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매틱
우리가 숙명을 구속력이라고 말하나
실은 자동화를 말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자신으로서 할 수 있는 것보다
기계에 의지하면 편리하듯이
영원한 도구라고 보는 것이 훨씬 줄기세포의 용도와 같다
마치 세탁기를 돌릴 때
여러 가지 기능 버튼이 있듯
운명의 시간마다
우리가 현재까지 개발한 공기방울 세탁기보다
더 기발한 성능들을
커든 작든
시간마다 그 기능성을 조합하여 내 놓는 것이
순식간이라는 것이다
구닥다리도 나오고
신출 귀몰하는 신기능도 나오는 것이
이미 신구를 초월한 작용들인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시간이 지나도
그 루트를 기억하며 집중한 쪽으로도
구애 없이 잡아 갈 수 있는 기능도 있으니
숙명을 매우 운신할 수 없는 틀이라고 여기겠지만
우리들이 요구하고
게으르게 편하고져 하는
6 기통 세단과 같이 쫙 깔리는 것보다
더 치밀하게 여러 품종을 만들어 내 바치는 데
이만한 노예가 세상 천지에 어데 있으며
이만한 로봇을 무엇으로 만들 수 있더란 말인가
영혼의 옥타브
저 성운층이라는 것이
꼭 솥에 물을 올려 놓은 눈금과 같아서
봄날 아지랑이처럼 올랐으면 육신이요
또한 이 사물이요
100 도씨 넘게 끓어 방울처럼 올랐으면
지난 넋과 같은데
이 물을 지나는 사이에 운명을 점지 받았다면
또한 이 길이 순간적이지 않고
계절성을 그대로 안고 간 뭍의 것이라면
과연 이 지난 것이 피아노 선이 되어
나를 춤추는 인형이게 하는 것이
어느 쪽이 꿈이게 하는 것인가인데
다만 이것이 보이고 들리고 하는
조건성을 만드는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우주체를 드러내는
공간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랴
한 마 디와 한 마 리
한 마디에는 오디가 붉다 검게 노을 재요
한 마리에는 말씀도 발이 달려 달리는구나
임께서 침묵이시니
말이 여기까지 와 달리고
말씀이 귀까지 닿아
다시 내 마음으로 드는 것에는
다 말씀이 일어난 파점(波點)을 비추는 듯
내 마음이 일어나리니
임께서 침묵으로 지극지성 한 점 일으켜도
말씀 언(言)도 침묵인 냥 말만 달리나이다
단풍을 바라보면
단풍을 바라보면
삶이 윤회가 되어 돌아옮이 아니라
윤회가 되어 감만 같구나
생은 꼭 푸른 젊은 한 때와 같더니
꼭 오색 단풍으로 정체를 드러내니
꿈깨기도 전에 제 정분에 녹아나는 것일까
다시 부모 형제 처 자식으로 돌아감만 같구나
옷을 입듯
아래 윗 도리를 맞춘 연습벌레같은 삶이 었던 듯
다시 색을 맟추어 본다는 것이
꼭 서로의 열할을
이 가을 풍경만큼 안고 저리게 가게 하는 듯이
또 저리게 만나게 하는 듯이
오장(五臟)은 이 젊음에 왔다 사라지듯 하는구나
경쟁력
미국의 어느 똘똘한 아이가
어느 작은 도시의
고모집 구멍가게를 보게 되었는데
왕눈깔 사탕이 잘 나가질 않자
그 걸 망치로 몇 조각을 내서
값이 두 배가 되도록 써 붙여놔도
날개 돋히듯 팔렸다는 일화와 같이
예언이라는 것
백 년이 어떻고 십 년이 어떻고 해도
뭐 그 것 잘개 부숴
오늘 눈 앞에 잘 써 먹은 무속이 차라리 왕땡이지
사탕이 다른 맛이랴
한 많게 떠난 자가 방긋이 웃으며 오지 않을진데
영국인은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도 팔아 먹는다고 하지만
뭐 심리학상으로 최고가 짚히는지 모르지만
심령학상으로야 게임도 안 되지
지혜 치고 이만한 지혜가 어데 있던가
심리학은 그 아이처럼 마음을 믿어야한다며
장단 맞춰 주며 직업이 버팅겨서 좋고
심령학은 신비에 턱을 걸어 뻥 튀겨서 좋은 것을
품위
본래 종교란 품위와 도덕인 것인데
즉 신이 인간보다 낫다는 모양새
또한 신의 제자는 보통 사람보다
정신이 아니면
물질이라도 달리 복받았다는 외양성
그리고 도덕의 필요성에 대한 궁극적 재림이다
즉 자유의 한계성에 와지는 과제이다
이 것 빼면 무슨 크게 필연성에 두랴
어쩌다 명품 가게 옆을 지나다 보면
괜스리 주눅이 든다
그럴 땐 나도 이제 많이 늙었구나 한다
젊음이란 수평적 경쟁심에 묻히기에
잎새도 푸른 쪽이 듯 사는 듯이 하다
이젠 세대적으로 무언가
집착이 많이 더 멀어진다 싶어지며
투명하게 속 비친 냥 할 때
뭐 본래 이렇게 각각의 색깔로
아름답게 보아주어 편한 것
그저 보이는 데로 단풍물인가 하고
그대로 보기 좋은 냥 떠나주고 싶다
누군가 자기 품위는 자기 스스로 만든다지만
요사이는 어델 가도 품위유지비라는 명목으로
당연시 돈으로 연결이 되는 마당이니
무언가 나도 내 품위를 갖춰볼까 하면
그 것도 모양새가 나질 않으니
뭐! 아이고! 나 죽었음네 할 뿐이지 별 수 있으랴
나도 사람이니까
늘푼수가 좋다만
인과가 사람이더냐
사람보다 더 잔인하면 어떻할 것인가
오르페우스의 화살
인생이 살이 찐다는 것이
마치 오르페우스의 현에 떨어지는
화살을 저린 것 같이
산업에는 1 차 2 차 3 차 산업이 있듯
학문에도 1 차적으로 종교와 영감 있고
아류나 중간 설명자체가 없는
마치 사막에 숲을 늘리는 듯
인간이 직접적으로 일체화하여야 하기에
이차적일 수 없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라
생명과의 관계를 많이 짓게 되어 있는데
여기서 보아 2 산업이란 것을 보게 되면
환경에 대한 이기적 보편성을
땅이 아닌 물로서 수경 재배가 가능하듯
공중에 띄워진 논리로 해천 일벽의 하나를 이룬 것으로
무언가 질감 있게 논리적 해석이 발전하여 오는 것인데
여긴 과학적 구조와
수학적 입체감을 불어넣는 학문이라고 봐야하며
실세를 구가는 것으로
결국은 일차적 그림자와 같다는 것으로
일차적 근원마져 제조업인과 같은 냥 내비치게 된다는 것이다
2 차적 임의성은 현실성이 강하기에
쉽게 밀어 붙일 수 있다는 것과 유동성을 갖고 있으며
여기에 3 차적 학문이라는 심리학과 심령학은
거기에 대한 보조성의 논리적 역활을 있게 되어 있는데
그 것으로 치세적 적응으로 본다면
결국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은
곧 삼차성에 대한 흡인력으로 커진다는 것이니
이로 일차성을 가리게 되면
비만형이 되어 살이 잘 빠지지 않는 것과 같다
이렇듯 인생이 사막이 되는 심각성에 가서야
일차적 실질성에 봉착하데 되는 것이나
이미 물이 흡수가 안 되는 설사하는 단계가 되는 것이라
여려 겹의 살두께만큼 비싸지는 가치도 요동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인간이 그 속을 훤히 알고서야
비싸게는 사 먹지 않는다는 것이니
왜곡과 함정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치 또한 그 줄기를 상실한 채
눌림살처럼 붙어 그 가닥을 흐트린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차성과의 직통성이
귀 막고 코 막고 마이동풍이 되어 껄끄러운데
그래서 불문률이라는 것이
그 성격을 모허하게 하고
철면피로 만들어도 죄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거기다 과대 포장만이 숨통이듯
끊는 물에 산소는 없이 방울은 올리는
시원한 소통의 착각을 하게 되는 데
이것이 신과의 자연교감에 대한
여러 편의적 가공성과 상상력이 함께 공감하며
들어오는 형태라 할 것이 삼차성이라 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단계 까지가는 비만을 낳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아무리 일차성이 곧장 그 영향을 미치려 해도
중간에서 자신도 자식이 아니냐고 하면
없애지는 못하는데
그럼 자꾸 부가가치를 내야 한다고 부풀리게 되면
그 논리자체가 팽창성에 있는 것이라
아무리 민첩하다 해도
중간유통 즉 피부적 역할이 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의 피부가 변두리적인 것은 순차에서의 겉일 뿐
실제 중간적인 것이 듯이 배열될 수도 있는 것이요
또한 우리 몸 그대로
일차는 地요 삼차는 天이요 이차는 人間이기도 하다
즉 이 3차라는 것이
절대적 공간성과 함께 감싼 듯 피부같을 수 있지만
또한 자신들의 합리를 위한 완충성으로
안과 밖을
앞뒤로 바꿔가며 드미는 것에 불과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비싸지면
