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실 2

원소 주기율과 사주(四柱)의 납음오행성

narrae 2014. 12. 27. 22:07

주역의 인문성과 원소 주기율의 물질성

 

우리가 호환성 교차성을 어떻게 화학성으로 규정할 것이며

또한 성분이 어떻게 띤 채로 와 지는가도 그 길의 정의에 따라 성격으로 볼 수 있다

즉 원소 4 주기율이 도로명이라고 할 때 이는 도로명으로 지번을 찾아 드는 것으로

이는 몸의 신경선과 관계가 깊으며

공망이 발동하면 자율 신경의 부위를 잘 살펴야 한다
즉 의식성 밖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도 다 정밀하게 들면 볼 수 있음이다
원소 4 주기율 원소 한 개체만으로
양자학적인 줄거리가 있는 이상 현상이나 행위의 요소로 신경세포계의 이상으로 볼 수 있다
이 것이 도로 상의 행태와 내 몸의 행태가 같이 비쳐질 때
만물의 작용이 나와 맞물인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즉 도로 상으로는 차를 이용하는 속성으로 보면 되는 것이고
역동성이 강하니 충돌성도 강하다

강동(江東)이나 산동(山東)이라는 지명도 그로 드는 것이니

원소 6 주기율로 접어드는 것이고 7 주기율로서 접어드는 것이며

山 일 번지라는 지칭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배로 드는 것이니 란탄족은 유연한 성격의 행위성이라는 것이며
걸어서가나 방사선이 내재된 깡짜가 많은 악티늄족은
여식애보다 더디나 도리어 뿔이 나는 형상과 같고
또한 어린 남자 아이가 입은 옷의 모양이 곧 이정표와 같기도 하다
즉 아이는 영리하지만 무지하게 때를 쓰고 고집을 피울 때는 무섭다
즉 산을 오를 때는 평지에 사색을 하듯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짐꾼은 오직 정상만 있을 뿐이니 그 병증은 살살 달래 쉬도록해야 좋은 약리인 것이다
즉 건드리면 더욱 붓는 부종과 같이 산으로 오를 목적만 더 독이 오르는 것이다  
이 것이 원소 7 주기율인 악티족의 방사능 폐해인 것이다

즉 약리적 임상에도 이렇게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약리적 화학성만큼이나 한글 주기율표도 나름의 배속인 호환성으로

유기적인 작용을 관찰 할 수 있는 시약이 되게 함이다

즉 원자에 광자가 애벌레가 된 물상이라는 것으로 봐도 된다

실제 이렇게 접근을 하면 주역의 인문성이 원소 주기율의 물리 화학성으로

번지수를 찾는 코스와 같은 성질로서 움직인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성 호르몬의 원소 주기율적 관계

 

성으로 원소 주기율을 보자면

남자는 원소 주기율을 역행으로 행하여

7 주기율적 남성 호로몬이 원소 2 주기율적 여성 호르몬 쪽으로 늙어가며

여자는 원소 2 주기율적 소녀에서 여성 호르몬으로 출발해서

원소 7 주기율인 남셩 호르몬으로 늙어감과 같다는 것이 된다

다만 다크호스적 이론은 본래 어릴 때는 성이 없는 듯이 하니

남자 아이는 원소 순서대로 2 태택인데 7과 대칭이 되니

성년이 되어 성이 발달할 때 바로 원소 7 주기율올 전환되는 것이기도 하는데

즉 반으로 접힌 사상성이면

원소 4 주기율 너머 바람과 접힌 부분으로 노장이 되어간다는 것에서

소년과 소녀는 같이 접히는 부분이 된다는 것이다

생사의 경계인 장녀 장남인 원소 4 주기율을 너머

접히는 부분으로 늙어감에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반론의 다크호스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奇門에서도 中宮에 해당이 되는 부분인 것이다

 

 

생명체 암수의 함수관계

 

결혼은 왜 해야 하고 남녀는 왜 만나야 하는가

이는 팔괘를 대칭으로 접어 붙이면

원소 주기율로는 2 주기율과 7 주기율이 포개지는데

이를 易象으로는 소년과 소녀로 만나는 형상이다

그러면 八卦가 쌍으로 합해 四象이 되려면

원소가 8 개의 족으로 혼자 행하던 것이 쌍으로 포개어 4 개가 됨인데

그로부처 쌍으로 늙어 감이 4 단계라는 것이다

생로병사가 8 족을 쌍으로 해야 4 단계의 리듬의 탄다는 것이고

사랑가 없이는 일생을 못 산다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생명의 일생은

사상의 쌍으로 생노병사를 채워 지나는 땅거미와 같기 때문이다  

결국 坎水 中年 男이 되고 離火 中年 女가 되어 함께 늙어가는 쌍이 되고

震雷 長年 남과 巽風 長年 女가 되어 대칭이 겹쳐가며 함께 늙어간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나 모든 생명체의 유기성이 쌍으로 함에 염색체도 쌍으로 하는 것인데

이미 염색체일 때 일생의 시작과 끝이 쌍으로 기록되어 있음과 같다

즉 이미 이온 합이 되어 있는 쌍을 심어

이온 합을 확인하는 것이듯 인연을 만나는 것과 같다

이미 삶 자체가 변압기적 씨에서 다시 발동하는 시작과 같은 것이고

이미 씨인 거울에 확대경적 작용이라는 것이다

즉 원소 마다에 동시적 영상이 아니라

그 자체의 영상이 영상막으로 싸고 일어나는 자화상과 같은 것이 

즉 모래알과 같은 자신만의 우주 안이 수 조 개의 한 영상을 동시에 함께 인지하는 것이다

즉 유리의 규소 원소 한 알이 자신의 사계를 다 갖고 있음에도

모니터 화면을 전체 우주인 냥 여기고 그 변화를 본다는 것과 같다

결국 램프 안과 밖에 그림자적으로 함깨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생각처럼 다른 것인데 외부적으로는 같은 영상의 우주에 있는 듯이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에 따라 사물이 되고 나무가 자라는 것은

즉 각기 다른 자신만의 모래알이 수 조 개의 우주인 것인데 그 것이 영상막 하나로서 맺힌

상이 우리가 보는 이 천체의 만물인 냥 생기기도 자라기도 한다는 것이다

즉 모니터의 한 막의 상에 원소 하나가 실제로 화소처럼 꼬리치며 자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즉 화소 하나가 생명체적으로 동충하초처럼 자라는 것이니

자연 이는 배는 화상처럼 땅거미처럼 지나는 것이나

내 마음이 따라니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니 결국 나 몸도 그 마음의 생물체이니 

영원하면 굳이  마음이 가기 때문이라고 하겠는가?

다 사라지는 것이니 본래 자신으로 돌아감이 있다는 것은

모래알은 모래알로 돌아감이 있고

화소성은 화소성으로 돌아감이 있는 것인데

이 것이 동시적으로 인지되어 魂과 魄이 다른가 하는 것이다

즉 전동기의 회전체가 혼으로 에워싼 자적으로 백으로 이전됨이 삶이고

또한 반대로 자석인 백이 회전체로 전이되어 다시 굴레에 듦이 혼으로 돌아감에

나라는 인지성이 있는 센스가 형성이 되어 있다면

이는 곧 원심 분리된 단백질의 핵산의 성질을 규정하는 RNA인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곧 화소성으로 돌아감이 모래 한 알로 돌아감에

사상이 음양으로 포개져도 나라는 것이 마중 나온 듯이 한다는 것과 같다

이 것이 중성자적 개념의 다 타지 않은 숯과 같음이다

이는 수소 한 알로 돌아감만도 큰 범주의 우주가 되어 있다는 것으로

즉 핵산이 팔방으로 팔괘로 흩어짐이 아니라

오히려 DNA적 양극일 때

즉 한 점이 한 라인으로 두 점이 두 라인일 때

혼과 백이 흩어졌다가 다시 만나 레일을 깔면 열차에 태우듯 RNA가

핵산으로서 단백을 분해해 철도청이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즉 두 개를 넘어 태극성으로 각기 개체적 혼백의 기록성일 때

수소 하나가 전체성의 하나라는 것으로 하는 양자물리학적 차원을 펼침과 같다

이는 水剋火로서 불에 타지 않으니 수소라는 명칭을 원자에 붙이는 것이다  

결국 천만 도에 타지 않으니 그 기록성이 온 우주를 덮은 것과 같다  

그래서 거시적 프랙탈의 공간으로 보면 나무가 땅에 서는 것도

남북극이 하나로 머리와 꼬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쌍으로 양쪽 극으로 수양버들처럼 덮어 호두알 같이 두 개가 겹쳐 한 굴레의 알이 되는 것인데

이는 동위원소인 중수소가 두 개의 눈이 난 데서 비롯됨이다

그러니 결국 음양은 원소 8 족이 대칭적으로 포개지면서 4 개가 될 때

이를 주역으로는

팔괘가 사상으로 포개지는 과정에서 음양 간의 견인력이 생기도록 암수가 되는 것다

 

 

계륵 곰탕

 

계륵 곰탕을 아시나요?

개천에 용 나는 것보다야 우러나오는 게 낫죠

특히나 쓸모 없고 빈둥빈둥하다싶은 시간에

인생은 쏜살같다 느낄 때

소갈비보다 계륵을 곰탕 끓이듯 할 줄 알면

뼈와 살이 분리되듯

공간인 뼈에 시간 살이 분리됨을 아는데

계륵의 살도 모르면서 버리기 바쁜

만유 인력과 같은 인대를 맛보지 못 한 채 버리고서는 사과를 얘기하는

진정한 곰탕 맛을 알았다고 할까요?

그대들의 지혜가 아무리 밝기로 계륵을 계륵으로 버렸지

진정 발겨보았나요?

계륵 곰탕 맛을 모르면서 진리를 밝혔다고 할 수 있나요?

물과 불이 일구어 발겨내어 밝힌 지혜

우린 과연 동굴 인간일 때부터 불씨를 지키고도 물과 불을 알았다가고 할까요?

 

 

물리를 인문학적으로 캐올 수 있는 바이러스는 주역  효의 파동일 뿐이다

 

우리가 원소들이 화학을 이루는 구조보다

그 구조 내의 원소성이 거미와 같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화학구조를 거미줄이라고 할 때

거미는 원소라는 것이다

즉 속성을 파악하는 것은 거미자체라는 것이다

즉 거미에 대한 징벌성이 신화적이도 이야기이듯이

동화적일 수 있음에 또한 표현이 꿈에서 현실에서서히 접근을 하듯

서서히 물리성 실사구시로 연착륙되도록 도와주어야지요

그래서 주변적인 조건반사성이 있어

그 것이 주변과 함께 화학구조성 방정식이 성립되어도

그 것은 거미줄로 하는 것이고 실제는 원소 하나의 성질이

생기는 메카니즘이 양자학적 공간이 이 우주의 공간과 같은 사계적

시간성의 부여로 나타는 것이어야

최소한 빛의 속도 이상이면 원소성으로 움츠러 든 그 속의 또 하나늬 꿈과 같은 시공성을

어떻게 주역이 효의 파동으로 파고 들어

인문성으로 주기율적 물리성을 캐오는 보석이냐와 같은 것이다

 

 

 

원소 주기율과 사주(四柱)의 납음오행성

 

원소 주기율마다 그 합한 무게가 다른 것은

우리가 갤럭시를 원소 1 주기율로 할 때

이를 더께로 나타내는 것이 태양이라고 할 때

이를 사주의 년주(年柱)으로 하는 것에서

하나의 원소 1주기율이 되는 것이고

이 태양인 항성에 도는 궤도의 더께를 지구로 할 때

이를 2주기올성으로 할 수 있음에 이 만물의 윤곽성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 지구의 한 해 공전을 원소 2 주기율로 하는 것이고 日柱라고 할 때 

그리고 달이 혹성인 지구의 더께가 되는 것이 원소 3 주기율인 것이고 

月柱가 되는 것이고

그 사이 하루의 자전축으로 시간의 뿔을 내니 

이를 각으로 죽순은 뿔처럼 나는 것이니 이는 원소 4 주기율이 되는 것이니

이를 時柱로 함이 년월일시인 네 기둥으로 四柱라고 함이다

이는 고갱이 쪽이 時柱라고 보면 빅뱅을 時柱라고 하는 것이고 

실제 팔괘가 접혀 펴지는 4 震雷의 자리가 원소 4 주기율이 되는 가장 동적인 신경망이 되는 것이다

즉 이 것이 백뱅성 나이테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럼 빅뱅도 한글로 치면 모음에 속하는 것이다 

즉 자음이 주어요 명사며는 모음은 형용사요 동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빅뱅도 행위헤 속하는 것이니 모음에 속한다 

그런데 실제 자음도 똬리를 틀면 모음이 된다는 것이다

즉 ㅏ가 똬리를 틀면 ㄱ이든가 ㅋ이든가 되고

ㅓ가 똬리를 틀면 ㅅ이나 ㅈ, ㅊ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ㅓ가 원소 주기율에 인물 캐릭터라고 할 때

원소의 성질 대로 있는 것은 ㅅ이나 ㅈ,ㅊ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물질성으로 복장되어 있는 것이고

이 똬리ㅅ과 ㅈ, ㅊ이 풀리면 다시 ㅓ나 ㅕ가 된다는 것이다  

 

 

궤도 내의 궤도로서 앙금성

 

우주가 수소와 핼륨으로 되었을 때

이를 중력권으로 하는 것이 원소 1 주기율인 것이고

이 중력권에서 태양같은 향성이 나무의 옹이처럼 무게를 더할 때

원소 2 주기율성 궤도가 되는 것이고

이 항성을 지구가 감아 그 중력성 내에 다시 중력을 더하니

이렇듯 주기율이 늘어남으로서 물질의 무게도 늘어나는데

그만큼 혹성화됨으로서 원소성이 많아짐을 말하는 것인데

이 것이 사주의 년월일시의 중력성이라는 것이고

납음오행이 나오는 것이 물질의 원소성과 같은 성질을 나타내는데

납음오행이 훨신 신령스럽고 인문학적인 데 반해

원소 주기율은 화학성과 물질성에 머문다는 것이다

다만 기분이나 기운을 느끼게 하는 정도는 발전을 했으니

인간의 기분도 화학성으로 다루는 실효성은 기분에는 맞다는 것이 되나

그 것도 현시적인 진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주 운명이 태양인 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면

인간은 사주의 주인이냐 노예이냐는 인체의 온도를 보면 안다

즉 일 년은 365 일인 것이나 원소 2 주기율이기 때문에

산소나 탄소, 질소등 우리 몸에 필수적인 것이 다 들어 었는 것이고

이를 원소 3 주기율인 火로 온도인 36.5 도로서 소숫점을 한 겹 옮긴 것이

원소 2 주기율에서 원소 1 주기율로 36,5 도로 할 것이냐는

모든 유기질이나 단백질의 구성체가 온도에 실리는 것이니

지난 3 주기율에 있는 것이냐 전의 1 주기율에 걸린 것이냐는 중요한 대목이다

이는 水가 끓이는 점

즉 우리 얼굴이 물인 H2O에 관상이 다 든 것이면

물이 끓는 점에서 굽기는 현상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한글의 자음 모음과 한자의 변을 잘 나타낸 티극기  

 

본래 태극기는 건곤감리 대칭성인데

이를 변으로 중앙에 둥근 태극성을 나타낸 것이다

이는 한자롤 벼면 괘 문양성을 변으로 태극성을 소리 音으로 하는데 

그래서 奇門에 中宮性이 변에 영향을 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이는 변 즉 괘상이 모음이고 중앙 태극성이 자음과 같다 

다만 건곤감리로 四象性을 나타내나 이는 八卦의 略字와 같다 

그래서 이 것이 태극쪽인 중앙 소리 음에 붙으면 한자는 그 쓰여진 획수대로 숫자로 하는 것이고 

변 즉 부수의 숫자

그러니까  물 水가 본래  四劃으로 치나 변으로 삼획어도 사획으로 치지만

실제 변이 아닌 속이면 삼획 그대로 친다는 것이다 

즉 이는 괘상에는 4 획으로 쳐도 용광로에 쇳물과 같이 유동성에 있는 것은 보이는 삼획 그대로 치는 것이다 

볼래 한자의 글자 풀이는 같은 뜻어도 글의 획수는 달리 선택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실제 음양을 나타내는 둥근 문양에 건곤 궤도 안에 궤도가 감리 궤도 폭이 되는 것이니 

그러면 괘상 문양이 건곤은 사이 폭이 크게고 감리는 사이가 좁은 형태인 타원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건곤과 감리  사이에 태간인 대칭이 있고 감리의 중앙 사이에 진손의 대칭이 있는데 

그러면 두 개의 궤도 대칭합 건곤감리가  네 개의 대칭이 다 포함된 뜻의 약자와 같은 것인데 

이렇듯 약자식으로 드러낸  것이 태극기의 건곤감리 상이다  

 

 

인문학이 주는 재활용 최우수상은 철도공단으로

 

요즘 새로운 실험인 것이 이렇게도 선택이 되어도 되는 여유라는 것이

새로 나온 전철 칸 의자를 보고 느끼는 것인데

이를 유머요 위트 정도로 해야하는 것인지

기존에 차 안의 통로였던 중앙에 의자를 서로 등 돌리듯 배치를 하고 각기 양 창가를 보는

즉 센터 쪽 의자를 중추로 한 양쪽 가로의 시선 두기를 해 놓은 의자를 보는데

매우 비 인간적이고 비 이성적일 분 아니라 비 낭만성조차 갖춘

어찌 보면 안티란 안티는 다 갖춘으로 억지를 부려도

이 군중들은 따라오는가 안 따라오는가 실험 무대같은

시약성같은 투약으로 임상실험을 하는

그래도 입으로만 토픽 정도의 맛이면 그로 사회 심리는 안 것이니

상대 없듯 끝까지 밀어붙여서는

다른 안건의 응용에 필수적인 기초딱기 길에  귀감적 존재의 개척자로 부여함과같이

뭐 엎어져도 전차 전복에 후차 귀감이 되는 것으로 교훈 삼아

도리어 경험치 정도 되는 것으로  남아도는 힘의 여유성이듯 자기자리 선 긋기같이

무슨 어울리자면서 울타리는 더 못 디덥다는 듯이 치고서는 다 개방인 듯이

그래도 통하면 밀어붙여보는 밑져봐야 본전인 듯이 그 자유의 향유를 위한 자유 예찬이라

그냥 그런 냥 하며 은근설쩍 쥐어보고

통하면 성동격서로  더 유용하게 다른 면으로 젖게 하여 챙기는 것이고

무슨 사회 심리 연구소에서 따로이 연구 용역을 지하철 공단에 준 듯이

가득이나 휴대폰에 미쳐 시선이 없는 세상에

그 빈 시선도 이용 가치의 발상인 듯 

그래도 무리든 억지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요 혼자사는 것이 아닌 사고도

눈빛만으로 심리성과 정감을 아는 가치를 강조해도 모자를 판에

이젠 시선이 없는 전철 공간인지 쓸모 없는 폐품같은 것이니

재활용으로 실험할 것이라고

시선 따로 다 제 멋인 냥 해도  

휴대폰 속도 다 편집으로 인간 심리에 알사탕이더니

뭐 바로 눈 앞 시선만 편집만 잘 되어 반응이 마네킹같이

스치로폼과 같은 부드러움이나 전도성은 하나도 없는 듯이

그래도 찢으면 심지는 플라스틱 질럼 질기고고 날카로움은 있어

어찌 저리 예쁠까가 느닺없이 욕은 가시같음이 다 장미과라고 콧대인 것에

다 마케킹 찢어지는 상처들의 날카로운 파편 날같을 뿐인

옆 좌석에 안은 젊은이들이 새롭느니 이상하다느니

또 옥신각신할 여지를 남기는  말이 벌써 나온다

등 돌린것 자체가 주변성을 상실하는 것이거니와

당최 벽만 보이는 지하철이라 등불만 스쳐 지나는 가는 것이

마치 못으로 벅을 긋은 듯

밋밋한 멱이 선으로 그으며 지나는 것이 눈에 상처가 남의 상인 것이데

긁히면서도 멀미가 나니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심각한데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은

