 방울 씩 돌아가게 함과 져연성에서 크게 어긋남이 있는가

만일에 영혼이 이렇게 궁걱성을 띤다면 

새란 것은 사라진 불과 같은 것이기에 투명성과 불투명과의 관계일 뿐

새처럼 벗어나지 않는 공간성이라면

이 것이 과연 천상계적 반환인가

한 단계도 들지 않는 껄질인가는

과연 어떻게 밝힐 수 것인가 하는 것이 있다

 

 

지붕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여!

 

무슨 이 거리는 대형마켙 아니면 에스켈리어터는 없거니와

무엇보다 참 신기한 것은

바로  위에 재래 시장이 있는 데도 에스켈리어트가 없다는 것이다

없어도 시장마져 옮겨와야 할 판에 

코 닿을 곳에서도 걷기도 힘드는 다리를 올라라 하니

여긴 무슨 꿈도 못 깨게 하는 훈련장이여?  

보아하니 자활력이라고 지붕은 빗물이 안 떨어지게 여몄다만 

나라도 편한 통로만 찾아 출구를 찾는 판에 

가만히 보면 나보다도 더 편하고져 하는 것에는 도리 없는 판에 

도대체 시장은 무얼 하며 지방자치는 무엇하려 있는 것인지 

다 머리가 좋아 좋은 간판은 다 찾다고 하면서 눈치만 고등급인지

하물며 조함장은 무어라 두는 것인지 모르겠을

밀어내지는 못하더라도

무엇보다 경쟁력이 있게 하려는 의지는 있는 것인지 

멀쩡히 뭐 했다는 생색을 잘 내어도 본론에만 들어오면 

예산 부족이니 시간이 없는 것이니

본체 밖이요

해외 토픽 정도로 취급하니

자기가 독점할대로 해 놓고서는 

선심 크게 쓰는 냥 

이젠 남이 발들여 놓으면 많으니 

오히려 줄인다고 

남의 막다른 골목이 자기의 관대함인 냥 해대니 

말 많게 몰아선 

반반인 듯이 잘도 일방성이 없는 듯이 둘러대니   

합심이 안 되느니 하며 구실은 참 본질인 냥 잘 둘러대요

막다른 골목으로 몰대로 몰아놓고선

안 오고는 불편해서 뭇 견딘다고 하지 않느냐

무슨 정당 바위인 듯이 대들며 엉뚱한 소리는 잘 해대니

그 타임밍에는 속 보이는 듯이 정확하게 고지식을 자랑해요

이상하지요 

역시 머리가 잘 도는 모양이지요 주민을 위해서 

오히려 외지인이니

에스컬레이터에다 양탄자까지 갈아 받들어 모시게 했지 않느냐 자랑같으니 

어찌 상인라고 할지언정 

토박이에게

그렇게 굽신거려가며 손님을 받아 자존심을 버릴 필요가 없다고 

더더욱 대형마트에 양탄자를 깔아 백성의 자존심을 세우자는 것이니

어림 반푼어치나 에스컬레이터를 붙여 주겠어요 

예산 축만 안 내면 얼마나 주민을 위한 것인데 

뻔히 보이는 장삿 속이라고 했던가요 뛰는 놈 위에 난다니까요

인간들 알맹이는 쏙 빼고 껍데기만 갖고 소모하는 데는 거수기라니까요

뭐 같은 토백이로서야 자존심이라 이해하고 남지요

그래서 말이여! 

나 원만하면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싶은 데유 

사람 참 간사하지유 

미안해유 

요만큼의 차이점인데 안 가진단께유

그런데 지치하는 찰밥통들이 

이만한 관심은 기본이 아닌감유?

난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니까유 

무엇이든 본론에만 가면 생색이라니까유 

눈치 백단이라는 칭송이 될 때 쯤 

거기다 몰랐다고 한다니까유 

원전 허폐 뒤집는데는 당할 자가 없다니까유 

그러니 차라리    

걷게 하라?

그럼요 얼마나 건강에도 좋고 서로의 자존심인데

다 외지인이 와서 굽신 업신하게 해야 한다니까요

오! 에스컬레이터를 대령한 대형마트로 올 라잇

거기다 제 돈까지들여 굽신한다고 은근히 내비치잖아여

 

 

내게 있어 부처란 무엇인가

 

내게 있어 부처란 참 대단하지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니까요

이 건 이미 땅이 갈라져 절벽인 것이고

파도가 넘쳐 배도 좌초되는 것이고

이미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고

어느 누구도 환영하지 않고 저주에 쌍욕 짓거리인데

참 더럽지요

뭐 살고싶으면

뱀처럼이라도 수륙양용으로 갈 수 있으니 기어가라는 것이죠 뭐

완전 해병처럼 가라는 것이죠 뭐

아니 고행은 할 필요가 없다면서도

사근사근 웃는 길로는 한 발짝도 가지 못 하게 하고선

인상만 더 험상궂어지는 길을 가라는 것에다

웃는 표정만 지으며 김치라고 해 대는 것이죠 뭐

난 이미 오래 전에 접었는 길이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 가게 하니

참으로 부처는 불가능이 없다니까요

이 건 말이죠

네가 사람이냐

사람의 낯짝으로 갈 수 있는 길인가

한 푼 보태줘도 시원찮을 것이

이 거 완전히 철판 깔아도 도저히 할 짓인가 해도

솔직히 소 귀에 경 읽기죠

한 해 컵라면만 떼워도 한 데 잠을 자고

아예 커피가 아니면 도저히 걸음을 떼지 못 해도

숨이 붙었지 않느냐 하니

박수를 치며 잘 한다는 소리라 해도 절레절레 흔들 판에

개 쌍욕만 퍼부으며 저주만 대대 손손 물려 줄 듯이 하는데

언젠가 무슨 일로 누군가 추렴하는 일이 있었는데

내게 손을 내밀었다가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으란 소릴 들었다는데

하물며 사람이 이렇거늘

그런데 말이쥬

부처는 벼룩의 간을 빼 먹는다니까유

아무리 부처님 말씀이 꼭 인간만을 위한 진리가 아니라지만

이미 절벽이요

서로가 면피를 줄 수 밖에 없는 지경이어도 정도여야 말이죠

억지가 이런 억지가 없음이요

항우같은 자존심은 아니더라도

상놈 중의 상놈이라

천하디 천한 무지랭이라 너그러울래도

어데 낯짝이라고도 보기 싫은 마당에

해를 지나도 침상이 있나 밥 한 상이 있나 해도

거기다 정신이 바르니 안 바르니

뱃 속의 것도 빼 먹고도 남는 짓은

멀쩡히 살아 있는 듯이 하는 데는 장사가 어데 있는감유

그러니 한 두 해라면 길이려니 하지유

이는 돌아 서서 오줌도 누기 싫다니까유

이런 말이 있는데유

부처도 베고 조사도 벤다고

이 건 단순히 아상을 버려야 한다는 요체이나

있는 상도 돌아서면 잊어먹는 판에도

또 상 타령이니

이는 상이라기보다

아예 무아지경에 혼신이 다 찐 듯이 해도

더 이상 나랄 수 없는 지경에도

상으로만 취급받으면 온당한가 하는 것인디유

여유부리는 삶과

한 끼를 벌기 위해 하루도 쉬지 못하는 장삿꾼이라도

오히려 배 부른자의 이해심이

배고픈의 최선마져 상이라고 하면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구유

물론 고생을 많이 한다고 같은 이해심은 안 되는 것이나

과연 아상적 차원이 그 부분까지 한다면

주체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가이구유

조주스님의 일지 화두는 늘 그대로 서 있는 것인가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이냐

옛날에 갓 스님된 젊은 비구에게서

자다가도 벌떡일어나 이빨이 갈리가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스님이 너무 표현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했지만

솔직히 그런 표현은 이 나이 먹도록 배이기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 말만은 더욱 수긍이갈 수 밖에 없는 것은

수행은 할수록 부처가 살아 있다는 것에 더욱 생생함을 느낀다는데 있다니까유

즉 그 스님은 이미 젊을 때부터 부처가 살아 있음을 안 것이니

결코 작은 도를 이룰 분은 아닌 것이라니까유

우린 제 주체를 분명히 두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초월적인 질문을 한다면 그 것은 아상은 아닌가 하는 것이고

매우 추상적 개념의 추정적인 것으로만 설명이 된다면

그나마 마음만이라도 통하는 즉 타심통이라도 뚫렸다고 느끼지 아니 하면

어찌 도가 교감했다고 할 수 있으며

교감되지 않는 것으로 도만 있다고 하는 것은

무속만으로 충분이 이해되기도 한다는 것은 되는 것이다

 

 

 

 

坐脫 入亡에서의 문제점 

 

우리가 실제 입망(立亡)이란 生에서 보이는 것이고

실제 入亡과 死亡의 차이점에 

우리가 주검으로서의 해결점과 

입망으로서의 해결점이 다르다는 차이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미 이 관점 상에서 차이점을 드러내야 

주검 이전에 해결해야할 것이 꼭 생에의 소명감보다 

법칙 상으로 자정성의 있어야 하는 차이점을 분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입망이 사망인가 

사망인 입망인가 하는 것인데 

입망이 초월성이고 해탈이라면 

사망은 그로 현생적 사멸이고 재연성을 말하게 되는 것이니

자칫 반대로 인식이 되는 수 있는데

즉 입이라는 뜻은 들었다는 것인데 그 영역을 분명히 하고 

정의를 뚜렸히 내려 주어야 한다는 것이 된다

즉 入은 어느 선까지의 입이고 死는 어느 선까지이며 

亡은 사라짐의 경계선으로 할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木生火라하면 木이 다 불타고 나면 火로 들었다는 것인데 

이는 곧 열매를 말한다는 것이다 

즉 火를 굳히는 것이 열매인 것이지 

火가 열매를 녹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즉 火는 이(離)인 것인데 

세포가 분열적이다가 독립을 이룬 상태라고 하는 것이고

이 독립성을 채우는 것이 土다 

즉 화의 거푸집에 흙이 채워지면서 모래와 자갈과 같이 녹은 것인데 

즉 다 녹기도 덜 녹기도 한 것인데

이 상태로 굳어지는 것이 金이요 열매다

이러한 절차를 엄격히 따라간 것이 입망인 것이고 

이 것이 윤회의 고리에 있는 것이면 입망도 사망과 같음이요 

차라리 초탈해 넘어버린 돈오적 (敦悟的) 견지에서 보면 이는 입망과 같은 것 

즉 전자는 죽었다 윤회하니 死의 범주요 

후자는 영원 해탈이니 入의 경지이니 

이 부분은 설명이 자세해야

하나의 경계도 인식적으로 본다는 것이 된다

 

 

그리어 본래 이슬이 눈인 것이나 서리가 끼어 눈이로구나  

 

우리가 천체 물리학적으로 큰 범주도 

하나의 점으로 함축 시킬 수 있는 메카니즘이

나무나 시체를 태워도

허공적 세포성같은 단위로 물방울이 맺어져 

떨어지는 것이 눈이라는 것이 되는데 

왜 수정같은 것을 

하얀 눈처럼 내리면서 눈이라고 했을까 하는 것이다 

즉 이슬이 눈이어야 맞는데 

서리가 눈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곧 오뉴월 서리와 같아야 만상의 눈이 됨과 같다

 

 

이 정도는 접근이 된다

 

어차피 박 속에서 씨앗이 떨어지 듯 함이 

빗방울인 것이요 이슬인 것이니 

허공에 맛힌 것자체가 다 씨앗이 박힌 것으로 

이는 보이든 아니 보이든 마찬가지로

이 것이 수인 점에서 화로 최대한 떨어져 

열매적 금으로 박혀 있으니 이를 건금이라 하는 것이니 

이 조화성은 용광로와 다를 바 없으리라는 것이다 

만일 저 선에서 떨어짐이 

인간의 윤화적 범주를 안은 것인가 

아니면 좀 더 외과적인 범주의 고리인가도 과제가 된다

이 정도는 접근이 된다는 것이 된다

 

 

완성도

 

우리가 빅뱅이 나무라고 할 때 

이 나무 내에서 도리천이 있어 

그 시공에서는

아이가 옷을 입고 탄생할 수 있는가가 나온다

왜냐하면 지금 보이지는 않으나 

무한 꽃들이 공간성을 이루는 세포와 같다면 

우리가 세포에서 완성도 있는 복제 그대로이듯 

허공에서 성장성이 큰 아이를 내 보낼 수 있음을 나타낸다

여기에 태어나는 아이는 

정충처럼 치열하게

살자는 식으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란 것이다

춴체 우주적 물리학적으로 봐

화장 자체가 이허중의 감싸며 씨앗의 완결성이 있다면

허공성 자체가 껍질인 최후의 벽이며 원심적 한계성이라면

히는 공 허공성이 씨앗을 떨어뜰어드리는 것이니

이 것이 윤회와의 상호관계적 톱니가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도 측증이 나와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물리학적 근접이 영혼과의 상관관게를 이루질 때

이는 원소주기율적 궤도와 적나라하게 맞추어질 때 

화학성이나 유기성 물질성이 

인간이나 동물의 동태와 맞물린다고 할 때 확실해 지는 것으로

이는 괘상의 배분이나 오행적 동질성으로 그 파생을 낳는 것이니 

꼭 나무만이 씨앗과의 유기성이라는 것이 

범우주적으로 이런 일체성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보일 수 있으니

과히 신기로움이란 마술과 같음이 아니니 

종교가 신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을 후덕하게 하는 편이요 

오히려 과학이 신의 메카니즘에 근접하는 신기를 토하리라는 것이다 

주역은 우주의 섭리라는 말과 같이

이는 의식으로 끌어당기는 통관성을 강하게 드러낼 것이다  

 

