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실(이 글은 순수 창작품임)

왜 DNA는 이중 나선형인가

narrae 2014. 4. 30. 03:48

원소성

 

원소 4 주기율이 도솔천이요

원소 5 주기율이 도리천이 되는데

이는 원소 4 주기율부터 원소 10 개가 늘어나 것으로

도솔천의 하늘에서 태어날 때의 옷을 입은 채 탄생이

이 10 개가 더해진 원소의 옷을 입은 원소인 것이고

도리천에도 이 10 개의 원소로 의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소 6 주기율 란탄족이 15 개가 되면

갑옷처럼 비늘인 잎새을 꿰맨 것과 같고

악티늄 족이 15 개의 원소를 더하면

인간처럼 완전 가죽이라는 자루와 같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영혼이란 나무와 같은 것이고

이를 잎새로서 싼 것이 나무인 것이고

이 잎새를 좀 치밀하게 아물린 것이 비늘인 어류요

이 비늘이 사방으로 완전 봉합한 것이 원소 7 주기율인 포유류라는 얘기다

그러니까 원소 3 주기율에서 보면

3 주기율은 호도알과 같은 불이라고 할 때 머리이면

4 주기율이 몸

그 다음 5, 6, 7 주기율의 피부는 의상에 속하는

보풀 눕혀 유리광처럼 낸 누진성과 같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곧 원소 3 주기율까지

즉 머리가 1 주기율

양 대칭이 2 주기율

이목구비 구멍이 다 형성된 해골이 원소 3 주기율

그리고 불이 심지에 붙음이 원소 4 주기율이라는 것이 된다

그러니까 머리에서 1이 출발을 하여도 4며는 몸으로 넘어간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 걸 역류성으로 보면

 

   四

  111

  111

   11

   11

   ㅡ

 

三이 옆으로 세워진 중심이 심장인 것이고

이 대칭성이 二인 것이요

우리가 디딘 자리가 하나라는 것이 된다

이렇게 상하가 접히는 부분이 4와 5인데

이는 원소 5 주기율이 4 주기율과 木에 해당이 되는 것이고

목 뼈는 4 주기율인 신경을

기관지는 5 주기율인 바람을 통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갑상선이 촛불의 심지처럼 역량을 발하는 것이니

즉 木인 갑상선 부위가  원소 주기율 5인 요오드 자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 만나야겠다고 작정을 했는데

의외로 우연히 미리 만나게 되는데

즉 저녁에 만나려 하는데 아침에 길에서 마주한다든가 하는 것

이도 바로 정면으로 마주치면 길을 가로막을 정도로 급박함이 있는 것이고

뒤에서 부르는 경우는 내 일을 마치고 나중에 일어나는 현상이고

내가 그 사람의 뒤를 따라보면 바쁘다고 나중에 미뤄도 끝까지 잡고 늘어져야

불길한 상황도 미리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 헤어졌는데 방금 다시 보게 되면

이도 일상적 회합이라 할 수 있으나 그 뒤에 미해결점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된다

 

 

탄소와 나무

 

그럼 원소 4 족이 곧 木 震雷 4 族에 속하는데

이는 곧 탄소를 의미한다

곧 나무는 탄소 덩어리라는 것이고 이는 알카리성의 촉성의 정점

즉 열에 대한 인내성이 최고인 것으로 불 火의 지속성과 관련지어진다

즉 이산화탄소로서 불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음이

탄소의 자기 영구성과 함께 물린 빛의 존속성이라는 것이다

즉 원소 4 족이 나무며는 산성이여야 하는 것인데 왜 알카리성인가

이는 八卦가 접히는 부분에 四로서 半의 끝이 되는 탄소라 

나무의 주성분은 탄소라는 것으로 이는 곧 잎새가 퍼지지 않는 한 

산성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이는 곧 산성을 줄기세포로 보면 

나무의 기둥인 장작급은 좀 더 근원성을 나무가 갖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럼 탄소가 알카리성으로 독이 오를 대로 올랐는 상태를 말하는데 

두 개의 산으로 떡잎을 펴면 곧 불이 피는 것인데

이는 불이 떡잎처럼 보일 수 있는 안목적 시공성이 설명이 되어야 한다

 

 

탄소는 산소를 넘으면 빛이 흡수되어 보이지 않아 빛이 아닌가?

 

우리가 탄소를 원소 주기율 震木 4 卦로 할 때

이를 앺새로 활작 편 대칭으로 보면 원소 8 족은

원소 5 주기율의 활작 편 것과 맞물리는 것인가 하는 의문점을 풀어야 하고 

결국 원소 주기율은 震 4와 巽 5가 접히는 부분이 펴는 날개 짓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며는 탄소가 장작이면 산소가 장작을 패듯이 하면 불이 나는 것이고 

그럼 네온 급이면 더욱 안정적으로 불빛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 되는 것이다

허나 산소를 넘어서 빛이 안되는 것은 마찰력보다 훕수성 때문에

탄소를 산소가 막음으로서 빛이 유지 되던 것이

네온으로서 완전히 퍼져버리면 빛도 유지가 안 되고 머물 수 없기에 

빛이 없어 보일 수 있다는 이론이 되는 것이다

 

 

乾金의 개체성

 

절대 온도 K -234도 씨에서

얼어 있는 모든 상황을 금속성으로 해서 乾金으로 할 때

그 고체성 속의 액화성이나 기체를 함유할 수 있는 경계가

어떠한 시공성을 한 손바닥처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

즉 그 냉의 고체성에 냉광의 손바닥을 말하는 것과 같다

 

 

개념과 관념을 벗은 일탈성 

 

즉 원소 4 주기율이 목 뼈고 원소 5 주기율이 기관지라면 

과연 그럼 그 사이로 잎을 벌린 꽃이 입술이라면 

식도는 결국 꽃의 대궁으로서 이허중인 이화라는 것이다 

즉 빛이 보여 빛이라는 것이 아니라 

식도 자체가 이허중으로 열어 꽃가루를 채움이 위장이라는 것이다 

즉 기관지와 목 뻐가 원소가 접혀 일어나는 것이라 할 때 

그 사이로 꽃술이 일어남이 식도라는 것으로 

위장은 꽃술로서 삼켰으니 혀가 되는 것이다

 

 

수리 연산의 기하학적 한 형태 

 

즉 진괘와 손괘가 대칭일 때 

이 공간 사이로 혀가 꽃술이라면 

4와 5라는 숫자는 3 으로 됨에

수리의 귀소성과 같은 것이고  

이는 곧 물질의 연소성과 나무의 개화를 나타내는 것이고

이 3은 감수 6과 대칭이 됨에 결국 재로 돌아가

은하로 퍼져 있는 어둠인 인자와 같다는 것이 된다

이는 곧 눈과 눈 간의 별과

귀와 눈 간의  앞뒤로 블랙홀과 화이트 홀이라고 할 때 

우주의 졉혔다 펴졌다 하는 부분이

震巽의 날개인 대징으로 하는 것인가 

재와 불의 사이 

즉 블랙홀적인 화이트홀과의 관계에

눈썹이 귀를 당겨 웜홀과 같은 것인가 하는 것

즉 머리칼은 은하수와 같은 것이다

즉 우주는 머리칼처럼 흐르는가 같다 

그 중에 소생성처럼 머문 것이 눈썹이다  

여기에 눈썹은 손풍의 목성이니 소행성인 것이고

눈이 화생토로 코를 구운 것이 지구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관계 

 

블랙홀은 무지개색 수의 공간 사이를 열어 

물처럼 흐르게 한 것 

화이트 홀은 삼원색의 공간 사이로 흐르게 한 것

그러나 삼원색은 무지개처럼 사이가 보이질 않으나

드러내고 보면 천지인과 같은 것이고

이에 블랙홀이 더 섬세한 부분이고

화학의 원소성처럽 정밀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고  

화이트 홀이 꽃처럼 확 편 것이 아니라 

그 화이트에 얹혔긱 때문에 오히려 

삼원색인 면이 더 넓은 인식으로 넓어보이는 시각성으로

오히려 그 사이의 섬세성인 7 개의 검은 색보다 못한 경우 

결국 흘랙홀에는 더욱 섬세해져 난장이 나라처럼 있을 수 있는 개재 

즉 화이트 홀에 얹어 삼원색적 객관성으로 커져 있는 거인국같은 차이일 뿐 

쪽 남쪽이 블랙홀이면 북쪽이 화이트홀이라는 개념이 안 되는 것 

즉 절대 온도 내의 화이트 홀에 있는 것 

절대 온도 밖에 이루고 있는 물질성의 블랙홀이라는 것이 된다 

이는 인력의 방향이 반대만 되어도  물질성이 타파되는 점에 있는 것과 같다    

 

 

우리의 관세음이 되는 부분

 

우리가 눈과 눈 사이가 항성 사이 톱니처럼 이빨이 있다고 할 때 

어찌 되었든 이 두 개는 소진이 되어야 하는 문제

즉 양 눈의 초점으로 들어 소진되아야 하는 부분

결국 이 것이 귀로 듣는 부분으로 머리 한 통이 되니 

이를 관세음이 되는 부분이라 하는 것이다 

즉 잿점 하나로 세상의 소리를 다 듣는다는 것이 된다

 

 

무색계  兌金 원소 2 주기율

 

잿점에서 다시 일어난 것이 귀라면 

이는 잿점의 귀 

이를 원소 7 주기율을 안고 태어난 시점으로서 

한 귀의 관상학적  년한이 7 년인 것이고

이 것이 양 귀 대칭성으로 14가 된다는 것인데

이는 원소 2 주기율과 3 주기율의 전형원소 기본을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는 무색계 性인 원소 2 주기율이라 할 수 있고

하나는 원소 3 주기율인 색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럼 흥미 있는 것이

탄수화물이나 산소라는 것이 이미 무색계에 달린 것이라면

결국 무색계의 神도 음식을 시공과 상관 없이 같이 먹을 수 있는가가

자연 도출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왜  DNA는 이중 나선형인가

 

졍류자와 DNA를 보자면

우리가 원소 4 주기율까지를 회전체로 할 때

원소 5 주기율은 외벽의 자석과 같은 것으로 

전기를 손바닥에 모으는 듯이 할 기도형이 될 것이다 

여기서 원동기의 반으로 정류자처럼 갈라져 음양으로 달겨감의 

회전체로서의 극치가 4 족인 탄소라는 것이고

결국 이는 염기성과 함께 탄수화물이 치중되는 것이다 

여기에 자석 쪽이 원소 5 주기율부터이니까

여기부터는 질소 족으로서 DNA의 근간을 이룬다

이는 곧 상하괘 사이의 접하는 부분 

즉 원동기의 내외가 접하는 졍류자 부분이니 자연 

이 것은 내괘와 외괘가 함깨 엮여 꼬여가지 

이를 이중 나선으로 이어져 가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칠칠이 사십구가 이루는 우주

 

왜 칠칠이 사십구인가는 이온 합에서 잘 보여준다

즉 원소 8 족인 허공성을 배제하고 7 족을 끝으로 1 족와 이온으로 묶고 

또 6 족과 2 족이 더 단단히 묶음으로서 이 것이 씨의 껍질이라고 할 때 

그  사이  3 개의 붕소, 탄소, 질소 족은 

전이적 성격의 전극으로 서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인데

이 것이 胎고 눈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DNA가 싹이나 등나무처럼 컸다는 것이다

즉 산소는 이온의 전극을 끼지 대문에 

마치 불을 잿점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데 

그래서 약오른 탄소가 산소에 저항성을 받아 불이 되는 깃이라 

이산화탄소가 곧 불이 되게 되어 있음이다    

 

 

 

 

女神의 노래

 

여신인 처녀가 총각 만나기를 보자면

일면 달의 신 아르테미스를 처녀의 신이라 하는데

여기에 또한 이 태양이 도는 은하단이

처녀좌인 더 큰 은하단을 도는 것이라는 것으로

이를 건곤(乾坤)으로 하면

그 안의 수 천 개의 은하단은

결국 태간(兌艮)의 기울기의 대칭을 평형으로 이루는 균형을 잡는 것이고

이 것이 태양같은 항성인 별로 되어 감았다 풀어다

삼투압적 서레질의 감리(坎離)의 대칭이라는 것이 되고

산소와 유기질이 있는 것이 혹성(惑星)이라는 범주가 되는 것이면

진손(震巽)의 대칭이 된다는 것이니

이는 바람이 달을 낚는다는 것이 아니라

달이 청풍을 낚는다는 말이 더 실감이 나는 것으로

지금 이 자리가 처녀좌의 옷깃이 날리는 낚싯대 아래에 있다는 것이라

처녀좌!

그리도 멀고 큰 것이라는 것인가?

아니지 않는가

처녀좌가 곧 아르테미스인 달로 화신이 된 것이 아닌가?

그렇고 보면 지구는 총각이네 그려

오! 모든 연인들이여!

아르테미스가 처녀좌의 우물을 팠음에  

달 입을 열어 영랑한 노래를 부르며 오느니

<내 님을 누구일까

어데 계실까

무엇을 하는 님일까
만나 보고 싶네
신문을 보실까
그림을 그리실까
호반의 벤치로 가봐야겠네>

 

 

사랑의 법칙

 

어릴 땐 구슬치기

커서는 사랑치기

커 봐라 그 점마다 찌릿찌릿하는 사랑

평생 떨어지지 못하는 구슬치기

외계인의 한 철 간 추억 더듬기인 구슬치기

외계인이 지구에 불시착을 했을 때 겨우 생존해 전해야할

그래도 짐승보다 나은 문명인이라는 것

원자 알맹이로 만물의 생노병사를 다 한 손에 쥐고 있음을 가르켜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6 살 늦은 진도로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원리를 가르킬 수는 없는 것이라

그렇다고 그조차 비싸게 치며 갓 구연동화로 왕자에다 귀족으로 만들어 놓은 꿈에 

몇 해도 안 되어 꿈 깨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니 

가만히 보니 가장 적절히 그 기본형을 가르킬 수 있는 것이 바로 구슬치기라는 것이렸다

애기들아 

그 홈에는 말이다 어른들이 마음만 일어나면 사물이 피는 곳이란다 

거기 네가 넣은 홀 말이다 

방금 어느 마음이 원자 구슬 8 개에 두 개로 그릇을 만들고

6 개를 담아 나중에 2 개  더 넣어 혼합된 곳 

그 것이 H2O라고

네 아버지가 네 어머니 속 타는 불 끄려 달려 갔구나

애들아 다 네가 갖고 있는 주머니의 구슬이 그러한 것이니

어맇 땐

이젠 다른 홀을 짚어 보아야 한다고 또 구슬을 굴리나 

어른이 되면 구슬을 채워도 채워도 모자라는 것이 사랑이란다           

 

 

 

이를 잘 보면

 

乾坤이 원소 8 족 중에 양 손인 것으로 할 때

그 나머지 6이 실이라고 할 때

양 손 사이로 실뽑기 게임을 하듯이 걸쳐 놓은 듯

그 남은 6은  양수(養水)와 같다

이를 陰數 6으로 취용을 하는 것이 易學 上의 常數가 되는 것이고

또한 원자 번호 6이 탄소이다

6은 陰水로 최대의 어둠을 함류하는 물질일 수 밖에 없는데 

이는 탄소 나노튜브의 빛의 흡수률은 

肺인 陰金이 산소인 木을 흡수하며 호홉하여 온몸을 돌게 하는 메카니즘의 깊이와 같다

또한 다른 원소에 비해 연소가 제일  안 되는 물질이다

이러한 합의 덧셈과 뺄셈이 치밀하기로 치면 

토정 이지함 선생님의 수학성이 갖는 사물의 특성으로 촉감을 발하면 

이를 징검다리로 하면 다시 수리적 영역으로 넣어 발을 깊은 물에 담금질해보기도 하고

다시 징검다리적 스텝의 양말을 신고 딛고 가는 센스는  신의 경지에 다달았다는 것이다

즉 중간에 돌을 하나 놓아 사물성을 더할 것이냐

아니면 수리를 더해 흐르는 물과 같이  

모래 밭의 무수한 알처럼 둘 것인가 하는 자유자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리니 수리란 자투리가 남았다고 해서 버려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곧 원소 8 족 안에서는 자투리가 되어도

자투리의 물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 빛이라도 잘라  그 물성에 머물게 하여 소진하게 한다는 것이니

그러니 모든 물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 절차성에 그 물성으로 머물어 있다는 것이니

결국 물질도 과정 상의 눈금에 맺힌 단위를 언어화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기호학적으로 언어를 이해하지만 

사물은 그 물성만으로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내가 木에 왔떤 水에 왔던

그 것은 내 머문 정류장의 넘버 눈금 표시가

수리가 아닌 물성으로 보이는 순간과 같다할 뿐이고

이 것이 육근과 육경의 경계를 이룰 때

자아와 영원성으로 주체로 보일수 있다는 의식이 자기장적으로 일어남에

이 것이 원소 5 주기율과 같이 지구 솜이불과 같다고 할 때 

水로서 새로운 출발이 되면 원소 6 주기율인 것이고 

이는 생물이 이불에 물이 꽉 찬 것과 같은 진화 단계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그냘 물처럼 흘러가게 또한 거기에 뿌리 듯이 해도 사는 영역이고 

육지로  안고 나오면 포유동물처럼은 못 되고 나오고 흘러버리는 차원 

이 수습력이 원소 6 주기율 란탄족 15 개의 힘이라는 것으로 용궁을 의미하며

완전 온몸을 감싸 흘리지 않는 피부가 될 때 

물룬 수중 생물의 피부성도 마찬가지로 해서 원소 7 주기율의 악티늄족 15 개로 

윗니빨 15 개 란탄족 

아랫이빨 15 개 악티늄 족으로서 

인간의 조상의 악티늄 족이라는 진화로 자아라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된다       

 

또한 우리가 원소 5 주기율은 손풍(巽風 木)이라는 것과

목의 갑상선이 

그 원소 5 주기율인 요오드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

즉 요오드가 원소라고 할 때

우리가 그 원소의 가감에 따라 몸의 체온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

마치 솜같은 이불

즉 인간이 4 주기율 까지 진화될  신경망이 형성된 단계라고 했듯이

거기다 말초신겅까지 미쳐

구름처럼 뭉실뭉실 살이 오른 것처럼 진화한 것이 그 단계이고 보면

이는 원소 5 주기율인 것이니

이는 곧 온 몸의 전반적 보온 기능과 무관하지 않으며

내성적이고 외향적으로 성격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또한 주석도 마찬 가지이다

이 주기율의 금속이 가장 나물처럼 먹기에 알맞다

 

 

우주와 대 지헤

 

초신성이 폭발을 했을 때

만일 신의 세계가 복사되는 것이라면 

과연 인간으로 완전히 굽겨야 

그나마 야차로나마 건지는 다급함을 볼 수 있는 것이고

결국 이 야차가 생이라는 성장으로 담글질이 되어

생과 사의 순리를 깨달아야 할 텐데

그 동안에 스스로의 독을 풀지 못함에  근거를 둬야할 것이다   

그래서 이 태양계 즉 항성의 범주로 윤회의 틀로 잡는다고 할 때

인간계의 근원이 된다는 것인데

이 위로는 좀 더 맑은 축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서 氣라는 것은  눈으로는 보이질 않으나 

다른 시공 상으로는 불덩어리로 보일 정도로 트였을 안목이 있을 것이란 것이다

이 것이 우리의 몸이라는 차원의 베일을 벗기는 기본형이 되아야 할  것이다  

즉 사천왕천의 신이 벽 없이 그대로 보는 것이라면

마치 온몸에 불길이 핏줄기처럼 도는 듯이 보일 것이며 

마치 벌겋게 화난 인물처럼 보일 것이고 

만일에 도리천의 신을 보게 된다면

불길만 보이지 실제 그 형상을 보기 힘들 것이라 것이 된다

그러니 이 것이 독성을 머금은 용광로라고 할 때

먼저 굽긴 상태에서 서서히 독을 빼는 수 밖에 더 있겠는가

즉 신이 찰흙으로 굽겨 인간인 것이지

인간을 따로 구웠다는 말씀과

애초에 인간은 무색계 신이었는다는 말씀과는 많이 어긋나는 부분이다

이는 곧 인간이 신이 된다는 말이

매우 어리석은 듯이 가당치도 않는 듯이 몰아세우지만 

또한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되돌이표를 생략을 한데서 이해되는 

단막적 지식에서 나오는 바라 할 것이다   

그러니 어쨋든 풀어놓고 헤쳐 봐야 하니  찰흙과 같은 몸이 필요했겠지 않은가 

즉 천상계 사람이 인간을 볼 때는 

우린 마치 돌덩이 속에 있는 굴과 같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굴 속에도   

태양같은 심장은 마지 용광로에 불과 같은 것이고 

잎새에 야차는 곧 세포인 엽록소를 말하게 되는 것인데 

이는 곧 

입으로 뿌린 것이 수 조 개의 세포와 같은 것이요

항성과 같은 것이라고 할 때 

그 세포 중의 하나가 다시 태어나면

또한  심장이 불으며 엽록소마다 아차를 맺히게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 된다

 

 

코 뚜껑이 人中을 여니 곧 인간으로 태어났더라

 

인중의 끝이 물린 입술이 지구인 것이고

앞니 두 개 사이가 금성인 것이니

그 아래 편도선이 수성이요

이들이 감싼 것이 혀라 혀가 곧 태양인 것이고 

달은 이 지구의 궤도와 함께 도니 곧 입술과 동일체라

또한 면으로 볼 때 

인중을 덮었을 때 코 끝 또한 입술의 중앙인 인중이라  

이 뚜껑을 열었을 때 다시 인중이 열렸음이니

이를 곧 <뚜겅이 열리니 인간으로 태어났더라>

 

 

관상과 풍수

 

사람의 옆 모습은 이 郡 字인데 앞통수 뒷통수이다 

앞 모습은 그대로 面인 것이다 

그러면 洞은 어떠한가 

이는 눈물 샘에서 눈물이 코 밑으로 흐르는 것이니 

물 水인 것이고 그 위로 두 눈 사이와 입을 지나갔더란 것이니 

이는 곧 洞은 개울에 붙어 함께 선 線의 차원이고 

얼굴의 앞 면은 面인 것이고

옆으로 보이는 君의 모습은 입체형이라는 것이니 

이만한 차원의 표현이 어데 있는가 

 

 

國이라는 字

 

이 國이라는 字는 사람 옆 모습 君자를 좌향 좌에서 우향 우로 돌려 놓고 

한 판 사진 찍어놓은 것과 같은데 

아마 꼭 나라에 부끄럼 없는 얼굴이 되라는 것과 같은데 

이 惑字는 혹인 것인데 

악성 종양일 수 있고 

그냥 모양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고

우리 선조들이 문자를 만들 때도 국가를 위주로 세상을 본 게 아니라 

국가도 하나의 혹인 부분으로 봤다는 것은 가장 글로벌적 대인의 기개와 

역사 의식과 생의 시간이라는 것에 인류애적 개념이 아니든가 하는 것이다

 

 

이 道라는 字는 참 오묘한 데서 따로 논하는데 

 

요즘 정치판에도 지방 자치는 당의 추천을 없애자는 것인데 

과연 그에  지자체가 완전 독립적인가도 있지만 

그 자립성의 근기로야 오히려 중앙에 줄 서기 바쁠 것은 뻔한데

이 것인 바로 도가 곧 머리 首 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치 외줄을 탈려면 긴 막대로 균형을 잡 듯

즉 촉수나 안테나도 길게 뻗은 부분이 머리라는 것이다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즉 가지는 기둥에서 나온 부분이 머리라는 것이다 

기둥은 제 나이테를 따로 먹는 것인데도 가지에 또한 나이테를 주는  것인데 

나무가 유지하는데 우듬지만 머리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즉 가지가 자축거려도 기둥이 머리라는 뜻이다       

 

 

난 참 꽁무니 뺄 일은 많아서  

 

오늘은 종종 듣는 이야기를 흘러보내기 전에 다잡아 보아야겠다 

그 종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남에게 선물을 하려면 얼마를 어느 정도를 해야 할지 모르니  

아예 하려면 명품 하나 정도 해 주어버려야 뒤가 개운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웃으면서

요즘 아줌마들 문제가 먹고 살기 힙들어도 

한 번 씩 나가는 데야 명품 백은 몇 심만은 쓰임새는 기본이요

등산을 가더라도 명품이어야  하는 데

아닌 것은 쪽집게첨럼 남의 입에 오를 것을 자주 보았다

어찌 된장녀 같은데도 그리 잘 아는지

누구의 옷 차림새는 어떻고 하는 흉은 슈다의 기본인 듯이 보일 정도다

또한 오늘 이 자리도 자신은 그런 것 사보지도 않고 산다고 하지만 

즉 그런 부류가 아니라고 역정을 내지만 

그런데 실상 역정을 내려며 그 자들에게 역정을 낼 일이고

호응을 하려면 내 말에 호응하면 그만이지만 

결국 역정은 내게 내고 그 자들에겐 호응을 한 꼴에 속하는 자들인 것이다  

즉  눈알울 부라리는 데야  난 또 기가 죽어 슬그머니 꽁무니 뺀다만   

과연 그 대화가 그런 부류가  아닌가?