앉은 젊은이들은 휴대폰에 미쳐 있으니 눈 앞의 전경이야

남의 것이든

내 것이든 참으로 무심이 천심인지 인심도 좋지

이미 공간과 시간은 남의 것이다시피 바쁜 생활에 

이젠 자투리가 아니라 핵심 부분으로 같이 자리 잡아

마치 같은 중추성으로 시선을 유도하는

첫걸음인 듯 생색도

스스로 벽을 만들어 갑갑해 하고선 엄살성은

벽이 도는 만화경같은 것에 내가 광고를 도는 듯이

다 광고판인 중심으로 도는 2 호선같이

도는 전철이 시선을 묶은 것이 지구라면

역에 붙박이 광고는 항성인 냥 저들 끼리만 살결 하얗게 윤기나게 좋다

그렇게 광고 끼리 만나기 전까지 실린 인간의 시간과 공간은

벽이 부담스러우니 벽에 아름다음 그림을 그려넣은 동네 벽화처럼

안 보고 쓸모 없는 시선 재활용 시험실같은

기발한 시선 재활용 발명품으로 시대의 발견인이 될 이라

심리학자들이 철도공단에 최우수 공기업으로 선정할 판인 것도 아니고

고작 졸 시간에 벽만 가까이 스치는 것을 보니

소리만 긁히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긁히는 벽이 벽이 긁히는 냥 선이 난다

밋밋한 벽이 선이난 듯이 보임 또한

벽은 가만히 있는데 눈의 시각이 긁혀서 나는 것의 현상이니

마치 소리가 가까이 불쾌하게 들리듯 눈이 상그러운 것이다

단순히 멀미가 난다기보다 시선이 금이나며 파편적으로 눈에 박히는 것과 같은데

벽 긁히는 듯한 윤곽 

즉 시멘트에 삽 긁히는 것보다 더 눈이 아리다 못 해 멀미나는 것에  

더 가까지 대고 부담하라는 것은 거의 인권적 모독에 가까워도

이빨이 다 아림과 같아도 자신들과 모르는 침묵의 변이라는 것 뿐이다

어쩜 이 것도 문제라고 유도하는 것인지 모른다

즉 문제를 일이켜 자신이 제일 먼저 발견한 문제 의식이 선각자로서  자리매김헤도

다 감투 자리가 되는 생색내기 같은 것

아니면 정말 생각없는 발상인지

또한 문제임을 아니 문제를 내면 답이 나오길 기다리는 지도 모를

또 그 것이 여론이 되면 또 기다렸다는 듯이 이미 만들어 놓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차라리 창을 백화점처럼 닫아버리자 그리고 TV라도 설치하자고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애 대형이 대세인데 그럴 량이면  

양 창틀 위에 설치하여 겨우초점이나 맞세 크기를 맞추든지 할 것이지

다시 반으로 줄인 거의 눈과 붙다 시피한 벽은 근시여도 잘 안 보일 판이니

정상적 눈마져 다 버리는 몰지각한 발상이다  

그럴려면 차라리 광고나 올리자고 할 것이니

요즘 애들이야 다 근시안적이고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조급증 아닌가 

이미 식생활의 화학성은 인스턴화된 노예와 같은 것  

오히려 창가의 시야성보다 창에 붙은 광고판이 의미 있다고 할 것이니

영원한 소금쟁이의 나르시즘 스마트 폰에는 떼질 못한다   

벽에 비비고 긋는 시선으로 상하는  것보다 낫다고

적반하장 기발한 발상의 주인공이라고 대대적 중론으로 몰면

아마 한 세대가 끝나면 다음 세대는 기초적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그보더 아예 쇠뿔도 단김에 기세를 굳히면 아마 광고업계에서 상을 줄 것이요

벽을 보아 눈버리느니

차라리 스마트 폰에 빠진 것에 금상첨화로 창을 가려준 것도 흔감인 것이니  

화상까지 입혀주니 미끈하게 빛을 발한 크림바른 얼굴과 같이 광은 광끼리 어울리는 

광땡이면 명품 인생인 듯이 자화자찬을 권하는 시대  휴대폰 업계에서는 공로상을 줄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폐기되고 버리는 것을 전화위복으로 삼아 효과적으로 재활용된 자연스러움인 듯이

병 주고 약 잔치로 상이라고 때깔내기같은 것으로  스스로 험내고 기껏해야 물러나는 정도으로

떠나는 생색에 은긍설쩍 돌아오면 되는 수작으로

또 새로이 정리한다는 구호로 새로 든 자의 구실과 한통 속으로 기발한 착상이라고 상을 주는

마치 내가 골을 내 줄테닌 너는 흘러 들어 영웅이나 되어라는 깃으로  

완전그들만의 잔치같은 것으로

그래도 입에 풀칠만 되어도 모여들게 하는 것이야 누워서 떡먹기이듯이

다 지나친 이야기같아도 때와 장소에 따라 통하기도 하고 안 통하기도 하는  

한 세대만 지나도 역사의 본질조차 뒤웅박인 것

다 애들 눈에는 화려하고 맛 있게 비위맞춰야 싱싱한 사회라는 것으로

늙음의 가치폭은 점점 줄어들고 젊음만이 전성시대인 인생라는 꼭지점으로

다 이렇게 흘러가게한다고 한들 또한 그렇지 않은 무리라고 한들

다 그려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반의가 없어진 사회는

긍정적이지 않음에도 늘 긍정적이었다는 평가화함께 늘 긍정성이 흐른 듯이 하나 

심사만 굳는 일만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이어도 아니라 함이 편벽성이라

 

 

반사성과 흡수성의 인문적 사례

 

우리는 빛의 흡수성과 반사성을 인문학적으로 잘 드러낸 것이

비구승과 대처승의 차이에서 잘 나타나는 것인데

즉 비구승은 초현실성같아보이는 세계에서 실제 보살행을 말하지만

대승 대승하면서도 소승적 순도를 가져야 한다는 반사성과

소승 소승 하면서도 세상 사람과는 하나같이 일상적으로 어울리는 것이

마치 스님 그 산중이 좋은데 뭐 한다고 세상에 나와요로

신성스러운 듯이 븓들며 아예 몰아 구석쟁이로 끝내게 하 듯이

은근히 위해주는 척하면서 골짝에나 박혀 살 것이지 하는  

무슨 다 부처고 부처가 되는 것이라고 했으면 

함쎄 어울릴려면 확실히 어울리든가

불립문자에 벙어리된 중생의 입이나 찌그러들지 않게 하는 재주나 있던가 하지

궁극적으로는 묵언이라는 골짝인 비구로 돌아갈 것이면서

세상 맛은 알대로 다 알아가지고 흡수가 안 된 듯이 하는 것도

언행이 불일치가 많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무의 탄소 동화작용이나

동물의 비타민 D의 생성과 뼈를 일구는 물고기의 생명체를 이루듯이 하는 것과는 반대로  

차라리 반사라고 할 때 그 반사된 허공 간에는 

또한 물고기가  입체성을 가진 그대로 드러나도 그 시공 밖은 초현실적이지만

신의 세계와 정신의 고도성의 차이로 어차피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경지에서

순도성이 있는 견지에서 연마하는 것이니

비구승은 물리적으로도 비유가 되어 실증적으로 발전을 하더라도

결국 순수성이 입증이 되는  초탈을 보여야 하는 여려움이 있는 것이고

이를 실행해야 하는 것에서는

흡수적 바다의 물고기같은 석학이라는 우수성도

기본적인 시작에서부터 매우 발목잡는 현혹성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물리적 형성이 대처승이로의 인위라고 할 때

즉 이 물리도 마치 물고기가 물에서는 잘 보여도 밖에서는 안 보이듯 

거기에 반사성인 이 영적인 공간에 어떻게 유기적 연결이 되어 일어나는가는 

서로가 길이 상반되어 갔다고 할지라도

다시 그 하나같이 깍지는 끼는 일체성은 결과적이라고 해도 

이미 한 돗자리

즉 음계의 도가 한 옥타브을 통털어 주체적 몸이요

또한 한 음계의 위치를 갖고 있음이 마치 

기문둔갑도 중궁이 팔방 전체에 돗자리요르 깐 것이고 

그래도 한 음계처럼 곤토가 도음을 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는 곧 7 음계가 인간 관상 70 년이 다 든 것과 다를 바 없는데 

이는 곧 한 음계가 십 년 대운을 관장한다는 것이 된다

즉  악보의 한 옥타브는 정확하게 대운의 음계 순서와 같다는 것이니 

즉 대운이 도레미파솔라시도라고 입을 열 동안 

인간은 그 음향의 기를 받아 운이 되는 일생을 말하는 것이다 

즉 내 사주는 레라는 성분이 부족한데 

이 레 대운의 음계가 계속 입김을 불 듯이 하면 마치 공명이 일어나 

한강 다리도 춤을 추듯 휠 수 있음과 같다      

최소한 이러한 메카니즘은 깨달아야 진정한 깨달음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아는 물고기인 동시에 나는 새라는 결론성으로는 해답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고단적 차원이라고 해도 다 제 갈 길이나 챙기고 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닐 반의하고 반문을 늘 해야하는 것에서는

물고기도 아니고 새도 아니라는 것으로 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두 시공성에는 내가 없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현제의 자리일 뿐이라는  것에서 발견이 되어야 하는 데 

자꾸 과거나 미래로 영혼이니 지옥이니 하고 실제 현실성과 멀게 빠져 버리고 나면 

어찌보면 허황한 것에 다 매달고서는비구니 대처니 하는 것과 같다   

이렇듯 비구는  자신들만의 청정성으로 반사되어 유지하려는 것에 반해

대처승은 세간에 흡수되어 일반적 사회성을 다 흡수하고도 나올 수 있는 것이고

내놓을 수 있다는 견지인 것이다

 

 

이심전심이라

 

이심전심이 이런 것도 있음이라

누군 나더러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하다할 정도면 

나도 나를 다 이해된 것도 아니다만 정말 오래도 살겠네 

왜냐고요?

본래 한숨을 쉬는 것은 좋은 징조는 아닌 것이죠

그런데 말이죠 

내 한숨을 남들이 푹푹 쉬어주니 

어쩌다 내 숨통이 그들에서 숨을 쉬는 것올 보죠 

무엇 하나 보태 준 것도 없다 싶어도 

엄밀히 보면 한숨은 보태주었네요

그들의 숨통이 내 한숨을 트림하듯이 하니까요

마치 제 체한 것을 따면서 트림을 하듯이

트림보다 더 답답한 제 한숨을 쉬어준다니까요

제 숨통이 그렇게 넓은 즐은 몰랐죠

 

 

우주는 오장의 원탁 회의요 그 오행으로 위치삼아 평형을 이룬 것이 뇌인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공원에 여러 개의 등불이 켜진 중앙에 있을 때 

그림자가 여러 방향으로 나는 것을 본다 

이 것이 곧 원소 족은 하나이나 주기율이 여러 방향성이 나는 것과 같으니 

이를 성분성으로 하는 것인데  

또한 주기율은 하나이나 족이 八方으로 나는 것 

이는 뇌가 실질적 위치가 되는 것이 아닌 저장성 이동인  다음에야  

임의적 구성을 가진 뇌의 인식이 심어진 멀티적 조합성을 어떻게 두느냐가 관건인데  

물질성보다 구성적으로 인지하는 理를 기준으로 섭렵된 섭리성이 곧 위치성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데 

이는 곧 뇌가 공원 구성과 같다는 것으로 방향에 있는  테두리로 싼 총체성으로 해서  

나의 그림자를 비추는 방향각에서 비춤이 자각성이라는 것이다

즉 뇌의 생각이 여러 개의 등불의 눈으로 보는 듯이

한 판도에 시간과 공간이 달라도 하나 안에 동시적으로 상호성인 듯 비쳐지는,, 

내 하나의 위치에 여러 그림자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즉 여덟 개의 눈이 각각의 시력이 다른데

이는 원소의 화합성을 하나로의 방정식으로 인지하듯 

뇌 하나에 모든 것이 든 것처럼 여기는 판단 또한 하나같이 한다는 것이다  

실제 여덟 개의 등불은 다른 등불과 상관없이 한 그림자의 각도를 내어도 

뇌는 팔방으로서 그림자가 여덟 개로 하나같이 동시적으로 본다는 것인데  

이렇게 하나같이 묶은 듯이 하는 것은 원자의오비탈적 두개골이라면

실제는 각각의 개체라는 것에서는  시차성이나 공간의 차이성은

양자물리적 세분성이라고 봐야 한다  나도  주기율의 차이와 같다면

즉 빛에 그림자처럼 내가 중앙에 서면 여덥 개의 그림자가 생긴다는 것이면

곧 원소 족이 중앙에 서면 팔방의 그림자가 생긴다는 것인데

이 것이 각각의 흩어진 개체라면 굳이 뇌가 필요 없다

즉 뇌를 두니 팔방각이 이미 뇌에 서 있으니 

등불의 개수에 따라 그림자가 생기는 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이 뇌인데

이는 인식의 속도 차이나 농도 차이가 

결국  앞 차가 밀려 윗 차가 박은 흔적과 같이 나타나는 게 원소 주기율의 궤도인 것이고

이는 또 느려지는 것만큼 강인한 인상을 등짝에 찍는 것과 같다  

즉 각기 다른 등불이지만 하나같이 인지하는 것은 뇌이다

이는 내가 족이라면 주기율이 한 족에 그림자가 여덟 개가 나는 것과 같다 

즉 내가 산소족이라면 산소족 계열이 주기율 차이를 따라 8 개로 됨과 같은데 

그런데 왜 7주기율인데 8 주기율로 할 수 있을가는 나마마자 한 살이라는 것과 같은 설리도 된다 

이는 곧 여덟 개의 그림자는 각각의 것이나 

뇌는 여덟 개가 하나의 그림자처럼 보인다는 것에서 

이는 뇌먄의 작용이니 

그래도 인간은 뇌를 중심으로 마음을 내는 공간이니 

결국 족을 위시로 주기율과 짠  모눈에 담겨진 차이성을

우리는 색이라는 것으로 물질계로 한다는 것이다고 

이를 인물적 캐릭터로 찍어내보면 인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실감나게 이야기하자면

내가 한 쪽 눈을 안구 건조증으로 거의 실명하다시피 했는데 다만 흐릿하게는 보인다

그런데 한 쪽 눈은 선명이 잘 보이는 것이나

두 눈은 시력 차는 자연 글씨가 두 개로 보이는 것에다 

하나는 선명한 실물체라면 하나는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비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도 두 개가 각각의  현상이지만 동시적으로 보면 하나의 그림자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즉 뇌는 동시성을 쥐니 이 것이 각각의 속도성에 못 미쳐서 그런 것이지만 

이를 잘 보면  시력이 같을 때는 여덟 개의 눈이어도 하나로 보았는데

여뎗 시력이 차이를 보이면 그 때 여덟 개의 그림자가 생기니

그럼 두 가지 논제가 발생하는데

하나는 여덟 개가 이미 있었는데 몰랐으나 서서히 시공의 차이가 이러함을  알았다는 것이든가

하나는 실제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한데  여덟 개의 분신과 같다는 것이 되는데 

어느 쪽이든 뇌가 중심적 척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보면 뇌는 그림자처럼 보이는 착각이라기보다

오히려 핼륨의 인식이 느린 대지와 같이 전도성이 약하여 찍힘에 자연 그림자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지 

실제 뇌의 인식 이전에 이미 오장(五臟)이 먼저 인식한 것으로 무의식에 속하고 잠재성에 속하는,

이미 개체성으로 나뉜 기관이 뇌가 전달 점이 되기전에 역류적으로 뇌에 전달하란 것이 있다는 것이 된다

뇌가 오장에 전달하는 것은 응변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주 내의 육친이 내 몸 전체의 구성인 뇌보다 더 선결점을 안고 들어오게 하는 안테나와 같다는 것이 된다 

이는 이미 오장이 위치성인 것에서 다시 조합적으로 하나로 해로 해서 

뇌로함에 또한 방향성인 위치로서 기준을 세운 것인데

이렇게 중심으로서 방향을 잡고 입체성으로 이룬 몸이 또한 위치성이라는 것이다

이맇게 임상성이 동양의 핌술과같이 신호가 와야 가치가 딜 것이 아니라

그 것보다 더욱 기초성을 띤 가치인 이런 논리가 물질적으로 드러나는 전제에도

이론 물리성을  능가하는 패러다임인 것이다

그 입체성에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비추어 위치성으로 맞추는 것인데 

이는 곧 뇌가 흙과 같은 반도체이라고 해도 

그 것이 물질성으로 보기에 앞서 구성적 조직성으로 이미 이뤄진 理가 있다는 것인데

그러니 자연 물질적 위치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구성에 의한 메카니즘인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기같이

뇌는 내 경험 이외에 다른 인지하지는 못 한다는 것이다

이 것이 결국 족 계열을 낳고 주기율 계열을 낳는 것인데

결구 원소 주기율의 원소의 설질은

족이든 주기율이이든 어느 한쪽이 내가 선 것과 같다고 할 때

나머지 하나는 여덟 개의 그림자가 나는 팔방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奇門學인 九宮으로서 坤이 中宮의 寄宮이 되어 같다는 것은

흙이 중앙에서 거푸성으로 땅 위에 깔린 듯이  

곧 坤土의 전체성인 동시에 한 쪽 모퉁이를 내니 곤방성이라는 것이고 

곧 밋밋한 면에 귀를 낸 것과 같으니 

어머니가 자식을 낳아도

전체 몸이 한 쪽 귀퉁이인 坤方일 때  태반을 이루는 것과 같다

즉 구심에서 원심적 궤도의 굴레로 올려줌과 같은 것이다

마치 우리가 팩을 뜯을 때 뜯기 쉬우라고 한쪽 꼭지는 내놓듯 

중궁이 곤방으로 모퉁이를 내놓아도 바탕인 멍석을 하나로 하여 는 것과 같음이

태반을 까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크기와 농도의 원소주기율적 여과율

 

보통 소화기인 腸에 속하는 곳에 살고 벗어나지 못하면 蟲에 속하는 것이고

이를 원소 7 주기율로 할 때

원소 6 주기율은 온 몸이 수분인 주머니와 같으니

여기에는 장에서 흡수된 菌類가 산다

즉 腸은 菌으로 넘지만 蟲은 녹아야 온 몸으로 든다는 것과 같고

보통 신경선인 것은 원소 4주기율인 RNA의 흡수성

즉 바이러스는 DNA로 흡수됨과 같은 것이 4 주기율이고

보통 버섯같은 胞子는 원소 5 주기율로서 식물성과 같다

巽風이라고 봐야 하나 

신경이 끊긴 것은 원소 4 주기율이 단절된데서 

즉 신경은 木科인데 艮山인 척추에서 공망이면 척추에 신경이 끊긴 것이고

또한 손발이 저리는 것은 신경이 죽었다 부활했다 하는 것이니

空이면 出空하는 현상과 같다

림프관은 巽風에 속한다고 보면 세균이 림프괌관에서 제지가 되니

이는 림프관이 신경선과 RNA의 작용보다 균을 여과하는 단계

즉 원소 5 주기율적 흡수성에 해당이 된다고 본다

즉 몸 자루의 수의 균을 임파선인 뿌리로 담궈 균을 걸러낸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도 부종이 되니 보통 일반적으로 상처를 풍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바이러스로 증상이 나타나는 원소 4 주기율 이전에 부종성 증상을 말하는 것이고

원소 6 주기율은 패혈증과 같은 것이거나 식중독과 같음을 나타낸다

 

 

개념과 관념의 차이

 

우리가 고요한 호수에 물방울 하나를 떨어뜨려 여울질 때

그 것을 개념이라고 한다면

나중에 그 자리는 지워진 듯 자리공이 되고

그 파동은 자장자리로 높아져 너울이 된다면

그렇게 구심은 지워지며 파도의 겹이 원소 주기율적 겹겹이 되는 것인데

이 것으로 현재성으로 살아 있는 관념으로 하면

이 관념은 이미 사라진 개념의 관성으로 일어나는 것

즉 개념은 없고 관념적 고집만 있는 꼴이 되는 것이

역사적이고 관습적이고 통례성으로 불합리하고 부조리성이 되어

나중에는 강요성이 되어 전체주의로 몰아가기 쉽다는 것이 된다

이 것은 관성의 법칙으로서

구심에 공이 되어도

상하로 보면 거푸성이고

외변으로서의 방항성으로 보면 파도의 끝 포말과 같은

어느 쪽이든

거푸성인 원심의 게도에서 돌며 

그 라인의 선을 지키며 결국 제 살 깎아먹기로 돌고 돌아

제 인과를 만나 시회성으로 이루는 것으로

우리가 구심의 지기장을 원심적 공전성으로 타래를 이룰 때

그 것을 풀어 자전으로 감는 것과 같은 곳의 보푸라기가  

지구인이 된 것이라 봐야 하는 것이다

이 것이 곧 원소 3 주기율은  항성인 태양의 주기성에 함께 모인 공간이고

지구가 원소 4 주기율의 신경성으로 전파성이라 할 때

원소 5 주기율인 공기를 치면 그 진동이 소리가 되는 것인데

이를 원소 3 주기율이 5 주기율을 보아도 들음만 같이 보는 관세음이 되는 것이다

즉 震巽 대칭은 반사적 충격의 동요인 시발점이니

원소 삼주기율은 원소 6 주기율과 대칭이 되면

흡수성과 반사성의 차이로 겹이 난다고 봐야 한다

즉 떨어진 물방울 하나는 수소 한 알의 족에거 구심인 감중연이 되지만

파장의 겹겹이 결국 離虛中으로만 움직이는

지리공에 가장자리 파고만 두꺼워지는 듯이 밀려나는 현상이

빛의 최대의 슬로우 현상이 물로서 액체화된 파도의 속도성이듯

坎中連으로서의 응결력

즉 응결과 팽창의 양극이 坎離 대칭이듯

이러한 수촉과 팽창이 물처럼 속으로 키워도 물질계인 색계인 것이고

또한 빛으로만 발하여 드러나는 칼라성 안에 이루는 모든 것도 색계인 것과 같다

이는 아주 큰 우주공간이라기 보다

자등명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구성적 설정인 입체성 안에

확대경처럼 보이는 것에 시공의 차이가 여덟 뎝이라는 것이 된다

실제 램프 안의 거인이어도 안임을 모르는 것임에

이가 쓿과 같다는 것이 재봉틀의 북실의 위치와 같을 때

이 이의 고치를 실뽑아 웃실과 함께 맞물릴 수 있는 프랙탈적 공간 차를

하나처럼 엮을 수 있다는 것으로 밖이 있음을 인지하는 메카니즘은 있다는 것인데

즉 모래 한 알을 알면 우주를 보는 격인데

즉 공전의 반복에 올려놓은 회전성으로 해서

그 자충수로 또는 흡수성적 마모로 해서 과률의 소멸과 같이 풍진이 일어 사라지는 것이다

즉 공전의 구심성인 자아의 가장자리에서 원심성이 되어 

자전으로 감고 풀어가며 일어나는 현상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즉 내가 갤럭시적 공간에 수소 한 알의 기억 용량으로 있다면

태양으로 다시 지구로 달로 원심 분리된 듯이 일어나면

그 회전의 반복이 결국 윤회와 같은 것이고 

내가 세포성을 띤다는 것과 같다

즉 지구의 공전을 몸이라 하면 그 것을 인과의 몸인 두뇌라고 할 때

세포의 숫자만큼이나 인연에 따라 원심적 거푸집이 일어나는 것이니

더께 즉 거품성에 이루는 흙으로 만들어진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이는 나의 집인 것인 아집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내겐 공휴일이 바둥일

 

내게 있어 공휴일이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철저히 가르친다

연휴가 되면 먹고 숨쉬는 것도 쉬는 것이 아니니

하루살이가 개미처럼 바둥대도 이틀치를 다람쥐 도토리처럼 짱박지를 못하니

공휴일이라면 더 열심히 바둥되어야 공휴일이라고 주니

내겐 공휴일이 공짜없는 바둥일이다

 

 

소판돈 

 

어쩌겠쓔

겨우 찾아놓은 심우(尋牛)를  가져가 팔아버렸다는데

내 소여! 