 

인생? 이 八字를 바싹 끌어당겨 人字인 것

 

파도는 이 八자인 것이요 

九 자이면 이미 파도가 넘어가는 상태를 말 하는 것이니 

그로 평평한 十자라 

六이며는 수면 속의 파도인 것이요 

七字이면  바람이 달을 낚는 것이요

인생은 한 옥타브를 바싹 추켜올려 ㅔ

九로 넘기 전에 서서히 놓아주는 것

두 짝이 되어 八이니 한 짝이면 四라

다 四象이 사람 人이고 보면 

분열하는 시점이 八卦가 되는 것이니   

또한 九로서 반이 완전 분열하여 가는 것 

十은 다시 눈이 나는 것

 

 

날이라는 뜻  

 

바람이 달 그림자를 낚는다고 하지만 

어찌 보면 병 속의 새를 끄집어내는 것과 같다 

그런데 비치어 눈에 들어오는 사물이 

상징성과 현상이라는 것을 갖는 것이라면

실제 무중력에서의 거리가 먼 달은 

은하수에 담긴 지구 좌대에 대기권의 바람의 찌로 

낚시를 하는 것이니 

이를 양날의 날개이니

그래서 날이 되는 것이 아니든가

그럼 병 속의 새를 어떻게 끄집어낼 것인가 

심히 요찰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간단하다 

날에 살아 있으면 되는 것이다 

즉 생존 자체가 병 속의 새가 들락날락인 것이다 

물리학은 말이죠 

영혼이 늙은 등허리같아도 긁어주는 효자손같다니까요

 

 

인식론

 

일상 음양오행이란 학문이 

물리적인 면을 인문화하고 일상화한 것인데 

매우 물질적 차원으로만 본다는 것이고 보면 

그림이라는 것을 보다보면 

동양화는 매우 사물적 자연성에 두니 

분석적이라면 매우 물리학적 양태를 나타내는 것이고 

서양화는 도리어 

인문학적 대화의 인상이 많이 그려지는 듯이 하는데 

다만 비쳐진다는 것이

주역과 같은 인문성이 괘사나 효사로 해석이 될 때는 

서양 회화적인 이해라는 접근성이 짙고보면

육효나 응양오행적으로 풀면

도리어 동양화적 그림에 인간의 혼을 많이 강조한 깃들음에도

영혼마져 실질적 사물에 그대로 배인것같음인데

더욱이 철학적 명료성을 따라 易理的으로 하면 

매우 물리학적 현상을 많이 캐는 본질성이 있는 것이듯 

서양 철학이란 것이

인문성이 도리어 과학적 구도성을 띄어 논리적 체계가 된다는 것이고 

동양철학은

정적 내재성의 변화를 잘 감지하는 영혼의 발달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ㅇ과 ㅁ

 

낭패도 낭자요 

벼랑도 낭자라

다 쓰려져도 일어나 구르는

타이어 가게가 도로를 수놓는 재봉틀 같은 것이죠 뭐

사람을 벼랑으로 몰면 사람이요 

짐승을 벼랑으로 몰면 짐승이요 

신을 벼살으로 몰면 신인가?

허나 대답은 다 똑같다는 것이다 

인간이나 신이나 짐승이나 다 남자에게서 똑 같이 

낭자!

그래도 구를 때나 낭자지 

딴에 반듯하다고 남자

사랑이 울고 사랑에 웃고 

다 잘 구를 때는 사랑이요 

이 눈치 저 눈치 귀퉁이로 몰리는 곁눈질들이야 

다 늑대같은 사람이지 뭐 

다 사랑 바퀴보다

빵구난 듯이 바닥부터 펑퍼짐 해지는 걸보면 사람이지 뭐

 

 

인간 앞에 신이라

 

눈을 중국말로 眼이라 하니

어찌 보면 영어보다 멀 듯이 한다니까유

눈은 영어로는 눈(noon)이라 

어찌 영어가 이웃집 전통같이 가까운 맥락이잖아유

noon은 순환이라나 똥글뱅이 치는 것 사이로 눈이 나는 것이니 

이는 눈 속의 눈이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고  

그래서 서양 사람은 눈이 둥근가 봐여

특히 몽고족은 정형외과 가지 않으면 

눈은 한 일 자 뿐이제?

너무 그러지 마셔유 

그렇다고 억에 가까운 우리 민족을 다 성형화 시키 수 없잖아여! 

그래도 안 맞으면 옷에 맞추는 것이라고 ?

불그능 불가사의도 우리 민족은 하고도 남는다고?

수 억이라도 다 뜯어고치게 한 업적이야

심리학자도 울고갈 재주라고?

그 정도 재주라면 뭐 얼굴 한 뜯어고친다고 대수리 

그럼 프로이드도 울고갈 것이 아니라

수 만 배의 고화된 퀌퓨터도 울고 갈 것이겠지

그럼 채스가 컴퓨터로 인긴다 해도

우리 인간만한 기계의 제식화가 그만큼보다야 나아야지

盛東擊西에다 以夷除夷 정도는 성형 빰치게 몰라본다니까유

삼국지라면 안전 명분이나 보이지 

이 것은 속도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밤낮 소리는 시끄럽게

물론 귀잖을 정도면 더 반색일 정도로

어느 한 모서리나 갖고 큰 일이나 난 듯이 하면 

한 생 정도야 거뜬히 거뜬히 지나고도 남는 듯이 

인생철학 

어찌보면 버린다 버린다 하는 것이지 

저 런 식이야 절차도 없이 잘 버린 것이라 하는데 

버림의 도란 것에서는  초인같다니까유

인간의 삶 정도가 갖고 버림의 도란 것은 소꼽놀이 하냐 하는 식으로 

인간성 볼짱 다 본 철인들의 합창과 같다니까유   

언제부터인가를 몰라유 

우린 마이카 시대라고 하지만

우린 타지도 않는 소설 카나 신문지 카나 갖고 

밤낮 이슈인 냥 몰아가면서 성동하는 것을 보면 

서쪽이야 입만 다물면 안 시끄럼지 않느냐 선전 포고 같다니까유

그래요! 

그래도 눈이라는 것은 한 똥글뱅이 안이여야 하는 것이고 

그 것 다해야 한 똥글뱅이 다하는 것이 아니겠시유 

다 같은 점 하나에서 나 누군 선(線) 뿐인 이 차원의 족속이이고 

누군 선을 면으(面)으로 똥글뱅이 친 삼 차원의 고지식이라 마슈 

나 말이줘 

찢어진 눈이어도 동그랗단께유

어찌 여자들 손톱 다듬듯이 한단가유 

난 눈을 감아도 눈이요 

땅에 묻혀도 싹에 눈은 날 것이유

왜냐구유?

그 하수에 불과하다는 안통(眼通)도 못해 봤거랑요 

대도무문이라고 했던가요 

문이 없으면 통도 없다니까유 

그래도 영생을 바라잖아유

그런데 말이쥬 

문이 없으면 영생인데 

굳이 문에서 영생을 찾게 되어 있으면서 

문은 없는 듯이 억지를 부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감유 

뭐 뜯어고친 쪽으로 봐서야

정성을 봐서라도 더 맛게 붙여주며 태어나게 하겠지유

더 못하게 태어나게 하지는 않을 것이쥬 뭐  

神인들 부모같지 않겠어유

자식같은 중생이 하겠다는데

신이라도 악 쓸 때가 있으면 악을 써서라도 해주고 싶은 것이겠지유  

神이 현생을 버린다?

죽었다 깨어나도 그 걸 버리겠시유

신이 무엇인데

인간 앞에 신인 것이 아닌감유

 

 

샘 한 모금 마신 꿈

 

신을 접하는 만큼 올 스톱인 것이 있는데유 

그렇지 않고서야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잡았어도 

돌아서면 아예 기억조차 없는 것이겠지유 

그럼 그 것은 찰나적인 자연적 현상일 뿐이지 

神이라는 것은 허무맹랑한 사기인 것이쥬

나노니 쿼크니 잡는 것도 수 천 년이 소모 되는데 말이쥬 

이런 연계된 지각으로 신을 대중화 한다?

기적을 갖고 숨박꼭질 하는 것이쥬 뭐 

하나 잘 걸려들어라 식이죠 뭐 

뭐 일 년 후든 천 년 후든 

하나 절 걸려들면 인류사를 통채도 삼켜 먹는 것이죠 뭐

그러니 인류 전반적으로 올 스톱은

과학에 매달려 지지부진하는 것이고유

개인적으로 편차 있게 드러나는 것은 못 말릴 것이 있는데유 

그 것도 몸신인 것인지 공간적 신인 것이지 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구유 

다만 겹겹이기에 그 사이에서의 센스는 안과 밖이 동시에 되니 

떨어진 돌질성인지 붙은 다른 인식의 패턴인지 하는 오묘함만이 

과학적으로 더 이해가 되게 하기 쉬운데유

이는 숨도 뭄추게 하는

시작과 끝이 수 없이 반복하는 중에 하나의 실체성에 있는 것이니

솔직히 이 건 침도 못 삼키게 하는 것인데유

인간은 침을 삼켜야 살지 않는 감유

그런데 인간은 코기리보다 침을 느리게 삼킬수 있는데유

장님은 말이죠

침을 먼저 삼켜 놓고 드듬어야 하는 無明이라고 하잖아유

그러니 혓바닥처럼 보이는

실제 그러한 것인지 모를 

사막의 갈증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혓바닥 넘어로서야

무색계의 천상인이 물 한 모금 삼킨 꿈을 깰 터인데 말이쥬

 

 

어쩜 우리의 대합실은

 

레일이 저 멀리 한 쪽 끝의 보이지 않는 점에서

일직선으로 내게 와 닿는 것에

또 그 길로 멀리 보이지 않을 만치에서 밖으로 휘는,

난 여기서 편안함을 느낀다

어쩜 인생을 펴서 말리는 듯

자욱함이 다 거둬지지 않는

건더기 다 빠져나간 흔적만 같아도

어쩜 우

내 몸 위의 정류장에서 기다림과 같은 평화로움같은 것의

어느 초소형 로봇 벌레가 핏줄을 타고 돈다고 해도

난 DNA의 레일 위에 나를 기다는 것같은

어쩜 우린 뾰두락지 하나의 대합실에서 기다린 자와

또 하나의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소나무 비늘로부터의 어족

 

치족이 어족보다 못 하나두유?

맞는 말인지 모르지유

뭐 식물과 동물로 껍질로 쳐 

치와 어로 한다면 말이쥬 

소나무 정도의 비늘은 되어야 어족이라는 것이니 

뭐 사과나 배란 다 치족이구유 

이 사과치라는 것도 알맹이 둥글게 깎을 때 드러내는데유

그 안 속살 빼고 껍질은 치껍질처럼 일어난다니까유

그래서 식물보다는 물에 사는 동물조차 어족인지 모르지요 

 

 

어족이 먼저 식물을 치족이라고 했다

 

인생이란 

눈치 코치란 것이니

어족으로 진화하지 못한 식물과인 것인지 모르지유

나뭇잎이 떨어져 아프다고 않는 것으로 보니

아마 고구마도 그 잎새 하나로도 피우듯이

어족과 비늘의 생명력은 대단한 번식력같은 듯이

실제 동물은 고구마 넝쿨 만으로 배부르게 했는지 모르지요

어쩜 히스테리컬한 담쟁이로 묽나 말 것을 말이죠

참 타박 고구마로 유도를 잘 한 것인지 모르지요

나뭇잎같은 방어 떼

이미 나무 잎사귀를 떠났는 초탈을 했는지 모르지요

 

 

맨드라미의 유래 가설

 

우린 미끈하든가

아니면 거칠어도

비늘을 재생하지 못한 맨드라미인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맨드라미는 피만 고여 붉고요 

어쩜 맨드라미는 이 불을 끄느라 부채질인지 모르지요 

덜 붉으라고 꽃마져 부채살

 

 

올챙이 6 호선

 

그렇게 생겨 먹으려 올챙이가 올라오는 것이라니까요 

꼬리에 붙은 봉화불같은 것 

완존 리듬체조선수같이 허리를 휘는 

반딧불이라니까유

개똥벌레도 등불인 것이니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얘기도 나오잖아여

개는 戌인데유

완전 불의 창고인데유

다만 수고인 진이 논이고 늪인 것을ㄹ 보면

불의 장고인 개똥벌레는 빛을 내비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인가 봐여

 

 

판치생모의 소우주

 

판치생모에는 흥미로운 이치가 있는데

눈치에는 눈썹이 생모요

코치에는 콧털이 생모요

구칭는 턱 수염이요

이치에는 머릿결이 넘쳐나니

과히 이치에 잘 자라고

다 덮을 듯한 흘러가는 것이겠지요

이도 다 욕구에 따라 자라는 것을

어찌 머리 깎을 줄 모르는 자가

윤회를 도망쳤다 할 수 있는가

 

 

섬똥구리 새 일생

 

본래 강 아래 섬이 생기듯 

어쩜 새도 다 섬똥에 일어나는 것이니 

섬똥구리 아니든가  

   

 

방풍림과 모래밭

 

해송이 아랫 눈썹처럼 덤성 덤성 

그래도 그 너머로 밀어 언덕에 누운 여행자같은

생은 확실한 방파제같은 공덕 

왜 자손은 부두와 같이 하여 주어야 큰 인물인가

우린 최후와 시작이 함께 모인 자리를 함께하는 것 

자손은 모래성을 쌓더라도 치수를 다해야 우임금같은 것 

 