쌀이란 감싸는 중의 진행형이라고 쌀이지만
모든 것이 비싸지면
쌀이 남아 돌아도
모든 이들을 감싸지 못하는 하얀 솜이불 같은 것
저 쌀구름 검었다 희었다 하는구나
사주
본래 사주(四柱)란
네 모퉁이에 기둥을 세워
네 귀퉁이 천막을 맨 것과 같은데
이 여덟 개를 팔자(八字)라 함이라
그 네 간지(干地) 중에
일간(日干)을 나로 기준하여
육친을 배분하고
오장 육부를 배포하는 것인데
그런 식으로 표현하면 좀 딱딱하고 감이 멀다
좀 더 실체감이 있게 표현하자면
네 귀퉁이 가장자리를 둔 우물이 바로 일간이라 하면 간단하다
즉 사지(四肢) 중에
가운데 다리 하나 더 낸 것이 일간이라 함인데
다만 남자는 턱이 높은 도깡이 있다는 것이요
여자는 그냥 턱 없는 샘터와 같은 것인데
섹스는 남녀 할 것 없이
제 자신의 이 일간
즉 우물을 늘 확인하는 작업이다
인간의 육신은 이 펌프질하는 순환에 있어
고른 영양소와
고른 장기의 안배를 늘 점검하듯이 하는 것이다
균형이 깨지든가 순수성에서 어긋나면
결국 命이 다한다는 구조로 되어 있어
도면을 보듯이 훤하게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각 개인마다의 사주가 나올 수 있는 양이
오십 이만 개에 좀 못 미치게 되어 있는데
성 행위를 그 만큼 묘사하라 해도 나오고 남을 것이다
통상 음양 오행이라고 하면
그 걸 잘 조정해 봐야
기계적이고 로봇 부품 같은 것이라 선입되지만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러한 유동성을 총괄하기란 신이 아니면 힘들 것이다
늘 채우고 비우면서 것으로
일간(日干)이 사주를 점검하는 차원이라는 것인데
이 간(干)을 천상성이라 하는데
그 걸 지상성으로 비유를 하면
지지(支地)는 지하로 비유되는 것이다
색충이
단풍잎 쓸어 한 무더기 씩 모아 놓은 곳에
노란 잠바를 입은 아낙이 지나가니
봄 살구처럼 익는다
마치 색의 파장이 송충이 같은 색충이에 농익은 듯
현미경 속에 박실박실 세균이라지만
그 세균 속에 박실박실 색의 파장이
세균처럼 노화 시키는 것이 듯
그래도 짧고 약한 푸르름에는 잘 버텼는 듯 하다가
다른 긴 색충이에는 맥 없이 지는 듯 하구나
키와 성스러움
루드윅 반 벤토벤의 운명 교향곡 5 번을 들을 때
그 3 악장에서 4 악장으로 넘어가는 연출은
과히 장엄함의 극치를 이룬다
마치 캉가루처럼 팔짝 뛰는 것도 아니요
새처럼 가볍고 고공적으로 미끄럽게 빠지는 것도 아니요
오직 인간의 고뇌가 갖는 그대로의 무게를 실은 채
힘줄차게 끌어간다는 것이
인간의 내면의 승화가 이렇게 큰 감동으로
웅대하게 흘러가는가 하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러한 감동을
시적으로 문학적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을까 해서
시도는 해보지만
글이란 것이 짧을수록 힘이 있고 길수록 치지는 것이라
소품적 가치를 교향곡적 장르로 발전 시킨다는 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관념적 선입관의 힘으로 미는
서사시 외에는
산문적으로 힘을 가하기는 녹록한 편이 아니었기에
장편의 시를
내용보다 먼저 그 힘을 지속으로 유지할 수 있는
운률에 역점을 두었는데
그 진행이라는 것이 나무가 커는 것처럼
전지를 해야 미는 힘이 비축 되는 듯
밀리듯이 다음 가지에 대한 이음쇠를
강하게 욕구됨을 느끼게 되어 있는데
분재처럼 힘의 추진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
남에게는 강압적으로 보였는지 모르지만
내겐 힘이 실린 것만은 성공한 편이다 생각하는데
그 가능성을 내비쳤으니
별로 무리할 필요성은 던 것같고
또한 모두 다 심혈을 돋우는 것 보면
교향곡 한 편같이 나올 수 있는 것같고
다만 이상하게도
젊었을 때부터 베토벤의 음악으로 해서 생의 의지를 키웠어도
그의 키가 150 센티도 안 되는 줄은 마흔이 넘어서야 알았는 것이
지금 이 글을 쓸 때도 잘 못 안 것 아닌가 의문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처럼 인간 이상의 능력이다 싶을 때
성스러움을 느끼게 했기에 악성(樂聖)이라는 칭호가 나오는 것이니
오직 인간적 초탈을 의미하는 것이라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다만 스님에게는 실제 성직자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데
그 건 불가에서는 인연법을 위주함에 있어서
인연이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닌 궤도이기 때문에
성(聖)이란 말이 적절하지 않아서인데
聖은 차치 하고서라고
키가 작다는 이유로 경쟁력이 없다는 풍조가 도는 것은
핼렌켈러같은 위대한 인물 또한 욕보이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좀 더 낫다는 식으로 돋보이게 하는지는 몰라도
가을 국화는 키가 작아도 향기만 진한 법이요
봄 꽃은 키 크고 보기 좋아도
비바람이 그칠 날이 없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
균형
누군가
인간은 왜 다른 짐승과 달리 내키는 대로
불뚝불뚝 서는가 한다
그 건 아마
아랫도리보다 머리가 무거워서일 것이다
계란도 잘 나오게 하려면
뒷문을 틔워 주어야 하는데
인간이 번뇌로 머리 쪽으로 많이 기울다 보니
늘 먼저 반대 쪽이 비기 마련이니
다시 균형을 찾아야 하니 그럴 수 밖에 더 있으랴
그나마 피가 많이 몰리는 머리에
그러니 인간이 졍력을 많이 빼면
왜 단순히 기운만 빠지게 하지 않고
죽을 것같은 공포감도 오게 되어 있는데
그 건 뇌에 허혈이 몰리기 때문이 아니겠으랴
이카루스의 날개
과연 불새란 있는 것일까
그럼 이카루스의 날개를 만들 것이 아니라
불새를 만듦이 낫지 않은가
색의 파장 중에 푸른 색이 가장 짧다
그 짧은 것으로 붉은 긴 것으로 맞으니
탈 수 밖에 더 있으랴
저 불기둥으로 만들면
같은 불이니
사라져도
머물음의 저장성은 그대로 유지한 채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랴
균등가
우리에게 한 개가 나아가는 논리가 아니라
두 개가 함께 가는 논리라면
즉 그림자적 무게를 함께 실어야 한면
푸른 색의 파장이 짧으니
가장 긴 검은 색의 물을 들이켜 봄인데
꽃으로 한 치라도 더 나아갈려면
계란의 뒷 구멍이라도 실꾸리에 감긴 듯
틈이 미끄러운 듯의 나오는 실인 듯이
물이 있어야 유지 시켜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푸른 색의 공기 방울이
붉은 색의 포장에 다달으면 사라지는 듯 홍엽인
이 주관에 따라
빛도 그 세기에 따라 허공 중에 소멸하는 듯
마치 흰 막대기 엿이
바람 줄기 엿치기 하듯 잡아내는 진리란 것이
빛 자체인 힘이냐
엿 자체인 힘이냐와
당긴 사람의 힘이냐
당긴 허공의 힘이냐를 놓고 볾에
다만 빛은 속이 허(虛)할 뿐의
어쩜 우주도 빛으로 스폰지 같은 허공 숨을 쉬는 듯
바람엿과 뭉치같은 것
그나마 블랙홀이 있어 다시 얼레이듯 감음에
물도 비단폭처럼 유연한 것
분명 천둥발이 스프링처럼 튀어감이 있을 지니
괜히 애궂은 빛만 새우등 터지듯이 하는 것
그나마 물이 있어 잡아주어
나무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도 하다는 것이다
아니면 푸른 색은 천둥발을 의미하는데
섬광처럼 발빠르게 힘이 있어
무지개의 푸른 색이 붉은 색보다
면적이 작아도 무게는 같은 것이듯
함축과 팽창의 관계로 통로를 내는지도
이 생은 짚처럼 짚었을 뿐의
저 짚을 태우면
그 재를 물로 아무리 뭉치려 해도
은박지만큼도 아니 나오고
손에서 미끄러지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큰 실속형이 재라면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것이 아닌가
만일 재가 자기가 타들어가는 것을
다 기억하는 형태라면
이 생은 짚처럼 짚었을 뿐의
광고
난 임의 거름내 나는 그 긴 시가 좋음이
침착하고 섬유질 좋른 것이
남이 똥이라고 돌아선 구석에 박힌다 할지라도
좋은 똥 된 것이니
저 달콤하고 사르르 녹은 것
광고마다 대장에 끼어 노화 되었다 겁주는데
다 임에 한 치 짧아 가라 앉아 약은 것
다 용머리 좋은 배에도 못 오르고 꿈 같은 것
대장(大腸)
대장!