그렇게 자식놈이 가져갸 팔아먹었다는데 

그로부터 남의 돈 싹쓸이해 버렸다는데 

어쩌겠슈 

내 자식이니 

다 내 실진조죄(失錢遭罪)유 

갑자기 심우도에 소가 없어져 버렸잖아유 

어쩌겠슈 농꾼이 

또 한 마리 사다 키워야지 

 

 

공간성으로만 태어났을 뿐 시간성과는 상관 없이 외면해도 된다?

 

인간이 세포성의 조합이면 이는 시간성의 만남이고 선택이고 탄생이다

이는 곧 위치적 공간으로 태어났으니 땅에 태어났을 뿐

시대성과 사회성을 보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고 할 수 없다

즉 인간은 한 공간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시간적 형성을 이룬 조합에 왔으니

결국 사회성을 쫓아 공간을 스스로 만든 자등명이면서

역설적으로 공간에 태어났으니 시대성은 외면해도 된다?

이는 사리 분별은 있으면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말이다

 

 

구의(九宜) 소고(小考)

 

시상(詩想) 중에 가장 안 떠오르는 구의(九宜)

마귀 할망이 가마솥을 휘졌는  주문이었는지

느닷없이 팔 족이 팔 방으로 내 그림자를 비추니

다 각각의 등불이 각각의 그림자를 내나

그러면 마탕한 구의의 구비이지 않는가? 나의 세포여!

수 조 개의 세포가 그림지처럼 일어나 단백질 

세포마다 九宜 

위대한 自燈明이여!

생각이 무량대수

어느 세포라 할 것이냐

 

 

숫자의 의식성으로서의 부침성 

 

여자가 낳았다고 姓이라

이는 곧 남자의 성이라 

가장 과학적이 표현이로다 

성이라는 자 

즉 글자를 흙인 土라고 하는데

새겨 믈면 화석과 같다는

즉 상이 유지하는 상수(常數)가 있을 동안의 기록성을 말하는 것이고 

이 것이 8 坤土이고   

거기에 적은 것은 행위인 것이니 연필이 되니  

이는 4 진목(震木)에 해당된 것이다 

뜻은 1인 건천(乾天)이요 

무엇으로 전했든 뜻은 건이요 

메아리는 震이 가지가 난 옹이자국이의 파도요 

震이 액체처럼 퍼진 만두피같은 것

즉 신경 세포 한 알이 사금(沙金) 처럼 퍼진 잎새같은 것  

이가 곧 5 손풍(巽風)이요 

부조(浮彫)의 양각(陽刻)은 7 간산(艮山)이요 

음각(陰刻)은 2 태택(兌澤)이라 

 

 

신! 만일 인간이었다면 가만히 살려두었겠는가

 

우리가 완성도 위에 완성도를 높인다는 것은 다시 다 비우고 난 후의 일이다 

그러니 쓸모 없고 무자비하다 싶은 채칙은 가혹하다 싶어도

모자람이듯 무아와 망아를 위한 독촉은 

인간의 의지로는 원수와 같을 진데 가만히 두었겠느냐할 정도도 된다

즉 신의 의지는 인간에게 강조할 것도  권할 것도 못 되는 개인적어야

인간적 초월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있다

 

 

개가 아니어서 안개인가

 

요즘 동장군도 서시에 빠져 실성을 했는지 

새벽에도 못 일어나고 동창이 훤한 아침에 간다 못 간다 

안개는 산꼭지 못 떠난다

서시가 오자서를 서쪽에서 오단을 내더니 

한 해 

하루 

얼음처럼 빙각일 자정을 갈라야 할 장성이

태양가에 퍼져 어제의 서시만 부들부들했구나

 

 

헌신이 든 인간적이라는 것

 

요즘은 솔직히 음악이 듣고 싶은 심정은 아니다 

그런데 음악을 듣는 것은

가장 감성적인 인간성을 느껴보자는 것인데

이는 곧 음악은 그 자체로 신이요 인간성의 순수이기 때문이다

즉 신까지 나고 땀까지 빼야 또한 건강해 보이는 듯이,

허나 베토벤 음악을 틀고 가스실에 보내는 우월성이라는 지성이고 보면

음악이 인간성을 대변하지는 않는데

음악은 샤머니즘적 종교행사에서 출발로 봐야하는데 있어

대중성을 일향성으로 하는 객관성적 필요성이

아예 음악을 위한 음악으로 인스턴트화된 인간이라는 것이다

즉 맛에도 첨가물이 쪽집게처험 기록되어

전반적으로 기초성이 문제가 있음에도 핵심만 요구하게 되는 입맛

그런데도 최고의 관문을 통과한 인스터트 첨가물과 같은 믿음성의 배속

거기에 교묘히 선별성의 우위권을 유세 떠는 쪽집게 군것질인 첨가성이

주식(主食)을 대신해 <요즘 배 굶는 사람이 있느냐?> 하면서

도리어 외게인 보는 듯이 신기해 하지만

신비한듯 생색을 내며 웃어도 얼굴은 이미 삶에 앙칼지게 찌든 것을 보거늘

도리어 주식을 들락날락 쥐고 왕따놀음

이젠 도리어 먹는 것까지 말 못는 심증으로 쥐고 기득권이 유리하다는 꿍심

그렇다고 담백한 빵이 건강에 나쁘다는 결과도 없을 뿐더러

자연적 무뚝뚝이 더 못 하다는 것도 없는 것에서

그만큼 배토벤 음악도 일향성 의지의 격정을 높이는 고취는 좋아도

그 달콤한 맛 또한 당뇨를 않게 하는 쇼윈도우 창과 같이 말쑥한 흔즉

방금 진구하고 그렇게 다정하게 이야기하더니 여음조차 남을세라

언제 도리어 방해 받았다는 긋이 퓨대폰 꺼내기 바쁘게 두드리기 바쁜

인공 위성 너머 자신의 위성도 못 찾은 정체성으로 별나라에 갔다

 

 

한 생이 하얀 새 공책인 설날

 

누군 어느 누구든 옆에 사람이 쓰러져도 몰라라하는 세상에

굳이 인간성을 강조할 것도

안타까워할 필요도 이미 없어진지 오래이지 않는가 한다 

그러니 아예 제 길이나 즐기며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도 왜 그러고 싶지 않겠는가

허나 도망가 팔자 뒤웅박 만들려고 하는데 애는 더 자즈러지게 운다듯이

이미 침몰한 배라고 도망치려니 염송은 더 구성지네 그려

그렇다고 뒤웅박 팔자가 되나

될려면 차라리 우는 너나 울지 않는 삶으로 펴라고 못 떠나니

나도 도망치려다 다시 인간으로 태어났을 어머니 세상이기에

어머니의 헌신적 삶

까마귀야 한 생이 한 해 설날이듯 모시는데

인간인 윤회를 아는 다음에야  자식된 도리로 내생까지 반포(反哺) 못한다면야

말로만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면 보답을 한다는 것이지

인간애로 보답을 해야  한 생이 하얀 새 공책인 설날의 꿈을 주는  것이 아니리요

내가 사고무친에 굳이 이승 셰계와 인간에 집착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해도

이 이치를 알거늘 사고무친이 아닐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질문의 수치가 곧 대답의 수치라

 

인간도 까치에게 설날을 주었듯

신이 인간에게 까치 설날을 준 듯이

인간도 불성(佛性)이 있음이라

치악산의 유래처럼 까치도 은혜를 안다

인간도 제 자등명을 찾는다면

금수(禽獸)보다 못하단 소린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먼저 <~까?>로 부풀리는 질문의 고도성까지 집처럼 높에 달린 것이길

<~까> 까지와 같다는 것은

질문의 척도와 대답의 척도는 같으니

질문의 <~까?: 는 대답의 <~까지>와 같다는 의미

 

 

복(福)도 깨달음에 미치지 못 함이라

 

수행의 결과치는 복으로 치는 것이 아니다

즉 얼마나 복을 많이 받았느냐는

실전조죄여도 잃어먹는 판에 무슨 복이라고 챙겨 과실(果實)이라 하리

수행의 결과는 깨달음이라

본래 수행자에게는 복 받으라는 말은 삼가함 또한 예이다

그 것은 오늘은 해가 바꾸니

오늘은 복만 만이 받드시라는 말은 참 예의 있는 말이다

즉 수행자에게는 복을 권하지는 않지만

돈이 필요하듯 필요는 한 것이다

허너 어찌보면 돈보다 더 인색하게 주어야할 대목이기도 하다

즉 조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는 권할 수 있는 것이니 한 해의 복을 드리고 싶다는 것인데

그런데 수행에 돈이 전부가 아니듯 너무 과하게 권할 것도 못 된다는 말이다

난 바둑은 둘 줄 알아도 간결한 게임을 하더라도 바둑은 안 두는데

거기에 십혈을 기울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것이다

즉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것이다

즉 돈을 주는 것보다 복을 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썩기 쉽다는 것이니

어찌보면 복이 돈보다 더 독일 수 있음이다

 

 

시지푸스의 산

 

인간은 스스로 무명(無明)을 만들어 지혜로 푼다

즉 자신이 풀 지혜는 다 같으니까

나만의 무명성 질문이 있어야 자신의 대답으로 우쭐할 수 있는 관문을 위한

무명이라는 병의 달콤한 우회가 피라미드같은 미로를 만들어

스스로 푼 지혜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덕목은 떡 장사하는 자는  떡을 선물하는 것이요 

옷 장사하는 자는 옷을 선물하는 것이 상호 정인데 

실제 시작이나 끝을 맞춰주야 좋아하는 꼴이

상대가 옷 장사이면 옷을 선물하는 꼴아요 떡 장사이면 떡을 선물하고는 

당신은 그 방면에 최고의 전문적 장사치니 알아서 팔아 쓰시오하는 것과 같다 

유서깊은 역사의 전통이라는 지혜라는 것이 

고작 스스로 당뇨를 앓게 강요하는 참 애들 억지 부리는 것으로 

네 것도 내 것이요 내 것도 내 것이라는 것으로

세상에 싸움 없기를 바라고  평화를 바라고  온갖 말 재주는 유머로 사탕발림이다

자신은 최고의 복받은 가문이라고 씨족 보다 떠 용열한 이기주의로 응정하는 

무덤 앞에 학생도 못 되는 유치원생으로의 귀염둥이이다

 

 

손 저울과 마음의 저울 

 

중용은 접시 저울처럼 양팔을 벌리는 것이 아니다 

자기장 내의 구성력이다 

그런데 양 극이 먼저 중용을 없애려 노력한다 

지울질 당하기 싫고 비교되기 싫고

또 일방성어야 유지되는 밥벌이 집업이 늘어나는 것 

귀족적 객이 많아 노예적 직업이 많은 굴레를

하루 아침에  밥통 떨어지게 할 수 없지 않는가 

서비스업이 고차원인 냥 다 자유라는 빌미로 전가 시키는

마치 자기의 의사의 책임인 냥 다 돌려 줄 수 있는 

돈이면 다 지불된 빚이 냥 치수는 든든한 듯한 통계학

이 것이 중용적이라고 중심성이라고 하는데 

어느 새 마음은 진리성과는 다른  것으로 

극으로  즐기며  몰아가도

다람쥐 채바퀴처럼 이득을 보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할 수 있는 것

상대적 적은 없애도 또 우후 잡풀처럼 나는 것

간단히 양쪽 저울질 하는 축을 없애면

적자생존도 인위보다 자연적인 섭리인 생리인 듯이 

저울질 안 당하는 기득권적 보편성이라   

오직 실질성인 물질이 현실이라고 현실주의(現實主義)

현리주의(現理主義)는 오직 과학적 천재성만이 드러낼 수 있는 논리의 첨예화 

즉 뙤리 틀로 죽은 듯이 언 현실주의적 함구성에는 

여름날인 냥 기어다니는 천재적인 현리적 과학인  숲에 잠겨 살판 나는구나 

 

 

物的 위치성을 깨면 결국 理的 구조의 위치성이라

 

물적 위치성을 깨면 결국 이적 구조의 위치성이라면

즉 이론의 구조가 맞춘 위치성이 뇌라는 것이라면

뇌 세포가 곧 위치성의 중심이라는 것 이 전의 문제라는 것이다

보통 우리가 윤곽성이라고 할 때 

물적 상태를 위치성으로 하고 

理的 상태를 위치성으로 하긴 힘들다는 것이면 

좀 더 物的으로 함초롬함이 自燈明이라면 이는 物的 비유인 것이고 

좀 지적인 理로 표현한 것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말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매우 힘든 우회적적이면서 벼랑길인 쪽으로 이정표를 내고

스스로 고뇌에 더 빠진 자들이  

마치 쪽집게적 결과에 익숙한 것이 마치 매우 스마트한 세대인 냥

과정은 중요 않고 결과만 요점적으로 잘 해결본 듯이

실제 장구한 이론의 전문성에는 마치 대단한 선지식인 냥 하지만

곧바로 가면 간단한 것으로 어깃장을 부리는 것으로 진을 다 빼게 하고서는  

도리어 남에게는 온갖 요점을 강요하여 인스턴트화한 몸에

마음까지 꼭 식품첨가물처럼 믿음이 가게한다

이는 곧 어느 전문가가 인정한 것이니 그런 사람이 되어야 통과한다는

솔직히 제 독 빼기 바쁜 인생사에 이 것 저겄 가릴 여유가 있느냐 식이니  

부처님이 욕심이 많으시지

조사(祖師)님들 어찌 감당하라고 돌아 보셨을꼬

조사도 중생이라,

 

 

핵산의 차이점을 발견하는 백혈구에 개코 심기?

 

우리가 단백질에 개코를 심는다는 것은

세포의 량보다 세포 하나 단위의 단백질에 센스를 심어야 하는 것인데

이 것에 까지 같은 족 계열이어도 다른 주기율의 원소성으로 센스화하면

간단히 해결이 된다는 말이 된다

이 쩜 이러한 센스의 차이는 신과 인간의 차이처럼 갖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기적도 신에 바라는지도

문제는 만일 신이 알고 있으면서 지켜만 봤다면 귀싸대기 맞을 곳도 많지만

어쩜 신은 능력이 좋아도 센스는 느린지 모를 일이다

즉 사마귀도 핵이 되는 것을 없애야 하듯

이 세상도 박리다매로 사람 끌어모아 대형으로 커다보면

그 것도 포화 상태로 몰리면

결국 문어발식 신경 끝의 사마귀야 없애도 나는 것이고

결국  섬세성의 차이

어쩌면 인간처렄 사소할 수도 있는 키재기도 고도성인 것이

마침내 사리분별보다 대형사고 내지 않으면 안될 전쟁이라도 냐야하는 듯이

어쩜 그 정도로 티눈이 박혀야 우주머리 부분인가 아는 듯이

우린 같은 족임에도 주기율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것

같은 주기율이면서 족의 차이를 낼 수 있는 것

이 것을 인간 세포의 정상적 단백질이나 세균의 단백성보다 훨씬 정밀한 단위라면

과연 백혈구에 이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센스를 넣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실제 이만큼 게놈의 센스를 심을 수 있다면

이 것은 인간의 오감 위치세포를 시간적 자율성의 진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포함하는 시공을 알 수 있는 것인데

이 것이 결국 우주의 크기가 랜즈 막의 위처에 해당하는 나름의 조식성이 인지하는 것이

마치 공간적으로 보면 필름의 두께일 뿐인 속에

그 화상의 전체를 소유한 냥 자율성과 자각성을 부여한 데서 비롯된다

즉 필름 안의 주인공이 어떻게 자각성을 갖는가를 연구하면

그 자각성의 밖과 얼마만큼의 차이를 드러내는가와 같은데

이 것의 유기성을 발견하면

마치 주변을 둘러싼 여러 궤도가 응축을 하면서 융합을 하는 듯이 유동성을 발하는 것과 같으리라는 것이다

 

 

에개해의 별이 게 해(蟹)

 

오! 태양이 충(蟲)으로 풀려 파장인 것

모래알 글을 해독하는가

모래 한 알 무지개로 팝콘이 크는 장단

오! 추임새 좋을시고

파도는 넘실 넘실

~~~~~

파도는 넘실넘실

~~~~~

어데로 가는가는가

에두른 곳에 게가 사네

바닷가에 개가 사네

~~~~~에게

~~~~~에게

그런데 에게해는 그 걸 다 받아 무얼할 것이여?

