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실(이 글은 순수 창작품임)

이 날 日 또한 눈 감은 것 눈 뜨면 눈 目

narrae 2012. 8. 26. 03:21

이 날 日 또한 눈 감은 것 눈 뜨면 눈 目

 

저 핵융합하는 음양이 날 日이라고 이빨 꽉 문 듯 함에는,

빛이 새는 것에는,

맞물린 맷돌에 갈리어 나오는 날이라고 하는 것이니

동물과 식물이 거꾸로 자라는 듯이

빛의 끝이 검은 녹에 묻힘이요

갈리는 날이

빛이 마치 수족관 산소배출기에 몰린

뱀장어 머리이듯 우글거리는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듯 

어쩜 그리도 나무와 같은 형상일 뿐의 

날 또한 거꾸로 그리 자라는 듯 선 것인지

아!  존재는 날 묻힌 어둠의 별바구니

日 또한  한 점으로 요약하자면 白이요 

目 또한 한 점으로 요약하자면 自인 것

 

 

군자와 꾼

 

제 입으로 제 마음대로 부른다고

굳이 존칭을 바라겠는가 마는

뭐 중이라도 씨가 없다 한들 중값이야 못하겠는가 마는

굳이 아저씨라 아니 붙여도 씨는 무슨...

군자라 해도 임금 못 된 군이라고

임금씨가 못 되어 서러운 고깔 쓴 君子이니 君字일 뿐

씨가 좋아 임금도 씨

어쩜 장가를 못 가도 씨가 못 된다는 듯

나이를 먹어도

군을 떼어 주지 않는 심통도 있고 보면

점잔은 양반 행세 중에도

격을 갖춰가며 마음의 골병을 앓게 하는 것이기도 하니

군이라도 눌어붙은 꾼이라도 되는 밥통일라치면

차라리 꾼으로서의 짝이 자유를 얻음과 같으니

 

 

그대는 아름답고 세상은 사랑스러워라

 

내가 지구 축으로서 귀 기울일 수 있음은

꽃을 보면 꽃 향기를 따라 온 것같고

노래를 들으면 노래를 따라 온 것같고

이 것 따라 오자고 모태에서 폭발적이었나

양수(養水) 물 밖이면 활화산같은 것이

물 속이라 꼭 달그림자처럼

늙은 애미 속 냉하다고 쑥 짓이기듯이

한 때는 뜨겁도록 살아오던 길목에  

일렁임을 자루에 담은 것이듯

내가 이렇게 따라왔다고 하기 전에 

아! 모태가 지구축을 열어 준 듯이

경색되어가는 삶에도 불끈 쥐는 듯 

그대는 아름답고 세상은 사랑스러워라 

 

 

어쩌다 중 꿈을 못 깨고 스님 꿈을 깼네

 

뭐랄까

스님일 때 시인이라면야

나도 넉넉하고

시인도 넉넉하고 좋을 듯도 같더니만

이젠 짜리밑천 중 팔아 시인일 바면

시인 안 하고 말지

어쩌다 중꿈은 못 깨고 스님꿈은 깼네

 

 

 

저 잣이보이느냐고?

저 것이 보이면

白이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의 百인 것

저 주렁주렁이 떨어지면 白인 것인데 보인다?

그 건 하나의 구름이 뭉쳐지는 것일 뿐인데

 

 

돼지 삼겹의 노래

 

남의 살기를 돋구어 

남의 살을 먹겠다면 

내생(來生)에는 결국

삼겹까지 찌워선 살이라고

다 자연 발생적으로 자기 것도 내놓아야 할 일이 아니든가 

애초에 토속 신앙이 일어날 때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라는 기본성이 

가장 긴 역사적 바탕이 되어 있음이라는 것이 자명한 바

애써 외면한 채 신앙의 편중성에다 독선적이길

자신의 실존주의에 끌어붙인 입맛이라는 것으로

믿음의 무게들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세가 두터워야 울타리가 良質이라는 듯이

허나 이러한 것도 결국 질서가 잡혀가는 것은

크게 보아

역사의 교훈으로서의 인류라는 무더기로 키워봐도

더욱 참담하지 않았던가 하는 것에 있는 것이니

 

 

빙산의 일각과 구름

 

누가 저 구름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가

난 할 수 있다네

본래 구름이란 빙산의 일각이라네

얼음이 하얀  것은

백에 하나 빠져 바람이 들어 하얀 것이니

그  百에 하나 모자라 白이 것이 아니든가

그러니 어찌

百을 셈하는 데 白을 셈하지 못 할 것이며

하늘을 셈하는데 어찌 구름을 셈하지 못하리요

 

 

지푸라기 꿈틀대는 곡조

 

지푸라기 하나가

마른 막대기똥이여도 개밥은 되어 좋은 것보다야

참 질기기만한 한 창자인 것이듯

지렁이가 꿈틀대듯 살아나오는 

지렁이의 고향,

거름살 속의,

간장을 지렁이라고 했던가

본래 그림자가 지렁

땅거미가 지렁

거름도 축축한 지렁을 내놓을 때

땅거미처럼 검게 번져 나가는

자린고비 소금기보다 더 독한 삶도 있던가

지렁이가 말라 붙는 

지렁이가 말아 붙는

 

 

모음(母音)의 오행

 

우리가 보통 자음은 오행이 있으나

모음은 오행이 없는 껍데기라 여기는 것이나

자세히 유추해 보면

우리가 아를 1인 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야를 6 음수라 할 수 있음은 

6은 5인 土를 넘기 때문인데 

이는 원소 주기율 8인 토 

즉 역괘 8 곤토와 같기 때문이고 

또한 10진법의 10 음토를 넘기 때문이듯이 

5 양토를 넘어도 음양이듯 접어 포개지는 것으로

이는 맞장구를 함께 쥐고 선. 후천을 함께한다는 것이 됄 때

먼저 아 라는자음의 소리는 

水의 개념이 되고  

또한 즉발적 비명의 개념이 되는 것으로 

순간적 본능으로 나오는 소리

이는 곧 물에 빛이 가식 없이 드러내는 것과 같음이고

아와 야는 1과  6인 水라 봄이요

나무는 왜 둥글까

모든 움직이는 생명체는 木으로 봄에

규격과 형식이 없는 것이나

씨의 바탕이 乾金에서 출발하니

球型에서 圓桶型으로 뻗어나옴과 같으니

어떻에 산만하게 얶이더라도 원통형의 진행이다

木은 신경계를 여과헤서 영혼성과 같기에 모양이 없다

그래서 메아리처럼 등장하는 것이고

그 이유를 따져보기 전에

입을 둥글게 하여 사출하는 것같으니

이는 오와 요는 4와 9인 金이 됨에

목젓이라는 씨앗에 물려 자라는 목소리가 3과 8인 목이라 할 것이다

어는 火의 성질을 말함으로

본래 밝은 듯 하지만

똑바로 보면 눈이 부시어 도리어 어리버리,

빛이 빛을 가리는 어중이 떠중이에 

은연 중에 일어나는

불현듯이 나타나는 

속 빈 허수아비 같은 소리인 것인데 

여는 陰火의 나타냄이고 

우는 좀 더 거품을 빼는 단단한 결직성을 나타내는 

즉 입이 단단히  펜촉처럼 뽀족히 나오는 강도(强度)의

즉 5와 100인 토으로서의 형상을 이룬 것으로

이 것이 곧 후천적 오행의 모음이라고 하기엔 충분한 것으로 

이렇듯 후천적 개념으로 보아

으와 이 또한 입 다물린 듯이 金인 4와 9라고 함이 되니

자고로 이러한 형태를 다 파악할 수 있어야

飛神과 伏神의 관계만으로

그 글자의 형태나 소리를 짐작할 수 있는 것으로

이는 곧

오랜 비석이나 칠같은 것이 마모되거나 벗겨졌을 때

그 형태조차 알 수 없다 할 지라도 

참조할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되는 것으로

굳이 한글이 소리글에 불과 하니 

뜻은 사대주의에 물든 바라 

제 멋대로  넘의 것이든 말던 

제 욕심으로 사대를 택해 

다른 사대주의 밀어내기같이 하는 생색이면서

자신들의 사대주의를 우겨넣기같은 것으로 

꼼수에다 훈수까지  겸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니 

 

 

왜 10은 10이라 하기 전에 100인가

 

본래 10은 10으로 하지 않고 100으로 함이

陰土의 자기적(磁氣的) 회전율이라 함인데

이는 곧 線은 자전적(自轉的) 반지름이 10을 넘지 못 하는 법칙

그 안에서의 공간성의 형성됨으로서의

즉 線은 같은 대칭력으로 인한 회전력으로 해서 

원반형 面을 벗어지 않는 상태의 引力으로서의 

線的 11이 진행되기 전에

먼저 100인 面的 공간이 더 빠르게 형성된다는 법칙으로 

이는 칠칠이 사십구 제(齊)나

팔팔이 육십사 괘(卦)나

구구 팔십일 진결(眞訣)이나

이는 다 面을 내는 정방형의 단위이며

그래서 坤土를 方이라 함인 것이요 

모서리가 있다는 것인 즉

허나 이 것은

어느 정도 구심에의 돌출성을 나타냄이며

수리(數理)란 이렇듯 一直 線上의 라인을 타는 것이라면 

10에 다달으면

面으로 이루어짐에 사방 치우침 없이 차는 것으로

線을 역은 모태가 됨이요

한 라인 상으로 깎은 머리같으면 눈금이라 하나

길면 다 실의 몸으로 엮인 눈을 드러냄과 같으니

이는 곧 100인 面을

다시 염주알같은 하나의 점으로 칠 때

이러한 팽배가 다시 線으로 꿰어진  것이 되는 것이니

이 것이 마치 염주알 속의 하나의 우주가 百이 차면 萬이 되는 것이라 

마치 바람개비를 꿰어 붙인 듯하니

마치 회전력으로 끌어 붙이는 듯이 함에 (卍)자의 형태와 같다 할 것이니

아무리 노벨상 논문이 뛰어나다 한들 이렇게는 맛도 못 볼 것이니

 

 

그래도 악심(握心)에 치맛자락 펴듯

 

한 잔의 클라스에 향취와 같은 뱃 속엔

본래 아지랑이를 소장(小腸)으로 포개도

춤이듯이

춤이듯이

싸듯이 감싼 대장(大腸)에서 

춤추듯 몸을 차고 드는 듯이 

인공 위성은 오줌보는 알고 돌기나 하는지 

은하수로 갈기는 것이 

수소 하나 확 퍼진 것에   

치맛자락을 펼친 듯 받아내는 듯이 

이 것이 도리어 眞空이 

오존의 구멍처럼 받아 챙긴 것이 듯이 하는

 

 

포식인간(包識人間)

 

가슴으로는 포유(包乳)

머리로는 포식

옛날에는 길 가다 목이 마려우면

맑은 냇물도 거부감 없이 마셨던 것을

요즘엔 샘을 여울 테두리 쫕는 표적인 냥  맞춰가며

들어선 샘을 지고 다니듯 물통이 포란되듯이 하는,

왠지 도시의 광고판은

한 모금 마시고 삐약삐약하는 수준의 어린 맛이지만  

늘 어른이라는 무게와 폼은

영 오늘의 먹먹함을 뒤로한 채

전삼삼 후삼삼인지

갑자기 남의 세상인 냥 

느낌이 멍해서 허공 또한 멍한 것에 

산상 움막과 다름 없는 거리감에는

어버이가 자식을 보는 것만큼니마 적막감으로 접은 듯이

자그락 시끄러울 필요 없듯이 

이미 살아 생과 사를 선 그은 듯이 

참으로 전생을 깐 폼인 듯이 하면

한결 접어보이는 것으로 향하는 분기점이듯

그래도 백이나 배후는 왜 그리 근엄함을 갖추고

참 유치한 발상들이나 하나 싶은 것이니

자식은 늙어도 애로 밖에 안 보이는 것이 지상정이라 치더라도

부모 걱정스럽게

늙어도 부모백이나 거들먹거린 자는 

왜 그리 호되게 당하지 않으면

끝이 없는 듯이 버르장 머리가 없어지는 것인지 

참으로 성숙도의 독립이라는 것 

온고지신이라면서

제 얼굴로서 얼굴을 대화하는 것도 못 되는  것으로

소꼽놀이 꿈을 깨지 못 한 듯이 

왠지 존재 속에는

강렬한 외침으로 있으나 소리는 없는 듯이

먼 듯이 

멍한 감의 대화 속에서 찾아오는 손님과 같이

이미 이별과 같음에 있으면서 부추겨 주는 바탕성에 

개가 멍멍하면

그 것이 울리는 벽인가 하는 것에 

생으로 가위 눌린 듯이  

시대가 좋고 안 좋고를 떠나

우리의 지식이라는 것도 태초의 샘을 지고 다니는 꼴이니 

어느 시공계가 좋았단 말인지 들이키게 하는 것

 