 

눈이 눈길을 못 뻗으면 

뼈가 된다고 눈동자 하얗다

눈이 떡잎 한 장의눈이 되질 못하면

꽃의 눈이 되지 못   한다고 뿌리지요

 

 

반달눈이 꽃의 눈으로 꿰면 돌곳이지요

즉 열매라는 것이지요

 

 

연신 내라고

 

머릿결 길게 휘날리듯

연신 內라고

연신 나라고

연신의 자아적 숙제라고

그러니 시신정처럼

뒤통수에는 불광이라고 

번적이는 불광이라고 

완전 머릿결 넘아가는 것에 

쑥대 머리인 냥 넘어간 바위에 

그 정수리에는 바위가 솟는데 

그 건 도 많이 닦은 도인들의 머리에 솟는 것 

늙어도 두상에는 용생두각이듯이 하는

사고력이 이런 꼬리를 치며 뱃 속에 들면 

육호선 임신이라는 것이 되는 것이니

 

 

 

오대 바다가 내 배만으로 사대주의에서 오대주의로 하나 차는가  

   

 

오늘따라 차간에서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중에서 가장 조리 있는

호소를 대화인 냥 들어 들어가며

명료한 본질의 깨우침을 외치는 자를 보았는데 

다만 본복하고 또 하니 실성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으나 

얼굴을 보면 매우 온화하고 말씨도 부드럽다 

분명 깊은 사려심에 인간애적 내용들이라 

귀담아 들을만 하다는 것인데 

실제 자살문제나 저 출산 문제를 남의 나라 이야기인 냥 

생색만 내비치다 마는

즉 말하자면 흉내만 내는 것으로 역할은 했다는 명분이나 

펴시내기 같은 시대에는 정말이지 

미쳤다 해도 도리어 용기가 있어보이는 판에 

그래도 나이 지긋한 분들은 표정 없어도 듣는 편인데 

실로 젊은 것이란 게 참 경악스러울 정도로 외면한다는데 놀란다 

시쳇말로 열차 간 장사아치보다 봔심이 없다는 것이다

한 남녀응 서로 부둥켜 안으면서 키스를 하면서 예길 때지 않고 

어떤 아가씨는 보기 싫다는 듯이 다른 칸으로 간다 

도두 다 저들 이야기하기 바쁘고 핸드폰 치기 바쁘지 

무슨 엉뚱한 소릴 하는가 하는 듯이 대하는 데는 사뭇 놀란다 

왜냐하면 그 분의 말씀은 연설이 라니라 매우 강의 하듯이 

나즈막히 얘기하는 데도 남의 나라 사람인 냥 하는 것이다 

마치 남의 나라 사람들이

이 땅에 좀 살게 해 달라고 서명 나온 사람에게보다 더 무심하다

문제는 저들도 생각이 있다고 떠더는 무리라는 것이다 

결코 허술한 생을 말만큼 녹녹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허술하고 무관심하다는데 가장 허술하고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같은 물건이라도 명품이 되느냐는 식이다 

어처피 식생활이 끈기의 부족에다 축적성을 몸이나 정신으로 하는 것이 아닌 

용량이 기계에 다 실린 것을 보면 

나약함과 나태함에 무게가 실리는 듯해도 어쩜 실리적성에 가까운 행태이고 

이는 침묵의 은연 중 강요에 피곤하지 않으려는 것이지만 

문제는 자꾸 참여하도록 일으키는 데 있는 것인데

그 것이 얼마나 진실성이냐도

매우 그 부각성과 다른 소용돌이를 만들어가는 것에 

잠식되어 있음에 묵과성을 낳는 것이 매우 간식처럼 길들여졌다는 것이다

무슨 구호성보다 인간성 상실의 여러 본질을 이야기하듯이 하는데

젊은이들이 받아들이는 태도는 너무 귀찮게 한다는 듯이 너무 티를 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버러지 취급할 필요가 없는데 분위기와 태도는 실망을 넘어 

어래 저래 자격증 따기 바쁘고 지식이 넘쳐난다고 하는 것에 

당사자가 싫다는 판에    

굳이 위한다고 강의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인간자체의 고귀성을 이런 식으로 상실되어감이라는 것인데도

그 내용과 상관없으면 그로 티를 안내고 조용히 있어도 되는 것인데

젊은이들의 행동은

매우 반감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무슨 의무감마져 보이는 행동을 할 때는

저들의 무관심을 건드린 것이 아니라

매우 의중을 건드린 듯이 내색을 하고 있다는 데서는

다 어둠이니 암흑이니 해도 스스로 그림자를 지우며 제 그늘은 챙기는데

굳이 남말할 필요가 없지만

입으로 소리하는 나그네보다 침묵의 표졍들이 남말하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젊은이들이 수동형으로 교육을 받기나 했던가

보아하니 눈과 얼굴이 생가 있는 것을 보면 그 설득력마져 사려가 있는 것인데

명료하고 본질적으로 인정을 담아보자는 취지인데도 휴대폰 대호 소리 정도인데도

저런 저건 오버액션에 싶을 정도니

참으로 연설자보다 더 배우에 배우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의중은 예리하고 날카롭다

과연 저들의 정서와 인간에서 얼마나 믿음을 주는가가 새삼스럽다

격동의 세월을 혼란스럽게 살아온 우리들이 외면할 수 있는 것이

묵묵히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에

그런데 저들은 이미 남의 이야기요 화제인 냥 이미 배타적 집단화가 다 된 듯이 보이는데유

 

미국인이 그랬죠

물론 콜롬버스에 대한 질투였는지 모르지만

아메리카의 정족은 인류사에 재앙이라고

한 국가의 민족이 다 사라진 침략이라고

인디언 시를 말린 것에 불과하다고

그래서 아메리카 발견의 기념일을 축하할 일이 아니라고

뭐 우리야   천 년 후 쯤되어 몽고문화 보호구역이라 생길런지

나라가 없어졌던

얼굴 다 뜯어고쳐 없어졌던

이런 충성심으로서야 서로를 위한다고 하나

다 눈가리고 아웅이지

인생 살아도 백 년 채우기 힘드는 판에

그  이상은 어느 것이 되든 상관 없는 듯이

다 그런 집멸 속이 아니어도

동포가 전쟁으로 족어간 것이 업마유

뭐 왔다리 갔다리 하는 사이에 

내변이 아니면 외변으로 시를 말릴 듯이 하는데

세계 어느 곳이든

시간적 순환이 그런 판에

공간적으로 꾹 지킨다고 순환이 안 되는감유

 

2 차 대전 후에 수명이 늘어나듯

다 그렇게 진보하는 속에ㅔ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나

이러한 인간 본능에 앞서 자연 본능이라는 것에

넌저리 나기도 할 것으로

한 생의 시공으로서 쌈이 되는 것이니

사람으로서 죽어간 산 사람이 얼마유

그런데 사람의 짓으로 볼 것이유?

그런데 한 생 살다보니

세계 구석구석 헝겁  깁듯 표시를 낸다니까유

완전 그 때깔 벗으면 넘어간다니까유 

오늘만 잘 넘기는 그만인 것이니

복이 최고지유

무엇인들 보장성이 있는가여

세상은 전쟁판이듯 출혈성과 같은 위기감같이 하여

자신의 세력마져도 당파로 이익을 챙기려 하니

일부러 구멍 뻥 뚫리게 하여선 헛점으로 노출하게 하고선

질기게도 빨아먹게 하는 듯이

다 어느 쪽이든 마음에 드는 쪽으로

권력을 취사 선택하는 여유는 갖고 있다는 듯이

요즘 세상에 인간 본위가 어데 있는 것이며 

변죽만 진창 울리면 깜쪽같이 성동격서가 되는 것에 

그런데 참 신기하기요 

참 명문 두뇌라고 하는 자들이 하나같이 

이러한 핵심은 비켜간다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싸움이란 것이 전답 다 팔아도 나을 것이 있는 감유 

한 세대만 비켜가도 거지같은 부모한 원망스러운 것이지요 

그러니 밀고 당기는 욕구를 첨예화해 

엉뚱한 쟁점으로 저들끼리 싸우게 어부지리나 얻으려 한다니까요 

양날의 칼날은 쥐고 있는 듯이 하지유 

뭐 권력에 반감 쪽이 싫으면 몰아붙이고선 모르쇠하면 되는 것이고 

권력 쪽이 싫으면 편드듯이 하면서 자연 폭발인 냥 

허점을 교묘히 노출 시키는 것이고 마는 

어쩜 서로가 거짓말 게임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

한 배에 다른 통속으로 뒤집어 넣는 것이니

이는 무관심이라는 표현으로 공분의 탈을 쓴 듯이도 할 수 있는

유도성적 불투명의 조작으로 본 뜻과 달리 몰고가는 억지성에도

알아도 표현까지는 못 따라오게 하는 어슬픈 입장의 조성과

내용을 애매모호함으로 몰아 의도의 본 뜻은 뚜렷하게 접목 시키는

우린 무관심이라는 공분의 탈 속에 문제를 몰아가지만 

오히려 그 쪽으로 성동하나

이미 격서는 수판알 굴리듯 정확한 

왕따 만들고 영웅 만드는 재주는 세계적 노하우이 나라   

그런데 말이쥬

저 젊은 것이 촛불 집회하면 우루루 좋아라 몰려간다니까유 

요즘엔 말이쥬 집회도 명품인 냥 해야 한다니까유 

그냥 명품 옷처럼 입어야 한다니까유 

어쩜 옷보다 더 광내길 좋아하는 케이스가 되어버렸쥬

요즘에 이벤트에 몰리는 화제가 아닌감유 

예전에 말이쥬 명절에만 과대 포장에 비싸게 팔아 먹는든데유 

요즘엔 언제나 동원하는 능력은 예비군 동원보다 더 빠르단께유

이런 속도가 즉흥적이라구유?

그렇게 할 일이 없는 감유 

아니지유 다 밥 줄이요 명 줄이니 곰 바락이게 만들어 놓았지유

그런데유 몸통이 없단께유 

그런 구조적 치밀성을 일언 반구도 않는 것이 석학들이라고 한다니까유

잠 대단한 내숭들의 사람잡아 먹기 같은 것이죠 뭐 

그러니 젊은이들부터 눈치가 백단이니 

공통 분모에서 별외인 냥 내색조차 못 하는 것은 

케네디와 후루시쵸프와의 낚시질 유머도 경악을 할 판이라니까유 

무엇보다 

세대적 시대적 비중에 충실히 관심인 냥 

수다 정도로 재주를 부려주어야 한다니까유

그런데 참 엉큼한 것은 다 무관심이어서 그런 듯이 하는 데유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것이 무관심의 조종력이라는 것이지유 

즉 무관심도 최대의 이벤트 효과라는 것이겠지유 

누구 누구라 칭할 정도만 되어도

왕따로 만들든가 왕을 만들든가 하는 기막힌 재주란 것 말이쥬

허나 이것도 나이트클럽 손님맞이 반짝이 옷이란깨유

몸체가 다 다른 때깔이라니까유

그 걸 영원할 듯이 한다니가유

그럼 영원한 것이 있남유

다 진시황 불로초착기보다 실속이 없는 것이쥬

길어도 백 년이 가고 천 년이 간다해도 말이쥬

백성은 더 피곤해지는 것이 아닌감유

어데 한반도가 저 남극처럼 떨어쟈 가기라도 하는감유?

결국 육지 사대보다 바다 사대를 푹 담궈

사대 노릇도 잘 하자는 것 아니겠지유

그래도 내 배만 다니는 길인감유

결국 나라는 것으로 성숙도가 높아도

 

 초근목피에 제산 다 날리고

고집만이라도 남긴다고 해도 배길 요량이 있는감유

요즘 말이쥬

땋하고 사는 사람 사람 취급하는 감유

뭐 애들은 서울에 대학보내지 않고 배기는감유

요즘은 말이쥬

은근히 원망하고 손가락질하라고 가르킨다니까유

원전 지연의 뿌리를 확실히 하자는 것에다

언제부터 주인이라고 텃새를 확 부려라는 깃인데유

이 것이 최고의 학자들이 은근히 누리는 방석이고 보면

어느 누구하나 방귀 냄새도 안 낸다니까유

워낙 깔끔말끔하기가 러브호텔과 같아서 말이쥬

소리치는 것은 도리어 하늘 높이 오르는 줄 몰라도

다 헛깨비 놀음이라는 것이쥬

아미 말들어 놓은 것이 우연하다고 하는 일은 없지유

궁아니면 닭이어도 부속 하나 갈아기우면 되는

다 자기 정비 창에 있는 서비스업이라니가유

대중몰이의 서비스업은 어쩜 서비서업의 백미인지 모르지유

눈에 가시처럼 티눈처럼 박히는 것은 순식간이 아닌감유

다 이런 순간성에서부터 영원성으로 가고져 함이 본능적 요심이고 보면

인생을 덜 피곤하게 하는 것이 그렇게 까지 길게 볼 불필요성으로서

말이야 살세니 허세니 실상이니 허상이니 하지만

호히려 더 피곤하게 할 역사가 아닌감유

오늘의 피곤은 다른가유?

소모성 탈진은 다른가유?