넌 둥그런 보름달이냐
질듯 말듯한 하현달이냐
세상사 사는 복안(腹案)을 둘러 친듯 하니
둥그런 것 같고
아래에 늘어진 국수처럼 깔려야 할 것이
늘 심장의 조급증에 끄당겨져
완전 속이 패인 듯 초생달 같구나
단순성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바쁘다지만
단순함을 끌어내는 자들이
사는 건 참 복잡하게 사는 것같다
그들의 삶 자체가
외로움은 더 타고
더 만나야하고
더 말 많아야 하고
그리고 결론은
자기 자신에도 무례할 정도로 참 쉽게 내린다
왜 골치 아프게 어렵게 사느냐고
세상사 통채로 안은
모래시계 목구멍에 맞춘 냥 한다
사랑의 매
그대에게 부처님처럼 어질게 대하면
말 잘 들을 것인가
아예 사랑의 매를 버는구나
커피 3
크~!
피!
커피가 각성제라 하나
도리어
마음이 시원하 것은
앞에 무엇인가를 봐서 시원한 것이 듯
커피에
허연 골이 노트처럼 글을 당기는 것이 아니랴
저 아침처럼 어둠을 푸는 듯
뭐 뒤집을 것이 있다고 잠을 못 이루는 것인지
오히려 네가 크게 커 피처럼 도는 커피
돈오점수(敦悟漸修)
우리가 돈오점수를 이해할 때
돈오는 매우 크고
점수는 여유 있게 접하는 단편성으로 잡히기 쉬운데
돈오는 그냥
살아가면서 터득하는 지식이나 경험을 말함이요
점수는
오히려 어떻게 건너가느냐의 아주 핵심에 있는 것이다
점수에는
영감만큼이나 얻기 어려운 공간성에
돌 하나를 쥐고 징검다리를 놓는 것만큼이나
섬돌 하나에 선 것과 같이함이라 할 것이다
그릇이 됨과 운명적 행
예를 들어 나란 놈이 둘이 되어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것이
난 동족으로 가는데 서쪽으로 가는 독립성이 있다면
그 것은 어떻게 사라지느냐일 것인데
그래서 달이 한 바퀴 가둔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똑 같은 영적인 영양분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일치성을 위하여
운에 달린 것이 있다는 것이리라
그 줄기에 차 숫갈처럼 휘저어 옹심을 만들어
꽃 눈을 만듦에
곧 달의 눈과 같음으로
이것이 인생이 예행적 연습이요
리허설에 있는 듯이 위 층에서
아랫 층 무대로 내려 온 듯이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연은 비싸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5 억이 든다면
그 돈이면 배 고픈 사람
수 십 명을 구제할 수 있지만
즉 내가 가정을 가져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이미 5 억의 빚을 지는 것과 같으니
가정이란 가치가 그만큼 작아도
무거운 가치라는 것이니
더러는 지금 당장 편하자고 가정을 갖고 싶어도
내게는 도리어 이 세상과는 인연이 티끌같다
잎새의 수처럼 붙었다 사라지면 더 반가운 일이고
다만 기왕에 가졌으면 그 가치만큼 소중히 해야
창공이나 다이아몬드나
그 투명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냐인 것이니
어차피 눈 앞에 있을 것이면
티 없이 많게 열어 놓으면 되는 것이요
아예 하나라는 것으로 소중히 하려면
자신이라는 존재를 다아이몬드보다
더 무게 나가는 보석으로 해야 할 것이니
좀 더 합리적인 생각
이 우주와 만물이 하나로 여겨 지기 위해서는
영혼이 하나로 빠져 나간다는 개념보다
하나를 더하여 흰색이요 투명색이더라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 종이로소이다
종이배여!
나무가 물에 풀려 구름처럼 떴을 때
이미 그로부터 종(宗)이 되는 것
마른 널
다시 종이배를 만들어도 종일 터이니
인생이란
저 두둥실 떠 가는 종이배가
밥을 기다리는 배가 될 터이니
과히 뿌리만 열매를 만듦이 아니요
기둥만 열매를 많듦이 아니요
잎새도 열매를 많듦이니
잎새가 잎새인 것이 아닌
배로부터 하자니 종이요
잎새가 내 몸뚱이로부터 하자니 종이로구나
아! 종이로소이다
바람과 빛이 발목이 잡힌 듯
잎새에 손도장이 찍히듯 빛이 흘러 나올 때
그대 부터 배가 된 듯 배인 것
물이 눈큼에 정확하게 올려 주고 떠난 듯
잎이 나오면 뭍에 오른 듯
난 잎으로 올려 주고 달은 꽃으로 올려주고 떠난 듯
종이배야!
넌 가도 어머니 뱃속처럼 양수의 바다에 몰리지만
오히려 나뭇가지를 타도 사지를 뻗는 종자인 것이니
통달의 모뎀
소리가 귀에 다달았을 때부터 나인데
즉 나라는 것에 닿을 수 있게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사림의 귀만 보여도
저 것이 사람의 귀라는 외형 뿐만 아니라
그 내적 구조자체가 마음에 가게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것 떼어 내어 전파성이어도 신이 관할 수 있음이요
아예 혓바닥 맛인 냥 들을 수도 있음이 하상의 모래알들
아! 한강의 신이여!
