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실(이 글은 순수 창작품임)

피카소적 입체성의 가장 완벽한 천체학적 풍수

narrae 2013. 7. 8. 00:42

 

피카소적 입체성의 가장 완벽한 천체학적 풍수

 

우주와 인체와 8괘와 구궁을

마치 피카소적 입체성의 가장 완벽한 그림으로 보자면

어느 과학도 못 따를 실사구시

이 것이 관세음보살도

어떠한 과학도 철학을 무시할 수 없는 부적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니  

 

 四

111

111

 11

 11

 一

 

보라!

참 막연한 추상화이든가

초현실적 그림이든가

여기에 맞는 이론이래야

몸을 옷에 맞추는 식일 듯이 할 것이

이 것이 실사구시다

머리가 원소 4 주기율까지요

4 괘(卦)까지이고

그 아래 몸 전체가 하나인 것을 더해 5 인데

이로서 전체로서 五行이 일어남이 몸이라

즉 4 아래 모든 1은 1인 것이요

대지의 근본인 것처럼

등 줄기가 1 인 것으로서의 1에서의 배분에 있는 것

이 1을 탯줄까지로 하면 원소 6 주기율이요

그 줄에  

아이의 머리가 배꼽에 붙었다 떼어지듯이 하면 원소 7 주기율인 되는 것   

또한 원소 5 주기율이 지평선이면

강  아래 섬인 냥 쌓인 삼각주도 원소 7 주기율로 함인데

이 것은 원소 주기율의 역행처럼 7인 命과 福인 것이며 

탄생의 숙명성이라면  

이를 모태의 배꼽인 5인 중궁으로 함에   

다시 6이 생식기가 됨이요  

7 이 번식이 되는 요소가 됨인데

이렇게 보면

인간은 원소 5 주기율 사이에서 

천상성과 지상성을 가지며 형태만 변화 시킨다는 것이 된다   

즉 물 속에 흙소가 달림과

되새김질에도 화석과 같은 것이 남아 있음과 같이 될 것이다  

이 것이 물질계 주기율적 화학성과

인간의 六根的 감각의 인식의 화학성

그리고 팔괘의 사고성을 일으키는 화학성을

삼위일체로 연결할 수 있음이니

이 것이 삼각주 섬이 흠어지면 물 속이듯

백뱅이 터지면 곧 우주의 바다에 잠기는 것이니

 

 

   四

1×1×1

1×1×1

  1×1

  1×1

    ㅡ

 

이 것이 天地人 중에 인체 우주학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 또한 원소 주기율적으로 함에

물질질적으로 화학성을 이룸에 地라고 하는 것이 되고

팔괘의 반으로 天으로 함이 있다는 것이다

1 乾天

2 兌澤

3 離火

4 震雷로서 포개어 八卦가 되는 것으로

이 것이 원소 4 주기율 까지로 하는 것이다

인간은 四 너머의 영혼이기에 머리가 四인 것이고

이는 死의 뿌리를 잔털을 털고 남은 뿌리를 감싼 형태로

여기서 목까지로 해서 四인데

그 아래 일은 다 곱해고 일이니 다 함해 5인 것으로

이로서 행위가 일어난다는 것에세 오행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4와 5 사이는 접히는 것인데

이 것이 인체의 목 부분이요

팔괘의 나무와 나무가 접붙는 지점이요

이는 원소 4 족이 5 족과 접붙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5 巽風

6 坎水

7 艮山

8 坤地로 포개지는 것인데

5 는 배이고 소화기이고 통이라는 것이고

우리가 풍 맞았다는 말은 바람도 샐 틈이 없어야 함에도 샜다는 것이 된다

6은 번식력 즉 몰고기가 직파하는 듯이 번식하는 것이고

7이 포유동물적 저장성을 말하는 것이고

8인 세포적 저장성 즉 유전형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곧 같은 동물이어도 그 유형이 다른 차이점을 나타낸다

다만 이 그림의 도표로 보면

5 너머의 하체는 다 같은 1로 붐이라는 것이 된다

여기가 괘상으로도 목인 것이고 숨인 것인데

그 위로 1,2,3,4까지는 머리요 하늘이라 할 수 있고

5 부터 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이 것이 靈을 그대로 본따 온 면이라는 것으로

四 자에는 네모난 종이에다 가리마만 그린 것 같음이요

이 것이 우리의 생각하는 머리와 같음으로서

본래 인체학적으로는 4를 빅뱅이라고 하는데

이는 나자 마자 소리부터 크게 지른다고 빅뱅이 되는 것이요

또한 숨 쉬는 5 주기율인 기관지에 붙어 4 주기율이 폭발하는 것이니

숨은 배꼽을 중심으로 양 팔다리와 목을 합함에

5 주기율적 중심을 배꼽으로 해서 편성함이 있는 것이고

그 다음이 빛이 퍼져 나가니 눈을 나중에 뜬다는 것이요

거기에 서로 호환하는 두 개의 뇌가 있으니 생각을 하는 것이요

거기에는 기울기가 있으니  그 중심을 알고 행하게 한다는 것이니

그런데 왜 머리 아래는 곱하기로 1만 되느냐

이는 이는 관절로서 움직임에

최대한 곱의 영역은 시계 침처럼 훑는다는 것에서이고

이는 등뼈로 로 세운 걸로 모든 신경이 모인다는 것이 된다

즉 하체는 움직이기에 입방체적으로 체우며

기하학적 형태로 수학성을 수용하는 것이기에

곱하기로 乘해도 하등 모자람도 넘침도 없다는 用體가 된다는 것이다

 

 

개가 불성이 있느냐?

 

개가 불성이 있느냐

이 논란은 마치 한 주기율의 두께가 얼마며

한 주기율만 벗겨도 불성인 것이 보이는 것이냐 하는

주기율이 주기율을 가리는가 하는 것이 있다

즉 3 주기율의 무게를 2 주기율만큼 무게를 줄여야

2 주기율을 알 수 있는 다른 패턴인가하는 것이 있다

이는 곧 천상 층으로 갈수록 낫다는 부처님의 말씀에 기인하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로서야 알아듣기 쉽다는 수준이

마장에 가면 불성이 없고

마들에 가면 불성이 있음은

水落山에서 受諾을 하였으니 물 한 모금이라  

도봉에서 도를 이루리니

저 천축국에서 불경을 지고 온 당나귀

인간으로 태어나 보경을 캔 절로 떠났다고 하네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비밀

 

누가 법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러니 간단히 훑어보자

제법무아라 했다 

유아독존이라 했다 

그러니 잘 들어야지 않겠는가 

부처기에 인간세 나는 것이고 

부처기에 지옥에 가는 것이다

곧 법을 내지 않고 행위가 있었다 

그 것이 부처가 아니겠는가 

병 속의 새를 끄집어 내라

이도 곧 병이 법인 것이 아니라 

질문이 법인 것이다

제법무아라 않는가 

즉 질문에 내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질문을 따르되 내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질문은 늘 일어나되 내가 없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질문에 내가 없는데 해답에 내가 있겠는가

질문이라는 것에 법은

언어를 이루어 전달하는 수식적 체계인 것인데 

이 것이 我가 아니면

거기에 따른 대답도 我가 아닌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려면 어떠한 다른 공간성을 두어야 하는데 

또한 공이 색이요 색이 공이니     

그럼 나란 어데 있는가

그럼 그져 불일 뿐이지 않겠는가

불은 무엇인가 

불은 켜졌다 꺼졌다 하는 순간의 선에 있는 것이다 

서로 유무라 칭할 수 있는 경계인 것이다 

솔직히 원소 한 주기율의 차이만 나더라도

이미 유무의 관계로 만나는 것이요

어느 것 하나 나라고 할 수 없음과 같다는 것인데 

그런데 인체와 32 상은 육도의 기를 그대로 낸다는 것이다

즉 주기율을 통털어 族의 세계로 놓은 것이라는 것인데

즉 원소 族 상으로는 서로 無인 시공계이나 

원소 주기율 상의 겹겹같은 천상 지옥할 것 없이

통털어 몸이 이루어진 것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즉 몸은 일체의 주기율을 다 포함하는 것이며 

이는 곧 육도를 다 포함하는 인연을 다해 잉태를 하면 

그 태어나는 곳은 육도가 다르듯

서로 유요 무인 관계로 선을 그어놓은 한 族 上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본래 我란 스스로의 주체성 밖의 따옴표 안의 "我"라고 할 때 

그 것을 하나의 괄호 안의 我라고 할 때 

이 我도 주기율 원소만큼의 我가 되는 것이고 

또한 어느 궤도 상의 我가 된는가 하는 차이가 있으니 

이를 제법무아가 되는 동시에 또한 제법무"아"가 되든가 

제법무<아>가 됨이라 하는 것이다

이 것이 곧 이온적 포용성을 띤

괄호 안과 같은 성분과 같음이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재법무아(諸法無我)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오천 년 묵은 나뭇잎의 생애

 

이 말은 누구든 새겨 들어볼 일이다  

오천 년 묵은 나무가 있었다

그 잎새가 하나 떨어졌다 

그 잎새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있다 

그 잎새가 그대의 손바닥이다 

그 잎새가 갈라진 것이 양 손바닥인데 

그로서 그대들의 생애가 된 것이다

즉 그 잎새가 그로 말라가며 탈수되어가는 순간의 센스가 

그대들의 생애인 것이 곧 늙어가는 것이다

 

 

응험의 초입성

 

한 때는 비디오 테이프를 놓고 

그 내용이 무엇인가를 맞히는 점을 친 적이 있는데 

무엇이든 그로 매진하면 도가 닦인다 

즉 우리가 꼭 행위하는 것을 잡는 형태가 아니라 

정한 것도 내용을 알 수 있어야 

정적일 때의 동적인 것과 동적일 때의 정점인 것으로서의 

유기성의 합을 잘 관찰하여야 하는 것인데

어느 쪽이든 그 학문의 연계성은 전차와 같이 통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일상생활의 부피성이 슈퍼컴퓨터라고 할 때

실제 이런 용량이 나노급으로 간다고 해도 그리 먼 차원도 아니고 

옛 도인들도 과학과 거리가 멀다고 해도 

누누해 강조하는 것이 티끌 하나에서 부터 일어나는 것이라 했다

실제 이 나노를 넘어서도 이런 녹화성이 있느냐 

아니면 나노 안에 영적으로 읽을 수 있느냐 

즉 영혼이 우리가 잡을 수 있는 원소성까지에서

원소성일 수 있느냐의 경계를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인 데에 

타당한 이치와 먼 이야기도 아니다

나무 잎새 하나의 두께와 원소 한 주기율의 두께는

어떻게 되는 측정치의 동율 선상인가

우리가 행태를 잡고 정점으로의 수치와 

정점인 것에서 행태 상으로 나타내는 수치를 

어느 한족을 보더라도 그 귀결점을 아는 것인데

이는 곧 영혼이라는 것이 원소성 안인가 밖인가

기준점이 될 요소가 될 수 있음이 어데인가인데 

이는 곧 원자 선에서 영혼에 드는 것인가 

힉스 입자 선에서 영혼의 원소와 맞물리는가하는 것으로 

이느 곧 주역과 원소 주기율을 함께 취용하며 

그 원소에 든 녹화 테이프와 같이 내용을 밝히면 되는 것이다 

이 것 또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니 

우리나라의 응용 부분의 뛰어난 약 삭빠른 속셈으로는 

그렇게 너그롭게 보아주지 못할 기초 물리학적인 것이지만 

물리학적 시각의 긴 시간이 소요되는 인내력이라면 

그렇게 밝혀지지 못할 이론은 아닌 것이다    

 

 

안통과 이통의 과학적 이기

 

요즘 과학의 최첨단이라는 것이라면 

너나 없이 남의 말은 귀에 안 들어오는 

아예 철문과 같은 이어폰을 꼿는 저 것도 

안통과에 속하는 것인데 이통보다는 못 한 것이다만

그런데 과거에 라디오만 들어도 큰 부자와 같았던 

이통은 퇴물인 냥 밀려나고 말았는데 

난 여기서 참으로 성철 스님의 말씀이 대단하시단 걸 느낀다 

즉 풀잎에도 야차가 난다는 말씀이다

즉 이를 볼 수 있는 안목은 

큰 도가 아니면 절대 과히 말할 수 없는 말씀이다

앞으로 잎새 하나에 한 인생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잎새 하나에 만 년 묵은 나무의 일생을 들을 것이다 

즉 잎새에 레시바를 꽂고 

엣 시절에 라디오를 듣 듯 눈 감고 모자란듯이 살아도

이 스마트폰의 안통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소통이 있을 것이다

이는 곧 원소 한 주기율 상으로 안통이 대단한 듯이 살아도 

다른 주기율 상으로는 이통보다 못 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 

우리가 의식하는 범주라는 것이다       

 

 

여의도는 무소의 뿔

 

한강물의 도도함이 수치로는 어떠한가는 

얼마나 한강물이 심술궂기에 

여의도가 너! 너! 해대는데

조타실에 앉은 국회의사당은

그냥 너! 너! 기세겠는감

다 그럴만 하지요 

한강물의 도도함이 워낙 그런지라 

그렇다고 너! 너!가 심하면 안 되니 

그냥 뒤로 모르듯이 乾宮으로 빠지는 말들

뒤로 새깨 줄 빠지듯 빠지는 물결 

그래도 하나로 뭉쳐 빠졌으니 결재는 해달라는 것이니

참 얌순한 백성이면서 도도하지요?

그러니 너무 너! 너!하면 너무 심하잖우?

그래서 그 기를 얌순씨로 만들려니 

꺼떡 들린 앞 머리를 눌러야 하는데 

그런데 그 이물에 바위 몇 개 얹는다고 되는감유

그렇다고 가라앉게는 할 수 없는 것이구

그 누르는 묘안이

63 빌딜을 얹고서 겨우 순해졌다고 하니 

그래도 너무 밉상으로 보지 마슈 

다 저 한강물의 기상 때문이라니까유

그러니 육삼빌딩 그냥 마네킹으로 보지 말란께유 

저 것이 그래도 무소의 뿔처럼 들이민다니까유

 

 

밤섬 

 

밤섬이라고 하니 

정말 밤인 줄 아는가 보이 

역시 詩的 센스를 모르는구만

저 밤섬이 아니라 낮섬인 것이지 

저기다 코팅을 해버리면 낯섬인 것이고 

그런데 왜 밤섬인 것이냐 

낮인데도 낯인 것이 인생이요 

밤인 데도 낯인 것이 오작교를 넘듯

낮인데도 낯인 것에 

내 님의 머릿결처럼 부드러운 듯이 흘러가는 

그리어 님의 얼굴을 희미해져 가도

그 며릿결의 향기는 왜 그리 살아 흘러가는지

그리어! 그 것은 밤의 향기와 같으니 밤섬이유

 

 

엄메와 자갈

 

쟁기의 미소와 호미의 미소는 다르지

덩치는 황소만해가지고서는 다 큰 것이

음메~! 엄메~!

가잘밭 메는 어미 손은 자갈자갈

어제 품앗이 밭에서 들은 말들이 꽉 깔려버린 듯이 

섞이면 섞이는 대로 그렇게 메는 삶

다 가슴 한구석의 결석이 되지 않는 삶이길 

스스로 병이 되질 않길 바라는 생애의 미소가 

엄메! 도 자갈자갈 재잘재잘   

 

 

기호학 

 

모든 것이 멈춰 서면 서는 대로 썩는 것이라고 

ㅅ이 두 개 모여도 썩소 

전에 잘 맨 밭도 다시 호미질이라 

ㄱ인 호미가 또 가도 섞소

 

 

까치산 아틀란티스 

 

에스컬레이터도 엉큼하게 

나무를 곧장 타고 오르는 것같은 욕심

이 건 또 무언거여! 

까치산이 땅 속에 묻혔는감?

어찌 저 꼭대기 우덤지같이 처다보게 하는 게

내 적외선 시야가 흐려져 버린 겨?

어찌 알이 전등 불빛처럼 흐릿흐릿하단겨?

그런데 저거 까치집은 맞는 것같은디 

영 시력 잃고서는

알이 전등 빛으로 밖에 안 보이는디

그래도 보푸라기처럼 살갑게 살인 것 같은디 

어째 깨어져 버린겨? 

아녀! 깨진 것이 아니여! 