 

 

백에 한 사람, 열에 한 사람이라도

 

그렇더구만유

저도 아주 예전에 떠나려는 마음도 있었지유

그런데 열에 하나라도

백에 하나로도

날 중으로 여기는 자 있으면

난 떠나지 않을 거란 약속같아서 

지금까지 남지 않았는감유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허더라도 

이젠 다 떠났다 싶었는데 

이젠 나도 떠나도 차라리 홀가분하다고 하는 판인데 

오늘에야 다시보니 

괜히 신경 쓰이네유  

젠장 어떤 친구처럼

군에 갔을 때는 지독한 군기나 남고

끗발은 이전하고 없는 데 가서는

쫄다구조차 안 들어오니 만 년 쫄다구더라고

그래도 명예라고 무슨 기동대라고 했다듯이 

간판만 생몸  열녀 홍살을 피우는 듯이 하다 나왔다더니

아이고 배가 가라 앉는데 

도망은 쳐야 하는데 옷 입은 채로 나오랄 때 나갔어야 했나 뷔여 

어쩔까나 이젠 옷 벗고 나오라는데 

어쩔 거여 

어쩔 거여 

저 나만보고 따라가겠다고 

아이고 

그만 남보고 따라갈 일이지 

뭐 볼 기대라고 

저기 가는 저 땟목은

옷 벗고 뛰어들라고 빨리 오라고

온갖 이맛살을 찌푸르는데

그리어! 

배가 침몰하더라도 

내가 마지막까지 남어주어야지?

이게 언제여?

벌써 이 십 년이 아닌감?

날 너무 무식하다고 나무라지 말어여! 

그럼 나 먼저 떠났어야 했는감유?    

난 오래 전부터 침몰하는 배를  탓으니

동병상련이라 더 애닯아 한 마디 하는 것이니 

너무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는 마시유 

그런데 내 배는 땅바닥에 닿은 것이유?

아직도 침몰하는 것이유?

 

 

육두문자에 욕발이 우글부글하겠구나

 

아마 시공의 차이 때문이라도 높으신 신들이야 

한 번 씩 세상 구경을 해도 산전벽해를 볼 것인데 

어저께  성기던 차들이 언제 빽빽해 졌는가 다시 보는 사이

아마 신명이 서울 시내를 본다면 이렇게 대답을 할 것이여  

완전 개판 씹판 되었을 것이라고  

저 작자들은 두 가지 유형에서 망가지는데

하나는 개구리복이라고 

목욕탕에나 벗어서 인간적 면모라는 것이 

입고도  더 평등한 듯이 망가지는데는 일가견이 있고   

또 하나는  운전대만 잡으면 씨발 개발인데

마치 육두 벼슬이나 하는 듯이 차는 쫙쫙 빼고 광내야 하고 

달리수록 쫙 깔리는  맛이니  

단순 무식 가볍다 해도 

쫙 깔리는 성품은 인격에 지장이 없다는 듯  

눈총은 더 가시같이 돋히는데

원전 운전대만 잡았다고 하면 뵈는 게 없는 종자들이니  

그렇게 쌍욕들이 우글부글 들끓을 건 뻔한 수순

완전 육두문자에 욕발이 우거졌겠구나 하니

얼핏설핏 보는 중에 종종 듣는 것도 상스러운데

버젓히 내놓고 버젓히 하는 욕이야 상판이 두껍지

완전 철면피 다된 문화로 문화인이라고 다닐 것이고

간판만 번드르하면 되었지 

진정성, 서정성이야 이미 접었을 것이고   

뿌리라도 잡는다 해봐야 돌고 돌기 바쁘게 달리는데 

인생은 또 어지간히 두루뭉시루 사는 듯이

폐 타이어 피로감인 듯 추스리고는 도인 냥 행세로구나 하겠지

 

 

이궁(離宮)에서 중궁(中宮)으로 해서 건궁(乾宮)으로 빠질 때

 

우리가 성철스님의 구원은 없다는 말이 새삼스러운데

지옥의 옹광로에 쇳물을 들이켜 뿜어내니

잎새마다 야차가 맺힌다는 대목이 있는데요

이 것은 인간이 죄의식은 없고 

이 보기 좋은 세상에 지옥이라면 볼쌍 사나운 것만

빨리 주제에서 벗어나기만 바라니  

참 쉽게도 좋은 것만보기도 바쁜 듯이 한다

그 것도 이 막깔 나는 세상에 보기 싫다는 것이 되는데

뭐 얼마나 좋은 정점이 매혹인지

추한 것은 다 뜯어고치기 바쁜데

추한 주제조차 무슨 죄악시되는 듯이 하지유

이 대목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는데 말이쥬  

난 구원은 없다고 동네 방네 외치고 다닌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원 주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건만 

괜히 내게 눈살이고 보면 너도 별 수 있었느냐는 식인데

곡 그래도 나보다야 수준이 다른 듯이 종자조차 다른 듯이 하는데 말이쥬

저도 부처가 밉지 저가 미운 것은 아니란 깨유

저도 이럴 땐 늘 부모처럼 끼고 살았다고 쉽게 버려지는감유?

인간인 냥 이해하고 살아야지 별 수 있는감유?

그러니 인간적으로 이해하니 답이 쉽게 나오네유  

난들 신의 속 마음을 다 알 수야 있겠는가마는

뭐 기적이라도 내려주어야 한다면

천지신명이란 것도 

구원이란 것 대주고 빰 맞는 꼴인데  쉽사리 나설 수 있었을까유?

그 것도 한 두 번 말이지 

아마 기적을 주었으면 천지신명만 개차반되었을 것이 아닌가유

결국 기적 갖고  결과적으로 신명만 무안한게 아니라 개발리는 판인데

그 오만이면 다음에는 더 큰 일 내지 말란 법도 없지 않는가유 

아무리 너그러운 신일진정 배알이 없나?

나야 아예 구원이 없어 잘 난 부처님이나 널리 구원하슈 

나야 하지 못 해 죽은 듯이  사는 것

걸움도 안 걷기고 힘이 없어 소리도 못 지르는 판에 무슨.... 

어떤 땐 치가 떨리고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을 때가 어데 한, 두 해인가유

우리도 윗 대가리들 어지려 놓으면 추스리기 힘드는 쫄따구일  뿐이고

은근히 빈정대기나 할 것 뻔한데

그 것도 누워 침뱉기이니 입 다물어야지유  

그들이야 모른 체 입 닫아버려 새월이 약이겠지 하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난 일주일 여유도 못 잡는 하루살이가 무슨

당장 내일 때거리가 없어 후달리는데 눈길 돌릴 틈이 있나요?

그래도 오늘의 이 때는 종교인이란 자체가 민망하니

여기에 빈 속조차 식욕이 당기지 않네요  

라면 매운 것조차 기만 끓어올라  온 골이 다 따깁네유  

이젠 머리 속이 염증이 생긴 것같으니 중병이 될 것 같네유

이 새대의 취약점 이 쪽집게라는 유혹에 있는 것에 있는데 말이쥬  

휴대폰 하나면 솔직히 옆에 누가 있던 상관없다

아무리 급헤도 자판 하나 누르면 아마 열차 앞 칸에서 뒷 칸 오는 속도보다 더 빠를 것이다

더 쪽집게는 쪽집게로 모두 대학생으로 만든 것이쥬

그래도 최고의 지성라고 부추겨 준다면야 감지덕지지유  

굳이 책도 가방에 넣을 필요 없이 끼고 있는 것만으로 부자같지유

그런데 이 거 너무 구태의연한 것 아니유?

이젠  대학원생도 밀리니까 

아예 다시 전문대로 몬다?

그런데 그런 학생은 실업율에 드는 것이여?

어머나! 우리 부모님들은 어데 짱박아놓은 돈이 그렇게 많아유?

줄 세워 놓고 버젓히 받아 먹네

쪽집게에 대한 보상은 그렇게 해야 하는가 뷔여

최고의 지성으로 알아 밨을까 

그래요 그 것 다 쪽집게지요

그런데 말이죠 한 치도 오차가 없이 움직이는 것은 기계지요 

허나

인간이란 그렇게 치밀하게 작동을 해서 만족을 시켜주기 못 하지요 

우린 쪽집게처럼 두드리면 쪽집게처럼 오는 것에 질이 났지요

그러니  그 기계성에는 인사가 만사인 매력만 더하면 된다고

어쩜 이공계보다 인문계의 눈치가  파렴치를 넘지요

민주 사회는 질보다 다수여

다수라고 밀어붙이는데 배길 재주가 있는 것이여?

아주 교활한 악용인 것이지

왜냐?

그야 기계보다 인간들은 이 눈치가 있고 저 눈치가 있으니

이렇게 살살 웃어가면서 한 두 치 빼면 말이죠 

어느 귀신 장난같이 어데로 휩쓸리는지도  모르지요

정말 상식 밖일 때가 많지요 기적만 바라봐야겠죠

기적이 인문학이란 니꼬르가 정점을 이루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당사자들이 기적도 부릴 기회이듯이  하는 데야 

기적을 주면 신명을 옹호할 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번 일이 

휴대폰은 인공 위성에 매달려 있은 것이요

아주 허망하게 멀지유? 

그래도 구조의 속도는 가까이 있는 선원과의 교감인 것인데

어느 누구 하나 위협적 감각이 없었다는 것이 저로서는 제일 안타까운 면이죠

성철 스님의 말씀은 부처도 다급하게 되었는데

인간들만 느긋하다는 것도 되는 것이고

풀잎에 야차가 맺힌다는 것은

결국 도리천이나 도솔천에 옷을 입은 채 태어나는 어린 아이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곧 힉스립자의 시공이면 주기율의 벽과 같은 것이 되는 것이쥬

어차피 인간들이야 제 독을 못 빼는 것

뭐 다시 재생하려니 불에 녹여 다시 뱉는 수 밖에 수가 있나요

우린 부처님의 말씀에도 섭리성과 임의성을 따로 볼 필요가 있는 것인데 

이 것은 구궁도(九宮圖)의 이궁(離宮)에서 중궁(中宮)으로해서 감궁(坎宮)으로 들기  전에  

다시 건궁( 乾宮)으로 빼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겄이죠

 

 

치성이란게

 

어느 정도 살았다 싶으면  

꼭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종말론이나 

후천개벽이니 용화세계니 하는 바람이

마치 영화의 리바이블이어도 주기적으로 스타를 새로이 낳듯 

그도  스타처럼 부각하는 것이 세월이고 보면 

역사라는 파장적 생명체나 인물이라는 단세포적 정물이나 

똑 같은 내용일 뿐이고 타이틀일 뿐인데 

스타를 만들어 주고 아니하고 하니 

그 만듦에 따라 그 사람몰이가 나치즘까지 만들어 열광하게 하듯이 

그 것은 사람과 함께 그 시간성의 스타라는 것에서 

인간은 기압골보다 더 감수성으로 행세를 하려는 다음에야 

물도 들이 않는 빈틈에도 나무가 비집고 나오는 것이니 

어차피 산업화된 사회는 수요와 공급이 맞아야 하는데 

그 적절성을 넘어서면 당장 그들은 생존의 문제에 봉착하니 

언제나 위험한 노출이 되기도 하고 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니 

그들이 이해의 범주에서 어울리려 하는 것이 공생이라는 것인데 

이 것이 뻔뻔이라는 것으로 너무 통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있다

무슨 듯이냐

좀 뻔뻔스러웠으면 나중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도리어 철면피가 되어 그 뻔뻔이 속의 확 갈아 버리는 듯이 

얼굴도 일방적으로 고치고서는 완전 외형으로는 무슨 정비가 다 된 듯이 

겉으로는 평등에 준하여라지만 이는 도리어 자신이라는 기준이 없어진지 오래

자신만의 서정성이나 위치성은 하나도 없는 것같이

네가 하면 나도 해야 믿지지 않는 듯이 되어 버린 것이니

미학도 사회적이고 관념성인 것도 무시된 채  처지지 않고 봐야 하는 것이고

보조조차 못 해주면 미안한 감에 휩싸여야 하고

마치 그렇게 등골을 빼지 않으면 속이 후련하지 않는 것같은 짓이

단순히 욕심을 넘는 수준에 있다는 것이다

요즘에야 뻔뻔도 유세가 될 것이다

요즘 사회에 체면 자존심 구겨가면서 한 두 번 남에게 굽히지 않고

한 두변 자신에마져 냉소적이지 않고  살아가지 않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아직도 제 어미 애비 등골 빼기 않는 다음에야

다단계가 뭔가

아는 안면 비비기 아닌가

그 것 좋아 하는 자가 얼마인가

그 것도 인맥이라고 알고 나면 주면 받는 것이야 관행인 것이지 

허나 그 속에서 얼마나 깊은 인간성을 논하겠는가

다만 좀 더 가까운 이용도가 높다는 것이겠지

그 속에는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 속아도 속아 주는 척 

뭐 그러다 보면 뻔뻔으로 무심해 지는 것이고 

욕심 좀 매면 잘 챙기면 되는 것이고 퇴물이면  대접 못 받는 것이고

다 덕되는 자면 좋은 것이고 

요즘엔 차라리 제 한테 불리하다 싶으면 뻔뻔을 내세워 

너희들이 주눅들 때 기 세워준 뻔뻔 

더 곤혹스러울 때 더 비싸게 치는 뻔뻔한 것이라고 한 수 가르치듯 외자길 텐데  

도리어 남의 시선 아랑곳 않고 한 술 더 떠주며 가르켜준 선생이지 않느냐고

이젠 흔적도 찾기 힘들지  

한 때는 유교 정신의 가치라고 하더니 

이제는 뻔뻔의 가치가 일으켜 세운 것이니

주인 냥 뒤집어도 되는 세상인 듯이 

적반하장에 정신 못 차려 꿈만 못 깨게 하는 수작들만 느는 것이지

어쩜 국가로 갈라려 선명한 가치로 싸우면야

그나마 영광스러움과 신성스러운 면도 있는 것이지 

남의 남라 나라 끼리나 저주하는 짓거리가 

부모 형제끼리도 저주하게 갈라진 나라이니

부모와 자식간에도 뻔뻔

처자 친가 간만 되에도 뻔뻔 

뭐 그 것도 뜯고쳐지는 것인지

아예 도도하게 더 드러내는 자가 미인라는 타이틀이 붙은 듯

부모 왜에는 어른도 없는 개념으르 만들지 않았는가

하도 하수상한 세월까지 뻔뻔하니

수상한 사람 멀리하라

눈빛도 주지 마라

될 수 있는 한 모른 채 하라  

오히려 부모가 가르키니

결국 시선 박기 좋고 고정 시키기 좋은 휴대폰에 떼지 않고 타고 나가기

그래도 세월 탓

세월은 이래 저래 아프네요

무엇보다 무서운 불신의 조각

과민성 대장염보다 더한 과민성을 몰아가되

병증으로 보지 않기는 무슨 약속이라도 되는 듯이

변함 없이 지켜가는 치수만 늘어감이 골인을 향하는 것인지

그래도 감수성은 대단한 지성이라고 

나라끼리는 버드나무 통이요 

그 것은 골을 빼야 소리가 나는 것이니 

골이 빠져야 하는 콧대 세서 그런 것이요

아픈 손가락에서 빠진 듯 피리는 우는 것이고   

우리들이야

이렇게 야들하게 파고 든 것이야

세후(細柳) 양화(楊花) 양귀비로 하늘거리는 허허실실춤인데  

여기에 뻣뻣하면 큰일 나지!

그리니 걱정들 말라는 것이지 

뻣벗의 기둥 서주는 것이 정치판이 득세라 하지 않는가  

난장판이 공사판이라

이래라 저래라 설치면

이런 밑바닥성도 가치가 아니라  

쟁기처럼 갈아 쟁기(爭起)를 일으키려는 것이여!

입 벙긋할 주체도 못 되듯 취급할 것이여! 

그리어

다 방 칸, 집 칸 만들어 주는 시선은 따로 있는 것이여!

술 한 잔 마시는 분위기 따로 노는 것이여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뻔번하게 지켜온 지를 아는가

벼락이 떨어진다고 할지도 눈 까딱할 뻔뻔이든가

오히려 위기며는 더 뻔뻔이 된 세상이 아니든가 

아무리 봐도 신을 알면 그런 행세를 할 것도 아니지    

기둥은 더 뻣벗해 주어야 하는 것인지    

뻔뻔이여! 기 죽지 마라고 하는 판이 뻔뻔판이여!

떠난 자가  극락왕생이지        

중 놈 잿밥에만 눈이 어둡다는 말 무섭게 나올 판에 무슨 

그래도 나야 애비 잘 못 둬 이러니 어쩔 수 없다만 

또한 잘 둔 분들로야 치성 껏 시달림을 해야겠지요    

 

 

시소(see saw)

 

시이저의 나는 보았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우리가 이 시소라는 말을 잘 보면 

일반적일 수 있는 취용이 남다른 면이 있어 보인다

즉 이 시라는 말은 본다는 것이고 쇼라는 말은 보았다는 것이다

인생의 시소의 차이로 챙겨야 하는 슬픔이기도 한가 싶다

 

 

믿음은 벙어리 만들기 

 

믿음은 최고의 벙어리 만들기 올시다

어떻게?

본래 밑이란 바닥인 것이죠 

밑은 소리가 있음이요 글이 있음이요 밭인 것이요 

그런데 그 것을 서레질처럼 밀어 믿음이 되었으니

ㅌ에 혀가 빠진 ㄷ이라  

밑음이 믿음으로 소리는 갇아도 뜻은 다른 벙어리와 같음이니

이는 ㄷ과 ㅌ은 받침으로 다음 주기율에는 같은 족과 같다는 것이고 

이러한 파장이 어원조차 신도 평등하고 인간도 평등하고 한 데서  

모든 성현의 외침이나 의인 또한  그 평등성이 짓밟힌 절규를 짊어져 갔건만

도리어 이를  앞세워 자신들의 무리라는 무게로 재는 것이 신앙인 것이니

이는 무리란 말도 결국 무리들이란 무리일 수 밖에 없다는

최대 공약수와 맟춘 공약에 밀어넣기 같은 것

 

 

화학성과 심리학의 노예성

 

오이디푸스 컴플럭스와 일렉트라 컴플럭스는 

순도 높은 영혼으로서야 그 탁도의 자연성으로 살면서도 아닌 듯이 사는 것인가 

우리가 영혼의 독립성으로 요구하기 전에 

이러한 본능과 잠재가 성에 기인하는 것과 

이 것인 심리적 작용에 크게 작용하는 것이서 

심리적으로 논리화한 것은 

도리어 과학성에 근접해 화학적 작용으로 통제까지 하는 것이고 보면 

오히려 심리학이 영혼의 지적 표준에 맞춰 보조를 맞춰주는 것이 인간이니  

결국 영혼의 고도성이란 것이 자신과 맞지 않으면 

사회적 질서를 앞세워

산사람의 미덕에 젊음으로만 맞춰 그 지속성도 스스로 짧아지는 것이거늘

겉포장은 더욱 숭고함에 매달아 놓고 듯이 하고선

약물로서 퇴화시켜 모두가 약효에 길들여진 약효란 착각에 살게 하는 지식이라는 것이 

뭐 대단한 문명이라고 부끄럼도 없지 

결국 심리학도 맹목적인 인간의 신앙에 약발이 된 것이 아니라 

화학과 물질로서 마약처럼 무기력하게 하는 데 더 역량을 발해서니 

인간이 영혼을 지배한다는 것은

화학성과 물질성을 넘지 않고는 극복할 수 없다는 지론이 되는 것이다 

이 것이 곧 삼세제불(三世諸佛) 실전조죄(失錢遭罪)요 

역대조자(歷代祖師) 설전조죄(失錢遭罪)인 것이다 

즉 부처 정도며는 물질을 벗어나도 되는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계를 지나오면서 물질을 이기지 못하고 와서야 

거치기나 한 것이라고 인간계에서 수행의 결과를 얻었다고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곧 움식을 먹었다면 똥을 누는 것이 인간인 것인데 

사회가 어울리다보면 부산물을 낳는 것에서 

마치 텔레비젼이 빛으로 주사하는 것은 똥이라고 할 때

그 사이 필름처럼 상을 주입 하는 것이 인간관계인 것으로

또한 화면과 같은 사회로 어울리다 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통계학적 총체성으로 한 번 보자면

 

우리가 통계학적 총체성으로 한 번 보자면 

인구 과반수가 넘게 대학을 나왔단다

뭐 그 정도면 콧대야 당연히 높아도 된다고  

와~! 완전 얼굴 다 뜯어고치는 재주야 기차지  

그러니 여자 보고 몽고족인 게 부끄러워요? 물었다간 벼락맞는 것이지

시대는 최고의 지식층을 만족 시켜야 인간 축에 드는   

참 미끈한 게

분을 바르지 않아도 이미 손 댄 것같은 화장끼

한 번 손 대니 애 패부도 어른 피부같으니 어른인 줄 알겠네  

마치 쪽집게 과외가 아니면

스마토 폰이 아니면

이미 코스 밖이면 어쩔 줄 모르는 

이미 그가 된 코스에 쪽집게로 군림인 된

이미 시대나 공간이나 이라는 것은 멀건만 

그 시대 저 시대가 아닌 이 시대라는 명분으로 

완전히 보수성보다도 더 경직된 로봇성일 뿐이라고

깔데기 인생으로 매몰되는 것이라고 누누히 강조해도

나만 과할 인물에 미친 놈되는 것이고

무언가 앞에서 끌지 않으면 목석과 같이 굳을 수 밖에 없는 의지력이  

곁에 사람이야 인공위성 네비게이터보다 더 낮선 길에 

그 도도한 지성의 눈빛이란 것이 고요와 적막에 더 불안감을 느껴도 

꽤나 바탕은 붙임성이 있게 된 듯이 꿀 먹은 벙어리같은, 

초코렡같은 광고물은 언제나 아이스처럼 차갑게 

크립처럼 속 까지 발라가며 미끈하니 속 걱정도 없다 싶은데

눈치가 기발한 사람몰이에만 혈안이요  

무조건 예스라는 필수인 심복성어야 그나마 앞을 볼 겨를 일 것같은 길에     

세월호에 괜히 아이들만 어설프게 희생되었구나 

이미 대졸이  과반수라는 학생들 

이공계를 갈 생각은 않고 무슨 인사가 대사라고 

인문계라야 발치가 넓어지는 것인 듯  

간판  크게 하고  줄 길게 세우는 자가 장땡이라고 

그 정도 줄과 눈치가 곧 결정판 

뭐 기도만 잘 하면 곧 복이 된다는 니코르 

기도도 허사 세월호

무엇보다 이는 기초과학을 무시한 우리들의 시선몰이와 

세력몰이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를 두고 

서로 나무라 봐야 제 얼굴에 침 뱉기이지

이래 봐야  또 몸통적 자성은 없고 또 배후로 잠기기 같은 것이지

꼴랑 기초과학이  허덕이는 꼴과 같은 것이지

사실에 근거한 공부보다 

내일 시험에 벼락치기인 것이 

골문 앞에서는 온갖 재주는 다부리면서 

골에 붙박이만이 성공의 앞날만 달린 듯 

꽤나 최선인 듯 급급하면서 공부하는 티 

그로 잘도 손바닥에 올려 놓은 작자들은 따로 국밥 맛을 알아서는 

따로! 그러면 

다 알어서 챙기는 눈치는 기본이여!