이 것은 옛날 공산주의가 많이 써 먹던 말인데

정복의 시대가 오면 유토피아가 되는 것이라고

그  걸 위해서 감수해야 하는 제약이라고

참 많이도 다른 말인던가유

 

그래도 미국만한 땅덩어리는 되어야 그런 말도 나오쥬 

수 백 년 세월 끝에 눈치 봐가면서도 나오는 말이쥬 

우리나라야 완전 유태인처럼 나라가 없이 다니면유 

그런 말이 효험이 있을까유?

우리가 유태인처럼 깊은 전통과 종교적 가치관이 있는 감유 

전쟁 나면 너나 없이 모이는 감유?

우린 단군도 머니 차라리 단군이 아니라

단군같은 뿌리가 있슈?

우린 흩어지면 유대인이 아니뉴 

흉내내고 폼은 잘 잡으나 

그 때 가서야 볼장 다 본 것이죠 뭐 

 

 

묻은 시도 갈대인가

 

고진 감래란 말도 무덤처럼 묻고 싶으니

오히려 생이 담담하다 

하루를 멀다하고 희망은 늘 듣는 것 

남에게는 웃으라 하면서 

하나 같이 표정이 굳어 있다 

웃는다 해도 짤막할수록 남에게 배려인 표정들이다

묻은 시도 갈대인가 

차라리 그대의 머리나 깎아 드리리

 

 

봄의 프룻 왈츠

 

난 말이줘

풀이 풀기 다 살리기 위해서 

파릇파릇 할 때

프룻구멍은 

프룻프룻하는 듯이 구멍이 벌름거리는 듯이 한다니까유

살게 함이 꼭 

쑥이 여러 해묵은 뿌리가 꽅 

피리의 관을 토하듯이 하는데유 

봄날 지하에는 그런 악기를 징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니께유 

그래여! 

그래도 동골뼈 드러난 신경관의 악기에 내장이 녹화하는 듯이 

새 음악이 나오는 것이라니까유 

꼭 봄 날

노고지리에 새끼가 화답하는 냥 벌어대는 풀룻풀룻인데유

난 누구의 이름이든                

그 것이 새순이라고 하든 재순이라 하든 

을순이라고 하든 차순이라고 하든 

아래 위로 치이는 듯이 살아가는 듯이 하는 

어중간치기같지만 말이쥬 

이런 생명력을 보면 제일 좋아하게 되어 있딴께유

명연주가를 보는 것같다니까유 

삶 제대로 돌아단 보고 온 것처럼 말이쥬 

크기는 작아보이나 그 향기는 더 남다른  것이쥬

산이든 들이든 자연 이치가 그러하지 않는감유

 

 

오! 봉화를 위한

 

안암! 

모르지 석기시대의 머리로만 모인지도 

그러데 말이져 종암이면 

정말 속이 울리는 것이 있는 감여! 

그러다 보면 화석에 묻힌 사랑도 나오겠네유

그에 비해 고려국 시대가 문명국 시대인가유 

크지유 

코리아로 세계 만방에 지구의 신경선으로 건드렸나 보쥬

정말이지유 

글로벌로 보면 신기루같다니까유 

이 건 추상화도 아니구유 

초현실주의도 아니란 께유

꼭 생긴 바가 월계와 같이 노는 물 좋은 나라

너저 달거리를 은근히 비유하면 

거기다 상 월계까지 달무리가 젓꼭지처럼 부푼다니까유

그러면 돌곳이 형상을 따른 임신이 되는데유

완전 태능이니 조상의 젓줄이죠 뭐 

그러다 봉화에서 신호를 보내면 애를 낳는데유 

그 코리아는 이미 신이 내린 내력의 나라

 

 

버텨라! 그 것이 살 길이다

 

버티다가 동사인 것인지

형용사가 된 것인지

겉보기는 정적인 형용인데유

그냥 동사로 못 흐르고 말았지 뭐유 

그런데 말이쥬 

형용 형용인 듯이 걸까 말까하는 것이 

말캉말캉한데유 

그런데 복령처럼 굳고 보아서인지 

그만 명사가 되어 버티고개가 되어버렸는데유 

뭐 요즘 복권 좋아하는 시절이니 

뭐 버티 또뽑기 과자라고 하지요 뭐

 

 

한강진 

 

어점 한강수가 은하수를 참 되게 하니

한 생 즐기듯이 버틸만하지유 뭐

한 생 잘 넘기는 한강수에서 뱃 길을 기다리는 듯이 

유난히도 반짝이는 햇살에 눈부셔 하면서 

 

 

지하철같은 명상의 진화일 듯이  

 

정원 맞춘 듯 영양가 만점에서 출발하기도 

그래도 없는 지혜에

지하철 뚫어놓고 지나게 하는 소통의 수단껏인 듯 

그냥 흙이었따 바위였다 해야 하나

그 숨통에 영양분이 맞추었다 풀렸다

허한 듯 찼다 찼다 하니 허한 것

허한 게 그런 것이지요

요즘 많이 허전하지요?

그럴 수 밖에요 원채 서울이라는 것이

땅굴을 많이 파대니 말이죠 

영양분이 허한 듯 실한 듯이 하지만

도리어 공 속에 빈 배가 더 명상이 편하듯이 말이죠

 

 

 

눈! 그렇게 깊은 의미가?

 

정오는 자정의 재 순환이 아닌감유

noon은 순환되었다는 것이요 

또한 재차 분기점을 지난다는 것이요 

이 noon이라는 것이 

남쪽이 다하여 손 잡히는 것이 

북쪽 손아귀로 움켜쥐는 것인데유 

이는 두 개가 따로가 아니라 

하나가 양 사이를 쥐고 펴는 끝이 

물과 불이 되는 것이구유 

남족이 다 하여 감에 북쪽으로 화하여 가는 것

결국 북쪽에서야 한 손아귀임을 안다는 것인데유 

이 noon이라는 字形을 보면 

앞의 n은 검지 손가락을 쥔 것같고유 

중간의 O 두 개는 중지와 약지인 것이구유 

나중의 n은 새끼 손가락이라니까유

이 하나에 다하는 것이냐 인데유

이는 하루를 그대로 원으로 그리든

백 년을 그대로 원으로 그리든

다 하나의 원에 움켜쥠만 같아서 북인데유

동시적으로 보면 이 것이 공간인 동시에 점이라는 것이쥬

 

 

도깨비 발톱 ㅅ

 

도깨비 발 톱같이 버티고야 만다고

쇄기를 박은 것이 받팀 ㅅ인 것이니

벗이여?

벗도 이러한 공덕이 버팀이어야 

벗이라고 만나는가 보오이다

버틴 징의 공구 상자같이 모인

버틴 고리의

옷 핀의 도구 상자와 같이 모인

그래요 그 정도 공덕이 만나야

벗도 되는가 보오이다   

 

 

버텨야 인생

 

인생은 청구서와 같은 것이니

굳이 운명 탓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요

별도 세금이 없는 듯 해도 텃새도 있는 것이라

별에서 왔다고 해도 청구서가 있는 것이요

그래도 버티는 것이라고

보릿고개를 넘긴다해고 다 넘은 것인가요  

청구에 버티 고개로 버티는 것이죠 뭐

고개가 아니면

섬같기를 하겠어요

징검다리같길 하겠어요

그렇게 외로움이듯 씹어보는 것이고

이렇게 읖조리며 달리는 지하철은 참으로

시인같은 봇따리 장사에

명상의 창이 내 얼굴을 비추니 그 얼마나 친근한가요

 

 

영혼을 부위별 등급으로 팝니다

 

神은 길이 다 되었다고 하고

인간은 길을 헛 닦았다고 한다

만일 그렇게 죽는다면

영혼은 어떻게 부위별로 나올까요

먼저 신이 좋아하는 승천급이 된 길의 부위로

그럼요 완전 몸통인 부위로 팔아야지요

뭐요?

신이 길이된 것이 아니라구요?

그럼 도가 안 되었다는 넋으로 흩어졌나?

뭐 그래도 풍수가 대단하지요

땅무덤이 아니면 대기 무덤인 것이고

아니면 달이 똥글뱅이치는 무덤인 것이고

아니면 해가 비치는 무덤이지요 뭐

뭐 그러다 혈 한 번 잘 타면

풍운지상으로 다시 오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죠

뭐 태워 뿌렸다고 해도 세포성같지 않으리요

이런 부위의 맛도 있고요

또 하나는 가면 다시 오지 않는 맛도 있으니 

한 번 맛본 것은

길이 기억될 표현이 아니면 그로 끝이지요

 

 

헝겁도 겁인가 그럼 힉스입자네

 

인간은 말이죠 허상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 허상도 무게라 

조각을 완벽하게 한다는 것에 놀라죠

상은 결국은 땜질에다 헝겁까지 대니

과연 겁은 겁이되 헝겁은 어데 있는 부위길레

떼어다 붙이는지

인간의 허영심과 폼생촘사라는 것은

그 형식성으로 봐 일생의 전반성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우리가 한 때는 낭만으로 여겼던

물론 채만 옆에 끼었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인물티가 난 적도 있지만

요즘도 학생들 큰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도

책은 책대로 껴야 제 풍모는 찾아먹는 듯이 하니

과히 그런 허상적 견실성이라면 조각하고 남을 것이니

명품이 아니면 취급도 안하는 것

대학 안 나오면 성품까지 무시하는 것

서울 살면 서울 밖 대학은 사람 취급도 안하는 것

이것도 과대망상이라지만 조각을 할만하니

거기다 더 얹어 보면 얼굴 뜯어고치지 않으면

기본형으로 안 봐주는 것이니

결국 시작되는 것은 허상적 소재성과 같은 것이

조각되고 조각되는 샹의 놀음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 것이 통하니 나쁜 관례도 통함이 당연시 되고

나쁜 버릇조차도 밀어붙이게 하면

오히려 넓은 관대의 위로가 크게 성공한 듯이도 하기 쉬운 것

다 그 순간의 위트요 맛일 뿐인 것에 길들여지는 것

인간은 옛날같은 사고보다 깊다는 착각을 하는 듯이

왠 수업은 그렇게 많은지

양으로야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따라올 수완이 있던 것이든가

 

 

 

똥개도 제 집 앞에서는 50 점 따고 들어간고 하지 않는가

어찌 보면 시작이 반이라는 것도 있으니  

먼저 선수를 치면 반은 되니 샘샘은 되는 것도 있으니 

이도 다 귀차니즘에서 보자면 치나침은 없는 것이라

다 자기 편의적 형식을 못 벗어나는 외양성일 "뿐

굳이 그 것만으로

내적인 교감을 흡수력을 물처럼 좋게 했다 할 수도 없는 것이니  

우리가 틀이라는 것에의 禪詩의 틀은

한문적 뜻글의 진수마냥 무게감을 갖게 하는데

불립문자라하면서

괘나 단박성의 맛과 무게를 실으려 하니

말하자면 크기는 크게 달라보여도

무게나 양은 같은 같은 언어적 대화의 길이와 같지만   

꽤나 언어적 표현을 없앤다 하면서 

겨우 뗀 포인트 듯이 하면서  

한량없는 넓이를 주체하게 하지만  

털이다 라든가

답다든가 하는 것에는

버거울수록 단박의 요체로는

나름의 접근성이 매우 깊은 맛일 수 있듯이 하지만

이도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지식의 량도 많아야 함에도

서로 내외하며 따로 표현적 얼굴을 내미는 이중성으로서 

과연 동정 간으로 어떤 위치성이나 궤도성을 내놓지 못 하면서 

무조건 실처성 없는 기준으로 취사 선택을 하라는 것은  

음악의 음색과 그림의 채색적 비유 자체가 다른 것이라고 하지만  

이 것이 꼭 바하의 음악과 같이 고도의 음미를 하게 해도

매우 도식적이고 엄중해 보이는 중압감같은 것이 되니

거기에도 대위법적 취용의 형식에 치우쳐 그런지 모르지만

깊이만큼 정연함에 걸어둔 느낍을 갖게 하는 것이고 중후하기는 하나

그림의 고적함의 깊은 맛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보니

가장 싫어하는 경우가 되기도 하는 것이 바하의 음악이라고 하나   

즉 사람이 여러 맛의 음료수를 마시지만 결국

맹물이 최고의 맛이듯이

정적인 것에서 보자면  

음악에도 더 농도가 짙은 당뇨성같은 햠량의 기본성이 있다보면 

바하의 음악도 결국 벗어난다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나

그 짙은 맛의 요람적 동요성은

그런 농도성으로 숭고하고 엄숙해 보이기도 하다는 것이니

바하의 음악은

인생의 뼈마디가 굳어지는만큼에도 그런 견인력은 있다는 것이

그 형식성의 대위법만큼이나  

禪詩라는 것 또한 화풍적(畵風的)고적( 孤寂)함으로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같은 형식의 똥개 함수가  되는 것이 되는 것으로서   

나름의 접근성이 매우 깊은 맛인 듯이 하면서

매우 딱딱해 보이는 면을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이

그 표현에 있어 동양화와 서양화의 특성

즉 인물의 내면적 인상의부각과 사물의 내면적 부각에 있어

인물의 섬세성을 외면한 크로키화한 것에서의 자연의 비장함같은 것과

무언가 한 컷을 끌어당긴 근접성으로 해서 배경의 본질성을

쉽게 도식화할 수 있는 가벼움같은 것의

무언가 한 족은 놓음으로서 부각됨이 꼭

불립문자와 같의 상대적 취약점에 대한 사고성으로

깊이있게 입체적으로 봐야할 것이 있음에도

현실적 상대성도 못 벗어나니     

이 거 취용하는데

50 점 따고 들어가는 자기 편의를 교묘히 눈감은 채

꼭 無의 창조성에

어떤 돌기성마져 저린 섬유적 김치라도 담근 듯이 하지만  

다 50 점에 의지하는 섬유질적 논리 줄이라고 봐야 할,

여기다 광고의 시대 아닌가

무론 광고가 아니라도 인간관계가 광고인 것이니

김치라는 미소의 파생을 낳는 구심력이라는 것이 되지만

이미 생채맛의 구가하는 듯이 하면 알러지를 않는 체질들이 

교묘히 생식적 생색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니  

이 것이 꼭 표현의 영역에 

그 연츌력을 높이는 경우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이해라는 것에

표현하는 자의 문제에 비해

자연의 이치가 그 자연성에도 경직된 맛의 쌈이 되어

채독이나 미생물 접촉에 소매도 걷지 못하고 살 지경이어도

오히려 자연의 바이러스 진화족인 냥

평이한 사회적 대화를  

경색된 잡맛은 색이라 먹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의

자신도 근접이 안 된 무지한 것에  

무채색적 섭취는 잘 된 듯이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막상 이렇게 표현하고 보니

똥개라...