살살 살살 침이 왜 이리 꿀꺽 넘어가냐 

 

 

제법무아와 인간세법

 

인간이 만든 법은 신적인 것이냐 인간적인 것이냐 

법은 식적인 것이 

인간이 법을 만들어도 일간적일 수 없을 만치 

인간은 법을 만들고도 법과 먼 속성들로 해서 

하나의 나비 현상에서 폭풍을 몰고 오는 것이다

즉 사소한 인간적 관례라는 것이 지나쳐 

결국 혁명의 시간까지 몰리고 보는 것이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도전이라고 보면 아예 탐욕적이다 

즉 경법재조차도 없으면 일상적라고 보지면 

그 것도 무감각 하다보면 공분을 만들기 마련이다 

인간이 법을 만들었다고 해서 인간적인 것이고 

인간적 한게로 규정지을 수 없다 

법은 신성한 것이고 신적이다

그러나 인간적 한계로서 법을 자아로 만드는 것이다 

즉 법 자체는 신성한 것이나

인간으로서 제법무아의 경지까지

평등성을 유지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신적일 수 없는 법 집행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제도에 까지 묶어 놓으면 무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걸 푸는 방법은 

업을 과연 제도 상으로 풀 수 있는 명확한 시스템이 있는가 이다

그러면 인간세가 한 층 진화하는 것인데

허나 만일 푸는 시스템이 있다면

이 업이란 불길과 같이 급한 것들이리라

그러니 급한 불부터 끄야지 않는가 하는 것이고 

급한 불을 끄고 보니

이미 기존의 영적 시스템이 온당하더란 것이 되고 말 것이니

그 과정도 못 견뎌  끄지기 전에 더 발광을 하는 것이니 

불난 집에 꺼내러고 사탕을 주고 유혹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물한 모금의 사색

 

우주에는 잘린 나이테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이니

이 것이 호수의 물결이라는 것과 같음이라

이 물을 마시면 무한 복사가 일어남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역의 순서대로 4까지로 호수인 것인데 

여기에 빠지면 5로부터 접목이 되어 대칭이 일어나는데 

이로서 8 가지의 대칭으로 반물질과의 대칭이 됨과 같다 

본래 호수의 물을 마셨다는 것은

원소 주기율 상이나 괘상이나 그 대칭성을 마셨다는 것인데

이는 이목구비의 터전이

호수라는 얼굴에서 두 개씩 있다는 대칭성인데 

좀 더 역발상적으로 보자면 

이 물을 마심으로서

도리어 호수가 바라본 신의 몸의 구석구석을 복사하여 일어났다는 것이 된다

이 것이 곧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은 도솔천에 있는 것이니 

세상에 내려오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 것이 진신과 보신과 화신의 절차성과 같은 것이다       

 

 

금단(金丹)이란

 

전 금단이란 걸 잘 모르는데유

그저 성분학적으로보면 청분과 헤모글로빈과 같은 것인데유 

아마 금속성을 예기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피를 충분히 취해야 장구함을 뜻하는데유 

이 글귀를 꼭 영생을 뜻한다고 진시황처럼 날 뛸 것이 아니구유

잘 먹고 잘 싸야 오래 사는 것이니 건강에 신경을 쓰라는 것이지유

그로 보면 우리의 섭생에 금과 옥조를 보자면 말이쥬    

저 무를 뱉는 무우 도사는 말이쥬

영 남자인지 여자인지 하지만유

그런데 무우는 바림들면 그로 버리는 것이쥬

즉 우리가 입으로 먹어도 그런 것을

어차피 인생은 거품 속 바람이니

바람들면 맞이 가는 듯이 하는 데유 

어쩜우리는 맞 간 무우를 또 겨우 무우로 

무를 채우면서 지기 속은 바람 안 든 무우인 듯이 하지유

그런데 전 영 배추도사 띠가 난다니까유 

첫째가 고갱이에서 피워서 겉잎 까지 

둘 다 겉은 하나같이 시래기 국면이 되니 

아마도 이 국면을 두고 국이라고 했는지 모르지유

그런데 거기에 원소 주기율이 괄괘의 주기율의 잎새로 

알통이 있기도 우기니

에이! 그러면 배추도사나 해먹고 살아라는 것이니 말이유

모르쥬 이 것도 저 것 보기 싫다고 고춧가루 뿌려 숨죽이는 데유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이 그렇게 죽여놓고도 입에는 넣을 것이고 보면 

김치니 금치니 하고 만다니까유 

무엇이 금단인감유 이 것이 금단이라니까유 

無 에 배추(背追)에 고춧가루 말이쥬 

고춧가루 말인가유?

인간 말 만 마디 맵지 않는 것이 있는감유

 

 

부처가 울타리인데 무얼?

 

돌대가리가 아닌 다음에야       

내 그 뜻을 알지

부처를 오게 해야 부처인 것이지 

중생을 오게 하면 그게 부처인가 

부처도 급수가 있다는 것이 아니겠나

다 부처인 것인데

부처 건드려봐야 네만 중생이 된다는 것이 아니겠나

그러도 중생이 승이 되니 이해는 한다는 것이 아니겠나

그러니 다 마음도 급수가 있다 이거지? 

 

 

한담

 

우리가 산 중 한담을 한다고 보면 

이런 대화를 종종한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 문을 세차게 덜컹 치는 것을 들었는데 

나도 소강절 흉내를 내본다고

앞으로 손님이 어떠한 일로 물으려 올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곁에 계신 스님이 

그 건 손님이 오는 것이 아니라 전화로 올 것이라고 한다 

정말 기막히게 그 일로 전화가 온 것이다

본래 이 스님은 이판 스님으로 주역과는 흉내 정도인데

종종 놀랍게 하시는 분인데 

본래 이 일이 있기 얼마 전에 그 스님과 동네 분들과 마을 어구에서

한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 얘기 도중에

까치 한 마리가 공중에서 날아오는 게 참 기이하단 생각이 들더구만유

마른 나뭇가지를 물고 오더니

바로 머리 위 전봇대에 앉아 뚝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감유

그 때도 소강절 선생님의 흉내를 좀 내었는데

점이란 것이 틀리게도 보는  것이라  알고도 함부로 말을 못하는 것인데

그냥 입 다물고 시내에 볼 일 보러간다는 분들을 보내고 돌아 왔는데

그 때 스님에게

아마 저 분들이 버스 안에서 남과 시비를 붙어 된통 싸움이 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의심이 나는 것은

그 분들은 나이가 있으시고 점잔은 분이라 결코 일어날 것같지 않다는 것이 었는데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날 저녁 뉴스에 

어느 미친 자가 버스 승객을 인질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는데

솔직히 내게는 점이 자꾸 그런 식으로

실속도 없는 거리를 두고 있었기에 

그래서 난 이 길도 공허한 길이요 

배도 채우기 바쁜데 돈도 안 되는 먼 것들만 보이는지라  

찌기 접길 바라는 마음에서 승도를 택한 것인데 

이 걸 접음으로서 다른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 글을 잡은 것인데 

이 글이란 것도 

그 취지는 단편은 힘이 있는데 장편은 엘리어트같은 시여도 

허무에 빠지고 평이해 지는 것이지

사실적이면서도 베토벤 교향곡처럼 힘을 못 느꼈기에

한 번 쯤 도전할만하다고 해서 글을 잡은 것이지

묻이 문장력이 낫다고 글을 쓴 것도 아니고 습작처럼 시작한 것인데

그러다 어느 순간에 

문제는 수행이란 것이 그리 낭만적이고 부드러움의 소치가 아니라 

화두의 깨우침이란 치열하다는 것을 얘기한다는 것이

마치 남에 시비나 거는 듯이 몰려가는 데서 나도 이미 거리를 두었는데

그 것도 어데 인연 밖이라 멀리 되는 것이든가

 

 

우리나라 말은 이물로 시작하여 고물로 끝난다

 

우리나라 말은 배 한 척 탄 것처럼하면 되는 것인데 

이는 이에서 출발하여 고로 끝나는 것인데

곧 ~이 ~하고로 끝나는 것이고 이 고로 받아주지 않으면 

다로 끝나는 데 곧 바다로 빠진다는 것이다 

즉 하다는 고가 받지 않는 바다가 받는 것이라 하다가 된다 

이는 바를 다 받은 바다에서

바는 물이요 다는 그릇과 같음을 바다라 함에   

이물로 시작해서 고물로 끝나는 괄호 안의 것으로 

유람이기도 하고 요람이기도 한 것이다  

 

 

조건과 상대성과의 거리

 

누군가 업은 무엇이 다른 것입니까 하는 것인데

그야 간단한 설명이다 

즉 어떤 물건을 몇 배라도 사주면 깍듯이 대하는 것이고 

싸구려로 싸면 대충 넘어가는 듯이 하는 것이다 

이 것이 서비스업이기 때문이다

즉 업을 뺀 서비스가 그러하다면 업은 안 되는 것이지 않는가

누군 복도 까먹으면 없는 것이라고 한다 

즉 그와 같은 것이다 

선악도 없듯이 복도 없는 기준점이 있다 

그 기준점에서 평정이 되어야 마음이 자신의 마음일 수도 있다 

즉 복이나 업도 어느 점상으로 복이 되고 업이 되지만 

다 풀어헤쳐지고 나면 조건도 상대적으로 와진 것이라는 것이다

 

 

공과 색적 큐비점

 

공과 색을 가장 잘 나타내는 큐비즘이 이 창(倉) 字인데 

왜냐하면 이 창 자는 창고를 뜻하는 수용성이다 

갑자기 들이 닥쳐도 묵묵히 받아 줄 창이요

바다와 같음이요

그러면서 연민같은 것이 있음이지 영어로도 불루인 것이요 

슬퍼함이 있다는 것이니 

물건 뿐만 아니라 마음도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것에서 

이 ㅁ이 든 것이 네모난 돌이기도 하고

그냥 공이기도 하다는 것이니

이 것을 꿀꺽 삼키고 보면 食이라는 자가 되는데 

그래도 입 안에 있고 숨이 될 대는 倉이요 

삼켜 목에 교환됨이 食자로 변함과 같은 것이니

 

 

日과 月

 

날 日이 꼬리를 달면 달 月

날 日인 배가 관골을 열면 달 月

日은 다리가 없는 또아리 뱀 

月은 다리가 있는 龍

아이야!

넌 저 달이 허락해서 왔지

또한 저 달은 원소 주기율에서 찾아야 해

그래서 용은

램프의 거인이 되었다가 다시 램프로 들지

그러기 위해서는 무한 연습을 하지

처음에는 수퍼컴퓨터처럼 광합성을 팔아

수명을 거래하지 

그러다가 나아지면 몸에 징길 수 있을 만치 부착하여 

광합성을 하지 

그러다 인간은 스스로 광합성하도록 개조를 하지 

그러면 만 년 목은 나무가 있는듯이 만 년을 사는데 

그런데 동물들이란 것은 사악해

그래서 명을 줄일 수 있는 없고

그렇다고 전쟁만으로 능사도 못 되고

결국 생각을 못 줄이고 행동 반경을 줄였지 

모두 다 결가부좌로 있어도 자유로운 것이 된

동물의 식물적 퇴화 

마치 육지 동물인 고래가 다시 바다로 가듯이

月은 나무의 가지처럼 나 수명이듯이 가도 만 년

日은 사막의 선인장처럼이어도 신선이라고 선인장

아이야 너도 저 달이 허락하여 왔나니       

 

 

주역도 학문이라 왕도는 없다

 

우리가 주역이라는 것도

처음에는 슈퍼컴퓨터만큼 덩치적 집중만큼의 신과의 대화 수준이 

불가능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계속 늘면 나노급으로 간편히 대화의 수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다만 이는 논리와 치중성에 거부감이 없어야 하고 

무념 무상도 깊어야 하고 

의식이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

이는 곧 무를 유로 

유를 무로 대화할 수 있는 

서로의 깊이로서 번역할 수 있는 수준의 노력이 되어야 하고 

다른 나라 말을 옮기듯이

양극적 위치를 보고 이어 붙어야 하는 의식의 수준인 것이지 

무조건 하나라는 것은 그 하나로 아는 수준으로서는 얇다는 것이다  

지구 상에 한국과 미국은 같이 있다는 것으로 

꽤나 통큰 소리나 거창하게 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의식이라는 것을 너무 단순히 봐서 안 되는 것은 

내게는 곁눈질만해도 이미 의식이 닫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라

눈길 돌릴 틈이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주역이라는 응험이

의식성으로는 슈퍼컴퓨터처럼 걸러내는 투석 기계와 같은 혈류라면

더욱 작게 해도 효율성을 크게 하듯 영감의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에서   

나중에는 나노급의 컴퓨터와 같은 것이 되니

그만큼 의식도 정밀화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한다

다 그런 노력도 못 하는 자가 기적이니 뭐니 너무 남발하는 것이다                      

    

 

영과 분석학적 접근

 

우리가 통(通)하는 해결점에 있어

원소 3 주기율이 허공계의 응결이라고 

이목구비 구멍마다 응결이 되어 이통 안통이 나오듯이 

그  3 주기율적 원소의 구성만으로

천안통(天眼通)이 되는 것이고 

과연 원소 6 주기율이 차야 천이통(天耳通)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과의

주기율적 방향의 그래프와

원소 3 주기율 내에서 이목구비 다 드는 것이니 

족 방향으로 뻗혀 이목구비를 다 했다고 할 것인가와 

족의 평행선만으로 천통이 다 이루어 질 수 있는 메카니즘인가와 

주기울 방향의 두께로 겹겹의 층을 관통하는 것인가 하는 것 

그럼 원소 족 상으로는 인간 육통이 되는 것도 

주기율 적으로 관통을 해야 天通이 되는가의 차이를 밝혀야 하는 과제가 있다

또한 引力 上으로 주기율이 높을 수록 강하게 끌어 당긴다고 할 때 

원소 3 주기율은 빛처럼 가벼운 것을 취용을 하고

실제 빛은 사라져 나타나는 형상으로 허공의 가벼움을 취하고 

실제 눈은 火라고 하나 목계(木係)로 봄이 타당한데

이는 빛의 무게인 원소 3 주기율을 

4 주기율인 눈이 감당하게 되는 것으로

나무의 새순을 눈이 난다는 것은

광합성의 취지와도 맞게 받아들인다는 것도 된다    

원소 6 주기율은 무거운 5주기율을 취용할 수 있어 

소리를 취용하는 것 

즉 소리는 4 주기율인데 대기권의 저항에 의한 울림의 파장이니 

결국 5  주기율까지의 무게는

원소 6 주기율의 무게인 귀가 감당하며 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새는가

 

무엇이 새는가 

무(舞)에 無가 이즈러지는 천(舛)인가

實이 이즈러져 無이니 그 사이가 舞인가  

無에서 나와 사람이 舞인가 

사람이 이즈러짐이 아니니 舞인가 

무와 사람 간에 이즈러짐이 무엇이며 

무가 허물어져 사람이 됨에 유여서 舞인가

사람이 이즈러져 무가 딤에 무인가

무유 간에 서로

이즈러짐 사이가 스타게이트같아

사람이 됨이요 영혼이 됨인가 

무와 천 사이에 火가 없으니 사람의 춤이라 

오우! 빅보이! 너희들은 인간미 

만일 火를 떼지 못한 舞이면 

땜질 자국이 있는 로봇 춤

 

 

인체의 우주과 물질계와의 인식적 정복

 

