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주안점을 위한

힘! 역시 창조의 힘은 섹시함을 좋아하는 것이여

narrae 2013. 4. 6. 13:24

힘! 역시 창조의 힘은 섹시함을 좋아하는 것이여

 

우리 시대 때만해도 대화가 없는 시대라고 했다

요즘엔 눈빛이 없는 시대요 시선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참 신기하게도 과장할 필요 없이 

열이면 여덟아홉은 앉자마자 스마트폰 보기 바쁘다

우리시대 때만해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고 했다

그러나 요즘에 앞에 있어도 서로가 개밥에 도토리같을 뿐이다 

서로가 자리 하나 놓고 눈치보는 인간관계일 뿐이다 

그런데 어느 공원인가 연인 끼리 눈을 마주치고는 뗄 줄을 모른다 

누가 보든 말든, 

그리어 신이 섹슈얼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 했지

그래라도 붙지 않으면 큰일 날 역사였지

세상사 어찌 이 부분에서 신이 새삼스러운 것인지 참

 

 

업은 그대가 부처여서 거기에 있는 것이여!

 

그리어! 모두가 부처인 것이여 

부처 아닌 사람이 있는감

그러니 부처를 지옥에서 볼 것이요 

성철도 지옥에서 볼 것이여!

산 부처를 본 것이거늘 

죽어 부처를 못 봤다 못하겟구나 

부처가 지옥이라는데 

어느 덧 지옥이 부처라는구나

그리어 업은 그대가 부처여서 거기에 있는 것이여!

 

 

원소 8 족의 성숙도

 

전에 말했 듯이 오행이 중심이라면

이는 곧 배를 중심으로 배분을 해야

원소도 8 까지로가야

주기율적으로 받침이 되는 지각을 형성할 수 있음과 같은 것이고

괘상으로는 8 곤지가 되어야 완벽한 모태의 성숙을 말하는 것이니

 

 

핵성과 궤도성은 따로 보는 것이지 취사의 것은 아니다

 

보통 점 치는데 있어서

시간이나 공간성의 성향적 흐름에 그대로 쫒을 일이지  

그 성분의 물질적 정체성으로 더 이상 세분화되기를 금기시 하는데 

그만큼 복합성이 많다는 것이 된다

허나 이런 정물이 아니라도 응험하는 時

즉 동태에 따라 맞추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이나 

다만 이렇듯 반 쪽으로 집중해 

그 핵을 보지 않고 궤도성만 보더라고 궤적을 맞추기 힘드는 것이니  

실제 어느 한 부분의 정밀성으로 어떤 기계를 정비한다고 할 때 

개략적인 정황의 점사와 

핵심을 이루는 정황의 진행성은 

핵과 주기율 간의 차이처럼 별도의 초점을 갖고 취용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 용도성에 적용되어감이 사실성과 맞물려 감이 어떠한가를 

먼저 응험이 있고서야 취용을 하게 되고

안 맞는 점사도 왜 안 맞는가 하는 것보다

그 점사가 어데 흘렀는가를 끔까지 물고늘어져야 하는 것은

점사는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니

 그 것이 안 맞았다고 이미 없어진 것이니

부자인 냥 다른 것 하나 사면 되지 하는 식으로 공부를 하면

절대 경지에는 못 다달으는 것이다

분명 점사는 고귀할 정도인데 맞니 안 맞니 하면서 

어데 간 듯어 없어지면

사람 하나 다시 들이면 되지 해서는 절대 

고용 효과보다도 못한 결과를 얻을 것은  뻔하다

그만큼 글이니 쉽게 들이는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우리가 경탄스럽다는 것이

그리 흔한 발견이기에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닌만큼 

그 신비함만큼 비기가 되는데 

실제 잘 가르켜 주어도 인간이 그 걸 못 찾아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환경이라는 것도 그렇다 

목이 뿌리가 없고 화왕한 사주가 

주변 환경이 공장지대나 불길이 많은 지대라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 살 취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우린 운명으로서의 자신의 취약점을 잘 알아야 한다 

뭐 늘 재미삼아 다녀도 마냥 운이 좋은 것이 언제인가는 따질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환경성을 짐작해둠이 좋은데 

본래 사주학이란 운보다 환경적으로 맞추어가는 발전이면

더 과학적이고 물질적 부각의 연계성임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눈에 보이는 환경이 아무리 잘 조력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또한 보이지 낳는 공기마져도 미칠 수 있는 성분성으로 어립 짐작은 있어야 한다 

점도  포인트가  맞지 않더라도

그 궤도 상 안의 성분성으로는 거의 맞아 들어감이 되는데

그러니 안 맞다고 쉽게 버려버리면

그 궤도 상의 속성마져 깨닿지 못하고 마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여! 그대들 인생은 영광스럽다고 하게나 내 인생이야 쓴 웃음일세  

 

난 어찌 된 일인지 눈은 침침해지고 충혈도 자꼭 되는데

꼭 꼬락서니는 좀 근엄해 보이면 안 되나?

꼭 고라니 눈을 해가지고서는 누구의 동정이라도 받자는 것인가 

다 내 뜻이기야 하겠는가 마는 나도 이제 쇠잔함을 별 도리가 없네 

참 어지간히도 선량해서?

날 잡아 먹어도 시원찮아 끙끙 앓는 자를 위해서?

뭐 그래도 도리 없지 

가장 선해 보이는 자가 꽁부랑 할머니 눈빛이 아니겠는가 

결국 늙음도 자연 붙어가는 것인데 돌릴 수 있는가 

차라리 쇼라고 한들 돌아가겠는가 

쇼라고 한들 아니라고 한들 늙으면 서러운 듯이 가는인데 말이여! 

산다는 게 어찌 쇼같은 곳에 들은 것이여

사자도 이빨 빠지면 자연 도태되는 것인데

난 인간이라 좀 봐준 거겠지 뭐

그래로 인생이라는 것에 얹혀 좀 더 살았나?

젠장 발도 떼기 전에 신음 소리부터 나오니 볼짱은 다 봤구만

어차피 상에 치우쳐 산 삶이 아니니

얼굴인들 험상궂지도 않을 것이건만 심사만 고악하게 남았는가

어찌 그대들은 나도 내쉬지 않는 한숨을 그렇게도 내 뱉는가 

그대가 그대 것을 내 뱉어도 내 한 숨이요 

내가 내 것을 내 뱉어도 그대의 한숨이든가

웃자 웃으라 하면서 상은 왜 그리 우그렁 찌그렁이냐 

그래! 그래도 한 숨에 모였으면 단박이라는 것이 아니든가 

짜그락 크나 작으나 돈오나 뱉어 봐라

그렇지 못 하면 평화라도 보일 일이든가

  

 

쌀과 밀

 

고기를 많이 먹는 민족일수록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는데 

밀은 미는 작용이 실제 있다 

그에 비해 쌀을 먹는 민족은 고기를 많이 먹으면 

쉽게 복부비만이라는 것에 걸린다 

즉 쌀은 싼다는 것이니 창자가 길다는 것은 

삼이 길다는 것으로 소화기를 유지해 온 것인데 

밀가루 음식을 많이먹으며 밀어낸다고 잡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즉 에너지나 탄수화물의 기준으로 보면 

어느 것이든 상관이 없어보이지만

즉 이 선으로서는 수명과의 상관성은 같다고 할 수 있는

요소를 충족하는 것이지만 

내적 우주의 다양성으로 병을 유발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화학성을 넘어 나노급으로 따지자면

이 부분도 엄연히 분류되어 내어 놓아야

 의학도 과학성을 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오행성과 성분성,몸과 생각의 포인트

 

본래 印受가 없는 사주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안흔 편이며

남에 의지하지 않는 독립성이 강하나

또한 역설적으로 부모처럼 의지할 사람이 없어 외로운 사람이다

어머니가 없이 형재애로만 살아야 하고

소년소녀 가장과 같이 책임감으로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경은 독단적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어 있는데 

이 것이 관이 강한 데 대한 완충성이 없는 것에서이다  

印受가 많은 사주라면

특히 여성이라면 남편과 싸우더라도

남편이 장모 눈치가 보여 

싸우질 않고 어른을 무서워해서 관두는 것인데 

인수가 없으면 상대가 처음에는 공경하는 듯이 해도 

결국은 마구 대하는 습관을 붙이고 무시하게 된다 

그래도 식신이 강하면 자식이 남편의 기를 누르는데 

즉 부부 싸움을 하더라도

자식 눈치가 보여 못 하는 스타일로 살아지게 되는데

자식이 없으면 육영 사업이나 교육계열로 투자를 하는 편이며 

그러지 않으면 도리어 사회적으로 박해를 받는 수가 많고

왕따를 당하여 폐인이 되는 수도 있다

이 것은 좀 넉넉한 기반이 있을 때의 선택이 되고 

가난하거나 어려운 환경의 사람이면

간호사나 의사 약사 선생이 되는데 

약사나 의사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그 건 식신이 藥을 의미하는 작용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나 약사의 기운은 寅巳申 三刑에도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巳는 소독약과 같은 열성이 있는 것과 申은 칼이고

이 것이 合이니 水가 되는 것에서도 

요도로 배출 할 수 있는 성분이든가 피가 흐를 수 있는 것이기도 한데 

고로 또한 군인으로도 많이 선택하는 성향을 지닌다

그런데 이 것을 사주학적 운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수술을 위한 집도라고 할 때 

이 두 성향 

즉 하나는 오행적 성향인 식신으로 보는 범주 

즉 원소 주기율적으로 몸의 순환성을 보는 것 

즉 이목구비가 오행으로 일어날려면 

결국 4인 것이 배인 것에 내장되어 오장이 된 것으로서의 발현 

즉 오행이 몸인 것으로서의 식신성을 찾아 

어떠한 주변의 오행을 맞춰가며 실행하는가 하는 것이면 

사신의 합은

그냥 하나의 원소가 다른 원소와 이온 합이 일어나

수술이라는 선택의 경우와 같은 것일 때 드러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즉 식신으로서 수술인 구도성과 

巳申이 합한 구도성은 그 전개에 있어 

식신이 이루는 구도성을 따르지 못 하는 경우가 많고 

이 오행성과 그 성분성의 차이를 보여 주는 것으로

우리가 식신으로 수술을 하는 집도로 할 때의 구도는 

매우 사주적 오행의 순한성이 좋은 것이 있고 

사신 삼형적인 상극성이 갖는 집도라는 것은 

그 직업의 성향을 나타내는 것에 적합한 것이기는 하나

그리 구도적이거나 작전성으로 집중성을 보이는 데는 

크게 응집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巳神은 그 성분성으로 그 행태의 영향력을 규정된 대로 

어느 정도 미친다는 것이고 

식신은 주변성과 함께 그 후휴증마져 드러날 수 있음이 있다 

즉 식신이란 상대성적 명칭이지 

상대에 따라 비견도 되고 인수도 되는 것이기에 

즉 굴레라는 궤도에서의 제 위치를 설정해 주는 것으로 

근접을 하는 것이지 

그 자체의 성분성만으로 미치게 하는 의술은 아닌 

그냥 의사의 직책만큼이나 매서운 맛이 있다는 것이서다

 

 

곱창은 곱하기의 매력이 있는 창구

 

어차피 가로 세로 면적이 나온다고 곱창이 아니유

즉 가로 선 세로 선 곱한다고 곱창이 아니유

칠칠이 사십구도

사십구 곱창으로 덮은 사십구 눈이라니까유

얼마나 정확한 수학 개념인감유

이건 확실히 인상파 그림과는 대조적이게

그림자도 나는 것이구만

즉 그 만큼 실체적이기에 그림자가 있지 않겠는감유

얼굴이 이목부리를 덮 듯

배가 오장을 덮게한 것은 창자 사이의 막을 별외로

감싸게 할 것이라니까유

곱창은 곱하기의 매력이 있는 창구라니까유

배꼽 X르 단순히 마크 정도보면 안 되는 것이여!