이 것은 경직화된 성능에 속하기에 그리 메이지 않았나 하는 것이고

또한 닮아있는 것인데

난 의식적으로 이러한 형식에 매이지 않르려했기에

굳이 틀다운 면과는 거리가 머니

꽤나 바탕성이 없는 듯이 약점이나 되는 것이니 

다 근본성의 불실성으로 몰아붙여도 응원군이 많을

이 형식성의 중후함이라는 것이

동질감을 부추겨야 체면이 서는 듯이

티를 낸다는 것이 모순적 행위의 폼은 어지간히 남달라야 하는 듯이 하지만  

나야 애초에 반사적으로 외면한 것을 굳이 달가워하기 만무한 것이고

내 표현의 자유에 형식적 의식에 메일까 거북살스러워 한 것이니

굳이 차별성으로 따라지인 냥 해도 굳이 못 따를 성실성도 아닌 것이고

난 禪詩의 그 진수를 좋아해도

그렇게 되기도 거부살스러워한 것으로 형식성을 탈피한 것인데

굳이 제 집 앞에서는 50 점인 똥개가 범털인 듯이 하는 것이

그 속내를 비추며 시비인 것이 속 보인다는 것이다

 

 

 

신과 인간 사이의 영역

 

한 막 사이라는 말이 있다

즉 神의 선택은 幕이라 하나

인간세는 한 막 안의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즉 1 막 2장이라면 2 막 2 장은 못 된다는 것이다

왜?

그 사이에 막간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곧 神的 관절이 아니면 연결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막이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여기에서

앞 뒤가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신만의 마디 형식은 되는 것이다

번복성이라 해도 다 그 자리의 일이다

 

 

얼굴을 뜯어 고칠 필요가 있는가?

 

우리가 와국보다 잘 산다해도

자국인 끼리 상대적 빈곤에 더 고행을 다르게 하듯

우리가 배우를 보자면

인물은 정말 뛰어난 미인데

목소리나 행동이 좀 수다스럽고 엉뚱해 보여

주연보다 조연으로 팽생 인기인으로 산 배우가 있는가 하면

어느 한 여배우는 정말 얼굴이 잘 생겼는데도

반푼수와 약간 순진한 면과 들뜬 행위로 인기를  얻었는데

시집을 가서 살다보니

남편에게서 까지 가볍게 보이는 것이 싫었인지

좀 참순하고 야왕적이고 요조숙녀같은 분위기의 성형을 만들다보니

여자가 왜 수염이 안 나는가 하는 화두같은 질문이 있듯

손대기 바쁘게 뜯어고치기 바쁘니

수염도 안 날판으로 얼굴도 휴유증을 낳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주연급으로, 여왕으로 캐스팅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만일 뜯어 고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 그대로 두었더라면

설령 남편에게 소원한 면이 있었을지 몰라도

차라리 그 수선이 무대로 그대로 쏟아부어 

수다를 떨고 푼수를 떠는 역이어도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아줌마의 속성을 잘 드러내  

그 상 정도의 미모며는 종신 배우로서 공로상을 받을만 했던 것이니

이러한 법칙으로 어느 스타가 얼굴을 고침으로 

조연성 얼굴이 주연급으로 취급하는 것을 보았으나  

내가 볼 때는 그녀는 짧은 배우력으로 성형을 했을 뿐

긴 조연성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또한 강인한 건장미같은 후덕성의 결여로 가정도 그리

온화한 분위기는 되지 못할 외로움을 스스로 교환한

결과를 보이기도 하는 것을 본 것이다

즉 뜯어 고친 듯이 하나

변화되지 않는 변화를 변화인 듯이 착각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보통 중년 이후의 개성이 강한 풍모적 미인은

결코 젊은 표준형 미인만으로 개성적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 없거니와

그런 인상이 깊은 인격과 어울러져 드러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잚을 때 추녀라 싶은 자도 중년 이후에 그녀만의 독특한

미를 구축해 놓은 것이 그 정신세계와 함께 어우러져 묻어있는 것이다는 것이다 

세월이 풍기는 조형은 강력하다는 것에서이다

즉 모양보다 내면의 향기는

어설피 외면을 맞추는 것보다 오히려 났다는 것인데

그런 것은 그 맛만큼 인고를 필요하기 때문에

성형은 무엇보다 짊은이들의 인내의 결여성에서 드러나느 현상인 것이고

이는 얼굴보다 정신성의 문제로 기주가 없는 상실성이다  

그 정도는 잘 크는 수초보다

산에 자라는 풀이 그 향기가 약초와 같은 효과라는 것이니

결코 중년 이후의 개성이 단순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의 풀은 쉽게 커지는 것이 아닌데

그 맛이 셩형과는 다르다고 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우리가 젊음을 기준으로 한다는 기저에서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낭패과에 속 하는 속성반인 것이다        

  

 

章과 지하철 승강장

 

전철이 막을 칸칸으로 이어 붙여 나른다

전철 사이의 막간에 실리운

막  안에 실리운 무표정한 시선들

어쩜 신은 생색이듯 덜커덩거릴 뿐인 것인지도

우린 만간이 넉넉한 듯이 예기가 있은 듯이

얼굴을 본 듯이 잠시 숨을 돌린 듯이

막상 내놓고보면 연골과 같을 뿐이다

아니 차라리 덜컹거릴 뿐이다         

우리의 인생이란 것이

이렇듯 전철이 막간 사이로 이어 붙여 나른다

 

 

어감

 

캭!

캭!

이 것은 뱉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 것은 놀람의 다른 표현이 아닙니다

이 것은 각성을 끌어들이는 소리입니다

각이 성찰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각이 성과 핵융합하려는 욕구입니다

이 소리는 폭발 아닌 융햡의 소리입니다

각은 목성입니다

나무가 우습다고

객!

객! 해대는 것이

인간 나무야

캭!

캭! 하는 것이죠  

 

 

인생 주기율표

 

말은 나면 8 족속으로 사람은 1 족속으로

전국구가 안방아니

어찌 변방이 안방이냐며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데

첫째

8 곤지가 8 족으로서 최변방이다

둘째

1 건천에 모두 바쳐진 것이다

이미 수적으로 1 건천의 나라이다

말은 나면 8 족으로 새끼를 낳고

사람은 나면 1 족으로 새끼를 낳아야 한다

 

 

인생 한 말이

 

왜 짐승을 마리라고 할까요

참 기막힌 직설법이죠?

짐승만이 꼬리가 있잖아요

그 것 참 치기도 하고

말기도 하는 것이니

짐슴은 말이로 해야 맞으니

마리인 것이죠

 

 

요즘은 하여가 식도락 시대

 

인생 길어봐야 얼마겠는가

그러니 하여가가 제 맛이죠

요즘 입은 고기맛집이요

마음먹는 맛이야

하여가가 식도락이라고

화두같이 드리밀기 좋아하지요

어렵게 살 필요가 있는감 하는.

너무 질기고 딱딱하면 까다로우면 맛이 없죠

그래서 아마 한국인은 이공계가 체질이 아닌가 뷔어요

그럴수록 타산이 밑진다고 생각이 짙어서인지 모르지만  

뭐 낭만시대의

꺼뿍꺼뿍 넘어나는 흉내는 이젠 촌스럽죠

무언가 살짝 살짝 데쳐도

살짝살짝 넘어가는 표정이어야 제 맛이죠

완전 턱가늘게 성형하고서 웃는 그런 맛 말이죠

사람이 웃는 법이 마음이 먼저 편해야지요?

그런데 자신의 변심을

너무 그렇게 인생 통째라고

완전 황소 한 마리라도 잡은 냥

식당 간판 정도 취급은 마슈

모르죠 서로가 문간방 내어주었더니

안방까지 달란다고 전통성의 문화인 냥 하는 데 말이쥬

우리나라는

절대적으로 논리학을 발달 수 없고

주입식일 뿐인 것이

그렇게 봐지는 기준점이 있는데

모든 논리의 진행은

그 별도성과의 명확성에서 비교가 되어야 하는데  

그 것은 속 빼먹듯 속 빼고

무조건 그렇게 봐야한다는

마치 무지랭이 대하듯이 무시하면서 다 한 털씩 하는 지성이라고 하니 말이죠

인생은 애초에 외면되어야 하면 초야에 묻힐 수도 있는데

꼭 어울려 말 많은 곳에 수는 채워야 하면서

무엇과 같다는

특히 사람보다 역사성이 같다는 비애감조차 버려야

공통분모라는 식으로 힘을 실으려 하니

그렇다고 

대꾸는 얌전한 소리로 고운말로만 받드는 것이든가  

 

 

마음 먹기도 바쁜데 사유를 먹는다?

 

어느 나라든 로컬이 고유성이길 바라지만

과연 토속성이 싫은 사람들이 전통성을 알아주기나 하든가

과연 우리가 개념을 갖는 것만으로

체증감을 불어 넣는 것이고 보면

무너져가고 비어감을 아는데 자꾸 불어넣어넣는 이중성에

증기만 가득한 듯이 하는 것이다  

마음먹기도 힘드는 판에 사유를 먹는다?

이미 마음만 먹어도

눈치 코치에 귀신같이 날려버리는데

이 치로 끝나는 제삿상에도 오르지도 않는

눈치 코치들이

팜 어지간이도 語族의 말씀을 내놓았다?  

언어에 올려 놓기 전에

자유의사를 다 누리라는 것과같다

과연 스피드 시대에 걸맛는

허나 어에는 가지 못하고

치에 치이다 끝나는 것이 어족 제삿상 받을 자경이나 있던가 

 

 

인생은 필드적일 수 있꼬 트랙적일 수 있는

 

분침 하나가 침을 놓았다

그로서 무지개 벽을 관통했고

자외선에서 적외선으로 두더지 목을 내놓았다

이것을 트랙적 눈이라고 한다

둥근 무지개 안에서의 空은 필드적 눈이라고 해야 함이다

자외선이 있는 안은 공이어도 눈이요

분침이 침을 놓아 무지개 띠를 가르면 비져 나온 듯 

noon 금이면

이 것이 눈에 눈이라는 기하형

 

 

큰 논이든 작은 논이든 결국 볏단 하나의 묶음인 것

 

누군 한 바퀴 돌았다고 하고

결국 링같은 무지개의 귀결처럼 인생을

둥글게 귀결하는 사람이나

어쩐지 가도 가도 무한 공간성이라고는 해도

적외선 내의 무지개 띠로서 

다 핵의 내부성으로 보 듯이

빛은 사열식으로 받듯한데 겨우 모이면 

땅덩어리는

왜 이리 점적으로 불쑥불쑥 나오고 말고 하는 것

이 것은 이화괘의 속성

곤지의 속성으로

띠와 선 마져 면적으로 나오는 것이

곤지괘의 방대함이라는 것의 각이 나오는 것이니

결국 얼룩얼룩 하는 무늬도 이 방각의 드듬은 후속성이라 할 것이니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자외선의 안이요

그 것만으로 정면적 눈이 되는 데다

분명 에리어가 분명 한데도

무한 공간이라 것으로 더 크게 무한으로만 훨훨 날고보면

평생 곤택트 랜즈 하나 안끼고 안경조차 안 낀

스스로의 장님을 누출 시키다가도

낭만 시대의 주먹구구보다 섬세하고 지성적으로 살다 갔다 하는

우주적 개념이 넘친 냥 하는 것 등

누군 트랙으로 굴레를 공이라고 하는 공

그런 공의 의식인데도 트랙의 인생만 논하는 자

즉 귀결점과 번복성의 벽을 나와 눈이 됨이 noon인 눈이라는 것

그에 비해

누군 자외선 안의 공만으로 필드적 우주의 선수로

포환던지기 같이 넘지 않는 것으로서의 정복성같은 것으로

어쩜 자신이 자신을 못 보는 눈인지도 모르지요

적외선이나 자외선이

무슨 보푸라기냐 아님 따로 가닥이 난 것이냐

자외선을 따로 꼬아 북실로서

적외선이 윗실을 잡아 올려질 수 있느냐 등

뭐 침이 두레박 처럼 당겨 noon 하나의 틈

아님 분침이 차고나간 noon일 수 있는 것으로

자외선 공으로도 너울너울이 있음인지 시침 바느질에 공간

사이거 멀어 공이지 실이 있는 듯

실로 추상성의 맛배기같은 것이면

분침은 참 제 넘치는 에너지의 번복성과 머리칼과 같은 공간성철처럼

어떤 곡선의 유전성에 따라 기하급수적 에너지의 분출이라고 분침인 듯

시침이 발가벗고 살수 없어 돌아가는 핏줄이면

분침은 옷의 날개로 흐르는

 

