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실(이 글은 순수 창작품임)

칠칠맞게 살지 말고 팔팔하게 살아라

narrae 2011. 9. 20. 02:34

칠칠맞게 살지 말고 팔팔하게 살아라

 

왜 저승을 칠칠이 사십구로 두었는가는 

생의 팔팔이 육십사 안에 두고져 함인데

원소 주기율도 팔팔이 육십사로 짜여진 것이나 

주기율 하나가 코 빠지는 형태이니 

칠팔이 오십육이다 

그래서 팔팔하게 살기 힘드는 형국인데 

즉 허방다리 놓게 되어 있는 늪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저승은 거울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비어도 쉰다는 의미이지 

지워진다는 의미는 아니니 

어떠한 것도 새어나간 것이 없다는 것이고

엉망이 되었다는 것도 없는 것이니

여기서는 분명하게 그물 안에서의 취용이라는 것이다        

 

 

무지개에는 10이 있되 10 가지가 없다  

 

태초에 원소가 터진 순간도 10이 없으며  

이미 원소의 갈라진 순간에는 10이 있으나 열 가지가 없고

확장된 빛일 동안

원조주기율 3일 동안에도 10이 있으나 열 가지가 없다  

8 族 사이에 응결될 10 개의 자리(금속에 해당되는 族)가 없었으면

이미 다시 수소로 돌아갔을 터인데 

어쩜 그 너머도 갈 수 있었음인데

빈 의자라도 있었음에 걸린  

그렇게 물질이 없어도 10 자리는 남아 

물질이 차니 물질의 완결편 

모든 진행은 10을 넘어라 

10으로 진법하라

무지개는 이 허(虛)한 10을 감싼 울타리라고 하는  

삼족(三族)의 불에 걸린

훨훨 불타는 테두리 안의 것이라 함에서 이니         

 

 

조개의 始源

 

이 거 어데 감질 나서,

씨주머니를 닮았다 하시지 마시고 차라리 달았다고 하시지요

그래야 계수나무 하나 꺾을 고개는 들어본 것이 아닐까 해서 

그래도 애비 에미는 함께 겹이불 노릇을 한 것 같은데

에미는 제 살까지 다 내어 주었으니 달로 가고

애비는 다시 태양으로 갔는데 

이제 다시 씨눈인 水가 껍집인 火를 터트리려 하는데 

받아줄 土母와 金父를 다시 기다린다 하는 순환이라는 것에

그런데 이 조개의 시원이란게 늘 시작되는 것이 

이 지구가 유영하는 곳에

달이 제 궤도의 날로

태양과 이 땅 사이를 갈라 들었다고 하는 것이니

들기야 둥글게 들었다지만

조개는 우주관적 솔직함이 있어 

그 각도 밖에는 모른다 드러냄이 그 모양인진데  

오히려 둥근 과일보다 더 깊은 안목이 배어 

집을 열고 닫음이 아닐런지요

 

 

퇴고(推鼓)를 위한 산고(産苦)

 

난 퇴고를 나름의 양심이라고 보는데

즉 원만하면 한 타이틀 안에 넣어 나름의 

유기성을 이루어 주는 것이

한 타이틀로서의 행세로 남에세 여유감을 갖게 하는 것이니 

온갓 명함의 감투로

팔방미인이듯 어느 한 곳 끼지 않으면 안 되는,

그로 김 빠지게 하는 가벼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인데

그래도 내가 팔색조가 되어 갈 수 밖에 없음은

어떤 방향성을 갖추든 그 것과 상관 없이

이미 두드려 맞게 되어 있는 것이라

그 끈질기기야 

마주치기만해도 끝까지 글을 쓰지 못 하도록

주변에는 말도 붙이지 못하게 밀어붙이고선

첨예화된 노골성을 앞서니 뒤서니 해대며

정서성의 혼란에 까지

주도면밀하게 깊이 파고들어 악착같은 다음에야

내가 일방적으로 적응하려 했다면 이미 끝나고 남음이나 

나의 구심을 버리고 원심으로 들기로 했으니 그나마 버티고는 있다마는

무엇보다 글이 글에 대해서는

그 차이나 변심은 감출 수 없는 것이나 

사람 마음이 따로 두고서 빗대는 데서야 

그 배경을 반대로 감춰 놓고도 

깜쪽같이 표정을 내미는 것으로 귀신이나 알아볼 정도이니

우리가 글을 산고로서 낳는다는 것에 있어서의 내게 있어서의 퇴고는 

심인성 유산이 되기 쉬우니 이미 자포자기한지도 오래

그래서 난 퇴고로서 맞추느니 

다양한 시각 상으로 그대로 낳아야 한다는 

새가 왜 알을 낳아야 하는가를 알 것만 같은 

그래서 천상성은 한 점으로서 거둬 올리는구나 하는,

일례로 卦를 풀다보면 

자식이 父에 닫혀 있는 伏이 있는데 

이렇게 나오는 자가 젏은이면 거의가 

집을 장만해야 자식은 낳는다던가 

공부를 마쳐야 자식을 낳는다던가 

부모와 독립이 되어야 아이를 낳는다는 복안이 있는데 

마치 꼭 퇴고를 위한 산고같다고 느끼게 하듯이 

이 것이 나름의 도리와 책임감이겠으나 

어차피 이조차 들어설 수 없는 지경이라면 

차라리 알을 낳고 키우는 것이

어찌 지상성에 넋두리로만 남았다 할 것이든가

 

 

먹거리 

 

무거리란 것이 

무딘 것을 걸러낸 것인지 

걸러냄이 안 된 것인지

먹거리란 것이 

블랙홀적 어둠은 걸러내고 

환한 곡식의 환희를 여는 화이트홀이라는 것인지

다만 그렇다는 소리를 들으면

심장은 즐거이 더 흔쾌히 뛰어줄 것이요  

웜홀이라 해준다면

간장(肝臟)은 그 공장이 더 잘 돌아갈 듯 

인간의 육체 상으로 

반물질상(反物質狀)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을 신장(腎臟)이라 함인데 

이는  마치 한 막상(膜狀)의 양쪽을 대칭성으로 해서

한 차원의 경계를 소진함과 같으니

마치 이승의 회이트홀로 구곡양장이라는 것이

이 먹을 걸러서 사는 듯이 먹거리 

 

 

그래도 굴대로 돌아가는 것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바람따라 길을 정하는 것이더냐

돛이 바람 싸매듯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옆으로 옆으로 갈지언정 

일각이라고 싸매어 가는 길이라면 

앞으로야 한발짝이라도 더 나온 것이 아니리

보이는 것은 바람에 불리는 것이나

잎새와 배는 따로이 가는 것이니

쌈 한 줌에도 

그래도 굴대로 한 바퀴일 수 있는 것과 

잎새의 풀로 해서 돌아옴이듯

과히 풀이 풀었음에 돌아온 것이 듯

아예 머리의 굴림대로 삼켜버리 듯  

 

 

벽을 넘어

 

별이 대기권에 들어서야 

별도 꼬리표를 단다고 하니 

개구리도 양서(兩瑞) 중에 한쪽으로 나오고 부터 

이상하리만치 별무더기를 낳는다 

하나 새는 그 사이를 알기에 

한 알씩 나아도 정확히 별의 기운처럼 스미는구나

 

 

흑백을 위한 안식

 

눈은 홍채가 소화기라고 한다 

즉 뇌로 넘기는 소화기라는 것이다 

여기서 시상하구 또한 자율신경 쪽으로 

넘기는 소화기관인데

마치 위장의 벽이 가장 빨리 순환됨과 같으니

마지막으로 위장의 무감각으로 인한 

소화기능과 함께 외부에 노출됨과 같다

즉 이런 홍채와 같은 벽을 넘으면 다른 세계에 든다는 것인데

이 건 계절 상의 홍엽이 아니라

하루의 오후만 되어도 

바로 무지개색이 무채색인 흰색으로 갈무리되어 진다는 것인데 

즉 희게 보여도 그 속으로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삶은 순환성이지 뒤엎을 수는 없다

 

어느 누가 말세에는 풀잎 하나에도 귀신이 난다고 하지만 

그렇게 까지 가는 듯 해도 뒤엎어진듯 나오지는 못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 정도까지 되면 

당장에 우리의 오장육부가 두뇌의 역할이 드러나기 때문에 

머리만이 생각의 중심이 되지 못하리라 

오장은 침묵의 정신적 수용 뿐만 아니라 기억체이기도 한데

스스로의 경험성으로 주장을 내놓을 수 있다 

이 걸 발동치 못하게 하고선 두뇌를 둠이라 할 것인데 

이 게 열린다면 죽은 조상까지 끌려와야 하는 것이 있다

만일 그대가 이 철을 녹이는 심장을 지옥이라 한다면

과연 이 지옥을 탓하며 떨굴 수 있는 것이던가

 

 

ㅇ과 ㅎ인 알 껍질을 깬 위대한 子母의 법칙

 

잘 한다 하십시오 

그러면 이 잘도 스물스물

한다에 옮겨지며 자란다가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 잘로 잘 얹어 놓으면 

ㄹ이 발 없는 말이다 싶어도 

한다의 대지에 얹어 놓으면 자란다는 뜻이니

잘이 잘 자라지지요

다만 뒷말 하의 ㅎ의 알을 깨고 나오고서의 순이 나는 것이니

이 것이 허공에도 밭을 일궈놓은 것이 아니겠어요

 

 

난자를 위한

 

사람의 머리를 보다 보면 

중년이 넘으면 달나라 머리같이 벗겨지는 것을 보면 

우린 선천적으로 달을 하나 얹어놓은 머리같은데 

인간이 거칠다 함은 

이미 섭리 상으로 달나라를 정복해 앞서나감이 있지 않나 하는

몸은 이 지구의 자전같은 앞과 뒤

운명은 이미 달이 그어놓은 원형 안에서 시상하부가 되어 있는

 

 

뿌리

 

거울엔 그림자가 선다 

이 것이 최대한의 슬로우비디오면 이렇다 

먼저 지평선과 수평선은 같다는 것이다

이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푸성귀를 투명한 양액(養液)으로 키우나

땅에서 키우나 다를 바 없이 자란다는 것이다

우린 여기에 먼저 좋은 환경에 태어남이 

나라와 나라 간에 원수가 아닌 땅이 

또한 이웃과 이웃이 원수가 아니 사회

부모형제 간에 원수가 아닌 혈육으로

태어나면 선천복이라고 할 터인데

이 건 평생의 업이 되기 쉬움이라

고정관념을 자의가 아니어도 극복하기 힘드는 것이니

이를 보아 후천적으로 개심하기도 힘듦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것인데

결국 개심이 안 되면 또 그대로 선천성이 됨이 

수평, 지평 선상의 뿌리와 같음이요 

그림자가 뿌리가 박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외로움에 외로움을 타는 법

 

슬픈 영화를 보면 슬퍼하고 

기쁜 영화를 보면 기뻐하고 

외로움도 외로움에 외로움을 타는 법

군중도 그러한 외로움이기에 

서로 눈길을 떼지 못 하리니 

음악도 제 흔적 위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나

또한 사라지면 그 뿐 

그나마 감회라도 남는 것이라면

어제 것도 아니어서 가을이로구나

 

 

천 불상 만 불상 2

 

그래도 유적같은 피라미드를 보는 듯이 하지 

그래도 유자망 팬티 속에 다 든 듯이 하지

한 차원 넘어선 다 큰 정자 떼거지로 몰렸는데

기왕이면 생기는 대로 낳을 것이지 

달 감상하고 살려니 부담이 되어 

인류 최대의 인간적 자유

피임으로 손수 절도 있게 세우고 보니

저 여우짓이란 것이

눈길 돌아가는 것 좀 봐라

그래 봐야 

4에 죽는가 했더니 

40에 가서 죽고 

또 400에 가서 죽는가 했더니 

4000에 가서 죽고

끝으로는 보이지 않을 바닥이든가

찰 만자에서부터 빙빙 돌아나오는데 

고갱이 배추 한 포기

그래도 알이 꽉 찬 것이라야

달나라에 보내주는 것이지

어찌 저 건 거칠게 자라서 그런지

벌러덩 엉덩이 까졎히듯 젖혀진 것이

함초롬이 돌덩이처럼 굳어질래도 기본이 안 되어 있으니

한겨울 버려진 고냉지 채소밭의 

천 불상 만 불상이야 까무러쳐도 모를 일

 

 

유유자적한 달

 

직녀성에서 까치 소리로 듣던 것이 

달나라에서 오징어를 찢어 먹는다 

이미 팔방을 알아버린 팔 불출이를

알아듵기 좋게 찟어 찟어

한 층 더 지구살을 부드럽게 삼키며 살발림 하는 

유유자적한 달 

어찌 이렇게 소리가 육질이 되어 있더란 말인지

오히려 더 말려도 쫄깃해서 좋을

그런 달이 지구에 붙으려 했다고?