흑해가 임신을 했네

그 것 또한 검은 막을 쳤으니 묘하네

 

 

프랙탈적 사회성

 

먼저 삼원색이 흰색이라고 하자

그러면 흰색이 단백질이라고 하자

그리고 흙에 눈이 깔린 것이 白土라고 하면

곧 지하에 물을 퍼내는 우물물이 멜라닌이라고 하자

그럼 단백질을 윈심분리하면

세 가지의 핵산의 재료가 나온다고 하자

그 것이 세 가지 색이라고 하자

그럼 빛의 삼투압성을 핵산이 갖고 있다는 것인데

그럼 세균은 걸러지고 바이러스는 투과를 한다는 것에서 관문이 되는 것이다

즉 신장의 삼투압성보다

세포 내의 핵산이 짠 삼투압성이 단백질을 분해한 분별성이면

결국 단백질에 싸인 세포성의 차이로 병을 않는 차원

즉  감기도 바이러스의 병증이라면

바이러스가 병이 아니라 세포와의 부조화로 일어나는 증상인 적인데

이미 현대 과학은 게놈을 다 읽는 것이고 보면

그 발전은 기하급수적인 흭기성인데

이는 이미 천재들의 약리성에 병리에 대한 기득권 경쟁 사회인 것이다

역사는 그런 급변기일 때 무슨 운명을 시험하는 것인지

실제 전쟁이 나 집단적으로 세균성으로 대변되는  것인데

즉 세균성의 관문은 마치 성벽의  관광 코스가 되어 사통팔달로 트인 것이 되고

이미 대중성으로 어울린 자유에서 선별적으로 할 수 있는 바이러스성 약리성이

마치 단백질성의 파괴는 허물어진 성터인 것이 되고 

RNA인 핵산만이 살판나게 

혼란스러운 듯해도 다 선별적으로 드는 것이

결국 세포성 병리가 인간의 사회성으로 그대로 나타남이

즉 잉태성이 탄생으로 나타남이

결국 그 자궁적 벽도 인간성과 상관 없이  인큐베이터 속에서 소리 소문도 없이 나타나

우리가 샹대성이나 조건성의 발단이

훨씬 격리된 임의성에서 행위가 요구됨을 안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피임약이 있기에 좀 더 선택적 자유라는 것이 되는데

이는 성 안의 섭리성으로 낳아 성을 지키는 경쟁이라면

이젠 성이 없어진 피임성이 자유롭게 된 것인데도 사회성은 성인 그대로 관문이라는 것이다

즉 통계성 관문이라는 것도 적정성이 나름의 문화와 지식대로 평균율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 하는 것에서

우린 신의 거대힌 젓가락 집혀야 하는 선택과 제 할 요량은 자유로 싸워야하는 것이

도리어 신보다 인간 스스로 칙임지워지는 것이 많아진 형태가 된다

결국 인간적으로 포화상태의 자의성이지 신과 무관한 침묵 상태에서

같잖은 기적놀음에도 매달려야 사회적 희석성이나마 되는 것에

그렇다고 생기는 대로 낳는 구성원보다 인간애가 낫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아랫니 15 개 악티늄족의 달 공전인 셈

 

우리가 약국에서 하루 한 알이니 두 알이니 소릴 듣는다

이 걸 들으면 참으로 이 세상은 원소 7 주기율인 땅에 한 알 두 알로 숫사 게임으로 사는구나 싶은데

이는 원소 3 주기율인 거푸집에 속이 차야 원소 2 주기율이듯

원소 2 주기율은 풍선처럼 한 쪽으로 쭈그려트려도 모양만 다를 뿐

터지지 않는 한 그 공기의 성질은 상수적인 면을 가지는 것에서 원소 2 주기율성 영역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중량이나 부피의 차이를 다 포용하는

즉 원소 무게가 늘고 중력성이 강한 것은 수량이 늘어나는 데서의 증가인 개념은

원소 7 주기율 내의 모래 수와 같은 척도성인 것이고

원소 2 주기율은 이 모래를 하나로 녹여

즉 모래 수 마져도 하나로 녹여 중력성으로 할 때

그 것은 모래알의 수와 반비례적 

즉 수량의 증대와 함께 무게의 척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할 뭉치라고 할 때

부피는 원자가 양자 단위로 까지 줄어드는 하나의 다른 차원적 단위성으로 옮겨감과 같은 것인데

이렇게 되면 곧 램프가 렌즈와 같다는 것이고

이는 마치 눈 감은 봉사가 렘프라면 눈 뜬 봉사가 렌즈인 것인데

이 때부터는 빛인 3 주기율은 렌즈 속의 빛의 속도가 되어 망원경 속의 확대상처럼 비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빛이 레이저쳐럼 유클립트 공준인 평행성으로 달리면 한 막에 두깨성인 것으로

다방으로 확대시키니 당연히 거대한 부피성으로 알게 하는 것인데

우리가 빛의 속도도 달리면 주변이 통로만 있는 터널로 보인다는 것인데

이는 곧 우리가 원소를 넘어 양자를 다룰 때 그 안과 밖이 통로성인 것을 깨야 하는 것인데

이는 역설적으로 통로성을 알아야 결국 나노급을 넘고 파장성을 아는 것인데  

그 파장성이 애벌레처럼 입을 엶을 알아야

그 먹이로 들 때 그 속도성이 같는 통로에 들어 겨우 기생할 수 있음과 같다  

이 정도는 되어야 인간 70 고려장이 아니라 인간 70 H2O인 관상을 알 것이 아니랴  

즉 분명 거대한 함축성같은 렌즈가 아니라

이미 함축성인 곳에서 아무리 거대하게 우주가 펼쳐져도 함축성 내의 렌즈 안이 비추는 것이다

문제는 이 상이 백뱅의 속도도 따라가는 것이기에

마치 속도의 차이로 야경이 선으로 그어진 듯이 찍을 수 있음과 같은데

실제 이 선을 섬유화한 것이 이승이 된다

즉 이 정도의 차이를 실물화하면 손 끝에까지 닿게 하는 절차가 원소 7 주기율인 피부인 土性에 까지이다  

이는 곧  신경선이 원소 7 주기율까지인 촉감으로까지 와 있기에

동물이나 식물이나 생명체인 것으로 악티늄 족에 속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 것이 한 알씩인 이빨의 악티늄 계열이라고 할 수 있음이다

 

 

밤 한 톨

 

물의 한 방울 두 방울은 란탄족에 속하는 것은 마치  한자 밤 야(夜)가

물 수 변이면 진액 액(液)이 되는데

이는 마치 인간의 두뇌가 알이면 분별성이지만 액이면 분별성의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 된다

즉 희석이 되고 삼합이 됨과 같으니

즉 물질은 에이치투오나 시오투 등 삼합적 삼투압성이 있는데

물질인 물과 수인 물이 같은 발음은 물이 삼합적으로 삼투성을 등심으로 몸을 이루는 것이라

신장은 등뼈의 골수와 함께하는 것이고   

물은 모래처럼 기억이 아니어도  한 방울적 개체가 삼투압성이라는 것에서

인간의 얼굴도 H2O인 관상이 되는 것이다

즉 신체는 모든 끝이 신장으로 돌아가듯  수많은 세포성을 한 자루

즉 물로서 싸인 자루로 하나인 것의 배출구가 신장이라는 것이다

즉 원소 7 주기율이 바닷가를 기억하는 모래알 수 세포라면

이 것은 하나같이 다 기억하는 즉 세계 어느 연변의 모래알 수여도

마치 인간의 세포가 수 조 개여도 물인 전체인 바다와같이  민감한 피부와 같다는 것이 된다

그러니 실제 이는 야도 액에 불과 하는 것은

결국 이 액의 응결도가 핵융합적 빛이 됨이 밤송이와같다는 것이 된다

참 신기한 것은 왜 광선과같은 침을 낮이라고 않고 밤이라 했는가 이다

이는 정말 거시적인 안목이 있음이다

즉 나무가 윔홀이라고 할 때 은하수는 바다 물이다

그리고 웜홀의 끝에 꽃이 피니 이를 별이라 함인데        

다만 우리는 밤에야 물 속임을 아는데

이 때야 별이 밤송이처럼 열매되어 빛남을 아는 것이 해조류의 꽃과 같음을 아는 것이니

결국 몸인 수에 여드름과 같은 것이 항성임을 아는 것이니

이 액(液)이 야(夜)가 됨은 곧 한 방울이라는 것인데

이 한 방울이 곧 밤 한 톨이라는 것이니 윗니 셀 때 한 망울로 세고

아랫니를 셈할 때는 한 톨로 셈함이 윗니를 아랫로 편곡함과 같은 고체성인데

그 사이 변압기의 자기장이듯 뇌가 자가적으로 콘트롤하는 것과 같다

 

 

여시아문이 엿치기 구멍이라

우리 몸을 원소 주기율 순서대로의 진화성으로 보자면
머리가 무겁다고 느낄 때
아래로 쏟아질 것같다 느낄 때
턱이 씹어도 야무지지 못 해 헐헐
안개가 아래로 처지는 것 올리기 바쁘게 씹히는 안개껌도
안개야!
안개야!
결국 처져 陰局으로 가도 8 대지인 곳으로 내려 왔다
결국 목구멍으로 놓쳐도 위가 받아 장이 받아
더 허허롭게 굴이어도
허허실실 결국 영양가 좋게 머리로 올려주지않는가
인생은 광속 터널의 엿치기 구멍
속도가 아니면 구멍도 아니건만 인생 얼마나 달고 맛있는데
이빨 하나 남은 것에도 이물감이 있어 씹고 또 씹는 것이 껍 씹는 기분이다
원소 4 주기율까지 내려오니 접히는 부분인 진뇌(震雷))이고
몸은 콩나물 대가리가 난 원소 5 주기율인 손풍(巽風)인 몸과 대칭이라
즉 우리가 지구 중심에서 펼 때
공기층인 즉 원소 5 조기율이 5 숫자인 중앙 土이라는 것이니
곧 멍석이 되는 동시에 구름층이 되는 것과 같다
즉 지반성이 땅이면 천반성인 구름이 복음(複吟)이 되는 것이다
즉 전하(電荷)로는 프라즈마 상태의 환(環)인 것인데
이 환이 허리 띠라면 이를 일렬로 쭉 편 것이 등뼈인 것이다
이를 원소 5 주기율성일 때
이슬처럼 모여 쌓인 것이 서리처럼 얽히는 뼈와 같고
이것이 원소 6 주기율 성으로 마치 해저에 동물 칼슘이 침전된 것처럼
잠용(潛龍))은 물용(勿龍)이라는 것이 될 때 이는 원소 7 주기율이 되는 것이니 

여시아문(如是我聞)이 엿치기 구멍이라 어젯밤도 알콤했는고?

 

 

신성궁 엘로우 비디오

 

다 자연의 역설적 법칙인 아닌가  

대지의 포말이 나무

쭈삣 분수가 나무로 굳어 버섯 모양

이도 어느 새 멀쪙한 공간인 시야

밤의 눈동자는 눈 감은 봉사

낮의 눈동자는 눈 뜬 봉사

차량의 불빛은 붉은 선 검은 선으로 인화되었다

하나의 입은 이 거푸집을 뜯어 먹는 튀각이라

먹고도 웬 티격태격이라

얼씨구는 얼 박힌 씨앗의 입

뻥이요! 가 빅뱅 중

그런데 저 구름 과자는 어떻게 먹을꼬

자업자득이라 안개로 먹으려무나

달 궤도가 도리어 엉덩이 펑퍼짐 곳이로구나

희디 흰 포말을 삼키네

 

 

시간성 위치 세포란

 

거리가 수 십 세기 밀레니엄 태양인 낮에 

나 비상한다!

나 비상한다!

나비가 춤을 춘다

겨우 근세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는 것이

자등명인 주어가 풀려 술어처럼 동사로 형용사로 풀린 듯이

그렇게 르네상스 굳은 얼음이 풀리듯

등블과 같은 거리에도 나방이 기절할 듯이 몰려든다

이 것이 시간성 위치 세포

자등명!

빛가루 내는 나방이 더 가봉 나미보다 서울인 듯이

왠 가루 투성이인 것이여?

언제 그렇게 빛을 가루로 싼 것이여!

능청스럽네 그려

그리어 그리어 말이 한 주기율만 넘어도  몸으로 운 듯이

이젠 몸이 가루로 터는 것이니

어머나 그 것도 한 자루로 담기듯 또 빛으로 줄타기 하는 거미인 것이여?

나비가 굳이 가루를 털지 않는다고 빛을 사랑하지 않았다 말어유

 

 

그래요. 나도 한 생 드잡은 부처님이유

 

그리어 그리어 원죄라잖어유

오죽하면 타 종교인이 절간 주렴을 긁어

그 부스럼 가루가 영험인 냥 안당복달이겠수

그런데  그 것 없어도 된다 해도 발목집히 기분잖수  

그려

그려

나하고 닮았네 그려

답답하다고 지령지성 산신에게만 매달릴 것이여?

그 것 나하고 급이 같기나 하겠시유

그래도 부처님 급은 되어야 비비든가 긁든가 할 것이니유

그리어 그리어 나하고 통하네 그려

세상 모든 신 중에 드잡을 신은 부처님 밖에 못 봤시유

나도 부처님 더러 아저씨라 부르려 벼르고 벼르며 기화만 엿보고 있다우

 

 

동장군 똥장군되었네 그려   

 

난 문화인에 속하는 것이여?

한복은 클래식에 들어봐야 성 안의 성이듯

도시 속의 도시이듯

보호구역에서나 클래식인 것이여!

몸으로 우는 나라는 이미 구두(句頭)를 벗어난 옷

묵언의 말씀이 말씀이 아니어도 묵언이라

한복은 치장 거리일 뿐이여! 정신은 무슨

의식주는 모두 인스턴트 첨가물의 명시하면 되는 것을

명시를 명심하라

이 것이 시대의 현시

세상은 그리 통하는데 무슨

그런데 어찌 영화 제목이 서시에 진 까닭인 것이여?

묘시에 진 아침을 향해 달리는 토깽이지 않고

어찌 서시에 져 다시 얼어야 하는 것이여

유시에는 벼슬이 붉으나 울지도 않는구나

벼슬도 다 수평 저율의 평면에서 언저리를 푼다  

이 건 문화가 아닌 것이니 무슨 고유성이여

다 살살 녹인 프랜치 키스가 언제적 이야기인데

무슨 얼어죽을 문화인 동장군 문화인 것이여!

그러고 보니 나도 동장군 쫄따구 아닌가 뷔여

로봇이 녹이 쓸어도 그만틈은 하겠다

서로 붙어 떨어지지 않는 영화가 언제적데

아직도 못 붙어 슬금슬금인가

그렇게 쓿면 보물이 쏟아지나?

사랑! 그 것 입에 좀 발리면 덧나나?

그러고서 무슨 속도전 일꾼이였는다고 하는겨

그럼 것이라고 내놔 봐

그리어 동장군이 무슨 얼어죽을 사랑이여

그래도 오여름 땡볕 맛이 살살녹여 끌어온 것이여!

역사는 열렬한 후랜치 키스가 이끌어 온 것이여!

사랑도 모르는 동장군 똥장군되었네

묘시에 풀어준 은혜 서시에 뒤통수 맛았네 그려

그러니 앞만 보고 갈 것이지 왜 뒤돌아 본 것이여!!

다 앞 다리 걸었다 싶어도 구닥다리 건 도깨비 씨름판이여!

 

 

사주의 일례

 

일례로 財多身弱이나 官多이면 무슨 일이 나면 발뺌하기 급급한데

다만 從官이나 從財格은 술집에서 여자를 소개는 일명 삐끼나 물건을 중개하여 소득을 올리는 편이다

즉 재다신약도 운이 닿지 않으면 극빈을 면치 못해도 운이 닿으면 빈손이어도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되기도 한다  

즉 땡전 한 푼 없어도 시세 차익이 지방마다 다름을 알고

살 사람과 팔 사람을 그 분야마다에 전화를 해서 탐문해 보고 흥정이 되면 

가게도 사무실도 하나 없는 공간이어도

어느 장소를 택해 모이게 하고는 그 자리에서 팔아 넘겼다고 하는데

이는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그 낌새를 알아도 도의상 입을 다물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빈손으로 자수성가해 여관을 차린 분도 봤다

또한 比肩이 많은 사람은 대중적으로 어울리길 좋아하고

친구 만들기를 잘 해 남의 대소사에 잘 끼어드니 신망이 두터운 편인데

그러니 돈이 없어도 친구가 잘못되든가 하면 여러 친구를 찾아가 추렴도 잘 하는 것이니

의리 있는 사람으로 통하는데 이도 금이 많은 義와는  성품이 다른 면이 있다

즉 비견이 火가 많다면 불같아도 화통한 사람끼리 의형제가 되어 의리가 있다고 해도

결혼을 하면 처나 직업인 金의 義에 따르는 이유로 아무리 닮고 통해도 妻子를 빌미로 외면하는 것이다

어느 한 분은 그 끼 때문에 없는 살림에도 무연고로 죽은 사람 장례도  잘 치뤄 주었는데

그 한 집단의 간부다

즉 이미 비견이 많으면 정치계 족으로 많이 발전하고 사회사업을 인간적으도 평등하게 취급하며

잘 알고 통하는 듯이 가까이 하니 인격적 존엄을 가지는데

다만 운이 쇠운으로 가면 받들던 사람들도 그렇거니와 지금까지 남을 위한 일도

내 이기성으로 돌이켜지는 경향이 있고 지나침도 허물이 되어 나타난다

다만 선악의 분별은 있는 것이지만 사주가 좋다고 선인은 아닌 것이다

약속은 土가 많아 지키는 신망보다

水가 많아 약은 수단가 많아도 비견이 많으면 대중성과 함께 신망은 더 많이 있어보이나

결국 약점인 자신의 財 쪽으로 잘 빠져 그래도 처첩이 믿음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土가 많음은 비견의 다소와 상관없이 한 번 고집을 피우면 무식하게 끼어들어 엉뚱하게 빠져도

제 체면은 죽어도 안 굽히는 성격이라 독박을 쓰는 경우가 많다

 

 

공간적 위치 세포의 정의

 

밤낮 돌아다녀봐야 허물만 안고 돌아온다

결국 내 허물이고 보니

글을 쓸 수 밖에 없지 않는가

무슨 허물인가?

전차 전복의 허물이 나날이 생기니

후차가 일기를 쓰듯 쫒아가기 바쁘다

꼭 차의 전조등이 불꽃이면 되는 것을

굳이 끝까지 선으로 그은 야경처럼

꼭 내 온 길이 들키고 만 듯이

또 일기가 한 컷

시간의 위치성이 공간의 위치성으로 한 세포 심은 듯

무우 도사는 좋겠네

잠겼다 하면 선계(禪界)이니

난 또 공원에서 잠겨보면

또 허물만 안고 갈 짐만 가득하네

 

 

왜 나무가 포말인가

 

우리가 판치생모라는 화두를 들면

과연 나무가 눈이 한 쪽으로 나는 것이 듯

그럼 지구처럼 극이 앙쪽 막대와 같다면

핵에 두 개의 눈이 있어야 양 극성으로 난다는 것이다

즉 어느 한 쪽이 뿌리가 아니라

양쪽이 잎로서 둥글게 덮은 것이 지구라면

이는 곧 동위원소 중수소와 같다는 것이 눈이 난 것과 같다

왜 나무가 포말성인가 하는 것은

이는 빛이 꽃잎처럼 벌어지는 것이 뿌리와 같다면

즉 뿌리가 퍼져 나중에 짝퉁인 꽃이 퍼지는 것이 아니라

꽃잎이 퍼지듯 나무 뿌리가 퍼지는 것이면

이는 원소 4 주기율에서 3 주기율로 펴는 것이 아니라

원소 3 주기율에서 4 주기율로 펴는 것이 나무 뿌리라는 것인데

이는 곧 빛이 가루인 방산이

나무로 물로 해서 중력성처럼 뿌리 빨대로 흡착 시켜 가루가 생김에

꽃가루처럼 흙토인 원소 7 주기율꺄지 원소 채집함과 같다는 것이다

즉 허공성로서 무성인 우주 공간이 핼륨성만큼 퍼졌다고 할 때

그 무성을 흡착하니 다시 원소성 성질을 가진 꽃가루와 같더라는 것이 된다

다만 우리 눈에는 선에 보푸라기와 같이 인식이 되는 것에

신경 조직 인식하고 적응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즉 세포나 단백질이 우리가 인식하는 대로 키워져 있는 대로 보는 것인데  

이는 단맛이 단맛이 아니면 위치성도 없어지는 것과 갘다는 것이다

이 것이 주기율마다의 六根이 문재라는 것인데

다만 족은 한 뿌리로 7 주기율까지 담근다는 것이다

이 것이 중요한 것이다  

즉 자등명은 송진 가루와 같은데

우리 눈에는 광선이 뿌리처럼 뿌리는 것이나

땅과 대기의 차이로 또한 나무 기둥이 되는 것이니

이는 지구 핵이 다른 굴레의 땅심이 따로 있다면

땅도 대기권과 같으니 곧 남과 북의 막대로 분수처럼 덮은 지구가 앙쪽이 되이

두 개의 뚜껑이 마주한 호도알과 같은 공이 되는데

이는 곧 남이 북의 뿌리가 아니고

북이 남의 뿌리가 아니고 핵에 뿌리를 둠에 나무 기동처럼 선 것은

사방으로 퍼짐성에 중량의 차이로 기둥이 설 수 있는 나무이듯

지구가 양극로 축을 이루어도 두 개의 나무 지붕이 포갠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즉 작을수록 중력이 강하면 나무처럼 기둥이 섬이 남북극의 키처럼 크다는 것이다

즉 부피에 비해 중력성이 강하고 단단하면 양 극이 싸 안는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이 것 또한 전기심인 중력성이면 원소 4 주기율에 해당이 되는 것이고