 

매운 맛과 건곤의 사이

 

우리가 매운 맛은 맛이 아니라고 한다

그 건 색이어도 흰색일 뿐 색이라 아니 함과 같다

채식이 무채색이 되면 색이 새끼처럼 꼬이는 것일까

비빔밥처럼 섞이는 것일까

다만 금은 평면성이면 흙은 울퉁불퉁이라는 것이 되는데

결국 매운 맛이란 색깔의 표현이 아니라 

건곤의 상호성으로 울퉁불퉁해지는 것이기에

즉 원소 1 족에서 8 족으로 바로 핼륨화 되는 것이기에

이온적이나 전위원소적 색감적 섬세함이 아니라

바로 그 감이 미치는 강한 맛을 느끼게 함의 폭발점에

가까웁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색으로 따라 갔으면 색이라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풀쐐기 벌레에 쏘이지 않는 한

그 색깔로 아름답다해도 그대의 추상성에 만족하게 하는 것

굳이 보호색이이니 까지 구체적일 필요가 없는 것이 서정인 것

뭐 시인으로선 고마워해도 남을 일이지

굳이 나야 과학적이지 않더라도

시인축에 못드니 그냥 과학적으로 논리적일 뿐

시인으로 봐구기 엮겁다고 하니 시맛 쑥 빼고

그냥 논리라도 개진해 부는 것이 그나마 최선인가 해서 해도

무슨 제 입으로 서푼어치 시인라면서

무슨 공학 박사라도 되는 긋이 미주알 고주울 무슨

틀린 글이라 바로잡주는 듯 이 놈 저 놈해대며

죽을 때까지 제 눌깔 밖일 수 없다고

잘 보고 격각심을 일으키라고 방공 교육 시키 듯이 한다만

꼭 나같은 놈 잡고

동쪽에 빰 맞고 서쪽에  고참 행세를 하는 것다니까요

꼭 인생 패잔병같은 것들이 나같은 놈 잡고

좀 힘들다고만 해도 

기회다 샆게 인생 잘 못 살았니 손사락질이라니까요

그러니 아예 그래 내 잘났다 보느이 아니게 뻣대보면

그 땐 도 개따라지 주제에 잘난 채 하나고 야단이죠 뭐

전 중이잖아여!

그런대 중이어도 부동 자세여야만 한다는 것이져 뭐

찍 소리 말고 좌탈입망하라는 것이죠 뭐

난 애초에 그래 나와 안 맞고 시와는 거리가 멀다고 해도

시로서 따라올만 하니까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니 갑자기 생각을 바꿔

도리어 샅은 시인라고 강조하기에 힘을 배가하는데 말이죠

제가 그저 글을 쓸 뿐이지 시인의 인간성니나 되남유

시감도 서정감은 떨어지게 놀리적으로만 파고드는데 말이죠

꼭 거기에다 댓글처럼 대시를 쓰니 

심오함이야 묻어나오기 마련이죠

그렇다고 나란 놈을 내색이나 하는 감유

그러면 당장 뽀롱나는 판이니 말이쥬

 

 

좀 더 신화적 탐방의 진화론

 

누군가 담쟁이 널쿨은 제 성질에 못 이겨 붉다고 한다

모르죠

저 것이 묻혀 지렁이같은 동물과가 되었는지

핏줄이 촌충처럼 드러났는지

넝쿨 풀이 작으나마 하나의 키에 설려면

제 물에 눌려 핏대가 서다서다 남 나무 타고 오른데유

땅으로 기면 몇 백 척은 갈 뱀같은 약은 수단이라는 것이

제 일 좋아하는 것이

줏대다 싶게 주변 머리 없는 나무 올라타는 것인데유  

완전히 놀려대는 듯이 하면서

나이팅게일인 냥 

붕대를 감아주듯이 어지간히 좋은 일 하는 듯이 하지만 말이쥬

오히려 저 나무의 뚝심이 아니면

차라리 기생이 아니면

척추의 그늘보다 세포적 그늘을 땅에 비쳐가며 가게 할 것인데 말이쥬

제 본성의 강점은 이미 무식한 것이고

남의 그늘을 제 척추의 그늘인 냥 하는 것이죠 뭐

어지보면 알렉산더는 대인이니 그림자를 비켜 줄 줄 알지만

저런 소인배 미꾸라지 같은 소행이야

빙 둘러서는 없는 듯이 하고선

자외선적으로 발길질이요

적외선적으로 아무 일 없는 듯 참 너그럽게도 웃지요?

실제 돈오란 것은 일시적 번개와 같기에

매우 곧은 나무와 같지요

즉 의식과 인식으로 깨우치는 것이 찰나적기에

가늘더라도 제 결은 곧다니까유

그 것이 아무에나 쉽게 드는 것이 아니니

넝쿨로서야 언감생심 욕심이라도 낼 것이남유

그러니 자연 가부를 떠나 그런 접근 자체가 길인 것에

고마워해야 할 것이 도리어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까

절대 그런 일은 없지요

허나 넝쿨인 들 뼈가 없으리요

괘나 자기 티를 내는 독활인 듯이 하지만유

과거의 짝퉁 시절은 없었다고 해서 명품이 없없던 깃인가요

물질보다 사람은 가능하다구요?

명품에 사람 몰리는 집중은 물질 상품만큼이나 정확다구요?

완전 그 키는 큰 듯이 변주곡인 냥 덮는 것이죠 뭐

 

 

무대의 진실은 무대 밖에의 최선인데 또 무슨 밖

 

신이라 해도 잡신이요

설려해도 붙어 감아치며 넘을 수 밖에 없는 넝쿨이

꼭 설득하려 붙으면서

겸손이 넘쳐 신 아래인 듯이 하지만

다 그 빌미로   

무슨 연극 각색가라도 되는 듯이 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실체는 못 내밀면서

꼭 투명인간이 옷을 입은 듯이 한다니까유

무대는 무대의 연극일 뿐이데 말이쥬

그런데 인간이 무대의 막을 가로막고

농락하는 것은 그 인간에 대한 것보다

신의 영역에 자신이 신이 냥 행세하는 것과 같지유 뭐

 

그 것은 인간보다 신 또한 동경하는 것이쥬

아무리 신이 자유스러운 객석이라고 해도 그렇지유

나무며는 소나무일 것이

꼿꼿히 제 주장인 듯이 키는 큰 듯이 하지만

보면 잡스런 넝쿨이요

속을 헤쳐 보면

남 소설을 덮고 제 인생록인 냥 하는 것이죠 뭐

 

강 건너 불구경인 듯이 해야

무대 하나 떼고나서 자기라고 객석을 뜨는 것인데

붙으면 도리어 그 무대마져 떼지 못하는 것이

굳이 그 것마져 부리는 주인 냥 하는 것은

그런 인간으로 태어나지나 말지

평등이라 하면서 제 우월성만 유세하다 가는 것이라니까유

진실성 속에서 웃을 일을

재 말만이진실이다 제일 많이 남발한다니까유

그러니 고소를 면치 못 하는 것이쥬

그러면 그럴수록 결국은

사람을 더 무서워 해야 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

그 유휴증은 고스란히 후손이 물려받는 것이죠 뭐

 

그런데 말이쥬 그 무대며는 무대로 봐주면 되는데유

솔직히 그 배우들도 무대 밖을 위한 최선이잖아유 

그런데 그 진실성마져

무대 안으로 자꾸 신호를 보낸다는 것은

이미  그 대본이 미숙한 것을 스스로 노출하는 결과인데도

때우며 가도 순리와 법칙의 격외성이라고

오히려 혜택 줄이요 빽 줄이라고 

한 번의 무대마져 부실과 미혹됨을

그 흠마져 진실성으로의 기만으로 살았기에

어느 생의 무대의 진실성인들

다 결국 남의 기만으로 채우며

자조를 키우는 것인지 모르지요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고기 오래 먹지 않다보면

횟집에만 지나쳐도 비릿내에 못 견딜 때가 있는데

그렇다고 내가 횟집 주인과 원수가 진 사람인가?

허난 모든 현상을 내비치기 무섭게

채식 사상에 물들은 분자라고

육식하는 자를 모두 역겨워하는 종자로 모는가 하면    

마치 횟집 주인을 무시하는,

인간성도 모르고

사랑으로 감쌀 줄 모르는 인물이라고

욕하고 손가락질 하는,

혼자 산다고

다 사랑도 모르는 작자라고 빗대기나 한다면

대꾸라도 한 마디했다하면

표용력도 모르고 우정도 모르는 넘이어서 혼자라는 둥    

그래서 장사를 못 하게 하니

함께 모여 규탄이나 한다고

망둥이 뛰듯 설쳐대는 것은 고사하고

니전투구도 생애인 것으로 살벌하게 하다보면

생애라는 바닷가를 무시하는 듯이 보는 것도 있는 것이니

 

 

周易에의 이해

 

우리가 易의 爻辭를 보아

地天泰의 5 爻의 문구를 보자면

제을 귀매라 좋다고 하는데

싯구의 문구는 日間에 풍파라 지나간다도 하는,

서로 헛갈리게 하는 해석의 경우가 많다는 것에서

아예 근접조차 힘드니

솔직히 누가 진실하게 지도하지 않으면

맛도 못 보는 것이 주역이고 보면 

주역은 문장 자체가 빼어남이 아니고

평이한 문장인데도

평생을 공부해도 도달하기 힘드는  것이고 보면 

주역이라는 것이

그리 만만하게 내용이 떠지는 것이 아니나

그 것이 맞아 들어갈 때는

그 심오함에 경탄하게 함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문장으로 소득은 생겼으나

그로 불의의 큰 시비를 거는 자가 생긴 일이 있어

爻辭보다 詩句를 더 믿는 편인데

그런데 꼭 나쁘게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니

일이 어떻게 흡수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빠져 나갔다는 표현을 쓸 수 없는 것이

결국 내가 몰랐다고

괘사가 제 괘사대로 다 마치지 않았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나의 존재보다

주역은 역 자체로 자생적으로 났다 제 구실은 하고 가도

나와의 접촉은 상대적이고 간접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즉 나무에 불이 붙으니 나무의 불인 냥 하지만

실상은 불의 나무와 같은 것이라는 것이기에

내가 나무이지 앉아도 다른 나무에는 탔을 것이라는 개념인 것이데

사실 세상 만물이 주역 아닌 게 없다는 말은 이러한 데서 나오는 것이다

즉 싯구로서가 아니라 효사로서 왔을 것인데

내가 분명 겪으면서도 인지를 못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새가 너무 높이 날아갔다고 하든가

파도가 섬을 갉아먹었다는 힌트라도 나왔다면

이미 나를 지나쳐 일이 발생한 것이고

하나의 고정관념이 없어져야 하는 문제이든가

이미 일은 수행되었다는 것이 된다         

 

그래도

하나의 하나로서의 성질이니

동일이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먼저 일체성이 무엇인가를 뚜렸히 해야 하고

그리고 파생적 이질감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것이 평생을 두고 공부를 해도 다 이루기 힘드는 것이니

참 말하기는 쉬운 문장들이나

저녁의 도를 아침에 알려준다고 알아 듣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난 中이라니까유

 

난 중이라니까유

남 싸움에 누가 끼어들기 좋아할까유

한 마디로 저도 중으로 산다니까유

그런데 말이쥬

난 中이라는데도 중력이 있나 봐유

오히려 때어야 하는 데말이쥬

정 떼고져 해도 오히려 합심해서 중력 자랑을 하는데유

저들 끼리 싸워서 볼록 솟은 파고가

허공을 지르듯 나를 손짓한단께유

완전 핵융합 발전도 안 되면서

스스로 휴지조각이나 되는 글이라면서도 말이쥬  

내가 무어라 했남유

꼭 나아게 분풀이 하는 듯이 한단께유

천 리 멀어도 임금의 백성이니

임금이야

당연히 부덕을 탓해야 겸손하고 성인적 풍모지만유

요즘에야 꼭 잘난 것만

꼭 무슨 노가다 품앗이 모집 같이 모아다 선전은 잘 한다니까유

뭐 그렇게 열광적으로 기도도 열심이 했다고

논공행상처럼 선전을 했으면 약빨이라고 효험을 내놓지 않고 

힘들 때

더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번지수를 내밀어야 하는 데유

꼭 그 때는

쏙 들어가서는 도리어 언제 내가 그랬냐는 듯이 숨고보면

참으로 그 것이 나랏님이라고 얼굴 짝이라 해야하니

부끄럽지유 뭐

뭐 이판사판 난장판이니

명함과 직함만 높으면 철면피가 철밥통되어야 하는 듯이  

오히려 성직자가 개기름 철철 삼겹살 저리 가라 살 찌니

교육자보다 지체가 낮아 책임은 교육자에게만 있남유

그런데 말이쥬

난 중이라고 시선 집중은 된 모양이유

꼭 끼리 끼리라고 해도 

같은 속성이 될 수 없는 어울림이건만유 

손 맞잡은 부부가 하나를 바라보며 가는 것이라고  

그래서 내게 손가락질인 것이니

가지를 뻗지 않는 듯 얌순히 기다리는 

마을 공원에 힘주는 체조기계와 같은 것이듯이 하지만  

죽이 잘 맞으니

대쪽같은 죽으로 고고하게 태어날 것인지

죽 쑨 듯이 나고 말 것인지

뭐 그리 모이면

냄새는 거름무더기여요 잘 자라는 것도 있겠지유

남들에게는 스파르타식를 강요하면서 말이쥬 

참으로 하늘에 별인 냥 손가질 하려면

내가 뭐라나유

그냥 별들이 총총 떳다하면 연인같은 분위기인 것을

그런 주제도 못 되면서

꽤나 서정성의 한 소는 맏겨라 하니

차라리 광대가 솔직하고 인간미가 줄줄 넘치지유

그런데 말이쥬

내게 손가락질하면서

저 것이 외계인이다? 하니

그냥 속삭이듯 예쁜 듯한 하늘이

외계인 천지가 되었다고 하는데유 

가만히 놔두면 지구를 정복할 것이라고 천방지축 외쳐대는유

어찌 봐 묵시적인 것인지

 외면인 것인지

외계인들만 모인 것같지유?