정말 곱하기로 확 들어와야 

배가 우주관같이 확 깔려 있다는 것을 안단께유

 

 

차를 산다고 가정할 때

 

父가 兄을 생하면 안정감이 있다

앉은 감이 좋다는 것이고

財가 과다하면 적재량 초과가 많고

규정 초과의 문제가 많다

父가 강하면 차를 많이 부리나

정원 미달일 경우가 많다

父가 食神을 극하면 남의 재산이다

밭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고

또한 쟁기질을 하는 것인데 

食神이 父를 合하여 動하면 

우마를 이용한 쟁기질이나 

달구지를 끄는 것과 같다 

즉 父 動이  쟁기질이면 

兄動이면 서래질이 되는 것이고

이랑을 잘 다듬은 것을 말하고

食神이 動이면 파종이 되었다는 것이 된다

財는 수확량이나 시기의 적정선을 말하는 것이고 

토가 식신인 경우는 땅으로 수입이 되든가

쌀이나 밀처럼 곡물류로 수입이 되는 수가 많으나

가난하고 박복한 태생은 뱃심 괘나 쓰는

소처럼 힘으로 떼워야 하는 직업을 취할 수 밖에 없으며

또한 재가 젹재량이면 부가 적재함이다

그리고 엔진 마력은 형이라고 하는데

즉 兄이 空亡이고 財가 강하면

물량을 다 소화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이는 천시점(天時占)에도 마찬가지로 

바람이 공기를 기압적으로 끌지를 못 하는 것이다  

 

 

이진법과 십진법의 차이

 

이 것은 하나의 방편적인고 비유적인 것인데

寅과 卯 사이의 進退神만으로 거름과 열매의 관계로

계속 그 연관성을 이어 붙일 수 있는 진행법

즉 그 이해법이

곧 이진법이 갖는 특성과 같음이 스스로 내재됨이 크고

우리야 어느 것을 취용을 하듯

법칙적이라는 취사의 여유를 부릴 수 있다고 하지만

완전 그 진법 내에서만 있는 흐름이 쥐고 있는 시공성이 있다면

이는 그 커뮤니케이션의 탄력성이 갖는 인력권도 있다고 할 때 

우리가 십진법으로 오행성 정도의 다른 면모로 피어나 

같으면서도 다른 듯 다양성을 함께 이목구비처럼 동시적으로 

취용할 수 있음과 같은 것으로 

즉 십진법으로 식신이니 관성이니 하는 상호성이 트인 공간이 있듯이 

이진법으로 하면 그 공간이 없으면서 인식을 전달하는 법에서 

寅과 卯 사이의 폭만으로 오행의 폭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

五行으로 寅卯의 사이 폭처럼

사계절의 변화를 다 엮을 수 있는 것으로서의 

이해의 범위와 기하학적 탄력의 저변을 어떤 구성체로 볼 것인가도 있는 것이다

 

 

몸짓이 변 하리 늙으면 굽는 것을

 

이 나이에 무슨 영광이 속이 차리

어차피 표현이 바뀌질 않을 것이 

몸짓이 다른들 무얼 하리 

젊어 폼도 아닌 것이 

늙어 무슨 궁상맞게 폼이겠으리

그저 늙으면 늙은이일 뿐인 것을

 

 

神은 좀 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학문이길 원했는지도

 

父가 허가인데

官이 生하면서 財로 化하면 

그 특허로 인한 재물을 챙기는 것이 된다 

실재 재물점이면 

자신의 면허를 도용해서 재물을 취할 수도 잇다

또한 官은 비서실이요 

관리실이 되는데 

즉 계약을 보장해 주는 것 

보통 주인이라는 개념도 

내가 종업원으로 계약이 되었을 때 父星이 되는데

보통 財가 旺하고 父가 약하면 

식구는 많은데 방은 비좁은 행태다

財星을 부하라고 하는데 

食神이 강하고 재성이 희박하면

일은 많이 들어와도 종업원이 귀해 

큰 소득의 장애가 되는 것이다 

또한 박리 다매인 것이고 

운이 좋으면 그 희소성으로 값이 오른다 

식신이 적고 재가 왕하면 일확천금을 노린다   

 또한 父가 약한데 官이 없으면 

그 부를 관리하고 보좌하는 것이 없다는 것인데 

어떤 확약도 소멸이 되기 쉽고 허명 허위가 되는 것인데  

世 父가 공망인데 官이 동하여 財로 化하면

나라의 세금이나 재원으로 허가를 내주며 

空이 아니면 허가된 것이라 봐야함이 있으나

확실하다는 결론이 나기 전에는 좀 더 면밀히 봐야함이 있다

즉 사건이 나중에 들어오는 것으로 봤을 때

그 이후의 상황점으로 볼 수 있는지 

예비적으로 참조해 가면서 경험을 축적해 두어야 할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2 효 應이 회두극이 되고보니 집에 도둑이 들긴 들었는데 

이사 가고 난 후 이사 온 사람에게 발생하는 것을 보고보니 

정말 기가 막힐 일치도 경험해보니 말이다

그리고 이사 오는 사람이 사고 나기 쉽겠다고 했는데 

결국 방을 세 주고 나서 주인인 자신이 사고난 걸보고 황당할 수 밖에 없는 것 

이 것이 간발의 차이에 인명이 오고 감을 종종 보았기 때문에 

이 정도 정밀성을 넘지 못하면 앞서 구조란 어려운 것이다

솔직히 그 집에 세 들었던 사람의 점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주인의 일같아 주인을 잡고 쾌를 잠게 하였는데 

이상하게 이사 오는 사람이 사고가 나겠다는 결론으로 한 발 더 뛰어넘은 것인데

결국 그 것이 폐착이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간발의 차이로 여러 사람 죽는 것을 보았는데 

난 젊어 입문할 때부터 그런 쪽으로 자꾸 채근을 한 것인데 

그래도 난 어차피 그들의 운명인 것이고 

나와는 무관하니 하면서 사는 것 자체를 무덤덤히 보는 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유달리 그 쪽으로 몬 것을 보면 깨달아야 할 문제는 벌써 정해진 듯이 온 것같으나 

그 이상은 자꾸 외면하다시피한 면도 있다    

최소한 이만한 범주의 유동성은 짚어가면 보야야 하는데 

불만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통달이 짧은 기간에 터득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공부를

그 것도 냉방에 배 굶어가며 혼절이 되다시피 하며

당장에 내일 먹을 끼니를 못 채우고  갈 곳이 막막한데다 비는 주룩주룩 와도  

당장 깨닿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뿐 

의식주 하나 마땅한 것 없어도 걱정하기는 커녕

날씨가 좋아지니 시나 쓰고 즐기자는 식이니

이 게 어데 사람이기나 한 것이겠는가

그러니 평생 숨박꼭질이 따로 없다 

신과 나는 아는 것이 있다 

서로가 떠나면 후회가 될지언정 

서로 다시 돌아보질 않을 것이라는 것

어차피 제 잘 되면 그로 벗어나는 것이고 

잘못되어도 결국 굳이 살 놈은 아닌 것으로 뻔하니

결국에 고개도 돌릴 여유를 안 주는 것인데 

가만히 앉아서 천 리를 보는 도가 있음인데 

굳이 나부대며 치를 떤다고 하겠는가     

그런데 왜 책임을 벗어나지 못 하는가 

그 것은 가르쳐 주었는데 몰랐다는 데 있다 

즉 가르켜 주지 않아서 몰랐다면 이 공부도 때려치울 수 있는데 

결국 나중에 검토를 해보면 전부 내가 놓친 것이니 

나로서도 할 말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신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이지

사람이야 내가 사고를 내지 않는 이상 책임이 없으니 

자꾸 외면이 되고 간심 밖이려 하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지나고  안 보면 된다는 주의이다 보면 큰 죄업은 안 짖는다 싶은데 

신은 그 것이 아닌 것이다 

왜 가르켜 주었는데 늘 제 자리에만 맴도는가 하는 것이다 

즉 영(靈)이 오고  안 오고 보다 

한 학문을 깨닿는 데 있어서도

몸신인 선생의 말씀을 안 따랐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도 사생결단이 남은 듯이 하는 것이니

무엇보다 문제는 좀 더 학문적 깊이를 몰입해야 하는데 

자꾸 신을  들이니 안 들리니 하는 뱡향으로 쏠려

시소 같은 갈등으로만 해결하려 한 것에

좀 더 결정성이 있지 않았나 하는 것에서 폐착이었는지 모른다

 

 

무엇이 거품인가

 

왜 저 안개가 내려오질 못하나 

그야 비웠기 때문이지

밤  안개처럼 와질 때는 

거기서 돌아가지 못함이 도리어 거품이 아닌가?

그리어 안개가 도리어 바람든 것처럼 하니 

대기는 더 구슬과 같음이 아니든가  

 

 

개면 어데로 포개지는 것인가

 

과연 날이 개인다는 것이 것이 

개이는 것인가 

이불처럼 포개어 갠다면 포갠 이불은 구름인가 

맑은 대기권인가

그럼 팽창이 개는 것이라면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그냥 무중력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갠다는 것이 아닌가

 

 

숙어적인 것과 단어적인 것

 

영어도 단어로서가 아니라 

숙어로 통채로 외워야 와닿기 쉬운 법도 있으니 

육신의 하나으로서가 아니라 

두 신 간의 상호성처럼 흐름이 있는 공간이어야

숙지됨이 있는 윤곽이 다르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숙어는 28 宿처럼 별자리일 때 

그 특성적 부위와 같이 널려져 있는 밤 하늘을

별바다인 듯이 바라보게 하는 것으로

하나의 단어만으로는 태양계와 같이 강열하게

혹성과의 관계에서는 싸고도 남는 이해의 선만큼이나

또한 사실적이요 물질계 정도의 부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즉 좀 더 확연한 듯이 챙겨놓은 듯이 

현실의 사물과의 병행선인 듯이

섭생의 야만성까지 드러내는 입까지 진화한 자율성을 

아직은 미개한 듯이 연료를 채우는 로봇과 같아보이나

어쩜 그런 야만성에도    

나무의 탄소 동화 작용을 넘어 뛰어 넘어야 

나무의 수명과같이 붙어 있는 실제성의 보장이 있는

이는 좀 더 나무가 물을 빨아들여 커는 것이듯 

밤 하늘의 은하수를 빨아들이지 못 해 

도리어 탄소 동화작용을 못 끌어들임과 같음에 

물에 별처럼 비쳤다 가는 찰나와 같음에  

이는 곧 

숙어적 범주는 耳通과 같께 열린 은하수와 같고 

낱말적 인상으로는

빛으로 더욱 굳건히 개체성을 보이는

眼通의 사물적 범주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니

 

 

생애라는 것

 

사주를 보면 

사진 한 컷과 같이 눈에 확 들러옴이 

인화지에 상이 떠오르듯이 한다는 것이고

실제 어느 무속인은

사진에 띄우는 것만으로 알 수 있다고 하듯이

우리가 신적 셰계의 표현은 어떤 식이든

나름으로 내재된 표현인 것이고

결국 사물 자체로 같이 호홉함으로서

그 호흡을 아는 것이 가장 신적 표현이라고 할 것인데

다만 그 평보다 입체성으로 드러냄도

어쩜 나름의 기하흡수적인 연쇄성이나 번복적 힘에

의하며 미치는데 있어 음양 간의 접촉에 있어

그 에너지의 부하를 매우 감성적으로 받아들에 있지 않나하는 것이다

즉 사람을 보다보면 어떤 기준점으로 인상을 매길 수가 있는데

예로서 인물화를 기준점으로 포즈에 치중하는 사람은

어차피 사주도 그런 포즈에 치우쳐 있다

즉 가부장적일 수 있으며 인문학 계열로 치중하는 법이고

법도를 중시하는 쪽으로 태어난다 것이고

또한 어찌 사진이 잘 못 찍힌 듯

왠지 존재감의 가장자리가 

사이의 허공 간의 중심에서도 가장자리일 뿐인 것이

실속없이 아마추어 작가가 찍었다 싶어도

오지에 슈바이처같은 인물이 나오 듯이

그 나라의 변두리를 탐닌하며 즐길 수 있는 듯이

풍경화적 인상이 많이 나기도 하고

즉 그런 사진이 52 만 정도로 나오면

아무리 특성을 난도질해 가루같이 같은 듯 해도

서로 다름을 알아볼 정도와 같은 것인데

그 상을 유지하기 위하여 약품을 쓴다고 할 때

실제 우리의 내장기관은 부속품처럼 그 화학성분의

셩격이 갖는 틀의 행동양상과 같은 것이라는 것으로

그럼 일간을 중심으로 함운 무엇을 내포하는 것인가

이는 곧 인공위성이나 달의 삼위적 위치

어쩜 삼차원의 형식이 되는

즉 전리층이나 달의 궤도가 자신이라는 것에 주체가 되는 것에서 보면

즉 여자의 달거리에서 낳은 우리로서야

그런 배경의 사진 한 장 쥐고 있는 것을

매우 입체적 공간으로 입체성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으로

운명적 화상으로 움직임이기에 물질성을 행이라고 하는 것으로

그러니 바닷 모래도 안개처럼 내려가지 않는 꿈이듯이

사진 한 장을 쥐고 내렷다 올렸다 하는 것이기에 생애라 함의

즉 밀물과 썰물과 같은 힘의 내재성이 생애로서 바닷가와 같기에

모래처럼 허공성으로 삼켜도 그 구심점이 된다고 하는 것이니

 

 

미네르바가 제우스의 머리에 태어나려면

 

이빨이 임신을 한 것이여!

아니여

입술이 임신을 항 것이여!

아니여

둘이 합해서 힘껏 다물은

정말 이빨 악물며 다물린 겻 여는 것이여!

무슨 임신?

혀를 임신한 것이여!

혀가 나왔다고?

꽃이 피었다고?

꽃의 맛이 꽃가루

혀의 맛이 미각이라

미각은 理의 맛이요

꽃가루는 이미 미의 오리지날 물상

혓바닥이 종의 씨앗이니 귀히할 것

비야 내리지 마라

천 년 만 년

인간에 안태어나면 그로 족할 일

인간세 이미 사바라한 것이니 굳이 욕할 필요야 없다면

화나면 무슨 말인들 못하랴

화도 부채질 받아야할 양반인 것도 있으니

그래도 새벽이면 안개는 내려올질 않는다

왜나하면 천상화보다 혀의 화보다

인간세 화와 심장의 화를 감다하지 못함은 아느니

오히려 심장이 마그마라면 혀가 태양이지

그래도 밤새 식은 땀과 같은 홍두깨

안개를 나눠 먹는 것은 태양

그리어 그냥 혓바닥의 몇 마디면 될 것같은 것

 

 

멱이여? 미역이여?

 

말이 눈에 빠지면 물 속의 멱

멱이 물인가 뵈여 멱살 잡히는 바다

다시마가 혀를 다신다

혀가 멱을 풀고 통역을 한다

멱살은 가슴이 잡히는 것이여!