일나면   

자진해서 아니면 현상이 그래서 라는 둥 떠밀다 남보듯이 하는 꼴이듯

참으로 성실히 알 차게 사는 꿈에 무심하지

세월을 실은 배에  학생만 애궂게  바다에 침몰한다

아! 진인사 대천명라지 않턴가 

인사가 이러하니 천은이 무심하구나          

돈 두었다 무얼해

지고 갈 거여?

그런데 제 돈 제 쓰는 것은 좋지만

먹고 사는 데 발발거리는 자 보고

요즘 세상에 먹는 것 갖고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냐는 듯이 

밤낮 떨어지는 질에 량은 어데 치우쳐 늘어만 가는지 

바다에는 質이 와야 하는데

그런 수치 꼴보기도 싦다는데

얼토당토 않는 수(數)만 자꾸 늘어난다

 

 

자신(自身)과 자신(自神)

 

인생은 신의 꿈이라고 한다 

실상 자신의 꿈이라는 것이다 

신이 인간으로 된 이상

신으로 돌아가는 뜻은 부활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도리어 윤회가 인생으로 완벽해야 부활의 의미가 더 크다  

즉 사천왕천에 6 살배기여도 

인간 세 5 천 년이 되는 것인데 

그 쪽 세계 하룻밤 꿈이어도 인간세에 잠시 스쳐가는 순간일 것이다 

어쩜 우린  6 살배기 꿈길에서 여기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럼 그 천정에서 거미줄을 타고 이승에 내려왔으면 

과연 그 아이는 미생전 본래면목이 이떤 모습이었을까 

오히려 그 아이의 미생전 본래면목이 이 쪽엔 한 때의 어른으로 물리는 세계인데 

이 것이 과거세냐 미래세로 봐도  어느 부위에 물리는 것인가도 과제이다

 

 

 

줄 중에 가장 질긴 줄이 밥줄이 아닌가

그러니 남을 부리려면 밥줄부머 죄야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밤낮 거지렁뱅이야 그 맛을 알겠는가만

보려보면 부리는 맛이 큰 차 모는 맛과 같은 것이겠으니

어찌 보면 죽고 싶은데 못 죽는 가장 질긴 줄이요

또한 잠수부의 산소줄 또한 지고가야할 생명인 것이지만

또한 외면받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라는 두뇌에서 세포까지 이르는 신경 줄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각각의 시공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원소 8 족이고 卦의 8 坤土라고 할 때

이는 곧 족이 금줄처럼 친 것에 발처럼 늘여진 어느 한 선이

시공성을 달리하는 막간에 있는 것처럼 될 때

그럼 세포 하나가 머리와 몸까지 이루는 것을 족의 유전형으로 하고

그리고 원소 주기율에 따라 탄생이라는 것으로 탯줄처럼 내리는 것

그리고 또한 원소 4 주기율과 5 주기율이 관절처럼 접히는 부분이

卦로도 4 震木과 5 巽木으로 떨어졌다 붙었다 할 수 있는 卦의 접힌 부분이라는 것에서

충분히 그 관골성으로 낳을 수 있는 것

이 것은 곧 5 토의 별도성과 中宮性에서

8이 접힌 4에 5 가 중심이 되어 관장이 된 것이 된다

즉 5가 노트를 철한 중심이라는 것과 같다

즉 5란 후천수(後天數)요 成水를 말하는 것이고

그 안이든 밖이든 方을 두고 있다는 것이 되고

그 전에 선천수(先天數)는 선(線)인 차원으로

마치 헤르메스가 소식을 갖고 하나의 線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다

이는 곧 水星이 은하수를 대표하는 울타리라고 할  때

헤르메스는 그 안에 유영을 하는 물고기인 유형인  것이고

오히려 태양은 꺼지지 않으려고 발광을 하는 것과 같은데

그 사이를 돌아 에너지의 순환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면

이는 곧 우주가 태양인 샘장으로 거대한 해파리와 같은 몸체인데

결국 우리가 시간을 초월한다는 것은

몸은 그대로인데 각기 다른 파장이 그 시공을 훒어 가기 때문에

그 시공이 갖은 인식의 신경으로는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시공이든 인지할 수 있는 구심성인 두뇌는 갖고 있다는 것에서

다른 시공을 동시에 인지하는 범주도 있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럼 곧 머리가 4까지인 것으로 굴레일 때

1인 등뼈를 더해 5로 할 때 배를 중심으로 하는 몸의 구성이니

이는 곧 후천성인 土에 나무가 신경으로 뿌리 내리고

오히혀 잎이라는 두뇌가 엽(葉)이라는 것으로 태양인 신호를 해석해

거꾸로 뿌리에 내리는 것과 같다

그럼 과연 우리의 두뇌가 바로 위 상층부의 두뇌를 갖고 태어나

바로 배 아래의 관골까지로 한 주기가 형성이 될 때

다시 후손을 낳으면

자꾸 퇴행성이요 혼탁성이 되는 것이니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한 라인의 띠에 늘어진 발처럼

주기율적 벽의 시공 안에 자유자제인 것이 같은 족으로 제약됨은 시공성의 초월인가 하는지를

이론적 접근이라도 끊임없이 해야 하는데

이는 막간에서 형성이 되었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다른 시공에서는 하늘에서는 탄생이 있다는 것이면     

이는 곧 시공의 초월성이라는 등장에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막간의 성숙성을 어떻게 보는가가 되는 것이다

 

 

복잡한 중에도 정리해 보자면

 

오늘의 이 세월호 사건도 결국 스마폰 세대의 비국에 속하는 일면이라는 것이다

즉 오늘도 버스를 타고보니

스마트 폰을 열고 스마트 폰을 닫는 데서 끝난다

즉 인공위성이 지식을 이빨처럼 닦아주는 듯 미끈하다

내가 웃으며 인공위성이 좋다고 해도

여자 입술에 루즈 한 번 바르는 것보다 못 하다 해도

애나 어른이나 그들로선 귀찮게 들릴 뿐이다

달이 입술 한 바퀴인데

이빨 닦는 인공위성이야

입을 가리지는 못할 것이니

자신을 우주인 냥 발전해야 한다고 해도 문자  두드리기 바쁠 뿐이다  

이런 판에 제벌 회장 막내가 실언을 했다 해도 그리 나무라 일도 아니다

즉 그 세대 애들은

이미 막무가내처럼 통일시 되는 의식의 동질성이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 애 뿐만 아니라

요즘 애들 우리 시절의 고생을 알까?

오히려 좀  부하다 싶은 자식은 격리 시키고

사람 다루는 법이나 가르키니

그 들로서야 당연히 자기 주제대로 사는 것이고

종이야 종 주제대로 살아야지 않는가도 의무성으로 여길 것이기도 하다

다 나름이 고행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남들은 제 역할에 주제 넘지 않는가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즉 자신들은 나름이 신사도에 있는 것인데

남들은 너무 선을 넘은 주제라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줄 세우는 것에

얼마나 그림자를 드리우는가를 모른다

오직 그림자도 자신들의 역량으로만 치부되게 하여

양심이나 심리적 압박감을 덜게하는 부모의 심정도 모르는 것이다

관상쟁이조차 상이 밥줄이라고 하니

대기업이라야 사람 대접 받고

거기에 인상이 중요하다고 하니 남자조차 듣어 조쳐서라도 줄을 서니

요즘에 아마 그리하지 않으면 성의의 문제

마치 임금님이 지나는데 허리를 굳히지 않는 오만불손이라고 취급받을까

지레짐작이 이미 쫙 깔린 것으로 기본이 된 마당에

안 뜯어 고치면

이는 이미 싹수부터 반골은 언제  반골이 될 지 모르는 것 아니여? 하는 듯 보는 것같으니

머리에 든 것 많은 자야 

도리어 조조처럼 의심은 더 많으니  

그리고 조조같은 세상은 당연하다는 듯이 난세를 만들어가고선

자기는 무슨 장수라도 되는 듯이 어깨에는 힘을 주고 말이여

그렇게 장수라도 될려면 왕처럼 받들주어야 하는 것에서 커는 다음에야

그러한 세상은 말이여 

박한 원흉이라고 하지만 그 박한 줄이 더 목 타게 하는 줄이 잖아여

다 박한 데서 안 되면 더 박한 데 매달리지 않는 감여

그러니 뜯어고친다고 혈안되어 있는 것을 

그 애야 지 아버지 혈통에다 뜯어고칠 험이 있던가? 

그러니 자신이 왕자인데

정말 다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구는데  주제에 너무 넘는 것이있으니 

그렇게 보일 리 당연하지 않는가 

카네기도 자신은 돈 많은 아버지거 없어 짠돌이 짓을 하지만

아들은 돈 많은 아버지 자식인데 철 없이 돈 좀 쓸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든가 

즉 그 아이를 나무랄 것이 아니라 

그 세대가 그렇게 이 기성 세대의 노고만큼이나 무관심이란믄 것에서 

그렇데 나타난 것이니 자신들은 할어버지를 왕처럼 받는데 

세태는 할아버지는 자꾸 버려지는 것같으니

뭐 히딩크 감독처럼

그럼 이 나이에 내가 나가져 뒤랴 하는 문 전에 실속은 없고

티는 어지간히 내는 생쇼를 보다 못한 소리이듯

그들로서는 네 할아버지까지 내가 책임재라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는가

즉 네 불효까지 내가 책임지랴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나쁜 것을 지적하고도 바쁜 것만 닮아가는 것에서

그 유전자의 어머니라고만 할까 하는 것과 같다  

즉 벼가 어떻게 생겼는가도 모르고 도시에 자라는 아이를

밥이 눈 앞에 생명 줄인데도 벼를 가져다 주면 아니라고 하면 아닌 듯 

결국 스마트 폰에서 그 것이 맛다고 해야  찧어서라도 먹는 것 아닌가 

솔직히 이 번 사건은 휴대폰도 한 몫을 했다는 것이다 

오늘도 버스를 타면 타자마자 휴대폰에 눈길만 가있다 

그 것이 깔데기 인생이라고 해도 관심 없다 

옆애 누가 죽어서도 있는지 없는 지도 모르는 것이요 

죽었다면 빨리 그 현장을 피할 궁리부터 할 것이다  

무슨 일이 나면 피하기 바쁘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나무라지 마라

안 그래도 먹고 살기 급금한 사람이다

전철 칸에서 한 학생이 탔는데

내릴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정신이 나갔는지 백을 덜어뜨리며 갑자기 쓰러진다

그러자 오히려 노인네가 주섬주섬 백을 주어 주었는데

창피한 듯 재빠르게 사라린다

속으론 좀 앉아서 추스리고 가지  이 겉만  멀쩡한 세상

그 속을 알면서도 오히려 껕만 수치내기 철면피인인 세상

그리고 제 똥 눈 것은 감추고 겨묻은 개 몰아세워 의심하게 하기

그런 쓰러진 그 학생을 참 무식한 수준이라고 할까?

무지하다고 해도

 난 병 나면 병원 갈 생각보다 안 가고 묻힐 생각부터 먼저 하네요

이렇듯 버스 칸에서도 생각해 보았는데 말이죠

만일 이 버스 가라앉는 배와 같다면 어떨까? 하는,

참 무관하지는 않겠다싶은 게 

첫째 내가 선원으로서의 위기감을 알았어도 쉽게 말을 할까하는 것이다 

즉 위에서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자신의 직감으로서 일을 벌인다면 

당장 그 책임은 자신에게 오지 않는가 이다

즉 같이 물고 늘어지더라도 혼자 타켙은 안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세상은 책임질 일은 한 쪽으로 몰아버리려 안달이니까   

허나 또한 서로 심정이 오가는 판이면 좀 더 일체심으로 나서서  말해 줄 수도 있다

허나 요즘 애들이야 옆에 사람과 대화하면서도 스마픈 폰 두드리기 바쁘니

대화하던 친구조차 민망해 하는 것을 보았다   

허나 한둘이겠는가

애들은 모두 휴대폰에 매달려 그 것이 간판 위서 설치는 속도보다 빠르게 

자신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라는 것에 주위 의식은 이 차 안처럼 없을 건 뻔하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분위기가 배애서도 그대로 배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격리된 칸에서는 더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의식구조는 

특히 이 세대에 근심이 된 것이 주위 의식인데 

이들은 마냥코  휴대폰이면 만능으로 실마리를 푸는 속도도 되는 듯이 했을 것이다

우리가 젊어서 공사 현장에서 일할 때 가장 골칫거리가 

시간은 없는데 그 크레인을 기다릴려면 한 나절은 기댜려야 겨우 오는 정도인데 

솔직히 일의 진척은 거기에 달린 것이 허다했따

그런데 단순이 일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멈추어버리는 것이니 

어띻게든 이어가는 것을 보면 기발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니 임기응변적 활용도는 도면이나 들고다니는 자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래서 현장에 네 기둥의 거리가 좀 과하게 벌어진데도  체인블록을 달다보면 

단단히 묶었다 싶은데도 떨어져 한 사람이 발등이 찍힌 현장에 일해 본 적도 있는데

실제 일본의 기사들은 몇 치만 오차가 나도 다시 하라고 할 정도로 치밀했다  

그로해서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그 때의 우리나라 사람의 문제는 너무 속전속결이라는  것에서 사고가 많이 난 것이었는데

또한 한 편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황과 일에 대한 판단과 대처 능력은

일본인들도 혀를 내찰 정도로 탁월한 우수성이 본능적으로 있었다 

허나 세월이 변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몇 치 갖고 다툴 눈금까지 와 

몇 치 다른 관상도 다 백 프로 맞춰야 하는 정도로 끄는 자랑일 수 있지만 

그런 사회가 될려면 위에서 부터 아래까지 일관된 연결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안 된 부실한 고리에 수치만 따지는 줄에나 매달려 살고져 힜으니

이는 곧 인사의 고리에 부실안 인재의 표본이 되고도 남는 것이다

차라리 그 시대의 감각성라면 좀 더 현장에 실질적 감각이 있는 사람이 배를 탔을 것이고

우와좌왕 중에 엉뚱한 놈이 일을 저질러

도리어 횡액을 면할 수도 있지 않았나하는 아쉬움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휴대폰에 대한 집중력이

어떤 불안감이나 징조감같은 것마져 없앤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문제성이 뙨다고 본 데서 더 안타까운 것이다

우린 이 문제를 더 크게 전반적으로 봐야 한다  

거기에 또한 이유가 덧붙여지는 것이  

내가 젊은이에게 우주에 대해서 말을 한 것이 있는데

뭐 억지를 부린 것도 아니고 대화를 하는 정도였는데   

또 연략은 누가 했는지 

형빨인 듯이 하고서는 몇 정거장 사이르 두고 타고서는 눈에 힘을 주는데

나도 둔한 편인데도 종종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어떯게든  신호가 갔다는 짐작은 한다  

그러니 상대가 아예 위험하다 싶어도

나도 입 닫아 외면하는 자에 불과한 놈이다 싶게 사는데

일반적 삶이야 아닌 듯이 해도 다 말 못할 궁리로 사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나같은 자들 행태나  이야기야  전국 어덴들 못 들으랴

천 리 밖에서 듣는다고 해도 몇 분 내로 도착하는 속전속결들이 아닌가

이제 와서 생각하면

차선 한 막대기도 안 되는 사이에 그리도 빨리 올 정도면 

벌써 배가 짐몰하기 전에 왔겠네 싶은 게 

즉 그만큼 애들의 몰입성이  휴대폰이면 어데든 퀵퀵인데 하는 믿음이다 보니

아쉬움은 나기마련인데

그 신호가 인공 위성처럼 먼 곳에 있어도 가까운 사람보다 낮다는 것이 되고 보면 

결국 선원들도 그런 다급함이 웟선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보니 그럴 수 밖에 더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행운도 직감적 촉수가 발달해야 기적처럼 일어나기 쉬운 것인데

무언가 한 쪽으로 몰려 효율적이다 싶어도

어떤 본능성을 마비 시키는 효과라는 것에 몰입이 되어간다는 것도 되는 것이고

이 몰입성이 손 아귀에 있는 심리적 우위야

젊음의 세대들로서는 마치 혼자가 아닌 전반적 가치관으로 공유하고 있다고

그 어떤 단절성보다 신출성으로 북돋우기 바쁜 것이고 보면

무의식으로 자부감과 동시에 차별을 따지기는

그들 끼리도 왕따족을 만들어 상대적 경쟁심도 만드는 것이고

결국 몸체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에 맡긴 것이

전체적으로 조합이 무시된 기초로 드러나게 되는 것을

그들이야 그 기초성과도 남 다루듯 객관성으로 추제는 점하고 사는 듯이

그 내면의 소식만으로 우루루 잘 몰려가 모이는 특성이라지만

도리어 그 속에도 능구렁이를 누가 알까하는 혼합형에

요즘에야

제 마누라야 째보가 수술을 했다고 해도 예쁘면 그만일 수도 있는 것인데

뭐 줄 세워 놓고 자신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는 왕자로서야

뭐 딱해서 하는 소리일 수도 있어 하는 소리이니

오히려 너무 순진하지 않았느냐 하는 무구한 마음에서 받아들여도 되겠는데

다만 너무 거리를 둔 격리된 삶의 후휴증이지도 않나 싶다

 

 

블랙홀이 사라지는 이치와 인간의 죽음  

 

과학에도 블랙홀이 어떻게 사라지는가도 큰 과제인데

이 블핵홀이라는 것이 곡 죽음과의 대화와 같은 것인데 

나는 그만 죽겠다고 하는데 신명은 살아라 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하면 

산 것이 있기에 죽겠다는 것인데 

버렸다 하면서 버린 것이 아닌 부분만 남은 것이 아내냐 하는 것이다

그러니 곧 산 것이 남는 한 죽겠다는 바가지 바닥까지 긁는 것이고 

실제 죽음은 주검도 삶도 아니란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죽겠다고 하니

그 남은 <버린 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한다

줄려면 확실히 홀딱 벗어 주는 것이 낫지 않느냐 한다

어찌보면

그래 남아봐야 좀비 같지 않느냐

냄새 안 나게 아얘 속 까지 다 싹 태워 주란 듯이

불 난데 부채질하는 것과 같다  

이는 곧 삶이 없어야 주검도 없는 것이니

그로서 블랙홀이 사라지는 이치와 같다는 말과 같다 

즉 인체가 우주이고 인체가 성단이라고 보면

결국 블랙홀로 당겨가기에 빛의 행선도 인식하는 것이고

빠른 텔레파시적 메세지로 나인 듯 타인 듯 거리가 먼 듯이 가까운 듯이 간파하는 것이고

동일 선상의 무리로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이고

이 것이 우리의 생의 선으로서 진행하는 과정이

선이 짧게 줄어드는 헝태의 불랙홀로 진행하는  것이라고 볼 때

죽음으로서 소멸하는 것과 같은 속성이 매달리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관상학의 묘미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두 눈 사이로 하는 것이고 

귀와 귀 사이를 블랙홀과 화이트폴 사이를 말할 수 있다

이 귀는  7과 7 사이를 합해 눈 하나를 더해 15인 기본 수로 하는 것이고

곧 태어나자마자 나이를 먼저 먹는 곳이고 

또한 우주의 양수(養水)를 다 떨치지 못한 누에에 뽕잎과 같다

즉 블랙홀이 처진 그물망처럼 구심성을 가진 것이할 때

곧 머리가 블랙홀인 것으로서

양 쪽 귀를 솥 귀처럼  것이라 봐야 함이고

항성(恒星)과 항성 사이를 양 눈의 사이처럼 좁다는 범주가 된다는 것에서 

천이통(天耳通)이 천안통(千眼通)보다 크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진신(進神)과 퇴신(退神)의 용도  

 

우리는 숫자나 물질에 앞서 체의 동향을  보는네 있어

우린 합을 토탈 점수로 보게 되는데   

그 퇴신이면 최소 공배수

진신이면 최대 공약수의 진행이 되는 것이고 

수축과 팽창의 진행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퇴신이 나를 생하면 

숫자가 작을 경우

더 나은 것이면 독일 분데스리가식 가치 부여인 것이고 

진신이 생하면 프리어미그식 방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合에 충산(衝散)으로서

그 나머지로 生하면 개인 점수가 나는 것이고 

퇴신이 衝으로 生이면 죄저 점수를 빼고 

진신이 衝이 되면 최고 점수를 뺀 셈이 된다

 

 

골 밑 도사보다 미드 필드가 좋아야

 

어느 정도되어야 수행이랄 수 있을까 

이찌 인연이 되다보니

술집 마담더러 남자를 조심하라 일러준 일이 있었는데 

그 마담은 남자 정도야 그리 문제될 것이 없듯이 하니 

그도 그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고 말았는데 

며칠 후에 가보니

강도를 만나 겨우 비상구로 빠져나와 도망을 쳤다고 한다 

뭐 그리 땜을 했으니 좋은 일 있으려나 다시 보니

또 같은 남자를 조심하라고 하니

괜히 질문하지 않아야 할 것을 공연히 하니 지난 일이 나오는가 싶어

괜히 질문에 대한 경망한 번거로움에서 나타내는 현상이라

신이 강조하는 방편인가 싶어 얼머버리기 바빴다 해야할 것으로

너무 자주 가볍게 점을 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이젠 지났으니 무탈하겠지 하고는 유야무야하고는