우리가 얼굴을 4 차원까지로 할 때

목 아래 몸 전체를 1로 해서 더함에 5 주기율이 됨에

이렇게 5 주기율이 되면

이는 즉 바람의 농도 

즉 대기의 질감과 같은 차원의 그림자적 두께로 사물이 된 시공에서 

생물이 일어난다는 것이 되는데 

왜 그러냐 하면 

어느 회절이나 파고성이

그 두께의 응결성만으로 그림자적 반향물이라고 할 때

공기와 물의 농도만큼이나 그림자의 두게 현상이 달이 나타난다 할 때 

시공적 차원의 사물성이 이뤄진다고 할 때

실로 이 지구만의 인체상으로보면

대기권만으로 배꼽이 되는 것에서

5 주기율성의 잉태를 나타낼 수 있는데 

이는 이미 토성이라는 원소 7 주기율에 

족적으로 비유적 현상의 소품 정도로 드러닐 수 있음도 된다 것에 있다면

어미 이 대기권적 사실의 비유품이라면 

5인 시공성은 

5인 힉스입자의 피부감각적 시공에 센스로 이야기됨과 같은 것이다

이 것이 결국 족 상이나 주기율 상으로 동질성을 구가하는 것에 있어 

대소의 차이 뿐이라고 할 때

어떤 시공이든 임상성은 다르다고 할 수 없음이 되는 것이고

어떤 대소 간에도   

다시 배꼽을 중심으로

이목구비의 역할을 하게 함이 있는데 

이 것이 오장이라는 내재성으로 그 역할을 하게 하면

 원소 5 주기율부터는 오행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되는데

여기에 꼬리를 더햐여 6 주기율이요 

水가 생식의 능력이기 때문에 대량의 방정이 되는 것이 되고 

7 주기율이면

붕알처럼 무게를 더해 폭발성을 갖는 것과 같다 봐야 할 것이다  

이를 좀 더 짙은 농도에서 그림자를 띄게 하는 것이 

물에서 생명이 본뜨게 히서 탄생으로 가르며 나오듯이 하는 것 

이는 마치 주기율 두께의 피부막의 자궁으로 

그림자의 벽을 차고 나오는 것이 입체상의 벽 안에서 나오는 것일 뿐 

입체적 물성이 된 시공성의 몸을 차고 나오는 것

이는 수생생물이 물을 살로 태어남에 6 차원으로 하면 

원소 6 주기율의 시공성이 모든 태생으 ㅣ금본이 되는 농도성이라는 것인데 

그 것은 수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수의 시공에서 볼 때 거기서 부터라는 것이지 

화의 시공에서 보면 

불이 새처럼 화해 일어나는 현상을 볼 수 있음이라 하는데

이는 5인 토의 기반성이 아니면 

3과 6인 접히는 것이기에

물고기 알같음도 새처럼 부화하여 날 수 있다는 개연성이 일어나는 것이고

5 로서 접히면 4와 9로 접히기에 음양이 다를 뿐 같은 오행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즉 그림자적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즉 이는 유리에 흙을 대 주어야 그림자가 일어나듯 

모든 사물이 어떤

시공계에 일어나더라도 똑 같이 형상을 틴다는 것이 되니

이는 곧 욕, 색계와 무색계에서 어는 천상에 태어나더라도 

사물적 영상은 같다는 것이 된다 

즉 태양이 어덯게 돌고 어느 갤럭시에 도는가와는 

다른 시각적 차원에서 공유성을 띤다는 것인데 

어느 시공성에 가더라도 그런 인식의 잠재성은 

다른 파장성의 두께로 조형 되어도 의식을 흐름을 

일관되게 할 수 있는 섭리를 쥘 수 있음과 같다 

이 것이 업의 질기기와 질감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 부처님의 도는 

이는 무엇보다 상대적이기 전에 서로 흡수하는 열락이기 때문에 

극과 극이어서 충돌일 것이 못 된다는 것인데 

이는 4와 사로 접히는 괘상의 섭리는 부처 상이 되는 것이고 

5와 5가 접히는 상은 개체적으로 낳거나 

마치 외곽적 띠에서 

즉 5인 토로서 모체이거나 땅이라는 것에 심어져

즉 이 것이 구심적 땅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원심적으로 에워싼 외곽의 한 점인 냥 

옷을 입은 채 뚝 떨어지듯도 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하늘에서 떨어져도 모태성의 땅인 것이니 

이렇게 합해서 5로서 벽을 함에 무색계까지로 함에 

무슨 인과이든 같은 오행 상으로 벗어남이 벗이음양으로 찍히는 것이니

이는 9 양금  4음금이듯이 세겨들 듯이 한다는 것이다

즉 3 火요 6 水로 극과 극을 완전 깍지 끼듯이 달려버리면 

오직 희열일 뿐이라는 것의

부처님의 도와는 한 끗 차이와도 같다는 것인데

결국 이 5 라는 토에 중심이 될 때 육도 중생이 된다는 것이고 

수미산 하나가 인간의 등뼈 하나와 같다는 것이 된다

 

 

원소 주기율 간의 시공성

 

우리가 빛의 광년으로 소리의 벽을 다 갉아 먹는다고 해도 

수미산 하나를 벗기는 것같은데 

즉 소리의 벽의 물질로 광년으로 넓히는데

무한 광년적 넓이가 나는 것이니

빛이 깨어도 깨지지 않아 그림자인 것이라기 보다 

끌어도 끌어도 그림자의 무게라는 것이니 

그림자가 무게인 것인데 

즉 빛이 3 주기율적 말이라면 

그림자는 나무로 바구니라고 할 때

소리의 회절성이

결국 수레와 같은 그림자를 당겨감과 같은 것이다

결국 원소 3 주기율과 4 주기율 차이에는

눈 깝박보다 빠른 사이에 저 허공이지만

그 물질성과 공간의 넓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고 

이 것이 나름대로 질서  속에 있다는 것 

이 것을 이미

부처님 시대에서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워 해야 할 것이다

 

 

말과 수레

 

우린 과연 어디에 속해야 바른 부속품이라고 할 것인가

우리가 자연 법칙으로 보면 

정치와 사회성은 박스 같은 것에 바퀴를 달아주는 것이면 

공인은 스스로 타이어처럼 헌신할 줄 알아야 한다 

그 것이 건은 통치요 둥근 것이라는 것인데

곤은  그릇인 것인데 이를 잘 구르게 하는 것이 건이다 

내가 남을 끌고 남이 나를 끈다고 생각 마라

수레 자체가 관리와 백성이 함께 물린 것이요 

끌고 가는 것은 전혀 다른 주인공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구원은 없다

 

부처님에 대해서 구원이 없다고 말씀하셨다고요?

그럼요 있을 리 만무하지요

저도 천상에 옥황상제의 백성인데 말이죠

그러니 얼마나 상제님이 안타까워 하시는데요

그런데 도와주고 싶어도 못 도와 주는 것이

부처님 눈치 보여서라나 뭐라나

그러니 완전히 잡아먹을 것은 따로 있는 것이죠 뭐

저야 굳이 철없는 자식일  뿐이라 해야 하나요?

파도처럼 춤을 추며 일어난 것이

부처님 잣대라는 것은 천하로 봐야 한다고

다시 재는데 말이죠

그 기세 좋던 파고도

완전 사지 쭉 뻗듯이 뻗어버리면 평정이 되었다 하는데요

그 사이 파고가 수제비 뜬 냥 가라앉다보면

그로부터 물 아래서 날 찾는다고 하다가 보면 

완전 생각의 량만큼이나

어찌 물고기 새끼치듯이 피는 것을 보면

완전 아직도 그 수제비가 나르는 것인데요 

확실이 물의 수제비인 것이 돌을 어떻게 먹었는지

어미가 세끼를 치면

또 빅뱅 

또 치면 빅뱅

태양 하나 안 박힌 꼬리 없이 빅뱅이 일어나는데유 

심장이 있는 원동력은 언제나 번식의 빅뱅이 일어나는 것이니    

그렇다고 해도 할 수 없죠  뭐

늘 부처를 베니 조사를 베니 하다 

또 잠자듯 꿈나라로 간 듯이 하니 말이죠   

 

 

인체학적 인식의 유지성과 신적 우주를 끌어들이는 주역

 

우리가 원소 5 주기율이 대기권이라면 

원소 6 주기율이 바다인 것이고 

원소 7 주기율이 결국 해저의 땅이라면 

이  흙소가 행성적 돌진인가 하는 것이 있고 

원소 4 주기율은

대기권은 없어도 천둥은 있다고 봐야하고

이 것은 혹성 밖에서도 일어나는 요소를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먼저 육체적 인식의 범주를 명확히 해 놓고서야

좀 더 괘사적 효사적인 형성의 메카니즘이 

나름의 성분성으로 어떤 궤변성마져 이뤄간 데서 일어나는

즉 이것은 이렇게 가설적으로 한다는 든가

설정성으로 한다는 것으로만 나타낼 수 있음에도 

그리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늘 한결같이 일어난다는 것으로 변함이 없고 가설일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연결성을 

마치 아인쉬타인의 이론을 심 년이든 백 년이든 관심을 놓지 않고 

입증하려 하듯이 

나의 이러한 논리는 지금 그대로 인정을 하여 

그 타당성의 방정을 드러내는 데도 

오히려 아인쉬타인의 법칙보다 더 긴 세월을 요할 수도 있는데 

단박으로 맞아들면 꿈이 깨는 듯이 할 이유도 없는 것으로     

성격의 무형의 변화을 그래프가 그릴 수 있듯

허공적으로 일으킬 수 있음에 물질이듯

즉 그래프란 넝쿨같은 의지에서 일어나는 인식 안이라면

사물은 나무처럼 스스로 일어서는 그래프적 발표임에도 

아마 우리만이 상과 모양에만 치우치다 지고 마는 듯이 하는  

물질이 그래프이듯

어떤 형상을 이루어내어도

그래프적 인식의 공통성을 그릴 수 있는 표현 방법을 구축할 수 있는 것으로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인체의 인식만으로 영혼과 물질의 동일적 변화에 일어남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부활

 

부처님도 처음에 인간 구제할 것이 못 된다고 돌아섰다고 한다 

그러나 제자들이 간곡히 사정을 하니 다시 돌아봤다는 것이니 

그래도 부처님의 미소는 살아 계신 명품 

나야 부처가 못 되니 돌아서면 다시 돌아설 일까지야 욕심을 내랴

돌아 서니 

돌이 되고 

돌이 되고

온 것도 없도 간 것도 없네

 

 

온전히 올라갔어야 하는 것

 

조주 스님의 짚신은 제 몸을 신겼다 

다시 제 머리에 올렸다 

우주는 남전참묘처럼 붉고

왜 온전히 들어 못 올린 것이기에 

이직도 말 많은 육도에 시끄러움 중생이니

잘린 그루터기에 세끼 손가락이 난다

 

 

하늘과 빅뱅 사이

 

별이 흩어져 밤 하늘인 것

밤 톨 떨어지기 전에 밤도 아닌 것 

왜 우주를 통털면 겨우 밤 세 톨인가

본래 우주의 순리는 4와 4로 접히는 팔괘적 순리이니

결국 3인 火 밤송이가  나무로서 제 세끼를 다 쳐야 

6인 水인 것에 촘촘이 사는 불고기같은 별이라

 

 

빛을 벗기면 비라

 

빛이 밤톨이니 

축포처럼 터져 하늘에 박힐 때만 하더라도 

빛일 뿐이었는데 

오! 비였구나 

인생사 쥐나는 세상이어도

프리마  녹는 시간이길

그대들이여! 

연인들이여! 

그렇게라도 사르르 노는 대화가 아니면 어떻게 견디리 

일자로 뻗은 버드나무만 버드가 아니리 

그 끝은 꿈의 고향

허나 수양버들이 진정한 고향이었는지 모를 

어쩜 빛이 비였는지 모를 프리마 녹는 계절

 

 

인연의 견고성

 

내게 너무 

알마나 출세에 사무쳤으면 그렇게까지라도 하느냐고 빗대질 마라  

이 고행은 의식이 늘 깨어 있어야 함의 촌각의 싸움이다

돌아보고 싶지도 않을만치

한 순간이라도 돌아서면 남인 듯이 할 것이라 

더 원망 썩여가면서도 서로 가는 길인 것이다

그대들은 네게 손가락질하면서 과연   

내 한 바퀴 올 동안 그대들은 수 십 바퀴가 금이 간 것으로 

다 할 수 있음이든가

그럼 영생이지!

우리 이렇게 인연된 것만으로

내생이라도 얼마나 두첩게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지 

인생을 잘 못 살았으니 하면서 남의 진실성마져 외면하다만 

아무리 짝퉁 놀음을 잘해도 다 흩어질 인연이니

학문이나 깨달음 또한 그러 할 것이니

 

 

누가 뭐라나! 다 제 스스로 공염불인 것이여

 

어느 분은 사주구조로 점을 보시는 분이 있는데

사주는 본래 점술보다도 고도의 학문에 속하는 것으로

그 구조는 건축학보다도 더 주변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 

그 설정성도 공학적 유기성을 갖고 배분력도 뛰어나다    

보통 사주학은 다른 학문보다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하는

매우 경험성도 많은 노하우가 있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그 통달로 보는 것에는 그 정확성과 속도성을 따지기 전에

일시비법보다는 심오한 내면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는데

이 것을 점상으로 볼 때

우리에게 사주는 운명을 논하기 앞서

매우 환경적 메카니즘의총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木을 日干으로 하면 火가 食傷으로 자식이 되는데

印受가 없고 오직 식신만이 있을 경우

어떤 사고가 났을 경우 그 주변 환경부터 감지를 해야 하는데

일시 비법의 편린성이

이러한 사주의 전반성과 다른 것이라면

결국 신은 빙의 정도에서 드러날 뿐

더 이상의 학문성은 없다는 것이 되는데

결국 학문으로 신에 도달할 수 없는 개재가 생기는 것인데

결코 그런 일은 앖을 것이다

그 것은 사주학이 그 주변성의 조화를 맞추어 일으키는 圖上과 같은 것이

다른 학문보다 탁월함이 있기 때문인데

과학적으로 보더라고 주면과의 상호성을 잘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하나 긴 통로에 사고가 날 것이라면

먼저 연소성과 산소 결핍증 재질 등인데

다만 이  유동성을 어떻게 대입에 위치가 선정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

마치 운동 에너지가 위치 에너지로 화하는 매카니즘을 찾는 것과 같다

즉 木이 兄인 것이나

木이 財星인 경우에

財가 化官이 되어 兄을 극하면 절명이 되는 것과

兄이 의지가 없는 기반으로서 절명이 되는 것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인데

먼저 화관의 극은 화재인 경우 

재질의 독극성으로 사망할 수 있으며 

그대로 형으로서의 산화는 산소 결핍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결함을 보충하는 데는 

이런 정밀성이 아니면 마냥 조심하시오에서 끝나는 것이다    

인간 자체의 결핍으로 세기되는 것의 차이점을 명확히 하면

사건의 정황을 짐작하는데 그리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아니다

또한 육효 상으로 목이 공망으로서의 사망이며

질식사이지 화염으로 탔기 때문이 아닌 것이고 인 

목이 공망인 것에서 화가 달동을 해도 질식사일 경우다

우리가 목생화이니 무조건 볼에 타는 현상이라고 하기에는

그 것이 안 맞는 것은 이치가 안 맞는 것이 아니라

그 취용의 범위가 매우 넓다는 데 있는 것이지

그 패펀까지 안 맞다 할 수 없는 것인데

다 학문도 인연이 박한 자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맞니 안 맞니 하다 딴에는 일가견이 있느니 해도 다 공염불인 것이다

 

 

힘! 역시 창조의 힘은 섹시함을 좋아하는 것이여

 

우리 시대 때만해도 대화가 없는 시대라고 했다

요즘엔 눈빛이 없는 시대요 시선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참 신기하게도 과장할 필요 없이 

열이면 여덟아홉은 앉자마자 스마트폰 보기 바쁘다

우리시대 때만해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고 했다

그러나 요즘에 앞에 있어도 서로가 개밥에 도토리같을 뿐이다 

서로가 자리 하나 놓고 눈치보는 인간관계일 뿐이다 

그런데 어느 공원인가 연인 끼리 눈을 마주치고는 뗄 줄을 모른다 

누가 보든 말든, 

그리어 신이 섹슈얼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 했지

그래라도 붙지 않으면 큰일 날 역사였지

세상사 어찌 이 부분에서 신이 새삼스러운 것인지 참

 

 

업은 그대가 부처여서 거기에 있는 것이여!

 

그리어! 모두가 부처인 것이여 

부처 아닌 사람이 있는감

그러니 부처를 지옥에서 볼 것이요 

성철도 지옥에서 볼 것이여!

산 부처를 본 것이거늘 

죽어 부처를 못 봤다 못하겟구나 

부처가 지옥이라는데 

어느 덧 지옥이 부처라는구나

그리어 업은 그대가 부처여서 거기에 있는 것이여!