달리는 지구에 붙은 쇠파리가 해를 구경하고 있다고?

천만의 말씀 만만에 콩떡이라 했던가 

 

 

천지 사이의 人과 사람 사이의 間은 다르다

 

천지 간에 인이나 사람 간의 인은 다른 것이나

이를 모호하게 굴려 자기 이익을 챙기기도 하는 세상이라

굽어 보자면

문명이란 것이 

인간 사회를 끝없이 논하면서 

너무 間을 갖고 人으로만 몰아붙이는 데는

그렇다고 人 자체가 천지 간의 사이를 행함을 알고

완벽하게 間의 불확실성을 흡수하라는 것도 아니면서

간의 확실성 내세워 오히려 인의 사이를 모호하게

분해 흡수하는 궤변같은 각질의 피막같은

차라리 그럴 바이면 그대로 두어도

내적 지향성으로 보다보면

人 자체가 間을 배려해 천연성에 깃들어짐은

힘 주어 행하는 만큼이나 가지게 되어 있게는 되어 있어 

별나게 떨어진다기보다 

그 마음이 이는 순간이 가장 별난 정점과 같은 것이니

억지를 안 부려도 人 자체가 갖는 間이라는 것이 절로 됨에

굳이 나쁠 것도 없는 순리인 것인데 반해

외적 지향이라 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에 대한 정의라는 것이 잇게 되는데

이 것 또한 사이인 것임에

인 자체의 개인적 주체성에 힘을 주어 間을 등한시하는 것에서

기도나 주문이나 부적,

하물며 점술마져도

신의 돌아앉은 심통마져 굽어보게 한  시야를

스스로 닫아 度盲을 자초한 것으로

내생에 또한

육신이 더 단단할 뿐이라고 스스로 드러내는 꼴의

 

 

돈(敦)이나 점(漸)이나

 

돈(敦)이나 전(漸)이나 다 단숨에 놓인 

敦 上에 漸이요 漸 上에 敦이라

敦이라 해도 찰나에 漸象인 것이요

漸라 해도 찰나에 敦象인 것이니

하나같아 보임에 悟요 

둘같아 보임에 修라

닦고 닦아 하나같아 보임에 

확오대철 하나같이 불싸를 듯 날아가는 것이요

아직도 물질과 나와 병행같으니 닦고 닦고 가느메라

 

 

품다와 풀다

 

푸~!의 여음

푸~!가 있음에

ㅁ에 가둠을 품이요

푸~!가 있음에

ㄹ로 나아가게 함으로 풀

 

 

零(영) 度의 前後로 이루는 프로울로그

 

우리가 동지(冬至)를 기점으로 

즉 坎中連의 한 줄을 그은 것의 1로 

자정을 기점으로 하는 후천수(後天數) 1과

뒤로 돌아가면

乾三連의 先天水數 1로 들어가는

零 度 上의 水인 1과

- 1 度인 乾金인 1

후천수는 이미 지하의 물이요

선천금은 계절을 돌려줌이라

계절은 天上性의 설계를 품고 풀어놓음이니

정자 또한 얼음에서는 지켜준 듯

乾은 宮이라

술(戌)인 성벽(城壁)이 있고

亥(해)인 해자(垓子)가 있고

성벽 위엔 규奎와 루婁가 있고

해자 위엔 실室과 벽壁이 있음이라

아! 누구든 야무지게 보아야할 대목이로구나

후천적 物象과

선천적 理象을

 

 

파자(破子) 풀이

 

앞에서 보니 반토막 길 ㄴ

지나고 보니 꼬불꼬불 인생이 그러했던 ㄹ

이 걸 위에 얹어 길 로(路)라 하겠으리

 

 

신장과 골수 

 

사람도 빛가루를 받으니 뼈가 튼튼해지는구나

바다도 빛을 많이 받으면

칼슘이 많이 쌓일라나

망간이 어지간히도 많다고 하네

그리도 해저 동물은 더 하예지는 것은

골수의 동물은 아닐까

 

 

온도 百 度의 원상(圓狀)에 수소(水素)를 벗어나지 못 한 개미알

 

온도 백 도 상에

삼백 육십 度 눈금의 턱으로 차이점을 담기게 함에

수소(水素) 네 개가 뭉쳐 헬륨이나

온도 四 度에 헬륨을 닮게 해서 

해삼덩어리로 나오게 한다고 해도 믿을

水를 벗어나지 않은 水의 四인 채로 

개체일 때는 모르겠지만 

일생 끓고 끓이며 살다 百을 넘을 때는 알지니 

水의 턱을 못 넘는 몸뚱이었다고

 

 

끝이 있고 시작이 있음이든가 시작이 없이 끝은 있음이든가  

 

 

地支의 끝인 亥

地支의 시작인 子

시작엔 자식가 있고 

끝에는 아해(兒孩)가 있음이니

亥가 子로 進神이요 

子가 亥로 退神이니

그래도 退神이어도 좋다함은 

마치 천축국 부처님 경전을 싣고 온 나귀를 

사람으로 태어나게 했다는 듯이

끝에 있으나 다시금 유보성의 단계

子는 바다 속의 모든 생명체 

해(孩)는 나무와 함께 결합인

해탈(海脫)된 영혼의 인간

이젠 무엇이 남았음이든가

개구리는 양서(兩瑞)로 육지에 닿고

인간은 兩瑞로 건천(乾天)에 닿으리니

萬으로 八族은 거뜬히 가는 八萬 歲의 人類 

왜 저 물고기떼를 물었는가

萬 歲도 하룻밤 꿈같은 것

저 소숫점같은 셈이 나와야 

넓고도 기나긴 감상이 차지 않겠는가

하늘은 작아서 좋고 

또한 數理가 있어서 더욱 좋음이요 

한 조각이나 열 조각이나

하나로 다 조아릴 수 있음에 더더욱 좋은

 

 

우(寓)

 

이 寓字를 보면 

쓸쓸한 늙은이의 초상화같은 

특히나 귀부인같이 머리에 모자를 쓴 채

의자에 품위 있에 앉은 자태같은

이젠 무언가 액자에

영원한 삶이 아니라 부쳐 놓은 듯 

내가 나임이 아니라 이젠 남에 임시적으로 붙여진

그 자국을 위하여 

자기가 자신을 물끄러미 봐지는 초상화의 시선같은

 

 

우(寓) 2 

 

이 寓字를 보면

본래 이 甲을 머리라 함에도 

왜 心이라 하지 않고 껍질이라 함인지

좀 더 두뇌의 영혼적 자질을 생각케 하는 바 

어쩌다 올챙이 머리 甲으로 테어나 

치마를 두르게 되었는지 

어찌 주인인 것 아니라고

더부살이라고 했음인지 

아랫도리는 풍향계처럼 방향도 잘 잡지

 

 

말은 잘 달린다만  

 

다 마음을 일으키고

마음으로 펴고

마음으로 꼬으고

마음으로 뒤집으니

다 마음으로 순간인 것이나

굳이 길고져 말에 태웠으니

다 왕후장상이로구나

그런데 어찌 말탄 것이

남녀노소 구분이 안 되게  

거칠기가 삼국지에 달리는 그 말들과 같았으니

심히 여자들에겐 걱정될 내생이로구나  

 

 

미소와 호수

 

조개는 

호수가 한 번씩 쪼갠 것마다에 임신을 한다 

그렇게 된 맛도 아니어도 좋을 

한 발 물러나도 좋을

호수가 발이 없어 못 떠나는 것이 아니다

한 번씩 쪼갤 때마다 

여울엔 별빛을 가득 쏟아내다보면

바닥에 닿으을 땐 맛이 아쉬운 듯 

긴 혓바닥을 내민 채로 남은 것

 

 

넌센스 퀴즈

 

바다를 받들고 있는 것은 무었인가 

지구?

아니!

바가 다라고 할 때

탁상 모서리 ㄱ에 바닥

바닥도 바다보다 더 크게 취해야 큰 도량이지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2

 

자등명 법등명이라는 이 말씀이

과학적 이해가 되기 위하여서는

먼저 佛家에서 누누히 말하는 劫煞에 대해서

먼저 접근해야 하는데

즉 이 겁살은 빛보다도 상상할 수 없는 빠르기라는 것인데

만일에 그러하다면

빛이란 나아간다는 개념보다 스며든다는 개념이 더 적절하다

천의무봉이라는 여기서 살아나게 되어 있는 것이고 

은하를 水라고 하는 데서 기능성이 나올만 하다는 것인데  

또한 마음의 속도라고 봄이 타당하다

무엇보다 

애초에 빛으로 속도의 눈금이 된 것 자체가 근시안적이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속도를 논할 때 나무줄기로 논한다고 볼 때 

꽃이 피는 부분만으로 속도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무와 꽃은 시공이 다르다고 논함에 있어서  

먼저 한 눈에 봐서 꽃의 길이일 때 

나무의 길이가 함께 든 속도가 있음과 같은 것이다 

꽃에서 볼 때는 꽃의 속도일 뿐이요 

그 쟁반 상에 그 속도임을 아는 것이지 

물러나서 보면 나무가 더 길다는 것이다 

속도도 정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요 

마음도 그렇게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꼭 빛이라고 해서 대칭적으로 光子가 있으니 

墨子도 있다는 듯이 볼 필요는 없는 것이나 

다만 이 바다의 깊이는 알아야 되지 않는가 하는 것도 있다 

무엇보다 먼저 의구심의 질문이 나올 수 있는 것이 

불이 잿점으로 돌아간 것이 

수채화가 수묵화로 돌아간 것이냐의 

즉 그렇게 보일 수 있 듯이

평면 상의 카멜레온적 피부 변화인 것이냐와 

아니면 불이 잿점으로 돌아간 것이 

완전 겁살의 바다에 침전된

또 한거풀의 심해를 넘은 극소립자인 것이냐 하는 것인데 

비유하자면 불이 물고기 정도인데

겁살의 바다에  

죽으면 뼈만 남아 가루로 부식된 것이냐하는 것이다

마치 멜라닌의 뿌리가 그러하듯이 하면

자연 自燈明 法燈明을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곧 불이 고기 정도라면 

그 침전된 가루의 차원이라면

마음만으로 불을 일으키고 끄고 할 수 있는

빛의 극미세 분말적 형체까지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포태법(胞胎法)과 살 

 