그러니 감동적으로 

 

 

기준점이란 늘 달라자게 마련이라 

 

그렇다면 기준점에 있어서의 五行의 성격은 정확해야 한다

무엇이든 절차 상의 분기점으로서의 나누게 되면

다시 그 중심으로 배분이 되면 그로 정확해야 하는 설법이 

곧 원소주기율과 같음이고 

그 정확한 누진성이 결국 사물이 되는 것이라면 

어차피 궁극적으로 극미림이라는 것이어도 

결국 사물자체가 그로 따라 핀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이니 

정확하게 오차가 있어서도 안 되고 

여려 시각도 안 되는 것이어야 또한 어떠한 추상성도 배제된다고 할 것이다 

보통 괘상으로는 4 효 위를 해골이라고 하는데 

그 것은 벽이면 성곽 

나무며는 성황당 나무이다

그리고 5효가 도로이면 그 오행 상의 지적이 되는 것이고 

행이 아닌 성분적 요소로 있는 경우며는 목이면 가로수가 되니

이는 곧 행이 원소 주기율과 같은 범주이면 

나무라면 원소적 성질을 함유성과 같은 대비가 되는 것이니 

이러한 이해가 되어야 

화학성과 이 우주의 작용이 닮은 행태로 유추가 될 수 있음이니 

진취적일수록 유심히 볼 필요가 있는 것이고   

이 것이 될려면 그 기준점이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 것으로서 

상황의 대입이 아구가 맞아야지 

마냥 기준은 있는 것이니 참조한다는 식은 너무 이완된 상태의 공부다 

즉 卯가 차이면 庫인 未가 차고일 수 있는데 

이 것은 순수한 용도로서 사용함이 庫인데 비해 

申인 孟神이 되면 먼저 지장간(支藏干)이 있어

그 성분의 혼재에 있어도 

그 견고함의 바탕성

즉 맹신으로 보아 구슬과 같은 것인데 

즉 자갈과 모래, 시멘트 등으로 어느 하나의 취용이 아니라

콘크리트가 단단하면 그로 된 용도의 위상으로 말한다면

庫인 계신(季神)은 그 추출의 용도와 같은 것이고

중신(仲神)은 그 목적에의 진행에 있어 소요성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 것은 육임학적으로 사물의 띠는 법칙이 있기에

두 신이 만났을 때

어떠한 사물의 행태르 띠는 것이 되는데

실제 왜 그렇게 설명이 되는가를 알아야

이 것도 하나의 기하학의 결과로 형태를 이루는 것과 같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왜 이러한 접근성을 외면하는가 

이 것도 아인쉬타인의 이론처런 10 년 백 년이 될지 모를 검증이 만만찮은데 

바리바리 용을 쓰도 잡힐까말까 하는 것에  의식적으로 외면함은 무엇인가 

이느 종교는 신비감으로 먹고 사는 것이다 

즉 종교란 현실적이지 수 백 년을 넘는 유혹도 아니다 

즉 백 년 몇 백 년의 장기적으로 봐 총론을 내면 

참 인류란 변함이 없는 그 사태이지만 

생은 결국 백 년도 안 되는 데서 현실성을 반영하는 것이니

결국 종교란 것도 시간적 가치보다 기복적 즉현성과 기적에 매달리는데 

중점적 유혹이 되는 것이니 결국 기복이나 점술적인 것 

이웃과의 돈독함 결국 인간으로서의 가지와 존재로서의 최우선에 있어 

이 것은 어떤 과학성보다 신비감을 꿈 깨서는 안 되는 것에서 발전하는 요소고 보면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과학의 편의를 아는 이상 과거처럼 물어 붙일 수 없는 것에서 

나름의 지식이라는 집단으로  인간적 요람이길 바라는 것이나

과학은 과학일 뿐이라는 것에서는 종교도 종교일 뿐이라는 양분성에서는 

결국 종교는 신비주의나 전기누설 등으로 현혹 시킬 요건은 갖추지 않았더라도 

무명 자체가 맹목이니 

지식인들이 더 속는 부분인 것도 되는 것이고 

어차피 속고 사는 것이라도 

속는 줄 알면서도 사는 것이 더 편한기도 한 것이고 보면  

늘 먼지 일 듯이 만재한다는 것 

즉 가져다 주는 것을 마다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에 

굳이 억지로 거부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니 사바세계는 사바세계일 뿐

 

 

먼저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 남과의 우주성을 이기는 것이다

 

우리가 父爻를 상세히 볼 때 

父가 강하면 월세나 전세금으로 지출하는 비중이 큰 것인데 

옷이나 차를 사는 데도 돈을 많이 쓴다 

즉 父는 옷의 사치에 너무 힘을 쓴다

가난하게 태어나면 왠 자격증을 그리 많이 따고져 하는지 원

兄은 사교에 너무 힘을 쓴다 

그러니 잘 자라면 사교 춤이나 한량 생활에 빠지고 

떼거리 몰려다니길 좋아하고 부량배같기도 하나 

어렵고 고생을 하는 과정이 있은 자는 

남에 거간 노릇을 잘 하니 

기술을 배우면 하청을 도맡는 편이고

친구를 잘 챙기고 인사가 만사라고 큰 소리치며 살고

이런 자들은 종교인이 되어도 과거에 사람을 통솔해

큰 공사나 집단 행위에 간부도 된 것을 보는데

자신의 말로도 만일 이 길로 오지 않고 그 길로 갔으면

얼마나 기고 만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자는 종교인이 되고도 밤 낮

회의니 행사이 맡아하기 바쁘니

다 도인은 팔자를 바꾸니 뭐니 해도

다 그 행세라고 말하며 웃어넘기도 한다

그리고 식신이 강한데 조화가 없으면

농사 잘 짓고 밭을 뒤엎어 버리는 꼴이 생긴다

다시는 농사 짓지 않는가도 하면서 또 파종을 하는데

결국 그래도 운이란 기적보다야 있는 것이니까

또한 재가 그러하면 종업원이 말을 듣지 않는다

즉 월급을 받아가도 주인을 무시하든가

애사심같은 것은 추호도 없다

우린 자신이 싫든 좋든 사주에 맞춰야 편안함을 느낀다

즉 사주가 사막과 같은데

그래도 오아시스가 있어 버티는 것이면 오아시스 잘 간수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필요한 것이 물과 숲이라고 주면 좋아하는가? 하는 것이 있다

그렇지 않다

습이란 것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섬이나 오지의 사람을 대려 왔으면 그 환경대로 맞춰줘야 하듯

사주도 그런 것이다

즉 사막처럼 만들어 좀 게으르게 사는 습성을 만들어주고

살아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 있어

사주란 치우쳐도 그로 평안함을 갖든가 익숙한 데서

군형성이 있게 이겨나가는 것이니

결국 자신이 자신을 이겨나가는 궁극적 패턴이라는 것이니

즉 사주에 물이 많은 사주에

마냥 물 가에 가지 말고 밭이나 일구며 살아라고 한다고

밭이 와지는 것도 아니요 이미 섬 사람이면

과연 섬을 떠나도 그 것이 좋은 좋은 길이든 좋지 않는 길이든

이미 향수를 갖게 하는 아늑함을 갖는다는 것이니

그래서 사주학이란 자기가 자신을 이기는 것이

남과의 운명성이나 우주성을 이기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 것을 곧 원자학적으로 보면

내가 핵을 이기면 곧 주기율적 덮개를 다 이긴다는 것과 같다

 

 

막창과 곱창

 

앞으로 화면도 휘는 책받침처럼 되는 스마트폰이 나온다고 한다

즉 얇은 막에 집적 회로가 들어도 얇다는 것인데 

이 것을 우리 말로 가장 잘 표현한 과학성을 말하자면 

곱창은 회로요 막창은 1 막 안의 것이여

神이 말하는 것은 章에서 부터이지 않는가 

다 그대의 배꼽에서부터 주사선인 막의 장이여!

 

 

장(章)과 창(彰)

 

신이 들려도 인간의 육신과 함께 사라지면 흔적도 없는 것이 또한 章이니

서러워할 이유야 무슨 도를 닦았다고 닦아 세우겠는가 

최소한 역사에 남을려면 章을 새기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나타날 창(彰)! 이니 

 

 

그림자

 

장(章)에 언덕같은 산이 턱 버티면 장(障)

못이 空을 넘어간다

못이 平을 넘어간다

언덕만큼 가슴에 패여 장(彰) 

산이 다 드니 아득한 수평선 

그리어 못 하나가 뿌리 채 뽑혀 넘어간다

 

 

언어와 표현의 우주성

 

우리가 영문법으로 이와 허와 합하여 혀라고 할 때 

즉 y와 ㅇ가 합하여 yo가 요가 되듯이 

이 ㅇ이라는 자형이 되면 

숫자도 성질도 원소도 다 그 성분성으로 하는 것이 아닌 

제로성 허함을 나타내는 것인데

즉 나자마자 한 살이면 

한 살을 채워서 한 살이 아니라

이 땅에 디딘 것으로 한 살로 하듯

즉 주기율 상으로는 한 살을 돌지 않아도 

핵 상으로는 한 살에 앉힌 것이 설명이 되는 것이라면

우리가 핵을 노른자 

주기율을 흰자라고 할 때 

이는 곧 흰자 밖에서 

노른자에 착륙해서 흰자를 한 바퀴 채워야 한 살이라는 것이다

즉 이 국문으로 ㅇ는 토성이요 

원소 주기율 8인 지각이요 

하늘의 성층권이 되는 것인데

이미 어떤 원소성의 성격도 이 주기율을 채우면 

원소성보다 주기율 성으로 보아야 하는데 

주기율이란 같은 성질의 농도가 농후하다는 것인데 

실제 원소의 성질은 알아도 

주기율은 소리로 보면 된 소리 즉 쌍 기억 쌍 디귿처럼 

ㄲ이나 ㄸ의 된 소리가 되는

즉 자음적 된소리가 되는 것이고

모음적 된 소리는 ㅏ가 ㅑ로 

영문적으로 y이인 ㅣ가 ㅏ에 더하는 것인니 

이 ㅣ가 원소 주기율의 한 궤도를 더하는

8 족까지에 찬 

즉 자음으로 ㅇ인 土聲과 같은 8 族인 것인데 

이 8 족이 되어야 다음 주기율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허가 두 개 모이면 혀가 되는 것이라면 

실제 입 안의 혀는 허가 두 개 모이면 

상상이나 생각을 표할 수 있을만치가 되어 혀라는 것이니

그만큼 ㅓ와 ㅕ의 차이의 농후성을 띤 것이라고 봐야 함이고 

허는 보이는 보이지 않는 것이나 

혀는 보이는 것이고 

또한 어떤 느낌이 톡! 으로 순간 스치는 것일 뿐이다 

그 것도 알맹이가 되어 영문의 톡!인 뜻이 듯이 

혀의 점상은 되는 것에서  

어쩜 영어로 혀를 톡이라고 하니

혀란 목 입구에 톡! 톡! 노크하는 자국이 부은 것처럼

점적이라는 것은 매우 성음이 물상화된 것처럼 하듯이

이는 곧 한 주기율 상으로 허한 것이

다시 두 주기율의 농도가 되면

혀와 같은 농도의 의미를 부각 시킬 수 있음과 같은 것이다

그럼 우리 말의 ㄱ이 ㄲ으로 되는 농후성과

ㄱ이 ㅋ으로 되는 농후성

그리고 ㅏ가 ㅑ로 되는 농후성을 엄밀히 분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만큼 과학적 구조의 면밀성이 인체학적으로 광대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즉 언어가 원자핵적이라면

표현이 주기율적으로 양상으로 나타낼 수 있다면

그 구분성이 뚜렸하다면

이미 핵적인 것은 입의 미각을 채우는 질감이요

이는 곧 땅처럼 고체나 액체성만이 알 수 있는 듯이 할 때  

그에 주기율적인 것은

취각(臭覺)인 것

즉 호름의 경로가 폐로 통하여야 하는 것의 기체적인 것으로

이미 달리 감각의 기능이 되어 있는 것이

주기율 한 겹의 차이 두께의 차이와 같은, 

그 시공을 달리하는 패턴이 되는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소나무

 

소나무를 보다보면

이 중섬의 황소가 못 빠져 나간 듯

브람암스의 피아노 협주곡이 멋 빠져 나간듯

둘보다는 혼자여서 아마 더 체증같았을

그럼 용을 쓰야지 

홍두개도 글고 갈 듯 용을 쓰야지 

어찌 나무가 쇳심인가 

금의 고 축토가 쩍쩍 갈라진다 

소여! 

헤라클래스의 근육이 터지 듯 소여

우러다 말라붙은 비늘 껍데기같은 소여 

용이 그렇게 용쓰니 쇳심을 봤다고?

그러니 丑이 음이니 辰이 양이라

피긴 시되 바다 사자 같이 피나 발이 발이버렸고 

피긴 피되 아지랑이도 이글이글 피는 듯이 가지가 되어버렸구나

 

 

주엽(注葉)

 

더 많은 나무 

다 바늘의 묶음 

나뭇가지에 이슬 방울만큼이나 

송알송알 

ㅇ자 혀 꼬불리듯 굴려 송알송알 

그런데 어찌 되었길래 

잎새로 저절로 주입해 부풀게 하였으니 

나무야 천수천안인을 마음이 모자라지

다 한번 쯤 쓸쓸함을 만끽하는 단풍에 

그렇게 욕망의 및깔을 물들인 자리와 같이     

 

 

코가 눈

 

코가 공간 하나를 먹고 머릴일 뿐이다

공간 하나를 먹고 길이 간 것이

나이테를 주기율로 시루떡 인생을 만든다

코가 공간 하나를 먹고 껍질까지 쓰고 마는 씨앗 

그래서 모든 가장자리의 코 

역시 준치는 썩어도 준치여!  

 나무가 나아태로 조으며 인연의 괄약근을 조으듯이

허나 연락은 잎새에, 가자에서 왔구나

 

 

전 무서운 사람이라니까유

 

아이쿠!

보살님 절 스님으로 봐 주시는 감유?