 

母音의 宮圖 

 

 모음을 괘상적 형태로 쫓을 때

ㅏ는 水요

이 ㅏ인 坎水가 다하면 離火가 되니

ㅓ가 곧 火라는 것으로 대칭성이 되고 것이 되는 궁인 것이요

3은 곧 震木이니 이는 소리인 목젓을 말함이요

소리 또한 바람의 진동으로 부는 것이니 이 또한 巽木이 되니

입 모양이 옆으로 늘어지는 자루와 같음의 ㅣ는 坤土가 됨이요

ㅡ는 固形에서 나오는 것이니 乾金이 된다고 볼 것이다

ㅗ는 우물처럼 연 듯이 兌澤이요

ㅜ는 입이 산뿔처럼 나니 艮山이라

다만 乾과 坤은

마찰 자체가 일어나는 공간성의 우주로서

마치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옥타브

듣게 할 수 있는 주파수와 같은 것으로

天上界가 있는 범주의 기본적 신축성을 말함이고 

보이지 않음도 수용의 범위를 같이 한다는 것이니

이는 ㅡ와 ㅣ에서 출발하여

좀 더 신축성을 갖춘 卦象이

音을 발하는 모형에서 이루어 지듯 같다는 취용이 되니

이 모음 10 개를 이렇듯

괘의 수용체로 움직임이 드러날 수 있음을

그 무슨  섬세성이 따라올 수 있는 것이랴

ㅏ는 원소의 하나인 단위로서

물질적으로 닫힌 것이 아니라

시공으로 연 것이 되는 시각성이라면

이는 그 분화구가 된 흔적을 본 것이니

이는 곧 선천수가 98765로 역순으로 들 듯

보는 시각성으로

水가 다하여 火가 된 것과 같이

반대적 방향에서 보면

불과 같은 虛中을  열어놓은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즉 水의 門을 火일 때 보이는 것 되는 경계상을 보는 것이고

火의 門은 水일 때 꺼진 듯 없어 지는 것이라

서로 반대된 전환점에서 드러남과 같아

水가 火로 보일 수 있는

필름의 접촉면에만 드러난 것을

우리가 인지를 할 수 있는 시스탬인 한 쪽 면으로만

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방기(放棄)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글의 과학성은 발음만큼의 뜻을 이해함의 첩경에 있다

 

한문은 뜻을 위주로 해석을 함에

이는 다 象을 차용한 데서 비롯함인데

그래서 소리 글은

뜻에 미치는 과학성이 부족하다고 여기기 쉬우나

한글은 소리의 과학성으로 象으로 발견하게 한

인류가 문명인일 수 있는 가정 큰 업적인 언어의 섬세성에서

소리의 지문울 象으로 펼쳐 보였다는 것이다

단순히 과학성이 아니라

철학적 모태로서 그 근원을 외면할 수 없는 만큼이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이 것은 과학의 발달만큼이나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없을 뜻 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허공성이 물과같다고 할 때

한 파문이어도

모양새라는 것이 마음의 형세를 보이는 것이듯이

音이 단순이 音이 아니라

象化시킨 것으로 한글이라고 봐야 하니

이는 곧 소리가 나름의 指紋이 있음이요

허공계에 회절을 남긴 문양과 같은 것이니

 

 

능청은 제 뼈대마져 녹였음인지

 

지렁이는 갈빗대가 없어서인가 

이지렁 저지렁 다 떨수 있음에

능청은 제 뼈대마져 다 녹였음인지

지렁은 뼈대가 있음에 

소금이 질척하다 싶게 지렁물이 되어 살이 된다

 

 

그림자가 없다 함의 시공성의 과제

 

우리가 회전율이라 하는 것은 인과율과 같은 것인데

즉 시계가 네모나 세모도 될 수 있으나

왜 둥근 것인가 하는 것에는

침이 돌아가야 시계도 얼굴이 되는 것으로서

다만 시계는 12를 넘지 못함이 되는 것이기에 

이로 일직선의 13이 되려면

12로서 한 바퀴의 면이 되는

회전적 引力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되는데

이러한 법칙에서의 수용성은 

동양은 12 시간을 그대로 취용하는데 반해 

서양은 24 시간을 기준으로 함에

이는 반쪽의 面을 한번의 회전율로 한다면

마치 12에

다시 그림자적 행위가 깍지 낀 형태로 24라고 봐야 함인데

이는 곧 時針 한 눈금에 

分針이 그림자처럼 깍지 끼어진 형상을 이룰  수도 있음을 말함이다

이렇듯 12 단위까지 오면 

면으로서의 구성력보다 음양 간에 심어지는 뜻이 강하고 

수놓아 맞물리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봐야 함인데 

이는 곧 10을 넘으로

양 손 5가 서로 맞잡은 행태의 유동성에 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이 것이 곧 건이 다하면 곤이 되고 

坤이 다하면 乾이 되는 기점에 있음으로서 

실제 머물러 있다함은 9까지라고 봄이 타당하며 

10은 있으나 순간적인 의미와 가깝고 

원소 주기율 상의 8도 순간적인 것과 같음에 

인식 상으로 멀어 7까지 취용한다고 봐야 함으로 

족(族)으로서는 8이 있으나 주기율로서는 겁(劫)과 같아

있어도 없는 듯이 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無와  흰 색

 

새삼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함에 

무우여!

그 것도 다리라고 한 번 내밀어 볼 것인가

無와 흰색 간에 관계가 있어 알통 굵듯 자란 내력같은

無에 흰색은 1이라는 단위요

얼음 속의 공기는 얼마가 들어 있든 흰색을 1로 하는

얼음이 흰색을 띄었을 때 

이미 원자가 양자인 白의 우주를 一로서 감싼,

즉 百으로 들이킨 단면도가 이미 되어 있다는 것이 되리라는,

色에도 그 수리적 기운이 드러남에 있다는 것이라

이 것은 화이트홀의 측정치가 아니라 

블랙홀의 측정치와 같이 얼음이 삼키는 듯

 

 

뜻 

 

이 듯이라는 字形을 잘 관찰해 보면

타조가 천진스레 뛰는 것 같은데

여기에 사람이 올라 타니 뜻이라는 字形이 된다

인간은 사명감을 느낄 때가 가장 뜻이 분명한 삶이다

 

 

보이지 않아도 현상적인 진행과 형상의 문제

 

영혼이 몸에 깃든다 함은 연착륙인가 경착륙인가

유체이탈은 과정 중의 면모가 점점(漸漸)으로 없는 것인가 

과연 빙의라는 것이 깨진 독을 호수에 던져진 현상인가

몸에 깃드는 것인가

영혼은 몸의 완결성에 꼭 공기 숨보다 더 가볍게 차듯 든 것이니

존재 동안은 몸의 체형과 같은 것이다?

外 32  相 內 32 相으로 64 卦라 한다면

이 것이  혼돈의 태극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면

또한 가장 안정적 감로수의 눈빛 밖 조용한 눈빛과도 같은 것에 놓인

영혼은 먼저 태극의 혼돈적 32 상을 채움에

이 서로 상인 두 개 씩의 64卦를 채움에

절로 체모(體模)와 상형(相形)이 드러나는 것이라 봐야 함이니

이는 곧 핵융합처럼 씨앗 하나를 만듦에 32 相이라 함에 

이 것이 分化해 변질 됨으로서 태극(太極)의 풍진(風塵)이 일어남이듯

64 卦로 분리된 中에도

서로 간에 협조로 맞춰감이 相이라 함에

半은 體요 半은 用인 것으로 상호 의지하며

근원적으로 맑았음을 캐고 또 캠이 빛인 것이니

아! 相 中에는 心相이 최고라고 했던가

눈빛이 눈빛을 따라간 자는 자유를 얻으리라

 

 

깨진 독의 관점 

 

우린 사바 세계에 빠진 개념

오히려 껍질이 본질인 것의 의미

마신 개념과 빠진 개념

그 차이점에서의 행위의 차이

실제 64 괘는 깨진 독이다 

태극 상으로 깨진 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즉 32 상이 깨진 독을 마신 것이다

마치 수소(水素)가 짝을 이뤄

分化의 시발점에 있는 것을 모른 채

그래서 일일이 회전축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나 

장독이 독소적 의미가 있어 독이라 함이 듯 

용이 못으로 들어간 으로 

못 박힌 서러움을 생각해야 할 것인 냥 

아! 물은 맑고도 달착지근에

시원하기가 최상의 것이 없음이요

상쾌함 또한 견줄 수 없을 만큼의 맑음에 있음에

세상이 다 이렇게 트며 산다고는 하나

어찌 트여졌다는 것이 무슨 영웅지나 시원할 일인지

이도 다 삼독(三瀆)의 못을 못 뺀 물맛이라 함이니 

 

 

멀고 가꺼움은 돋보기 도수처럼

 

우린 태양이 아무리 커고

꼭 가까이 가서가 아니라

돋보기 도수처럼 머물고도

크게 와닿게 박아 넣는 듯

헬륨을 하나의 디스켙으로 활용할 수 있는 듯  

우리가 유체이탈을 해서 태양을 보았다고 했을 때

그 것이 먼 태양이 아니라

가까이 갈 수 있는 태양이라고 하자 

이 것이 마음에서 비쳐지는 것이든 

실제가 닿은 것이든

그 공간성의 체내에 있는 감수성이 될 수 있으라고 할 때  

핵융합적 태양이라는 것이

핼륨적 사주를 담을 수 있는 실제처럼 

하드 웨어의 공장이라고 보아야 함의

분명 태양계와는 밀접도가 있는 것이라 

우리의 심장은 어떠한 수명을 본 뜬 것인가  

 

 

원소 1 주기율의 특성

 

ㅡ가 수소라면 

ㅣ가  핼륨이라는 것이 되는데

이 것은 ㅡ와 ㅣ가

열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내는 것이기에

그 사이에 원소가 비었다는 1 주기율이 되는 것이고 

ㅗ가 되면서 부터  8 족이 찼다는 것이 되는 것으로

이로 2 주기율로 한다는 것과 같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로 ㅏ가  화궁이요

ㅓ가 水宮이 되는 것이기도 하는 것이지만

이는 ㅏ가 水宮이요

ㅓ가 火宮의 취용과의 시각차는

수소가 星으로서가 아니라 門으로 할 때 

나타내는 것이기도 한 것이나

서로가 대칭적으로 보아 凹凸을 달리하는 것으로

이는 곧 원자 내로 향하는 것일 때

外에서 보면 凹로 보이고

원자 外로 향하는 것일 때는

外에서 그대로 보면 凸로 보이는 것이니

水火를 하나인 냥 볼 수 있음에 있는 것이다

 

 

음적(陰的) 변화의 상과 양적(陽的) 변화의 상

 

六合 중에 丁이 壬과 합이 되면 木이 된다고 함은 

丁이 빛의 파장이라면 

壬의 물에 반사되기도 하지만 

흡수되어 경직되었다고 볼 때 

이는 陰的으로 드러날 수 있는 것으로

즉 水에 흡수되는 것은

마치 빛이 전기(電氣)로 띌 수 있는 것으로서

다시 환원되듯이 하는 것으로

마치 빛의 동화작용적 흡수나

비타민 C의 축적성과 같이 木으로 化함인데

이 것이 단순한 합이 아니라

광합성적 작용을 낳는 부류를 말함이다

이와 달리 陽的인 변화를 보자면

丙과 辛이 合하면 水가 된다함은

이 것은 몸의 피가 용해되어 있는 상태 

즉 헤모글로빈과 미네랄, 철분 등이 용해된 채

움직일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서리가 녹으면 물이 되는 것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