흐르는 물결이어도 천이통(天耳通)은 되나이다
오색과 오행의 이치
보통 청색은 파장이 짧으니 나무요
적색은 파장이 기니 불인데
나무에도 꽃이 한 길 더 나온다는 것과 같다
그러다 꽃이 태반을 만들면 꽃가루라 하는데
이 태반을 만드는 역활을 土라 칭하는 것이다
다만 꽃이 빨리지는 이유는
과일인 金이 커야하는 본론이기에
그 것을 방해하지 않으려 빨리 지는 것이다
그로 목을 통제하고 물을 조절함으로서
스스로 둥글게 원만성으로 이루어 사는 모습을 띤 것이다
그래서 붉은 색 밖에는 흰색에 눌리게 되는 것이니
마치 무지개 뼈다귀 밖의 허공과 같다고 봐야하는데
금은 흰색을 말함이요
서면 흰색이요
주저앉으면 무색으로 된다는 것이다
빛을 비추면 물빛처럼 나지만
금은 무한 물빛을 내지만
물은 두꺼워지면 어두워지는
나름의 처진 면이 몰려 있다는 것이다
마치 파돗결 같은 유동성에는
그림자같은 액기스가 있다는 것이다
물이란 금을 유동성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인데
본래 경직성을 의미하는 것은 火인 것이요
금은 조밀성을 의미하는데
그 조밀성으로 해서
부동형이 움직여 나갈 수 있음이
어둠의 윤활액으로 이슬처럼 고인다는 것이다
물이 투명하게 빛에는 보이지만
그 건 금의 투명성이요
이미 유연화 되었다면
어둠 베아링화 되었다는 것인데
한 점 먹이
빛을 따라 덮을 만큼 농도가 강한 것이리라
고구마 파식
고구마가 go이구마 할 때는
잎새에도 뿌리가 남이요
글이든
그리움이든
당겨가면
한 막대기만 묻혀도
이랑 줄 내고 고랑 줄 낼 수 있음이니
어찌 한 기둥으로 하늘을 못 받친다고 서러워만 하리
뭐! 인연이 절뚝발이라면 할 수 없지
한 줄기만이라도 꺼구러져 땅에 묻혀도
고(go)! 이구마
회전의 모뎀
보통 아무리 귀신이 날 뛰고
사악함이 있는 자라도
자식이 있는 자를 두려워하는 것이듯
이 자연이라 것을 더욱 새록새록하게 하며
이 지구가 두리둥실 실처럼 감기는 것인데
즉 세월이 둥근 약발이라는 것이다
즉 사람이 그냥 일방적으로 일을 저질를 수 있지만
자식이 있으면 그 후환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무서운 밤길을 걸어도
아이를 엎은 어머니는 두렵지 않는 것이다
마치 카지노에 구슬이 돌 듯 돌다
원탁의 한 자리에 머물면
그 내용에 따라
귀신과 악인이 이 돌고 도는 회전판의 원탁에
어떻게 마주하여 있는가를 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니
그래서 자식을 약발과 들게 되어 있다고 하는데
약국에 파는 약이야 오늘의 약발이요
자식은 10 년 100년의 약발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 인간의 가족사를 보면
다음 생이 어떠한가의 닮은 꼴을 안다는 것이니
그래서 악이 남 모르게 사라지면 되다 싶지만
윤회엔 더 무거운 꼴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문명
인류는 문화의 다양성에 두는 아량보다
문화인으로는 서로 다르더라도
문명인으로서는 평등한 것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모르고서야 지혜도 잔꾀에 불과한 것이요
유서 깊은 역사가 방대해도 문화일 뿐이다
인류의 인간들이 가장 잔인한 행태는
문명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다
인간이란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과 같은 것인데
자연만이 100 년 퇴화가 아니라
인간성마져 그렇게 넘어뜨린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과 다른 문화는
문명화 되어서는 안 된다는 아집이 강할 뿐 아니라
아예 적대적다 싶으면
무엇에든 스스로가 인간성으로 일어나기 어려울 만큼
결정 내버리는 문명인이 가지는 악업 중의 하나다
인류는 언제나 전쟁과 정변이 번복되는 주기성이지만
얼마나 빨리 회복 되느냐가 문명이 좌우한다
저 가장 큰 나라를 이루었던 원나라도
결국엔 문명이 없었기 때문에 회복 되지도 못한 것이 아니든가
이중 스크린
우리가 개구리를 양서류라 함에는
뭍 안팎을 이야기하지만
예전에 꿈에 황홀경에 이르러
꿈 깨어 가보니
개구리가 득실거리는 웅덩이였다고 하듯이
이렇게 양단 간에 착각이듯이 함께 가는 것이
로타리 치고
서래질을 해 놓으니
참 평등함이 이만함이 없는 듯한데
모를 심어 놓으니 모눈 종이라
온 개구리가
배하고 입만 달린 캣츠네스 도깨비인 듯이
논(論 )하자고 논(論)하자고
빽빽하니 이리 시꺼러울 수 없는 데
진작은 사랑 노래일 뿐이라는 것에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고
사랑에 미치고
사랑에 행복하고
증오도 달콤하고
영화도 감동스럽고
모양도 가지 가지 모양도 없음이요
색깔도 가지 가지 색깔도 많음이니
꿈에도 황홀경
꿈 깨
웅덩이 하나 만남 또한 못 갈라내는구나
꽃
꽃이란 이 우주의 꽂이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우주가 흩어져도
결국 빅뱅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날개 짓
꼭 수족관 산소배출기에 머리만 처박은
뱀장어가 우글거리는 몸짓과 같음에
일렬상으로 순서를 보여주는 듯
점잖은 선비처럼
드러내 놓은 꽃까지가 꽂이인 것이다
그리고 열매
즉 한 점으로 왔다는
마치 저 화성 땅에
둥그런 핼맷같은 기지를 낸 듯이 감싸준 것이다
접바둑
인구가 많다보니
예전에는 물건을 외판할 때도
결국 체면 세울만한데 몰하고
될 수 있는 한 지면(知面)을 활용하는
그래서 거래가 될 때는
요즘 같이 엄밀히 보면 사기인데도
몰라서 속는 것이 아닌
속아 주며 사주는 것이다 보니
통화팽창
인구 팽창만큼이듯
부풀려 애기해도
알면서 눈 감으며 통하는 인심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품질에 예민하게
또한 그 사람에게 냉정하지 못 하는
귀찮은 존재 정도 되었어도
또 한 편으로 기특해 보이고
같이 잘 살아야지 하는
더 밀어 주고 싶은 심정도 몇 곱일 터에
가격도 몇 곱이나 남는 것으로 크게 과장해도
싫어도 내색조차 실례 같은
이런 삶의 인정 집단이 관행화 되다보니
사람 사이에 돈이 나오는 것이지
물건으로 돈이 나오는 차원과는 별개의
거대한 집단성으로 이동하는 개체가 되어
큰 것은 살고
작은 것은 못 사는 패턴을 만들었다는 것이듯
인구 팽창 통화 팽창에 따른
서비스 메우기가 그러한 형태로 살펴준
인정이 그러하지 않았나 하는 면도 있다
다만 거기에 세력의 변형이 많이 이루어지고
긴밀해지다보니
이기적 조장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커진 것인데
환경이 열악하고 사막과 같은 곳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우리가 서비스 산업으로 존중되는 것에는
정신보다 물질에 움직이는 생산성이다 보니
도덕도 함께 부침하는
성원과 원성이 일어난다는것이다
실망을 더해 저주스럽기까지 하면서
세력에 편승해 가야한다는 것이다
요즘 애들이
참 영악하고 까탈스럽기로
왜 그렇게 속아가면서 사느냐고 하지만
예전에는 속아 주는 미덕으로
이제는 영리할려니 두서가 안 잡히고
그 사이에 음흉한 이속 있는 눈이
애들의 영리함보다 더 밝다는 것을 간과하려니
현대 사회에 어떻게 적응하라고 꼬집기도 힘들 뿐이니
이런 접바둑을 두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접힌 그늘에 눈치만 보며 살게 되어 있다