우리의 언어 중에

과학성을 일관되게 추구한 의지는 대단한 편인데 

특히 살을 피부로 했다는 것은 

마치 베니아판을 뜯다보면 

그 미끈함과 날카로움이 함께 하지만 

그 바탕을 살로 함은 잊지 않았다는 것이

보통 포태법에서 빛을 실로 보듯

즉 섬유질로 본다면  

겁살을 유성이 떨어지는 속도로서의

질김을 내포하는 지속성의 말하는 것인데

그 것이 빛으로서는 죽지만 

그늘 속에는 포자(胞子)로 살아난다는 것이니 

눈으로는 다 녹은 듯 사라졌지만 

적막에도 소리가 있듯이 잠겨 있는 듯 

여기서부터 胞胎法의 胞가 시작되는 것이지만

먼저 이 위치 上의 煞의 유형을 설명하자면    

참 신기한 것은 눈이 쥔 것만큼의 접착력,

거기다 윤기를 발라버린,

그래서 아교질을 금이라고 하는 데는 

미끈함이 구슬이라고 할 수 있음에 있다  

빗방울이 점(点)이지만

선(線)으로 보이는 그대로 고정시켜 놓은 세상에 살면서

그 고착성이듯 매달려 있는 것으로  

우리의 눈으로 영원히 머물은 듯이 지켜준 

이 시공을 乾天의 金처럼 굳건함으로 玉이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머물고 아니 머물고를 이러한 시각에서

한 껍질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여기서부터 끈적하게 가까이 볼라치면  

재살(災煞)이라함은 오존층의 파괴 등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천살(天煞)은 기후로서의 장마나 가뭄을 의미하며

지살(地煞)은 대지를 무지하게 다룬 데서 나타난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보통 겁살과 재살은 속수무책일 수 있지만 

천살과 지살은 조상과 선조들의 유업이나 방호를 

등한시한 데서 많이 벌어지니 반은 인재에 해당한다 

劫災天은 빛의 차원에서이며 

地煞에서 부터는 불의 차원이요 에너지의 차원이 된다 

그리고 驛馬煞가 되면 화덕의 불이라고 한다 

이렇게 불이 살로서의 섬유질적 끈기를 보아

늘어나는 길이를 드러내듯이

즉 바람이 그렇게 늘 밀어 받들음이 꽉 찬 것에 

다 순간적으로 종지에 받듦이 시각상의 불이라는 것으로  

물이 배를 받드듯 있는 물리적 시각 상의 불이라는 것으로  

바람이 그렇게 불어 심지이듯 태우고 있는 것으로 

동일체적 구성요소로 間隙을 넘은 차이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함인데

년살(年煞)은 지구의 공전주기(公轉周期)와 맞물려 있고 

월살(月煞)은 달의 공전주기와 맞물려 있고 

망신살(亡身殺)은 지구자체와 맞물려 있는데 

그래서 년살에 문제가 있으면 혜성이나 소행성의 문제이며

월살에 문제가 있으면 조수간만(潮水干滿)의 변화에 재앙을 짐작해야 한다 

그리고 亡身煞은 지구 곳곳의 전쟁이다

장성살(將星煞)은 잘난 놈의 전쟁 영웅의 나라일 것이요  

반안살(攀安煞)은 잘 먹어 살 못 빼 안달하는 나라일 것이며 

역마살(驛馬煞)는 떠날 자는 떠나간다고 하는 것이요 

또한 개척한다는 것이니          

육해살(六害煞)은 마약이나 부정부패라 총체적 난국이라 할 것이요

화개살(華蓋煞)는 불평불만을

무덤 쪽으로 찬란하게 재생한 듯이  

늘 성현의 말씀은 화려한 빛깔의 솥뚜껑으로

무언가 속을 채워줘야 할 것에  

못 먹어도 공갈젓꼭지이게만 하느니

 

 

과학에 와서 

 

야구공에도 심줄이 들어가는 듯이

나도 날씨가 

씨줄에 날이 단단한 듯  

날줄에 씨가 단단한 듯이 하다가

돌고 돌며 갈리는 듯이 하다가

구름이 실 뜯기우듯 처진 솜이라고

다만 어쩐지 그 것도

단단한 열매 껍질에서 옷을 만든다는 씨줄에서일 뿐

날줄에는 저토록  파랗게 하늘이 깔리는 것이라서

참으로 과학에 와서야 똑똑해지는 것인지

 

 

빛이 꽃보다 오래 머물으니

 

허공 속에 하얀 수증기같은

얼음 속에 하얀 공기같은

그렇게 빛이 머물은 채로 공간인 것

어느 시공에선가 불을 꽃 따듯이 하리니

 

 

 

어미가 조청을 고아 엿을 만들어도

가락가락 꺾어불면

엿들을 귓구멍이든가

엿볼 안심(眼心)이든가

허공 중에 어떻게 달리더라도

무엇이 뻗더라도

초정에 엿은 벌써 낳은, 

구멍으로 갖고 노는 如如함이라는구나

 

 

사물의 정체성

 

천지 건곤(天地 乾坤)은 말하느니 

흙과 쇠는 가만히 있었는데 

흙 알마다의 方이 되어선 하나로 뭉쳐지면 쇠 

온도만 왔다고 하는 이동성으로서의 변환

이 것은 빛이 거울에 반사되어 나온 순간이

빗물이 사막의 깊이로 들고 나온 것보다 

더 깊은 입체를 빠져 나왔다는 부연이니

달 

지구 

운하수를 먹은 바람을 감아야 하는 듯 

그래야 물의 최초 단위와 같은 듯이 논  

이 모든 것이 따로여도 

하나의 몸체를 기억하는 것이지 

따로의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는

힘 센 놈이 왕이련가

그 중 최고만의 중력의 법칙같은

그렇듯 거울의 상을 중요하게 잡고 있는

빛이 가장 또한 인과를 엮은 섬유질이듯

 

 

은하수의 깊이 

 

우리가 은하수를 잴 때 

무엇으로 기본 측량을 할 것이냐는 

이 지구를 도자기라고 할 때 

구워서 유약에 들어갈 곳을 

영혼의 자리라고 할 것인데 

정확히 지구 모양이 잠긴 것이라는 듯

申時이다 

또한 우리가 물체를 볼 때 

눈이 부시어 사물을 못 볼 때가 있음을,  

벗꽃이 만발하여 꽃만 보이지 나무가 보이지 않음이듯

흰색의 영혼계에도

引力 上으로 더 꼬리나 나와야 함이니    

쇠도 실처럼 길게 역류성으로 자람에

이 또한 풀처럼 자라나는 것이라

검은 색으로 보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사이를 지옥의 개념이라 할 때

이 것을 다시 퍼렇게 날을 세워 일어날 수 있음이

풀이라는 것이요 나무라는 것이다

이 건 마치 그 요체가 아니라

그 가림체로서 저녁엔 유약으로 발리어가고

어둠에서 다 까발셔지면

다시 나무가 되면 맨몸에 갑옷을 입 듯이 나온다는 것이니

그래서 우린 너무 밝은 데서 벗는 것에는 부끄러워할 뿐 아니라

순진할수록  본능적인 수줍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주역의 법칙

 

주역은 물리학적 정신성을 정신성의 물리적 요소로 설명한 것이니 

정신 쪽으로 물질 쪽으로 

어느 쪽으로 더 승화했니 

형이하학으로 설명할 수 있느니 하는 것보다 

하나 같이 전후좌우로 설명되어진다는 것 뿐이다

즉 정신세계의 물적 근거가 되기에 

정신분석적 차원인데도 음양오행학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추상적이지 않아도 정신과 물질은 함께 드러난다는 

실질적 표현에 가까히 두려함에서 말하고져 함인데    

이러한 주역의 원리와 원소 주기율에는

8 가지 유형과 8 단계로 총론을 짓는

즉 8로서 접는 중복성의 같은 성질로 해서

64 개로 하는 것에서

이 것을 64 괘라고 하는 것으로

象 즉 몸체를 이루었다는 것인데

이 것을 세분화하여  

괘마다 6 爻를 더함에 384라함에는

365 일의 갯수를 넘는 퍼짐성 있는 굴레같은 것에

원소주기율 7로 곱하면 348이니

도리어 모자라 흔들리지 않던 알 속이 달랑거리듯이  

어느 새 속이 사이가 있는 여분성의 꽉 차지 않음이라 해도 

먼저 365을 가장 적절히 들 수 있게 함이

384의 테두리의 틀로 쥘 수 있게 함이라  

먼저 물질적 성향이 인간 뇌의 시상하구에서 

어떤 정신적 결정력의 결정체를 이루느냐에 

끼워 넣는 칲이라고 가상할 때 

정신이 물질적 동일성이듯 보여줄 수 있는 차원이라면 

정신적 추상성도 물리적으로 확신으로 경계를 하는 것이요 

허장성세가 아닌 실질성으로

겸손을 갖추며 오류를 범하지 않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니  

우리가 핵폭발이 될 때

반물질이라는 것이 물질이라는 응고에 들 때

먼저 가벼운 族으로 수소와 헬륨이 음양을 짓는 쪽으로 해서 

차츰 원자량이 많이 붙게 되어 있는 것으로서

그 모인 수마다 성향의 발심이 있음에 특성지어지는 것을

같이 인간이 발하는 정신의 성향으로만 대입 시킬 것이 아니라 

그 독특성으로 따지기 전에 그냥 설명만 될 수 있는 것으로

움직임의 동향을 그려낼 수 있음만으로 

문제를 추심하는데 있어서의 큰 가교 역할을 한다는 데서

과학의 무신론과 종교의 맹목성에

좀 더 확실 타당성으로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으로

더 이상의 잔영일 수 없는 것으로서의  명료함에

도덕적 의심으로 피로감을 갖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 

청량감을 갖게하는 학문으로서의 주시력을 갖춘 바에

갈피도 모호한 것에 두어 

부정확성의 평등도 힘 있게 공유한다는 역설인지 

재물과 권력만이 우열을 지을 수 있는 

가장 노력한 자만의 공평한 대우가 그렇게 드러낸다는 것으로  

너무 현시적 지식의 생각이 많이 들어야 

고차원으로 취급받는 오늘의 지식에

좀 더 행위적 관련성과 동일체적 뿌리를 보일 수 있다는 것에서 

인간의 아상보다 

고물 기계가 더 눈밝이 술이나 마신 듯 깨우치게 하는

헛깨비 놀음에나 행운을 캔  듯이 환호하는 꼴은 벗어날 듯이 해도

어둠이어야 잠을 잘 수 있듯이

맹목성이어야 또한 조용히 눈감을 수 있는 생리를 따른 듯

스스로 자페 시키듯 반눈 쯤 뜬 듯이 다루는 듯이 해도

주역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학술 상으로 기여하는 공헌은 대단한 것이요

진리를 넘어선 참된 행위를 거듭 재고케 하는 것이니 

마음과 대화가 있는 상통이 비쳐짐이라고 봐야 함이니

지금 당장 주역 내의 메카니즘을

화학적 변화와 일치시켜 도출한다 해도 

골격을 이루기는 요원하지만

그래도 자문적 역할은 노력만큼 무한대의 광맥인 것이며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터득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어떤 학문의 임상적 연구 중에 장애가 발생했을 때