이 甲이라는 것은 강한 酸과 같은 것으로

생명의 큰 기둥과 같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또한 己는 몸이라고 하는 바

뼈가 없어도 몸은 몸이라는 것이 된다

즉 아무리 큰 나무도

몸 하나 도둑 막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니

결국 甲己 合은 土로 돌아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癸는 기후의 전선 띠와 같은데

하늘 위에 커튼이 양귀쪽으로 가리마 타진 듯이

구름이 낀 형태라 함인데

또한 우주선과 유성을 말하기도 할인데

이는 戊癸가 合하여 火가 되면

마치 별똥별이 떨어져 불꽆이 피는 형상과 같은 것으로

과연 빛이란 것이 원소의 충돌만으로 일어나는 것인가

그 공간적 마찰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하는 것이 있고

庚은 탯줄을 자른 형태의 배꼽인 것인데

이 것이 달이라면 大腸은 달무리라고 봐야할 것이다

여기에 새 乙이 합하여 금이 되는 것도

일종의 새가 胎化에 순장(殉葬)된 듯이 든 것이 아닌가 하는데

庚의 운명이 끝나면 다시 날아갈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있다

 

 

남는 장사라는 것이

 

4 孟神

3 合神

3 方神

삼한사온(三寒四溫)이라

그래도 溫이 하나 더 남으니 남는 장사라

아무리 허한 체질에 겨울로 돌아가는 운명일지언정

겨울도 쫓아갈만해서 왔겠지

요즘에야 이 것도 뒤죽박죽이니

4 盟神으로 쟁반 그릇인 것

三合 끈으로 눈금자에 걸어놓은,

삼합이 법치의 냉정한 눈금에만 올려 놓는다 해도

4 盟이 반석과 같이 온화하게 포용할 줄 하는 

四溫으로 따듯이 담음이 바탕인 것이지

三寒으로 빙각처럼 탱탱히 올려늫는 것까지 탐할 바가 못 되니

권세가 법인 시대가 언제 부터였던가 

삼한사온이 사라진 듯 사라진 것같으니

이젠 일주일을 계율이 없는 사회라 하여야겠구나

 

 

하하하하

 

하하하하

夏夏夏夏

白은 百에 달려 잣이 주렁주렁

어찌 自가 매달린 ㅡ은 없는 것이었는지 

오호라 이제야 잡았건만

잡고보니 

어찌 숨은 듯 다른 흔적조차 없었더란 말인가

잣이 나무 숲에 숨은 듯

自가 百처럼 매달린 

夏夏夏夏 

 

 

이(離)란 것이로구나

 

離라는 것

왜 봄이면 새순이 물렁물렁 날까 하는 것은

불꽃이 순에 있음이요 

용광로처럼 녹는 중인 것이니 

불인 줄도 꽃인 줄도 모르고 산다만 

꽃이 불처럼 떨어질 때에서야 

가지는 서서히 굳어져 간 것같은 이별의 아쉬움

 

 

자의식과 건금(乾金)

 

乾金을 

자아 

자의식 

거울이라고 할 때

짐승이 거율의 자신을 자신임을 몰라도 

인간은 자의식 만큼의 믈랙홀적인 것이지 않나 하는 것 

우리가 자의식에서 초불구이적 벌판이라면

이 벌판에 태생 자체가 3 瀆이 된다고 할 것이다

이 것을 핼륨적 대지로서 먼지와 같다고 할 때

원소 3 주기율인 태양이 자신만의 시공계를 드러낼 수 있다면

원소 1과 2 주기율은 용융점(熔融点)이 되는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며

원소 6 주기율과 7 주기율에서

수소가 바다처럼 펼쳐지는 것이며 섬이 나타난다는 것

 

 

음적 진화

 

어차피 심하게 섭생이 고르지 못하면 심장이 부담을 안으니

통증은 오락가락 안고 사는 것이지만

어떤 땐 음식물을 먹은 것만으로 심장이 놀라서

벌떡 뛰는 듯이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잠이 오는 것인데

어찌보면 혼수 상태로 돌아온 것같은

어찌 보면 혼수상태가

도리어 회생의 분기에 가까운 듯이 하니

오죽하면 침술하는 우인이 

술을 마시면 그 길로 황천가는 줄 알아라 하니

그도 그럴 것이 

빈속에 음식이나 커피만 마셔도 얼굴이

울글락불그락 눈마져 충혈되어 술마셨냐 핀잔 듣는 판에

이렇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나름의 진행성이 잡히는 것이 묘한데  

처음에는 체증처럼 가슴과 어깨를 무겁게 하는가 하더니

나중에는 양팔이 터질 듯이 몰아 세우더니

다음에는 이 심장이라는 것이

제일 급조되는 것이 왼팔인지

늘 땡기고 퉁퉁  붓는 듯이 함이 우리할 정도였지만

그래서 그런지 오른 쪽 팔은 긍육이 있는데

왼쪽 팔은 뼈만 앙상히 잡힌다

마치 외팔잡이가 왼팔이 길어진다는 듯이 

이도 음적으로 왼팔이 파먹혀 들어 짝짝이 된 듯이

뭐 이도 먹을 만큼 먹어도 나올질 않자 

이젠 아예 거름밭이 붕알밭이 겨우 남았는지 

참 신기하게 배가 심히 빈다 싶으면 

영락없이 붕알이 꼭 왼팔 팅팅 아프듯이 아픈 것이 어찌 그리 똑같은지

이도 다 무시했음인지 

요즘은 빈 속에 커피를 채우면 꼭 무슨 약은 먹은 듯이 

침마져 쓴맛이 나는데

식중독같이 하얗게 질릴 때가 가끔 오는 것을 보면

뭐 언제는 오늘 내일이라고 한들 

마음이 준비야 늘 다잡아 놓은 것 아니든가 

나야 천리길보다 문턱넘어가 늘 붙어 산 것이 아니든가

한 편 체면이라고 해도 난 이젠 태무심이다 

뭐 고작 믿음이란 것이    

배만 차면 말끔이 돌아온다는 것이지만 

이젠 나이를 거를 수는 없는 것이니 

돌아오지 않는 느낌마져 드니 저승줄을 타는 것같기도 한데 

이젠 며칠 내로 결정이 나는가 싶게도

눈알을 먹겠다고 당기는 것이  

꼭 붕알 팅팅 아프듯 잡아먹을 것 같으니

무언가 날카로운 것으로 찢어지는 같기도 하거니와 

눈물이야 빈속에 물만 퍼부어 넣으니

진물이 침침하게  달고서 나오는 것이지만

영영 눈을 뜨지 못하게 통증에다

티가 박힌 듯

한 순간 이물감을 못 견디게 하기도 하니

가만히 있으면 그마나 나을 것 같건만

또 굴리면 통증,

이 것도 거짓말같이 배를 채우면 멀쩡한 것이고 보면

그나마 조금의 희망과도 같은

허나 그래도 먹고 싶지 않을 때가 많고 보니

내 존재도 믿을 것도 못 되는 듯이 밀고 당기기같은 것이

허나 어쩌리 내 인연 밖의 인연길이니

내가 부처님처럼 너그럽지 못해서 이러하거늘 누구를 탓하리

삶의 경계가 그러한 것이니

이젠 한 쪽 눈을 실명하고보니

고작 아프지 않아서 고맙고 안도할 뿐인 것을 

이미 두 눈이 조화를 상실하였으니

글이 결쳐보이기도 하고

초점이 잘 맞질 앉는 것에다 눈리 부셔 잘 드이질 않는데

무슨 눈알마져 서로 떼어가지듯 아픈 듯함이니

왠지 붕알을 대신 찾아 먹으려 든 것같아 

간혹 심장도 덜컹 떨어질 듯이 겨우 매달려 있나 싶기도 한 것에

이젠 남은 것은 불꽃과 같을 뿐이라는 것이

잠시 삶도 놓았다 싶은 지독한 때에

눈도 못 뜨는 판에도

머물 곳도 없는 절박성으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란 것이  

무슨 저주라도 받은 냥 마냥 바로 주저않을 것같아도 

또한 알아들었는 냥

아무 생각없이 살아보는 것이니

참으로 한 쪽 시력을 이렇게 잃고 나니

이(離)라함이 떨어져 있어 離인가 하는.

본래 눈은 따로 논다고 離인가 하는 것으로,

왠지 세상과는 낯설다 싶게 

내가 내게서 멀어지는 것에서 딴 세상인가 할 뿐의

 

 

三合의 객관적 추이 

 

우리가 보통 삼합의 구성은 初, 中, 終이 있다는 것이고 

생산자와 괸리자가 있다는 것이요 

일 년 내의 어느 부분을 결졍짓는 것이기도 한 것인제

三合 중 하나의 결여나 불실(不實)의 神으로 볼 때

이 미달된 경우의 理로 보자면

兄 三合이 父가 결여된 것이라면

인원은 찼으나 교통수단이 미달된 상태 ,

여권이 발급이 안 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또한 간접자본의 미비로 보는 것으로  

財三合에 長生이 결여되면

생산직 사원 모집이 되고

생산 라인에 속하는 것을 말하고

庫의 결여에 해당하면

창고과 관리직에 임원을 구하는 현상이라고 봐야 함이며

보관와 저장에 준비가 안 되어 있음이다

官에 財가 長生이면 재정확충이 잘 안 된 것이고 

庫가 미비이면 

예비 인원 까지 채워야 하는  수가 있음이다

 

 

고(庫)의 해(解)

 

일례로 오늘 시사 방송의 내용을 본다고 할 때

보통 庫가 文을 化出하면 碑文이다

또한 衝이 되면 훼손과 마모이다

거기다 庫에 든 本神이 衝이면 기념일이나 재조명이다

庫도 破되고 본신도 衝되면 腐棺斬屍가 될 수 있다

庫의 變爻가 生을 잘 받으면

頌德碑가 아니더라도 칭송이 자자하다

그런데 본신이 衰絶이면 살아 불효가 죽어 효자며

살아 천덕이 비문은 거창하다

庫가 財로 化하여 生을 받으면

墓畓이나 先山의 값이 오르는 수가 있다

 

 

와 닿는다는 것

 

한 때는 표정만 뵈도 시름이 사라지는 듯이

그래도 한 시대 미소의 축있던 그 소녀

그 소녀도 나이를 먹어 자살하고 보니

옛 어린 느낌은 아니어도

왠지 무기력한 감이 공동체적으로 엄습하는 것으로 

요즘 젊은이들의 미소 또한 미덥지를 못 하겠고

딱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고

그래도 티없다 표정에 또 속는 듯이 함께 밝아지는 것이니

그래도 설명하기 힘든 거리감에

멍하니 남의 세상같이 띄워놓고 산다 싶은 것

비지스가 대머리일 때까지 노랠 불러도

일상 젊음의 노래는 젊음의 선에서 끊기는 것이다 싶은 음악도

늙어도 다를 바 없는 일체감을 줄 수 있구나 하는 동질감에

어쩜 동질감이라기보가  동행성이라고 봐야 함인 듯

그들도 하나 씩 떠나는 것을 보면

세월의 사이가 텅 비어 나이를 모르는가 했더니

나도 이젠 많이 온  것도 같다 싶은

거리감이 나타나는 끈같은 것을 알게는

왠지 같이 세대로서 동반자적으로 와진 진한 흔적과 같아

쓸쓸함을 맞보게 하는 

 

 

인형이 인형같지 않다는 것에서 외침인지

 

갓난애만봐도 세상 시름이 싹 씻어지는 것을 봐도

다칠새라

쇼원도우의 마네팅처럼 간수되다 나온 듯이 하는데

그냥 이대로 믿어져야 하는가에는

옛적 코흘리게 외양만 좀 더 나아진 듯이 믿어지는

늙어도 아래 사랑은 참 독해지지 못하는 것인지

 

 

내겐 잘 먹고 잘 살아라는 것이 아니니

 