눈으로 보이는 것은 차량 불빛이 꽃으로 보이나 사진으로는 선으로 인화되듯이

좀 더 빠른 속도 차이로 일시적으로 할 수 있음은 원소 3 주기율과의 거리로서 섬광과 같아도

7 주기율에는 선으로 드러나게 그릴 수 있는 종이짝은 된다는 것이다

즉 주기율만 달라도 볼펜이냐 종이가 되느냐와 같은데

이 것이 만든다기 보다 자율적 섭리성에 자동적으로 해당됨이 얼마만큼인가도 흥미로운 일니다

즉 우리의 두뇌가 원소 7 주기율에 해당이 된다면

그 주기율 간격이 4 주기율인 전기성의 양극성 막대처럼 세워

전기를 전지로 표현할 수 있듯이 빛이라는 인식이 선이라 할 때

분명 광선은 가루인 빛가루인 것이나 선으로 보푸라기처럼 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빛 자체만으로 설 수 있고 전기 자체만으로 설 수 있는 공간성도 있을 수 있음이다  

레이저가 등뼈같은 선에 적외선과 자외선이라고 할 때

보라색이나 붉은색이나 자신의 고유한 색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에 의한 표시가 나 색일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라면

즉 빛을 당기는 중력에 의한 근접성의 차이로 휘는 것에 가루가 나

그 부스러기가 색깔을 내는 극미성이라면

휘어 안쪽 중심으로 가까운 쏠림은 그만큼 보라색 가루를 냄에 보라색으로 보임은

거기까지 인식하는 센스가 우리의 눈에 박혀있다는 것이 된다

이 것이 원소 3 주기율인 범주의 인식에 해당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원소 3 주기율적 인식도

원소 7 주기율인 촉감으로는 또한 모르는 것이기도 하나

문제는 촉각도 세포성으로 보면 원소 3 주기율적 일맥이 있다는 것이다

족 족으로는 한 줄이 되는 것이다

이는 곧 시공적으로도 속도성의 차이을 관통하는 것이

우리가 빛의 속도에 가까우면 통로처럼 보이는 것은

원소 3 주기율인 빛 안에 있음에 인지하는 것이고

빛의 속도를 지나면 어둠이나

이는 마치 빛이 물 속 깊이 지나면 어둠과 같은 데서

어둠이 은하수에 정말 빛의 굴절성이 있기 때문인가 하는 것으로

그러면 먼저 우주가 수소로 되어 있음이 물인 H2O보다 얼마나 견실하고 단단한가 하는 것이다

즉 물인 H2O는 거기에 비하면 거푸성이기 때문이다

이는 주기율이 달라 한 시공성만의 인식이서 다른 시공성을 모른다고 해도

잠재적으로는 같은 족의 선은 내재되어 있다는 것에서

우리는 빛이 가루인 것을 선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결국 밖이 아닌 안으서만 인식을 해도 바깥의 시각성도 인지할 수 있음이

주기율과 족의 조합적 인식의 저장성이라는 것인데

이 것이 곧 위치 세포성이 스스로 지은 조합성에 근거한 공간의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자등명의 물리적 근거가 되려면

 

만일 빛보다 빨라서 입자성이 됐다면 그 것은 자등명이 확실한 근거지가 되는데

이는 곧 수소 한 알에 빛이 있는 내면성만큼

그 원소 속에 태양광처럼 있는 것이라면

그 것은 바깥의 광속과 같은 족으로 한다면 이는 입김을 불어도 빛가루인 것이다

 

 

그 유기성을 위한 책임론

 

신성궁에 책임론이 제기되었다

즉 빛을 주었으면 무명을 깬 유명이게 해 주어야지 않는가

허나 결론은 물질의 반사성이고 거기에 그림자인 것이다

즉 그림자의 자광성인데 그림자의 자광성이 되려면

결국 빛의 속도를 넘어서는 시공의 몸이어야 빛을 쥐는 것이니

스스로 등불이 될 수 있음과 같다

그러니 불투명을 극복 못하는 것이 아니라 투명성을 극복 못하는 것이다

즉 무한 허공으로 빠지기 전에 인생은 구름과 같은 포말을 쏟아 부어야 하는 벽을

로켙처럼 대기권을 차고 나가기 위한 안감힘이 필요한 것과 같다

 

 

인식적 지식과 자등명적 지혜

 

애벌레가 실을 뺐다

그 실을 따라 무한히 감은 무한대 우주여도

총체적으로 자기장으로 변화를 줄 수 있다

즉 눈으로는 코일 한 뭉치로 보이니

가로지른 지름을 한 묶은 것으로 볼 수 있음이

이를 자기장적 굴레로 하는 종횡의 지름길이라면  

코일이 감긴 것만큼이나 따라 돌아야 하는 전기는 자기장과 다른 시공성을 띤다는 것인데

이는 두 시공의 시간 차이만큼이나 크다는 것이 된다

즉 사천왕천의 하루가 한 자기장이라면

그 코일을 따라 돌아야 하는 전류는  이승의 시간으로 수 백만 번이라는 것과 같다

그런데 원소 1 주기율의 자각성은 자율적이고 잠재성인 것이라면  

우리가 자각하는 신경은 원소 4 주기율에서 원소 5 주기율에 부딪치는

대칭성으로의 자각적 경험치가 뒬 수 있음이다

그럼 원소 3 주기율은  이 시공으로는 빛이 선으로 봐야 하지만

빛이 가루로 보이는 곳이면 신경을 능가하는 자율성의 모뎀이 될 수 있다

즉 신경이 나무처럼 보인다는 것이  된다

즉 나무는 피부에 닿는 촉감이 있고 7 주기율에 닿은 선이지만

빛은 원소 3 주기율이니 눈을 감아도 빛의 따스함은 아는 것이니

원소 주기율은 달라도 족의 선으로 느낌으로 아는 것과 같은데

이는 원소 2 주기율적인 텔레파시적이면 직감을 느끼게 되어 있는 것이다

즉 직감도 물리성으로 접근을 하려 노력을 해야지 미신적으로 내모는 것은

스스로 자폐증을 앓는 환자나 다름 없다      

즉 원소 4 주기율까지는 신경성 인식의 지식인 것이고

원소 삼 주기율은 식견과 다른

또한 신경성과 다른 지혜가 알 지 자에 날 일을 더한

스스로 밝음이 존재함에 지혜라고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자각성은 원소 4 주기율인 신경이 손풍과 대칭성으로서

메아리처럼 접하니 곧 자각성이라는 것인데

그 대칭성으로의 진동이 팔괘가 접히는 것에서 나는 것으로 해서 자각성이니

여기까지는 생각 자체가 여러 각도로 보는 자각성으로 되십을 수 있음이 된다

즉 신경의 자각성도

어찌보면 처진 신경을 밀어 충동하는 추진의 자각성일 수 있음이 있다

 

 

동충하초

 

봄이 오늘로서 보니

겨울이 어제로서 충이라

울 안에 충이 듯 성인교육실인가

충이 묻힌 곳을 봄에 

충의 날개가 하초로 날개로 편다

마치 나비가 더 멀리 날 듯이

애벌레를 은하 철도 999로

덩치만 컷지 끼거덕거리는 관절을 복사품인 냥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을 몰고 올 때

나방은 전등 불빛만으로 영통인 듯이 나방의 애벌레가 실을 뺐다

자기장 구름을 뽑아 울타리쳐보니 고치였다

애벌레는 구름이었다

구름 방울이 거울로서 달려가게 한 단파들이 무지개 虹에 벌레 蟲이  邊에 있다

날기도 전에 뻔데기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神은 위대했다

눈처럼 덮어 가린 것이 아니라

투명하게 하여 가로질러 보이게 했다

나비는 그 투명성 태양으로 날으니

언제 빛이 가루였냐는 식으로 깔끔하게 날은다

고치같은 성곽인데 그 안에도 투과성으로 불 수 있게 한 하늘이다

그로 투과된 영혼은 나무의 命이어도 잎새의 날개이듯 나오는 것이

이미 얼 빠진 것

얼씨구가 심어지게 되어있다

이미 성운의 씨를 구름씨로 받음에

달이 감싸고 엉덩이 펑퍼짐함이라  

다 자업자득이 되게 한 윤회의 틀인 달거리

스모그가 맑고 아니 맑고도 다 몸의 일

안개조차 밝고 아니 밝고도 밤새 별의 성운을 담은 듯

화학적 요소일 뿐 투명해서 안 보이는 듯이 해도 자기장에 들게 되었듯 거시적 프랙탈

그런데 나방을 다르다

빛에 죽을 듯이 모여도 자신의 가루는 빛가루란다

즉 원소의 주기율이 다른 시공이라 손이나 피부에 닿는 촉에 들지만  

족으로는 원소 3 주기율의 빛가루나 원소 7 주기율의 몸 가루나 같다고 

나방은 온 몸을 가루로 울었다는 타이틀을 택한 듯이 한다  

즉 꽃과 빛이 주기율은 달라도 족으로는 한 족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무의 잎인 날개엔 나방이 불빛에 온 몸으로 투신한  나비꿈이 있다

마치 돌고래가 집단으로 바닷가 하얀 모래로 빛인 냥 투신하듯이

등뷸보다 태양불로 가는 것이듯 나무의 동화작용의 전신으로 득도하고파

이미 나방은 자신이 나비보다 자등명의 가루임을 안다

겨에 싸인 듯이 겨울에 동충을 봄에 보았다

여름에 풀이 뾰두락지처럼 나는 열매를 보았다

전등에 시간의 굴레인 냥 위성처럼 빙 돌다 뚝 떨어지는

나방은 낮이 아닌 밤의 등불에 뚝 떨어지는 오히려 별과 같은 꽃에 위성족이다

나무의 나이테로 죽어 클 것이 듯 동충은 죽어 하초로 날개를 편다

 

 

원소 두께성의 내공

 

삼겹살이라는 것이 있다

이도 원소 3 주기율의 두께라는 것인데

내공이 각기 다름을 나타낸다

즉 우리가 가는 몸일 때는

소리도 가늘면서 미성이면서 음율이 살아도

그런데 살이 찌면 가늘게 내서는 소리가 안 나는 것이니

결국 외벽이 두꺼우면 소리도 퍼져버려

소리를 전보다 세게 내도 뱃 속이 공력을 힘 들이지 못하는 것인데

이는 곧 주기율만 달라도

즉 원소 2 주기율의 내공으로는 2 주기율의 소리를 7 음정까지 낼 수 있는데

원소 5 주기율에서는 2 주기율의 입심으로는 

배가 빈 듯해 소리가 퍼져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는 곧 테너 음정과 베이스 음정같은 주기율로는 내는 것과 같아  

옥타브가 달라도 주기율이 다른 것은

옥타브는 닽라도 내공으로 뿜는 족의 선으로 부는 힘이 다르다는 것이고

원소 주기율의 삼겹 벽이 아니면

삼겹으로 찐 목젓을 한 겹으로 내듯이 배에 힘을 주어서 나는 것으로

기운이 없어 소리를 내저 못하는 공허함과 같다  

이는 배가 핼륨족이라고보는 것으로서 겹으로 포개지는 두께와 같으니  

이는 주기율이 두꺼워진 살과도 같다   

즉 벽을 밀 내공이 강해야 소리가 나고 두터우면서 미성이 되는데

매우 우렇차게 나오고 후텁한 막이 나는 소리인 것이다

이 것이 삼겹이면 테너 정도 되는 것이다

물론 소리는 雷요

음정이 최종적으로 나오는 입는 澤인 것이다

그리고 1 주기율의 수소를 건으로 함에 빅뱅의 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공휴일도 쉬는 자리라

 

공휴일이 있어도 지구가 돌아가는 이치

그 것은 간단하다

수소가 핼륨으로 됐을 때 이미 다 이룬 것인데

그 위에 나이테인 주기율로 하면 7 주기일이 된다

즉 일곱 무지개색 요일이 쉬는 것이

육효로서 열심이 일하다가 팔괘까지 접근을 하는 것에 두절이라

즉 7 부터 공망이 되는데

여기에 인간과 신도 쉰다는 것이다 즉 6 수흫 수평으로 할 때

잠처럼 가라앉아 있는 것이 7인 간산이다

즉 해저산이라는 것이 된다

그래도 실제 핼륨이 된 과정 사이 족이 없는  공망을 원소 1 주기율로 볼 때

지기율적으로는 8 족이 있긴 있어도 족의 공망과 같이 잡기 힘든 공망이라는 것이다

즉 원소성으로 잡히는 것이나

우주 공간으로 진공 상태에는 잡히지 않아 없어 보여도

실제는 섬유성을 띤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7 까지로 해서 공이라 공휴일이 되어도 8인 핼룸성이 주기율로 깔고 있다는 것이다

즉 족인 핼륨으로는 중성자적이어도 성질을 갖고 있지만

주기율로는 느기지 못하는 성분성이라는 것이 된다

실제 대성괘가 변효까지 이동하는 것을 보면

본괘와 변괘의 시공의 차이는 엄청나다는 것으로

그 응기도 며칠 사이와 수 년 차이의 시공성이 드러나는 것이서

작용의 응기를 잡기가 어렵다는 것인데

이도 열심히 탐구하다 보면

이 각으로 이동을 하면 마치 방귀가 희석이 되듯한 공간 차로 풀리는구나

또한 대단한 압력의 시공성이 구멍하나로 몰아치니

천재지변성에 피하기 어렵구나 하는 어떤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어 있는데

이 건 학문적으로도 신출귀몰의 요점이 있기 마련인데

굳이 주술이 들어가야 하는 것과는 별도의 터전 닦기도 곁들여야 아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

 

周易은 아무리 動爻가 많아도 世가 空亡이면

다니는 차의 코스가 주변에 아무리 많아도 탈만한 차가 없음과 같다

공망이 아니면 생각해 볼 일이 많은데

내가 動爻를 생하면 좀 많이 걸어가 내 에너지나 그 爻 요건의 소모성이 많아야 닿는다

동효가 나를 생하면 마치 정류장에 끼니를 채울만한 마음에 드는 중간요소가 있든가

마을버스는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극하면 가까운 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시공성의 얘기할 때는 전후를 따져야 시간을 분명히 하는 것인데

공망도 공망을 채우고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공망인 채로 벌어지는 것인가 즉 안 차고 전에 벌어지는 것인가 등

공망으로 應期를 잘 잡으면 귀신이 따로 없는 것인데 그리 녹녹한 것이 아니다

변효와의 상호성과 大成卦 그대로의 상호성과는

엄청나기도 하고 금방이기도 한 시공의 차이를 보는 것인데

그 차이점을 잘 활용해야 하는 인지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은 중요하다  

주역은 평생을 공부해도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어려우니 나름의 노하우도 많다

그 것은 학문만이 갖는 전달성의 잇점이 노력과 정비례라는 것이니

절대 왕도가 없으니 강신인 냥 할 수 없는 축적성어야 하는 것이 많다

즉 우리가 산 전체를 보려면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점사도 산 사태 정도를 보려면 응기도 좀 떨어진 상태로 보게 하는 차이점을 보이고

근시안적인 것

즉 방귀를 뀌어도 금방 희석이 되는 방향성이면 가까이 냄새만으로 안다는 것이 된다

이는 새가 먼 산에서 울어도 울 밖에서 또는 울 안에서 울어도

각기 내와와 원근을 대략 짐작하는 손님을 맞음과 같은 것처럼

응기도 거리와 공간을 판단함과 같이 시간을 응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씨앗은 두 손을 모은 기도와 같다

즉 자신의 소망은 자신으로 또한 거둠과 같다 이 것이 진인사 대천명이다

그래서 손금의 大河가 마주하여 일으키는 이중창과 같음이 싹이나

무럭 무럭 자라니 우리는 예술에 감동하는 신경 나무와 같음이다

 

 

인간이 구만 년을 살기 위한 스트렛칭

 

지구는 호도알처럼 반으로 붙은 듯 두 개의 온전체 양성자인 것이다

그래서 지구는 자전으로 얼싸안고 아옹다옹

긴 공전의 여정인 인생을 사는 것이다  

이 것을 易象으로는 본괘(定한 卦를 말함. 본궁괘와 다름)가 변괘를 공전하는 굴레인 것이고

이는 곧 시간적 應期의 폭은 그렇게 잡는 것이다

그럼 지구 자체는 사랑이라는 거미인 것이요

거미줄을 사방 공전으로 혹성 거리 마다의 주기율적 확대폭을 혹성의 굴레처럼 치고는

진인사 대천명처럼 사는 것에

이 것에 호홉도 못 맞추면서 영생을 실사구시적으로 욕심을 낸다

이러한 건 다 허황됨이 아니면 기만과 사기인 것에다 자기편의주의에 빠진 것이다

보통 인간은 하괘 천 년에다 이를 다시 하나로 상괘 천 넌이면 백만 년이다

즉 인간이 지상성만 극복을 하면 십년은 거뜬히 산다는 것이다

실제 상하괘로 연결이 되어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오히려 상괘와 하괘인 사이

즉 원소 주기율이 늘어날 수록 전이원소나 란탄족이나 악티늄 족이 많아지는 것은

이온 합의 껍질에 알맹이처럼 싸여 나오는 것이 식물의 고갱이 쪽에서 퍼지는 것과 같다

즉 진손이 접힌 중앙에 만물이 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가 인지하는 만물은

소성괘 하나인 하괘 전의 밖에 찬 대성괘의 사이 공간을 말하는 것이지

이 만 안에 천이 있음에 사물과는 10의 차이가 있으니 이를 대운을 십 년으로 치는 것이다

그래서 토정 이지함선생님은 이 이치를 알아 토정비결 운행을 하괘로만 했음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치를 알으셨다면 아인쉬타인을 능가하는 천재성이라는 것이 된다

즉 인문학성이 이렇게 철저하다는 것은 아인쉬타인도 접근할 패러다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마 인류가 인문과 물리가 같아 게놈의 세상이 펼쳐지면 그 분이 가진 철학성에서부터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즉 인간계 천 년이 互卦로서 이어져 만 년. 십만 년이 되면 호괘 上爻가 5 爻로서 본괘 6 上爻가 내려옴과 같고
互卦괘를 제외하더라도 이는 중간에  동양인이 萬을 괘 사이로  접어 포개는 것에서 괘 사이가 만 년에 속하고

그 만 년을 10 배 정도 사니

이를 상괘 하효인 4효의 자리에 걸어 채운 듯이 떠난다는 고치와 같음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데서

십 만 년이라는 숫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원소 주기율적 공간으로 하는 둥근 입과

그 원소 주기율에서 원소의 자전성에 따른 입에 듦이 성품이 되는 것로 원소의 自性이 되는 원소성으로
지구 공전이 지구 자전이라는 구멍으로 질서 있게 하나 씩 내놓는 것과 같은데

이는 색을 마음대로 내는 것과 같이 사물이 난다는 것이다

이는 천상성인 上卦로서 주는 것이 아니라 千을 넘어 上卦와의 사이인 공간
즉 대성괘의 사이인 공간으로 萬으로 했음이 萬物이라는 것이고
이는 마치 上下卦는 아직 뜨거윤 유연성이고
괘 밖에서 굳어 금속성 모래알 먼지처럼 卦 안으로 들어 만물의 한 형태를 이룬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 또한 우리가 萬物을 캐어서 낸 것이라기 보다
자연적으로 쌓인 것을 캐고 보니 上卦까지 이온적 허리띠로 쌀 수 있음이라는 것인데

다만 호괘에서 캐는 것이라면 좀 다른 논리가 되어도
상하괘만으로도 상괘인 4 효까지 살면 십만 년이라는 것이니
이는 小成卦 千 밖이 萬物인 萬이라는 것이고 이 것은 오리려 허공성을 띠니

일체가 空하다는 것이 맞다

이를 다시 上卦로 연결하면 마치 세포가

즉 이 萬物을 下卦인 千 단위의 세포성으로 유전자가 되어 上卦로 연결됨이 곱이 되어

그래도 한 염색체롤 음양성으로 끌어올림이 쌍으로 연결되어 된 시공이 호괘로서 올리면

호괘 상하괘로 안은 것만으로  십만 년이라는 것이고 이로 구름처럼 엉긴 호괘로 보면

본괘 하괘가 10 단위가 비는 것이고 상괘는 10이 는 백만 년이라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남녀 간의 이온적 결합으로 알맹이를 찾는 껍질성 허무성이기도 한데

그래도 한 염색체롤 음양성으로 끌어올림이 쌍으로 연결되어 된 시공이 구름처럼 엉기면 십만 년이라는 것이니

그래서 인간은 남녀 간의 이온적 결합으로 알맹이를 찾는 껍질성 허무성이기도 한 것으로

차는 정기가 십만 년 분이 되는 구름층과 같은 것이고

백 만 년의 껍질이 심만 년의 알맹이를 채우는 것과 같다

이는 상하괘 사이의 허공성에 互卦는 받침성으로 보일 수 있으니

이를 천체 물리학적으로 보면 접혔다 펴졌다 하는 현상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럼 괘 자체가 생물제와 같은 유동성 파동의 한 단위로 할 수 있음이다   