그 해결점으로 정확히 집어낼 수도 있기 때문인데

그 해득의 범위라는 것이

자율신경적 안목이

잠의 막으로 닫았다 열었다 할 뿐으로

정말 우연적 인연의 맹목성에 달다 쓰다고 하는 것을

내 스스로의 탐지기적 입맛을 갖춘 것으로  

경험과 지식의 안목만으로는 도저히 눈이라고도 못 할

무의식의 인식적 노출이 

신장(腎臟)의 삼투압적 호환성같이 이해를 채우듯 

성취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니  

먼저 수소 원자량 1로서

원소 1 주기율을 위한 반환점의 상대성을 이룰 때

천지 간에 음양이 되듯 수소와 핼륨으로 양분화됨이 먼저 보이는데

어찌 보면 분화됨에 붙어 있는 헬륨 4를 본 깃이니 

굳이 보면 증식성인데 

또한 어찌 또 보면 分化의 선결성적(先決性的) 행위는 모른 채 

늘어나는 것과의 접목성 밖에는 모르는 듯이 하니 

우리가 수를 헤아릴 수 있음도 과연 

날자의 날인지도 모르는  것으로 셈은 밝은 것으로  

그 위에 2 주기적 가피성은

그 두께 상으로 더 무거운 편이나

3 주기에 이르러야 천지 간에 꽉 찬 듯

이러한 화학적 성분이 물리적 특성과 함께

周易이라는 것으로  

인간의 심리가

자연의 돌발적 현상을 이루는 바탕을 설명할 수 있음이라 할 것이니

그래서 모든 현상이 주역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모든 물질은 원자량 384개를 넘지 못 한다는 의미이니

이 384 개의 틀 안에서

자연적으로 비치든

인위적으로 비치든

마음이 있는 것으로 비치든

마음이 없는 것으로 비치든 일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세포와 시상하부(視床下部)의 고리 

 

우리 두뇌의 시상하구를 보면

양자학적(量子學的) 설계의 공장이라고 보면 

세포가 원자를 쪼갠 분말적 배경의 양자학적 배분인지 

아니면 몸의 384 원자량에

세포를 모래밭처럼 쌍아놓은 것인지

그러므로 이러한 物 상의 입자가

생각만으로 조립이 되는 理 上의 입자가 되기 위하여

빛과 물질성과의 비례로 인한 질량의 법칙

즉 모래시계적 상대성 법칙조차 쟁반에 올려놓듯이 하는

그래도 한 눈금을 표방 하는 눈일 뿐과 같은 것

이는 마치 365일을 한 해로 가두어 둘 수 있는 

인력권(引力圈)의 행사와 같은 것으로

세포를 384 개를 다룰 수 있음으로

이 태양계의 내포성과 원소주기율과

인간의 몸이 같은 유전성을 갖는 것으로

원자량을 한 덩어리이게 하고선 

떼어서 분화한 듯이  

오장육부의 장기(臟器)를 다 만들고도 남음이 있게 한  

성체줄기의 거부반응까지 독립적으로 이룬 듯이

세포가 원자 번호와 완전 하나인 설정의 진실성과 같이

세포가 수십조이면

부처도 수십조일 수 밖에 없는 것으로 

이 것을 원자로 둔 세포를

일일이 시상하부로 끌어들여 

현미경적 확장판이게 한 것인지  

아니면 이목구비가 이미 한 알인 원자로서

세포 상으로 무한 사계절을 심어 놓은 것의

대지의 마당 살과 같은 것이게 한 것인가로

시각을 조성하며 풀어야할 과제와 같은 공장같으니

 

 

육체적 우주

 

이 지구란 것이

아침에 해갸 떠오를 때는보석이 빛나는 것 같다가

저녁에 황혼에 들 때는 입술에 묻은 캐찹같다

그래도 밤의 뱃 속을 보면 별인 것

일일이 세포의 눈을 뜨고도 쑥뜸질을 하는지 벌건

저 일출이 보기 좋아도

못 한다 못 한다 하면

빛의 빔을 엿가락처럼 잘라도

지네발처럼 걸어나와

머리가 벌겋게 되도록 독이 오를 것이

저 일몰에 거칠은 야성이어도

잘 났다 잘 났다 하면

낙조에 지네가 태양에 머리를 드밀고 가리니

또한 일출에 너무 잘 한다고만 해주면

버릇이 없어 아수라장 만들어도 치울 어려움을 모르고

또한 일몰에 너무 잘났다고 하면

너무 황홀해 본능에만 살아 축생과 같을 수 있겠구나

 

 

 

수직 선상의 꼬리 9와 6

 

여섯 시 출근길에 스프레이 총각

오늘도 꼬리를 내리면 6字

말꼬리를 6 시 정각으로 맞춰

말고 내려야 하나

아예 등쪽으로 젖힌 듯

9라고 위에 붙인 듯 해야하나

 

 

피카소적 창조학

 

우리가 周易 上의 모양으로 보면

아마 神이 六爻로서 동물을 창조했을 때는

아수라의 팔다리로

청용이니 백호이니 하는 육장(六將) 세웠고

아귀의 입으로 子丑이니 하는 육신(六神) 세웠을 것인데

장(將)은 외향적 行으로 입 밖

신(神)은 내재된 뱃 속의 우주로 전개되는 濕字 上의

얇은 평면적 필름의 의지와 같은 것의 보푸라기 같은 

이 것은 좌우 다리로 해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지네의 형국인데

본래 이 바탕이

일렬로 앞뒤의 균형으로 가는

인라인 스케이트와 같은 원본이나

멈추어 섰기엔 제 무게에 어쩔 수 없었는지 

양쪽으로 균형을 잡으며

다리를 음효적(陰爻的) 양분성으로 해서

다시 한 쪽을 팔의 용도로 늘리는 것이

마치 그 쪽으로 코끼리 코처럼 입이 입끼리처럼 나오되

입을 어데 하나만 두었겠는가 하는 것으로 

차창(車窓)같이 옆을 열어 입인 듯이 한 것

그래도 기본적 걸음걸이는 흡사 게의 행차와 같은

이 괴이한 괴물의 뱃속을 볼라치면

신기하게도 시계 태엽처럼 돌아가는

참 어어없다시피 

여기서 부터 우리의 우주라는 것으로 

이 것이 삼키는 곡조가

꼭 피리 구멍처럼 각양각색으로 열었다 닫았다

이상하리만치 구곡양장을 빠져 나가는 것에

운명의 어느 한 線上인가 하는 것으로

六將的 해석과 六神의 해석이

내외적으로 그림자같이 

방편적으로 일어나 정점(靜点)의 시발(始發)을 보이는 듯이 

 

2

 

주역은 화학을 등불 켠

네온 간판처럼 돌아가게 하는 것으로

또한 별무리적 난시(亂視)를 화학적으로 맛을 내는 것으로

주역에는 태양도 별의 가면을 쓴 듯이

네온 빛의 순서에 줄어서서 지나는 행위의 將星으로

꼭 청용 백호에는 들리니

아! 甲乙象이여!

지네 양쪽 다리의 한 쪽 라인을 지배했구나

태양도 낮달처럼 걸어라면 걸어야 하는

저 산의 雲海는 星雲의 모태

게가 흙탕물을 일으키듯 다족성(多足性)의 게

다만 오늘 하루의 빛이

네온 촉을 붙이며 번지듯

스텝이 있게 야광 스티크를 붙이는 듯이

 

 

꿈을 크게 가짐은 영혼의 과학적 실질성에서다

 

과히 인간의 두뇌 속이 생물학적 칲이라면

그 생김새가 기계적 작동이기는 하나

생물학적 감각의 작용으로

반사신경적 재조립성의 축적성으로 유전성의 띄는 듯이

우리의 두뇌일 수 있는 것에

과연 영혼은 실제 유연하게 날으는 것인가

메뚜기처럼 뛰는 것인가 하는 과정에

왜 영혼이 육신을 필요로 할까 하는 것으로 비추어

우리의 영혼적 구성도

두뇌에 단순한 칲적 필요성이면 작을수록 낫다

다만 영혼은 가벼우니

시계밥 정도의 충족이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에

다시 육신의 심장 에너지로 불어넣어 움직이는 듯이 하는 것이

꼭 고성능 소프트웨어의 로봇이 아니가 하는

그래서 영혼은 벗어나면 너울너울 춤을 추는 듯이 보이나

실제로 만일 우리가 겁살의 섬유질로 몸옷을 만든다면

그 것이 영혼이라면

형체적으로는 야무지지 않고 풀린 듯이 보여도

실제 그 에너지는 육신을 능가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그 행태를 봤을 때 메뚜기가 뛰는 듯이 보일 수 있는 것

그래서 영혼은 작은 칲적 효율성보다

램프의 거인같은 효율성이 더 좋은

아직도 바람을 더 많이 불어넣어

 애드벌룬적 꿈을 더 크게 꿀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일 것이다

 

 

빛보다 빠르기에 응결된 듯한 뼈의 세계 

 

살은 어떤 화살의 섬유로 만든 것이라면

뼈는 겁살의 섬유로 만든 것

골수가 그러하니

빛이 뼈가 아닌 피라고 붉으니

때 아닌 뼈가 피의 공장

 

 

생명의 근원

 

모든 생명의 탄생

특히 영적 생명의 본체는

빛이 빛의 속도를 넘어갈 때 발생하는 것으로

여기서 연애(沿涯)가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빛이 자신의 속도 한계를 넘으면

그 선상에 붙어 있음은

마치 신기루의 휘어진 선상같은 꽃일 때

실제로는 더 긴 길이의 바탕을 보일 수 있는 것이  

마치 여진(餘震)이 일어난 범주에서 

원진(源震)을 보는 것과 같으니 

즉 팔다리가 난다 것으로

본래 팔 다라가 난다기보다

팔다리가 길게 떧혀 있더라는 의미의

 

 

無間의 법칙

 

우리가 빛이 오는 방향으로 자를 재는 것과

빛이 가는 방향으로 자를 재는 것

그리고 여러 측면에서 자를 재는 것에

실제 그 빛의 속도와 병행해서 재는 것이라면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 상으로는 연결되어 있으나

물리적으로는 하나도 붙은 게 없다는 것이 되며

이 것 또한 움직일 수 있다는 데서

모든 사물은 꿈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나

다만 고정성으로 상대적으로 맞는 것이라면

한 순간에 자를 재어도 그 길이가 다름이 되는 것이니

그 움직임 상의 기울기에 따라 길이의 차이가 남에

색으로 드러낼 수 있음이 식별력과 함께 하는 위대함인데

정통으로 오는 쪽이면 흑색으로 확장성 흡수력을 갖게 하고

가는 쪽이면 백색 쪽으로 삼원색이 새끼틀에 드는 듯이 질겨지며 

또한 보는 자가 기울기 쪽이면 색상을 갖는 것이니

여기에다 우리가 셈을 할 수 있음은

시각 상이나 감각 상으로

이러한 굴절로 인한 가장 효과적 얼레말이로 밀착된

고정성에 머물러 있어서의 판단이 서는

다른 시공성의 안목이 서는 확보에 있을 것이다

이 건 좀 더 神과의 대화적 측면인 것인데

예를 들어

내가 바위를 흑백으로 바라봄에

어느 한 색이

내밀한 것이든

조명된 것이든

자꾸 도출된다면

이 건 현재로서 보는 사물보다

시간 上으로 많이 다가선 측면이든가

많이 물러선 측면적 상태를 나타내는 것인데

결국 색은 경도를 의미하고 착시를 의미하기 때문에

시공을 직입적으로 차고 나갈려면

이러한 곡해를 정확히 잃을 줄 알아야 함이다

즉 사물이 空에 대하여 어떤 착시현상을 가져다 주는가인데

이 것을 색이 알려준다는 의미이다

또한 병이 곧 약이다 라는 등식의 평등성을 갖추어야

인연이 될 도라는 의미의 비중을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인쉬타인의 법칙

 

아인쉬타인의 법칙은

빛이 꽃처럼 피며 달리면

나중에는 과일이 열려

꽃이 떨어지듯 속도가 떨어진다는 의미인데

이러한 법칙을 틀린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나무가 큰 데 비하면...