나도 언제부터인가

세상이 나를 싫어하는 경계같은 것이 생겼다 싶음에

굳이 마주하기도 싫은 심정에다

무슨 날 위한 탐욕이나 있었던가

서로 싫으면 떠날 자 떠나고 안 보면 되는

쉬운 답안이라는 것도 늘 곁에 있는 것인데

괜히 채촉하다시피하여도 신의 분노를 싸는 것이니

신이 참 인정머리라고 하고는 벽을 쌓았는지

잘 나가던 시절에도 하루 한 두 끼로 살았는데

굳이 세월에 영향을 받아 못 다닐 이유 없는 것이요

이 것도 한 두 세월이라야 말이지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사나흘 굶어도

되레 잘 되었다고그 정도는 안 죽는 걸 알았으니

더욱 초연해지겠구나 하는 것이니

내 몸 하나 간수하는데

평상심을 유지하면 되는 것

굳이 유별나게 불만일 일도 없는 터에

사그리 문명인에다 지성인이고 보면

더 거들 것도 없는 것이거늘

인상 찡그려 대며

남 숨 쉬는 것조차 징그럽다 여기는 판에

유발나게

왜 사으냐는 듯이

기생충 붙어 먹고 사는  듯이 해대니

뭐 토막 난 따라지 아랫도리 못 한 허벌충이라고

동네 방네 외자기는데

어느 누가 정나미가 나 다가오겠는가 마는

아무도 없어도 좋으니

조용히 눈이나 제대로 불이면 바랄 것이 없거늘

 

 

DNA 3

 

DNA란

ㅏ라하면 ㅣ로 막아 ㅐ가 되게 함이요

ㅓ라해도 ㅣ로 막아 ㅐ가 되게 하므로

이 것이 평행선상의 판화이지 않았던가

왠지 자외선상으로 막은

적외선상으로 막은 한 목타브 內의  

 

 

문장에 있어서의  구심성과 원심성

 

易에 있어서의 싯귀란

시가 어떻게 효(爻)와 맞물려 가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시 자체가 구심력과 동떨어진 채로 거푸집만 낸다고

핵심이 부각되는 것이 아닌 터에

전반적 알짜는 모른 채

흐르는 모양새만 자꾸 뒤집는 꼴이

설령 반짝이와 같더라도

그 깊이가 물비늘과 같이 비치더라도

화두야 요체를 부각 시키기 위함이라고 하더도 

요체 훤히 보이는 데도 스스로 눈감은 채 

다 펄럭이는 깃발을 따라 간 것이라 할 것이니 

 

 

포장값을 낮춰야 들어올 알맹이 값도 보지

 

요즘은 알맹이 값은 줄고

포장값이 더 비싼 시대와 같으니

무슨 녹원과 같은 곳도

일시에 대형 아파트들이 들어 선다고는 하나

팔리지도  않으면서

시멘트 단지는 왜 그렇게 두껍게 포장되는지

이 거 주저앉을까봐 노심초사

무슨 포장값이라도 낮춰야 알맹이 값도 보지

순리대로 꺼질 건 꺼져야 숨도 쉬는 것이지

무슨 명절날 대목 포장값 우려먹을 일 있다고

 

 

돈! 이의 객관성이란 무엇인가

 

돈이라는 가치로 평가하는 곳에는 돈을 챙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명에를 챙기는 곳에는 명예를 챙기는 것이 당연하다

본래 그 장소와 상황에 맞게 처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함께 가져도 당연함에도

단편적 안목으로 보자면 불공정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냥 흐름 상으로 보자면

어느 쪽으로도 자유로울 수 있음에도 서로 제지를 당한다

결국 가치는 물질에 맞춰지는 것이고 그 가치의 보답에 매이고 보면

이 것은 자연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것은 인위적 안배를 염두해둔 것으로 봄인데 

이 것 또한 자연적이라면 자연적인 것이다

그러니 물질적 신세는 한 푼도 신세라고 따지지만

명예적 신세라는 것은 찾을래도 찾을 수 없음이다

 

 

낯과 여드름, 낮과 여름

 

위도 상으로 여름인 것과 여드름인 것

경도 상으로 낮인 것고 낯인 것

왠지 달로서 담는 것은 

마치 그릇에 골고루 담기라고 지구축을 기우는 듯이

그리고 태양에 낯짝을 맞추라고 하는 듯

 

 

여유를 앗아간다는 것

 

요즘 나도 연속극을 안 본지도 오래 된 것같다

그러고 보면 난 세상과 한참 동떨어진 것 같다

뭔가 공유할 소재같은 단절성같은데 데도

무언가 여유를 갖는 데서 비롯되는 풍성함도 아닌가 하는 것에서

어떤 적막감 같은 것이 사이에 있는 것같다 

모를 일이지만 

내가 이들을 앗긴 느낌인 것만큼 

이 들도 날 앗긴 느낍으로 여길까하는 것에서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데서 많이 빗대어지는

겨를이 없었다는 것보다

더 여유를 앗긴 기성능 바보틀은 아닌가 하는 것에 

사뭇 화학만큼이나

정확한 화합물을 만들어내는 듯 함에 놀라울 뿐이다

 

  

팔정도의 의미

... ...

그래도 아이야

너도 학원다니고 게임 즐기려면

부모님이 돈을 많이 벌어야 좋은 것이지?

그 것 잘 못 하면 못 난 부모같지?

그래! 부모님은 그래야 하는 것이야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하는 것이야

돈은 자신이 아픈 것보다

너희들이 아픈 것을 더욱 뼈아프게 하는 것이니

맹목적이어도 나무랄 수 없을 정도란다

그러니 돈  안 되는 길도 가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이야

그러니 중도 되어야 하는 것이지

너희 부모님들은 너희들 때문에 꿈을 포기한 것도 있겠지

그 꿈은 살 먹고  잘 사는 것과는

좀 더 현실적으로 닿을 수 있게 하는 감수 같은 것으로 

젊음은 그리 약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지  

그 꿈도 지켜져야 하는 고귀한 가치이기도 한 것이겠지

좀 더 여유롭고

좀 더 혼탁해지지 않는 순수의 자유를 꿈꾸는 것이겠지

이 것이 나이를 먹을수록

생의 두께에 가려 아주 작아지는 듯이 하다가

어느 땐가는 평행조차 안 된다는 것이 실감될 땐

돈이 안 되는 것은 겨우 모래알과 같은 것인가 할 때는

거울과 같이 대칭적으로 모래시계와 같다고 여겨지는 것이지

生과 滅 사이에서 평행선이 있는 듯이 하지

실제 생각이 없고 저울질이 없으면 댓가란 없는 것이란다

결국 평행선은 서로 거울같이 비추며 

정의의 원점에서 드러나

기울어진 것을 바루는 것을 말하는 것이 된는 것이지

 

 

父爻의 解

 

父空이면 아버지 살아 계시면 돌아가신 할아버지 代를 의미하며

할아버지까지 살아계시면 증조 할아버지 代이다

만일 父空化 退神 父空이면

돌아가신 할아버지 代와 증조부 代를 말하는 것이며

父空이 動하여 退神인 父가 實하게 되어있다면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거두는 경우인 것으로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마찬가지로  보는데

應方 兄이 動하여 父로 化出되어 世와 合이 되어도

이모나 숙모가 거두는 형상이며

만일에 이 空이 일진의 財나 土에 합이 되면

돌아가신 조상이 남긴 유산이나 토지등이 있으며

官이며는 돌아가셔도 벼슬을 내리며

훈장을 추서하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周易의 爻辭는 그 부분적 취용을 잘 활용해야 묘미가 나온다

 

주역은 그 문구대로 다 나쁘고 좋고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 나쁜 것도 좋게 해석됨을 알아야 한다

주역은 辭의 묘미가 五行神의 맛보다 더 기막힌 것도 있다

오행신은 가지와 같다면 辭는 모둠지와 같으며

특히 싯귀는 여러 가락을 몽총히 모두어 놓은 것 같다는 것이다

주역은 효사를 잘 이해해야 바다를 보는 것 같다

봄이 꽃의 바다를 이룰 때

나무줄기는 강줄기와 같은 것이듯

오행은 정적인 상에 가깝다면

사는 물결이 일렁이는 것에

달을 보는 것만큼이나 유연성에서 나온다 

두 개의 평행선은 각기

다른 성격으로서 평행선을 이루는 것인지

같은 성격으로서 평행선을 이루는 것인지

좀 더 바탕성을 캐는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거울은 대칭적 자아발견이나

상대적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라 봄이다

다른 뉘앙스가 있는데

이 것은 시구로서 잘 설명해놓은 것에

仙家의 안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니

 

 

선비에게도 희망의 지푸라기라도 쥐게 해 준다는 것이

 

周易의 진정한 가치는 희망과 神에 대한 경외감인데

이렇듯 주역의 진정한 가치는

진시황의 분서갱유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듯

이도 어찌 보면

통치권자의 끈질긴 세습을 위한 기반성을 위하여

양수적 모태로 남겨 놓는 것으로 봐야하는 모럴과 같은 것으로

어찌 보면 자연법적 양상보다

군자적 처신을 철저히 다짐하게 하는 수련과 같이 하여

황궁(皇宮)만의 비장품(秘藏品)으로 취용하려는

욕심이 바닥을 깔고 있음이니

이는 治權者의 미흡성을 기둥처럼 받쳐주어야 하는

神的 의지는 꼭 필요한 것에서의

그 어떤 환상성보다 더 견고한 바가 더 미더웠는지 모를

 

 

역류성 공계(空界)

 

어쩜 인생 자체가 치매를 앓은 듯

역류성 식도염을 앓은 듯

기억이라는 것이

겨우 글을 뗄 때의 어린 순간으로 파고든 듯

空함이 오늘로부터

어린 시절만 더 섬처럼 생생히 다가서는 듯

어찌 멀수록 희미해 지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것에서부터 멀수록 더 선명히 다가오는

空의 지독한 역류성을 발산하는 듯

 

 

ㄱ이 ㄲ에게로 가까이

 

이 가까이라는 것이

뜻만으로 충분히 느낌이 와닿는 것이지만

그대!

어쩜 그 때가 행복이기도 하겠찌

ㄱ인 그대를 낫 놓고 ㄱ 자를 모르듯 모를 새

그대가 다가와 ㄲ인 듯이

그래서 가에 까로 붙은

어쩜 모르지

저 낮은음자리표 한 쌍이듯

두  짝이어야 온전한 것이였는지도

 

 

본론으로 들어가는

 

중첩이라는 것은

통로가 없다든가

대답이 없다든가

그럼 어떻 하나

서로 짝을 이루니

굳이 두 개일 필요가 없는 듯

또 하나로의 융합

<~가?>에

또 <~까?>면

어쩜 가에 까로 의문이 중첩이 되면

우린 본론으로 들어가서 

하나며는 족한 쪽으로 기울어야겠지

 

 

깃발이냐 마음이냐

 

우리가 후각(嗅覺)이나 미각(味覺)에서 보여주는

맛이나 냄새가 천문학적 세포수만큼이나

미묘한 차이점을 느끼며 분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것이 조건이 될 수 있는 반석은 있는 상태로

반향적 상대성으로 이뤄진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分身으로서

다시 끌어들이는 것이냐의 의문을 푸는 과제에는

하나의 빅뱅이 아닌

다른 빅뱅도 있지 않느냐의 개념도 생기기 마련으로

어떠한 기하급수적 산란(散亂)에도

그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상대성이

감각 세포처럼  일어난 것으로서

우리가 수 백, 수 천 만의 자극성이

뒤섞여 흩뿌려진 듯이 해도

그 미묘한 차이점을

인간 코의 세포보다

개 코의 세포가 훨씬 진화된 듯이

마치 그 세포성을 분말처럼

더 광대하게 뿌린 듯이 깔나 감각처럼 일어나게 하는 것이라면

이 세포를 뿌린 만큼의 감각인 것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양적(量的) 틀을 깐 것이 아니어도

어데서 어떻게 처하든

상대적으로 무한의 수를 받을 수 있는 조건성을 갖춘 것으로

마치 물결같은 천자락에 별이 반짝이며 수 놓이듯이

이 水가 水素라는 原子로서의 하나 하나가 

세포 단위로서 한 몸을 이룬

분자급의 피부같은 자루라고 할 때

이 것도 분자에 까지 미친 영혼이라고 마디를 지을 때

또한 이 유기체적 생명체로서의 세포라는 것이 

결국 인간의 몸을 갖춘 영혼까지 감싼 피부에 속하게 되는 듯이

곧 이 水라는 것을 은하수적 범위로 보면

마치 혀의 맛을 느끼는 부위가 다르듯이

그 맛의 의식으로만 전하는 화학적 구성이 있듯

각기 다른 천상계도 의식의 한계를 드러냄에도

또한 무의식으로는

다른 패턴을 겸해서 읽을 수 있게 하는 듯이

마치 단맛이라면 혀의 감각이지만

이 감각을 상실한 채 모르고 살아도

눈으로는 누른 빛으로 살아 그대로 있는 것이나

혀와 다른 듯이 눈으로 보아가며 사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 것이 맛과 상관 없는  독립적인 것으로 여기며 사는 것이나