두 문제는 덮고 갈 수 있었는데

그래도 경험 상 그렇게 무의미하게 나오지는 않는 법인데 하는 것은 있어

왜 지난 일이 새삼스럽게 나오는 것인가 싶기는 했는데 

결국 1 년 후에  가보니 큰 참변을 만났다고 한다

그로서 참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오히려 왜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나 하는 자책감이 들게 되고 말았다  

신명으로야 가르켜 쥐도 모르는 것이니 답답했으리란 것도 있고

난 자주 물으니 그런 식으로 대답을 하고 종결점을 강조라는 줄만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나중에는 책임을 물을 사안이 되겠구나 하니  

알면 알수록 생은 쉽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란 것이 압박을 하는 것이다  

이럭저럭 챙긴 것도 없이 세월만 수 십 년 지나다 보니 

작든 크든 일은 그렇게 한 통체로 일어나는 것이고

우리만 실재적으로 부분으로만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공부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보다 신이 더 답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한 토굴에서 이빨이 아파 골까지 치밀어 눈물을 쏟아내며 통증이 심했는데 

거기다 누가 수상하다고 신고하여 경찰이 찾아와

우거지된 남의 안면이나 관상쟁이처럼 훑어보니

완전 졸지에 설상가상이 이보다 더 할 수 있나 싶기도 하고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것이구나 해도 

결국 우리가 관귀(官鬼)라는 것도 관액과 질병이지만

그 것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고

시차를 두고 일어난다는 것은 일반적이라는 것을

일반적 한통에서의 일방적 부분으로 봐서 비롯되는 것이지

서로 다를 맥락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란 것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는 정론(正論)이 머리에 박혀 있어도 

직감적으로 잘 받아들이지 않는 둔감성에서 비롯됨에는 

곰삭은 시간도 있어야 하는 것에 걸쳐진 것도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즉  벗꽃처럼 일시에 일어나기도

호박꽃처럼 하나 하나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 그 실재성이라는 것으로 

앞의 일에 쏠림보다 오고 감이 없는 시각이 얼마나 기본적이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즉 같은 두 개의 爻 중에 하나가 動해 충산(衝散)을 맞았을 때 

결국 눈 앞의 일은 지나갔으나 정효(靜爻)의 動이 온다는 것

즉 시차를 두고 온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두 개의 靜爻가 動라면 이는 동시 다발로 일어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요즘엔 일이 나면 그 일의 규모와 범주를 먼저 헤아리고

전부인가 남은 뿌리가 있는가 하는 자세에서 부터 病에 접근을 하는 법 

즉 전반적 입장에서 취하는 것으로 보면

일이 나면 먼저 뒤로 물러나 바라보게 되는 자세가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즉 등잔 밑이 어둡지 않는 것

곧 골 밑에서나 폼이 나고 스타가 되는 자세는 버리게 되어 있게 되는 것이 도라는 것이다

 

 

나무에 비유되는 동시 다발성

 

즉 나무는 동시다발이라는 것이다 

이 것이 진뇌(震雷) 중 천둥과 번개라는 것인데 

즉 천둥이 번개와의 거리가 

한 나무가 꽃이 열리는 거리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즉 빛의 의식이라는 것과 동시인

울창하게 핀 꽃 아래에서의 나무가 진뇌에 속하는 것이다

즉 이는 허공성으로 보면 

소리가 손풍에 해당하는 진동인 것이고 

전파가 진목에 속하는 것으로 

그 공간성에서 팔괘의 접히는 부분의 꺽꽂이와 같은 

접착력을 가진 같은 목이라는 것이 되는데 

이를 에너지 원인 힉스 입자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즉 에너지의 팽창은 진뇌에서 폭발성과 함께 폭을 재는 것이고 

물질과 반물질과의 관계는 건곤으로서 

어던 영역과 위치성의 부여가 성질이 반환적인 것이냐

주체적인 것이냐도 

원소 주기율이의 8 족에 해당하는 성분성이 

그 외벽성과 함께 곁들여 진 것이냐 

아니면 원소 1 족에서 순수 그 자체로 변화된 것이냐인데 

마치 로켙이 배기가스를 딛고 추진이 되는 성질이 되는 것이냐

아니면 항성이 자체의 배출량으로 인한 발판이냐

아니면 허공적으로 항력이 생겨서 구 추진역의 성질이 되느냐가

곧 인간의 마음의 발단

즉 일본 만화 캐릭터의 원소 주기율에 적용 시키는 동질성에

인간 마음의 탄력성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소리라는 키를 보이는 것인데 이는 잎이라는 개념이고

정전기적 개념이 되는 것이라면

전파의 모든 주파수는 나뭄 줄기에 해당이 되는 것이고

곧 목인 전파가 화인 화소를 열어 화면이 될 때

화생토인 그림자를 낳음에

그림자를 낳을 수 있는 물질이라는 농도성으로 해서

시공성이 가려지는 것을 보게 되니 다른 시공을 보지 못 하는 것이다

그 메아리성이 잎만 심어도 나는 고구마와 같은 생명력과 같은 것이고

동시 다발성이 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 된다 

여기에 비해 긴 시차를 호박 주기처럼 뻗어 꽃을 피우는 것은

최초의 빅뱅의 빛을 캊아 잡히게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태양인 융합으로 빛을 내는 것은 모래 시계와 같다해야 할 것이다

그 빛이 광년의 길이로 허궁 중에 있다고 할 때 

그 빛이 태고성의 빅뱅에서 나온 것이면 팽창성의 빛이고 

항성인 별로서 발한 빛이면 이는 융합적 응축에서 나오는 빛이란 것이다

 

 

인간의 두뇌와 블랙홀

 

나무도 水中 1마일 정도면 가라 앉는다고 한다

이는 곧 나무가 가라 앉는 경계선이 블랙홀이라면 

다시 일어나는 것이 웜홀이라는 것이 된다 

그리고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자라는 부위가 화이트 홀이라는 것이 된다  

이는 곧 블랙홀로 가라 앉을 때 

결국 우주는 블랙홀이라는 것으로 구심성으로 관통하게 하는 것은 곧 

인간의 귀와 같다는 논리인 것이다 

즉 우리의 머리 자체가 거대한 블랙홀인 우주인 것이고 

그 항성과 항성 사이가 별이고 양 쪽 눈이지만 

결국 시신경으로 모임이 곧 귀의 깊이와 함께 하는 신경에 두니

이는 곧 두뇌의 중앙성과 전체성인 블랙홀의 무게로 기울어 있는 것으로

머릿결로 통하는 것이라는 것으로  

블랙홀과의 관통으로 화이트 홀로 나오는 것이 된다

 

 

대칭성의 부위

 

팔괘(八卦)가 접히는 부분이 4 진(震)과 5 손(巽) 사이이니

가령 나무가 접붙는 자리로서 쉽게 산다는 것이고

이온적 합도 되는 것인데

아마 이온의 합을

수용하는 그릇을 간태(艮兌)일 관계일 기능이 많고

수화(水火)의 대칭은 온도의 전도성에 있을 것이다

즉 온도의 변화에 따라 이완이 달라지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온이 붙느냐 아니 붙느냐는

진손(震巽)의 대칭에서 나오는 일종의 접착력을 말하는 것이고

알카리성과 산성 간의 호환성으로 나무가 성장하는 것과 같다

즉 전위 원소성은 건곤(乾坤)의 관계지만

전이 원소라는 것은 진손(震巽)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봐야 함이다

그리고 절대 온도 K라는 것으로 보면

이는 水火의 관계에서 고체마져 수용하는 범주를 말하는 것이 되는 것이고

그 중에 요철(凹凸)로서 이온이 사개를 맞추고져 공간이 난 것이 곧 이온이다

그리고 물질과 반 물질의 관계는

건곤(乾坤)의 대칭이 궁극성을 잡고 있다는 것이 된다

즉 水火로서 편다고 할 때

火生土가 되어 펴면 그림자를 낳는 물질을 이룬다는 것이 되는데

이는 곧 乾이 투명성에

坤土가 물질을 이루는 것에 반 물질성을 가진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인중인 탯줄 사이로

 

입술이 달이고 코가 지구라면 이는 곧 

人中이 달인 입술의 탯줄로 코를 양육하여 낳았다는 것이니 

이는 곧 달이 삼키는 것은 달의 인력인 바다의 조수(潮水)와 같은 것이고 

이 것이 인간의 식욕과 같다는 것이고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의 식욕이 시간과 자식이고 보면 

이 것을 블랙홀로 해서 우라노스의 예언으로서 나오게 하는 것이니 

해왕성 명왕성으로 뱉는 것이듯  

아버지로서의 유전형을 돌아 다시 나가는 형국이 되는 것이니 

土星이 배이 듯

달은 지구에 위성으로서 그 배를 담당한 것과 같다는 것이 된다

 

 

우주와의 편성

 

우리가 세포가 十兆 단위라고 할 때

이를 우주의 바탕이라고 한다면 

안색에 부분적으로 눈으로 파악되는 찰색의 범주는 恒星의 범주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포는 항성적 맥이라기 보다 블랙홀적 맥이라는 것이 된다 

즉 찰색(察色)이 세균성을 넘은 범주인 것으로

윤곽성이 있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병이라면

이 것이 세포성 정도도 넘는 것이고

세포를 원소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렌즈라는 한 굴레의 배율에 들 때의 

한 乾宮인 시발점 즉 렌즈의 굴레로 원소성으로 할 때의 분별이 되는 것이다

 

 

간태(艮兌)로서의 요철(凹凸)과 空亡으로서의 요철

 

우리가 공망으로서 이온을 취급함으로

상대적이나 조건성의 다른 爻를 보는 것과

태(兌)와 감(艮)의 대칭적 흡인력와 분출력의 맞장구에서의

이온적 훕수성과 돌출성의 소진성이 괘의 성립으로 반감되는 내구성 등이 있는 것이다

 

 

복음(複吟)과 반음(反吟)의 일체성과 독립성

 

기문둔갑(奇門遁甲)에 있어도 복음(複吟)이 있는데 

그 복음 때 입석 밖에 없는 열차 칸 사이에서

지금은 무엇을 보든

같은 유형 끼리 만나기 쉬운 시간이라고 무심코 던진 말인데   

바로 앞에 있던 초로의 아저씨가 절에 잡일을 봐주시던

집사일을 맡은 처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난 그저 어설피 그를려니 반 흘러보내는 듯이 이야기를 한 것이었는데

그런 상황을 맞고 보니 참 어슬프면도 실속이 있구나 하는 것이었는데

헤픈 듯 희소한 듯이 하는 것이 이런 학문의 인정머리라는 것은 변함이 었다만

그런데 이 복음의 범위가 모호한 것이니 

무조건 복음은 발이 묶인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복음은 공허한 메아리와 같은 것인데 

그럼 메아리는 반음(反吟)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반음은 갔다 다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발을 떼지 못하고 반음은 가도 다시 온다는 것이 되는데 

전반적으로 메아리가 발을 뗀 것인가 하는 것이고 

스스로 똘똘말이가 아닌가 하는 것인데 

반음은 병이 재발하는  것이고 

복음은 전이는 되지 않는 것인데 혹으로 머문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반음의 합은 반환점의 연장이 되는 것이고

복음의 합은 출발이 연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부세의 시처럼

행복은 산 너머에 있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할 때

메아리는 산을 넘지 않는 것이나 반환점이 있는 것이니 

반음인 동시에 복음이라는 것이 됨이나 

사람이 산 너머 갔다 온 것은 반음이 되는 것이다

즉 상황의 잘 파악해야 괘의 범주가 명확해 진다는 것은 

제갈 공명도 우선시 하는 전리(天理)를 이해하는 것에서의 판단이라는 것이 되는 것이다

 

 

혀 파먹힌 물고기 판치생모

 

우리가 배를 중성으로 하고 무색무취로 할 때

폐는 곧 금속성인 알카리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肝을 木으로서 하는 것은 腦인 金으로서 활용이 되는 것이고 

이를 삼킴으로서 신경을 삼킨다는 동시에 통재력을 갖는다는 것으로 

산소를 主食으로 하는 것은

肺처럼 주는 것과는 받아먹는다는 의미가 큰 것이다

즉 대지에 금속류라는 것도 

산소로 해서 녹이 쓸 듯이 유기성을 갖는 것에서 생물의 근거가 되는 것이니 

이 것이 원소 주기율의 양극화를 말하게 되는 절차를 보는 것이다

이가 토생금이요 금생수라는 것이요 수생목이 되는 것이니 

자연 금속성과 염기성 그리고 산성 그리고 탄화라는 것이다 

이는 곧 인체학적으로 배요  머리요 눈물샘이요 목이요 다시 심장이요 배라는 것이 되어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 목생화 화생토가 되는 것으로 

이는 곧 원소 8 족과 다음 주기율 1 족 사이에는 중성자적 기능이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양성자적 용광로 위에 있는 것이라는 것이 된다 

그러니 이도 마그마와 같은 극미립자에 원소주기율의 배열이 화학성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이로서 남섬부주의 기본성 위에 놓여진 성향인가 하는 것이 있고 

간이 머리에 먹히는 신경선을 돈독하게 하는 화학공장의 재료실이라면

乾이 생각이라면 이를 먹이로 움직이는 것이 혀의 표현이라는 것인데

이는 곧 離虛中이니 곧 모든 현상을 혀로서 거푸적으로 전달하는 이미지적인 것이라는 것이지

실상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혀의 맛이란 것은 수축성의 맛이라는 것인지 팽창성의 맛인지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 거푸적인 맛이 퇴행적으로 느끼는 맛인니 즉 화가 수로 재가 되는 알불로서의

퇴행성 맛이라는 것이지 진화하는 느김의 맛은 아니라는 것인가 하는 진행을 봐야 하는 것이다

즉 알불이 재로 향하면서 재의 감각인지 불의 감각인지는도 알아야 하는 것이고

그 경계가 있기에 맛이 있는 것인데

심장은 팽창적이이기 때문에 맛은 느끼며 사는 의식은 다른 국면에 있는 것이고

혀는 오히려 편도선으로 수축하며 느끼는 맛이니 오미가 느껴지는데

그럼 이 것이 물고기 중에도 혀가 있는 몰고지가 있는데

거기도 기생충이 갉아 먹어 혀도 앉아 받아먹는 놈은 다로 있는 생물이 있듯이

우리도 혀가 없으면 곧 언어는 물과 같은 결일 뿐이라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혀는 거푸집적 표현이기 때문에

없으면 재처럼 사그라든 표현이 물결처럼 흐를 것이라는 것인데

이 혀 없는 판치생모가

인천 용화사에 가면 전강(田岡) 대선사님의 오도송(悟道頌)에서 유유히 흐르는 것을 보리라

 

 

기생충이 남의 혀 주인이 되어도 물고기는 도리어 득도를 했다

 

火가 水로 행하는 길은 혀로 보면 퇴행성인 것이고 

그 맛의 감각도 퇴행성일 수 있는 것이고 

다만 재가된 水로서 보아 진행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된다면 

이는 곧 흐르는 뮬은 그대로 언어가 되는 감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되고 

혀의 표현 즉 언어로 전하는 모든 수식이 다 아닌 듯 하는 전달성이

상행이든 하행이든 단절성은 아니게 이어지는 과정인 것인데

언어를 줄인 궁극적 묵언의 전달체로 바뀌어 흐르는 메카니즘을 이루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문명이라는 거푸성을 자랑하지만 

수계(水係)로 볼 때 

이 문명이라는 거푸집은 성능 떨어지는 수퍼 켬퓨터와 같은 덩치라는 것이고 

표현되는 메카니즘이라는 사회가 매우 저기능의 반도체처럼 흐르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손톱만한 칲이면 산채만한 것이듯 알고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天神 퍼 올리기

 

우리가 八卦가 접혀 四象으로 깍지를 끼듯이 할 때 

乾坤이 1과 8인 양 끝으로 접고 

兌艮을 함께 접은 상태로 하는 것으로 둘로 하는 것이고 

坎離인 3과 6이 중간에 서로 닿는 부분으로 

4와 5의 대칭을 합하여 둘로 하는 것이니 

이를 乾坤坎離 四象으로 하는 八卦의 요약체를 말하는 것인데

이는 곧 恒星인 별과 블랙홀인 坎離와 처녀좌인 대 星團의 굴레가 乾坤이 되는 것에서이고

그 사이에 혹성이 震巽인 대칭이 4와 5가 된다는 것이니

항성과 처녀좌 사이의 성단들이 兌艮의 범주인 굴레라는 것이 된다

그럼 周易의 重乾天 卦에 初爻가 潛龍은 勿用이라는 것은 곧 

이는 納甲의 海中金과는 반대되는 개념인데 

이는 곧 처녀좌의 바탕이 金이라는 것이고 

이는 곧 물 밑에 지하수 같은  존재가 龍인 것이니

아직 솟아날 기운은 아니란 것이 되는 것인데

이는 곧 金輪 밑에 水輪이라는 것이면

처녀좌인 금륜이 더 직접적으로 우리인 것이고

그 위의 블랙홀은 오히려 그 아래 수륜의 바닥을 갖고 얘기 하는 모순이 되는데

이 거대한 처녀좌의 비행체에 시계의 톱니처럼 물린 것이

오히려 위라기보다 바닥처럼 블랙홀이 돌지 않나 하는 것이 있다

즉 다시 말해서

그렇다고 처녀좌가 블랙홀을 머리에 씌울 수는 없지 않나 하는 것과 같다

이에 비해 海中金이란 것은 무엇인가

이는 블랙홀인 坎水 아래 乾金인 처녀좌가 있는 것이니

우물을 파도 바로 물 밑에 金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곧 金을 먼저 드러내고 물이 나중에 차는 것이나

納甲은 후천적으로 붙여지인 상태에서 붙여지는 것이니

어차피 물 아래 浚設을 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인 것이니

즉 원소성보다 단백질에 즈음한 단계의 세포성에 준한 것과 같지 않나 하는 것이다

이는 도리어 금륜과 수륜이 죽었을 때 도리어 거꾸로 차진 현상

즉 反物質的 영향력과 맞물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있다

금륜 위에도 바다처럼 물이 쌓인 것이라 하는 것이니

거기서 지상적 기반으로서 행하는 단계에 있음으로 그 역행성 위에 있는 것이

천체적으로 그렇다는 시각은 아니라는 것이 된다

즉 말하자면 블랙홀이 坎水인 것으로 恒星인 離火 함께 번복되는 주기성인데 

이는 곧 블랙홀 밑에 거대한 금륜적 바탕이 있다는 것이 되는 것이라기 보다

현생의 눈에 미치는 인식의 경계로는 물 밑에 잠겨 있는 상태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이 곧 海中金이라는 의미이고 

이와 달리 潛龍은 勿用이라는 발단은

金輪 밑에 水輪이 龍이라는 것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봐

처녀좌가 낚시꾼이 되는 것이고

블랙홀을 건져 올리지는 못 한다는 것으로 뇌두라는 것과 같다 

즉 밭에 있는 龍이라는 것은

이는 곧 밭이 물 위에서 스스로 올라온 푸성귀를 말하는 것인데

본래 잠용은 물용이라는 말은 해삼물은 먹지 말라는 것으로

밭에 푸성귀가 명약이라는 것으로

쉬운 듯 하면서 인지를 한다는 것은 쪽집게 공부로 트이는 부분은 아닌 것이고 

다 순간적으로 인연의 종합성과 결부되는 것이기에 

그리 일상적으로 적용될 것 또한 아니나

그 준비성은 되어 있는 식견이라야 하는 것 周易이니

周易은 그 응험성이 있는 듯이 없는 듯이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질과 반물질을 상대적으로 볼 것인가

 

그럼 해중금(海中金)과 <潛龍은 勿用>은 다른 출발이 듯이

우리가 처녀좌를 乾坤의 바탕으로 해서 

혹성을 나무나 생명체가 사는 모습으로 비친 형국이라 震巽으로 한다면

또한 반대로 

乾坤의 대칭인 1과 8을 혹성으로 하고 

4와 5가 접히는 대칭은 도리어 처녀좌인 거대한 회오리가 되는 중심 부분이 되는 것이고 

3과 6의 대칭은

그 안에 수 천 개의 작은 성단을 말하는 것이고  

2와 7의 대칭을 블랙홀과 별의 대칭으로 하는 것이고

1과 8의 대칭은 자연 혹성이 된 것이라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것이 더 풍륜 위에 수륜, 수륜 위에 금륜이 둘러싼 것과 같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따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로 보면 

물질과 반물질 간에도 태풍의 눈 사이로 돌아오는 문제와 같다는 것이다

 

 

인체가 수용하는 우주의 범주

 

우리가 욱근(六根)이 육경(六境)으로서 가까운 것이라고 할 때

이를 4와 5의 대칭성으로 양 눈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고 

2와 7 대칭이 들어간 부위과 나온 코의 균형성이라는 것이고 

이는 곧 하나로 모아 뭉친 반죽과 같다가 다시 넓게 펴는 균형성을 말하는 것으로 

곧 건궁(乾宮)와 태궁(兌宮)의 의근(意根)과 법경(法境),

그리고 촉근(觸根)의 누진성과 누적성의 진화로 된 몸의 다변화  

결국 얼굴이라도 8 坤인  身의 촉(觸)이 乾 1과 합해 순환이니

결국 촉의 발달은 머리 끝에도 뿔이 나는 것이고

이도 자제력으로 수습이 되어 둥글 수 있는 것이 머리인 것이니  

그 것이 둥근 머리에 드는 意根의 法境이 곧 사고력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지구로 볼 때 

소리의 진동은 공기 중에 일어나니 이는 곧 5 손풍(巽風인 것이고 

모든 전파가 섬유성과 같기에 사이클을 잘 가름을 하면 

그 주파수의 섬유을 매개로 한 근육처럼 움직이는 파장 

즉 이두박근과 같은 알통의 파장과 같은 것이 또한 전파이니 

이는 곧 전파와 소리는 같은 木으로서 핀다는 것은 되는 것이고 

다만 전파는 무중력을 타는 것이니 5 巽風은 혹성적이고 

전파는 우주적이라는 것이니 규모면에서 다른 것으로 

팔 다리인 나무가 목에 모였다고 할 때 목이 곧 木이니

목젓인 소리에서 부터 공기 중인 허공은 잎새와 같은 것으로 

풀피리처럼 떠는 공간성으로 말하게 되는 것이고  

작은 가지로 부터의 파상성으로 봐야 하는 것이고 

결국 목구멍과 처녀좌의 중심 홀이 같다고 할 때 

그 다음으로 넓게 퍼진 부분 

즉 작은 성운단인 부분은 3과 6이 한 굴레인 감수(坎水)와 이화(離火)인 것이니 

이는 곧 귀가  한 굴레로서 눈으로 부풀었다가 코까지 첨예화되기도 하다가 

다시 귀로 풀려 나간다는 것도 되는 것이고

이는 곧 水란 재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폭이 있듯이 풀려 나간다는 인식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식(色)과 안(眼), 성(聲)과 이(耳)가 그렇게 이뤄지면

자연 요철(凹凸)이 발생하여 우뚝한 산에 구멍마다의 호수가 패인 안면이 되는 것인데 

이 것이 곧 2와 7의 대칭성인 굴곡성이다 

즉 일어날 땐  하나인 코로 잡아 산과 같으나 

물러날 땐 차츰 둥그렇게 지평선이 되고 들이 되니 

이는 곧 머리라 함이는 1과 8의 대칭으로 해서 우리의 얼굴과 같음이라는 것이고  

그러니 결국 우리의 이목구비가 처녀좌를 열어놓고 산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의 복사성과 생멸의 문제 

 

즉 우리가 우주가 양파처럼 공간의 경계를 따로하고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즉 한 껍질이 벗겨져 죽음과 같다고 할 때 그 아래 껍질이 

그대로 복사적 시공성으로 갖고 있다면 

결국 인간은 죽어도 죽은 줄 모를 수 있다는

순간성이기에 간과된 공간으로 인식의 연결성이 되면,  

즉 밤의 야경처럼 각각의 차인데

그림으로는 선으로 이어져 보이는 듯이 착각할 것은 없는가 이다 

즉 복사성이 있기에 윤회와 재생성이 있는 것이나

거기에도 더 순간적 면으로 해서 그 경계 자체도 모르고

죽어도 죽은 줄 모르고 이어져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죽은 영혼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좀 더 넓은 범위의 윤회적 삶의 경계에 복사된 시스템으로 가느냐 

아니면 반인 반신인 듯이 죽은 듯 아니 죽은 듯 한다면

이도 복사된 시공성에서 일어나는 것은 같은 원리인데 

근시안적 면모만으로 볼 수 있는 경계가 있지 않나 하는 것인데  

이는 곧 우리가 천문학적이고 물리학적 우주의 규모에 비해

수미산(須彌山)의 규모와 유순(由旬)이라는 단위의 규모로 보면

훨씬 가까운 듯이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와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의식의 발바닥은 다 공중에 뜬 것이 아닌가요?