마치 호도나 복숭아 씨가 단단함은

빛의 속도를 넘어서지 못한 응축의 점이라는 것으로

눈을 내놓으로서

접은 상태에서 다시 주자가 되는 듯이 출발선에 있다

 

 

눈과 자식의 관계

 

우리가 눈을 호도껍질의 주체로 열 수 있는 것이라고 할 때

호수가 눈과 같기에

와잠(臥蠶)의 땀샘을 축여

더 크게 열어나가는 길목이듯이

영생을 부울 수 있는 묘약의 경계가 시공의 사이에 있어 

열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火란 것 자체가 작든 크든 팽창의 끝이라고 할 때

그로부터 물을 부어 식히며 수축의 반환점을 지켜주는 듯

눈물의 의미

눈이 얼음처럼 설원을 지켜주는 물질성에

흰색의 색상성만으로 그 역할이 되는 내밀한 세계

즉 불의 확장된 공간에서

水조차 머물게 한 점으로서

金의 설계를 채워넣는 것에 土質로서 견고하게 하는

그래서 와잠에서 물 한 방울 잘 받으면 영생을 부여받는다는

미륵부처님의 재현

이 건 눈의 흰자를 물질성을 넘은 것으로 보는 것인데

우리가 빛의 속도를 극복하면

타임머신을 타고 어데 가기 전에 

미륵부처님이 먼저 강림하신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空을 물질로서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색으로서 극복한다는 것을

최소한 이 양자물리학에 와서야 설명된다는 것으로도

부처님의 설법이 위대한 것인데

다만 근래에 올 것이라는 것은

인간이든 신이든 자의성이 짙다

즉 마치 인간을 알약하나로 육체를 극복한다기 보다 

정신을 하나같이 선한 사람으로 기준이 서는 데서의 일이니

영혼을 하나같이 해야하는 급선무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과학과 함께 생노병사가 없어진다 한들

부속 갈아끼우기가 얼마나 가겠으며

육신만 평화로우면 자살자가 주는 것도 아닐 터

심성의 통일체로 극복되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함께 극복되어야 함인데 

부처님께서 8만 년을 살아도 생노병사가 있다고 하셨으니

인간 스스로의 선악을 극복하지 못하고 

획일적으로 용화세계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데는 주목해야 한다

 

 

차라리 혼자 수도자가 되어야 할 욕구인 것

 

인생관으로 신앙관을 악용하는 사람이 있고

신앙관으로 인생관을 선용하는 자도 있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자신이 제일든가

아니면 자신의 쪽이 제일이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밖에는 용납을 않는 것이면

이 넓은 우주적 보폭을 두고

차라리 혼자일 것이지

굳이 상대를 두어 억지를 부리려한다면 죄악인 것이다

선도 필요에 따라 베푸는 것이지

마구잡이 빗지운 듯이 밀어붙이고선

그 걸 나중에 여분삼아

생은 자연 변화하는 것임에도

너무 기회주의적으로 관용적 善을 베푼 듯이 쌓아감도

상대적으로 무조건 긍정해 주지 않으면

무언 중에 빗진 꼴이 되기도 하는 것이니

도리어 악을 낳는 나비 효과와 같은데

결국 심리적 용태로 꼬은 것일 뿐

자연적 안정감을 갖게 하지 못 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피카소적 풍수학 2

 

아세아(亞細亞)도 식물성적 細細함인지 

굳이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접촉하지 않더라도

닿는 것마다 아세아적 인간미의 감수성이 짙은 나라들,

아세아만으론 식물의 죽순이었을까?

아니면 잣나무같은 것이었을까

어쩜 이러한 붙박이가 싫었는지

기왕에 동물일려면 포유동물의 탄생을 위한 결정판

아세아에 유럽 붙이기

상체에 하체 붙이기 

黑海를 사이로 붙이니

子宮이라 절로 西方 택(澤)을 강화하는가 했더니

서북 間의 강한 乾의 대 평원은 양기가 더 뻗쳐

스칸디나비아 거시기에 살았다 죽었다

거기에다 지중해 거시기까지

그렇기로서니

아세아가 식물성이기로서니 

어찌 아시아의 서쪽에서 빰 맞고 동쪽에 와 화풀이 할 거야 없겠다만

엉뚱한 곳에다

어찌 그리 지옥에나 떨어질 저주를 서슴치 않는단 말인지

서로의 상종을 웃으면서 한다 하나

이미 자청하며 선을 긋는 거북살들

그렇게 澤宮의 번식력을 키워 낳았기로

제 스스로의 영원성도

남의 말을 빌어야 하는 능력에서 치세를 했거늘

이젠 남의 말은 아예 들을 필요 없어

들리지 않는다 것으로서의 밀고 당기는 혼탁,

그래도 실망할 필요가 없는 아세아여!

조금만 좀 더 소심하게 섬세하다보면

인간은 이미 모래알과 같은 흡수력의 

정신과 가슴의 아세아인 것에

엉치뼈로 알을 넘는 이 물질적,육체적 현상화인 바의

이도 다 식물성 상체에 동물성 엉치를 붙이다 보니

다 씨앗 싸움에서 그러하다고 한다만

어깨의 날개는 좀 더 고도의 조상으로서

미래를 짚어 갈 수 있는 짜임새였느니

새는 새인 것

한 늙은이가 그렇게 전하고 떠난 자리의

자궁이 낳은 자궁의 주인

東은 東일 뿐이어야 하나

동서를 붙여 동물이게 함에

굳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냔를 따지고져 함에

부처가 다 돌아 앉은 판이니

 

 

씨아가 앗! 하는 순간에 씨앗

 

씨앗이란 것이

빅뱅의 에너지가 아니라

지구를 달로 감아붙여 압력이 있는 것으로 맺히는 것이라면

씨앗은 이 지구의 의중으로 핀다는 것이요

또한 논리를 수용한 학술적 테마도 있지 않나 하는 것으로

이 지구가 달이 있으므로 30 개를 채운 주머니로서

은하에 水로 촉촉히 심어진다는 것이니 우주라

 

 

시공의 공유

 

우리가 빅뱅으로 나아가는 線이나 面 上에

다른 것을 올려 놓을 수 있다면 즉시 사라진다는 것이다

즉 빅뱅의 흐름에 흡수된다는 것이다

허나 그 선상 위에 굴절 시킴으로서 보이게 하는 세계

결국 물질을 이루는 것이나

그럼 빅뱅은 좀 더 바탕적인 데 흡수되는 것은 없는가 하는

그럼 빅뱅은 좀 더 다른 차원의 물질계를 이루어 가는 중에

공존하는 것이 된다는 것인데

마치 우리가 고속도로를 달린다고 할 때

다른 시공에서는

판판한 종이이거나 쭈그러진 종이이거나

상관 없이 나타 낼 수 있는 공유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곶감맛 

 

귀거래사에도 자연으로 돌아가리라는

주검이란 자연의 그대로 의미하는 

결국 죽어야 완전한 자연성을 의미한다는 것에 

오르페우스의 마누라 에우로뒤케가

그 좋은 사랑을 따라오는 중에도

단순한 놀람 때문이었을까 하는 의문의

뒤돌아 보다 돌이 되는 것도 다 피안에서 보면 부활인 것 

이에 또한 차안의 부활이란 것

인간이 스스로 죽음에 담담해지며 익숙해져 가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초연해질 수 밖에 없는 것에

누가 그렇게라도 온다면 과연 얼마나 좋아할까

다 죽어 효자인 것이지

묻어가며 묻혀가며 아름다운 이 자연에의 찬미마져도 

완전 본래대로 돌려놓지 못 한 듯이 떨떠름히

굳이 사람과 똑같다하면서

사람과 다름을 철저히 함이 생뚱맞은 것이도 한   

꼭 겨 속에 묻혀 있는 홍시만 맛이리 

오히려 꽂이에서 빼낸 곶감맛도 맛인 것을       

 

 

현(絃) 끝의 감동이듯 사랑할 노래

 

가녀린 떨림은

기타 현의 떨림과 같이 하지만

우리의 남은 사랑이

그 끝에 확신 받는 듯한 찰나의

모든 건 순간의 젊음인 냥 머무는 것의

끝머리도 사랑의 감동이듯 할 노래

울림 밖의 정적은

저 물리 울어줄 것도 아닌 것이

들어본 적도 없이 하는 저장이어도

그 자리서 깨면 되는 것에 있는

무언가 담을 것이 없으면 도리어 쏟아낸 듯이

빛보다 소리의 감동이 더 넓게 남은 듯이

어쩐지 어떤 전율의 공간도타고 가지 않은 듯 

종도 북도 제 속을 비우고 쏟아낸 듯이

실로 우린 담지 못 했음에

우리이겐 무엇이 간다함은 

소리조차 간 자리에 있어 반겨야 하는,

즉 채웠다함이 없는 것이 

전도됨이 없었다는 것에

제 자리를 울리는 만으로 

쏟아내기 위한 막간의 적막이 파놓은 무대같은

감동의 사랑으로 젓대에 머문 듯한 막같은

 

 

천삼(天蔘) 뿌리

 

언젠가 천둥 한 번 뻥! 치면 천삼뿌리겠지

스레트 지붕 두드리는 소리가

천둥 뿌리만 자잘히 남은 듯이 번져 있는, 

그래! 

그래도 인삼 좋은 세상이 아니든가

이 외롭고 숨 막힐 것같은 오후에 

그래도 미삼 뿌리라고 쓸어 담을 수 있는 듯

그래도 고슴도치 송곳처럼 풀이 난 것에

푹 고아 먹음에도 상록을 넘는 발자국같은 

그러다 한 번 천둥이 치면 한 뿌리 건진 듯

 

 

천둥과 못, 입과 팔다리 

 

易에 위가 陰으로 갈라진 모양으로

입이라 함이요 못이라 함인데

고로 태택(兌澤)이라 한다  

그 중간 爻가 六神으로 묘(卯)가 된다

이 걸 못에 풀이 남이요 

쇠에 녹이 남이라 하는데 

이 爻가 바뀌면 진뇌(震雷)가 되는 것인데

육신(六神)으로는 인(寅)이 되고 

천둥의 뿌리가 되고 몸체가 되는 것이다

고로 인(寅)은 묘(卯)에 퇴신(退神)이 되는데

이 건 마치 갈라진 틈에 이끼가 끼었는데 

그 사이로 나무 뿌리가 들어 완전 뒤엎은 현상으로

서로 다른 발상이 아니라

나무와 풀의 선후의 관계일 뿐이요

바닥이 물체인 것에

허공성의 깊이로 대비되는 것으로서

이를 東西 間으로 균형을 잡다 보면 

완전 원형(圓形)이 아니라 

마치 혜성처럼 타원형으로 돌아오는 형태를 이룬다는 것이라

이는 곧 한 쪽은 나무의 길이처럼 멀어졌다가

다시 풀의 길이처럼 가깝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乾天은 머리인 것인데 兌澤은 얼굴이니 

이 것이 바닥이 물체로 드러나는 굴레로서

풀 이상을 거칠게 먹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팔다리는 震雷이니

虛空으로 나무가 심어진다고 봐야 함인데

평상시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같으나 

천둥이 치면 우르르 무너짐을 알면

마치 조약돌에 세겨진 우리의 인생 같음을 느끼리니

 

 

육자배기 상수학(象數學)

 

우리가 상수학적 응결이 되는 맛이나

색상의 대비되는 맛이나

오만가지로 분자와 분모를 달리해가면 

각각의 토리를 내어 

기준되게 받쳐졌다 사라지는 정확성 

어느 한(恨)인들 새기나 하던 틀이든가  

특히나 8 분의 18 박자도 있는 것이니 

그렇다고 8을 넘겼으면 

소리를 원소 성깔에 맞게 나왔다 할 수 없을 것

처지는 국수 자락 끌어 올리듯이  

아이쿠! 이 시김새

18 박자라 주기율 2 번으로 돌고도 남을  

아이고 엄니! 숨차요!