 

 

원소 8 족의 성숙도

 

전에 말했 듯이 오행이 중심이라면

이는 곧 배를 중심으로 배분을 해야

원소도 8 까지로가야

주기율적으로 받침이 되는 지각을 형성할 수 있음과 같은 것이고

괘상으로는 8 곤지가 되어야 완벽한 모태의 성숙을 말하는 것이니

 

 

핵성과 궤도성은 따로 보는 것이지 취사의 것은 아니다

 

보통 점 치는데 있어서

시간이나 공간성의 성향적 흐름에 그대로 쫒을 일이지  

그 성분의 물질적 정체성으로 더 이상 세분화되기를 금기시 하는데 

그만큼 복합성이 많다는 것이 된다

허나 이런 정물이 아니라도 응험하는 時

즉 동태에 따라 맞추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이나 

다만 이렇듯 반 쪽으로 집중해 

그 핵을 보지 않고 궤도성만 보더라고 궤적을 맞추기 힘드는 것이니  

실제 어느 한 부분의 정밀성으로 어떤 기계를 정비한다고 할 때 

개략적인 정황의 점사와 

핵심을 이루는 정황의 진행성은 

핵과 주기율 간의 차이처럼 별도의 초점을 갖고 취용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 용도성에 적용되어감이 사실성과 맞물려 감이 어떠한가를 

먼저 응험이 있고서야 취용을 하게 되고

안 맞는 점사도 왜 안 맞는가 하는 것보다

그 점사가 어데 흘렀는가를 끔까지 물고늘어져야 하는 것은

점사는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니

 그 것이 안 맞았다고 이미 없어진 것이니

부자인 냥 다른 것 하나 사면 되지 하는 식으로 공부를 하면

절대 경지에는 못 다달으는 것이다

분명 점사는 고귀할 정도인데 맞니 안 맞니 하면서 

어데 간 듯어 없어지면

사람 하나 다시 들이면 되지 해서는 절대 

고용 효과보다도 못한 결과를 얻을 것은  뻔하다

그만큼 글이니 쉽게 들이는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우리가 경탄스럽다는 것이

그리 흔한 발견이기에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닌만큼 

그 신비함만큼 비기가 되는데 

실제 잘 가르켜 주어도 인간이 그 걸 못 찾아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환경이라는 것도 그렇다 

목이 뿌리가 없고 화왕한 사주가 

주변 환경이 공장지대나 불길이 많은 지대라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 살 취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우린 운명으로서의 자신의 취약점을 잘 알아야 한다 

뭐 늘 재미삼아 다녀도 마냥 운이 좋은 것이 언제인가는 따질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환경성을 짐작해둠이 좋은데 

본래 사주학이란 운보다 환경적으로 맞추어가는 발전이면

더 과학적이고 물질적 부각의 연계성임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눈에 보이는 환경이 아무리 잘 조력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또한 보이지 낳는 공기마져도 미칠 수 있는 성분성으로 어립 짐작은 있어야 한다 

점도  포인트가  맞지 않더라도

그 궤도 상 안의 성분성으로는 거의 맞아 들어감이 되는데

그러니 안 맞다고 쉽게 버려버리면

그 궤도 상의 속성마져 깨닿지 못하고 마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여! 그대들 인생은 영광스럽다고 하게나 내 인생이야 쓴 웃음일세  

 

난 어찌 된 일인지 눈은 침침해지고 충혈도 자꼭 되는데

꼭 꼬락서니는 좀 근엄해 보이면 안 되나?

꼭 고라니 눈을 해가지고서는 누구의 동정이라도 받자는 것인가 

다 내 뜻이기야 하겠는가 마는 나도 이제 쇠잔함을 별 도리가 없네 

참 어지간히도 선량해서?

날 잡아 먹어도 시원찮아 끙끙 앓는 자를 위해서?

뭐 그래도 도리 없지 

가장 선해 보이는 자가 꽁부랑 할머니 눈빛이 아니겠는가 

결국 늙음도 자연 붙어가는 것인데 돌릴 수 있는가 

차라리 쇼라고 한들 돌아가겠는가 

쇼라고 한들 아니라고 한들 늙으면 서러운 듯이 가는인데 말이여! 

산다는 게 어찌 쇼같은 곳에 들은 것이여

사자도 이빨 빠지면 자연 도태되는 것인데

난 인간이라 좀 봐준 거겠지 뭐

그래로 인생이라는 것에 얹혀 좀 더 살았나?

젠장 발도 떼기 전에 신음 소리부터 나오니 볼짱은 다 봤구만

어차피 상에 치우쳐 산 삶이 아니니

얼굴인들 험상궂지도 않을 것이건만 심사만 고악하게 남았는가

어찌 그대들은 나도 내쉬지 않는 한숨을 그렇게도 내 뱉는가 

그대가 그대 것을 내 뱉어도 내 한 숨이요 

내가 내 것을 내 뱉어도 그대의 한숨이든가

웃자 웃으라 하면서 상은 왜 그리 우그렁 찌그렁이냐 

그래! 그래도 한 숨에 모였으면 단박이라는 것이 아니든가 

짜그락 크나 작으나 돈오나 뱉어 봐라

그렇지 못 하면 평화라도 보일 일이든가

  

 

쌀과 밀

 

고기를 많이 먹는 민족일수록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는데 

밀은 미는 작용이 실제 있다 

그에 비해 쌀을 먹는 민족은 고기를 많이 먹으면 

쉽게 복부비만이라는 것에 걸린다 

즉 쌀은 싼다는 것이니 창자가 길다는 것은 

삼이 길다는 것으로 소화기를 유지해 온 것인데 

밀가루 음식을 많이먹으며 밀어낸다고 잡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즉 에너지나 탄수화물의 기준으로 보면 

어느 것이든 상관이 없어보이지만

즉 이 선으로서는 수명과의 상관성은 같다고 할 수 있는

요소를 충족하는 것이지만 

내적 우주의 다양성으로 병을 유발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화학성을 넘어 나노급으로 따지자면

이 부분도 엄연히 분류되어 내어 놓아야

 의학도 과학성을 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오행성과 성분성,몸과 생각의 포인트

 

본래 印受가 없는 사주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안흔 편이며

남에 의지하지 않는 독립성이 강하나

또한 역설적으로 부모처럼 의지할 사람이 없어 외로운 사람이다

어머니가 없이 형재애로만 살아야 하고

소년소녀 가장과 같이 책임감으로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경은 독단적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어 있는데 

이 것이 관이 강한 데 대한 완충성이 없는 것에서이다  

印受가 많은 사주라면

특히 여성이라면 남편과 싸우더라도

남편이 장모 눈치가 보여 

싸우질 않고 어른을 무서워해서 관두는 것인데 

인수가 없으면 상대가 처음에는 공경하는 듯이 해도 

결국은 마구 대하는 습관을 붙이고 무시하게 된다 

그래도 식신이 강하면 자식이 남편의 기를 누르는데 

즉 부부 싸움을 하더라도

자식 눈치가 보여 못 하는 스타일로 살아지게 되는데

자식이 없으면 육영 사업이나 교육계열로 투자를 하는 편이며 

그러지 않으면 도리어 사회적으로 박해를 받는 수가 많고

왕따를 당하여 폐인이 되는 수도 있다

이 것은 좀 넉넉한 기반이 있을 때의 선택이 되고 

가난하거나 어려운 환경의 사람이면

간호사나 의사 약사 선생이 되는데 

약사나 의사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그 건 식신이 藥을 의미하는 작용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나 약사의 기운은 寅巳申 三刑에도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巳는 소독약과 같은 열성이 있는 것과 申은 칼이고

이 것이 合이니 水가 되는 것에서도 

요도로 배출 할 수 있는 성분이든가 피가 흐를 수 있는 것이기도 한데 

고로 또한 군인으로도 많이 선택하는 성향을 지닌다

그런데 이 것을 사주학적 운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수술을 위한 집도라고 할 때 

이 두 성향 

즉 하나는 오행적 성향인 식신으로 보는 범주 

즉 원소 주기율적으로 몸의 순환성을 보는 것 

즉 이목구비가 오행으로 일어날려면 

결국 4인 것이 배인 것에 내장되어 오장이 된 것으로서의 발현 

즉 오행이 몸인 것으로서의 식신성을 찾아 

어떠한 주변의 오행을 맞춰가며 실행하는가 하는 것이면 

사신의 합은

그냥 하나의 원소가 다른 원소와 이온 합이 일어나

수술이라는 선택의 경우와 같은 것일 때 드러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즉 식신으로서 수술인 구도성과 

巳申이 합한 구도성은 그 전개에 있어 

식신이 이루는 구도성을 따르지 못 하는 경우가 많고 

이 오행성과 그 성분성의 차이를 보여 주는 것으로

우리가 식신으로 수술을 하는 집도로 할 때의 구도는 

매우 사주적 오행의 순한성이 좋은 것이 있고 

사신 삼형적인 상극성이 갖는 집도라는 것은 

그 직업의 성향을 나타내는 것에 적합한 것이기는 하나

그리 구도적이거나 작전성으로 집중성을 보이는 데는 

크게 응집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巳神은 그 성분성으로 그 행태의 영향력을 규정된 대로 

어느 정도 미친다는 것이고 

식신은 주변성과 함께 그 후휴증마져 드러날 수 있음이 있다 

즉 식신이란 상대성적 명칭이지 

상대에 따라 비견도 되고 인수도 되는 것이기에 

즉 굴레라는 궤도에서의 제 위치를 설정해 주는 것으로 

근접을 하는 것이지 

그 자체의 성분성만으로 미치게 하는 의술은 아닌 

그냥 의사의 직책만큼이나 매서운 맛이 있다는 것이서다

 

 

곱창은 곱하기의 매력이 있는 창구

 

어차피 가로 세로 면적이 나온다고 곱창이 아니유

즉 가로 선 세로 선 곱한다고 곱창이 아니유

칠칠이 사십구도

사십구 곱창으로 덮은 사십구 눈이라니까유

얼마나 정확한 수학 개념인감유

이건 확실히 인상파 그림과는 대조적이게

그림자도 나는 것이구만

즉 그 만큼 실체적이기에 그림자가 있지 않겠는감유

얼굴이 이목부리를 덮 듯

배가 오장을 덮게한 것은 창자 사이의 막을 별외로

감싸게 할 것이라니까유

곱창은 곱하기의 매력이 있는 창구라니까유

배꼽 X르 단순히 마크 정도보면 안 되는 것이여!

정말 곱하기로 확 들어와야 

배가 우주관같이 확 깔려 있다는 것을 안단께유

 

 

차를 산다고 가정할 때

 

父가 兄을 생하면 안정감이 있다

앉은 감이 좋다는 것이고

財가 과다하면 적재량 초과가 많고

규정 초과의 문제가 많다

父가 강하면 차를 많이 부리나

정원 미달일 경우가 많다

父가 食神을 극하면 남의 재산이다

밭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고

또한 쟁기질을 하는 것인데 

食神이 父를 合하여 動하면 

우마를 이용한 쟁기질이나 

달구지를 끄는 것과 같다 

즉 父 動이  쟁기질이면 

兄動이면 서래질이 되는 것이고

이랑을 잘 다듬은 것을 말하고

食神이 動이면 파종이 되었다는 것이 된다

財는 수확량이나 시기의 적정선을 말하는 것이고 

토가 식신인 경우는 땅으로 수입이 되든가

쌀이나 밀처럼 곡물류로 수입이 되는 수가 많으나

가난하고 박복한 태생은 뱃심 괘나 쓰는

소처럼 힘으로 떼워야 하는 직업을 취할 수 밖에 없으며

또한 재가 젹재량이면 부가 적재함이다

그리고 엔진 마력은 형이라고 하는데

즉 兄이 空亡이고 財가 강하면

물량을 다 소화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이는 천시점(天時占)에도 마찬가지로 

바람이 공기를 기압적으로 끌지를 못 하는 것이다  

 

 

이진법과 십진법의 차이

 

이 것은 하나의 방편적인고 비유적인 것인데

寅과 卯 사이의 進退神만으로 거름과 열매의 관계로

계속 그 연관성을 이어 붙일 수 있는 진행법

즉 그 이해법이

곧 이진법이 갖는 특성과 같음이 스스로 내재됨이 크고

우리야 어느 것을 취용을 하듯

법칙적이라는 취사의 여유를 부릴 수 있다고 하지만

완전 그 진법 내에서만 있는 흐름이 쥐고 있는 시공성이 있다면

이는 그 커뮤니케이션의 탄력성이 갖는 인력권도 있다고 할 때 

우리가 십진법으로 오행성 정도의 다른 면모로 피어나 

같으면서도 다른 듯 다양성을 함께 이목구비처럼 동시적으로 

취용할 수 있음과 같은 것으로 

즉 십진법으로 식신이니 관성이니 하는 상호성이 트인 공간이 있듯이 

이진법으로 하면 그 공간이 없으면서 인식을 전달하는 법에서 

寅과 卯 사이의 폭만으로 오행의 폭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

五行으로 寅卯의 사이 폭처럼

사계절의 변화를 다 엮을 수 있는 것으로서의 

이해의 범위와 기하학적 탄력의 저변을 어떤 구성체로 볼 것인가도 있는 것이다

 

 

몸짓이 변 하리 늙으면 굽는 것을

 

이 나이에 무슨 영광이 속이 차리

어차피 표현이 바뀌질 않을 것이 

몸짓이 다른들 무얼 하리 

젊어 폼도 아닌 것이 

늙어 무슨 궁상맞게 폼이겠으리

그저 늙으면 늙은이일 뿐인 것을

 

 

神은 좀 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학문이길 원했는지도

 

父가 허가인데

官이 生하면서 財로 化하면 

그 특허로 인한 재물을 챙기는 것이 된다 

실재 재물점이면 

자신의 면허를 도용해서 재물을 취할 수도 잇다

또한 官은 비서실이요 

관리실이 되는데 

즉 계약을 보장해 주는 것 

보통 주인이라는 개념도 

내가 종업원으로 계약이 되었을 때 父星이 되는데

보통 財가 旺하고 父가 약하면 

식구는 많은데 방은 비좁은 행태다

財星을 부하라고 하는데 

食神이 강하고 재성이 희박하면

일은 많이 들어와도 종업원이 귀해 

큰 소득의 장애가 되는 것이다 

또한 박리 다매인 것이고 

운이 좋으면 그 희소성으로 값이 오른다 

식신이 적고 재가 왕하면 일확천금을 노린다   

 또한 父가 약한데 官이 없으면 

그 부를 관리하고 보좌하는 것이 없다는 것인데 

어떤 확약도 소멸이 되기 쉽고 허명 허위가 되는 것인데  

世 父가 공망인데 官이 동하여 財로 化하면

나라의 세금이나 재원으로 허가를 내주며 

空이 아니면 허가된 것이라 봐야함이 있으나

확실하다는 결론이 나기 전에는 좀 더 면밀히 봐야함이 있다

즉 사건이 나중에 들어오는 것으로 봤을 때

그 이후의 상황점으로 볼 수 있는지 

예비적으로 참조해 가면서 경험을 축적해 두어야 할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2 효 應이 회두극이 되고보니 집에 도둑이 들긴 들었는데 

이사 가고 난 후 이사 온 사람에게 발생하는 것을 보고보니 

정말 기가 막힐 일치도 경험해보니 말이다

그리고 이사 오는 사람이 사고 나기 쉽겠다고 했는데 

결국 방을 세 주고 나서 주인인 자신이 사고난 걸보고 황당할 수 밖에 없는 것 

이 것이 간발의 차이에 인명이 오고 감을 종종 보았기 때문에 

이 정도 정밀성을 넘지 못하면 앞서 구조란 어려운 것이다

솔직히 그 집에 세 들었던 사람의 점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주인의 일같아 주인을 잡고 쾌를 잠게 하였는데 

이상하게 이사 오는 사람이 사고가 나겠다는 결론으로 한 발 더 뛰어넘은 것인데

결국 그 것이 폐착이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간발의 차이로 여러 사람 죽는 것을 보았는데 

난 젊어 입문할 때부터 그런 쪽으로 자꾸 채근을 한 것인데 

그래도 난 어차피 그들의 운명인 것이고 

나와는 무관하니 하면서 사는 것 자체를 무덤덤히 보는 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유달리 그 쪽으로 몬 것을 보면 깨달아야 할 문제는 벌써 정해진 듯이 온 것같으나 

그 이상은 자꾸 외면하다시피한 면도 있다    

최소한 이만한 범주의 유동성은 짚어가면 보야야 하는데 

불만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통달이 짧은 기간에 터득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공부를

그 것도 냉방에 배 굶어가며 혼절이 되다시피 하며

당장에 내일 먹을 끼니를 못 채우고  갈 곳이 막막한데다 비는 주룩주룩 와도  

당장 깨닿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뿐 

의식주 하나 마땅한 것 없어도 걱정하기는 커녕

날씨가 좋아지니 시나 쓰고 즐기자는 식이니

이 게 어데 사람이기나 한 것이겠는가

그러니 평생 숨박꼭질이 따로 없다 

신과 나는 아는 것이 있다 

서로가 떠나면 후회가 될지언정 

서로 다시 돌아보질 않을 것이라는 것

어차피 제 잘 되면 그로 벗어나는 것이고 

잘못되어도 결국 굳이 살 놈은 아닌 것으로 뻔하니

결국에 고개도 돌릴 여유를 안 주는 것인데 

가만히 앉아서 천 리를 보는 도가 있음인데 

굳이 나부대며 치를 떤다고 하겠는가     

그런데 왜 책임을 벗어나지 못 하는가 

그 것은 가르쳐 주었는데 몰랐다는 데 있다 

즉 가르켜 주지 않아서 몰랐다면 이 공부도 때려치울 수 있는데 

결국 나중에 검토를 해보면 전부 내가 놓친 것이니 

나로서도 할 말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신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이지

사람이야 내가 사고를 내지 않는 이상 책임이 없으니 

자꾸 외면이 되고 간심 밖이려 하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지나고  안 보면 된다는 주의이다 보면 큰 죄업은 안 짖는다 싶은데 

신은 그 것이 아닌 것이다 

왜 가르켜 주었는데 늘 제 자리에만 맴도는가 하는 것이다 

즉 영(靈)이 오고  안 오고 보다 

한 학문을 깨닿는 데 있어서도

몸신인 선생의 말씀을 안 따랐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도 사생결단이 남은 듯이 하는 것이니

무엇보다 문제는 좀 더 학문적 깊이를 몰입해야 하는데 

자꾸 신을  들이니 안 들리니 하는 뱡향으로 쏠려

시소 같은 갈등으로만 해결하려 한 것에

좀 더 결정성이 있지 않았나 하는 것에서 폐착이었는지 모른다

 

 

무엇이 거품인가

 

왜 저 안개가 내려오질 못하나 

그야 비웠기 때문이지

밤  안개처럼 와질 때는 

거기서 돌아가지 못함이 도리어 거품이 아닌가?