 

인생은 구름발바닥을 쫓아가는 축지법과 같은 것

구름은 발도 없이 날을 듯이 가나

어찌 인간은 이리 바리바리인지

그래도 바닥에 닿았다고는 하나

다 들어놓은 듯이 가뿐히 웃다 가는 것

미끄러지지 않게

아침 뒷 산 중턱에 

고양이 발톱이 벗겨질 듯이 움켜쥐는 안개처럼  

아둥바둥 매달리듯이 해야 하는 

인생은 구름발톱도 아닌 게 

끝내 한 구름 타고 간 듯이 생색은 내고 가야 그나마 자위라도 되는 듯이 

허나 남은 것은 솥 뚜겅 위의 곰 발바닥 

인생사 그로 귀납이 아니면 연역일 것

더는 이숍처럼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도 궁상맞을 것

디딘 자국의 허상이니 

인생사 한 쪽으로 선동할 일은 몰려오고 함깨 산책할 자는 떠나느니    

어느 볼로그인가

바람도 걷고 싶을 때가 있다는 타이틀을 본 것같다 

그런데 과연 바람이라면 신선급은 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목 매달리고 있는 것은 

치열하게 낙오자 안 되려고 안간힘을 다 쓰다보면 

우린 자신이 자신의 자리라는 것도 못 느낄 발다닥이지 않나 하는 것이다

구름이 아니어도 이미 철봉에 턱 겨우 걸려 있는데

어데 오 월만 잔인한 달이겠어요?

인간 참 우습죠

알게 모르게 그어놓고선 

그 선에 턱을 걸어야 얼굴 취급을 하겠다는 것에 

난 발이 온전히 닿은 느낌으로 걷는 자에다

돌처럼 선 자를 차라리 보지 못 했다 하겠소이다

다만 그 행세에 운수납자와 같아도 신선이 따로 있나요? 

과연 우리는 걸어도 다리 밑이라는 감각은 있는 것일까요?

뭐 알만하면 이미 관절염으로 삐거덕거릴 것인데

몸을 구름처럼 태울 수 있나요?

어쩜 더 자극적인 것이 필요했는지 모르지요

아마 사이 사이 인간 사이 

관절처럼 염증이 날 때나 느낌이 오는 모진 회한과 같은 것인지

세상은 사람들 끼리 왜 그리 볼쌍 사나워 지게 하는지

다리 있다고 해봐야

부처님 가운데 다리보다 못 한 거 아녀?

양 다리만으로 디딘 듯이 살아도 신선이지 

신선이 따로 있나?

 

 

공망의 내재성

 

예전에 쓴 글 중에 야학(野鶴)노인이 풀어놓은 근병(近病)에 空亡은 즉시 낫는데 

다시 변효(變爻)가 공망이면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서  

그런 지혜 하나 드러낸다는 것이

다독(多讀)으로 얻는 지식 정도로 보면 큰 불경(不敬)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 응험은 일생을 두고 찾아낸 것을 좀 더 후학을 위한 마음에서 전하는 것을

무슨 원리와 법칙만 줄줄 안다고 해서 꿰어지는 것도 아니란 것이다  

 실제 내로라 하는 두뇌들은 이런 끈기의 접근성은 더욱 취약점을 드러내는 것이고

무슨 지능성으로 주관된 것이면 더욱 도달하기 어려운 것으로  

찾아도 인연이 아니면 꿈에도 맛 못 볼 가치라는 것인데 

또한 그 깨우침으로도 갈 길은 먼 것이다 

즉  일생을 다해 찾아도 못 닿는 지혜를

예전에 이미 다 알고 있은 듯이 하는 내숭은 일반적인 것이라  

말의 희소성으로 더욱 값을 올리는 엉큼을 떨어야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것이고 보면

다 헛도사라 해도

도사는 다 폼생폼사 신비가 없고

금방이라도 소득이 아니면 떠나는 바람이 인간 심리들이고 보면

중생들보다야

무거운 책략에 책임감을 안 가지는 것도 아니니

객관적이면서 껍질이 두더운 면이 있어도 나무랄 것도 못 된다만  

다만 무엇이든 참되어도

남에게야 아무 것도 아닌 듯이 내숭을 떨어야 사는 게

신간 편하게 되어 었는 것이 새상이고 되고 넘쳐난다는 것이다  

종교도 그 혼미한 덕에 난무하게 되어 었는 것이고

그래서 천기는 더욱 입에 발리게 되어 있는 것이고

그래도 어느 상황 외에는

마술성이나 기적성보다 싷사구시적  자세로서

아카데미 학당이 되어야 유림인 것이고 한림인 것에

그 진취성에  후학자로서는 진력을 발하는 자세가 필요하거늘

어ㅓ떤 용무 외에는 시간이 아까운듯 곁에 인간들도 귀잖은 듯이 한다

그러니 그 탐구의 그  희소성으로 전하는 것에 존경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귀중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도 있어야 하는 것에서도

차라리 교주가 되고 보는 것이라고 기적바래기나 되어 밀어 붙여야 끝을 보는 듯이

인생이 맹목성이다 보니   

돌이킬 수 없는 것 또한 인생임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것이

세대가 세대에 밀리듯 지듯이 가는 것을 굳이 새롭다한들 개과라 한들

그 내용보다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또한 내가 전하는 한 경험담도 

누구는 일생을 다해도 못 터득하는 것인 만큼 헌신으로 대하는 만큼

굳이 욕 먹을 만큼 죄인으로 몰릴 이유도 없다

우물 안 개구리라고 몰릴 이유도 없다

또한 난 인반적으로 드러난 노출성이면 굳이 내가 애써 쓰려고 하지도 않는다

왜냐

나도 내 몸 하나 부지하기도 어려운데 무슨 혼절을 해가면서  상 받을 일 있나?

나 또한 돈을 달랬나?

난 이렇게 해서 돈 들어온다고 하면 진절머리나

젠장 보기 싫은 며느리처럼 뒤꿈치만 보아도 미운 판에

움직여 봐야 더 옥죄는 판에

내가 내 얼굴에 침 뱉는 꼴이지  

무슨 환장을 했다고 거기다 부귀영화를 매달겠는가

다 나도 폼생폼사가 좋은 것이여

그져 좋은 게 좋을 듯이  하고 웃는 얼굴 보면 나도 좋은 것이여

다 주는 대로 받고

한 치도 공짜가 없다는 법칙은 지키는데 무슨,  

인생은 다 그런 껍질인 것을 아는 데 무슨,

상을 준다로 한들 반가우랴?

부처를 벤다고 하는 놈이 소리만 무성헸지 못 베었으니 

환속을 하면 상 줄 자 있을려나?

어머나! 

중생들은 어찌 그리 신들보다 너그러울까 

뭐 신이든 사람이든 공짜가 어데 있던가

뭐 그래도 남은 것이라고는 내 이력대로 사는 것만 남은 것같으니

계통이 그 계통이라 또 야학노인의 해석 부분을 좀 생각해 봤는데      

그 분의 문제 해석 중에  

近病은 낫고 다시 세월이 흘러 出空하는 해분에 사망을 했다는 겅험을 이야기 했는데

그런 경험은 학문적 집요성이 없으면 얻기 어려운 것이다

즉 해결이 안 돼고 모호만 괘는 수 십 년이 지나도

염두에 있어야 해결점이 나온다는 것이다 

즉 화두처럼 염두성이 약하면 그 미해결을 차고 나가지 못 한다는 것이다  

점사를 내줘도 그 해석점에 접근도 못 하고 방치되기 일쑤인 것이다 

즉 이는 동시다발성이나  시차를 두고 접근하는 사태를 

징조로 먼저 들러난 것일 수 있는 앞뒤가 있는 것이고

이 것은 꿈으로도 드러나는 것을 봤는데 

그런데 만일 시급을 다투는데

공망에다 動爻도 공망이면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과제도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럼 먼저 선후를 바꿔가며 해석을 해봐야 하는데 

즉 공망이 먼저인가 동효가 먼저인가 하는 것 

그리고 動空은 空이 아니라는 것 

실제 동공은 몸이 일부가 절단되어 그 보상의 문제로 소송이 벌어지는 경향은 보았는데

그럼 그 동공은 확연히 객관적으로 맞다는 것인데  

그래도 근병에 동공은 무엇을 먼저 볼 것인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즉 근병은 공망된 부위가 병이라는 것이 되는데

이 것은 전염성이고 유행성이 되는 것이다 

그럼 空化空은 空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變爻의 空도 本卦의 空처럼 즉시 아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空化空은 마치 혈우병처럼 아물지 않는 것이고

아물 수 있는 것을 헤집어 놓은 형태든가

재 수술에 드는 것일 수 있는 것인데

즉 空化空은 空이 아니라는 것은

공은 그대로인데 그 공의 작용은 그대로 있다는 것이니 

실제성으로 비교하면 

영(靈)도 육체도 아닌 좀비의 상태와 같은데 

실제 작용은 하니 空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공망이면 약을 안 쓰고도 낫는 병인데 

만일 동하는 문제며는 그 병을 봉합하지 못 한 채 

해를 묵을 수 있다는 요지가 된다 

이는 곧 오래 살려면 절단하고 다른 대용물을 넣어야 사는 형국이다   

이는 곧 病은 그대로 가되

항체가 생기지 않아 약도 없다는 것과 같지 않는가 하는 것이나 

생명은 유지해 간다는 것이 된다

그러니 공화공은 그 출공하는 해분에 

의족이면 그 의족의 수명이 다 한다는 것이 된다   

또한 공망이란 것이 병이 들지 못 하는 간격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것인데 

그러면 出空은 곧 항체가 생긴다는 것이 된다 

그러면 공망 안에 병과 약이 함께 작용을 하는 공간이라는 것이 된다

좀 더 상세 사항으로 보자면

공망이 동하면 그 아픈 부분이나 상실된 부분에 대한 보상인 것이고 

공에도 그 공의 완결성에서 봐야 하는 것이다

즉 보험에 들어도 그 해당 병에 대한 보상이 되는 것이고

공망이 아닌 것으로 생을 받으면

생몸이 고질병으로서 치료를 받는 것이고

공망이면 기능성 상실이나 절제로서 보상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난 병으로서 공망이면 즉시 낫는데

공망이 동하면 그 병에 대한 해당 사항으로 결정된 것이 있다는 것이다

즉 변효에 따라 나아도 보험이 나온다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공망 동효는 변효와 생극을 따지지 않는 면이 있다

즉 體가 病이라고 할 때 병을 극하는 用神이 약인 것인데

本卦 上으로 서로 극을 하면 약으로 낫는다는 것이 되는데

만일 변효가 회두국을 하면 그 것이 약이라고 하더라도 흉하다는 것이다

즉 즉발로 낫는 약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인데

다만 이 약이 회두극으로 바로 영향을 주는 코스면

마치 몸에 좋으라고 영양 주사를 맞는데 도리어 쑈크사 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즉 약의 효험은 분명 있는 것이니 강도를 높여서 처방을 할 수 있는데

이 것이 더 위험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콩깍지

 

아마 그 것이 농요(農謠)였던가 가사(歌詞)였던가

그리 일상적 내용은 아니었는데

정 첨지가 욕심이라고 내보나  

빈 콩깍지만 두드린다는 내용같았는데

전반적 내용을 보면

이 전(奠) 字가 제사를 지낸다는 뜻인데

영전을 의미하기도 하는 데서 비롯됨과도 같다  

이 것은 마치 인간의 초상인 것인지 유령인 것인지

奠인 것에 이 B(邑部)인 약자(略字)를 쓰고 나왔으니  

이 것이 콩깍지와 같으니

두드려도 실속 없이 콩깍지만 나온다는 것인데

이 것이 전(奠)에 있을 것이지

눈에 콩까지가 씌여

천  년 만 년 함깨하자며 만나자고 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 정(鄭)으로서

씨알을 싸고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두드려도 두드려도 아직은 빈 콩까지가 아니냐 하는 것인데

오! 저 연인들을 보라 

수 천 수만 년을 붙여도 다시 만나야 하는 듯이 떨어지겠는가   

그리 콩깍지가 낐다면 천안통(天眼通)을 타고 온 듯도 한데   

귀의 모양이고 보니  

천이통(天耳通)에 한 쪽으로 기울어 온 것도 같으니

씨가 되가 전에 

奠으로 모인 자는 오매불망이면 鄭으로  갈 것이니

살아 나라로서 나 라는 몸을 이루고

또한 죽어도 나 라는 것을 나라만큼이나 모여 奠을 세우는 것이니  

이는 나라는 나를 이루는 奠이 커서 나라가 되는 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니  

인생사 헛깨비 놀음과 같아도 

눈에 깍지가 끼어 스스로 오지 않았나는 것도 있다

다만 전(奠)보고 왔으니 관상(觀相)도 奠일 수 밖에 더 있겠는가

자기 제사 자기가 받아 먹는 奠

 

 

더 외계인같은 비 

 

이 도시의 나라

비도 제 멋대로 왔다 

소리 소문 없이 제 멋대로 갔나 싶게

외람되이 간섭도 않는 착한이이듯 함에

차라리 빗물에 매달리는 농부보다  

눈물같은 착한 돼지의 흔적보다 더 무심히 지나는 듯이

로마의 민주와 자유와는 다 엉키고 내심으로 다 반겼는지  

그리고 여생 해방까지의 여정을 만끽하는 세월에 휘감긴 듯이

무언가 눈빛만으로 침묵의 가치를 부여해준 아량의 지성인인 듯이 

그렇게 비는 도시 민주주의의 비위로 지나 갔었음인데    

그래도 최고의 인간급이라는 자부심에도 

농촌에는 풀잎도 자신의 시정을 읊은 열매를 내놓지 못 하는데 

가난한 농춘 

그냥 무심히 볼 수 잇는 도시인의 참 무심하도록 지나며  

또한 석고상처럼 깔끔하게 무색무취하게 

무언가 공기 간으로는 더 트는 느낌의 접착력 없는 무표정에 

그저 살짝 웃음을 얹어주는 것만으로도

공동체에 대한  큰 배려의 기본성이 되는 듯이 하고서는

좀 더 삭막하지 않을 인간성으로 비추기는 하는,

허나 콘크리트처럼 삭아가는 무표정 그대로    

떠나는 시골버스에 올라 타는 듯  

비가 구름을 다시 올라타고 가는 듯이 무심히 탈 뿐인 것에 

농심은 계절도 안 맞아 뒤죽박죽되는 세월에 타들어간다

 

 

유아와 무아의 차이

 

우리가 과학적으로도

有가 유아(唯我)로 당겨 오는 상수적(常數的) 가치 동안은

즉 얼음이 녹이 않는 얼음인 동안은 얼음의 추체로 보는 

그 명명성의 상수와

녹으면 물의 주체로 보듯이 물이라는 기본 물질의 상수는 다르 듯이 

에너지와 중력이라는 것도 블랙홀이 다한 한 점에 기준하여

無 에너지 無 중력이라는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 질점(質点)이라는 것이다

즉 에너지와 상관없이

즉 에너지의 요소는 뺀 질점이 어데 인가는 하는 데서 출발을 하듯

주역 괘상으로 올리자면 공망의 출발점을 어데로 할 것인가의 설정성과

어느 성질이나 에너지를 빼고 空으로 할 것인가의 설정이 곧 

內功이 어느 理致에 까지 미치는가 하는 응험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명명(名命)하는 타이틀 동안의 有가

곧 唯我인 것에서의 조건이든가 상대성을 얘기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얼음과 물과의 관계가 곧 인간의 생노병사의 법칙이니  

이 건 윤회와도 다 관련된 문제다 

왜냐면 이 것도 다 내 주체로 변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또한 무아와의 환경에 놓인 적절성으로 빠져 나날 뿐이다  

이러한 무아적 변화를 

진시황이 유아라고 한들 불로초를 먹을 수는 없는 것과 같다

즉 나는 나다 할 수 있지만 다만 거기에 있을 뿐이다가 맞다

즉 이승이든 저승이든 거기에 있는 것은 유아일 수 있으나 무아다

그럼 부처님은 유아인가 그 또한 무아다

왜냐면 부처가 한 둘이 아니지 않는가

결국 어느 경계에 대한 유아일 뿐이라는 것이다

뭐 無我의 길이보다 한 치만 길어도 유아(唯我)라 하겠다는 것과 같다

즉 나무 잔 뿌리가 떨어져 나와 나무의 유아 있는 것

유전형도 유아가 되는 것에서도 무아가 되는 것이다

즉 적자생존이라는 것은 상대성 없이 진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죽었다고 해서 유아라고 해야할 이유로 윤회성이 없다고 할 수 없는데 

그렇다고 무아여서 윤회가 아니라 할 수는 없다

어러한 유무관계가 근대와서는 매우 과학성을 북돋운다고 봐야 한다

즉 허허실실이 매우 실한 쪽으로 살이 찐다는 면도 있다

즉 시간이라는 의식이 소화성의 인식이라고 할 때 

밥이 유아라면 반찬은 무아인 것이면 무아이면 유아가 소화가 안 되는데 

그럼 그 소화성을 밥이 끌어간다는 주장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논조의 입에 대한 음식으로서 말이다

즉 무아도 다 모르는데도 무아의 작용으로 흐르는데 

인간은 죽어도 안과 밖에 홀로 존재한다고 해서 유아일 수는 없다 

왜냐 윤회라 것이 유아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아가 비쳐지는 것일 뿐이다

 

 

有無의 함량과 상수(常數)

 

삼 법인 중에 제행무상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 제법무아가 되는 것이지 유아가 될 수는 없다  

즉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게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위장은 수면 중에는 운동을 멈춘다고 한다

이 것은 위장의 유아성 때문인지

법칙의 무아성 때문인지

그런데 밤 일을 많이 하는 중에 土가 많이 약한 자는 

토가 많은 자보다 위산 과다로 위염을 심하게 않게 되어 있다

그런데 잠이 많은 편이라

잠을 절제하는 수행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木이 많는 자는 오히려 잠이 없을 수 있는데 

될 수 있는 한 잠은 제 때 자두는 습관이 큰 도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날이 습관적 규칙성이 참된 인생이라고 하는 도인과 

장좌 불와라는 어깃장같은 도도 큰 도가 되는 것도 

결국 자신의 여건과 조건에 맞추어 가치 있게 하느냐와 같은 것이고

모든 사용법의 강약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장인이 되는 것이다 

다만 인생은 합리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태생이 평등한 것도 아니고 그 자리도 평등한 것이 아니다 

다만 어떤 기울기를 다른 기울기로 중화를 시킬 줄 알아야 

수명도 가장 긴 단위가 되는 것이다 

만약에 기운데로 일방적으로 나가면 그로 終命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그 것이 유아(唯我)라는 인식을 갖기 쉽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볼 때는 그 者가 火가 많으니 예절도 바르고 

내숭은 얼굴에 잘 드러나기 때문에 거짓말도 못 하나 

그 이점이 단순하고 화혀한 격식을 잘 따르는데 

우리가 볼 때는

그 자가 좀 더 냉정하고 차분하면 더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운이 수운으로 좋게 왔을 때는 그 불을 어느 정도 제지하고 절제케 하였기에 

성공을 거두었겠지 하는 판단을 하지만 

자신은 잘 웃어 주고 남에게 깍 듯이 예를 다하는 겸손의 지나침이

좀 더 억지인 냥 했어도 그대로 통한 덕인 냥 보는 것이니   

오히려 인생의 진리로 생각하면

그 火의 비중 그대로 과하게 주장하는 꼴을 성공을 예기 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재료의 비중은 같아도 그 담금질에 다르다는 것은 많이 보아오는 것이다  

특히 중도에 풍파를 격은 사람은 중용의 겸손을 갖추지만 

일생 운이 트여 무난히 살아온 사람은

그 결점을 결점인 줄 모르고 멀어붙여 성공한 자기 인생관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사주꼴이이니 성격은 닮아도

그 살아 옮에 따라 인생관도 반대더란 것이다

즉 인생도 각인됨에 따라 성품도 후천적으로 면모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나를 알 수 없다는 것이고 

그런데 그 것이 유아인 듯이 살다 가는 것이다

결국 역사는 승리자의 전리품인 듯이 변론되는 것인데

그래도 인생은 패배자의 인생관과 경중을 따지기 어렵게

독자적 자각성으로 지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역사는 승리자의 철학처럼 보이느냐

이는 곧 그러한 사고방식이 유아라는 비중으로 자아라고 믿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곧 死에 유아도 삶에는 유아가 아닐 것도 아니라는 것인데

이는 생사의 경게선으로만 변하는 것은 아닌 아무 상관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임이성이 들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인데

그럼 임의성은 더더욱 유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나혼자만의 개재이냐 하는 것이다

 

 

아킬레스 건과 허허실실

 