마치 위에서 오존층을 크게 구멍 내 먹어도
뭐 그것 정도야 땅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 듯이 함과 같이
예나 지금이나
소인에게는 물건 값을 잘 치루면 되듯이 하고
권력에는 서비스 값만 잘 치루면 되듯이 하는 것
마치 스비스업이 산업에 드러내어 우회 시킨 무게 같이
사람을 가마에 들고 갈 것 쌍두 마차에 올렸을 뿐인 것
산업 뿐 아니라
모든 단계가 3 차만 되면 서비스가 성행하는 것이니
고금에도 성한 흥업이었던 것을
외모에 대하여
보통 우리가 부처님의 완벽한 외모를
32 상(相)이라 하는데
이 것의 필요성에는
마치 접어 둔다는 것에도
텐트를 쫙 펴서 다시 접어야 하듯
진면목에서 원점화하는
화이트홀과 블랙홀의
양극을 드러내 줌과 같은 것인데
이 것을 잘 깨우치지 못하면
마치 외모 지상주의의 단초를
제공하는 꼴로 여길 테지만
이는 심도가 있어야 해답이 나오는 난해한 문제인데
차라리 우리가 완벽한 인물을 만들려면
조각상은 만들 수 있다만
그 유기성은 마음대로 안 되듯
신이 인간을 만들 때는
하늘의 흙으로 만들었음에
우리가 로봇을 봐 그러하듯
인간을 봐 그러한 것일 수 있으니
그렇다 보면
참으로 신이 인간을 흙으로 빚었다는 말씀은
매우 이치에 닿는 부분이며
인간은 완벽하지 않아도
완벽성이기에 어느 쪽이든 불완전한 것은
마치 한 막에 갇힌 것이 인간세이기 때문에
한 쪽으로 정상적으로 드러내면
한 쪽이 희생적으로 준다는가 가려진다든가 하는
자기 희생의 댓가를 치우어야 하는 것이 있어
마치 부조상과 같다는 것이다
키 커면 무언가 나사가 빠진 듯 해도 나무 그늘 같고
작으면 작을 수록
기기묘묘함이 더욱 뭉쳐진 것같고
더운 곳에는 가뜩이나 땀내에 성적인 미를 감해도
자연에 채색을 더 먹여 늘어짐에 강한 인상을 심었던가
추운 곳에는
얼굴 밖에는 드러내 놓기 힘드니
아예 푸른 하늘을 눈에 박아 넣은 듯이
손이 거친 고목 뿌리처럼 갈퀴 같아도 미모가 뛰어나다든다
얼굴이 유난히 둥글넙적 커도
손이 복스럽게 통통하고 미끈하기가 경탄스러울 정도라든가
이는 마치 인간에는 주어진 허물의 반등품과 같이
잠수된 것과 같으나
어느 한 쪽은 드러낸 놓은 부표같음의
부처성이 상실되지 않았다는 전체를 알게 하는
유동성을 보는 것이
人을 間과 더한 인간이라 하여
하나라는 구성체를 알게 함과 같음이니
이는 딱딱한 조각상에 맞추는 것과는
비교되질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부처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치 풍선이 한쪽으로 몰려도
부처님 아니라 할 수 없는 현상이니
부처는 자의적으로 여러 모양을 내는데
인간은 환경에 따라 변한들
부처상이 아니라 할 수 없다는 뜻과 같다
즉 여우는 순식간에 둔갑을 한다지만
인간은 처지에 따라 충분히
相이 우수한 쪽으로 드러내기 마련이라
어느 쪽도 한 쪽이 죽으면
어데든 살아 있는 모양새에
부처상은 드러난다 것으로 영원성을 말하는 것이다
오직 외모로만 완벽하게 만든
그 것이 바윗돌이요 로봇이라면
그 건 상의 진면목을 정말
시각의 모퉁이로 보는 것이요
거기다 생명력마져 뜯어고쳐
완벽하게 맞추고져 한다면
상이 갖는 유기성을 무시한 채
빙산의 일각으로 천지를 휘어보는 냥 하는 것이니
왜 닭이 새벽에 우는가
왜 닭이 새벽에 우는가
까?에 닭을 붙여서
구업
사람이 너무 생각보다 말이 앞서다보면
구업에 걸리게 되는데
그 업의 모양새라는 것이
꼭 사람을 만나 목소리로서
첫인상을 남겨 거부감이 들게 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생각을 많이 하고
울분과 격정을 속으로 삼키고
굴리고 굴리다 보면
말 안 하길 잘 했다 싶은 것이 더 많아질 때는
그 업의 모양새라는 것이
옥 굴러가는 소리가 나고
맑고 달콤하고 부드러움이 난다는 것이다
벼슬
벼슬이란 것이
왕을 두고
天地人 삼 정승이 있는데
이런 정승 자리는 황이 정승처럼
양시론으로 게으른 듯이 함이 오히려 명관인데
그래서 인간들은 발에 불똥이 안 떨어지는 이상
게으른 편이다
그리고 짐승을 육조(六曺)라 함이라
말은 교통부 장관
소는 농림부 장관 식으로
한 쪽으로 뛰어난 자질을 써 먹게 되어 있어
딱부러지지 않으면 자리가 위태한 것이다
또한 이 자연의 만물들은
팔도 관찰사와 같이
어데든 듣고 보고 함으로
보고하게 되어 있는 관할을 쥐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그 소임이 각각 달라도
나라를 걱정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듯
나!
즉 (自我)를 위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닭벼슬
닭이 말하는 취지는 이렇다
벼슬도 날개를 달고 내려온 것으로 하지
네 발이 발린 것이 하겠느냐이다
저 태양을 가로질러 온 터라
그 열기가 밤에 알콜이 일어나는 것처럼
식을 줄 모르는데
새벽이면
너무 열사에 드러내지도 말라고 울어댄다
저 낙조가 창자줄로 온다
왜 저기다 길목을 내었을까
왜 저기다 긴 창자를 내었을까
기운 것에 머리가 있음에
똥구멍이 눈인 듯 여기까지 긴 것
꼭 물을 모으고 또 말림에 있는 듯
아! 낙조가 창자줄로 오는구나
입 또한 기운 곳에
먹어 대는 것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오히려 보이는 투명한 배라는 것으로
우리의 이식과는 반대로 드러나고 잠기는
위에서 봐도 배가 둥글게 꽉 찬 듯
그냥 바다일 뿐인데
그냥 호수일 뿐인데
저 낙조가 창자길을 온다
까까 꼭꼭
까치가 우듬지에서
까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불만이요
닭은 땅에 떨어진 까를 잊을까
알둥지 품고서도 꼭 꼭
검은,푸른 눈동자
존재가 흰 눈동자같으로 일어선 까치발인 것
통풍 되는 만큼의 무형의 탑
서서히 녹아가며 생에 고이듯 호수같음에
주검의 존재가 하루의 땅이라면
시간의 눈으로 흘러들게 함에
호수로 살아옴과 같음이니
이빨
저 달이 하얀 월영에
그 긴 역사의 침전이 있은 듯
저 달빛이 하얀 것엔
억 억 하는 세월의 끈이 있듯
저 달의 입만한 것으로 침전된 것에
상아빛 하얀 것
저 해저마져 망간(Mn)이
망간(忘間)이라고 깔려 있는 것
달빛이 늘 일어나는 입에
이빨을 가지런히 세워 놓았다
낙엽
낙엽이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을 친다
허나 초겨울일 뿐이다
뭐 저렇게 독한 것이 다 있나
원망이 저주와 같다
허나 겨울이란 것이 도리어
뭔 저런 것이 다 있나 한다
그래서 겨울은 더 깊은 듯이
가지는 물론 뿌리까지 다 얼릴 심산이다
문제는
저 바라봄의 눈이 있을 봄날에
그 아지랑이 끈 좋은 낚싯줄에
그 주술 좋은 최면술에
이 혓바닥이 걸려 오르면 안 되는 것이니
아침의 붉은 해오름은 꽃의 경치요
저녁의 노을은 잎새의 경치인 것을
알고 나면 여름이 가기 전에 다 지고 말 것을
참 신비한 것
이 것이 살아서 끊어지고 새로워 지고
그래서 철이 있는
철이 다 들어라는 것이니
마음 내기
우리가 열심이 공부하는 것도
길을 내면 가고
길을 못 내면 못 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모든 것이 마음에 달린 것이라지만
마음도 아는 만큼 마음을 내지
모르는 데 마음을 내지는 못하는 것이리라
똥의 선견지명
옛날에는 저 멀리 떨어져 있던 동네가
언제인지 모르게 붙어 버렸다
그로해서 그 사이로 흐르던 개울이
이젠 똥내가 가득하다
이젠 법 아래 둘 일만 남았는데
동이 두 개면 똥이였구나
약은 머리
지혜를 너무 남용하는 속에서
정처 없음을 보게 되고