실제 독립이 아닌 공존을 실행하고 있다고 봐야 함의

이 것은 마치 數理가 象이 되고 象이 數理가 됨의

마치 그림이 보였다 물결적 흐름이 보였따

그 수용적 양상을 보이는 것과 같은 것으로

우리가 둔갑을 한다든가 변신을 한다든가 하는 것은

이렇듯 눈으로 보이던 것도

눈을 뒤로 한 채 귀로 갔을 때

소리로 化한 것이지 빛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과 같다

 

 

마(麻) 삼근(三斤)과 매화역수(梅花易數)

 

질문과 대답이라는 것에 있어

그 대답이

一時 上으로 맞아들어가는  인연의 일치점이라는데 있어

그 어떤 분기점보다도 더 밀접한 듯이 대답을 감추운 듯 나옴이

곧 본래는 하나였는데

그 분기점으로 맞물리게 되어 있는 답이듯이  

과연 어떤 空界의 접착력에 의한 집적도가 있는 것인가는

왜 인연 상의 연결 자체가 정답일까 와 

왜 그렇게 가장 적시적소적으로 맞는 것일까 에서의 

과연 그 것으로 해답일까 하는 것에서 

문제는 답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문제와 답이 갈라졌을 때로

다시 거울 반조각을 맞추듯 정확하게 드는 듯이 답인 것으로 

과연 그 밑그림은 무엇인가 하는,

이 것도 추상성보다 좀 더 물리학적으로 논조가 필요한 것의

그런데 눈으로 보임이 아니요 인식됨도 아니요

오늘로서 알아채는 것도 아닌 것이니  

허공 중에서 다가와 맞다고 할 때의 시공을

그 현상이 맞는 것은 맞는 것일 뿐이 것이니

대답도 맞는 것일 즉

마 삼근이라 한들  

소강절선생의 말씀대로

나무가 베어지는 것만큼이나 맞는 것을 어떻하리

 

 

색즉시공(色卽是空)의 파종(播種)

 

아이야

네가 아하면 상대는 어하고

오 하면 우하는 일일이 토달 듯 달아붙어 트집이걸랑

거기에는 파종하기 좋은 종자가 있지

그 것은 곧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는 것인데

이 걸 너무 공간적으로만 붙여져 허(虛)한 文句같으나

이는 강한 色에 붙여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니  

네가 동쪽이라고 하면 상대는 서쪽이라고 드밀고

남쪽이라고 하면

아예 남쪽이라고 덩달아 주는 듯이 하면서

심보 고약하게 치졸할 정도로 꼬으면서 농락을 하여도

하나 같은 제복처럼

일사불란한 듯이 대어드는 것에 먹잇감인 냥인 듯 

다 앞서 있은 터주인 냥 깔고 보는 듯이

누구라도 너에게 빠져나갈 틈조차 조여가며 왕따시키더라도

바로 그 때 똑바로 심어 줄 수 있는 것이 색즉 시공이라는 것이요  

또한 바로 그 것이 공즉시색이라 분명히 심어주고

그래서 그 청개구리는 죽어도 공즉시색에는 거름이 될 것이리니

인생은 초연해질수록 우주는 넓고

불가해한 것이 덕성을 따름을 알게 하는 것이 긴 세월임을 알게 하는 것이니 

아이야 팔색조는 될지언정 청개구리는 되지 마라

아이야

왕따는 생각보다 극복하기 힘든 것이라고 하더라도

성장 중에 경쟁의 치열함을 배우는 것이 여기고

국방부 시계도 돌아가는데 문교부 시계인들 돌아가지 않겠느냐

그래도 존재의 가치는 하늘이 더 소중히 바라보는 것이며

인간은 천명을 알 때가 되어야 자기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음이다

 

 

아라한과와 부처

 

폐가 구름 한 숨과 같은 것이

빙산의 일각과 같은 것

본래 유빙의 돌출 부분은

공기인 虛의 용량(容量)인데

이 虛의 정체인 공기는 어름의 몸 속에 있고

수평 선상일 뿐인 것이 도리어 산처럼 드러나는 것이 됨인데

우린 이런 온도상의 그 빙각을 보는 것이지

모양을 지어서도 또한 그 것이다 따르지도 않아야 할

그냥 평이할 뿐인 것에의 모양을 의식하는 문제와 같이 

물의 공한 면의 기준은 아닐 수 있는 안목일 수 있는 것으로

물론 이러한 막일 수 밖에 없는 겻에서의 숨구멍이 수소라고 해도

물에 공기방울적 虛도 독립적일 만큼에서 나무가 된 것이니

물을 자의로 끌어 들였다

불로 자신으로 돌아가듯 흔적이 없어도

본래 공기였든 자신의 존재로 있기도 하다가  

다시 나무로 돌아온 실체로서

보란 듯이 물도 빨아들임의

그로 생명체의 온갖 화신을 연출할 수 있는 듯  

그 존재성 함량치와 어울릴 수 있는 듯

누가 유빙(遊氷) 속의 공기가 無色의 생명이며

이 것도 또한 나무가 되어서야

육질화된 정체로서 드러남이라는 것을 알까마는

주체와 객체로 선명히 하자면 

저 얼음이 육지로 나와 걸다니는 것은

얼음 속의 공기방울의 의지인 것으로의 몸으로 해서 

얼음을 머리로 함에  

이미 한 씨앗을 깐 듯이 한 것의 출행성과 같은 것이

나뭇가지와 같이 난 것의   

굳이 배보다 배꼽이 크다 않더라도

이 우주에 인간보다야 큰 것이듯

공기방울보다 작은 얼음을 만지고 산다 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니

얼음을 머리로 단

공기방울이 고체화 되어 탁한 몸으로서 숨겨진 것이 많다 한들

좀 더 투명히 보자면

심장이 물에 얼룩거리는 그림자같이 뛰는 것인 것을  

 

 

 

뭐 꼴에 밝힌다고 할 것까지야

 

성애란 ㅏ에 한 됫박 깍아 애인 것

안으로 싸고 싸매니 성에가 정기와 같은 것

굳이 다 날아가지 않더라도

다 그려나갔던

예술혼

지식혼

특히 갇혔다 싶은

벽이다 싶은 것에

더욱 진하게 와 닿는,

굳이 단번에 확 녹이지 않더라도

이도 다 산이 있어 산으로 오르는 것일 뿐 

꼭 꼴에 밝힌다고 할 것까지야  

 

 

 

우리가 12 神 중에 날개가 있는 것은 닭이요

또한 알을 낳는 것은 뱀과 닭이다

뱀과 닭이 닮은 점은

걸음의 퇴화와  비상(飛翔)의 퇴화일 것이다

우리가 세포를 피우는 것은

식물성 기초의 물질적 꽃을 피우는 것이라면

우리의 심장은 天上界의 꽃처럼 피어

서로를 마주하는 눈빛으로 읽는 것과 같이

우리가 충(蟲)과 난(卵)를 따로 보는 관점에서의

닭이란 개념은 卵에 속하는 것으로서

卵이란 자체만으로 우주적 메카니즘이 있는 것으로

우리가 계란이 닭으로 날으는 것이 아니라

닭이 우주 속의 계란으로 날아가서는  

어느 혹성인 냥 다다를 수 있는 것같은,

마치 누른 소장(小腸)과 하얀 大腸이 감싼

어느 자궁에 다달을 것같은,

그 하나같은 天上神의 잃은 날개와 같은 것에서의

인간계에 머물다 퇴화된 쪽의

 

 

성에의 음각(陰刻)을 너머 

 

비오는 여름날

무의식으로 성에 낀 차창을 닦는데

지금까지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마음이라는 것이 

왜 갑자기 선뜻 위로 위로 올라가며 닦고 싶은지

그저 시야나 트일 정도로 지우고선 바라보던 것이

더욱 편안함을 느낀 듯이 살아온 나날같은 것에서

마치 전경(前景)과 도리도리짝짜쿵 정도의 눈높이로

손을 마주 돌려댄 듯이 유리창을 닦은 듯,

그러다 손바닥을 마주친 듯이 

거리의 얼굴들을 바라보지 않았나 하는,

이젠 나만의 시원한 바람이 심호홉하고 싶은 것인지   

창공도 틔워 놓고 싶은,

그리서 산처럼 올리고 올리며 닦아보는,

음각에 나의 양각( 陽刻)이 미치는 것같은,

뭐가 그리 바쁜 것이었는지

한갓 습관성에 맞물린 자신만의 널푼수인 것을

늘 각박함인 듯 

다만 오래 묵은 것이라는 것으로 드셀 수 있는 것같은,

다만 틈을 내는 데도 뭐 그리 인색한 것이였는지

어쩌면 분재(盆栽)의 미학과 길들여 간 정서성의

가장 경제적 적절함에 있는 온화함을 유지하려 했을지 모를

늘 그렇게 성에를 닦았는지 모를 세월같았던 것

 

 

 

수리적(數理的) 점진성(漸進性)과 진퇴신(進退神)의 적용력

 

우리가 알콜 돗수가 같다고 해도

질감의 차이라는 것이

물량은 비교적 많은 것에다

탁도(濁度)로서 많은 부산물이 낀 듯한 탁주(濁酒)가

그 이름으로 따를 때의 父가 進神이면 탁도(濁度)가 되는 것이요

또한 그 순도는 맑으나 

알코올의 돗수가 차이를 보이듯이 이름을 보인다면

그 父星이 進神이면 알코올 도수(度數)일 수 있는 것이 듯  

세밀함이 필요한 것으로서의 탐구력의 고취가 절실한,

모든 것이 머물 수 없음이요

그렇다고 그 주체의 핵심을 외면할 수 없음이 또한 공부인 바

반비례적 차이가 날 수 있는 모뎀과

정비례적일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한 것에서

결과론적 체계의 구성력의 확보가 요긴한 바의  

 

 

그러터기가 아무리 역사성이 깊어도...

 

그루터기가 아무리 역사성이 깊어도

그 그루터기에 새순으로 덧난 나무가

호수의 파문을 보듯이 

나이테를 보는 것이 실체이듯이

우리의 육안과 인식보다는 다른 순수성인 듯이

마치 이 새 순의 나무를

그루터기 자신의 뿌리로 알고

그 논조가 땅을 파고 들 듯이 하는,

마치 멀쩡한 발톱이 살을 파고 들 듯이 하기에

당하는 반사작용과 같은,

그러기에 나무는 그루터기에 無心을 강조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이 부패성이어도