그럼 전 입다물어지유

절 스님이라 앴다간

이 년 저 년 되고 만다니까유

이 건 겉치레고 눈치고 없다니까유

개년 소리부터 하고 본다니까유

굳이 아는 채해도 그런다니까유

완전 군함 해상 봉쇄는 저리가라니까유

그래도 알랙산더 대왕은 그린자를 비켜 주었을 대인이쥬

이 건 완전 똘만이들 시켜져 뺑 둘러치게하고

이쪽으로 몰리면 이쪽 모난 놈이라고 하고

저쪽으로  몰리면 저 쪽으로 모난 놈이라고

생색은

완전 거리의 광고판 저리가라는 것이이지요 뭐

그러고는 내가 밀었다고 하지요

이미 어 일이 언제 오늘이 알인감유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판에

숨긴다고 그 진실성이 사라는감유 

오해라고 해도 이렇게 시간이 길게갈 오해란 없는 것이쥬 

자구 근거라고 있는 듯이 해봐야 

허상인 것을 굳이 질질 글고 다닌다니까유   

전 감정적이기 싫어

글도 될 수 있는 무생물적 과학성에만 치중하는데도 말이쥬 

이미 정서를 둘 수 없는데 무슨 감정을 살 엄두가 나겠어요 

뭐 그래도 글이 딱딱해져도 운명이려니 감수해도 말이죠 

굳이 무감각하려는 것까지 트집이니 전들 할 말이 없지유

누구든 엉겁결에 끼어드는 판국이니 

내가 안타까워 당자사가 아니라고 하면 

꼭 개인적으로 사통이라도 하는 듯이 더 길길이 날 뛴다니까유

그러니 어느 사람과도 사통이 있겠시유

나 같은 먹잇감이야 

대대손손이 물려주어가며 씹겠다는데 

저도 언제부터인가는

날 싫어하는 사람은 나도 싫어하기로 했시유    

노골적으로 이 새끼 저 새끼해도 

아주 젊잖게 대해준 듯이 감쪽같다 못해

관용스럽기까지 하다니까유

그런데 그들은 알지요 

그렇게 설치는 다음에야 어느 누구도 근접하는 것을 못 봤다고 

효과 만점이고

아얘 근접했다는 낌새도 못 느끼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지요  

저요?

이불 속에서 만세 부른다니까유

그 것이 늘 현재 진행형인데

한 번 쯤 대꾸해 놓으면

마치 과거 때부터 계속 물고 늘어지는 듯이 한다니까유

전 말이쥬

속으로야 죽일 놈 살릴 놈 해도

스님! 하면 또 얼음 녹듯이 사르르  녹아

도리어 나 때문에 기가 죽으면 어쩌나

자폐증이도 걸리면 어쩌나 걱정도 다짜고짜 행기는데 말이쥬

또 그 행색을 보면 진절머리가 난다니까유

과거의 인간이면 과거에 놔두고 현재여야 할 사람들이 

절대 현재의 사람이 아니면서 

건망증 심한 나를 갖고 과거를 문고 늘어진다고 한다니까유 

전 양심에 과거가 없는 사람이유

설형 불찰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당사자 간의 문제인데 말이쥬   

문제는 나구

봉쇄는 당연한 듯이 한다니까유

저야 언감생심 이년 저년 할 수 있남유

저들은 알지유 누구든 간에

거리를 두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지유

저 같은 왕따는 당연한 것이 듯이라니가유

제가 알아 거리를 두는게 도리어 상대에 대한 배려지유 

이만한 민주주의가 어데 있는감유

그런데 저들은 늘 민주주주의가 불만이라니까유  

그러니 재게 스님이라 마시유

개년 소리 듣는단꺼ㅔ유

무언가 착각하시는가 본데

저 개란 소리 못하는 놈이란깨유

사는 게 그렇지유 

한 이불 속에 살아도 속을 다 모르고 산다 듯이 

얼핏 안다고 어울려 봐야 애들 구슬치기쥬 뭐

그런데 말이쥬

신명은 도리어 날 나무란다니까유

내가 너무 독선적으로 되었다나유

저들 중에 출중한 인물에다 큰 그릇이 많으니

너무 그렇게 기죽이려 들지 말라는 것이쥬

완전 제 자식 중한 듯이 하는 것보면 말이쥬

난 완전히 꿔다놓은 보릿자루보다도 못 하다니까유

 

 

원소 주기율과 팔괘의 동행은 얼굴의 찰색에 든 것과 같다

 

6 족과 8 족의 동질성에는

차이점을 어떻게 내는가 하는 것은 

보통 6 효가 동하면 조상과 무덤과 관계된 일을 자주 보게 되는데 

즉 이에 시변의 언저리가 六爻이고 보면

이도 생의 경계인 것이고 지역적 변방인 것이요

이를 8 족의 기운으로 보면

하나의 성분이 갖는 성질만으로

6효적 배분려어떻게 짜여지는가하는 것이고

상하 대성괘로 갖는 것으로하면 8이 되어지는가와

64 개가 되어지는 팔팔이 육십사로서 수용되어야 하는 것

전반성의 상호성으로 

즉 384 개의 효가 일어나면 

384 개의 화학적 성분성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 것이 완벽하다고 해도 化神的이고 報神的인가 하는 것

진신과의 개연성은 그런 과학성에도 없는가 하는 것

즉 팔괘와 퍌족이 합이 찰 때의 이온적 화합성과 

전이 원소적 합은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도 과제인 것이고 

또한 곤지괘와 진뇌괘가 합이 되어 뇌지예괘나 지뢰복 괘가 되었을 때

그 괘사와 효사가 원소주기율적으로 8 족에 해당하고 

주기유 상으로는 4 주기율에 해당하는 원소라면 

이 것을 하나의 괘상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가와 

그 것도 단순한 하나의 성정에 

괘상의 복합성으로 다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무색 무취의 원소인데도 

그 것이 같다고 할지언정 하나의 맛 정도여야지 

괘상에 효상까지 다 갖고 있는 배경이 있는가 이다

 

 

無記

 

우리가 無記가 無記가 아니라

오히려 무기가 남은 부분이 우주라고 한다면

이는 곧 기록성보다 사물성으로 뽑는 현재 진행형이라면

무기가 풀리 않았기에 우주성이 구름처럼 남은

우리 부처님의 14 무기를 그대로 서로 맞잡게 하여 

마치 안개가 창공처럼 올라가졌다고 할 때 

이 것은 항공의 배꼽인 냥 1을 더하여 15를 기본수로 한다면 

이는 곧 천수경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비와 같음이 

비나이다가 된다 즉 비는 비나이다의 음정 방울과 같은 것이다 

즉 준제진언을 넘어 

원아 정혜 속원명 

원아 공덕개성취 

원아 승복 변장엄 

원공 중생성불도인 4을 합해 하나의 묶음과 합해 5 라면

여래 십대 발원문을 합하여 15이다 

이 15가 비나이다가 비인 것이다 

그 빈 경정인 물방울이 세상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이 것이 다시 발사홍서웜으로 가면 사방성이고 

다시 삼보로 맺으면 

그로 원소 3 주기율에 머무는 것으로 

이는 빛이 비는 데 있어 잔분인 것이고 

그 이상은 빛 밖이라  못 보는 것과 같다

우리가 역발상적으로 무한탐욕을 다시 15 요체로 줄인다면 

다른 것은 그 쟉용성으로 소진되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고 

오직 이 14 무기라는 것을 쟁반에 담은 것이라면

결국 인간에게는 드러나지 않고 소원성에만 

겨우 비빈ㄴㄴ 부스러기 같음은 확실히 존해가에 

서원을 들어줄 수 있는 무기의 풀이 

이는 곧 존재가 무기라는 것에 있다는 것이고 

인간이 무명이어서 깨닫지를 못 한다는 역설이 되는 것이다

 

 

밤은 밤이다

 

천수경의 귀결점에는 철학적 물리와 정신계가 있는 것이다 

이 걸 잘 알아야 밤이 빅뱅으로 밤인 것이 되는 것이다 

밤은 밤이다

즉 백뱅이 터지기 전에 밤 세톨이 

즉 원소 3 주기율이 터지니 

원소 4 주기율로서 터진 범위가 되는데 

즉 이는 태양이 밤의 핵적 상태이면 

이 것이 터지면 밤

이 핵에서 주기율적 궤도에 흩어지듯 나온 것인데

그래서 밤 세톨이 밤의 우주를 만든 것이다 

밥이 터져 밤인 것

어쩜 보이는 우주는 

하얀 밤 속의 색계가 차는 것과 같음이니  

태양 속의 흑점이 밤톨의 고향이요 기질인 듯이 

낮과 밤은 짝인 것

이는 곧 여자가 늙으면 양성화되는 종점성이요 

남자가 늙으면 음상화되는 종점성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 변화의 폭이 어떤 시공과 안과 밖이 되는가 이다

또한 삼보도 원소 주기율의 밤송이 안과 같은 것인데

이는 곧 동양철학과 음양 오행이 

인문과 물리의 동질성을 확보하는데

그 기초가 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통의 전모성이란

 

담배를 피우는 데도  사주에 따라 특색이 있는데 

토금이 약한 사람은 기관지나 폐가 약한데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폐에 병이 올 가능성이 많은데

피운다면 치명성이 강하다 

오히려 토금이 강한 사람이 기침을 하는 경우는 

기름끼가 많고 단백질 성분이 단단한 편인데 

이는 순수하게 맑아야 할 대장을 막는 경우로 

기가 통하지 못하니 산소가 원할하지 못한 데서 병이 오는데 

본래 토금이 많은 사람이 기침을 하는 경우는 

지방 간이나 경화로 간계에 병이 있어 나타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가 계란과 같다고 할 때 

한 쪽을 깨어 먹는 것이 폐라면 

뒤쪽을 깨어서 쉽게 들어오게 하는 것이 대장이다

그러니 자연 대장이 지방화되면 당장 숨을 깊게 들이지 못함과 같다

 

  

모니터가  뮈니 터 얼굴

 

얼굴의 상이라는 것이

앞뒤로 짱구같이 불룩 튀어나와도 더 똘똘해 보이는

과거형 브라운관 같은 미인형

본래 스립형으로 번데데한 얼굴은 좀 답답하다고 하는 느낌같았던 것

요즘에 넙데데해도 미인과 같은 모니터형 얼굴

상학처럼 오묘한 것에도 

스마트 폰이 기계라는 것인데

파종이 되는 것이며 뿌리도 있는 법

부평초?

삶은 하나의 모니터

가장 진을 빼는 것이

운전대 잡은 때의 긴장에 쏠리지 않기 위하여

운전을 배우지 않을 정도의 무의식적 정서의 일율성을 위한

무의식적 영감의 대비성에 일율적으로 깔려 있어야 하는

그냥 모니터의 침묵의 고요한 바탕 화면을 위한 듯이

하늘마져 긴장성에 있지 않는

안경처럼 처럼 흐릿한 시력 나쁜 더듬이 같이 눈을 떠도 

사랑스러운 눈빛과 같아도  

서로 외면 당해도 할  수 없지 

스마트 폰!

괘를 열면 그런 것이지

어쨌던   어데든 미쳐 있는 것이 아니든가

내가 날 나무라니

그대는 그대를 나무려러무나

다만 괘상은 기계요

꼭 스마트 폰에 몰입한다고 굳이 탓할 일도 아닌 것

다만 괘상은 켜놓으면  그 내용에 눈을 떼기 어렵듯

요즘 모두들 스마트 폰에 징신 팔리는 만큼이지 말란 법도 없다

어차피 인간은 미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것이 아니든가

어차피 시간이 외면된 듯이

그 시선으로 빨려들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든가

스마트폰이 시력이 있다

괘상이 그렇듯 시력 속에 우주가 아니든가

 

 

무(無)이지

 

가을이 하얀 서리로 돌아가면 

무우가 뽑힌다

안이비설신의가

무안이비설신의도 물어야 무우가 드러나지

어쩌다 환골탈태같은 구름이 모이면

강원도 하늘이 뽑혔다 구멍이 났다

사는 게 허공 한 뿌리 한 무우

가로등은 무우의 분말 가루를 뿜는다

무를 뿜는다

 

 

사주는 자신의 나르시즘을 철저히 가져다준 사물인 것이다

 

사주 팔자란 학문은 인간의 경지를 넘는 신의 차원이다

다만 인간에게 있어 사주란 무엇인가

자신의 카타르시스 흡혈귀처럼 빨아먹고도

자의식을 못 하는 것은 나르시스를 능가는 것이다

그래서 물질이나 사람과의 인연이 상대적으로 와지는 것에서

자신의 나르치즘인을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살생이라는 것도 자학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 것도 업의 두깨에 따라 깨달음이 빠르고 늦고 하니

감은 살생을 계속하고도 자학의 부위임을 모른다

이는 나르시스는 상에서 못 깨어남이지만

인간은 상에서 깨어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상의 뿌리에 젖어있음을 모른다는 것이고

그 깊이도 상일 뿐이라고

결국은 천상층으로 얇은 필름과 같은 것이니

자신이 어느 육도에 있든 이 상을 벗으면 된다는 것이나

업이 두꺼울수록 나르시즘과 같은 것이 두꺼운 것이니

자꾸 하근계로 태어나 깨달음이 늦다는 것이니

상일 뿐인 것이 상을 두껍게 한다는 것인데

부처님의 말씀에도 32 상이라 함에는

이 사이 결국 해탈도에 이르는 완비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가 천상계를 떠나 샘을 마셨을 때

이미 바닷고기처럼 갇혀도 바다 위의 천상으로 알 듯이

거기에는 벗어나고져 하는 자학성이 있을 수 밖에 없지 않는가 하는 것이니

사주는 철저히

그 불균형을 철저히 바루어 나가는 이치가 있음을 가리키는데

그랗다고 균형이 잘 이뤄졌다고  소멸된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런 균형성일 때 더 매진하여 해탈하라는 것과 같이

철저하게 사주는 자신의 나르치즘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六通의 우주성

 

이통은 블랙홀과 같은 것인데

이 것이 두 개로 나뉘지는 차원에서 안과 밖이요

유무의 관계요 공과 색의 관계일 때

이통도 한 부분인 것인데

그럼 1이라는 것은 어떻게 형성되어

태극의 혼돈과 같은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 혼돈이라고 하더라도 물과 같은 평정심이라고 할 때

그래서 블랙홀에는 낙원이 있을 수 있다는 가증이 나오는데 

이 것이 과학성이 부처님의 六通에 결부되기 때문이다 

즉 이통적 나르시즘 못 되는 겨 묻은 개가

안통도 못 되는 똥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다 서로가 나르시즘을 갖고 손가락질하는 것이니 