그리어 안개가 도리어 바람든 것처럼 하니 

대기는 더 구슬과 같음이 아니든가  

 

 

개면 어데로 포개지는 것인가

 

과연 날이 개인다는 것이 것이 

개이는 것인가 

이불처럼 포개어 갠다면 포갠 이불은 구름인가 

맑은 대기권인가

그럼 팽창이 개는 것이라면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그냥 무중력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갠다는 것이 아닌가

 

 

숙어적인 것과 단어적인 것

 

영어도 단어로서가 아니라 

숙어로 통채로 외워야 와닿기 쉬운 법도 있으니 

육신의 하나으로서가 아니라 

두 신 간의 상호성처럼 흐름이 있는 공간이어야

숙지됨이 있는 윤곽이 다르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숙어는 28 宿처럼 별자리일 때 

그 특성적 부위와 같이 널려져 있는 밤 하늘을

별바다인 듯이 바라보게 하는 것으로

하나의 단어만으로는 태양계와 같이 강열하게

혹성과의 관계에서는 싸고도 남는 이해의 선만큼이나

또한 사실적이요 물질계 정도의 부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즉 좀 더 확연한 듯이 챙겨놓은 듯이 

현실의 사물과의 병행선인 듯이

섭생의 야만성까지 드러내는 입까지 진화한 자율성을 

아직은 미개한 듯이 연료를 채우는 로봇과 같아보이나

어쩜 그런 야만성에도    

나무의 탄소 동화 작용을 넘어 뛰어 넘어야 

나무의 수명과같이 붙어 있는 실제성의 보장이 있는

이는 좀 더 나무가 물을 빨아들여 커는 것이듯 

밤 하늘의 은하수를 빨아들이지 못 해 

도리어 탄소 동화작용을 못 끌어들임과 같음에 

물에 별처럼 비쳤다 가는 찰나와 같음에  

이는 곧 

숙어적 범주는 耳通과 같께 열린 은하수와 같고 

낱말적 인상으로는

빛으로 더욱 굳건히 개체성을 보이는

眼通의 사물적 범주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니

 

 

생애라는 것

 

사주를 보면 

사진 한 컷과 같이 눈에 확 들러옴이 

인화지에 상이 떠오르듯이 한다는 것이고

실제 어느 무속인은

사진에 띄우는 것만으로 알 수 있다고 하듯이

우리가 신적 셰계의 표현은 어떤 식이든

나름으로 내재된 표현인 것이고

결국 사물 자체로 같이 호홉함으로서

그 호흡을 아는 것이 가장 신적 표현이라고 할 것인데

다만 그 평보다 입체성으로 드러냄도

어쩜 나름의 기하흡수적인 연쇄성이나 번복적 힘에

의하며 미치는데 있어 음양 간의 접촉에 있어

그 에너지의 부하를 매우 감성적으로 받아들에 있지 않나하는 것이다

즉 사람을 보다보면 어떤 기준점으로 인상을 매길 수가 있는데

예로서 인물화를 기준점으로 포즈에 치중하는 사람은

어차피 사주도 그런 포즈에 치우쳐 있다

즉 가부장적일 수 있으며 인문학 계열로 치중하는 법이고

법도를 중시하는 쪽으로 태어난다 것이고

또한 어찌 사진이 잘 못 찍힌 듯

왠지 존재감의 가장자리가 

사이의 허공 간의 중심에서도 가장자리일 뿐인 것이

실속없이 아마추어 작가가 찍었다 싶어도

오지에 슈바이처같은 인물이 나오 듯이

그 나라의 변두리를 탐닌하며 즐길 수 있는 듯이

풍경화적 인상이 많이 나기도 하고

즉 그런 사진이 52 만 정도로 나오면

아무리 특성을 난도질해 가루같이 같은 듯 해도

서로 다름을 알아볼 정도와 같은 것인데

그 상을 유지하기 위하여 약품을 쓴다고 할 때

실제 우리의 내장기관은 부속품처럼 그 화학성분의

셩격이 갖는 틀의 행동양상과 같은 것이라는 것으로

그럼 일간을 중심으로 함운 무엇을 내포하는 것인가

이는 곧 인공위성이나 달의 삼위적 위치

어쩜 삼차원의 형식이 되는

즉 전리층이나 달의 궤도가 자신이라는 것에 주체가 되는 것에서 보면

즉 여자의 달거리에서 낳은 우리로서야

그런 배경의 사진 한 장 쥐고 있는 것을

매우 입체적 공간으로 입체성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으로

운명적 화상으로 움직임이기에 물질성을 행이라고 하는 것으로

그러니 바닷 모래도 안개처럼 내려가지 않는 꿈이듯이

사진 한 장을 쥐고 내렷다 올렸다 하는 것이기에 생애라 함의

즉 밀물과 썰물과 같은 힘의 내재성이 생애로서 바닷가와 같기에

모래처럼 허공성으로 삼켜도 그 구심점이 된다고 하는 것이니

 

 

미네르바가 제우스의 머리에 태어나려면

 

이빨이 임신을 한 것이여!

아니여

입술이 임신을 항 것이여!

아니여

둘이 합해서 힘껏 다물은

정말 이빨 악물며 다물린 겻 여는 것이여!

무슨 임신?

혀를 임신한 것이여!

혀가 나왔다고?

꽃이 피었다고?

꽃의 맛이 꽃가루

혀의 맛이 미각이라

미각은 理의 맛이요

꽃가루는 이미 미의 오리지날 물상

혓바닥이 종의 씨앗이니 귀히할 것

비야 내리지 마라

천 년 만 년

인간에 안태어나면 그로 족할 일

인간세 이미 사바라한 것이니 굳이 욕할 필요야 없다면

화나면 무슨 말인들 못하랴

화도 부채질 받아야할 양반인 것도 있으니

그래도 새벽이면 안개는 내려올질 않는다

왜나하면 천상화보다 혀의 화보다

인간세 화와 심장의 화를 감다하지 못함은 아느니

오히려 심장이 마그마라면 혀가 태양이지

그래도 밤새 식은 땀과 같은 홍두깨

안개를 나눠 먹는 것은 태양

그리어 그냥 혓바닥의 몇 마디면 될 것같은 것

 

 

멱이여? 미역이여?

 

말이 눈에 빠지면 물 속의 멱

멱이 물인가 뵈여 멱살 잡히는 바다

다시마가 혀를 다신다

혀가 멱을 풀고 통역을 한다

멱살은 가슴이 잡히는 것이여!

그러니 감동적으로 

 

 

기준점이란 늘 달라자게 마련이라 

 

그렇다면 기준점에 있어서의 五行의 성격은 정확해야 한다

무엇이든 절차 상의 분기점으로서의 나누게 되면

다시 그 중심으로 배분이 되면 그로 정확해야 하는 설법이 

곧 원소주기율과 같음이고 

그 정확한 누진성이 결국 사물이 되는 것이라면 

어차피 궁극적으로 극미림이라는 것이어도 

결국 사물자체가 그로 따라 핀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이니 

정확하게 오차가 있어서도 안 되고 

여려 시각도 안 되는 것이어야 또한 어떠한 추상성도 배제된다고 할 것이다 

보통 괘상으로는 4 효 위를 해골이라고 하는데 

그 것은 벽이면 성곽 

나무며는 성황당 나무이다

그리고 5효가 도로이면 그 오행 상의 지적이 되는 것이고 

행이 아닌 성분적 요소로 있는 경우며는 목이면 가로수가 되니

이는 곧 행이 원소 주기율과 같은 범주이면 

나무라면 원소적 성질을 함유성과 같은 대비가 되는 것이니 

이러한 이해가 되어야 

화학성과 이 우주의 작용이 닮은 행태로 유추가 될 수 있음이니 

진취적일수록 유심히 볼 필요가 있는 것이고   

이 것이 될려면 그 기준점이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 것으로서 

상황의 대입이 아구가 맞아야지 

마냥 기준은 있는 것이니 참조한다는 식은 너무 이완된 상태의 공부다 

즉 卯가 차이면 庫인 未가 차고일 수 있는데 

이 것은 순수한 용도로서 사용함이 庫인데 비해 

申인 孟神이 되면 먼저 지장간(支藏干)이 있어

그 성분의 혼재에 있어도 

그 견고함의 바탕성

즉 맹신으로 보아 구슬과 같은 것인데 

즉 자갈과 모래, 시멘트 등으로 어느 하나의 취용이 아니라

콘크리트가 단단하면 그로 된 용도의 위상으로 말한다면

庫인 계신(季神)은 그 추출의 용도와 같은 것이고

중신(仲神)은 그 목적에의 진행에 있어 소요성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 것은 육임학적으로 사물의 띠는 법칙이 있기에

두 신이 만났을 때

어떠한 사물의 행태르 띠는 것이 되는데

실제 왜 그렇게 설명이 되는가를 알아야

이 것도 하나의 기하학의 결과로 형태를 이루는 것과 같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왜 이러한 접근성을 외면하는가 

이 것도 아인쉬타인의 이론처런 10 년 백 년이 될지 모를 검증이 만만찮은데 

바리바리 용을 쓰도 잡힐까말까 하는 것에  의식적으로 외면함은 무엇인가 

이느 종교는 신비감으로 먹고 사는 것이다 

즉 종교란 현실적이지 수 백 년을 넘는 유혹도 아니다 

즉 백 년 몇 백 년의 장기적으로 봐 총론을 내면 

참 인류란 변함이 없는 그 사태이지만 

생은 결국 백 년도 안 되는 데서 현실성을 반영하는 것이니

결국 종교란 것도 시간적 가치보다 기복적 즉현성과 기적에 매달리는데 

중점적 유혹이 되는 것이니 결국 기복이나 점술적인 것 

이웃과의 돈독함 결국 인간으로서의 가지와 존재로서의 최우선에 있어 

이 것은 어떤 과학성보다 신비감을 꿈 깨서는 안 되는 것에서 발전하는 요소고 보면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과학의 편의를 아는 이상 과거처럼 물어 붙일 수 없는 것에서 

나름의 지식이라는 집단으로  인간적 요람이길 바라는 것이나

과학은 과학일 뿐이라는 것에서는 종교도 종교일 뿐이라는 양분성에서는 

결국 종교는 신비주의나 전기누설 등으로 현혹 시킬 요건은 갖추지 않았더라도 

무명 자체가 맹목이니 

지식인들이 더 속는 부분인 것도 되는 것이고 

어차피 속고 사는 것이라도 

속는 줄 알면서도 사는 것이 더 편한기도 한 것이고 보면  

늘 먼지 일 듯이 만재한다는 것 

즉 가져다 주는 것을 마다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에 

굳이 억지로 거부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니 사바세계는 사바세계일 뿐

 

 

먼저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 남과의 우주성을 이기는 것이다

 

우리가 父爻를 상세히 볼 때 

父가 강하면 월세나 전세금으로 지출하는 비중이 큰 것인데 

옷이나 차를 사는 데도 돈을 많이 쓴다 

즉 父는 옷의 사치에 너무 힘을 쓴다

가난하게 태어나면 왠 자격증을 그리 많이 따고져 하는지 원

兄은 사교에 너무 힘을 쓴다 

그러니 잘 자라면 사교 춤이나 한량 생활에 빠지고 

떼거리 몰려다니길 좋아하고 부량배같기도 하나 

어렵고 고생을 하는 과정이 있은 자는 

남에 거간 노릇을 잘 하니 

기술을 배우면 하청을 도맡는 편이고

친구를 잘 챙기고 인사가 만사라고 큰 소리치며 살고

이런 자들은 종교인이 되어도 과거에 사람을 통솔해

큰 공사나 집단 행위에 간부도 된 것을 보는데

자신의 말로도 만일 이 길로 오지 않고 그 길로 갔으면

얼마나 기고 만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자는 종교인이 되고도 밤 낮

회의니 행사이 맡아하기 바쁘니

다 도인은 팔자를 바꾸니 뭐니 해도

다 그 행세라고 말하며 웃어넘기도 한다

그리고 식신이 강한데 조화가 없으면

농사 잘 짓고 밭을 뒤엎어 버리는 꼴이 생긴다

다시는 농사 짓지 않는가도 하면서 또 파종을 하는데

결국 그래도 운이란 기적보다야 있는 것이니까

또한 재가 그러하면 종업원이 말을 듣지 않는다

즉 월급을 받아가도 주인을 무시하든가

애사심같은 것은 추호도 없다

우린 자신이 싫든 좋든 사주에 맞춰야 편안함을 느낀다

즉 사주가 사막과 같은데

그래도 오아시스가 있어 버티는 것이면 오아시스 잘 간수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필요한 것이 물과 숲이라고 주면 좋아하는가? 하는 것이 있다

그렇지 않다

습이란 것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섬이나 오지의 사람을 대려 왔으면 그 환경대로 맞춰줘야 하듯

사주도 그런 것이다

즉 사막처럼 만들어 좀 게으르게 사는 습성을 만들어주고

살아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 있어

사주란 치우쳐도 그로 평안함을 갖든가 익숙한 데서

군형성이 있게 이겨나가는 것이니

결국 자신이 자신을 이겨나가는 궁극적 패턴이라는 것이니

즉 사주에 물이 많은 사주에

마냥 물 가에 가지 말고 밭이나 일구며 살아라고 한다고

밭이 와지는 것도 아니요 이미 섬 사람이면

과연 섬을 떠나도 그 것이 좋은 좋은 길이든 좋지 않는 길이든

이미 향수를 갖게 하는 아늑함을 갖는다는 것이니

그래서 사주학이란 자기가 자신을 이기는 것이

남과의 운명성이나 우주성을 이기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 것을 곧 원자학적으로 보면

내가 핵을 이기면 곧 주기율적 덮개를 다 이긴다는 것과 같다

 

 

막창과 곱창

 

앞으로 화면도 휘는 책받침처럼 되는 스마트폰이 나온다고 한다

즉 얇은 막에 집적 회로가 들어도 얇다는 것인데 

이 것을 우리 말로 가장 잘 표현한 과학성을 말하자면 

곱창은 회로요 막창은 1 막 안의 것이여

神이 말하는 것은 章에서 부터이지 않는가 

다 그대의 배꼽에서부터 주사선인 막의 장이여!