虛를 들지고 空을 맞는 것을 虛事라고 하는데

虛를 등지고 實을 맞아야 그나마도 實이라

우리가 한 번 아킬레스 건을 훑어보자면 

먼저 父가 空이면 부모가 만들어주든가 유전일 수 있다

아니면 갑옷이다 

허나 공망만으로 그렇게 추정하기는 모기 발에 워크다

허나 動空이면 그런 유형도 염두해 둘 팰요가 있다 

이 건 무적을 이미하기도 하는 것이니까 

病이어도 절로 낫지 약발과는 무관하다 할 정도다

공망이 극을 맞으면 새옹지마처럼 말에 떨어져 군에 안 갈 수 있다

허나 나아서 다시 가야한다면 군에 가면 전사할 수 있다

그러니 숨었다면 고개도 내밀지 않아야 한다

부공이면 부모가 반신불수라 봉양을 해야하기에 면하는 것이고

父가 世空으로 변하면 노부모가 살아계셔 군에 가질 않는다

그리고 奇門의 八卦陣에도 空을 등지고 虛를 친다고 했다

이 것이 바이러스 급이면

세균급으로 설명이 부각되자면 虛를 등지고 實을 친다는 것이다 

세균을 허한 상태로 만들어 항체를 양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공망이 발동을 하여 공망이 되었다 하는 것은

공망의 정체가 사라지는 것같지 않고 잡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近病의 치유는 잡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도 된다

즉 그렇세 나아버리면 대증법을 못 기른 것도 된다

그래도 久病은 사망이라 變卦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도 된다

그 해분에 아킬레스도 잡힐 것이란 것도 된다 

이는 곧 世에 空이 접했을 때의 일이다 

허나 또한 그와 함께 죽을 것이라는 것은 命이 함께 임했으니 

결국 같이 참전하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아니면 같은 편인 줄 알고 죽든가

즉 한 나라 안에서는 상종도 못 할 놈이다가도

외국과 전쟁이라도 붙으면 결국 같이가 같은 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된다

 

 

공망의 해결점

 

공망의 해결점은 그 空으로서 차지 하는 부분인가

空에 實로서 남은 부분인가 하는 설정성이다

이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책은 없다

실로 안다고 해도 설명할 만큼 절대성을 부여하기란

아귀다툼이 아닌 것이 없으니

결국 논란만 야기하여 좋은 뜻에도 비비 꼬이기 쉽상이다

이 정도선이면 어중이더중이듭이면 이해타산이 결코 만만하지 않으니 말이다

실제 공망은 생극에 영향을 받으니 생을 받아야 출공도 기대를 한다고 한다

그럼 에를 들어 陰水가 6이라고 할 때 이 陰水가 공이면

6이란 숫자가 공인 것인가 그로 6을 채우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비고 난 나머지가 6에 머물러 있는가 이다

즉 父가 사고가 나 반신불수로  공망인데

다시 動하여 財로 化하여 배상 문제가 걸려 있었다는 것이 된다

이는 곧 공망은 신체의 없어진 부분의 배상에 속하는데

그로 받는 것이니 이르 회두극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남은 부위에 대한 금액이 아니란 것이 된다

물론 남은 부분으로 살아야 하는 위로금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전자는 회두극이 상관이 없지만

후자는 회두극이 상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 처리가 마무리 되기 전에

쉽다는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그 또한 후휴증으로 엄청 고생을 하는 것을 보았다

또한 명을 상하지 않은 것은 공망이었으니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다만 질병에 있어서만은 극과 상관 없이 공망을 다루는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는데

이처럼 공망이 주는 뉘앙스가 많다는 것이다

 

 

공망의 정밀성

 

먼저 火는 온도에 의한 변화를 나타낸다

즉 火는 온도 상으로 드러내는 형태나 성질을 말하는 것이다

즉 木이 酸인데  金인 알카리성이 木인 酸性을 삼킨다는 것으로

木이 空이면 산과 앞카리가 작용하는 사이를 방해하는 물질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산을 약화시킨 데서 얻어지는 거부성을 확보하든가

무마 시키는 것이 있다는 것이고

다만 그 부작용은 있을 수 있어 고생은 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또한 金木의 관게는 이온의 호환이 되는데

즉 전기란 木에 속하는데 金이 삼키니 들었다 나왔다 하는 섭생의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즉 金은 전이성의 영역을 다루는 것이고 

이는 모든 궤도의 중력성과 같다는 것이고

그 끝이 원소 8 족인 無性으로 변한다는 것이니 이르 乾坤의 관계라는 것이 된다

火는 경직성을 얼마나 유연하게 드러내느냐 하는 것이고 

이 것이 길이나 깊이의 치수로 드러내는 것인가 이다  

온도계가 火라고 할 때 

火 공망이 金으로 化하면 얼음이 된 온도라는 것이고 

결국 절대 온도란 火가 블랙홀에 빨려드는 기준점이기도 하니 

빛이나 온도로 따지는 경게가 아니니

水空은 블랙홀 내에서의 작용하는 수치가 된다

그러니 절대 온도 위로는 냉광(冷光)이 있을 수 있다 

즉 물을 기준으로 액체라고 할 때

그 아래 온도로는 고체이기 때문이다 

별꽃을 피우기 위한 들녁과 같은

그러니 우리는 단순이 봄이 오니 봄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허공 우주 자체의 봄에 고무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것이 가을이 되어   

금륜의 한계점을 짓는다면

이는 초싱성으로 블랙홀은 수륜에 속한다

그리고 화이트 홀 상으로 풍룬을 뱉는다 

그러니 이 우주는 웜홀의 숲인지도 모른다

 

 

수리와 사물

 

우리가 陰土가 100이라고 할 때

陽土 50을 천지 기본수로 할 때

그럼 진토라면 50에 수가 고에 들게 동했다면

이는 양이 음화 되는 굴레가 음이 100이라면

양은 50이 아니라 5 인 것인데 

즉 양음 사이에 10 배율이 치이가 난 것이다

즉 한 해와 열 달의 차이를 5 를 50으로 달리 드러낸 것이라는 것이다   

수리 상으로 51이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인데

그럼 1 을 50인 母가 앟았을 때

母數 50에 子數 50을 완전한 생태로 복사된 것이고 

그러니 한 살이 51인 아니란 결론이 나온다

즉 1을 子라고 함은

그 한 살이 결국 50을 하나로 하는 유전형의 하나가 된다는 것으로   

나자마자 한 살이라 하는 것인데

그 것이 아니라 그 수가 떨어져 있을 때는 51이지만

庫에 들면 그대로 50이니

50 자체가 1 이라는 것

즉 십 단위나 백 단위를 하나로 묶을 때

그 하나가 또한 水이니 水와 土는 같다는 것인데

즉 庫에 든 水는 土數인 하나로 진행한다는 규칙과 같다

즉 나자마자 50이란 숫자는

곧 어머니의 모체를 그대로 본따 완전한 상대로 나온 것이니

50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니

이는 누가 누구를 낳았다기보다

나무가 10이라는 옹이를 만들고 가지를 뻗음과 같으니

이는 나자마자 한 살은 

나자 마자 50울 이어 받았다는 것이다   

만일 원소 8 족이 土일 때 

그 것이 辰土이라고 할 때

이는 곧 水인 6 주기율 내의 8 족으로서

8 족이 없어져도 水인 주기율은 남는다는 원칙이 

곧 영혼이 따로 남는다는 것과 같고

그 것은 허공의 굴레를 가진다는 것이다 

즉 만일 火의 庫 戌 즉 원소 3 주기율에 戌土은 8 족에 속하는데 

그 주기율 내로서는 족이 사라져도 그 火인 주기율인 상태가 있다는 것이 된다 

즉 원소 6 주기율에 火는 庫가 아니면

그 주기율의 속성 또한  함께 말하는 것이 아니니 

생사의 차로서 얼굴을 드러내지 못함과 같다는 것이다

 

 

수미산

 

그럼 이렇게 되는 것이다 

즉 申子辰에 辰은 水星인 것이고 

水는 水星의 공전 안에 있는 범주로서

마치 양파껍질의 사이를 도는 것이 혹상과 같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는 곧 그 혹성에 인간이라는 것이 된지만

그 것은 곧 양파껍질 사이의 공간인 것이고

오히려 살이란 것은 양파 살이란 것과 같은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즉 양파처럼 투명한 영혼의 굴레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巳酉丑은 金星이며 굴레인 것이고 

亥卯未는 木星의 굴레인 별인 것이고 

寅午戌은 火星의 굴레인 별자리라는 것이다 

이는 곧 寅申巳亥라는 孟申을 초공간적으로 엮을 수 있다는 것이니 

孟申은 陽性子에 속하는 것에서 唯我이면 대나무처럼 곧게 크는 것이고 

無我이면 仲神을 타고 오르는 아지랑이와 같고 나팔 꽃과 같은 의지를 할 것이고 

여기에 六境이면 그 맛과 항기에 따라 큰다는 것이 季神이다

즉 계신을 반도체라고 한다 

이는 곧 얼굴 전체가 토라고 할 떼 고에 든 것이 전정기와 같은데 

즉 귀는 다른 것은 모르고 소리만 안다 

눈은 다른 것은 모르고 빛의 영상물은 안다 

즉 우리의 이목구비는 얼굴이라는 부도체에 天通의 반도체인 것이다     

결국 수미산(須彌山)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소우주의 관상학적 기류

 

즉 申子辰은 블랙홀적 기류 

즉 子가 귀로 통하는 기류라면 辰은 곧 귀청이 되는 것이다 

도한 午가 눈으로 롱하는 기류라면 눈동자는 戌이 눈이 되는 것이며 

화이트 홀의 시류일 때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고 卯가 木으로 통하는 문이라면 未는 목젓인 것이요

이는 웜홀적 기류에 의한 것이라 봄이다

酉가 입으로 통하는 門이라면 丑으로 입술이 되는 것이며

이를 다 분담하는 코인 것으로 辰이 되니

이는 또한 이 기류의 전체가 코와 함께 일어났다 코와 함께 사라진다  

음식인 토가 위로 통하는 것은 기관지와 교재로 분담을 한다  

그래서 머리는 사상을 말하는 것이고 팔괘가 접힌 半으로 하는 것이고

 

 

질문의 고도성

 

우리가 윤회로서 유아(唯我)와 무아(無我)를 다룰 때 

그 我라는 객체가 되려면 

등뼈처럼 마디 마디여도 이어져 의식하는 생명체라는 것과

그 마디 마디 사이를 공간이라고 하니

그럼 X 레이를 찍으면 바로 한 눈에 들 수 있는 공간성에

그럼 X 레이를 실제성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럼 무엇인가 

결국 본질적으로 우리의 생노병사가 찍힌 것인데 

실제 빛의 존재에는 가당치도 않는 대입이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나노급을 다루는 마당에 

빛의 유아가 무엇인가가 중요한 의구심이 되야지 않는가 

질문의 질이 중요한 것이다

 

 

唯我의 범주

 

원소 8 족(族)이 진(辰)이라고 할 때 

이는 우리 눈으로 인지하는 범주라 할 때 

이를 唯我라고 할 때    

결국 子는 보이지 않으니 낳아봐야 아는 범주와 같은 것이라서 子이다

이는 원소 주기율로서 8 족이 유아에 속한다고 할  때 

8 족이 사라져도 그 족의 구성원인 것과 

한 주기율이 막을 쳐도 그 족의 성질을 가지는 유아성과는 

주객이 전도되는 궤변을 토할 수도 있는다는 것이 된다

 

 

빛은 빛으로 돌아가는가

 

우리가 光子가 수소 내에서 배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광자가 수액(水液)이라는 것으로 배양이 되면

 이는 온도를 안은 생명체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산소가 나오고 녹이 쓸면 이는 곧 숲을 이루는 나무다 

이는 광자가 유아일 수 없다

즉 물은 냉하나 빛으로 온도가 올라가니

이는 서로 간의 유동성에서 온도가 오르는 것이다

이는 곧 시간과 공간의 관계란 철도 레일의 사이가 벌어짐과 같다

즉 온도에 의해 간극이 있게 되듯

어쩜 우리의 생명력이 간여된 것은 그만큼 짧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린 과연 전파의 도둑놈인가

 

과연 칼슘은 원소 4 주기율이 갖는 전파성에 부스러기인가 

그럼 뼈를 8족인 土로 할 수 없는 것인가

그험 7 주기율인 간산(艮山)으로 土로 하는 것인가

이 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불에 타면 재를 남기지만 실제 하나의 점으로 남는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이는 원소 3 주기율의 개념인데 

이는 곧 나무가 커는 동안의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불에서의 관점은

재가 된 점 외에는 다 공간이라는 것과 같다

그럼 그 공간을 수리적으로 셈을 하는 것이 곧 불이라는 것이다

즉 모든 셈이 불 안에 다 들어간다는 것이 된다   

이 것은 불로서 보는 3 주기율적 관점이라고 볼 때

결국 빛의 속도는 속도의 의미보다 달리는 말에 탄 騎手와 같다 

즉 함께 탐으로서 전자의 속도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 결국 원소 주기율이 시간인 것인데 

여기에 비해 3 주기율도 공간성이 되는 것이다 

그럼 빛은 원소 3 주기율에 내리면 없지만 

전자는 4 주기율까지의 시간성이 남어 었으니 

이 빛으로 다하지 못 함이 원소 4 주기율로  넘겨 졌을 때  

원소 4 주기율은 기수는 안 보이나 말은 보이는 것이니

이 것이 무기질의 칼슘이 된다는 것이 되는데

원소 4 주기율의 원소 부족은 곧 신경계의 결함을 낳는 것으로

그럼 원소 3 주기율의 나트륨도 보이지 않아야지 않는가? 의문하는 것인데

이는 타도 연소점으로 깨끗하다는 의미인 것인지

또한 칼슘은 숯처럼 넘은 것으로 치면

아직 빳빳한 기둥과 같은 축조성으로 활용하는 뜻에서 이고 

나트륨은 연소성과 소진성에 관여되어 4 주기율을 넘지 못 하는 것인지 

 

 

토정 선생이 이미 안  수리의 연산법

 

보통 易學的으로 연산하는 것을 상수학(常數學)이라고 한다

즉 물리학적 상수학과는 다른 것이라 여길 수 있지만

즉 서양 수리는 作爲 內의 상수로

작위 내의 결론으로

작위성의 합리를 추구하지만 

동양의 상수는 무작위성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 것을 항상한다고 할 수 없는 규격인데 상수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것이 있다는 상수만으로 상수가 맞지만 

규정되고 연속성으로 부여한 항상성만이 인간에 부여되는 공동체의 덕인 것이지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개인적이고 요행적이지 않나 하는 것도 되는데

이는 그 인연의 찰라성의 물질을 인정하지 않고는 쥐급하기 어려운 문제다

즉 우리가 전자의 속도를 따르는 의식이기 때문에

전자기계의 정확도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린 못 따라도 그 나타내는  순간의 정확성이 물질처럼만 명료한 상태를 유지헤도

원자 시계보다 분자시계로도 원자와 같은 순도의 상수를 가질 있다는데 있는 것이다

이를 입자 연산법의 차원이나

질점의 차원으로 보면 인문적 해석과 물리적 해석의

동질성과 동행성이 같다는 것에서

그 풀이가 원소 주기율적 원소성이

마치 만화캐릭터 성격처럼 드러 낼 수 있음이 있다는 것인데

즉 그 것이 하나라는 것을 모를 때는

그 물질의 관계를 인문학적으로 비유가 되는 것이지만

인간의 성격이 그 물질의 구성 요소에서 나온다는 것에서

메카니즘이 있을 수 있음을 알 때

어느 시공계는 빛을 삼키는 만으로 상대의 의사를 읽을 수 있다는 추증이 나오는 것이다

그 相存性으로 취급하여 이용하는 것이라 하는 것인데

특히 토정 이지함 선생님의 數理와 象形 間의 호환성으로 취용하는 것은

月影圖에서 그 백미(白眉)를 보여 주는 것인데

그 취용성과 물질인 입자로서의 유기성으로 

물질의 有無로까지 연산법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으로 본다면 

그 분은 물질이 수리학적으로 입자를 넘는 수준의 유기성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실제 득도한 경지의 사람들은 물질과 사물의 속성을 수리학적으로도 꿰뚫었다는 것이 된다

졍중성(輕重性)과 순도의 연마에는 차이가 있지만,    

 

 

<"만물을 컴퓨터로 만들어버린 ‘입자 연산법’
전자(electron) 하나와 양전자(positron) 하나를 충돌시키면 하나의 광자(photon)가 탄생한다. 입자와 반입자가 충돌했을 때 질량이 소멸하면서 그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 쌍소멸 현상이다. 참고로 양전자는 양(+)의 전하를 가짐으로 전자와 반대 성질을 보이는 입자다.

쌍소멸은 입자를 이용해 덧셈 연산을 해서 결과값을 산출하는 일종의 덧셈 계산 프로그램이다. 인터넷에서 ‘파인만 도식(Feynman Diagram)’으로 검색하면 다양한 쌍소멸 계산법을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입자의 곱셈도 가능할까? 양자역학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이중 슬릿 통과 실험’이 해답이다.
두 개의 넓은 칼날을 붙이고 그 간격을 아주 좁게 설정한 장치를 ‘슬릿(slit)’이라 부른다. 하나의 틈새를 가진 슬릿에 광자를 발사하면 그 뒷벽에 넓게 퍼진 자국이 생긴다.
광자가 입자라면 틈새를 빠져나온 입자에 의해 하나의 구멍만이 생기는 것이 정상이다. 자국이 넓게 퍼졌다는 것은 빛이 파동의 형태를 띤다는 의미다. 양자역학의 원리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실험이다.
이번에는 두 개의 슬릿을 겹쳐서 설치한다. 제1슬릿은 틈이 하나, 제2슬릿은 틈이 둘이다. 파동의 형태로 제1슬릿을 빠져나온 광자는 제2슬릿을 지나면서 2개의 파동으로 갈라진다. 그러면 뒷벽에는 2개의 파동이 각각 자국을 남긴다. 이것이 입자의 곱셈 계산법이다.
생물, 무생물 할 것 없이 만물의 기본 요소는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입자로도 연산이 가능하다면 이 세상 자체가 거대한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는 상상도 설득력을 얻는다. 이를 이용해 최근에는 ‘정보물리학’이라는 분야도 생겨났다.
결국 수는 무엇일까. 수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반복되는 김 교수의 질문에 다른 관객이 해답을 내놓았다.
“모든 것이 수다.”
만물의 원리를 수로 표현했던 피타고라스의 혜안이 맞았던 것이다. 수학은 머릿속 또는 컴퓨터 내부처럼 가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자체를 구성하고 진행시키는 기본 원리인 셈이다.
강연 후에는 세계적인 수학자로 살아가는 김민형 교수의 일상과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가 진행되어 관객의 궁금증을 채워주었다. ‘지식콘서트 카오스(KAOS)’는 수학의 본질을 소재로 올해 총 5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우주의 복사성

 

부처님 말씀에

 "하나의 해와 달이 사천하(四天下)를 두루 다니면서 광명을 비추는 바
이와 같은 세계가 천(千) 개 있다.
천 세계 가운데는 천의 해와 달, 천의 수미산왕(須彌山王), 사천(四千)의 천하(天下),
사천의 대천하, 사천의 바닷물, 사천의 큰 바다, 사천의 용, 사천의 큰 용,
사천의 금시조(金翅鳥), 사천의 큰 금시조, 사천의 악도(惡道), 사천의 큰 악도,
사천의 왕, 사천의 대왕, 칠천의 큰 나무, 팔천의 큰 지옥, 십천의 큰 산,
천의 염라왕(閻羅王), 천의 사천왕(四天王), 천의 도리천, 천의 염마천(焰摩天),
천의 도솔천, 천의 화자재천(化自在天), 천의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천의 범천(梵天)이 있다.
이것을 소천 세계(小千世界)라 한다.
 
하나의 소천 세계가 천 개 있으면 이것을 중천 세계(中千世界)라 하고,
하나의 중천 세계가 천 개 있으면 이것을 삼천 대천 세계(大千世界)라 한다.
이와 같은 세계가 겹겹으로 둘러있으면서 생겼다 무너졌다 하며
중생들이 사는 곳을 일불찰[一佛刹.
불찰이란 범어로 buddha-ksetra 佛士, 한 부처님이 교화하는 세계]이라 이름한다."
 

 

 부분에서 하나의 해와 달이 사 천하를 비추고 

이러한 사천하가 천 개가 모여야 小千 세계라는 것인데 

수리의  연동성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것은 우주의 복사성이 아니면 설명이 어려운 과제인 것이다

그래서 동양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한의학만큼이나 신빙성을 가질 수 있는  심증적인 근거가 되는 것인데 

부처님의 우주는

아인쉬타인적 두뇌의 천재성이 아니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류의 위대한 발견은 서양인이 하게 되어 있는가보다 

하나는 부처님의 말씀을 타 종교인 유대교인이 도통이듯  내놓는 것이든다 

침술인 밥줄을 독일의 어느 한 기계가 쥐고  먹여 살려주든가

완전 특허권을 주고 있는지 모르겠구만  

역시 둉양인은 주인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인지

그냥 뭐 그들의 꽁무니만 잘 따라도 밥줄이야 더 나으니

뭐 그러고도 살맛이나 입맛이 돌아온 침술이고 보면 

아직은 컴퓨터가 인간하고 맞짱 뜰 것이 아니지 

어데 기계가 유규한 역사의 임상학을 능멸하는감 

그런데 말이여! 

인간 별 거 아니더거만 

떡하니 經穴에 대놓고는 여기 대면 신호가 노는감? 

음~! 오는 구먼 

저기 대면 신호가 오는 감?

음~! 오는구면 

그리어 그리어 

바둑은 컴퓨터를 못 이겨도 

역시 컴퓨터는 인간을 이겼구만유 

그리어 

뼈대만 갖고 논하자구요

실제 신호만 오는 것 빼고 남의 효과야 잔챙이 아니유 

그 것 몰라도 번쩍번쩍 신호만 오게 하는 것 광만 잘 내면  박사인 것 아니여?

그런데 그러면 도대체 무슨 맥을 안 찾아 먹은 것이요 

혹시 그 것 산삼 뿌리 아니여?

불로장수 뿌리인들 대순가   

반짝반짝 길을 따라야지 

 그 길이 그래도 동양인 중에는 좀 잘났다는 소린 좀 듣는 것이지

물론 이 말이 선대 조사나 선각자님을 욕보이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그들의 정신적 접근성은 부처님과 같은 논리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것으로 

탁월성은 누구도 모방을 할 수 없다  

허나 내가 말하는 실사구시적 인물의 논리와 대증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

이 사회의 지배구조의 허실을 기계처럼 여실히 드러내주는 것 또한 없다

폐일언하고 

하나의 해와 달이 사 천하는 비푼다고 할 때 

그러한 세계가 천 개 가 있다고 함은

왜 천동설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는지 모르지만

천문학의 발달로 보면

이미 기원 전에 천동설을 알았을 것이란 추측이 허구한 말이 아닌 걸보면

오히려 지동설이 그 시절에는 안주하기 좋은 시스팀이였는지 모른다    

부처님 말씀은 다만 지동설로 설명이 되어도 천동설과 같다는 것은 된다

천동설과 지동설에 의한 짜 맞추기가 다르다는 것으로 보나 

허나 또한 이 것이 천동설과 지동성과 상관 없다는 것도 된다

즉 태양에 지구가 도나 지구에 태양이 도나 한 파트라는 것이 되는데

어쩜 다른 태양계에도 인류에 하나의 달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똑 같은 것이 똑 같게 비추는 것이라면 

이 지구 하나의 기준으로 보면

인간이라는 인물과 천신이라는 신체와는 엄청난 차이점을 보이듯 양파껍질처럼

복사성을 나타내어 천 겹까지 간다는 것이니 

이는 항성인 별만으로 천 개의 시공성인 두께를 만든다는 것이고 

이는 천 겹의 물결에 고정형으로 각기 다른 유기성을 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것이 무리한 논리라면    

천은 십진법으로 세 자리 너머의 콤마인 것이니 세 겹 정도면  된다는 논리이고

이는 10 단위마다 1000으로 하면 되는 것인데 그 함축성은 어데 나올 수 있는가 이다  

 

 

고물될 기계 하나 만들어 본다는 것이

 

어찌 보면 너무 너무 무식한 눈에도 딱해 보였는지 

아니면 너무 삐어나서 발치에도 못 되는 것이라 여겼는지  

제 자신을 너무 모르는 놈이라  딱해보였는지

굳이 시선 때면 그만인 것을  

스님은 왜 그 런 글 쓰지 말라고 달달 볶아도 왜 자꾸 쓰냐고 추달하지만

뭐 그래도 그런 자들이야 내가 죽어도 측은하고 안타까운 중생에도 속하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잘 죽었다고 속이 시원하다 할 자 많고

지옥에나 가라고 앙축할 자 많으니

이도 다 한 때의 꿈

난 인생이 아니니 인간이 아니라고 꿈에조차 염두에 안 둔다고 해도 

그 게 아닌지  

내가 부처라면 치가 떨린다고도 했는데

그 게 나도 <인간이니까>가 성럽이 되어서인지

그래도 신에 대꾸지 인간엔들 무얼 바라겠는가

내가 부처 아닌 게 호강 아닌 거니 별 수 있는가?