아이고 엄니! 내 마음이 아프요 

내 마음이 아프요

언뜻 스치는 헛깨비 바람만 허공같은디

너무 길어 세 토막씩 6 묶음을 지고 가는 것같은디

아이고 엄니!

저 산기슭에 육자가 박히는 듯이 사라진당게요 

육자가 박히는 듯이 사라진당게오 

 

 

입체성

 

입체란 것이

時이라는 線에

間間히 순간의 지배력이라는 것이 나올 때

수리학적 표기를 이루는 것으로 

정적으로보면 하나도 밀착된 것도 없으며

상을 이룬 것도 없는 것이지만

우리가 원형적으로

지속성으로 돌게 하는 한

머문 상태의 하나로 볼 수 있음에

그 고정성을 못 박을 수 있음인데

쌓이고 쌓여도

그 것은 한 바퀴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며

이 걸 水라고 할 때

이 것이 부단성이면 계속 나아간다는 의미가 되는 데

이 건 木에 속하는 것이고

여기에 상처라도 나는 것이면 꽃이 피는 火인 것이요

이 것이 사방으로 퍼지며 배가 부르는 형태라면

土라는 것이며

이 것을 바퀴마다 자른다면

다 둥글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金이 되는 것인데

이 끝의 어떤 테두리도 처음과 같음이라는 것이니

모든 성단(星團)이 돌아가는 것이나

수소(水素) 하나가 돌아가는 것이나 같다는 것인데

物質과 反物質이라는 것은

브러시의 양쪽과 같다는 것으로 周易의 兩二에 속한다 함이다

 

 

우주는 빅뱅 이전보다 한 뼘 정도 더 큰 것

 

빛의 속도가 30만 킬로미터

이보다 빠른 물체가 있다면

우주는 한 점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빅뱅으로서 확장된 것이라 해도

꼭 확장행인지 축소행인지 결론 낼 수도 없거니와

우리가 인지하는 것은 빛의 빠르기 내에서 비롯됨인데

만일 빛보다 빠른 물체가 있다면

또한 거기에다 구심력으로 달리게 하는 것이라면

결국 이 우주는 넓디 넓다고 하나

한 점에 불과한 것을 참 오래도록 패달을 밝아

영사기를 돌리는 것같다는 것이다

빛을 넘지 못함에 바닷물결같은 융단이론에

마치 이처럼 붙어

화이트홀 웜홀 블랙홀이라는 것

이 것은 천의 앞뒤로 넘나드는 것이라기 보다

이가 천자락에 붙어 입을 내밀고 얼덩이를 내밀고

배꼽을 내미는 것과 같이 붙어 있는

그물이론에 성립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나

만일 빛보다 빠른 것으로 응축되는 길로

빛의 시선을 모아가는 것이라도 

빛 안에서는 그 과정에서도 팽창하는 것으로 보이거니와  

이미 한 점 안에 있다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팽창한다고 하나 그렇게 보일 뿐이며

火로보면 팽창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水로 보면 한 점으로 머물러 있게 보인다는 것이다

 

 

남쪽

 

우리가 무지개 층으로 사는 것이라면

보라빛에 사는 것이리

즉 파란색 안에 산다는 것이니

우린 죽으면

초록과 노랑을 지난 다음 층인 황색

거기서 누른 황혼색의 호박 속을 안고

길을 따라가는 듯도 할 줄기를 따라가듯이

그리고 다시 붉은 색으로 넘어간 층

아마도 뱃 속에서 심장이 뛰는 것을

초음파로 두드려가며 보는 감동의 훙분을

어머니로부터 듣는 길목이듯이

아!ㅏ 다시 세상이 그렇게 남쪽인 곳

그보다 죽고 살고 없이 질러가고 싶다고?

그 건 흑백으로 들면 가늘할 듯 싶은데

그 속에서 가닥을 빼고 가닥을 붙이고? 할 수 있는...

마치 이 세상에서 밤을 정복하면 가능할 듯도 싶은

모르지...!

좀 더 긴 쪽인지 짧은 쪽인지

다만 좀 더 긴 시공 상의 접목같은 것으로

멈칫멈칫 가는 듯이

시침길에 솟대처럼 보이는 것에서의

한덩치처럼 머문 듯이 어쩜 길어져 가는

끈과 같은 뒷받침의

 

 

꼭 공상일 수만은 없는

 

내가 동서양을 식물과 동물로 비유를 하니

너무 경질덕(硬質的) 방편이 아닌가 하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을 터

일례(一例)로 벼을 심으면

모를 옮기더라도

씨가 그대로 중심에 붙어있기도 하듯

이 것은 마치

아시아의 경게선을 이루는 뿌리로 열려 있던 흑해가

감싸 듯 자궁으로 하며 유럽을 받아 들인 듯  

굳이 비과학적이라 할 수 없는 것

동양은 인문계,

서양은 이공계 쪽으로 발달함도

다 그 바탕엔

부처님은 이공계적에 가까운 학문의 저변을

서방은 인문계열적 학문의 저변을

심도 있게 그 중심을 지탱한 저변이 되어 있기에  

외도 또한 지나침에도

미혹이어도 버틸 수 있지 않았나 하는 것도 있느니  

 

 

감자와 고구마의 위대함

 

늙은이의 위대한 사랑의 표상은 호박과 감자이다

호박은 가을과 황혼을 내적으로 보여주는 극치를

감자는 대지 없는 세상에 자신이 대지가 되어준

어찌 잘 나고 못 나고를 여기에 비기랴

어머니가 되어준 것만으로 무엇보다 따질 수 없는

대지가 나이먹은 최고의 결정품

씨가 허공 중에 못 가도 감자로서 갈 수 있는 듯

감자도 적절히 두 날개일 수 있는 다리도 됨을

굳이 씨앗은 감자에 붙어 기생하는 안달복달하다가 

결국 공생으로 살자 해  뒷 다리도 붙여준

다만 씨를 낳을 땐 똑같이 닮은 걸로 한 것

 

 

황홀이란

 

황홀이란

활 시위를 당긴 무지개 줄과 같아

과녘을 맞추려 하나

자기장적 수축력으로 무지개 벽을 타고 내려오는

먼저 푸른 정점

나무를 일으켜 세워 푸른 정점 

허나 절대 노란 것을 넘을 수 없는 황홀 

어찌 보라색 안에 있어야 한 붉은 피 

벌겋게 충혈되듯이 

우리가 눈꺼풀 여는 폭의 워밍업 

와잠엔 다 타버린 흔적

 

 

하마의 산수진경(山水眞景)

 

소가 큰물에 실뚝길을 가다

흙이 앙금늪으로 풀린 곳에 빠져 

허우적 거리며 위태 위태한 듯 하다가 

무슨 신경통이라도 풀린 듯 도리어 평안함에 눌러 앉아버렸다

인생사 생각하기 나름 

그래도 땅 위에 일생 살았으면 제 무게를 확실히 알고 살았을 것 

이제는 하마에게 네 무게를 무엇이냐고 물으니 

물에 둥둥 뜨다보니 제 몸무게를 모른다 

아무리 경계를 둘러보아도 물의 무게 

그리고 바닥도 배를 깐 듯이 산천이 불쑥 

그저 제 몸이 산수진경이라는 데 과히 마하급 

당최 소를 물어도 마하급

 

 

하마의 열 달 임신선의 소

 

보통 날짐승은 다른 짐승보다 외소한 것인데

어찌 하마는 마하 상에 덩치요 

소는 장소 상에 덩치인가

이상하다 흙소여! 

원소주기율 3~12 족까지 몸만 단단히 제 것이라고 하더니 

이제 하마로 재어보니 18번까지 

하마의 열 달 임신선의 소 

하마는 마하를 한 홉 움킨 듯이 당겨 놓았다가 

다 때가 지나면 하마가 마하로 풀 듯

 

 

주기율적 발췌

 

나무도 옹이 부분은

무게가 엄청 무거운 법이다 

또한 이 부분은 가지가 돋을 부분인 것인데 

어떤 방향성을 낳는 것 

원소 주기율에서

3~12까지의 금속 부분이

따로 머리로 나오고

나머지 부분으로 몸을 이루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무언가 독립적 부분과 같은

 

 

삼삼은 구

 

우리가 이마를 火라고 하는데 

火의 사(巳)는 金의 장생지(長生地)가 된다고 한다

또한 六甲 上으로 天文星이라 함이요

머리의 생각하는 부분이 된다고 가정할 때

즉 金이 잉태되 듯 생각의 조형을 이룬다고 봐야 함인데

과연 원소 주기율 3에 3 族의 용광로에

금속이 가득 차게 된다면 어데서 든 것일까

 

 

질문의 반석(磐石)

 

우리가 전이성(傳移性)을 볼 때

이를 신경이라고 하고 전기라고 할 때

이를 震雷라고 하는데 

원소 주기율 4 

즉 선천수 4에 시작됨인데

자연 상으로는 나무를 의미한다

즉 소우주적으로는 신경이요 

대우주적으로 나무가지가 뻗고 

인간이 걷는

이러한 행위를 다 진뇌(震雷)에 속한다 하는것으로  

원소 주기율 3까지는 이허중(離虛中)이라고 

속이 빈 바가지의 형태지만

4부터는 전이금속 10 가지가 찬다

나무에서부터 전이 금속을 갖는데 

이 것을 뜯어다 중용의 도를 행하는 것이 

이온 상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염기성(鹽基性)인 것인데 

이 인력(引力)으로 해서 DNA를 이룬 기초로 할 때 

주기율 4에서는

나무는 자체 아미노산의 생성이 가능하지만

동물은 움직여서 취하는 공간을 다 포함에

바람의 키로 해서 나무로 함으로서 

사람보다 바람이 아미노산을 취함과 같은 형태로 

대우주와 소우주와 같음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무가 가지가 돋을 때 

옹이의 임신을 보게 되는데 

즉 이 것이 금속성이 아니라 

전이금속의 이온적 행위의 출발선과 같은 것으로

이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이 하늘 즉 이 공간이

굳이 건금(乾金)이라 함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 전이금속 10 족이

어떻게 차고드는가를 묻는 질문의 토대에 서는 것이다

 

 

육체와 정신이 사랑한 루트 

 

나의 설명이

이  정도로 해서 DNA의 모뎀을 둘 수 있다고 할 때

이 것을 세포의  단위로 묶는다고 볼다면 

이 걸 몸이라고 한다면 

이 걸 다시 해석의 공간을 원자 단위의 

즉 산소는 하마같이 체적이 번저가듯 커지며

범위를 늘여 해석되는 법위지만 

수소는 자체만의 영역으로

즉 자신만이 타는 영역의 해석으로 호르몬을 활용하는, 

즉 옆에 구속되거나 효소적 변화를 하지 않는 상태로서

어떠한 타협성과 자극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으로 

오직 물질과 반물질의 간의 하나인 것만으로  다 타오르게 하여 

그 과정 중의 스로우 비디오 같은 것으로

하나의 뒤끝도 남김 없이

해석 상으로 끌어들여 가는 듯 하는 두뇌인 것으로

마치 원자계와 양자계의 막간을 활용하는 듯이 하는

 

 

속도닭과 중력알

 