 

 

장(章)과 창(彰)

 

신이 들려도 인간의 육신과 함께 사라지면 흔적도 없는 것이 또한 章이니

서러워할 이유야 무슨 도를 닦았다고 닦아 세우겠는가 

최소한 역사에 남을려면 章을 새기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나타날 창(彰)! 이니 

 

 

그림자

 

장(章)에 언덕같은 산이 턱 버티면 장(障)

못이 空을 넘어간다

못이 平을 넘어간다

언덕만큼 가슴에 패여 장(彰) 

산이 다 드니 아득한 수평선 

그리어 못 하나가 뿌리 채 뽑혀 넘어간다

 

 

언어와 표현의 우주성

 

우리가 영문법으로 이와 허와 합하여 혀라고 할 때 

즉 y와 ㅇ가 합하여 yo가 요가 되듯이 

이 ㅇ이라는 자형이 되면 

숫자도 성질도 원소도 다 그 성분성으로 하는 것이 아닌 

제로성 허함을 나타내는 것인데

즉 나자마자 한 살이면 

한 살을 채워서 한 살이 아니라

이 땅에 디딘 것으로 한 살로 하듯

즉 주기율 상으로는 한 살을 돌지 않아도 

핵 상으로는 한 살에 앉힌 것이 설명이 되는 것이라면

우리가 핵을 노른자 

주기율을 흰자라고 할 때 

이는 곧 흰자 밖에서 

노른자에 착륙해서 흰자를 한 바퀴 채워야 한 살이라는 것이다

즉 이 국문으로 ㅇ는 토성이요 

원소 주기율 8인 지각이요 

하늘의 성층권이 되는 것인데

이미 어떤 원소성의 성격도 이 주기율을 채우면 

원소성보다 주기율 성으로 보아야 하는데 

주기율이란 같은 성질의 농도가 농후하다는 것인데 

실제 원소의 성질은 알아도 

주기율은 소리로 보면 된 소리 즉 쌍 기억 쌍 디귿처럼 

ㄲ이나 ㄸ의 된 소리가 되는

즉 자음적 된소리가 되는 것이고

모음적 된 소리는 ㅏ가 ㅑ로 

영문적으로 y이인 ㅣ가 ㅏ에 더하는 것인니 

이 ㅣ가 원소 주기율의 한 궤도를 더하는

8 족까지에 찬 

즉 자음으로 ㅇ인 土聲과 같은 8 族인 것인데 

이 8 족이 되어야 다음 주기율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허가 두 개 모이면 혀가 되는 것이라면 

실제 입 안의 혀는 허가 두 개 모이면 

상상이나 생각을 표할 수 있을만치가 되어 혀라는 것이니

그만큼 ㅓ와 ㅕ의 차이의 농후성을 띤 것이라고 봐야 함이고 

허는 보이는 보이지 않는 것이나 

혀는 보이는 것이고 

또한 어떤 느낌이 톡! 으로 순간 스치는 것일 뿐이다 

그 것도 알맹이가 되어 영문의 톡!인 뜻이 듯이 

혀의 점상은 되는 것에서  

어쩜 영어로 혀를 톡이라고 하니

혀란 목 입구에 톡! 톡! 노크하는 자국이 부은 것처럼

점적이라는 것은 매우 성음이 물상화된 것처럼 하듯이

이는 곧 한 주기율 상으로 허한 것이

다시 두 주기율의 농도가 되면

혀와 같은 농도의 의미를 부각 시킬 수 있음과 같은 것이다

그럼 우리 말의 ㄱ이 ㄲ으로 되는 농후성과

ㄱ이 ㅋ으로 되는 농후성

그리고 ㅏ가 ㅑ로 되는 농후성을 엄밀히 분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만큼 과학적 구조의 면밀성이 인체학적으로 광대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즉 언어가 원자핵적이라면

표현이 주기율적으로 양상으로 나타낼 수 있다면

그 구분성이 뚜렸하다면

이미 핵적인 것은 입의 미각을 채우는 질감이요

이는 곧 땅처럼 고체나 액체성만이 알 수 있는 듯이 할 때  

그에 주기율적인 것은

취각(臭覺)인 것

즉 호름의 경로가 폐로 통하여야 하는 것의 기체적인 것으로

이미 달리 감각의 기능이 되어 있는 것이

주기율 한 겹의 차이 두께의 차이와 같은, 

그 시공을 달리하는 패턴이 되는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소나무

 

소나무를 보다보면

이 중섬의 황소가 못 빠져 나간 듯

브람암스의 피아노 협주곡이 멋 빠져 나간듯

둘보다는 혼자여서 아마 더 체증같았을

그럼 용을 쓰야지 

홍두개도 글고 갈 듯 용을 쓰야지 

어찌 나무가 쇳심인가 

금의 고 축토가 쩍쩍 갈라진다 

소여! 

헤라클래스의 근육이 터지 듯 소여

우러다 말라붙은 비늘 껍데기같은 소여 

용이 그렇게 용쓰니 쇳심을 봤다고?

그러니 丑이 음이니 辰이 양이라

피긴 시되 바다 사자 같이 피나 발이 발이버렸고 

피긴 피되 아지랑이도 이글이글 피는 듯이 가지가 되어버렸구나

 

 

주엽(注葉)

 

더 많은 나무 

다 바늘의 묶음 

나뭇가지에 이슬 방울만큼이나 

송알송알 

ㅇ자 혀 꼬불리듯 굴려 송알송알 

그런데 어찌 되었길래 

잎새로 저절로 주입해 부풀게 하였으니 

나무야 천수천안인을 마음이 모자라지

다 한번 쯤 쓸쓸함을 만끽하는 단풍에 

그렇게 욕망의 및깔을 물들인 자리와 같이     

 

 

코가 눈

 

코가 공간 하나를 먹고 머릴일 뿐이다

공간 하나를 먹고 길이 간 것이

나이테를 주기율로 시루떡 인생을 만든다

코가 공간 하나를 먹고 껍질까지 쓰고 마는 씨앗 

그래서 모든 가장자리의 코 

역시 준치는 썩어도 준치여!  

 나무가 나아태로 조으며 인연의 괄약근을 조으듯이

허나 연락은 잎새에, 가자에서 왔구나

 

 

전 무서운 사람이라니까유

 

아이쿠!

보살님 절 스님으로 봐 주시는 감유?

그럼 전 입다물어지유

절 스님이라 앴다간

이 년 저 년 되고 만다니까유

이 건 겉치레고 눈치고 없다니까유

개년 소리부터 하고 본다니까유

굳이 아는 채해도 그런다니까유

완전 군함 해상 봉쇄는 저리가라니까유

그래도 알랙산더 대왕은 그린자를 비켜 주었을 대인이쥬

이 건 완전 똘만이들 시켜져 뺑 둘러치게하고

이쪽으로 몰리면 이쪽 모난 놈이라고 하고

저쪽으로  몰리면 저 쪽으로 모난 놈이라고

생색은

완전 거리의 광고판 저리가라는 것이이지요 뭐

그러고는 내가 밀었다고 하지요

이미 어 일이 언제 오늘이 알인감유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판에

숨긴다고 그 진실성이 사라는감유 

오해라고 해도 이렇게 시간이 길게갈 오해란 없는 것이쥬 

자구 근거라고 있는 듯이 해봐야 

허상인 것을 굳이 질질 글고 다닌다니까유   

전 감정적이기 싫어

글도 될 수 있는 무생물적 과학성에만 치중하는데도 말이쥬 

이미 정서를 둘 수 없는데 무슨 감정을 살 엄두가 나겠어요 

뭐 그래도 글이 딱딱해져도 운명이려니 감수해도 말이죠 

굳이 무감각하려는 것까지 트집이니 전들 할 말이 없지유

누구든 엉겁결에 끼어드는 판국이니 

내가 안타까워 당자사가 아니라고 하면 

꼭 개인적으로 사통이라도 하는 듯이 더 길길이 날 뛴다니까유

그러니 어느 사람과도 사통이 있겠시유

나 같은 먹잇감이야 

대대손손이 물려주어가며 씹겠다는데 

저도 언제부터인가는

날 싫어하는 사람은 나도 싫어하기로 했시유    

노골적으로 이 새끼 저 새끼해도 

아주 젊잖게 대해준 듯이 감쪽같다 못해

관용스럽기까지 하다니까유

그런데 그들은 알지요 

그렇게 설치는 다음에야 어느 누구도 근접하는 것을 못 봤다고 

효과 만점이고

아얘 근접했다는 낌새도 못 느끼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지요  

저요?

이불 속에서 만세 부른다니까유

그 것이 늘 현재 진행형인데

한 번 쯤 대꾸해 놓으면

마치 과거 때부터 계속 물고 늘어지는 듯이 한다니까유

전 말이쥬

속으로야 죽일 놈 살릴 놈 해도

스님! 하면 또 얼음 녹듯이 사르르  녹아

도리어 나 때문에 기가 죽으면 어쩌나

자폐증이도 걸리면 어쩌나 걱정도 다짜고짜 행기는데 말이쥬

또 그 행색을 보면 진절머리가 난다니까유

과거의 인간이면 과거에 놔두고 현재여야 할 사람들이 

절대 현재의 사람이 아니면서 

건망증 심한 나를 갖고 과거를 문고 늘어진다고 한다니까유 

전 양심에 과거가 없는 사람이유

설형 불찰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당사자 간의 문제인데 말이쥬   

문제는 나구

봉쇄는 당연한 듯이 한다니까유

저야 언감생심 이년 저년 할 수 있남유

저들은 알지유 누구든 간에

거리를 두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지유

저 같은 왕따는 당연한 것이 듯이라니가유

제가 알아 거리를 두는게 도리어 상대에 대한 배려지유 

이만한 민주주의가 어데 있는감유

그런데 저들은 늘 민주주주의가 불만이라니까유  

그러니 재게 스님이라 마시유

개년 소리 듣는단꺼ㅔ유

무언가 착각하시는가 본데

저 개란 소리 못하는 놈이란깨유

사는 게 그렇지유 

한 이불 속에 살아도 속을 다 모르고 산다 듯이 

얼핏 안다고 어울려 봐야 애들 구슬치기쥬 뭐

그런데 말이쥬

신명은 도리어 날 나무란다니까유

내가 너무 독선적으로 되었다나유

저들 중에 출중한 인물에다 큰 그릇이 많으니

너무 그렇게 기죽이려 들지 말라는 것이쥬

완전 제 자식 중한 듯이 하는 것보면 말이쥬

난 완전히 꿔다놓은 보릿자루보다도 못 하다니까유

 

 

원소 주기율과 팔괘의 동행은 얼굴의 찰색에 든 것과 같다

 

6 족과 8 족의 동질성에는

차이점을 어떻게 내는가 하는 것은 

보통 6 효가 동하면 조상과 무덤과 관계된 일을 자주 보게 되는데 

즉 이에 시변의 언저리가 六爻이고 보면

이도 생의 경계인 것이고 지역적 변방인 것이요

이를 8 족의 기운으로 보면

하나의 성분이 갖는 성질만으로

6효적 배분려어떻게 짜여지는가하는 것이고

상하 대성괘로 갖는 것으로하면 8이 되어지는가와

64 개가 되어지는 팔팔이 육십사로서 수용되어야 하는 것

전반성의 상호성으로 

즉 384 개의 효가 일어나면 

384 개의 화학적 성분성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 것이 완벽하다고 해도 化神的이고 報神的인가 하는 것

진신과의 개연성은 그런 과학성에도 없는가 하는 것

즉 팔괘와 퍌족이 합이 찰 때의 이온적 화합성과 

전이 원소적 합은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도 과제인 것이고 

또한 곤지괘와 진뇌괘가 합이 되어 뇌지예괘나 지뢰복 괘가 되었을 때

그 괘사와 효사가 원소주기율적으로 8 족에 해당하고 

주기유 상으로는 4 주기율에 해당하는 원소라면 

이 것을 하나의 괘상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가와 

그 것도 단순한 하나의 성정에 

괘상의 복합성으로 다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무색 무취의 원소인데도 

그 것이 같다고 할지언정 하나의 맛 정도여야지 

괘상에 효상까지 다 갖고 있는 배경이 있는가 이다

 

 

無記

 

우리가 無記가 無記가 아니라

오히려 무기가 남은 부분이 우주라고 한다면

이는 곧 기록성보다 사물성으로 뽑는 현재 진행형이라면

무기가 풀리 않았기에 우주성이 구름처럼 남은

우리 부처님의 14 무기를 그대로 서로 맞잡게 하여 

마치 안개가 창공처럼 올라가졌다고 할 때 

이 것은 항공의 배꼽인 냥 1을 더하여 15를 기본수로 한다면 

이는 곧 천수경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비와 같음이 

비나이다가 된다 즉 비는 비나이다의 음정 방울과 같은 것이다 

즉 준제진언을 넘어 

원아 정혜 속원명 

원아 공덕개성취 

원아 승복 변장엄 

원공 중생성불도인 4을 합해 하나의 묶음과 합해 5 라면

여래 십대 발원문을 합하여 15이다 

이 15가 비나이다가 비인 것이다 

그 빈 경정인 물방울이 세상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이 것이 다시 발사홍서웜으로 가면 사방성이고 

다시 삼보로 맺으면 

그로 원소 3 주기율에 머무는 것으로 

이는 빛이 비는 데 있어 잔분인 것이고 

그 이상은 빛 밖이라  못 보는 것과 같다

우리가 역발상적으로 무한탐욕을 다시 15 요체로 줄인다면 

다른 것은 그 쟉용성으로 소진되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고 

오직 이 14 무기라는 것을 쟁반에 담은 것이라면

결국 인간에게는 드러나지 않고 소원성에만 

겨우 비빈ㄴㄴ 부스러기 같음은 확실히 존해가에 

서원을 들어줄 수 있는 무기의 풀이 

이는 곧 존재가 무기라는 것에 있다는 것이고 

인간이 무명이어서 깨닫지를 못 한다는 역설이 되는 것이다

 

 

밤은 밤이다

 

천수경의 귀결점에는 철학적 물리와 정신계가 있는 것이다 

이 걸 잘 알아야 밤이 빅뱅으로 밤인 것이 되는 것이다 

밤은 밤이다

즉 백뱅이 터지기 전에 밤 세톨이 

즉 원소 3 주기율이 터지니 

원소 4 주기율로서 터진 범위가 되는데 

즉 이는 태양이 밤의 핵적 상태이면 

이 것이 터지면 밤

이 핵에서 주기율적 궤도에 흩어지듯 나온 것인데

그래서 밤 세톨이 밤의 우주를 만든 것이다 

밥이 터져 밤인 것

어쩜 보이는 우주는 

하얀 밤 속의 색계가 차는 것과 같음이니  

태양 속의 흑점이 밤톨의 고향이요 기질인 듯이 

낮과 밤은 짝인 것

이는 곧 여자가 늙으면 양성화되는 종점성이요 

남자가 늙으면 음상화되는 종점성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 변화의 폭이 어떤 시공과 안과 밖이 되는가 이다

또한 삼보도 원소 주기율의 밤송이 안과 같은 것인데

이는 곧 동양철학과 음양 오행이 

인문과 물리의 동질성을 확보하는데

그 기초가 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통의 전모성이란

 

담배를 피우는 데도  사주에 따라 특색이 있는데 

토금이 약한 사람은 기관지나 폐가 약한데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폐에 병이 올 가능성이 많은데

피운다면 치명성이 강하다 

오히려 토금이 강한 사람이 기침을 하는 경우는 

기름끼가 많고 단백질 성분이 단단한 편인데 

이는 순수하게 맑아야 할 대장을 막는 경우로 

기가 통하지 못하니 산소가 원할하지 못한 데서 병이 오는데 

본래 토금이 많은 사람이 기침을 하는 경우는 

지방 간이나 경화로 간계에 병이 있어 나타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가 계란과 같다고 할 때 

한 쪽을 깨어 먹는 것이 폐라면 

뒤쪽을 깨어서 쉽게 들어오게 하는 것이 대장이다

그러니 자연 대장이 지방화되면 당장 숨을 깊게 들이지 못함과 같다

 

 

마두의 큐비즘

 

마두역에 가면

피카소의 게르니카의 말 머리를 떠올린다

말이 몸뚱이가 어떤 것이여?