나무라고 독촉하는 것이라는 것이 

천상층마다 표개고 포개고 보면 

동을 동이고 동이여! 똥이 되니 보니 

오히려 겨는 얇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닌가 

뭐 ㄷ이 ㄸ으로 된 것이나 

ㅓ가 ㅕ로 된 것이나 

다 그렇게 묻은 것어도 다 제 상층이라는 것이니

그래서 안통의 나르시즘을 해방하고 손가락질 하면 

높은 차원의 인물인 듯이 해도 이통에 머무는 것이고 

그 이통도 결국 똥 묻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통을 넘어서지 못 하면 나르시즘을 해방한 듯 하지만 

결국 이통이란 감 1 수인 것이요

원소 주기율 1 수소에 원자 단위인 것이니 

결국 어미 뱃속 자궁일 때 이미 원자 아씨가 되는 것이요 

결국 안통이 그 뿌리는 못 벗어나니 

나무에도 꽃이 피는 것이요 

그 잠재성은 허공에 묻혀 있기에 불은 없다가 생기듯 하다 

나무가 없으면 허공으로 끄지는 것이요 

그러니 빅뱅이 터지지 않았다면 안통은 없는 것이요 

전자와 전류와 같은 것이 있을 뿐인데 

또한 전자와 전류가 있기에 자면 불꽃이 피고 

나무에도 꽃이 피는 것인데

이 것이 안통의 영역인 것에서 

이통을 보자면 백뱅 이전에 수라는 것이니 

이는 곧 이통에 통달하면

백뱅의 차원을 넘는 고리가 있음을 나타낸다

얼굴도 보자면 안톤은 눈감을 수 있어 거풀이 있지만 

이통은 그대로 열려 븧랙홀처럼 말려들어가는데 

블랙홀은 빅뱅 이전일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럼 이통은 빅뱅 이후로 끌어들이는 허공계라면

이 것이 앞뒤가 안 맞는 말이지만 

이 순간 어쩜 색이 공이요 공이 색이라는 것으로 

맞잡고 흡수된 아닌가 하는 것 

즉 반물질계가 공적으로 있어 색으로 넘어오니 

도리어 빅뱅 이후로 등어와지는 이통이라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가 공즉시색일 때

색즉 시공으로 또한 넘어간 것이 이통인 것인데

이는 곧 빅뱅 이후가 빅뱅 이전으로 넘어가는 귀와같은 홀이

실제 맞는 것이나 이는 곧 공즉시색과 맞물려 온다는 것에서

이로 부처님의 무기와 인간의 무명성을 동질성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인수(印受)라는 결제란 어느 정도인가

 

부옥의 한인은 벗어나고져 떠나면 텐트 한 짐에 식기 몇 점과 같다

어차피 거기에 갇힌 듯 노에가 안 되면 지고 가야한다는 것이지

친구라고 같이 걸어주지도 않는다는 것이 사주의 운빨이라는 것이다

 적고 印受가 강하면 부옥의 한인라고 한다

그러니 인수가 식신을 제압하면 하는 일마다 장애가 생기니

자연 고향을 떠나고져 한다

그럼 떠나며는 떠나지는 것인가가 있고

팔자는 어델 떠나도

그 치우침의 기울기 그대로 균등성을 이루는 것이지

사주 자체를 서래질하여 평면으로 하나같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식신이 작고 부가 강하면 팔 물건의 꾸러미는 작고

입고 자는 도구의 꾸러미 더 크게 챙겨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니

결국 집이나 고향에 살면서 궁핍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몸은 고되어도 의관을 버리지 못하고 무겁게 져가며

동분서주해야 하는가이지

이 인수를 벗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취사의 선택은 있되

이런 형태의 달라짐이지

그 구조적 형평성을 그대로 사주의 치우침 대로 지고 간다는 것이다

결국 인생은 자신으로 자신의 짐을 다 벗는 것이다  

보통 인수가 많고 기신이 경우는 고향을 떠나지 않는 것이 좋은데 

그렇다고 나아지는 것보다 그 취사가 어느 쪽이 나은가 하는 것인데 

그 것은 답답하고 무기력하게 소득이 없어도 그 자리에 버티는 것으로 

내 자신을 나무에 붙들어 맨 듯이 해도 견딜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결국 그 것이 싫어 집을 나가면 

절대 맨 몸으로 나가지는 것이 아닌 그 집의 무게만큼 지고 가야하는 것 

그만큼 자신에 부담주는 만큼 짐을 늘여 이동할 수 있느냐와 같은 것이지 

즐대 벗어나지 않는 것인데 

집도 옷과 마찬가지로 절대 발가벗고 갈 수 없는 달팽이와 같은 것이다

즉 집을 떠나도 집을 지고가야 하는 것인데

왜 실제 상으로는 떠났는데

왜 떠나지 않은 불균형인 채 균등성을 유지하는가 하는 것이

어떻게 매카니즘을 형성해야 가능한가를 첫째로 요건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풍수와 관상

 

우리가 태극 상으로 말이 되지 않으니 졌혀 두고서라도 

최초의  한 마디가 無라고 했을 때 

결국 兩二가 面相으로 두 개식의 구멍이 나는데 

이 것이 구멍이 먼저인가 이목구비가 먼저인가 하는 것이 있다 

즉 주기율 상으로 2 兌澤이 얼굴이면

이 것이 허공의 기운을 끌어 하나를 더해야 이목구비가 되기 때문인데

이는 곧 兩 눈 구멍이 2인 것이고 하나같이 보는 기준이 3이라는 것이니

실재 이목구비라고 하나 다 虛의 실체로서 하나인 것이다 

우리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것은 

바로 이 공이 두 개일 때 2라는 차원의 순서로 열리는 

원동의 양극이 갈라지는 정류자와 같은 상태일 때 

이다 아니다 의 대칭성이 생기는 것으로 전극처럼 접촉해야 하는 것이니 

결국 부처님 말씀의 무기라는 것은 원소  3주기율의 안통의 차원에서 

밝아지는 것이니 이 화라는 것은 무에서 켜지는 듯이 하는 것이니 

나무는 위치성이 있지만 실제 화는 위치성이 없고 어둠 속에 있는 것인데 

켠 순간의 루트와 같은데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기나 무명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마치 정유자의 갈림 사이로 강을 건너듯이 하여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양이 정도에서 있을 듯 없을 듯이 되었다가 

천지인이 되면 사람의 실체로서 보게 되는 것이듯 하다가 

막연한 허공적 애착이 들어 자꾸 머리를 쓰게 함이 자손 줄과 같은 것이고 

그러니 풍수도 기각적인데도 기를 발하는 시스템이 있는 것이다

결국 여기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보니 

풍수로보면 생사를 사이에 두고 오고감이 있는 것이라 

결국 관상에도 그대로 나타남이라 하는 것이다

 

 

물리학적 풍수

 

우리가 보통 추상성과 실체성의 상관관계가 

어느 정도 절차의 과정을 논리적으로 이을 수 있는냐가 관건인데 

실체성의 한계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의 도출이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火田이라는 말도

물질적 성분 

즉 토가 흙이고 金이면 쇠가 되는 성분성이라는 것으로 볼 때

무지개 지붕을 올리는 법칙과 같은 것으로

즉 주황은 빨강의 다음 층인 띠가 된다는 마크와 같은 것이라고 

眼通이라는 것과 약속이 되었을 때

色은 원소인 것이고

주기율은 나름의 수용하는 기하학적 수량을 내포하는 구조라면 

결국 둥글면 金이요 평평한 네모나고 평평한 것이 土라는 형상적인 것을 

그대로 성분성으로 연계되어 드러낼 수 있음이 법칙으로 수용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이야기는 지리로서의 풍수가 아니라 

천기로서의 풍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확실히 형태와 서질이 같을 수 없는 

즉 체가 둥글어도 빨강색일 수 있듯이 

그 긋이 그 것이다라는 결론이 맞붙은 것도 아닌 것으로 

같은 것으로 할 수 있는 유기적 루트는 어떤 끈을 갖고 있느냐와 같다

일레로 산이 벼랑을 끼니 거기다 화전을 해먹으려면

허리 띠처럼 밭을 일구었다고 할 때 

이 것은 무지개의 띠처럼 드러날 수 있느냐와 같은 것이다

이는 뱀의 형태인데 실제 뱀은 화이다

그럼 뱀과 화전과는 관계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즉 무지개 색이 되기 전에 빛은 색이 없는 것인가와 같은 것이다

또한 색으로 치면 빨강이라고 화라고 하지만 그런 행태지만

그 것이 색으로의 표현이 아니라

행동으로서의 표현은 뱀의 실체에 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색의 생동감이 살아 인연처럼 붙은 것만큼 

뱀도 태어나 인연에 붙은 것이다 하등 바를 바 없다는 것이 된다 

숫자란 철차를 넘아가는 마디가 있어 숫자가 된 것이지 

붙으면 길나 짧으나 하나의 것일 뿐인 것이니 

숫자 자체가 이미 지붕 한나 쓰고 집이 되는 것이기에 

원소 주기율이 지붕도 되고 바닥도 되는 것인데 

꼭 무지개적 일렬성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형태를 이루더라도 나름의 주파수나 파장이 되면 

그 색을 띠듯이 할 때 

붉은 색이나 불이란 것은 화전처럼 헝태를 이룰 때 

그 색이 되듯 뱀도 되는 것은 마치 화괘로 빠지면 색이지만 

풍괘로 빠지면 뱀으로 나타낸다는 것이 되면 

색이 갖는 파장성에도

정자보다 더 작은 파장성에서 와졌다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즉 형태만 띄어도 그 성질을 내포함이 유전적일만큼이 된다는  것이다

즉 뱀 독은 화독과 같은 것인데 

즉 불은 펜처럼 드러내지만 뱀은 독처럼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주파수나 파장이 달라도 색이 달라도 같이 붙은 듯이 하는 것이 

마치 일시적으로 산이 화전을 벨트로 차 붉은 색을 띠는 부위가 

자연적으로 띄어 붙은 듯이 한다면 이러한 응결성은 

결국 그 입자에서 다시 피울 수 있음이 

꼭 세포가 허공 속 먼지마냥 일어나 유전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시스템의 메카니즘보다 훨씬 물리적 논증이 가까운 것으로 

상과 내용물이 같이 드러나는 각기 다른 표현과 같을 뿐이라는 것인데 

이는 형상이 불같든 

형상이 펜 끝의 글 내용을 피우든 

화전을 걸칠게 일 궈 생애를 표햔하든 몸짓이든 

이련 형상믄으로 주파구 같아 뱀이 되는 형태일 수 있고 

무지개의 벨트에 차여진 중일 수 있고 

무지개 즉 빛이 둥글다는 것은 빛이 건괘의 인력에 들었다는 것이니 

이도 언덕처럼 밭이어도 건괘이듯이 건쾌로 질 수 있음인에 

그럼 점을 필 때 기준을 어떻게 하느가 하는 것이다 

색으로 볼 것인가 뱀으로 볼 것인가 화전으로 볼 것인가는 

또한 분별해 주어야 한다 

어떤 도라도 이 정도에 세분성에 들어오면 그로 포기한다든가 

일방적으로 하나만을 집중적으로 몰아 가든가 하는 것인데 

어덯게 이 것을 입맛에 맞게 취사를 할 수 있는가는 

응용의 한계이기도 하고 그 깊이의 한도를 못 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먼저 자신이 주지하고져 하는 그 자리가 매우 중요하다 

그 것이 흔들리면 곧 신통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풍쾌이면 뱀을 의심하고

건괘이면 무지개를 의심하고 

간괘이면 화전을 의심하는데

이는 곧 원소 5 주기율이면 뱀이요

1 주기율이면 무지개

7 주기율이면 화전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

물질적 원소성과도 같다는 등석이 나올 때

그 화학성만으로 질병에도 근접하는 것이

접근로가 화학방정식처럼 엮인데 있다는 것과 같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부터는 많은 응험적 확신이 있어야 점을 정확히 보는 것인데

이런 역학적 실제성을 확신하고서야 또한

화학적이고 물리적 주기율과의 톱니를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운이라도 법칙을 기계적이라도 훤히 보는 것이기에

반푸수라도 교주가 되기도 하는 것에 이 건 대 원력에 가까운 천기이다

그러니 어떤 종교도 동양철학의 지식이 알게 모르게 판을 치니

더욱 신이 없어보이니 더욱 기복적 것은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 나라인데

이 것도 학문적으로나 지성인의 가치로서 대하면 일반적인 것일 수 있나

워낙 교묘하게 없는 듯 아닌 듯 하면서 실제 알맹이를 몰라도

꼭 기만하기 좋을만치 영험함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전이 뱀이라 함에 그리 무리수가 아님은

거칠고 메마른대다 나무를 테워서 일군다는 것인데

이런 독한 삶의 구조가 또한 밖으로로 몸을 구불구불

불같은 춤을 추며 나온다는 것이니

꼬불꼬불 산길마져 길을 꼬으듯

자신의 마춤 옷같이 하고서 살게하는 것과 같으니

만일 뱀 한 마리가 火田의 몸짓으로 그 같은 주파로로 해서

생물로 태어난 물질계로서의 인연이라면 그는 네 다리보다 

불길처럼 살다 이열치열인 듯이 살다 가길 원할지 모른다

이 것이 물리학적 풍수가 아닌가?