나무는 다 삼켜 키가 커듯

시간이 섬유적 길이가 있음에 끌어붙인 듯

또한 여기에다 한 순간이라도 정점(停點)이면

살찐 입체성이 일어나는 듯

공간적 임의성이 일어나

속도 간의 차이에 막이 형성되어

서로를 대상적으로 느낄 정도일 때  

바람의 섬유성에도 자의로 불어넣을 수 있는 것

어쩜 나무도 제 기능을 위하여

뚜껑을 닫아야 하는 듯 양산(陽傘)과 같이 함은

저 플라터너스 기둥의 얼룩이 

젓갈처럼 허물어져 삭은내을 낸다고 할지라도

그 존재는 이미 훌륭한 효소화의 몸집인 듯이

산(酸)이 酸으로 나아가게 하는 듯 실어나르는 것이

마치 밀어내는 듯이 하는,

우리가 젓갈류같은 것에도

공간적 ㅎ 형의 장독으로서 아니라

먼저 강한 산성(酸性)으로서 뻗쳐 나가는 진행형을 타고

마찰적 의식에 놓은 것이듯

여기서는 요소로서의 ㅇ이라 할 장독 

또한 원소 8 족 태두리로서의 장독

이 것이 물 속에 공기방울과 같은 때

장독과 원소 8족에 잠긴 내용물과 함깨 하여

한 몸의 숨을 쉬는 듯 신체를 이룬 듯 꽉 찬  

한 주기율의 몸체를 이루는 듯이

ㅇ에 뚜껑을 얹음에 ㅎ인

우리의 육신인 요소가

효소화된 위대한 유기물적 차원의 행위 

이는 곧 머리는 하나이나

양두엽으로 하는 것은

육체의 행위를 하는 몸이라는 것으로의

유기적으로 성장이 가능한 바이나

그렇다고 꼭

동물이 식물의 물구나무 형태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

그냥 두뇌의 양두엽(兩頭葉)이란 것이

오장(五臟)이 있는 쪽으로 나무가 뻗듯 커

팔과 다리는 수액처럼 놀리는 것이라  보인다 해도

이보다는 

좀 더 생각의 뇌리에 여울진 곳으로 차고 나가는 것으로 

허공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함에  

머리칼이 죽은 형태라 하나 

산 촉각을 뻗친 형태가 고스란한 것의  

허공의 뇌파적 나이테를 메아리인 냥 알아들을 수 있을 만치의

촉수와 같음으로 교감된 것이 있는 듯이  

이는 뇌파에 의한 어떤 회절성이 나이테의 띠를 형성케 한 듯이

이 것인 우주의 

곧 양두엽이 그루터기 우주를  넘보다

이마에 주름살을 긋는 헝태를 이루는 것으로

이러다 어느 한 쪽에

그루터기를 비집고 나온 순이 있을 때

이는 곧 해탈의 경지요

완전 구족(俱足)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이렇 듯 파종의 씨앗이 되기 위한

심안(深眼)의 눈을 내기 위한 열성들인 것이며

그러기에 신비롭게도

새순이 나는 자리가 중앙이 아닌

또한 중간의 회전율에도 아닌

오직 가장자리를 빌어 나오는 듯이

가장 험한 대지인 곤토(坤土)의 자리요

원소 8 족(族)에 자리에서 구족되게 있어남으로서

우린 뿌리를 나무라 하는 겅과론(經過論)에서

나무를 뿌리라고 하듯 거울을 보듯이 함의

 

 

원소 팔족적 (八族的) 거울

 

원소주기율적 모태(母胎)를 이루는 것으로

그걸 감싸는 8 족적 흙의 감쌈이 있어야

다시 본래 면목도 될 수 있음이거니와

유리도 바탕에 흙이 발리어야

거울이 된 밭의 두께인 냥

그림자도 외피적 쟁기 깊이 정도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림자의 모태일 수 있느냐의 

과연 그 그림자는

이승의 한 주기율 상의 그림자로 비쳐지는 것인가 하는

흡수 속에서도 장막(障幕)이 있듯

다른 주기율 上으로도 함께 드러나는 것인가 하는

 

 

몸과 맘

 

이 몸이라는 (字形)은 모로서 받쳐 들고 

아래 입 ㅁ으로서 나오게 함이 몸이다

즉 이 원소 8 族까지 찬 모의 성숙도가 

한 주기율을 갖춘 몸인 것이라 할 것이다

즉 마음이라는 것도

쟁기 깊이의 두께로 일어나는 

씨앗들의 그림자가 맘마와 같은 것으로

모라는 뜻과 같은 것이나

다만 세포적 맘이라는 것과

하나의 몸이라는 것에는

그 규모성을 어떻게 지을 수 있느냐도 중요한 것이다    

 

 

중행도(中行道)와 겸손

 

우리가 中行道라 함은 자연발생적으로

그 맛이 적절해

별나게 외람됨이 없다는 것인데 비해

겸손이라는 것은

마치 떫은 낙시(落枾)를 소금물에 담구어

그 맛이 밋밋하다고 할지라도

공복을 채울만한 덕행이 우리의 옛 어머니만 같다 해도

마음의 감동이 더더욱 우러나는 맛과도 같음이라

 

 

그림자도 두께가 있는 것인가

 

그림자도 두께가 있는 것인가

있다

대기권 아래 나무만한 두께요

중력권 아래 사람만한 두께이다

물을 쏟은 듯

잉크를 쏟은 듯

대지가 등이 되어 주기도 하고

숨구멍이 되어주기도 하고

 

 

X 유전자와 Y 유전자의 배속

 

소(素的) 색과  파동(적波動的) 색에서 보자면

우리가 분자 공학을 눈이라고 하고

흰색이라고 하고

본래 분자공학을 설산과 같다 함이다

이 걸 건축학이요 축조학이라고 할 때

이 전체성이 눈밭과 갗이 흰색을 띨 때

이 걸 닭이라고 가정할 때

이 눈이 녹아 물이 되어 무채색이 될 때

이는 원자의 수리학적 패턴에 놓인 것으로

하나의 수소라는 유전형이나 독자성으로

수리학적 배열로 놓임과 같다고 봐야할 것이다

우린 총체성이 흰색인 것이니

거기에는 다양한 축조가 있다

그렇다고 다양한 색은 아닌 것이다

그로 좀 더 부각성으로 봐 드러나는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色은 그 섬세성으로 드러나는 것이기에 계란이 되는 것이나

만일 이 것을 원소주기율적 색깔의 실로 뺄 수 있다면

소적(素的) 색깔로 나타나는 것은 Y 염색체가 되는 것이고 

波動的 색깔로 드러나는 것은 X 염색체라고 할 때

주기율과 주기율의 수용으로 XX가 되는 과정

주기율과 수소만으로 이루는 XY가 되는 과정

정자의 파동적 수소적 리듬

난자의 주기율적 원반형의 소반(巢盤)과 같은 것

그러면 과연 수소와 정자를

파동이 아닌 똬리형이라고 할 수 있는 차이만큼이나

공간을 그리 수 있는 형태 등

이로 보면 주기율적 모계(母係)의 유전형을 닮기도

원자적 부계(父係)의 유전형을 닮기도 하는

메카니즘으로 형성이 되어 있지 않나 하는

이 것이 원소 주기율의 8 족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때

카멜레온의 피부에 띈 색깔의

주기율 상의 어느 원소로

출몰이 일어나는가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이 된다

 

 

힙겨워도 속방(俗方)으로 한 뿌리 뽑히고 말 일이지

 

주군(主君)이 날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날 버림이다

아!  深山에는 선약(仙藥_이 많음을 익히 아는 터

진정 버리지 않았어도 내가 버린 터 

내가 주인이면   또 하나의 내가 客이요

내가 주인이면 또 하나의 내가 주인이요

아! 찬 골짝에도 단방(單方)이면 만병이 나을 것이나

세상사 한 뿌리도 못 쥐고서야  어찌  살은 고마움이라 할까

힘겨워도 俗方으로 한 뿌리 뽑히고 말 일이지     

 

 

달걀이란

 

달의 원심력이 지구의 구심력과 함께

달로 낳는 것이 아니라

날로 성급한 듯이 낳음에

날과 달이 가냘프도 나오기 위함이다

곧 달이 모태가 됨이 아니라

날이 모태가 되어 나기에

날 것으로 잘도 팔리는 것이 아니든가

날이 해로 날으기 위하여 지구알을 낳는데

굳이 포유로 키우는 달

참 신기하지

달의 주기를 다하는 날이 종명이니

그래도 날이 해로 가기 위한

꼭이요 꼭이요는 무엇인가

진정으로 저녁으로 거둬들이는 몸집이

인문인 육임의 비결이로구나

 

 

흰 색과 검은 색은 몇 끗 차이인가

 

앞통수에만 노는 것

뒤로 끌어들여 뒤통수를 보게 하니 검은 듯...... 

불도 꺼지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 하나

재가 남는 것이요

재는 원근법에 있어 제일 가까운 쪽이 불이라면

점이 되는 부분이 水

그 중간 부분이 木이듯

불은 전극의 확장판에서 탄 것이요 

나무는 水의 확장판에서 뻗은 것인 것

水로 간 것은 재인 것이요

이를 날아 준 것이 土요 金인 것

三元色이 희어도

일곱 빛깔로 손 잡고 춤을 추게 하니 검은

즉 뒤로 끌어 들여 뒤를 보게 했음에 검은

 

 

원소주기율적 배속력(配屬力)의 궁통(窮通)

 

 일례로

카멜레온의 현재 등 빛깔이 무엇이가 하고 볼 때 

五行이 木이면 靑이요

火이면 赤色이라고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조직적 움직임은 마스게임과도 같은 것인데

그러면 원소 주기율 상으로 色으로 볼 수 있는 것

이 또한 색을 띌 수 있는 한 단위 조직의 범위와

이에 원소 주기율 상으로 배속할 범주를 마추는 것

또한 신경 연락망의 기능성으로 봐야 할 차별성 등

의문이 섬세해야 하는 이유의

논조의 발전이 과학의 정밀성과 맞물리는 것이기에

논리란 것 자체가 암기식에 비하면 매우 숨막히는 것이지만

그 것도 늦고 더디나 서서히 틔여가는 맛이로 길들여져야

몸에 배인 자발적 탐구자가 절로 많아지기 마련인 것

 

 

우린 과연 긍정적 평화인가 체념적 평화인가

 

버스에 한 노파가 타는데

젊은이가 멈칫멈칫하다가 자리를 내준다

또한 앞에 자리가 나니

노파와 같이 온 젊은이가 앉는다

그리고 머지 않아 한 중늙은이가 탔는데

또한 이 젊은이가 자릴 내주려고 일어서는데

노파는 내릴 때가 멀었다고 주저앉히려 하나

막무가내로 일어서는 것에 불만이다

왠지 묘한 기분 속에

어느 한 화제의 뉴스에

노파와 처녀 간의 싸움이 언뜻 겹치는데

과연 우리는

망각의 강

치매의 강을 접은

주름의 강을 보듯 얼굴을 대하듯이

철학자보다 철인같다는 생각에

인생은 주름 폭의 접경인 것처럼 그리 깊지 않은 것인지 모를

세상 널푼수라는 것

노파와 젊은 여자와의 싸움에 설마

젊은이가 먼저 욕하였겠느냐 마는

요즘에야 선후가 어데 있는가 할 정도이니

그 또한 무심할 수 없기야 하겠으냐 마는

그래도 젊은이가 지나치다는 것으로 

긍정적인 사회라면 극정적인 사회

체념적인 사회라면 체념적인 사회

이 것 각자가 처한 위치나 기준에 따라서

달리보며 산다고 해도

다 평화로워 보이는 중에도

인생은 굳이 복마이지 않건만

복마에 휩쓸림에만 드러나는 것만 난 것이듯

세몰이는 회오리와 같은 길에

이미 세분화 하기에는

파도와 같을 뿐

가라앉을 뿐

 

 

무리라는 비중

 

우린 물질적인 비중만 해체하면 되는 것일까

과연 다른 것은 없을까

어쩜 물질이 천한 것만큼

경직성이 희박한 것인지 모른다

즉 결벽성이 희박한지 모른 것과도 연계선인 것같은

또한 어느 정도의 핼운같은 숨통도 있는지 모른다

가장 구태의연하면서 매우 순수가 높음을 강조하는

그러면서 이익이라는 것에 몰두해 굳이 먹이라 하지 않아도

정당성에는 먹이여도 상관 없는 것이듯

문어발 식으로 잠식을 해도

그 건 큰 것만큼의 큰 정당성이 늘 부가되어야 하는

이러한 것이 늘 정신세계를 장악하면서도

우리가 이념적으로 순수를 강조해도

그 어느 나라보다 민주적이지 못한 것은 세습이라는 것이다

그 기본성도 극복 못 하면서

즉 몸에 해롭다는 답배도 끊을 신념이나 의지를 갖추지 못하면서

자꾸 앞날읜 건강만 이야기하는 수준이듯

우리가 자식에 대한 세습적 이해와 관대가

좀 더 정신적 세력 간에도 물질을 능가하는 판에

물질적 비중의 편중을 해결하면

정신적 편중은 이보다 더 관대하다는 보장은 있는 것인가

우리가 좌청룡 우백호라는 의회적 협력이라는 것보다

한 세력이 모양과 방식이 다를 뿐이지

자신과 같은 세력을 억누르는 역할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니  

영혼이 영혼에 무슨 순도성인 냥 짓밟는 일이 자행되고

차라리 영혼이 팔렸다는 것이

훨씬 자위에도 그나마 숨통이 될 수 있는

밤낮 주입식보다 사고성을 외치지만

늘 주입식으로 관념화하는 재미에 더 능청이 늘어난 듯

차라리 물질세계에 쪽이 팔려도

중형차가 창을 가리어 편하면 그 뿐이라고 해도

뭐 팔렸다는 인식에는 나름의 평등성과 같은

뭐 상스럽더라도 개똥밭에 함께 딩굴었다는 자위도 되는 것에

오히려 금은 보석이라고 치켜 세울 때

어쩜 지배 될 때는 똥같은 기분이어서

개똥도 똥이라 할  수 없는 것만큼 보석이라고

이미 지배되었다는 기분은 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든가

 

 

물과 물질이라는 공통점

 

물과 물질이라는 공통점에는

사람의 마음이 얼기설기 얹힘에

비단결처럼 출렁이는 바다와 같기에

자세히 보면 명주실이나

그렇게 붙을 이는 없고

물결이다 차도다 하다가 물에 가라앉고 마는 것

어차피 우린 물이나 물질에 가라앉고 마는 재생

그렇지 않고 떠돌아 다니면 유혼일

 

 

집단(集團)과 짚단 무리(蕪理)와 무리(茂理)     

 

집단과 짚단 무리와 무리     

이 것도 장난으로 보면

말 장난이요

글 장난인 것 같다

허나

한 번 깊이 생각해보면

심오해 머리가 아플 정도는 아닌가?