휴전선 날 위에 작두를 탄다

언어가 난도질 당함은 

피카소 그림의 작도로 작두를 찾으니 

날은 휴전선으로 일자로 섰고 

하늘은 푸른 날과 같다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 

날은 더욱 얇아지는 것에서 

하늘인 배가 줄어드는 것이 아닌 

하늘도 갈리듯 슬립화되는 것

 

 

모니터가  뮈니 터 얼굴

 

얼굴의 상이라는 것이

앞뒤로 짱구같이 불룩 튀어나와도 더 똘똘해 보이는

과거형 브라운관 같은 미인형

본래 스립형으로 번데데한 얼굴은 좀 답답하다고 하는 느낌같았던 것

요즘에 넙데데해도 미인과 같은 모니터형 얼굴

상학처럼 오묘한 것에도 

스마트 폰이 기계라는 것인데

파종이 되는 것이며 뿌리도 있는 법

부평초?

삶은 하나의 모니터

가장 진을 빼는 것이

운전대 잡은 때의 긴장에 쏠리지 않기 위하여

운전을 배우지 않을 정도의 무의식적 정서의 일율성을 위한

무의식적 영감의 대비성에 일율적으로 깔려 있어야 하는

그냥 모니터의 침묵의 고요한 바탕 화면을 위한 듯이

하늘마져 긴장성에 있지 않는

안경처럼 처럼 흐릿한 시력 나쁜 더듬이 같이 눈을 떠도 

사랑스러운 눈빛과 같아도  

서로 외면 당해도 할  수 없지 

스마트 폰!

괘를 열면 그런 것이지

어쨌던   어데든 미쳐 있는 것이 아니든가

내가 날 나무라니

그대는 그대를 나무려러무나

다만 괘상은 기계요

꼭 스마트 폰에 몰입한다고 굳이 탓할 일도 아닌 것

다만 괘상은 켜놓으면  그 내용에 눈을 떼기 어렵듯

요즘 모두들 스마트 폰에 징신 팔리는 만큼이지 말란 법도 없다

어차피 인간은 미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것이 아니든가

어차피 시간이 외면된 듯이

그 시선으로 빨려들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든가

스마트폰이 시력이 있다

괘상이 그렇듯 시력 속에 우주가 아니든가

 

 

무(無)이지

 

가을이 하얀 서리로 돌아가면 

무우가 뽑힌다

안이비설신의가

무안이비설신의도 물어야 무우가 드러나지

어쩌다 환골탈태같은 구름이 모이면

강원도 하늘이 뽑혔다 구멍이 났다

사는 게 허공 한 뿌리 한 무우

가로등은 무우의 분말 가루를 뿜는다

무를 뿜는다

 

 

사주는 자신의 나르시즘을 철저히 가져다준 사물인 것이다

 

사주 팔자란 학문은 인간의 경지를 넘는 신의 차원이다

다만 인간에게 있어 사주란 무엇인가

자신의 카타르시스 흡혈귀처럼 빨아먹고도

자의식을 못 하는 것은 나르시스를 능가는 것이다

그래서 물질이나 사람과의 인연이 상대적으로 와지는 것에서

자신의 나르치즘인을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살생이라는 것도 자학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 것도 업의 두깨에 따라 깨달음이 빠르고 늦고 하니

감은 살생을 계속하고도 자학의 부위임을 모른다

이는 나르시스는 상에서 못 깨어남이지만

인간은 상에서 깨어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상의 뿌리에 젖어있음을 모른다는 것이고

그 깊이도 상일 뿐이라고

결국은 천상층으로 얇은 필름과 같은 것이니

자신이 어느 육도에 있든 이 상을 벗으면 된다는 것이나

업이 두꺼울수록 나르시즘과 같은 것이 두꺼운 것이니

자꾸 하근계로 태어나 깨달음이 늦다는 것이니

상일 뿐인 것이 상을 두껍게 한다는 것인데

부처님의 말씀에도 32 상이라 함에는

이 사이 결국 해탈도에 이르는 완비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가 천상계를 떠나 샘을 마셨을 때

이미 바닷고기처럼 갇혀도 바다 위의 천상으로 알 듯이

거기에는 벗어나고져 하는 자학성이 있을 수 밖에 없지 않는가 하는 것이니

사주는 철저히

그 불균형을 철저히 바루어 나가는 이치가 있음을 가리키는데

그랗다고 균형이 잘 이뤄졌다고  소멸된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런 균형성일 때 더 매진하여 해탈하라는 것과 같이

철저하게 사주는 자신의 나르치즘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六通의 우주성

 

이통은 블랙홀과 같은 것인데

이 것이 두 개로 나뉘지는 차원에서 안과 밖이요

유무의 관계요 공과 색의 관계일 때

이통도 한 부분인 것인데

그럼 1이라는 것은 어떻게 형성되어

태극의 혼돈과 같은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 혼돈이라고 하더라도 물과 같은 평정심이라고 할 때

그래서 블랙홀에는 낙원이 있을 수 있다는 가증이 나오는데 

이 것이 과학성이 부처님의 六通에 결부되기 때문이다 

즉 이통적 나르시즘 못 되는 겨 묻은 개가

안통도 못 되는 똥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다 서로가 나르시즘을 갖고 손가락질하는 것이니 

나무라고 독촉하는 것이라는 것이 

천상층마다 표개고 포개고 보면 

동을 동이고 동이여! 똥이 되니 보니 

오히려 겨는 얇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닌가 

뭐 ㄷ이 ㄸ으로 된 것이나 

ㅓ가 ㅕ로 된 것이나 

다 그렇게 묻은 것어도 다 제 상층이라는 것이니

그래서 안통의 나르시즘을 해방하고 손가락질 하면 

높은 차원의 인물인 듯이 해도 이통에 머무는 것이고 

그 이통도 결국 똥 묻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통을 넘어서지 못 하면 나르시즘을 해방한 듯 하지만 

결국 이통이란 감 1 수인 것이요

원소 주기율 1 수소에 원자 단위인 것이니 

결국 어미 뱃속 자궁일 때 이미 원자 아씨가 되는 것이요 

결국 안통이 그 뿌리는 못 벗어나니 

나무에도 꽃이 피는 것이요 

그 잠재성은 허공에 묻혀 있기에 불은 없다가 생기듯 하다 

나무가 없으면 허공으로 끄지는 것이요 

그러니 빅뱅이 터지지 않았다면 안통은 없는 것이요 

전자와 전류와 같은 것이 있을 뿐인데 

또한 전자와 전류가 있기에 자면 불꽃이 피고 

나무에도 꽃이 피는 것인데

이 것이 안통의 영역인 것에서 

이통을 보자면 백뱅 이전에 수라는 것이니 

이는 곧 이통에 통달하면

백뱅의 차원을 넘는 고리가 있음을 나타낸다

얼굴도 보자면 안톤은 눈감을 수 있어 거풀이 있지만 

이통은 그대로 열려 븧랙홀처럼 말려들어가는데 

블랙홀은 빅뱅 이전일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럼 이통은 빅뱅 이후로 끌어들이는 허공계라면

이 것이 앞뒤가 안 맞는 말이지만 

이 순간 어쩜 색이 공이요 공이 색이라는 것으로 

맞잡고 흡수된 아닌가 하는 것 

즉 반물질계가 공적으로 있어 색으로 넘어오니 

도리어 빅뱅 이후로 등어와지는 이통이라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가 공즉시색일 때

색즉 시공으로 또한 넘어간 것이 이통인 것인데

이는 곧 빅뱅 이후가 빅뱅 이전으로 넘어가는 귀와같은 홀이

실제 맞는 것이나 이는 곧 공즉시색과 맞물려 온다는 것에서

이로 부처님의 무기와 인간의 무명성을 동질성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인수(印受)라는 결제란 어느 정도인가

 

부옥의 한인은 벗어나고져 떠나면 텐트 한 짐에 식기 몇 점과 같다

즉 그 비율대로 움직여진다는 것이다

즉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쫓아간다고 할 때 

그 속도 상으로 돈이 된다면

마음은 토끼처럼 뛰어서 그 돈을 다 움켜 쥐고 싶지만

집이란 것이 거북이 등각처럼 무거워 애서 가도 소득이 작다는 것이도 

등짐은 늘 무거울 뿐만 아니라

물건 하나 팔아도 교통비 주거비 빼면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오행의 판단이고

그 물질의 성정으로 보면

목화가  재인 사람은 물건이 빠르고 조급하게 도착하기 때문에 

금수가 없으면 제어가 힘드는 형국인 것이고

금수가 재인 사람은 시간을 독촉하다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즉 운에 잘 맞으면 그런 성질로 잘 벌고 

안 맞으면 그로 자꾸 어긋남이 많아 약속이 깨지는 경우가 생긴다 

지금 이 이야기가 사주 상의 론리를 이야기하지만 

점술 상으로 하면 현장에서 손바닥 보듯이 하는 것이다 

다만 사주학 적인 것은 전반적 한 굴레의 총체성으로 봐야 하는 것이니 

점술보다는 그 깊이가 이통과 안통의 차이만큼 있는 것이라 

사주학으로서 더 설명하자면

집을 떠나야할 사람이라도      

어차피 거기에 갇힌 듯 노에가 안 되면

업고 지고 가야한다는 것이지

동행하는 친구마냥

같이 걸어주지도 않는다는 것이 사주의 운빨이라는 것이다

 적고 印受가 강하면 부옥(富屋)의 한인(閒人)라고 한다

그러니 인수가 식신을 제압하면 하는 일마다 장애가 생기니

자연 고향을 떠나고져 한다

그럼 떠나며는 떠나지는 것인가가 있고

팔자는 어델 떠나도

그 치우침의 기울기 그대로 균등성을 이루는 것이지

사주 자체를 서래질하여 평면으로 하나같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식신이 작고 부가 강하면 팔 물건의 꾸러미는 작고

입고 자는 도구의 꾸러미는 더 크게 챙겨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니

결국 집이나 고향에 살면서 궁핍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몸은 고되어도 의관을 버리지 못하고

무겁게 져가며 동분서주해야 하는가이지

이 인수를 벗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취사의 선택은 있되 가볍지는 않다

즉 마음은 토끼 걸음이데 몸은 거북이 걸음을 걸을 수 밖에 없는

거북이 가죽을 토끼 가죽인 냥 뛸 수 없는 것이고

민달팽이처럼 돌아갈 수 없는 반경이면

지고 가야지 벗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주는 인체학적 일부라는 것의 출발인 것이다  

이런 형태의 달라짐이니

그 구조적 형평성을 그대로 사주의 치우침 대로 지고 간다는 것이니

결국 인생은 자신으로 자신의 짐을 다 벗는 것이다  

보통 인수가 많고 기신이 경우는 고향을 떠나지 않는 것이 좋은데 

그렇다고 나아지는 것보다 

그 취사가 어느 쪽이 나은가 하는 것인데 

그 것은 답답하고 무기력하게 소득이 없어도 그 자리에 버티는 것으로 

내 자신을 나무에 붙들어 맨 듯이 해도 견딜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결국 그 것이 싫어 집을 나가면 

절대 맨 몸으로 나가지는 것이 아닌 그 집의 무게만큼 지고 가야하는 것 

그만큼 자신에 부담주는 만큼 짐을 늘여 이동할 수 있느냐와 같은 것으로 

절대 벗어나지 않는 것인데 

집도 옷과 마찬가지로 절대 발가벗고 갈 수 없는 달팽이와 같은 것이다

즉 집을 떠나도 집을 지고가야 하는 것인데

왜 실제 상으로는 떠났는데

왜 떠나지 않은 불균형인 채 균등성을 유지하는가 하는 것이

어떻게 매카니즘을 형성해야 가능한가를 첫째로 요건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식신이나 재가 많으면

원만한 생활도구는 현장에서 사는 편이고 

주거보다는 식재료나 물건을 들여 놓을 수 없어 한 데 놓는 경우가 많고

창고에 넣을 수도 없는데 왠 잡동사니 물건이나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지

이는 음식은 재공할만한데 기숙사가 없어 공장이 운영이 안 되는 것과 같고

운이 나쁘면 만들어도 팔리질 않으니 더욱 누적되어지는 스타일인데

최소한 이러한 객관적 분별성만 있어도 도사 소리는 듣고 사는 것이다   

 

 

풍수와 관상

 

우리가 태극 상으로 말이 되지 않으니 졌혀 두고서라도 

최초의  한 마디가 無라고 했을 때 

결국 兩二가 面相으로 두 개식의 구멍이 나는데 

이 것이 구멍이 먼저인가 이목구비가 먼저인가 하는 것이 있다 

즉 주기율 상으로 2 兌澤이 얼굴이면

이 것이 허공의 기운을 끌어 하나를 더해야 이목구비가 되기 때문인데

이는 곧 兩 눈 구멍이 2인 것이고 하나같이 보는 기준이 3이라는 것이니

실재 이목구비라고 하나 다 虛의 실체로서 하나인 것이다 

우리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것은 

바로 이 공이 두 개일 때 2라는 차원의 순서로 열리는 

원동의 양극이 갈라지는 정류자와 같은 상태일 때 

이다 아니다 의 대칭성이 생기는 것으로 전극처럼 접촉해야 하는 것이니 

결국 부처님 말씀의 무기라는 것은 원소  3주기율의 안통의 차원에서 

밝아지는 것이니 이 화라는 것은 무에서 켜지는 듯이 하는 것이니 

나무는 위치성이 있지만 실제 화는 위치성이 없고 어둠 속에 있는 것인데 

켠 순간의 루트와 같은데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기나 무명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마치 정유자의 갈림 사이로 강을 건너듯이 하여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양이 정도에서 있을 듯 없을 듯이 되었다가 

천지인이 되면 사람의 실체로서 보게 되는 것이듯 하다가 

막연한 허공적 애착이 들어 자꾸 머리를 쓰게 함이 자손 줄과 같은 것이고 

그러니 풍수도 기각적인데도 기를 발하는 시스템이 있는 것이다

결국 여기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보니 

풍수로보면 생사를 사이에 두고 오고감이 있는 것이라 

결국 관상에도 그대로 나타남이라 하는 것이다

 

 

물리학적 풍수

 

우리가 보통 추상성과 실체성의 상관관계가 

어느 정도 절차의 과정을 논리적으로 이을 수 있는냐가 관건인데 

실체성의 한계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의 도출이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火田이라는 말도

물질적 성분 

즉 토가 흙이고 金이면 쇠가 되는 성분성이라는 것으로 볼 때

무지개 지붕을 올리는 법칙과 같은 것으로

즉 주황은 빨강의 다음 층인 띠가 된다는 마크와 같은 것이라고 

眼通이라는 것과 약속이 되었을 때

色은 원소인 것이고

주기율은 나름의 수용하는 기하학적 수량을 내포하는 구조라면 

결국 둥글면 金이요 평평한 네모나고 평평한 것이 土라는 형상적인 것을 

그대로 성분성으로 연계되어 드러낼 수 있음이 법칙으로 수용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이야기는 지리로서의 풍수가 아니라 

천기로서의 풍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확실히 형태와 서질이 같을 수 없는 

즉 체가 둥글어도 빨강색일 수 있듯이 

그 긋이 그 것이다라는 결론이 맞붙은 것도 아닌 것으로 

같은 것으로 할 수 있는 유기적 루트는 어떤 끈을 갖고 있느냐와 같다

일레로 산이 벼랑을 끼니 거기다 화전을 해먹으려면

허리 띠처럼 밭을 일구었다고 할 때 

이 것은 무지개의 띠처럼 드러날 수 있느냐와 같은 것이다

이는 뱀의 형태인데 실제 뱀은 화이다

그럼 뱀과 화전과는 관계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즉 무지개 색이 되기 전에 빛은 색이 없는 것인가와 같은 것이다

또한 색으로 치면 빨강이라고 화라고 하지만 그런 행태지만

그 것이 색으로의 표현이 아니라

행동으로서의 표현은 뱀의 실체에 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색의 생동감이 살아 인연처럼 붙은 것만큼 

뱀도 태어나 인연에 붙은 것이다 하등 바를 바 없다는 것이 된다 

숫자란 철차를 넘아가는 마디가 있어 숫자가 된 것이지 

붙으면 길나 짧으나 하나의 것일 뿐인 것이니 

숫자 자체가 이미 지붕 한나 쓰고 집이 되는 것이기에 

원소 주기율이 지붕도 되고 바닥도 되는 것인데 

꼭 무지개적 일렬성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형태를 이루더라도 나름의 주파수나 파장이 되면 