외계인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하니

실재 제 별인 항성에는 인류가 살거든유

허나 아무도 없는 듯이 외로운 별이라니까유

나는 이 별에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이 듯이 하는데유  

참 침묵스럽고도 믿음이 가지 않는단께유

어쨌던 외로운 별이쥬 뭐

그래도 난 인류는 보았다는 혹성에서 왔음을 알았으면 하는데 말이쥬

 

 

바다는 바의 바구니

 

바다는 바의 바구니

시치니 물 정도로 투명성을 드러내는 것

바다는 시침의 것

그런 시치미인 것

모르죠 어쩜 <봐>가 어원인 것인지

시침이 바라니까유

바다 망태기같고 시친 이불과 같고 그물과 같으면

물 정도 탄로내는 것이요

촘촘히 기운 것이면

바닷가 모래처럼 단위라고 나오는 수리가 나오는 것이죠

이 건 최대한의 응축판이고

완전 빅뱅보다 더 멀리 깔아보면  만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요

이 것이 시침이라면 분침만이라도 물질감을 느끼게 하니

모르죠 우린 생애라는 바닷가에 모래밭을 알아 

속으로 스미는 바닷물을 느끼는 것인지

그냥 한 경계의 지반이 주기육적 궤도로 되기에

더 나아간 분침은 파도가 파도에 더 나아간 차이를

감지하는 선에서의 측량감일 뿐인지도요

정말 바다는 바를 시치미 뚝 떼나니까유

어쩜 그물로 빠져 나간 것은 없는 듯이

무엇이 걸려야 질감이라도 느끼는 것인데

오히려 그물이라도 걸려야

그 내용의 질감을 아는 듯이 바를 지고 있는 것이

바다인 것이요

바가 알맹이인 것이면 

그 이불결같은 바를 시친 시침을 알아야

바가 다가 되는 듯이 말끝의 바를 안은 듯이 말이요

완전 투명성으로서는 누드 사타킹 빨은 되는 것이죠 뭐

뭍으로 올라온 거북이 같은 것이죠 뭐

참 아이러니칼한 것은

느리게 가는 것이 시침인데 꼭 빅뱅급의 속도성이 폭발력이요

분침은 빠른 듯해도 오히려 느린 속도에 해당한다는 것이

그렇게 인식되는 것이 시공성을 갖는 것이니

시공이란 시가 가는 방향성과 공간성을 말하니

어떤 정연한 법칙성이 의식의 한계로 궤변적 궤도로

인식이 고착화되는 것도 있다는 것이니

그 차이만큼 시치미 뚝 뗀 것이 더 물리학적인 속성인 것이죠 뭐

 

 

보라색의 만물성

 

보라색이 보라는 것은

붉음과 푸름의 분기점을

동맥과 정맥만큼이나 뚜렸히 나눴다

제 몸으로 섞는 것이쥬 뭐

그런데 푸르름 밖의 붉음이라는 것이 보이나

보라 안의 붉은 보이지 않는 공이라고 하나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붉음의 시공이 있다고

보라!

보라!

하는 것이죠 뭐

물이 하늘을 불들은 것에 푸른 센타인 것에 

태양까지 물들이면 보라색인데유

그래서 푸른 하늘 아래 태양이니 보라색 인생인데유

이는 붉음이 푸른 바다에 발목잡혀 일어나는 것처럼이라는 것이쥬 

광합성으로서야 나무의 발목을 잡은 것이나 

그렇다고 꽃이 빛의 반사성이냐 하는 것이쥬

그 걸 기계적으로 설명해보라구유?

그 게 인간이잖아유

광합성이

잎은 다 만들고 나서 꽃으로 마져 나오는 것이라기보다

잎에 머무는 사이로 

꽃은 땅의 마그마적 응고성이 빨려나가듯 하는 것이쥬

 

 

피카소 풍의 관상학

 

우리가 자식궁인 와잠(臥蠶)을 눈 아래로 할 때

과연 눈 아래가 자외선으로 해서

입을 그 자외선 밖의 내적 공간의 중심성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있고

그럼 자식은 자외선 내에서 인출 되는 것인가

아니면 무지개적 여과성이 눈이라고 할 때

자외선이 있는 공간이 자식으로서 인연을 끌어들이는

백지 수표와 같은 것인가 하는 것이 있다

특히 눈을 적색이라고 할 때 이마를 火宮이라 함에는

적외적 궁이라는 것이고 보면 더더욱 그렇다

 

 

원소 1 주기율과 8 까지의 우주적 활개

 

원소 주기율에서

1 건에서 8 곤까지일 때 얼마 간의 차별성을 보이는 것일까

그 물질적 차이를 보자면

원소 1 주기율인 乾이라면 원조 6 주기율이 坎水라고 할 때

마른 종이가 그렇게 빳빳하여 글이라도 미끈하게 빠져 나가던 것이

물에 축여지고 보이 구겨지기라도 하면

못난 구겨진 성깔이어도 빳빳한 맛은 있는 것인데 말이죠

이 건 죽은 시체마냥ㅇ 서지도 않는단께유

이 것이 건성인 알카리라고 하면 말이쥬

물은 이미 산성도의 기준을 넘어선 것인데유

그렇데 산성은 나무의 섬유질처럼 빳빳한한 것인데 왜 푹 죽은 것인감유?

어쩜 알카리성은 산성과의 거울적 대칭성으로 같이 섰다 말았다 하는 가유?

그런데 그 것도 합리적 맞장구가 아니다 싶은 것이유

수가 대나무적 마디요 막간과 같이 끌어들일 때와 따로 노는 것이고

금인 알카리성의 폭발력과 양기는 수에서 보호막이 되고 여과가 되어

목인 산성으로 나아갈 때는 매우 변압이 된 에너지라고 봐야할 것이지요

이 것은 7 艮山이나 8坤土 內의보푸라기적 풀기와의 대비인 것이지

6 감수의 이전의 에너지적 분츌의 대비성은 아니라고 봐야 함인데유

4 주기율과 5 주기율적 대비는 아닌 것으로서의 기하형태의 움직임으로

자세히 볼 시각도 있어야 하지요

 

 

금정 하에 옥출을 봤으니

 

금정하에 옥출을 봤으니

어찌 꼭 흙소가 지나가 두더지길 같은 것이

조개 혓바박처럼 일었다 말았다 하는 데서 나온 것 같은데유

산본 하나면 완선 원뿔같은 옥이죠 뭐

그런데 원소 2 족에서 부터 8족까지가 하나의 坤이고유

원소1 주기율은 혼자이데유 합하여 9 가되면

원소 1 주기율은 구심인 중궁의 구궁도화가 되는 되유

이 구궁의 중앙이하는 겻은 염주처럼 앞뒤 줄을 서 있어도 모르는 것이고

그 염주 한 알의 자전적 굴레가 구중도인 것이니

원소의 주기율적 성질이 괘상이나 효상으로 움직과과 같다고 할 때

과학적이지 않다

영적이지 않다

신적인 접근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못 박을 수는 없지요

 

 

부레옥잠의 시를 보며

 

모든 역마다에는

스핑크스의 퀴즈를 풀은 것을 암호삼아 지나가라는 듯한 싯귀가 있다

미아 삼거리 칸칸을 여는 번지수에는 부레 옥잡이라는 시구가 있는데

그렇다고 누구라고 하기에는 두르기라도 나야 한다고

긁어대는 무리들도 있고 보면 굳이 누구라 말을 못 하겠고

어찌 시 한 구절도 누구의 시라 말 못하는 볼쌍 사나운 놈이 되었는지 참

전철이 부레잠이라는 것이

늙은 노인네들이 에리베이터에 몰리는 것을 보니 부레같다는 것이니

관절처럼 부푼 그 시인의 부레와 너무도 똑 같이 떠 오른다

참으로 그 시같은 시원에 역행인지 순행인지

난 부레가 무거워 엘이베이터처럼 부상할 것이 못 되고

부레가 섬유화된 허파 꽈리라는 것으로 올라가라고 하니

완전 인생 진폐증에 숨통을 맞춰 화기를 뿜으며 오라고 하니

이 거 완전히 관절이 날아갈 듯 욱신해 지기도 하는데

굳이 유명한 시인의 시여서 시인감유

시가 좋으면 시인 것의 실감인 것이쥬

그는 시라기보다 시인이네유

인간의 감수성 자체가 시인라고 하는데

시인마져 시 밖의 시인이라는 데서 참작이 되어 시라면

참 시가 씁습하지요

그대로 시만이어도 이름을 더 보고 싶은 것에

꼭 꼽싸리 끼러주어야 하는 생색들이 더 폼내는 것을 보면 말이죠

꼭 끼었다는 생색이 안목과 상관 없이 잘 봐줬다는 듯이 말이죠

안목과 상관 잆었다고 하면 도리어 건방을 떨 것인데

암목 밖의 아량이어야 더 값어지치 있는 생색이 되고

참 발 빼기 힘들게 하는 것이 되지요

그러니 진실과 처세는 밝을수록 치사하기도 쉽지요

그러니 시인이 아니라도 좋은 시

진정 시만으로 시인을 찾고 싶은 시

이렇게 이야기해봐야 소용도 없다니까유

다들 다 지가 이렇다고 합창을 해댈 것이니 말이쥬

그런데 나도 본의 아니게 미안하지유

관절염의 부레기는 엘리베이터처럼 올라버려야 하는데유

또 허파 꽈리 진폐증으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올라야 하니 물이쥬

그래서 저들은 나더러

욕심은 많게 오르려 한다고 언감생심이라 하는데유

어쩌다 표현이 그렇게 됐는데

정말로 지체 높다는 것은 숨을 차게하는 것인가 보이쥬?

시의 시인이 아쉬운 사회이니 말이쥬

 

 

똬리와 꽈리

 

네 발로 가는 짐승은 허파에서 꽈리를 특고

가나다라 순이라

발이라 해봐야 사족인 것은 똬리를 틀고

다라마바사라 각음이 발가락을 깎으니

천둥소리가 나고

날고 달리고 라풓거며

나다라로 달리는 것이고

다가 중천의 해가

다리가 필요함이 아니라 똬리가 필요함이니

칭칭감은 봉대를 둥근 두상이라

태백의 또아리를 알겠거니

아무리 대간으로 다리가 잘 빠졌다고 자랑이나

자꾸 똬리 옹이심롤 머리만 난다

척추엔 자꾸 가지만 나려고 한다      

 

 

상록의 수

 

흙소를 어데서 보았는가

금정에서 봤다

바다 밑 흙소처럼 기나가는 용트림은

두더지 굴처럼 울컥물컥하는 것같다

대야의 미를 밝혀라

수리산을 밝히니

인생 수련을 해도 참 끝이 없는 것이니

수미산이 참 태산과 같구나

금정 아래 대야를 밝혀라

그러니 떡잎

그런데 이상타

어찌 한 족 떡잎민 본다고 하느냐

반월이라

이 쪽으로 해 온 것이라는 것이 되면

저 쪽이서의 온 것이 이 쪽으로 반인가

양 쪽 떡잎은 잘도 외줄을 타지

결국 상록의 수이니

 

 

종교는 실사구시적으로 과학은 좀 더 종교적으로

 

어차피 역설적으로 종교란 실사구시에 얼마나 접근하느냐인 것인데

또한 접근이 안 되어야 종교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

과학과 종교는 어떠한 톱니라도 맞지 않아야 

과학은 과학대로 밥벌이가 났고 종교도 종교대로 밥벌이가 나을 수도 있는데

이기주의는 아니더라도

보편적 수단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  것은 그 분야별로 독립적이어야 진취성이 낫다는 것이 있어서이다

어쩜 분화로서의 자율성에 가장 버리기 힘든 중추성일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이런 영적 우주성과 인간적 우주성 그리고 물질성이라는 삼위일체라는 것은

그 분야별로 떨어져야 그 수용성이 큰데

하나같이 연결하면 그로 정체감을 느낄 수 있듯이 하나

실제 그러기에는

인간의 수명도 백 세  천 세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으니

종교적으로 늘 철학적 모태가 되지 못 하고

늘 과학성에 뒤쫓기는 냥 하는 것은

결국 물리적 강대성의 지속성을 위한 욕심의 파생으로  

물질적 입증성이 닿을 것으로 만족도를 보이는 것이기에

결국 철학이 과학이나 인문을 두루 안을 수 없는 포용력이 되어도

절대 눈 앞의 편의성을 벗어나지 못 한다는 데 있는 것이다

어차피 상대적인 삶에 여러 잣대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이중적 잣대도 쥐고 있어야 하고 하니