즉 산의 허리에다 띠를 두른 것이 정장을 하든가 의관을 해서 보니

무지개 궁궐에 붉은 옷을 입고 조회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그 반열의 줄서기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 되는데 

이 것이 결국 간상이 건상으로 가니 그런 모습이더라는 것이고 

이 건상이 머리이니 이마의 주름의 띠처럼 띠는 것이더라 

왜 그럼 이마의 띠인가 

이는 건은 노양이요 노인을 말하는 것이요 

당연히 늙어 짙은 주름이 허리띠와 같음이 아니든가 

그러니 젊어 허리 힘 

무얼 그리 아쉬우랴 

이마의 주름 벨트가 진정 영혼의 힘인 것이니

우린 그 색보다 

주파수와 그 파장성의 굴레를 주시해야 한다 

무엇이든 끌어들인 구심이면

파장성의 식별성같은 것이 색이 아니든가

이는 곧 전자층적 반사요

달과 같은 위성이 되는 것이니 

인간이 월경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러한 취용성의 원대한 진리로서의

경문과 같은 위대함일 것이다

 

 

유전공학과 팔괘 그리고 원소 주기율

 

보통 원소 4 주기율까지가 일차적 세포분열에 속하는데

이 것이 양 대칭성이라고 할 때  

그래서 8 세포期의 분열 상에서 어려움을 격게 되어 있는 것이다

즉 8 세포가 되면 8 卦象을 다 이루는 것으로

여기서 부터 다시 들어가야 함이 爻象인 것으로  

이는 배아 줄기세포의 2 차적 분열 상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爻가 음양으로 갈라 16 세포로서 辭가 발해야 함과 같다

즉 괘가 상하괘로서 4와 4로서 청격을 주어 분열이 일어날 때

효사 발하는 것과 같기에   

효는 이미 16 세포의 기능성으로서 발하는 것이고

세포 분열의 8까지의 영역은 卦辭를 이루는 영역이 되는 것이고

이 8 영역에서 부터 영향력을 발하는 데서의 한계는

바로 周易의 爻辭로 다시 위이브가 일어나는 영역을 말하는 것이다

즉 줄기세포의 난제가 지금까지 해결을 못 한 것은

주역의 卦辭에서 爻辭의 파문을 일으킬 때의 시점인 것이니

이는 곧 영혼과 육체의 줄기를 잡아가는 첩경이 되는 것으로

어느 학문도 이렇게 접근한 논증은 없을 것이다  

결국 물리학적이고 유전공학적인 것도

이런 주역의 인문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철학적 위치를 차지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이러함에 있어 성체 줄기세포로서의 기능은

원소 주기율 3인 것으로

이 三은 원심분리기로 단백질을 나누어 RNA로 합성이 될 때

그 단잭질적 아교성을 뺀 줄기만을 취용하니

이는 곧 天地人의 유전형의 골격만 남기고 배양함과 같다

그리고 역류성적 세포분열로서 줄기세포는

언어의 연역법과 귀납법적 적용성과 같은 것이다

그럼 왜 배아 줄기세가 8이 되었을 때

전기 충격으로 융합을 해야 하느냐

이 것은 원소주기율 4가 震雷宮에 속하기 때문인데

완전 동양 철학의 팔괘를 도둑질하듯이 취용한 것에 불과하다

즉 먼저 팔괘로서 괘를 이루었을 때

다시 그 궁으로서 분열성의 우주를 갖추게 되는데

이 것인 2차적인 것인 것은

팔괘가 접히는 중복의 복사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것이 2 차적 세포분열의 시점이기 때문에

배아 줄기 세포의 난제를 안게 된 것이다

성체 줄기세포는 천지인의 순도

즉 이미 구성된 성체로서의 골격이기 때문에 도덕적인 것을

벗어난 합리성을 갖추고져 하나

이 것은 그만큼 세기적 안목의 주도권을 갖추고져 하는 치밀성이다

 

 

지금까지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사람의 수정란을 8세포기(期)에 이르게 하는 데는 기술상 문제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8세포를 16세포로 분열시키는 과정에서 99% 이상의 학자들이 좌절을 겪었다. 8세포기가 유전자가 새로 활성화되는 시기여서다. 2005년 황우석 박사 사태 이후 전 세계 5∼6개 연구팀이 8세포기를 넘어 배반포에 도달했지만 사용한 난자 수 대비 수율(收率)이나 상태가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다.

 미국 오리건 건강과학대학 쇼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팀이 이 같은 8세포 허들(hurdle)을 뛰어넘었다. 세계 최초로 복제된 배아를 이용해 사람의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셀(Cell)'지 인터넷판 15일자에 관련 논문이 실렸다.

 연구팀은 성인 여성의 난자에서 유전자가 들어 있는 핵을 빼고 다른 사람 피부 세포의 핵을 넣었다. 이어 핵이 이식된 세포에 전기 충격을 가해 융합시켰다. 황 박사팀이 시도한 체세포 복제기술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수정란과 같은 복제 배아가 만들어진다. 연구진은 배아의 세포 수가 150개 정도로 자란 배반포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상과 물리학

 

 

우리가 이빨로 넘기는 것을 원동기 심이라고 할 때

인중은 정류자이니

인중이 잘 패여야 잘 돌아간다는 것과 같다

이는 곧 마디적 형식이 잘 갖춰져야 음악이 잘 흐르는 것과 같다

그럼 광대뼈는 양 쪽의 자석이 에워싼 것같다

어쩜 뻐도 숨울 쉬는 데서

허공성 자체

즉 공간성 전부가 자석적인 것으로 하면

오히려 적절한 차단성이 반도체적인 자석인 것으로 하면

 

허공성으로 유발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뼈가 금속성을 대체할 수 일을까가 아니라

허공이 금속성과 같은데 어떻게 적절히 차단 되었는가의

상식과 다른 역발상적 기능으로서 원동기를 돌리듯 만들어진 것이

이 이승의 생명체가 아닌가 하는 것도 있는 것이다

즉 초창기의 수퍼컴퓨터같은 금속성에 대한 의지가

마치 양성자적인 것을 중성자적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에서는

몸이 세포적이듯 활용성을 띠는 것과 같다는 것에서

이는 마치 원소 7 주기율적 금속성 강한 원동기가

원소 6 주기율적 차원에서는

거의 전도성이 희박한 희토류에 많이 접목된 진화성을 나타낸다는 것이 되는데

이보다 역발상적으로

차라리 깨진 독에 물같은 자석적 힘을 끌어 들여야 한다는 것이 된다

 

 

진리와 진실

 

 

티끌 하나가 있었다

그 것이 주기율 하나도 아니었을 때

원소 3 주기율까지는 거의 무색계와 같은 평화로움이었다

그러나 원소 4 주기율까지 가니 자꾸 무거워지더니

급기야 폭발음이 일어났다

그러나 다른 것은 가라앉는 중에도

빛은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다시 잡히고 달아나고,

잡히고 달아나고,

진실은 무엇이며 진리는 무엇인가

5 주기율에서 4 주기율을 보니

차가 달리고 로켙이 달린다

그러나 2 주기율에서 보니

야광은 사라짐인데

빛만 모두 선으로 남는다

이 것이 진실일 뿐이다

안 볼래도 보면 사진과 같구나

삼 주기율로 걸으니

내가 지나는 것마다 빛일 뿐이나

저 4 주기율의 세계에서는

천 년. 만 년 사이에 한 번 본 것일라나

 

 

사물의 수상행식

 

우리기 靜線과 動線으로 나눌  때 

그 유지가 길어지는 것과 짧아지는 것은

파장의 길이와 비례하는 것과의 섬유성과

 

그 한계로서의 고착적 경계성으로서의 포개기

즉 火土가 화석같은 저장성과 분변성을 낳을 때

경계를 나누는 한계성과 그 점정적 깊이와

우리 눈을 떠났어도 동선적 길이 간의 

서로 모를 수 있는 인식의 한계로서의 

實을 空的으로 통과할 수 있는 것까지의 경계성  

즉 意도 분명 육체적 실체인 것이나

우린 그 생각을 모르고 통과할 수 있는 것 

무의식 또한  있으나

의식은 모르고 통과한 수 있는 것

그런데 범차원적으로는 서로

정신과 불질이 서로 트여 아는 듯한 일체성의  

서로 알아서 영향을 미치는 굴레 안의

그 견고성으로 분류하는 것이나 

오히려 물질적 무개의 짧은 번화같은 서로 간의 장애는 훤히 꿰뚫는, 

이 것은 이승의 물질계로서 인식의 틀로 엮을 수 있음이 

원소 주기율로서의 차등을 둘 수 있는 것에서 불 수 있음이듯   

이를 먼저  意에 두는 五行이라면

이는 곧 理性의 차원에서의 자극성이 되는 것이고 

감성적이라고 함이 身이라고 할 때

각각의 개체성 안의 色 中의 하나로서 할 때 

원소 주기율이

族은 같아도 주기율이 다른 것 만으로 

색이 다르다는 것으로 보는 경계같은 것

즉 眼만의 色이 아니라

六根 모두를 色이라 칭할 때의 색으로

주기율적으로 나뉜 것이 다시 육근인 이목구비라고 할 때

그 같은 오행이라도

또한 행뿐만 아니라 고정성이어도 수용하는 인지가 다르듯 

천상계의 시공성을 띠고 있다고 봐야하는 것이고 

이런 시공성이 물처럼 쫄았다고 할 때

남긴 성향이 원소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이 것이 다 빅뱅 안의 유기성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受想行識의 대조가 이뤄지는 것이기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 

곧 周易의 火水未濟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블랙홀과 섬유성

 

우리가 파장성이 없으면 섬유성도 없다고 할 때

즉 원심의 폭인 火가 있으면 

곧 그 것을 구심으로 끌어 당겨 실을 만들 듯이 한다는 볼랙홀

즉 이 수화의 관계가 고착성을 띠면 나무가 되는 것이다

즉 이 우주 속의 파장은 

이 우주가 수축과 확장을 번복하기에 

그 먼지와 같은 것은 것조차 

선과 점을 번복하듯 혼재하는 것이다

 

 

자연과 인문

 

우리가 자연적으로 수소 한 알을 원자의 수리 단위로 할 때 

화학적으로는 주기율로 일곱 가지로 누적이 되는 깃이면서 

또한 洗漏가 되는 것이라면 

부처님의 방편을 한 번보자 

이 중아함경 칠품경에서 보면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어떤 사람은 항상 물 속에 누워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왔다가 다시 빠지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러 있고,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또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며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라야 저쪽 언덕에 이르는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를 언덕에 머무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나는 마땅히 다시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가지 물에 비유한 사람에 대해 말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과연 이 설법이 방편인가 자연인가 하는 것이 있다

말하자면 인연의 직접성은 그 깨닫기가 멀지 않는 것에 있고 

두루 걸쳐 올 것도 아니기 때문의 돈오점수가 있기 때문이다

즉 화학적 주기율의 울타리 안의 口라는 것에 

이런 인문적 최고의 향기를 내뿜는 것이 아닌가?

결국 靈과 肉이라는 것이 이렇게 완전 化하여 나오는 것이고

그 매체가 되는 것이 또한 周易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핼륨과 전륜성왕 

 

전륜성왕은 인간의 복을 받아, 

즉 인간의 네 개의 복을 받아 다스림이 있는데 

참으로 신묘함은

전륜성왕이 행차하면 물길이 갈라진다는 것인데 

어찌 보면 임자(妊者)의 양수(養水)를 갈라나오는 비유가 되는 것이나

이도 다 달과 관계가 있음이요

무엇보다 양자 물리학이 수소를 차고 나와 행할 시

네 개의 핼륨으로 호위하는 것이 기특하고 기막힌 일이 아닌가 

인간 팔만 사천 수명도

결코 헛된 복이 아님을 알게 하는

진보적 과학이라는 면목이 우주적 영역을 보게 하는지도... 

 

 

과학으로서 영혼과의 접근성 

 

무엇보다 원소의 바탕성을 알기 위해서는 

화학적 접근이 필요한 것을

매우 물리학적으로 메카니즘을 이룩해 놓았다면

周易은 매우 인문학을 곁들이 철학성을 이루고 있기에 

易學을 그냥 동양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식의 축적성도 시간의 축적성과 함께 이루는 것로서의 과학에 

마냥 불립문자니 돈오점수로만 이해 시키기는

추상과 실재성이 먼 듯이 따로 놀 수 있음에

마냥 운둔형이나 심산인으로만 이미지를 남겨

개래도 낚일 복이면 낚이는 것이라도 꽤나 천명을 아는 듯이 젊을 빼도

세상이 周易이라는 우주에 

어느 정도 알면

육갑만 거들충이처럼 알아도 소 발에 치이는 것보다야

공밥은 아니 먹을 수 있는 자연복도 있는 것이니    

이도 다 보면 秘색도 없는 것로 秘機가 있는 듯이 행세는 하는 것이니

천기니 뭐니 해도 

다 일상적 평범에 내재된 것이니 

무엇이든 극한에 있는 듯 싶어도 

다 평등의 저변성이 그러한 것이며  

이러한 동양철학이라는 것을 불리문자에만 매단다면 

결국 문제를 내과적으로만 낫게하는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문명의 이익은

외과적으로 잘 굴리는 편한 쪽에서 누린다는 것의 이중성이 된다

그러니 물질적 화학의 요소에다

인문적으로 化하는 길의 周易을 접목 시킴에

좀 더 인과를 두려워할 줄 아는 성품의 구성력을 알게 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이 화학이 될려면 원소가 담긴 자루를 펴야하는데

이 것이 원소주기율이다 

그러니 먼저 이 주기율의 껍질을 이용해야 이식이 되듯이 

우리가 마냥 젓가락으로 유전자조작을 할 게 아니라 

영혼을 집는 젓가락도 내놓아야 하는 판국에 온 것이 된 것이다

그럴려면

먼저 色인 六瀆(眼耳鼻舌身意)이 원소의 주기율인 쌈으로서 

각기 달리 나타내는 영역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과

그  원소의 성질마다 주역의 오행으로 접근된 정의가 생기는 것이라면

이는 곧 영체가 공학을 앞서야 함에 심령공학이 될 것이다

어차피 펄학이 과학의 모체가 되려면

이러한 구성력을 발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궁극적 요구 사항이 될 것임에

어차피 있는 것은 있는 것임에 무리가 가더라도 정립은 시켜주어야 한다

즉 신맛이나 푸른 색이나 같다고 할 때 

눈으로 보니 푸르고 

혀에 닿으니 시더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현대 과학은 신맛 뿐만 아닐 여러 색깔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 것이 자연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면