고지식해서 쓸모가 없어 보여도
땅이 하늘을 쥠과도 같구나
똥부터 법이다
유치원 다니는 머슴애가 차에 앉아
제 엄마에게
왜 오토바이가 인도로 달리느냐 한다
하도 다그치니까 옹색하게 다녀도 된다고만 한다
아마 다녀서 안 된다고 해야 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대답해 주기도 힘들다는 것이
세상을 그렇게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기로에 와 닿는 지경을 내비치는구나 하는데
그러자 그럼 버스도 다녀도 되겠네 한다
또 유치하게 다그치니까 그건 안 돼 할 뿐이니
이 상황에 있어 어떤 대답이 적당할까의 문제인데
즉 사람이 법을 만들었으니 사람이 먼저라는 것과
법이 먼저면 자유를 억압하기 쉬우니
먼저 양심을 우선해야 한 후의 다음으로 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편의적 활용을
먹는 입에서 내 마음대로이게 한 것
뱃 속처럼 인간만이 가지는 섬세한 여과성으로 소화한 후에
똥부터 법이라고
모퉁이
한 쪽엔 죽은 자 천도 시켜준다고 돈 내라 하고
한 쪽엔 산 자 좋은 곳에 보내준다고 돈 내라 하고
공자님은 이 걸 알아
땅 위에 사는 것은 땅 위에 교통질서를 외치니
소통이 순경이 있어도 길이 막 히다 보니
답답한 구석 점잔을려니
괜히 약한 여자만 눌러 방석만 같아라 하는 데
뭐 하늘로 날으는 새는 날아서 좋고
건너 뛸 자는 뛰어서 좋으니
그 마음 하나 열어주는데
꼭 주인이고져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연출 2
인간이 절대적 의지의 나일 때
세포 속의 나일 수 있지만
그 것이 독립적으로 떨어져 나올 때
나는 나인 동시에 수 억의 세포를 가지니
부처님의 열반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다 이해하고 남음이 아니든가
최소한 현실은 아니다 하더라도
수 억의 군중몰이가
이렇듯 레코드 되어 있음이다는 것이다
지구 강강수월래
가루와 묵이라는 것이
우리가 도토리 침전물과 같이
하물며 오존의 원자 한 알이라도
그렇게 취급하는 것에 있으나
지구가 돌아가는 원형에는
물 샐 틈 없는 강강수월래와 같은 육친과
또 한 겹 더한 궤도의 직분상으로서의
침묵이 있으므로서
우리의 살결만한 감각이 주어져 있다는 것이리라
자기장
저 중국의 삼국지에
제갈량이 팔쾌진을 쳐 적을 무찌른 것이 유명한데
그 건 쾌상으로 활용한 것이요
본래 태극이란 강물 속에 달과 같기도 한 것인데
이순신 장군께서도 주역을 아신 분이라
아마 좀 더 근원적으로 접근해
수월신(水月神)의 원력을 돋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달이란 숨은 곳을 밝히듯이 하는 데 있어
물 속의 달이란 더 구석을 찾아 밝히는 모양새인 것이다
理와 氣
우리가 어떤 설명하고져 하는 본질성이란 것이
허한 것에 두고 본다면
우리가 극소점에서
원소적인
그리고 파장적인 것의 발견을 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그 것은 主理가 미쳐 主氣를 보지 않는가 이다
즉 아무리 다양하게 설명이 되더라도
그 통채로 해서 기란 것은 머리와 꼬리의 형태를
나타냄을 말하게 하는 것이요
설명이 될 수 있으면
거기까지는 굳히기에 들어갈 수 있는
경계가 분명이 지워진 것의 행위가 있다는 것인데
氣란 그 것이 사동적(使動的)이든 피동적(被動的)이든
느낌만으로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이라면
理란 원소화까지 갈 수 있음의 미지가 있다는 것이다
단 里란 혓바닥을
玉이란 행태로 다문다는 것인데
즉 센스가 일어난다는 것인데
혓바닥으로 했어든
천정으로 했어든 감각이라는 것으로
두뇌라는 玉의 범주로 里가 잡힘에 理가 되는 것이라
氣는 느낌이 있되 설명이 안 되는 것이라면
좀 더 육체적 질감에 있다함을 말함이리라
왜 이기의 분별이 중요한가 하면
마음이 가지는 힘이
먼저 어데부터 주어지는가 하는 주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이론이
근원적으로 수긍하는 끈으로 잡아가고 있음이
마음의 발상에 얼마나 근접한 것일까 하는 것이다
火
火를 이허중(離虛中)이라 하는데
중간이 비었다는 뜻이고 팽창을 의미하고
원심력을 의미하고 껍질을 의미하는데
본다 밝힌다는 의미이다
즉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다)의
수적(水的) 의미를
최대한 팽창 시켜 돌이켜 불 수 있고 귀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의식을 굴레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 걸 문화요 문명이라는 것이다
또한 빛은 육안 상으로 빠른만큼 할 때
이 걸 자연 발생적으로 하고
통제 할 수 있는 범위까지 조밀하게 채워 지는 것이 또한
金이요 玉이라는 것이다
빛은 그 속에서도 육안 상으론
장애를 못 느끼며 의식 없이 갈 수도 있는데
그 걸 잡는 부분이 그림자로 보일 뿐이다
즉 그림자는 빛이 드러내 준다기보다
빛의 그물망이기에
사물이 水로서 쥐고 있기에 어둠이 보인다는 것이다
水에서 부터 음양을 드러내 주는 데
木으로 와서야 확실히 그 사이를 분명하게 한다 것이요
세분화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어둠이 水란 휘는 것인데
이건 빛의 파장적 휨이라기 보다
전체적 휨 현상으로 우겨넣과 같기에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물어 건너는 현상을 드러내는데
우리의 복잡다난 현상의 존재가
먼저 나무가 뿌리를 거두 듯이하다가
뿌리를 거두고 가면 또한 水 즉 물을 거두고
마지막으로 옥으로 들게 되어
그 조밀한 관문에 검증 되었다가
즉 들긴 들었되
거울에 비쳐진 듯 든 기억과 같이 하다가
다시 땅과의 타협을 짓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늘 시루
이 빛이 꺾이고 프리즘이 되는 부분이 초입의 단계인데
이 빛을 다스림이 전리층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색계의 벼리를 쥐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나무가 열매가 나무 꼭대기에서 열리듯
즉 일곱색의 꼭대기
저 오존층에 열리는 부분이 무엇인가도
의심할 여지는 있는 것이다
식물이 자라는 것이
꼭 무지개 시루떡이 화산재처럼 덮힌 유적에
고개를 내민
각기 다른 색깔과의 적응을 기억하며 올라온 듯도 하다
절취(絶取)
저 낙엽이 피비린내와의 이별이
꼭 화식(火食)과 함께 미로의 끝머리이듯
뒤로 가는 행인지
앞으로 가는 행인지
어찜지 마지막이듯 뚝 끊고 가니
존재가 어쩜
이 물기의 생명체와 다른 환희를 맞은 듯
水木을 버리고 빛을 따라 구슬을 밝힌 듯
고요하고도 찬란해서 좋구나
글
글이란 것이 사족이 없다
그에 ㄹ인 뱀이 받쳐 준 것임에 글이라
사족이 없는 것인데
또한 사족이 열이 달린들 어떠리
자명한 것은
우리가 믿음을 어떻게 믿느냐
무엇을 믿느냐를 차지하고서라도
신앙이란 모이고 뭉치고 하는 것이니
선업을 쌓으면 선과가 열릴 것이고
악업을 쌓으면 악과과 열리는 것은 자명한 일
희열을 위한 현의 라인
음악이 아득히 손짓하는 것은
분명히 선을 긋기 위함이니
피라미드의 미로를 따라 선을 긋듯
우리의 시각과 육감에 잡히지 않기에
그 벽을 모르듯
음악은 그었기에 통로를 아는 듯
우리에게 오라는 것이다
아! 그대여!