즉 이 것이 理가 氣을 낀 體와 동질성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의 내적 맛을 알게 하는 것이 사랑인 것인데

십만  년을 사는 인간이 없으니 신앙적으로나마 충족하게 되어 있는 것이 본능성이라는 것이다

즉 남녀 간의 사랑을 찾는 알맹성의 변질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모두가 자기 짝이 십만 년 命을 차고드는 원리인 것이니

즉 다 부처이기 전에는 하나의 부처를 모든 부처를 상징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만

이는 상하괘가 서로 평등하고 동등한 것이지만

그 부처 세상이 아닌 다음에야 시답잖은 남자들의 역사를 따르려니

차라리 절대적 상징성의 남성이 헝상이나마 의지하는 편이 그나마 위안이 된 역사라고 봐야함이

태어 났으니 사는 생목숨의 최고의 방편에 기여를 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데

이는 늘 정자가 난자 속에 자궁에 들어야 하는 적자생존적 논리가 통하는

명분 상의 결합이 잘 통하는 신앙적 미덕의 결속으로

그 것도 기호성과 게으름으로 편협된 충족으로 치우쳐

차별로 민감성이나 키워  품격을 매김하는 이기성으로 별질되 

이미 개인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신적 왕도의 전체주의로 모는 세상이다가 말았다 하며

결국 번복되며 오락가락할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의 善은 바탕성으로서 봐야지

좀 머리가 좋은 데 잘 키워졌다 싶고 다른 민족과 차이가 난다 싶으면

그로 사회제도나 문화의 차이성을 바탕성으로 깐 행운과 복으로 차별을 한다면

스스로 인간 평등성을 외면하고 인류애니 비인간이니 하는 말을 입버릇처럼하는  타이틀만 많을 뿐

갈등과 모순만 더 키우는 못난이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양성자로서의 빚갚기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을 넘는다는 것은

우리 뇌의 정신성이 물리적 위치성으로서의 작용이라는 것이 제일 빠른 것인데

우린 가장 느림보적 과학성에 토끼같이 발발거리면닭은 어제 저녁까지라고 새벽에 우는 채바퀴인데

양은 양으로 공제되어야 할 양성자로서 몸으로 우는 삶인지 모른다

 

 

포자성

 

우리가 충이든 균이든 포자성으로 할 때

본래 계절과 상관 없이 포태법으로는 포자가 되지만

겨울성으로 못 박아 동충으로 함이 곧 나무처럼 못 박힌 현상인 것이고

포태법처럼 계절과 상관 없이 적용함은 동물과 인간이라는 것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나무는 C의 전신이고 인간은 O의 전신이다

즉 최소한 나무가 탄소 족이 아니라 질소 족만 되어도 붙박이이지 않지 않는가 하는 것인데

다만 4까지는 지반성으로 함에 좀 가벼운 듯이 하지만 뿌리는 박힌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나무와 인간의 관계는 O2라는 인과가 성립이 된다

그럼 탄소를 밭아들이는 나무는 동충에 근거하면

산소를 받아들이는 인간은 하초가 되는 것인데

이를 역설적으로 설명이됨도 가능한 것이다

즉 나무는 펴진 상태로는 하초에 해당이 되고

동물은 콩나물 다리가 나기 전의 콩으로 동충으로 할 수 있음인데

이는 형태 선에서 보는 것이고

파장성 시간선으로 보면 산소계열인 상괘보다

하괘가 또아리성 지반이 되는 알카성 금속류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소를 산소족으로 하는 산성으로 하는 것에서

우리나라의 태극기 문양이 푸른색과 붉은색임은 리트머스 종이와 같은 노출에 의한

족처럼 감깐 건곤감리에서 풀려나옴과 같다다는 것이다

즉 태극에서 팔괘로 퍼짐성보다 응집서응로 봐야 하데

여기거 응집은 동추잉요 퍼짐은 하초가 되는 형상과 같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제시한 한글주기율표처럼

진손 대칭으로 모인 것이 모음 ㅢ 자인 것이고

건곤으로 퍼진 것이  싹의 눈이 된 수소엔 ㅡ가 가고 핼륨쪽으로는 ㅣ가 떨어져 나감과 같다

이렇게 펼펴지는 것이 하초인 것인데

결국 아누가 자라듯 시간의 뱡향셩을 본다고 해도

동충은 그 퍼짐성에 응축되어 몰리는 방향성을 따르니

진반성과 지반성이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이니

결국 인간이 사상으로 대칭성으로 붙어 건곤인 가장자리에서

진손 쌍이 안으로 향하여 늙으니

이렇게 핵으로 몰려 듦이 동물이라고 할 때

그로 늙어 죽어서는 다시 나무처럼 펴져 나가는 길을 산다는 것이 된다

이 것이 결곡 동충으로 볼려 북어도 하초로  다시 태어남이 식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가 곧 원소 3 주기율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를 자정과 같다함이다

이는 곧 두개골이 덮은 형상으로 봄에 머리가 되어 보이는 형상이 되는 것이고

그 이 전의 가지는 혈과 같을 뿐 완전히 섬유성 전이로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윤곽성으로 쌂이 곧 원소 1족과 8 족이 쌂으로서 하나의 개체성으로 보이는 것에서인데

이 것이 없으면 나무처럼 신경이 흩어져도 나무로 보이는 신경천이라는 것이고

싸지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데

다시 공기가 싸니 이가 곧 뇌로 치면 두개골과 같음을 말하는 것이고

대기층 안에 전기가 나무의 에너지로 원천적인 힉스입자이라는 것이 된다

이 것이 접혔다 펴졌따 하는 파장성인데

이 것이 주기율이 음양으로 요철을 이루며 접히는 듯이 할 때

즉 원소 3 주기율과 원소 5 주기율처럼 두개골로 싸서 움직이는 행태를 동물로 하여

둥충의 움직인 몸으로 하는 것이고

원소 2 주기율과 4 주기율은 하초처럼 신경이 열린 상태의 형상이 보인 것이라는 것으로

이 것이 시공에 다라 신경이 나무처럼 보이기도 신경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무는 씨인 점에서 나와야 하는데

이 씨가 유전적 보전의 형태로서 파장이 똬리를 튼 형태인 것이니

실제 원소 4 주기율이 되어야 그나마 점인 원소 3 주기율의 내부를 깨면 다시 나오는

파장성의 접이를 말하는 것이다

즉 이렇게 접이로 퍼지는 상이

식물이 떡잎으로 양팔을 버리듯 파돗결과 같을 때

다시 다음 파도 울로 늘어나 나가감이  

그 떡잎에 또 심지가 나 양팔을 벌리듯 사방성으로 퍼짐과 같은 것이다  

그런 떡잎 사이로 또 줄기를 뻗는 것이 대대손손이라는 것이고

또 한 기둥인 선으로 나감과 같다

그럼 동충이 심이란 것이고 꽃이 피기는 나무가 핀다는 것인데

그 하초가 걸을 수 있음에 동물인 것이다

이 것이 동물과 식물의 사계성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씨앗으로서의 과거세냐 미래세냐 에 이도 저도 아니로다  

 

팔괘 즉 팔족이 접혀 사상이 되면 이미 한 씨앗으로 일생이 접혔다는 것으로

미생전 본래면목이라는 것이 되고  

사상이 진생을 기록한 씨았으로 남이 곧

원소 8 족이 접힌 씨앗이 다시 팔괘로 펴는 것이 곧

4ㅏ로 접힌 음이 다시 양으로 폄이 4 로서 8이 됨과 같다는 것이 된다

즉 씨앗으로 접히는 뱡향으로 일생이 늙어간다는 것이니

이는 나무인 식물로 보면 인간의 나이는 자신들잉 펴는 진행과는 반대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다

즉 나무가 기도를 펴는 듯이 열어 기도에 기도가 나오는 형상을 띨 때

인간은 도리어 반대로 접으며 기도하는 형태로 하는 것으로 씨앗으로 향하는 늙음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동충하초의 기밀성이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이 가야할 시공성을 섭리로 잘 표현해 주는 형상이라는 것이다

 

 

수소와 태극성의 이해   

 

우리가 맹물처럼 있을 뿐인 것에 원소성이 왜 성질과 맛이 있는가

이는 원소 6 주기율인 물일 뿐인데  왜 원소성은 띤 것인가 하는 의문인데  

즉 원소 6 주기율 자체는 물일 뿐이라는 전제가 되는 것이다

이 것이 양자물리학적으로 보면 수소 한 알이 물처럼 은하수를 띠면

즉 원소 6 주기율이 물이어도 원소성이 모래알처럼 띤다는 것은 

원자 하나가 수소라 하고 은하수라고 할 때 양자물리적 쿼크나 광자가

모래알처럼 원소적 성질을 띤다는 것과 같다

이는 역에도 해중금처럼 원소를 띤 것이

원소 6 주기율이 바다일 때  즉 주기율 에리어가 바다와 같을 때

그 원소성이 금이라는 성질을 띤다는 것인데

즉 수소족 금속은 매우 연한 묵같은 금속인데

그에 속하여 굳은 형상이 알카리성이라는 묶음이 하괘로 하는 것이고

결국 해중금은 원소 4 족까지는 수소족에 속하여 잠긴 물질이라는 해중금이 되는 것이고

원소 4 족에서 8 족까지는 노중화라는 것으로 이는 타지 않는 내연성이 있는 중성자처럼

성질로 녹지 않는 핼륨족으로 불같은 할로겐 원소를 태우고 있음과 같다는 것이다

이 과정 안에 알카리 산성 양 족 사이가 원소 4 족인 진뇌가 순이 나는데

파도츠럼 일어나는 것이 양 끝 건곤이 빨아들이는 것처럼 하니

진뇌가 일어나 잎새를 피우는 것이 음양이 합한 한글 모음인 ㅡ와 ㅣ가 합한 ㅢ가

배속됨과 같다는 것이 된다    

이는 곧 나무가 하나의 탄소성을 이루는 전신성을 말하는 것으로

나무는 탄소의 전신성으로 울었다는 제목이 적합하다

또한 물도 다 같은 물 맛이어도 그 모양과 고체성으로 성질인 냥 비칠 수 있음이

수소 바다 내의 원소성으로 일어남은 몰라도 주기율인 바다의 원소성으로는

바닷가 조약돌같은 원소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물을 머금은 원소성이라는 의미이다

즉 수화(水火)인 감리(坎離)로 접히는 대칭은 온도의 차이로 형성된 감선(感線)인 것이니

얼음은 원소 6 주기율에서 금속성 알카리로 지칭할 수 있음이 수소쪽으로 하고

녹은 물은 산성 쪽으로 퍼짐을 전제로 임상할 필요는 있다

원소 주기율 상의 얼음성은 실제 금속성으로 나타는 원소 7 주기율이라는 것이다

즉 응결성으로 작아진 중력성의 맛을 내는데 코인 산근의 후각성이 동질성 세포를 갖추어

인식을 한다는 것이 된다

즉 얼음은 7 주기율에서는 원소성의 하나 즉 수소성이 고체화일 수 있지만

실제 후각의 분별성에 각각의 개체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산과 같으니

이온이 두 개인 산소적 파도와 같은 침식화의 잠식보다 못 하지만

그래도 이온이 하나인 산의 돌출성이 있다는 것에서

이온 두 개에 비해 산천의 의구하되 물은 옛물이 아니 듯 비교가 되지만

이는 산이 평지가 될 동안의 세월은 반감기로 따지듯이 그 의구성의 시공 차는 엄청난 것이다

그래도 그 산으로 덮은 나무와 화산의 돌출성은 내재됨이 이온 하나는 된다는 것이다

산이 나무로 역동성을 내미는 것으로 차이를 보일 수 있는 것이 할로겐으로서

이는 나무와 같은 요점적이어서 강하게 보이는 것도 있고

화산과 같은 분출성은 활성적으로 늘 있다는 것이 된다

다만 전반적으로 큰 것은 바다의 파도와는 이온성이 차이가 남과 같다

6 주기율이면 바다와 같은 주기율성 궤도의 용량이 되는 것이다

다만 그 것이 얼음인 형태성의 고체적 상이 알카리족 만으로 볼 수 있는 맹뭉일 수 있는가 이고

아니면 소금성만으로 원소 6 주기율로 하는 것인가 하는 것도 있다

이는 화학적으로 염화로 끌어 붙인 셩격이 물과 관계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즉 얼음의 고체성과 짠 맛의 고체성이

 좀 더 양자 물리학 시공과 수소의 차이에서 메카니즘이 있는가 하는 과제는 있다

물의 고체성으로 닿는 자극성의 원소성이 금속성으로 매김되어 6주기율로 드러낼 수 있는가와

그냥 맹물성으로 우주가 수소의 바다가 된 것이라면

이 것이 좀 더 확대된 메카니즘니 원소 6 주기율로서 올려진 방편적 수소라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즉 부처님 말씀이 곧 물상이라면

이는 방편적이어도 실제성과 물질성으로 띨 수 있는 것

즉 만물이 방편적이어도 물상으로로 드러나서 사라질 수 있는 것인데

부처님이야 방편이라고 말씀하셔도 우리는 방편으로 알아 듣기 전에

사물을 언어로 다 알아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린 사물을 다 이해하려는 부단한 노력도 없으면서 부처님의 방편을 이해 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고 넌센스이다

닿고 느끼게 해 주어도 등잔 및이 어둡 듯이 먼 곳만 쫓아간다

이렇게 원소 주기율에 따라

맹물인 것의 얼음과 물의 차이만으로 성질이 되는 자극성이 있다면

그로 원소성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원소성으로 매김될 수 있는 원소 6 주기율의 요소르 어떻게 정립할 것이냐는 것인데

이 정도면 충분이 연구과제가 되는 것이다

실제 원소 6 주기율적 맹물에 그 원소 알맹이로서의 성격을 내라는 것은

이는 좀 더 침잠된  알맹이 성인 원소 7 주기율성으로는 드러나는 정체성이

희석성에도 있다는 잠재성을 말하는 것이다

즉 족으로 연결된 정체성은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물에 비해 알맹이성은 원소 7 주기율에 해당이 되는 것인데

그 알맹이성이 물에 녹아 있으나 다 녹은 상태가 아닌 개체성으로

원소 6 주기율의 파장성 울이라고 봐야 하는 것인데

이는 동물이나 식뮬은 땅에서 뿌리를 박든가 딛고 일어나니 원소 7 주기율적 개체성을 볼 수 있으나

은하가 은하로서의 바다라는 것은 보이지 않으니

은하 내의 원소는 못 보듯이 은하 자체의 시공성 육근(六根)을 가진다면

우리가 느끼는 인식 외의 인식으로 본다는 것이 된다

이 것이 양자 물리의 수소를 우주로 하고 은하수로 할 수 있음과 같고

수성의 궤도만으로 그 밖의 혹성의 궤도를 통털어 수성으로 총칭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제로성 설정

 

인간의 체온이 36.5 도일 때

0 도 씨 이하로 금속성을 말하는 기점이 있다면

이는 그 충돌성 접촉으로 성질을 매김하는 것은 어름의 접촉성 때문이지

물 자체의 성질은 아니라는 것이 된다

즉 그 모양성이지 물 자체가 아니라는 것에서

무든 원소성이 수소를 물처럼 깐 것에서

즉 수소인 바다인 것에서 뭉쳐져 이룬 물질이라는 것이니

결국 사해중수 가음진이라는 장엄한 싯구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시라는 자의는 절 사자가 들어가는 것이다

즉 내 안목이 거시적이지 않고서야

늘 남의 말 앵무새요 추상적 관념으로먄 남에게 강요를 하다시피는 것이다

즉 모든 물지에 수소아 같다면야 부딪힐  있이 있는가?

즉 모든 원소에 물로 다 스며 들어 수평을 이룬 고요한 것인데

이만한 평화가 있더란 말인가

즉 이는 다이아돈드가 단단함도 그 모양의 집적도에 해당되는 것이지

탄소의 바다가 이룬 빙산과 같다는 것이 된다

즉 원소 6 주기율 상으로 얼음이 얼면

이는 인간 체온을 기준으로한 물로서 알카리성으로 어는 것과 같다면

이는 곧 그 원소적 물질이 앜라리성이 아니라 그렇게 고체가 되어사는 반응이 알카리서잉라는 것이다

즉 어는 작용이 알카리라는 것이지 그 메카니즘에 모래알과 같은 성질이 알카리라고 해서

주기율적으로 알카리성은 느길 수 없음과 같다는 것이다  

 

 

모음이 불어 넣는 힘의 형태 입 모양의 부호학적 에너지

 

크게 벌린 아와 밀어 줄 줄 아는 우라는 것으로 언어의 부호화와

마치 필름이 혀라고 하면

혀로 감지하고 저장하는 부호성에 맞춘 것이 되면

이 것은 우리가 한글 주기율로 맞추어 원소성과 돌질성으로 맞추면

한글 주기율 로서 맞춘 메카니즘이 곧 입으로 들이켜도 상대의 말하나고져 하는

뜻을 대화로서 인지하듯

즉 필름이 필음으로 옮기듯 인지가 자연적으로 전해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즉 아침이 크게 열리는 ㅏ자 모음은

나뭇가지와 평행선이 됨으로서 동질성이 되는 것으로 동충의 날개가 되는 것이고

그러면 태양은 대기권에 햇 무리가 나도록  불어 넣으려는 우자가 되고

그로서 하초가 가래떡처럼 자라는 하초가 되는 것이다

달은 달무리로 당기니 ㅗ자가 되면 실제 동충이 되는 것인데  

ㅓ형은 자꾸 닫으려 하는 입 모양새니 어머니가 된다

ㅏ形는 될 수 있는 한 크게 심호흡을 하고 힘차게 달리려는 입 모양의 ㅏ가 되는 것이다

이는 곧 나무 한 그루의 키만큼 상전에 해처럼 혀를 보일 듯이 크게 열면

그 나무 밖에서 벌에게 꿀을 주려고 꽃술을 내밂이 ㅜ형의 자인 것이고

이 것이 도로 돌아서 줌과 같은 내리 방향인 도토리와 같고

모든 열매가 땅으로 향함과 같다 할 것이다

그러니 오는 자정의 틈으로 빨아들임인데 이를 인간의 전생적 업을

유전자인 냥 빨아들여 어제의 생과 내일의 생 중간에 양수를 부은 자 시에

정확하게 자전의 틈으로 듦이 생명체의 일채라는 것이 있고

또한 과거형이면 이미 잉태된 자시에 자정읠 양분으로 턴생을 어제와 내일로 한다는 것도 된다

이 것은 아날로그식 탄생을 말하는 시간적 절차를 따르는 것이고

디지털 시계처럼 앞뒤가 없는 도시적 공간성으로 중심을 이뤄 나가는 것

즉 마치 구궁이 원심적 테두리가 아니라

한 원통성 나미테를 정면으로 보는 듯이 중궁의 숫자만이 나타날 수 있는 구심성으로 갖는 것이 있다  

 

 

딸과 땅

 

語形이라는 것으로 보면

모든 어머니의 딸은 흐르는 물이지만

머물면 땅인 모태가 되는 것이라

즉 우리가 유수를 매우 유연함 자체로 인위적으로 보자면

곧 모든 어머니의 딸은 유수와 같이 흐름이라

땅이 마른 자리깔아 딸이 그 위에 인생 대하길을 격게 함이요

또한 안으로 스미고 스며도 안스럽도록 져며든다 또한

다시 우물물처럼 나오는 땅이 모음인 ㅜ자로 우물인

맑고 깨끗한 달 모래밭에서의 탄생이라  

 

 

납음오행과 주기율적 사물성

 

닿지 않아 그 성질을 자체적으로만 느끼는 핼륨의 외적 무반응성이라고 봐야 함이다

마치 중성자 두 개의 무반응인 냥 그로 우린 의식의 연결이 두절된

즉 신과의 의식적 공유가 두절된 듯이

즉 나무가 크는 역동성은 있어도 우리가 긷어도 머둔 듯이 알 듯

수소처럼 동물처럼 닿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뿌리를 내려 다 삼켜도 남은

금속성과 같음이 나무가 흙인 원소 8 족까지 가도

결국 도이어 돌아 나옴이 다음 주기율로 수소족 가까운 금속성으로 한다는 것이 된다

즉 외괘도 연하면서 경질이고 외괘도 연하면서 경질인데

그래서 잠용이니 해중금이니 하는 것인데 이는 초효가 연한 금속성으로 말하는 것이고

밭에 있는 용이니 이 것이 핼륨성이니 소성괘로는 2 효에 해당이 되고 

삼효는 낡아 먼지가 나니 종일 빛가루에 마르는 형상이고

즉 노중화가 밭에 있는 용이 뒬 수 있음은 밭은 무논과 다른 형태인 것이고

그래도 농사군 정도로 세상과 등지고 살아도 때를 만나면 영웅일 그릇은 되는 군자라는 것이고

대림목이은 숲치니 이는 원소성이 그런 숲의 형태를 띤 것이고

노방토는 곧 기계며는 선반의 깍은 부산물이든다 용접의 똥에 해당하는 것으로

용광로의 타다남은 부산물과 같다

 

 

거지도 문화다

 

거지도 문화다

욕 문화라고깔끔 떠는 눈매보다  

옷이 빳빳한 것조차 칼날과 같음보다  

실제 거지 문화가 품성의 잣대가 되는 것이다

우린 있고 없어야 한다는 몰아붙이지 편만들기보다

우린 어떻게 수용하고 감내하는가가 은연 중에 드러날 수 었는 존엄성이 중요한 것이다

요즘도 깔끔떨기가 예전과 다를 바 없지만

남의 고귀한 영혼까지 팔아야 하는 정신까지 능멸하는 것으로

그래도 애전엔 빠져나갈 구멍이라도 연민의 선이 라도 있는 편이 었는데

인스턴트에 조급증만 는 순간 감정에만 키우치는 것에

순발력과 기발성의 가치인 듯이 무슨 위트성 순발력마냥  도끼 눈 뿐이랴?