너무 하나같이 해버리면 융통성의 상실 때문이어도

그리 쉽게 과학과 종교는 찰싹 붙지는 않아 좋은 것이고

응전에 있어서도 그렇게 붙어 시끄럽지 않는 나라도 없고 보면

어차피 서로가 끌끄러운 듯이 함이 서로가 최대의 이득을 챙기는 판에

굳이 착 달아붙어 각기의 능동성를 없앨 이유가 있느냐이다    

우리가 안통이니 이통이니 하는 것도

결국 그 원소성에 물린 특성이 있다

결국 주기율 상으로 거두게 되면

그 특성 상으로 모이게 되어 있는데

결국 안목으로섭렵한 것은 그 원소성으로 모이게 하고

귀로 섭렵한 것은 그 원소성으로 보이게 하면

그 어떤 화학적 원소성만이라도 인문적 향기를 낼 수 있는

판토마임과 같은 모방성의 움빅임의 셩격을 알 수 있고

또한 그 어떠한 행위만으로 어떤 원소적 성깔에 들며

그 향기로 모인 것만으로 행태를 알 수 있는 것이 된다

 

 

원소 주기율의 특성

 

원소 한 주기율이 8 족까지 일 때 

한 주기율 까지는 1로 할 때

둘이 될 때는 이미 

주기율이 7까지 늘어나는 X선과 Y이 성립됨과 같다

이렇게 면적으로 펼쳐지면 공간이 생기니

이를 3 주기율이라고 하는 것이고

이렇게 닿는 것에도 소리나 남은 것이니 

이를 사물성이 나무와 같다는 것이고

나무도 크고 커봐도 잎새는 따로 흔들리게 하는 것이 있고

바람도 무게라고 하니

물은 더 큰 무게라고 6 주기율성이 되는 것이고

그리고 흙소라는 물 아래 흙이 되는 것이니

이 것은 결국

자신의 특성으로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니

결국 원소도 주기율 상으로 메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것이 가장 객관적인 차원의 형태이다    

      

 

왜 이빨이 상성(商聲)의 요체가 되는가

 

이빨 사이로 나는 것이 金인 상성이라고 하는데

실제 이빨은 金이라고 봐야함이고 玉이라고 봐야 함이다

즉 금공이면 잇몸인 것이 된다

 

 

다 인생은 멀티 히트같은 것인가

 

난 밤이라는 나라에 세 톨이라고 살았는데

한 톨 두 톨 도투락이듯 참 다정했지

도가 톨톨 든 것이 투락투락 밤톨처럼 붙은 듯  

이 세 중에 한 톨이 죄업이라도

그래도 같이 가기로 했지

그래서 세 톨은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 것이 창살이 늘 살아나게

빛살이라는 것을 늘 내며 가두는

항성이라는 지옥으로 가두었는데

빛살이 세다보니

어느 누구도 근접을 못하는 창살이었지

그래도 그 안은 참 물렁하다네

그래서 옥 살이는 다했는데

그로서 옥은 유성처럼 뚝 떨어지는 것인데  

그 밤톨이

입을 쩍 벌린 사이로 문을 나왔는데

참 아리송하지

다람쥐 띠를 가진 사랍이 와서는 갖고

겨울 나기를 하려하고 애지중지 묻어두었는데

또 다람쥐 띠를 가진 여인이 갖고 가버렸는데

나가면 겨울나기 참 추우니 묻혀 있음이 보금자리인데

늘 꿈은 밖을 나대니 겨울이 참 안타깝다고 한다

 

 

몇 바퀴만에 왔는가

 

몇 바퀴만에 왔는가

이 것이 내가 불가에 입문할 때

성철스님의 사숙이신 남계 스님이 내게 주신 화두다

누가 내게 묻는다

스님은 도를 얼마 이루었는가를

난 그져 내 진실성으로만 이야기할 뿐이다

속직히 백에 하나 천에 하나

정말 집에 돌아갈 차비도 없으면서

시주를 하시는 분

댕전도 없으면서

이웃집에 돈을 빌려서라도 하시는 분

난 솔직히 이 바램을 못 잊어 옷을 벗지 못한다

솔직히 백에 하나 천에 하나

그 가슴 아리는 것 때문에 백을 못 버리고 천을 못 버린다

내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거창할 것도  더 욕심낼 것도 없다

난 철저히 성철스님의 구원은 없다는 말을 믿는다

왜냐하면

천에 하나 만의 하나 돌아만 봐도 사람이라 할 것이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돌아보지 않는 돌아버린 돌에

나는 백에 하나 천에 하나 돌아서지 못하고 돌이 된다

 

 

이 두 개의 개념은 분형히 해주어야 한다

 

어차피 두 개의 개념으로 있게 되어 있다

즉 한 생도 짧은데 이 한생마져 못 참으면서

장구함을 구함다는 것은 언행의 교활성이라고 할 것이고

죽음의 순간에만 취사 선택의 정신이 맑아야

줄을 잘 잡는 것이라는 것으로 할 때

그로 시공의 계층같은 것 된다고 하면

또한 대대손손이라는 이음새는

육신만의 장류성으로 생존의 기틀을 다하는 것에서

굳이 그 순간성의 선택의 가변성이면 되었지

굳이 일생적 고행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선이면 되었지 굳이 두타일 필요가 있는가

부처님도 그렇 필요가 없는 길을 갔다는 것에서

구딩 촉 잘 웃는 인간성에서 좌선만이 깨달음이듯이 하는데

문제는 그 해철성이 순간적 단박성이라는 인데

과연 이 두텁다는 것은 고행과 상관이 없으면

무엇을 두텁게 하고 깨우치는 것인가 하는 것인데

한생을 못 참을 시련이라는 것은

사바세계로서는 불가항력적일 수 있음이 있는데

무슨 전새의 업연이

아니면 굳이 수행의 과정으로 불필요하다는 것에서

현실적 여러 취사에서 너무 현실적으로만 가벼울 수 있는 것만으로

지혜가 되는 것이고

너무 임기응변적이어야 수해이 잘 된 것이라면

그 것도 하나의 성격으로 볼 것이라 아니라

무슨 덕이나 복으로 당당하기만 한다면 이도

깊은 가치의 대입이 아니라

약게라도 살아남는 것이 최대의 수단임을 행세하면서

결국 요즘 배굶는 사람이 있나하면서

자기만 배만 부르면 다 수행의 정당한 결과물인 듯이 하면

전반적 가치관이 다 맞다고 내심 응원해 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인생이 가족이라는 개념

즉 부성과 모성이라는 것에는 희생과 헌신이 기본인데

잉 것은 남에게서의 경쟁에서 취하여 보태는 것이니

사뭇 다른 공동체인 것에서

좀 더 혼탁되고 넓은 경지에서 정화의 희생은

가족을 위해 사냥은 해야하는 헌신과는 다른 초탈성을 요구하는 것은

문무가 같은 것인데        

굳이 것으로 볼 대

이러한 두 갈래의 정신은 같은 것이 아니며

그래도 믿음이라는 돈독성에는 분명하게 취용함을 알려주어야  

혼란스럽지 않게 하는 것이 있다

즉 무속이라는 것은 조상인 것이고

또한 후손이라는 것인데

이는 신적 영역이어도 완전 해탈적 영역의 신은 아닌 것이니

이 것만으로 현실적 인식의 귀착점 된는 것인데

이를 부처님의 도라고 밀어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동양철학적 예언만으로

반풍수여도 인연법의 보태로 신비의 깊이에 많이 드러낼 수 있으니

더욱 은밀히 신적 상호성을 갖춘 듯이 하나

이는 부처님의 옹호성인 진신이

이런 화신적이고 보신적인 것과는

사뭇 다른 헌신성을 요구하기 마린인 것이데

반품수여도 좀 신통하다 싶으면 

또나 개나 다 부귀에 안락만 꿉꾸며

굳이 고행알 필요가 없다는

즉 세상에 공짜 없으니

벼슬도 4당5락이며 잠도 못 자는 당연한 법칙에

마치 자신들은 거드럼을 피워도

다 단박이면 신통이 된 듯이 하는 것도

다 자기 가먼과 같을 수도 있는 것이 부분적일 수 있음인데

이는 그런 반박성만으로 

대단한 신출인 냥 하는 것으로 드러낼 수 밖에 있는 것에서 그렇다

실제 그런 인연들로 혼재하기에 인생은 더욱 無明이라는 것이다

왜 구원은 없다고 했는가

이는 즉 구원은 엄밀히보면

상대의 욕구와 내 욕구가 맞아 상승된 것이기에 구원이 된 것이지

신이 돌아봐서 구원인 것인 것과는 차원이 다른 면이 있는

굳이 남을 눌러야 내가 사는 듯이 하는 헤로섬같은 것에

굳이 기복적 욕구를 냈다는 것만으로

그리 정적인 메카니즘이 못되는 것이고 보면

부화뇌동적이어도

그 보다 더 가벼워도

신적 현상은 늘 함께하는 것이 인간이다보니

모든 게 주역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하는데

그냥 주역적 학문적 파트이다고 하면 실사구시가 되는데

굳이 교주적 노하우를 축적하려는 즉

즉 장인도 비밀이어야

제 밥 그릇을 챙기듯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듯

설령 짐에 갈 차비를 시주해서라도 자신을 믿음을 깨지 않는 것도

그 믿음만큼이나 상대의 욕구와 함께 일으키는 집착이라는 것과

복이되고 공이 되늰 것이기에 실제 그 받는 당사자가 복을 닦아 주기 않으면

그 공이 되지 않는 것이지 신이 돌봤다는 것은 어지간한 극한이 아니면

그리 접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라는 것이다

즉 구원은 없어도

인연의 욕구의 상승은 원하는 것만큼 이루어지니

참 신묘한 것은 구원은 없어도 소원은 잘 들어 줄 수 있음이

신의 배려요 능력의 창출과 같음은

그런 욕수상의 기대로 밀어줄 수 있음이지

진정한 의미의 구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허물도 짓기 쉽듯기 복도 짓기 쉬운 패턴에 神的이듯 쌓인 것이지

근본적 구원의 개념에서는

도리어 몇 번을 소진해야 제러적 출발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인간적 차원마져 벗어야 하는 것에서 보면

피도 눈물도 없을 수 있음이 신이다

과연 인간적 욕심을 다 버리고 수 없이 죽어야 하는 것에서

의식이 뎦였다 깨었다 함의 번복은 순간과 같이 하는 마당에

그 순간성을 유지하기 위한 번복적 지속성은 

단순한 매질로서야

돌아서면 잊어먹는 것과 같을 정도로

결국 살이 물크러지도록 생사에 경각이 달려도

도란 늘 의식이 깨어 있느냐와 싸움에서

다 못난 외고집일 뿐이라고 한다면

오늘이라도 돌아서면 

하루라도 기억상실처럼 살 수 있으면

굳이 돌아서 치를 떤다 이야기 할 이유도 없거니와

부처라도 해도

결국 돌아서면 다시는 안 돌아볼 줄도 안다는 것이다

왜?

왜냐하면 고행을 않는 도야

부처보다 그져 인간적인 것이 훨씬 나으니 차라리 사람에 아부하고

권력에 아부하고 말지 굳이 부처까지야

아무리 부처가 지식적 차원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하더라도

그 지식만으로 부처일 수 있으면 세상에 부처 아닌 불제자 얼마나 되는가

불자들이 육조단경 정도야 모르겠으며

경문의 용량 정도야 어느 지식의 용량보다 부담되는 학식이게 하였겠는가

그 질이라고 하지만

그 질이란 것도 결국 머리에 들면 그 요소일 뿐이라는 것일 것이며

추상성의 윤곽은 어느 정도 이미지가 잡히는 것이니

이러한 아직도 기적에 효과를 선전의 요체가 되는 안개 속에

구원이라기보다

차라리 기적을 마법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복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이는 서로의 욕구가 일치됨으로서 그 것이 허물성이 되기 쉽고

복이 되기 쉬운 작용에서 나오는 것이지 구원의 개념이 아니 듯

안개꽃처럼 방긋방긋하는 것인데

안개 꽃은 뿌리가 없는가?

다 갓난애 웃음 또한 경이롭게  방긋방긋 웃는 것이 아닌가            

이 것이 복의 개념이 되는 것으로             

실사구시적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서

이미 부처님법 자체가 실사구시이기 때문이니

이도 다 만류인력의 옷이 아니라

힉스입자에 근접해야 더 실사구시가 됨과 같은 것이다

 

 

사필귀정

 

예전에 어느 노스님이

말세에는

서너 집 건너 대가 꼿히고 卍字가 붙을 것이란 말씀을 하셨는데

참 아이러니컬하게도 몇 집 건너 십자가를 본다

이 것이 당연한 귀결점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진정 卍字가 佛法이었는가 하는 것에서다

 

 

까치울과 학여울

 

까치가 우는 울은

학이 울지 않는 여울로 출렁인다

저 별 끝에 님의 향기는

한 낮의 길에도

이슬을 턴 여울이듯 마시며 숨을 쉰다

 

 

능소화

 

능소화는 능히 웃을 수 있음인듯

내리막 길이 절벽과 같이 하여도 고개를 들어 본다

웃어보이며 한 마디는 건네는 듯

그래! 또 능히 웃을 수 있음이듯 농소화다

장미란 것도 능소화의 웃음이든가

줄장미같음에 작게도 피는 것이  

긴가민가 다른 종자같더니

아카시아 잎새같음을 보니 같은 종자였구나

아카시아는 종(鐘)의 입이나  색깔이 아니어도 향기가 진미

향기 뿐이랴

다만 붉게 붉게 칠해도 연한 색만 나올 뿐

굳이 립스틱 짙게 바르지 않아도

그댄 능히 웃을 수 있는 능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