이 아득히 가는 길은
음악에 싸잡히듯 떨어지지 않는 길
허공이라 해도 전율하는 길
연하디 연하게 푼 교감 선 위의
이 음악이 아니면 긋기 힘든 선을 긋는 것이다
아! 독도자도 외롭다는 명언과 같이
그 외로움 때문에 허무와 허구를 일으켜
내가 나를 쫓는 형국의 거리를 벌려놓는
우린 그림자를 모름에 외로움을 모른는 것이니
누구도 잡을 수 없는 우리들만이 함께면 갈 수 있는
누구를 만난들 꿈결같을 뿐
이 삶의 결처럼
백년 하청 된 듯이 착 달아 붙은 것도 아닌
왠지 전체의 공간이 다
선 하나라 할 떨림에 있는
내가 자의식이 있음에
남겨진 외로움을 타는 것이기에
이 음악은 자의식이 없음이니
영원한 희열의 선상에 천지가 동율하는 듯
그 지속성이란
최대의 공간에 둘러싸인
일직 선상으로 하나일 뿐으로 하는 듯
어린 왕자 2
인생을 안다는 것이
단풍잎 물들어 그 속이 훤이 보일 때의 일이니
이미 그 땐 한 내막 끝난 것이다
마치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보니
푸르러 더 아름다울 뿐인데
이미 달에 와 있음과 같구나
저 노을에 다시 달거리를 쫓아가는 듯
아침의 달거리 길로 태어나
저녁의 달거리 길로 사라지는 듯
어쩐지 꼭
이 지구의 하룻밤의 꿈에 붙들려 사라지는 듯
어떻게 하루가 백 년과 맞물려 사라지는지
저 디지털 우물에
흙과 돌이란 것이
아날로그 시계처럼 눈금을 열어
차례대로 당겨 먹는다 지만
어찌 외로만 먹는 입이겠으랴
이중으로 먹는 것이니
아예 우물인 냥 중심에 잡고
디지털 가슴인 냥 하고
잠깐만으로 핵심을 이루는 것
마치 책꽂이에 맞춘
책 한 권에 담기는 평생을 사는구나
내가 사주팔자 아니라
운행이라는 것이 나로
푸른 거풀에 들어 사주팔자에 들은 듯
세상사
수 많은 시 문양의 조약돌이 수족관에 쫙 깔렸다
그만한 완성도면 퇴고품은 되고도 남을
생명력의 퇴비가 아니라
미학적 바탕의 퇴비가 되어야 한다고 야단이다
야속하지만 어쩌랴
그 잘난 금붕어에만 시선이 다 가 있다
생명력이 무언가
저 인조 사료가 때깔까지 만들어 낸다고
어느 출판사에서 하는 소리
자기들이 인물을 만들지
인물이 스타되는 게 아니라고 하는구나
겉으로야 대중이니 뭐니 따라가는 척
잘났다 하는 척
속으로 다 유도하여 가는 내숭꾼이라 하는구나
조약돌
본래 저 돌은
저 빼가삐가하는 빌딩의
사람 키 넘는 조경물이었다 한다
그런데 거인은 필요 없다고
그 건 뻥이라고
들여 주는 대신
값을 깎고 또 깎아
램프에 쏙 들었을 때의 기본값으로 쳐 주겠다고
집 주인과 조각가의 이면 조약이었다나 뭐라나
그나마 세월이 쓰다듬어 주지 못 하는 것
개천이 쓰다듬어 주니 용은 되는 듯이 할 뿐
동굴인의 진화
글자 중에 가장 性的인 글자가
받들 봉(奉) 字 더 할 수 없는 데
왜 화장실 낙서가 그렇게
짝퉁일 필요가 무엇이든가
기왕에 받드는 것을
그냥 신선하면 되는 것을
왜 그렇게 몰아다 붙인 동굴인이었던가
오직 저 단구대 벽화가 있어
바람이 희열하고
장류의 개울은 벌판을 지나는 것을
아! 모든 생명체는
동굴 벽 어둠 속에서
저 석양의 피를 차고 나온 것이로구나
저 알타미라의 동굴 그림만이
소라껍질같이
훨씬 뒷전의 일인 냥 허전해 하고 있을
무명(無明)
우리가 무명에서 깨어나는 것이
가장 무명스러운 어리석음과 같은 데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가장 똑똑하다고 설치는 바에다
눈빛마져 죽으면 그로 퇴물 취급이나 되고
눈길조차 외면하게 되는 것이
마치 이허중(離虛中)인 火가 밝음이나
또한 그물을 말함이요 거미를 말함이니
땅만 거미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눈 뜬 것 자체가 흰 거물이라는 뜻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무엇이 바쁜지 눈길 하나 빈 틈 없이 바쁘다
무언가 바라봄이 없는 듯
눈빛조차 무위의 눈이면 사색이 더 좋은 것 같아도
눈 귀 바쁘게 쫓는 사람에겐 이미 불필요한 걸림돌일 뿐이다
무엇이 내가 나일 수 있는가
오직 나비의 법칙에 근거는
내가 찡그리면 상대도 찡그림이요
내가 웃으면 상대도 웃는 거울의 명확한 경색에
고정 손님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가장 잔인한 한 현상이다
그래서 인간의 이것을 돌이키기엔 불가항력을 느끼느니
외면성이 더 강해 반발력도 생기기 마련이니
즉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위이다 가야 한다는 것이요
침묵이다 가야 한다는 것이니
한 때 청춘이다 가는 인생이
울은 더 높아가건만
무슨 시험대에 올랐다고 이런 억제를 강요 받아야하는가 이다
허나 어쩌리
무엇보다 큰 일은 의외로 경솔함에서 나오는 것이니
明을 無明으로 인정하고 난 다음의 정화로서
선악 이전의 발로를 쥐어야 함을 자신으로 해야 함이라
그 속에 아름다운 사랑의 리듬 또한 공유성이 강함이니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멈추고 숨죽여야 함과 같으니
성장이라는 것
성장이라는 것
물에 공기방울이 올라오는 것을 나무라 함이요
나무에 꽃이 올라오는 것을
물에 공기방울 올라옮과 같으니
꽃은 과연 어데 있는 것인가
쇠에는 물이 거꾸로 성장함이요
땅에는 쇠가 거꾸로 성장함이요
문명 2
저 젓대 피리를 火라 함이요 공간이라 함이니
젓을 소리라 함이요 의지라 함도
공간을 열어 주지 않으면
심 안 빠인 버들피리 같음이니 문명이라 하지 못함이듯
빛이 속을 비우며 채우며 달려오는 광통신이라는 것이니
이 건 내적 함초롬함을 열어내는 것이니
외적으로 융통성를 잘 안 보이는
오히려 밝은 듯 하면서 단박하다는 것이 있다
여기에 비하면
水란 마찰과 자극에 대한 자기 중심을 이야기하며
유연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실제 그 성정이 윤활성이 강하지 않는가
생명력이 수치로 계산되는 극을 넘은
최대 공약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도 물을 닮아라며 도뎍경까지 썼으나
팔쾌 중에 가장 이기적인 자기 중심적에다
잔머리가 많은 것이다
개인적 독자성이 가장 강하고 예술적이기도 한데
생명력은 넘치나 도덕적 문제가 가장 많은 것이다
보통 우리가
금이 목을 다스리는 것은
자연적 생명력을 어떻게 분재하듯이 다스리느냐이고
목이 토를 다스릴 때는
어떻게 문명으로 완숙하게 할 수 있는냐를 다룬다
전자는 조각하는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후자는 찰흙으로 빗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공자님 사주에는 전자와 같아 火가 없다
오늘의 이 연주는 다시 나리라
파이프 오르간을 길게 펴면
버드나무처럼 길게도 뻗으리라
솔직히 이 것은
파도의 나이테를 역류적으로 힘을 가함이 있는 듯
울타리는 되는 듯이 허리 조이기를 하듯
나무 한 그루
뿌리로 머리로 뻗어 가게 하는 것
이에 대해 위로는
모둠이 있는 멍울같음이 음악 홀
꽃망울과 같이 이룬 꽃
아! 음악 반주 좋을씨고
꽃가루가 가사(歌辭)를 붙여 바탕을 이루니
이 또한 모둠이 있음에 인지로 맺은 열매라
먼저 소릿 발로 온 것
마저 마음과 뜻으로 알아 뜯고 받침을 이루리니
木과 火의 연주와 경청의 확산이로다
꽃가루인 땅과 열매인 하늘로 결실을 맺어줌에
다시 태어나리로다
성수(聖水)
물이 달다
실제 무취라 하지만 달다는 느낌일 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갈증의 해소에 있을 때다
이는 마치 성신의
침샘에는 달콤한 맛이 난다는 뜻과 같다
성수(聖水)는 지표에 가장 잘 여과된 샘물처럼 시원하다
요즘엔 더러 남의 섭생에 너무 비인간적이다
외적으로만 변명이 되면 그만인 듯이 비양심도 많은 듯 하다
이는 곧 고학력에 머리 돌리는 것이
나름대로 앞세우는
그 무엇으로 돌출한 잘난 척인 줄은 모르겠으나
그 것이 저 로마의 조각상처럼
콧날이 오똑하게 생긴
미인 상에 가깝도록 만들어 준다 할지라도
평생 축농증에 구내염에 시달리는 업을 지은 것이리라
땅과 하늘
우리가 거울에 대고 보인 그대로
한 치도 양보 없이 물이 수평으로만 돌아가듯이
달리 인상 밖일 수 없는 것
여울짐이 깊이 패여도 깊은 것도 아닌 듯
점액이 메워 듦에는 갈라짊도 없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거울과 같기에
딱부러지는 조화라 할 것인가
유리일 뿐의 하늘
허나 여기에 한 쪽에 흙칠을 하면 거울이듯
모든 생명체는 거울이듯 다시 닮아 태어나는 것에
어머니!