그 색을 띠듯이 할 때 

붉은 색이나 불이란 것은 화전처럼 헝태를 이룰 때 

그 색이 되듯 뱀도 되는 것은 마치 화괘로 빠지면 색이지만 

풍괘로 빠지면 뱀으로 나타낸다는 것이 되면 

색이 갖는 파장성에도

정자보다 더 작은 파장성에서 와졌다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즉 형태만 띄어도 그 성질을 내포함이 유전적일만큼이 된다는  것이다

즉 뱀 독은 화독과 같은 것인데 

즉 불은 펜처럼 드러내지만 뱀은 독처럼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주파수나 파장이 달라도 색이 달라도 같이 붙은 듯이 하는 것이 

마치 일시적으로 산이 화전을 벨트로 차 붉은 색을 띠는 부위가 

자연적으로 띄어 붙은 듯이 한다면 이러한 응결성은 

결국 그 입자에서 다시 피울 수 있음이 

꼭 세포가 허공 속 먼지마냥 일어나 유전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시스템의 메카니즘보다 훨씬 물리적 논증이 가까운 것으로 

상과 내용물이 같이 드러나는 각기 다른 표현과 같을 뿐이라는 것인데 

이는 형상이 불같든 

형상이 펜 끝의 글 내용을 피우든 

화전을 걸칠게 일 궈 생애를 표햔하든 몸짓이든 

이련 형상믄으로 주파구 같아 뱀이 되는 형태일 수 있고 

무지개의 벨트에 차여진 중일 수 있고 

무지개 즉 빛이 둥글다는 것은 빛이 건괘의 인력에 들었다는 것이니 

이도 언덕처럼 밭이어도 건괘이듯이 건쾌로 질 수 있음인에 

그럼 점을 필 때 기준을 어떻게 하느가 하는 것이다 

색으로 볼 것인가 뱀으로 볼 것인가 화전으로 볼 것인가는 

또한 분별해 주어야 한다 

어떤 도라도 이 정도에 세분성에 들어오면 그로 포기한다든가 

일방적으로 하나만을 집중적으로 몰아 가든가 하는 것인데 

어덯게 이 것을 입맛에 맞게 취사를 할 수 있는가는 

응용의 한계이기도 하고 그 깊이의 한도를 못 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먼저 자신이 주지하고져 하는 그 자리가 매우 중요하다 

그 것이 흔들리면 곧 신통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풍쾌이면 뱀을 의심하고

건괘이면 무지개를 의심하고 

간괘이면 화전을 의심하는데

이는 곧 원소 5 주기율이면 뱀이요

1 주기율이면 무지개

7 주기율이면 화전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

물질적 원소성과도 같다는 등석이 나올 때

그 화학성만으로 질병에도 근접하는 것이

접근로가 화학방정식처럼 엮인데 있다는 것과 같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부터는 많은 응험적 확신이 있어야 점을 정확히 보는 것인데

이런 역학적 실제성을 확신하고서야

또한 화학적이고 물리적 주기율과의 톱니를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운이라 해도

법칙으로 기계적인 면으로까지 훤히 보는 것이기에

반 푼수라도 교주가 되기도 하는 수준은 된다

이 건 큰 원력에 가까운 천기이다

그러니 어떤 종교도 동양철학의 지식이 알게 모르게 판을 치니

신이라는 명목과 반반으로 엎었다 뒤볐다 하면서 낌새도 모르게 신빙성을 주니    

기복적인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이 커가는 힘이 생기는 것이 우리나라인데

이 것도 학문적으로나 지성인의 가치로서 대하면 일반적인 것일 수 있으나

워낙 교묘하게 인간젹 접촉성과 멀리할수록 신비감을 더하기에  

실제 알맹이를 몰라도

꼭 기만하기 좋을만치 영험함도 잘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전이 뱀이라 함에 그리 무리수가 아님은

거칠고 메마른대다 나무를 태워서 일군다는 것인데

이런 독한 삶의 구조가

또한 밖으로 몸을 구불구불 불같은 춤을 추며 나온다는 것이니

꼬불꼬불 산길마져 길을 꼬으듯 허물줄을 타고 나오면  

자신의 마춤 옷같이하고서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만일 뱀 한 마리가 火田의 몸짓으로 그 같은 주파로로 해서

생물로 태어난 물질계로서의 인연이라면 그는 네 다리보다 

불길처럼 살다 이열치열인 듯이 살다 가길 원할지 모른다

이 것이 물리학적 풍수가 아닌가?

즉 산의 허리에다 띠를 두른 것이 정장을 하든가 의관을 해서 보니

무지개 궁궐에 붉은 옷을 입고 조회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그 반열의 줄서기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 되는데 

이 것이 결국 艮象이 乾象으로 가니 그런 모습이더라는 것이고 

이 乾象이 머리이니 이마의 주름의 띠처럼 띠는 것이더라 

왜 그럼 이마의 띠인가 

이는 乾은 老陽이요 노인을 말하는 것이요 

당연히 늙어 짙은 주름이 허리띠와 같음이 아니든가 

그러니 젊어 허리 힘이라 하나 

늙은이인들무얼 그리 아쉬우랴 

이마의 주름 벨트가 인생 늙그막이 아니면 차지지 않는 보물이기도 하니

진정 영혼의 힘인 것이니

우린 그 색보다 주파수와 그 파장성의 굴레를 주시해야 한다 

무엇이든 끌어들인 구심이면 파장성의 식별같은 마크가 색이 아니든가

이는 곧 전자층적 반사요

달과 같은 위성이 되는 것이니 

인간이 월경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러한 취용성의 원대한 진리로서의 경문과 같은 위대함일 것이다

 

 

대나무! 그 공의 흰 머리로 지다

 

대나무는 허공 33층을 도통하고 흰 꽃이면 

인간은 팔만사천 년을 살고 흰머리이듯이

도통이라는 것이

마냥 영혼의 계별성으로 시공적 수명의 차이냐와

좀 더 물리학적 개념의 과학화로 의학적으로 늘여진 수명이냐에서  

인간이 천 년 이천 년을 산다면

몇 살의 얼굴을 표준형으로 할까

마냥 변신이 되는 무형 아닌 다음에야

그 기본성을 있을 것이란 것인데 

아마 사, 오십대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상은 육체적 노화가 되어야 하는데 

그럼 노인가 되어서 영구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아니고 

이십대에 성장이 멈춘다고 하더라고 

그렇다고 성장만이 노화를 막는다는 것도 아니니 

어느 선에서 노폐성을 해소하면서 유지하는 피부가 

사오십대의 피부갈이 정도로 맞추지 않는가도 있고 

이를 보면 대나무가 그 한 줄기만으로 

도를 다 이야기한 살아있는 탑과 같이 보아지는 것이 

아무리 만 년을 산다고 해도 

잛은 순간이라고 할 정도여도

결국 떠날 시점에는 늘 흰머리로 갈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인데 

이는 곧 대나무가 천상계 33층이라고

마디에다 잎새를 펴고 도의 사다리가 수명과 함께 놓여지듯이 한다면

그렇게 도가 통하여 어느 세월엔가 하얀 꽃이 피듯이 하여 죽는 것이라면 

이는 곧 인간이 팔만사천 살을 살다가 흰 머리가 필 때와 같다는 것이다

 

 

나르시즘의 사탕 맛

 

사주에는 격과 오행을 중요하게 치는 데는 그만한 그릇이 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여자의 사주에 관살이 많으면 妓라하고 식상이 많으면 娼이라고 하는데

여자 사주에 관이 많으면서 도화이면 애인도 많고 인기도 많은데 

실상 누구라면 알 정도의 유명 배우도 결투 했을 정도였다고 하니 알만한 것인데

본래 기생 장사가 제일 돈 벌기 쉬운 사주인데 

이도 운이 좋은 운으로 가면

장안의 내노라는 꽃들은 다 둘러들이며 장사를 하는데 

운이 반대로 가면 손님은 많고 보내 달라는 손님은 리스트에 꽉 넘치는데 

아가씨가 없어서 장사를 하지 못 한다 

그러다  식신이 기신일 경우 미성년자 기용으로 벌금을 내야 하는 꼴이 되고

인수가 없으면 면허가 없어 불법 영업으로 눈치를 봐야한다

즉 인수가 많으면 러브호텔을 함이 적당하고 

왕상하면 차로 운송하는 책임을 많는 일을 많이 하고 

없으면 거리에서 아가씨 장사를 한다  

이러한 요소는 황진이같은 명기가 나올 가능이 있는데 

그렇다고 형태가 그렇다는 것이지 그 규모와 전반성은 개인마다 다르다

이러한 사주는 좋은 것이 없는가?

있다!

이런 구조의 사주는 시집 식구가 많고 남편 형제들이 많은 종가집이 좋다

즉 관이 발동하는데 재가 공망이면 아가씨가 없는 것이 되는 것이나 

형이 공망 되어도 같이갈 동료가 없어서 공치는 것과 같이 

관은 남자인데 시집식구로는 남편의 형제들이기 때문에

자기 아들처럼 거둬야 하는 짐도 있으나 주위의 칭송은 많이 듣고 

형수를 공경하고 여왕처럼 모시는 사주이고 

관이 발동하는데 형이 공망이면

장가 못 간 남편 형제 중에 장가가는 날인 것이 된다

즉 여자가 하나 들어와 자신의 짐을 던다는 것이 된다 

우린 과거의 열녀들이 희생하며서 살아도 영예로워 했거나 

자부감을 가졌다면 그로 칭송할 일이지 불행했느니 할 수는 없다 

즉 대가집으로 시집가 그 어려운 집안을 일으켜 세우며 

시집 식구들은 다 키워 시집 장가 보낸 공덕이나

이 나자 저 남자 친구같이 애인같이 잘도 끼고 있다가

분위기 좋은 사교장이나 잘 꾸려 이 남자 저 남자

좋고 애쁜 여자로 이어져 주며 이익을 챙기는 것이나

그 건 그의 선택이요 만족도를 나타내는 것이지 

뭐 어리석도 바보처럼 살았느니 해도 

사주 상으로는 같은 격국의 다른 모양새일 뿐 

그 애고와 인간애 치이는 것은 마찬가지로 격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의 사주에 재가 많으면 처첩이 많은데 

너무 강하면 여자와의 잠자리조차 기피를 한다 

또한 여자들이 많이 따르는데 

비견 운이 오든가 합운이 오면 여자가 떠나든가 결혼을 하는데 

이 거 운면상으로 보면 그 무게를 더는 것이기에 

실망하더라도 결국 본처에 더 충실할 수 있기에 인생은 더 나아지는데

당사자 간에는 피눈물이 나는 것이다

즉 사주란 서로 함께 산다는 것인데

즉 처제를 시집 보내서 그 가정과 함께 동서가 됨으로서 

사회적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로 누적되듯이 재가 많으면

시집이나 장가 못 간 처가 사람이 많다는 것이고 

자신이 처가 식구 책임을 많이 지는 편이고

아니면 처가 형제들이 기세를 부리면서 좌지우지한다

그러니 형효가 오면 얼마나 반가운 것인가 

동서하나 생기고 짐하나 덜고 

그런데 이 것이 첩이 경우 

도리어 떨어져 나가는 데도 애글복글이 되니 

가난해도 애첩 찾는 재미로 재산을 탕진하게 되는데

도리어 무리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주는 제 나르시즘을 진 채 무겁고 가벼위 지는 진행이라는 것이다

나도 이제 많이 정리 하나보다

이러한 글들은 인연되는 후학들에게나 가르칠까 하는 것인데 

 

 

부동산의 숨은 그림

 

본래 인수도 부동산이고 토도 부동산인데 어느 쪽으로 비울을 두느냐 하면 

사주 상과 점 상은 다른 것이다 

사주 상으로 토가 많으면서 재가 많은 자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첩을 얻어 미덥지 않아

할아버지가 장손에게 따로 전답을 물려주었는데

그 건 인수보다 토가 강하고 많은 경향에서 이고

그 전답을 날린 것도 아버지였다고 하는데 

이는 재성인 아버지가 비견에 꺼리낌 없으니 관으로 날려버렸다는 것이 된다

 

 

육친 속의 나와 나 속의 육친

 

또한 사주학에서 육친의 사주 속에 내가 있는 것이고 

내 사주 속에 육친이 있는 것인데

이 걸 어떻게 하나같이 볼 수 있느냐인데 

일례로 

土財가 많은 사주에 兄運에 부동산을 형제가 이전해 갔는데 

보통 財가 兄運이 오면 돈으로 기부를 한다든가 

단체에 활용도로 빌려주든가 하는데

그 이전해 간 형제의 사주에도

토와 합이되어 놓치지 않는 것을  보면 

결국 운이 兄를 더했으니

나무가 형제애를 빌미로 土를 더 얹어 붙든 형국이 된 것인데

이전해 간 土이고 남에 갔더라도 사주에는 그 土인 것으로 보면 

이전해 갔더라도 比肩이 중첩되면

그 田土는 형제 손에서 다시 남에게 팔린 형태가 되는 것이다

즉 내 사주의 土로서 형제에 넘어가서 다시 팔리는 것까지 알 수 있는

정체성은  된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글이 중요하냐 하면 

문서가 印受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와는 확연히 다른 것으로 

이는 곧 인수가 원소 주기율적 패턴의 族的 외연으로 진행 중일 때 

그 하나 씩의 원소는

이미 주기율적 두께를 넘은 이온적 합과 같다는 것이다

 

 

길음

 

길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울음이 울컥 쏟아졌다

길음이라고 했다

한이 북받쳤다

길음에서 한을 남졌다 

그래서 왔으되 출행랑쳐야 할 것이다 

미아리 고개가 목젓 아래로구나 

길음의 가수에게는 어림도 없지 

한으로 집지으려는 자는 쫓겨나리니

 

 

막걸리만큼은 걸러내야 맛은 종교가 더한 것 아닌가?

 

어차피 인간은 꿈 깨기 싫은 동물인 것이나 

어쨌거나 꿈은 깨기 마련이다 

존재는 사탕 깨듯이 하는 일은 있게 마현이다

그래도 금방 깨어나지 않고 빨아먹을 수 있는 것이 종교다 

그러기에 가장 은밀히 꿈깨지 않는 합의체가 종교다

즉 자신을 기만하는 것도

신이 이해하고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고

떼쓰고 어거지 부리는 것이 되지 않으면

결코 부모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듯이 또한 신이라는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런 합리성이길 바라는 것이나

종족만 달라도 등급이 있는 마당에도 형제라 하면서도 칼부림에

그렇게도 한 뱃 속에 난 듯이 할 수 있다?

다 그런 것은 역사적 객관셩이면 충분한 것이니 차치하고서라도

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그 것에 속고 편한 것에는 모르고 당하느니보다 나은 것이 있다

눈코 뜰새 없는 변화에도

충실한 듯 해도 어느 선엔가 게을러질 수 밖에 없는 것 

눈 뜨고 싶지 않는 거드럼에는 결국 그런 막이 필요하다 

막걸리만한 막이 필요하다 

이도 다 자신의 선택에 달린 것이지 신이 뭐라나

 

 

초현실적 구도로서의  백호살

 

사주에는 白虎大殺이라는 살이 있는데

鬼門關殺과 함께 중요하게 보는 경우가 있다

백호는 모두 土星으로 이루어진 地支인 것인데

이를 왜 백호라 함인가를 설명하자면 좀 실감나는 회화(繪畵)가 있다

백호는 기암괴석이 특출한 절경을 말하는 것인데

그 비경을 절세의 경관인 것이라

웅호하고 비범하기 그지 엏는 것이 인간의 상에도 잘 드러나는데

거기에는 밭떼기 하나 붙여 먹을 수 없는 거친 야산의 극치를 말하는 것이다

즉 이름은 호랑이 가죽 같이 명산이라고 남기나

그 속을 보면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린 이빨과 같음인 것이다

이는 풍광 중에는 백미이니 백호라고 할 만한 것인데

인물은 비범하게 생겨도 실속은 없다는 것이 三命通會에도 기술된 바가 있는데

이 격은 격이 되기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이 백호가 편재에 도리어 미약함을 갖춘 사주를 보았는데

자신의 백부가 6.25 사변 때 납북되고는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고

후사는 딸 밖에 없어 자신이 양자로 되었다는 사주를 본 것이 있다

본래 백호살은 일도 사소하지는 않는 면이 있다

거의 천재지변이나 전쟁이나 대란 등에서 혈광을 보는 것이니

인생이야 인간에 불과한 생사라지만 일은 사소하지 않은 데서 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