나도 글을 자꾸 쓰게 되는 것이

수리가 입자성을 넘어 양자 물리학까지 가면 신호가 올 것같아서죠

원자 정도는 구슬치지 애들 주머니에 가득찬 마술과 같은 것이 

소강절 선생의 상수학이라는 것인데  

이 八卦라는 것이 고물 기계같지만 최고의 고성능을 발할지 모른다니까요

신호가 온다고 믿는다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그 팔괘라는 것으로 

똑똑해서 등쳐 먹는 자에겐 은근설쩍 병신만들기 좋은 것인데

뭐한다고 기고만장한 지식나부랑이에게 까발릴 이유가 뭐냐고 하지만

요즘에 은근설쩍도 믿을만 해야 말이죠

뭐 한 철 간 거 아닌가요?

그런데 내면은 가짜가 아니니 피해를 보는 자는 환자인 것이죠

뭐 그러니 팔괘로 신호가 경락을 따라 오게 하고 보는 것이죠

아미 이 기계가 완성이 되면

어제 남쪽 하늘에서 사라졌는 별이 어데 있다는 것을 신호로 알려줄려는지

 

 

인문학적 常數와 물리학적 常數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모든 원소 원자 알맹이로 만들어서 모든 수리 연산의 기본 모래알과 같다고 할 때

그 앞에다 8 개의 비이커 병을 놓고

그 원자 모래 알맹이 한 줌 쥐고 차례 대로 수량을 늘여 담으면

하나를 담은 첫 번 째 알맹이는 수소

두 번 째 그릇에 두 개는 핼륨이 될 것이고

그리고 8 족까지면 번복이 되는 주기율이고 보면

그 주기율 수 8인 그릇과 함께 더 해 족의 위치를 맞춰 간 것으로  

이는 곧 껍질 8과 함께  물질이 된 원소라는 것이

시작은 乾坤 두 개이니 2만으로 그릇이 되는 것이고  

그러니  6 번 째 그릇에 6 개를 담은 것이 껍질을 합해 8인 산소가 되어 있을 것이다

즉 이 것은 건곤 두 개를 합한 핼륨을 돌아 나왔으니 번호는 8이 되는 것인데

이는 또한 8이 母胎인 土인 동시에  산소라는 木이 되는 숫자다

이 것은 원소 8 족인 모태성으로 낳고 6 까지 간 그릇인데

이는 곧 2틑 거울 1인 바닥을 칠한 흙이 2라고 할 때

이 2 로서 유리그릇과 같다는 것이고

이 거울과 같은 그릇에 산소가 6 족으로서 찾다는 것이 되는데

아마 이렇게 오비탈이 그릇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그 그릇은 2 로 두꺼워져도 6 번 재라고 할 때는 산소인 것이고

그릇이 8로 한 주기율 더 두꺼워 졌을 때는 3 주기율의 산소족이듯

다만 2 주기율의 산소일 때

거기다 원자를 두 개  더 넣으면 결국 물이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즉 그 그릇은 물이 되어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토정 선생님의 상수학처럼 괘상을 오비탈처럼 벗겨본다든가 입히든가 하면

물질성보다 인간 내면의 심리성 화학적 요소가 어떻게 이루어 졌는가를 보는 것과 같다

즉 우리가 꿀이라고 할 때

굴을 굴이라가 할 때와 꿀을 꿀이라고 할 때가 다르듯

우리가 늘 거기에 벌집의 꿀의 먹었기에

어쩜 사랑은 달콤란 굴의 꿈인지도 모르다

만일 행복의 치수가 달콤과 같다고 할 때

곧 꿀이 열린 것만큼 행복이 지수를 알게되는 것이라면

이는 곧 원소 성격의 함수가 순수한 만큼 인간 성격이 드러남은 같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다 알 수는 없어도

 

오늘은 참 진기한 것으로 본 것같다

하나는 벼랑 위 밭에 왠 하얀 절쭉이 왜 그리 줄을 서 피었는지

간혹 붉은 꽃 사이로 피는 것은 봤지만

새삼 하얗게 참 탐스럽게 핀 것을 보았으니

본래 찔레는 장미침과도 같이 살아 있는 것이라

질레란 본래 희나 붉으나 가시가 맛인 것같은 것이 

구름 속 고양이 발톱과도 같이   

저 먼 하늘가에도

가래 신음소리같이 속내를 끓이는 듯 어흥거릴 분빛 같은 것으로 

참 생뚱맞구나 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그로 한참을 지났다 싶은데

난 내 일생에 뻐꾸기 우는 소리는 먼 산 골짝에서든가

아니면 간혹 기슭에 우는 것은 보았어도 아직 그 새를 눈으로 본 적이 없는데

이 훤한 길가에

아예 보란 듯이 낮은 비행을 하면 뻐꾹거리면서 지나간다

 

 

역발상의 제일 깊은 바닥성

 

또한 이러한 것이 있다 

황금(黃金)을 충돌하며 최고의 열을 만들 수 있다고 할 때 

이는 곧 金이 水宮 6 주기율이고 최고의 陰인 자리인데

그에 비해 원소 7 주기율은 그 응집력에 있어서 많이 균열된 붕괴성의 질이라는 것이다

또한 山은 少年이라고 하나 

원소 6 주기율처럼 찰지지 않다는 것으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도 水가 그림자인 것이 견실한 幕이지

土에는 물이 도리어 골을 메우게 되어 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원소 7 주기율은 불안정이 많다는 것이 된다   

이 陰의 최대 깊이 금이 衝을 해 바닥을 보인다는 것은 

역발상적으로 陽의 뿌리를 드러내는 표상이라는 것이 된다  

이는 최고의 치수 깊이가 길이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이다

안정적으로는 6 주기율이라는 것이 된다

또한 원소 8 족이 陰土인 자루라고 할 때

이는 숨쉬는 독과 같이 새지는 않아도 다른 시공적 숨쉬기는 있다는 것이 된다

 

 

초유체(超柔體)

 

초유체를 핼룸 2라고 한다는 것인데  

그러니 핼륨이라는 모임도 그릇도 되는데

또란 입자성의 모임이니 틈도 내는 원소다

허나 이 헬륨이 다른 그릇을 사이를 빠져 나간다는 것은

이는 원소 3 주기율성의 틈에서 이지만

수소라는 원자 그릇

즉 오비탈인 그릇에는 새지도 못 할 것이란 것이 되는데

또한 서로가 담고 담기는 메카니즘 또한 아니다

즉 절대 온도와의 관계는 이미 원소 3 주기율을 넘어야 하는 굵기인 것이니

핼륨은 거기에 비해 너무 가늘다는 것이니

새는 부분이 있다는 발견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 대운은 다른 시공일까 

 

그 이 계절의 기운에 있어

그대로의 달 한 바퀴와 지구 기울기의 축이 백 배율인가 하는 것인데

이는 경도가 1 이라면 위도가 100이라는 것도 된다

왜냐하면 계절은 위도로 용쓰는 패턴으로 할 때

경도로는 그냥 한 달은 한 달의 테두리라는 것이 된다

그런데 어떤 합리성으로 백 배율의 시공성으로 사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즉 인생은 한 해의 꿈에 100 년의 이정표를 예고편처럼 보인다는 것인데

이느 곧 지구의 공전이

달의 공전을 암기해 해로 감아 풀리는 것이 되고

그리고 이미 태중에서 10 개의 공전된 달

왜 우리는 대운을 백 배율로 답을까 

이는 기운 상으로 달의 한 바퀴는 

지구 자전의 기운으로 안착이 되는데 백 배율의 호환성이 있다는 것이고 

맞물린 상태에서라는 것이다 

또한 그 반대로 

한 달이 좀 더 유순의 치수로 좀 더 천상적 기운의 회전 

즉 인간이 태어나서 한 바퀴 돌이면 

이미 자신의 행운의 갑옷은 입었다는 것이고 

이는 곧 이간이 토성까지의 굴레ㅐ로 피부까지 완성이 되어 태어났을 때

그 일년 가량이 우라노스의 천왕성으로 할 때

이는 곧 그 한바퀴를 달 돌로 우라노스의 예언을 백 배율로 감았다가

해왕성으로 갔을 때

일 년을 백세인 냥 난장이처럼 사는 생명력과 한께 하면서

배율의 운명으로 이어간다는 것도 되는 것이다

 

 

마음의 물질성

 

우리가 한 컵에  원소 6 개가 뭉쳐져 산소라고 할 때

거기다 원소 두 개를 더 넣으면 물이되는 패턴이라면

이는 곧 손발로 움직여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면

이는 전기의 가지를 따라 붙어 있는 것이 나무의 가지라면

자기장적으로 붙어 있는 것이 잎새적 전지 정전기와 같은 것이 되는데

마음의 속도성이갖는 영역이 라는 것에 있어서도

빛이 제로라고 할 때

즉 꽃이 제로라고 할 때

잎과 기둥은 매우 조급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물에 대비되는 조급증인 것이지

불에 대비 되기에는 언제나 안정적으로 오는 과정에 있을 뿐이라는 것이고

불은 안정성의 최대 희열성을 나타낸다

 

 

프로이드적 꿈의 해석과 심령학적 꿈 해석의 차이

 

그럼 토정 선생님의 적용을 한 번 보자

우리가 姓氏도

土姓이니 金姓이니 하듯이

그럼 원자 구슬 6개 담긴 산소 그릇이 수소 두 개를 더 넣어 물이 되었을 때

물은 우성(羽姓)이라고 하는데

이미 다른 시공에서는

물이란 것 자체가

원자 단위를 분자 단위로 보이는 것으로 문호가 되는 상이라는 것으로

이는 곧 물 위에 집이 둥둥 떠 있는 듯

바다가 水姓인 모뎀이 되는 것이고

그 水를 입구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어 들어가는 거북이라고 할 때

그 건 컵에서의 물로서 다시 분해되어

다 원자 구슬로만 해체된 입구에 들었다는 것이 되는 것이고

이는 또 분자에서 원자의 시공을 들었다는 것이니

다른 공간이 따로 열려 보이듯이 한다는 것이다

그 水姓이면 吳氏도 포함이 되는 것인데

먼저 水姓에서

그 吳氏 조상 목록의 원자를 찾아 양자학적으로 들어감에

양자학만으로도 지구 혹성 정도야 램프에  담아도 남을 거인이니

오씨 조상의 내역 정도는 한 혹성과 같이 풀어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유전자를 추적하듯 들어 갈 수 있으니

즉 동양철학적 상수학은 물리학과 기하학적 구조보다 바탕성이

마음의 변덕처럼 보조리하게 일어나는 것이니 믿을 수 없다로 하나

이러한 원소학적 바탕

즉 찰나같도 순간과도 같은 것을 거기에도 여과성의 통과 목록을 보이는 것은

우리가 전자 시계를 못 따라도 결국 거기에 정확도를 매달지 않는가

 

 

우린 과연 얼마만큼으로 관념을 신뢰하는 것일까

 

화극금이면 화나면 숨이 차고

금은 협착이니

무거우면 무호홉을 되는 것이로

목인 발이 빠지는 것이니 호흡이 펖프작용을 못 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목극토 토극수 수극화라 할 때

토극수는 산을 오르면 땀이 나는 것이고

水剋火는 의외로 에너지 손실이 많아 쥐가 자주나는 편이라

쥐를 子水라 하는 것과 같다

 

 

원소 족 사이의 공간에 있어서의 시간이란 백 년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

 

우리가 원자 구슬을 여섯번 째 족인 그릇에 여섯 개를 두 번을 넣고 산소 두 개라고 할 때

다섯 번째 컵에 다섯 개를 넣어 만든 탄소를 부으면

이는 곧 이상화찬소로서 불이 일어나는데 

이를 火姓 族라고 하면 姓씨가 鄭氏나 李氏가 되는 것이다 

그럼 족과 족 사이의 거리가 백은 넘는가 하는 것은 

양 주기율의 끝이을 잇는 족이 토이니

토의 자리는 십진법으로는 10이니

이는 곧 10 곱하는 것과 같아야 그릇이 되는 것이니 백으로 하고

이는 곧 팔방에 상하를 더한 십방적 입체성으로 8을 10으로 하는 것이니

그 것을 그릇의 숫자 합량이 되고 

둥근 물체의 축을 더한 그 자리의 숫자를 감당하는 것이기에

실제 끌이 접혀가는 것은 팔족으로 접히는 것이고

그럼 곧 원자 순서대로의 숫자 번호와 

그 것을 팔로 제한 숫자로 접은 변함없는 그 위치로 할 때의 숫자의 함수관계가 

족의 불변성처럼 그렇게 있다는 것이 된다

이 것이 한 해와 달의 공전의 차이를 드러내는 시공과 함께 물리는 것이라면

마치 한 달을 10 년으로 셈하는 이치와 유사한 면이 있게 되는 것이다

 

 

干合의 묘미

 

戊癸 合火라는 것에도

戊癸는  이슬이 땅에 스며들어도 마른 땅이라는 것이니 

무는 계가 없어도 마른 것이라 불인 것은 맞다 

이 것이 형상화된 가강 큰 것이 

이슬을 구름으로 뭉쳐 맑은 하늘로 빨아는 작용인데

이 정점이 곧 태양이 머리칼을 날리듯 하는 것이니

그럴수록 태양이 작열하는 하늘 꼭대기같은 상이라

실제 干合을 가볍게 볼 것이 아니라

火天大有와 같은 天下를 상투머리 올리듯이 하는 하늘 끝을 말한다

즉 마치 처진 머리칼같은 이슬을 위로 빚어올려

한낮의 정점으로 몰아 붙여 놓은 귀부인머리 스타일과 같다는 것이다

그럼 戊는 있는데 癸가 없는 火라면

이슬은 없어도 마른 땅은 된다는 것이고

이는 곧 황토를 말하게 되는데

과연 癸를 먹으면 赤土가 된다는 것은

아마 물의 성분이 수소와 산소로 분해되어

자연 연소성을 발하여 赤土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또한 合의 化는 용의 빚깔인 것인데

곧 카멜로온의 피부빛과 같은 요지를 말한다

그러니  戊癸 合이 火로 龍이 되었으면 赤龍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무만 있고 걔가 없는 화라면

龍도 돌연변이로 붉은색 용의 유전자였는데 누른색으만 보이고

癸가 없으니 이는  곧 집 안에 똑똑한 딸이 청운을 바란다면

여자는 질병이나 장애를 많이 보게 된다는 것이 된다

즉 Y 염색체는 유전이 되었는데 X 염체체는 전달이 안 된 것이다

이는 癸가 없으면 밤에만 움직는 양상군자일 가능성이 있고

우리가 굽는 음식같으면  밤을 넘기는 장사는 안 된다

왜?

子水를 끌어들이지 못 한 것이니 時運의 인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水가 비린내인데 비린내가  완전 가셨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비린내가 없는데 굳이 구울 필요가 없으니 회가 맞지 않나 하는 것이다

 

 

혹성은 자기장적 전자 렌즈다

 

혹성은 렌즈요 거울이다

그래서 혹성인 렌드 하나며는

모든 별, 거기에 수반되는 은하까지 보는 것이다

그러데 이 혹성에 눈을 땐다면?

이는 마치 만원경 안에 들었던 우주

즉 그 렌즈 안에 우주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눈 뗀 다른 시선의 우주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은하수 즉 우주 전체를 수소 한 알이라고 가정을 하면 

이는  빅뱅 이진과 같다

즉 태양이 아무리 커도 

수성 궤도 안에 갇힌 것으로 수소에 같힌 것과 같다는 것이 된다

왜 이런 법칙을 물리학적이고 수리학적으로 적용이 될 것이라 여기느냐 하면

우리가 經度로 낮과 밤을 맞는 것은

이 공간성 자체가 수링 흑백으로 치던 것을 다시 일으벼 세움과 같은데

이는 역설적으로 삼원색의 배합인 흰 색 금이 오후로서 기울다가

다시 6 개로 분쇠하여 더 작은 모래알처럼 하여 뭉치면 점은색이 되듯 

밤인 자시를 넘기게 되어 더욱 밤은 어두운데 

이 좋은 세분성이 어두워서 햬택이 가질 않으니

빗의 파장이 짧을수록 긴 파장의  빛을 끌어올리니 

더깨가 끼어 무지개 층인 것이요

나무는 늘 푸른 색이요

거기서부터 색은 밝아 무지개색까지 내는 것이니

꽃들은 오색 찬란하지 않는가         

혹성이 유리하고 할 때 

또한 그 유리에 한 쪽인 벽으로 흙을 발라 거울이라고 할 때 

이 혹성은 흡수성과 반사성을 동시에 가지는 것으로 

음양오행의 정기라고 할 때

걔절적으로 달이 담는 것은 줄었닫 찼따 하는 것이면 

이는 달 한 번에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 

지구의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인 언저리 입으로 담는 것

즉 자기장적 힘이

지구가 공전으로 풀리는 배율이 100 배라는 것인데 

이는 결국 달의 공전과 지구의 공전은 

그 시공적 차이의 복사율이 100로 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즉 시간의 눈금이 그 보폭이 다는 차이를 보이더라도

같은 배율로서의 동반성은 복사처험 틀림 없는 벙행선이 되는 것은 물론

같은 비럐의 같은 공간의 내의 인식 뿐만 아니라  

즉 한 시간 속에 또 다른 미분된 시간이 100개 들어도

공간 상으로로는 불변하는 하나라는 기준으로서 포함되었음에 

그를 기준으로 차이의 거리를 말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어둠에도 소리는 듣 듯이 무지개를 합해 검은 색이어도 

음색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 되는 것이고 

밝은 태양으로 노출이 되어야  보이는 안계 

이는 음색을 나무로 벌여 놓듯 널어놓아야 보이는 현솽과 같은 것인데 

이와 같이 흑백으로 늘여진 반이 상하괘 육효가 되는 것이고 

변효가 아침의 칼라로 옮겨감만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운명이 주역 상으로 드러난다고 할 때 

흑백 화면에서 검은 색소로만 있던 화소가 

각기 여러 색깔로 든 화상에 어느 한 화소에 속하느냐의 단위와 같다는 것이다

 

 

주기율의 행위와 원소성

 

원소 7 주기율을 반도체라고 할 때 

원소 5 주기율이면 허블 망원경이 되는 것이고 

또란 원소 주기율이 많을수록 시공이 넓어진 것이라면

또한 접은 것일 뿐 같은 길이든다

아니면 더욱 함축된 것이든

빛이 원소 5 주기율에 들면 매우 확장된 것으로

또는 축소되어도 확장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프라즈마 상태로 자기부상된 상태며는

이는 원소 4 주기율에 8 족인 크입톤 된다는 것이다

즉 프라즈마같은 특성을 판토마임으로 한 마디로 하자면

크립톤의 행위예술과 같더란 것과 같다

이렇게 원소성에 맞게 일본만화 캐릭터가 배속된 것이라면

인격과 물성 간의 연관성이 만화 내용과 얼마나 충실한가에 따라

주역의 효사 정도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범신론적 차원과 물리학적 함수 

 

예를 들어 내가 영혼으로서 원자 구슬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감각의 병행선에 있다면 

이 것이 열차를 들 수 있는 자기부상력을 쥐는 제로성같은 표준과 같다고 할 때 

즉 내가 구슬 여섯 개를 넣으면 산소

거기에다 두 개를 더 넣으면 물이 되듯이

그 물질만으로 나라고 할 수 있는 있는 것 

또한 병행이라고 하더라도 그 물질성으로 다하고 능가할 수 있는 

존재서의 영혼으로서 

또한 거기다 6 개의 구슬을 더 넣으면 이산화가 되는 것이고 

다섯 번째 그릇에 담긴 다섯 개의 원자를 넘으면 불이 되는 것이니

그러면 이 불이 다하는 물질성을 넘어 남은 부위가 영혼이라는 것이고 

오히려 물질성 안에 있는 것이라면 물질성과 함깨 다하는 질성이라는 것이 된다

이 것이 범신론에 있어 사물과의 함수가 되는 것이다 

 

 

임의성은 시공과 상관 없음이 타임머신이 된다

 

우리가 원소성이 분자의 굴레로 제로화한 것이 

원자의 궤도성이라는 동그라미인 것인데

이는 곧 양자락적 굴레라는 것이 된다 

이는 곧 분자로서 물질을 이뤄가는 부분이 

사주명리학 상 대운과 같다면

사주는 양자 물리학상의 구조성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것으로 

이는 즉 양성자가 원자의 굴레로 대운성을 찾아가면 

분자로서 맞물리는 것이 백 배율에 있다는 것으로

우리 몸의 분자성으로 그대로 확대된 복사품으로 이끌어 나간다는 것인데 

이는 곧 망원렌즈가 한 달의 구경으로 보는 것인데 

이는 백 배율의 확대적 안계로 본다는 것

즉 상으로 그렇게 크게보이는 것과 실물의 차이가 그렇다는 것이 된다   

이는 곧 원자 한 알 내의 연기성이  

원자 주기율적으로 제로성으로 하는 안에 

즉 1 로서 특성을 짓지는 않아도 

그 백지성으로 올려지는 새로운 그림과 같은 진행형이 

원자 굴레 내의 양자불리학이라는 것과 같은 것인데 

이러한 것으로 죽음이라는 것은 

원자에서 분자로 넓어지는 공간성으로 해석이 붙는 것인가 

분자에서 원자로 붙는가도 진행이 흥미진진한 것이다 

즉 원소 주기율 7까지면 

이를 원소 족인 팔방으로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이는 선이 면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니 

칠칠이 사십구가 되니 사십구제를 넘을 수 없는 것은 

그 전반적 기반이 그러한 원반성이 머무는 물성의 순간선과 같은 것이니 

이 칠칠이 사십구라는 것은 마치 우주에 타임머신이 비행체처럼 

그러낼 수 있는 위치성이 곧 그 물질의 물성에 맺혀 있다는 것이니

그 물성의 상황일 때가 

시공에 머물렸다 떠나는 것과 같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 모든 사물은 임의성에 병행하는 것이며 

임의성에 따라 그 사물의 시간에 머룰 수 있는 것이고 

그 사물의 유전성 반감기성에 머물렀다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천안 아산역이라

 

쌍용이 문제는 문제였나 뷔여 

꼭 이름 값은 한당게

그저 하나로 밀어붙이지 못 하지

천안이 먼저 자리잡았다고 하는데 

기어코 아산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가 뷔여 

쌍용일 때 알아봤지 

이미 완행 없어진 세대 

그냥 지나게 놔둘 쌍용이지 않았는감?