입은 더 날카로운 것이 그나마 무관심인 휴개폰이

목 줄인 냥 채워 놓은 듯이 해주는

위안인 것인지 몰기인지 자의인지 타의인지 이미 의중을 떠난 의중성같은

얼굴조차 마주 않는 것에는

왜 그리 바쁜 첩경이 있는지 빠져나갈 구멍은 거기 뿐인 듯 마취성과 같다   

무관심 속에서 반응도 없는 듯이 하면서 욕발만 느는 사회로서야

빠져 나갈 구멍이라는 게  

그나마 인간성 잣대라는 것이 엄동 지하철 계단에서 손 내미는 데 겨우 있다

굳이 추상성이길 바라는 지경이니

굳이 추상적길 바랬으면 누군들 그렇게 희생성의 필요 가치로 살아왔겠는가  

없어져야 한다 없어져야 한다 욕이나 해대면

제 눈살로 쌀쌀맞은 것 도리어 눈살이 되어 돌아온 거울보기 같은 것이지

 

 

자유와 억제성에서 드러나는 생체의 물리성

 

토끼는 성질이 급한데

앞 다리가 짧음에도 급히 오르려 뒷 다리는 길다

이 욕구가 날개로 돋아 이상의 날개처럼 확 펴버리면

도리어 학처럼 느긋해질 수 있고

말처럼 히히힝 웃음에 겨운듯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본래 간합이 완전히 둔갑으로 화하는 곳이 용인데

이는 카멜레온의 피부성처럼 들였다 내었다 하는 색이다

즈 색계가 카멜레온 피부성같은 곳이 용의 피부성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룡 황룡이 되는 것인데

이는 피부만이 화하는 성질이 모든 생명체에 있는 것이기도 하고

세포마다 다 깃글면 속까지 같은 색이 되는 것이도 용의 간합처라고 한다

용은 날개와 다리가 있다

그래서 좁 신나는 것이면 말처럼 히히힝 소리만 낼 수 있음이다

그런데 다리가 안 난 뱀은 결국 독은 품으니 독이  입에 있음이고

남을 저주한 댓가의 탄생은 결국 자신이 뱀으로 되받는다

이 런데 이 뱀은 이무고 도를 달 닦으면 용이 되는 것이고

용이 뱀 뒤에 있는 것은 덜어져도 용이라는 것이고

떨어져도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것과 같다

거기서 안하무인일 것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이 아니면 추락을 하는 것이라 봐야 하는데

다시 토끼로 태어나 세일즈맨인 달려라 토끼가 되든가

그로 더 눌리면 지네와 같다는 것이 된다 

왜 지네 가죽이 두꺼운가 그야 뱀까지 갖다 눌린 형상이다

이 것이 바위 틈에서 나오는 지네발이고 DNA의 한 마디 형식의 레일에

양 쪽의 다리가 침목처럼 있는 것인데

다면 인으로 붙었다 떠어졌다하는 자리로 마디로 한 함축성과 같다는 것이다

이 것도 동충성으로 빠지면 하초성으로 난다는 것이 식물이고 풀이고 나무인 것이다

이를 원소 주기율로서 보면 날개인 것이 주기율로서 제압이 되기 때문에

한 주기율의 지층으로 나와야 하는 것에서 나무가 흙으로 돋우어 서는 것인데

이는 전 주기율의 날개인 것이

이 주기율에 와서는 식물의 씨앗으로 나무릐 잎처럼 날개가 된 것이다

즉 신이 선택을 하게 한다면

너는 이 전의 주기율에 날개로 살 것이냐

이 주기울의 나무로 살 것이냐 하는 것과 같은데 다만 그 업의 성격이나 량은 같다는 것이 된다

이 것이 곧 잎새애도 야차가 든다는 말이 된다

이로 봐 단순히 동충하초가 생물학이기 전에

얼마나 정신계와 관계가 되며

물리학적으로 어떤 우주성으로 인간의 영생과 관계가 깊은가 하는 철학성으로

총괄성으로 접근을 해야 동양학적 미덕이요 학문이 되는 되는 것이다

즉 동충하초에는 동적 선과 정적 선이 있는데 이도 한 출 벗기면 정이 동이고 동이 정이 된다

이러한 명료성은 외과적은 성상을 보여야 드러나는 양극적 대위의 리듬성보다 

그 자체가 하나인 것으로 내과와 외과가 동시적 임상성으로 다가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심리학은 정신성으로 다루는 것이지만 물지럭 화학성으로 귀결이 되는 표준형을 사회성으로 하고

생의 낙에 맞추는 것이라면 이는 양극의 합리성이고 중화성이

두 선이 함깨 항하는 방향성과는 다르다는 데 있다

 

 

동충하초성 꿈 해석

 

그냥 유머스럽게 여길 삶의 흔적인 냥 남은 것이란 것이
경혐의 소치로 번적이는 영감성인지 모르지만
어느 한 분이 집 밖에 하수구가 막혀 하수를 쳤는데
그 쓰레기를 쌓은 곳이
꿈에서는 뱀들이 동강이 나 무더기로 쌓여 있더란다
이는 길흉을 따지기 전에 매우 불쾌한 것인데
또한 주변 사람들과 말썽이 잦은 중에 꾼 것이라
왠지 나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 웃고 말았는데   
난 속으로 다 반말급이 뒤가 없는 듯이 잘라도
뒤가 있는 몸인 것이 반말로 다 잘린 듯이
두 동강이 다 죽은 듯이 널부려져 있다고 혼자 웃고 말았는데
즉 언어란 꼬리가 길면서 향이 난 듯 날개가 있어냐 진정함 몸인데
반말로 뭐 씹은 듯이 하는 버르장머리들이
머리 따로 몸 따로의 욕구이듯
죽 먹 듯이 하면서 남에 흠보는 꾼들이 많으니

앞 말 길게 한 몸 뒷말 반말로 짤랐으니  
당현히 꿈에 그런 것도 보이려니 하는 것이다
꼬리 자른 반말이 긴 겸손의 언어를 반으로 잘랐으니
단연히 그럼 꿈이라고 해석을 하면 넌센스 심리학인가?

요즘은 어떤 종교든

말씀 자체가 물질성으로 된 것이 이 만물이라는 것인데

이는 곧 말씀이 물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언어가 기호성으로 센스에 닿아 나름의 조식으로 뭉쳐지면

물질과 센스는 동질적 부호를 양산하게 되는데 

결국 언어만으로 물질성까지 느끼게 하고 투명하게 맑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이승은 눈은 눈으로 인지하는 상인 것으로 돌아서면 눈 밖이라 보이지 않지만

이 것이 피부의 세포성으로 기억되어 인지하는 것이면

돌아서든 안 돌아서든 인지를 한다는 것이다

즉 피부같은 부호성이 영상 녹화처럼 심을 수 있으면

눈이 아니어도 불 수 있는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즉 눈은 눈의 영역이듯 육근이 쟉용을 하지만

六根을 하나로 하는 혀만 있다면

빛이면 빛의 맛으로 소리면 소리의 맛으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인간을 능가하는 기걔

즉 사이보스를 부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안간 자체가 사이보그일 수 이는 섭리의 잠재에

인간의 천재성도 놀랄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정신인 말

즉 수소가 정신의 기점이라고 할 때

원소 7 주기율적 피막의 감각이 아니라

즉 물질성 감각이 아니라

전기가 원소 4 주기율이면

말 즉 소리만인 원소 5 주기율만으로

그소리의 진동성 메아리로 엉기는, 

즉  4 와 5가 메아리성인 대칭으로 엉기면 이를 물질화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원소 7 주기율적 개체성의 반도체와 같은 품성으로 안고 분별인 사이

원소 4 주기율적 시공에서는 말씀이 언어인 입김과 같다면

바로 서리성으로 엉길 때 물상으로 이루어 인식하게 허공성으로 굳힌 것에

같은 센스로 혀만으로 인지를 한다는 것이 된다

 

 

원동기 크기의 머리 자기장과 線的 신경

 

우리가 공전성이든 자전성이든

4 진뇌를 회전체에서 전달받아 잎새적 전기를 띤 것이 손풍이라고 할 때

이를 전기를 띤 외곽성 자석이라고 할 때

여기에는 두 개의 전선이 병행해 쌍으로 생노병사로 사상을 채우며 가지만

실제 전기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원소가 팔족으로 편 그대로 간다는 것이다

즉 전선이 두 선으로 가는 행렬로 우리는 늙는데

이는 사상으로 접힌 행렬이 전봇대라는 것이면 DNA도 전봇대 행렬과 같다는 것이 된다

우리가 4 진뇌와 5 손풍을 동충으로 할 때

이 것이 풀의 떡잎으로 할 활개라고 할 때

양 날개가 접히듯 씨앗이 되어 펴면 나무처럼 울창하게 뻗으면 하초와 같다

이 것이 곧

이미 유전적인 염색체로 이미 싸앗에 담겨진 채로

그 기억성의 번복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동충이 한 생의 역사로 죽어 나무로 신경이 퍼진 듯이 하면

이 나무의 모든 꽃인 별이 우처럼 늘려도 한 그류의 나무에 위치성으로 인지르를 하는 것이

핼륨적 공간성의 인지라는 것이고 주기율로는 잡히는 않는 무중력성의 공간이

원소 8 주기율이라고 할 때 그 것이 보이 않서 그렇디

결국 원소 8 주기율의 궤도를 알면 우주 전체가 한 묶음인 위치성이라는 것이다

즉 동충이 나무를 전체로 알고 수소로 돌아갔을 때

그 수소성을 물로 배양해 나무의 신경을 따라 물줄기처럼 오르면

우리가 보는 우주와 같이 커 보이는 것이라는 것이 된다 

양 끝이 포개지는 것이 건곤의 합인 것인데 이로 접히는 것과 같고

다시 펴면 4와 5의 사이에서 고갱이 굴이 되어 일어나 떡잎으로 커면

다시 쌍으로 우주가 열리는 현상과 같은 것에서

우리가 우주를 향해서 순리적으로 흐름으로서 늙어가는 것이 된다  

 

 

 

태극성(太極性)과 양이(兩二)

 

주기율과 족

1족

2족

3족

4족

5족

6족

7족

8족

 

주기율

 

 

 

 

 

위와 같이 간결하고서도 동충하초를 한글 모음으로 배분하는 부호성이 되는데

이는 1족과 8 족이 乾坤으로 합한 蟲으로서 죽으면

다시 4족인 고갱이로 구심이 되어 몰려 피어남이 하초라는 것이다

그러니 동충과 하초가 함께 몰려 있는 것이도 한데

이는 수소족과 해륨족이 하나처럼 보일 기반성이라는 것이는 것으로

시작과 끝은 같다는 의미도 되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음과 같음도 되는 것이다    

즉 수소족인 수가 눈이 되고 핼륨족이 과살이 되는데

이는 곧 세포가 핼륨이라면 수소는 눈싸래기와 같음이다

그러니까

원소 2 주기율로 육근이 배분이 되어 족으로 형성이 되면

우리는 그 팔족의 감각을 구비하는 것이지만

실제 그 폭은 아코디언을 닫은 듯

수소와 핼륨만으로 즉 그 이진법만으로서의 피부막으로

육근을 하나로 다 통일성으로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즉 곤인 핼륨은 모래인 것인 시멘트라면

방수처럼 미끈하게 한 아교성인 피부가 乾坤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는 뼈의 석회질성과는 다른 면이 있다

즉 새는 뼈를 비우고 채우고 함이 석화성과도 같다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 것만으로 六根을 하나로 접을 수 있음이라는 것이다

 

본래는 건곤인 1 수소와 8 핼륨의 합하여 한 막을 형성하는 구성이

피부가 핼륨성이라면 아교질인 맥기가 수소성인 것이 되어 반도체성을

선으로 유지하는 제어가 되는 것이다

즉 건곤이 양 사이즈로 할 막이 되고 필름성으로 유지하는데 있어 액체로서

고여서 일어나는 것이 그 사이의 족이 되는 것이다

즉 원소 1 족은 막에 불과한 세포성과 같은데

이미 그 막의 두께로 원소 족이 찬 것인 2 주기율로 하는 것인데

이미 쌍인 태택인 됨에 이는 괘가 상하괘로 하나인 것이 된다

허나 이 것이 껍질까지 싸 3 주기율인 것이본궁괘이듯

이는 원소 2 주기율의 쌍과 1 주기율이 싼 피막성으로 원소 3 주기율인 기가 되는 것이다

목은 거기에 발 담근 원소 4 주기율인 것인데

원소 3 주기율까지 형체인 것인데 비해 원소 4 주기율부터 동선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체를 4 진뢰로 부터 하는 것이다

또한 흥미 있는 것은 천록 안손 법에서는

여자는 곤궁에서 출발을 하는데 이는 원소 8 족에서 출발을 하는 것이고

남자는 진궁에서 출발을 하니 이는 4 족에서 출발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자세히 보면 남자는 구심에서 원십으로 나가는 중력성이고

여자는 원심에서 자전력을 가진 중력성이라는 깃이 된다

그러니 성질이 없는 듯이 반응도 없는 데다 상대성도 없는 것이면서

스스로의 자전력으로 품는다는 것이된다

결국 그 기록성의 달이 낳은 것이 인간이란 것이다

그러니 원소 4 주기율이 발을 담구고 일어서 보니

팔로 균형을 잡으니 원소 5 주기율인 바람의 요소를 만든 것인데

이는 신경의 보추라기 정도의 강도라고 봐야함과 같다

우리가 식물이 동물보다 상대적으로 열등하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진뇌에서 접히는 것은 소리의 진동성으로 인지를 하는 귀라는 것인데

그럼 소리가 진동으로 접히는 메아리 부분을 듣는다는 것이 원소 6 주기율인 것인다

그러니 바림이 물결을 만듦과 같고 물결성이 곧 청력이라는 것이 된다

즉 귀에 진동성은 공기에서 진동으로 바람이 인 것을

귀는 그 바람의 차동으로서 인지를 하는 물과 같이 병행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인식이 같은 듯이 한다는 것이다

그럼 그 파도라 지나면 물내음을 느끼 듯

육감젇으로 인지를 하는 느낌이 말로는 형언할 수 없게 됨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충은 자석 사이를 몸으로 끼고 자정으로 중심선으로 눈금과 같이 하면

양 날개는 어제와 오늘의 사이로

어제는 청용이요 내 일은 백호를 끼고 하는 지리성과 같다

이로서 ㅣ로 자정의 눈금인 모음으로 하면

아침은 입을 크게 별려 우리의 자리와 동등선인 보름달의 기윤을 내는 것이고

이는 낯달이 태양과 더불어 ㅜ로 우유와 자리를 용기를 줌과도 같다

 

 

삼세제불 실전조죄 3 

 

누군 나더러 내가 바라지 않아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하는데

그 말에 힘이 실라는 것은 삼세제불 실전조죄요

역대조사 실전조죄를 보면 안다

나도 극한적으로 선택에 몰려 이 옷을 벗고져 애써 노력을 하면서 깨닫는 것이

죽을 지경이어도 결국 내가 선택해 왔다면 저승에 갔어도 참 민망한 일이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즉 누가 강요했느냐고 되물으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럴려면 멸살잡이를 하더라도 만든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더러운 인생사라 할 것인가?

대상이 었어야 응정을 하든 마마 보이가 되든 반항을 하든 할 것이 아닌가

즉 꿀물이라도 떨어뜨리면  달아 붙는 것이야 누굴 탓할 수 있으리랴

그런데 깨달아 살려달라고 매달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간이 고에 시달리면

자연 전생이 지은 업이라고 치부하고 용하다는 점이나 좀 맞추면

일생 먹고 부릴 인연도 엮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데

다 그 상피성에 속고 속아 주고 이해하고 동정하며 어울리다 가면 되는 듯이 하는 것으로

내 업의 코스는 어긋남이 없는 것인데 하는 것으로

만일 내가 한 때 전생에 명의였다고 가장하자 그런데 그 공덕을 아는 자가 많다고 하자

그런데 만일에 다른 시공에 까지 따라와 살려 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님 과거세 미래세도 없이 찾아와 통곡을 하면 어찌 할 것인가

결국 아라한이야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복을 누리듯이 해도

부처나 조사는 태어나면 실전조죄라는 세간 법이 허물같이 에워싸고 매달리면 어쩔 것이냐 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그런 억지 논리를 펴는가 하지만

생각해 보라 세간 법이든 불법이든

인간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굳이 죄목이 있겠는가?

첫째 고에서 탈출하려 할 이유도 없거니와 굳이 사정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도 죄목에 걸리는 허물된 세샹으로 와야하는데 그 각오가 대단하지 않으면 오겠는가?