집단이 짚단이라면

어느 정도의 대궁이 비어 있는 것인가

또한 무엇이 비워 지는가

완전히 비워 늙은이 정도면 도리어 질기다

어중간은 부러진다

무리는 무리수 없는 없는 것인가

우리가 무성함은 자연 그대로 피는 것이어야지

그리고 그 것도 독자적인 하나인 무리인 것이지

수량만큼의 數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닌가 

즉 량(量)으로만 편다는 것이 

그림자만 크게 지을 수 있다는 것과

이는 어떤 식이면 그림자로 대위되는가 하는,

돈도 똥이 되는 해학의 차원도 들어가는 것이지만

경직된 사회란

똥도 다이아몬드를 받는 듯이 받들어야

참 고운 말 속에서 들어올 종자가 되는 것이니

 

 

위도(緯度)와 경도(經度)의 바코드

 

본래 경도를 날의 바코드라 함이요

위도는 달의 바코드라 함이니

달은 계절을 담고

말은 밤낮을 담으니

아! 계절의 수확 진달래 酒여!

기우는 달의 잔이로고

 

 

천안 삼거리 흐응~ 흥~

 

왜 능수(綾垂)라 했는가

어쩜 기둥을 능(陵)처럼 감싼

날은 육근이 됨이요

육감은 우주적 진도의 세포력만큼이나

민감하고 섬세한  

바랬는지 모른다

어쩜 굳은 버들가지의 빗겨지지 않는 머릿칼인 냥

마치 세류의 꼬리 같이 유성의 꼬리인 냥 하다가

이 지상에 박혀 놀란 냥 쭈뼛 선 냥의

어쩜 이 놀라움에 부채질이 바람결과 같은

세류장화가  바위를 녹일 듯이 하는데

그 속에서도 거칠고 험난하거늘

충격이 크게 떨어질수록

그 여율의 겹만큼이나 겹겹이 두께와 같은 듯

흥타령에 날개 쭉지가 있는 것에

들어본 팔과 같은 듯

 

 

시간적 때와 공간적 때

 

공간적으로 질적 차이를 드러냄과

시간적으로 영원성을 확보하려는 영구성 다지기 같은 것으로

한 치라도 더 욕심을 채움이 장래성과 같은 듯이 하지만

인생은 그만을 채워주지 않음에

한 촌수가 멀어져도 더 멀어지는 것을

마치 이란의 팔래비왕 시절과

지금의 성자적 시절의 통치에도

다 서로 양면을 비춰주는 대위가 되는 것이듯

우리나라의 시각으로 보면

다 시간적 때인 것으로 보는 것이니

다만 저들로서야 공간적 때밀이 놀음과 같을 뿐의

 

 

사람은 달이 낳고 짐승은 날이 낳고

 

사람은 달이 낳고

짐승은 날이 낳는 것이니

사람은 달에 묻혀 매미가 됨이요

짐승은 날에 따라 날개를 단다

달도 임신을 하며

공간적 계절의 비중을 맞추어 출발하듯이

한 틀의 회전율 상으로 수명을 놓음에

또한 이를 따름에도

이 걸 하나의 공간적 수평으로서의 

시간적으로는 엮기 위한 것

날로 옮겨 감에 날고기도 채워가며 먹는 맛이 듯이

이 접근성으로 날개의 천사가 되려 함이

줄곧 시인의 시에서나 풍기는 맛은 아니리니

 

 

짐승은 말했다

 

짐승은 말했다

왜 짐승이라고 했느냐고

이는 곧 짐승은 왕이 될 10에 乘과 같음이요  

하잘 것 없어보여도

짐이 되고 왕이 되는 승계라고

사람은 그 승단에 있음에도 사사로이 넘침이라  

 

 

존재!

 

물 위를 걷는 나한이라고 해도

仙眼으로서야 놀랄 일도 아니라 하거늘

바람이 그렇게 걸어갔다고 해도 갔는가 할 뿐

뭘 그리 수선떨 일도 못 되는 것인 것을

또한 생사를 자유자재함은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으나

그 것 또한

맹목적인 보살행보다 낮추어 보았음이 禪이거늘

날 것과 익힌 것

인생이 꿈이라면 익히 아는 것이요

생사를 초탈했다면 날로 아는 것

다만 날 계란이나 익은 계란이나 같은 것은

까봐야 아는 것

익히 알았다면

꽃 피는 쪽으로 온 것이요

날로 알았다면 날개가 있으리라

익히 알면 다시 남쪽으로 올 것이요

날로 알면 끝까지 서방으로 갈 것이니

 

 

어떤 편중성이든 그 균형으로 살게 되어 있음이다

 

사주에 목화통명은 소리를 잘 한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꼭 木이 나무로만 물상이 아니라

소리가 된다는 것에서

그 기교가 나뭇가지 같음이요

火는 가사요 표

식이라는 것에 혀의 바탕에서 노는 것이요

발음의 반판에 놓임이라 하는데

이에 비해 사수에 금수가 많은 유형은

노래방에서 노래를 잘 부르지 않거니와

어느 모임에도 목석과 같을 때가 많다

설령 마음이 따라준다고 해도 마탄가지이다

이 것은 태생이 그러 하니 굳이 나무랄 일이 못 된다

또한 목화가 센 편은 시끄러운 편인데

금수가 많은 자는 그렇게 더 느낄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나무랄 것은 못 되는 것이다

 

 

날 것과 달군 것

 

짐승도 나라는 것이 있으니

그래서 ㄹ에 올려 놓음이 날이라

즉 날 무시하지 마라는 것이니

나각 날개를 단 것이니

달보다는 작은 쟁반이지만

어미는 날처럼 빨리 되는 것이요

새끼도 날처럼 빨리 되는 것이니

어쩜 달이 날보다 더 처진 것같은

날은 해와 맞물린 퍼짐성이기에

어쩜 달은 시의 북실과 수놓기 좋은 듯

달은 섬세하게 시의 실을 빼는 것

달의 임신은 두뇌를 짰고

날은 千 里를 알고

달은 1000 분의 1을 안다

 

 

市와 시(枾)

 

밤의 야경을 보면

도시가 야경에 익어가는 것이

꼭 감이 카바이트에 익는 듯 해도

감은 홍조를 넘지 않는 볼기짝같은

땡감같은

아무리 칼칼해도 감의 감수성으로 익고야 마는

그래서 우린 독한 중에도 사랑을 더욱 느끼는

이는 곧 市가 枾

약간은 떫은 듯한 가시가 남는 듯이 해도

말랑말랑 홍시는

도시의 어둠에도 그 얼굴빛을 바꾸지는 못할

아! 도시는 빌딩의 열기에 홍시처럼 붉어지는 야경

 

 

신장로 로타리

 

허허 벌판같아던 신장로 로타리

빌딩들이 차고 보니

신호등이 제 주인을 만난 듯 살맛나는가 하면

기다리던 차도 허허로움을 뒤로 한 채

빌딩을 타고 올라간다

그 사이 붉은 신호등은 빈대떡이라도 구웠는지

떡 본김에 재사도 지낼 듯 제주을 맞을 광고니

왠지 내 감상까지 제삿밥된 것같은

이도 다 눈칫밥 반사신경같은 것인가

빌딩은 아무 상관 없는데

그래서 시여서 좋을 때도 있는 것인가

 

 

허나 깨달음의 자리는 되는 것이니

 

노래를 불러도

인생의 질감이 그대로 나타난다 것이 그리 흔한 것도 아닌 터에

특히 홀로써 싼 것도 인위적 구성력과 같은 것이라

장엄하기는 하나

도리어 격정을 부추긴 귀족적 첨예화 같은 것으로

상을 쌓든 탑을 쌓든 끝 없는 욕구와 맞물리기도 하는 것에서

그냥 천안삼거리 흥 흥 정도

특히나 혼자 흥얼거리며 가도 좋을

삼거리에서 두 거리는 이미 떠난 보낸 듯이

어쩜 길도 나로 다함과 같이 인생 여정과 같은 것에

이젠 홀로 한 잔 술에 거나히

멀어지는 흔적과 같이 걸어도 좋을 흥타령이 부를 냥이면

외롭다기보다

능수버들마져 자유롭게 흔들려 좋은 것을

아! 인생 너무 거창하게 보았음이던가?

누구든 스스로 희생하기에

나도 나만 챙길 수 없는 도리란 것일 뿐인 것이

오직 인간일 뿐이라고 나타나기에도 너무도 창망한 것이든가

허나 떠날 수 있음보다 깨달음의 자리는 되는 것이니

 

 

아무리 섬세한 海馬도 乾의 馬이다

 

馬는 乾이라 함이다

乾은 極陽이라 함이다

이는 우주요

이 공간을 가로지르는 페가소스라 함이다

마치 신이 나무에 가두어 베어 냈을 때를

이 우주의 갤럭시라 함이요

물에 가두어

나이테가 물결만 했을 때

천하의 페가소스도 海馬가 됐음이니

바다에서도 어미와 같은 캉가루와 같이 되었으니

애비가 새끼를 기르는 것이

어미의 섬세함 못지않은 것이지 않은가

 

 

 

어떤 것은 정신적인 것으로

어떤 것은 물질적인 것으로

다 집단으로서 틀을 보이려 한다면

이는 다 때의 문제인 것인 것이니

공간적으로 때가 아니라로 하는

세포적 심층으로 다루려 하는 부류와

시간적으로 보는

씻으면

지워지면

그 근원조차 찾을 필요가 없는 

다 순간적 허울로 보는 것에서의

다 세포도 하나의 특성 상의 부산물일 뿐인 듯이

다만 외양적 본질의 부산물인 듯이 한다만

이 세포 하나가

우리의 두뇌와 자율신경과 운동 신경을

하나로서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의

이 공간성과 시간성이라는 것에는

우리가 중동의 그 영적 순수성을 강조해도

물질과는 상관 없는 듯이 행하며 싸우는 것도 때인 것이요

재벌들의 독점적 행위로 싸워도 때인 것으로

우리는 이 것을 시간적인 일부분으로 간주할 때인 것으로 하지

공간적으로는 너무 시도 때도 없이 마찰이 일어남에

꺼리낌만 일어나는 것을

왜 우린 그 걸 받들여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가시 돋히지 않아도

침묵은 선한 무게가 있는 듯이

인생 또한 비중 있게 사는 것에서

다 시간적 명멸에 면모도 바뀌는 것을

 

 

서로 간의 거울이라는 것에서

 

남의 마음을 일으켜

다 내 자의식이 된다면

그 일어난 원천으로서의 행위는

내 의식상이 남의 마음에 끼는 바이니

날실에 드리워지면

짐승 새끼도 귀여워 죽겠으며

그 초능력은 신기에 가깝고

달실에 드리워 지는 병행선 같은 것

사고력은

프라즈마의 풍유를 즐기며 쿼크까지 갔지 아니 한가

 

 

삽살개 가리마 너머의 도

 