그렇게 자동되도록 하는 것은 

자동이게 한 조작인 것이냐는 議題가 있고

여러가지 色이 아니라 한 가지의 것으로 정의함이

오히려 사물의 방대함에 기여하는 한정치의 잣대로서의

규격성ㄷ으로서의 루트는 어떠한가 하는 것이 되는데

결국 일관된 방향성의 닿은 거리나

 에너지의 함량적 표시가 되는 경계를 보여 준다는 데서

外의 다양성에 대한 內적 규격화의 성격을 드러내는데 중요한 것이고 

이러한 다양성이 주기율적 껍질이라면 

마치 원소 3 주기율 상의 眼 즉 色에 푸른 색이라면  

원소 6 주기율상으로 들어 耳인 것으로 소리로 들리는 것이라면 

우리가 소리를 꺾어 형상화한 것이 木이라면

소리의 형태를 띠는 字형의 가사로는 角音이 되는 것이고

그냥 경응악적으로도 음양오행을 느낌이 원소 6 주기율인 귀의 木音이라면

어떻게 원소 3 주기율에서 보이던 푸른색이

4 주기율로만 넘어가도 이미 눈으로는 보이질 않으나 

소리로는 角音으로 들리는가 하는 것이다 

즉 이러햔 금단의 현상이 이승과 저승의 금단과 같은 것이라면 

충분히 周易은 접근을 한다는 것이다

즉 이 六根이라는 것이 각기 그 느끼는 方所는 다르나

음양오행적으로 같이 규정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니 

이는 곧 원소 주기율은 그 영역이 六根만큼이나 다르나 

族 上으로는 六瀆으로 같은 것이듯 정확히 드러냄이 있다는 것이다

 

 

차원의 형상화와 숨은 그림찾기 

 

보통 물리학계에서는 이미 10 차원의 세계를 규명한다고 하는데 

이 것이 어떤 한 면모 상으로 드러낼 수 있느냐가 있고 

드러내면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기는 아닌가 하는 것이 있다

다만 이론을 형상화할 수 있는냐와 그 형상화를 좀 더 

인물 상에 다 넣을 수 있느냐가 있는데 

어떤 형식으로든 갖추어 넣울 수는 있어도 

그 본성으로서의 相貌의 형태는 아직은 요원한 것이지않나 하는 것이 있다 

결국 相이나 六根이나 함께 결정이 나야 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드러내는 데는 상호성이 있음으로서

근접은 그리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은 아니나 

육근을 각기 따로 놓고 그 하나의 개체에다 육근을 다시 심으라는 식으로

종식(種植)이 되는 것이라 봐야 하는 것에서

이목구비가 느끼는 특성을 그대로 하나의 특성으로 옮기라는 것 

즉 소리는 耳에 있으나 빛의 眼으로 드러내라는 것은

임의적으로는 만들어 낼 수 있으나 

자연적으로 같은 속성으로 드러낼 수는 있는 아니라는 것이니

아직은 그 접근성이 멀다는 것으로

그래서 나도 그렇게 같도록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 접근성은 가장 정론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고 본다  

그러니 먼저 형상보다 논리를 찾아보아 인체의 예로 보자면

같은 火여도  심장이 마그마와 같은 것이라면 

목의 혀는 나무에 핀 것이라고 봐야하는데

일반적으로 꽃은 펴는 것이라지만

배추도 묶으면 한 뭉치고 내버려두면 너브러지듯이 

혀도 그런 것이려니 해도 

별어지는 이빨 사이를 兌澤인 원소 2 주기율로 하면

그 것을 닫고 

이목구비를 닫은 것을 원소 1 주기율이라고 하여

통채로 원소 1 주기율이라 할 수 있음이라  

이는 다 입이 입을 연만큼에서 원소 2 주기율이 되는 것에서 

이목구비도 짝의 거리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도 있다

즉 혀가 목 위에 붙었으니 나무의 꽃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것보다는 혀를 아물린 채 닫으면 

머리인 씨의 눈이 되어 火를 띠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의 모형에 여러 가지 숨은 그림이 나오듯이

혀가 木의 花인 동시에 씨의 花가 되는 듯이 하는데 

그래도 머리는 껍질이 단단하다고 火로 하는 것이 아니라 

乾金으로 하는 것이라 이빨을 아물린 것으로 

내외를 전반적으로 하나로 취급하는 것에서 

머리 통 속에서의 혀인 눈이듯 씨눈으로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식물이 동물과 반대로 서는 것으로 보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논리가 되는 것으로 

물리학에서 11 차원까지 발견한 것을 보면 

마치 우리가 12 地支를 갖고 얼굴을 그릴 수 있듯이

相과 함께 性도 그릴 날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상성(商聲)과 치성(致聲)

 

商聲과 致聲의 차이는 

치성은 공간적 범위를 넓게 사용하는 

空鳴이 넓은 공간에서 일어난다는 것이고 

상성은 같은 부피의 공간성이어도 

치성처럼 공간의 자유로운 폭을 휘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겹이 아닌 여러 겹으로 꽉 찬 것에서의 

그 장애를 스치는 중에

그 벽이 과중할수록 

공간성이 더욱 좁게나올수록 상성이 된다는 것이니  

이허중은 공간성의 매력이라고 할 것이고 

중건천은 꽉 채워 조밀할수록 내는 매력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소주기율 차이의 수용하는 폭의 성격 

 

동양 철학은 

이목구비가 각기 다르게 느껴도 

오행으로는 하나같이 보는 것이 

결국엔 원소 주기율이 천상계를 벗기는 만큼이나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것이라는 것이다 

즉 眼으로서 푸른 색은 

舌로서는 酸맛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耳로서는 角音이 든 것이니 

결국 이 것은 원소 주기율은 달라도 

族으로는 같은 성질을 갖는 데 있어 

六根의 차이의 폭을 갖고 있느냐의 검증이 되는 것이고

오직 원소 7 주기율만으로 갖는

이승적 특성으로만 볼 것인가 하는 것이 있다

 

 

인문적 인과성과 이온적 접근성

 

周易의 음양 오행이 원소적 화학으로 접근하는 데는 

나름대로 사개를 맞추어야 하는데 

먼저 卦의 坎水가 원소 6 주기율에 적확히 드는 것인가 하는 것 

또한 水爻만으로도 적확한가 하는 것이 되어야 

이온의 변화에 따른 어떠한 증상에도 

정확히 인문적 인연의 과보가

어떻게 물질적으로 엮어가는 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어떻게든 주기율 상으로 접근을 했다고 할 때

그 內의 원소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우리가 공망을 이온 상으로 사용을 할 때 

가설적으로

한 원소가 하나의 천상계와 맞먹는 개성적 맛을 나타낼 때 

그 것이 그 시공만의 이목구비의 하나로 

각기 다른 시공적 의식의 특성을 갖는 것으로 하면 

주기율적 차이를 들 수 있음이 되는 것인데  

총체적으로 혼합해 하나의 원소적 성향으로 규정을 한다면

하나의 원소가 일괄적인 인식의 이목구비적 감각을 갖는 것에서 

다시 이목구비적으로 분류하는 것에서

그 自性을 드러낼 수 있는가와 맞먹는 것이 되는 것이다

즉 이것이 性情的인 것이나 

결국 형상화와 동일하다는 것에서 찾을 

관문적 효율성의 모양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丹田인 궁음(宮音)과 혀인 치음(致音)의 조화

 

丹田인 궁음(宮音)과 혀인 치음(致音)의 조화에는

보통 뱃 속 音이면서 굳이 子音을 굴리지 않은 0인 상태

즉 空인 상태에도 깃든 것이라는 공간적 소속이라고 봐야함이네

보통 촛불을 火라함에 離虛中이라고 함은 

이 불은 나무처럼 춤을 추면서도 이러한 空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

즉 있는 것은 그대로 있는 듯이 내놓는 것이라 

火生土가 되는 것이고 

이를 逆順으로 순환하면

혀를 거쳐 뱃 속에 들임이 火生土가 되는 것이다

 

 

천당과 지옥 

 

天金이 딱 하나 결정적인 것이 있는데 

이 것은 천상으로 보내느냐 

지옥으로 보내느냐

음식은 삼키면 삼킬수록 胃로 잘라 보내고 

숨은 마시면 마실수록 허파로 잘라 보내는데

목을 두었다는 것은 반반으로 잘라 보내는 것이 있다

인간 참

 어느 쪽인든 같이 잘 붙어산다면 

음식은 삼킬 때마다 기관지가 비켜주는 것의 길목이니 

이 사이란 것에는 두 길을 갈라서 보게 하였구나

앞을 보면 원소 2 주기율인 澤金인 허파요

뒤돌아보면 前 주기울이 땅이 되는 위장이라  

8 族에서 土가 된 바탕에서 한 살도 못 지났구나

 

 

흙이 티끌을 내놓아도

 

초롱! 

초롱!

초롱불!

차라리 금강초롱이고  말지

태양은 가만히 있건만

밤낮 태양을 외친다는 것이

태양 그대로이면 되었지 

뭘 그리 덧칠하고 싶은 건지  

태양에 가려 

낮달보다도 더 못한 것이 

태양은 끌었다고 달처럼 내미는데

차라리 그림자면 그림자이고 말고 

육체이면 육체이고 

인간이면 인간이고 말지

이미 태양인 것을 

김선달 대동강 풀아먹 듯이 

마치 공짜 주듯이 선심에다

주인에게 고맙게 생각하라?

언제적부터 주인이었나 

강은 유수하고 

세월도 말이 없거늘 

굳이 자신의 것이라고 팔아 먹겠다는 것이니

어찌! 

초롱불을 당겨 먹고 살아도 

금초롱 은초롱은 밝게 핌이나 알지      

흙이 티끌에서 내놓아도 

금강초롱 

금강초롱 

태양을 지나쳐도 별처럼 가고 있을 것

달도 안 되면서 

왠 태양을 낮달처럼 외쳐대는지  

진정한 밤이란

먼저 태양을 벗기듯 송이를 벗기고

또한 갈색 거죽인 밤 하늘을 벗기고

그리고 하얗게 내놓는 것

났다 

났다 

열매여! 

차라리 원소 3 주기율인 태양인 밤송이를 까면  

원소  1 주기율일 알톨이 밤에서 나오는 것

왠 태양을 낮달처럼 외쳐대는지

 

 

 

 

 

 

 

 

 

젓 빠는 듯이

 

원소 7 주기율은 혹성이다

원소 6 주기유은 은하수

원소 3 주기율은 태양

원소 4 주기율은 지속하게 하는 동력

원소 5  주기율은 태양풍이 스미는 힉스입자 

원소 6 주기율이면 이 우주를 정복하것 

7 주기율이면 혹성을 정복하는 것

즉 젓 빠는 듯이

우리가 태양을 화인 3 주기율로 할 때

그 주위를 도는 나이테는 원소 4 주기율인 것이고

좀 더 외적으로 명왕성을 넘는 것을 원소 5 주기율로 하고

우주 전체를 원소 6 주기율인 은하수로 한다

그러니 혹성이 단순히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인력이 궤도로 핥게 하여

나이테로 빨 듯이 혹성을 빠는 것이다

 

 

뭐! 사타구니같아도

 

그댄 어떻게 태어났는가 

불이 물에 떨어지니 너무 짧아 

나무를 타고 내려왔다네

그래서 인생은 나무의 사타구니에 힘을 주게 하니

좀 둔한 것인지도 모를 

좀 더 양 팔 끝으로 안아  희열인 것에...  

그래도 익숙하다보니

그렇게  사는 삶도 좋아보일만큼의 

어쩜 그 사이에 실려 사는 것인지도  

 

 

 다  튀는 방울같은

 

 차라리 보이지 않는 티끌도

나무의 손 끝에서 한 번 튀면

손바닥만하게 튀는 것이라

그래!

그렇게 자리 다 깔아 놓아도

정체가 다 드러나지 않았다?

에너지가 무거운 것은

꽃으로 크게 펴 놓아도

다시 뭉터기로 열매를 낸 채로

또 포개고 기다린다는 것

뒤로 열매가 다 드러나기까지

우주의 솔직성이란

꽃으로 편 뒤에는

못 편 열매가 마져 오지요 하는 에너지의 축성에 있는 것

이미 씨의 손끝에 닮아 튕긴 마음에서 나와야 하는 빛

그래! 그렇게 꽃까지는 펴준

그래서 튕긴 꽃에도 다 펴지 못 해

남은 것은 열매로 쌓이듯

그 것은 마찰에서 나온 음이기에 마음인 것

이는 다 빛이 씨앗의 팔과의 마찰에서 꽃이 되어

마음이 되는 것에서 나무가 큰다는 것의

그 것은 씨앗이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설 자리도 없음에도 넉넉한 듯 튕겨도

꽃이 펴는 넓이여도 남는 것에서

또 포개어 기다리듯 뭉치로 나오는 열매

엄지 공주에 튕겨나옴이듯 마음인 것

겨울도 울이라 치는 씨에서

나무가 아무리 뛰어난 감수성이어도,

이승으로서야

나무가 손끝으로 여리게 내놓은 민감성은

대지의 임신이나 별방 다를 게 없는,

 

 

수소와 원소주기율적으로 이룬 우주성

 

빛방울 하나가 터져 빛인 것

꽃방울 하나가 터져 꽃인 것

이도 다 물방울 하나가 터져 분수와 같음이요

물방울 하나가 터져 빛방울이라

서로가 그 끝에 다달아 그렇게 갖추어지니

水極火요

火極水라눈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望에 울이 생겨 망울일 때 눈이라

즉 봄이 가지가지마다 보려고 望을 내놓지 않으면

어찌 망울이 맻히리요 

눈도 의지가 없는 곳에서 눈이 나지 않았을 것이니

눈도 망울만큼이나 맺히려는 의지가 붙은 것이니

망이있 어야 울타리도 치니 망울이라

 

 

차라리 웃음을 보태 허수아비나 될까  

 

ㅇ은 어수록함이니 불분명함이로구나

차라리 ㅇ에 뚜껑을 더해 ㅎ으로 

허수록함에 웃음을 보태 허수아비가 되어라

 