어머나! 전철이 살리고 살리고

괜히 잠자는 호랑이을 깨워서니

쌍이라고 하나 제 사수가 다른 듯  

하나는 사리 이빨 사수요

하나는 천상천하 사수라

이름 자리에 붇여 산 것을 

땅 자리라고 아산이 내 상아 이빨 하니까 

어림없지

천상천하 천안이 내 이빨이라 하지 않는감 

그런데 저 장산 곳에서 입이 벌어지면 천수만의 잇몸이 살아나니

그래서 바다 표범도 코가 잘 났다고 코내닐기 좋아하지 않는감 

그리어 코가 포인드여

그러니 몸금포가 그 잘난 코를 자랑하니 

그런데 아산은 부도탑 속의 치아였던지   

갑자기 묻혔던 사랑니 하나가 불쑥 드러난 것 아니여? 

그리어! 이빨이 있으면서 머리가 편해야 천안인 것이여  

음~!  그러고 보니 이빨이  안 아퍼야 하늘이 편하잖여?

천안 아산역이라 최고의 건강미이지 않는감

 

 

원소 주기율과 사십구제

 

육육이 삼십육 칠칠이 사십구 

이는 원소 8 족과 7 주기율과 관계가 깊다 

죽 원소 두 개를 상하로 하고

나머지는 6으로 육육이 삼십육이 되는 것이고     

주기율 7은 그대로 칠칠이 사십구가 되는데 

이는 나자마자 한 살이듯이 

구심을 더해 칠이라는 것에 심인 1을  빼면 6과도 같은 것이고 

보통 원소 1 주기율을 모든 주기율의 구심으로 보는 것이고

전지의 심과도 같은데 

실뜨기처텀 양손을 양쪽으로 먼저 바싹 당겨놓음을 뜻한다  

모든 원형의 남북으로 지름이 되는 기본성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이 남북 한 막대를 1로하고 

반지름 6 곱하기 6을 하면 면이 나오는 것

즉 육육이 삼십육으로

이는 분도기의 기본이 360으로 나룰 수 있는 것이고

일 년의 날짜를 거의 수용하는 범주다

이에 거의 자연적으로 상하를 더해 입체성으로 둥글어짐에 

전후 좌우의 지름과 같은  지름이 상하로 이뤄지는 것이고

이는 꼭 나중에 생기는 것이라기 보다

먼저 서고  살이 불었음이 좌우가 된다는 것이 된다  

구심적 심이라는 막대 

즉 태풍의 눈처럼  6 까지를 몰고

나머지 1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심이니

이를 마른 똥막대기와 같다는 것이다 

즉 부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듯 하는 남과 북으로 끄는 상보다

원심력으로 돌출하는 막대와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옆구리인 동서로 원심력으로 나가려 하기 때문에 

남, 북극은 음양의 노릇을 변강쇠처럼 하지 못 하고 

있는 듯 없는 듯이 음양의 노릇은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삷도 칠칠이 사십구 죽음도 칠칠이 사십구

 

삶이 칠칠이 사십구이기 대문에 

반물질성으로 죽음도 칠칠이 사십구이다 

다만 차이점은 年이 日에 얹혔느냐 

年이 時에 얹혔느냐와 같은 시공성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 시공성의 농후함과 연함의 차이를 논하자면 

즉 삼원색이 뱇으로 흰색에다 

무지개 색은 도리어  검은 색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 

즉 나무가 수껑이 될 정도의 여분성이 있다는 것이 되듯이

이는 곧 무지개색이 7 개의 무지개 반물질적 상황이 

검은 먹빛이어도 무지재색 수의 원소성에는 듦과 같은 것이고

이는 곧 빛은 검은색이어도 빛이라는 논리와 같다

이는 사후의 칠칠이 사십구에 있음이고

이 것을 나무가지처럼 입곱색소를 벌려서 늘면 

생에 보이는 무지개색이라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이는 일곱 색도 칠칠이 사십구요 

검은 冥界도 칠칠이 사십구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申酉金인 삼원색인 흰색이 子水로 7 원색을 合한 검은 색을 쫓아도 

검은 어두움일 뿐 7 개의 색소성은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서 

寅과 卯 木은 

즉 震宮과 巽宮은 天干이 庚辛인 삼원성을 가지니 

이 것이 만일 離宮으로 무지개색으로 펴지면 

申酉와 庚辛 차이만큼의 비중 또한

그 향방성에 따라 開花하듯 피면 무지개로 보이는 것이고 

움츠리듯 들어 칠칠이 사십구의 반물질적인 상태로도 

어둠에도 무지개처럼 이뤄나감이 있다는 것이다

 

 

달과의 사이

 

점성술에 있어서도 

내가 별이라는 기준으로 봐야 하는 것과 

그 해와 달에 어떤 성좌의 별을 끼고 났는가도 

내가 별인 恒星이라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혀를 태양으로 편도선이 水星이고

이빨을 金星이라고 하는데

이는 입술인 달 한바퀴 지구라는 것에

시계 눈금 침처럼 서른 번의 아침 샛별을 봐야 하는 듯이

즉 이빨은 다 같은 하나이나

지구의 달은 서른 개의 눈금 자전의 축으로

30 번 본 금섬의 눈금과 같은 이빨을이 닦을수록 더 빛나게 담은 별이였으니

그러니 입술이 달이라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가 人中이 되는 것이고

그 것이 인중이라함은 결국 인간이 달거리와  함께 태어난다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게 허세가 아니라 변강쇠급이여  

 

젊을  때  하인리히 뵐의  아홉 시 반의 당구와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나

지금은그 작자의 이름이 가물하지만 어느 작은 나라의 조그마한 종말이라는 타이틀을 본 것같은데

 달려라 토끼는 셀러리맨의 역동성이라 흥미있게 본 것같은데

아홉시 반의 당구는 전쟁으로 격은 낙망에도 

어떤  규칙성이나 집중력에 매달아  정신적 정체성만은 본능으로  찾으려는 것같은 게

어쨌던 허탈한 회상같아 깊은 내면성 중에도 

세대가 다른 것만으로 외면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고             

 이 어느 작은 나라의 종말은

핵에 관련지어진 내용인 것이었는데

 그 때는 공상과학 정도로 보았는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장성 허세가 아니라

실제적 오줌발과 같은 변강쇠급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 것은 핵 하나는 공산주의가 갖고 있었고   

하나는 자유방임주의자인 잠수함장이 물 속에 가둬진 욕구가 기회를 봐서 탈취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반 쿠데타식으로 골수 원리 기독교주의자가 핵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진행하는 과정을 보면

자유방임주자는 미녀들과 해수욕이나  즐기려고 바다를 비워 바치라는 둥

이래라 저래하 하는 것이

한생 들기다 가면 되는 듯이 쪼아붙이는 것이고  

뭔 천둥벌거숭이같으니 소련의 공산주의자마져 눈치를 봐야하는 판이고 

또한 기독 원리주의자는 야간 통금에 금주법이니 해대면서 휘어잡을려고 드니

라스베가스가 졸지에 깜깜해지는 판인데  

확실히 그 나라 사람들은 태생이 원칙을 중시하는 것인지

뭐 그 정도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면서 

걷으로야 도덕군자이니 하면서  속으로 제 이속 다 챙기면 되는 것을 

우리나라 자칭 군자에게서  한수 배우지 말이여 

서로 못 봐주겠다고  핵을 날려버려 결국 종말이 되지 않는감여? 

 이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난 상황으로 소설로 쓴 것인데

 그런데 정말 미국이란 나라가 작은가요?

뭐 그런 세 조각 정도도 작은 것일 수 있겠죠 

그런데 말이죠

땅덩이조차가 제 거니 아니니 

이 것 무슨 자기 땅 갖고 세들어 사는 것도 아니고 

무슨 월세 급에서 전세급으로 올린 것도 아니고 

제 땅어리라고 해봐야 저당잡인 듯이

불안불안 속애 곧 넘어갈듯이 듯이 하고선

이런 걸 우리나라가 갖고 간뗑이 크게 변강쇠 노릇을 하니

그럼

그럼

기왕에 팔아치우러면

아무 관련 없는 듯이

봉이 김선달처럼 대동강 팔아 먹 듯이

안색하나 흔들림 없이 팔아먿는 것이여  

이 계통도 몸에 좋다면 구더기도 잡아먹는데

대동강처럼 남아나는 게 있나요

다 자기 잇속만 채우면 되니 말이죠  

 과히 대국의 작가도 입이 쩍 벌어지게 할 만한 것이죠 뭐

 말하자면 이 원리주의자와 방임주의자가 서로 눈치 봐가면서 정부의 골수를 빼먹는게

 겉으로는 매우 도덕적이면서 청렴한 듯이 하면서

우루루 모이게 하고선 눈 찍 감고 

속으로는 자유방임으로 실속을 챙기면 되는데 말이죠

그 걸 못 해서  

결국 핵 하나면 왕 스크류 바 맛인지  

한 하늘 아래 두 임금을 섬길 수는 없는 것이라 자멸하고 만 것인데 말이죠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실속파죠

힘으로 밀어붙이면 관행이 되니 죄의식이 있나요 양심이 있나요

서로 공생만 되면 줄을 서는데 그런 세력은 왕급이 하루 아침에 되니 핵폭탄급이죠

 

 

 

인간은 어느 정도 굽긴 것일까

 

즉 원소 6 주기율을 생물로 할 때

원소 7 주기율로서 굽겼다고 봐야하는데

이는 곧 피부가 土라고 할 때

이는 곧 土는 火生土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즉 원소 4 주기율이 신경망의 최고조라고 할 때 

그 정도에서 원소 6 주기율인 水에 까지는

별 저항성 없이 투명할 정도의 순도를 나타낸 전이성을 낳았다는 것이고

그래도 공기발울과 같은 것이 화생토로 거품을 만듦에  

거기에 더껑이가 끼면 이는 전도체가 아니나

또한 7 주기율도 전이원소성을 스스로 갖추니  

반도체의 역량을 원소 악티늄족 만으로 뛰어나기 때문에 

두뇌성이 반도체적 센스로서 최고라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즉 할로겐 족처럼 매우 활성적 속도성을 지니면서 

붕괴성이 강한 山 벼랑과도 같다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즉 나무의 뿌리를 뽑았을 때

이 뿌리가 원소 4 주기율이라고 할 때 

거기에 붙은 흙덩이는 원소 7 주기율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흙덩이가 떨어져 나갔을 때 뿌리와 함께 덜어져 나갔다면 

이는 윤회의 자아인 것이다 

즉 흙덩이에 붙지 않고 기둥 뿌리에 붙은 것이면 

곧 나이테 우주의 주기율적 시공을 따라가고 

어차피 인생은 굽긴 흙덩이 

즉 X 레이로 굽긴 흙 부분이 인간계라는 시공일 때

이는 곧 나무로 돌아가느냐

흙덩이로 돌아가느냐에 따라  신과 인간과의 차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허공이 암흑으로 보이는 것은 이 4 주기율 사이에 

원소 6 주기율인 水라는 것이 있어서인데 

결국 허공이 어두운 것은 것은 은하의 수의 역할인 6 주기율이 있기 때문이다

즉 흙도 마른 흙은 검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물을 축였을 때 검게 보이는 현상이 나고

검은 흙도 말리면 하얗게 보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나무 뿌리에 덩어리로 달린 흙덩이가 X 레이에 허연 부위와 같다면

흙과 함께 떨어어 나자지 않는 영혼 

즉 나무에 물을 축이면 검은 밤하늘 색이어도 뿌리는 상하지 않듯

뿌리는 어둠의 색과 함께 기둥 나이테의 주기성으로 붙어가듯 해도

이렇 듯 영생과 인간생의 차이가 극명하니

그 인간 한생 다 닦아 없어진들 어떠리하는 말도 나오거니와

신과 인간관계가 타협적일 수 없는 것인데

곧 X래이의 화면 정도 지워지는 것과 같은 것이고

해저 동물이 투명하니 스스로 불을 켜지 않으면볼 수 없듯

굽긴 화면도 없어지면 사라지는 것이 인간 한 생이니

그 필름은 무엇을 쫓아간 뿌리였던가

원소 주기율 필름에 DNA로 이어져 감았구려

 

 

악의 티 내지 말아요

 

딱다구리가 나무에 홈을 판다

그 급하기가 할로겐 원소와 같다

그렇게 부풀어 스치로폼과 같은 폐(肺)로

원소 족으로 부푼 나이테를 쪼은다

원소 7 주기율같은 방사능 낙진의 계모임같은 악티늄 족

악의 티 내지 말아요!

이는 원소 주기율은 양파 껍질과 같이 갈라져도 같은 한 몸인데

그 주기율의 독소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결국 가장 독이 강한 원소 주기율이기 때문에

그 원소 자체의 반감기적 수명이 수 억 년이 되어도

그 주기율의 수명은 인간의 수명처럼 아주 짧게 되는 단초가 돤다는 의미이니

곧 인간은 독화살을 빼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흙덩이로서 귀거래로 돌아간 딱다구리

잔뿌리 같은 영혼으로 따라간 자의 재생력

다시 불어 불어 원소 3 주기율까지 불어

뼈 속에도 바람 넣기

원소 7 주기율인 뼈에도 바람 넣어 원소 4 주기율 나무에 오르기

원소 7 주기율 흙덩이 딱다구리

그래도 뿌리를 눈으로 귀거래사한 귀하신 몸이라고

원소 4 주기율 8 족인 무덤까지  파

한 거풀

한 허물

그 주기율의 1 족까지의 무색계로 좌탈함을 보고져 한다

즉 원소성으로도 알카리성 4 개의 족은 무색계요

산성 쪽 4 개의 족은 욕, 색계와 같음이다

그래서 유전자의 본성이 알카리성에 머뭄은 무색게와 같은 것이고

그 것이 만능으로 줄기를 낼 수 있음이

약 산성용액에 담그면 모든 원하는 줄기 세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몸이란 게

 

한 마을이 두 개 군 사이에 있는데 

그 郡名도 오락가락했다 

즉 조선조에는 바닷가 군이였는데 

바닷가 사함은 상놈들이라고 육지 대제학 사당이 있는 

군으로 때어 붙였는데

딸 하나 주는데도 물 아랬 것들이라고 

특히 할아버지급 문중 어른신의 헛기침에도

완전 임금님 납시듯 고개도 못 들었다

그리고 선거철만 되어도 문중에서 오 케이 하면 그로 몰표였다

우리가 클 때도 이해가 안 되었는데 

그래서 공자는 죽어야 한다는 말도 크게 와 닿는 것이도 했따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거의 집단빨인제 사회적 명사로 많이 자리 잡았는데 

그래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은 유교 정신이라고 했다 

실제 그렇게 어울려 살면서 그러헤 이질감이나 인간성을 느끼지 못 했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그 쪽 사람들도 

지금 생각해도 참 순진무구한 영악하지를 못 했다

그리고 교육이란 것도 양반집에 많이 쏠린 것이라 

자존심과 책임감은 남다를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니 남자보다 여자 쪽으로는 명품 쪽으로 쏠리게 되어 있었다      

요즘에 그 군의 도심은 멓리 떨어져 있고 

이전의 도시는 신도시가 되어 턱밑 까지 다가 오는데 

모든 생활권은 그 상놈이라는 문화에 젖어 있다 

이 걸 보면 인간이 얼마나 굽겼느냐와 같다

모든 행정은 무슨 저승사자 길이나 되는 듯이 멀리서 온다

축지법 쓰는 도가 아니면  그 천상계가 못 된다

그런데 인생이라고 즐기는 맛은 눈 앞에 번쩍인다

 

 

영과 육의비밀

 

원소 3 주기율 火가 벼리 쪽에 가까운가 

그래서 6 水가 물고기에 드는가 

그럼 생물과 물질의 차이는 무엇인가

삶은 삼기는 중인가 

그러면 인간이 見性하지 않으면

계속 경직된 몸이나 정신이 되는 것인가

7 주기율이 土라고 할 때 지구와 달이면

6 주기율은 은하수가 되는가 

그 상이 우주의 에너지 줄기성으로 나무인 4 주기울이요

또 허공성에 정전지처럼 박혀 있음에 

끄집어 내면 힉스입자에 까지 접근하는

허공의 근본적 잎새 손바닥을 펴 보이는 것

이 것이 전부 원소 3 주기율로 굽기든가 

6 주기율을 넘어선 물 속이면 삶기는 삶이든가

어쨋든 3 주기율로서 머물게 굳히는 時에 間이 있게 되는 순간이 

마치 DNA의 마디를 이어주는 인(燐)과 같은 요소가 됨에 

그로 물질적 시공성의 감촉이 일어나 

모든 물질에 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 

즉 DNA를 연결 시키는 인을 도깨불이라고 하는데 

이 인의 원소 3 주기율이 시간을 굽거나 삶긴 

그 굳어진 시간의 부분을 결정체로 궤도성의 

육감으로 인지하는 부분 

즉 육근으로서 눈이 눈이 뜨이는 원소성인 인으로 인해

우리가 육감을 느끼는 것

즉 생물은 원소 3 주기율 인이라는 순서를 지나야

DNA의 시발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버려랴 하려야 하는 육경이라는 것이고

이 것을 벗어 원소 2 주기울에 들어도

족은 그대로 있는 족속이 있다는 것이다

 

 

도깨비 불과 혼

 

원소 3  주기율의 인광만으로 

생명체의 DNA가 연결되는 부분이라고 할 때 

실제 원소 3 주기율 밖이면 

DNA는 보이질 않고 도깨비 불만 뭉쳐진 것으로 보이는가 하는 것 

즉 횟불같은 도깨비불을 봤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어 봤는데 

나의 경험으로는 화전밭이 골짝길  사이를 두고 앞에 있었는데

하루는 누가 텐트를 친 듯이 속에서 비치는 듯이 은근히 빛이나  

이 심심산골에 누가 올리도 없는 야심이라 더욱 유심히 보는데 

불빛은 속에서 비치는 듯이 나는데 도대체 텐트같은 막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래쉬를 들고 살금살금 불도 켜지 않은 채 내려가 벼랑을 타고 올랐는데 

글쎄 흔적도 없는 빈터만 보이더란 것으로

분명 광채는 비쳤으나 그 셀체를 잡지는 못 했다 

즉 횃불과 같은 도깨불과는 다른 것인데도 도깨불을 본 듯이 하더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DNA를 대나무 마디처럼 붙은 인이 광을 낼 때 

이 것이 실뭉치처럼 감겨 밤에 비친다면 결국 빛만 보이고 DNA는 보이지 않음과 같은데 

이 것이 도깨불인 것이니 

결국 인간이 갖고 있는 7 주기율성이라는 것도 

원소 3 주기율의 눈으로 보면 인간도 불덩어리로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도깨불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원소 4 주기율성만 되어도 텐트 안의 불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각성

 

우리가 원소 3 주기율이 火라고 총칭을 할 때

질소 족인 체질일 때 인(燐)이란 族이 되는 것이면

이는 DNA가 2 주기율에서 한 마디인 애벌레같이 된다고 하면

다음 주기율의 인은 그 마디를 이어붙인 대나무와 같은데

그 마디를 이어준 부위성이 아니라

그 마디가 없어도 그 마디를 총체적으로 싼 원소라는 것으로

붙어 있지만 격리성으로 보일 수 있는

주기율 하나 하나의 격리성이란 것에 있을 때

질소성의 DNA가 아니 보이더라도

원소 한 주기율의 거풀만 씌워도 인만으로 다 싸여진 듯이

질소를 대신해 껍질이 두터운 인으로 보존한 것과 같은 것인데

이는 곧 원소 2 주기율의 요소를 불로서 싼 시공계일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이는 결국 키는 질소성 시공으로 크고

그 질의 대변적 잂새는 마디

즉 용접한 부위에 잎새가 난 것과 같다

즉 원소 7 주기율이 닻

6 주기율이 바다

5 주기율이 일렵편주

4 주기율이 위그선이라면

즉 인간세가 원소 7 주기율인 섬이라면

그리고 물이 원소 6 주기율이라면 지하수로 있을 동안은

인간으로 인지하면서 산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 섬을 벗어도 불은 그대로 이니

결국 인간 밖의 인식의 세상은 떠나지 않고 그대로라는 것인데

그러면 인간의 의식 외에 공유한 물의 세계 의식은 잠으로

찾아먹고 있는가 하는 것

인간이 잠을 자기 않고 장좌불와는 결국 탗을 고정시김과 같은데

이는 곧 이승의 고착성을 찾아 간다는 것인데

그로서 오히려 도리어 자신이 이승에 분리되어 있음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반조가 되는 것과 같다

즉 자신보다 더 섬세하고 가는 물질을 투과를 못 하듯

원소 2 주기율의 원소성은 火로서 투과하여 볼 수 없는 것이고

빛보다 더 가는 촉매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원소 2 주기율의 섬세성은 빛의 섬세성 정도는 투과를 한다는 것이니

이는 곧 대나무가 마디를 투과하여 클 수는 있는 것이 원소 2 주기율이라고 할 때

그 앞을 가로막고 마디지을 수 있는 것이 원소 3 주기율이요

다시 2 주기율의 섬세성을 펴는 것이 잎새라는 것이 된다

 

 

 

상하 좌우로 사방성으로 하는 것

 

우리가 대칭성이란 것이 꼭 떡잎의 관계가 아니라

줄기와 뿌리의 대칭성이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 물질과 반불질간의 차이는

줄기는 건인 지상에 있는 것

뿌리는 땅인 지하에 있는 것

서로 보지를 못 하니 서로 이를 반물질이라고 하는 것

또한 이 대칭성을 버리고서라도 

떡잎은 대칭성이라는 것이다

이는 상하는 건곤의 대칭 

좌우는 진손의 대칭이 있다는 것이다 

즉 줄기와 뿌리도 그 환경에 따라 건곤을 맞추고 

좌우도 나무가 기울기에 따라 대칭을 맞추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근원적 멋으로서의 대칭이 아니라

그 조건에 다라 다른 한쪽이 맞춰 나가는데 대칭이 된다는 것이다 

즉 지알에 나무가 벼랑으로 기울었는데 

이 진뇌 목에 손풍인 싹이 나오면 그 균형에 맞춰 큰다는 것이다  

 

 

천지 간의 사이에 있는 속성으로 해서

 

원소 5 주기율부터는 상괘에 속하니 

질소는 공기중에 최고로 많은  기체성이다 

그리고 탄소는 하괘에 속하니 

유기화합 중에는 식물만하게 덮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