그 자궁을 갈라 나오게 하셨네
나무도 철이 드는가
나무도 철이 드는가
시간 따로 시공 따로가 아닌
시간 속에 시공이 있음이로세
오늘의 이 엄숙한 공연의 음향은
나무의 뿌리가 되고
열매가 될 때까지 커리니
시차가 고체화 된 듯이
다시금 병행하면서
서로 간에 감촉이 일어남이리
모근의 위대함
터럭도 산고(産苦)라
모든 감촉이 일어나면
저 초목처럼 일어나야 하는 것인데
스스로 배를 갈라 넣어
둘을 하나로 만든다
음(陰)이란 접은 역류적 병행과 같은 것
다시 양(陽)으로 펴듯 낳는구나
인간의 운명은 내가 미소 짓기에 따라 달렸다
보통 인간의 얼굴을 거울이라 함인데
즉 내 표정대로 내가 거둬 먹고 간다는 것인데
그 것이 마음대로 안됨도 다 인연인 것이지만
인간의 운명은 내가 미소 짓기에 따라 달렸다함은
사람의 입가에 패이는 팔자(八字) 주름을 법령이라고 하는데
모든 파문의 연변을 둘러치는 것과 같다
여긴 포용력과 의지를 함께 하는 자리인데
즉 그 선 안으로는 뻘처럼 감수해야 하는 것
밖으로는 화전처럼 일구는 산성 같은 것
다 이 여울짐에 미소가 번지느냐 아니 번지느냐이니
그 속에 팔자를 내 비추니
거기에 미소란
가장 순한 성실성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수(數)로 본 관상적 이미지
얼굴에
이마와 눈썹과 눈으로
一 二 三으로 하고
네모 안에 넣어 보면 광대뼈 같은 四
五는 인중(人中)이요 六은 입이라 함이니
七은 입 아래 턱선을 따른다는 것이요
八은 법령에 남은 줄기
즉 자신의 전문성으로 산다는 것이요
잘 하면 무형 문화재로도 산다는 뜻이니
九는 귀 밑머리 뒤로 넘어간 자리공 같은 것
분명 열 십자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듯
十은 중심이 무엇이었느냐를 알게 한다
人中 : 코 밑에서 입술까지 패인 골
잎새를 따라
잎이 진다
이카루스의 날개가 불타듯 잎이 진다
구렁이 알 돈처럼 챙겨도 잎이 진다
생애 처음으로 발걸음은 난 것인가
한 발걸음도 제 것이 없다더니
한 손바닥도 제 것이 없다더니
은행잎은 구렁이 굴로 들어가고
단풍은 공원의 동상으로 몰리는구나
나무!
네가 한 발짝도 뗐으면 無라 했으랴
청천 하늘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들은
다 얽울 뿐이로구나
맴맴
매미가 지상에서 맴맴하는 것
다 지하에서 맴맴 돌은 것
그 것도 한 칠이라고
무엇에 전염될까 쿡 박혔느냐 마는
나왔다고 잠시 우는 것이 그 정도니
그 것이 십 년의 한 발자국에
달을 낚은 듯이 건져 올리는 행보
운명도 극성스럽게 스피커를 단다
사람이 부처라 함은
사람이 부처라 함은
내 세포 수만큼이나 사람인 것
몸에 뾰두락지 하나 나도
업 하나를 걸리는 것
지구가 구심력이 있기로
이만한 망은 기본으로 하는 것이니
인력(引力)에도 정제력이 있나이다
우린 왜 참선을 해야 함일까
우린 왜 참선을 해야 함일까
우린 배를 탔음에 멀미를 모르는 항해
심장은 태양처럼 여울지는 바다에
단전(丹田)의 기관실로 나아가야 하니
우린 아직 그 수평선조차 모름이 아닐까
머릿통이 달거울만하게 올려 졌구나
어찌 천체 망원경을 넘지 않으리
그 핵심마져 꼭 심은 듯 둥글게만 도는 것을
균형
우리가 木을 간(肝)이라 함에 있어
또한 木은 농공부 장관
우리가 火를 심장이라 함에 있어
또한 火는 교육 문화부 장관
水는 신장(腎臟)이라 함에 있어
교통부 장관이라 함인데
金은 폐(肺)요 또한 행정부 장관
土는 비장(脾臟)인 동시에 국토해양부 장관이다
이렇 듯
우리가 한 쪽으로 편중해
한 쪽을 고갈 시켰다면
그 쪽이 병적으로 되는 것인데
이에 대한 자중과 겸손을 모른다면
이 균형 그대로 다음 생에 들고 나와 성질이 되면
시쳇말로 타고난 성질이 그러니 이해하쇼 하는
반 어거지 인생이 되는데
그 결과야 뻔한 것이 아니겠으랴
그렇게 취약점으로 더욱 약화 시키다 보면
수명도 절로 줄기 마련인데
다 자업자득의 도표가 그대로 드러나 보임이라
그리고 이 각각의 기관(臟器)마다
경락이 피부에 맞닿게 되어 있는데
그 세포마다 민(民)이라 함이니
피라미드적 고리의 민생을 의미함이라
업이 두꺼워 고질병인 자는
거기에다 대고
침이나 뜸으로 아무리 약발을 들이 밀어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난치병으로 만들 뿐이다
작은 바위덩이 하나에도
조상은 나름대로 기(氣)를 갖고 있는데
그 써 먹는 요량이
구획적으로 한정되어 있음에
평면상으로 굴곡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 지구의 자기장의 침을 발라
모양새를 낸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이 자기장을 차고 나올 수 있음이 천둥이요
또한 천둥을 차고 나올 수 있음이 빛이듯
이것은 반죽을 떼어다 만두 피를 만든 것 같기도
포목을 갖고 재단을 하는 것인데
氣란 수평적이 못하고 들쑥 날쑥 뭉쳐진 것이라
편중됨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손에게 골고루 외양은 싸도
기운이 몰리는 함량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나 바위나 나무같은 것도
수 억 년의 정기를 갖고 있는 것인데
무덤의 전후 좌우로 사용될 것 같으면
마치 시 한 귀절같이
내가 그대를 꽃이라 불러 주기 전 까지는
꽃이 아니었다가 불러주면 꽃이듯
그 것을 자손이라고 불러주면
자손이 되는 현상과 같은데
그 때부터 어떤 한 정물이라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작은 바윗덩이 하나에도
인연일 때는
만 년보다 무거운 세월의 무게가 얹히는데 있어
인간의 명보다 무겁게 등용되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꼭 무덤을 쓸 필요가 있느냐 하지만
풍수란 만든다기보다
사람의 사주처럼 드러냈다는 것일 뿐이다
키와 키
꼭 키를 여인네 허리처럼
호리병 늘씬하게 빠진 매력덩어리로 키라함이든가
아니면 뱃머리 조타실 키가
저 파도의 키를 넘지 못하고 잠기는 섬 바위에
좌초될까 방향타 노릇도 하는 것인지
그리고 또 하나의 키
포유류에는 노른자와 흰자가 없이 난 것일까? 하는
대답은
인간은 어머니 뱃 속일 때 노른자 층이요
이 대지의 층이요
태어나서 보니 흰자의 속이요 하늘에다 커니
과히 인생은 난(卵) 중의 꿈과 같은 것
우주는 흙으로 부푸는 행렬이다
보통 백뱅을 폭발로 보아
팽창하는 이 우주를 무엇으로 보느냐 인데
건(乾)이면 곧장 곤(坤)이 되는 것이니
이 변환이 과히 폭발적이라는 것이다
이 팽창이 곧
건금(乾金)이 터져 곤토(坤土)으로 化하는 中이라는 것인데
이것을 불이 한 조력을 하게 되어 있다
구름이 뭉쳐 혹성이 되는 것도
결국 坤이 제 풀에
흙을 파마 머리처럼 말아 붙이는 것이니
이것이 워낙 강한 바탕성이라
도리어 모든 힘 쓰는 것들이
여기에 비해 끌려드는 듯이 느끼기에
음(陰)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즉 모래 사장의 모래가 흡수력으로 당겨가는 한은
陰으로 보는 것인데
실상은 팽창 중에 원점으로 돌아본 듯
마주한 데서 비록됨이다
이렇게 土로 말아 붙이다 보니
그 속에 처음 출발한 乾의 순금이
미미하게나마 잡힌다는 것이다
신화에서 보면
저승에 나오다 돌아다 보아
돌이 된 여인네가 나오는데
마치 이 우주가 팽창하는 길에
뒤돌아 보면 흙이 되는 듯이 엉기는데
그러다 보면 氣가 막힘이 아닌가
그렇게라도 막으니
만물의 양(陽)이 뛰어 놀기 좋구나
'나의 작품실(이 글은 순수 창작품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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