 

소리의 물리학적 특성

 

色에 六根을 포함한 하나로

목 아래 배와 가슴으로 할 때 

이만으로 내는 것을 궁성(宮聲)이라 하는 것에서 

나머지 목 위의 밖으로 내는 소리는 

受想行識的 조화로서 낼 수 있다 할 수 있는데 

이는 뱃 속을 宮으로 하고 

원소 한 주기율의 테두리로 하는 원(圓)으로 할 수 있음레 

이를 다 0인 것으로

내실이 있는 소숫점 안의 것이라고 명제가 될 수 있음이니 

무엇이든 포함되지 않는 것은 없다

즉 宮이라면 동공(洞空)을 나타내는데

그럴려면 離虛中인 火가 되어야 하는데

왜 土가 宮聲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동물의 거죽이

북 가죽처럼 최대의 공명이 되는 자루가 되기에 그러한데

그래서 생사마져도

어느 천상계이든 지하이든  

북쪽에 하나로 몰리듯,

잡힌듯  

중심이 아니어도 몰리듯이 하는데  

마치 부처님이 북쪽에 머리를 둚과 같이

그 중심적으로 몰려 있음에   

북이 북쪽에 있다는 것이어도

그 중심성은 중앙과 같이 하다는 것에서 

마치 각기 크기가 다른 굴러세를 한 손에 다 잡은 듯이 한다는 

무게와 중심성일 것이라는 것과 같다 

또한 이 원이 대칭 되어 양쪽이 되게 하면

이 걸 싼 하나의 원에는 반지름 폭의 지름이 되는 것으로  

결국 모든 최대의 테두리가

두 개의 대칭성에서는 중앙이요

한 쪽으로 보아도 한 손에 쥐듯 몰린다는 것이 있으니

결국 북의 중앙을 치나

우주의 중앙을 친 것이나 

변을 치나 동일시하는 게 있지만

그래도 소리로는 羽聲인 것이고 宮聲은 土로 기본형으로 한다 

우리가 인체를 화학적 루트로 본다면

혀인 火가 致音을 주관하는데 

火生土가 되려면 혀 내에서 보일 수 있는 

虛中의 氣 

즉 宮聲을 내놓 수 없기에 

빛은 사라진다고 해도

에너지적인 木氣에는 살아 있어 남는 형태를 보이지만  

土的인 것으로는 물이 모래에 스며들 듯 사라진다는 것으로

결국 모래알로 까지 다 흡수가 된다는 것이다

즉 土는 그런 파장성이 아닌 것이라 

느낌의 전달성마져 주지 않는 精氣로 숨겨듦과 같아

이를 원소 8족으로 함에

역상으로는 8 곤지를 이움에 완전히 주기율의 한 벽

즉 울타리가 될 수 있음에

임신한 배처럼

주기율 안의 임신으로 

주기율 밖으로 성향을 넘김과 같아

꼭 아이만 갖고 유전형을 다 알 수 없 듯이 하나  

즉 궁성은 원소 주기율적 껍데기라고 봐야 함이고 

도한 배에서 우러나옴을 말하고 

商音은 원소의 최대의 밀집성으로 더 뚜렸하고

꼭 톰이 좁아지는 만큼이나 나니

이빨 사이에서 잘 나타나는 것이며 

角音은 木音이라 

기막히게 목에 가시 걸린 듯 뱉을 때 

칵! 

칵!이 角音인 것이니

각기 지칭의 특성이나 부위를 무시 못하는 것이 된다     

단전에서 궁음을 들어내어 주더라도 

宮聲에 은복된 채 나와 지는 것이 소리라고 할 때

그 소리의 색깔만으로 성품을 알 듯이

우린 그 것만으로 무언가 설명이 안 되는 채로

무언가 봉합된 채 다음 주기율에 드러낸 것이라는 것이고 보면

곧 애를 낳아놓고 보면  

선천적 숙명과 대칭적으로 똑같다는 것이 되는 것에서

어머니가 달라도 유전자를 대신해 임신을 할 수 있듯이

애를 갖고 母를 모를 수 있듯이  

주기율은 다 몰라도 

族은 유전적으로 똑같이 낳을 수 있음과 같은 것으로 

族上으로는

그 성질의 제품이 고스란이 전달되었다는 것이  된다

 

 

원소 주기율과 원소 주기율 사이의 시간성

 

 

원소 주기율 간에 전달성이

봉합된 채 전달되는 것과

개방되어 전달되는 과정 중에서

막이 되는 궤도의 성격으로서 그려냄이 무엇일까 하는, 

봉함의 전달은 가능해도 다른 길은,

마치 소리의 성격이고 영역의 색인 뿐인 것을

그 느낌으로 완전한 것이지  

굳이 가사로 일치시킨다고 같아지는 것인가 하는 것으로 

느낌은 같아도 

꼭 그 뜻으로만 해당될 수 없음과 같다 할 것이다 

즉 소리에 가사를 붙일 수는 있어도

소리를 논픽션처럼 그 것인 냥 풀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막상 풀려면

한 음정의 음색으로 다 포함되어

이미 알 것 다 알 것의 느낌을 

언어체로 굳이 설명하여 이해시켜려 풀어헤친다면

한 점이면 될 것을

종이 한 페이지로도 모자라는 시공적 차이로서 다 채워 넣어도

그 설명성만으로 느낌을 다 붙일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어쩜 기억의 연쇄성보다 더 먼 시공계의 차이에서

완전히 전달은 되는가 하는 의구심만 커진다는 것일 것이다

시공계 차이점으로 해서 전달될 때

원소의 특성은 族처럼 옮겨놓을 수 있으나

그 주기율적 포장질의 전달체의 특성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에서 모르듯 전한 것이기에 

속성은 그대로 보존해 와지는 것을   

굳이 열면 사라지든가 벼

변화된 채로 와진 접점에서 닿을 수 있는 것에서 

원소 주기율 간에도

무성의 벽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격도 매김되는 것이 있다고 봐야 함에도

그 정체를 알기란 먼 것이다

그러니 직접 벽 사이에 서로 개방되었다고

다 인식의 접근성이 직접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래도 뜻을 붙일 수 밖에 없는 것에서 

변역적으로 닿을 수 있도록 직접 대면하는 것보다

벽이어도  

차라리 느낌만으로 더 실질적으로 닿을 신호를 위한 여과벽이라면

느낌이란 그 순수성의 대화체를 위하여

벽이 그 필터 기능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과 같다

이 과정 중의 매체가 있어야 하는 필요성에는  

이는 영매가 아니면 주역이 대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있다

다만 뱃 속의 宮聲을 色으로 하고, 六根으로 하고

원소 주기율 각각의 바탕성으로 할 때

丹田과 같이

배와 같이

다음 주기울의 바탕성으로서 대지로 할 때  

다음 주기율의 상각치우가

원소처럼 활용될 성질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소리도 원소적 성격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고리는 되는 것이며

이렇게 실체를 벗기다보면  

결국엔 천상계 33 층도 벗겨져간다는 것도 된다

 

 

1 호선

 

점이면 서울역이요

펴며는 한쪽 끝의 의정부요

한 쪽 끝은 인천이라

그래 무한 우주라고 해도

그대 soul이걸랑

이 팽창의 잎새 중에도

긴공이라는 것에도  

은하가 무거워 

은하가 무거워

soul의점으로 당기는 중에도

의정부에서 서울로

인천에서 서울로  늘어져

뭐! 수소며는 서울일 뿐인 것

원소 주기율이면 1 호선

 

 

과학으로서 영혼과의 접근성 

 

무엇보다 원소의 바탕성을 알기 위해서는 

화학적 접근이 필요한 것을

매우 물리학적으로 메카니즘을 이룩해 놓았다면

周易은 매우 인문학을 곁들이 철학성을 이루고 있기에 

易學을 그냥 동양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식의 축적성도 시간의 축적성과 함께 이루는 것로서의 과학에 

마냥 불립문자니 돈오점수로만 이해 시키기는

추상과 실재성이 먼 듯이 따로 놀 수 있음에

마냥 운둔형이나 심산인으로만 이미지를 남겨

개래도 낚일 복이면 낚이는 것이라고 꽤나 천명을 아는 듯이 점잔을 빼도

세상이 周易이라는 우주에 

어느 정도 알면

육갑만 거들충이처럼 알아도 소 발에 치이는 것보다야

공밥은 아니 먹을 수 있는 자연복도 있는 것이니    

이도 다 보면

秘色도 없는 것로 秘機가 있는 듯이 행세는 하는 것이니

천기니 뭐니 해도 

다 일상적 평범에 내재된 것이니 

무엇이든 극한에 있는 듯 싶어도 

다 평등의 저변성이 그러한 것이며  

이러한 동양철학이라는 것을 불립문자에만 매단다면 

결국 문제를 내과적으로만 낫게하는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문명의 이익은

외과적으로 잘 굴리는 편한 쪽에서 누린다는 이중성이 된다

그러니 물질적 화학의 요소에다

인문적으로 化하는 길의 周易을 접목 시킴에

좀 더 인과를 두려워할 줄 아는 성품의 구성력을 알게 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이 화학이 될려면 원소가 담긴 자루를 펴야하는데

이 것이 원소주기율이다 

그러니 먼저 이 주기율의 껍질을 이용해야 이식이 되듯이 

우리가 마냥 젓가락으로 유전자조작을 할 게 아니라 

영혼을 집는 젓가락도 내놓아야 하는 판국에 온 것이 된 것이다

그럴려면

먼저 色인 六瀆(眼耳鼻舌身意)이 원소의 주기율인 쌈으로서 

각기 달리 나타내는 영역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과

그  원소의 성질마다 주역의 오행으로 접근된 정의가 생기는 것이라면

이는 곧 영체가 공학을 앞서야 함에 심령공학이 될 것이다

어차피 철학이 과학의 모체가 되려면

이러한 구성력을 발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궁극적 요구 사항이 될 것임에

어차피 있는 것은 있는 것임에 무리가 가더라도 정립은 시켜주어야 한다

즉 신맛이나 푸른 색이나 같다고 할 때 

눈으로 보니 푸르고 

혀에 닿으니 시더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현대 과학은 신맛 뿐만 아닐 여러 색깔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 것이 자연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면

그렇게 자동되도록 하는 것은 

자동이게 한 조작인 것이냐는 議題가 있고

여러가지 色이 아니라 한 가지의 것으로 정의함이

오히려 사물의 방대함에 기여하는 한정치의 잣대로서의

규격성으로서의 루트는 어떠한가 하는 것이 되는데

결국 일관된 방향성의 닿은 거리나

 에너지의 함량적 표시가 되는 경계를 보여 준다는 데서

外의 다양성에 대한 內적 규격화의 성격을 드러내는데 중요한 것이고 

이러한 다양성이 주기율적 껍질이라면 

마치 원소 3 주기율 상의 眼 즉 色에 푸른 색이라면

소리자체는 원소 4 주기율인 것이고  

원소 6 주기율상으로 들어 줄 수 있음이 耳인 것으로

이는 6 주기율인 더 두껍고 복층적일 수 있어 

여러 각의 수용 것이고 보면 이해가 되는 것이고

또한 소리 內에서의 五行으로 보면

우리가 소리를 꺾어 형상화한 것이 木이라면

소리는 통 안의 모둠형으로 나는 것이요  

水는 유연성 찰짐이나 구성짐 

木은 소리의 흐름에 歌辭를 심어  꺾을 수 있는 것이고

그냥 경응악적으로도 음양오행을 느낌이 원소 6 주기

이는 28 宿의 卯方에 왜 心星이 있는가를 말해 주는 것으로

이는 수의 율동을 심정으로 심어 융동을 타고 크게 할 수 있음이라

이를 거대한 시공적 거리로 와닿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도

많은 구조성에 예술적으로 물리에 접근하게 하는 것이며

이는 다 원심성의 넓은 우주 공간이 딱딱한 껍질의 火이지만

인간의 心에만 와 닿아도 예술성이 깊다는 것과 같다

어떻게 원소 3 주기율에서 보이던 푸른색이

4 주기율로만 넘어가도 이미 눈으로는 보이질 않으나 

소리로는 角音으로 들어 나오는가 하는 것이다 

즉 이러햔 금단의 현상이 이승과 저승의 금단과 같은 것이라면 

충분히 周易은 접근을 한다는 것이다

즉 이 六根이라는 것이 각기 그 느끼는 方所는 다르나

음양오행적으로 같이 규정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니 

이는 곧 원소 주기율은 그 영역이 六根만큼이나 다르나 

族 上으로는 육독(六瀆)으로 같은 것이듯 정확히 드러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딱딱하기만 한데 무엇이 다른가

난 차가운 돌에 체온을 불어 넣지만

그대는 괜한 분별성으로 따뜻한 체온을 돌로 만든다네

 

 

8 수와 6의 수

 

원소 1~ 8 族까지 8이라고 할 때 

이를 팔진법으로 불변성을 낳는 성질은 팔괘와 같은데

이를 주기율로 하면 7 주기율이 되는 것이나 

원소 1 주기율은 乾坤의 관계로 하여

爻가 성립이 안 된 상태

즉 효도 節과 連으로 陰陽이 있는데

이렇게 정류자의 브러시와 맞물려서 나오는 에너지가 

동력을 발하는 원소 2 주기율에 가서야 爻로 한다는 것에서는 

원소 2~7 주기율까지로 해서 6 개로 주역의 6爻로 함이 같다

이는 괘상의 형태를 원소의 族으로 할 때

爻의 형태는 원소주기율의 차이로 한다는 것이니

그러면 그 사이 2가 차이를 나타내는데

이는 음양의 관계로 접혔다 펴지는 현상의 

번복적으로 이뤄지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즉 물결치는 에너지의 중복형이라는 것이다

즉 卦를 내는 리듬인 8이 6으로 접히는 나머지 2가 

에너지적 축적이 되니

이를 정류자로서 가르듯 잇 듯

이분하여 열어줌이 爻의 시발적 에너지가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