만일 빛의 속도가 닭이라면 

더 이상의 속도가 중력으로 인해

빠를 수 없다는 점에 묶인 것으로 계란이라면 

계란은 이벌레처럼 그물망에 붙은 것이아닌가 하는

빛 속도보다 빠른 물질이 있다면 

이 걸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는 

의외로 간단히 콜롬부스식으로 깨고 들이키면  

간단히 설명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단지 한 쪽을 깨 들이키는 것과

양쪽을 깨어 들이키는 속도가 다른 것인데

그리고 이(서캐)라는 것이

천의(天衣)의 앞뒤로 넘나들 수 있음으로 해서

다른 시공을 끌어들인 속도를 갖고 있다면

그 것이 빛의 속도 알맹이에서

깨진 순간에 나아가는 것이라면

과연 닭의 것이 되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우린 시간을 선으로 뿐만  아니라

입체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기분이면 지구 한 바퀴도 좋지

 

짐승이라면

암캐 수캐인데

서캐도 있으니

출세했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쩜 서방 안락찰인 것을

얍잡아 보고져 함도 있는 것이 아니든가

이 서방 입구인 申이라는 것

지구 자전축과 같이 생겼고

금수 중에 오직 원숭이만이 거울을 보고 짓지 않는 자의식

음양 사이의 피부과에다 

두뇌의 대뇌피질  

마치 연변(沿邊)의 게 다리가 소우주에 든 듯

저 동해 추암 촛대바위에 가면

해변가 돌무더기 잠긴 곳에는 어찌 그리도 

다시마가 잘 크는지

다시지 말래도 밀물이 올 때마다 

다시고 또 다시고

어항이 아니어도 물개처럼 배 깔고 누어도 

그 기름때 어데 쏙 빠지든가 

감질나서 또 고기잡으로 간다 

그래! 지구살은 그렇게 더듬는 것이여

 

 

ㅈ과 ㅊ 

 

이 ㅈ과 ㅊ의 차이는 

이 것을 받침으로 사용할 때에는

마치 ㅈ에 돛을 올린 듯 

옻에 윤기가 한층 두꺼워진 듯이 하는 것인데 

닻은 오히려 1에 ㅈ이 한 층 더 내려간 형상

허나 이 것을 머리로 올려 놓을 때는 

ㅈ에 ㅊ은 초의 심지 

요것이 방사라는 것인데

촛불은 좋겠네 기도를 담아 뿌렸으니 

도깨비인들 못 알아들으리

그 짓거리 못 한다고

좃은 좃이 아닌가  

개좃소리 듣는 거야 할 수 없지만 

애들한테서 얼레리 끌레리는 좀 그렇네

글을 쓰다보니 나도 참 가지가지하는구나

 

 

독한 것

 

뱃속이 불규칙적으로 비다보니

특히나 이 환절기에 마른 기침을 하게 되는데 

꼭 호홉기보다 장에 자극으로 인한 것이라 

음식물 조정하기가 까다로와지는데 

밍밍하게 먹으면 소화가 안 되어 답답하고 

또 자극성 있는 음식을 먹으면

마른 기침이 간질거리듯 더 나는 것이라

주변에 사람을 의식해 참을래도 그리 쉽게 가라앉질 않는다 

본래 이런 속엔 통닭 한 마리면 간단히 해결되나 

이런 상태에서 먹으면 정신이 번쩍 드는 듯하면서

사지가 풀리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갖게 되는데 

이도 얼마 안 가 

이젠 일어서는 데도

걸음을 못 걸을 정도로 발이 떼지질 않고 

정신도 틔미해져 있어도 깨고 싶지도 않고 

정신은 달라진 것 없는 것같으나 에전의 정신상태는 또한 아니다 

무엇보다 집중력의 상태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게임에 열중한다든가 옐로우 화면이라도 보게 되면

정말 씻은 듯이 기침이 사라진다는 것이고 

금새 몇 시간은 게눈 감추듯이 하는 것인데

어언 간에  속은 많이 무던해져 있다는 것으로서 

정신력이란 것이 정말 무섭구나 하는 것을 통감하는데  

사랑이란 것도 

이열치열에서 참 독하다는 느낌도 갖게 한다  

난 평생을 이보다 더 집중력으로 내몰리며 살아오지 않았나 싶음에 

젊을 때야 힘들어도 건강이랍시고 무탈한 것이었는데 

이젠 나이도 나이인지라 

기침할때마다 가슴이 따갑다고 여겨질 때도 있으니 

폐렴도 노쇠와 함께 쉽게 와지겠구나 생각해본다

 

 

대칭성

 

반물질(反物質)이나 준결정체(準結晶體)나 다 대칭성이 따르는 것이다

이 것은 최소한 굴절성을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데서 

모양을 나타내는 것으로 方을 끝까지 지키는 고집인데

이 것은 나름대로 중심을 위시한 것이기에 

우리가 乾은 구심적 대칭성이라고 볼 때의

모가 나도 중심을 밀어주기에

토생금(土生金)이라는 법칙으로 대칭성으로 미는 것으로 

그 진폭을 대칭으로 오가며 줄어든다는 것인데 

이로 보아 가장 독립적인 것이  이 5의 비대칭성이다

가장 공간성의 확보이고 자궁(子宮)의 확보와 같은데 

꼭 동굴 속의 인간과 같아보인다

어찌 이 虛한 것이 

꽉 찬 물질보다 강도가 강한 것인가는 

건물의 구조도 그러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데

왜 이러한 현상을 보게 되느냐 하면

강도란 것은 입자의 견인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반물질(反物質)에서 물질로 경화(硬化)될 때의 강도이기 때문에

이 것을 후천적으로 공간성을 끌어들이는 것에서이지

그 입자의 밀착성만으로는 오히려

원소 주기율 7과 같이 잘 붕괴되는 간산(艮山)이라는 것이다

역상(易象)의 이 艮山이라는 것은 

곤토(坤土)를 꿔다놓은 보릿자루라고 한다면

艮山은 달리는 배에 그물 뒤에 몰리는 고기떼라고 함인데

힘이 그물에 강하게 몰린 상태를 말함이다

그런데 이 것만으로 준결정체가 강하다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 것을 보더라도 같은 성질의 단위가 모여 

數理 上으로 진행할 때 5에 최고의 강도로 있다는 것이나

이 것은 후천(後天)적 수리(數理)의 진행(進行)이라고 봐야함이다

이 것을 보면 

괘(卦) 수리와는 그 근원을 달리 함을 보이기 하는 것이다

 

 

시상하부와 염기서열

 

단백질로 복사 되기 전의 염기서열이란 것이 

그 세포를 확장한 것이 우리 몸이라면

두뇌는 단백질호르몬 이전의 염기서열과는 

어떤 해독이 가능한 것인가인데

유전성이란 것이

만일 단백질 이전의 형성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두뇌의 작용과 평행선이어서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하기에 서로 묻혀가는 것이든가

아니면 우리 두뇌의 단백질적 호르몬으로서는

이미 낙타와 같은 것이고

염기쪽 바늘 구멍을 따로 통과해야 하는 것으로서

전달되는 것이라면

무엇보다 큰 문제는 기록성의 문제일 것이다

즉 옛 중국 고서에 

길 가는  나그네에게 어델 가느냐고 물으니

친구를 대신해 죽으려 간다고 하니    

그 연유인 즉은

자신의 친구가 임금님의 말씀을 받아 쓰는 벼슬아치였는데  

황제가 자신의 과오를 고쳐 써 주길 강요하나

끝끝내 고칠 수 없다고 하자 참수를 했다고 하는데 

또 그 자식을 불러 하도록 해도 말을 듣지 않자

그마져 참수하기를 결국 막내까지 왔다고 하는데

그 마지막으로 아들 하나마져 죽는다면

제사 지낼 후사가 없다고 하여

자신이 대신 죽고져 가는 중이라고 했듯이 

중국인의 역사의식과 직업의식은 죽음을 초월한 것이듯

이 단백질 복사 이상의 것에 손댄다고 해서 

인류가 더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는 것으로서 

인간이 오래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꼭 인간들 간에도 좋게만 인연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인간들에게만 잘 했다고 해서 좋은 평가만 나오길 바라는

신의 역사의식같은 것이

이 황제와 같이 

단백질 너머의 염기성에 고쳐 넣길 바란다면

우리의 과학자에게는 벼슬자리가 끊임없이 붙어오겠지만

좋은 행위를 한 것도 없는데 

바꾸기만 한다면

신의 염마장(閻磨帳)이 무슨 소용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만 성형도 인연으로 채워지는 것에서의

혼란으로서의 공평성같은 것      

 

 

유대인과 卍字

 

우리가 만일에 

바이칼 호 근처에 떨어진 우주인이라면 

즉 이 것이 곧 

우주 멀리서 속도로 접혀온 거리이든가 

아니면 영혼에 가까운 시공성의 벽을 넘어 

순간이든가 

와서는 원숭이를 인간으로 개조했음인지 

인간은 원숭이 바탕도 있고 

본래의 우주인 바탕도 있어 함께 공존하는 것인지 

다만 한 가지 

유대인들은 물리학적으로 밝은 선천성이 있을 것이다 

주로 유대인들을 상술에 미친 사람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 것보다는

과학과 수학적 지혜가 남다르다는 것이 있다는 것인데

부처님의 우주관 역시

물리학적이며 수학적이라는 것으로 일맥상통하는 것으로서

부처님은 유대인의 지혜로 밝아진다는 것인데 

이는 곧 히틀러가 卍字를 거꾸로 돌려 유대인을 학살한 것과 

어떠한 기능성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돈오의 문제점

 

뉴스에 축구가 4초만에 골을 넣엇다고 하는데

보통 사람으로서는 한 골도 못 넣는데  

무당이 신이 들리는 것도 한 순간이라 

이도 다 돈오(敦悟)의 한 경지라고 자축하는 하는 것이요 

머리 좋은 사람은 반야심경 정도는

몇 시간이면 줄줄 외어 버리는데 놀랄 일도 아니요

또한 사기꾼이 학력이 그리 높지 않다고 하는데는 

많이 배운 자는 오히려 복잡하게 굴려 엄두가 안 나는데 반해

머리가 좀 빈 자들이 오히려 눈앞의 상황에는 빠르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즉 눈치만으로 적극성의 통로를 개척한 바라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 있는 노하우가 되는 것이며  

여기에다 운발이 더하면 신비감에까지 

어느 정도 상호성을 낳을 수 있는데 

그 걸 가지고 돈오라 칭하며 

최대한 멍석 자리 하나 쯤으로 지고 다닌다

그 거야 또한 어차피 제 것 제 찾아 먹는 것이고

찾아 먹어봐야 인간 세상에 와서 찾아 먹는 것 

얼마나 큰 떡이겠는가 마는

그 것도 행세랍시고 재물 티나 내고 다닐려 하니  

그러다 보니 점수에는 너무 소흘하다 

즉 진취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이야 앵무새일 수 밖에 없어도 

처신은 도인다워야 하는데

천방지축 다들 도통만 있을 뿐이다  

어차피 명문대 간판 하나면 평생 철밥통인 세상에 

어느 정도 돈오 간판이면 

이 물질 사회에 실리만 많으면 도의 척도도 되는 것이니  

무슨 얼어죽을 돈 안 되는 것으로 가치인가 하는 것으로

자연 묻혀가기 좋은 이 은밀한 세상에  

점수(漸修)란 교리요 인연법인데 

교리도 없을 뿐더러

인연이어도 스스로 눈이 멀어 깨달음을 놓치니

머리 좋다는 것이 꼭 미끄럼틀을 못 벗어난 

더 이상의 진취성을 내놓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時計가 제 視界로서는 인간조차 안 된다고 하는구나

 

시간은 가는 것이며 또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성품과 관상은 인면에서 나오는 듯 