 제 얼굴을 가리는 능선( 陵線)같은 

어쩌면 태생은 용맹 그 자체였는지도

허나 인생임을 먼저 알아 가렸는지 모를

그는 충실한 보디가드

그는 인생이 무덤이라고 않는

삽살개

가리마 걷어 올리는 아침과 같은 것이라고

공자님게서도 아무리 뛰어난 지혜를 가지셨다고 하나

그도 능수로 가려졌음을 가르쳤을

이 것은 봄으로서 그 것을 안다고 해도

그 것은 거기 가서의 문제라는 것을 말하는

 

 

개의 천적(天敵)

 

우리가 五行 上으로 볼 때

개의 천적은 프로메테우스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불을 지키던 개가

프로메테우스에게 도둑맞고 쫓겨나

도리어 인간들에게 그리 고마울 수 없는

보답이 묻은 듯 그리 사랑스러울 수 없는 듯

이 건 마치 동굴이 원시인의 불씨를 지켜준

보답으로 대지가 인간으로 환원된 듯이 고마운 것같은

어쩜 그런 정으로 쫓아온 것 같은

사람에게는 사랑을 받는

어쩜 그리도 애지중지할 정도의

일간의 지혜를 알아차린 듯

총명항이 숨겨진 듯 눈치가 좋은

짐승도 모성이 묻어나오면

어떤 인간과도 지식의 차원을 넘는 것이듯

다 벽을 두고서도 인간과 같은 눈치같은

지혜가 열려 있는 공감같은 것에서의

 

 

土의 소화력

 

소는 위장이기에 되새김질을 물질적으로 한다

그리고 네 개의 수소 자리로 한다

羊 또한 마찬가지이다

또한 戌 土는 脾臟으로 하여

마치 비장을 개처럼 잘 다루어야

당뇨도 없어지는 것과 같은 비장의 안목과 같은

개라고 할 수 있음인데

어쩜 小腸의 안목과 같음이요

十二支腸이라는 것은 辰과 같음이니

 하루 하루마져 日辰이라 함이니

이는 다 辰으로 十二支를 포함함이라 하는 것으로

인체학적으로는 배치해 볼 필요는 있는 것이다

여기에 디연 물질과 반물질 간의 소화력은

어디에 비치된 것인가도 연구해야 과제가 된다

 

 

침묵은 맑은 물을 마신 것같음인데

 

아! 음악의 감동은 무엇인가

여기에도 마음이라는 것이 남았기에

분진처럼 잠자다 일어난듯

감동이 일어나는 것

모짜르트의 우수

차이곱스키의 고독

베토벤의 의지

바하의 경이 등

다 함유하여도

한 생의 우주를 넉넉히 살아온 듯

이 것이 소리의 섬유질을 침묵이 쥐고 있은 듯

깨어나는 일의 저변성같은 것

침묵은 과연 이 한 쪽만으로 자신의 맛이 될까 하는

침묵은 맑은 물을 마신 것같음인데

 

 

수소와 원소 주기율

 

龍은 동쪽인 方局이요

정자(精子)의 창고인데

우리가 정자 상으로 색깔이나 성정을 띄면

이 것을 원소 1 주기율 상의 1 족(族)인 수소라고 할 때

이 것은 물비늘빛과 같음이고

쇠의 마찰면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무지개색과 같다

이 것이 핼륨의 4 와 합하면

다섯 번째의 자리인 辰이 되는 자리인데

이 것이 한 주기율의 몸이 되는 거죽을 띄는 것에서

합성적 색깔을 띈다는 것이다

즉 子 위의 납갑(納甲)이 丙이라고 할 때

물  비늘 색깔이 붉은 색이요

수소 내의 입자색이 붉은 색을 함류한 것일 때

이 것이 원소 8 족인 핼륨으로 이동하여 몸을 이룰 때

이를 원소의 실체보다 주기율의 실체

즉 용의 실체로 봄인데 

이 수소 원자의 붉은 색이 핼륨의 4 단계를 지나면

생물의 한 몸의 주기율이 형성되면서 

그 거죽에는

이 丙과 辛이 합하여 水가 됨에 검은 색을 띤 흑료(黑龍)이 된다는 것이다

즉 임징(壬辰)이 된다는 것인데

이러한 방식으로 애를 밴다고 임신(姙娠)이라 함이다

도한 이 龍의 東方이라는 것은

신체의 팔다리에 근육에 영양이 저장되어 비축됨과도 같은데

이 흑룡이라는 것은 고정형의 색깔인 것으로

이를 화학적 원소로 분리를 하면

丙과 辛의 두 가지 색을 나타낼 수 있으며

이 것은 유전자 X와 Y의 구성 요소가 드러난다는 것이요

즉 丙은 陽인 Y 유전자가 되고

辛은 핼륨 상의 X 유전자 됨인데

이 것이 내재된 水의 검은 색의 요소로 자식이 나타난다 것이 된다  

이 것이 잘 활용된 국소적 기능성을 깔았다면

카멜레온처럼 색을 변화시킴이 자유자재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대리석도 바람 든 무우와 같을 수 있구나 싶은

 

창백한 얼굴에 진이 없어 보이는 듯 한 아이 업은 아낙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인 즉은

남편이 죽었다는 것과

그 것도 중학교 다니는 큰 딸 왕따를 당해

패인이 되다시피하며 학교엘 보내지 못 하는데

가해 아이들은 학교를 버젓히 다니고

도리어 가해 부모들이 적반하장 격으로 몰아 세우니

분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집에 드니

아이들이 올망쫄망 거기다 늦둥이까지

어찌 그리 순둥이같고 착해 보이는지 가슴이 꽉 막힌다

무어라 말을 해 주어야 하나

남편이 한이 많으니 천도를 해 주어야 잘 풀린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풀릴 것이란 돌봄이 이 아낙 외에 무엇이겠는가

이 아낙은 대리석 냄새가 난다

대리석도 바람 든 무우와 같을 수 있구나 하는

그랬으니 왔구나 싶은 삶

그래도 왔구나 싶은 삶

바람든 무우는 저리 가라할 삶  

다잡은 듯 단단함 속에도

숭숭 바람에 삭은 듯이 한

그래도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겠지

아이 눈만 초롱초롱하지만

눈동자는 변화가 없이 더욱 고적한 것만 같은

거기에다 내가 더 훨씬 멍한 놈같아 애써 눈길을 피하고 보니

어영부영보다도 더 멍청한 굴레같은 길  

주섬주섬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게 길을 나서는데

어쩜 아파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 더욱 빨리 외면이 되는 것인 듯이 

어쩜 그 표정보다 사는 걱정이나 방도나마

그래서 그런지 

제발 삶의 터전이나 빨리 잡혔으면 하는 조급증에만 매달려 있는 듯이

그래도 그 건 그 아낙의 일 난 나의 일

몸도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인가

남남이어서 좋은 듯

헌데 왜 그들은 남남이어서 좋은 것조차 못 되었으면서 남남이라는 것일까

 

 

卦의 전반성으로서의 이해

 

우리가 보통 금극목이면 호흡을 말하고

화극금이면 솥의 물이 끓을 때

화가 금을 밀어내고 틈의 줌으로서

공기방울이 오르는 것을 말하여

木은 산성이고 金은 알칼리성인데

목이 금에 막히면 공기가 막히는 현상

火가 剋하면 솥에 공기가 통하는 상

地澤臨 卦에 5 亥水 爻 空亡 발동에서

헝님집 방문에 화장실에서 화재난 현상의 논리

亥水가 初爻 巳火를 누른 원리가 되는가

과연 공망은 空喝衝이 되어 불은 일으키되

제압을 못 하고 번진 현상인 것에

핵심적 논리가 되는가 하는 것이 있듯

접근해야 하는 연계성으로서의 추이의 중요성

여기까지 미쳐야 보편 타당성이라고 봐야하는,

식견의 진보와

知性의 온건적 기반이 되어 있는 차원에 있는 것이라고 봐야

최소한 아카데미적 서평(書評)은 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

우리가 水니 木이니 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촉발하는 분기점내 에서의 속성이라 말할 수  있는데

즉 그 물질이라기 보다

그 눈금 안에서의 소재성을 말하는 것으로

火는 그냥 火일 결우

공망된 水는 액체(液體)로서의 水가 아니라

기체로서의 水 즉 질소(窒素)를 말함이고

木이 공망이면 메탄 가스를 말함인데

亥水의 공망은 공기 중에 질소가 없다는 의미이고

이미 火에 대해 억제력의 상실에 있는 데다

타고  그을릴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에서

五爻가 動했으니 

亥水가 巳火를 충(衝)하여 셩냥 켜듯이 했다고 봐야 함인데

고로 밀폐된 공간에서 성냥을 긋자

폭발하여 얼굴의 화상에다 머리까지 그을렸음이라

이렇듯 성향으로서의 파악할 일을 

꼭 경직된 소재(素材)로서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그 상대성으로 움직이는 동향으로 규정 지을 수 있는 것으로

그래서 화학적  변화의 물질이라도

주역의 오행성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運行의 한 달이 십 년이 되는 이치

 

남섬부주라 함은

인간의 꽃과 함께 지고

광합성으로 일어섰다 지는 것이고

인간의 수명은 꽃이 핀 동안이라는 것이다

화무십이홍이라 했던가

이 것을  하루를 일 년이라고 할  때

12 시간으로 현미경적으로 확대 되어 간다고 하면

12 년이라는 풍선인형 시간의 굴레 같은 것이 지나간다

그럼 10  일라면 120 년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태양계라는 것은 꽃이고 남쪽이다

 

 

남섬부주와 태양계

 

우리가 지구의 자전이 낳는 허물을 확장하는 것이

달의 공전이라는 것인데

어쩜 우리가 지구를 훼손하는 업도

고스란히 달의 자전으로 감아치기에 벗어날 길이 없는지도 모른다 

파도가 여려 겹의 주름이 있듯이

한 번의 공전이 취급하는 동안마다에

그 원주(圓週)의 거리를 곧게 펴 미치는 행성과 같은 것이듯

별의 品性을 매기듯이  

오행의 점진성으로 물질성의 변화로까지 본다고 할라치면 

한 파문의 점이라고 할 때

고정된 궤도라면 다음의 주름까지의 폭을

즉 다음의 행성의 궤도 다달으는 그 행성의 물질상과 같다고 볼 때

그만한 폭을 공전으로 얼레 감듯이 함으로

외변의 행성으로 나아감과 같은 일렬성을

공전성으로 만듦으로 이를 神과 같이 한다는 것인데

왜 神이라고 하느냐 하면 입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음에서다

태양으로 보면

지구가 한 바퀴 도는 동안

자신의 파장은 화성에 갔을 껏이라는 것이 된다

그러면 화성이 실제적으로 미치는 관계라면

그 중간에 지구로 감은 것은

자연 神과 같은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즉 태양계를 하나의 신체로 한다면

행성 전체를 두루 섭렵하며 오행을 설정하는 것으로

지구가 별도의 행성이라고 하나

오행의 부여에는

여러 행성과 함께 오장육부로 한다는 것이다

이로서 남섬부주로 이뤘다는 의미로 보면

이 세상의 생명이란  것이 그렇게 이뤄진 것이고

남섬부주만의 의식계가 되고 시계가 되고 육근이 될 수 있는데 

다른 곳도 있다함은

그 곳에 설령 태양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승처럼 시장(心臟)인 태양의 중심이 아닌

다른 구심축의 신체를 이루는 메카니즘이 있다는 것이 되는데

즉 마치 북쪽이라면 신장(腎臟)의 축과 같은,

곧 블랙홀에 行星的 구성력을 가진다면

이는 부처님 말씀대로 북쪽에도 사람이 사는 경계가 된다는 것이다

이 론리는 이론 물리학적으로도 매우 구성력이 있을 뜻한다고 봄이다

 

 

신장(腎臟)과 블랙홀

 

우리가 보통 신장(腎臟)의 구조를 삼투압적 벽이라고 함이고

이는 원소 주기율 간의 벽을 삼투압적으로 넘긴다는 것이고

수소(水素) 또한 삼투압적(渗透壓的)으로 넘김이 있는데 

이 삼투압이란 기문둔갑(奇門遁甲)의 門과 같은 것이고

이 門이란 3을 하나로 함이 있는 것이다

과연 블랙홀에도 이런 탁도(濁度)의 차이

원소주기율적 질량(質量)의 차이를

마치 인천항의 수문 도크만큼이나 넘길 수 있으냐인 것인데

마치 물감이 있는 글씨를 투명 글씨로 넘길 수 있으냐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