즉 과거의 업에 걸린 지옥이라고 해도 최소한 내생에까찌 물리는 인간세라면

보통의 각오로는 왕의 자손이 아니면 힘들지 않는가 하는 것이 있다

또한 죄목을 씌울 사회성의 두께와 같은 장애를 져야 함께 탈출하는 것에

거의 구제도 못하고 중도에 갇혀 일생 살다가 말 수 있다는 것이어도

무슨 누진세라도 받을 듯이 쪼아 붙이면 어쩔 것이며

안 올 재간이 있는가 하는 것도 있다

즉 내가 떨어드리지 않았으면 굳이 매달릴 일 없는 것을 떨어뜨렸기에 일을 만들었으니

그 것은 곧 맹목적인 기복일 수 있지만

아닌 기도가 더 많은 것으로서 외면하고 갈 수 없는 것으니

어느 지인은 왜 외면을 못 하는가 라며 늘 안타깝다

 

 

침묵의 변이 마네킹같음에도

 

언어는 심리학적으로 사회성을 가랑비에 옷 젓듯이 하는 사회심리학 중에 고도의 심리성의 포인트가 많지만

그 혼재성과 우회성에 거의 잠기는 상이라고 봐야함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그리는 태극기도 못 그리고 뜻을 몰라도 어려운 것이라 치부하고 말아도
남의 나라 국기는 간결해서 그런지 잘도 그리는 이 나라가 무슨 민족주의니 하겠어요  

다만 우리가 늘 보는 태극의 우주를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것은 있지요  
시대의 인연을 시대 도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래도 인연을 소중히 해야지요
허나 늘 속을 깨닫기 보도 겉이나 쫓아 얼굴까지 정체성이 없는
애나 어른이나 합창으로 자작품 만들기 여념이 없는데 무슨 德性을 바라겠어요
그래도 조각 조각 작게 짓는 복이나마 잘 챙기라고 복! 복! 하고 말 일이지요
그져 심각하면 심각하다고,

의식은 깨어 있는 듯이 표시나 전봇대 오줌 갈기듯 냄새 좀 풍겨보다 마는 약싹빠는 엉큼들이겠지요
몇 마디 하고는 남의 나라 토픽이듯 여기고 말죠

무슨 약보다 세월의 약발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백성이니 말이죠
그럼요 그 덕에 시야을 넓혔죠

희석식을 독을 뺀 듯이 독한 도수의 술을 마신 듯이 괜히 속쓰힌 아침이 탓하죠

낀 아침은 탓하지 않죠  

그리고 태양은 중천일 우린 글로벌 인간이죠

그런데 난 우주 전쟁이 아니면 날 소인배가 아니니 끼워넣어 군에 보내지 마시오?
그런데 한 술 더 떠서 난 天軍이 아니면 인간 따위가 날 감히 의무화 시켜?
이는 요상하네요

  

 

머리와 몸으로의 양 갈래적 퍼짐성  목

 

우리가 머리를 동충으로 할 것이냐

몸을 동충으로 할 것이냐는 그 동질성이 겹치기 때문인데

즉 머리가 H2O이고 몸 상이 CO2 라면

이는 탄소를 뱉고 질소성을 바탕으로 단백질을 엮음과 같다

즉 이는 탄소는 뿌리가 땅에 박혀 탄소로 일군 토성체로 굽기며 일어난 것과 같은 나무인 것이고

이를 좀더 기체성의 무게를 잡아 걸을 수 있는 몸으로 함이 질소성 단백질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속도성의 전기와 같은 내제성이 근육과 간을 진목리고 하는데

글리코겐이 거기에 해당이 되니 모든 화학적 요소 중에 제일 빠른 에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몸은 머리인 동충성과 몸인 하초성이 갑이 붙은 것으로

H2O에 O는 수소 쪽으로 두 가지가 기울었고 CO2는 C가 O 쪽으로 떡잎을 낸 것과 같다

이렇듯 식물성과 동물성이 X字 形으로 14 쌍 28宿을 담은 것이  부리와 가지로서

양쪽으로 뻗어나감이 동충과 하초로서 수소족와 산소족으로 향하고 있는다는 것이

식물성과 동물성이 공유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우주 생체학

 

우리가 공전 상으로

심이 乾이고 자기장성이라면

이는 자기력이 전기성 木을 金인 핵심이 金剋木으로 제어를 함에

자기장성에 든 것으로

이는 곧 구리선이 극을 하면 전기는 통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는 선 밖으로 못 나가게 제어하는 성격에 두어야 함이 마땅하다

즉 중력의 수제비가 독립적이면서 다시 수소인 알카리 족이고면   

그로 자기장성이 되는 데 비해 호시탐탐 위성 궤도로서

도망갈  방산성은 상대적으로 산(散)이 산(酸)으로서의 木이 됨이다

즉 木이 섬유성이면 파장성의 슬로우 비디오면

이를 공전이든 자전이든 똬리를 틀어 죽어도 같은 개체성으로서 흩어지는 종말과 같음이

원자에는 양자물리와 같은 가루인 것이다  

그럼 이 공전에 달이 지구 자기에 세포성이 되면

또한 달도 자전력으로 감은 자아라는 것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자전의 중심은 곧 세포의 눈과 같다는 순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구를 乾인 줌심으로 자기장이라 하면  

달은 坤이면서 중력권의 변두리인 것으로  핼륨과 같은 끝자리인데

다만 지구의 자전 굴레도 乾인 본괘궁(본래 대성괘를 이루는 팔궁은 궁으로서 여덞 개의 상하괘로 짝으로 한다)이 

중력성과 자기장으로 타괘와 짝을 이루는데 이는 달의 자전적 괘와 합하여 지구 지기장의 본괘궁으로 함과 같다 

즉  건궁에는 궁궐과 같으니 왕도 짝으로 사는 것이듯

천풍구, 천산둔, 천지비, 풍지관, 산지박, 중천건, 화지진, 화천대유까지로 함이다

즉 이로서 두 개씩 짝으로서 다함이다

이 乾宮 여덟,개에  半은 乾天이 짝으로 들어가니 이를 本宮卦라고 하는 것이다

前字 세 개와 끝머리 화전대유 귀혼괘를 말함이다

즉 천풍구 천산둔 천지비 화천대유는 天인 金卦가 나타나니

이를 공전의 자기장성에 해당이 되고 중력성의 노출에 해당이 되면

이 天에 짝을 이룬 風이나 山이나 地나 火나 다 그 것에 응의 폭인  원심력의 궤도로서

또 나름의 얼레성을 갖고 중력을 갖은 것으로 짝을 이룸과 같다는 것이다        

달의 지구를 감은 자전의 굴레도 본괘궁으로서 팔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생체학적으로 식물성으로 보면

달도 세포성으로 건곤을 궤도성으로 갖고 피부막으로 있고

지구는 온 몸으로 세포 하나의 기본 유전자처럼 물로 채우 듯이 하며

달같은 세포성에 스며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심의 자기장에  기본적으로 수소를 깔아놓은 것으로 평균성으로 한다면

그 평균성 내에 다시 일어나는 윤곽이 수소로서의 평균율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수소 내의 기록성이 수소의 평균률에서 나옸을 때는 차이가 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껍질성으로 달 궤도와 같은 한글의 모음이 되는 것이고

지구의 자기장성은 자음의 성분을 띤다는 것이 된다

그러니 곧 밤 한 송이를 볼 때 원소주기율의 산성 쪽이면 밤송이 가시가 되고

알카리 쪽이면 밤톨인 알맹이라는 것이 된다

 

 

우리가 신경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신경 자체의 논리면   

 

우리가 신경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신경 자체의 논리면

즉 신경이 탄소에까지 잠기면 이는 곧 나무가 땅에 뿌리를 박은 형상이고

인간은 그 박은 나무로서 독립을 하는 산 酸)이다 보니

산소도 뿌리를 박아야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탄소에 박으면 나무처럼 박히는 것이니

그래도 산화가 안 되고 연소성이 없는 질소는 기체가 있어

땅이 아닌 구름안개로서 결정체를 낸 것이

질소성 단백질이라는 것을 만들어 단백질에 뿌리를 박게 함으로서 이동식은 된 것인데

이 합이 우리 한 몸의 주체가 되는 것으로 이 몸이 물질이 되는데

이에 성리(性理)는 수 조 개의 세포가 위치성으로 일구어 낸 하나의 인식이 이 우주를 보는 것이니

그 인식의 주체는 수 조 개의 세포라는 것이다  

결국 세포의 커뮤니케이션이 하나의 위치성으로 조합함으로서 이루는 인식이 되니  

이 우주를 그렇게 보이도록 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외곽의 둘레가 線이어도 두 線이 함게 가는 乾坤이 이미 붙은 듯이 보이는 것이고

또한 구심과 원심 관계로 하나로 해도 건곤이 하나인 것으로 성립이 된다는 것이다

즉 족은 달라도 주기율로도 건곤 짝을 이루어 독립체이면 물리는 것이고

주기율은 달라도 족은 같아 건곤이 쌍으로 가니 이 것도 DNA의  병행선과 같음이다

그래서 피부도 피부만의 세포성으로 건곤을 함깨 한다는 것이다

즉 土가 단백질이면 이는 극소점에 해당될 때

우리 몸의 전체성을 말하는 은하수적 물이 몸을 채운 것이 공전의 허리 띠로 두른 몸인 것이고

몸으로 하면 허리로 채울 입이 되는 것이고 

머리로는 마치 입술이 허공을 조아 허리띠 마냥 조으는 것이

곧 동물과 식물이 음양관계로 호환적 공즉 색이요 색즉 공이라는 것이니

空 卽 實利요 實 卽 空으로 서로 흡입을 하는 것이니

이는 곧 탄소인 실을 삼켜  허를 채우는 산소인 것이나

또한 나무가 탄소인 것도 산소를 뱉으면서

자신은 산소적 속발성인데 탄소성의 억제로 나무처럼 슬로우 비디오적인

전기의 상징이 전와 상관이 없는 듯이 크는 것이고

인간은 탄소인 중성자성으로 자각하는 자아인 것인데

산소로 활성화함으로서 이산화탄소라고 대외적 사회성의 합이 차는 것인데

그 매연성을 나무가 탄소를 들임으로서 푼다는 듯과 같다  

산소에 탄소를 실음으로서 알카리성인 地盤의 탄소를  산성인 天盤으로 빼냄과 같고

그럼 나무가 탄소에 박야 살아야 하는 것에

나무가 뿌리로 박히지 않아도 공기에 얹히듯 뗄 수 있다는 패턴이 있다는 것인데 

이 것이 안개같은 천반성인 질소에의 의지가 되어 되어 

뿌리가 발이 되어 바람에 질손가 하며 발을 뗌과 같다

이는 곧 산소가 질소로서만 산다면

굳이 탄소의 나이에 같이 붙은 듯 나자 마자 한 살의 개념이 아니지만

이산화탄소이니 결국 탄소성 나이를 채우는 탄소성 나이의 개념에 맞춘 것이다

즉 자전이 독립적이어도 공전의 충만인 해분의 진행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나자 마자 한 살은 공전성에 얹힌 것을 말하는 것이고

한 해가 지나야 한 살인 것은 갤럭시에 태양이 자전적으로 도는 것이 설탕이라면

그 거푸성 솜사탕이 혹성의 물리로 이룬 의식이 인간계라는 것이다

이런 차이를 보임으로서

시공의 시간 간격이 우리의 의식적 물질감으로도 차고 나갈 수 있는 막을 느끼는 연쇄을 의미한다

즉 우리의 세포성 자체가 한 공전이 솜사탕 내듯 틀에 돌 때

그 솜 뭉치가 덩어리로 다시 자전됨으로 으로 하여 여러 궁이 배분이 되는데

이런 시스팀을 안 것이 토정 이지함 선생님의 월영도에 잘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물리학적이고 상수학적으로 그 커뮤니케이션을 안다면

신의 배분이 인문성을 물리적으로 어떻게 맞춤을 안다는 것이다

즉 솜사탕이   

그 구동력의 설탕이 풀리면서 솜이 되어 도는 속도의 차이를 드러내듯이

공간의 자기장성이 속도 밖의 구름처럼 띨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사천왕천과 인간세의 차이는 비교를 넘어서지만

이런 솜사탕과 같은 성김의 차이는 삼투압성처럼 낼 수 있음에 신선궁의 있다는 것이 된다  

이는 곧 지구를 기준으로 달을 공전성과 자전성으로 할 때

세포가 공전성의 굴레라면 그 속의 글리코겐은 이 공전을 신속히 에너지원으로 푸는

긍근속이나 肝인 木科로서 또한 산성적 자극의 신속한 확산성으로 글리코겐이 된다는 것이다       

 

 

야누스! 양면성인 정월의 관상적 아날로그  

 

우리가 하루를 열두 등분하여 하는 시간과

하루를 두 등분으로 열두 시간이 두 개라는 것이된는데

이 것이 마치 귤을 반으로 짜갠 면이 시계의 면이고 보면

두 개가 합한 것과 같다

그 래서 두  개가 접혀 하나이 듯 이중 수소  두 개처럼

한 면이 두 개로 포갠 시간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 건 공전의 반쪽보다 자전의 반쪽으로 볼 것이 많은데

이는 양극이음양으로 당겨 하나로 구형이 되는 껍질성과

두 개의 구형이 한 원에 양분 됨으로서 바깥의 극으로 밀럴

극을 강하게 하며 양극이 더욱 힘차게 붙게 하는 것으로  

자석 전체 막대를 둘러쌍 상피성으로 상은 하나의 자루가 되지만

결국 양극이 합에 중앙으로 모이면 자연 중앙은 부풀어 원형의 살이 도는데  

결국 핵인 중앙은 모래시계처럼 빨아들여 다시 밀어내는 작용이

전기와 전자의 방향은 반대여도 서로의 깍지로 사쇠함과 같이

막대는 전체적 견인력만틈 는것이니 제로성으로 시작의 바탕성 력랑에 머물 수 있으이다

이처럼 세포 증식도 나름의 물리성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줌 구멍과 똥 구멍을 보면 인간들은 다 왕의 슬하 원자에 양자를 채운 밧데리

 

오줌 구멍과 똥구멍은 같다

정오의 틈이나 자정의 틈은 같다?

우리가 똥구멍을 전지의 심이고 거기에 싼 가루는 오줌 길이라면

우리가 핼륨이 다시 수소 1 족이 될 때 붙은 면이 바로

우리 몸의 창자는 전지심의 핼륨이 되는 것이고

그 외 몸의 장기들은 양성자인 수소족으로서 전지의 살처럼 싼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소와 해륨은 오줌 구멍과 똥 구명의 사이와 같은 막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따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 있따

즉 창자가 중성자이고 몸의 장기가 양성자라면

중성자에도 양성자와 같은 요소가 있다는 것이 된다

다만 감각과 적극성이 달라 받침성이 되고 주체성이 되고 할 뿐이라는 것이다

 

 

잡탕이어도 철학 맛은 나네

 

밀은 잘 밀어 겉살이 두껍고 쌀은 안에서부터싸 창자끼지 길게 여운을 남기는 것이니

내장에서 부터 비만이 많아지게 되어 있는대

그럼 창자를 짧게 자르고 육식을 많이 할 것인가

창자를 늘려 채식을 많이 할 껏인가?

한 때는 키 갖고 루즈라고 하더니 그 것은 안 되니까

키는 또 봐줘도 얼굴은 절대 안돼는 관문이라고  젝 멋대로 대주으이 입막인 냥 맞추듯이

우리도 창자를 이렇게 맞추면 장수하자고 박사학위 준 것이여?

알뜰하기로 음식도 그런 것이다 경강부회라 이런 견강부화가 없다

그러면서 라프리카 흑인은 굶으니 불쌍하다?

무엇이라도 남은 여지가 있어야 보태 주지 끝없는 개선장군같은 노예시장만 흥행이다   

밀은 잘 밀어 외피성 살이 잘 찌는 것익 속은 허증을 느끼게 하니 고기를 많이 먹게 되어 있고

쌀은 싸니 쌀만 먹어도 포만감은 있는 것이다 내장에 지방이 않이 끼게 하니 

다이어트에는 쌀이 나으나 포만감을 고기로 채우면 다 허사로서

도리어 내장비만으로 숨통을 조으는 것이다  

그러니 육식을 많이 하면 살로 미는 것이 밀이나

살은 내장부터싸는포만감이니 내적으로 살은 떠 찌게 마련이지 않는가

우리가 약이든 음식이든 氣를 외면한 물질 성질의 대증은

결국 인간 체온을 무시한 인간성 대위로서치닫는 맹목성이나 다름 없다

그러니 자연으로서 얻는 藥은 氣가 병용되게 되어 있다

즉 인스탄트식 마취성 중독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약리성만의 부각이나 외과적 결과는 원소

가장 외곽적 감성인 乾坤과 兌艮의  대칭성 굴레의 효과는 볼 수 있어도

坎離와 震巽의 대칭인 궤도 막인 깊은 내피성 촉각성에 닿았다고는 엄두도 못 낸 일이다

즉 이온으로 붙게 하여 금속성을 찾아내는 것이

신경에 닿아야 그 금속인 냥 아는 영향의 물질성이

물질성 중에 氣도 다 알기 힘드는데 그 氣보다 저 섬세한 국면으로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氣를 인성하니 마니 해도 坎離 쌍의 궤도의 두께인 것이고

그 한 시공을 지난 둔감이야 震巽으로서  신경계인데

이는 무이식 중이어도 직감과 영감은 불가사의한 중에 부단히 직, 간접으로 느끼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것의 영향력이란 것은 자신만이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즉 무디고 외피성 두꺼운 지속은  핵심이 아니어도 기둥처럼  버티는 것은 것은 되니

살아 있으면 그 서으로 척도이듯이 하지만 해결됨이 아닌 것이다

고통이 없다고 심신이 해방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바다에 나무가 가라앉는 수압성에 감리의 수평성인데

여기서부터는 뜬 나무가 나무가 아닌 것이고

이는 또한 나무인 신경선도 우리의 신경 세포와 다른 촉성으로 가진 것으로

각피 동물이 됨에 이르 원소 3 주기율로 하는데 이는 심해에 대게와 같은 주기율과 같으면

이 보다 아예 각피성 없이 뱀장어처럼 유들유들 해도 심해에 살 수 있음이 원소 2 주기율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물에 뜬 나무의 신경으로 인식을 하는 것이 坎 水인 물의 샅투압의 밖인 離의 접목으로 이룬 감으로야

氣에서 오락가락하다 마는 상황에서 震巽의 신경성 느낌에는 접근도 못 했다고 봐야한다

 

 

에일리언

 

그리어 난 에일리언이여

그리어 난 지옥 갈 개 잡종이여!

죽어도 부관참시할 눈만 호시 탐탐하는 것이여!

신구화합이라...

비바체라는 현대식 깔끔에 중중머리가 들어가니

이 거 원!

왠 에일리언이 인간탈을 쓴 것이여?

저 거 해탈이라고?

어머나!  징그러운 것!

왠 호박 속 같이 달착지근 익은 듯

그런데 난 중중모리라고 그만 떫은 것 아니여?

색계를 비웃듯이 해도

센스 없는 것들이 지혜에도 못 끼는 것들이 !

볼짱 나게 닮았다고 끼어들려고 한다고?  

땡땡한 채 붉기는한데 왜 이리 떫은 것이여!?

저 것 땡땡한 것 감정은 있는 것이여?

저 것들이 홍씨맛을 알아?

중중머리 비바체 탈을 쓴 에일리언일 뿐이여!

그리어 그리어

그냥 산 구석에서 신선으로 모셔줄 때 갇혀 있다 갈 것이지

그져 남의 한이나 진양조로 풀어주고

끼리끼리 두둥켜 안고 눈물 찔끔하다 갈 것이지

주제 넘게 너무 튄 것 아니여?

이미 처준 울에나 고마워할 일이지 왠 도망인 것이여?

비바체와 중중머리는 족보가 다른 것이여!

그러데 왜 죽일 듯 숨 넘어 갈 듯이 하면서

또 무슨 장단인 것이여?

완전 노랑머리와 검은 머리가 다른 것처럼

흰색과 검은 색이 다른 것처럼

다 다른 족보인 듯이 하지 않는감?

왠 걸

그런데 왜 같이 숨이 가쁜 것이여?

이러다 사마귀 숫놈되는 것 아녀?

사람잡네

사람잡네

 

 

상자에서부터의 유기성

 

바보상자가 멍청이 상자가 되는 것에

상자도 자의식이 있다면

그로 출발한 뮨명의 역류성에 구석 그림자적 무명성 혹성에 다달은 듯이

상자는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상자도 의식에 옷이 되는 듯이  누어만 있는데

왜 인간들이 바보로 만륻고 멍청이로 만드는가가 되는데

다만 왜쳐도 인간들이 못 알아들었지 않은가

그래고 여름은 무더워 푹축쪄 댕감 녹이듯이 하는 것도

매미의 열성적 진동적 부채질을 하는 것이지요

나무부리가 딸으로 나와 단단한 열매를 익도록 부채질 하는 것이죠

그냥 여드럼같은 정도만 여름만으로 한꺼번에

지구의 공전으로 갘은 회로를 속결오 자전의수 수로 응축아여 뱉는 것이죠 뭐

마치 7 주기율까지 뭍혔다  연어처럼 U턴 한 듯이 말이죠

그런제 이승만으로 도는 아날로그 얼굴 둘레가 아니라

땅에서 나온 듯 디지철이 매미인 것이 아니겠어요?

마치 인스턴트식 조합을 땅에 묻어 삭혀도     

어쩐지 인스턴트 조합성이라는 것이 전체성이라는 것으로

서로 붙들어주는 빌딩 구조와도 같은 것으로

한꺼번에 팍 삭아 내릴 역사성의 구조물과 같다는 것이다

견고하면 무얼 하나

사람이 안 살면 그 미끈하던 마룻금도 검은 깜부기이듯 일어날 듯이 할 것인데

잘 생각해 보세요

바보상자도 상자가 바보가 아니고 드는 인간이 바보스러움이요

멍청이 이동식 상자도  인간을 멍청이로 만드는 것어서 멍청이 상자인 것이

주위의 공간은 무시된 시간과 소리만 있는 듯이 외치는 열정만 비즈니의 가치요

시끄러운 것은 국내에서 

즐기고 돈으로 광내는 서정은 외국에서 한다게 즐기면 일거양득이라?  

개같이 국내에서 벌어거 정승같은 외국에 대접받으면 된다?

눈 앞의 공간과 정적을 외먄해도 가치 없는 것이고

먼 자들과 시답잖은 대화를 영화 보듯이 들어주어야 덕목이다?

얼마나 주변이 가치가 없으면 주변 사람을 전화로 빗대어 욕해도  무관심

아예 자기끼리 막역지간이라 욕을 붙이는 것도

지들 끼리 그 와중에도 희그덕 키그덕

곁에 사람만 긴장되게 왠 싸움판이냐건만

그 것이 자유인인 냥 문명을 즐기는 등급이라고

지혜라고 들어주어야 하는 억지 춘향

다 힘 있는 은밀들의 자기 뱡뇨성 전봇대에 다리들기 비즈니스