먼저 그 틀은 둥근 벽사계에서 나오는 듯이 한다 

그래서 먼저 시계적(時計的) 얼굴에 시계(視界)를 내놓는 것으로

먼저 크고 작고를 극복해야 하는데 

크게 먹고 크게 싸는 것은 사업가가 할 일이나 

적게 벅고 벅게 싸는 것은 당연히 도인이 하는 일인데

무슨 도를 바란다면서

크게 먹고 크게 어울리는 것에만 치우친다면

도 닦는 시간은 돌기나 한 것이며

얼굴조차 되는 일이든가 

時計가 제 視界로서는 인면조차 안 나온다 하는구나

 

 

뭉크의 절규를 프림으로 휘젓고 휘저어도 

 

뭉크의 절규를 프림으로 휘졌고 휘저어도

요지보동인 흙의 단층을 보는 냥 

이 시간은 너무도 멀리 있는 고요와 같은 

한 잔을 들이키고 

또 한 잔을 들이키고 

너무도 먼 발걸음을 옮긴다 

사슴을 산이 감춘 듯

언뜻  사람과 마주칠 일이라면 

초췌하게 눈 떳을까 하는

길도 다 덮인 푸른 숲이라는 것만으로

 

 

천기누설이란 없다

 

천기누설이란 없다

두뇌로 돌아나오든 

인간으로 돌아나오든 

학문적 재생력이나 

빙의적 재생력이나 

굳이 누가 유별나게 천기누설이라고 할 수 없는 것에

다만 장단이 있을 뿐이라는 것인데

이미 누설되었음에

인간이 스스로 못 찾아 먹는다는데 있다

고기와 다를 바 없는 학문 또한 미끼로 깔려 있느나

아직도 잡아 주기만 기다리는 맘마나 찾을 뿐이다

주역만 통달해

집 매매만 보더라도

상대가 얼마에 사길 원하며 

내가 얼마를 바랄 수 있으며

또한 얼마를 깎아주면 성사되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과연 얼마나 이러한 깊이를 안단 말인가 

 

 

주역(周易)의 물리학적 이해

 

원소 주기율로서 원소의 상용 가치와

활용으로서의 도구로 이행되는 물리학적 유기성 

또한 일본 만화 캐릭터로서의

어떤 정신적 소양을 갖게 되는 영역인가 하는 것 

이로서 사물로서 유동적 부분으로서의 대우주

그리고 사고의 성향으로서 생각의 발단을 일으키는 

두뇌인 소우주로서의 인체라는 통일성

예를 들어

티타늄에 든 인물이라면 깡으로 치면 그만한 것 없는 것에

그래도 아킬레스건이 있다면

제 7 족(族)에 속하는 할로겐 족의 자가 유혹을 하면 가능한

즉 순하고 곰같은 여자보다 독하고 톡 쏘는 스타일을 좋아하며

헬륨에 속하는 자라면 붕붕 띄워주면 되는가 싶어도

매우 단순한듯 하면서 무딘 자라고 봐야 함인데

약속 같은 것은 잘 지키며

그 믿음은 아마 남극의 펭귄과 같을 것이라

지상에는 반쪽처럼 살게 하다 돌아간다

본래 주기율로서 7은 간산(艮山)이지만

族의 7은 주역(周易) 上의 上爻에 가까운데

티타늄은 진뇌(震雷)에 속하는 성질인데

상하 괘의 3효과 4효 사이라고 봐야하는데

즉 三族까지는 하괘(下卦)

그리고 전이금속의 3~12 족까지는 

3 爻에서 어느 것이든 번갈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서 

4 爻부터는

나머지 13 族에서 부터 2 爻씩 세 번 더한 결과

18 族이 되는 배치가

가장 원소가 입자로서 얼레노릇을 해도

파장으로 넘어가는 마디마디가 되는 것이며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나무의 속성을 띤다는 것으로 하는 것이니

즉 4 주기율의 모든 것이 합하여 나무가 되는 이치를 알면

이는 곧 천지의 모든 성품을 도통했다고 할 것이다  

 

 

* 각 원소들의 성질의 유사성에 따라 나열 정리할 필요성

 

 

 

인품의 문제

 

입자가 인품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야

화합물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약재학적 물질 우월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즉 단백질의 차원을 넘어서야

화학성의 범주를 탈피하는 것이

탈피보다 초월성을 의미한다고 봐야 함인데

이는 곧 인간은 병에는 나약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니

여기에 무엇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가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

더욱 더 마춤형 대증요법이란 것이

거의가 화학적 약제에 의한다는 것이니

정신의학과는 독립적이면서

또한 정신도 화학적 작용으로 이뤄짐에 있어

타적으로 미칠 수 있는 나약함에 노출됨으로서의

이 것이 어떻게

두뇌의 선택적 상황을 만들어가는가의 과제인 것에서의

어차피 인간세 이승이라는 것에 

밀폐된 보호만으로 스스로를 어둡게 할 수는 없다

차라리 입김을 들이키고도 상대의 의중을 훤히 아는

그런 인식의 감도 갖춰야 함이 또한 선행의 구축인 것이다  

 

 

 

subject  미소녀 캐릭터로 만든 원소 주기율표...



(그림 출처: 2ch)

 

 

풍수학과 원소주기율

 

예를 들어

산에서 묘를 잘 써 위대한 인물이 나온다면

원소주기율 7 중에

어느 캐릭터를 선택히 보낼 수 있는가와 같은 것이다

즉 일본 만화 캐릭터는

그렇게 까지 짜임새를 갖추지 않았지만

그 걸 제대로 혈에 맞는 원소적 성향의 인물을 설정하다면

어떠한 자리에 어떠한 인물이 난다는 것은

매우 증명 사진같이 드러나 확연해 지리니

그리고 감포의 문무대왕능처럼

수장(水葬)을 해 그 후손을 잘 보려면

주기율 6에 그 캐릭터 보고 정하는 바와 같으니

너무 확연해 재미 없다고 마라

이 걸 투과해야 진정 시공을 뛰어 넘으리니

 

 

사랑! 마치 그 표현이 거북살스러운 거북이  

 

사랑이라는 것이

이온 상으로 이미 만난 것이니

DNA 자체가 이미 사랑으로

동물도 사랑을 가르치지 않아도 사랑할 줄 아는법

거북이 바다에서 올라오니

알알이 온도의 변화에 음양이 구분 지어져

바다로 돌아갔다

수소로 돌아갔다  

헬륨이 사상(四象)을 쥐고 반석을 까는 사이

사랑!

마치 그 표현이 거북살스러운 거북이   

 

 

체용(體用)의 법칙

 

우리가 원소 주기율을 체(體)로서 활용하느냐에 앞서

먼저 易의 상하괘의 最上爻는 변화하는 시점이고

動하면 변화하는 中이기에 用의 체질이라 함인데

즉 18 족의 동위 원소로서 주체를 실어가는 매체인 것이냐

아니면 같은 주체로서 변화하는 자멸적 표현이냐인 것인데

즉 4震雷의 宮에 속하는

雷地豫, 雷水解, 雷風恒 卦를 보자면

예(豫)의 最上爻는 명예(冥豫)이고

해(解)의 최상효는 공용사준(公用射準)이라 함이며

항(恒)의 최상효는 진항(振恒)인데

이렇게 되도록 이끌어 감이

18 族인 크립톤이 유도해 간다는 것이 됨이라

이는 곧 원소가 매개체지 주체이지 않다는 것이니

여기에 인문적 해석이 어데서 나왔느냐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볍기에 더 깊은 저점의 발화점

 

우린 이 三 주기율 이화(離火)의 최상효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 곳은 아르곤의 자리이다

이 아르곤이 色界에서는 가장 가볍다도 봐야 함인데

가장 분말적이라는 것에 있다

그 다한 속성으로서 넘어가는 것이

가장 활성탄인 風木으로 넘어가는 것이지만

가장 극저점(極低点)으로서의 손아귀로 

활성을 잡을 수 있다는 것에서

前에 말한 잿점의 명분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인데

마치 얼음 속에서 꽃이 피는 형상과 같음이라고 하는 것이니  

우리가 광자 다음이 색소인 것에서

영하의 온도 속에서 용해되는 현상이

개화됨과 같이 한다는 공간성일 수 있는 것에서

광자의 온도의 고저로 깔아 놓은 융단에

素의 有機性은 물 위에 기름과 같음인데

이 것이 결빙 속에서도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소여서 가벼운 것조차 쇠여서 무겁구나

 

쇠는 불과 상극인데도 불을 좋아한다

그 것은 쇠가 스스로 무거워짐을 가볍게 느끼기 때문인데

기왕이면 소도 쟁기질 정도는 가볍다고 할,  

소 정도이면 가벼울 것을 쇠여서 무거운 바에

그래도 광맥처럼 심어주어 벽처럼 드러나도

그냥 무늬인 냥 그림을 남기는 듯 고마운 삷인 듯이

 

 

원소 주기율 2에 관하여

 

이미 머리의 양두엽에서부터

이목구비할 것 없이 양쪽 대칭이라 함은

주기율 2에서 비롯됨이라 하는데  

그래도 이 것을 택(澤)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이 것은 양쪽일 뿐

그 사이를 열어 놓은 것은 아니기에

양쪽이 서로 교감하며

내적으로 하나로 모아감을 보여야 택상절(澤上絶)이라 함인데   

즉 합리적 유추가 되어 나오는 사이를 가르고 보니 입인 것으로서

이미 澤은 입 이전에 澤으로서 닫혀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전이금속이 있어야 이온적 결합을 하는 것과는

육체적 공간성과 정신의 공간성이 따로이 논다는 분류가 되기도 한다

 

 

왜 易은 팔괘(八卦)인데 원소 주기율은 7 밖에 없는가

 

왜 易은 八卦인데 주기율은 7 밖에 없는가는

이는 易의 乾의 납갑(納甲)에 上卦는 甲 대신 壬을 취용하고

坤의 納甲에는 乙 대신 癸를 취용함으로서

7 주기율 이상 수용할 수 없는 보자기가 된 것이니

물로서 흘러 나가기 때문에

맺음과 풀어졌음을 반반식 부담함으로서

주기율을 버리고 族만 수습하는 것이니

곧 水素를 甲으로 헬륨을 乙이라고 할 때

먼저 1 주기율의 乾坤이 성립이 되는데 있어

원소 4 개로는 8의 반쪽일 뿐이다

즉 8이라 하지만 드러나는 힘은 4인 것으로

이 반은 절로공망(截路空亡)이라는 것으로 같이 채워져 있기 때문에

한 바퀴가 차면 주기율로서는 힘을 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즉 족으로서 이완된 것이기에

주기율율로서 긴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것이며

이미 무너져 흩어졌음에 묻혀갔다는 것이다

 

 

직접성과 간접성의 유추

 

만일에 우리가 영계(靈界)에서 이 세상에

양서류(兩瑞類)의 차원에서 온 것이라면

원소주기율 18 번에서 와졌다고 봐야 함인데

그 이유는 이 세상을 零度 上이라고 할 때

빙점 너머의 유기성 그대로 넘어오면

마치 머리에서 생각이 무너지듯

영계가 물처럼 녹아버리는 데는 그 형상을 보존하기 어려우니

이 걸 토양화 시킨

육체를 대체 해야 함이 단백질 선상인 것이라면

새로운 전사(傳寫)가 있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양자학적 미립자에서 확대된 것이라기보다

이 공간을 두고

이 공간을 그대로 수용하기 위한 틀인 것으로 포용하려는 것이지

틀 자체가 공간을 수용한 것으로 넘어와

행위만 남은 것은 아니라는 것에 무게가 실리는 편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육체의 복사는 쉬우나

두뇌인 채 같은 작용의 사고력은

결국 양자학적 거울에 비쳐진 대로

간접적으로 닿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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